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고음(九臯吟) 九臯吟 【병서. 내가 사는 곳에는 사방에 언덕이 있어 돈대로 들어갈 적마다 마주하였다. 북쪽 기슭에 있는 서북쪽에서부터 동쪽까지의 네 언덕을 '건(乾 ☰)', '감(坎 ☵)', '간(艮 ☶)', '진(震 ☳)'이라 하고, 남쪽 기슭에 있는 동남쪽에서부터 서쪽까지의 네 언덕을 '손(巽 ☴)', '이(離 ☲)', '곤(坤 ☷)', '태(兌 ☱)'라 하였다. 집은 간고(艮臯)의 남쪽에 있고 손고(巽臯)와 이고(離臯)의 사이를 마주하였으며 진고(震臯), 태고(兌臯), 간고, 감고(坎臯) 및 건고(乾臯)가 사방에 마주해 있었다. 앞에는 샘이 모두 네 곳 있는데, 당 앞에 있는 것은 '소양(少陽)'이라 하고, 감고 앞에 있는 것은 '태양(太陽)'이라 하며, 손고 앞에 있는 것은 '소음(少陰)'이라 하고, 이고 앞에 있는 것은 '태음(太陰)'이라 하였다. 북쪽 기슭에 있는 네 언덕을 합하여 '양의(陽儀)'라 하고, 남쪽 기슭에 있는 네 언덕을 합하여 '음의(陰儀)'라 하였다. 집 뒤에는 둥근 언덕이 있어 이를 '태원고(太圓臯)'라 하였으니, 즉 태극(太極)으로, 팔괘의 돈대와 합쳐 '구고'라 하였다. 태원고 앞에 서서 사방을 멀리 바라보면 무등산(無等山)으로부터 개천산(開天山), 월출산(月出山)을 거쳐 금성(錦城)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이 총 64개였으므로 모두 64괘(卦)로 이름을 붙였다. 무등산은 천근(天根)의 복괘(復卦)가 되고, 월출산은 월굴(月窟)의 구괘(姤卦)가 되며,70) 금성은 추분(秋分)의 돈괘(遯卦)가 되고, 개천산은 춘분(春分)의 임괘(臨卦)가 되니,71) 나의 집은 그 가운데에 위치해 있었다.나는 생각건대, 천지의 이치는 모두 자연의 조화로서 나 또한 무극(無極), 이기(二氣), 오행(五行)과 같은 자연의 조화를 받아 세상에 태어났다. 지금 우연히 머무를 땅을 차지하여 이렇게 자연 산수와 감응하게 되었으니, 지모와 계교, 안배(按排)와 견합(牽合)을 기다리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대역(大易)의 위수(位數)에 부합한 것이다. 나는 아침저녁으로 그 사이를 배회하면서 흔연히 기쁜 마음이 들었으며, 다른 사람이 미처 알지 못하는 묘한 이치를 깨닫고 지극히 고요한 가운데에서 자적(自適)할 수 있기까지 하였다. 이에 마침내 언덕마다 절구 한 수씩을 읊어 한가한 중에 읊조릴 거리로 삼았다.】하나의 언덕 둥글고 맑으며 기운 충만하니진원(眞元)을 머금어 묘한 이치 무궁하네삼십육궁에 봄기운 충만하니72)주인옹의 심사와 은연중에 상통하네【위는 태원고(太圓臯)다.】작은 언덕 서북쪽을 '건구(乾邱)'라 부르니자리 사이의 서쪽 하늘 엄숙한 가을 기운이네만물 고요히 관찰함에 모두 수렴하여 견고히 지키니73)자신의 달아난 닭과 개를 다시 거둘 줄 아네74)【위는 건고(乾臯)다.】정중(正中)의 양기(陽氣)가 건원(乾元)75)을 얻었으니만 가지 조화의 근본 이 속에 보존되어 있네작은 돈대를 명명한 데에는 뜻이 있음을 알겠으니앞 샘의 활수(活水)에 신령한 근원이 있어서라네76)【위는 감고(坎臯)다.】은거하는 곳 동북쪽 간괘(艮卦)가 언덕을 이루니그 아래에 원천(源泉)이 있어 쉬지 않고 흐르네77)산택(山澤)은 하나의 기운으로 통하고 있음을 참으로 알겠으니빛을 머금고 절로 아름다운 것 옥을 감춰두고 있기 때문이라네78)【위는 간고(艮臯)다.】하나의 양(陽) 처음 움직여 천문(天門)을 여니79)무성한 봄빛 해가 점차 따뜻해지네홑옷과 복건(幅巾)에 쌓인 먼지 비로소 털어내니꽃 끼고 버들 따르며 맑은 근원을 찾아가네80)【위는 진고(震臯)81)다.】산이 건지(建地)【산 이름】를 도는 것 개천(開天)【산 이름】에서부터 시작되니나의 집 동남쪽에 손괘(巽卦)가 높은 봉우리 이루었네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늦봄에 시우(時雨) 내린 뒤좋은 바람이 안개 걷어내 푸른 옥 드러내는 것이라네【위는 손고(巽臯)다.】달이 명산 위에 떠올라 일봉(日封)【산 이름】을 마주하니언덕의 아름다운 기운이 두 봉우리에 접해 있네문명(文明)82)은 본래 남쪽 땅을 담당하니83)때때로 구름과 노을을 일으켜 우리 농토를 적셔주네【위는 이고(離臯)다.】태음(太陰)의 샘물가가 곤구(坤邱)이니못은 윤기 나고 산에는 안개 껴 바른 기운 떠오르네남쪽으로 종이창 열고서 고요히 마주하니헛된 생각 절로 사라지고 한가한 시름만 맺히네【위는 곤고(坤臯)다.】만상(萬象)이 근본으로 돌아가 태괘(兌卦)가 문을 이루니원기(元氣)를 닫고 감추어 추위와 더위가 적당하네가을날 될 적마다 높이 올라 바라보니큰 조화가 유행함에 흔적도 보이지 않네【위는 태고(兌臯)84)다.】 【幷序。余所居四方有臯。凡入墩相對。北岸四臯自西北而至東曰乾‧坎‧艮‧震。南岸四臯自東南而至西曰巽‧離‧坤‧兌。家在艮臯之南。面巽‧离之間。震‧兌‧艮‧坎曁乾臯在四畔相對。前有泉凡四穴。在堂前者名曰少陽。在坎臯前者曰太陽。巽臯前者曰少陰。離臯前者曰太陰。合北岸四臯曰陽儀。南岸四臯曰陰儀。家後有圓臯曰太圓臯。卽太極。幷八卦之墩爲九臯。立圓臯之前。四顧遠望。自無等歷開天‧月出至錦城【皆山名】。大小峯巒凡六十四。皆名之以六十四卦。無等爲天根之復。月出爲月窟之姤。錦城爲秋分之遯。開天爲春分之臨。余家居于其中。余惟天地之理。皆自然之化。而余亦稟無極‧二五自然之化。受生于兩間。今偶占棲宿之地。有此自然山水之應。不待智謀巧計安排牽合。而自然相符於大易之位數。余朝暮倘徉於其間。欣然於吾心。至有人不及知之妙。而自適夫至靜之中者。遂逐臯賦律歌一絶。以爲閑中吟詠之具云。】一邱圓淨氣冲融含得眞元妙不窮三十六宮春意足主翁心事暗相通【右太圓臯】小邱西北號乾邱位間金天肅氣秋萬物靜觀皆斂固自家鷄犬放知收【右乾臯】正中陽氣得乾元萬化根柢此裏存名命小墩知有意前泉活水有靈源【右坎臯】幽居東北艮成邱下有源泉不舍流山澤固知通一氣含輝自媚玉藏收【右艮臯】一陽初動闢天門藹藹春光日向暄單裌幅巾塵始拂傍花隨柳趁淸源【右震臯】山回建地【山名】自開天【山名】我屋東南巽作巓最是晩春時雨後好風開霧露蒼璇【右巽臯】月出名山對日封【山名】小邱佳氣接雙峯文明自是司南紀時起雲霞澤我農【右離臯】太陰泉畔是坤邱澤潤山蒸正氣浮南闢紙窓相對靜自無虛想結閒愁【右坤臯】萬象歸根兌作門閉藏元氣節寒暄每當秋日登高望大化流行不見痕【右兌臯】 무등산은……되며 '천근(天根)'은 '하늘의 뿌리'라는 뜻으로 양(陽)이 시작하는 복괘(復卦)를 가리키고, 월굴(月窟)은 '달의 굴'이라는 뜻으로 음(陰)이 시작하는 구괘(姤卦)를 가리킨다. 송(宋)나라 소옹(邵雍)의 〈관물음(觀物吟)〉에, "이목(耳目)이 총명한 남자 몸으로 태어났으니, 천지조화의 부여가 빈약하지 않구나. 월굴을 탐구해야만 물을 알 수 있거니와, 천근에 못 올랐다면 어찌 사람을 알리요. 건이 손을 만난 때에 월굴을 살펴보고, 지가 뇌를 만난 곳에서 천근을 볼 수 있으니, 천근과 월굴이 한가로이 왕래하는 가운데 삼십육궁이 온통 봄이로구나.[耳目聰明男子身 洪鈞賦與不爲貧 須探月窟方知物 未躡天根豈識人 乾遇巽時爲月窟 地逢雷處見天根 天根月窟閒往來 三十六宮都是春]"라 하였는데, 건(☰)이 손(☴)을 만난 것이 바로 구괘(䷫)로 월굴이고, 곤(☷)이 진(☳)을 만난 것이 바로 복괘(䷗)로 천근이다. 금성은……되니 송나라 호방평(胡方平)의 《역학계몽통석(易學啓蒙通釋)》에 있는 〈복희육십사괘절기도(伏羲六十四卦節氣圖)〉를 보면, 복희육십사괘방원도(伏羲六十四卦方圓圖)라는 하나의 권(圈)에 24절기를 나누어 배치하여 복괘(復卦)를 동지(冬至)에, 임괘(臨卦)를 춘분(春分)에, 구괘(姤卦)를 하지에, 돈괘(遯卦)를 추분(秋分)에 위치시켰다. 삼십육궁에……충만하니 송(宋)나라 소옹의 〈관물음(觀物吟)〉에, "천근과 월굴이 한가히 왕래하는 중에, 삼십육궁이 모두 봄이로구나.[天根月窟閒往來 三十六宮都是春]"라 한 데서 취해 온 구절이다. '삼십육궁'은 64괘(卦)와 같은 것으로서 64괘 모두가 하나의 봄기운의 연속이라는 뜻이다. 성호(星湖) 이익(李瀷)은 삼십육궁과 관련하여, '64괘 중에 변역(變易)하는 괘가 8이니, 건괘(乾卦)‧곤괘(坤卦)‧감괘(坎卦)‧이괘(離卦)‧이괘(頤卦)‧대과괘(大過卦)‧중부괘(中孚卦)‧소과괘(小過卦)이고, 교역(交易)하는 괘가 56이니, 둔괘(屯卦)‧몽괘(蒙卦) 이하가 그것이다. 변역은 8괘가 각각 한 궁이 되고, 교역은 2괘가 합하여 한 궁이 된다.'라고 하였으니, 이 해설이 가장 타당하다 하겠다."라 하였다. 《星湖僿說 卷20 經史門 三十六宮》 수렴하여 견고히 지키니 '수렴'은 마음을 고도로 집중함을 말한다. 《심경주부(心經附註)》 〈경이직내장(敬以直內章)〉에서 윤돈(尹焞)이 "경이란 마음을 수렴하여 한 물건도 용납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敬者 其心收斂 不容一物之謂]"라 한 대목이 보인다. 자신의……아네 자신의 잃어버린 마음[放心]을 찾을 줄 안다는 뜻이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인(仁)은 사람의 마음이요, 의(義)는 사람의 길이다. 그 길을 버리고서 따르지 않으며, 그 마음을 놓치고서 찾을 줄을 모르니, 애달프다. 닭이나 개가 달아나면 사람들이 찾을 줄을 알면서도 마음이 달아나면 찾을 줄을 모른다. 학문의 길은 다른 것이 아니다. 달아난 그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仁 人心也 義 人路也 舍其路而弗由 放其心而不知求 哀哉 人有雞犬放則知求之 有放心而不知求 學問之道無他 求其放心而已矣]"라 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건원(乾元) 천덕(天德)의 큰 시초를 말한다. 《주역》 〈건괘(乾卦) 단(彖)〉에, "위대하도다 건원이여, 만물이 여기에서 나오나니, 이에 하늘의 일을 총괄하도다.[大哉乾元 萬物資始 乃統天]"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앞……있어서라네 '활수(活水)'는 근원이 있어 항상 흐르는 물을 말한다. 이 구절은 주희(朱熹)의 시 〈관서유감(觀書有感)〉에, "조그맣고 모난 연못에 한 거울이 열리어, 하늘빛 구름 그림자가 함께 배회하네. 묻거니 어이하여 그처럼 맑은가. 근원에서 활수가 솟아 나오기 때문이라네.[半畝方塘一鑑開 天光雲影共徘徊 問渠那得淸如許 爲有源頭活水來]"라 한 데서 취해 온 것이다. 그……흐르네 《논어》 〈자한(子罕)〉에, "공자가 시냇가에서 말하기를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이고 낮이고 멈추는 법이 없도다.'라고 하였다.[子在川上曰 逝者如斯夫 不舍晝夜]"라 한 부분과 주희(朱熹)의 시 〈관서유감(觀書有感)〉에, "조그맣고 모난 연못에 한 거울이 열리어, 하늘빛 구름 그림자가 함께 배회하네. 묻거니 어이하여 그처럼 맑은가. 근원에서 활수가 솟아 나오기 때문이라네.[半畝方塘一鑑開 天光雲影共徘徊 問渠那得淸如許 爲有源頭活水來]"라 한 부분에서 취해 온 구절이다. 빛을……때문이라네 이 구절은 주희(朱熹)의 〈재거감흥(齋居感興)〉 제3수에, "진주가 들어있기에 못 물은 절로 아름답고, 옥이 묻혀있기에 산은 빛을 머금었네.[珠藏澤自媚 玉蘊山含輝]"라 한 데서 취해 온 것이다. 《朱子大全 卷1》 하나의……여니 진괘(震卦)는 두 개의 음(陰) 아래 하나의 양(陽)이 생겨난 모습(☳)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팔괘 중에서 진괘는 방위로는 동쪽, 계절로는 봄을 상징한다. 꽃……찾아가네 이 구절은 송(宋)나라 정호(程顥)의 시 〈우성(偶成)〉에, "구름 맑고 바람 가벼운 한낮 가까운 때에, 꽃 끼고 버들 따라 앞 시내를 건너네.[雲淡風輕近午天 傍花隨柳過前川]"라 한 데서 취해 온 것이다. 《二程文集 卷1》 진고(震臯) 진괘(震卦)는 동방(東方)이고 봄에 해당하는 괘다. 《주역》 〈설괘전(說卦傳)〉에, "만물이 진에서 나오니, 진은 동방이다.[萬物 出乎震 震 東方也]"라 하였다. 문명(文明) 이괘(離卦)는 문명(文明)함을 뜻한다. 《주역》 〈이괘(離卦) 육이(六二)〉의 전(傳)에, "황은 중앙의 색이고, 문채가 아름다우니, 문명(文明)하고 중정(中正)함은 아름다움이 성한 것이다. 그러므로 황리(黃離)라 한 것이다. 문명중정(文明中正)한 덕으로 위로 문명중순(文明中順)한 군주와 함께 하니 그 밝음이 이와 같고, 붙은 바가 이와 같다면 대선(大善)의 길함이다.[黃 中之色 文之美也 文明中正 美之盛也 故云黃離 以文明中正之德 上同於文明中順之君 其明如是 所麗如是 大善之吉也]"라 하였다. 남쪽 땅을 담당하니 '남쪽 땅'의 원문은 '남기(南紀)'다. 《시경》 〈소아(小雅)‧사월(四月)〉에, "도도한 강한이, 남국의 강기(綱紀)가 되도다.[滔滔江漢 南國之紀]"라 한 데서 유래한 말로, 전하여 남방(南方)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쓰인다. 팔괘 중에서 이괘는 방위로는 남쪽, 계절로는 여름을 상징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태고(兌臯) 태괘(兌卦)는 서방(西方)이고 가을에 해당하는 괘다. 《주역》 〈설괘전(說卦傳)〉에, "태는 정추(正秋)이니 만물이 기뻐하는 바이다.[兌 正秋也 萬物之所說也]"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