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고현(道民古縣)199)【선생의 우거지이다.】 道民古縣【先生寓居地】 천년된 옛 고을 터가 아직 남아 있으니산천의 아름다운 기운 들쭉날쭉 무성하네옛날에 문 승상(文承相)200)을 능히 배출하였고당시 도 국사(道國師)201)를 일찍이 기억하네하늘이 아껴서 승지(勝地)를 남겨둔 것 몇 해나 되었나신이 감춰 두고서 남아를 기다렸음을 참으로 알겠네지금 혹시라도 띠풀 벨 계획202)을 이루고자 한다면안개와 노을이 대나무 울타리 감싼 곳을 길이 차지해야 하리 古縣千年基尙遺山川佳氣欝參差能肧昔日文承相曾記當時道國師幾歲天慳留勝地固知神秘待男兒如今倘遂誅茅計長占烟霞護竹籬 도민고현(道民古縣) 과거 전라도 남평현(南平縣)에 속해 있던 고을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전라도(全羅道)‧남평현(南平縣)〉에, "도민부곡(道民部曲). 현에서 서남쪽으로 16리 떨어져 있다."라 되어 있다. 문 승상(文承相) 남평(南平)을 관향으로 하는 고려 때 문신 문극겸(文克謙, 1122~1189)을 가리키는 듯하다. 본관은 남평, 자는 덕병(德柄). 의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좌정언(左正言), 황주판관, 전중내급사(殿中內給事) 등을 역임하였다. 1170년 정중부(鄭仲夫)의 난 때 죽임을 당할 뻔하였으나 좌정언 때 직언한 일로 화를 면하였고, 1171년에는 우승선어사중승(右承宣御史中丞)이 되어 많은 문신들을 화에서 구하고, 무신들에게는 고사(故事)의 자문에 응하였다. 용호대장군(龍虎大將軍)·상장군(上將軍)을 겸임, 문무(文武) 겸직의 시초가 되었다. 이후 태자소사(太子少師), 예부판사, 병부판사 등 역임하고 1187년 권판상서이부사(權判尙書吏部事)에 올랐다. 도 국사(道國師) 고려 때의 승려 도선(道詵, 827~898)을 말한다. 호는 연기(烟起). 자는 옥룡자(玉龍子)‧옥룡(玉龍). 성은 김씨(金氏). 전라남도 영암 출신이다. 15세에 지리산 서봉인 월류봉(月留峰) 화엄사(華嚴寺)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으며, 동리산(桐裡山)의 혜철(惠徹)을 찾아가 무설설무법법(無說說無法法)을 배웠다. 운봉산(雲峰山)의 굴속에서 참선삼매(參禪三昧)한 후, 태백산(太白山) 움막에서 고행하였으며, 전라도 희양현(曦陽縣) 백계산(白鷄山) 옥룡사(玉龍寺)에 머물다 죽었다. 고려 숙종은 대선사(大禪師)를 추증하고 왕사(王師)를 추가하였으며, 인종은 선각국사(先覺國師)로 추봉(追封)하였다. 음양풍수설로 특히 유명하다. 띠……계획 은거를 위해 시골에 거처를 정하는 것을 말한다. 두보의 〈남목위풍우소발탄(枏木爲風雨所拔歎)〉에, "초당 앞 강가에 녹나무 서 있는데, 이곳 노인들이 이백 년 묵었다 하네. 띠 풀 베고 거처를 정한 것은 모두 이 때문인데, 오월에도 가을 매미 소리 듣는 것 같았네.[倚江枏樹草堂前 故老相傳二百年 誅茅卜居總爲此 五月髣髴聞寒聲]"라고 한 대목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