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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 감사를 전송하며 홍 동지의 시에 차운하다 奉別咸鏡監司次洪同知韻 병들어 누우매 성문에서 전별할 길이 없으니작은 종이에 다만 그대에게 시를 적어 주노라교화 받들어 마침내 민풍이 순화됨을 보고군사 계책은 모름지기 국세를 드높였네오늘 떠나고 남은 이 검은 수염 하얗게 되나지난날 자취는 백두산에 남아 있구나스스로 불쌍하니 늙고 졸렬한 나는 끝내 어디에 쓰겠는가외진 시골에 평범하게 사는 것도 또한 성은이어라 臥病無由餞郭門小牋惟有贈君言承宣會見民風化籌策須令國勢尊此日去留靑鬢改曩時蹤跡白山存自憐衰拙終何用窮巷平居亦聖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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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어사의 제사 繡使題辭 부령(富寧)의 여러 의사의 공렬이 어찌 경성과 회령의 의사들보다 못하겠는가마는 사액을 내려주는 은전을 한쪽은 베풀어 주고 한쪽은 내려주지 않으니, 사림의 품은 한이 마땅히 어떻겠습니까. 조정에 있어서도 은전에 한 가지 흠결이 될 것이다. 富之諸義士之功之烈, 顧何間於鏡會義士, 而宣額之典, 一施一否, 士林齎恨, 當作如何。在朝家, 亦一欠典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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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5 卷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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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附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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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급을 더하는 교서 加資敎書 北道儒生, 陳疏頌功, 遂命加資。知製敎徐渻。 북도의 유생이 소장을 올려 공을 칭송하니, 마침내 자급을 더하라고 명하였다. 지제교 서성1)이 짓다.왕은 다음과 같이 말하노라.홀로 삭방의 공을 맡아오랫동안 적개의 절개를 나타내었네.특별히 아경의 녹질을 올려후한 상의 은전을 베푸노라.이 어찌 개인적인 영광이랴실로 공공의 의론이라네.오직 경은 쇠를 씹을 강건함에다칼날을 밟을 수 있는 용맹을 지녔어라.오경을 읽어 뱃속에 간직하고백보 밖에서 활을 맞출 재주 지녔으니2)문무를 아울러 갖춘 재주로다.육척의 몸이지만만 사내 중에 으뜸이니3)술자리에서 적을 물리칠 지략이라네.4)일찍이 서기로 선발되었으며예전에 종사관의 옷을 입었어라.젊어서는 막부에서어찌 다만 말에 기대어 격문만 지었으랴.5)군중의 한 범중엄으로적의 간담 서늘하게 만든 위엄6)을 다퉈 자랑하였네.동토가 큰 어려움이 닥칠 때북쪽 지방이 더욱 참담하였네.사졸들의 시체 풀밭에 나뒹굴어혹 벌레가 되거나 모래가 되었어라.백성들은 파도처럼 달아나서오랑캐에 투항하지 않으면 왜적에게 투항했네.조정의 위엄 있는 명령이 오래 끊기고풍패7)의 성읍이 이미 쇠잔해졌네.비록 지혜로운 자라도 또한 어찌할 수 없으니계책이 장차 어디에서 나올까.오직 충신은 어지러운 세상에 알 수 있으니경만 홀로 분연이 일어나의병을 일으켜 통솔하여먼저 반란의 역적을 죽였네.위태로워 망설이는 즈음에 군사들과 맹세하니모두 지극한 충정 품었으며모든 것이 불타버린 뒤에 군대를 편성하니믿는 바는 다만 의리라네.한 번 북 울리니 흉도들이 패주하고세 번 싸우니 강한 왜구도 달아났어라.어찌 다만 한 지역 사민만이오랑캐 됨을 면하였으리.나라를 중흥한 업적에실로 너의 공이 많구나.한결같은 절개 위험할 때 이미 밝게 드러났으니빼어난 공적은 종정에 새길 수 있어라.8)한나라 기린각에 초상을 그릴 만한데도리어 순국한 사람을 빠트렸구나.진나라 궁문에 글을 매달으니9)마땅히 허물을 기록한 객이 있으리.상을 내림이 참으로 상전에 부족하니공훈을 생각하매 실로 마음에 부끄럽도다.공훈은 이미 지난 날에 마쳤으니이미 어찌할 수 없는데사실이 비로소 오늘날에 드러났으니무엇으로 내릴 것인가.이에 경에게 가선대부를 더하는데관직은 전과 같게 하노라.오호라! 큰 공이 유생에서 나왔으니옛날 사람과 아름다움을 나란히 할 것이라.얽은 뿌리 자르는 날카로운 검으로10)처음부터 끝까지 충성을 다하였어라.그러므로 이에 교시하노니마땅히 내 뜻을 잘 알리라. 王若曰獨任朔方功久著敵愾之節特陞亞卿秩庸施懋賞之恩斯豈私榮實惟公議惟卿嚼鐵之剛蹈刃其勇五經腹百步技文武備具之才六尺身萬夫雄尊俎折衝之略早應書記之選昔着從事之衫幕府少年豈但倚馬之檄軍中一范爭誇破膽之威逮東土之大艱惟北路爲尤慘士卒塗草或爲蟲而爲沙衆庶奔波不投胡則投賊朝廷之威令久斷豐沛之城邑已殘雖智者亦無如何計將安出惟忱臣可識板蕩卿獨奮然倡率義徒先誅亂賊誓師於危疑之際咸懷至誠成軍於灰燼之餘所恃惟義一鼓而兇徒敗折三戰而勁寇遁逃豈徒一路士民免爲左袵其於中興功業實多爾勞一節已昭於險夷殊勳可銘於鍾鼎圖形漢閣反遺殉國之人懸書晉門宜有志過之客行賞誠歉於常典念功實慚於中心勳旣勘於往時已無及矣事始著於今日何以與之兹加卿嘉善大夫職如故於戲大功出儒生可幷美於古昔盤根別利器庶輸忠於始終故兹敎示想宜知悉 서성 1558~1631.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현기(玄紀), 호는 약봉(藥峯),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1592년 병조좌랑(兵曹佐郞)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을 호종(扈從), 호소사(號召使) 황정욱(黃廷彧)의 종사관(從事官)으로 함북(咸北)에 이르러 두 왕자와 황정욱 등이 포로가 되자 혼자 탈출했다. 왕명에 따라 행재소(行在所)에 이르러 병조정랑(兵曹正郞), 직강(直講)이 되고 명장(明將) 유정(劉綎)을 접대했다. 1613년(광해군 5) 계축화옥(癸丑禍獄)에 연루, 11년간 유배되었다가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형조판서에 복직, 이어 병조판서가 되었다. 1624년 이괄(李适)의 난과 1627년 정묘호란(丁卯胡亂) 때에는 각각 왕을 호종했다. 백보……지녔으니 《사기(史記)》 권4 〈주본기(周本紀)〉에 "초(楚)나라에 사는 양유기(養由基)라는 사람은 활을 잘 쏘는 사람이다. 백 보(步) 떨어진 곳에 있는 버들잎에 화살을 쏘면 백 번 발사에 백 번을 맞힌다."라고 하였다. 육척의……으뜸이니 이백(李白)이 〈여한형주서(與韓荊州書)〉에서 자신을 소개하여 "비록 신장은 7척이 채 못 되지만 마음은 만 사내에 으뜸입니다.[雖長不滿七尺 而心雄萬夫]"라고 하였다 술자리에서……지략이었네 굳이 군대를 동원하여 전쟁터에서 싸우지 않고 외교상의 담판으로 상대방을 꺾어 승리를 취한다는 뜻이다. '尊俎'는 술과 도마의 사이라는 뜻으로 연회석을 가리키며, '折衝'은 적군의 전차를 물리쳐 전투에서 승리한다는 의미로, 衝은 전투용 수레의 일종이다. 제(齊)나라의 명상인 안영(晏嬰)이 진(晉)나라에서 정탐하러 온 사신의 의도적인 결례를 연회석상에서 지적하며 결연한 모습을 보이자, 사신은 진나라로 돌아가 제나라를 공격할 수 없다고 보고하였다. 공자(孔子)는 이 말을 듣고 "잔치 자리를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천 리 밖의 일을 안다는 것은 晏子(晏嬰)를 이른 것이다. 절충했다고 이를 만하다.[夫不出于尊俎之間而知千里之外 其晏子之謂也 可謂折衝矣]"라고 하였다. 《晏子春秋 권5 雜上 第5》 말에……지었으랴 《세설신어(世說新語)》 〈문학(文學)〉에 "환선무(桓宣武)가 북방을 정벌할 때 원호(袁虎)가 문책을 당하여 해임되었다. 그때 마침 격문(檄文)이 필요하여 원굉(袁宏)을 불러다가 말에 기대어 쓰도록 하니, 원굉이 손을 멈추지 않고 써 내려가 일곱 장을 썼는데, 매우 볼만하였다."라고 하였다. 군중의……위엄 북송(北宋) 시대의 명신(名臣) 범중엄(范仲淹)이 일찍이 지연주(知延州)로 자청하여 나가서 장수를 선발하고 군졸을 사열하여 밤낮으로 훈련시키고, 또 여러 장수들에게 군졸들을 정예(精銳)하게 잘 기르도록 엄격히 단속하였다. 이에 오랑캐인 하인(夏人)들이 그 소문을 듣고 서로 경계하여 말하기를 "연주는 마음에 두지 말아야 한다. 지금 소범 노자의 가슴속에는 절로 수만의 갑병이 들어 있어, 우리가 속일 수 있는 대범 노자에 비할 바가 아니다.[毋以延州爲意 今小范老子 胸中自有數萬甲兵 不比大范老子可欺也]"라고 했다. 풍패 한 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이 처음 군사를 일으킨 곳으로서, 후대에 제왕(帝王)의 고향을 일컫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史記 卷8》 빼어난……있어라 종정은 상고 시대의 보기(寶器)로, 그 표면에 공신들의 이름이나 공적을 새겨 넣은 데서 조정에 올라 부귀를 누린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두보(杜甫)의 시 〈청명(淸明)〉에 "종정과 산림의 생활이 각기 천성이 있으니, 탁주와 거친 밥 먹으며 살아도 아랑곳하지 않노라.[鍾鼎山林各天性, 濁醪麤飯任吾年.]"라고 하였다. 진나라……매달으니 춘추 시대 때 개자추(介子推)가 진(晉)나라 문공(文公)을 따라 망명(亡命)하면서 공을 세우고서도 나중에 제대로 보답을 받지 못하자, 그를 따르던 사람이 이에 대해 원망하면서 다음과 같은 글을 궁문에 걸어놓았다. 일명 〈사실지조가(士失志操歌)〉라고도 하는데, 즉 "용이 하늘에 오르려고 하매, 다섯 마리 뱀이 보필하였네. 용이 이미 구름을 타고 날매, 네 마리 뱀은 각각 그 집에 들어갔네. 한 마리 뱀만은 홀로 원망하나니, 끝내 머물러 있을 곳이 없구나.[龍欲上天 五蛇爲輔 龍已升雲 四蛇各入其宇 一蛇獨怨 終不見處所]"라고 하였다. 《史記 卷39 晉世家》 얽은……검으로 어려운 처지나 임무를 만나 처리하는 과정에서 뛰어난 재주가 발휘된다는 뜻이다. 《후한서(後漢書)》 권58 〈우후열전(虞詡列傳)〉에 "쉬운 것을 구하지 않고 어려운 일을 피하지 않는 것이 신하의 직분이니, 이리저리 감긴 뿌리가 뒤엉킨 곳을 만나지 않으면 어떻게 예리한 기구를 구별하겠는가.[志不求易 事不避難 臣之職也 不遇盤根錯節 何以別利器]"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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鄕人儺。朝服而立阼階。恐其驚先祖五祀之神。欲依己而安也。則當用祭服而用朝服。何也。 細觀集註。則儺雖古禮。而近於戱。亦朝服臨之者。無所不用其誠敬。此是正義。或曰云云。乃是旁義。豈可專取旁義而疑正義乎。只可兩存之而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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冉有以十哲之列。旣仕季氏。又爲之聚斂。何也。 冉有。以政事之才。學有未至而急於爲仕。故有此失。雖仕季氏。能救其僭而彊公室。則猶足爲小貞之吉。而乃反爲之聚斂附益之。則適足以黨惡害民而已。故夫子斥言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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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容云。色容莊。九思云。色思溫。義若相反。 文鎬承 莊是矜持之貌。指敬而言。溫是寬裕之意。指仁而言。朱子曰求仁。只是主敬。主敬也。故色容莊。求仁也。故色思溫。語雖殊而義實相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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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漢)나라 역사를 보고 감회가 있어 讀漢史有感 한나라 문제(文帝) 말 달리기를 좋아하니말 위에서의 위험 스스로 알지 못하였네당시 조정에 사람 몇이나 있었건만결국 원씨(袁氏)에게 미루어 은미한 간언 아뢰도록 하였네249)두 번째한나라 문제(文帝) 태평한 시대 이루고자 하여오제(五帝)에 대한 신사(神祠) 처음으로 지었네인의(仁義)는 본래 왕자(王者)의 일이니고생해가며 분양(汾陽)에 행차할 필요는 없었네250) 漢文皇帝好馳馬馬上艱難不自知當日巖廊人幾許竟推袁氏進微辭其二漢文皇帝欲太平五帝神祠始經營仁義自是王者事不須辛苦幸汾陽 한나라……하였네 한 문제(漢文帝)가 장안(長安) 동쪽 패릉(霸陵) 위에서 수레를 달려 내려가려 하자, 원앙(袁盎)이 말고삐를 잡고 "험한 산길을 고려하지 않고 달리다가 말이 놀라 수레가 넘어지면, 폐하 자신의 몸이야 하찮게 보신다 하더라도 고조(高祖)의 사당과 태후(太后)께 장차 어찌하시겠습니까?"라 하며 만류한 고사가 전한다. 《漢書 卷49 袁盎傳》 한나라……없었네 한나라 때 망기술(望氣術)에 밝은 신원평(新垣平)이 한 문제(漢文帝)에게 등용되어 벼슬이 상대부(上大夫)에 이르렀는데, 그는 장안(長安)의 동북쪽에 오채(五采)의 신기(神氣)가 있으니 사당을 세워 상제(上帝)에게 제사 지내야 한다고 건의하여 위양(渭陽)에 오제묘(五帝廟)를 세우도록 하였다. 이듬해에 문제는 친히 오제묘에 행차하여 제사를 올렸다. 《史記 卷10 孝文本紀》 《漢書 卷25 郊祀志》 이 시에서의 '분양(汾陽)'은 '위양(渭陽)'의 잘못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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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雲 회오리바람292) 흰 옷 같은 구름을 일으키니구중천의 안색 남김없이 가리네여름 해293)를 가리지 않고 겨울 해를 가리니만물이 어디에서 덕스러운 빛을 볼 수 있을까 羊角扶搖起白衣九天顔色蔽無幾不遮畏日遮冬日品物何由見德輝 회오리바람 원문은 '양각부요(羊角扶搖)'로, 회오리바람을 말한다. 《장자》 〈소요유(逍遙遊)〉에, "그 이름이 붕새인데, 등은 태산 같고 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 같다. 회오리바람을 타고 구만 리를 올라 구름을 뚫고 간다.[其名爲鵬 背若泰山 翼若垂天之雲 搏扶搖羊角而上者九萬里 絶雲氣]"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여름 해 원문은 '외일(畏日)'이다. 사람을 두렵게 하는 여름날의 태양이라는 뜻이다. 춘추 시대 노국(潞國)의 대부(大夫) 풍서(酆舒)가 진(晉)나라 가계(賈季)에게 "진의 대부 조돈(趙盾)과 조최(趙衰) 중에 누가 더 어진가?"라고 묻자, 가계가 "조최는 겨울날의 햇빛이요, 조돈은 여름날의 햇빛이다."라고 대답하였는데, 그 주(註)에 "겨울 햇빛은 사랑할 만하고, 여름 햇빛은 사람을 두렵게 한다."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春秋左氏傳 文公7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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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대신하여 지은 만사 代人挽 우리 집의 종법(宗法) 효(孝)를 기반으로 하니여경(餘慶)328)이 마땅히 뿌리와 가지를 감싸줄 것이네우리 형에게 의탁할 후사 없을 줄 어찌 생각했으리오하늘의 도 끝내 기약하기 어려움을 참으로 알겠네호산(湖山) 적막한 한가로운 사람의 집매화와 대나무 처량한 처사(處士)의 울타리흰 머리의 노쇠한 아우만이 남아문에 기대 길이 통곡하며 애사(哀詞)를 쓰네 吾家宗法孝爲基餘慶當須蔭本支豈意吾兄無後託固知天道竟難期湖山寂寞閒人宅梅竹凄凉處士籬惟有白頭衰老弟倚門長慟寫哀詞 여경(餘慶) 조상이 남긴 은택으로 인해 그 후손이 누리게 되는 복을 말한다. 《주역》 〈곤괘(坤卦) 문언(文言)〉에, "선을 쌓은 집안에는 후손에게 반드시 남은 경사가 있게 마련이고, 불선을 쌓은 집안에는 후손에게 반드시 남은 재앙이 돌아오게 마련이다.[積善之家 必有餘慶 積不善之家 必有餘殃]"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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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佃漁賦 离徽張以帝樂林有蹌而淵潑胎天物兮訏訏美可需於民食結之繩而于野招百靈兮偕作曰旣粒而未飽在庶羞而爲則系燧巢而立極帝則咨夫茹毛資木實而歲饉設火廚而饍素汨無魚而匪肉何以繼彼枵 腸風驪鬱其萬衆裁朕敎以多方遵林蔥而視利眷生育而考禎鱗於牣而獸伏氓不識於群居疇烹飪之適可任草菜而自在蹇俯仰而嘿察天與我以牧人欵群動之蠢然孰徒手以取言絲綸長以造化登佳海而經營纏空桑而作維揉大朴而爲朾蒐芒土而廣張走可獲而潛罹猔利於制裳魴鯉合於薦俎紛緫緫兮品族莫非道於遂生黎則淳而何知皇有作而乃從呿吁來而胥樂澤藪間而厼庖需日用而自給偏爲德於人首蒸瀡臍而利養享賓旅而屬飫盍取私而獻公將有事乎侶皮斯隨時而設敎宜奏鮮而家饒噫伏皇之制度申百王而遐詔開淳芒於厥初創蒐狩於來玆羗薦鮪而懸貂亦春秋而爲度梁不罟而牝遺藹聖心於邃古何當時之朴略燦以尙此文物卽待獵於禮羅詠免罝而吉祝頌曰天皇之天地皇之地有巢巢之神農農之網歟罟歟于獵于狩伊誰之力曰庖犧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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雲星贊帝德賦 堯天蕩而帝則湊百祥而肹蠁炤乾文而賁彰攬我極而孚仰於玄德其不顯賡以颺夫雲星聿景化之上形猗厥像而惟皇襲雲日而文明晟德鬱其難名陶徽光於揖讓格馨聞於甄蒸謠薰琴而徹韾撫璣衡而考禎蒼顥儼而徯應爛莆宮之休徵山川鬱而騁霓紀緯錯而揚靈繽萋渰而遹皇和予倡兮煕煕顧吉衆之藹然驗和氣之孚如湛昭升而燎薄遹彙感而類應羌麗天與出峀一影響於重華甘霈注而炁蒸儀物賁而光著油然降以大化喫彼明其天秩休光蕩於俯仰衆太平而凝郁懿帝德之懋對沕厥祥而賁若通山川而化孚齊日月而光普穆惟星於拱極沛同雲於作雨炯時行而夜爛天以彰夫摯化凝三事而藹藹形九韶而融融偉陶鑄於午會陟在天而降民三光覩其彷彿一念上而氤氲登春臺而鼓舞又康衢之烟月和雲淵而樂奏夢星鳥而民柝搏吾拊兮夔瑟思日贊而雅祝頌曰雲行以施惟德之符星出有章我禮足徵非雲非星聖人之禎盍懋于躬慶此佳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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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충의(尹忠義)【경(儆)】에 대한 만사 挽尹忠義【儆】 충훈의 공적 대대로 세운 집안이 고향 산에 막혔으나형제 사이에 우애 가득하여 집안의 명성 높았네몇 이랑의 전원에서 효제(孝悌)를 가까이하고반평생 운수(雲水) 속에서 그윽함과 한가로움을 차지하였네수성(壽星)은 하늘 위에서 남은 빛 거두고계곡의 달은 숲가에서 해진 문을 가리네안타까워라 얼음 바위 신선 골짜기 안에가지 하나 남은 자형수(紫荊樹)의 그림자 몹시도 잔약한 것이327) 忠勳世業滯鄕山友愛家聲叔仲間數畝田園隣孝悌半生雲水占幽閒壽星天上收餘照溪月林邊掩弊關可惜冰巖仙洞裏一枝荊樹影偏孱 가지……것이 '자형수(紫荊樹)'는 박태기나무라고도 하며, 주로 형제간의 우애를 의미한다. 남조(南朝) 양(梁)나라 경조(京兆) 사람인 전진(田眞) 삼형제가 각기 재산을 나누어 가진 뒤 마지막으로 뜰에 심은 자형수를 갈라서 나누어 가지려 하였는데, 자형수가 곧 시들고 말았다. 이에 삼형제가 뉘우치고 다시 재산을 합하니, 자형수가 다시 무성하게 자랐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續齊諧記 紫荊樹》 윤경(尹儆)이 먼저 세상을 떠나 남은 형제 한 명이 외롭게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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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열사 봉안문 彰烈祠奉安文 유세차 을사년 갑신일이 초하루인 9월 25일 무신일에 어모 장군(禦侮將軍) 행함경북도 병마평사(咸鏡北道兵馬評事) 이단하(李端夏)는 삼가 예자(醴粢)와 희생과 폐백으로 의병 대장 정공에게 고합니다.삼가 아룁니다.아아! 우리 공께서는참으로 문덕과 무위(武威)를 갖추었으니나라를 경영할 재주이며조정 중신의 인재였네.지난 임진년에융막의 보좌로 나갔는데대단히 어려운 때를 만났으니왜놈이 북방을 침범하였네.반란의 백성들이 함께 일어나저들의 매서운 악독함을 도왔어라.성과 진을 훔쳐 장악하니귀순할 생각 없어 역도라 칭하네.왕자와 대신원수와 수령거의 모두 적에 잡히고 함락되었는데다만 공만 남았어라.풀숲으로 달아났다가은밀하게 의사들을 불러 모았네.의사의 대장은그 성이 이씨16)라네.최씨와 지씨및 강씨17)가 협력하였네.먼저 역적놈을 죽이고이어서 날뛰는 왜적을 토벌하였어라.흉도를 죽이고 난을 평정하여다시 북방을 차지하였네.공은 백 대에 남아 있으니잊게 할 수 있으랴.고을에서 추모하여사우를 건립하였으니이에 무계의의병을 처음 일으킨 곳이라네.당시의 주인은참으로 이공이었으니우리 공을 맞이하여 이르니큰 성공의 토대였다네.업적이 가장 많았으며마침내 충성을 다하다가 죽었구나.의로움이 공과 짝이 되니그 보다 나은 이가 없어라.두세 명의 동지가논이 정해지길 기다렸네.사원 담장 밖에따로 작은 집을 세우니마을의 학자들이이곳에 거처하였네.높은 덕행 우러러 존모하여교화가 우뚝 서게 되었어라.이로부터 먼 북방에대의가 밝게 빛났네.이에 좋은 때를 잡아신위를 만들어 영령을 모셨네.혼이여! 돌아와서이곳에 기대고 의지하소서.선비들이 다 모였으니예를 어그러트리지 말라.부디 와서 흠향하여영원토록 후세를 인도하고 도와주시라.삼가 깨끗한 제수 올려경건히 고하나이다.상향. 유세차 을사년 갑신일이 초하루인 9월 25일 무신일에 어모 장군(禦侮將軍) 행함경북도 병마평사(咸鏡北道兵馬評事) 이단하(李端夏)는 삼가 예자(醴粢)와 희생과 폐백으로 의병 대장 정공에게 고합니다.伏以猗歟我公允文允武經濟之材廊廟之具粤在壬辰出佐戎幕遭時孔艱島夷寇北叛民幷起助厥威毒竊據城鎭忘順稱逆王子大臣元戎長吏陷賊殆盡獨有公在竄身草莽密結義士義士之首其姓曰李惟崔惟池曁姜恊力先誅逆竪繼討狂賊夷凶靖亂再奠北方功存百世俾也可忘鄕邦追慕爲建祠宇于此武溪首事之所當時主人寔惟李公邀我公至肇基大功勞績最多竟死于忠義配于公無出其上二三同志追竢論定祠墻之外別設小齋里中學子爰處爰居仰止景行樹之風聲從此遐荒大義揭明玆捐吉辰設位妥靈魂兮歸來是憑是依章甫咸集禮秩無虧庶垂欽格永世啓佑恭伸明薦用表虔告尙饗 이씨 이봉수(李鵬壽)를 가리킨다. 최씨와……강씨 최씨는 최배천(崔配天), 지씨는 지달원(池達源), 강씨는 강문우(姜文佑)이다. 이붕수와 이들 세 사람에 대해서는 권4 〈종의인별록(從義人別錄)〉에 자세히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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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사 사액 치제문 顯忠祠賜額致祭文【乙酉】 을유년에 회령 유생들이 사원을 세워 공에게 제사지냈다. 이 고을에 의병을 일으킨 사람은 첨지 신세준, 주부 오윤적, 최언영, 허관, 봉사 정여경, 수문장 이희백, 봉사 윤립, 수문장 오준례 등이다. 이들을 배향하고 인하여 도신이 조정에 글을 올려 사액을 청하니 정해년에 사액하고 치제문을 내렸다. 지제교 윤홍리가 짓다.지난 임진년에왜적이 독을 뿜어 침략하니호서를 휩쓸며 경기를 차지하고서고개 넘어 북으로 진격하였네.백성들을 도륙하고서관북에 소굴을 만들었어라.간사한 백성이 왜구에 아첨하여그 틈을 이용하여 일어났네.이에 재상을 얽어 잡고드디어 왕자까지 붙잡았어라.잔학함을 도와 재앙을 빚어내어왜적이 더욱 방자하게 되었네.경은 이때 의병을 일으켜막부에서 일어났어라.소문을 듣고 메아리처럼 응하여원근에서 잇달아 찾아왔네.네 사람이 먼저 의기 떨치니여덟 선비가 이어서 일어났네.담력을 펼치고 용기를 떨쳐손에 침을 뱉고 죽기로 싸웠어라.반역의 흉도를 찢어 죽여차례대로 섬멸하였네.많은 군사를 고무시켜도 적을 두려워하는데신인이 분격하며 돌진하였네.잿더미 속에서도 영토 보존함은실로 너희들 때문이로다.〈북관지(北關志)〉와 《채순록(採詢錄)》에 모두 기록되어 있으니사적이 대단히 분명하여라.경성(鏡城)에 사원을 건립하였지만다 봉향하지 못하고 빠트린 사람 있누나.한 당에 배향한 이가네 사람이고 여덟 사람은 빠졌네.영령을 모실 장소가 없으니오래도록 뒤미처 보답하지 못하였어라.많은 사람이 억울해 하니사적이 사라질까 두려워하였네.힘을 합쳐 사당을 지어부에 나아가 별도로 지었어라.일이 조정에 알려지지 않아유독 훌륭함을 정려함이 없었네.사신이 경연에서 아뢰고변방의 상소가 또한 이르렀어라.혁혁한 무공과 위대한 행적은사람들의 이목에 환하게 빛나네.한 사람이라도 오히려 나라를 빛내거늘더구나 너희들 무리로 나옴에랴.충성과 용맹을 고무시킨 것은참으로 일을 앞장선 사람으로 말미암았지만한마음으로 목숨을 바친 것은실로 여러 선비들에 힘입어서라네.그 공을 균등하게 포상해야 하며예도 마땅히 함께 배향하여야 하리.어찌 교화를 세워서백성들의 이목을 고용(高聳)시키지 않으랴.이에 성대한 은전을 미뤄서아름다운 편액을 내리고특별히 예관을 보내어맑은 술로 제사를 올리니밝은 영혼이 있다면부디 와서 흠향하기를. 會寧儒生立祠祀公. 以本府起義人僉知申世俊·主簿吳允迪·崔彥英·許灌·奉事鄭汝慶·守門將李希白·奉事尹岦·守門將吳遵禮等, 配享, 因道臣上聞請額, 丁亥賜額致祭文. 知製敎尹弘离。粤在壬辰島夷逞毒彌湖滿畿踰嶺而北血肉生靈巢穴幽關奸民媚寇闖發其間爰拘國宰遂及王子助虐養禍俾賊益肆卿時倡義起自幕府聞風響應遠近接武四人先奮八士繼起張膽賈勇唾手爭死磔裂叛凶次第殲盡鼓衆惴敵神人快憤得保餘燼實賴爾曹誌錄俱存事蹟孔昭惟鏡刱祠闕不咸秩一堂配食齒四遺八妥靈無所久欠追報羣情壹鬱湮沒是懼合謀經營就府別構事未聞朝獨無旌美使臣筵白藩奏且至烈武偉躅炳赫耳目一猶光國矧爾輩出激礪忠勇亶由首事同心效死實藉衆士功可均褒禮宜同享盍樹風聲丕聳瞻聽肆推盛典寵錫華額特遣禮官酹以洞酌不昧者存庶幾歆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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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류음 楊柳吟 몇 그루의 버드나무 문 앞에 심으니푸른 잎 비 온 뒤에 새로 돋아나네가는 줄기에 긴 실처럼 드리운 가지 화창한 햇살에 자라니주인옹은 이 시편(詩篇)을 꼭 기억해야 하리두 번째시골의 거처 맑은 물가 옆에 새로 정하니버드나무 줄 맞춰 심어 짧은 울타리를 둘렀네어느 날에나 드리운 실가지가 푸른 장막을 이루어좋은 바람 숨겨 두고서 누런 꾀꼬리와 이야기 나눌까 數株楊柳種門前綠葉新生雨後天細幹長絲條暢日主翁須記此詩篇其二野居新卜傍淸漪種柳成行繞短籬何日垂絲成翠幕好風藏得語黃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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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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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기록하다.【병소서(幷小序). 무신년(1668, 45세) 여름 나는 백봉산(白鳳山)314)의 절에 우거하였는데, 이는 곧 내 선영(先塋)의 재소(齋所)이다. 근심 없이 고요히 거처하여 날마다 좋은 뜻을 품었으니, 지난날 가졌던 세상사에 대한 생각이 아무 것도 없는 듯이 빠져나갔다. 그러다 문득 5월 11일 새벽꿈에서 절구 한 수를 읊었는데 깨고 난 뒤에도 기억할 수 있었으니, 말뜻이 맑고 기이하여 몹시도 신기하였다. 다만 기구(起句)를 이해하기 어려워 다음날 멋대로 기록하였다.】 紀夢【幷小序。戊申夏。余寓居白鳳山之佛舍。卽我先隴之齋所也。靜居無慮。日有好意。向念世間事。脫若無物。忽於五月十一日曉夢。自吟一絶。覺能識得。辭意淸異。殊亦奇也。但起句難曉。翊日慢紀之。】 인간 세상의 아침저녁 봄가을과 같으니여름 베옷과 겨울 갖옷 없을 수 없네315)만 봉우리 푸른 산의 운수(雲水) 속에둥글고 맑은 명주(明珠) 하나 고이 간직하게두 번째【기유년(1669, 46세) 11월 4일 꿈에서 어떤 사람이 나에게 '변(邊)', '천(天)', '면(眠)' 세 운을 주기에 내가 차운하였는데, 깬 뒤에도 기억할 수 있었다.】어떤 객이 적막한 변방으로 나를 찾아오니흰 구름에 푸른 산 솟은 큰 강 위의 하늘이네속세의 어지러운 일 전하지 말라노쇠하고 병들어 근년 이래로 곤히 잠자고 있으니 人間朝夕似春秋夏葛冬裘不可無萬峀靑山雲水裏好藏圓淨一明珠其二【己酉十一月初四日。夢有人贈我邊天眠三韻。余次其韵。覺能記之。】有客來尋寂寞邊白雲靑嶂大江天莫傳塵世煩擾事衰病年來困睡眠 백봉산(白鳳山) 전라남도 나주시 왕곡면(旺谷面) 송죽리(松竹里)에 있는 산이다. 여름……없네 이 구절의 의미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한유(韓愈)의 〈원도(原道)〉에, "여름에 베옷을 입고 겨울에 갖옷을 입으며 목마르면 마시고 배고프면 먹는 것이 그 일은 비록 다르지만 지혜가 되는 것은 하나이다.[夏葛而冬裘 渴飮而飢食 其事雖殊 其所以爲智一也]"라 한 부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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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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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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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노인에 대한 만사 挽隣老 송죽(松竹)을 사이에 두고 동서(東西)로 마주한 것 몇 해였던가뽕나무와 삼 기르는 법 이야기하고 지팡이 짚으며 함께 거닐었지어찌 견디리오 내년 봄 시우(時雨) 내린 뒤에홀로 남쪽 이랑 지나며 밭 가는 일 묻는 것을 幾年松竹限東西論說桑麻共策藜何忍明春時雨後獨過南畝問鋤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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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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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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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에 대한 만사 挽人 십 리에 걸친 긴 강과 몇 겹의 산저녁 안개와 가랑비 속에 석양이 저무네들 집엔 주인 없고 송죽은 늙었으니한가로운 바둑돌만이 바둑판 위에 차네두 번째일찍이 수년 전 물가의 정자에서한잔 술 서로 권하며 정다운 이야기 나누었지거친 시로 외람되이 평생의 교분 입었으니이날 절로 흐르는 눈물 금할 수 있으랴세 번째여름에는 무더위 겨울에는 눈 무릅쓰고서오고 가며 교외의 늙은이 방문한 것이 몇 해였던가교외의 늙은이 이미 늙고 그대는 일찍 세상 떠났으니홀로 서서 큰 바다 동쪽 향해 길게 울부짖네 十里長江數疊山暮烟踈雨夕陽殘野堂無主松篁老惟有閒碁一局寒其二曾數年前水上亭一盃相屬話丁寧荒詩猥被平生託此日能禁涕自零其三夏冐炎熱冬冐雪幾年來往問郊翁郊翁已老君歸早獨立長呼大海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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