이사 후 토지신에 대한 제문【을축년180) 정월 16일 을해】 祭移家後土神文【乙丑正月十六日乙亥】 남양(南陽)181)에 초가집을 처음 완성한 것은 공경심을 지키려함이지 음풍농월하려는 것이 아니었고, 회암(晦菴)182)도 토지에 제사할 때 의례를 두었으니, 미리 재계하고 감히 짧은 글을 고합니다. 공경하되 멀리해야 하니 하물며 신을 싫어할 수 있겠습니까?183)주인 모(某)는 주경야독하는 신세로 청근(淸謹)함은 멀리 연명(淵明)184)을 사모하고, 산수에서 소박한 마음으로 유한(幽閑)함은 가까이 퇴도(退陶)185)를 배웠습니다. 감히 몸을 고상히 하려 함이 아니라, 외람되이 은거하여186) 산수를 즐기면서 차라리 인(仁)과 지(智)를 배워187) 이루지는 못할지언정, 명예와 이익을 구하면서 세상에 아첨하여 작게 이루는 일은 멀리 배척하겠습니다. 당체(棠棣)의 시를 읊으면서 원컨대 오직 부모님이 편안하고188) 곤이(坤二)의 경계를 외우면서 다만 경의직방(敬義直方)을189) 추구하겠습니다.이제 도민(道民)190)의 옛 마을은 세칭 '시중(侍中)'의 옛 땅으로 솔과 대는 순박한 옛날의 풍치를 띠고 있고, 짐승과 새는 산인(山人)의 의로운 집을 기뻐합니다. 이에 왕통(王通)의 허름한 집191)을 지어서 몇 질의 경전과 역사서를 살림살이로 삼고 옥천(玉川)의 부서진 집의 지붕을 이어서 마음으로 춘추삼전(春秋三傳)192)을 기약하고 맛 좋은 술 한 잔 따르기를 기약하면서 감히 토지신께 바치고 재배합니다. 재계하고 정결히 하며 의복을 성대히 하니 황홀하게 처창훈호(悽愴薰蒿)193)하고, 공경하고 두려워하며 엄숙하고 장엄히 행하니 양양하게 위에 계시는 듯합니다.194)제물이 비록 보잘 것 없으나 정성은 흠향하실 만합니다. 신께서는 달밤에 호미를 멘195) 이 몸을 보호하시고 경서를 품고 의리를 간직했던 처음의 뜻을 편안케 하소서. 무망(誣罔)196)한 일이 이르면 얼음이 풀리고 안개가 사라지듯 하게하고, 불상(不祥)한 일이 오면 구름이 걷히고 자리가 걷히듯 하게 하소서.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며197) 백년토록 봄바람을 차지하게 하시고, 집안을 마땅하고 즐겁게 하여 만세토록 화락을 길이 누리게 하소서. 南陽之草廬始成。 持敬乃非長嘯。 晦菴之土祀有禮。 宿齋敢告短辭。 敬以遠之。 矧可射也? 主人某。 經鋤身世。 淸謹遠慕淵明。 山水素心。 幽閑近學陶退。 非敢蠱上。 竊濫乾初。 樂峙樂流。 寧學仁智而未就。 求名求利。 遠唾阿世而小成。 詠棠棣之詩。 惟願父母其順。 誦坤二之戒。 但求敬義直方。 今玆道民舊村。 世稱侍中故地。 松篁帶淳古之風味。 禽鳥喜山人之義軒。 肆築王通之弊廬。 生涯數秩經史。 乃葺玉川之破屋。 心期三傳春秋。 期酌醴醑一觴。 敢獻后土再拜。 齊明盛服。 怳怳乎悽愴薰蒿。 寅畏肅莊。 洋洋乎若在其上。 薄奠雖賤。 誠意可歆。 神其祐月夕荷鉏之此身。 安懷經抱義之初志。 無罔3)之至。 冰釋霧消。 不祥之來。 雲捲席撤。 浴乎沂風乎舞。 長占百年春風。 宜爾室樂爾家。 永享萬世和樂。 을축년 김만영의 생존 기간 동안에 을축년에 해당하는 해는 1625년인데, 이 때는 김만영의 나이가 2살 때여서, 연도에 착오가 있는 듯하다. 남양(南陽) 제갈량(諸葛亮)이 유비(劉備)를 만나기 전에 초옥(草屋)을 짓고 농사지으며 은거했던 곳이다. 《三國志 권35 蜀書 諸葛亮傳》 회암(晦庵) 남송(南宋)의 학자 주희(朱熹)의 호이다. 공경하되……있겠습니까 토지신을 공경한다는 뜻을 강조한 것이다. 《논어》 〈옹야(雍也)〉에, 번지(樊遲)가 지혜에 대해 묻자 공자가 "사람의 도의에 힘쓰고,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한다면 지혜롭다고 할 수 있다.[務民之義, 敬鬼神而遠之, 可謂智矣.]"라고 하였다. 또 《중용장구》 제16장에 "《시경》에 이르기를 '신이 이르는 것을 헤아릴 수 없거니, 더구나 신을 싫어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詩曰, 神之格思, 不可度思, 矧可射思.]'라고 하였다 연명(淵明) 동진(東晉)의 고사(高士) 도잠(陶潛)의 자이다. 퇴도(退陶) 원문에는 '도퇴(陶退)'로 되어있는데, '퇴도(退陶)'의 잘못인 듯하다. 이황(李滉)의 자이다. 몸을……은거하여 원문의 '고상(蠱上)'은 《주역》 〈고괘(蠱卦)〉의 상구(上九)에 "왕후를 섬기지 않고 그 일을 고상히 한다.[不事王候, 高尙其事.]"라고 한 것을 말한다. '건초(乾初)'는 《주역》 〈건괘(乾卦)〉 초구(初九)에 "잠긴 용이니 쓰지 말라.[潛龍勿用]"라고 한 데서 원용한 것으로 은거함을 뜻한다. 산을……배워 공자(孔子)가 일찍이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智者樂水, 仁者樂山.]"라고 한 데서 원용한 것이다. 《論語 雍也》 당체(棠棣)의……편안하고 '당체(棠棣)'는 '상체(常棣)'와 같은 뜻인데, 《시경》의 〈당체〉는 형제간의 우애를 읊은 시이다. 《중용장구》 제15장에 "《시경》 〈당체〉에 '처자와 잘 화합하면 금슬을 타는 것과 같고, 형제들과 우애하면 화락하고 즐겁나니, 너의 가정을 잘 다스리며 처자를 기쁘게 하라.' 하였는데, 공자가 '그러면 부모님도 편안하실 것이다.'라고 하였다.[詩曰, 妻子好合, 如鼓瑟琴, 兄弟旣翕, 和樂且耽, 宜爾室家, 樂爾妻帑, 子曰, 父母其順矣乎.]" 하였다. 곤이(坤二)의……경의직방(敬義直方)을 《주역(周易)》 〈곤괘(坤卦)〉에 "육이는 곧고 방정하고 위대하다. 익히지 않아도 이롭지 않음이 없다.[六二, 直方大, 不習无不利.]"라고 나오고, 〈곤괘(坤卦) 문언(文言)〉에는 "군자는 경하여 내면을 곧게 하고 의로워 외면을 바르게 한다.[君子, 敬以直內, 義以方外.]"라고 하였는데, 이 구절이 도학(道學) 공부의 가장 중요한 요결이 되었다. 도민(道民) 김만영이 우거하던 고을이다. 왕통(王通)의 허름한 집 자신의 집을 낮춰 말한 것이다. 왕통(王通)은 수(隋)나라 말기의 대학자이다. 20세에 〈태평십이책(太平十二策)〉을 바쳤다가 채택되지 않자 초야로 물러나 연구와 교육에 힘썼다. 《고금사문유취(古今事文類聚)》에 의하면, 당시에 양소(楊素)가 왕통에게 벼슬할 것을 권하자 왕통이 "선인에게서 물려받은 폐려(敝廬)가 있어서 비바람을 가리기에 충분하고, 박전(薄田)이 죽을 끓여 먹기에 충분하고, 책을 읽고 도를 얘기하니 스스로 즐기기에 충분합니다.[有先人之敝廬, 足以庇風雨, 薄田足以具餰粥, 讀書談道, 足以自樂.]" 하면서 벼슬을 사양하였다. 옥천(玉川)의……춘추삼전 허름한 집 두어 칸을 짓고 살겠다는 말이다. 옥천(玉川)은 당(唐)나라 때 시인인 노동(盧仝)의 자호(自號)이다. '춘추삼전'은 《춘추》의 주석서인 《좌씨전(左氏傳)》, 《곡량전(穀梁傳)》, 《공양전(公羊傳)》을 가리킨다. 노동은 간의대부(諫議大夫)로 부름을 받았으나, 나가지 않고 소실산(少室山)에 은거하였다. 한유(韓愈)의 〈기노동(寄盧仝)〉에 "옥천 선생은 낙양성 안에 부서진 집 두어 칸뿐일세.……춘추삼전은 높은 다락 위에 묶어 놓고, 성인이 남긴 경만 안고서 시종 연구한다.[玉川先生洛陽裏, 破屋數間而已矣.……春秋三傳束高閣 獨抱遺經究終始.]" 하였다. 처창훈호(悽愴薰蒿) 귀신의 기(氣)를 형용한 것이다. 《禮記 祭義》 양양하게……합니다 역시 귀신의 기를 형용한 것이다. 《中庸章句》 달밤에 호미를 멘 유유자적 은거하는 삶을 말한다. 도잠(陶潛)의 〈귀전원거(歸田園居)〉에 "남산 아래 콩을 심었더니 잡초가 무성해 콩 싹이 드물구나. 새벽에 일어나 잡초를 매고 달빛 띠고 호미 메고 돌아오네.[種豆南山下, 草盛豆苗稀. 晨興理荒穢, 帶月荷鋤歸.]" 하였다. 무망(誣罔) 원문엔 '無罔'으로 되어있으나, 문맥상 '誣罔'의 잘못인 듯하다. 기수에서……쐬며 도를 즐기며 유유자적함을 말한다. 《論語 先進》 無罔 문맥상 '誣罔'의 잘못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