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들부채를 읊다 詠蒲扇 당나라 황제의 대궐 안 바람은 필요치 않으니206)원규(元規)의 더러운 티끌을 스스로 뒤집어쓰지 않네207)여름 무더위가 어찌 두려우랴208)영숙(永叔)의 아름다운 작품 부질없이 공교롭네209)안회(顔回)는 팔베개 하며 살아가니 그대가 쓸모 있으며210)광문(廣文)은 자리가 없으니 네가 공을 이룰 것이네211)요(堯) 임금 뜰에서 혹 평생의 뜻 이룬다면아첨하는 이 가리키고 어진 이 부르는 일212) 너와 내가 같으리 不必唐宗閣裏風元規自未汚塵蒙趙盾威虐寧知畏永叔佳篇謾見工回也曲肱君有用廣文無席爾成功堯庭倘遂平生志指佞招賢汝我同 당나라……않으니 당나라 황실의 귀한 부채 바람은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다. 당나라 때는 황제가 대전(大殿)에 오를 적에 양쪽에서 봉황 깃털 부채로 보이지 않게 가렸다가 천자가 좌정(坐定)한 뒤에 부채를 다시 거두는 의식이 있었다고 한다. 《唐會要 朔望朝參》 또 황제 양쪽에서 156본(本)의 우선(羽扇)을 들고 있었다고 하는데, 두보(杜甫)의 시에 "기린을 새긴 향로에선 향연(香煙)이 위로 올라가고, 공작의 우선(羽扇) 열렸다가 부채 그림자 돌아가네.[麒麟不動爐煙上 孔雀徐開扇影還]"라 읊은 일이 있다. 《杜少陵詩集 卷6 至日遣興》 원규(元規)의……않네 '원규(元規)'는 동진(東晉) 때의 권신(權臣) 유량(庾亮)의 자다. 유량은 국구(國舅)의 신분으로 세 조정에서 잇달아 벼슬하여 권세가 막중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대부분 그를 붙좇았다. 그러나 왕도(王導)는 이를 불만스럽게 여겨, 유량이 있는 서쪽에서 바람이 불어 티끌이 일자 문득 부채를 들어 서풍을 막으면서 "원규의 티끌이 사람을 더럽힌다.[元規塵汚人]"라 하였다. 《晉書 卷65 王導列傳》 여름 무더위가 어찌 두려우랴 사람을 두렵게 하는 여름날의 태양이라는 말이다. 춘추 시대 노(潞)나라의 대부 풍서(豊舒)가 진(晉)나라 가계(賈季)에게 "진(晉)나라의 대부 조순(趙盾)과 조최(趙衰) 중에 누가 더 어진가?"라고 묻자, 가계가 "조최는 겨울날의 태양이요, 조순은 여름날의 태양이다.[趙衰冬日之日也 趙盾夏日之日也]"라고 대답하였는데, 그 주(註)에 "겨울 햇빛은 사랑할 만하고, 여름 햇빛은 사람을 두렵게 한다.[冬日可愛 夏日可畏]"라고 하였다. 《春秋左氏傳 文公 7年》 영숙(永叔)의……공교롭네 '영숙(永叔)'은 송나라의 문인 구양수(歐陽脩, 1007~1072)를 가리킨다. 그가 지은 〈증승창부(憎蒼蠅賦)〉에, "쓸데없이 하인과 아이종에게 큰 부채를 부쳐 바람을 내기도 하지만 모두 고개를 떨구고 팔이 빠지며 매양 곧장 잠들어 풀썩 쓰러진다오.[徒使蒼頭丫髻 巨扇揮颺 咸頭垂而腕脫 每立寐而顚僵]"라 한 대목이 보인다. 안회(顔回)는……있으며 '안회(顔回)'는 공자의 제자로 가난하였음에도 도(道)를 즐기며 살아간 인물이다. '팔베개 하며 살아간다'는 말은 《논어》 〈술이(述而)〉에,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을 굽혀 베개를 삼더라도 낙이 또한 그 속에 들어 있다.[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라 한 데서 취해 온 표현이다. 안회와 같이 안분자족하는 삶에 있어 부채가 쓸모 있음을 말한 것이다. 광문(廣文)은……것이네 '광문(廣文)'은 당 현종(唐玄宗) 때 광문관 박사(廣文館博士)를 지낸 정건(鄭虔)을 가리킨다. 《新唐書 卷202 鄭虔列傳》 그는 몹시 가난하였으므로, 두보(杜甫)가 일찍이 그에게 〈희간정광문(戱簡鄭廣文)〉이라는 시를 지어주면서 "재주 명성은 삼십 년을 날렸으되, 빈객은 추워도 앉을 털방석이 없네.[才名三十年 坐客寒無氈]"라 읊은 바 있다. 부들부채가 정건에게 주어진다면 그것이 방석의 역할이라도 할 수 있을 것임을 말한 것이다. 아첨하는……일 요(堯) 임금 뜰에는 '지영초(指侫草)'라는 이름의 풀이 자랐는데, 아첨하는 사람이 들어오면 반드시 그를 가리켰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