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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정씨 쌍효 정려기〉 뒤에 쓰다 書河東鄭氏雙孝旌閭記後 내가 태어나 겨우 일을 살필 때 이미 같은 고을의 신기리(新機里)에 어진 정 효자(鄭孝子) 형제가 있다는 것을 들은 지 오래 되었다. 그 지극한 행실과 아름다운 절개는 자자하게 전해져 한 고을 인사들 중 노소(老少)나 현우(賢愚)를 막론하고 믿어 기뻐하고 참으로 복종하며 사랑하여 사모하고 가상히 여기지 아니함이 없어 마치 자신에게서 나온 것 같이 여길 뿐만이 아니었으니, 모르겠으나 효자는 어떻게 닦아 이런 평가를 얻었는가?일찍이 보건대, 순고(淳古)한 시대에는 인륜이 밝고 풍속이 바른데도 충효가 역사에 전해지는 것은 겨우 적료하여 몇 명뿐이었고, 시대가 내려와 말세에 이르러서는 인륜과 풍속이 모두 옛날과 같지 못한데도 충효가 마을과 향리에 드러난 것은 두루 알아 다 셀 수가 없으니, 그 까닭이 무엇인가?대저 말세에는 허위가 불어나 사사로움을 따라 좋아하는 것에 아부하니 그 폐단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지만 오직 떳떳한 본성을 가지고 덕을 좋아하는 천만 사람의 입에서 나온 것은 또한 거의 없고 겨우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공자께서 민자건(閔子騫)의 효를 칭찬하기를 "효성스럽도다! 민자건이여. 사람들이 그 부모 형제의 말에 이간하는 말을 두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니, 민자건의 발아래 일컬을 만한 지극한 행실이 많을 뿐만이 아닐 것인데 이에 단지 이간하는 말이 없다는 것으로 말하였다. 부성(孚誠)이 이르는 바에 원수도 복종시킬 수 있고 허위(虛僞)가 있는 바에는 어린 아이도 속이기 어려우니, 이것이 인심의 향배를 보고 그 효를 알 수 있는 까닭이다.그렇다면 정공 형제의 효는 한 고을 인사들이 도모하지 않고도 함께 일컬어 다른 말이나 이간하는 말이 없는데 이르렀으니, 가깝지 않겠는가. 이것은 오늘날에 있어 거론하여 말해서 훗날 사필(史筆)을 잡은 사람에게 고하지 않을 수 없다. 그 10년 동안 병을 시중든 정성과 칠순의 나이에 몸을 훼손한 절도 및 다사들이 수령에게 천거하여 조정에서 정려를 내려 포상한 은전 같은 것은 지주(知州) 윤 후(尹侯)가 찬술한 것에 갖추어져 있으니, 중첩할 필요가 없다. 余生而纔省事。已聞同鄕新機里有鄭孝子兄弟之賢久矣。其至行偉節。流傳藉藉。而一鄕人士。無老無少。無愚無賢。莫不信悅誠服。愛慕嘉賞。不啻若出於自己。未知孝子何修而得此。竊嘗觀夫淳古之世。人倫明風俗正。而其忠孝之傳於靑史者。僅寂寥若而人。降而至於叔世。人倫風俗。皆不古若。而忠孝之旌於閭里者。不可周知而悉數之。其故何歟。大抵末路滋僞。循私阿好。其獘何限。而惟其出於千萬人秉彛好德之口者。則亦未可不謂絶無而僅有矣。孔子稱子騫之孝曰。人不間於其父母昆弟之言。在子騫脚下。其至行可稱者。不啻多矣。而乃只以無間言言之。孚誠所格。仇讐可服。虛僞所在。孩提難欺。此所以觀人心向背。而其孝可知也。然則公兄弟之孝。至於一鄕人士不謀同稱。而無異言間辭。則不其幾矣乎。此在今日。不可不擧而言之。以告後之秉史筆者焉。若其十年侍疾之誠。七耋致毁之節。及夫多士薦剡朝家旌褒之典。具在於知。州尹侯所撰。不必架疊云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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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사앙21) 【종섭】에게 답함 答安士仰【宗燮】 작별한 지 여러 날이 되어 서글픈 마음 매우 지극하였는데, 뜻밖에 화려한 편지를 보내 주니, 위로되고 후련한 마음 말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부모님 곁에서 모시는 일이 더욱 넉넉한 줄 알았으니, 듣고 싶은 마음에 더욱 부합하였네. 편지에서 말한 학업에 대한 걱정에서 부지런히 힘써 터득하지 못하면 그만두지 않는 뜻을 볼 수 있었네. 그러나 편지에서 이른바 "학문이 고인과 같지 못하고 행실이 고인과 같지 못하다."라고 하였으니, 단지 이 한 마디는 정법안장(正法眼藏)22)이고 증상에 따른 진정한 처방이라 할 수 있겠네. 반드시 내가 학문하는 것은 어찌하여 고인과 같지 못하며, 행하는 것은 어찌하여 고인과 같지 못한가를 생각하여 나의 학문과 행실로 하여금 반드시 고인과 나란해 진 뒤에 그만두는 것이 가할 것이네. 대저 사앙(士仰)은 독서하면서도 궁격(窮格)23)에 힘쓰지 않는 사람이니, 이것이 고인과 같지 못한 곳이네. 이것이 바로 자신에게 돌이켜 맹렬히 반성해야 할 곳이니, 어떻게 여기는가?[문] 명덕(明德)과 성덕(盛德)은 어떻게 다른 것입니까? 대개 명덕은 품부 받은 처음에 허령하여 갖추어 응하는 것으로부터 말한 것이고, 성덕은 공부를 하여 오랫동안 축적한 뒤 실천을 독실히 한 것으로부터 말한 것이지만 그 덕 됨은 한가지입니다. 시험 삼아 명덕의 본주(本註)로 말하자면, 사람이 하늘에서 얻은 것으로부터 만사에 이른 것이 명덕이고, 드디어 밝혀서 그 처음을 회복함으로부터 천리의 지극함을 다하여 털끝만큼의 인욕의 사사로움이 없는 데 미친 것이 성덕입니다.[답] 매우 알맞은 말이네. 離違有日悵耿殊至。料外華幅。慰豁可言。矧審侍傍履事。益膺冲裕。尤副願言。示中學業之憂。可見俛焉孜孜。不得不措之意。然示中所謂學之不如古人。行之不如古人。只此一語。可謂正法眼藏。對證眞劑也.必須思量吾之所學。何以不如古人。所行何以不如古人。使吾之所學所行。必與古人齊而後已焉。可也。大抵士仰讀書而不務窮格者。此不如古人處也。此正反身猛省處也。如何如何。明德盛德何別。蓋明德。自稟受之初。虛靈具應而言。盛德。自用功積累上。踐履篤實而言。其爲德則一也。試以明德本註言之。自人所得於天。至萬事者也。明德也。遂明之以復其初。及盡夫天理之極。無一毫人欲之私。盛德也。稱停稱停。 안사앙(安士仰) 안종섭(安宗燮, 1877~?)을 말한다. 자는 사앙, 본관은 죽산(竹山)이다. 정법안장(正法眼藏) 학문의 핵심이자 정수라는 뜻이다. 원래 불가(佛家)의 말로 석가가 깨달은 최고의 묘리를 가리킨다. 우주를 밝게 비추는 것을 안(眼), 모든 덕을 포함하는 것을 장(藏)이라 하며, 정법(正法)은 이 안과 장을 구비하는 것이다. 궁격(窮格) 거경궁리(居敬窮理)와 격물치지(格物致知)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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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일에 두공부의 시362)에 차운하다 2수 南至日 次杜工部韻【二首】 음양의 소장은 서로 재촉하니 陰陽消長互相催음이 가고 오늘 아침 양이 왔다네 小往今朝又大來세월은 자연스럽게 절기가 나뉘니 歲月自然分節氣천상(天象)의 운행을 어찌 가회363) 기다려 알랴 象機何待驗葭灰부엌에서는 다투어 향기로운 음식을 올리고 香供廚下爭傳豆다리에서는 멋진 경치의 매화 감상 기다리네 佳景橋頭待賞梅인사는 불원복(不遠復)364)이 아 어려우니 人事嗟難無遠復깊은 수치 바다 같아 술잔을 들 수 없네 深羞如海未能杯세월이 화살처럼 매양 재촉함을 한탄 말라 年矢休嘆每見催천시가 가고 옴을 어찌 금할 수 있으랴 天時孰禁去還來일천 산의 설월은 낮처럼 밝고 千山雪月明如晝고국의 거서365)는 재처럼 식었네 故國車書冷作灰만년의 흉중은 대와 잣나무366) 같건만 晩節襟期同竹柏평소의 사업은 소금과 매실367) 저버렸네 素心事業負鹽梅우렛소리 두 귀를 기쁘게 하지만 雷聲縱可欣雙耳술잔 보내 날 위로해 줄 사람 없구나 慰我無人送酒杯 陰陽消長互相催, 小往今朝又大來.歲月自然分節氣, 象機何待驗葭灰?香供廚下爭傳豆, 佳景橋頭待賞梅.人事嗟難無遠復, 深羞如海未能杯.年矢休嘆每見催, 天時孰禁去還來?千山雪月明如晝, 故國車書冷作灰.晩節襟期同竹柏, 素心事業負鹽梅.雷聲縱可欣雙耳, 慰我無人送酒杯. 남지일(南至日)에 두공부(杜工部)의 시 남지일은 동짓날로, 이 시는 두보(杜甫)의 〈소지(小至)〉를 가리킨다. 《杜少陵詩集 卷18》 가회(葭灰) 갈대 속의 엷은 막(膜)을 태운 재이다. 이 가회를 율관(律管)에 넣어 기후를 측정했는데, 동지의 절후가 황종의 율에 해당하면 그 안에 든 가회가 비동(飛動)하였다 한다. 《後漢書 律曆志上》 불원복(不遠復) 《주역》 〈복괘(復卦)〉에 "초구(初九)는 멀리 가지 않고 돌아오는지라 후회하는 데 이르지 않으니 크게 선하여 길하다.[初九, 不遠復, 毋祗悔 元吉.]"라고 한 데서 보이는 말로, 불선(不善)한 행동이 있는 초기에 그 잘못을 깨닫고 곧바로 선(善)으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거서(車書) 수레는 궤철(軌轍)이 같고 글은 문자가 같다는 뜻으로, 천하가 통일되어 문물제도가 일치된 것을 의미한다. 《중용장구(中庸章句)》 제28장에 "지금 천하에는 수레는 바퀴의 궤도가 똑같으며, 글은 문자가 똑같으며, 행동은 차례가 똑같다.[今天下, 車同軌, 書同文, 行同倫.]"라고 하였다. 대와 잣나무 지조를 잘 지키는 것을 뜻한다. 진(晉)나라 좌사(左思)의 시에 "선명하여라 푸른 수풀 사이로, 대나무와 잣나무가 참된 절조 보여 주네.[峭蒨靑葱間, 竹柏得其眞.]"라고 하였다. 《文選 卷22 招隱詩》 소금과 매실 음식에 꼭 필요한 조미료로 국가에 필요한 인재를 뜻한다. 《서경》 〈열명 하(說命下)〉에 고종(高宗)이 부열(傅說)에게 "내가 국을 조리하거든 네가 소금과 매실이 되라.[若作和羹, 爾惟鹽梅.]"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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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차운한 왕개보 시에 차운하다 次人所次王介甫詩 왕개보의 시에 "주공은 유언비어에 두려워하던 날이요, 왕망은 낮은 선비에게 공손하던 때라오. 만약 당시에 그 몸이 바로 죽었다면, 일생의 참과 거짓을 누가 알겠는가."라고 하였는데,348) 해설하는 자가 훌륭한 작품이라고 하였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이 시에 차운하여 뒤집어 말하기를 "주공은 유언비어에도 평탄하던 날이요, 왕망은 낮은 선비에게 아첨하던 때라오. 설사 당시에 그 몸이 바로 죽었더라도, 일생의 참과 거짓을 아는 사람 있으리라."라고 하였다. 나는 이 시의 뜻은 옳지만 또한 미진하다고 생각한다. 설사 당시에 그 몸이 죽었다면 주공의 충정과 진실은 의당 밝게 드러나는 날이 있겠지만, 왕망의 간사함과 위선은 비록 혹 알았더라도 어찌 그 찬역의 큰 악행을 예단할 수 있었겠는가.주공은 금등에 힘을 다했던 날이요349) 周公盡力金縢日왕망은 포의의 선비에게 간사함을 꾸미던 때라350) 王莽粧奸韋布時가령 당시에 그 몸이 바로 죽었다면 若使當年身便死충심은 결국 드러나겠지만 역심은 알기 어려웠으리 忠終顯著逆難知 王介甫詩云: "周公恐懼流言日1), 王莽恭謙下士時.若使當年身便死, 一生眞僞有誰知?" 說者以爲名作.有人次韻反之曰: "周公坦蕩流言日, 王莽阿諛下士時.設使當年身便死, 一生眞僞有人知." 余謂此意是矣而亦不盡.然設使當年身死, 則周公忠眞, 宜有顯白之日, 莽之奸僞, 雖或知之, 安得以預斷其爲簒逆大惡也?周公盡力金縢日, 王莽粧奸韋布時.若使當年身便死, 忠終顯著逆難知. 왕개보(王介甫)의……하였는데 왕개보는 왕안석(王安石)으로, 개보는 그의 자이다. 이 시는 글자의 출입이 있지만, 백거이(白居易)의 시인 듯하다. 《全唐詩 卷438 放言五首》 주공(周公)은……날이요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죽은 뒤에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은 주공(周公)이 성왕(成王)에게 이롭지 못할 것이라는 유언비어를 퍼뜨렸으므로, 주공은 2년 동안 동쪽으로 가 있었다. 가을에 곡식이 익어 수확하기 전에 천둥이 치며 큰바람이 불자, 나라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였다. 이에 성왕이 금등(金縢)을 열어 하늘의 변고를 점치려 하다가 우연히 주공이 무왕에게 올린 글을 얻어 주공의 충심이 밝혀졌다. 《書經 金縢》 왕망(王莽)은……때라 왕망은 초야에 있을 때 겸손하고 공손한 체하며 여러 명사(名士)들과 사귀었다. 그리고 벼슬에 올라서는 많은 재물을 아끼지 않고 선비를 대우하면 자기 몸을 낮추었다. 《漢書 王莽傳》 日 대본에는 '曰'로 되어 있는데, 《전당시(全唐詩)》 권438 〈방언오수(放言五首)〉에 의거하여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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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에 궂은비가 내리다 仲春苦雨 얼음 창고처럼 차가운 한 띳집에서 冷如氷室一茅堂연일 비만 보고 태양을 보지 못했네 見雨連朝未見陽도리어 밭보리에 병이 되니 어떡하나 其柰還爲田麥病정원 꽃 향기를 재촉해 풍겨도 기쁘지 않네 不欣催發院葩香짙은 구름이 잠깐 서쪽으로 가 어둑한데 濃雲俄頃歸西暗미풍이 기약 없이 북에서 서늘하게 불어오네 輕無期自北凉한 발자국도 창밖으로 옮기기 어려우니 寸步難移牕外地사람이 거의 미쳐 날뛰게 하려고 하네 令人幾欲發顚狂 冷如氷室一茅堂, 見雨連朝未見陽.其柰還爲田麥病? 不欣催發院葩香.濃雲俄頃歸西暗, 輕無期自北凉.寸步難移牕外地, 令人幾欲發顚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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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씨의 청계정사50) 시에 차운하다 고창(高敞)의 갑평(甲坪)에 있다. 次姜氏淸溪精舍韻【在高敞甲坪】 당시에 지조와 절개가 물처럼 맑아 志節當年水與淸청계 옛집이 새로 이루어지게 되었네 淸溪舊舍見新成마음엔 현인의 천 년 사업 간직하고 心存賢哲千秋業한은 몇 겹 풍천의 소리에 들어갔네 恨入風泉幾疊聲골짝에는 빛나게 남긴 자취 드러나고 洞壑光輝遺躅著창에는 정결하게 속된 먼지 씻겨냈네 軒牕明潔俗塵晴시례를 잘 잇는 건 후손의 책임이니 善承詩禮雲仍責실제에 힘써야 명성을 실추하지 않으리 務實方能不墜名 志節當年水與淸, 淸溪舊舍見新成.心存賢哲千秋業, 恨入風泉幾疊聲.洞壑光輝遺躅著, 軒牕明潔俗塵晴.善承詩禮雲仍責, 務實方能不墜名. 청계정사(淸溪精舍) 강순(姜恂, 1607~1674)이 전라북도 아산면 운곡리에 지은 정사이다. 강순의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신백(信伯), 호는 청계일인(淸溪逸人)이다. 1636년 병자호란 때 거의(擧義)하여 남한산성으로 가던 중에 화의가 이루어지자 통곡하고 고창으로 내려와 은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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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에게 주다 贈壽山 백리 길에서 거듭 야귀당51) 찾았으니 百里重尋夜歸堂한 생각도 어찌하여 금방 잊지 못할까 一念如何未遽忘백발에 맺은 교분 너무 늦어 가련하고 白髮金蘭憐太晩별원 꽃나무의 외로운 꽃이 사랑스럽네 別園花木愛孤芳도를 보는 밝은 눈을 갖추기는 어렵고 難能見道具明眼시절 상심해 속 끓이는 것도 무익하네 無益傷時沸熱腸골짝엔 푸른 솔 산에는 대나무 있으니 洞有碧松山有竹이런 뜻이 세한에 긴 줄을 누가 알랴 誰知此意歲寒長 百里重尋夜歸堂, 一念如何未遽忘?白髮金蘭憐太晩, 別園花木愛孤芳.難能見道具明眼, 無益傷時沸熱腸.洞有碧松山有竹, 誰知此意歲寒長? 야귀당(夜歸堂) 수산(壽山) 오병수(吳秉壽)가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죽산리에 지은 '야귀재(夜歸齋)'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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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사오 광엽 가 나에게 대암재에서 묵으라고 요구하다 宋士午【光燁】要余宿臺巖齋 내가 대암의 멋진 경치를 사랑하노니 我愛臺巖景色佳영산과 태악이 외롭지 않게 이웃했네 瀛岑台岳不孤隣천 년 된 사찰에는 석불이 남아 있고 餘存石佛千年寺푸르른 솔숲은 사계절이 봄인 듯하네 積翠松林四節春마침 찾은 진경은 전에 보았던 곳이요 眞境適尋曾見地다시 만난 좋은 벗은 옛 친구들이네 良朋更得舊交親한가함 틈타 종일 먼 생각 일으키니 偸閒盡日起遐想새벽 맡은 문지기를 배우길 바라네 願學衛門之掌晨 我愛臺巖景色佳, 瀛岑台岳不孤隣.餘存石佛千年寺, 積翠松林四節春.眞境適尋曾見地, 良朋更得舊交親.偸閒盡日起遐想, 願學衛門之掌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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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 줄기로 시초를 대신하다 菊莖代蓍 우리나라에는 애초에 영험한 시초 없었으니 東國初無蓍草靈국화 줄기로 대신 써도 점괘가 신명하였네 菊莖代用亦神明괘분과 귀설260)로 하늘의 운세를 본뜨고 掛分歸揲象天運노소와 우기261)에 효가 이루어짐을 본다오 老少偶奇觀爻成점괘 묻는 자가 마음의 허물을 깨끗이 씻으면 問者洗淸心上累응하는 괘사는 메아리 소리 듣는 듯 빠르다네 應辭捷若響中聽중니께서 만년에 기뻐하심은262) 진실로 이 때문이니 宣尼晩喜良因是후학이 본받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해 부끄럽네 後學效嚬慙未能 東國初無蓍草靈, 菊莖代用亦神明.掛分歸揲象天運, 老少偶奇觀爻成.問者洗淸心上累, 應辭捷若響中聽.宣尼晩喜良因是, 後學效嚬慙未能. 괘분(掛分)과 귀설(歸揲) 《주역》 점을 칠 때의 방식을 말한다.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대연의 수가 오십이요 사용하는 것은 사십구이다. 이를 나누어 둘로 만들어서 천지를 본뜨고, 하나를 손가락 사이에 걸어서 삼재(三才)를 본뜨고, 이것을 넷으로 셈하여 사시(四時)를 본뜨고, 남은 수를 손가락 사이에 끼워서 윤달을 본뜬다.[大衍之數五十, 其用四十有九. 分而爲二, 以象兩, 掛一, 以象三, 揲之以四, 以象四時, 歸奇於扐, 以象閏.]"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노소(老少)와 우기(偶奇) 노소는 《주역》 점을 치면 노음(老陰), 노양(老陽), 소음(少陰), 소양(少陽)의 네 가지 효가 나오는데, 노음과 노양은 변효(變爻)이고 소음과 소양은 불변효(不變爻)이다. 우기는 우수(偶數)와 기수(奇數)로, 기는 양이 되고 우는 음이 된다. 중니(仲尼)께서 만년에 기뻐하심은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에 "공자가 만년에 《주역》을 좋아하여 〈서괘〉, 〈단전〉, 〈계사〉, 〈상전〉, 〈설괘〉, 〈문언〉을 짓고, 《주역》을 하도 많이 읽어서 책을 맨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孔子晩而喜易, 序、彖、繫、象、說卦、文言, 讀易, 韋編三絶.]"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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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중이 회갑 날 준 시에 화답하여 사례하다 3수 步謝汝重甲日見贈韻【三首】 평생 학문에 뜻을 두었는데 끝내 펴지 못해 志學平生竟莫申흉중은 물욕에 덮이고 얼굴엔 티끌이 묻었네 胸中茅塞面侵塵수백 수천 수만 가지 일에 겁회243)가 차갑게 식고 百千萬事劫灰冷육십일 년의 세월에 머리가 새로 희었네 六十一年頭雪新장수하여 후배들 인도하였다 말하지 말라 長壽休言開後進재주 없는 나는 늘 선친을 욕보일까 두렵다네 不才常恐忝先親시를 주니 정성스러운 뜻에 감동하였지만 贈詩縱感慇懃意기대하고 칭찬함은 되려 나를 아는 이 아니라오 期獎還非知我人어찌 생각했으랴 나 태어난 갑신년 돌아올 줄 豈意我生回甲申잔약한 몸은 가벼운 티끌 하나의 신세도 못 되네 孱軀不啻一輕塵선친의 연세 짧았으니 그 슬픔 어찌 끝이 있으랴 先齡積短悲何極천한 목숨 유독 기니 부끄러움이 다시 새롭네 賤壽偏長愧却新해진 책에서 좀 벌레나 잡으니 견식이 없어서이고 敗册掃蟫無見識빈 산에서 사슴 길들이니 친한 벗이 끊겨서라오 空山馴鹿絶朋親오늘 아침 운당포(篔簹鋪) 시244) 짓고 〈육아(蓼莪)〉시 읊으며 篔題莪詠今朝事홀로 가슴앓이할 뿐 남에게 말하지 못하겠네 獨自傷心不語人내가 태어난 해는 까마득한 지난 갑신년이니 我降邈然前甲申상전벽해 이후로 세상의 비린 티끌 실컷 겪었지 滄桑以後厭腥塵오래된 사문 힘써 부지하니 참으로 애석하고 力扶堪惜斯文舊세상에서 신학문 배움을 슬퍼한 들 어이 하랴 心痛其如世學新비록 오래 살기를 가슴속으로 간절히 바라지만 縱切長年胸裡願슬하에 직접 닥칠 재앙을 차마 보겠는가 忍看先禍膝前親늙은이의 마음 언짢으니 어찌 안정될 수 있을까 老懷作惡何能定오늘날 선비로 처신하기 어렵구나 此日難爲士子人 志學平生竟莫申, 胸中茅塞面侵塵.百千萬事劫灰冷, 六十一年頭雪新.長壽休言開後進, 不才常恐忝先親.贈詩縱感慇懃意, 期獎還非知我人.豈意我生回甲申, 孱軀不啻一輕塵.先齡積短悲何極? 賤壽偏長愧却新.敗册掃蟫無見識, 空山馴鹿絶朋親.篔題莪詠今朝事, 獨自傷心不語人.我降邈然前甲申, 滄桑以後厭腥塵.力扶堪惜斯文舊, 心痛其如世學新.縱切長年胸裡願, 忍看先禍膝前親?老懷作惡何能定? 此日難爲士子人. 겁회(劫灰) 겁화(劫火)의 재라는 뜻으로, 재앙을 뜻하는 불교 용어이다. 하나의 세계가 끝날 즈음에 겁화가 일어나서 온 세상을 다 불태운다고 하는데, 한 무제(漢武帝) 때 곤명지(昆明池) 밑바닥에서 나온 검은 재에 대하여, 인도 승려 축법란(竺法蘭)이 "바로 그것이 겁화를 당한 재[劫灰]"라고 대답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高僧傳 卷1 竺法蘭》 운당포(篔簹鋪) 시 운당포 벽 위에 쓰여진 시를 말한다. 주희(朱熹)가 젊은 날 운당포에서 쉬다가 벽에 "빛나는 영지여, 한 해에 세 번이나 피었네. 나는 홀로 무엇을 하였기에, 뜻이 있으나 이룬 게 없는가.[煌煌靈芝, 一年三秀. 予獨何爲, 有志不就?]"라고 한 혜강(嵇康)의 〈유분시(幽憤詩)〉가 적힌 것을 보고는 자신의 뜻과 같다고 비통해한 고사가 있다. 《朱子大全 卷84 題袁機仲所校參同契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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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남유고》 발문 鳳南遺稿跋 봉남옹(鳳南翁)39)이 이미 돌아가시고 그 손자 승환(承渙)40)이 유고를 수습하여 하루는 다산재사(多山齋舍)로 나를 방문하여 교감하고 편집하는 일을 청하였다. 나는 안목이 고루하다는 것으로 오래 동안 굳게 사양하였으나 다만 생각건대 옹은 나의 옛날 금석지교(金石之交)이다. 지금 유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비창(悲愴)하여 한 번 열람할 마음이 없지 않았다. 또 승환은 묘년[妙末]의 나이에 선대의 원고가 귀중한 줄 알고 그 민멸되고 흩어지는 대로 맡겨두려고 하지 않으니, 이 뜻은 지극히 우연이 아니다. 드디어 손 가는대로 교정하고 대략 재량하여 줄였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두 달 만에 비로소 일을 마쳤으니, 그 시(詩)·사(詞)·서(書)·서(序)·기(記)·설(說)·문(文)·장(狀)이 모두 1책이다.오호라! 이것이 어찌 내가 손댈 수 있는 것이겠는가. 안목이 고루할 뿐 아니라 아울러 세상 일에 분주하여 능히 세심하게 정밀히 비교할 수 없었으니, 구슬을 버리고 돌을 남겨 두는 폐단이 없지 않을 줄 어찌 보장하겠는가. 그러나 나무 인형 만들 때 코를 크게 해 두면 장차 영근(郢斤)이 흙을 깎아내는 것41)이 없지 않을 것인데, 이것은 승환의 책임이니, 원컨대 돌아가 힘쓸지어다! 鳳南翁旣沒。其孫承渙收拾遺藁。一日過我於多山齋舍。請校勘編摩之役。余以眼目固陋。牢辭久之。但念翁是余疇昔金石之交也。今見遺墨。不覺悲愴。不無一番繙閱之願。且承渙以妙末之年。知先藁之爲重。而不欲任其泯散。此意極不偶然。遂隨手點校。略加裁減。首尾二朔。乃始斷手。其詩詞書序記說文狀總二冊子。嗚乎。此豈余所可犯手者哉。不惟眼目固陋。兼以世故鞅掌。不能細心精較。安保無遺珠藏石之獘也。然木偶大鼻。將不無郢斤之斲堊。此承渙之責也。願歸而勉之哉。 봉남옹(鳳南翁) 홍채주(洪埰周, 1834~1887)를 말한다. 자는 경좌(卿佐), 다른 휘는 종진(鍾鎭), 자는 응중(應仲), 호는 봉남, 본관은 풍산(豐山)이다. 자세한 내용은 《일신재집》 권18 〈봉남 홍공 행장(鳳南軒洪公行狀)〉에 보인다. 승환(承渙):홍승환(洪承渙, 1870~?)을 말한다. 자는 사증(士拯)이다. 영근(郢斤)이……것 영(郢) 땅 사람이 자귀질하여 흙을 깎는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시문을 잘 고치는 감식안을 말한다. 여기서는 정의림이 지은 글을 다른 유능한 사람이 수정해 줄 것이라는 뜻이다. 《장자》 〈서무귀(徐無鬼)〉에 "영인(郢人)이 장석(匠石)의 솜씨를 철저히 믿어 자신의 코끝에다 마치 파리 날개만 한 흙을 바르고는 장석을 시켜 그 흙을 깎아내게 하였는데, 과연 장석이 바람소리가 휙휙 나도록 자귀를 휘둘러 깎아냈는데도 흙만 깨끗이 다 깎이고 코는 아무렇지도 않았다."라는 내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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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와 정공 가장〉 뒤에 적다 題靜窩鄭公家狀後 삼가 살펴보건대, 공은 영특하고 빼어난 자질로 시례(詩禮)18)와 법필(法拂)19)의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는 효제(孝悌)로 향리에 드러났고 장성하여서는 문학으로 붕우 간에 알려졌으니, 그 젖어들고 훈도를 받아 추향과 인도가 실로 남들과 다름이 있었던 것이다. 중년에 이르러 나아가 성담(性潭) 송 선생(宋先生)20)의 문하에서 스승으로 섬겨 차례로 강토(講討)하고 차례로 증정(證正)하여 배워서 모으고 물어서 분변하며21) 정신으로 이해하고 통하게 하여 안목이 더욱 열려 넓어지고 심회가 더욱 펼쳐져 열리니, 원근의 종유하는 이들과 한 때의 여론이 자자하게 칭찬하며 추중하지 않음이 없었다. 그 축적한 것은 족히 사물에 미치고 그 품었던 포부는 족히 세상에 쓰일 만했는데, 이에 능히 남쪽 끝 바닷가 모퉁이 사이에 품고 거두어 종정(鍾鼎)22)이 부유함이 되는 것과 헌면(軒冕)23)이 영화24)가 되는 줄 모른 채 여유롭게 노닐고 장수유식(藏修遊息)25)하였으니, 그 뛰어난 운치와 고상한 자취는 어찌 보통사람이 헤아릴 수 있는 것이겠는가.오호라! 같은 도에 백 년 사이에 공과 같은 선진(先進) 숙유(宿儒)가 있었는데도 스스로 생각건대 비루하고 용렬하여 늙고 병들어 거의 죽을 때가 되어서야 이에 그 가장(家狀)을 읽어 볼 수 있었으니, 아, 또한 늦었도다! 한스럽게도, 능히 90리 길[三舍]을 지팡이 짚고 가서 당일에 거니시던 곳에서 그 정채(精采)를 상상하며 만분의 일의 뜻이나마 갚을 수 없었으니, 삼가 이 글을 써서 감회를 기록한다. 謹按。公以穎異秀爽之姿。生於詩禮法拂之家。幼以孝悌著於鄕里。長以文學聞於朋友。其擩染薰蒸。趨向指引。固有以異於人者。至中身。進而摳衣於性潭宋先生之門。次第講討。次第證正。聚而辨之。會而通之。眼目益以開廣。衿懷益以展拓。遠近遊從。一時物論。無不藉藉稱道而爲之推重焉。其所積蓄。足以及物。其所抱負。足以需世矣。而乃能懷之卷之於南荒海曲之間。不知鍾鼎之爲富。軒冕之爲勞。而優哉遊哉。修焉息焉。其偉韻遐躅。豈常調人所可涯涘哉。嗚乎。同省百年間。有先進宿儒如公之人。而自惟陋劣。至於老病垂死之日。乃得其家狀而讀之。吁亦晩矣。恨未能策藜三舍。以想象其精采於當日杖屨之地。以酬萬一之意。謹書此而志感焉。 시례(詩禮) 가정교육 또는 가학(家學)을 뜻한다. 공자의 아들 이(鯉)가 뜰에서 공자 앞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다가 공자로부터 시(詩)와 예(禮)를 배웠느냐는 질문을 받고 또 그것을 왜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 듣고서 물러나와 시와 예를 배웠던 일에서 유래한 말이다. 《論語 季氏》 법필(法拂) 법가필사(法家拂士)의 준말로, 법가는 대대로 법도 있는 집안을 말하고, 필사는 필사(弼士)와 같은 말로 보필하는 현신(賢臣)을 말한다. 《맹자》 〈고자 하(告子下)〉에 "내부에는 법가와 필사가 없고, 외부에는 적국과 외환이 없는 경우는, 나라가 항상 멸망한다.[入則無法家拂士, 出則無敵國外患者, 國恒亡.]"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성담(性潭) 송 선생(宋先生) 송환기(宋煥箕, 1728~1807)를 말한다. 자는 자동(子東), 호는 심재(心齋)·성담, 본관은 은진(恩津)이다, 송시열의 5대손이자 송인상(宋寅相)의 아들이다. 심성논변에서는 한원진(韓元震)을 지지하였다. 저서로는 《성담집》이 있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배워서……분변하며 원문의 '취이변지(聚而辨之)를 풀이한 말인데, 《주역》 〈건괘(乾卦) 문언(文言) 구이(九二)〉 에 "군자는 배워서 모으고 물어서 분변하며……이는 임금의 덕을 갖춘 사람이다.[君子學以聚之, 問以辨之,……君德也.]"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종정(鍾鼎) 종명정식(鐘鳴鼎食)으로, 사람이 많아서 식사 때가 되면 종을 쳐서 여러 사람들에게 식사 시간을 알리고 솥을 벌여 놓고 회식을 한다는 뜻이다. 부귀한 집안의 호사스러운 생활을 뜻한다. 왕발(王勃)의 〈등왕각서(滕王閣序)〉에 "마을에 들어찬 집들은 종을 치고 솥을 늘어놓고 먹는 집들이다.[閭閻撲地, 鍾鳴鼎食之家.]"라고 하였다. 《古文眞寶 後集 卷2》 헌면(軒冕) 고관(高官)의 거마(車馬)와 면복(冕服)을 가리키는 것으로, 전하여 높은 관작(官爵)을 말한다. 《장자》 〈선성(繕性)〉에 "헌면이 내 몸에 있는 것은 내가 타고난 성명이 아니요, 외물이 우연히 내 몸에 와서 붙어 있는 것일 뿐이다.[軒冕在身, 非性命也, 物之儻來寄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영화 저본에는 '노(勞)'자로 되어 있으나 '영(榮)' 자의 잘못으로 보고 수정 번역하였다. 장수유식(藏修遊息) 《예기》 〈학기(學記)〉에 "군자는 학문에 대해서 학교에 들어가서는 학업을 닦고, 학교에서 물러나 쉴 때는 기예를 즐긴다.[君子之於學也, 藏焉修焉息焉游焉.]"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장(藏)은 늘 학문에 대한 생각을 품고 있는 것이요, 수(修)는 방치하지 않고 늘 익히는 것이다. 식(息)은 피곤하여 쉬며 함양하는 것이고, 유(遊)는 한가하게 노닐며 함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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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효자 경수 사실〉 뒤에 적다 題曺孝子【暻洙】事實後 내 일찍이 당송(唐宋)의 고사를 보고 진신 사대부 가운데 한휴(韓休)26)·유공작(柳公綽)27)·노종도(魯宗道)28)·여공저(呂公著)29) 같은 제공들의 한 시대 가법의 아름다움을 감탄하면서 이것은 천지가 문명(文明)하고 국가가 승평(昇平)한 때라고 여겼다. 선비가 이미 삼대(三代) 이전에 태어나지 못하였다면 내려와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또한 다행이라 할 것이다. 시사(時事)가 변화함에 이르러 온 천하가 장사치여서 상인[棘人]의 소필(素韠)30)과 도인(都人)의 주직(綢直)31)을 지금은 볼 수가 없네. 당일의 기상을 뒤미처 상상해보면 사무친 그리움과 함께 돌아가고픈 소원이 어떠하겠는가.지금 고흥(高興)의 조 효자(曺孝子) 전 승지 경수(暻洙)의 지극한 행실과 아름다운 절개는 실로 사람들에게 회자된 지 오래다. 그 훌륭한 숙인(淑人) 신씨(申氏)의 규문에서의 거동과 법도는 지극히 순수하고 갖추어져 남편을 받듦에 아름다움이 짝한다고 일컬어져 부부가 함께 정려와 포상을 받았다. 네 명의 아우 전수(典洙)·인수(仁洙)·문수(文洙)·기수(錤洙) 또한 모두 독서하고 몸을 단속하여 우애가 매우 지극하여 함께 은혜로운 명을 받았다.오호라! 당시 승평의 기상이 진신 사대부들 사이에 있었던 것이 오늘에 이르러 이에 시골 사우의 집안에서 보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비록 음도(陰道)가 극성하게 된 날에 있더라도 이른바 "양(陽)은 다 없어질 이치가 없다."32)라는 것은 참으로 빈 말이 아닐 것이다. 옷깃을 여미던 끝에 삼가 권말(卷末)을 더럽혀 앙모하던 만분의 일의 뜻을 깃들인다. 余嘗觀唐宋間故事。歎搢紳士大夫如韓休柳公綽魯宗道呂公著諸公一時家法之美。以爲此是天地文明。國家昇平之會也。士旣不得生於三代之上。則降而生於此時。亦云幸矣。至於時移事變。大宇商商。棘人之素韠。都人之綢直。今不可得以見矣。追想當日之氣像。其菀結之懷。同歸之願。爲何如哉。今高興之曺孝子前承旨暻洙。至行偉節。固膾炙於人久矣。其齊淑人申氏。閫儀閨範。極爲純備。奉承君子。見稱匹休。夫婦俱蒙旌閭褒爵。有弟四人典洙仁洙文洙錤洙。亦皆讀書勅躬。友弟深至。倂蒙恩命。嗚乎。當日昇平之象。在於搢紳士大夫之間者。誰知至於今日而乃是得見於鄕曲士友之家乎。雖在陰道極盛之之日。而所謂陽無可盡之理者。信非虛語矣。歛衽之餘。謹塵穢卷末。以寓慕仰萬一之意云爾。 한휴(韓休) 673~740. 당(唐)나라 경조(京兆) 장안(長安) 사람으로, 자는 양사(良士)이며, 좌보궐(左補闕), 예부 시랑(禮部侍郞), 지제고(知制誥), 상서우승(尙書右丞)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시정(時政)의 잘잘못에 대해 모두 극간하였기 때문에 현종(玄宗)이 조금이라도 잘못이 있게 되면 번번이 좌우에게 "한휴가 아느냐?"라고 물었는데,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휴의 상소가 올라왔다고 한다. 《新唐書 卷126 韓休列傳》 유공작(柳公綽) 765~832. 당나라 경조 화원(京兆華原) 사람으로, 자는 관(寬) 또는 기지(起之)이다. 문종(文宗) 때의 명신으로 자는 관(寬)이며 뒤에 이부 상서(吏部尙書)에 이르렀다. 가법이 엄숙하여 《소학》 〈선행(善行)〉에 그 내용이 실려 있다. 노종도(魯宗道) 966~1029. 송(宋)나라 명신으로 자는 관지(貫之), 호는 퇴사암(退思巖), 시호는 숙간(肅簡)이다. 벼슬은 해염령(海鹽令), 참지정사(參知政事)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해염령 때 고을 동남항(東南港)이 인몰된 것을 다시 준설하여 백성들은 그 항구를 노공포(魯公浦)라 불렀다. 《宋史 卷286 魯宗道列傳》 여공저(呂公著) 1018~1089. 송나라의 명재상으로 자는 회숙(晦叔)이다. 구양수(歐陽脩)와 함께 강학하였으며, 진사에 합격한 후 영주 통판이 되고 여러 차례 어사중승(禦史中丞)을 지냈다. 왕안석(王安石)이 제정한 청묘법(靑苗法)을 반대하였으며, 철종(哲宗) 때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에 제수되자 사마광(司馬光)과 함께 신법(新法) 폐지를 주장하다가 당쟁에 말려들어 추방되었다. 신국공(申國公)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정헌(正獻)이다. 소필(素鞸) 하얀 무릎 가리개로 상주의 상복이다. 도인(都人)의 주직(綢直) 도성 사람들의 성대했던 의용(儀容)을 말한다. 《시경》 〈소아(小雅) 도인사(都人士)〉에 "저 서울 양반은 대립에 치포관(緇布冠) 쓰셨고, 저 군자의 따님은 머리숱 많고 예뻤는데, 지금은 볼 수 없는지라 내 마음 기쁘지를 않네.[彼都人士, 臺笠緇撮, 彼君子女, 綢直如髮, 我不見兮, 我心不說.]"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양(陽)은……없다 《주역》 〈박괘(剝卦)〉의 정전(程傳)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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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암 김공 가장〉 뒤에 쓰다 書槐庵金公家狀後 조씨(晁氏)는 이도(以道)의 거듭한 경계를 따르고,33) 이씨(李氏)는 종악(宗諤)이 제정한 것34)을 좇아서 따라 지켜 잃지 않아 가법의 아름다움으로 중국 사대부의 모범이 되었다. 지금 회촌(會村)의 김씨(金氏) 또한 돈목(敦睦) 근칙(謹勅)으로 우리 고을의 명가가 되니, 대개 그 선대부 괴암공(槐庵公)이 창시한 덕분이다.내가 약관의 나이 때 통가(通家)35)의 자제로 책상 아래에서 공에게 인사드리고 자못 끊임없이 왕래하면서 그 몸은 후중하고 모습은 예스러우며 기는 온화하고 말씀은 엄격한 것을 보고 덕 있는 장자(長者)인 줄 알았다. 집안에서 존유(尊幼) 대소(大小)로부터 아래로 비복(婢僕)에 이르기까지 모두 온화하고 즐거워 한마디도 패려(悖戾)한 소리를 듣지 못하였다. 공이 돌아가시자 자손들이 계승하여 감히 실추시키지 않은 것이 지금 30여 년이 되었다.공은 일찍이 스스로 경계하여 충신(忠信)을 입심(立心)의 근본으로 삼고 청근(淸謹)을 지신(持身)의 근본으로 삼고 근검(勤儉)을 어가(禦家)의 근본으로 삼았으니, 이것은 그 규구(規矩)와 승척(繩尺)을 이미 고인의 법문(法文)에서 얻은 것이다. 버려진 것을 지켜 주인에게 돌려주고 그 상을 받지 않은 것과 노인을 불쌍히 여겨 부역을 면제해 주고 그 사례를 받지 않은 것에 이르러서는 모두 덕이 두터운 것이어서 남들이 능하기 어려운 것이다. 안으로는 가정에서 효도하고 종족에 화목하며, 밖으로는 벗들에게 미덥고 고을에 화합하여, 돌아가신 뒤에도 자손들은 그 가르침을 준수하고 사림들은 그 풍성을 칭송하는 것은 누구인들 스스로를 경계하는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겠는가.오호라! 소년(小年)이 대년(大年)에 미치지 못하고 후진(後進)이 선진(先進)만 못하니, 이것은 옛 사람이 이미 탄식을 일으킨 곳인데, 더구나 시대의 상황이 날로 타락하고 선비들의 추향이 날로 잘못되는데 선진과 대년의 질실(質實) 충각(忠慤)하고 박아(博雅) 장후(長厚)한 기풍을 볼 수 없단 말인가? 나는 공의 손자 장석(章錫)36)이 지은 가장(家狀) 한 편에서 광감(曠感)37)의 생각을 감당할 수 없어 삼가 몇 줄의 거친 말로 써서 기록한다. 晁氏因以道之申戒。李氏由宗諤之所制。遵守不失。以家法之美。爲中州士大夫之楷範。今會村金氏。亦以敦睦謹勅。爲吾鄕名家。蓋其先大父槐庵公創始之力也。余在弱冠。以通家子弟。拜公於床下。頗源源焉。見其體厚貌古。氣和言厲。可知爲有德長者。閤門之內。尊幼大小。下至婢僕。皆溫溫怡怡。未聞一言有悖戾之聲。公歿而子孫承襲之。不敢廢墜。爲三十餘年于玆矣。公嘗自警。以忠信爲立心之本。淸謹爲持身之本。勤儉爲禦家之本。此其規矩繩尺。已得古人之法文。至於守遺還主而不受其賞。悶老除役而不納其謝。皆德之厚而人所難能也。內而孝於家庭。睦於宗族。外而信於朋友。和於鄕井。以至身沒而子孫遵其敎。士林誦其風者。夫孰非自自警中出來耶。嗚乎。小年不及大年。後進不如先進。此是古人已所興歎處。況今時象日汚。士趨日非。而先進大年。質實忠懿。博雅長厚之風。不可得以見之耶。余於公之孫章錫所撰家狀一編。不勝曠感之思。謹以數行蕪辭。書以識之。 조씨(晁氏)는……따르고 《소학》 〈선행(善行)〉에, 사마온공(司馬溫公)이 말하기를 " 근세 고가에 오직 조씨가 이도가 자제를 거듭 경계함으로 인하여 모두 법도가 있다."라고 한 것을 말한다. 이도(以道)는 조열지(晁說之, 1059~1129)의 자이다. 자호(自號)를 경우생(景迂生)이라 하여 흔히 경우(景迂) 선생이라 불렸다. 저서로는 《유언(儒言)》, 《조씨객어(晁氏客語》 등이 있다. 종악(宗諤)이 제정한 것 송나라 재상 이방(李昉, 925~996)의 집안은 자손이 몇 대를 거치면서 가족이 200여 명이 되었는데도 함께 기거하고 함께 식사하며 대가족 생활을 하였다. 전장과 상점 운영에서 나온 수입과 관직에 있는 자의 봉록을 모두 한 창고에 모아서는 식구 수대로 날마다 양식을 공급하였으며, 혼례와 장례에 소요되는 경비에도 모두 액수를 정하였다. 집안의 자제들에게 이러한 일을 분담하여 맡게 하였는데, 이러한 가정 경제의 제도는 이 재상의 아들인 한림학사 이종악(李宗諤, 964~1012)이 만든 것이라고 한다. 《小學 善行》 통가(通家) 대대로 사귀어온 집안이나 인친(姻親)의 사이를 말한다. 장석(章錫) 김장석(金章錫, 1853~?)을 말한다. 자는 보현(甫賢), 호는 하산(鰕山), 본관은 청도(淸道)이다. 광감(曠感) '광세지감(曠世之感)'의 준말로, 오래 지난 세월에 대한 감회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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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천에 제하다 2수 題藥泉【二首】 이 샘물을 마시는 자로 하여금 能令飮此者온갖 병이 스스로 물러나게 하면서 百病自退移사람 마음에 거짓이 많은 병은 人心多病詐어째서 함께 치료하지 않는가 胡不幷與治이는 약천에게 묻는 것이다.마음병은 의리로 나을 수 있고 心病義可愈몸의 병은 약으로 고쳐야 하네 身疾藥當移세상 사람들을 내가 어찌하겠는가 世人吾其柰자기 마음은 결국 스스로 다스려야지 自心竟自治이는 약천이 대답한 것이다. 能令飮此者, 百病自退移.人心多病詐, 胡不幷與治?【問藥泉】心病義可愈, 身疾藥當移.世人吾其柰? 自心竟自治.【藥泉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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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에서 돌아오던 날 등 적삼269)을 잃어버렸기에 사람을 보내 찾아오게 하고 시를 지어 사익에게 부치다 自壽洞歸日 忘却藤衫 遣人覓來 賦寄士益 옛날 운산에서 이별할 때는 古昔雲山別벽라의270)에 눈물이 흥건하였는데 碧蘿衣上淚自淫오늘 영산에서 이별할 때는 今日瀛山別어찌하여 백등 적삼을 잃어버렸는가 胡然忘却白藤衫운산의 이별은 서로 출처가 달라 雲山之別異出處친함 가운데 소원함 생겨 슬픔 금치 못하겠더니 親中有疏悲不禁영산의 이별은 아주 친하여 瀛山之別親無間결국 둘 다 형체 잊는 데271) 이르렀지 乃至乎兩忘形형체 잊는 것이야 그래도 가능하지만 形且忘猶可能등삼은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도 어찌 가능하랴 衫欲不忘豈可能형체는 잊었지만 어찌 뜻을 기름이 없겠는가272) 形雖忘豈無養등삼은 잃어버렸지만 또한 찾을 수 있네 衫雖遺亦宜推아 지금 잃어버린 등삼과 옛날 눈물 젖은 옷 噫今之遺衫古淚衣일은 비록 다르지만 지극한 뜻은 똑같다오 事則雖殊至意同歸 古昔雲山別, 碧蘿衣上淚自淫.今日瀛山別, 胡然忘却白藤衫?雲山之別異出處, 親中有疏悲不禁.瀛山之別親無間, 乃至乎兩忘形.形且忘猶可能, 衫欲不忘豈可能?形雖忘豈無養? 衫雖遺亦宜推.噫今之遺衫古淚衣, 事則雖殊至意同歸. 등(藤) 적삼 껍질을 제거한 등나무 줄기로 만든 적삼을 말한다. 벽라의(碧蘿衣) 푸른 송라(松蘿) 덩굴로 만든 옷으로, 은사(隱士)들이 입는 옷을 말한다. 형체 잊는 데 외형에 얽매이지 않고 의기(意氣)가 투합(投合)한 절친한 친구 사이를 말한다. 형체는……없겠는가 《장자(莊子)》 〈양왕(讓王)〉에 "뜻을 기르는 자는 형체를 잊고, 형체를 기르는 자는 이욕을 잊으며, 도를 터득한 자는 마음을 잊는다.[養志者忘形, 養形者忘利, 致道者忘心矣.]"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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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사람의 입추 시276)에 차운하다 2수 次唐人立秋詩【二首】 세월은 잠시도 쉬지 않고 흘러 居諸不暫息문득 다시 초가을이 되었네 忽復遇秋初더위 기세 꺾인 줄 이미 알았고 已覺炎威薄나무 그림자 성긴 걸 점차 보겠네 漸看樹影疏교외에서 맞이하는 옛 의례277)는 상상만 하지만 郊迎儀想舊가래나무 이는 풍속278)은 남아 있으리 楸戴俗應餘내 나이는 회갑이 되었고 賤齒甲周匝천시는 반년이 지났구나 天時年半除세상 소란해 백성들 새처럼 달아나고 世騷民竄鳥날이 가물어 연못에는 물고기 없네 日旱澤無魚온갖 감정 이는 가을바람 속에 百感西風裏송옥처럼 시를 읊는다오279) 賦詩宋玉如가을 기운이 오늘 아침 불어오니 秋氣今朝立은자는 비로소 사물에 느낌 이네 幽人感物初못의 연꽃은 활짝 피고 渠荷花歷亂뜰의 나뭇잎은 무성하네 庭樹葉扶疏세찬 바람이 분 뒤라 농사는 망쳤고 農病大風後극심한 가뭄 뒤라 백성들 고생하네 民勞亢旱餘사시는 분분하게 계절이 바뀌고 四時紛代謝만사는 성하기도 쇠하기도 하네 萬事互乘除국면의 판세는 방휼의 형세280)라 局勢相蚌鷸백성들 모두 어육이 되었어라 生靈盡肉魚수많은 뜻이 있는 선비들 幾多有志士앞으로 마음이 어떠할까 從此意何如 居諸不暫息, 忽復遇秋初.已覺炎威薄, 漸看樹影疏.郊迎儀想舊, 楸戴俗應餘.賤齒甲周匝, 天時年半除.世騷民竄鳥, 日旱澤無魚.百感西風裏, 賦詩宋玉如.秋氣今朝立, 幽人感物初.渠荷花歷亂, 庭樹葉扶疏.農病大風後, 民勞亢旱餘.四時紛代謝, 萬事互乘除.局勢相蚌鷸, 生靈盡肉魚.幾多有志士, 從此意何如? 당(唐)나라……시 사공서(司空曙)의 〈입추일(立秋日)〉을 가리킨다. 《全唐詩 卷292》 교외에서……의례 《예기(禮記)》〈월령(月令)〉에 "입추(立秋)에 천자가 친히 삼공(三公)ㆍ구경(九卿)ㆍ제후(諸侯)ㆍ대부(大夫)를 거느리고 서쪽 교외에서 가을을 맞이한다." 하였다. 가래나무 이는 풍속 《몽화록(夢華錄)》에 "경사에서는 입추에 남녀가 모두 가래나무 잎을 따서 머리에 이고 와서 파는 사람이 저자에 가득하였다.[京師立秋, 男女皆翦楸葉, 戴之賣者盈市.]"라고 하였다. 《淵鑑類函 卷15 立秋二》 온갖……읊는다오 전국 시대 초(楚)나라 시인 송옥(宋玉)의 〈구변(九辯)〉 첫머리에 "슬프다, 가을 기운이여! 쓸쓸하게 초목은 바람에 흔들려 땅에 지고 쇠한 모습으로 바뀌었도다.[悲哉秋之爲氣也, 蕭瑟兮草木搖落而變衰.]"라는 구절이 있어서 이렇게 말한 것이다. 《楚辭 卷6》 방휼(蚌鷸)의 형세 큰 조개가 껍데기를 벌리고 있을 제 지나가던 황새가 쪼아 먹으려다가 조개껍데기가 닫히는 바람에 도리어 주둥이를 물리어 서로 마주 버티다가 어부에게 모두 잡혔다는 것으로, 둘이 서로 다투다가 함께 패하여 제삼자에게 이득을 취하게 하는 것을 비유한다. 《戰國策 燕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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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범회50)의 《이택회첩》 뒤에 쓰다 書權範晦麗澤會帖後 두 연못이 서로 걸려 상호간에 적셔주고, 끊임없이 이어져 다하지 않아 붕우 간에 상관(相觀)51)하고, 상호간에 규계하고 경계하여 순순하게 진보가 있으니, 이것이 성인께서 특별히 이 뜻을 《주역》에 드러내어 만세에 벗을 취하는 자의 경계로 삼은 까닭이다. 그러나 나의 입장에서 남에게 미칠 수 있는 선이 없고 남의 입장에서 나에게 미칠 수 있는 선이 없다면 이것은 마른 연못이다. 마른 연못이 서로 걸려 있다면 말할 만한 어떤 유익함이 있겠는가. 반드시 모름지기 먼저 그 우물을 파되 구인(九仞)의 수고로움52)을 꺼리지 않아 샘물이 솟아남에 이른다면 이어서 서로 도움을 주는 것이 날로 더욱 깊게 고여 멀리로는 바다에 도달할 수 있고 넓게는 만물을 윤택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니, 원컨대 이택회(麗澤會)의 제군들은 힘쓸지어다! 兩澤相麗。互相滋潤。源源不竭。朋友相觀。互相規警。循循有進。此聖人所以特著此義於大易。以爲萬世取友者之戒也。然在我無善可以及人。在人無善可以及我。則是渴澤也。以渴澤相麗。有何資益之可言哉。必須先掘其井。不憚九仞之勞。以至於及其泉焉。則所以因仍相資者。日益渟滀。遠可以達海。廣可以澤物。願麗澤諸君勉乎哉。 권범회(權範晦) 권춘식(權春植, 1879~?)을 말한다. 자는 범회,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정의림의 문인이다. 상관(相觀) 친구 간에 서로 좋은 점을 보고 본받는 것을 말한다. 《예기》 〈학기(學記)〉에 "대학의 교육 방법은 좋지 않은 생각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을 예라고 하고, 적절한 시기에 가르치는 것을 시라 하고, 감당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가르치는 것을 손이라 하고, 서로 좋은 점을 보고 배우도록 하는 것을 마라고 한다.[大學之法, 禁於未發之謂豫, 當其可之謂時, 不陵節而施之謂孫, 相觀而善之謂摩.]"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구인(九仞)의 수고로움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함이 있는 자는 비유하면 우물을 파는 것과 같으니, 우물을 아홉 길을 팠더라도 샘물에 미치지 못하면 오히려 우물을 버리는 꼴이 되는 것이다.[有爲者辟若掘井, 掘井九軔而不及泉, 猶爲棄井也.]"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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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박씨 변정세계서〉 뒤에 쓰다 書密陽朴氏辨正世系序後 무릇 윤상(倫常)은 지극히 무겁고 세리(勢利)는 지극히 가볍다. 사해(四海)의 귀함을 들어 천륜을 바꾸는 것은 할 수 없고, 한 가지 일의 그릇된 것을 행하여 천하를 얻더라도 하지 않으니, 사람이 사람 되고 금수와 다른 까닭이 바로 이곳에 있다. 시대가 내려오고 풍속이 떨어져 윤리가 밝지 못하고 인욕이 멋대로 행해져 이익을 사모하여 선조를 잊고 세력을 좆아 어버이를 배신하는 자가 흘러넘치니, 이루 탄식을 감당하겠는가.밀양 박씨(密陽朴氏) 일파가 능주(綾州)에 살면서 잠영(簪纓)과 시례(詩禮)로 호남에 알려진 것이 오래되었다. 다만 그 중엽의 명휘(名諱)가 영체(零替)되고 실전(失傳)되었는데 중간에 다른 계보를 인용하여 그 결함을 보충하였다. 대개 그 가문의 한 사람이 세계의 중요함을 강구하지 않고 갑자기 중간에 끊어진 것을 흠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나의 벗 사문(斯文) 박인진(朴麟鎭)38)은 독행(篤行)의 선비이다. 이것으로 항상 분탄(憤歎)하게 생각하였는데, 하루는 선계는 지극히 엄하여 옮기거나 바꿀 수 없다는 뜻으로 서술(序述)하여 글을 지어 종족과 향당에 두루 고하여 빨리 되돌렸다. 무릇 효자가 어버이 명에 대해 실로 소홀하거나 어기는 것은 불가하다. 그러나 불의를 당하여서는 애써 간하고 힘껏 다투어 회초리를 맞아 피가 흐르더라도 그만 두지 않으니, 그 까닭이 무엇인가? 대개 이치를 따르는 것은 어버이를 따른 것이고 하늘을 공경하는 것은 어버이를 공경하는 것이다. 더구나 이 일은 선대 항렬의 당일 본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빨리 바른 데로 돌려야 하니, 어찌 자손이 뜻을 계승하는 효가 아니겠는가.내가 보건대, 사람들의 집안에 종종 이러한 일이 있지만 편안히 일상으로 여기고 뻔뻔하게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실로 족히 말할 것이 없다. 혹 그 의가 아닌 줄 알면서도 어려움을 두려워하여 눌러 참고는 감히 손을 대지 못하는 자도 또한 있을 것이다. 오직 사문 박인진은 안으로 마음을 속이지 않고 밖으로 남을 속이지 않아 붕우들과 강론하고 종족과 도모하여 천리의 바름에 합할 것을 생각하여 인심의 편안함에 나아간 사람이니, 가위 명백(明白) 탄이(坦夷)하고 뇌락(磊落) 정대(正大)하다고 하겠다.오호라! 이것은 백성이 살아가는 떳떳한 윤리 가운데 제일의 의체(義諦)이다. 나는 원컨대 표시하여 드러내어 한 시대를 밝게 깨우쳐 천부(淺夫)와 소인(宵人)들로 하여금 모두 알 수 있게 한다면 말속의 병폐가 거의 나음이 있을 것이다.나는 서로 아는 처지에서 찬탄(贊歎)하는 사사로운 마음을 감당하지 못하여 분수에 넘는 것을 잊어버리고 위하여 이와 같이 말한다. 夫倫常至重。勢利至輕。擧四海之貴而易天倫不得。行一事之非而得天下不爲。人之所以爲人而異於禽獸者。正在此處。世降俗下。倫理不明。人欲橫流。慕利而忘先。趨勢而背親者。滔滔焉。可勝歎哉。密陽朴氏一派。居於綾州。以簪纓詩禮。聞於湖省者久矣。但其中葉名諱。零替失傳。而間引他系。以補其缺。蓋其門內一人。未講世系之重。而遽以中絶爲欠故也。余友朴斯文麟鎭。篤行士也。以此常懷憤歎。一日以其先系至嚴不可移易之意。序述爲文。遍告于宗族鄕黨而亟反之。夫孝子之於親命。固不可毫忽違逆。然當不義則苦諫力爭。至於被撻流血而不已。其故何哉。蓋順理所以順親也。敬天所以敬親也。況此事非出於先行當日之本心。則亟爲反正。豈非子孫繼志之孝乎。余見人家種種有此。而恬以爲常。靦不知愧者。固不足道。或有知其非義。而畏難隱忍。不敢下手者。亦有矣。惟斯文。內不欺心。外不誣人。講之於朋友。謀之於宗族。思所以合乎天理之正。而卽乎人心之安者。可謂明白坦夷。磊落正大矣。嗚乎。此是民生彛倫第一義諦也。吾願表以出之。曉喩一世。使淺夫宵人。皆得以知之。則末俗之膏肓。庶其有瘳乎。忝在相知。不勝贊歎之私。忘其僭越。而爲之說如是云爾。 사문(斯文) 박인진(朴麟鎭) 1846∼1895. 자는 학중(學中), 호는 우인당(愚忍堂),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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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와 박공 가장〉 뒤에 적다 題悔窩朴公家狀後 고인의 말에 이르기를 "안으로 어진 부형이 없고 밖으로 엄한 사우가 없으면서 능히 성취함이 있는 자는 적다."라고 하였는데,42) 지금 회와(悔窩) 박공(朴公)의 유장(遺狀)을 읽고 가만히 부합하는 점이 있음을 알았다. 공의 조카 인진(麟鎭)이 일찍 고아가 되어 집안일을 맡게 되자, 공이 집안일 때문에 학문에 방해가 있을까 염려하여 경계하기를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금수에 가까운데, 더구나 부모의 바람과 가문의 책임이 너의 몸에 있으니, 그 중요함이 어찌 다만 집안일과 견주겠느냐?"라고 하고, 이에 대소가의 일을 몸소 스스로 주관하여 관리하고 그로 하여금 안심하고 오로지 힘써 어진 사우들과 종유하게 하였다. 여러 해가 쌓여 그 학업을 성취하여 마침내 사문(斯文)의 순유(醇儒)와 오당(吾黨)의 위인(偉人)이 되었다. 그러나 회와공의 훈도한 힘이 아니었다면 그 수립한 것이 어찌 능히 이럴 수 있었겠는가. 이 한 가지 일에서 공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나는 그의 조카와 더불어 종유하며 강마한 지 10여 년 동안에 책상 아래에서 공에게 인사 드릴 수 있었던 것이 또한 자못 자주 있었다. 가만히 보건대 공의 형체와 모습이 풍후(豊厚)하고 의용(儀容)이 장중(莊重)하여 남과 더불어 말하거나 웃는 것이 적었고, 일에 임하여 표시 나게 드러내는 것이 적었으니, 아름답게 옛 선진의 기풍이 있었다.오호라! 공과 조카가 차례로 돌아가신 지 장차 지금 20년이 되어가니, 모시고 따르던 나는 외롭고 쓸쓸하여 누구를 의지하겠는가. 다만 그 아들 규진(奎鎭)43)과 종손(從孫) 준기(準基)44)가 경전에 힘쓰고 몸을 신칙하여 바야흐로 진보가 끝이 없을 것이라, 또한 공께서 가르친 방법이 돌아가신 뒤에도 실추되지 않음을 볼 수 있으니, 아, 공경할 만하다. 삼가 가장 뒤에 기록하여 내가 뒤미처 생각하는 만분의 일의 정을 깃들인다. 古人有言曰。內無賢父兄。外無嚴師友。而能有成者少矣。今讀悔窩朴公遺狀。竊有槪焉。公從子麟鎭。早孤當室。公慮其以家務而妨於學問。戒之曰。人而不學。近於禽獸。況父母之望。門戶之責。在於汝躬者。其重豈特家務之比哉。於是大少家務。躬自幹理。使之安心專力。遊從賢士友。積歲積年。以就其業。卒爲斯文之醇儒。吾黨之偉人。然非悔窩公訓迪之力。其所樹立。安能乃爾。於此一事而可以見公之爲公也。余與其從子。遊從講磨十餘年。得以拜公於床下者。亦頗頻頻矣。竊見公體相豊厚。儀容莊重。與人寡言笑。臨事少表襮。偉然有古先進之風。嗚乎。公與從子次第就幽。將二十稔于玆。陪從餘生。踽凉奚依。但其遺胤奎鎭從孫準基。劬經勅躬。方進未已。亦可以見公之敎法。不墜於身後。吁可敬也。謹識狀後。以寓區區追想萬一之情云爾。 고인의……하였는데 《소학》 〈선행(善行)〉에 나오는 여희철(呂希哲, 1039~1116)의 말이다. 아들 규진(奎鎭):박규진(朴奎鎭, 1858~1934)을 말한다. 자는 대규(大圭),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종손(從孫) 준기(準基) 박준기(朴準基, 1864~1940)를 말한다. 자는 경립景立), 호는 겸산(謙山),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저서로는 《겸산유고(謙山遺稿)》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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