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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행에게 답함 答白子行 헤어진 지 오래지 않아 또 편지를 받았고 인하여 어버이를 모시는 체후가 더욱 복된 줄 알았으니, 실로 듣고 싶은 마음에 흡족하였네. 의림(義林)은 설사 증세로 몇 개월 고생하여 원기를 빼앗겨 기식(氣息)이 곧 끊어질 지경이니, 오직 곧장 죽기만을 기다릴 뿐이네. 보여준 "시인(時人)의 문사(文詞)……"라고 한 것은 문장의 폐단을 다 말하여 남은 것이 없다고 할 만 하네. 나에게 달린 문제는 평소에 확충하고 함양하여 의리가 밝아진 연후에 드러내어 문사의 사이에 나타나는 것이 또한 모두 평직(平直) 통달(通達)하고 위곡(委曲) 조창(條暢)하여 "시유(時儒)……"라고 한 폐단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니, 어떻게 생각하는가?[문] 맹자가 말하기를 "인(仁)은 인심(人心)이다."라고 하였는데,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인이라는 것은 마음의 덕이다.[仁者 心之德]"라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바로 사랑의 이치이다.[便是愛之理]"라고 하였습니다. 이미 "마음의 덕이다."라고 하고서 한 번 돌려 "사랑의 이치"라고 하였으니, 체가 되고 용이 됨에 오로지 주가 되는 것이 없는 듯합니다. 또 "인(仁)은 인성(人性)이다."라고 하지 않고 곧장 "인심"이라 하고, 또 "이 몸이 온갖 변화에 수작하는 주인이 됨을 볼 수 있다."라고 하여, 이 마음을 말하지 않고 몸을 말하였으니, 또한 마음이 몸이 되기 때문입니까?[답] 마음의 덕이라는 것은 인을 오로지 말한 것이고, 사랑의 이치라는 것은 인을 한쪽으로 말한 것이네. 심(心)을 이(理)로 말한 것이 있고 기(氣)로 말한 것이 있으니, 맹자가 이른바 "인은 인심이다.[仁人心]"라고 한 것과 정자(程子)가 이른바 "심은 생도이다.[心生道]"라고 한 것은 모두 이로 말한 것이네. 심은 한 몸의 주인이 되는데, 만약 그대 말과 같다면 심이 심의 주인이 되는 것이니 가하겠는가?[문]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그 마음을 다하는 자는 그 성을 안다.[盡其心者 知其性也]"라고 하였는데, 문의로 구해보면 이것은 성을 안 뒤에 마음을 다하는 듯합니다. 하늘을 섬김[事天]에 이르러서는 먼저 마음을 보존한 뒤에 성을 기르니, 또한 운용(運用)으로부터 본원(本源)에 거슬러 올라간 것입니까?[답] 마음을 다하는[盡心] 것은 《대학》의 지지(知至)이고, 성을 아는[知性] 것은 물격(物格)이네. 먼저 마음을 보존한 뒤에 성을 기르는 것은 성현이 성을 논함에 마음으로 인하여 드러내지 않은 것이 없네.[문]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어머니를 위하여 1년 복을 입고 벗으니, 만약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어머니를 위한 면복(緬服)107)의 제도는 바로 3개월을 따라야 합니까?[답] 어찌 이장[緬遷]할 때 3개월의 복을 입는 제도에 압강(壓降)108)의 이치가 있겠는가?[문] 근본이 하나라는 '일본(一本)'의 본 자 가운데 이미 만 가지로 다르다[萬殊]는 뜻이 포함되어 있으니, 만수(萬殊)는 다만 그 하나의 근본 가운데에서 조리가 나온 것입니다. '일'과 '만'은 층절(層節)이 없고, '본'과 '수'는 단지 일치하는 것입니다. 다만 유행하는 쪽에 나아가 말하면 차례대로 조금 차례대로 조금 따르는 것이 있지만 그 실제는 경계와 위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답] 설명한 것이 매우 옳네. 지금 주기(主氣) 폐단은 단지 이런 의(義)를 모르는 것이네.[문] 《주역》 〈건괘(乾卦) 단전(彖傳)〉에 "건도가 변화하여 각각 성명을 바르게 한다.[乾道變化 各正性命]"라고 하였으니, 각각 바르게 한다는 것에서 만물이 한 근원이라는 것을 볼 수 있고, 각각 바르게 하는 밖에 별도로 한 근원이라는 성(性)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각각 성명을 바르게 해도 한 근원이라는 것에 해가 되지 않고 한 근원이어도 각각 성명을 바르게 하는 데 해가 되지 않으니, 이것이 이(理)의 묘처(妙處)입니다.[답] 그대가 본 것이 착오일세. 그러나 모름지기 여기에 나아가 이면의 실체를 보아야 바야흐로 참으로 이(理)를 본 것이네. 分離未久。又承華幅。因審侍省增祉。實叶願聞。義林泄痢之證。數朔作苦。元氣見奪。氣息奄奄。惟俟朝夕就盡而已。所示時人文詞云云。可謂說盡文敝無餘蘊。在於我者。充養有素。義理昭明然後。發而見於文詞之間者。亦皆平直通達。委曲條暢。而可免於時儒云云之敝矣。如何如何。孟子曰仁人心也。朱子曰。仁者心之德。又曰便是愛之理。旣曰心之德。而一轉爲愛之理。爲體爲用似無專主且不曰仁人性也。而直曰人心。又曰可見其此身爲酬酢萬變之主。不曰此心而言身。則抑心爲身故歟。心之德。是專言之仁。愛之理。是偏言之仁。心有以理言者。有以氣言者。孟子所謂仁人心。程子所謂心生道。皆以理言者也。心爲一身之主。若如賢言。則心爲心之主。其可乎。盡其心者。知其性也。以文義求之。則似是知性而後盡心也。至於事天。先存而後養性。抑自運用而沂本源乎。盡心是大學之知至也。知性是物格也。先存心後養性者。夫聖賢論性。無不因心而發。父在爲母。期年而除。若父在爲母緬。服制直依三月乎。豈於緬遷三月之制。而有壓降之理乎。一本本字中。已含萬殊意。萬殊特其一本中條理出來者也。一與萬無層節。本與殊只一致。但就流行邊說。似有次第逐些。而其實非有界位也。說得甚是。今日主氣之敝。只是不知此個義。乾道變化。各定性命。各正上。見得萬物之一原。非各正之外。別有一原之性也。各正而不害一原。一原而不害各正。此是理之妙處。見得錯。然須就此。見得其裏面實體。方是眞見理。 면복(緬服) 부모의 무덤을 이장하여 다시 장사 지낼 때 입는 상복을 가리킨다. 압강(壓降) 존자(尊者)에게 눌려서 정해진 예법보다 등급을 낮추어 행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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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경【수혁】에게 답함 答李致慶【洙爀】 처음에 건산(巾山)이 방재(傍材)보다 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접때 두 소년이 떠날 때 운여(雲汝)에게는 편지를 쓰고 치경(致慶)에게는 쓰지 않았네. 소년이 돌아와서야 비로소 멀다고 여겼던 곳이 가깝고 가깝다고 여겼던 곳이 먼 줄을 알았고, 심지어 전인(專人)109)이 있었는데도 한 글자의 안부도 묻지 못했으니, 저버린 마음 매우 부끄러워 사례할 길이 없네. 다만 그대는 이런 것들을 따지지도 않고 이렇게 손수 편지를 보내 정성스러운 뜻이 편지에 넘쳐나니, 넓게 포용하는 마음을 알겠기에 더욱 감탄하네. 모르겠다만 편지를 받은 지 여러 날이 되었으니 어버이를 모시며 경서를 공부하는 체후는 절서에 따라 더욱 진중한가? 그리운 마음 감당할 수 없네. 의림(義林)은 비루하고 용렬함이 어제와 같아 말할 것이 없네. 미발(未發)과 이발(已發)의 설은 매우 상세하니, 조예가 정밀하여 참으로 헛되지 않은 줄 알겠네. 중인(衆人)들이 비록 미발이라고 하더라도 마치 바람이 안정 된 뒤에도 오히려 여파가 있는 것과 같다고 한 것은 더욱 온전히 형용해 낸 곳이네. 대개 일이 이르지 않았는데 미리 맞이하고 일이 이미 지나갔는데 그것을 잡으면, 잠깐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혹 어두웠다가 어지러워져 평온한 경계가 없을 것이네. 그러나 또한 전적으로 미발한 시절이 없다고 해서는 불가하니, 마치 야기(夜氣)가 아침에 갑자기 휴식하여 우연히 순수한데로 돌아가는 곳 같은 것이 이런 경우이네. 공부의 요체는 바로 이런 곳에 있으니, 다만 뜻을 붙여 잡으려고 하다가 병폐를 생기게 해서는 불가할 것이네. 주자가 이른바 "일용의 사이에 장경(莊敬)과 함양(涵養)의 공부가 지극하여 인욕의 사사로움이 어지럽게 하는 것이 없으면 발하기 전에는 맑은 거울 잔잔한 물과 같으며, 발한 뒤에는 절도에 맞지 않음이 없다."라고 하였으니, 참으로 만고의 지극한 말씀인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初謂巾山遠於傍材。故向日兩少年之去。修書於雲汝。而未及於致慶矣。其迴也始知遠者近而近者遠。至有專人而無一字相問。愧愧負負。無以謝爲。但賢者不較不猶。致此手訊。繾綣之意溢於幅面。仰認包洪。尤可感歎。未審信後有日。侍旁經履。連序增重。慰溯無任。義林陋劣如昨。無足奉提。未發已發之說。極其詳悉。可認造詣精密。儘不虛矣。衆人雖曰未發。而如風定之後猶有餘波者尤形容十分處。蓋事未至而迎之。事已過而將之。乍起乍滅。或昏或亂。無有妥帖境界。然亦不可謂專無未發時節。如夜氣平朝。霎爾休息。偶然回淳處。是也。工夫要處。正在此處。但不可着意把捉。以生病敗也。朱子所謂日用之間。莊敬涵養之功至。而無人欲之私而亂之。則其未發也。鏡明水止。其發也。無不中節。眞萬古至言也。如何如何。 전인(專人) 어떤 소식이나 물건을 전하기 위해 특별히 사람을 보내는 것 또는 그 사람을 말하며, 전족(專足), 전팽(專伻)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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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홍【영국】에게 답함 答金箕洪【榮國】 푸른 갈대에 흰 이슬 내리니 치달려 가는 마음 얼마였던가? 뜻밖에 영랑(令郞)110)이 나의 집에 찾아왔고 고마운 편지가 나의 책상을 빛나게 하였으니, 오랜 병으로 겨우 숨이 붙어있어 아직 죽기 전에 벗의 자제와 벗의 편지를 보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위로와 감사함의 지극함은 말로 형언하지 못할 것이 있네. 몇 년 전부터 체후의 절도가 줄곧 보호되어 정길(貞吉)하고, 큰 절도의 모든 것이 한결같이 여전한 줄 알았으니, 화락한 군자를 신명이 돕는 것은 이치가 응당 이와 같네. 어려움이 많았던 끝에 친구의 좋은 소식은 무엇이 이것보다 좋겠는가? 진실로 지극히 듣고 싶은 마음에 흡족하였네. 의림(義林)은 노쇠한 몰골이 끝내 심하여 문을 닫고 칩거한 지 이미 지금 몇 년이 되었네. 황천으로 갈 기일이 조석 사이에 있을 것이니, 어찌 제기하여 말할 것이 있겠는가? 아드님은 사람이 많고 소란스러워 비록 능히 마음속에 온축한 것을 평온하게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그 기골이 준수하며 의용(儀容)이 단정하고 진중한 것을 보았으니, 덕 있는 그대 집안의 가르치는 법도를 볼 수 있었네. 석과(碩果)111)의 소식은 앞길이 만 리이니, 부디 더욱 의로운 방도로 가리켜 기다리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보내준 물품은 진심으로 준 것이니 감사하네. 蒼葮白露。馳懷幾時。謂外令郞臨門。惠幅賁案。誰知積病餘喘。及其未死。而得見故人子弟故人心畫哉。慰感之至。有不可以言諭。承審年歲以來。體候節宣。連護貞吉。大節凡百。一視平昔。神相愷悌。理應如此。多艱之餘。知舊好消息。何踰於此。允叶願聞之至。義林衰相卒甚。杜門貞蟄。已有年于玆矣。黃壤行期。非朝則夕。夫何提喩之有哉。令郞稠撓之中。雖未能穩叩所蘊。而見其氣骨峻茂。儀容端詳。可以見德門敎法矣。碩果消息。前程萬里。幸加義方之敎以待之如何。惠饋心貺。可感。 영랑(令郞) 남의 자식을 높여 부르는 말로 영식(令息), 영윤(令胤)이라고도 한다. 이하는 아드님으로 풀이하였다. 석과(碩果) 자손이 복을 받는다는 뜻이다. 《주역》 〈박괘(剝卦) 상구(上九)〉에서 "하나 남은 큰 과일은 먹히지 않는다.[碩果不食.]"라고 하였는데, 그 주석에 "큰 과일은 먹히지 않아 장차 다시 생겨나게 되는 이치를 볼 수 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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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송 장우 이 찾아오다 3수 林砥松【章佑】來訪【三首】 고상한 자취가 영광스레 멀리서 재차 찾아오니 再荷高蹤遠賁然백발 나이에 쉽지 않은 일이라 새삼 감탄했네 更歎未易白頭年한 가닥 명맥을 산이 무너진 뒤에 애통하게 잃고 痛亡一脈頹山後읽다 둔 책을 흙에 묻기 전에 힘써 정리했네 勉理殘書瘞土前나무와 돌은 산중의 좁은 땅에 남아 있고 木石山中餘尺地바람 탄 조수는 문 밖의 푸른 하늘에 닿았네 風潮門外接蒼天다만 소리와 기운이 상응하길 구할 수 있다면 但能聲氣相求應천릿길에 채찍을 주면서 작별해도 무방하리라 千里何妨贈別鞭뜻이 있어도 호연지기를 기르지 못했으니 有志難能養浩然지금까지 육십 년을 헛되이 보내고 말았네 至今虛度六旬年모여 사는 밖에서 산수를 즐긴 게 아니라 非耽泉石群居外죽기 전에 몸과 마음 단련하기 위함이었네 爲鍊身心未死前의리는 지금 실지에서 보아야 하고 義理如今看實地빈궁과 영달은 절로 하늘에 맡겨야 하네 窮通自合任蒼天게으른 소도 조심히 걷지 않을까 걱정한다니 懶牛猶患無輕步곧장 어진 말에 의지하여 회초리를 만들었네 卽賴仁言作箠鞭지송이란 호를 받아 이미 초연했으니 砥松錫號已超然홀로 사문을 지킨 지 칠십 년 되었네 獨守斯文七十年울창하여 찬 겨울이 와도 길이 푸르고 鬱鬱長靑寒歲後정정하여 성난 파도에 흔들리지 않네 亭亭不動怒濤前또 순숙하여 진경에 돌아가길 바랐으니 更要純熟歸眞境어찌 조금 어긋나 별천지에 왔겠는가 詎有毫差到別天어진 분이 준 말씀에 보답할 길 없는데 仁者贈言無以報감히 매진하는 데에 길손 채찍을 도우랴 敢於邁往助征鞭 再荷高蹤遠賁然, 更歎未易白頭年.痛亡一脈頹山後, 勉理殘書瘞土前.木石山中餘尺地, 風潮門外接蒼天.但能聲氣相求應, 千里何妨贈別鞭?有志難能養浩然, 至今虛度六旬年.非耽泉石群居外, 爲鍊身心未死前.義理如今看實地, 窮通自合任蒼天.懶牛猶患無輕步, 卽賴仁言作箠鞭.砥松錫號已超然, 獨守斯文七十年.鬱鬱長靑寒歲後, 亭亭不動怒濤前.更要純熟歸眞境, 詎有毫差到別天?仁者贈言無以報, 敢於邁往助征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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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기 五峯記 오봉산(五峰山)도 능주(綾州) 남쪽의 여러 산처럼 명망이 있는 산으로, 차례대로 나란하게 서 있는 모습은 마치 줄지어 나는 기러기 같고, 뾰족하게 솟구쳐 있는 삼엄한 모습은 적을 상대하는 창 같으며, 동글고 두터우며 한데 뭉쳐있는 모습은 마치 봄기운을 머금은 연꽃 같았으니, 하늘에 배치하고 땅에 펼쳐 놓은 것이 귀신이 그려놓은 그림처럼 무어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아, 천지가 개벽한 이래로 곧 이 산이 있었으니, 정령(精靈)이 모여 있는 이곳에서 몇 사람이 배출되었겠으며, 수석(水石)을 완상하는 이곳에서 몇 사람이 소요했겠는가? 돌이켜 아스라이 생각하자니 아득하게 연기와 구름처럼 흩어져 사라진다.나의 벗 오군 기서(吳君基瑞)는 산 아래 사람이다. 일찍부터 과거 공부를 하여 여러 차례 응시하였으나 합격하지 못하게 되자 얽매임에서 벗어나 산수에 뜻을 부치고서 지팡이 짚고 거니는 발걸음 하나하나에 유람의 즐거움을 다하면서 문을 닫아건 옛집에서 병든 몸을 돌보고 늙음을 기다리는 계책으로 삼았으니, 대체로 그 풍취와 기상은 사람과 땅이 서로 부합하고, 비경과 마음이 서로 맞았다고 이를 만하다.나는 풍파에 시달리는 일개 백성일 뿐으로, 병진년(1856)에 덕동(德洞)에서 산 아래로 옮겨가서 우거하다가 정묘년(1867)에 가족을 데리고 구봉산(九峯)으로 들어갔고, 정해년(1875)에 구봉산에서 산 아래 옛적에 거처했던 곳으로 돌아왔으며, 경인년(1890)에 천태산(天台山)53) 산중으로 들어왔으니, 전후로 30여 년 동안 동서남북으로 무상(無常)하게 옮겨 다녔지만, 산은 진실로 그대로 변함이 없었다.아, 기구하고 험난한 여생 동안 티끌 같은 세상의 인연을 떨쳐버리지 못하여 명산의 물과 바위 사이에서 평생의 좋은 벗과 함께 늙어가지 못했다. 산은 사람을 저버리지 않는데 사람이 산을 저버린 적이 많았으니, 그러한즉, 시종 산을 저버리지 않은 사람으로 또 누가 군만 하겠는가. 오봉산이 훌륭한 주인을 만난 것을 축하하며 인하여 기문(記文)으로 삼기 바란다. 五峰亦綾南群山之望也。列立比次。如鴻雁之聯翩。尖秀森嚴。如戈戟之待敵。圓厚融結。如芰荷之含春。天排地鋪。鬼繪神畵。有不可名狀。噫。自開闢以來。便有此山。精靈所會。鍾得幾人出來。水石所賞。住得幾人盤旋。緬思追想。茫茫然烟銷雲空。余友吳君基瑞。山下人也。早業功令。累試不中。擺脫絆累寓意山水。一笻一屨。極其游歷。杜門舊庄。爲養病待老計。蓋其風韻氣趣。可謂人地相符。境情相得也。余一風波氓耳。歲丙辰。自德洞搬寓山下。丁卯挈家入九峯。丁亥自九峯返山下舊居。庚寅入天台山中。前後三十餘年。東西南北遷徙無常。而山固自如矣。嗚乎。崎險餘生。塵緣未袪。不得與平生好友共老於名山水石之間。山不負人。而人之負山多矣。然則終始不負山。又孰若君。願爲五峯山賀得好主人。因爲之記。 천태산(天台山) 화순군 도암면 천태리에 자리한 산(482m)으로 능주의 서남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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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신재기 德新齋記 장동(長東)의 덕산(德山) 기슭에 새로 지은 집이 있는데, 바로 난정옹(蘭亭翁)이 만년에 공부하며 노니는 장소로, '덕신(德新)'이라 편액하였다.옹은 일찍이 사방을 경영할 뜻을 가져 세상일을 자세히 살펴보고 시속의 사정을 익숙하게 깨닫고서 자나 깨나 경세제민(經世濟民)할 것을 생각하며 세상의 흐름에 맞추어 행하고 멈추었으니, 대저 험난하고 평탄한 온갖 풍상들을 천 가지 만 가지 생겨나는 대로 다 받아들이며 낱낱이 겪어보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러나 빠르게 흘러가는 세월을 견디기 어려워 이제 70을 바라보게 되자, 벼슬길에서 물러나 은거지[莵裘]에 별장을 짓고 수레를 걸어 놓은 채41) 두문불출하며 뜬 생각과 외물에 대한 근심이 연기와 구름이 사라지듯 활짝 개어 마음에 티끌만큼도 걸리는 것이 없었다. 오직 덕에 나아가는 한 가지 일만이 연연하게 마음에 남아있을 뿐이었다. 이에 높은 집의 커다란 벽에 대단히 상서로운 요결을 큰 글씨로 특별하게 써 놓고 아침저녁으로 항상 눈여겨보았으니, 쇠잔하고 늙었다는 이유로 자신을 너그럽게 대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바로잡고 경계한 뜻이 어찌 위(衛)나라 무공(衛武公)42)과 거백옥(遽伯玉)43)만이 전적으로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장소는 외지고, 인적은 드문데다 산은 고요하고, 햇빛은 오래도록 비치는 이곳에서 한가로이 노닐며 공부하고 휴식을 취함으로써 생강이나 계피처럼 머금은 향기가 늙을수록 더욱 매워지고, 시초(蓍草)나 거북처럼 축적한 정기(精氣)가 오래될수록 더욱 신묘해진다면 극진(棘津)의 호변(虎變)44)과 완성(完城)의 우여(牛轝)가 또 70, 80의 나이에 있지 않을 줄 어찌 알겠는가.아, 덕이 날로 새로워지는 것이 늙어서도 오히려 이와 같은데, 하물며 소년이나 청년처럼 나이가 젊고 기력이 왕성한 사람임에랴. 옹을 모시고 가르침을 따르며 이 덕신재에서 학업을 닦는 자들이 보고서 법으로 삼을 것이니, 어찌 서로 힘쓰지 않겠는가. 長東德山之趾。有新構。卽蘭亭翁晩年藏修之所。而額以德新者也。翁早有四方之志。備閱世故。練解時情。寤寐經濟。酬酢流坎。凡風霜夷險。千生萬受。無不這這嘗試。而叵耐歲月駸駸。已望七于玆矣。退營莵裘。懸車杜門。浮想外慮。曠然休歇。如烟消雲空。無有芥滯於中。而惟進德一着。變變在念耳。是於高堂巨牓。大書特筆。元符要訣。昕夕常目。其不以衰老自恕。而勉勉規儆之意。豈惟衛武邃玉爲專美哉。境僻人稀。山靜日長。優哉游哉。修焉息焉。如薑桂之含薰。老而愈辣。蓍龜之畜精。久而益神。則安知棘津虎變。完城牛轝。又不在於七十八之年乎。嗚乎。德之日新。老猶如此。況丱角衿佩年富力强之人乎。陪從下風而遊業此齋者。視爲柯則。盍相勉焉。 수레를……채 원문의 '현거(懸車)'을 국역한 것으로, 늙어서 벼슬을 그만두고 물러나는 일을 가리킨다. 한(漢)나라 때 설광덕(薛廣德)이 관직을 사퇴하고 은거할 때 임금이 하사한 안거(安車)를 매달아 놓고 자손에게 전하여 광영(光榮)을 보인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위(衛)나라 무공(武公) 춘추 시대에 위(衛)나라의 제후로, 95세가 되었음에도 나태해지려는 마음을 경계하기 위해서 〈대아(大雅) 억(抑)〉을 지어 시종(侍從)으로 하여금 날마다 곁에서 외우게 했다고 한다. 《詩經》 거백옥(遽伯玉) 춘추 시대 위(衛)나라의 현대부(賢大夫)였던 거원(蘧瑗)을 말한다. "나이 50에 49년의 잘못됨을 알았다.[年五十而知四十九年非]"는 고사가 전해진다. 《淮南子 原道》 극진(棘津)의 호변(虎變) 태공망(太公望) 여상(呂尙)이 90의 나이에 문왕(文王)을 처음 만나 사부(師傅)로 추대되고, 뒤에 문왕의 아들인 무왕(武王)을 도와서 은(殷)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평정한 일을 말하는 듯하다. 《史記 齊太公世家》 참고로 '극진'은 황하에 있는 나루터로, 태공망(太公望) 여상(呂尙)이 50세 때에 이곳에서 음식을 팔았다고 한다. 《한시외전(韓詩外傳)》 권7에 "그가 나이 50에 극진에서 음식을 팔고, 70에 조가에서 백정의 일을 하고, 90이 되어서야 천자의 스승이 되었으니, 이것은 바로 문왕을 만난 것이다.[行年五十, 賣食棘津, 年七十屠于朝歌, 九十乃爲天子師, 則遇文王也.]"라는 말이 나온다. '호변(虎變)'은 호랑이 등의 무늬가 다채롭게 변하듯이 큰 공훈을 세우는 것을 말한다. 《주역》 〈혁괘(革卦) 구오(九五)〉에 "대인이 범이 변하듯 함이니, 점치지 않고도 믿음이 있다.[大人虎變, 未占有孚.]" 하였고, 〈구오 상(象)〉에 "'대인호변'은 그 문채가 빛나는 것이다.[大人虎變, 其文炳也.]" 하였는데, 정이(程頤)의 전(傳)에 "대인의 도로써 천하의 일을 변혁하면 마땅하지 않음이 없고, 때에 맞지 않음이 없으니, 지나는 곳이 신묘하게 변화되고 사리가 밝게 드러나서 범의 문채와 같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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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헌기 悔軒記 어떤 객이 회헌(悔軒)의 주인을 힐난하며 말하기를, "무릇 천하의 후회는 움직이는 데서 생겨나니, 움직이지 않는다면 무슨 후회가 있겠습니까. 주인께서는 타고난 자질이 질박하고, 행실이 이미 뒤로 물러나는 것을 편안하게 여겨서 젊어서부터 말을 적게 하고 화려한 꾸밈을 생략하였으며, 출입을 간소하게 하고 교유를 끊으면서 문을 닫고 조용히 거처한 지 50년 동안 족적이 일찍이 한 번도 명성과 이욕이 어지럽게 날리는 티끌 사이에 미친 적이 없었으니, 어수선한 세상 사람과 비교하면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았다고 이를 만합니다. 움직이지도 않고 후회한다고 말하는 것은 음식을 먹지도 않고 목이 메었다고 말하거나 술을 마시지도 않고 취했다고 말하는 것과 같으니,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하니, 주인이 말하기를, "사람이 상등의 지혜가 아니라면 누구인들 후회가 없을 수 있겠습니까. 다만 평생 졸렬함을 지키면서 요행히 면한 것은 단지 뚜렷한 과실과 후회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만족스럽게 여기며 태만한 채 더 살피지 않고서 만약 어느 날 만나는 바가 오늘날과 달리 조금씩 발을 내디뎌 다소의 자가당착이 있게 된다면 어찌 지금껏 해오던 습관대로 그럭저럭 넘어가면서 뜻밖의 후회가 없기를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이른바 오늘날 후회가 없다는 것이 바로 훗날 후회가 있게 되는 뿌리가 될 것입니다.병은 발작한 날에 일어나지 않고, 재앙은 발생한 때에 생겨나지 않으니, 병이 없을 때에 병을 다스리고 재앙이 없을 때에 재앙을 사라지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내가 '회헌(悔軒)'이라 명명한 뜻입니다. 다만 세월이 기다려주지 않아 나이와 근력이 이미 늙고 쇠약해졌는데, 어스름 날이 저물어 갈 때에 먼 나루터를 묻고, 갈증이 일어날 때에 깊은 우물을 팔 이치가 있겠습니까." 하였다. 객이 말하기를, "시작이 있고 끝맺음이 있는 사람은 오직 성인과 대현(大賢)뿐이고, 그 다음가는 사람들은 두 가지를 모두 온전히 할 수 없습니다. 정원의 꽃을 경계하는 것은 일찍 시들기 때문이고, 뜰의 국화를 아끼는 것은 늦은 계절에 피어나기 때문입니다. 저언회(禇彦回)는 젊었을 때에 아름다운 명망이 없지 않았으나 끝내 의리를 저버린 사람이 되었고,47) 풍절후(馮節候)는 동우(東隅)에서 약간의 실수가 없지 않았으나 마침내 개국(開國)의 공훈을 세웠습니다.48) 이것으로 보건대, 시작은 있되 끝맺음이 없는 것이 어찌 시작은 없되 끝맺음이 있는 것만 하겠습니까. 더욱이 주인께서는 한창 장년과 노년이 교차되는 시기에 있으니,  훗날을 위해 뿌리를 심고 가꾸는 것이 어찌 늦었다고 하겠습니까." 하니, 주인이 빙그레 웃으면서 객에게 그 말을 적어 회헌의 기문(記文)으로 삼을 것을 부탁하였다. 客有難於悔軒主人曰。凡天下之悔。生於動。不動。何悔之有。主人天姿質樸。行已恬退。自少寡言語。略文華。簡出入。息交遊。杜門潛處五十年。足跡未嘗一及於聲利紛塵之間。視諸世之撓撓者。可謂靜而不動矣。不動而言悔。猶不食而言噎。不飮而言酲。其可乎。主人曰。人非上智。孰能無悔。顧平生守拙所以倖免。只是顯然過悔而已。視以爲足。漫不加省。若一日所遇。異於今日。而有小小出脚。多少撞着。則安得因仍捱過。而保無不虞之悔哉。然則所謂今日之無悔者。政爲他日有悔之根柢也。病不作於作之日。禍不生於生之時。治病於無病。銷禍於無禍。此吾所以名軒之意也。但日月不貸。年力已替。問遠津於薄暮。掘深井於臨渴有是理乎。客曰。有始有終。惟聖人與大賢。其次皆不能兩全。園花之戒。以其早萎也。庭菊之愛以其晩秀也。禇彦回非無少年令望。而卒爲負義之人。馮節侯非無東隅小失。而終作開國之勳。以此觀之。有始而無終。曷若無始而有終乎。況主人方在壯衰之交。所以爲栽種後日之根株者。豈云晩乎。主人逌然而笑。屬客書其語。以爲軒記 저언회(禇彦回)는……되었고 남조(南朝) 송(宋)나라와 제(齊)나라 때의 관리 저연(褚淵)으로, 언회는 그의 자이다. 그는 젊었을 때 청렴하다는 명성이 있었으나 훗날 송나라를 배반하고 제나라를 세우는 데 일조하였다. 《南史 卷28 褚裕之列傳》 풍절후(馮節候)는……세웠습니다 풍절후는 후한 광무제(後漢光武帝) 때의 장군인 풍이(馮異)로, 적미(赤眉)의 난을 토벌하는데 처음에는 대패하였다가 군사를 재정비하여 적미의 군대를 격파하자, 황제가 직접 글을 지어 그 노고를 치하하기를 "처음에 회계(會稽)에서는 날개를 접었으나 끝내 민지(澠池)에서 떨쳐 비상하니, 참으로 '동우(東偶)에서 잃었다가 상유(桑楡)에서 수습하였다.'라고 할 만하다."라고 하였다. 《後漢書 馮異列傳》 동우는 해가 뜨는 곳으로 젊은 날을, 상유는 해가 지는 곳으로 만년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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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헌기 鶴軒記 죽수(竹樹 능주(綾州)) 남쪽 20리에 화학산(華鶴山)50)이 있는데, 산이 높고 골짝이 깊어 구름 낀 숲이 창연하였기에 예로부터 많은 일인(逸人)과 달사(達士)들이 그 사이에서 소요하며 머물렀다. 그런데 김공 석문(金公錫文)이 이곳에 터를 잡고서 30여 년 동안 발이 산에서 나가지 않은 채 어리석음을 껴안고 졸렬함을 지켰으며, 쟁기와 괭이를 잡고 굶주리면서 목석과 함께 늙어 갔으니, 자신을 감추는 것이 지극하다고 이를 만하였다. 그러나 산 밖 사방의 이웃들이 이미 그의 이름을 알았고, 단지 그의 이름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 뒤이어 학헌 거사(鶴軒居士)라 불렀다.《시경》에 이르기를, "학이 구고(九皐)에서 우니, 울음소리가 들녘에 들리도다."51) 하였고, 《주역》에 이르기를, "우는 학이 그늘에 있거늘, 그 새끼가 화답하도다."52) 하였다. 무릇 지성(至誠)이 밖으로 드러나고, 믿음이 만물에 미쳐가는 것이 본래 이와 같은 점이 있으니, 이 이후로 그 소문이 미쳐가는 바가 또 어찌 단지 여기에 그치겠는가.맏아들 기경(箕敬)이 나를 따라 공부하였기에 기문(記文)을 지어 줄 것을 청하였다. 竹樹南二十里。有華鶴山。山高谷邃。雲林蒼然。自古多逸人達士。盤旋其間。金公錫文卜築於此。三十餘年足不出山。抱愚守拙。把犂鋤而餓。同木石而老。其所以輡晦者。可謂至矣。而山外四隣。己知其名。不但知其名。又從以號之曰鶴軒居士。詩曰。鶴鳴九皐。聲聞于野。易曰。嗚鶴在陰。其子和之。夫誠之著外。孚之及物。自有如此者。自玆以往。其所聞所及。又豈但止此哉。允子箕敬從余遊。請爲之記。 화학산(華鶴山 전라남도 화순군 청풍면과 도암면에 걸쳐 있는 산(614m)으로, 산세가 마치 학이 날개를 펼쳐 놓은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학이……들리도다 《시경》 〈학명(鶴鳴)〉에 나오는 구절로, 학은 보통 은거하는 현자를 상징하고, 깊은 산중에서 우는 학의 울음소리가 들녘에 들린다는 것은 아무리 깊은 곳에 은둔하더라도 진실한 덕은 감출 수 없어 저절로 알려지게 된다는 말이다. 우는……화답하도다 《주역》 〈중부괘(中孚卦) 구이(九二)〉에 나오는 말로,  지성(至誠)에 감통(感通)하여 동류들이 서로 응함을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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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석에 선군의 〈무술년 제석〉 시의 운을 써서 여안을 그리워하다 除夕 用先君戊戌除夕韻 懷汝安 바로 섣달 그믐날 되니 그대가 그리워서 懷君正屬歲除時서쪽 바라보며 상체 시39)에 세 번 탄식하네 西望三嘆常棣詩오늘 아침에 달력풀 서른 잎이 떨어지고40) 蓂落今朝三十葉봄 기운은 매화 정남쪽 가지를 재촉하네 梅催春氣正南枝신산한 마음으로 새로운 이웃집을 보겠고 辛酸應見新隣屋조상의 사당에 술잔 올리지 못해 슬퍼하리 怊悵難參祖廟巵다만 원컨대 한 마음으로 세업을 이어서 但願同心承世業여생에 촌음이 지체되는 것도 아껴야 하리 餘生須惜寸陰遲 懷君正屬歲除時, 西望三嘆常棣詩.蓂落今朝三十葉, 梅催春氣正南枝.辛酸應見新隣屋, 怊悵難參祖廟巵.但願同心承世業, 餘生須惜寸陰遲. 상체 시(常棣詩) '상체(常棣)'는 《시경》의 편명으로 형제간의 우애를 읊은 시이다. 오늘……떨어지고 오늘이 섣달의 마지막 날이라는 뜻이다. 원문의 '명(蓂)'은 '명협(蓂莢)'을 말하는데, 전설상의 상서로운 풀 이름이다. 초하루부터 매일 한 잎씩 나서 자라다가 16일부터는 매일 한 잎씩 져서 그믐에는 다 떨어지기 때문에 이것으로 날을 계산하여 달력을 만들었다는 고사가 있다. 《竹書紀年 卷上 帝堯陶唐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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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오년(1930) 정월 초하루 경오년 아래도 같다. 庚午元日【庚午下同】 천도는 돌고 돌아 가면 다시 오나니 天道循環往復來이 해 이 날도 차례 따라 처음 돌아왔네 此年此日第初回수면에 얼음 녹아 물고기 아가미 움직이고 氷消水面魚顋動강둑에 바람 따듯해 기러기 떼 재촉하네 風暖江干鴈陣催노인에게 절하는 의관에서 옛 풍속 보겠고 拜老衣冠看古俗봄에 부응하는 시율 짓기에 영재들 모였네 酬春詩律聚羣才새해부터는 사람의 일도 새롭게 해야하니 却從新歲新人事붉은 마음을 재처럼 식게 하지 말아야지 莫遣丹心死似灰 天道循環往復來, 此年此日第初回.氷消水面魚顋動, 風暖江干鴈陣催.拜老衣冠看古俗, 酬春詩律聚羣才.却從新歲新人事, 莫遣丹心死似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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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살 생일아침에 감회가 일어 8수 五十歲生朝有感【八首】 자세히 따져보니 이미 경강61)할 때가 지나 細算已過庚降辰쏜살같이 흐른 세월이 몸속에 가득 찼구나 光陰忽忽滿中身곧바로 죽는다 해도 요절하는 건 아니지만 便令歸去亦非夭알려짐이 없어 부끄럽게 되었으니 어찌할까 柰作無聞可愧人북당62)께서 낳아준 때가 옛날 언제였던가 北堂劬勞昔何辰지금은 어느덧 어버이를 여윈 몸이 되었네 遽作如今孤露身아이들아 이것을 축수의 잔이라 말하지 말라 兒輩且休稱壽酌늙어갈수록 더욱 부모 생각이 간절하구나 老來益切念先人쇠약한 가문에 하늘이 창성할 때를 주지 않아 衰門天不錫昌辰사대 선조63)들이 회갑을 지내지도 못했다네 四代未經回甲身만약 내 나이에 네댓 살을 보태준다면 若將賤年加四五우리 세대에서 가장 장수한 사람 될 텐데 最爲吾世壽祺人기이하기도 해라 아우와 생일64)이 같아 奇哉阿仲同弧辰세 살 차이에 몸도 같이 늙어간다네 三歲相差亦老身평생 무척 노력하여 쉴 겨를이 없었는데 勤苦平生無暇息부끄럽게도 난 도리어 게으른 사람이었네 愧余還是懶散人집안일을 별들이 북극성을 향하듯 하기 어려운 건 家政難能星拱辰모두 이 도리를 몸소 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네 總由此道未行身처자식에게 직접 겪은 말로 판단해 보고서 卜諸妻子親經語선현이 사람을 그르치지 않았음을 다시 깨달았네 更覺前賢不誤人내가 불운한 때에 태어난 건 유감없으나 不恨此生丁不辰실제공부가 심신에 미치지 못해 부끄럽네 實工愧未及心身선비는 궁해진 뒤에 높은 절개가 드러나니 士窮然後見高節예로부터 원래 죽지 않는 사람은 없었네 從古元無無死人가정에서 시례의 교육 받던 때65)를 추억하니 憶承詩禮過庭辰어찌 이런 기량을 지니게 되리라 생각했겠나 豈意成玆伎倆身지금부터라도 지난날의 잘못을 알게 된다면 苟得從今知往錯위나라 현인66)도 특별한 사람이 아니리라 衛賢非是別般人지금보다 음이 성하고 양이 미약한 때가 없어 陰盛陽微莫此辰사도를 지키느라 거의 내 몸을 보전하지 못했네 衛師殆不保吾身하늘이 남은 수명을 몇 해나 빌려줄지 모르지만 未知天假餘年幾부지런히 공부하여 더욱 진보한 사람이 되리라 庶作孜孜更進人 細笑己過庚降辰, 光陰忽忽滿中身.便令歸去亦非夭, 柰作無聞可愧人?北堂劬勞昔何辰? 遽作如今孤露身.兒輩且休稱壽酌, 老來益切念先人.衰門天不錫昌辰, 四代未經回甲身.若將賤年加四五, 最爲吾世壽祺人.奇哉! 阿仲同弧辰, 三歲相差亦老身.勤苦平生無暇息, 愧余還是懶散人.家政難能星拱辰, 總由此道未行身.卜諸妻子親經語, 更覺前賢不誤人.不恨此生丁不辰, 實工愧未及心身.士窮然後見高節, 從古元無無死人.憶承詩禮過庭辰, 豈意成玆伎倆身?苟得從今知往錯, 衛賢非是別船人.陰盛陽微莫此辰, 衛師殆不保吾身.未知天假餘年幾, 庶作孜孜更進人. 경강(庚降) 장경성(長庚星)이 떨어졌다는 말이다. 장경성은 금성(金星)의 별칭으로, 태백성(太白星)이라고도 하는데 저녁 무렵 서쪽 하늘에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이다. 이 별이 낮에 나타나는 것을 흉한 조짐으로 여겼다. 북당(北堂) 주부의 거실이라는 점에서 모친의 거처를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는데, 전하여 어머니를 상진한다. 《시경》 〈위풍(衛風) 백혜(伯兮)〉에 "어떡하면 원추리를 얻어서 북쪽 뒤꼍에 심어 볼까. 떠난 사람 생각에 내 마음만 병드누나.〔焉得萱草, 言樹之背? 願言思伯, 使我心痗.〕"라는 구절이 나온다. 사대(四代) 선조(先祖) 고조(高祖)ㆍ증조(曾祖)ㆍ조(祖)ㆍ고(考)를 말한다. 생일(生日) 원문의 '호신(弧辰)'은 남자의 생일을 가리킨다. 옛 풍습에 아들이 태어나면 세상에 큰 뜻을 펴도록 뽕나무로 활을 만들고 봉초(蓬草)로 화살을 만들어 천지 사방에 쏘았다고 한다. 《禮記 內則》 가정에서……때 가정에서 부친에게 배우는 가학(家學)을 말한다. 공자(孔子)의 아들 이(鯉)가 뜰에서 공자 앞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다가 공자로부터 시(詩)와 예(禮)를 배웠느냐는 말을 듣고 그것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던 일에서 유래한다. 《論語 季氏》 위(衛)나라 현인(賢人) 춘추 시대 위(衛)나라의 어진 대부(大夫) 거백옥(蘧伯玉)을 가리킨다. 거백옥이 나이 육십이 되었을 때 그동안의 잘못을 깨닫고 고쳤다는 고사가 있다. 《장자(莊子)》 〈칙양(則陽)〉에 "거백옥은 나이 60살이 되자 60살에 변화하였다.[蘧伯玉, 行年六十而六十化.]"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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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잔령을 넘으며 踰開棧嶺 여산101)이 높디높고 촉도102)가 험난해도 廬岳高高蜀道難험준함이 이 산보다 더하지는 않으리라 崎嶇未必過此山내려갈 땐 벌써 천 길 함정에 추락할 듯 下來已墜千尋穽오를 때는 만 척의 장대를 타는 듯하네 上去如緣萬尺竿돌에 부딪혀 두 무릎 깨질까 몇 번 걱정하고 觸石幾愁雙膝碎벼랑에 임해서는 온 가슴이 섬뜩함을 느끼네 臨崖還覺一心寒조심조심 내딛어 끝내 험한 곳을 넘고나니 兢兢進步終踰險고생을 겪어야 안락함 맛보게 됨을 알겠네 辛苦方知見樂安 廬岳高高蜀道難, 崎嶇未必過此山.下來已墜千尋穽, 上去如緣萬尺竿.觸石幾愁雙膝碎, 臨崖還覺一心寒.兢兢進步終踰險, 辛苦方知見樂安. 여산(廬山) 중국 강서성(江西省) 구강현(九江縣) 남쪽에 있는 수려한 산이다. 촉도(蜀道) 중국 사천성(泗川省)인 촉 땅으로 가는 길인데, 매우 험준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백(李白)의 〈촉도난(蜀道難)〉에 "아아 험하고도 높구나. 촉도의 험난함은 푸른 하늘 오르기보다 어려워라.[噫吁嚱, 危乎高哉. 蜀道之難, 難於上靑天.]"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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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봉에 올라서 上昆盧峯 봉래산 가장 높은 봉우리에 한 번 오르니 一陟蓬萊上上峯땅이 동해에 다하여 동쪽 땅이 다시 없네 地窮東海更無東눈 아래에 운하가 희어서 갑자기 놀라고 乍驚眼底雲霞白머리 가에 일월이 붉은 줄 문득 깨닫네 忽覺頭邊日月紅득실과 영고는 모두 헛된 꿈이요 得失榮枯都幻夢존망과 흥폐도 다 헛것이 되었구나 存亡興廢總成空중생들이 언제나 일제히 여기에 올라 衆生安得齊登此흉금을 넓게 열어 큰 공평함을 지을까 恢拓胸衿作大公 一陟蓬萊上上峯, 地窮東海更無東.乍驚眼底雲霞白, 忽覺頭邊日月紅.得失榮枯都幻夢, 存亡興廢總成空.衆生安得齊登此, 恢拓胸衿作大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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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삼117) 【규용】에게 답함 答安敬三【圭容】 은미한 양(陽)의 기운이 처음 움직여 맑은 기운이 바야흐로 올라오니, 이는 군자의 도가 자라는 때인지라 그리운 마음 더욱 간절하네. 마침 묵계(墨溪)118)에 갔다가 그대가 보내준 한 통의 편지를 받아 펼쳐 읽어본 뒤에 참으로 서로 그리워하고 감응하는 뜻이 말하지 않아도 백 리 밖에서 묵묵히 계합하는 것이 있음을 알았으니, 더욱 마음이 경도되었네. 편지를 받은 이후로 다시 생각건대 어버이를 모시는 여가에 경서를 공부하는 체후는 한결같이 넉넉하고 좋으신가? 편지에서 말한 "몸소 사무를 집행하고 남는 여가에 글을 배운다."라고 한 것 이것은 집이 가난하고 어버이가 연로한 입장에서는 용이하지 못한 점이 있으니, 매우 좋네. 무릇 이 일은 쉬운 듯하지만 실제로는 어려우니, 오직 정성과 노력이 지극히 독실하여 외면의 일과 함께 따라가지 않아야 바야흐로 가할 것이네. 주자가 말하기를 "매사에 도리를 보고 쉽게 지나치지 않게 하고, 다시 그 속에서 평소의 병통을 간파하여 통렬하게 잘라버리면 학문을 하는 방도가 무엇이 이보다 더하겠습니까? 만약 조금이라도 물리쳐버리고 싫어하는 마음이 생기면, 이치와 일이 도리어 두 가지로 나누어지니 독서 또한 쓸데가 없습니다."라고 하였고,119) 남헌(南軒) 장자(張子)120)가 말하기를 "어버이 곁에서 모시는 잡무는 자식의 직분 상 마땅히 해야 할 것이니, 구차하게 지나쳐 버려서는 불가하다. 다만 경(敬)으로 위주로 삼아 일마다 살피는 것이 학문하는 방도이다."라고 하였으니, 원컨대 그대는 이 몇 마디 말에 깊이 더욱 체득하여 평소 복행하는 요체로 삼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微陽初動。淑氣方升。此是君子道長之時。懷仰尤切。適到墨溪。得高明所惠一度心畫。披繙以還。儘知相懷相感之意。有不言而默契於百里之外者矣。尤用傾倒信後更惟侍旁經履。一直崇裕。示中躬執事務。餘日學文者。此在家貧親老之地。有所不容易者。甚善甚善。大抵此事似易而實難。惟誠力篤至。不與外面事俱往。方可。朱子曰。每事看得道理。不令容易放過。更於其間。看得平日病痛。痛加剪除。爲學之道。何以加此。若起一排遣厭苦之意。則理事却成兩截。讀書亦無用處。南軒張子曰。侍旁雜務。子職所當爲。不可苟且放過。但敬以爲主。而事事必察焉。學之道也。願吾友於此數語。深加體當。以爲平日服用之要。如何。 안경삼(安敬三) 안규용(安圭容, 1873∼1959)을 말한다. 자는 경삼, 호는 회봉(晦峰), 본관은 죽산(竹山)이다. 묵계(墨溪)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의 마을 이름이다. 주자가……하였고 《주자대전》권49 〈진부중에게 답함[答陳膚仲]〉제6서에 나오는데 내용의 출입이 있다. 남헌(南軒) 장자(張子) 남송(南宋)의 성리학자 장식(張栻, 1133~1180)을 말한다. 자는 경부(敬夫)ㆍ흠부(欽夫)ㆍ낙재(樂齋), 호는 남헌이다. 호굉(胡宏)에게 정자(程子)의 학문을 전수받았으며, 주희(朱熹)와 절친한 벗이기도 하다. 학자들이 그를 존경하여 남헌 선생(南軒先生)이라 불렀으며, 주희ㆍ여조겸(呂祖謙)과 더불어 '동남(東南)의 삼현(三賢)'이라 불렸다. 저서로는 《논어해(論語解)》, 《맹자설(孟子說)》, 《남헌역설(南軒易說)》, 《남헌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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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락【내귀】에게 답함 答趙仲洛【來龜】 오래 격조하던 차에 한 폭의 고마운 편지는 어찌 보배로운 큰 옥98)과 같을 뿐이겠는가? 더구나 여행하는 체후가 손상이 없음을 알았으니, 위로되고 후련한 마음 말할 수 없네. 모르겠으나 가르치고 배우는 여가에 옛날 학업은 한결같이 긴요한데 착수하여 실마리를 찾았는가? 이 일은 단지 뜻 세움에 책임이 있으니, 뜻을 세우지 못하면 실로 말할 만한 것이 없네. 뜻이 진실로 서면 그 면려하고 신칙하는 것은 어찌 곁에 있는 사람이 말할 것이 있겠는가? 마치 나그네가 집으로 가고 밥 먹는 사람이 배부르기를 구하는 것과 같아 계단과 길, 절도는 스스로 아는 곳이 있을 것이니, 어떻게 여기는가? 세월은 쉽게 흘러가고 공부는 진보하기 어려우니, 이것이 걱정스러운 것이네.[문] 《주역》 〈설괘전(說卦傳)〉에 '궁리(窮理)', '진성(盡性)', '지명(至命)'이라 하였는데, '궁(窮)', '진(盡)', '지(至)'라고 한 것은 대개 천하의 사물은 이(理)가 있지 않는 것이 없지만 오직 이(理)에 궁구하지 못함이 있기 때문에 그 지(知)가 다하지 못함이 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반드시 궁구한 뒤에 알 수 있으니, 이것이 '궁' 자를 놓았던 까닭입니다. 성(性)은 나에게 있는 것이고 밖으로부터 얻는 것이 아니니, 다만 능히 들어서 다할 뿐입니다. 또 만물은 모두 나에게 갖추어져 있는데 잠시 외면하는 마음이 있으면 문득 성을 다하지 못하니, 이것이 '진' 자를 놓았던 까닭입니다. 하늘이 명한 것을 성이라 하는데, 이미 성을 다하면 명(命)에 이르기 때문에 "성을 다하여 명에 이른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지' 자를 놓은 까닭입니다.[답] '궁' 자는 '궁구 사색[窮索]'의 공이 될 뿐 아니라, 또 '궁극(窮極)'의 뜻이 있네. 그대가 논한 것은 의의가 있는 듯 하지만 다만 '재유외지지심(纔有外之之心)'은 '일리미명(一理未明)'으로 고치는 것이 어떠하겠는가?[문] 이(理)는 철두철미하여 포함하지 않음이 없으니, 선과 악은 이(理)가 아님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사람이 이를 말함에 대부분 모두 선을 말하고 악을 말하지 않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대개 이것은 세상을 따라 교구(矯捄)하는 뜻입니다. 고인은 이를 말하지 않았으나 다만 '중(中)', '충(衷)', '칙(則)', '이(彝)'라는 말이 있었는데, 지금에 이르러 '중', '충', '칙', '이' 등의 글자는 변하여 하나의 '이' 자가 되었으니, 이것이 '이' 자를 "순전히 선하여 악이 없다.[純善而無惡]"라고 하는 까닭입니다.[답] 이는 비록 포함하지 않음이 없지만 또한 어찌 일찍이 그 가운데 악을 포함하였던가? '무소불포(無所不包)' 네 글자는 실로 모르는 사람을 대하여 말할 수 없는데, 더구나 하문에 지금 사람은 이를 선으로 말하고 악으로 말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크게 실언한 것에야 어떠하겠는가?[문]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마음으로써 마음을 부린다.[以心使心]"라고 하였는데,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보건대, 정 선생의 뜻은 스스로 주재가 되는 것을 말한 것이다. 단지 하나의 심(心)은 다른 사람이 말을 함으로 인해 도리어 두 개가 있는 듯하니, 자세히 보면 이것은 하나의 심이다."라고 하였으니,99) 어떻게 스스로 주재가 될 수 있습니까?[답] 스스로 주재가 된다는 것 이것이 중요한 곳이네. 안배하고 조작하여 종종 병통이 생기는 것은 모두 능히 스스로 주재가 되지 못하는 곳에서 나오는 것이네. 阻閡之久。一幅惠墨。何趐爲尺葵拱璧也。矧審旅體無損。慰豁不可言。未知斅學之餘。舊業一着。喫緊就緖否。此事只在責志。志不立。則固無話可說。志苟立矣。則其勉勵勸勅。豈在傍人之頰舌哉。如行者之赴家。食者之求飽。而其階逕節度。自有領略處矣。如何如何。日月易得。功夫難進。此是可憂也。窮理盡性至命。曰窮曰盡曰至者。蓋天下之物。莫不有理。惟於理有未窮。故其知有不盡。是以必窮之而後可知。此所以下窮字。性是在我者。非由外而得。但能擧而盡之而已。且萬物皆備於我。纔有外之之心。便是不盡性。此所以下盡字。天命之謂性。旣盡性則可以至命。故曰盡性知命。此所以下至字。窮字。非惟爲窮索之功。且有窮極之義。所論似有義。但纔有外之之心。改以一理未明。如何。理是徹頭徹尾。無所不包。善惡莫非理。然則今人言理。擧皆以善言。而不以惡言之者。何也。蓋是隨世矯捄之義。古人不言理。但有曰中曰衷曰則曰彝之語。及至乎今。中衷則彝等字。變而爲一理字。此所以以理字。謂純善而無惡。理雖無所不包。亦何嘗包惡在其中。無所不包四字。固不可對不知者言之。況下文今人言理以善。不以惡者。大是失言。程子曰。以心使心。朱子曰。觀程先生之意。說自作主宰耳。只是一箇心。被他說得來。却似有兩箇。仔細看來。只是這一箇心。如何可以自作主宰。自作主宰。此是要處。安排造作。種種病痛。皆從不能自作主宰中出來 보배로운 큰 옥 저본의 '척규공벽(尺葵拱璧)'을 풀이한 말이다. '葵'는 '圭'의 오자로 보인다. 정자(程子)……하였으니 《주자어류》권34〈논어16(論語十六) 술이편(述而篇)〉인원호재장(仁遠乎哉章)에 나오는데, 글자의 출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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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에게 부치려고 지은 시 5수 擬寄敬山【五首】 기러기 끊기고 물고기 잠긴196) 지 삼 년이라 鴈斷魚沈三載今교분 맺은 마음을 서로 저버려 한탄스럽네 却歎相負定交心산중에는 아마도 새로운 시흥이 있을 텐데 山中應有新詩興침상에서 혼자 병중에 읊노라니 가련하네 枕上堪憐獨病吟한겨울 북방의 눈발을 지금 당하니 朔雪窮陰見卽今일만 수목 조락하여 살 마음 닫았네 萬林凋落閉生心누가 푸른 솔처럼 서 있는 몸이 되어 孰能身作蒼松立웅장한 용울음 같은 풍랑 소리 들으랴 自聽風濤龍壯吟밝은 이치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데 昭然天理古猶今무슨 일로 인생에 문득 마음을 어길까 底事人生却昧心유생들이 도의를 말하는 걸 들어보면 試聽儒冠談道義나무꾼 목동의 요란한 노래만 못하네 不如樵牧亂謳吟앞서지도 처지지도 않고 지금 만남을 不先不後適丁今우습게도 옛사람은 도리어 고심하였네 堪笑前人却惱心지사가 쇠란한 세상을 만나지 않으면 志士未逢衰亂世문장이 풀벌레 소리처럼 공허해지네 文章空似候蟲吟큰소리만 치는 지금과 섞이기 싫은데 嘐嘐不欲混當今지금 세상에 누가 이 마음을 알겠는가 今世誰能識此心한 베개 꿈에 삼고197) 세상에서 놀다가 一枕夢遊三古世깨어나서 문득 혼자 큰소리로 읊조리네 覺來忽復獨高吟 鴈斷魚沈三載今, 却歎相負定交心.山中應有新詩興, 枕上堪憐獨病吟.朔雪窮陰見卽今, 萬林凋落閉生心.孰能身作蒼松立? 自聽風濤龍壯吟.昭然天理古猶今, 底事人生却昧心?試聽儒冠談道義, 不如樵牧亂謳吟.不先不後適丁今, 堪笑前人却惱心.志士未逢衰亂世, 文章空似候蟲吟.嘐嘐不欲混當今, 今世誰能識此心?一枕夢遊三古世, 覺來忽復獨高吟. 기러기……잠긴 소식이 끊긴 것을 말한다. 기러기의 왕래는 때가 일정하므로 비단을 기러기의 발에 매달아 멀리 서신을 전달했다는 설과 한(漢) 나라 때의 악부(樂府)에 "나그네가 멀리서 찾아들어와 내게 잉어 한 쌍을 주고 가기에, 아이 불러 잉어를 삶게 했더니 뱃속에는 한 자의 비단 편지.〔客從遠方來, 遺我雙鯉魚, 呼童烹鯉魚, 中有尺素書.〕"에서 나온 말이다. 삼고(三古) 상고(上古)ㆍ중고(中古)ㆍ하고(下古) 시대를 아울러 일컫는 말인데, 여기서는 태평성대를 누린 당우삼대(唐虞三代)와 같은 이상적인 옛 시대를 범범하게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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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비바람에 초당이 벗겨지고 부서졌기에 두 공부173)의 〈띳집이 가을바람에 부서진 것을 한탄하는 노래[茅屋爲秋風所破歌]〉에 화운하다 大風雨捲破草堂, 和杜工部《茅屋爲秋風所破歌》 하늘에서 홀연히 성난 소리가 내려 上天忽然降怒號우사와 풍백이 지붕 이엉 말아가니 雨師風伯捲屋茅들판으로 멀리 가버릴까 근심했네 心之憂矣行邁郊부서진 집의 옥천자174)가 우스우니 堪笑破廬玉川子누가 맹성요175)에 집을 새단장하랴 誰能新家孟城坳돌아와 누워 무력함을 탄식하는네 歎息歸臥無毫力간적 같은 파리와 모기 가증스럽네 可憎蠅奸與蚊賊수리할 온갖 계책 떠오르지 않으니 百計葺理無所出어떡하면 파리 모기 몰아낼 수 있을까 那由此物驅除得하늘 우러러 몰래 바라는 게 무엇인가 仰天暗祝何攸願즉시 구름이 걷히고 햇빛이 나온다면 卽時雲開見日色반쯤 검게 타버린 내 마음 풀어지리라 紓我心肝半焦黑방 구들장은 밤새도록 쇠처럼 차갑고 房突連夜冷似鐵창문 종이는 조각조각 전부 찢어졌네 牕紙片片盡破裂또한 어찌하여 하늘가의 무정한 비는 又何天邊無情雨때때로 이어져 잠시도 그치지 않는가 時時續續不暫絶방 부숴도 노지에서 잔다176)고 예전에 들었는데 昔聞掀却臥房露地睡회옹의 한마디 말에서 통철한 이치를 보겠네 晦翁一語見理徹온 세상 둘러보매 비바람이 험악하니 環顧擧世風雨惡몇이나 이런 일 당해 시름을 함께할까 幾人遭此同愁顔그저 태산처럼 본분 지켜 자중할 뿐이네 只可安分自重如泰山아, 죽으면 골짝에 묻히는데 집을 어디에 쓰랴 嗚呼死卽在壑安用屋내 신사177)를 보전하여 돌아가면 만족하리라 全吾神舍而歸可自足 上天忽然降怒號, 雨師風伯捲屋茅.心之憂矣行邁郊, 堪笑破廬玉川子, 誰能新家孟城坳?歎息歸臥無毫力, 可憎蠅奸與蚊賊.百計葺理無所出, 那由此物驅除得? 仰天暗祝何攸願?卽時雲開見日色, 紓我心肝半焦黑.房突連夜冷似鐵, 牕紙片片盡破裂.又何天邊無情雨? 時時續續不暫絶.昔聞掀却臥房露地睡, 晦翁一語見理徹.環顧擧世風雨惡, 幾人遭此同愁顔? 只可安分自重如泰山.嗚呼死卽在壑安用屋? 全吾神舍而歸可自足. 두 공부(杜工部) 공부 원외랑(工部員外郞)을 지낸 당나라의 두보(杜甫)를 말한다. 부서진 집의 옥천자(玉川子) 허름한 집에 거처하는 작자 자신을 비유한 말이다. 옥천은 당나라 시인인 노동(盧仝)의 호이다. 노동은 소실산(少室山)에 은거하면서 스스로 옥천자라고 불렀다. 간의대부(諫議大夫)로 부름을 받았으나 나가지 않고 몇 칸짜리 모옥(茅屋)에서 살았는데, 한유(韓愈)가 몹시 예우하였다. 한유의 〈기노동(寄盧仝)〉 시에 "옥천 선생 낙성 안에 살고 있는데, 몇 칸짜리 부서진 집뿐이로구나.〔玉川先生洛城裏, 破屋數間而已矣.〕"라고 하였다. 《韓昌黎集 卷5》 맹성요(孟城坳) 맹성(孟城) 입구의 경치가 좋은 곳으로, 당(唐)나라 시인 왕유(王維)의 별장이 있었다. 맹성은 섬서성(陝西省) 남전현(藍田縣) 종남산(終南山) 자락의 망천(輞川)에 있는 옛 성이며, '요(坳)'는 지형이 움푹 패여 요철(凹凸)이 있는 곳을 말한다. 자던……잔다 이는 주희(朱熹)가 진량(陳亮)에게 답한 편지에 보이는 말로, 이 편지에 이르기를, "맹자의 '대인에게 유세할 때에는 그 지위를 하찮게 여겨야 한다.'라는 말을 논해보건대, 맹자는 진실로 대인을 경외하지 않은 적이 없으나 다만 그 높은 지위를 하찮게 여긴 자일 뿐입니다. 이 마음을 체득하면 누워서 잠자던 방을 무너뜨리더라도 태연히 노지에서 잠잘 수 있으니 이와 같아야 비로소 진정 큰 영웅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영웅은 도리어 전전긍긍하여 깊은 못가에 다가간 듯이, 얇은 얼음을 밟는 듯이 하는 데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만약 혈기가 거칠면 도리어 조금도 이루지 못하게 됩니다.〔嘗論孟子說大人則藐之, 孟子固未嘗不畏大人, 但藐其巍巍然者耳. 辨得此心, 卽更掀却臥房, 亦且露地睡, 似此方是眞正大英雄人. 然此一種英雄, 却是從戰戰兢兢臨深履薄處做將出來. 若是血氣粗豪, 却一點使不著也.〕"라고 하였다. 《晦菴集 卷36 答陳同甫》 신사(神舍) 신명(神明)의 집이란 뜻으로, 마음을 뜻한다. 송(宋)나라 황간(黃榦)이 "심이란 신명의 집이니, 허령하고 통철하여 뭇 이치를 갖추고서 모든 사물을 수응하는 것이다.〔心者神明之舍, 虛靈洞徹, 具衆理而應萬物者也.〕" 하였다. 《勉齋集 卷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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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6일에 여중과 정토사에서 놀다 2수 七月旣望, 與汝重遊淨土寺【二首】 병이 나아도 태양과 맞설 수 없어 病起難能敵老陽한낮에 칠성당으로 달아나 피했네 午天走避七星堂매미들이 함께 울어 소리 씩씩하고 萬蟬幷噪聲何壯외론 길손이 조니 꿈이 길어지네 孤客閒眠夢欲長동인185)이 강개하여 시에 눈물 나고 慷慨同人詩有淚옛 교분 은근하여 술에 향기가 나네 殷勤舊契酒生香천 년 뒤에 아득히 소동파 생각하니 千秋緬憶東坡子이날 하늘 한쪽에서 누굴 바라보았나 此日望誰天一方절기가 삼음에 이르러 점차 양을 깎나니 節屆三陰漸剝陽세월은 물과 같아서 당당하게 지나가네 居諸如水去堂堂풍년이라 민생이 풍족하다 다퉈 말하나 爭言歲稔民生足무슨 일로 가을 되면 길손의 한 많아지나 底事秋來客恨長길의 가시나무를 없애지 못해 한탄스럽고 途棘堪歎無與掃방의 난초는 오래 향기 머무니 기쁘네 室蘭猶喜久留香어떡하면 영균186)처럼 세상을 살아갈까 靈均度世那由得단가187)에게 오묘한 처방을 묻고 싶네 欲向丹家問妙方 病起難能敵老陽, 午天走避七星堂.萬蟬幷噪聲何壯? 孤客閒眠夢欲長.慷慨同人詩有淚, 殷勤舊契酒生香.千秋緬憶東坡子, 此日望誰天一方?節屆三陰漸剝陽, 居諸如水去堂堂.爭言歲稔民生足, 底事秋來客恨長?途棘堪歎無與掃, 室蘭猶喜久留香.靈均度世那由得? 欲向丹家問妙方. 동인(同人) 서로 마음이 맞는 벗을 말한다.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의 〈동인괘(同人卦)〉를 풀이한 말에 "두 사람이 한마음이면 그 예리함이 쇠를 끊고, 한마음에서 나오는 말은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二人同心, 其利斷金, 同心之言, 其臭如蘭.〕"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영균(靈均) 전국 시대 초(楚)나라 회왕(懷王) 때의 충신이자 문장가인 굴원(屈原)의 자(字)이다. 그는 삼려대부(三閭大夫)로서 직간을 하다가 조정에서 모함을 받아 좌천된 후, 자신의 억울한 심정을 읊은 〈이소(離騷)〉 등을 짓고 상강(湘江)에 투신하여 자살하였다. 단가(丹家) 연단술(煉丹術)을 행하는 도사(道士)를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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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 통정대부 병조참의 겸 경연참찬관 월헌 조공전 贈通政大夫兵曹參議兼經筵參贊官月軒曺公傳 조공(曺公)의 휘는 현(顯), 자는 희경(希慶)이며 월헌(月軒)은 그의 호이다. 신라 태사 계룡(繼龍)이 비조(鼻祖)가 되고, 고려평장사(高麗平章事) 자기(自奇), 비서소감(祕書少監) 사단(思旦), 도첨의정승(都僉議政丞) 장양공(莊襄公) 저(著)가 그의 현조(顯祖)이다. 조부 세창(世昌)은 장예원 판결사(掌隷院判決事)를 지냈으며, 아버지 억년(億年)은 참봉을 지내고 병조 참판에 추증되었다. 공은 가정(嘉靖) 을미년(1535, 중종30)에 태어났다. 공은 지기(志氣)가 무리보다 뛰어나고 강개함이 장대하여 붓을 던지고 무과에 급제하여 명종(明宗) 을묘년(1555, 명종10)에 나가 달량진(達梁鎭, 해남 달랑포)을 지켰다. 그 당시 섬 오랑캐들이 침범해오자 변방 성의 바다를 지키는 수군115)은 풍문만 듣고도 무너져 달아났는데, 공이 휘하를 독려하여 성에 올라 힘써 싸우자 적들이 접근하지 못하였다. 그 후 며칠이 지나 화살이 다 떨어지고 힘이 다하였는데도 밖에서 구원병이 이르지 않았다. 적들이 성을 수겹으로 에워싸자 칼을 뽑아 공격하여 수십여 수급을 베었고 검도 부러졌다. 그리하여 지붕의 기와를 걷어 던져 적을 죽이고 부상을 입힌 것이 매우 많았으나 기와가 다 떨어져 성은 함락되었다. 적들은 오래도록 항복하지 않음을 분하게 여겨 공을 굴복시키고 등을 갈라 간을 드러내기까지 하였는데, 도적을 꾸짖는 소리가 오히려 끊이지 않았다. 적들이 이를 의롭게 여겨 관을 갖추고 시체를 거두었으니, 그때의 나이가 21세였다. 3년이 지난 정사년(1557, 명종12)에 병조 참의에 추증하였고, 선조 무인년(1578, 선조11)에 관리를 보내 제사를 지내게 했다.116) 효종 을미년(1655, 효종6)에는 포충사(褒忠祠)117)에 올려 제향하였고, 숙종 계미년(1703, 숙종29)에는 정려를 명하였다. 외사씨(外史氏)118)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옛날 장순(張巡)과 허원(許遠)119)이 회양(睢陽)의 싸움에서 전사하자 논하는 자들이 고금 천지의 쌍혼(雙魂)으로 그들을 인정하였는데, 공이 장순 허원과 함께 고금의 3혼이라 하여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우리 조정이 태평할 때에 공이 먼 지방의 보잘 것 없는 관원으로 우뚝하게 떨쳐 한 시대에 강상(綱常)을 부지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풍의(風義)를 빛냈으니, 38년이 지나 임진년의 변란 때 의병을 일으켜 순절(殉節)했던 일이 영호남(嶺湖湖) 사이에 잇달아 있었던 것이 공이 이끈 것이 아닌 줄을 어찌 알겠는가. 이 집에서 잠도 자고 일어나서 날마다 먹고 마시며 은혜를 받은 것이 많았으니, 삼가 전(傳)을 지어 후대의 재필(載筆)120)할 사람을 기다린다. 曺公諱顯。字希慶。月軒其號也。以新羅太師繼龍爲鼻祖。高麗平章事自奇。秘書少監思旦。都僉議政丞莊襄公著。其顯祖也。祖世昌掌隷院判決事。考億年參奉贈刑曹參判。公生于嘉靖乙未。志氣不羣。慷慨磊落。投筆登武科。明宗乙卯。出守達梁鎭。時島夷入寇。邊城海戍。望風奔潰。公督管下。登城力戰。賊不敢近。居數日。矢盡力竭。外援不至。賊圍城數匝拔劒擊斬數十級。劒亦折。捲屋瓦投之。殺傷甚衆。瓦盡城陷。賊憤其久不下。伏公刳背。至於露肝。而罵賊之聲。猶不絶。賊義之。具棺斂尸。時年二十一。越三年丁巳贈兵曹參議。宣廟戊寅。遣官致祭。孝宗乙未。躋享褒忠祠。肅廟癸未。命旌閭。外史氏曰。昔張巡許遠。死於睢陽之戰。論者以古今天地一雙魂。與之。公之於巡遠。謂之古今三魂。非過論也。當我朝昇平恬憘之際。公以遐土冗官。崛然奮張。扶綱常於一時。耀風義於萬目。後三十八年。壬辰之變。倡義殉節。相望於嶺湖之間者。安知非公倡之耶。載寢載興。日用飮食。受賜多矣。謹爲立傳以以俟後之載筆者。 바다를 지키는 수군 원문의 '해수(海戍)'는 바닷가의 수자리이다. 이백(李白)의 자류마(紫騮馬)에 "흰 눈이 덮인 관산은 멀고 누런 구름 자욱해 해수는 아득해라.[白雪關山遠, 黃雲海戍迷.]" 하였다. 관리를……했으며 1578년(선조11)에 예조 정랑(禮曹正郞) 구충연(具忠淵)을 보내어 치제(致祭, 임금이 제물과 제문을 보내어 치루는 제사)하고 자손을 녹용(錄用)하였다. 포충사(褒忠祠) 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 모산리 죽수서원 옆에 위치한다. 1610년(광해군2)에 창건되었으며, 처음에는 최경회(崔慶會, 1532~1593) 장군만 모셨으나, 1630년(인조8)에 당시 이조판서인 이귀(李貴)의 주청으로 문홍헌(文弘獻)을 배향하였다. 이후 1657년(효종8) 을묘왜란때에 해남 달랑포에서 전사한 조현(曺顯)을 추배 했으며, 1860년(철종11)에 구희(具喜) 등을 추가 배향하였다. 외사씨(外史氏) 《사기》 등에는 사관이 어떤 일을 논하는 논평의 글이 나오는데, 이 글은 사관의 글이 아니므로 외사씨라고 한 것이다. 소설에서 끝에 작가 개인 의견을 표출하는 대목에서 '외사씨왈(外史氏曰)' 표현을 많이 쓴다. 장순(張巡)과 허원(許遠) 당(唐) 나라 현종(玄宗) 때의 관리로, 안녹산(安祿山)의 난 때 장순은 어사중승(御史中丞)으로, 허원은 수양 태수(睢陽太守)로 있으면서 두 사람이 힘을 합쳐 안녹산의 군대에 맞섰으나, 성이 포위된 지 몇 개월 만에 구원병도 오지 않고 양식도 떨어져 성은 함락되고 적들에게 사로잡히는 몸이 되었다. 그 뒤 낙양으로 압송되어, 그들의 회유에 뜻을 굽히지 않고 저항하다 죽음을 당하였다. 재필(載筆) 남북조(南北朝) 시대에는 운문을 '문(文)', 산문을 '필(筆)'이라 하였다. 후대에 재필(載筆)은 '필기도구를 휴대하고 군왕의 언행을 기록한다.'는 것으로 사관이 역사를 기록하는 것을 이른다. 또는 '소차(疏箚)나 표문(表文)을 짓는다.'라는 등의 문체를 지칭하게 되었다. 《양서(梁書)》 권14 〈임방전(任昉傳)〉에 "임방이 매우 글을 잘 지었는데 더욱이 재필을 잘 지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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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미정기 木美亭記 내가 듣건대, 천관산(天冠山)54) 북쪽에 높이 우뚝 서 있는 산을 우산(牛山)이라 하고, 산 아래에 날아오를 듯 있는 정자를 목미정(木美亭)이라 하는데, 고(故) 악와(樂窩) 안 처사(安處士)55)가 축조하고, 금곡(錦谷) 송 선생(宋先生)56)이 이름을 지어 준 것이라고 한다. 다만 모르겠지만, 그 산의 나무는 맹자 때에 이미 그 기름을 잃어서 민둥산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57), 더욱이 수천 년이나 지난 뒤에 어찌 유독 그렇지 않아서 도리어 아름답다고 하는 것인가? 그러나 진(秦)나라 내의 황죽(篁竹)은 옛날에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졌고, 낙양(洛陽)의 모란[牧丹]58)은 과거에 없었으나 후대에는 있게 되었으니, 그 물산(物産)의 번성과 쇠퇴는 또한 일률적으로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매양 한번 찾아가고 싶었지만 병으로 발걸음이 미치지 못하다가 근년에 산 아래의 벗이 찾아와 종유(從遊)할 수 있었는데, 기상과 풍모가 대체로 범상치 않은 것이 요림 옥수(瑤林玉樹)59)와 같아서 매우 애호할 만하였다. 아, 평소 자나 깨나 잊지 못했던 이 산을 방문을 나가지 않고서도 만날 수 있었으니, 물산은 본디 번성과 쇠퇴가 있지만, 진실로 수양함이 있지 않았다면 어떻게 지속적인 해침에서 벗어나 성취한 바가 이와 같을 수 있었겠는가.아, 맹자는 어느 때 사람이며, 우산(牛山)은 어느 지역에 있었던가? 누가 그 말을 만 리 머나먼 바닷가에서 비로소 서로 얻어 왕춘(王春)60)의 한 가닥 맥으로 하여금 얼음이 어는 한겨울과 같은 시기에 실추되지 않게 할 줄 생각이나 했겠는가. 이 이후로 또 어찌 숭산(嵩山)의 다섯 아름 되는 나무와 형산(衡山)의 천 길 되는 재목이 장차 숲을 이루며 빽빽하게 늘어서서 큰 집을 지탱하고 용마루를 떠받드는 기둥으로 쓰이지 않을 줄 알겠는가. 이것이 악와공이 이 정자를 짓게 된 뜻이다. 그러나 식물도 또한 다양하니, 여름에 휴식을 얻고 가을에 열매를 얻는 것은 어떤 식물이며, 휴식을 얻지 못하고 가시를 얻는 것은 어떤 식물인가? 이는 씨를 뿌리는 초기에 구별되는 바이니, 굳이 성숙해지는 때를 기다려 "좋은 쑥이 아니라 나쁜 쑥이로다."61)라는 탄식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자양하는 방법은 우산장(牛山章)에 갖추어져 있어 평소에 익혔을 것이니, 무슨 말을 덧붙이겠는가.나는 잡목 같은 졸렬한 자질로 풍상(風霜)에 곤욕을 당하여 오래도록 사방 한 치 되는 나무조차 되지 못하였으니, 어찌하면 남은 풍교를 뒤따라서 구구하나마 상유(桑楡)의 시기62)에 다소간 봉마(蓬麻)의 도움63)을 받을 수 있을까? 余聞天冠之北。有巋然而特立者曰牛山。山之下。有亭翼然曰木美。故樂窩安處士所築。錦谷宋先生所錫名也。但未知其山之木。在孟子時。已失其養而至於濯濯。況後於數千載。何獨不然。而乃以美云耶。然秦中篁竹。昔有而今無。洛陽牧丹。前無而後有。其物産盛衰。又不可以一槩可評。每欲一者屨及。而病未能焉。近年得山下友之過從。氣象風裁。槩不草草。若瑤林玉樹。蔚然可愛。噫。平日所寤寐此山者。不出戶而可以覯降矣。物產固有盛衰。苟非有養焉。則安能免於侵尋。而其所就乃爾耶。嗚乎。孟子何時。牛山何地。誰謂其說乃始相得於海荒萬里之濱。使王春一脈。不墜於窮陰堅冰之時耶。率是以往。又安知無嵩山五園之樹。衝山千尋之材。將林立叢列而爲支厦負棟之用耶。此是樂窩公經始之意也。然植物亦多矣。夏得休息而秋得其實者。何物。不得休息而得其刺者。何物。此在下種之初所當區別。不必待日至之時而有匪莪伊蒿之歎也。若其滋養之術。牛山章備矣。講之素矣。夫何贅焉。余以樸樕劣品。厄於風霜。不得爲方寸之木久矣。安得追躡餘風。以受多少蓬麻之助於區區桑楡之日乎。 천관산(天冠山) 전남 장흥군 관산읍과 대덕면 일원에 위치한 산(723m)이다. 악와(樂窩) 안 처사(安處士) 안국심(安國心, 1838~1890)으로, 악와는 그의 호이다. 금곡(錦谷) 송 선생(宋先生) 조선후기에 부호군, 대사헌, 찬선 등을 역임한 문신 송내희(宋來熙, 1791~1867)로, 금곡은 그의 호이다. 자는 자칠(子七)이고, 본관은 은진(恩津)이다. 1838년(헌종 4) 경연관(經筵官)에 임명된 후 사헌부의 장령(掌令)·집의(執義) 등을 거쳐 뛰어난 학행을 인정받아 1853년(철종 4)에 성균관좨주(成均館祭酒)에 천거되었으며, 부호군(副護軍)을 거쳐 1857년부터 10년 가까이 대사헌을 여러 차례 지내고 뒤에 찬선(贊善)에 이르렀다. 저서로는 《금곡문집(錦谷文集)》이 있다. 그……이르렀는데 목미정이 자리한 산의 이름이 우산(牛山)인 연유로  《맹자》 〈고자 상(告子上〉 우산장(牛山章)에서 맹자가 양심(良心)을 잃게 되는 이유를 말하면서 제(齊)나라 동남쪽에 있는 우산이 무성하게 우거졌지만, 도시 근처에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도끼로 베어 가고, 또 소와 양이 남은 그루터기의 싹을 뜯어 먹어서 민둥산이 되었다고 한 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낙양(洛陽)의 모란 당나라의 측천무후(624~705)가 어느 겨울날, 꽃나무들에게 당장 꽃을 피우라고 명령을 내렸는데, 다른 꽃들은 모두 이 명령을 따랐으나 모란만은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그래서 불을 때 강제로 꽃을 피우게 하려고 했지만 무위로 끝나자 화가 난 황제는 모란을 모두 뽑아서 낙양으로 추방시켜 버렸다. 이후로 모란은 '낙양화'로도 불리게 되었고, 불을 땔 때 연기에 그을린 탓에 지금도 모란 줄기가 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고 한다. 《한시와 일화로 보는 꽃의 중국문화사》(2004, 나카무라 고이치, 뿌리와이파리.) 요림 옥수(瑤林玉樹) 요림 경수(瑤林瓊樹)와 같은 말로, 옥으로 이루어진 숲의 옥으로 만들어진 나무처럼 인품이나 풍도가 매우 고결하고 훌륭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진(晉)나라 죽림칠현의 한 사람인 왕융(王戎)이 당시의 태위(太尉) 왕연(王衍)을 두고 "태위는 신성한 자태가 고상하여 마치 옥으로 이루어진 숲의 옥으로 만들어진 나무와 같으니 자연히 풍진(風塵) 밖의 인물이다."라고 한 데에서 유래하였다. 《晉書 卷43 王戎列傳》 왕춘(王春) 음력으로 신춘(新春)을 말하는 것으로. 공자가 《춘추》를 편찬할 때 주나라 왕실을 높이고 대일통(大一統)의 사상을 표시하기 위해 노(魯)나라 은공(隱公) 원년 조에 '춘왕정월(春王正月)'이라고 쓴 데서 유래하였다. 좋은……쑥이구나 《시경》 〈육아(蓼莪)〉에 보인다. 상유(桑楡)의 시기 저물녘에 떨어지는 해가 뽕나무와 느릅나무의 가지 끝에 걸린다고 하여 인생의 만년을 비유한다. 《회남자(淮南子)》에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져 그림자가 나무 끝에 있는 것을 상유라 한다." 하였다. 봉마(蓬麻)의 도움 훌륭한 벗의 도움을 비유하는 말이다. 《순자(荀子)》 〈권학(勸學)〉에 "쑥이 삼대 속에 자라면 붙잡아 주지 않아도 곧게 된다.[蓬生麻中, 不扶而直.]"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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