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몽재151)에서 감회가 있어 訓蒙齋有感 담로152)는 옛날 어느 때에 湛老昔何日이곳 서재에서 어린아이를 가르쳤나 訓蒙此有齋샘물과 바위는 길이 변치 않으나 泉石長不改흥망성쇠가 그 사이에 있었네 興廢間有之스승 모시고 일찍이 이곳에 왔었는데 陪師曾到此때마침 중수하고 있을 때였네 適値重修時강회를 베풀자 명단에 이름 올리고 設講聯名案예를 익히며 함께 술잔을 들었네 習禮擧酒巵세월이 얼마나 흘렀는가 日月問幾何세상일은 바둑판처럼 번복되네 世事飜覆棋내가 와서 옛날 노닐던 곳인데 我來經舊遊뜨락 가득히 풀만 무성히 자랐네 滿庭草萋萋맑은 바람이 늙은 소나무에 불어오니 淸風入老松완연히 거문고를 연주하는 듯하네 宛若奏絃詩오산153)엔 사람이 이미 세상을 떠났고 鰲山人已遠화문에도 대들보가 또한 꺾였네154) 華門樑亦摧남긴 운치는 어디에 있는가 餘韻何處在말없이 그리워하는 바가 있으니 黙然有所思물고기와 산새여 江魚與山鳥이 한스러움을 너희들은 응당 알리라 此恨爾應知 湛老昔何日, 訓蒙此有齋?泉石長不改, 興廢間有之.陪師曾到此, 適値重修時.設講聯名案, 習禮擧酒巵.日月問幾何? 世事飜覆棋.我來經舊遊, 滿庭草萋萋.淸風入老松, 宛若奏絃詩.鰲山人已遠, 華門樑亦摧.餘韻何處在, 黙然有所思.江魚與山鳥, 此恨爾應知. 훈몽재(訓蒙齋)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1510~1560)가 1548년(명종3)에 순창 점암촌 백방산 자락에 지은 강학당이다. 김인후는 조선 중기의 유학자이자 문신으로, 본관은 울산(蔚山), 자는 후지(厚之), 호는 하서(河西) 또는 담재,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1531년(중종26) 성균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한 뒤 이황(李滉) 등과 교우가 두터웠다. 제자로는 정철(鄭澈)ㆍ변성온(卞成溫)ㆍ기효간(奇孝諫)ㆍ조희문(趙希文) 등이 있다. 저서에 《하서집》ㆍ《주역관상편(周易觀象篇)》ㆍ《서명사천도(西銘事天圖)》ㆍ《백련초해(百聯抄解)》 등이 있다. 담로(湛老) 담재(湛齋) 김인후를 높여 칭한 말이다. 오산(鰲山) 전라남도 장성군(長城郡)의 별칭으로, 여기서는 하서 김인후를 가리킨다. 화문(華門)에도……꺾였네 화문은 계화도(繼華島)에 살았던 간재 전우의 문하를 가리키며, 여기서는 후창의 스승인 간재도 죽었다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