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급을 더하는 교서 加資敎書 北道儒生, 陳疏頌功, 遂命加資。知製敎徐渻。 북도의 유생이 소장을 올려 공을 칭송하니, 마침내 자급을 더하라고 명하였다. 지제교 서성1)이 짓다.왕은 다음과 같이 말하노라.홀로 삭방의 공을 맡아오랫동안 적개의 절개를 나타내었네.특별히 아경의 녹질을 올려후한 상의 은전을 베푸노라.이 어찌 개인적인 영광이랴실로 공공의 의론이라네.오직 경은 쇠를 씹을 강건함에다칼날을 밟을 수 있는 용맹을 지녔어라.오경을 읽어 뱃속에 간직하고백보 밖에서 활을 맞출 재주 지녔으니2)문무를 아울러 갖춘 재주로다.육척의 몸이지만만 사내 중에 으뜸이니3)술자리에서 적을 물리칠 지략이라네.4)일찍이 서기로 선발되었으며예전에 종사관의 옷을 입었어라.젊어서는 막부에서어찌 다만 말에 기대어 격문만 지었으랴.5)군중의 한 범중엄으로적의 간담 서늘하게 만든 위엄6)을 다퉈 자랑하였네.동토가 큰 어려움이 닥칠 때북쪽 지방이 더욱 참담하였네.사졸들의 시체 풀밭에 나뒹굴어혹 벌레가 되거나 모래가 되었어라.백성들은 파도처럼 달아나서오랑캐에 투항하지 않으면 왜적에게 투항했네.조정의 위엄 있는 명령이 오래 끊기고풍패7)의 성읍이 이미 쇠잔해졌네.비록 지혜로운 자라도 또한 어찌할 수 없으니계책이 장차 어디에서 나올까.오직 충신은 어지러운 세상에 알 수 있으니경만 홀로 분연이 일어나의병을 일으켜 통솔하여먼저 반란의 역적을 죽였네.위태로워 망설이는 즈음에 군사들과 맹세하니모두 지극한 충정 품었으며모든 것이 불타버린 뒤에 군대를 편성하니믿는 바는 다만 의리라네.한 번 북 울리니 흉도들이 패주하고세 번 싸우니 강한 왜구도 달아났어라.어찌 다만 한 지역 사민만이오랑캐 됨을 면하였으리.나라를 중흥한 업적에실로 너의 공이 많구나.한결같은 절개 위험할 때 이미 밝게 드러났으니빼어난 공적은 종정에 새길 수 있어라.8)한나라 기린각에 초상을 그릴 만한데도리어 순국한 사람을 빠트렸구나.진나라 궁문에 글을 매달으니9)마땅히 허물을 기록한 객이 있으리.상을 내림이 참으로 상전에 부족하니공훈을 생각하매 실로 마음에 부끄럽도다.공훈은 이미 지난 날에 마쳤으니이미 어찌할 수 없는데사실이 비로소 오늘날에 드러났으니무엇으로 내릴 것인가.이에 경에게 가선대부를 더하는데관직은 전과 같게 하노라.오호라! 큰 공이 유생에서 나왔으니옛날 사람과 아름다움을 나란히 할 것이라.얽은 뿌리 자르는 날카로운 검으로10)처음부터 끝까지 충성을 다하였어라.그러므로 이에 교시하노니마땅히 내 뜻을 잘 알리라. 王若曰獨任朔方功久著敵愾之節特陞亞卿秩庸施懋賞之恩斯豈私榮實惟公議惟卿嚼鐵之剛蹈刃其勇五經腹百步技文武備具之才六尺身萬夫雄尊俎折衝之略早應書記之選昔着從事之衫幕府少年豈但倚馬之檄軍中一范爭誇破膽之威逮東土之大艱惟北路爲尤慘士卒塗草或爲蟲而爲沙衆庶奔波不投胡則投賊朝廷之威令久斷豐沛之城邑已殘雖智者亦無如何計將安出惟忱臣可識板蕩卿獨奮然倡率義徒先誅亂賊誓師於危疑之際咸懷至誠成軍於灰燼之餘所恃惟義一鼓而兇徒敗折三戰而勁寇遁逃豈徒一路士民免爲左袵其於中興功業實多爾勞一節已昭於險夷殊勳可銘於鍾鼎圖形漢閣反遺殉國之人懸書晉門宜有志過之客行賞誠歉於常典念功實慚於中心勳旣勘於往時已無及矣事始著於今日何以與之兹加卿嘉善大夫職如故於戲大功出儒生可幷美於古昔盤根別利器庶輸忠於始終故兹敎示想宜知悉 서성 1558~1631.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현기(玄紀), 호는 약봉(藥峯),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1592년 병조좌랑(兵曹佐郞)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을 호종(扈從), 호소사(號召使) 황정욱(黃廷彧)의 종사관(從事官)으로 함북(咸北)에 이르러 두 왕자와 황정욱 등이 포로가 되자 혼자 탈출했다. 왕명에 따라 행재소(行在所)에 이르러 병조정랑(兵曹正郞), 직강(直講)이 되고 명장(明將) 유정(劉綎)을 접대했다. 1613년(광해군 5) 계축화옥(癸丑禍獄)에 연루, 11년간 유배되었다가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형조판서에 복직, 이어 병조판서가 되었다. 1624년 이괄(李适)의 난과 1627년 정묘호란(丁卯胡亂) 때에는 각각 왕을 호종했다. 백보……지녔으니 《사기(史記)》 권4 〈주본기(周本紀)〉에 "초(楚)나라에 사는 양유기(養由基)라는 사람은 활을 잘 쏘는 사람이다. 백 보(步) 떨어진 곳에 있는 버들잎에 화살을 쏘면 백 번 발사에 백 번을 맞힌다."라고 하였다. 육척의……으뜸이니 이백(李白)이 〈여한형주서(與韓荊州書)〉에서 자신을 소개하여 "비록 신장은 7척이 채 못 되지만 마음은 만 사내에 으뜸입니다.[雖長不滿七尺 而心雄萬夫]"라고 하였다 술자리에서……지략이었네 굳이 군대를 동원하여 전쟁터에서 싸우지 않고 외교상의 담판으로 상대방을 꺾어 승리를 취한다는 뜻이다. '尊俎'는 술과 도마의 사이라는 뜻으로 연회석을 가리키며, '折衝'은 적군의 전차를 물리쳐 전투에서 승리한다는 의미로, 衝은 전투용 수레의 일종이다. 제(齊)나라의 명상인 안영(晏嬰)이 진(晉)나라에서 정탐하러 온 사신의 의도적인 결례를 연회석상에서 지적하며 결연한 모습을 보이자, 사신은 진나라로 돌아가 제나라를 공격할 수 없다고 보고하였다. 공자(孔子)는 이 말을 듣고 "잔치 자리를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천 리 밖의 일을 안다는 것은 晏子(晏嬰)를 이른 것이다. 절충했다고 이를 만하다.[夫不出于尊俎之間而知千里之外 其晏子之謂也 可謂折衝矣]"라고 하였다. 《晏子春秋 권5 雜上 第5》 말에……지었으랴 《세설신어(世說新語)》 〈문학(文學)〉에 "환선무(桓宣武)가 북방을 정벌할 때 원호(袁虎)가 문책을 당하여 해임되었다. 그때 마침 격문(檄文)이 필요하여 원굉(袁宏)을 불러다가 말에 기대어 쓰도록 하니, 원굉이 손을 멈추지 않고 써 내려가 일곱 장을 썼는데, 매우 볼만하였다."라고 하였다. 군중의……위엄 북송(北宋) 시대의 명신(名臣) 범중엄(范仲淹)이 일찍이 지연주(知延州)로 자청하여 나가서 장수를 선발하고 군졸을 사열하여 밤낮으로 훈련시키고, 또 여러 장수들에게 군졸들을 정예(精銳)하게 잘 기르도록 엄격히 단속하였다. 이에 오랑캐인 하인(夏人)들이 그 소문을 듣고 서로 경계하여 말하기를 "연주는 마음에 두지 말아야 한다. 지금 소범 노자의 가슴속에는 절로 수만의 갑병이 들어 있어, 우리가 속일 수 있는 대범 노자에 비할 바가 아니다.[毋以延州爲意 今小范老子 胸中自有數萬甲兵 不比大范老子可欺也]"라고 했다. 풍패 한 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이 처음 군사를 일으킨 곳으로서, 후대에 제왕(帝王)의 고향을 일컫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史記 卷8》 빼어난……있어라 종정은 상고 시대의 보기(寶器)로, 그 표면에 공신들의 이름이나 공적을 새겨 넣은 데서 조정에 올라 부귀를 누린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두보(杜甫)의 시 〈청명(淸明)〉에 "종정과 산림의 생활이 각기 천성이 있으니, 탁주와 거친 밥 먹으며 살아도 아랑곳하지 않노라.[鍾鼎山林各天性, 濁醪麤飯任吾年.]"라고 하였다. 진나라……매달으니 춘추 시대 때 개자추(介子推)가 진(晉)나라 문공(文公)을 따라 망명(亡命)하면서 공을 세우고서도 나중에 제대로 보답을 받지 못하자, 그를 따르던 사람이 이에 대해 원망하면서 다음과 같은 글을 궁문에 걸어놓았다. 일명 〈사실지조가(士失志操歌)〉라고도 하는데, 즉 "용이 하늘에 오르려고 하매, 다섯 마리 뱀이 보필하였네. 용이 이미 구름을 타고 날매, 네 마리 뱀은 각각 그 집에 들어갔네. 한 마리 뱀만은 홀로 원망하나니, 끝내 머물러 있을 곳이 없구나.[龍欲上天 五蛇爲輔 龍已升雲 四蛇各入其宇 一蛇獨怨 終不見處所]"라고 하였다. 《史記 卷39 晉世家》 얽은……검으로 어려운 처지나 임무를 만나 처리하는 과정에서 뛰어난 재주가 발휘된다는 뜻이다. 《후한서(後漢書)》 권58 〈우후열전(虞詡列傳)〉에 "쉬운 것을 구하지 않고 어려운 일을 피하지 않는 것이 신하의 직분이니, 이리저리 감긴 뿌리가 뒤엉킨 곳을 만나지 않으면 어떻게 예리한 기구를 구별하겠는가.[志不求易 事不避難 臣之職也 不遇盤根錯節 何以別利器]"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