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기관별 검색

검색 범위 지정 후 검색어를 넣지 않고 검색버튼을 클릭하면 분류 내 전체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전체 으로 검색된 결과 84193건입니다.

정렬갯수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墓碣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退亭居士。文公墓碣銘。【幷序】 嗚乎。孝親忠君。從師親仁。乃天理之所以然。而不可易者。人倫之所當然。而不容己者也。一日不講此道。則天地不位。萬物不育。而華夏。不足以爲華夏矣。自元淸來。華脈特在我東者。以其保有此綱常也。吾先世旁親。有號退亭公。其循蹈典禮。畜德廣業。雅素踐歷。無纖毫不實底。可以聳動今古者。彬彬然遺迹足徵。公諱存道。字聖哭。我南平之文。自武成公諱多省始。其後名碩相傳。至麗季。有三憂堂先生益漸。道學忠孝。冠冕一世。諡忠宣。是公十世祖也。高祖諱佑昌。通政。曾祖諱敏。生員。祖諱彦寬。宣傳。考諱雲龍。贈副護軍。妣益山蘇氏。婦德甚備。以萬曆壬寅九月十九日。生公于道開里第。生而天稟純美。才氣高邁。八歲護軍公。呼䪨試之。起而對曰。門外雪月白。潔潔見人心。二白唱我曲。今宵誰知音。其意趣。自幼已然。母夫人疾病月餘。公侍湯極誠。暫不離側。一日思喫桃。時早難求。後園桃一顆。適成實。取而供之。味輒爽病漸甦。護軍公夜夢。有老人謂言病愈。以其子孝感。自此可壽九十云。工夫夙就。文詞贍富。護軍公戒以時文。足以應擧而已。大抵吾儒之學。誠敬而守小學之法。格致而講大學之道。俛焉孳孳。自鄕人而可至於聖賢之道也。於是摯見隱峰安先生。時年二十。先生甚器重之。待之以友。丁卯虜警。李相梧里。視師完山公。素相善。卽馳謁爲陳機務。李相深納之。因贈詩曰。吾得一賢士。胡兵豈久留。壬申遭外艱。居廬哀毁盡禮。丙子虜大至。宗社危亡。迫在朝夕。公合義旅三十餘人。赴隱峰幕。丁丑正月到完山。中夜點軍。因感吟曰。一代男兒仗釰歌。四邊賊勢問如何。點軍此夕英豪士。乘勝明朝義氣多。又誓軍曰。士生此世。入則孝親。出則忠君。此五倫之大本。若違令。國家之罪人也。又致書于巡察李公時昉。爲陳銷戢之術。明日到礪山。聞講和。衆皆北向痛哭。公聞三從載道。扈駕南漢。觸寒激憤成疾。卽馳往見之。田內賜藥物。已見甦矣。時朝議。以淸國修幣事。相持不已。公不勝慷慨有詩。【佚】二月還第。族戚朋知皆會。公嘆曰。國家貽羞。到此極矣。改堂扁仁智曰。退亭。亭壁。書皇明乾坤。崇禎日月八字。聞淸陰自瀋陽還。嘆曰。文山殺死。此老生還。其大節。不可以生死異觀。此老卽今日文山。而余未得爲張一鶚可恨。洛舊將薦公。公牢辭曰。吾志已定。決不可回。但先人文學著世。未蒙一命。是何恨。遂聞其行誼于朝。贈秉節校尉副護軍。閔老峰適按本省。因訪曰。孝聞夙彰。白衣急國。眞南州高士也。題其堂曰元峯居士。且留詩曰。草草行裝薄暮尋。靑山雲樹故人心云云。乙未丁內艱。雖耆衰。哀疚致毁。皓首邱林。一以究經硏義爲事。惟論語尤深玩。且戒子曰。居敬而立本。窮理而明善。力行而踐實。此學問要法。汝其勉之。己酉十月七日考終。踰月而葬于加樂峙柯亭壬原。配竹山安氏。生一男時振。孫日華。曾孫。弘德就德命德潤德應德。玄孫以下不錄。嗚乎。公之所師。隱峯安文康公。所從遊。仙源金文忠公。淸陰金文正公。老峰閔文忠公。月沙李文忠公。梧里李文忠公諸先生。是皆宿德碩輔。公能優遊其間。當國家板蕩之會。而同周旋。卒乃卷而藏之。終老林樊。尤豈非磊磊落落者哉。誌狀等文。一辭稱公。以仙淸同歸。尤可徵而不可誣矣。公八代孫炯。以謹愼篤學名。亦可謂肖孫矣。類公遺迹。問銘於余。余敢忘匪分。欽其懿行壯蹟。而銘之。銘曰。天生公才德竝。養親而孝。憂國而忠。有警急而挺身勇往。聞媾成而潔身恬退。所交皆邦國賢哲。所行皆義理恰好。旣不愧而不怍。克有始而有終。後有徵乎斯銘。其必曰退亭公之德行。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卷之三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答族從公三【圭容】 三山歸路。半餉情話。如讀十年之書。追念感感。適因冠山便。得承珍緘。警惰惺昏。如重承顔範。嗚乎。目今世變。轉益甚焉。携手同歸。早晩將有其時。豈可以今日見樣之小晏。而可忘自勵哉。未知尊意亦如是耶。令哥。溫藉愷悌。將有望焉。過庭之際。猛着鞭策否。吾輩皆已失時矣。雖或不忘收桑之念。而終有不及之歎。惟敎養子弟。不墜先業。其非所望耶。日前咸平宗中。以同譜之意。發通于各派。未知長寶宗議之如何。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答朴敬文 每念前日之經歷。只有天鳳山色。蒼然入眼而吾兄之芝宇丰範。俱與之森森。今春欲擬一理看花之笻重尋碩人之澗。以泄其積積之懷萬一。而尙爾未暇矣。謂外金雅委訪。惠書隨之。奉讀耽玩。彌日不釋。承審體候珍穆。實愜拱祝。弟風波餘生。未老遽衰。收桑之念。妄竊有之。而世魔身戲。交互揶揄。可奈可奈。古語云。修職事而學爲已。不修職事而學爲人。學之本領。實在爲已。而吾兄之勤謹修職。餘力劬書。可謂今之古人矣。曷不愛仰。意溢辭縮。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卷之四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目錄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卷之一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詩【五言絶句】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勉菴先生周甲壽詩 天降先生福我東。甲回癸盡上旬中。三株寶樹餘陰厚。全國儒林獻壽同。特寫崇禎扶大義。深排夷狄有丕功。琴床且賀竝庚老。洗耳巖高百世風。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시(오언배율) 詩(五言排律)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효종대왕에 대한 만사 孝宗大王輓辭 바닷가 조선이 중국과 가까우니건곤이 성인을 내었네새로운 큰 명63)을 받아작은 나라 백성들의 사목이 되었다오주 무왕은 문왕의 통서를 받들고상 고종은 태갑의 어짊을 이었네순임금의 조정엔 어질고 뛰어난 이들 서 있고기자의 땅에는 교화가 새롭기도 하여라땅속의 원통한 넋을 풀어주고하늘가로 내쫓긴 신하를 돌아오게 하였네한나라의 수역64)을 기약했다면요동 변방 먼지를 씻어내었으리라대도는 옛날로 돌아가기를 기대하고사문은 거의 참됨을 회복하게 되었다오창생들은 복운이 두텁지 않고황도65)는 날로 침몰하게 되었네바다의 아침 해는 부상의 새벽에 떠오르고상수의 안개는 가시나무 가에 피어오르네곤궁한 백성들은 부모를 여읜 듯 슬퍼하고66)남기신 은택에 신린67)은 애통하여라황량하고 외진 이곳 비록 소원한 지역이나해바라기의 마음은 여전히 봄을 향한다네교외 들판으로 묵은 풀을 헤치고 가서통곡하며 용순68)에 절을 하노라기해년 10월 29일은 바로 대행 대왕(大行大王)69)께서 현궁에 내려진70) 날이다. 교외로 나가 엎드려서 용순을 바라보고는 곡하며 배례를 행하였다. 삼가 지은 시를 기록하여 대강이나마 부모를 잃은 듯한 마음을 기술한다.71) 海宇近中土乾坤生聖人維新受大命司牧小邦民周武承文緖商宗纘祖仁虞庭賢俊立箕甸敎化新地下伸冤魄天涯返逐臣韓邦期壽域遼塞指淸塵大道望回古斯文庶復眞蒼生祿不厚黃道日沉淪海旭扶桑曉湘烟楚樹濱竆民哀考妣遺澤痛臣隣荒僻雖踈遠葵心尙向春郊原披宿草慟哭邦2)龍輴【己亥十月二十九日。 乃大行大王下玄宮日也。 出伏郊外。 瞻望龍輴。 哭行拜禮。 謹錄成韻語。 粗▦如喪之懷云。】 새로운 큰 명 《시경》 「대아(大雅) 문왕(文王)」에 "주나라는 비록 오래된 나라지만, 그 명이 새롭도다.[周雖舊邦, 其命維新.]"라고 하였다. 이는 주나라가 비록 오래전에 생긴 나라지만, 문왕에 이르러서야 천하를 덕으로 감화시켜서 비로소 천명(天命)을 받게 되었음을 말한 것이다. 수역(壽域) 사람마다 천명대로 장수를 누리는 태평성대를 말한다. 《한서(漢書)》 권22 「예악지(禮樂志)」에 "예전의 예법을 계승하고 왕의 제도를 밝혀 온 세상의 백성들을 몰아서 인수의 지경으로 올려놓는다면[躋之仁壽之域], 풍속이 어찌 성왕(成王)과 강왕(康王) 시대만 못하며, 수명이 어찌 고종(高宗) 시대만 못하겠는가."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황도(黃道) 황도(黃道)는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한다고 생각했던 둥근 궤도이다. 곤궁한……슬퍼하고 백성들이 마치 부모상을 당한 것처럼 임금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을 말한다. 《서경》 <우서(虞書) 순전(舜典)」에 "임금이 세상을 떠나자 백성이 마치 부모의 상을 당한 것처럼 삼년복을 입었다.[帝乃殂落, 百姓如喪考妣三載.]"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신린(臣隣) 신하를 의미한다. 신린(臣隣)은 《서경(書經)》 「우서 익직(益稷)」에 "신하가 이웃이며 이웃이 신하이다.[臣哉鄰哉, 鄰哉臣哉.]"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용순(龍輴) 임금의 상여를 의미한다. 《예기(禮記)》 「단궁 상(檀弓上)」에 "천자의 빈은 용순(龍輴) 사면에 나무로 둘러쌓아 초빈(草殯)을 하여 곽의 모양과 같이하고, 도끼모양의 관의(棺衣)를 곽 위에 덮으며, 지붕을 바르는 것이 천자의 예이다.[天子之殯也, 菆塗龍輴以椁, 加斧于椁上, 畢塗屋, 天子之禮也.]"라고 보이는데, 《집설》에 "용순은 빈을 할 적에 순거(輴車)를 사용하여 관을 싣는데, 끌채에 용을 그렸기 때문이다.[龍輴, 殯時用輴車載柩, 而畵轅爲龍也.]"라고 하였다. 대행 대왕(大行大王) 임금이 승하한 뒤에 아직 시호를 정하지 않았을 때의 칭호로,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선왕(先王)을 높여 이르던 말이다. 현궁(玄宮)에 내려진 임금이나 왕비의 관인 재궁(梓宮)을 묘혈(墓穴)인 현궁에 내려 묻는 것을 말한다. 현궁은 재궁(梓宮)이 들어가는 광중(壙中)이다. 인산(因山) 때 내재궁(內梓宮)을 외재궁(外梓宮)에 모신 다음 모든 의식이 끝나면 현궁을 닫는 봉표(封標)를 한다. 《國朝喪禮補編 券2 遷奠儀》 대강이나마……기술한다 원문은 '粗▦如喪之懷云'이다. 문맥에 근거하여 '述'이라는 글자가 결락(缺落)된 것으로 보아 보충하여 번역하였다. 邦 저본에는 '邦'으로 되어 있으나。 문맥에 근거하여 '拜'로 바꾸어 번역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나 동지72)에 대한 만사【나위소이다】 挽羅同知【緯素】 지극한 효성으로 여경73)을 여니명공이 음덕으로 백 년 만에 나왔도다젊은 시절74) 부모를 거듭 여의고계방과 연방에 모두 이름을 올렸다네75)태상시에서 교외 제사를 흠향하고76)교문에서 도 강론하는 연석을 접하였다오77)성상의 노고 육부에서 나누어 맡았고78)은수는 지하에 계신 부모에게까지 미쳤도다79)이품관으로 영예롭게 금의환향하였고80)여든 넘게 장수하여 천수를 누렸네81)문은 돌아가는 새를 등지고서 열렸고처마는 피어오르는 구름 가에 기대었네낙사82)에는 관개83)가 모여들고평천84)에서 복전85)을 누렸도다북신은 갑적을 무너뜨리고86)남극성은 정전에서 빛을 거두었네87)발자국 소리는 마름 돋은 물가에 남았고지팡이 소리는 향초 자란 밭두둑 너머에서 들려오네석성88)의 보석89)을 감춰두고난옥90)같은 어진 자제들 경사를 잇는도다요행으로 외람되이 어머니의 가속으로서인하여 온전한 지우를 입었었네평생 한 줌의 눈물을저물녘 안개 자욱한 강에 흩뿌리리라 至孝開餘慶明公蔭百年深憂冠闋立通籍桂兼蓮太寺欽郊畤橋門接道筵聖勞分六府恩數逮三泉貳秩榮還錦期髦考順天門開歸鳥背軒倚出雲邊洛社傾冠盖平泉享福田北辰虧甲籍南曜斂丁躔屐齒留蘋渚筇音隔蕙阡石城藏寶舃蘭玉慶諸贒幸辱孃家屬仍蒙眷遇全平生一掬淚灑向暮江烟 나동지(羅同知) 나위소(羅緯素, 1583~1666)이다. 나주(羅州)에서 출생하여 1623년(인조1)에 문과(文科)에 급제하였다. 형조 좌랑을 지낸 후 정묘호란 때에 옥과 현감(玉果縣監)으로서 체찰사(體察使) 이원익(李元翼)을 도와 군량 조달에 힘썼다. 1650년(효종1) 9월부터 1652년 4월까지 경주 목사(慶州牧使)를 지낸 뒤에 사임하고 나주로 돌아와 산수를 즐기며 살다가 80세가 되어 노인직(老人職)으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임명되었다. 여경(餘慶) 조상의 은택(恩澤)으로 자손이 번창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역》 「곤괘(坤卦) 문언(文言)」에 "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남은 경사가 있다.[積善之家, 必有餘慶.]"라고 하였다. 젊은 시절 원문의 '冠闋立'은 약관(弱冠)의 나이인 스무 살부터 이립(而立)의 나이인 서른 살 무렵까지로, 젊은 시절을 의미한다. 계방(桂坊)과……올렸다네 나위소가 34세 때이던 광해군 8년(1616)에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여 성균관(成均館)에 들어갔고, 5년 후 삼남(三南) 지역에서 선비를 시취(試取)할 때 장원으로 합격하여 전시(殿試)에 직부(直赴)되어 급제한 것을 말한다. 계방은 대과(大科)에 급제한 사람을 적은 방목이고, 연방(蓮坊)은 소과(小科)인 생원과와 진사과에 입격한 사람의 이름을 적은 방목(榜目)이다. 곧 여기에서는 나위소가 소과와 대과에 모두 급제하였음을 의미한다. 태상시(太常寺)……흠향하고 태상시는 봉상시(奉常寺)이다. 이는 나위소가 인조 12년(1634)에 태상시 첨정(太常寺僉正)에 제수된 것을 가리킨다. 교문(橋門)……접하였다오 교문은 성균관을 가리키는 말로, 주위에 물이 흐르고 다리를 통해 네 개의 문으로 들어가므로 이른 말이다. 이는 나위소가 1630년(인조8)에 직강(直講)을 거쳐 사예(司藝)에 제수되고, 1644년(인조22)에 다시 사예(司藝)에 제수된 것 등을 가리켜 한 말이다. 성상의……맡았고 이는 나위소가 형조 좌랑(刑曹佐郎), 공조 좌랑(工曹佐郎), 예조 정랑(禮曹正郎) 등을 두루 역임한 것을 의미한다. 육부(六府)는 이조(吏曹)ㆍ호조(戶曹)ㆍ예조(禮曹)ㆍ병조(兵曹)ㆍ형조(刑曹)ㆍ공조(工曹)를 가리킨다. 은수(恩數)는……미쳤도다 나위소의 돌아가신 부모까지 추증(追贈)해주었다는 말인 듯하다. 원문의 '三泉'은 무덤 속을 가리킨다. 《사기(史記)》 권6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에 진시황의 무덤을 만드는 것에 대해 말하면서 "삼천까지 뚫고 들어가 구리를 녹여 붓고 그 속에 관을 넣었다.[穿三泉, 下銅而致棺.]"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이품관(二品官)으로……금의환향하였고 나위소가 종2품 벼슬인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제수된 일을 가리킨다. 여든……누렸네 나위소는 85세에 별세하였다. 낙사(洛社) 낙양(洛陽)에서 결성한 원로들의 모임으로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당나라 때에 백거이(白居易)가 주도하여 호고(胡杲), 길민(吉旼), 정거(鄭據), 유정(劉貞), 노진(盧眞), 장혼(張渾), 적겸모(狄兼謨), 노정(盧貞) 등과 함께 모임을 결성하였는데, 후대에 이를 '낙중구로회(洛中九老會)'라 하였다. 둘째는 북송 때에 낙양 유수(洛陽留守) 문언박(文彦博)이 부필(富弼), 석여언(席汝言), 왕상공(王尙恭), 조병(趙丙), 유궤(劉几), 풍행기(馮行己), 초건중(楚建中), 왕신언(王愼言), 왕공신(王拱辰), 장문(張問), 장도(張燾), 사마광(司馬光) 등과 함께 결성한 모임으로 '낙양기영회(洛陽耆英會)'라고 칭하였다. 여기에서는 김만영의 집에 고관이나 사대부들이 모이는 것을 의미한다. 관개(冠蓋) 관원의 관복과 수레를 가리키는데, 일반적으로 관원의 행차나 관모(冠帽)와 수레를 갖춘 사대부(士大夫)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평천(平泉) 평천장(平泉莊)으로, 당나라 이덕유(李德裕)의 별장 이름이다. 하남(河南) 낙양현 남쪽에 있는데, 둘레가 40리이고 기이한 초목과 돌이 많아 그 경치가 선경(仙境)과도 같았다고 한다. 《舊唐書 卷174 李德裕列傳》 여기에서는 나위소가 70세에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금호(錦湖) 가에 수운정(峀雲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그곳에서 즐거움을 만끽하고 지낸 일을 빗댄 것인 듯하다. 이곳은 평천장과 마찬가지로 경치가 매우 뛰어났다고 한다. 복전(福田) 봄에 씨 뿌리고 가꾸면 가을에 수확할 수 있는 것처럼, 공양(供養)하고 보시(布施)하며 선근(善根)을 심으면 그 보답으로 복을 받는다는 뜻의 불교 용어이다. 북신(北辰)은……무너뜨리고 북신은 천지(天地)ㆍ오제(五帝)ㆍ군신(群神)을 호령한다는 황천상제(皇天上帝)가 위치하는 자리이다. 갑적(甲籍)은 명적(命籍)과 같은 말로, 상천이 사람의 생사요수(生死夭壽) 등을 기록해 두었다는 명부를 가리킨다. 곧, 여기에서는 나위소가 수명이 다하여 죽었음을 표현한 것이다. 남극성(南極星)은……거두었네 위와 마찬가지로, 나위소가 죽은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남극성은 장수를 주관하는 별로, 노인성(老人星)이라고도 한다. 석성(石城) 전설 속의 산 이름이다. 《장자(莊子)》 「설검(說劍)」에 "천자의 검은 연계와 석성을 칼날 끝으로 삼고, 제나라와 대산(岱山)을 칼날로 삼고, 진나라와 위나라를 칼등으로 삼고, 주나라와 송나라를 칼자루의 테로 삼고, 한나라와 위나라를 칼자루로 삼는다.[天子之劍, 以燕谿石城爲鋒, 齊岱爲鍔 晉魏爲脊, 周宋爲鐔 韓魏爲夾.]"라고 하였다. 보석(寶舃) 나라나 집안의 동량이 될 만한 재목을 말한다. 《시경》 「노송(魯頌) 비궁(閟宮)」에 "조래산의 소나무와 신보산의 잣나무를, 자르고 쪼개고 재고 맞추어서, 커다란 재목 만드니 웅장한 궁궐이 완성되네.[徂來之松, 新甫之柏, 是斷是度, 是尋是尺, 松桷有舃, 路寢孔碩.]"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난옥(蘭玉) 지란옥수(芝蘭玉樹)의 준말로, 남의 집안의 우수한 자제들을 예찬하는 말이다. 진(晉)나라 사현(謝玄)이 숙부인 사안(謝安)에게 "비유하자면 지란옥수가 집안 섬돌에 피어나 향기를 내뿜는 것과 같게 하겠다.[譬如芝蘭玉樹, 欲使其生於庭階耳.]"라고 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晉書 卷79 謝安傳》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가을밤 잠 못 이루고 홀로 앉아 秋夜獨坐無眠 긴 밤 잠 못 이루어 상천(上天)을 대하니작은 헌(軒) 마치 별 빛나는 하늘과 닿을 듯 높네인간 세상의 무수한 사람들을 굽어보니귀한 이 천한 이 할 것 없이 모두 한낱 꿈속에 빠져 있네 永夜無眠對上穹小軒高若接星空俯窺人世人千億貴賤同沉一夢中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입으로 읊조려 어리석은 아이들을 비웃고 꾸짖다 口號嘲責頑兒輩 산 고요하고 숲 깊으며 해가 또 더디니상 위에서 서책 읽다가 해질 때에 이르렀네화정 처사(和靖處士)의 한가한 가운데의 일똥지게 지는 것과 바둑을 두는 것은 배우지 않았네286)두 번째남쪽 물가의 봄빛 이 때가 가장 좋으니무한한 꽃의 빛 각기 가지에 달려 있네앞 시내를 지나며 높은 흥 충만해지니종일토록 박으로 만든 바둑을 두고 있을 필요는 없다네 山靜林深日又遲一床書史到曛和靖處士閒中事不學擔糞與着碁其二南洲春色最此時無限花光各在枝行過前川高興足不須終日對瓢碁 화정 처사(和靖處士)의……않았네 화정 처사(和靖處士)는 임포(林逋, 967~1028)로 자는 군복(君復)이며, 사후에 화정 선생(和靖先生)이란 시호를 받았다. 서호(西湖) 고산(孤山)에 은거하면서 20년 동안 세상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매화를 심고 학을 기르며 홀로 살았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그를 두고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자식으로 삼았다.[梅妻鶴子]"라 일컬었다. 또 그는 "나는 세간의 일은 다 할 줄 아는데 똥지게를 지는 것과 바둑을 두는 것만 할 줄 모른다."라 하였다. 《事文類聚 卷42 棊》

상세정보
84193건입니다.
/4210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