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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기 靜齋記 한 번의 동함과 한 번의 정함66)은 천지(天地)가 닫히고 열리는 기틀이고, 음양(陰陽)이 유행하는 자취이며, 인심(人心)이 끊임없이 생성되는 묘리이니, 서로 있어야 하고 서로 없어서는 안 되며, 서로 의존해야 하고 서로 방해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덕(德)67)으로 말하면 정(貞)이 줄기가 되고, 본성으로 말하면 의(義)가 바탕이 되며68), 사시(四時)로 말하면 겨울이 갈무리의 시기가 되니69), 이것이 사람의 준칙을 세울 때에 고요함을 주장하는 이유이다.70) 하물며 우리들은 나이와 정력이 이미 저물어 가서 쇠퇴함이 날로 심해져 가니, 이는 천시(天時)에서 한 해의 겨울이 아니겠는가.형체는 동작의 형세를 따를 수 없고, 정력은 사색의 번민을 꿰뚫을 수 없으니, 오직 수습하고 검속하며, 사리사욕을 없애고 말수를 줄여서 마치 나뭇잎이 떨어지는 가을철에 바싹 마른 나무가 뿌리를 감추고, 만물이 얼어붙는 엄동설한의 계절에 땅속에 칩거하는 벌레가 자신을 보존하는 것처럼 선천(先天)에서 속세를 잊어버리고 상유(桑楡)에 남아 있는 빛을 되돌려 조용하고 한가롭게 여생이 다할 날을 기다릴 뿐이다. 이것이 노년을 살아가는 계책일 것이다.나의 벗 박공(朴公) 인여(仁汝)가 고요함[靜]을 한 글자의 부절(符節)로 삼아 집의 편액에 써서 표시한 것은 이런 뜻이 아니겠는가. 흰 머리를 서로 바라보는 처지로 서로 위로할 길이 없기에 삼가 집에 명명한 뜻을 써서 마음을 부친다. 一動一靜。是天地闔闢之機。陰陽流行之迹。人心生生之妙。可以相有而不可以相無。可以相須而不可以相妨。然以言乎德則貞爲幹。以言乎性則義爲質。以言乎時則冬爲藏。此立人極者。所以主乎靜也。而況吾輩年力已邁。衰替日深。此非天時一歲之冬乎。形體不足以服動作之勢。精力不足以貫思索之煩。惟是收拾斂束。恬澹簡黙。如枯槁之木。晦根於搖落之時。封蟄之蟲。存身於嚴凝之節。忘劫塵於先天。回餘光於桑楡。從容閒暇以俟餘日。此是老年活計也。余友朴公仁汝。以靜爲一字符。而標題於齋顔者。非此意耶。白首相望。無以相慰。謹書其名齋之義以寄情焉。 한 번의……정함 주돈이(周敦頤)가 지은 〈태극도설(太極圖說)〉에 "태극이 동하여 양을 낳고 동이 극에 달하면 정하고, 정하여 음을 낳고 정이 극에 달하면 다시 동한다. 한 번 동함과 한 번 정함이 서로 그 뿌리가 된다.[太極動而生陽, 動極而靜, 靜而生陰. 靜極復動. 一動一靜, 互爲其根.]"라는 말이 보인다. 덕(德) 《주역》 〈건괘(乾卦)〉에 나오는 건도(乾道)의 네 가지 덕인 원(元)ㆍ형(亨)ㆍ이(利)ㆍ정(貞)을 가리킨다. 본성으로……되며 사람은 태어날 때에 건도(乾道)의 네 가지 덕인 원(元)ㆍ형(亨)ㆍ이(利)ㆍ정(貞)을 받아서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 네 가지 본성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사시(四時)로……되니 《사기》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에 "무릇 봄에 생겨나고 여름에 자라며 가을에 거두고 겨울에 갈무리하니, 이는 천도의 큰 법이다.[夫春生夏長, 秋收冬藏, 此天道大經也.]" 하였다. 이것이……이유인데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太極圖說)〉에 "성인은 중ㆍ정ㆍ인ㆍ의로 정하되 고요함을 주장하여 사람의 준칙을 세웠다.[聖人定之以中正仁義而主靜, 立人極焉.]"라는 구절이 보인다. 《古文眞寶 後集 卷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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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흥으로 읊다 卽事 부슬부슬 비 오고 가벼운 바람 불더니 雨脚纖纖風勢輕한 낮에 보리 향이 한바탕 일어나네 午天麥氣一番生초당에서 반나절 한가롭게 앉았나니 草堂半日悠然坐문득 흉금이 아주 맑아짐을 느끼네 蝢463)覺胸衿別樣淸 雨脚纖纖風勢輕, 午天麥氣一番生.草堂半日悠然坐, 蝢2)覺胸衿別樣淸. 蝢 '頓'자의 잘못인 듯하다. 蝢 '頓'자의 잘못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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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日雨 微雨祟朝下。胚胎萬物生。淸塵驅沴氣。潤屋報豊聲。古墓莎初濕。高山雪益明。今年春色早。歸雁已離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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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제봉에서 옛 일을 생각하다 望帝峯懷古 저녁 기운 서늘하게 푸른 산 적시는데 夕氣蒼凉滴翠微아득히 지난 일들이 꿈속에 아련하네 渺茫往跡夢依依정충사318) 옛 사우에 찬 안개 깔리고 旌忠祠古寒烟鎖척심정 터에는 어지러이 새가 나네 滌心亭墟亂鳥飛연령의 해골들은 누런 땅에 묻혀있고 鳶嶺髑髏黃瘞土대암의 불탑에는 푸른 이끼 자라났네 臺菴佛塔碧生衣한 통의 술 다 들이킨 청산의 늙은이 一樽酒盡靑山老바위에서 방황하며 곧장 돌아가지 못하네 石上彷徨未徑歸 夕氣蒼凉滴翠微, 渺茫往跡夢依依.旌忠祠古寒烟鎖, 滌心亭墟亂鳥飛.鳶嶺髑髏黃瘞土, 臺菴佛塔碧生衣.一樽酒盡靑山老, 石上彷徨未徑歸. 정충사(旌忠祠) 전라북도 정읍시 흑암동에 있는 조선 중기의 사우로, 송상현(宋象賢)ㆍ신호(申浩)ㆍ김준(金浚) 등을 배향하고 있다. 1632년(인조10) 창건되었으며, 1657년(효종8)에 사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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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한 밤에 짓다 下山夜賦 봄옷으로 산에 올랐다가 가벼운 추위도 두려워 登高春服怕輕寒해질무렵 서둘러 숲 아래 난간으로 돌아왔네 薄暮催歸林下欄세상엔 바람 먼지 일어나고 금수들319) 난무한데 世上風塵交鳥獸산중에 세월 보내며 홀로 의관320) 차려 입었네 山中日月獨衣冠궁박한 길은 운명이 있어서니 때를 따라 즐기고 窮途有命隨時樂명승의 땅은 인연이 남아있어 도처가 편안하네 勝地留緣到處安저물 무렵에 화수의 한321)이 다시 더하는데 向晩更添花樹恨금성의 산색과 이별하는 일도 어렵구나 錦城山色別離難 登高春服怕輕寒, 薄暮催歸林下欄.世上風塵交鳥獸, 山中日月獨衣冠.窮途有命隨時樂, 勝地留緣到處安.向晩更添花樹恨, 錦城山色別離難. 금수들[鳥獸] 오랑캐를 비유한 것이다. 의관(衣冠) 오랑캐의 복장이 아닌 선비의 복장을 말한 것이다. 화수의 한 송파 족숙 및 김태형과 헤어진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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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춘일452)에 천태산에 올라서 餞春日 上天台山 저무는 봄에 남국의 객이 산을 오르니 春歸南國客登山인사와 천시가 모두 한가하지 않구나 人事天時共未閒짧은 비와 가벼운 바람 어찌 이리 재촉하나 短雨輕風何太促맑은 술과 절창에 돌아가는 것도 잊었네 淸罇絶唱却忘還오늘 밤 뒤엔 마음 아프다고453) 말하지만 傷心縱說今宵後약속처럼 만 겁 동안 다시 돌아온다네454) 如約重回萬劫間아직 풀지 못한 가슴 속의 많은 생각을 未了胸中多少意재잘재잘 우는 숲새에게 모두 전해보네 總傳林鳥語間關 春歸南國客登山, 人事天時共未閒.短雨輕風何太促, 淸罇絶唱却忘還.傷心縱說今宵後, 如約重回萬劫間.未了胸中多少意, 總傳林鳥語間關. 전춘일(餞春日) 봄의 마지막 날, 즉 음력 3월 그믐을 가리킨다. 마음 아프다고 봄이 가는 것을 애상하는 것이다. 약속처럼 …… 돌아온다네 지금 봄이 가지만 봄은 언제나 돌아온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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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직에게 답함 答曺仲直 영계(令季)13)가 입문(入門)하고 은혜로운 편지가 뒤따랐으니, 떨어져 지내던 차에 얼마나 가슴이 후련한지요. 하물며 어버이를 모시는 상황에 복이 더하게 되셨음을 알게 되었으니 어떠하겠습니까? 다만, "책자(冊子)를 공부하는 것은 사고(事故) 때문에 흔들렸습니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참으로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병통이니, 어찌하겠습니까? 그러나 다만 이 역시 공부를 하는 실제의 장소가 됩니다. 함께 휩쓸려 가면 참으로 안 되며, 공부를 끊어버리고 하지 않는다면 더욱 안 됩니다. 공자께서도, "행하고 나서도 여력이 있을 경우에는 학문을 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일마다 도리(道理)를 살피고, 쉽게 지나치도록 하지 말며, 다소 여지가 있음을 따라서 쓸데없는 객들을 만나는 일을 생략하고, 쓸데없는 말을 하는 것도 줄여야 합니다. 오로지 과거를 위한 책을 보려 하거든, 아침저녁으로 외우고 깊이 빠져들어 세밀하게 연구하며, 날마다 이렇게 하여 잠깐의 끊어짐도 용납해서는 안될 것이니, 그렇게 한다면 마음이 안정되고 이치가 분명해지는 경지에 가까워질 것이니, 어떠합니까? 의림(義林)은 젊어서는 뜻에 힘쓰지 않았고, 늙어서는 더욱 황폐해져서 구구하게 슬퍼하고 후회하지만 죽더라도 되돌릴 수가 없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릴 적에는 자라서 학문에 힘쓸 것을 생각하고, 늙어서는 죽을 때까지 가르침에 힘쓸 것을 생각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비록 죽음을 것을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을 가르쳐주지 못하였습니다. 간절히 바라건대, 여러 군자들은 어찌하여 장성한 뒤에 앞으로 나아갈 만리 길의 계획을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까? 앞서 가던 수레가 엎어지면 뒤에 오던 수레의 본보기가 되는 것이니, 부디 힘쓰도록 해주십시오. 令季入門。惠函隨之。離索之餘何等慰豁矧審侍省增祉者乎。但冊子功夫。爲事故撓奪云者。此固衆人通患。奈何。然只此便是用功實地也。與之俱往。固不可。絶之不爲。尤不可。孔子不曰行有餘力。則以學文乎。事事看得道理。不令容易放過。隨其多少暇隙。省見得閑人客省說得閒言語。惟將見課文字。夙夜諷誦。沈潛細繹。逐日似此。無容間斷。則庶幾心定而理明矣。如何。義林少不勵志。老益荒廢區區悲悔。有死莫追。孔子曰。幼思其長則務學。老思其死則務敎。吾雖思死。而無以爲敎於人。切願諸君子獨不思長而爲前程萬里之計乎。前車之覆。後車之鑑。勉之勉之。 영계(令季) 상대방의 아우를 높여 부르는 칭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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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사증에게 답함 答洪士拯 뜻밖에 한 폭의 서신을 받게 되니, 감사한 마음을 무엇에 비유하겠습니까. 하물며 서신에 담긴 말과 뜻이 모두 지극하여 형식과 실질을 겸비하였으며, 또한 별지(別紙)에 적힌 수십 개의 조항이 모두 스스로 깊이 탐구하여 자세히 풀어내는 가운데에서 나왔으니, 근래 일상생활을 하는 중에도 세밀하게 힘써 조예가 깊어졌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구구하게 위로가 되어 기쁘니, 어찌 남의 일처럼 느끼겠습니까. 다만 여러 조목 가운데, 구두【句讀】를 말함에 자질구레한 뜻은 많고, 핵심을 논설할 때는 중요한 뜻은 적으니 이는 참으로 알지 못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학문은 채찍질하여 내면으로 가까이하여 자기 몸에 붙게 하여야 한다."112)라고 하였는데, 어찌 이를 말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을 신은 채 발바닥을 긁고, 궤만 사고 구슬은 돌려주는 격113)이니, 깊이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질문】'존심(存心)'이란 마음을 잡아 보존하고 잃어버린 것을 찾는 일이니, 이것은 배우는 자들이 처음부터 힘써야 할 곳이고, '진심(盡心)'이란 공부의 가장 지극한 경지인 것입니까?【대답】'마음을 다하여 성(性)을 안다'는 것은 아는 것의 일이고, '마음을 보존하여 성을 기르는 것'은 실행하는 일입니다. 아는 것에는 다소 여러 가지가 있고, 실행하는 것에도 다소 여러 가지가 있으니, 앎이 진보할수록 행실에 힘이 더하게 되고, 힘써 행할수록 앎이 더욱 진보하게 됩니다. 그러니 본심을 잃지 않도록 보존하고 기르는 것【存養】이 초학(初學)이 된다고 하고, 마음을 다하는 것【盡心】이 가장 지극한 것이라고 일괄적으로 논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질문】"명(命)이 아닌 것이 없다."114)라는 말에서, '명'은 진씨(陳氏)는 '기(氣)'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막비(莫非)' 두 글자는 마땅히 정명(正命)과 합치되는 듯한데, 정명이 아니라면 어떻게 온전히 기(氣)를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대답】명(命)은 기(氣)에서 나오는 것이 있고 이(理)에서 나오는 것이 있는데, 이에서 나온 것은 진실로 기를 띠고 있는 것으로는 볼 수 없고, 기에서 나온 것은 진실로 그 이치가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질문】《맹자(孟子)》에, "만물의 이치가 모두 내 몸 안에 갖추어져 있으니, 자신의 몸을 돌이켜 보아 참되다면 이보다 더 큰 즐거움이 없다."115)라고 하였는데 이는 윗 글에 나온 '진심(盡心)'의 공효(功效)일 것입니다.【대답】만물이 다 나에게 갖추어져 있음을 아는 것이 바로 마음을 다하여 본성을 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을 돌이켜 보아 참되다는 것이 바로 마음을 보존하고 본성을 기르는 것입니다.【질문】"남과 같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116)라고 말한 부분은, 수오지심(羞惡之心)이니,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어짊과 능함을 보고 자신의 불능을 생각하면, 어느 누가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겠습니까? 다만 저의 병통은 이러한 마음이 단지 잠깐씩만 있다가 잠깐 사이에 사라져서 확충(擴充)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대답】이미 남과 같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였다면, 또 성인(聖人)과 같지 못함을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니, 이것이 확충하는 방법입니다.【질문】"패자(覇者)의 백성은.……"117)이라고 한 부분에서, 먼저 패도(覇道)를 말한 뒤 왕도(王道)에 이른 것은 어째서입니까? 음식으로 비유해 보자면, 패도는 입에 맞는 육류와 같아서, 오래도록 먹으면 물리는 느낌이 있으나, 왕도는 숙속(菽粟)이 입에 들어오는 것과 같아서 평이하고 담백하여 별다른 맛이 있지는 않지만, 오래도록 먹어도 물리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대답】말은 본디 중요한 것을 먼저 말하고 가벼운 것을 뒤에 말하는 경우가 있으며, 또한 가벼운 것을 먼저 말하고 중요한 것을 뒤에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물며 다음 글에서 진술한 바와 같이 왕자(王者)의 일이 아님이 없음에 있어서는 어떠하겠습니까? 만약 이를 음식으로 비유한다면, 왕자는 굶주린 사람을 보면, 애처로워하는 마음이 있어 음식을 줄 것입니다. 패자(覇者)는 굶주린 사람을 보면 명예를 얻고자 하는 마음에 음식을 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감응한 것과 감응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질문】"선정(善政)이 선교(善敎)만 못하다.……"118)라고 한 부분에서, 선정이 세워진 이후에 선교가 행해질 수 있는 것이니, 만약 선교가 행해진 이후에는, 선정을 베풀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맹자가 정사를 먼저 말한 이후에 가르침을 말씀하신 것인지요?【대답】만약, "선정이 세워진 이후에 선교를 행한다."고 말하면 괜찮지만, 만약, "선교가 행해진 이후에는 선정을 베풀 필요가 없다."고 말하면 불가합니다. 그러므로 요순시대에 화목해진 것119)과 성왕과 강왕의 시대에 형벌을 쓰지 않은 이후120)로 다시는 베풀 만한 정사가 없었던 것입니까?【질문】주자(朱子)가 말하기를, "이 몸은 단지 한 개의 몸통이니, 안과 밖으로 천지 음양의 기(氣)가 아님이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몸통만 유독 천지 음양의 기가 아닌 것인지요?【대답】몸통은 음양이 모이는 곳이요, 안과 밖은 음양이 흐르는 곳입니다.【질문】"마음에는 출입이 있다.……"라고 한 것은 비유하자면, 화로에 한 점의 불씨가 숨어 있는데, 불씨가 다해 갈 때 바람을 불어주면 다시 환해지는 것과 같습니다.【대답】출입한다는 것은 곧 존망(存亡)의 뜻이니, 화롯불에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질문】하나의 이치가 하늘에 있어, 원(元)·형(亨)·이(利)·정(貞)이 되고, 사람에게 있어서는 인(仁)·의(義)·예(禮)·지(智)가 됩니다. 그러나 천지의 운용(運用)에는 질서가 있으나,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대답】하늘의 운행에는 질서가 있으나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은, 곧 분수처(分殊處)가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의 생각이 생겨남에 사계절의 질서가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습니다.【질문】구사(九思)121)는 보고 듣는 것을 먼저 하니, 앎의 차원에서 말한 것이고, 구용(九容)122)은 손과 발로 행동을 먼저 하니, 실천의 차원에서 말한 것인지요?【대답】옳은 듯합니다.【질문】천지가 만물을 생성하게 하고, 성인이 모든 일에 응하는 것이 다 하나의 이치입니다. 그러나 성인은 다만 사물에 응할 뿐 만물을 생성하지는 않고, 천지는 다만 만물을 생성할 뿐 지나친 것을 억제하고 모자란 것을 보충하여 조화를 이루도록 하지는 않으니, 반드시 하늘과 인간이 상수(相須)한 뒤에야 도리(道理)에 흠결이 되는 부분이 없지 않겠습니까?【대답】이 단락은 매우 좋습니다.【질문】무릇 '치지(致知)'를 단지 성정(情性)에서 구한다면 간략함을 힘쓰는 것이 심한 것 같고, 단지 만물에서 구한다면 이 또한 넘침에 힘쓴 것이 심한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정자(程子)는, "먼저 사단(四端)에서 구하라."라고 하였고 또,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모름지기 살펴야 한다.……"123)라고 말한 것입니까?【대답】이른바, "체(體)와 용(用)을 모두 거론하고 사물과 자신을 모두 다한다."는 것은 '치지(致知)'에서 또한 볼 수 있을 것입니다.【질문】정자(程子)가 어떤 이의 물음에 답하기를, "성인의 말씀은 절로 가까운 곳에 있다가, 절로 먼 곳에 있다.……"124)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멀고 가까움이 두 가지 일인데, 가까운 곳에 있어서는 억지로 파낸다고 깊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그런 것입니까? 무릇 한 가지 일에는 가까움이 있고 멂이 있으니, 깨끗이 쓸어 청소하고 손님을 응대하는 것이 지극히 비근하지만 스스로 그렇게 되는 이치는 지극히 먼 것이 아니겠습니까?【대답】정자가 여기서 멀고 가까움을 이야기 한 것은, 각 조(條)에서 이야기한 것이니, 땅과 같이 가깝고 하늘처럼 멀다는 말과는 같지 않은 듯합니다.【질문】정자가 말하기를, "자신으로부터 남에게 미치는 것을 '인(仁)'이라고 하고, 자신을 미루어 사물에 미치는 것은 '서(恕)'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이(以)'라는 글자에도 또한 미룬다【推】는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대답】하늘의 도는 변화하여 각기 성(性)과 명(命)을 바르게 하니, 이는 천지의 자연스러운 추이입니다. 하나의 이치가 혼연하여 널리 응하고 세세히 들어맞으니, 이는 성인의 자연스러운 추이입니다.【질문】형이상과 형이하의 뜻에 대해 제가 어리석고 밝지 못하니, 원컨대 한 문장으로 상하의 분별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대답】【형이상과 형이하의】 상과 하는 형체가 나타나는 상하가 아니니, 바로 이 '형(形)' 한 글자는, 도기(道器)125)의 경계가 이와 같음을 말한 것입니다.【질문】무극(無極)으로 성(性)을 말하고, 태극(太極)으로 심(心)을 말하니, 고요한 가운데 조짐이 아닌 것이 없음이 무극이요, 유행(流行)하여 방체(方體)가 있는 것이 태극입니다.【대답】무극과 태극은 단지 하나의 이치로, 마음에 갖추어진 것입니다. 장차 무극이 도성(道性)을 부르거나 장차 태극이 도심(道心)을 부를 수 없으니, 이는 무극과 태극의 뜻을 알지 못하고 아울러 마음과 본성의 분별도 역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질문】항상 온후한 생각을 보존하면 자연히 환히 드러날 수 있게 되고, 자연히 참열(慘烈)하게 되며, 자연히 수렴할 수 있게 됩니다. 세 가지 가운데 온화함이 환히 드러나게 되면 쉽게 볼 수 있는데, 만약 참열(慘烈)·강단(剛斷)·수렴(收斂)과 같은 경지에 이르게 되면 흔적이 없어 끝내 보려고 해도 볼 수 없게 될 것입니다.【대답】춘하추동(春夏秋冬)의 계절을 보면, 각자 하나씩 그 시기가 있으니, 봄에 생겨나는 기운이 아닌 것이 없으면서 그 가운데 운행하니 이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질문】음(陰)이 구괘(姤卦)에서 생겨나 곤괘(坤卦)에 이르러 순음(純陰)이 됩니다. 양(陽)은 복괘(復卦)에서 생겨나 건괘(乾卦)에 이르러 순양(純陽)이 됩니다. 양의 극열(極熱)하고 홍염(洪炎)한 기운이 순양월(純陽月)126)에 있게 되면 반대로 양이 쇠하고 음이 생겨나는 때가 되니, 이것은 어떤 이치인지요? 음 또한 그러합니까?【대답】미세한 양의 기운이 아래에서부터 생겨나면, 궁음(窮陰)127)이 위에서 다하게 되고, 미세한 음의 기운이 안에서부터 생겨나면 항양(亢陽)128)이 밖으로 타오릅니다. 이러한 까닭에 아교가 꺾이고 손가락이 얼어 떨어지는 추위와129) 쇳덩이가 흐르고 돌이 녹는 열기는 대부분 동지(冬至)와 하지(夏至) 이후에 생겨나는 것입니다.【질문】《근사록(近思錄)》의 주(註)에 의하면, "노심초사하며 억지로 통하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는데, 초학자에 있어서 어찌 노심초사하지 않고서 자연히 통철(洞澈)하게 되기를 앉아서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생각하고 생각하되, 또 거듭 생각해야 한다."130)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대답】이 말은 전적으로 힘써 고심하고 탐색하되 함양(涵養)에 힘쓰지 않는 자를 감발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함양이 무르익으면 독서(讀書)와 궁리(窮理)에 모두 힘을 쓰기 쉬워질 것입니다.【질문】《근사록(近思錄)》에서, "마음을 침잠하여 묵묵히 생각하라."131)라고 하였는데, 억지로 마음이 침잠하여 묵묵히 생각하고자 하더라도 잡스럽게 어지럽고 요란스러운 마음이 머리를 내밀어 일정함이 없습니다. 대개 공부를 시작할 때, 먼저 먼저 의관을 가다듬고 용모를 바르게 한 뒤에, 오래도록 느슨해지지 않는다면, 어느 날 절로 묵묵히 생각하는 경지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대답】이것이 언제나 마음을 불러 일깨운다는 말이 있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이것만 믿고 궁리(窮理)하는 공부에 힘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랫 부분의 문장에 담긴 뜻은 약간 이포새(伊蒲塞)132)의 기미가 보입니다.【질문】사람 마음의 어리석고 막힌 부분을 무심(無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정자가 말한 '무심'은 그저 사심(私心)이 없는 것을 말한 것일 뿐입니다.【대답】비록 어둡고 막힘이 극에 달하였더라도 본심(本心)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 그러므로 정자가 '무심'은 불가하다고 여긴 것은 이러한 뜻이 아닙니다.【질문】《근사록(近思錄)》에서 말하기를, "사람의 성(性)은 본래 선하니, 순리대로 나아가면 본심 또한 어렵지 않다.……"라고 하였습니다. 다만 어리석은 저의 생각에 내면에 기품(氣稟)의 구속됨이 있고, 밖으로 사물에 얽매이는 폐단이 있으면, 매번 순리대로 나아가면 어려움이 없다는 구절을 외우며 자신에게서 징험해 보이고자 한들, 제지당하고 모순될 것이니, 어떻게 해야 어렵지 않은 공부가 가능하겠습니까?【대답】앎이 참되지 않기 때문에 항상 그 어려움을 괴롭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앎은 창졸간에 분별할 수 없는 것이니 어찌 참된 앎을 기다리면서 힘써 행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다만 아는 바를 따르되 지극히 어려운 공부에 이르게 된다면 점차 어렵지 않은 효험이 나타날 것입니다.【질문】사람의 법도를 세우는 것【立人極】133)은 반드시 정(靜)을 주로 삼아야 하니, 염려되는 것은 이것이 회암부자(晦庵夫子 주희(朱熹))의 말씀인데 다른 날 육씨(陸氏 육구연(陸九淵))의 주정(主靜)을 나무란 것은 어째서입니까? '정'이라는 한 글자에 두 가지 뜻이 있는지 몰랐던 것입니까?【대답】정을 주로 한다는 것은 주자(周子 (周敦頤))의 말이지 상산(象山 (陸九淵))의 말이 아니니, 상산의 학문은 정을 주로 한다는 말과 매우 다릅니다.【질문】《중용》 「귀신장(鬼神章)」의 주에 이르기를,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마음이 기에 도달하게 된다."라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때에는 천지의 기와 더불어 서로 접속(接續)되지 않아서 끊어짐이 있는 것입니까?【대답】"하나이기 때문에 신묘하다."134)라고 하였으니 사람의 몸에서 사체(四體)와 같으니 사물과 닿으면 느끼지 않음이 없으니,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고요할 때 만약 한 몸이 아니라면, 움직일 때 어찌 능히 서로 느낌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질문】우진(祐鎭)135)은, "기질(氣質)이 비록 다르더라도 성(性)은 본디 다르지 않다."라고 하였는데, 승환(承渙)은, "본연의 성(性)은 총명하고 밝으나, 기질(氣質)의 성(性)은 맑음과 혼탁, 순수와 잡됨이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理)는 본디 혼연하여 잡됨이 없으나, 형(形)과 기(氣)의 가운데로 떨어지게 되면 선악의 편벽되어 다름이 생기는 것입니다. 만약 이를 같다고 한다면, 사람이 태어난 측면을 가리켜 설명하는 것이니 어떠합니까? 우진은, "성은 기질에 있어서 물이 그릇에 담긴 것과 같다."라고 하였는데, 어찌 그릇이 더러워진 것을 가지고 물 또한 탁하다고 하겠습니까?【대답】성(性)은 본디 두 가지가 아니나 기질(氣質) 속으로 들어가면, 단지 이(理)만을 가리켜서 말한 것은 본연의 성(性)이고, 기질을 겸하여 말한 것은 기질(氣質)의 성(性)이 됩니다. 총명하고 밝음을 본연의 성으로 삼으면, 이는 곧 심(心)을 성(性)으로 인식한 것입니다. 맑고 혼탁하며 순수하고 섞인 것이 기질의 성이 되니, 이것이 바로 기를 불러 이(理)를 세운다는 것입니다. 또 이르기를, "모두가 사람이 태어난 측면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곧 사람이 태어난 이후에는 다시는 본연의 성이 없는 것입니까? 사증(士拯)의 말은 구절마다 막히는 부분이 있으니, 문녕(文寧)의 말이 조금 낫습니다. 그러나 그릇이 더러워진 것은 아니니 물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질문】마음은 변할 수 있으나 형체는 변할 수 없다는 뜻을 논하였는데, 우진(祐鎭)은, "우리의 몸이 본래 천지에서 난 것이므로, 우리의 마음이 사계절에 통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천지는 하나의 빈껍데기요, 사계절은 하나의 도리(道理)이니, 하늘과 땅이 서로 영원히 바뀌지 않고, 사시(四時)는 1년 동안 변화합니다. 승원(承源)은, "마음이 물과 불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변할 수 있고, 형체는 나무와 돌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변할 수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승환(承渙)은, "매달아 놓는 거울이 진흙에 묻혀있는 것과 같으니 거울을 닦아서 연마할 수 있으나, 그 갑(匣)도 변화할 수 있는 것입니까?"라고 했는데, 마음은 빛과 같고, 형체는 갑과 같은 것입니다.【대답】형체는 국한되어 정해져 있으니 변할 수 없고, 심체(心體)는 허령(虛靈)하여 변할 수 있습니다. 대개 사물의 이치가 그러합니다. 그러나 학문에 힘씀이 지극하면, 형체 또한 바꿀 수 있으니, 이른바 수면앙배(粹面盎背)136)요, 이른바 용모와 자발(髭髮)137)이 평소보다 배로 많다는 것은 변화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문녕(文寧)의 말은 타당하지 못한 듯하니 어찌 천지를 빈껍데기라 하고 사계절을 도리라 하는 것입니까? 마음은 비유하면 천지의 주재(主宰)요, 몸은 비유하자면 천지의 형체입니다. 윤심(允深)의 말이 무리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마땅히 말하기를, "마음은 오행의 정영(精英)인 까닭에 변할 수 있고, 몸은 오행의 체질(體質)이니 변할 수 없다."라고 해야 합니다. 만약 하나의 몸을 오행과 짝짓는다면, 흙과 돌이 뼈와 피부요, 기와 혈액은 물과 불입니다. 사증(士拯)이 말한, "거울의 빛은 문질러 닦을 수 있지만, 갑(匣)은 바꿀 수 없다."는 이 비유는 매우 정당합니다. 그러나 줄로 갈아내고, 옻칠하여 윤이 나게 하면 갑 또한 변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니,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질문】"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내면을 곧게 하고, 의로운 마음을 가지고 외면을 방정하게 한다."138)는 구절을 논함에 승환(承渙)은, "'직(直)'은 스스로를 속임이 없는 것이고, '방(方)'은 사물마다 각기 그 마땅히 구분하여 이른 것을 칭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우진(祐鎭)은, "'직'이란 근원을 함양하는 공부라고 하였고, '방'은 마땅히 해야 하는 지선(至善)을 얻는 곳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승원(承源)은, "터럭만큼도 사곡(邪曲)이 없어야 '직'이라 하고, 오로지 일의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는 곳을 '방(方)'이라고 한다."라고 하였습니다.【대답】스스로 속임이 없는 것이 방미(防微)139)이니, 기미를 아는 공부를 하여 이로써 마땅히 내면을 곧게 하려는 뜻은 잘못되었습니다. 문녕(文寧)이 이른바 근원을 함양하는 것과 윤심(允深)이 이른바 터럭만큼도 사곡이 없다는 말도 비슷합니다. 그러나 혹 이전 사람들이 이미 이루어낸 말에 빠지고, 혹은 임시로 안배함이 있으니 모두 실질적인 견해는 아닙니다. 그러니 모름지기 한 번 크게 헤아려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질문】《홍범구주(洪範九疇)》에서 첫째 조목으로 5행을 논한 부분은, 당나라 공씨(孔氏)의 주(註)에서, "'윤하(潤下)'부터 '종혁(從革)'까지140)는 모두 성(性)을 말한 것인데, 토가 오행을 겸하여 정해진 위치가 없고, 완성된 성질이 없다.……"라고 하였는데, 승환(承渙)은, "'윤하(潤下)'와 '염상(炎上)', '곡직(曲直)'과 '종혁(從革)'141)은 오행이 나타나 이루어진 체(體)이니, 곧 체를 가리켜 성(性)이라고 하면 가능하겠습니까?"라고 하였는데, 제 생각에는 수(水)의 성질은 차고, 화(火)의 성질은 뜨거우며, 목(木)의 성질은 부드럽고, 금(金)의 성질은 강한데, 토(土)도 오행의 하나인데 어찌 홀로 성질이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승원(承源)이 말하기를, "공씨(孔氏)의 설은 그 본연을 가리킨 것입니다.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물의 본연이요, 위로 타오르는 것은 불의 본연이며, 굽거나 곧아지며 형태가 변화하는 것은 목과 금의 본연입니다. 토는 네 가지의 가운데에 자리하여 그 성질을 따라서 성(性)이 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우진(祐鎭)은, "네 가지가 그렇게 되는 이유를 일러 성(性)이라고 한다면 가능합니다. 그러나 눈앞에 드러난 당연한 바를 일러 성(性)이라고 이르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하늘에 있어서는 오행(五行)은 단지 이(理)일 뿐이지만, 땅에서는 오행은 기(氣)가 됩니다. 이(理)는 보기 어렵고, 기(氣)는 보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원형(元亨)은 보기 어렵고, 봄과 여름은 쉽게 보이는 것입니다. 네 가지는 기(氣)가 쉽게 보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토는 덕을 말하고 성을 말한 것이 아니니, 본래 그 정해진 위치가 없고, 완성된 성이 없기 때문입니다.【대답】"체(體)를 가리켜 성(性)이라고 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라는 말을 보면, 사증(士拯)이 성(性)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은 단지 이 기(氣)의 그러지 않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만약에 이러한 성이 없다면 나무가 어찌하여 곡직(曲直)이 있고, 물이 어떻게 아래로 내려가겠습니까? 이루어진 성이 없는 것이지, 성이 없다는 것을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토의 본성이 '신(信)'이라면, 단지 진실이 인(仁)이 되고 진실이 의(義)가 되는 것이니, 그렇다면 '신(信)'이 인의(仁義) 위에 있는 것이고 예지(禮智) 또한 그러하니, 이는 이른바 이루어진 성이 없는 것입니다. 윤심(允深)이 이른바, "본연지성(本然之性)."이라는 것은 아마도 반드시 이처럼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천하의 만물은 본성 외에도 더하여 어떠한 성이 있다는 것이니, 단지 토(土)가 사행(四行)에 머무르며 그 성질을 따라서 성(性)을 삼는다는 말이 좋은 듯합니다. 문녕(文寧)은, "그렇게 되는 이유가 성(性)이요, 소당연(所當然)은 성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소당연은 어떤 물건입니까? 또, 오행(五行)이 하늘에 있으면 이(理)요, 땅에 있으면 기(氣)라는 것 또한 온당치 않습니다. 어찌 천지를 하나의 이(理)와 하나의 기(氣)로 구별할 수 있겠습니까? 하단에서 말한, "이(理)는 보기 어렵고, 기(氣)는 보기 쉽다."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진실로 옳습니다. 이로써 생각해본다면 보기 어려운이(理)가 쉽게 볼 수 있는 기(氣)에서 벗어나지 않음을 알 수 있으니 어째서 나귀를 타고 나귀를 찾겠습니까.142) 一幅書。獲之不意。感感何喩。況其辭義俱到。華實兼至。又有別紙數十條。無非自沈索細繹中出來。可見近日用功之密。造詣之深也。區區慰悅。曷異在己。但於諸條中。說句讀零碎義多。說肯緊要切義少。此固不可不知也。程子曰學要鞭辟近裏。着己而已者。豈不謂是耶。隔靴而爬癢買櫝而還珠。可戒可戒。存心卽操存求放之事。是學者初用力處。盡心則工夫極至地位否。盡心知性。是知之之事。存心養性是行之之事。知有多少般數。行亦有多少般數。知之進則行益力。行之力則知益進。不可槪以存養爲初學。盡心爲極至也。莫非命。此命字。陳氏謂氣。竊恐莫非二字。似當合正命。非正命。安可謂全指氣乎。命有出於氣者。有出於理者。出於理者。固不可帶氣看。出於氣者。固不可謂無其理也。萬物備我。反身而誠。樂莫大焉。便是上文盡心功效。知萬物備我。是盡心知性也。反身而誠。是存心養性也。不恥不若人云云。羞惡之心。人所同有。見人之賢能。思吾之不能。孰無恥之之心哉。但吾病痛。只在乍存乍亡不能擴充耳。旣恥不若人。則不若聖人。亦吾所當恥也。此擴充之方也。覇者之民云云。先言覇而後及王道。何也。比之飮食。則覇道如芻豢之悅口。久則有厭色。王道如菽粟之八口。平平淡淡。非別有異味。久久不厭。言固有先重而後輕者。亦有先輕而後重者。況下文所陳。無非王者之事耶。若以飮食比之。則王者見人之飢。有哀矜之心。而予之食焉。覇者見人之飢。有要譽之心。而予之食焉。則其人之感與不感。可以知矣。善政不如善敎云云。善政立而後。善敎可行。若善敎行而後。善政無足施矣。故孟子先言政而後言敎耶。若曰善政立而後。善敎行則可。若曰善敎行而後。善政無足施則不可。然則唐虞時雍成。康刑措之後。更無政可施歟。朱子曰。此身只是箇軀殼。內外無非天地陰陽之氣。然則軀殼獨非天地陰陽之氣耶。軀殼是陰陽團聚處。內外是陰陽流行處。心有出入云云。譬如爐有一點火隱伏。若滅吹之。則復光明。出入卽存亡之義。爐火之譬得矣。一理在天。爲元亨利貞。在人爲仁義禮智。然天地運用有序。而人則不然。天運有序。而人則不然者。此便是分殊處。然一念之發。四時之序。無不具焉。九思先視聽。知上說。九容先手足。行上說否。恐得之。天地之生萬物。聖人之應萬事。便是一理。然聖人只應物。而未生物。天地只生物。而不裁成輔相。必天人相須然后。道理無欠缺處否。此段甚好。凡致知。但求之情性。則似涉務約。只求之萬物。則又涉務泛。故程子以爲先求四端之間。又言一草一木。須是察云耶。所謂體用兼擧。物我兩盡者。於致知。亦可見。程子答或問曰。聖人之言。自有近處。自有遠處云。此言遠近爲二事。而於近處。不可强要鑿得深遠也耶。凡一事上。有近有遠。如灑掃應對。雖至近。而其所以然之理。則非至遠耶。程子此言遠近。是各條說。與近如地遠如天之語。恐不同。程子曰。以己及人。仁也。推己及物。恕也。然以字。亦有推去底意。乾道變化。各正性命。是天地自然之推也。一理渾然。泛應曲當。是聖人自然之推也。形而上形而下之義。小子昏愚未瑩。願下一言。以示上下之分。上下非有形底上下。是就一形字。言道器界至如此。以無極言性。以太極言心。則寂然無兆眹者。無極。流行有方體者。太極也。無極太極。只是一理。而具於心者。不可將無極喚道性。將太極喚道心。此不惟不識無極太極之旨。兼亦不識心性之分。常存得溫厚意思。便自然會宣著。自然會慘烈。自然會收斂。三者之中。溫和之爲宣著。可易見。至若慘烈剛斷收斂。無痕迹。終看不出。看春夏秋冬。各一其時。而無非春生之氣。行乎其中。則可以識此矣。陰生於姤。至於坤。純陰也。陽生於復。至於乾。純陽也。陽之極熱洪炎。當在純陽之月。而反在於陽衰陰生之時。何理也。陰亦然也。微陽下生。窮陰上極。微陰內生。亢陽外熾。此所以折膠墮指之寒。流金爍石之熱。多在於冬至夏至之後也。近思錄註曰。不可勞心極慮而强通。其在初學。豈可不勞心極慮而坐待自然洞澈耶。然則思之思之。又重思之。是何意耶。此言爲專務窮索。而不務涵養者發也。涵養熟則讀書窮理。皆易爲力近思錄心潛黙識疆欲潛心黙料。則雜亂紛擾之心。闖發無常。蓋下手之初。先整衣冠正容貌。久久不弛。他日自當有黙識境界矣。此所以有常常喚醒之語。然不可恃此而不務窮理之功。下文語意。些有伊蒲塞氣味。人心之昏愚蔽塞處。不可謂無心。故程子說無心只當云。無私心也。雖昏蔽之極。不可謂無本心。然程子以無心爲不可者。不是此意。近思錄曰。性本善。循理而行。本亦不難云云。顧此愚蠢內有氣稟之拘。外有物累之蔽。每誦循理不難之語。而竊欲驗之於己。則掣肘矛盾。何如可以得不難功夫耶。知不眞。故常苦其難。然知之眞。非倉卒可辦。豈可等待眞知。而不力行乎。但隨所知。而致極難之功。漸見不難之效。立人極者。必主乎靜。恐是晦庵夫子之言。而他日譏陸氏之主靜何也。未知一靜字。有二義否。主靜是周子語。非象山語。象山之學。與主靜之語。大煞不同。鬼神章註云。人心才動。必達於氣。然則人心不動之時。便與天地之氣。不相接續。而有間斷歟。一故神。如人身四體。觸之而無不覺者。一體故也。靜時若非一體。則動時。安能相感也。祐鎭以爲氣質雖不同。而性則固不異。承渙以爲本然之性。聰明睿智也。氣質之性。淸濁粹駁也理。固渾然無雜。而才墮形氣之中。有善惡偏窒之殊矣。若謂之同。則指人生以上說。如何。祐鎭以爲性之在於氣質。如水之在器。豈以器之汚濁。而謂水亦汚濁耶。性本無二。就氣質中。單指理言。則本然之性也。兼氣質言。則氣質之性也。以聰明睿智爲本然之性。則是認心爲性也。以淸濁粹駁爲氣質之性。則是喚氣做理也。又謂同是指人生以上說。則人生以後。更無本然之性耶。士拯之言。節節有礙。而文寧之言。稍長。然亦不是器之汚濁。自無與於水也。論心可變。而形體不可變之義。祐鎭以爲吾身本乎天地。吾心通乎四時。天地一箇空殼。四時一箇道理。天地互萬古不易。四時周一歲變化也。承源以爲心水火所成。故可變。形體木石所成。故不可變也。承渙以爲懸鏡埋塵。光可磨也。匣可變乎。心如光形體如匣。形體局定。故不可變。心體虛靈。故可以變。蓋物理然也。然學問之力至。則形體亦可以變。所謂粹面盎背。所謂容貌髭髮。倍勝平昔者。其非變移者耶。文寧之言恐未穩。豈以天地爲空殼。四時爲道理耶。心比則天地之主宰也。身比則天地之形體也。允深之言。非曰無理。然當曰心是五行之精英。故可變。身是五行之體質。故不可變也。若以一身配五行。則土石是骨肉也。氣血是水火也。士拯之言光可磨。匣不可變。此一節比喩。極正當。然鑢以磨之。漆以潤之。則匣亦可變。如何如何。論敬以直內。義以方外。承渙以爲直是毋自欺也。方是事事物物。各稱其當之分謂。祐鎭以爲直是涵養本源工夫。方是合做得至善處。承源以爲無一毫邪曲。便是直。惟事是是非非處。便是方。毋自欺。是防微知幾底功夫。欲以此當直內之義。則誤矣。文寧所謂涵養本源。允深所謂無一毫邪曲之說。似矣。然或陷前人已成說。或有臨時安排的。皆非實見。更須一番大思量。如何。論洪範一五行。唐孔氏註以爲自潤下至從革。皆以性言。土兼五行。無正位無成性云云之義。承渙以爲潤下炎上曲直從革。是五行見成之體。則指體爲性可乎。竊以爲水之性寒。火之性熱。木之性柔。金之性剛。而土亦五行之一。則豈可謂獨無其性乎。承源以爲孔氏之說指其本然也。潤下水之本然。炎上火之本然。曲直從革木金之本然也。土寓四者中。因其性而性焉。祐鎭以爲四者之所以然。謂之性則可也。其於眼前顯露所當然。謂之性可乎。在天之五行。只是理在地之五行。便是氣理難見。氣易見。故元亨難見。春夏易見。四者非氣之易見耶。土言德而不言性。本無正位。無成性故也。觀指體爲性可乎之語。可知士拯不識性。性只是此氣之不得不然處也。如無此性。木何以曲直。水何以潤下乎。無成性。非是無性之謂也。如土之性信也。而只是眞實爲仁。眞實爲義。則信在仁義上。在禮智亦然。此所謂無成性也。允深所謂本然之性者。恐不必如此說。不然。天下之物。本性之外。更有何性。但土寓四行。因其性而性焉之說。似好文寧以所以然爲性。以所當然爲非性。然則。所當然爲何物耶。又以五行之在天者爲理。在地者爲氣。此亦未安。安有以天地爲一理一氣之別耶。下段有曰理難見氣易見。此語誠是。以此思惟。可知難見之理。不外於易見之氣。何其騎驢而覓驢也。 정자(程子)가 …… 하여야 한다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 5장의 주(註)에 나오는 정자의 말이다. 신 신은 채 …… 돌려주는 격 궤만 사고 구슬은 돌려준다는 것은, 근본은 모르고 지말(枝末)만 좇는 행위를 비유한 것이다. 춘추(春秋) 시대 정(鄭) 나라 사람이 초(楚) 나라 사람에게서 궤【櫝】를 사오면서 그 궤에 장식되어 있는 좋은 구슬들은 모두 본주인에게 돌려 주고 궤만 샀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이는 무슨 일을 하느라고 애를 쓰기는 하지만 정곡을 찌르지 못해 답답해한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명(命)이 아닌 것이 없다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에서, 맹자가 이르기를, "천명이 아닌 것이 없으나, 순하게 정명을 받아야 한다.【莫非命也, 順受其正.】"라고 하였다. 만물이 …… 큰 즐거움이 없다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나오는 구절로, "만물의 이치가 모두 내 몸 안에 갖추어져 있으니, 자기 몸을 돌이켜 보아 참되다면 이보다 더 큰 즐거움이 없다.【萬物皆備於我矣, 反身而誠, 樂莫大焉.】"라고 하였다. 남과 같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나오는 구절로, "남과 같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어느 것이 남과 같은 것이 있겠는가.【不恥不若人, 何若人有.】"라고 하였다. 패자(覇者)의 백성은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나오는 구절로, "패자의 백성은 매우 즐거워하고 왕자의 백성은 광대하여 스스로 만족한다.【覇者之民, 驩虞如也, 王者之民, 皥皥如也.】"라고 하였다. 선정(善政)이 선교(善敎)만 못하다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에 나오는 구절로, "백성의 마음을 얻는 데 있어서는, 법령 위주의 선정(善政)보다는 도덕에 입각한 선교(善敎)가 훨씬 낫다. 선정은 백성들이 두려워하게 되고 선교는 백성들이 사랑하게 되나니, 선정은 백성의 재물을 얻게 되고 선교는 백성의 마음을 얻게 된다.【善政不如善敎之得民也. 善政民畏之, 善敎民愛之, 善政得民財, 善敎得民心.】"라고 하였다. 요순시대에 화목해진 것 《서경》 「요전(堯典)」에서, "만방을 화합하여 융화하게 하시니 백성들이 아! 변하여 이에 화목해졌다.【協和萬邦, 黎民於變時雍】"라고 하였다. 성왕과 강왕의 …… 않은 이후 《사기(史記)》 「주본기(周本紀)」에서, "그러므로 성왕과 강왕의 시대에는 천하가 평안하여 형벌을 놓아두고 40여 년간 쓰지 않았다.【故成康之際, 天下安寧, 刑錯四十餘年不用.】"라고 하였다. 구사(九思) 군자가 생각하는 아홉 가지 일로, 밝게 보기를 생각하고【視思明】, 밝게 듣기를 생각하는 것【聽思聰】 등이다. 《논어(論語)》 「계씨(季氏)」에 나온다. 구용(九容) 군자가 가져야 할 아홉 가지 몸가짐을 가리킨다. 정자는 먼저 …… 살펴야 한다 《이정전서(二程遺書)》 권18에서, 정자의 제자가 아는 것을 이루는 데 먼저 사단(四端)에서 구하는 것이 어떤가를 물었을 때, 정자가 답하기를, "성정에서 구하는 것이 실로 몸에 절실하기는 하지만, 일초·일목에 모두 이치가 있으니 반드시 이것을 살펴야 한다.【求之性情, 固是切於身, 然一草一木, 皆有理須察.】"라고 하였다. 성인의 말씀은 …… 유원한 곳에 있다 《근사록(近思錄)》 권3 「치지(致知)」에 나오는 말이다. 도기(道器) 형이상(形而上)과 형이하(形而下)에 관한 철학적 범주로, 도(道)는 무형의 법칙을 가리키며, 기(器)는 유형의 사물을 가리킨다.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上」에서, "형이상을 도라 하고, 형이하를 기라 한다."라고 하였다. 순양월(純陽月) 4월을 가리킨다. 궁음(窮陰) 음기(陰氣)가 꽉 찼다는 뜻으로 겨울을 가리킨다. 항양(亢陽) 양기(陽氣)가 꽉 찼다는 뜻으로 여름을 가리키며, 매우 심한 가뭄을 뜻하기도 한다. 아교가 …… 추위와 원문은 '절교(折膠)'와 '타지(墮指)'인데 모두 극심한 추위를 가리킨다. 절교는 활의 재료인 아교가 너무 단단하게 굳어서 활이 부러지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며, 타지는 동상에 걸려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가리킨다. 생각하고 …… 생각해야 한다 《성리대전(性理大全)》 권57에서, 정이(程頤)가 관중(管仲)의 말을 인용하여, "생각하고 생각하며 또 거듭 생각할지니, 이렇게 생각을 해도 통하지 않으면 귀신이 통하게 해 줄 것인데, 이는 귀신의 힘이 아니라 정기의 극치라고 해야 할 것이다.【思之思之, 又重思之, 思之而不通, 鬼神將通之, 非鬼神之力也, 精氣之極也.】"라고 하였다. 마음을 침잠하여 묵묵히 생각하라 《근사록(近思錄)》 권3 「치지(致知)」에서, "모름지기 마음을 침잠(沈潛)하여 묵묵히 알아서 완색(玩索)하기를 오래하면 거의 스스로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須心潛黙識, 玩索久之, 庶幾自得.】"라고 하였다. 이포새(伊蒲塞) 불교(佛敎) 용어로 오계(五戒)를 받은 남자 중을 이른다. 여기에서는 상대방의 글에 불교적인 색채가 드러나므로 경계하는 내용으로 보인다. 사람의 법도를 세우는 것【立人極】 송(宋)나라의 학자 주돈이(周敦頤)가 지은 〈태극도설(太極圖說)〉에, "성인은 중정과 인의로써 정하되 정(靜)을 위주로 하여 사람의 법도를 세웠다.【聖人定之以中正仁義而主靜, 立人極焉.】"라고 하였다. 하나이기 때문에 신묘하다【一故神】 장재(張載)의 《정몽(正蒙)》 〈태화편(太和篇)〉에, "하나의 물(物)에 두 개의 체(體)가 있는 것이 기(氣)이다. 하나이기 때문에 신묘하고, 둘이기 때문에 변화한다. 이것이 천(天)이 삼(三)이 되는 이유이다.【一物兩體, 氣也. 一故神, 兩故化. 此天之所以參也.】"라고 하였다. 우진(祐鎭) 홍우진(洪祐鎭, 1868~?)이다. 자는 문녕(文寧), 호는 희암(希庵)이며 본관은 풍산(豊山)이고 능주(綾州)에 거주하였다. 정의림의 제자이다. 수면앙배(粹面盎背) 얼굴에 윤택하게 드러나고 등에 가득 차 넘친다는 말로서, 군자의 내면에 축적된 것들이 넘쳐서 몸으로 드러난 것을 말한다. 《맹자》 「진심 상」에서, "군자의 본성은 인의예지가 마음속에 뿌리하여, 그 드러나는 빛이 얼굴에 윤택하게 나타나고 등에 가득하게 나타난다.【君子所性, 仁義禮智根於心, 其生色也. 睟然見於面, 盎於背.】"라고 하였다. 자발(髭髮) 코밑수염과 머리털을 가리킨다. 공경하는 마음을 …… 방정하게 한다 《주역》 「곤괘(坤卦)」 육이(六二)에 나오는 구절이다. 방미(防微) 마음에서 생각이 일어나 막 선악(善惡)이 나뉘는 기미를 보고 방비한다는 뜻이다. '윤하(潤下)'부터 '종혁(從革)'까지 《서경》 「홍범」에서, "오행은 첫 번째는 수(水), 두 번째는 화(火), 세 번째는 목(木), 네 번째는 금(金), 다섯 번째는 토(土)이다. 수의 성질은 아래로 내려가 만물을 적셔주며, 화의 성질은 위로 타오르며, 목의 성질은 굽고 곧으며, 금의 성질은 사람의 뜻에 따라 형태가 바뀌며, 토의 덕은 이에 작물을 심고 거둔다.【五行:一曰水, 二曰火, 三曰木, 四曰金, 五曰土. 水曰潤下, 火曰炎上, 木曰曲直, 金曰從革, 土爰稼穡.】"라고 하였다. 곡직(曲直)과 종혁(從革) 곡직(曲直)은 나무가 자라는 것이 굽기도 하고 곧기도 함을 말하고, 종혁은 쇠가 사람이 만드는 대로 그대로 따라서 변할 수 있음을 말한다.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으면서도 도리어 밖에서 구하는 것을 비유한다.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지공화상대승찬(志公和尙大乘贊)〉에 "마음이 바로 부처라는 것을 알지 못하면 진실로 나귀를 타고 나귀를 찾는 것과 같다.【不解卽心卽佛 眞似騎驢覓驢】"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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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7 卷之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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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6) 書(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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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군오【재규】에게 답함 答權君五【載奎】 영남과 호남이 멀리 떨어져 막히고 어긋난 지 오래이던 차에 중간에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되었으나, 인편이 없어 답을 하지 못하였으니, 구구한 마음의 서글픔과 답답함이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겨울이 깊어지는데 경체(經體)1)는 건강하신지요. 널리 우러러 못내 그립습니다. 의림(義林)은 날로 쇠함이 심해져서 죽을 날이 멀지 않게 되었으니, 이는 곧 자연의 섭리입니다. 오직 옛 업과 묵은 뜻을 생각하면, 백 가지 가운데 하나도 이룬 것이 없고, 평생 지구(知舊)와 유종(遊從)하던 자들의 뜻을 저버린 것이 많으니, 부끄러워한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이전에 애장(艾丈 정재규(鄭載圭))의 편지에서, "어진 그대는 두문불출하고 독실하게 공부하였는데, 바야흐로 진보가 그치지 않았다.……"라고 하였습니다. 비록 세색(歲色)을 헤아리기 어려운 시절이지만, 사문(斯文)의 입장에서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2) 매번 생각하기를, 남주(南洲) 조장(趙丈 조성주(趙性宙)께서 그대를 칭찬하며, "사람이 그 옥과 같은 것이 아니라, 옥이 그 사람과 같다."라고 하셨는데, 그 딱 맞는 비유에 매우 감탄하였습니다. 한스러운 것은 갈고닦는 학문의 자리에서 만나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옛날 그대와 애산(艾山)과 함께 신안(新安)에서 모여 셋이 솥의 발처럼 둘러앉아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그대는 "주재(主宰)하는 것은 마음이고, 주재되는 것은 본성입니다.……"라고 하였는데, 《주자서(朱子書)》에 있는 글이라 하였습니다. 저는 돌아와서 《주자서》를 살펴보니, 그러한 말은 찾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한 쪽의 사람들은 마음의 영(靈)이 주재(主宰)한다고 하고, 다른 한쪽 사람들은 마음의 이치가 주재(主宰)한다고 하면서, 서로 언쟁하며 서로를 능히 받아들임이 없으니, 오직 그대가 말한 바 한 구절의 말이 가장 두루 정밀하여, 양쪽의 설을 단안(斷案)3)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말을 보고 양쪽에 주재(主宰)가 있다고 여기는데, 대개 그 뜻이 전적으로 심(心)의 이(理)가 주재라고 인식한 까닭입니다. 대개 지금 주기(主氣)의 설은 진실로 말하기에도 부족합니다. 주기(主氣)의 잘못됨을 보고 바로잡고자 하는 자는 또한 지나치게 곧게 하려는 폐해가 없지 않을 것입니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멀리 떨어져 상세하게 말하지 못합니다. 다만 우울하고 답답한 마음이 절실할 따름입니다. 그대가 외웠던 한 구절이 과연 주자(朱子)의 말씀입니까? 혹시 다른 선덕(先德)의 말씀입니까? 이 구절의 출처와 맥락에 대해 수고로움을 잊고 편지 한 통에 적어 부쳐 보여주시면 어떻겠습니까? 간절히 바랍니다. 만나 뵐 날이 아득하니 편지를 마주하여 슬픔이 더합니다. 嶺湖涯角。阻違許久。中間承惠函一度。而乏便稽謝。區區悵菀。有何可旣。未審冬令垂深。經體衛重。溯仰無任。義林衰頹日甚。去死不遠。此固理也。而惟是舊業宿志。百無一就。而以負平生知舊遊從之意者。多矣。愧恨何及。向得艾丈書。以爲賢者杜門篤學。方進未已云。雖在歲色叵測之日。而以爲斯文之地者。可謂不食矣。每念南洲趙丈稱道賢。以爲不是人如其玉。乃是玉如其人之語。而切歎其比擬稱停。恨不得源源於切磋之末也。昔年與賢及艾山會於新安。而鼎坐夜話也。賢以爲主宰者心。主宰底性云云。而謂在於朱子書。愚退而考諸朱書。姑未見其語矣。今一邊之人。以心之靈爲主宰。一邊之人以心之理爲主宰。互相齗齗。莫能相入。而惟賢所言一句語。最爲周遍精切。可以爲兩說之斷案也。或者見此語。以爲有兩主宰。蓋其意專認心之理爲主宰故也。蓋今之主氣之說。固不足言。見主氣之非。而欲矯之者。又不無過直之敝。未知賢者以爲何如。遠莫詳焉。徒切紆菀耳。未知賢所誦一句語。果是朱子語耶。或是他先德語耶。此句出處首尾。忘勞書寫一通。以付示之如何。切望切望。奉際茫然。臨紙增悵。 경체(經體) 경서를 읽는 상대방을 가리키는 말이다. 끊이지 않고 …… 것입니다 원문은 '불식(不食)'인데 이 말은, 《주역(周易)》 〈박괘(剝卦) 상구(上九)〉에서, "큰 과일은 먹히지 않는다.【碩果不食.】"라는 말에서 나왔다. 이는 다섯 개의 효(爻)가 모두 음(陰)인 상태에서 맨 위의 효 하나만 양(陽)인 것을 석과(碩果)로 비유한 것으로, 하나 남은 양의 기운이 외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는 뜻이다. 단안(斷案) 원래는 옥사(獄事)의 판결(判決)에 관한 문서를 가리키는데, 이처럼 옳고 그름을 딱 잘라서 판단하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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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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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직【필승】에게 답함 答曺仲直【弼承】 오랫동안 소식이 끊겨 답답하였는데, 지금 편지 한 통을 받으니 어찌 다만 많은 재물과 같을 뿐이겠습니까? 삼가 집안 어른께서 강녕하시고, 곁에서 모시는 상황이 위중(衛重)함을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듣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다만 소공(小功)7)의 참담함은 당내(堂內)입니까? 당외(堂外)입니까? 깊은 사랑을 받았던 처지에 비통한 심정을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선조고(先祖考)의 난례(灤禮)는 과연 능히 길일을 택해 안장(安葬)하여 효성스러운 마음에 흡족하신지요? 조상을 추모하는 마음이 더욱 새로워지는 듯합니다. 이러한 일을 겪으셨지만 직접 가서 살피지 못하였으니, 부끄럽고 슬픔을 어찌 말하겠습니까. 보내주신 편지에서, "홀로 공부하는 것은 담벼락을 마주한 듯 합니다.……"라고 하였는데, 스스로 살피는 치밀함과 스스로 꾸짖는 절실함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능히 이것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학문은 생각함에 근원한다."라고 하였으니, 총명(聰明)함을 개발하고 뜻을 넓게 하여 나아가는 것은 모두 생각함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진실로 여기에서 힘을 얻을 수 있어야 하니, 어찌 홀로 공부하는 탄식과 담벼락을 마주한 듯한 근심이 있단 말입니까? 일찍이 여씨(呂氏)의 《동몽훈(童蒙訓)》에서, "오늘 한 이치를 깨닫고, 내일 한 이치를 깨닫는다."라는 말을 좋아하였는데, 초학자에게 가장 절실할 것입니다. 보여주신 한자(韓子)의 설 또한 어찌 깊이 본받을 만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문목(問目)은 제 모자란 견해로 대략 답변을 드렸으나, 결론을 내리지 마시고 거듭 여러차례 생각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맹자》 「평륙장(平陸章)」에서, "왕을 알현하는 것"8)의 '현(見)'자와 다른 장에서, "왕을 알현한다."는 '현(見)'은 모두 음을 '현(現)'으로 읽는데, 어찌하여 같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까? '선비가 제후에게 의탁하지 않는다'는 장9)과 '옛날의 군자들은 어떤 경우에 벼슬했습니까' 장10)의 두 장 모두 '주(周)'자는 궁핍한 사람을 두루 구제한다는 뜻입니다. 다만, 전자에서는 범범하게 백성을 두루 구제한다는 뜻을 말하였고, 후자에서는 다만 여러 현인의 뜻으로 말한 것입니다. "대인으로서 자취 없는 화의 경지에 들면 성인이라고 하고, 성인으로서 헤아려 알 수 없는 경지에 이르면 신인이라고 한다."는 문장에서, 이 '성(聖)'과 '신(神)'자는 성인이 나아간 지위로써 말한 것입니다. "성인이 지나가고 머무는 곳마다 신령스럽게 된다."11)는 것은 다만 공용(功用)이 밖으로 드러난 것을 말한 것이니, 이는 조금 다를 뿐입니다. "요 임금과 순 임금은 본래의 성품 그대로 행하신 분들이다.……"12)라고 한 것은 평소 인품에 이러한 세 가지가 있음을 말한 것이니, 오로지 말구(末句)에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신지(身之)'는 '자신의 몸을 돌이킨다'라는 뜻이니, '신(身)'자를 말한 것은 '반(反)'자의 뜻이 그 가운데 있고, '반'자를 말한 것은 '신'자의 뜻이 그 가운데 있으니, 반드시 구구하게 그 같고 다름을 분석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之)'와 '자(者)' 또한 크게 다름이 없을 따름입니다. 久阻悵鬱。此時一書。奚啻百朋。謹審堂候康寧。侍旁衛重。何等願聞。但小功之慘。堂內耶堂外耶。親愛隆深。悲痛何堪。先祖考灤禮。果能卜吉安兆。愜於孝思耶。追遠之感。想益如新矣。所故如是。而未能躬造相省。愧悵何道示喩獨學墻面云云。可見自省之密。自責之切。不然。安能說到此耶。程子曰。學原於思。夫開發聰明。展拓步趨。皆在於思。苟能於此得力。有何獨學之歎。墻面之憂哉。嘗愛呂氏童蒙訓。今日格一理。明日格一理之說。最切於初學也。所示韓子說。亦豈不深可法耶。問目。自以鄙見。略略奉復。勿爲歸宿。更加三思如何。平陸章見王之見。與他章見王之見。音皆作現。何謂不同耶。士之不託諸侯章。及古之君子何如則仕章。兩處周字。皆是周恤窮乏之義。但上段泛言周民之義。下文特言周賢之義。大而化之之聖。聖而不可知之神。此聖神字。以聖人所造之位而言所過所存之神特以功用之著於外者而言。此其微別耳。堯舜性之云云。此是平說人品有此三者。未見其專爲末句說起也。身之。此是反身之義。說身字。包反字義在其中。說反字。包身字義在其中。不必區區辨析其同異也。之字者字。亦且無甚同異耳。 소공(小功) 5개월 동안 입는 상복. 증조부모, 백숙조부모, 종백숙조부모, 형제의 아내, 외조부모, 외숙 등의 상이 이에 해당한다. 왕을 알현하는 것 평륙장(平陸章)은, 《맹자》 「공손추 하」에, '맹자께서 평륙으로 가시어【孟子之平陸】'로 시작하는 장을 말한다. 이 장의 끝에, '맹자께서 얼마 후에 왕을 뵈었다.【他日見於王】'라는 구절이 나온다. 선비가 제후에게 의탁하지 않는다는 장 해당 구절은 《맹자》 「만장 하(萬章 下)」에 실려 있다. 옛날의 군자들은 어떤 경우에 벼슬했습니까 해당 구절은 《맹자》 「고자 하(告子 下)」에 실려 있다. 성인이 지나가고 …… 신령스럽게 된다 《맹자》 「진심 상」에서, "성인이 지나가는 곳마다 감화를 받고, 머무는 곳마다 백성들이 신령스럽게 된다.【所過者化, 所存者神】"라고 하였다. 요 임금과 순 임금은 …… 행하신 분들이다 《맹자》 「진심 상」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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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위재206) 여중 의 〈낙요정〉 시에 차운하다 次金危齋【麗中】《樂要亭》韻 백방산207) 동쪽은 별천지이니 栢岳之東別洞天임천의 정자나무가 한 구역 둘렀네 林泉亭樹一區圓금대처럼 푸른 시내가 돌아 흐르고 回流碧澗成衿帶여러 해 된 푸른 솔이 빽빽이 섰네 密立蒼松積歲年서가에 가득한 시서에 참된 즐거움 있고 滿架詩書眞樂在뜨락을 지나는 자제에게 의방208) 전하네 趨庭蘭玉義方傳훈몽재209)가 길이 인근에 있으니 訓蒙齋舍長隣近담로210)의 유풍이 대대로 전해지네 湛老遺風世世連 栢岳之東別洞天, 林泉亭樹一區圓.回流碧澗成衿帶, 密立蒼松積歲年.滿架詩書眞樂在, 趨庭蘭玉義方傳.訓蒙齋舍長隣近, 湛老遺風世世連. 김위재(金危齋) 위재는 김여중(金麗中, 1879~1951)의 호이다. 본관은 울산(蔚山), 자는 이도(以道)이다.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 둔전 출생으로, 간재 전우의 문인이다. 저서에 《위재유고》가 있다. 백방산(柏芳山)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서마리와 쌍치면 중안리 경계에 있는 산이다. 예전에 잣나무가 많아서 붙은 이름으로 잣방산으로도 불리며, 순창군 서쪽 끝자락에 솟아 있다. 의방(義方) 집안에서 가르치는 덕의(德義)의 교훈을 말한다. 훈몽재(訓蒙齋)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1510~1560)가 1548년(명종3)에 지은 강학당으로,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 둔전리에 있다. 담로(湛老) 담재(湛齋) 김인후(金麟厚)를 높여 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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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호가 찾아와 이전에 지은 시를 보여주기에 차운하여 드리다 3수 元浩來訪, 示以前作, 次韻以呈【三首】 태산보다 높은 그대 의리 감격하니 感君高義泰山低험난한 백리 길에 벽서를 찾아왔네 百里間關訪碧棲삼월 동풍에 봄은 다하지 않았으나 三月東風春不盡천 년 북학은 도가 아주 미약해졌네 千年北學道全微누가 세계를 물처럼 맑게 하겠으며 誰將世界澄如水어찌 근심을 곤드레 취하듯 잊겠나 寧忘憂愁醉似泥한 가지 온후의 노쇠해 가는 한을250) 一種隱侯衰暮恨멀리 중천과 나란한 운수에 보태네 遠添雲樹半天齊은거해 웅크린 건 하늘이 낮아서가 아니니 屛居鞠蹐匪天低물고기는 깊은 못에 있고 새는 둥지에 있네 魚在深淵鳥在棲천지에 당연한 도리가 선함을 믿을 뿐이지 只信乾坤常理善초야에 한 몸이 미미한 것은 한탄하지 말게 莫嘆草野一身微도가 견고해 나는 끝내 돌을 뚫고자 하나니 道堅欲我終穿石세상 혼탁해 다퉈 진흙탕 젓는 저들이 밉네 世濁憎渠競掘泥한 해가 저물 때에 옥전자를 처음 만났으나 歲暮始逢玉田子연이은 산은 그래도 나란히 상대하길 바라네 連峯尙冀對相齊도는 높음을 구하지 않아도 낮지 않는데 道不求高亦不低사람들은 어찌 갈림길에서 오래 서성이나 人胡歧路久棲棲문장의 조그만 기예는 기교를 드러내지만 文章小技呈奇巧성리의 쓸데없는 얘기는 더욱 보잘것없네 性理空談轉渺微행실 힘써도 숫돌에 간 칼이란 말 듣지 못했고 勵行未聞刀出砥마음 다스림에 어떡하면 모래 거른 물처럼 할까 治心那得水澄沙묘체는 간직하여 평소에 사용할 뿐이니 妙諦只藏平日用함께 참으로 닦아 자랑하지 말길 바라네 願與眞修毋伐齊 感君高義泰山低, 百里間關訪碧棲.三月東風春不盡, 千年北學道全微.誰將世界澄如水? 寧忘憂愁醉似泥.一種隱矦衰暮恨, 遠添雲樹半天齊.屛居鞠蹐匪天低, 魚在深淵鳥在棲.只信乾坤常理善, 莫嘆草野一身微.道堅欲我終穿石, 世濁憎渠競掘泥.歲暮始逢玉田子, 連峯尙冀對相齊.道不求高亦不低, 人胡歧路久棲棲?文章小技呈奇巧, 性理空談轉渺微.勵行未聞刀出砥, 治心那得水澄沙?妙諦只藏平日用, 願與眞修毋伐齊. 은후(隱侯)의……한을 서로 늙어가는 처지라 다시 만나지 못할까 한스럽다는 말이다. '은후'는 양(梁)나라 심약(沈約)의 시호이다. 그의 〈별범안성(別范安成)〉 시에 "우리네 인생살이 젊을 적에는 헤어져도 만날 기약하기 쉬웠지. 이제 그대와 함께 노쇠해 가니 다시는 이별할 때가 아니로세. 한 잔 술 별거냐고 말하지 마소, 내일 다시 이 술잔 잡기 어렵네. 꿈속에 찾아갈 길 알지 못하니 무슨 수로 그리움을 달래보나.〔生平少年日, 分手易前期. 及爾同衰暮, 非復別離時. 勿言一尊酒, 明日難重持. 夢中不識路, 何以慰相思?〕" 하였다. 《古今詩刪 卷9 梁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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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은기 臺隱記 죽수(竹樹) 관아 남쪽 10리에 연봉(鳶峯)이 있고, 연봉 아래에 여염집이 즐비하게 있는 곳이 가승동(佳勝洞)87)이다. 연봉의 중간 허리쯤에 대(臺)가 있는데, 너비는 수십 보가 되고, 높이는 수십 길이나 된다. 구불구불 이어져 오던 골짜기가 평평하게 멈추고, 깊고 으슥한 정경이 툭 트이면서 뭇 산들이 형상을 바치고, 수많은 시내가 모여드는 이곳이 바로 정공(鄭公)의 은일처[薖軸]이다.공은 일찍부터 과거 공부를 시작하여 사조(詞藻)가 아름답고 뛰어났는데, 여러 번 향시(鄕試)를 보았으나 합격하지 못하자 빛나는 문장을 도로 거두어들이고 몸이 대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않았다. 삼을 기르고 기장을 심어 여러 식구들에게 제공했고, 경전 공부에 힘쓰고 문장을 닦아 후학들에게 응대하였으며, 본성에 맡기고 분수를 지키며 영리를 추구하거나 욕심을 부린 적이 없었다. 그러나 오직 그 뛰어난 풍도와 빼어난 자취만은 잠겨 있어도 밝게 보이고 감추어도 드러나서 사방의 선비들이 대에서 은둔하고 있는 공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 때문에 공에 대해 말할 때면 반드시 '대은(臺隱)'이라 일컬었으니, 그 지역을 일컫는 것이 그 사람을 일컫게 된 것이다.아, 사람은 진실로 한 시대에 뛰어난 사람이고, 지역도 한 지역에서 뛰어난 곳이니, 사람이 지역과 부합하고, 경계가 성정과 어울려서 서로 맞아 떨어질 수 없고, 서로 필요로 하여 빼놓을 수 없게 되었다. 백세가 지난 뒤에 이 마을을 지나면서 이 대에 임하는 자들 중에 어느 누가 백세 전에 공이 존재했음을 알지 못하겠는가. 삼봉(三峯)의 천 길 높이에서 위승경(魏升卿)의 문장을 볼 수 있고, 비수(肥水)의 백 리 굽이에서 동소남(董召南)의 의로운 행실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88) 竹樹治南十里。有鳶峯。峯之下閭閻櫛比者。是佳勝洞。峯之中腰有臺。廣可數十武。高可數十尋。逶迤而平停。窈窕而軒敞。羣峀獻狀。百川朝堂。卽鄭公薖軸也。公早業功令。詞藻藹蔚。累舉鄉解。不利禮部。回光斂輝。身不出臺外一步。藝麻種黍以供百口。劬經績文以應後學。任眞推分。無營無欲。惟其偉韻逸躅。潛昭闇章。而四方之士。無不知公之隱乎臺矣。是以語及於公。必以臺隱稱之。稱其地。所以稱其人也。嗚乎。人固一時之勝。地亦一方之勝。人與地符。境與情稱。相得而不可離。相須而不可闕。百世之下。過是洞而臨是臺者。誰不知公之在於百世之上乎。三峯千仞。可以見魏升鄕之文章。肥水百里。可以想董召南之行義。 가승동(佳勝洞) 현 전남 화순군 춘양면 가봉리(佳鳳里)로, 예전 가승동(佳勝洞) 마을의 가(佳)자와 봉무정(鳳舞亭)마을의 봉(鳳)자를 합하여 가봉리라 하였다. 삼봉(三峯)의……것이다 성당(盛唐) 시인 잠삼(岑参)은 장안(長安)에 있을 때에 〈송위승경(送魏升卿)〉을 지어 과거에 급제하고 동도(東都)로 돌아가는 위승경(魏升卿)의 문장이 삼봉(三峯)과 같다고 칭송하고, 한유(韓愈)는 〈차재동생행(差哉蕫生行)〉을 지어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회수(淮水)와 비수(淝水) 사이에서 주경야독(晝耕夜讀)하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처자식을 사랑하는 동소남(董邵南)을 칭송하였는데, 이러한 옛 일에 견주어 연봉((鳶峯)과 대(臺)를 보면 위승경처럼 뛰어난 문장과 동소남만큼이나 훌륭한 행실을 알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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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 송암 오공 정려기 孝子松庵呉公旌閭記 효자는 고(故) 임진년의 충신 증(贈) 병조 참판(兵曹參判) 휘 방한(邦翰)의 8세손으로, 세상에 충효로 알려졌다. 효자는 어려서부터 지극한 성품을 지녀 어버이에게 병환이 있으면 곧 눈물을 흘리며 음식을 먹지 않았고, 어버이가 시킨 일을 처리할 때에는 뜻을 다해 받들어 따랐다.8살 때에 들녘에 나갔다가 부친이 직접 농사짓는 모습을 보고서 무더위를 무릅쓴 채 고생하시는 것을 걱정하여 몰래 주점으로 가 술을 사서 부친에게 드리려고 하자, 술집 여인이 그의 생각에 감동하여 좋은 안주까지 함께 주고 돈을 받지 않았다.14살 때에 형과 함께 가숙(家塾)에서 독서하였는데, 하루는 형에게 말하기를, "집이 이렇게 가난하여 늙으신 부모께서 몸소 힘든 일을 하시니, 이것이 어찌 사람의 자식으로서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제가 응당 직접 집안일을 주관해야만 형님께서 독서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이때부터 좌우로 노역을 맡아서 남은 힘을 다 쏟아 내면서 집안의 형편이 점점 펴지고 변변찮은 음식일망정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가정을 이루었을 때에 부모님의 명령에 따라 분가하였지만, 아침저녁으로 문안인사를 올리는 예절을 빠뜨린 적이 없었고, 모든 일은 반드시 부모님 일을 먼저하고 자신의 일은 나중에 하였다. 형제 다섯이 차례로 분가할 때마다 효자는 반드시 자신이 집기를 마련해 주었고, 형님 집에 비용을 분담시키거나 손상시키지 않게 하였다.부모를 봉양함에 있어서는 매달 자신이 15일의 음식을 바쳤고, 나머지 15일은 동생 셋이 각각 5일의 음식을 바쳤는데, 마을 사람들이 이 일을 전하여 미담으로 삼을 정도였다. 모부인(母夫人)이 병에 걸려 매우 위독했을 때 효자가 손가락을 깨문 피로 다시 소생시켰으나 이틀이 지난 뒤에 끝내 일어나시지 못하자, 슬픔이 너무도 심하여 거의 목숨을 잃을 지경에 이르기도 하였다.홀로 남은 부친을 모시는 데 더욱 정성을 다하여 지극히 중요한 일이 아니면 부친의 곁을 떠나지 않음으로써 허전하고 적적하신 마음을 위로해 드렸고, 부친께서 좋아하셨던 옛 친구 분들을 힘껏 초청하여 부친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렸다. 부친의 상을 당해서는 초상을 집행하는 예절에 늙고 쇠약하다는 이유로 자신을 용서하지 않으면서 한결같이 의례에 따라 마음을 다하였고, 삼년상을 치르는 동안 상차(喪次 상주가 머무는 방)를 떠나지 않았으며, 하루걸러 묘소를 살폈다.그 형님을 섬김에 마치 엄한 부친을 섬기는 것처럼 하여 진퇴와 출입,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을 반드시 여쭈어 행하였고, 형이 세상을 떠났을 때에는 슬픔이 자못 심하였지만, 상례(喪禮)에 관한 모든 일을 반드시 자신이 직접 집행하고 집안사람이나 자제들에게 맡긴 적이 없었다.형의 아들이 혼사를 의논하면서 혼례 물품을 갖추지 못한 까닭에 훗날로 미루고자 하자, 효자가 그를 위해 몸소 모든 물품들을 마련하여 혼례를 거행하였고, 이러한 마음을 친족과 인척, 벗들에게까지 미루어서 곤궁한 사람을 구제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었으며, 죽은 자를 조문하고 살아남은 자를 위로하는데 곡진하게 은혜로운 마음이 있었다.아, 세도(世道)가 낮아지고 풍속이 나빠져 진실한 마음이 날로 야박해져 가지만, 효자와 같은 참된 마음과 진실한 행실을 지닌 사람은 오늘날 세상에 옛사람이라 이를 만하였으니, 종친과 친족들은 효성스럽다고 일컬었고, 마을 사람들은 공손하다고 칭찬하였으며, 아름다운 소문이 조정에까지 알려져서 정려(旌閭)의 표창이 성대하고 장중하게 내려왔다. 골짜기에 핀 난초의 향기와 깊은 못에서 우는 학의 울음소리는 끝내 절로 숨길 수 없으니, 그 이치가 어찌 참으로 그렇지 않겠는가.그의 맏아들 장섭(長燮)이, 내가 부친과 종유(從遊)한 날이 오래되고 부친에 대해 보고 들은 것이 가장 익숙하다고 하여 한마디 말로 기문(記文)을 지어 줄 것을 청하였다. 孝子故壬辰忠臣贈兵曹叅判諱邦翰八世孫。世以忠孝著聞。孝子幼有至性。親有疾。輒涕泣廢食。執使令。極意承順。八歲出野。見其父躬耕。悶其冒暑作苦。竊往店肆。將沽酒以餉之。酒媼感其意。輒具佳肴以與之。不受其直。十四歲與其兄。讀書家塾。一日告兄曰。家貧如此。而老親親執勞役。此豈人子安心處乎。吾當躬幹家務。兄主可以讀書。自是左右服勞。靡遺餘力。使家力漸舒。而菽水有賴。及有室。以親命分爨。而晨昏之節。未嘗廢闕。凡百事務。必先幹父。而後遂及於私。兄弟五人。漸次分爨。孝子必自備什物以給。使兄家無分損之費。其養親也每月自供十五日之饌。餘十五日。弟三人各供五日。鄕里傳以爲美談。母夫人遘疾甚危。孝子血指得甦。居二日竟至不起。哀毁過甚。幾於滅性。侍偏嚴。尤盡其誠。非甚故。不離側。以慰其窮寂。凡故舊所喜。極力招致。以悅親意。及遭故執喪之節。不以耆衰自恕。一遵情文。三年身不離喪次。間日展墓。事其兄如嚴父。進退出入。家事巨細。必稟而行。及兄歿。哀戚殊甚。喪事凡百。必自親執。未嘗委之於家人子弟。兄之子將議昏。以昏具未備。欲退後。孝子爲之躬辦凡具以行之。推以至於族戚朋友。賙窮恤匱。弔死問生。曲有恩意。嗚乎。世降俗下。眞情日薄。而如孝子之實心實行。可謂今世之古人也。宗族稱孝。鄉黨稱弟。以至令聞上徹。旌褒隆重。谷蘭之香。皐鶴之音。終有不得自掩者。其理豈不信然。其胤子長燮。以余從遊日久。見聞最熟。請一言以爲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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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계기 藍溪記 《주역》에 이르기를, "군자는 생각이 그 지위를 벗어나지 않는다."80) 하였고, 공자가 이르기를,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그 정사(政事)를 도모하지 않는다."81) 하였으니, 이 때문에 조정에 있을 때에는 조정의 일을 말하고, 관청에 있을 때에는 관청의 일을 말하며, 공인(工人)들은 반드시 공방에 거처해야 하고, 축관(祝官)은 제기(祭器)의 일을 간섭하지 않는다.윤 사문(尹斯文) 흥서보(興瑞甫)는 집이 가천(佳川)인데, 호가 남계(藍溪)이다. 가천은 남계와는 땅과 경계가 다르고, 서로 거리가 현격하게 머니, 이것이 어찌 강을 호수로 알고, 바다를 산봉우리라 부르는 것과 다르겠는가. 비단 지위를 벗어나고 남의 일에 간섭하는 것에 비견될 뿐만이 아니다. 남계는 진실로 이름난 지역이지만, 명성을 우선시하고 실질을 뒤로 하는 것은 사문의 뜻이 아니며, 가천의 물이 남계로 흘러들어가는 것이 마치 귀결처로 요약되는 뜻이 있는 것 같지만, 근원을 버리고 말류를 쫓는 것 역시 사문이 행하려는 것이 아니다.옛적에 주 선생(周先生)은 연봉(蓮峯) 아래에 집을 짓고 그 집의 당호(堂號)를 '염계(濂溪)'라 하였고82), 주 부자(朱夫子)는 창주(滄洲) 가에 살면서 그 집의 편액을 '자양(紫陽)'이라 하였다.83) 월(越)나라 새는 남쪽 가지에 둥지를 짓고, 북방 오랑캐의 말은 북풍에 의지하니, 사물의 본성도 오히려 그러한데, 하물며 현인군자(賢人君子)로서 근본을 마음에 두고 옛날을 그리워하는 것이 응당 이와 같지 않겠는가.사문은 영평(永平 경기도 포천 지역의 옛 지명)의 명문 종족으로, 대대로 영평의 남계에 거주하다가 중간에 이주하여 능주의 가천 사람이 된 지 이미 3대가 되었다. 과축(薖軸)84)을 기구(箕裘)85)처럼 여기고 헌면(軒冕)86)을 진흙처럼 여기며 문밖을 출입하지 않고 이름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았으며, 배운 것은 오직 주렴계과 주자양의 학문뿐이었고, 움직이고 고요히 지내는 것 하나하나와 말하고 침묵하는 것 하나하나를 주렴계와 주자양처럼 하고자 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그 호칭과 표방함에 어찌 유독 그렇게 하지 않겠는가.아, 산을 좋아하고 물을 좋아하지 않으면 작용이 두루 하지 못한 바가 있고, 흩어져서 각기 다르기만 하고 화합하여 함께하지 못하면 본체가 확립되지 못한 바가 있다. 지금 생각이 지위를 벗어나지 않되 거처함에 편안함을 생각하지 않고, 몸은 산중에 있되 호칭은 산 밖에 있으니, 사문의 학문을 대강 알 수 있다. 내가 비록 영민하지는 못하지만 하얀 실을 그대의 쪽빛에 맡기기를 바란다. 易曰。君子思不出其位。孔子曰。不在其位。不謀其政。是以在朝言朝。在官言官。工必居肆。祝不越俎。尹斯文興瑞甫。家佳川而號藍溪。夫佳之於藍。異壤殊境。相距懸然。是何異於認江爲湖喚海作嶺耶。非特爲出位越俎之比而已。藍固名區。而先名後實。非斯文之意也。佳之水注於籃。似若有要歸之義。而舍源趨流。亦非斯文之爲也。昔周先生築室蓮峯之下。題其堂曰濂溪。朱夫子僑寓滄洲之上。扁其室曰紫陽。越鳥南枝。胡馬北風。物性猶然。況賢人君子而其懷本戀舊。不應如是耶。斯文以永平名族。世居永之藍。中間移而爲綾之佳人。已三世矣。箕裘薖軸。塗泥軒冕。足不出門。名不出世。所學惟是周朱之學耳。一動一靜。一語一黙。無不欲周朱是似。則其於稱號標榜。奚獨不然。鳴乎。樂山而不樂水。則用有所不周。散殊而不合同。則體有所不立。今思不出位。而居不懷安。身在山中。而號在山外。斯文之爲學。可以槩矣。吾雖不敏。願以素絲付子之藍。 군자는……않는다 《주역》 〈간괘(艮卦) 상(象)〉에 "산이 거듭함이 간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생각이 그 지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兼山艮, 君子以, 思不出其位.]"라는 말이 보인다. 그……않는다 《논어》 〈태백(泰伯)〉에 보인다. 주 선생(周先生)은……하였고 주 선생은 북송(北宋)의 유학자 주돈이(周敦頤, 1017~1073)이다. 그는 만년에 호남성(湖南省) 도현(道縣) 여산(廬山)의 연화봉(蓮花峯) 기슭에 거주하면서 그 앞에 흐르는 시내를 염계라 이름하고 자신의 호로 삼았다. 《宋史 卷427 周敦頤列傳》 주 부자(朱夫子)는……하였다 주 부자는  주희(朱熹, 1130~1200)를 말한다. 그는 복건성 숭안(崇安)에 살면서 그의 부친 주송(朱松)이 안휘성(安徽省) 흡현(歙縣)에 있는 자양산(紫陽山)에서 독서했던 일을 잊지 않기 위해 집 이름을 '자양서실(紫陽書室)'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후인들이 주희를 '자양'으로 불렀다. 과축(薖軸) 은거의 삶을 비유하는 말로, 《시경》 〈고반(考槃)〉에 "숨어 살 집이 언덕에 있으니, 큰 선비의 마음이 넉넉하도다.[考槃在阿, 碩人之薖.]"라고 한 것과 "숨어 살 집이 고원에 있으니, 큰 선비가 소요하는 곳이로다.[考槃在陸, 碩人之軸.]"라고 한 것에서 끝의 한 글자씩 가져와 합성한 것이다. 기구(箕裘) 키와 가죽옷이라는 뜻으로, 가업(家業)을 비유하는 말이다. 《예기》 〈학기(學記)〉의  "훌륭한 대장장이의 아들은 반드시 갖옷을 만드는 것을 배우고, 훌륭한 궁인의 아들은 반드시 키를 만드는 것을 배운다.[良冶之子, 必學爲裘, 良弓之子, 必學爲箕.]"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헌면(軒冕) 수레와 면류관이라는 말로, 관작과 봉록이 높은 벼슬을 비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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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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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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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새봄에 우연히 읊다 新春 偶吟 새 봄의 좋은 계절 온 집에 찾아오니 新春時令到千門장차 강남의 물색도 번성함을 보리라 行看江南物色繁꽃과 버들 핀 앞 시내엔 나그네 발길이요 花柳前川遊子屐뽕과 삼나무 자란 사방엔 들 농사 마을이네 桑麻四境野農村몇 곳에서 마음 기뻐 마음 껏 즐기고 賞心幾處恣行樂어떤 이가 시구 찾아 침식도 잊었는가 覓句何人忘寢飧나는 유달리 주의의 한46)이 생기나니 而我偏生周顗恨동풍에 애써 청주 한 잔에 부쳐본다오 東風强付一淸罇 新春時令到千門, 行看江南物色繁.花柳前川遊子屐, 桑麻四境野農村.賞心幾處恣行樂, 覓句何人忘寢飧.而我偏生周顗恨, 東風强付一淸罇. 주의의 한 망국을 슬퍼하는 마음을 말한다. '주의(周顗)'는 동진(東晉)의 재상을 지낸 인물이다. 서진(西晉)이 유송(劉宋)에 쫓겨 장강(長江)의 동남쪽으로 건너가 동진(東晉)이 되었는데, 당시 주의(周顗), 왕도(王導) 등 여러 재상들이 좋은 날을 만날 때마다 이 신정에 모여 풀을 깔고 앉아서 연음(宴飮)을 하였다. 한번은 연음하던 중에 주의가 탄식하기를 "풍경은 다르지 않으나 산하는 정히 절로 다른 것이 있구나.[風景不殊, 正自有山河之異.]"라고 하자, 온 좌중이 서로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유독 승상 왕도만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의당 우리가 왕실과 힘을 합쳐 중원을 회복해야 할 터인데, 어찌 초나라 죄수 꼴로 서로 마주하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단 말인가.[當共戮力王室, 克復神州, 何至作楚囚相對?]"라고 하였다. 《世說新語 言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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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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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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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재 어른과 작별하는 길에 함께 최여중49)을 찾아가 정토사에서 놀다 2수 悅丈別路 同訪崔汝重 因遊淨土寺【二首】 토산 동쪽에 명승지를 찾아 나서니 行尋絶勝土山東몸이 신선처럼 하늘에 오름을 느끼네 已覺身如羽化空졸졸 흐르는 샘물과 시냇물 늘 비가 되고 泉澗淙淙常作雨빽빽한 소나무와 대나무 절로 바람이 이네 松篁密密自生風시율에 뛰어난 졸재50)에게 도움 많았음을 알겠고 拙齋詩律知多賴의관 갖춘 열재 어른과 다시 함께하여 기쁘네 悅丈冠紳喜復同요사이 유쾌한 일이 있었던 적이 없어서 快事邇來曾未有문득 하늘가에 석양이 붉어질까 두렵구나 天邊却怕夕陽紅고국을 그리워하는 위포51)의 몸으로 韋布相憐故國身빈산에서 모이니 더욱 고명한 분들이네 空山一會更高人그윽한 회포가 시와 노래마다 드러나고 幽懷盡逐詩歌發생의는 다시 경계와 경물을 따라 새롭네 生意還從境景新백 리의 시냇가는 빼어난 경치를 바치고 百里溪上呈秀色숲속의 벌레와 새들은 천진을 즐기네 萬林蟲鳥樂天眞날 추워진 뒤에야 앞날의 기약을 아나니 歲寒知有前期在이별의 시름으로 머리 아파하지 않으리 不把離愁却惱神 行尋絶勝土山東, 已覺身如羽化空.泉澗淙淙常作雨, 松篁密密自生風.拙齋詩律知多賴, 悅丈冠紳喜復同.快事邇來曾未有, 天邊却怕夕陽紅.韋布相憐故國身, 空山一會更高人.幽懷盡逐詩歌發, 生意還從境景新.百里溪上呈秀色, 萬林蟲鳥樂天眞.歲寒知有前期在, 不把離愁却惱神. 최여중(崔汝重) 여중은 최태일(崔泰鎰, 1899~?)의 자이며, 호는 백졸재(百拙齋)이다. 고부(古阜) 사람으로, 후창의 문인이다. 졸재(拙齋) 최태일(崔泰鎰)의 호인 백졸재(百拙齋)를 줄여 쓴 것이다. 위포(韋布) 가죽띠와 베옷을 입은 서생을 뜻하는 말로서, 벼슬을 하지 않은 선비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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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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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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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회포를 쓰다 書懷 반백년 전문하여 사류가 되었으나 半百專門作士流먼 구석 옛 영주에 궁벽하게 사네 僻居遐陬古瀛州용납받기 어렵다 하여 큰 도를 의심치 않지만 莫以難容疑道大실속 없음을 스스로 알아 허명이 부끄럽네 自知無實愧名浮책 속의 동지들에 눈이 반갑게 열렸고 卷中同志靑開眼침상에서 깊은 근심에 백발이 다 되었네 枕上幽憂白盡頭다시 봄이 돌아와 흥이 다소 일어나니 還有春來多少興시 읊고 돌아옴45)이 어찌 옛 사람만의 놀이랴 詠歸豈獨昔人遊 半百專門作士流, 僻居遐陬古瀛州.莫以難容疑道大, 自知無實愧名浮.卷中同志靑開眼, 枕上幽憂白盡頭.還有春來多少興, 詠歸豈獨昔人遊. 시 읊고 돌아옴[詠歸] 봄에 초연한 풍류를 즐기는 것을 말한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었을 때, 증점(曾點)이 "늦봄에 봄옷이 완성되면 갓을 쓴 사람 5, 6인에다 동자 6, 7인과 함께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 쐬고 시를 읊으며 돌아오겠습니다.[暮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라고 하였다. 《論語 先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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