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靈巖) 홍(洪) 수령59)【종운(鍾韻)】에게 부치다 寄靈巖倅洪【鍾韻】 산수로 이름난 고을에 그대 인연 있는데전원(田園)과 구학(丘壑)에 나 홀로 지내네띳집 처마 쓸쓸하여 문에 거적 드리웠는데60)화각(畫閣) 영롱하여 비단으로 자리 만들었네61)단필(丹筆)로 송사(訟事) 처리하는 것 후한(後漢)의 성길(盛吉)보다 나은데62)주사(朱砂)로 《주역(周易)》에 점 찍으며 선천(先天)을 헤아리네63)자오곡(子午谷)이 정묘교(丁卯橋)보다 낫다고 말하지 말라64)육지에서 어부와 나무꾼으로 늙어가는 것 또한 신선이라네 65)두 번째푸른 하늘의 영악(靈岳) 떠나서 인연 없으니그대 때때로 올라 마음 확 트이는 것 부러워하네신은 푸른 옥 쪼아 책상과 도마에 늘어놓았고구름은 창해(滄海)와 이어져 성대한 연회를 접하네기운은 명해(溟海)와 발해(渤海)를 삼켜 남쪽으로 날개를 옮기고66)시야는 진(秦)나라67)까지 뻗쳐 북쪽으로 하늘을 바라보네형산(衡山)이 즐길 만한 곳이 아니라고 말하지 말라68)취한 늙은이의 풍채 또한 신선이라네 山水名鄕子有緣田園邱壑我塊然茅簷寂歷門垂席畫閣玲瓏錦作筵丹筆訟冤凌後漢朱砂點易筭先天莫言子午勝丁卯陸老漁樵亦是仙其二淸空靈岳去無緣羡子時登意豁然神琢碧瓊排案俎雲連滄海接華筵氣呑溟渤南徙翼目極亟秦北望天休道衡山非可翫醉翁風彩亦神仙 영암(靈巖) 홍(洪) 수령 홍종운(洪鍾韻, 1613~1658)을 가리킨다.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화백(和伯)이다. 1639년 과거에 급제하여 정언, 장령 등을 역임하였다. 1655년(효종6) 영암 군수(靈巖郡守)에 임명되었다. 문에 거적 드리웠는데 원문은 '문수석(門垂席)'이다. 문에 거적을 매달아 놓는다는 뜻으로, 청빈한 집이나 은자(隱者)의 거처를 뜻한다. 《사기(史記)》 권56 〈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에, "집이 성곽을 등진 누추한 골목에 있었고 다 떨어진 거적으로 문을 달았는데도, 문 밖에는 장자(長者)의 수레바퀴 자국이 많이 나 있었다.[家乃負郭窮巷 以弊席爲門 然門外多有長者車轍]"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화각(畫閣)……만들었네 '화각(畫閣)'은 채색을 한 화려한 누각을 말한다. 영암 군수인 홍종운의 생활공간을 빈한하게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공간과 대조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단필(丹筆)로……나은데 '단필(丹筆)'은 법관(法官)이 죄상을 기록할 때 쓰는 붉은 색의 붓이다. 후한(後漢) 사람 성길(盛吉)은 마음이 어질고 남의 아픔을 긍휼이 여기는 성품을 지녔다. 그가 정위(廷尉)가 되어 동짓날 형옥을 판결할 때 부인이 곁에서 촛불을 밝혀주었는데, 두 사람 모두 밤새 눈물을 흘리며 붓을 쥐고 마주 보고만 있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古今事文類聚 前集 卷12 丹筆相對》 홍종운이 수령으로서 인자한 다스림을 펼치고 있음을 칭송한 말이다. 주사(朱砂)로……헤아리네 주묵(朱墨)으로 비점(批點)과 관주(貫珠)를 쳐 가며 《주역》을 열심히 읽는다는 말이다. 당나라 고변(高駢)의 〈보허사(步虛詞)〉에, "동구 문은 깊게 잠겼고 푸른 창은 차가운데, 이슬로 주사 갈아 《주역》에 점을 찍네.[洞門深鎖碧窓寒 滴露硏朱點周易]"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또 '선천(先天)'은 복희씨(伏羲氏)가 만든 역(易)을 말한다. 송나라 소옹(邵雍)은 복희씨(伏羲氏)의 《주역》을 선천역(先天易)이라 하고, 문왕(文王)의 《주역》을 후천역(後天易)이라 하였다. 수령으로서 정사를 처리하는 홍종운의 모습과 대비되는 자신의 모습을 읊은 것이다. 자오곡(子午谷)이……말라 '자오곡(子午谷)'은 중국 장안(長安) 남쪽 종남산(終南山)에 있는 계곡으로, 은거의 공간을 뜻하는 말로 흔히 사용된다.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현도단가기원일인(玄都壇歌寄元逸人)〉에, "오랜 친구 예전에 동몽산(東蒙山) 봉우리에 숨어, 이미 함영(含景)의 글자 새긴 창정룡(蒼精龍) 검을 찼다오. 오랜 친구 지금은 자오곡(子午谷)에 살며, 홀로 응달언덕 초가집에 있네.[故人昔隱東蒙峰 已佩含景蒼精龍 故人今居子午谷 獨在陰崖結茅屋]"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또 '정묘교(丁卯橋)'는 당나라 시인 허혼(許渾)의 별장 정묘장(丁卯莊) 근처에 있는 다리로, 강소성(江蘇省) 단도현(丹徒縣)에 있다. 이들 공간을 아울러 언급한 것으로는, 송나라 섭몽득(葉夢得)의 시에 "은자는 옛날에 자오곡에 살았는데 시객은 홀로 정묘교를 찾았네.[逸人舊住子午谷 詩客獨尋丁卯橋]"라 하였고, 육유(陸游)의 시 〈소축(小築)〉에 "비록 은사가 머무는 자오곡은 아니지만 어찌 시인이 지내는 정묘교에 부끄럽겠는가.[雖非隱士子午谷 寧媿詩人丁卯橋]"라 한 대목이 보인다. 즉 여기에서 '자오곡'은 김만영이 은거하고 있는 곳을, '정묘교'는 홍종운이 부임해 있는 곳을 가리키는 것으로, 자신의 은거 공간이 반드시 홍종운의 생활공간보다 낫다고 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육지에서……신선이라네 어부나 나무꾼으로서 한가로이 살아가는 것 또한 신선 같은 삶일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두보(杜甫)의 시 〈옥대관(玉臺觀)〉에, "홍안에 날개 돋아 하늘에 오르는 신선이야 어찌 또 바라리요, 흰머리의 어부나 나무꾼으로 늙어 감이 마땅하리라.[更肯紅顔生羽翼 便應黃髮老漁樵]"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杜少陵詩集 卷13》 기운은……옮기고 '명해(溟海)와 발해(渤海)'는 남쪽 바다와 북쪽 바다로, 보통 큰 바다를 뜻한다. 《장자》 〈소요유(逍遙遊)〉에, 붕새가 북쪽 바다에서 남쪽 바다로 옮겨 갈 적에 날개를 치면 물결이 3천 리나 인다고 한 대목을 참고한 구절이다. 진(秦)나라 원문은 '극진(亟秦)'이다.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오래 유지하지 못하였으므로 이렇게 표현한 듯하다. 《한서(漢書)》 〈가의전(賈誼傳)〉에, "속담에 '앞 수레가 뒤집힘에 뒤 수레가 조심한다.' 하였습니다. 진(秦)나라가 빨리 망하게 된 원인은 그 바퀴 자국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를 피하지 않는다면 뒤 수레가 또 장차 뒤집히고 말 것입니다.[鄙諺曰 前車覆後車戒 秦氏所以亟絶者 其轍跡可見 然而不避 是後車又將覆也]"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형산(衡山)이……말라 은거하는 공간이 충분히 즐길 만하다는 뜻이다. 중국 오악(五岳)의 하나인 '형산(衡山)'은 호남성(湖南省)에 위치한 산으로, 남조(南朝) 송(宋)나라 유응지(劉凝之)와 종병(宗炳), 당나라 이필(李泌) 등 역대 여러 인물이 이곳에 은거하였다. 형산이 중국 남쪽에 위치해 있고, 자신 역시 현재 호남에 은거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표현을 사용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