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병중에 윤 사군(尹使君)54)【종지(宗之)】께 드리다 久病呈尹使君【宗之】 온 하늘에 가을비 내려 강가의 성 씻어주니일 마친 공당(公堂)엔 세속의 번잡함 가볍네아전 흩어진 송정(訟庭)엔 거문고 소리 깨끗하고바람 높은 빈 방엔 학 울음소리 맑네호산(湖山)은 남창(南昌)의 흥취55) 넉넉히 차지하고누각은 북해(北海)의 술잔56) 한가히 열어주네다만 한스러운 것은 원헌(原憲) 오랫동안 가난하고 병들어57)훌륭한 선인(仙人) 모시고 새로 갠 하늘 감상하지 못하는 것이네 一天秋雨洗江城事罷公堂世累輕吏散訟庭琴韻澈風高虛室鶴音淸湖山剩占南昌興樓閣閑開北海觥却恨愿生貧病久未陪仙伯賞新晴 윤 사군(尹使君) 윤종지(尹宗之, 1597~?)로 자는 임종(林宗), 호는 백봉(白篷), 본관은 해평(海平) 이다. 1618년(광해10)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대과에는 합격하지 못하였다. 병자호란 때 영남으로 피신하여 유리(流離) 생활을 하다가 효종 즉위년에 다시 음직(蔭職)에 발탁되어 곡산 현감(谷山縣監), 대구 부사(大邱府使) 등을 역임하였다. 남창(南昌)의 흥취 은거하는 이의 흥취를 말한다. 한(漢)나라 때 남창위(南昌尉)를 지낸 매복(梅福)이 왕망(王莽)의 전정(專政)을 증오하여 처자(妻子)를 버리고 떠나 신선이 되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漢書 卷67 梅福傳》 북해(北海)의 술잔 빈객과 함께 즐기는 술자리를 말한다. 후한(後漢) 때 북해상(北海相)을 지낸 공융(孔融)이 빈객과 함께하기를 좋아하여, "자리에 빈객이 항상 가득하고 술독에 술이 비지 않는다면 나는 근심할 것이 없다.[座上客常滿 樽中酒不空 吾無憂矣]"라고 한 고사가 전한다. 《後漢書 卷100 孔融列傳》 원헌(原憲)……병들어 공자(孔子)의 제자 원헌(原憲)이 노(魯)나라에서 몹시 곤궁하게 지낼 적에 자공(子貢)이 사마(駟馬)가 끄는 수레를 타고 원헌을 방문하여 말하기를 "아, 선생은 어찌하여 이렇게 병이 들었습니까?" 하자, 원헌이 대답하기를 "나는 듣건대, 재물이 없는 것을 가난이라 하고, 배워서 그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병이라 한다 하니, 지금 나는 가난한 것이지, 병든 것이 아니라오."라고 하였다. 《莊子 讓王》 곤궁하게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원헌에 빗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