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기관별 검색

검색 범위 지정 후 검색어를 넣지 않고 검색버튼을 클릭하면 분류 내 전체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전체 으로 검색된 결과 84193건입니다.

정렬갯수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與下沙諸小年。賦蓮塘韻。 靜觀草木性。君子少如君。茂叔同歸趣。長庚去雕文。淡葩羞紫玉。嫩葉遜靑雲。安得氷霜味。沈痾去十分。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齋居無事。偶得十數句。以示文兄。 芙蓉殿南服。噫吁嚱危哉。高妙除人間。淸虛絶浮埃。我欲往從之。口呿先發款。攀梯梯欹側。策馬馬虺尵。經營問幾載。瞻忽益崔嵬。下得一小經。永菴向陽開。礲斲審面勢。間架集衆材。門巷甚方列。林薈亦裁培。雖云無佳景。心胸自足恢。由此日邁征。陟彼路有媒。出門望行客。不見一人來。或從發軔止。或逐半途回。招招印須友。趲程勿徘徊。歲月流水走。鬂髮石火催。日暮蒼山遠。努力一車堆。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양 처중에게 답함 答梁處中 임생(任生)이 와서, 또한 보내주신 편지를 잘 받았습니다. 편지를 통해 부모님을 모시고 지내시는 체후가 더욱 평안하다는 것을 알고서, 위로되고 기쁜 마음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저는 권루(卷婁)12)하여 마음이 어수선하여, 도무지 말할 것이 못 됩니다.심(心)은 오직 영묘하기 때문에 능히 주재할 수 있는 것이니, 만약에 영묘하지 못하여서 마른 나뭇가지나 불 꺼진 재【枯木死灰】13)와 같다면, 어찌 주재함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 때문에 하단에 '능자자(能字者)'라는 글자는 심(心)을 말한 것입니다. 영묘한 바는 이(理)가 있기 때문이니, 이(理)가 아니면 어찌 이 영묘함이 있겠습니까. 이 때문에 하단에 '소자저(所字底)'라는 글자는 성(性)을 말한 것입니다. 주자(朱子)께서 말하길 "깨달을 수 있는 것은 기(氣)의 영묘함이요, 깨닫게 되는 것은 마음의 이(理)이다"라고 하였으며, 또한 "주재(主宰)하는 것은 심(心)이요, 주재하는 것의 근원은 성(性)이다"라고 하였으니, 또한 이 뜻이 아니겠습니까. 심성(心性)의 경계에 구분을 분명히 하여서, 부디 세 번 생각을 더하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이(理) 위에 이가 있고, 이로써 이를 부린단 말입니까. 아마도 꼼꼼히 살피지 못하여서, 그 말이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대저 심(心)과 성(性)은 진실로 두 개로 나뉜 것이 아니니, 그 본체의 이름과 뜻에 구차함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다시 가르침을 보여주시기를 바랍니다. 任生來。又承惠存。以審侍體增謐。慰浣無任。義林卷婁憒憒。無足云喩。心惟靈故能主宰。若不靈如枯木死灰則何有主宰之可言。此所以下能字者字而言心。然其所靈以有理故也。非理安有此靈。此所以下所字底字而言性。朱子曰。能覺者氣之靈。所覺者心之理。又曰。主宰者心。主宰底性。亦非此意耶。此於心性界至。截得分明。願加三思。如何理上有理。以理使理。恐偶未照管而說得到此耳。大抵心性固非二物。而其當體名義。有不可苟也。更示之爲望。 권루(卷婁) 《장자》 〈서무귀(徐無鬼)〉에 나오는 말로, 외물을 좇아 자신의 심신을 고되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고목사회(枯木死灰) 불교에서 흔히 쓰는 화두(話頭)로서, 사람이 욕심이 없거나 생기가 없는 모습을 형용하는 말입니다. 유학자가 불가(佛家)의 참선(參禪)을 비판적으로 표현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 《근사록집해》 권13 〈변이단(辨異端)〉에 정호(程顥)의 말을 인용하여 "마음의 근원이 안정되지 못하므로 마른 나무나 꺼진 재와 같아지려고 한다.【釋爲心源不定, 故要得如枯木死灰.】"라고 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양 처중에게 답함 答梁處中 앞에 보낸 편지와 뒤에 보낸 편지가 동시에 도착을 하여 열어 읽어보고는, 마음이 활짝 트여서 긴 여름날에 우울했던 마음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모두 사그러졌습니다. 이로 인해 경전을 읽으며 지내시는 생활이 평안한 것을 알고서, 간절히 바라는 바에 더욱 들어맞아 흐뭇하였습니다. 저는 어지럽고 못난 채로 시간만을 허비하고 있으니, 볼 만한 것이 하나도 없어서, 괴로울 뿐입니다. 심설(心說)에 대한 흥미진진한 내용이었는데, 이끌어 깨우쳐준 그 가르침이 지극하여서, 모두 그 학문의 경지가 깊고 남을 위한 충직한 마음이 지극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탄복하게 하였습니다. 주재자(主宰者)와 주재저(主宰底)는 분명히 구별이 되는데, 그렇다면 주재자는 무엇입니까. 바로 심(心)의 영묘함을 가리켜 말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주재저는 무엇입니까. 바로 심(心)의 덕성을 가리켜 말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성(性)은 무엇입니까. 이(理)가 심(心)에 가춰진 것을 가리켜 말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성(性)은 곧 이(理)이니, 성과 이를 어찌 구별한단 말입니까. 심의 영묘함이 진실로 이(理)라고 할 수도 없고, 또한 이가 행하는 바가 아니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기(氣)가 아니면 영묘함을 발휘할 수 없고, 이(理)가 아니면 영묘한 바가 없으니, 영묘하기 때문에 주재하는 것입니다. 영묘함을 버리고서는 아마도 별도로 주재처(主宰處)를 구할 수 없으니, 어찌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것이 목석과 같고서 능히 주재할 수 있는 자가 있겠습니까. 삼가 그대와 경함(景涵)의 생각을 살펴보건대, 영묘함은 전적으로 기(氣)에 속해 있고, 주재함은 전적으로 이(理)에 속해 있다는 것은 각기 일정한 근거가 있고 각기 알맞은 때가 있는 듯하지만, 마음의 영묘함이 바로 신묘한 주재처라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말을 많이 할수록 더욱 합치되지 않는 것입니다.무릇 영묘함과 주재함에 대해 평탄하게 설명하면, 정밀하고 거친 차이가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깊이 파고들어 말하면, 실로 피차의 구분이 없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일심(一心)의 사이에 어찌 영묘함이 있고 또 신묘함이 따로 있어서 대치하고 병립한단 말입니까. 그대가 '주재자(主宰者)'를 '이(理)'자라고 간주하였기 때문에 이(理)가 심(心)에 상대함이 있고, 이 위에 이가 있다는 등의 말들을 여러 번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대는 '주재저리(主宰底理)'를 '주재성정(主宰性情)'이라고 간주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의리(義理) 상에 흠이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문법(文法) 상에서도 부당함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주재자(主宰者)는 진실로 마음의 영묘함이니, 이를 주재(主宰)의 성정(性情)이라고 한다면, 이(理)가 주재(主宰)라고 하는 뜻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만약 그대의 생각과 같다면, 주자(朱子)께서 마땅히 "주재하는 것은 마음이요, 주재하는 바는 성정이다"라고 했을 것이니, 마땅히 이렇게 하면 안 될 것입니다. 소(所)와 소이(所以)에도 또한 그 차이를 두지 않았으니, 주자께서 이른바 '소이연(所以然)은 이(理)이고, 소당연(所當然)은 의(義)이다'라 한 것을 또한 볼 수 있습니다. '저(底)'자는 또한 '소(所)'자나 '소이(所以)'자와는 그 뜻에 다름이 없었는데, 옛사람들의 글자를 배치한 뜻이 이와 같은 경우가 진실로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前書後書。一時倂至。開玩豁然。長夏紆鬱。不覺消釋。因審經體衛安。益協懇祝。義林憒劣捱遣。見無一狀可煩耳。心說娓娓提諭。極其緘悉。其造詣之深。謀忠之至。令人歎服夫主宰者。主宰底。煞有分別。主宰者何物。非指心之靈而言耶。主宰底何物。非指心之德而言耶。性是何物。非指理之具於心者而言耶。然則性卽理也。性與理有何分別乎。心之靈。固不可遽謂之理。而亦不可謂非理之所爲。非氣不能靈。非理無所靈。靈故主宰。舍靈則恐無別求主宰處。曷嘗見冥頑如木石而能主宰者乎。竊覵賢與景涵之意。以靈專屬之氣。以主宰專屬之理。似涉乎各有占據。各有時節。而殊不知心之靈。乃是神妙主宰處也。宜乎多言而愈不合也。夫靈與主宰。以平坦說去。則若有精粗之可言。而究而言之。則實無彼此之可見。一心之間。豈有靈又有神。對峙而倂立乎。賢以主宰者。作理字看。故有以理對心。理上有理等。多少說話也。且賢以主宰底理。看作主宰性情云爾。則非惟於義理有欠。亦恐文法不當如是也。主宰者。固是心之靈。而曰主宰性情云。則理爲主宰之義。顧安在耶。若如賢意。則朱子當曰。主宰者心。所主宰者性情云云。固不當如是而止也。所與所以。亦未見其有異。朱子所謂所以然理也。所當然義也。此亦可見矣。底字亦與所字所以字。其義無異。古人下字之義如此處。固非一二也。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양 처중에게 답함 答梁處中 지난번에 황생(黃生)과 함께 논변한 바가 있었는데, 끝내 설득하지 못하고 이야기가 지리멸렬하게 흐리기만 하여 그의 마음을 돌릴 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믿을 것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오직 그대【東溪】14)의 힘뿐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보내온 편지를 받아보니 도리어 그대와 황생의 의견이 같았습니다. 이에 나의 비루한 견해가 과연 어긋나고 잘못되어 의견을 바꾸어 바로잡아야 할 사람은 다름 아닌 나란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대와 황생은 신(神)자를 이(理)라고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끝없는 갈등을 야기시키는 듯합니다. 이 마음이 이미 쏠리는 바람에 창졸지간에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나, 청컨대 주자(朱子)의 설로 질문을 하여도 괜찮겠습니까. 명덕(明德)장 주석에서 '허령(虛靈)'이라 하였고, 진심(盡心)장 주석에서는 '신명(神明)'이라 하였으며, 혹문(或問)에서 또한 '신명'이라 하고, 혹은 '허령'이라 말하고, 혹은 '신명'이라고 하였는데, 어째서입니까. 영(靈)은 기(氣)의 영묘함이요, 신(神)은 기(氣)의 신묘함이니, 영과 신은 서로 맞닿아 있고, 허와 명은 서로 응하기 때문에, 하나의 예로 말하여도 서로 차이가 있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만약 신명(神明)을 이(理)로 여긴다면, 이(理)로 이(理)를 갖추고 이(理)로 이(理)를 신묘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옳겠습니까. 이와 같다면, 공자(孔子)께서 마땅히 '도(道)로써 능히 도를 넓힐 수 있다'라고 하였지, '사람이 능히 도를 넓힐 수 있다'고 하지 않았을 것이며, 장자(張子)는 '성(性)으로 능히 성을 검속할 수 있다'라고 하였지, '심(心)으로 능히 성을 검속할 수 있다'라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허령(虛靈)과 신명(神明)은 본래 둘로 나뉜 것이 아니니, '구(具)․응(應)․묘(妙)․재(宰)'라고 한 것들이 모두 그 하는 바이니, 내가 이른바 "단지 이 영묘함뿐이니, 바로 이것으로 주재할 수 있다"라고 한 것입니다. 어찌 주자(朱子)의 설과 반대되는 바가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대가 보기에 몹시 놀라서 좀 이상하게 여겨지는지요. 주자께서 말하길 "허령(虛靈) 두 글자는 명덕(明德)을 설명하기에 충분하다."15)라고 하였으니, 덕(德)은 심(心)에 비하여 더욱 정밀한데, 오히려 '이미 충분하다【已足】'고 하였습니다. 더구나 심(心)의 본지(本旨)가 어찌 이보다 부족함이 있어서 단지 사물 자체만을 말한 것이겠습니까. 무릇 영(靈)은 체(體)에 가깝고, 신(神)은 용(用)에 가까우며, 영은 비교적 실(實)에 해당하고, 신은 비교적 허(虛)에 해당하나, 그 형이하(形而下)가 됨은 하나입니다. 묘용(妙用)을 신(神)이라 여긴 것은, 아마도 신(神)이 바로 이(理)의 묘용임을 말한 것입니다. 다만 신(神)이 바로 이(理)라고 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 않다면, 주자께서 어찌 "신령(神靈)은 성(性)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라고 했겠으며, 또한 어찌 "신명(神明)은 물(物)이요, 이(理)가 아니다"라고 하였겠습니까. 그리고 신(神)은 천지(天地)의 묘용(妙用)이며 음양(陰陽)의 불측(不測)을 말한 것이니, 본래 무위지물(無爲之物)이 아닌 것입니다. 지금 무위(無爲)하면서 유위(有爲)의 주(主)가 된다고 하니, 어찌 무위함이 있으면서 신(神)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주자께서 말하길 "심(心)은 몸에서 주(主)가 되고, 성(性)은 심(心)의 이(理)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으로 말하면, 심(心)은 이기(理氣) 합일(合一)의 물(物)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능히 주재하는 자【能主宰者】는 영(靈)이요, 주재하는 대상【所主宰底】은 이(理)이다"라고 말하였는데, 주체자【能者】가 대상자(所者)를 부리는 것이 되고, 장수가 되는 것이니, 이 어찌 소이(所以)의 위에 다시 소이(所以)를 두는 격이 아니겠습니까.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이(理)가 주(主)가 되는 것에는 신(神)자를 끌어다가 이(理)로 만들 필요가 없으니, 그러한 연후에 이(理)가 비로소 주(主)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 본령(本領)과 기(氣)를 이(理)로 착각하고 있다고 그대를 나무랐던 것은, 마땅히 남을 책망하는 것으로 나 스스로를 책망하는 격이 되었습니다. 모든 조항마다 모두 예를 들어서 열거하기 어려우나, 만약 '영(靈)이 기(氣)이고, 신(神)이 이(理)이며, 신(神)은 장수이고, 영(靈)은 병졸이며, 영(靈)은 신(神)이 아니면 영묘하지 못하고, 신(神)은 영(靈)이 아니면 신묘하지 못하다'라고 한다면, 이와 같은 말들은 병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찌 신(神)과 영(靈)을 나누어서 이(理)와 기(氣)에 배속하고서 논리를 세우는 데 어긋나지 아니함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는 동계(東溪) 한 사람만의 견해가 아니니, 근래에 주리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혹 많이들 이와 같이 합니다. 이는 심(心)이 주재(主宰)가 된다는 말을 보고서 기(氣)가 주인의 자리를 빼앗을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허령(虛靈)의 밖에 별도로 신(神)이라는 한 글자를 찾아서, 억지로 이름지어 이(理)라고 한 것입니다. 무릇 운용(運用)․작위(作爲)함은 모두 귀일되는 것이니, 만약 선유(先儒) 가운데 기질을 논하는 자가 온몸의 기질을 버리고서 희미하고 아득한 사이에서 별도로 심(心)의 기질을 찾는다면, 그 말류(末流)의 병폐됨이 어찌 주기론에만 그치겠습니까. 무릇 도리(道理)란 무형(無形)이라, 알기도 어렵고 표현하기도 어렵습니다. 더구나 견해가 아직 명확하지 못한데 억지로 판별해내려고만 한다면, 이는 바람을 붙잡거나 그림자를 묶어놓는 격이니, 죽을 때까지 세월을 보낸다 한들 어찌 학문의 완성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이에 우리는 더욱 존양(存養)함에 몰두하고 정진하여서 갖가지 강학과 토론의 길을 열어야 할 것이니, 부디 늙은 나이【桑楡】16)라도 학문에 수확이 있기를 혹 희망해봅니다. 曩與黃生有所論辨。而終不回頭。顧惟滅裂。無力可回。所恃者。惟東溪之力可以助之。及讀來書。反與黃生之見同焉。可知愚陋之見。果是差謬而所當回頭者。未始非此漢也。然賢與黃生。錯認神字作理看了。是以生出無恨葛藤此意已熟。有非倉卒可解。請以朱子說質之可乎。明德註曰。虛靈云云。盡心註曰。神明云云。或問又曰。神明云云。或言虛靈。或言神明何耶。靈是氣之靈。神是氣之神。靈與神相貼。虛與明相應。故一例互言。而非有差殊也。如以神明爲理。則是以理具理。以理妙理可乎。如此則孔子當曰。道能弘道。不當曰人能弘道。張子當曰性能檢性。不當曰心能檢性也。虛靈神明。本非二物。而曰具曰應曰妙曰宰。皆其所爲則。愚所謂只此靈也。便能主宰云云。何嘗與朱子說。有所背馳。而賢者見之以爲大驚小怪耶。朱子云。虛靈二字。說明德意已足。德於心較精。而猶云已足。況心字本旨。有何不足於此。而只以當體爲言耶。夫靈近體。神近用。靈較實。神較虛。而其爲形而下者則一也。以妙用爲神者。蓋言神是理之妙用云爾。非直以神爲理也。不然朱子何以曰。神靈不可以言性。又何以曰。神明是物非理云耶。且神是天地妙用陰陽不測之謂。則本非無爲之物。今曰無爲而爲有爲之主。安有無爲而可以謂之神者耶。朱子曰心是主於身。而性是心之理也。以此言之。心是理氣合一之物也。愚故曰。能主宰者是靈。所主宰底是理。能者爲役所者爲帥。此安有所以之上復有所以之嫌耶。於此可見理之爲主。而不必引神字作理然後。理始爲主也。然則兩本領。及認氣爲理之譏。賢者恐當以責人者自責。庶乎可矣。諸條固難枚擧。而如云靈是氣。神是理。神爲帥。靈爲役靈非神不靈。神非靈不神。此等句語。無非病痛。安有分神靈屬理氣。而立論不差者乎。然此非東溪之獨見。近日主理之論。或多如此。蓋見心爲主宰之語。而恐氣之奪主也。遂於虛靈之外。別討一神字。强名之曰理。凡運用作爲。一切歸之。如先儒之論氣質者。舍周身氣質。而別求心之氣質於渺茫怳惚之間者也。其爲末流之獘。豈但主氣而已哉。夫道理無形。難知亦難言。況見之未明。而强辨不置。則如捕風繫影。卒歲窮年。寧有了期耶。此吾輩尤當汲汲存養沈索。以開種種講討之路。庶幾桑楡之收。或有望焉。 동계(東溪) 조선 말기 유학자였던 양회락(梁會洛, 1862~1935)로, 자는 처중(處仲), 호는 동계(東溪)입니다. 천성이 총명하고 행동거지가 심중하였으며, 10세에 경전을 통달하였다. 정의림(鄭義林)과 정재규(鄭載圭)의 문하에서 수업하였으며, 기정진(奇正鎭)의 영향으로 주리론(主理論)을 주장하였다. 허령(虛靈) …… 충분하다 주자(朱子)가 "허령불매 네 글자로【虛靈不昧四字】 명덕의 뜻을 이미 충분히 말하였다【說明德意已足】"고 하였다. 상유(桑榆) 늙은 나이를 뜻하는 말이다. 원래는 서쪽의 해가 지는 곳으로 저녁을 가리키는데, 당초에는 일이 잘못되었으나 마침내 성공하였음의 비유로 쓰인다. 마원(馬援)이 "처음에는 비록 회계에서 날개를 드리웠지만 마침내 민지에서 날개를 떨칠 수 있었으니, 동우에서는 잃었지만 상유에서 거두었다 이를 만합니다.【始雖垂翅回谿, 終能奮翼黽池, 可謂失之東隅, 收之桑榆.】"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後漢書 卷24 馬援列傳》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위관 김영공 영궤에 곡하다 哭韋觀金令公靈几 오산은 우뚝우뚝 흰구름은 깊은 데 烏山矗矗白雲深천고의 높은 풍도는 어디서 찾을까 千古高風何處尋세속 벗어난 문장은 가을 물의 기운이요291) 絶俗文章秋水氣추위 능멸한 절조는 늙은 솔의 마음이네292) 凌寒節操老松心세상 길은 백 갈래라 근심 끝이 없었는데 世程百轍憂無極평생 돌봐준 정에 한을 금하지 못한다오 情眷平生恨不禁다만 원컨대 돌아가 천제를 모시는 날엔 但願歸陪天帝日우레 도끼로 모진 음기를 시원히 깨소서 快將雷斧破頑陰 烏山矗矗白雲深, 千古高風何處尋.絶俗文章秋水氣, 凌寒節操老松心.世程百轍憂無極, 情眷平生恨不禁.但願歸陪天帝日, 快將雷斧破頑陰. 가을 물의 기운이요 맑은 기운을 말한 것이다. 늙은 솔의 마음이네 변치 않음을 말한 것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호서로 가는 길에 짓다 湖西路中作 위관293)은 이미 세상 떠났고294) 韋觀已觀化지산295) 또한 산에 묻혔구나 志山又山埋호서로 가는 천리길을 湖西千里路헛되이 갔다 헛되이 오네 虛往而虛來 韋觀己觀化, 志山又山埋.湖西千里路, 虛往而虛來. 위관(韋觀) 《후창집》 권26의 〈차위관김장【상덕】견증운(次韋觀金丈【商悳】見贈韻)〉을 참고할 때, 김상덕(金商悳)이다. 세상 떠났고 원문의 '관화(觀化)'는 죽고 사는 것을 마치 변화를 보는 것처럼 한다는 뜻으로, 죽음을 완곡하게 표현하는 말이다. 《장자(莊子)》 〈지락(至樂)〉에 "죽고 사는 것은 주야가 바뀌는 것과 같다. 게다가 나는 자네와 함께 만물의 변화를 이 눈으로 막 보고 있는데 마침 변화가 나에게 미쳤다.[死生爲晝夜. 且吾與子觀化, 而化及我.]"라고 하였다. 지산(志山) 《후창집》 권3의 〈지산 김 어른【복한】께 올림[上志山金丈【福漢】]〉을 참고할 때, 김복한(金福漢)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월명암20)에서 감회가 일어 月明菴有感 이곳에 이르러 느낀 바가 무엇인가 到玆何所感옛날 스승에게 절했을 때가 생각나네 憶昔拜師時모용과 곽태21)는 은혜와 정이 깊었으나 茅郭恩情重《춘추》를 강론할 때는 말이 명백했네 春秋講話淸대들보 꺾이고 태산이 무너진22) 지 몇 해인가 樑山經幾載후파와 이한23)은 평소의 뜻을 저버렸네 芭漢負平生높은 곳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니 北望登高處화산24)에 석양이 밝구나 華岑夕日明-경자년(1900, 광무4) 가을에 내가 이 절에서 처음 선사(先師)에게 인사를 드리고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을 강론하였는데 선사께서 매우 기뻐하였다. 또 "곽태(郭泰)가 모용(茅容)의 집에 이르러 학문을 권하여 덕을 이루게 하였다. 내가 이러한 의리를 인용하여 그대의 집을 방문할 것이다." 하였다.- 到玆何所感? 憶昔拜師時.茅、郭恩情重, 《春秋》講話淸.樑山經幾載? 芭、漢負平生.北望登高處, 華岑夕日明.【庚子秋, 余初拜先師於此寺講《春秋左氏傳》, 先師喜甚.且曰?郭泰至茅容家, 勸學成德.吾引此義往訪君家?.】 월명암(月明菴)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에 있는 암자이다. 모용(茅容)과……깊었고 모용은 후한(後漢) 때 효자이며, 곽태는 후한(後漢) 때 명사(名士)이다. 당시 곽태(郭泰)가 모용의 집에 유숙하였는데, 이튿날 아침에 모용이 닭을 잡자 곽태는 자기를 대접하기 위한 것인 줄 알았다. 이윽고 모용이 그것을 모친에게 올린 뒤에 자신은 객과 함께 허술하게 식사를 하자, 곽태가 일어나서 절하며 "경은 훌륭하다.[卿賢乎哉]"라고 칭찬하고는 그에게 학문을 권하여 마침내 덕을 이루게 했다 한다. 《後漢書 卷68 郭泰列傳》 대들보……무너진 스승이나 철인의 죽음을 의미하니, 여기서는 저자 김택술의 스승 간재(艮齋) 전우(田愚)가 세상을 떠났음을 말한다. 공자가 세상을 떠나기 일주일 전에 "태산이 무너지는구나. 대들보가 꺾이는구나. 철인이 시드는구나.〔泰山其頹乎 梁木其壞乎 哲人其萎乎〕"라고 노래하였다. 《禮記 檀弓上》 후파(侯芭)와 이한(李漢) 후파는 양웅(揚雄)의 제자이고 이한은 한퇴지(韓退之)의 제자이자 사위인데, 여기서는 후창 김택술이 간재의 제자로서 자신을 가리킨다. 화산(華山) 스승 간재가 강학하던 계화도(繼華島)의 산을 말한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박경립에게 보냄 與朴景立 어제 송사(松沙)29) 어른의 편지를 받아보고서 근래에 상황이 무고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 월고(趙月皐)30) 어른이 봉산(凰山)에 이르러 선생의 묘에 제사를 지낸 다음 이어 우리 고향에 들를 것이라고 하였는데, 단가(丹嘉)의 여러 곳에 보낼 안부 편지 및 조장(弔狀)을 일일이 써놓고 미리 기다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지난번 문목(問目)에 저의 대답은, "성정(性情)을 말하자면 심(心)은 그 안에 내포하는 것이니 어떻게 대응하는 마음이 가능하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그 뒤에 주자(朱子)의 편지를 보았는데, 제 말에서 크게 옳지 않은 곳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자는, "미발(未發)의 상태에서 지각(知覺)이 어둡지 않은 것은, 어찌 심이 성(性)을 주재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발(已發)의 상태에서 등급에 따른 절도가 어긋나지 않은 것은, 어찌 심이 정(情)을 주재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31)라고 하였습니다. 무릇 심(心)은 동정(動靜)을 꿰뚫으며 상하를 관통하는데, 말할 수 있는 방소(方所)가 없다면 곧 진실로 성정(性情)으로 대응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곧, "성정(性情)을 말하면서 심(心)이 그 안에 있다고 말한다면, 이는 주로 생각하는 부분이 없고 붙어 있을 지점도 없는 것이니, 반드시 공허하고 흩어져버리는 데로 귀결될 것입니다."라고 한다면 학자로 하여금 손을 쓸 곳과 발을 디딜 곳이 없게 하는 것입니다. 경립(景立)은 빨리 돌이켜 통렬히 반성하기를 바랍니다. 돌아보건대 이러한 논의에 대해 우열을 가려보아도, 한두 가지의 적확한 견해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외람되이 여러 벗들과 감히 논변한 것이, 매번 이러한 부류가 잘못되었음을 알았기 때문이겠습니까? 스스로 오류에 빠졌고 다른 사람도 잘못하게 하였으니 매우 송구합니다. 昨得松沙丈書。知近節無故。月皐趙丈到凰山。致祭先生墓。因過吾鄕云。丹嘉諸處書問及弔狀。一一修裁。預爲等待如何。向日問目。鄙所答有曰。言性情則心包在其中。有何可對之心。後看朱子書。知此說有大不是處。朱子曰未發而知覺不昧者。豈非心之主乎性者乎。已發而品節不差者。豈非心之主乎情者乎云云。夫心者。貫動靜。通上下。而無方所之可言。則固不可與性情爲對。然若曰。言性情而心在其中。則是無主腦無着落。必至於空虛漫渙之歸。而使學者。無下手着脚處。願景立亟反而痛省之也。顧此愚劣。無一二的見。而猥與諸友敢爲論辨者。安知每每非此類也。自誤誤人。極爲悚然。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 1846.8.17.~1916.10.28.)을 가리킨다. 한말의 의병장으로 을미사변을 계기로 의병을 일으켜 활동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8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조 월고(趙月皐) 조성가(趙性家, 1824~1904)를 가리킨다. 자는 직교(直敎), 호는 월고(月皐)이다. 본관은 함안(咸安)이고 진주(晋州)에 거주하였다. 스승은 기정진(奇正鎭)이고 저서로 《월고문집(月皋文集)》이 있다. 미발의 상태에서 …… 아니겠는가 해당 발언은, 주자가 호광중의 편지에 답한 「답호광중서(答胡廣仲書)」에 보인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박경립에게 보냄 與朴景立 어버이의 병을 돌보는 상황이 아직 현저히 좋아지는 효과가 없는지요? 밤낮으로 모시고 지키느라 자고 먹을 겨를도 없을 것이니 그 애태우고 고생하는 모습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속담에, "긴 병에 효자 없다."고 말하지만 저는, "긴 병에도 효자가 있다."고 말하겠습니다. 하루 이틀의 병이라면 누군들 정성과 힘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세월이 쌓여서 달이 가고 해가 지난 이후에는 그 효도와 불효의 참된 마음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마치 맹렬히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굳게 버티는 초목을 알 수가 있고,27) 난세(亂世)에 충신(忠信)이 드러난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물며 평생 동안 책을 읽는 것은 바로 이러한 시기를 위하여 큰 사업과 큰 의리에 쓰기 위함이니 이 밖에 무엇이 있겠습니까? 조금이라도 마음에 편치 못한 바가 있으면, 끝내 생전에 후회해도 소용없는 한이 될 것이니, 부디 힘쓰시기 바랍니다. 다음 달 초 열흘께 포천(抱川)의 인편이 있을 듯한데 소식을 들었는지요? 자인(子仁)을 비롯한 여러 사람이 초지(草枝)에서 아직 돌아오지 못하였다고 하는데, 혹시 운람(雲藍)에게 나아간 것인지요? 장마가 그치지 않아 분명히 많이 지체될 터인데 걱정이 많습니다. 의림(義林)은 앞으로 봄이 오면 묵계(墨溪)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는 음강(陰江)28) 가에서 벗들을 만나 하루 동안 시원하게 회포를 풀 것입니다만, 경립과 함께하지 못함이 한스럽습니다. 화암(華巖)에서의 약속이 멀지 않으니 경립은 며칠 동안 함께 바람을 쐴 계획을 함께할 수 없겠는지요? 그러나 그 이전에 책을 보는 노력 또한 조금도 늦춰서는 안 될 것입니다. 모름지기 다소의 의리(義理)를 쌓아두어 그때 질정(質正)할 수 있는 바탕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湯候尙無顯減之效否。晝夜扶衛。寢食無暇。其焦勞之狀。何以言喩。里言曰。長病無孝子。余謂長病有孝子。若一日二日之病。孰不致誠盡力。至於積月積年而後。其孝不孝之眞情可見。如疾風之勁草。亂世之忠信也。況平生讀書正爲此時用。大事業大義理。此外何有。一有未安。終爲生前難追之恨。勉之勉之。來月旬間。似有抱川便。聞之否。子仁諸人。自草枝尙未還。或爲前進於雲藍所耶。雨潦不止必多見滯。爲慮悶悶。義林向自當春到墨溪。回路會朋友于陰江之上。作一日暢須。恨景立不與也。華巖之約不遠。景立未可共爲數日溯風計耶。然則前此看書之功。亦不可少緩。須蓄積多少義理。爲其時就正之資也。 맹렬히 불어오는 …… 알 수가 있고 당 태종(唐太宗)이 소우(蕭瑀)를 칭찬하면서 하사한 시에 "질풍 속에서 굳게 버티는 초목을 알고, 난리 속에서 충성스러운 신하를 안다.【疾風知勁草, 板蕩識誠臣.】"라는 표현이 있다. 《舊唐書 卷63 蕭瑀列傳》 음강(陰江):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우봉리 앞을 흐르는 강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송암유고》 서문 松庵遺稿序 이 몸을 소유한 사람 중에 선조께서 남겨준 기(氣)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이 기가 이어지고 이어지며 태어나고 태어났기에 지극히 친근하고 절실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세대가 더욱 오래될수록 그 음성과 안색을 상상할 만한 것이 없어지면서 어떤 모습의 사람이었는지 막연하여 알 수 없게 된다. 서책이나 그릇을 사모하는 것은 입 기운과 손때가 있어서일 뿐이고, 선산의 뽕나무와 가래나무에 깃들어 있는 것은 상로지감(霜露之感)93)일 뿐이다. 비록 진짜 모습을 모사하여 시험해 보더라도 터럭만큼도 어긋나지 않게 할 수도 없거니와 설사 어긋나지 않게 하였더라도 영대(靈臺 마음)의 경우는 또 형상해 낼 수 없으니, 어찌 비단 칠분(七分 초상화)에 불과할 뿐만이 아닌, 정신과 심술이 발현되고, 행의(行義)와 풍범(風範)이 남아 있는 평소의 유묵(遺墨)만 한 것이 있겠는가.오 사문(吳斯文) 정섭(長燮)이, 선대인(先大人) 송암공(松庵公)이 일찍이 소요하면서 읊었던 약간의 글을 수집하여 한 권의 책으로 편집해 가지고 와서 나에게 보여 주며 말하기를, "슬하에서 섬길 때의 음성과 용모가 눈에 선하기에 비록 부모를 여읜 지 오래되었어도 한 가닥 모습만은 사라지지 않고 있으니, 어찌 일찍이 잊은 적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아들에서 손자로, 손자에서 또 손자로 이어지면 우러러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오직 이 유고에 있지 않겠습니까. 바라건대 저를 위해 현안(玄晏 서문)을 짓는 일을 사양하지 말아주십시오." 하였다.아, 똑같이 사람의 자식이지만 효성이 같지 않은 것은 그 어버이를 잊었느냐 잊지 않았느냐 때문이다. 옛사람은 한마디 말을 하거나 한 걸음 발을 내디딜 때도 감히 부모를 잊지 못하고, 심지어 소리가 없는 곳에서도 듣고, 형체가 없는 곳에서도 보는 듯 여겼던 것은 이 때문이 아니었겠는가.사문(斯文)이 이미 종신토록 사모하는 마음을 부치고, 또 대대로 자손들이 길이 효도할 바탕을 만들었으니, 어버이를 드러내는 정성과 후대에 물려줄 계책이 무관하다고 이를 만하다. 그러나 송암공(松巖公)은 우리 향촌의 선배로,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으며, 친인척 간에 화목한 행실과 진실하고 신의가 있으며, 질박하고 성실한 풍모는 이 세상의 모범이 될 만하니, 이 책을 완성하는 것이 어찌 한 집안에서만 우러러 사모하는 바탕이 될 뿐이겠는가. 마땅히 고을의 자제들과 함께 해야 할 것이다. 人有此身。孰非祖先之遺氣。接續生生。至爲親切。然世代彌久。其聲音顔色。無處可想。而邈然不知爲何狀人。書冊杯圈。所慕者口手之澤而已。邱隴桑梓。所寓者霜露之感而已。雖摸眞而省試之。不可使毫髮不爽。設有不爽。至於靈臺。則又莫狀焉。曷若平日遺墨。精神心術之所發。行義風範之所存者。匪但爲七分哉。吳斯文長燮。蒐輯其先大人松庵公所嘗吟詠往復若干文字。編爲一卷。持以示余曰。逮事膝下。音容在目。雖孤露之久。而一縷不泯。何嘗可忘。然子而孫。孫而又孫。則所可瞻想。獨不在是耶。願爲我勿辭玄晏之役也。呼呼。均爲人子。而孝有不同者。以其忘親與不忘也。古人之一出言一擧足。而不敢忘父母。以至聽於無聲。視於無形者。其不以是耶。斯文旣寓終身之慕。又爲世世子孫永言孝思之地。其於顯親之誠。貽後之謨。可謂無關矣。然松庵公吾鄕先進也。其孝友睦婣之行。忠信質慤之風。可以爲斯世之模範者。則此書之成。豈止爲一家瞻慕之資而已。當與鄕黨子弟共之。 상로지감(霜露之感) 돌아가신 부모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의미한다. 《예기》 〈제의(祭義)〉에 "서리나 이슬이 내리면 군자가 이것을 밟고 반드시 서글퍼지는 마음이 있으니, 이는 추워서 그러한 것이 아니다.[霜露旣降, 君子履之, 必有悽愴之心, 非其寒之謂也.]"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윤계인에게 답함 答尹季仁 지난번에 오는 인편만 있고 가는 인편이 없어서 답장을 쓰지 못하였습니다. 며칠 사이 객지에서 거처하는 정황은 좋으며, 체후는 건강하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워하는 마음을 가눌 수가 없습니다. 지난번 황생(黃生)에게 보낸 편지는 그대가 이미 보았는데 그 가부(可否)가 어떠합니까? 대저 황생(黃生)의 뜻은 신(神)을 이(理)라 여기고, 영(靈)을 기(氣)로 여겨서 영은 주재하지 못하고 주재하는 것은 신(神)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영(靈)은 모든 이치가 갖추어져 모든 일에 대응할 수 없는데, 모든 이치가 갖추어져서 모든 일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은 신(神)이라고 하였습니다. 횡설수설하여 그 단서가 하나가 아닙니다만 그 대체적인 의도는 여기에 근본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영(靈)과 신(神)은 모두 이(理)와 기(氣)가 합쳐지고 나서 생겨난 것입니다. 진실로 이(理)와 기(氣)를 나눠 배치하여 볼 수는 없으니 그렇다면 이것은 하나의 사물로 영(靈)의 오묘함이 사용되는 곳이 바로 신(神)인 것입니다. 신(神)과 영(靈)이 어찌 서로 마주하거나 나란하게 존재하는 것이겠습니까. 또한 심(心)이 이름을 얻어서 영(靈)이라고 하고, 신령하기 때문에 능히 주재(主宰)할 수 있습니다. 능히 주재하는 것이 바로 영(靈)이므로 주재하는 것은 바로 이(理)이니, 마른 나무나 꺼진 재【灰】와 같은 사물에는 진실로 모두 이(理)가 있으나, 주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영(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허령(虛靈)하여 주재(主宰)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허령(虛靈) 안에는 절로 오묘한 작용의 법칙이 주재할 수 있으니 영(靈)이라는 것은 쓸모없는 물건이 되고, 이(理)는 작용하는 별도의 일이 됩니다.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허령(虛靈)하고 어둡지 않아서 중치를 갖추고 만사에 응한다. 갖추어지고 응하므로 이것은 허령(虛靈)이 주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황생(黃生)은 끝내 따르지 않았으니, 모르겠습니다만 저의 견해가 혹 왼편으로 치우쳐서 그러한 것이 아닌지요? 매번 한 번 계인(季仁)과 서로 확실하게 토론하고자 하였으나 실행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번에 자세히 말씀해주신 내용을 받아보고 이에 대략 펴보았으니, 더욱 세심히 연구하여 알맞은 논의를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근래에 주기론(主氣論)이 무척 성행하고 있으나 오직 한 두명의 선각자들이 여러 책에 훌륭한 글을 후세에 남겨 그 폐단을 구하고자 하였으니 이는 이 세상에 남긴 공이 큰 것입니다. 그러나 후대의 사람들은 그 설을 듣고,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여 주리(主理)라고 이름하였습니다. 그러나 또한 간혹 지나쳐서 도리어 잘못을 바로잡고 지나치게 직언하는 데로 귀결되는 문제가 없을 수 없으니 이 역시 살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向便有來無去。未得修謝矣。未審日來旅居節宣。體事佳勝。馳溯不任。向抵黃生書。賢旣視至。則其可否何如耶。大抵黃生之意。以神爲理。以靈爲氣。以爲靈不能主宰。而主宰者神也。靈不能具衆理應萬事。而具衆理應萬事者神也。橫說翌說。其端不一。而其大意。則本於此矣。愚謂靈與神。皆是理與氣合而有者也。固不可分配理氣看。然則只是一物。而靈之妙用處。便是神。神與靈。豈是待對倂立之物哉。且心之得名。以其靈也。靈故能主宰。能主宰者是靈。所主宰底是理。如枯木死灰之物。固皆有理。而謂之主宰則不可。以其不靈故也。若曰虛靈不能主宰。而虛靈之中。自有主宰妙用之則。靈爲無用之長物。理爲作用之別事。朱子曰。虛靈不昧。以具衆理應萬事。具之應之。是非虛靈之爲主宰者耶云云。然黃生竟不見從。未知愚見或左而然耶。每欲一與季仁相確而未果矣。今承詳示之喩玆以略布。幸加細究。以示稱停之論也。近世主氣之論盛行。而惟一二先覺。立言著書。以救其敝。此其有功於斯世者大矣。然後之人聞其說。而不得其意。名爲主理。而又或過之。反不無矯枉過直之歸。此亦不可以不審也。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윤계인에게 답함 答尹季仁 편지에 답장이 늦어진 채 지금 벌써 몇 달이 지났습니다. 궁벽한 곳에 우거하느라 세상의 습속에 빠졌으므로 그 퇴락한 모습을 여기에서 징험할 수 있겠습니다. 혹독한 더위가 위세를 거두고 시원함이 잠깐 생겨나고 있는데, 모르겠습니다만 부친의 기력은 강녕하시며, 시봉하는 정황은 기쁘고 즐거우며, 체후는 더욱 다복하신지요? 가르치고 배우던 시절에 소견이 얕지 않으니 매번 성대히 축원하였습니다. 의림(義林)은 긴 여름 동안 숨 가쁜 더위에서 온갖 고생을 하였는데, 지금은 가을바람이 집안으로 들어오고 있으나 또 학귀(瘧鬼)가 번뇌롭게 하여 원기를 다 빼앗긴 채 골골하며 죽을 지경일 따름이니 어찌하겠습니까? 여러 조목의 문목(問目)은 모르겠습니다만 지난날 마주하고 공부할 적에 이미 논파(論破)했던 것들이 아닌지요? 이에 사의(謝儀)를 써서 감히 함께 언급합니다. 예(禮)에서는 증조부(曾祖父)는 현고부(顯考父)로, 고조부(高祖父)는 황고부(皇考父)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용(中庸)》의 주(註)에서는, "현고(顯考)에게는 사당이 없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기(氣)가 지(志)를 움직이는 것은 마치 사람이 지나치게 취하면 뜻이 어지러워지는 것과 같으니 완물상지(玩物喪志)가 바로 이것입니다. 지(志)가 기(氣)를 움직이면 사람이 장중하고 공경함이 날로 강해지는 것과 같으니 덕(德)을 행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 이것입니다. 부리지포(夫里之布)87)는 곧 한 사람의 지아비와 1리(里)에 부과되는 세금이니, 만약 일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벌하여 이 세금을 내도록 해야 합니다. 전국(戰國) 시대에 이미 이를 벌하였습니다. 또한 시장이나 주택이 있는 모든 백성들에게 가을볕을 여름볕처럼 하는 것은 아마도 매우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옛날에 정삭(正朔)을 고치되 월수(月數)를 고치지는 않았으니, 하물며 여름을 가을로 고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맹자(孟子)》에, "이 기(氣).……"88)이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확실하게 몰라 감히 억측하여 말하지 못하겠습니다만, 맹자(孟子)가 경추씨(景丑氏)에게 가서 묵은 것은 장차 현인을 감히 부를 수 없는 뜻을 말하여 제(齊)나라 왕이 그것을 듣게 하려고 한 것이었지, 맹중자(孟仲子)의 둘러대는 말을 따르려고 하였던 것이 아닙니다.89) 一紙稽復。今幾月矣。居寓僻左。墮在世臼。其頹落之狀。卽此可驗。酷炎收威。新凉乍生。未審尊庭氣力康寧。侍旁怡愉。節宣增祉。斅學時節。見到不淺。每用翹祝。義林長夏喘暑。喫盡苦況。今則秋涼入戶。而又爲瘧鬼所惱。元氣見奪。㱡㱡欲盡耳。奈何。問目諸條。未知向日面穩時。業已論破耶。玆修謝儀。敢此倂及。禮以曾祖爲顯考。以高祖爲皇考。故中庸註曰。顯考無廟。氣動志。如人過醉亂志。玩物喪志是也。志動氣。如人莊敬日疆。作德心逸是也。夫里之布。是一夫一里之布。若有無業之人。則罰之使出此布也。戰國時。旣有此所罰。又一切施之於市宅之民。秋陽之爲夏陽。似甚不然。古者。改正朔而不改月數。況可改夏爲秋乎。在孟子是氣云云。愚所未瑩。不敢臆說。宿景丑氏。將以語不敢召之義。使齊王聞之也。非爲欲遂仲子之權辭也。 부리지포(夫里之布) 직업이 없는 사람에게 부과하는 부포(夫布)와 뽕나무나 삼(麻)을 심지 않은 사람에게 부과하는 이포(里布)를 가리킨다. 이 기(氣) 《맹자(孟子)》 「공손추 상(公孫丑 上)」에서 호연지기(浩然之氣)의 특징을 설명한 부분을 가리킨다. 맹자가 …… 것이 아닙니다 《맹자(孟子)》 〈공손추 하(公孫丑下)〉 2장인 장조왕장(將朝王章)의 내용으로, 임금이라도 현인을 함부로 부를 수 없다는 내용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산북계회 2수 山北契會【二首】 풍진 세상에 옛 사림은 영락했는데 風塵零落舊詞林적막한 물가를 무슨 일로 찾았는가 寂寞之濱底事尋봄옷 떨친 기우92)는 천 길의 기상이요 春服沂雩千仞像옛 거문고 속 산수93)는 평생의 마음이네 古琴山水百年心어떻게 꽃 아래서 흠뻑 취하지 않겠는가 那能花下無沈醉상쾌하게 산봉우리에서 한바탕 읊조리네 聊快峯頭一朗吟산북의 맑은 별장은 참으로 속세 밖이니 山北淸庄眞物外이문이 어느 곳에서 감히 다다르겠는가94) 移文何處敢來臨문을 나서자 마음이 맑고 편해 즐거우니 出門却喜意淸平날개가 돋아나 백옥경95)에 오른 것 같네 羽化如登白玉京일천 숲에서 웃는 꽃은 모두 고운 모습이요 花笑千林皆好面일만 나무에서 우는 새는 환영하는 듯하네 鳥呼萬樹若歡迎시가 절묘한 경치 만난 건 신이 도운 듯하고 詩當妙境神如助술로 쇠약한 몸 보호하니 힘이 약하지 않네 酒護衰身力不輕우연히 만난 동인96)은 인연이 더욱 소중하니 邂逅同人緣復重봉래산97) 찾아가는 해산 길은 쓸 데가 없네 鰲蓬不費海山程 風塵零落舊詞林, 寂寞之濱底事尋?春服沂雩千仞像, 古琴山水百年心.那能花下無沈醉? 聊快峯頭一朗吟.山北淸庄眞物外, 移文何處敢來臨?出門却喜意淸平, 羽化如登白玉京.花笑千林皆好面, 鳥呼萬樹若歡迎.詩當妙境神如助, 酒護衰身力不輕.邂逅同人緣復重, 鰲蓬不費海山程. 기우(沂雩) 기수(沂水)에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을 쏘인다는 말로, 산수간에 노는 즐거움을 뜻한다. 공자의 제자 증점(曾點)이 자신의 뜻을 말해 보라는 공자의 명에 따라 "늦봄에 봄옷이 이루어지거든 관자 대여섯 사람과 동자 예닐곱 사람과 함께 기수에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시를 읊으면서 돌아오겠습니다.〔莫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라고 대답하였다. 《論語 先進》 산수(山水) 춘추 시대 백아(伯牙)가 탔다고 하는 〈고산유수곡(高山流水曲)〉으로, 〈아양곡(峨洋曲)〉이라고도 한다. 백아가 마음속에 '높은 산[高山]'을 두고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는 이를 알아듣고 "아, 훌륭하다. 험준하기가 태산과 같다.[善哉! 峨峨兮若泰山.]" 하였으며, 백아가 마음속에 '흐르는 물[流水]'을 두고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는 이를 알아듣고 "아, 훌륭하다. 광대히 흐름이 강하와 같다.[善哉! 洋洋兮若江河.]" 하였는데, 이를 지음(知音)이라 하여 친구 간에 서로 상대의 포부나 경륜을 알아줌을 비유하게 되었다. 《列子 湯問》 이문(移文)이……다다르겠는가 은거를 그만두고 세상에 나아가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남조(南朝) 송(宋)의 공치규(孔稚珪)가 북산(北山)에서 함께 은둔하던 주옹(周顒)이 벼슬길에 나서자 산신령을 가탁하여 〈북산이문(北山移文)〉을 지어 그를 꾸짖었던 고사가 있다. 백옥경(白玉京) 천제(天帝) 혹은 신선이 상주(常住)하는 천상의 낙원으로, 옥루(玉樓)라고도 한다. 동인(同人) 서로 마음이 맞는 벗을 말한다.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의 〈동인괘(同人卦)〉를 풀이한 말에 "두 사람이 한마음이면 그 예리함이 쇠를 끊고, 한마음에서 나오는 말은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二人同心, 其利斷金, 同心之言, 其臭如蘭.〕"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봉래산(蓬萊山) 원문의 '오봉(鰲蓬)'으로, 여섯 마리의 큰 자라가 떠받치고 있다고 하는 세 개의 선산(仙山) 가운데 하나이다. 《列子 湯問》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상세정보
84193건입니다.
/4210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