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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견과 최여중의 방문을 받고 田士狷崔汝重見訪 동남에서 꽃다운 발걸음 때마침 찾아와서 東南芳躅適相求백설 속에 청등 켜니 밤이 더욱 그윽하네 白雪靑燈夜轉幽대지는 지금 문득 상전벽해 되었으니 大地如今飜桑海고사는 어느 곳 산림에서 늙어가는가 高士幾處老林邱뉘 알았으리 졸계가 신묘한 작용으로 귀결되고 誰知拙計歸神用또 광생이 상류를 차지하게 할 줄을 且許狂生占上遊휩쓸려 가는 세상 돌아보니 어디로 가야하나 環顧滔滔安所往시절 슬퍼하니 또 머지 않아 배를 타야 하리365) 傷時亦不遠乘舟 東南芳躅適相求, 白雪靑燈夜轉幽.大地如今飜桑海, 高士幾處老林邱.誰知拙計歸神用, 且許狂生占上遊.環顧滔滔安所往, 傷時亦不遠乘舟. 배를 타야 하리 도(道)가 행해지지 않는 세상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서 살고 싶어하는 생각을 말한다. 공자가 일찍이 천하에 현군(賢君)이 없어 도를 행할 수 없음을 탄식하면서 이르기를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뗏목 타고 바다에 떠서 떠나리라.[道不行, 乘桴浮于海.]"라고 한 것을 원용한 것이다. 《論語 公冶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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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군 인수 의 시에 차운하다 次李君【仁洙】 바탕이 어리석다 한스러워 말고 莫恨質蚩蚩큰 일을 하는 데에 뜻을 두게나 志乎大有爲어느 곳에서나 성실로 통하고 誠通幽顯地어느 때나 공경으로 일관해야지 敬貫始終時이치를 궁구해 마음의 거울 열고 窮理開心鏡인륜을 두터히 해 덕의 기반 쌓게 敦倫積德基그대 부지런히 배우는 뜻에 감동해 感君勤學意진중히 새로운 시로 화답한다네 珍重和新詩 莫恨質蚩蚩, 志乎大有爲.誠通幽顯地, 敬貫始終時.窮理開心鏡, 敦倫積德基.感君勤學意, 珍重和新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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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일89)에 천태산에 오르다 기묘년(1939) 上巳日, 上天台山【己卯】 병든 몸으로 맑은 봄에 오른 건 登臨扶病趁春晴세속을 벗어난 동풍이 있어서네 爲有東風不世情원림 몇 곳엔 꽃이 활짝 피었고 幾處園林花亂發산야엔 일시에 풀이 많이 돋았네 一時山野草多生인심은 모두 양장90)처럼 험하고 人心盡是羊腸險부귀는 원래 깃털처럼 가볍다네 富貴元來羽翅輕하늘가의 낙조는 어쩔 수 없는데 落照天涯無柰矣제 경공은 어찌 홀로 눈물 흘렸나91) 齊公何獨淚縱橫 登臨扶病趁春晴, 爲有東風不世情.幾處園林花亂發, 一時山野草多生.人心盡是羊腸險, 富貴元來羽翅輕.落照天涯無柰矣, 齊公何獨淚縱橫? 상사일(上巳日) 음력 3월 첫째 사일(巳日)을 말한다. 예부터 이날에는 흐르는 물에 몸을 씻고 상서롭지 못한 것을 불제(祓除)하는 수계(修禊)의 풍속이 있었다. 진 목제(晉穆帝) 영화(永和) 9년(353) 상사일(上巳日)에 왕희지(王羲之), 사안(謝安), 손작(孫綽) 등 당대의 명사 40여 인이 회계(會稽) 산음(山陰)의 난정에 모여서 계사(禊事)를 행하고, 이어 곡수(曲水)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읊으면서 성대한 풍류놀이를 했던 고사가 전한다. 양장(羊腸) 태항산(太行山)에 있는 옛날의 판도(阪道) 이름으로, 세상길의 어려움을 비유하는 말이다. 삼국 시대 조조(曹操)의 〈고한행(苦寒行)〉에 "북쪽으로 태항산을 오르니, 길도 험하여라 어쩌면 이리 높은가? 구절양장 구불구불한 길에, 수레바퀴가 부서지누나.〔北上太行山, 艱哉何巍巍? 羊腸阪詰屈, 車輪爲之摧.〕" 하였다. 하늘가의……흘렸나 해가 지듯 죽음은 필연적이라 슬퍼할 일이 아니라는 말로, 춘추 시대 제 경공(齊景公)이 우산(牛山)에서 놀다가 아름다운 국토를 내려다보면서 얼마 후에 죽을 것을 슬퍼하여 눈물을 흘리며 탄식했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晏子春秋 內篇 諫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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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북으로 가는 양순집을 전송하는 서문 送梁順集往漢北序 호남(湖南)과 한북(漢北 한양(漢陽)의 북쪽)은 천 리나 떨어진 지역이고, 전쟁의 기운이 가득한 풍진 세파를 도로에서 맞닥뜨리게 되는데도 우리 벗 순집(順集)은 사문(師門)과 종유(從遊)하여 일 년에 한 번씩 다녀오는 것을 너무 멀다는 이유로 꺼리지도 않고, 어려움이 많다는 이유로 그만두지도 않았다. 진실로 도를 지향하는데 근면하고 뜻을 세움이 독실한 사람이 아니라면 어찌 이런 일을 해낼 수 있겠는가.나는 약관(弱冠) 때부터 이미 이러한 행차에 뜻을 두었으나 전후로 30년 동안 끝내 이루지 못했고, 지금 순집이 가는 것을 보면서 또 천리마의 꼬리에 붙은 파리116)가 되지도 못했다. 아, 나는 유독 어떤 사람이기에 미치지 못함이 이처럼 현격하게 차이가 나는 것인가. 비록 그렇긴 하지만, 순집의 이 행차가 만약 벼슬살이를 구하는 데서 나온 것이라면 그의 얻음과 잃음, 통달함과 막힘이 진실로 나와는 관계가 없을 것이고, 만약 유람하는 데서 나온 것이라면 그의 즐거움과 괴로움, 수고로움과 편안함이 또한 나에게 있지 않을 것이다. 이미 벼슬살이를 구한 것도 아니고, 또 유람하는 것도 아니니, 진실한 마음으로 구하는 것이 오직 도의(道義)에 있지 않겠는가.도의(道義)는 하나이니, 간간(侃侃)하게 강직하고 은은(誾誾)하게 화락한 모습으로 봄바람 앞에 앉아 있는 듯하고 눈이 쌓이도록 서서 기다리는 것처럼 하면서117) 천하의 도(道)를 강론하고, 천하의 의(義)를 밝히는 것이 어찌 한 집안이나 한 사람의 사사로운 일이겠는가. 더구나 돌아와 돌이켜보고 나머지 파급될 만한 것들을 아끼지 않는다면 그대가 들은 것이 바로 내가 들은 것이고, 그대가 얻은 것이 또한 내가 얻은 것이 될 것이다.나는 늙은 몸이라 비록 억지로 행장을 꾸릴 수 없지만, 사우(師友)를 인연한 관계로 소문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일찍이 그대에게 기대를 걸지 않은 적이 없었다. 다만 생각건대, 천 리 먼 길 사람을 전송함에 예의상 노자가 있어야 하는데, 서생의 집에 장물(長物)118)을 가진 것이 없기에 단지 졸렬한 말 몇 줄로 노자를 대신하고, 또 "누가 물고기를 요리하는가? 작은 가마솥과 큰 가마솥을 씻어 주리라. 누가 장차 서쪽으로 돌아갈까? 좋은 목소리로 위로하리라."119)라는 한 문장을 노래하여 전송할 뿐이다. 湖南漢北。千里之地。干戈風埃道路抵搪。吾友順集。從遊師門。一年一行。不以絶遠而憚焉。不以多難而沮焉。苟非向道之勤。立志之篤烏能辦此也。余自弱冠。已有意此行。而前後三十年。竟未就矣。今見順集之行。又未作附驥之蠅。嗚呼。余獨何人。其所不及若是懸絶哉。雖然。順集此行。若出於干進。則其得失通塞。固無關於我矣。若出於遊觀。則其苦樂勞佚。亦無有於我矣。旣非干進。又非遊觀。而所以血心尋覓。獨不在於道義乎。道義一也。侃侃誾誾。坐春立雪。講天下之道。明天下之義者。豈一家一人之私哉。況歸而顧之。不吝餘波。則子之聞卽我之聞也。子之得。亦我之得也。吾老矣。縱不能强理鞭策。而所以夤緣師友。得聞所聞。未嘗不有望於子也。但念千里送人。禮合有贐。而書生門戶。無有長物。只用蕪詞數行。以替贐儀。又歌誰能烹魚。漑之釜鬵。誰將西歸。懷之好音。一章以送之。 천리마의……파리 선현이나 명사(名士)의 뒤에 붙어 명성을 얻는다는 뜻으로 쓰이는데, 여기에서는 정의림이 양순집을 따라가서 한북에서 사문과 종유하는 것을 비유한다. 《사기(史記)》 권61 〈백이열전(伯夷列傳)〉에 "안연(顔淵)이 비록 독실하게 학문을 닦았지만, 천리마의 꼬리에 붙었기 때문에 그 행실이 더욱 드러나게 되었다." 하였는데, 사마정(司馬貞)의 주(注)에 "파리가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서 천리에 이르듯,[蒼蠅附驥尾而致千里] 안회(顔回)도 공자 덕분에 이름이 드러나게 되었다는 뜻이다."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간간(侃侃)하게……하면서 원문의 "侃侃誾誾, 坐春立雪"을 국역한 것으로, "간간은은(侃侃誾誾)"은 《논어》 〈선진(先進)〉에 "민자가 옆에서 모실 때에는 온화하였고, 자로는 굳세었고, 염유와 자공은 강직하니, 공자께서 즐거워하셨다.[閔子侍側, 誾誾如也; 子路, 行行如也; 冉有、子貢, 侃侃如也. 子樂.]"라고 한 구절을 원용한 것이다. "좌춘(坐春)"은 스승의 훈도와 덕화를 뜻하는 것으로, 송나라 때 주광정(朱光庭)이 명도(明道) 정호(程顥)를 여남(汝南) 땅에서 뵙고 돌아와 "광정이 봄바람 속에 한 달 동안 앉아 있었다."라고 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宋元學案 卷14 明道學案》 "입설(立雪)"은 제자의 예를 갖추고 가르침을 받으려는 정성을 뜻하는 것으로, 송나라 양시(楊時)가 처음 정이(程頤)를 찾아갔을 때 마침 정이가 눈을 감고 앉아 있으므로 인기척을 내지 않고 서서 기다렸는데, 정이가 눈을 떴을 때는 문밖에 내린 눈이 한 자가량이나 쌓여 있었다고 한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宋史 卷428 楊時列傳》 장물(長物) 여유 있는 물건이나 좋은 물건을 비유하는 말이다. 진(晉) 나라 왕공(王恭)이 숙부인 왕침(王忱)의 요청을 받고 단 하나밖에 없는 돗자리를 주었는데,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왕침이 미안하게 생각하자, "숙부께서 나를 잘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것일 뿐입니다. 저는 원래 장물(長物)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한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世說新語 德行》 누가……위로하리라 《시경》 〈비풍(匪風)〉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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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회와 김익부를 전송하는 소서 送鄭景晦金翼夫小序 을사년(1905) 겨울에 정군 경회(鄭君景晦)와 김군 익부(金君翼夫)가 영상(嶺上)으로부터 가천(佳川)의 아픈 나의 집을 방문하여 이틀 밤을 서로 마주하며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들의 해박한 포부와 정밀하고 깊은 조예가 참으로 소년 중에서 뛰어났다. 그들이 떠나려고 할 때 한마디 해줄 것을 청하였다.무릇 그대들은 문명한 교령(嶠嶺 영남) 지방에서 태어나고, 높은 덕을 지닌 애산(艾山)120)의 문하에서 노닐었으니, 학문의 절도(節度)에 대해 반드시 상세하게 들었을 것이고, 덕을 쌓고 공업을 닦는 방법에 대해 반드시 익히 배웠을 것인데, 이것 외에 다른 사람에게 무슨 들을 만한 것이 있겠는가. 스스로 생각건대, 천박하고 용렬한 내가 설령 조금 아는 것이 있어 멀리서 찾아온 뜻에 부응하고자 한들 구구하게 소나 말의 발굽 자리에 고인 물이 어찌 바다를 구경한 눈에 물로 보일 수 있겠는가.아, 온 세상이 기나긴 어둠에 잠기고 온 천하가 서양의 물결로 뒤덮이고 있는 때에 간혹 공맹(孔孟)의 책을 읽고 공맹의 학문을 따르는 사람이 있기도 하지만, 또한 천 갈래 만 갈래로 나뉘고 찢기어 온통 참됨에서 벗어나고 바름을 잃었는데, 연원을 지켜 순박하면서도 잡되지 않은 경우는 오직 존사문(尊師門)121) 뿐일 것이다.선비가 되어 이러한 세상을 살면서 이러한 문하에서 노니는 것은 천 년에 한 번 있을 만한 기이한 만남이라 이를 만하니, 나머지는 말할 것도 못된다. 만약 존사문의 학문이 전해지지 않는다면 한 가닥 바른 학맥이 더이상 붙어 있을 곳이 없을 것이니, 어찌 애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것은 존사문이 말하지 않는 것이겠지만, 그대들이 과연 이것을 알고 힘쓸 수 있다면, 오늘날 석과(碩果)의 씨앗이 되는 것을 잃을 수 있겠는가. 추운 계절에 그대들을 전송하며 아득히 끝없는 슬픔을 이길 수 없어서 삼가 이 글을 써서 노자를 대신한다. 歲乙巳冬。鄭君景晦金君翼夫。自嶺上過佳川病廬。信宿相對。娓娓傾倒。其抱負之該洽。造詣之精深。信是少年翹楚。將行。請以一言之贈。夫君輩生於嶠嶺文明之邦。遊於艾山碩德之門。其學問節度。聞之必詳。進修蹊逕。講之必熟。外此而有何可聞於人者乎。自惟淺劣。設有一知半解。欲以塞遠來之意。而區區蹄涔。何足爲水於觀海之眼乎。嗚呼。大宇長夜四海懷襄。間或有讀孔孟之書。從孔孟之學。而亦且千分萬裂。擧不免離眞失正。若其淵源持守。醇而無雜。其惟尊師門乎。爲士而居此世遊此門者。可謂千載奇遇也。餘不足言。若使尊師門之學而有不傳焉。則一縷正脈。更無可寓。豈不可惜。此則尊師門所不言者也。君輩果能知此而勉焉。不失爲今日之碩果種子耶。歲寒相送。不勝悠悠無窮之感。謹書此而贐焉。 애산(艾山) 정재규(鄭載圭, 1843~1911)의 호이다. 자는 영오(英五)ㆍ후윤(厚允)이고, 호는 노백헌(老柏軒)이며,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경상남도 합천군 쌍백면 묵동에서 살았으며, 일신재(日新齋) 정의림(鄭義林)ㆍ대곡(大谷) 김석구(金錫龜)와 더불어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문하의 3대 제자로 불리었다. 저서로 《노백헌집》이 있다. 존사문(尊師門) 상대방의 스승에 대한 경칭으로, 애산(艾山) 정재규(鄭載圭)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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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독한 더위 酷熱 겹겹의 더운 구름 자욱하여 걷히지 않고 疊疊炎雲鬱未開축융121)의 엄한 명으로 중복이 돌아왔네 祝融酷令再回庚때때로 두보처럼 소리를 지르고 싶으니122) 有時欲發少陵叫어디서 하삭의 술잔123) 기울일 수 있을까 何處能傾河朔杯돌은 벌겋게 달아올라 부술 수 있을 듯하고 石見爍紅疑可碎산은 까맣게 타서 장차 무너질 것만 같네 山經焦黑若將頹만백성을 말끔히 소생시킬 일 머지않았으니 淸蘇萬姓前期在옥우124)에서 하룻밤에 가을바람 재촉하리라 玉宇金風一夕催 疊疊炎雲鬱未開, 祝融酷令再回庚.有時欲發少陵叫, 何處能傾河朔杯?石見爍紅疑可碎, 山經焦黑若將頹.淸蘇萬姓前期在, 玉宇金風一夕催. 축융(祝融) 고대 화신(火神)의 이름이자, 남방(南方) 또는 남해(南海)를 관장하는 신의 이름이기도 하다. 《관자(管子)》 〈오행(五行)〉에, "사룡을 얻어 동방을 다스리고, 축융을 얻어 남방을 다스렸다.〔得奢龍而辯於東方, 得祝融而辯於南方.〕"라고 하였다. 두보(杜甫)처럼……싶으니 너무나 더워서 견디기 어려울 지경이라는 말이다. 당(唐)나라 두보(杜甫)의 시 〈초가을 무더위에 시달리는데 문서가 계속 쌓이네[早秋苦熱堆案相仍]〉에 "관복 띠를 매니 더워 미칠 듯 크게 소리 지르고자 하는데, 문서는 어찌 급하게 서로 이어서 쌓이는가?〔束帶發狂欲大叫, 簿書何急來相仍?〕"라는 구절이 있다. '소릉(少陵)'은 두보의 호이다. 하삭(河朔)의 술잔 무더운 여름철에 피서(避暑)한다는 명분으로 마련한 술자리를 말한다. 후한(後漢) 말에 유송(劉松)이 원소(袁紹)의 자제와 하삭에서 삼복(三伏) 무렵에 술자리를 벌이고 밤낮으로 정신없이 마셔댄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初學記 歲時部上 夏避暑飮》 옥우(玉宇) 옥우경루(玉宇瓊樓)라 하여 달 속에 있는 궁궐을 말하는데, 천제(天帝)가 있는 하늘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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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춘정 윤섭 의 별장에서 崔春汀【潤燮】庄上 덕산 남쪽에서 문을 닫고 높이 누으니 閉門高臥德山陽세상 길 평탄치 않아 온통 태항산98)이네 世路難平盡太行접역99)의 의관에는 전범이 남아 있고 鰈域衣冠餘典範이정100)의 시례는 명성과 영광 이었네 鯉庭詩禮繼聲光책 속의 풍아101)는 모두 세속 초월했고 卷中風雅皆超俗정원의 난초 매화는 색다른 향기 있네 園裏蘭梅別有香만년에야 비로소 함께 시를 주고받으니 始共唱酬遲暮日부생이 무슨 일로 오래도록 겨를 없었나 浮生緣底久無遑 閉門高臥德山陽, 世路難平盡太行.鰈域衣冠餘典範, 鯉庭詩禮繼聲光.卷中風雅皆超俗, 園裏蘭梅別有香.始共唱酬遲暮日, 浮生緣底久無遑. 태항산(太行山) 중국 하남성(河南省)에 있는 산인데, 험준하기로 유명하다. 삼국 시대 조조(曹操)의 시 〈고한행(苦寒行)〉에 "북쪽으로 태항산을 오르니, 길도 험하여라 어쩌면 이리 높은가. 구절양장 구불구불한 길에, 수레바퀴가 부서지누나.〔北上太行山, 艱哉何巍巍? 羊腸阪詰屈, 車輪爲之摧.〕"라는 구절이 보인다. 접역(鰈域) 가자미 모양으로 생긴 지역 또는 가자미가 많이 나는 지역으로, 우리나라를 지칭하던 말이다. 이정(鯉庭) 집안에서 부친으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것을 말한다. 공자가 그의 아들 이(鯉)가 종종걸음으로 뜰을 지나가자 불러 세우고는 시(詩)와 예(禮)를 배워야 한다고 훈계한 고사에서 온 말이다. 《論語 季氏》 풍아(風雅) 《시경》의 국풍(國風)과 대아(大雅)ㆍ소아(小雅)를 말하는데, 전하여 바르고 고상한 시문(詩文)의 비유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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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오씨 보의회안》 서문 寶城吳氏輔誼會案序 내가 항상 여씨(呂氏)의 향약(鄕約)124)과 범씨(范氏)의 의장(義庄)125)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삼고(三古) 시대126)의 남은 제도에 가장 잘 맞고, 지금의 시대에 행해질 만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대체로 삼고 시대의 백성에게 행해졌던 정사(政事)는 물을 담아도 새지 않을 만큼 치밀했다고 이를 만하였는데, 세상 사람들이 이익을 좇아 시끄럽고 번잡하게 오가면서 점차 쇠락해져서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땅을 쓴 듯 다 사라져 버려졌으니, 선비가 옛날의 도를 배웠지만 이미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면 물러나 시골 마을의 친구들이나 집안의 친족들과 함께 강론하며 행할 수 있는 것들이 어찌 이 두 가지와 같은 일이 아니겠는가.나의 벗 송봉옹(松峰翁)은 이릉(爾陵 능주(綾州)의 옛 이름)의 남쪽에 은거하며 함께 거주하는 친족 10여 사람과 의장의 규례를 모방해 모임을 창설하여 '보의회(輔誼會)'라 명명하였다. 그리고 모여 강습함에 때가 있게 하고, 가르치고 봉양함에 재물이 있게 하였으며, 길흉에는 필요한 물건이 있게 하고, 환난에는 도움이 있게 하였으니, 은혜와 정분을 돈독히 하여 서로 지켜주고 돕는 것이 굳고 단단하면서도 주도면밀하고 상세하다고 이를 만하다. 오씨(吳氏)의 후손이 받게 될 복이 어찌 한계가 있겠는가.나는 의지할 데 없는 외로운 처지로 외롭게 떠돌아다니며 거처를 정할 겨를도 없는데, 힘입을 곳이 없는 외로운 사직(社稷)을 탄식하고, 구원을 요청할 곳이 없는 사신(使臣)들을 애통하게 여겼다. 그런데 지금 이 모임이 설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사적으로 감동과 부러움을 금할 수 없어 삼가 이 글을 써서 오씨를 위해 축하한다. 余嘗愛呂氏之鄕約。范氏之義庄。最得三古之遺制。而可行於今日。蓋三古維民之政。可謂盛水不漏。而熙往穰來。漸次零替。至於今日。掃地盡矣。爲士者。學古之道。旣不得有爲於斯世。則退而與鄕黨知舊門闌族親。可以講行者。豈非此二事乎。余友松峰翁。隱居爾陵之南。與其族之同居者十餘人。倣義庄之規。倡以設之。命曰。輔誼會。使講聚有時。敎養有資。吉凶有須。患難有助。所以篤恩誼而相維持者。可謂鞏固而周詳矣。吳氏後祿。豈有量哉。余以孤根弱植。煢煢流離。不遑定居。歎杕社之無賴。哀原隰之無求。今於此會之設聞。不勝感艶之私。謹書此爲吳氏賀焉。 여씨(呂氏)의 향약(鄕約) 송(宋)나라 때 남전(藍田)에 살던 여대충(呂大忠)ㆍ여대방(呂大防)ㆍ여대균(呂大鈞)ㆍ여대림(呂大臨) 형제가 그 고을 사람들과 서로 지키기로 약속한 자치 규범으로, 그 규범은 덕업(德業)을 서로 권하고, 과실(過失)을 서로 규계하고, 예속(禮俗)으로 서로 사귀고, 환란(患難)을 서로 구제한다는 네 조항이었다. 이것이 후대에 향약의 기준이 되었다. 《小學 卷六 善行》 범씨(范氏)의 의장(義庄) 송(宋)나라 때 재상 범중엄(范仲淹, 989~1052)이 자신의 봉급과 재산 일부로 전지(田地) 수천 묘(畝)를 사들여 만든 전장(田莊)을 말하는 것으로, 범중엄은 이 땅에서 거둔 조(租)를 저축해 두었다가 혼가(婚嫁)나 상장(喪葬)을 치르지 못한 종족들에게 공급해 주었다고 한다. 《宋史 卷314 范仲淹列傳》 《小學 卷5 嘉言》 삼고(三古) 시대 중국 고대시대 때 성왕(聖王)으로 일컬어지는 우(禹)ㆍ탕(湯)ㆍ문왕(文王)이 다스렸던 하(夏)ㆍ은(殷)ㆍ주(周)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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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탄 流民歎 유랑민 유랑민이여 유랑민을 어이하나 流民流民柰流民삼남 땅 모든 곳이 적지137)가 되었구나 赤地三南率土濱부모 처자식이 곡하며 서로 부여잡기를 爺孃妻兒哭相持날 버리고 오늘 어디로 가려는가 하니 棄我今日欲何之말하기를 서북쪽으로 삼천리를 가면 爲言西北三千里공장이 곳곳에 있어 돈이 물 같다 하네 工場處處錢如水항아리의 곡식 팔아 여비를 마련했으나 傾放甁粟作盤纏돈을 입수하지 못해 곤궁하기만138) 하네 錢未入手徒顚連옛날에 맹자가 근심하고 탄식했던 것은 昔在鄒賢已憂歎노약자는 죽고 건장한 자는 흩어짐인데139) 老弱者死壯者散하물며 지금과 같은 변란에 있어서랴 矧在而今之變亂유랑민 유랑민이여 참으로 한탄스러우나 流民流民眞堪歎실로 하늘이 한 일인데 어찌하겠는가 天實爲之柰若何 流民流民柰流民? 赤地三南率土濱.爺孃妻兒哭相持, 棄我今日欲何之?爲言西北三千里, 工場處處錢如水.傾放甁粟作盤纏, 錢未入手徒顚連.昔在鄒賢已憂歎, 老弱者死壯者散.矧在而今之變亂, 流民流民眞堪歎, 天實爲之柰若何? 적지(赤地) 흉년이 들어 거둘 만한 농작물이 하나도 없게 된 땅을 말한다. 곤궁하기만 원문의 '전련(顚連)'으로, 가난하고 의지할 곳 없는 것을 의미한다. 송(宋)나라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 "온 천하의 쇠잔하고 병든 자, 고아와 독거노인과 홀아비와 과부가 모두 곤궁하여 하소연할 곳 없는 나의 형제들이다.〔凡天下疲癃殘疾, 惸獨鰥寡, 皆吾兄弟之顚連而無告者也.〕"라는 표현이 있다. 맹자(孟子)가……흩어짐인데 맹자가 흉년에 굶주린 백성을 제대로 구제하지 못한 제(齊)나라 대부 공거심(孔距心)을 질책한 것을 말한다. 《맹자》 〈공손추 하〉에 "맹자가 말하기를 '흉년이 들어 그대의 백성 중에 노약자는 구렁이에 빠지고 흩어져 사방으로 가는 장성한 사람들도 몇 천 명이 된다.'라고 하자, 말하기를 '이것은 거심이 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맹자가 말하기를 '지금 남에게서 소와 양을 받아 대신해서 기르는 자가 있다면, 그는 반드시 목장과 꼴을 구할 것이다. 목장과 꼴을 구하다가 얻지 못하면 소와 양을 그 사람에게 돌려줄 것인가, 아니면 또한 소와 양이 죽어 가는 것을 서서 볼 것인가?'라고 하자, 말하기를 '이는 거심의 죄입니다.'라고 하였다.〔凶年饑歲, 子之民, 老羸轉於溝壑, 壯者散而之四方者, 幾千人矣. 曰: 此非距心之所得爲也. 曰: 今有受人之牛羊而爲之牧之者, 則必爲之求牧與芻矣. 求牧與芻而不得, 則反諸其人乎? 抑亦立而視其死與? 曰: 此則距心之罪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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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암정150)에서 송심석151) 어른의 시에 차운하다 龜巖亭, 次心石宋丈韻 백일홍이 만발하여 맑은 물가에 잠겼는데 赬桐滿發蘸晴汀하늘이 이름난 정자 가져다 승지에 두었네 天把名亭勝地停맑은 절조는 당시에 세속을 일찍 벗어났고 淸節當年曾脫俗남긴 꽃다운 이름은 천년 뒤에도 향기 나네 遺芳千載尙聞馨옥봉에 달빛이 비추면 먼저 문을 열고 玉峯月照先開戶하포에서 바람 불어도 사립문 닫지 않네 荷浦風來不掩扃산인동의 바위는 얘기를 나눌 만하였으니 散人洞裏石堪語원방 계방 같은 형제라는 말도 들을 만하네152) 元季雙難更足聽 赬桐滿發蘸晴汀, 天把名亭勝地停.淸節當年曾脫俗, 遺芳千載尙聞馨.玉峯月照先開戶, 荷浦風來不掩扃.散人洞裏石堪語, 元季雙難更足聽. 구암정(龜巖亭)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장군목길 1028에 있는 정자로, 구암(龜巖) 양배(楊培)의 덕망을 흠모하여 1898년에 후손들이 지은 것이다. 송심석(宋心石) 심석은 송병순(宋秉珣, 1839~1912)의 호이다.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동옥(東玉)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그해 11월 〈토오적문(討五賊文)〉을 지어 전국 유림에게 배포하고 국권회복에 궐기할 것을 호소했다. 1906년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에 강당을 건립하여 많은 문인들에게 민족독립사상을 고취시켰다. 1910년 한일합병 후 자결을 시도했으나 실패한 뒤 두문불출했다. 1912년 일본 헌병이 은사금을 가져왔으나 거절했고, 일제가 경학원 강사로 천거하자 거절한 뒤 일제를 규탄하는 유서를 남기고 음독 자결했다. 저서에 〈학문삼요(學問三要)〉·〈사례축식(四禮祝式)〉·〈용학보의(庸學補疑)〉 등이 있다. 산인동(散人洞)의……만하네 연산군 때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양배(楊培)와 양돈(楊墩) 형제가 벼슬에 나아갈 뜻을 끊고 순창군 구미리 서쪽의 산인동에 은거하여 자연과 벗한 일을 말한다. 산인동 물가에 이들이 분점(分占)하여 낚시했던 '배암(培巖)'ㆍ'돈암(墩巖)'이라는 형제바위가 있다. 《旅庵遺稿 卷4 散人洞記》 《頤齋遺藁 卷23 梅堂慕亭二楊公小傳》 원방(元方)과 계방(季方)은 후한(後漢)의 진기(陳紀)와 진심(陳諶)의 자(字)인데, 형제가 모두 재주가 뛰어나 난형난제(難兄難弟)로 불렸다. 《後漢書 卷62 陳寔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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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군 운약에게 써 준 서문 贈鄭君雲躍序 지금까지 영남 내의 여러 군(君)들을 전별하며 말을 해준 것이 다소 없지 않지만, 유독 운약(雲躍)의 요청에 더욱 감히 말을 해주지 못하는 것은 어째서인가?나와 운약은 지난봄에 뇌룡정(雷龍亭)127)에서 한 번 만나고, 지금 또 화엄사(華巖寺)에서 다시 만났으니, 교분이 오래되고 마음이 맞았다. 게다가 운약이 애산옹(艾山翁)128)의 종부제(從父弟)가 됨에랴. 그 교분과 정분으로 보면 구구하나마 한마디 말을 해주는 것이 반드시 다른 사람보다 뒤에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발굽에 고인 물은 바다를 구경한 눈에는 물로 보이기 어렵고, 반딧불의 빛은 촛불을 마주한 자리에서 빛이 되기 어렵다. 나는 운약에게 발굽에 고인 물이나 반딧불이 되겠지만 사양하지 못하는 바가 있어 털끝만큼이나마 보탬이 되려함은 어째서인가? 말을 해주지 않기를 바라지 않는 것은 군이 애산옹의 아우이기 때문이고, 감히 말을 해주지 못하는 것도 군이 애산옹의 아우이기 때문이다.명(明)나라의 유학자 방손지(方遜志 방효유(方孝孺))의 말에 이르기를, "사람들은 저명한 사람의 자손이 되는 것을 기뻐하지 않음이 없지만, 일반 사람의 자손이 되는 것보다 더욱 어렵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라고 하였는데, 비단 자손만이 그러할 뿐만 아니라, 친속(親屬 친족)의 경우도 그렇다. 선(善)은 크지 않으면 책무에 걸맞을 수 없고, 악은 비록 작더라도 오히려 조롱을 끼칠 수 있으니, 운약은 이것을 알고 있는가? 내가 운약에게 말을 해주지 않는다면 그만이겠지만, 만약 말을 해준다면 이 말보다 먼저 말해줄 것이 없으니, 운약은 힘쓰기 바란다. 今爲嶺中諸君之別。不無多少贈言。而獨於雲躍之請。尤有所不敢者何哉。吾與雲躍。去年春。一見於雷龍亭。今又再見於華巖寺。舊交矣心契矣。而又爲艾山翁從父弟乎。以其契誼。則區區一言之贈。必不在他人之後矣。然蹄涔之滴。難爲水於觀海之眼。螢爝之光。難爲照於對燭之筵。吾於雲躍。爲蹄涔螢爝。有所不辭。而其絲毫之補何。不欲無言者。爲艾翁之弟故也。不敢有言者。亦艾翁之弟故耳。明儒方遜志有言曰。人莫不喜爲名人子孫。而不知其尤難於衆人。非但子孫爲然。在親屬亦然。善不大。則不足以稱其責。惡雖小。而猶足以貽其譏。雲躍知之乎。吾於雲躍。不告則已。如告之。則無有先於此者。願雲躍勉之。 뇌룡정(雷龍亭)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이 45세 때 모친의 상을 당하고 고향인 삼가(三嘉) 토동(兎洞)에서 여묘를 마친 뒤에 이곳에 세운 정자로, 60세까지 강학(講學)하는 장소로 이용하였다. 애산옹(艾山翁) 정재규(鄭載圭, 1843~1911)로 애산은 그의 호이다. 자는 영오(英五)ㆍ후윤(厚允)이고, 호는 노백헌(老柏軒)이며,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경상남도 합천군 쌍백면 묵동에서 살았으며, 일신재(日新齋) 정의림(鄭義林)ㆍ대곡(大谷) 김석구(金錫龜)와 더불어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문하의 3대 제자로 불리었다. 저서로 《노백헌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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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탄 無薯歎 대지의 백성 식량은 날로 어려우나 大地民食日以艱나는 구학125)의 근심을 먼저 끊었네 吾人先切溝壑憂벼 조 기장 피는 원래 분수 아니고 稻梁黍稷元非分밀 보리 팥 콩도 도모하기 어렵네 來牟豆菽猶難謀고구마만이 내 식량으로 적당하니 惟有甘薯宜吾食곡물에 비해서 거두기가 용이하네 比諸穀物容易收봄에 싹 터 여름에 심고 가을에 캐니 春苗夏種秋而採팔뚝만큼 큰 뿌리가 내 집에 가득하네 根大如腕盈我屋생으로 먹든 익혀 먹든 불가함이 없고 生食熟食無不可술 밥 떡을 마음대로 할 수가 있네 酒飯與餠惟所欲줄기는 나물로 잎으로는 국을 만들고 莖爲菜兮葉爲羹넝쿨도 땔감으로 만들려면 말려야 하네 蔓亦爲薪須乾曝청성126)이 이 물건 있는 줄 일찍 알았다면 淸聖早知有此物수양산 기슭에서 고사리 캘 필요 없었으리 不必采薇首陽麓나에게 황무지를 새로 개간한 밭이 있으니 我有荒地墾新田이걸 심으면 풍족한 생활 되기에 넉넉하리 種此優作餘生活그 가운데에 말만큼 커다란 초가집을 짓고 中置草廬如斗大담서실이란 세 글자로 편액을 달았네 扁以三字啖薯室여기서 담소하고 여기에서 먹고 휴식하며 爰是言笑爰食息게로기 먹었던 채옹127)과 짝이 되고 싶었네 蔡翁啖薺擬作匹어찌하여 금년엔 날씨가 너무나 가물었나 夫何今年天亢旱봄에 난 싹이 일찌감치 쑥쑥 자라지 못했네 春苗早已未長茁심은 것이 많지 않은데다가 말라 죽었으니 種不多兮更枯死백지128)에는 부질없이 잡초만 무성해졌네 白地空自草桀桀아, 하늘이 우리들에게 嗚呼皇天於我輩이런 곤궁함을 내리니 얼마나 큰 액운인가 降此窮困一何厄걱정 번뇌가 옥처럼 이룬다129)고 말하지 말라 莫云憂戚庸玉成건어물 가게에서 찾을 신세130)를 어찌하겠나 其如薧魚肆中索요절과 장수함에 의심하지 않을131) 뿐 아니라 除非夭壽無貳心하늘의 처분 기다리며 조용히 숨을 죽이네 俟天處分靜屛息다행히도 그날그날 견디며 살아가다 보면 如幸得過且過也내년에는 그래도 다시 고구마를 먹게 되리 明年猶復此薯食 大地民食日以艱, 吾人先切溝壑憂.稻梁黍稷元非分, 來牟豆菽猶難謀.惟有甘薯宜吾食, 比諸穀物容易收.春苗夏種秋而採, 根大如腕盈我屋.生食熟食無不可, 酒飯與餠惟所欲.莖爲菜兮葉爲羹, 蔓亦爲薪須乾曝.淸聖早知有此物, 不必采薇首陽麓.我有荒地墾新田, 種此優作餘生活.中置草廬如斗大, 扁以三字啖薯室.爰是言笑爰食息, 蔡翁啖薺擬作匹.夫何今年天亢旱? 春苗早已未長茁.種不多兮更枯死, 白地空自草桀桀.嗚呼皇天於我輩, 降此窮困一何厄?莫云憂戚庸玉成, 其如薧魚肆中索.除非夭壽無貳心, 俟天處分靜屛息.如幸得過且過也, 明年猶復此薯食. 구학(溝壑) 시궁창과 산골짜기로,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는 것을 형용하는 말이다. 청성(淸聖) 깨끗한 성인(聖人)이라는 뜻으로, 백이(伯夷)를 가리킨다. 《맹자》 〈만장 하(萬章下)〉에 이윤(伊尹)ㆍ백이(伯夷)ㆍ유하혜(柳下惠)ㆍ공자(孔子)의 행적을 열거하면서, "이윤은 성인 중에 천하를 구제하기로 자임한 자이고, 백이는 성인 중에 깨끗한 자이고, 유하혜는 성인 중에 화(和)한 자이고, 공자는 성인 중에 때에 알맞게 행한 자이다.〔伊尹聖之任者也, 伯夷聖之淸者也, 柳下惠聖之和者也, 孔子聖之時者也.〕" 하였다. 게로기 먹었던 채옹(蔡翁) 송(宋)나라 유학자 채원정(蔡元定)이 서산(西山)에서 공부할 적에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하여 게로기를 캐어 먹었던 일을 말한다. '제(薺)'는 제니(薺苨) 혹은 게로기라고도 하는데, 사삼(沙蔘)과 비슷한 다년생 식물이다. 《송사(宋史)》 〈채원정열전(蔡元定列傳)〉에 "서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배고픔을 참고 게로기를 캐어 먹으며 글을 읽다가, 주희의 명성을 듣고는 그를 찾아가서 스승으로 섬기고자 하였다. 주희가 그의 학문 실력을 시험해 보고는 크게 놀라면서 '이 사람은 나의 오래된 벗이라고 할 것이니, 제자의 반열에 두어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다.〔登西山絶頂, 忍饑啖薺讀書, 聞朱熹名, 往師之. 熹扣其學, 大驚曰: 此吾老友, 不當在弟子列.〕"라는 기록이 나온다. 백지(白地) 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아 거두어들일 것이 없게 된 땅을 말한다. 걱정……이룬다 고난과 시련을 통해 사람이 옥처럼 훌륭하게 완성된다는 말이다. 송(宋)나라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 "빈천과 우척은 너를 옥처럼 다듬어 완성시키는 것이다.〔貧賤憂戚, 庸玉汝於成也.〕" 하였다. 건어물……신세 현재의 곤경을 해결하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을 말한다. 《장자(莊子)》 〈외물(外物)〉에, 붕어 한 마리가 수레바퀴 자국의 고인 물에 있으면서 길 가는 장주(莊周)에게 한 말이나 한 되쯤 되는 물을 가져다가 자신을 살려줄 수 있겠느냐고 하므로, 장주가 장차 오월(吳越) 지방으로 가서 서강(西江)의 물을 끌어다 대주겠다고 하자, 그 붕어가 화를 내며 "나는 지금 당장 한 말이나 한 되쯤의 물만 얻으면 살 수 있는데, 당신이 이렇게 엉뚱한 말을 하니 일찌감치 나를 건어물 가게에서 찾는 것이 낫겠다.〔吾得斗升之水然活耳, 君乃言此, 曾不如早索我於枯魚之肆.〕"라고 한 내용이 보인다. 요절과……않을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보이는 말로, "마음을 보존하여 성(性)을 기르는 것은 하늘을 받들어 섬기는 일이고, 일찍 죽고 오래 사는 것에 의혹을 품지 않고서 몸을 닦으며 기다리는 것은 천명을 세우는 일이다.〔存其心, 養其性, 所以事天也; 夭壽不貳, 修身以俟之, 所以立命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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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의사155)를 기리며 3수 설진영(薛鎭永)이 순창에서 거주하였는데 성씨를 바꾸는 변고가 생기자 우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 贊薛義士【鎭永2)居淳昌, 改姓之變, 投井而死.○三首】 공과 같은 높은 절개는 세상에 없었으니 高節如公世所無의리 취해 저버리지 않은 선유를 배웠네 取熊不負學先儒성명을 보전하여 돌아가 조상을 모시니 保全名姓歸陪祖그 하늘만을 보았지 몸을 보지 않았네 但見其天不見軀큰 것을 잃고 작은 살갗 기를 줄만 아니156) 失大惟知養小膚분분한 속인들은 눈썹 수염에도 부끄러우리 紛紛俗輩愧眉須청컨대 우뚝 선 동전자157)를 보라 請看卓立銅田子너무 차이가 나 품성이 다른가 의심스럽네 懸絶還疑稟性殊공을 조문하여 공연히 탄식할 필요 없으니 吊公不用謾歎吁우리 유림에 장부 있음을 스스로 축하하네 自賀吾林有丈夫멀리서 서풍 아래 세 번 술을 따라 올리니 遙酹西風三酌酒긴 무지개가 저녁에 해산 모퉁이에 일어나네 長虹暮作海山隅 高節如公世所無, 取熊不負學先儒.保全名姓歸陪祖, 但見其天不見軀.失大惟知養小膚, 紛紛俗輩愧眉須.請看卓立銅田子, 懸絶還疑稟性殊.吊公不用謾歎吁, 自賀吾林有丈夫.遙酹西風三酌酒, 長虹暮作海山隅. 설 의사(薛義士) 설진영(薛鎭永, 1869~1940)을 말한다. 본관은 순창(淳昌), 자는 도홍(道弘), 호는 남파(南坡) 또는 율재(栗齋)이다. 기우만(奇宇萬)의 문인으로, 1895년(고종32) 민비(閔妃)가 시해되자 기우만을 따라 의병을 일으켜 장성ㆍ나주 등지에서 왜병과 싸웠다. 1910년 국권강탈을 당하자 아미산(峨嵋山) 남쪽 기슭에 남파서실(南坡書室)을 짓고 두문불출하면서 학문 연구와 후진 교육에 심혈을 기울였다. 1940년 일제가 조선민족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이를 거부하여 맹세코 성을 고치지 않겠다는 절명시(絶命詩) 2절과 유서를 남기고 우물에 투신하여 자결하였다. 저서로 《남파유고(南坡遺稿)》가 있다. 큰……아니 《맹자》 〈고자 상(告子上)〉의 "먹고 마시기만 하는 사람은 남이 천하게 여기니, 작은 것을 길러 큰 것을 잃기 때문이다.〔飲食之人, 則人賤之矣, 爲其養小以失大也.〕"라고 한 대목을 말한다. 동전자(銅田子) 설진영(薛鎭永)을 가리킨다. 순창 설씨는 순창군 금과면 동전리 등에 가계가 이어져 동전리의 지명을 본 따 동전 설씨(銅田薛氏)로도 불린다. 永 底本에는 "泳".《淳昌薛氏族譜》에 근거하여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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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치실 신연 과 이별하며 5수 別黃致實【信淵○五首】 천리 길을 왕래하는데 往來千里路아쉽게 설날160)에 이별하네 怊悵三朝別어찌하여 너무나 바쁜가 胡爾太悤悤슬프게도 궁귀161)가 빼앗네 傷哉窮鬼奪술도 없이 즐겁게 노닐다가 無酒以遨遊죽을 끓여 마주 앉아 마시네 煮饘相對歠누가 예절이 엉성하다 말하랴 誰言禮節疎친의가 친밀하기 때문이었네 爲是親誼密선군 생각하라는 말로 그대 권면하니162) 勖子先君思수없이 꺾이더라도 굽히지 말게 不回經百折그저 증별의 말로 대신하였으니 聊將當贈言아무쪼록 오늘을 잊지는 말게나 愼勿忘此日구당163)은 지금 세상의 길이요 瞿塘今世程구렁텅이는 내 집안의 방이네 溝壑吾家室훗날의 만남이 있을까 없을까 後會有乎不근심하는 마음만 괜히 산란하네 憂心空惙惙행색이 차츰차츰 멀어지니 行色看看遙무엇을 잃은 듯 멍해지네 茫然如有失눈이 희미해져 머리 돌리니 眼迷方首回나도 모르게 눈물 쏟아지네 不覺淚河決 往來千里路, 怊悵三朝別.胡爾太悤悤? 傷哉窮鬼奪.無酒以遨遊, 煮饘相對歠.誰言禮節疎? 爲是親誼密.勖子先君思, 不回經百折.聊將當贈言, 愼勿忘此日.瞿塘今世程, 溝壑吾家室.後會有乎不? 憂心空惙惙.行色看看遙, 茫然如有失.眼迷方首回, 不覺淚河決. 설날 원문의 '삼조(三朝)'는 세(歲)ㆍ월(月)ㆍ일(日)의 아침으로, 정월 초하루를 일컫는 말이다. 궁귀(窮鬼) 항상 사람에게 달라붙어서 그 사람을 곤궁하게 만드는 귀신이라는 뜻이다. 당(唐)나라 한유(韓愈)가 일찍이 자신을 괴롭히는 지궁(智窮), 학궁(學窮), 문궁(文窮), 명궁(命窮), 교궁(交窮) 등 다섯 궁귀(窮鬼)를 쫓아 버리겠다는 뜻으로 〈송궁문(送窮文)〉을 지은 데서 유래한 말이다. 선군……권면하니 《시경》 〈연연(燕燕)〉에 "선군(先君)을 생각하라는 말로써 과인을 권면하도다.〔先君之思, 以勖寡人.〕"라고 한 표현을 끌어온 것이다. 구당(瞿塘) 중국 사천성(泗川省) 삼협(三峽)의 하나인 구당협(瞿唐峽)을 말한다. 이곳은 강 양쪽 언덕이 가파르게 높이 치솟은데다가 골짜기 어귀의 강 가운데 염여(灎澦)라는 큰 바위가 서 있어 물살이 몹시 사납기 때문에 이곳을 지나는 배들이 많이 전복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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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의 〈증과암〉 시에 보운(步韻)497)하다 2수 步敬山《贈果菴》韻【二首】 예로부터 한 뜻이 삼군보다 나았으니498) 從來一志勝三軍이해에 대해 언제 무게를 따졌던가 利害何曾較兩斤모두 가르침 받들고 스승 높일 책임 있으니 奉訓尊師均有責원컨대 힘을 합쳐 음산한 구름을 쓸어내세 願言同力掃陰雲인은 곡식 씨앗 같고499) 씨앗엔 뿌리 있으니 仁爲穀種種有根가을 열매가 끝내 익는 것도 봄에 시작되네 秋實終成厥始春좋아하고 미워할 수 있는 그대는 어진 사람이니500) 好惡知君仁者是향리에서는 드물게 그 후손을 번창케 하리라 必昌其後罕鄕隣 從來一志勝三軍, 利害何曾較兩斤?奉訓尊師均有責, 願言同力掃陰雲.仁爲穀種種有根, 秋實終成厥始春.好惡知君仁者是, 必昌其後罕鄕隣. 보운(步韻) 두 수 이상으로 된 다른 사람의 연작시 운을 따라서 차례대로 차운(次韻)하여 시를 짓는 것을 이른다. 화답시 중에 뜻은 문답하는 것 같으나 다른 운부(韻部)를 사용하는 것을 '화시(和詩)'라고 이르며, 운부는 같으나 글자가 다른 것을 '화운(和韻)', 글자는 같으나 순서가 다른 것을 '용운(用韻)', 순서까지 모두 같은 것을 '보운(步韻)'이라고 한다. 한……나았으니 《논어》 〈자한(子罕)〉에 "삼군을 거느리는 장수(將帥)는 빼앗을 수 있으나, 필부의 뜻은 빼앗을 수 없다.〔三軍可奪帥也, 匹夫不可奪志也.〕"라고 한 것을 말한다. 인(仁)은……같고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서 "인은 인심이다.〔仁, 人心也.〕"라고 말한 것에 대해, 주희가 주석에서 "정자가 말한 '마음은 곡식의 씨와 같고 인은 생생의 이치이다.'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程子所謂心如穀種, 仁則其生之性是也.〕"라고 한 것을 말한다. 능히……사람이니 《논어》 〈이인(里仁)〉에 공자가 말하기를 "오직 인자만이 사람을 제대로 좋아하고 사람을 제대로 미워할 수 있다.〔惟仁者, 能好人, 能惡人.〕"라는 내용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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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암유고》129) 서문 雲巖遺稿序 《주역》에 이르기를, "절개가 돌처럼 단단한지라 하루를 마치지 않고 떠나가니, 정하고 길하다."130)라고 하였는데, 부자(夫子 공자)가 이 말을 찬미하여 말하기를, "절개가 돌처럼 단단하니, 어찌 하루가 다하기를 기다리겠는가. 바로 결단함을 알 수 있다. 군자는 기미를 알고 드러남을 알며, 유순함을 알고 강함을 아니, 수많은 사람이 우러러본다."131)라고 하였다. 송자(宋子 송시열)가 《춘추》나 《자치통감강목》과 같은 역사서에 기록된 소중옹(疏仲翁)132)을 안타깝게 여겨 대서특필한 것이 이 때문이 아니겠는가.운암옹(雲巖翁)은 젊은 나이로 벼슬길에 올라 대직(臺職)133)을 역임하고, 명성과 덕망이 드높아 융중한 자리에 의망(擬望)될 것으로 기대되었으니, 한 고을을 다스리는 수령이 되어 어버이를 빛나게 하고 만종(萬鍾)의 봉록으로 어버이를 봉양하는 것들이 앞날에 차례대로 있을 일로 기약되었다. 그러나 기미를 보고 용감하게 결단하여 호연(浩然)하게 〈귀거래사(歸去來辭)〉134)를 읊으며 고향으로 돌아와 구름이 걸쳐 있는 적막한 숲속에서 화락한 모습으로 유유자적하며 노닐었다. 아, 나아갈 줄만 알고 물러날 줄 모르며, 얻을 줄만 알고 잃을 줄 몰라 승두(升斗)만한 조그마한 이익에 턱을 늘어뜨린 채 부유한 사람들이 가엾게 여기며 주는 음식에 침을 흘리는 사람이 어찌 이러한 의리를 알 수 있겠는가.평소에 지었던 문고(文稿)는 산실되어 수습하지 못하였고, 만년에 주워 모은 것들 사이에서 얻은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나 세상에서 《춘추》나 《자치통감강목》과 같은 역사서의 붓을 잡는 사람들이 송자(宋子)가 소중옹(疏仲翁)을 가엾게 여긴 것처럼 반드시 그를 대서특필하여 백세토록 썩지 않게 할 것이니, 보잘 것 없는 문고가 있든 없든 또는 많든 적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다만 자손의 마음에 그것들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에 삼가 모아서 약간을 엮었을 따름이다. 易曰。介于石。不終日貞吉。夫子贊之曰。介如石。焉用終日。斷可識矣。君子知微知彰。知柔知剛。萬夫之望。宋子哀疏仲翁所以見與於春秋綱目之書。而大書特書者。其不以是耶。雲巖翁少年釋褐。歷踐臺職。聲望藹蔚。期擬隆重。專城之榮。萬鍾之養。此其前頭次第事耳。然而見幾勇決。浩然賦歸。囂囂徜徉於雲林寂寞之中。嗚呼。知進而不知退。知得而不知喪。朶頤於升斗之利。垂涎於輕肥之憐者。曷足以知此等義諦耶。平日文稿散逸不收。而得於晩後掇拾之間者。亦無幾焉。然世之秉春秋綱目之筆者。必將大書特書。使之不朽於百世。如宋子哀疏仲翁。何待於區區文稿之有無與多寡哉。但子孫之心。不欲其泯然。謹輯之爲若干編云耳。 운암유고 대한제국 때 장흥(長興) 출신의 문신 정두흠(鄭斗欽, 1832~1901)의 문집인 《雲巖集》을 말하는 것으로, 1918년에 아들 제하(濟夏)가 편집ㆍ간행하였다. 권두에 정의림(鄭義林)의 서문이 있고, 4권2책이며, 목활자본이다. 운암은 정두흠의 호이고, 자는 응칠(應七)이며,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처음 최상관(崔相琯)에게 글을 배웠고, 뒤에 이항로(李恒老)를 사사하였다. 1879년(고종 16)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주서에 임명되었고, 성균관전적, 사간원정언을 거쳐 사헌부지평에 이르렀다. 개항에 반대하여 양이(壤夷)의 노선을 주장하였고, 〈만언소(萬言疏)〉을 올렸으나 뜻이 이루어지지 않자 용퇴를 결의하고 향리로 돌아왔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극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절개가……길하다 《주역》 〈예괘(豫卦) 육이(六二)〉에 보인다. 절개가……우러러본다 《주역》 〈계사하전(繫辭下傳)〉에 보인다. 소중옹(疏仲翁) 벼슬길에서 한창 득의(得意)했을 때 미련 없이 물러나 초야에서 자신의 지조를 지켰던 옛 인물이다. 대직(臺職) 대간(臺諫)인 사헌부(司憲府)와 사간원(司諫院)의 관직을 말한다. 귀거래사(歸去來辭) 중국 진(晉)나라 도연명(陶淵明)이 팽택 영(彭澤令)이 되었다가 80여 일 만에 그만두고 전원으로 돌아오면서 지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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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경에게 써 준 서문 贈曺彛卿序 조군 이경(曺君彛卿)은 선정신(先正臣)의 후예이며 법도 있는 집안의 자제로 아름다운 자질을 지니고 있고, 현철한 사우(師友)가 있어서 시례(詩禮)135)와 학문의 가르침에 종사하였으니, 참으로 이른바 "더불어 학문을 할 수 있고, 더불어 도에 나아갈 수 있다."136)라는 말에 해당하는 사람이라 하겠다.아, 서계(書契)137)가 만들어진 이후로 책 읽는 사람을 어찌 한정할 수 있겠으며, 십실(十室)138)이 형성된 이후로 충신(忠信)의 자질을 지닌 사람을 어찌 한정할 수 있겠는가.그러나 그 도를 듣고 천하 후세에 법을 드리운 사람은 얼마 없었으니, 그 까닭이 어디에 있겠는가? 바라건대 이경은 이것을 돌이켜 구하여 통렬하게 성찰해야 할 것이다.사람으로 말하면 성인을 표준으로 삼고, 학문으로 말하면 도를 표준으로 삼아서 털끝만큼이라도 지극하지 못하거든 우리의 일에 결함이 있다고 여긴다면 자연히 이치를 가까이 하는 마음이 절실하여 저절로 그만둘 수 없게 될 것이다. 훗날 호남 고을에서 도를 창도한 기풍이 동남쪽 사이에서 크게 떨쳐졌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면, 나는 이경의 한 무리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여길 것이다. 曺君彛卿。以先正裔孫。法家子弟。有姿質之美。有師友之賢。而從事於詩禮學問之敎。眞所謂可與共學。可與適道者也。嗚呼。書契以後。讀書者何限。十室以往。忠信之質何限。然而聞其道而垂法於天下後世者。無幾焉。其故何居。願彛卿於此。反求而痛省之。言人則以聖爲準。言學則以道爲準。以爲一毫未至。便是吾事有闕。則自然切實近理。自住不得矣。他日湖鄕。若聞有倡道之風。大振於東南之間。則吾以爲出於彛卿一隊人也。 시례(詩禮) 가정에서 조부나 부친으로부터 전해지는 가학(家學)을 비유하는 말로, 공자가 뜰에 혼자 서 있을 때에 아들 이(鯉)가 지나가자 그에게 시(詩)와 예(禮)를 배웠는가 물어보고 그것의 중요성을 일러 주며 공부하라고 훈계한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論語 季氏》 더불어……있다 《논어》 〈자한(子罕)〉에 공자가 말하기를 "더불어 학문을 함께 할 수 있어도 함께 도에 나아갈 수는 없으며, 함께 도에 나아갈 수는 있어도 함께 설 수는 없으며, 함께 설 수는 있어도 함께 권도를 행할 수는 없다.[可與共學, 未可與適道; 可與適道, 未可與立; 可與立, 未可與權.]"라고 한 데에서 인용한 말이다. 서계(書契) 상고 시대에 나무에 새겨 썼다는 최초의 문자를 말하는 것으로, 《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상고에는 노끈을 묶어 뜻을 전하여 다스렸는데, 후세에 성인이 서계로 바꾸었다.[上古結繩而治, 後世聖人易之以書契.]"라는 글이 보인다. 십실(十室) 조그마한 고을을 비유하는 말로, 《논어》 〈공야장(公冶長)〉에 공자가 말하기를 "10여 가구 되는 조그만 고을에 반드시 나[丘]처럼 충신한 자가 있겠지만, 나처럼 학문을 좋아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十室之邑, 必有忠信如丘者焉, 不如丘之好學也.]"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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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천태산에 오르다 2수 偶上天台山【二首】 유유한 내 그리움은 강물처럼 길어 悠悠我思漢河長아득한 하늘 한쪽을 멀리 바라보네 極目杳然天一方무슨 생각으로 숲에서 앉고 눕는가 底意林間聊坐臥무단히 바위 위에서 혼자 방황하네 無端石上獨彷徨다정한 이웃 떡으로 배고픔 달래고 多情隣餠療飢腹사리 아는 아이의 술로 갈증을 푸네 解事兒樽沾渴腸가슴속 번뇌를 씻어내는 게 상쾌하나 滌過胸煩雖一快읊으며 돌아온 증광164)을 배우려 할까 詠歸詎擬學曾狂오래 세상 구경하며 길이 해를 보내고 싶어 久觀我欲度年長세상 밖으로 벽곡165)의 방법을 찾아 나섰네 物外行尋辟穀方유럽 아시아의 풍조에 질병의 고통이 생겨 歐亞風潮生疾痛영주산 천태산의 산천에서 혼자 방황하네 瀛台泉石獨彷徨어찌 성현이 남긴 가르침을 생각지 않는가 盍思聖哲曾垂訓한스럽게 선비의 무리도 마음을 바꾸었네 可恨儒流亦變腸아무리 따져 봐도 모두 부질없는 생각이니 算去算來皆謾想무하향166)에서 술에 취해 광인이 되리라 無何鄕裏醉成狂 悠悠我思漢河長, 極目杳然天一方.底意林間聊坐臥? 無端石上獨彷徨.多情隣餠療飢腹, 解事兒樽沾渴腸.滌過胸煩雖一快, 詠歸詎擬學曾狂?久觀我欲度年長, 物外行尋辟穀方.歐亞風潮生疾痛, 瀛台泉石獨彷徨.盍思聖哲曾垂訓? 可恨儒流亦變腸.算去算來皆謾想, 無何鄕裏醉成狂. 증광(曾狂) 광(狂)은 뜻만 크고 행실이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이르는데, 광이란 호칭을 받았으므로 증광이라 한 것이다. 《論語 先進》 벽곡(辟穀) 화식(火食) 하지 않고 생식을 하는 도가(道家)의 양생법(養生法)을 말한다. 무하향(無何鄕)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으로, 흔히 이상향(理想鄕)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장자가 혜자(惠子)와 더불어 논변하면서 말하기를 "현재 당신은 큰 나무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이 쓸데가 없다고 걱정하고 있는데, 어찌하여 그 나무를 아무것도 없는 고장, 광막한 들판에다가 심어 놓고서, 하는 일 없이 그 곁을 왔다 갔다 하거나 그 아래에서 노닐다가 드러누워 낮잠을 자지 않는가?〔今子有大樹, 患其無用, 何不樹於無何有之鄕廣莫之野, 彷徨乎無爲其側, 逍遙乎寢臥其下?〕"라고 하였다. 《莊子 逍遙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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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극경501)의 〈야귀재〉 시에 차운하다 次吳極卿《夜歸齋》韻 일만 솔 깊은 곳에 초가집 하나 있으니 萬松深處一茅堂자나 깨나 안풍502)을 누가 감히 잊으랴 寤寐安豊詎敢忘물 맑은 밭고랑엔 싹이 크는 걸 보겠고 水白田間看苗碩등불 푸른 책상에는 운초503)의 향기 있네 燈靑案上有芸芳문을 나섬에 어디에 발을 디딜 수 있을까 出門何地堪投足도를 걱정해 애가 끊이지 않은 적 없었네 憂道無時不斷腸썰렁한 지금의 사업일랑 얘기하지 말게나 泠淡休言今事業훗날 태괘의 양이 자라는504) 좋은 기반이니 好基他日泰陽長 萬松深處一茅堂, 寤寐安豊詎敢忘?水白田間看苗碩, 燈靑案上有芸芳.出門何地堪投足? 憂道無時不斷腸.泠淡休言今事業, 好基他日泰陽長. 오극경(吳極卿) 극경은 오병수(吳秉壽, 1883~1961)의 자이다. 본관은 함양(咸陽), 호는 수산(壽山)이다. 사호(沙湖) 오익창(吳益昌)의 후손으로, 전북 고창군 아산면 죽산(竹山)에서 출생하여 종숙 호산(壺山) 오죽하(吳竹下)의 문하에서 배웠다. 저서에 《수산집》 5권 3책이 있다. 안풍(安豐) 당(唐)나라 사람으로 안풍에 은거한 고사(高士) 동소남(董召南)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오병수를 가리킨다. 동소남은 진사과에 낙방한 다음 고향으로 돌아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주경야독하면서 살림을 잘 꾸려서 부모를 편안하게 모시고 처자식이 근심이 없도록 하니, 그의 벗 한유가 〈동생행(董生行)〉이란 노래를 지어 그를 칭찬하였다. 《五百家注昌黎文集 卷2》 운초(芸草) 향내 나는 풀로 책이 좀먹는 것을 방지한다. 태괘(泰卦)의 양(陽)이 자라는 1월에 해당하는 태괘는 양(陽)인 군자가 안에 있고 음(陰)인 소인이 바깥에 있으니 군자의 도가 자라나고 소인의 도는 소멸되는 것을 비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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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치실 군이 멀리서 찾아왔다가 이별할 때에 최여중의 집에 함께 가서 세 사람이 회포를 펴다 무인년(1938) 黃君致實遠訪別時, 同至崔汝重家, 三人敍懷【戊寅】 세 벗505)의 난초 같은 말에 한 방이 향긋하나 三益蘭言一室芳문을 나서면 풍상이 들이치지 않는 곳이 없네 出門無處不風霜진나라 피할 망상에 복사꽃 뜬 물506)을 찾으나 避秦妄想尋桃水공자를 배우는 단방507)은 주자를 본받는 것이네 學孔單方法紫陽북리의 두터운 정에 돌아보는 마음 많았는데 北里厚情多眷眷서원의 높은 의기 또한 당당하네 西原高義亦堂堂하룻밤 옛사람의 글을 읽는 것보다 나으나 一宵勝讀前人語나는 무지하여 부끄럽고 감사하기 그지없네 而我空空愧感長 三益蘭言一室芳, 出門無處不風霜.避秦妄想尋桃水, 學孔單方法紫陽.北里厚情多眷眷, 西原高義亦堂堂.一宵勝讀前人語, 而我空空愧感長. 세 벗 원문의 '삼익(三益)'으로, 세 사람의 유익한 벗이라는 말이다. 《논어》 〈계씨(季氏)〉에 "유익한 벗이 셋이 있으니, 정직하고 성실하고 견문이 많으면 유익하다.〔益者三友, 友直, 友諒, 友多聞, 益矣.〕"라는 말이 나온다. 복사꽃 뜬 물 무릉도원(武陵桃源)으로, 세상을 피해 은거하는 곳 또는 이상향을 비유한다. 도잠(陶潛)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의하면, 동진(東晉) 태원(太元) 연간에 무릉의 한 어부가 일찍이 시내를 따라 한없이 올라가다가 문득 도화림(桃花林)이 찬란한 선경을 만났는데, 그곳에는 진(秦)나라 때 피란 온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단방(單方) 원래는 민간에서 전래되는 약방문으로, 한두 가지 약재를 쓰지만 신통하게 효력이 잘 나타나는 약을 말한다. 전하여 여기서는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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