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옥헌(鳴玉軒)에 제하다【헌의 주인은 상사(上舍) 오이정(吳以井)118)이다.】 題鳴玉軒【軒主卽吳上舍以井】 바위 부딪히는 샘의 현(絃) 옥 구르듯 울리니현을 울리며 흘러 앞 기둥을 휘감네이 사이에서 한가로움 속의 정취 어떻게 얻었는가활수(活水)의 근원 맑기 그지없네119)【위는 샘이다.】원운(原韻)을 붙임섬돌 따라 졸졸 흐르는 작은 시내 소리띳집 쓸쓸하고 대나무가 기둥 이루었네푸른 나무 그늘진 뜰엔 이끼 늙었으니네모난 못 위아래 더없이 맑다네두 번째바람 잔잔히 불어오는 네모난 못에 거울 같은 수면 펼쳐지니아침에 산 그림자 고요하게 솟아 있네한결같은 생동의 뜻 어떠한가이슬이 바위 가를 적셔 푸른 이끼 자라네【위는 아침이다.】원운을 붙임골짜기 가득한 구름 노을 늦게야 열리니어지러운 산 집을 마주하여 푸르고도 높네은거하는 이 식사 마치고 한가하여 아무 일 없으니시냇가로 걸어가 푸른 이끼 위에 앉아보네세 번째산창(山窓) 저녁에 열자 좋은 바람 불어오니바위 수척한 곳엔 솔과 대나무요 돌엔 늙은 이끼라네만물 생동하여120) 모두 자득하였으니물은 흐름 급해지자 부서지며 옥을 이루네121)【위는 낮이다.】원운을 붙임산 속 사립문 날 저물어 찾아오는 이 적으니오래된 오솔길 그윽하고 깊어 푸른 이끼 자랐네작은 폭포 졸졸 바위 아래로 떨어지니날리는 물방울 옥구슬처럼 흩어지는 모습 고요히 바라보네【'경(徑)'은 어떤 본에는 '간(磵)'으로 되어 있다.】네 번째구름 흩어진 푸른 숲에 석양빛 비치니날아 돌아가는 산새 저마다 의지할 곳 아네은거하는 이 시내 아래를 따라 홀로 거니니골짜기 가득한 바람과 노을 초의(草衣)를 적시네【위는 저녁이다.】원운을 붙임아득한 들판에 석양빛 맑으니강촌의 시골 가게 모두 어슴푸레하네즐거이 바라보다 어느덧 황혼에 이르니뜨락 나무에 그늘 생겨 이슬이 옷을 적시네다섯 번째안개와 놀 뼈에 스며들고 밤은 맑고도 차니달빛 아래 거니는 시냇가 오솔길 풀 푸르네이 속이 자연히 참된 경계가 되니안배(安排)하는 것이 마음 불러 깨우는데 무슨 소용이랴122)【위는 밤이다.】원운을 붙임찬 시내에 달 비치고 물은 차가우니두견새 우는 소리에 산 더욱 푸르네한가히 옥 거문고 연주하며 말없이 앉았으니이 마음 텅 비고 고요하여 절로 맑게 깨어 있네123)여섯 번째도(道)를 체행하여 마음을 비운 그대를 홀로 흠모하고124)꽃 중의 은자(隱者) 나와 흉금을 같이 하네125)활짝 핀 꽃의 홍진(紅塵)의 거리 향하지 말라복사꽃 오얏꽃 핀 시냇가에 한 줄기 길이 뚜렷하네126)【위는 국화와 대나무를 심은 것이다.】원운을 붙임국화 아우의 향기는 내가 흠모하는 것이요차군(此君)127)의 풍미는 더욱 흉금을 같이 하는 것이네지금 풍상(風霜)의 약속128)을 함께 맺으니세모(歲暮)에 의(義)에 깊이 의탁하기를 서로 기약하네일곱 번째푸른 줄기 반묘(半畝) 연못에 곧게 뻗어 있으니새잎이 새로이 자라나는 모습 날마다 바라보네상쾌한 바람 불어오는 곳에 꽃이 처음 피어나니단 이슬 떨어질 제 기이한 향 토해내네【위는 군자당(君子塘)이다.】원운을 붙임작은 여울 졸졸 흘러 연못으로 가늘게 들어오니연꽃 싹 물 위로 솟아 점점 자라나네밝은 달 뜨고 상쾌한 바람 부는 저녁 언제인가홀로 한가한 뜰에 서서 아득한 향기 맡네여덟 번째푸른 봉우리 맑게 갠 가을 하늘에 높이 솟아 있으니아래에는 찬 시내 있어 밤낮으로 흐르네합쳐지고 응결되던 초년의 진실된 일은말하고자 해도 혀끝으로는 말할 수 없네【위는 포석봉(匏石峯)이다.】원운을 붙임웅장하게 서린 채 우뚝 솟아 울창하고 가득하니129)기세가 상서로운 돌에 아득히 나뉘어 흐르네더욱 사랑스러운 것은 밤 깊고 산비 그칠 제매화 줄기130) 가장 높은 봉우리에 곧게 올라 있는 것이라네아홉 번째가랑비 부슬부슬 맑고도 짙으니작은 시내 급히 흘러 옥이 서로 부딪히네131)가장 사랑스러운 것은 날 갠 뒤 석양 너머에선명한 만 개의 푸른 봉우리 드러나는 것이라네【위는 석양에 내리는 가랑비이다.】원운을 붙임가랑비 하늘 가득 내려 가늘게 자욱하니석양 비치자 자색 빛으로 부서지네잠깐 사이에 일어났다 사라져 일정한 곳 없으니강교(江郊)를 뒤덮었다가 다시 먼 봉우리에 내리네열 번째천 굽이 높고 낮아 옥을 깎은 듯 뾰족하니비 내린 뒤의 구름 막 흩어져 겹겹의 산 아득하네조화옹(造化翁)의 무한한 마음 누가 알겠는가잠깐 사이에 안개와 노을 만 가지 모습으로 새로워지네【위는 용구산(龍龜山)132)의 비 갠 뒤 풍경이다.】원운을 붙임천 점의 산봉우리133) 아득히 흩어져 있으니맑게 갠 하늘에 푸른 산 빼어나게 솟았네구름 노을 아침저녁으로 기이한 모습 다양하니푸른 빛 비 내린 뒤에 새로워짐이 더욱 사랑스럽네열한 번째한 조각 남은 구름 들 너머에 모여 있으니가없는 저녁 하늘에 학이 날아 돌아오네맑은 시내 깨끗하여 밝은 모래 희게 빛나니백 번 누인 맑은 빛 십 리까지 환하네【위는 긴 물가의 아득한 정경이다.】원운을 붙임십 리까지 비치는 밝은 모래 흰 눈처럼 쌓여 있으니맑은 시내 한 줄기 시야에 들어오네누가 푸른 산의 골짜기를 깎아다은거하는 이에게 실어 주어 눈을 환히 트이도록 하였나열두 번째맑고 맑은 찬 못 거울처럼 맑으니금색 물결의 맑은 그림자 푸른 빛 층층이 생겨나네이 속에서 끝없는 뜻 옮겨 얻었으니태을(太乙)134)이 중천에 뜬 깊은 밤이네【위는 물과 달의 기이한 경관이다.】원운을 붙임찬 시내에 일렁이는 달 텅 비고 밝은 모습 즐기니대나무집 영롱하고 찬 그림자 생겨나네상쾌한 기운 피부에 스며들어 맑은 정신에 잠들지 못하니초연한 모습으로 깊은 밤까지 단정히 앉아 있네 觸石泉絃戛玉鳴鳴絃决决繞前楹這間那得閒中趣活水原頭淡淡淸【右泉】附原韻循除㶁㶁小溪鳴茅屋蕭然竹作楹綠樹蔭庭苔蘚老方塘上下十分淸其二風細方塘鏡面開朝來山影靜嵬嵬一般生意知何許露潤巖邊長碧苔【右朝】附原韻滿壑雲霞晩始開亂山當戶碧崔嵬幽人食罷閒無事步到溪邊坐綠苔其三山窓晩闢好風來巖瘦松筠石老苔萬物流形皆自得水因流急碎成瑰【右晝】附原韻山扉日晩少人來古徑幽深長綠苔小瀑淙淙巖下落靜看飛沫散瓊瑰【徑一作磵】其四雲罷靑林暎落暉飛歸山鳥各知依幽人獨步循溪下滿壑風霞沾草衣【右暮】附原韻漠漠平郊淡夕暉江村野店共依依耽看直到黃昏後庭樹生陰露滴衣其五烟霞襲骨夜淸冷步月溪邊徑草靑箇裏自然眞境界安排何用喚心惺【右夜】附原韻寒溪月照水冷冷杜宇一聲山更靑閒弄玉琴無語坐此心虗靜自惺惺其六軆道空心子獨欽花中隱逸我同襟繁華莫向紅塵陌桃李溪邊一路深【右種菊竹】附原韻菊弟馨香我所欽此君風味更同襟如今共作風霜契歲暮相期託義深其七翠幹亭亭半畝塘日看新葉展新長光風來處花初綻甘露零時吐異香【右君子塘】附原韻小澗潺潺細入塘蓮芽透水漸看長何時霽月光風夕獨立閒庭聞遠香其八碧峯高扱霽天秋下有寒川日夜流融結初年眞實事欲談無語舌尖頭【右匏石峯】附原韻雄蟠特峙欝磅磚氣勢遠分瑞石流更愛夜深山雨歇冰幹直上最高頭其九零雨絲絲淡若濃小溪流急玉相舂最憐霽後斜陽外露出分明綠萬峯【右夕陽踈雨】附原韻踈雨漫空細濛濃斜陽輝暎紫光舂須臾起滅無方所來揜江郊更遠峯其十千曲高低尖削玉霽雲初罷遠嶙峋誰知造化心無限頃刻烟霞萬態新【右龍龜霽景】附原韻千點螺鬟散縹緲晴空秀出碧嶙峋雲霞朝暮多奇態更愛靑光雨後新其十一一抹殘雲野外堆暮天無際鶴飛回晴川歷歷明沙白百練澄光十里開【右長洲遠望】附原韻十里明沙白雪堆晴川一帶望中回誰能剗却靑山谷輸與幽人眼豁開其十二湛湛寒淵一鑑明金波淸影碧層生這間輸得無邊意太乙中天夜午更【右水月奇景】附原韻寒溪漾月弄虗明竹屋玲瓏冷影生爽氣襲肌淸不寐翛然端坐到深更 오이정(吳以井) 1619~1655.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명중(明仲), 호는 장계(藏溪)다. 1639년 사마양과(司馬兩科)에 합격하고 1651년 정시(庭試)에 응하였으나, 자급(資級)이 없다는 이유로 낙방하자 고향으로 돌아가 학문에 전념하였다. 저서로 《장계유고(藏溪遺稿)》가 있다. 이 사이에서……그지없네 '활수(活水)'는 근원이 있어 항상 흐르는 물을 말한다. 이 대목은 주희(朱熹)의 시 〈관서유감(觀書有感)〉에, "조그맣고 모난 연못에 한 거울이 열리어, 하늘빛 구름 그림자가 함께 배회하네. 묻거니 어이하여 그처럼 맑은가. 근원에서 활수가 솟아 나오기 때문이라네.[半畝方塘一鑑開 天光雲影共徘徊 問渠那得淸如許 爲有源頭活水來]"라 한 부분을 끌어온 것이다. 만물 생동하여 원문은 '만물유형(萬物流形)'이다. 만물이 각기 자기의 모습을 갖추고 활동한다는 뜻이다. 《주역》 〈건괘(乾卦) 단사(彖辭)〉에 "구름이 행하고 비가 내리자 만물이 각기 자기 모습을 갖추고 활동하기 시작한다.[雲行雨施 品物流形]"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물은……이루네 급한 물살로 인해 튀는 물방울의 모습을 옥에 비유한 것이다. 안배(安排)하는……소용이랴 '안배(安排)'는 인위적인 힘으로 적당하게 배치 또는 배분하는 것이다. 《주자어류(朱子語類)》 권64 〈중용(中庸) 3 제25장〉에, "성(誠)은 자연히 성취하는 도리지, 사람이 작위(作爲)하고 안배하는 것이 아니다.[誠者 是箇自然成就底道理 不是人去做作安排底物事]"라 한 대목이 보인다. 또 '마음을 불러 깨운다'라는 구절에 대해서는, 《심경부주(心經附註)》 〈경이직내장(敬以直內章)〉에, 사양좌(謝良佐)가 "경은 항상 성성하는 법이다.[敬是常惺惺法]"라고 한 데 대해, 주희(朱熹)가 "서암의 중은 매일 항상 스스로 '주인옹은 성성한가?'라고 묻고는 '성성하다.'라고 스스로 대답하곤 했다.[瑞巖僧 每日間 常自問主人翁惺惺否 自答曰惺惺]"라 한 대목이 보인다. '성성'은 마음이 항상 맑게 깨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맑게 깨어 있네 원문은 '성성(惺惺)'이다. 도(道)를……흠모하고 대나무에 대해 읊은 구절이다. 대나무는 속이 텅 비어 있으므로 '도(道)를 체행하여 마음을 비웠다'고 표현하였다. 꽃……하네 국화에 대해 읊은 구절이다. '꽃 중의 은자(隱者)'는 국화를 은자에 비유한 것으로, 주돈이(周敦頤)의 〈애련설(愛蓮說)〉에, "내 생각에 국화는 꽃 중의 은자이고, 모란은 꽃 중의 부귀한 자이며, 연꽃은 꽃 중의 군자이다.[予謂菊花之隠逸者也 牡丹花之富貴者也 蓮花之君子者也]"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활짝……뚜렷하네 '길이 뚜렷하다'는 것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가서 길이 깊이 패었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들은 복사꽃과 오얏꽃 같이 화려한 꽃을 좋아하지만 자신은 국화와 대나무를 즐길 것이라는 의미인 듯하다. 차군(此君) 대나무의 별칭이다. 동진(東晉)의 왕휘지(王徽之)가 남의 빈집에 기거하는 동안에도 대나무를 빨리 심으라고 다그치자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물으니, "어찌 하루라도 차군이 없이 지낼 수 있겠는가.[何可一日無此君邪?]"라고 대답한 데서 유래하였다. 《晉書 卷80 王徽之列傳》 풍상(風霜)의 약속 국화‧대나무와 함께 바람과 서리에도 지조를 변치말자는 약속을 맺은 것이다. 국화는 늦가을이나 겨울에 피며, 대나무는 추운 겨울에도 시들지 않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가득하니 원문은 '방전(磅磚)'인데, '방박(磅礡)'의 잘못으로 보인다. '방박'은 기세가 성대한 모습이다. 매화 줄기 원문은 '빙간(氷幹)'이다. 매화는 희고 아름다운 자태로 인해 '빙설(氷雪)'에 흔히 비유된다. 《장자》 〈소요유(逍遙遊)〉에, "막고야산에 신인이 사는데, 살결이 빙설과 같다.[藐姑射之山 有神人居焉 肌膚若氷雪]"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작은……부딪히네 급한 물살로 인해 튀는 물방울의 모습을 옥에 비유한 것이다. 용구산(龍龜山) 전라남도 담양군 수북면과 월산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산세가 병풍을 두른 것처럼 생겼다고 하여 병풍산이라고도 부른다. 산봉우리 원문은 '나환(螺鬟)'이다. 소라 껍질과 쪽진 머리라는 뜻으로, 산들이 둥글둥글 겹쳐 있는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태을(太乙) '태일(太一)'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북극성 주위에 있는 별 이름인데, 북극성과 가장 가까이 있기 때문에 흔히 북극성을 이르는 말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