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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梅山洪文敬公【直弼】 稟剛大直方之資致{土+灰}廓擴充之力婆娑邱壑之中確神龍之存身翶翔雲霄之上適儀鳳之覽德爛用紫陽之名論明天理而正人心光闡素王之大義尊中國而攘夷狄行庸德而有餘允矣{古+尸}矜其細守經事而不失卓乎先立其大嚴善利之判則截鐵斬釘炳事物之幾則靈蓍神蔡巖巖乎萬仞之壁汪汪若千頃之海自羅麗以來未有盛於先生吾知其爲大甫元氣之所會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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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삼산단재소(三山壇齋所) 통문(通文) 초(草)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三山壇齋所 澹對軒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1903 1957년 3월에 화순의 삼산단 재소에서 노사 기정진 선생 향사 문제로 장성 담대헌에 보낸 통문 초안. 1957년 3월에 화순(和順) 삼산단(三山壇) 재소(齋所)에서 장성(長城) 담대헌(澹對軒)에 노사 기정진 선생을 향사하는 문제로 보내는 통문(通文)의 초안이다. 삼산단 재소에 기정진과 정의림을 향사하는 것에 대해 당위성을 이야기하며 이는 사문에게 다행이며, 세상의 교화를 위해서도 다행이라고 적었다. 작성처인 삼산단 재소는 화순군 도곡면 대곡리에 있으며, '모모(某某)'가 연명하였다고 적고는 뒷면에 연명할 사람들의 이름을 한 줄당 한 명씩 단을 나누어 작성하였다. 이로 보아 이미 작성된 통문을 베낀 것이 아니라, 통문을 작성하기 위해 초안을 앞에 적고 뒷면에 연명할 사람들의 이름을 마련하며 한 사람씩 나열하여 적은 것으로 보인다. 배면에 나열된 사람들의 이름은 조석홍(曺錫鴻), 문중환(文中煥), 배석면(裴錫冕)등 총 26명이다. 화순의 도곡면 대곡리에 있는 삼산사(三山祠)는 노사 기정진, 일신재 정의림, 인산재 배현기 3위를 향사하고 있다. 1952년 2월 29일 삼산단(三山壇)을 설단(設壇) 석채(舍菜)하여 오다 1962년 4월 10일 본사우를 건립하여 매년 가을 9월 27일에 향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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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文右通諭事 惟我 蘆沙先生 以道大德宏學博行修幸 而作於我東群賢之後 折衷群言 其繼開之功 莫大於此 及門諸子 不爲不多 而卒爾得聞凉議猥筆之至 論祗二三止 日新齋鄭先生 以嫡傳之學 爲後學之高景 舍菜于鄙鄕之三山壇 有年所士林之公議 以爲知流而不知源 甚不可 將欲以 蘆沙先生躋享 事體極爲鄭重 誠不可踰禮 玆敢仰龥 伏願 僉君子 勿以人廢言齊會詢論 一以慰鄙等慕賢之微悃 一以扶叔世罔極之秉彛 則於斯文幸甚 於世敎幸甚右 敬 通 于澹 對 軒僉君子 座下丁酉三月日元綾州 道谷面 大谷里三山壇齋所某某等(背面)曺錫鴻文中煥裴錫冕梁會善朴魯學閔弘基梁炫承朴準台朴東春朴魯宗高昌柱安鍾起文元植文濟曄梁斗承盧在亨崔南杓梁在德文仁植金九炫徐廷彩李瀅昌程良基朴萬年金雷聲宗東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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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정헌규(鄭憲圭)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鄭憲圭 裵錫祉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59년 7월 27일, 고숙 정헌규가 배석지에게 자신에게 한번 찾아와 줄 것과 선고의 인출에 관한 소식을 궁금해 하는 내용으로 묻는 서간. 1959년 7월 27일, 고숙(姑叔) 정헌규(鄭憲圭)가 배석지(裵錫祉)에게 자신에게 한번 찾아와 주기를 바란다는 소망과 선고(先稿)의 인출(印出)에 관하여 궁금한 것을 묻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이다. 상대의 종형(從兄) 석열(錫烈)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뜻밖이라 마음속으로 놀랐다고 인사하고 상대가 비통함을 어떻게 견디는지 물었다. 상대의 가족 안부가 어떠한지 묻고 석초(錫初)는 종종 만나는지 묻고 자신이 소식을 물으러 가고 싶었지만 병 때문에 못했다고 말하며 지금은 너의 형제가 내게 한번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선고(先稿)를 인출하는 일에 관해서는 전에 사문 박동춘(朴同春)과 함께 의논하여 대개 어찌 할지 대책을 정했었는데 가을이 반이 넘도록 소식을 듣지 못해 답답하다고 했다. 원고 중에 더 보충해 넣기로 한 글은 일찍이 단절시켜 버렸는데, 소식이 막힘이 이와 같으니 혹시 그 사이 다른 까닭이 있어서 그런 것이냐고 물었다. 답답하여 대략 몇 글을 적는다며 상세하게 답장해 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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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배석지(裵錫祉)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裵錫祉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69년 12월 8일, 배석지가 신랑측에 혼인 일자를 보내며 날짜에 문제가 없는지 묻는 내용으로 쓴 서간. 1969년 12월 8일, 배석지(裵錫祉)가 신랑측에 혼인 일자를 보내며 그날이 괜찮은지 묻는 내용으로 쓴 서간이다. 혼인을 허락받아 매우 감사하다는 인사를 시작으로 늦겨울에 상대가 잘 계신지 안부를 묻고 자신은 예전처럼 지내고 있다고 인사했다. 약속대로 혼인 길일인 연길(涓吉)을 올린다며 혹시 이 날에 무슨 문제가 있을지를 묻고 편지를 마쳤다. 혼사를 치르는 과정에서 주고받는 예식 편지로 예장(禮狀)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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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직부(朴直夫) : 박경동(朴敬東, 1879~?)을 말한다. 자는 직부, 호는 신암(愼庵),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정의림의 문인이다. 與朴直夫【敬東】 【경동】에게 보냄뜻밖에 그대 종숙(從叔)께서 방문해 주어 조모와 모친의 기력이 강녕하신 줄 물어보고 알았으니, 그리워하던 나머지에 실로 듣고 싶은 마음에 부합되었네. 또 직부(直夫)는 요즘 더욱 더 부지런히 공부하여 문리가 크게 진보되었다고 들었으니, 위로와 기쁨을 말할 수 없네. 대저 소년들이 많은 가운데 이와 같이 마음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무니, "후생(後生)이 두려울 만하다."라는 것은 그대가 바로 그런 사람이 아닌 줄 어찌 장담하겠는가? 치지(致知)와 거경(居敬) 이것은 수레바퀴와 새의 날개처럼 두 가지가 나아가는 법이니, 여기에 다시 능히 유념하고 있는가? 자기 심신(心身)의 본원이 친절한 곳에 태만하여 검속하지 않고 한갓 반복하여 암송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것은 과연 어디에 쓰겠는가? 이것은 학자의 제일의 뜻이니, 맹렬히 반성하여 빨리 돌이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네. 힘쓰고 힘쓰시게. 지난번에 보낸 한 통의 편지는 혹 중간에 유실되었는가? 그렇지 않다면 어찌 편지를 보냈는데 답장이 없을 리가 있겠는가? 매우 의아스럽네. 선장(善長)11)과 자신(子愼)12) 등 여러 벗들은 모두 날마다 책상을 나란히 하여 공부하고 있는가? 料襮。得令從叔垂訪。叩認重堂氣力康旺。馳戀之餘。實副願言。且聞直夫比益加勤。文理大進云。慰喜不可言。大抵少年叢中。得如此立心人。甚鮮。安知後生可畏者。君非其人也。致知居敬。此是輸翼兩進法。未知於此更能留念否。於自己心身本原親切處。漫不檢攝。而徒以誦數爲業者。果何用也。此是學者第一義。不可不猛省而亟反之者也。勉之勉之。曩者所修一書。或至喬沈否。不然。豈有有言無答之理乎。可訝可訝。善長子愼諸友。皆逐日聯丌否。 선장(善長) 박인동(朴仁東)의 자이다. 자신(子愼) 박준민(朴準敏, 1879~?)의 자이다. 호는 괴하(槐下),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정의림의 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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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철【정선】에게 답함 答孫元哲【正宣】 한번 헤어지고 나서 산천이 막혀 소식이 끊어졌는데, 다만 꿈속에서 혼이 지척의 거리처럼 오가니, 인정이 무궁한 것을 깊이 깨닫네. 삼가 보내준 편지를 받으면서 또한 말을 전해준 자에게 들으니 대단히 기뻤네. 다만 추종하는 제자들을 응대하느라 마치 저자거리처럼 번잡하여 한 폭 답장을 써서 돌아가는 인편에 부치지 못하고서 인하여 시간을 끌다가 아직까지도 답장을 보내지 못하니 부끄러움을 말할 수 있겠는가. 일전 소식을 받은 뒤에 해가 바뀌었는데, 잘 모르겠네만 부모를 모시면서 건강이 좋은가, 걱정에 애가 탄다네. 조용히 생각해보니, 우리 그대가 부모를 모시고 남은 힘으로 부지런히 책을 읽는다면, 우리들의 본분인 실제를 숭상하는 업(業)에 한나라의 서유자(徐孺子)137)나 당나라의 동소남(董召南)138)을 오늘날에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니, 어찌 옛날에 이들만 아름다움을 독차지하게 한단 말인가. 바라건대 인편이 있으면 가끔 소식을 전하여 외롭고 쓸쓸한 나를 위로해주게나. 一審分張。山川間闊。而只有夢魂往來如咫尺。儘覺人情之無窮已也。謹承惠函。且得于言傳者。不啻津津。但追從應接。撓撓如市。未得修一幅謝儀以付回便。因以延拖。尙闕奉復。愧悵可道。信後歲改。未審侍餘體相百福。爲溯憧憧。竊念吾君省餘。勤讀於吾人本分實地之業。漢之徐孺子。唐之堇召南。加以復覩於今日。而安可專美於當時乎。幸因風。種種寓聲。以慰孤索否。 서유자(徐孺子) 서치(徐穉, 97~168)이다. 후한 예장(豫章)의 학자로 진번(陳蕃)의 우대를 받아 천거되었으나 조정에 나가지 않고, 직접 농사 지으며 공손 검약하여 고사(高士)로 불렸다. 명망이 있었으나 언론을 공손히 하여 당고의 화를 면하였다. 동소남(董召南) 당나라 때 안풍(安豐) 사람으로 은사(隱士)인데 한유(韓愈)가 〈동생행(董生行)〉이라는 노래를 지어 동소남이 주경야독(晝耕夜讀)하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처자식을 사랑하는 내용을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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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경【영주】에게 답함 答金汝擎【永柱】 자주 편지를 보내 진중한 뜻을 보여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러나 인편이 없어서 한 글자도 답장을 하지 못하였으니, 이 무슨 도리인가. 항상 미안하고 아쉽게 생각하였네. 잘 모르겠네만, 부모를 모시면서 건강하신가? 걱정하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네. 나는 노쇠함이 날로 심해지고 병이 날로 깊어 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으니, 그 모습을 말로 형용할 수 없네. 보내준 편지에서 길고 자세히 말한 것에서 학문에 매진하는 부지런함을 볼 수 있네. 다만 잘 모르겠네만 이번 겨울에 무슨 책을 연구하고 어떤 사람과 교유하면서 학문은 크게 발전하고 있는가. 대저 이 일은 다만 나의 뜻이 독실한가에 달려 있으니, 만일 뜻이 독실하지 못하면 치지(致知)와 거경(居敬), 몸으로 깨우치고 실천하는 등 제반 공부가 모두 뿌리를 둘 곳이 없게 되네. 바라건대 이를 헤아려서 더욱 노력하게나. 累書珍重。何等感祝。而便路無階。未有一字之答。此何道理。常常慊缺。未審侍省萬祉。瞻溯無任。義林衰朽日甚。疾病日劇。奄奄待盡。無足形喩。示喩縷縷。足見尙學之勤。但未知今冬溫理何書。遊從何入。而所就爲長長否。大抵此事。只在吾之篤志。志苟不篤。則致知居敬。體認踐履。諸般功夫。昔無地可據。幸惟諒此而勉勉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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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보경【치상】에게 답함 答呉輔慶【治相】 사성(士誠)이 찾아올 때 그대가 직접 쓴 편지를 받게 되었는데 겸하여 별지의 문목(問目)도 그 안에 들어 있었네. 봉투를 열어 살펴보고서 무한한 감회가 일었네. 오호라! 이 어찌 다만 안부를 묻는 편지이어서 그렇겠는가. 그대는 나에게 실로 집안 대대로 친하게 지내온 정의(情誼)가 있으니, 일반적으로 서로 아는 것에 비교할 것이 아니네. 더구나 그대의 현재 처지는 실로 타인과 다른 점이 있으니, 항상 못난 나는 걱정하는 마음을 견딜 수가 없다네. 자네가 지금 이미 각오를 다지고 뜻을 세워 외부의 한가로운 일을 물리치고서 문을 닫고 휘장을 내려서 부모를 봉양하고 집안일을 주관하는 여가에 이전 배운 학업에 침잠하여 쉬지 않고 부지런히 연마하였기에 편지 폭에 가득한 의문과 질문의 문목을 보니, 이 얼마나 좋은 소식인가. 대저 그대의 자질은 말이 적으면서도 온화하고 신실하며 생각이 트이고 영특하니, 참으로 이를 발판으로 나아간다면 어찌 끝내 여항의 평범한 사람에 그치겠는가. 덕스런 가문의 영광이요, 우리 유림의 다행이라네. 한마음으로 굳게 견지하여 노력하고 또 노력하게나. 士誠來.得奉手書。兼有別紙問目。披閱以還。感感無量。嗚呼。此豈但以書尺寒暄而然哉。君於我。實有通家之誼。而非尋常相知之比。況君今日情地。實有以異於人者。每不勝區區慰戀之私。今旣覺悟立志。謝絶外間悠悠之事。杜門下帷。養親幹蠱之餘。沈潛舊業。慥慥不休。疑難問目。滿紙盈幅。此是何等好消息耶.大抵君之姿質。沈黙溫良.開悟秀爽。苟能率是以進。豈終爲閭巷尋常人而止也。德門之光也。吾林之幸也。一心牢着。勉之又勉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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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우 【규석】에게 답함 答安景禹【圭錫】 종종 방문해 주어 이미 매우 감사한데, 더구나 안부를 묻는 편지가 계속 이어지니 어떠하겠는가? 나로 하여금 감탄하게 하네. 다만 노쇠하고 용렬한 나는 만 분의 일의 책임도 부응할 수 없는 것이 부끄러울 뿐이네. 편지를 받은 지 며칠이 지났는데, 어버이를 모시는 절도가 더욱 더 좋으며 밝은 창가 책상에서 침잠하여 연구하여 조리와 과정은 날마다 진보하고 있는가? 부형에 대해 자제는 계술할 책임이 있으니 부디 힘쓰고 노력하여 이 뜻을 저버리지 않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의림(義林)은 나이가 들수록 지업은 쇠퇴하여 신세가 가련한데, 단지 구구한 나의 일념은 벗들과 종유하는 사이에서 마칠 수 있는 것에 있지 않은 적이 없네. 그렇다면 여광(餘光)을 입어 만년에 회포를 부칠 수 있는 바탕이 되는 것이 또한 두텁지 않겠는가? 원컨대 그대는 힘쓰시게. 種種經過。已極感惻。況有書尺存訊。從以繼之乎。令人感歎。但衰索淺劣。無以副萬一之責。爲可愧耳。書後有日。侍旁節宣。益復勝迪。明窓棐几。況潛硏究。條緖程曆。日就長長否。父兄子弟。繼述有責。千萬勉力。勿孤此意。如何如何。義林年邁業退身事可憐只有區區一念未嘗不在於朋友遊從之間。爲可以了了耳。然則其所以得被餘光。而爲晩年寄懷之地者。不亦厚乎。願君勉之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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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화일【원식】에게 답함 答范華一【瑗植】 아름다운 복장과 얼굴에 좋은 풍모와 거동이 마음과 눈에 그윽하니, 어느 날인들 잊을 수 있겠는가? 한 폭의 편지를 뜻밖에 받았으니, 위로되고 후련한 마음 한자리에서 정답게 이야기 나누는 것과 다르지 않았네. 인하여 어버이 곁에서 화락하게 모시는 체후와 절도가 모두 복된 줄 알았으니, 벗이 듣고 싶은 것이 어찌 이것보다 더한 것이 있겠는가? 그대의 공부 또한 길이 진보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네. 편지에서 이른바 퇴보만 있고 진보는 없다고 한 것은 분비(憤悱)97)하여 반성하고 점검해야 할 곳이 아니겠는가? 의사를 너그럽게 가지고 과정을 엄격하게 세워 오래 되면 절로 도달하는 곳이 있을 것이니, 절대로 미적거리며 예전처럼 시간만 보내서는 불가할 것이네. 蘭衿芝宇。婉孌風儀。黯黯心目。何日可忘。一幅心畫。獲之不意。慰豁無異盍席款洽也。因審侍旁雍容。候節百福。知舊願聞。曷以愈此。盛課想亦長進。來喩所謂有退無進。非憤悱省檢處乎。寬着意思。嚴立課程。久之自有所到。切不可因循依樣以過時也。 분비(憤悱) 몰라서 분하게 여기고 표현을 못해서 답답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논어》 〈술이(述而)〉에 "분하게 여기지 않으면 내가 알려 주지를 않고, 답답하게 여기지 않으면 내가 틔워 주지를 않는다.〔不憤不啓, 不悱不發.〕"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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斗南朴先生 先生姓朴諱世經字濟而號斗南密城人 天啓丙寅【仁祖四年】生于古阜金井村 孝廟辛卯始得一解而曰余何人也貽親令名其不在要做好人耶自是棄場屋遂專意性學贄謁華陽宋夫子累年從學夫子曰樂善好義鮮與倫比而潛思力行殊是可愛授之心經先生益刻苦奮勵窮晝夜忘寢食必以黙識心融精思實得爲務夫子寄書曰爲聖爲賢何所不可以寓寄托之意歲甲寅夫子以禮論遭讒罔極以至遷謫南北先生泫然曰謀害吾師者無異袞貞棘籬之問蕪湖之儀未嘗或廢夫子答曰天怒大震方且席藁又曰外食之患日月斯棘又曰極有愍然之意如使蘇長公見之必笑兒女情又曰從遊之樂不可復得或賜管玄以資鉛槧庚申夏夫子宥歸先生欣然曰世道之幸吾輩之慶遂冒熱往候焉先生貧而屢空處之泊如謝絶名利惟道是樂夫子大書安貧守志靜裡乾坤八字而贈之以褒其賢丙寅四月九日卒享年六十一夫子輓之曰洛建之書世等閑嗟君來讀水雲間如今卄載成陳跡一望南天涕自潛有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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華陽夫子遺牘遺輓 卽玆新春盛皇如何此不幸前月遭子婦喪方謀埋葬悲撓度日耳日前留紙染汚已久而無便奉還今適因兵營便付去矣但前日所染半爲連山尹掌令取去今不免代以他紙而品劣可愧然勝於筆則遠矣餘冀新慶蔓茂不具【甲辰臘月立春】阻闊頗久變思常懸玆於金秀才行承拜墜翰慰瀉如對不容名言此比年入處深山杜門省咎忽以姊疾出來桑鄕有日矣惠來紙鰒深荷眷意也未涯奉際春寒多愛不宣○五花糖少許筆墨各一奉呈【丁未三月三日】聖考賓天摧隕難勝忽於遞中承拜問書甚慰傾溯之忱第審有分炙之憂爲之慮仰此罪戾山積天怒大震昨者來詣湖坼界方且席藁未知出場之如何耳每念昔日遊從之樂今不可復得則只令人悵歎也惠來十鰒良荷鄭重餘病倩不宣【甲寅十二月四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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別紙 昔年所講心經今已精熟否當時病冗未得對討卒業常用茹恨也若於此書得力則爲聖爲賢何所不可顧此愧負一生爾筆墨各一奉呈以資箚錄昔年臨訪每不能忘卽見遞中書如奉譚晤慰何可盡喩此不善之積殃禍未殄亡妻之服才闋而又哭長女悲傷之餘喘息僅存而外食之患日月斯棘自料在世似無多日矣靜俟而已惠魚此地所無珍荷無已相見無期寒節加愛【戊午十月二十五日】鬼事日迫不料其相聞也忽於便中承拜惠書如奉談晤極慰孤懷仍審侍奉之安此時所望豈外於是來薧此地所無病胃有賴良謝比患泄痢倩草不宣謹謝狀○臘劑藥糖各少許略表【己未二月二十七日】得書極有慰然之意如使蘇長公見之則必撫掌以爲兒女情矣此間事欲言則長黙會斯可矣相見無期惟祈加珍病倩不宣【己未九月二十三日】某頓首再拜言思想常懸忽於匪意承拜惠書且奉賢胤謹悉比來興寢之候旣慰且感無以爲喩某疾病支離生意僅僅正以此時 召旨荐疊蹜蹙之狀難以名言時運不幸年事大失塡壑之期不遠而邇公私之憂曷有其極祥期已迫伏祝節哀順變以副遠誠謹奉疏伏惟鑑察不備謹疏○祝文筆墨呈上【壬戌八月二十三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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華陽夫子簡帖跋【丁丑】 剛齋宋文簡公【稚圭】 斗南朴公世經我先祖尤菴文正公門人也公之後孫仁休自湖南之古阜齎公所得師門簡牘及大字數帒來尋舊誼其意甚勤余延見敍寒暄訖盥手奉閱其所齎者雖片言隻字間固有所感發人者而公之爲人與其爲學因亦可以想得矣蓋因材而篤是聖門敎人之法而程朱以來諸賢每以躐等爲戒於學者苟非公之篤志自修先生何以勉其精熟於心經而仍有得力於此爲聖爲賢何所不可之云耶公旣承此敎則其所奮勵尤當如何也且大字固有見逸不能全者而惟安貧守志四字亦可見期許之不草草矣此豈非後人之所不可不知者耶余方讀心經而衰頹已甚無復精熟得力之望玩繹此帖益愧其虛度壯年也遂略書感歎之意如此而仍爲朴君戒勗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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斗南朴先生遺墟碑 吏曹參判驪興閔丙承 華陽宋子有徒斗南先生處而在野其所樂堯舜之道而所覺天人之學也其方也曰講學省察涵養踐履曰致知力行曰立敬是猶四象之於兩儀兩儀之於太極而博約齊頭歸于有一未始有眹之先萬象咸具之妙皆性分事也朱夫子揭示規約嘉惠後學也井井有條而其歸巷顔莘摯已爾斯二賢出處不同其學其志曷嘗有二人有堯舜皆可之性故有堯舜君民之術而博濟堯舜所病所以古昔聖賢惟日不足者此也華陽之於當日風雲期會魚水密勿可謂千載一時而國羞未雪古道未純則尙何待於誰手哉剝極乃復此理之常夷獸之終而皇王之返歟是曷故焉嗚乎悲矣華陽之後聞道諸君子身顯名立各以理義爲芻豢講明案上之春秋而王者作來法在此斯亦謂一治之運歟先生長於春秋嘗言數萬文數千指大義只在尊周又好讀心近二書明於修己治人漆雕開之大意已見而斯未能信實築底絲麻饘粥優遊畎畝先子三年沒惜哉出則扶持以扶持處則不扶持以扶持是固華陽成法而先生之處何歉使久視其可親見是孰使然嗚乎悲夫先生諱世經字濟而姓朴氏密城玄巖處士載子 仁祖丙寅生焉弱冠時業場屋覺其非爲己遂棄之志存聖賢學究本源有見於太極性命之蘊道器眞靈之分而性情心詩云受天謂性性惟原成處須尋道義門理具吾人無不善每思鄒聖必稱言性之動處便謂情感外油然好惡萌思慮乃生難可禁胸中其奈物交爭心兮虛靜本雖臧一念纔生辨聖狂收了焉求他處得在吾要以察之詳說云此心寂然不動者性感於物而動者情運用性情者心動而情也由於性命是道心因於形氣是人心人心道心初未嘗相混故道心雖或失中不可謂之人心人心雖或得正不可謂之道心人心道心之界分如是其嚴而上智不能無人心者以有是形也人心何嘗不善不能察其過流於人欲則天理滅矣故此心之發惟察是力而於人尤加謹道常爲主則發無不中不患不到聖賢地位也其門人朴尙耈以四端理七情氣之說對擧而難之遂力辨云四端發於理者理無不善故也七情發於氣者氣有善惡故也其義不過如是非謂理先發氣先發耳無形無爲而爲主者理有形有爲而爲器者氣此雖石潭之訓而卽朱夫子之意太極雖爲陰陽之主而反爲陰陽所運用此雖師門之說而卽朱夫子之旨聖人起不易君輩但當遵而勿失無或別生意見也先生學益進志益高子奇之甚大書安貧守志靜裡乾坤八字而贈之以褒其賢及其歿也挽之曰洛建之書世閑嗟君來讀水雲間如今卄載成陳跡一望南天涕自潛嗚乎顔淵沒而夫子有喪予之慟石溪沒而溪上亦慟之先生沒而華陽亦慟之余謂此皆千古斯文之恨也今乎幾三百載舊宅之在黑巖者指點彷佛地不廢水不荒遂樹石識其事昭示來玆創之者金德煥金良載金鍾瀚李炳柱金基爀邊東午奇宇達崔秉道諸學人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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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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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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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60년 노문연원록간소(蘆門淵源錄刊所)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蘆門淵源錄刊所 淵源家 □…□(3.0×3.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1902 1960년 1월 14일, 노문연원록간소에서 1월 22일에 분질을 거행한다는 사실을 알리며 광주시의 임시 간소로 와 줄 것을 청하는 내용으로 각 군 연원가에 보낸 통문. 1960년 1월 14일에 노문연원록(蘆門淵源錄) 간소(刊所)에서 1월 22일의 분질(分秩) 거행을 알리며 때맞추어 광주시 임시 간소로 왕림해 줄 것을 청하는 내용으로 여러 군(郡)의 연원가(淵源家)에 보낸 통문(通文)이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선생의 문하를 기록한 연원록(淵源錄)이 3~4년의 시일을 더 끌고 마침내 간행되어 1월 22일에 책을 나누어 주고 정산(定算)할 것임을 알리며 이 날 광주시(光州市)에 있는 임시 간소로 왕림해 주어 훗날의 갈등이 생기는 폐단이 없도록 해 줄 것을 청한 내용이다. 본문의 뒤에 적힌 4항목에는 편집의 내용 및 책 차례, 무엇을 어떤 조항 아래에 기록했는지에 대한 것 등의 일러두기와 책값이 1질2책으로 백지(白紙)판은 4천환, 노지(魯紙)판은 2천500환이라는 것, 분질 장소는 광주시 계림동 1구 동화당약방(東和堂藥房)의 조규복(曺圭復) 방(方)이라고 적었다. 22일 이후에는 장성군 진원면 진원리 담대헌(澹對軒)으로 와 줄 것을 당부했다. 마지막에는 간소의 임원으로 박흥규(朴興圭), 홍석희(洪錫憙), 여창현(呂昌鉉), 박영봉(朴永鳳), 기노장(奇老章), 변순섭(邊舜燮) 등의 이름을 적었다. 기름먹인 종이에 연활자를 이용하여 인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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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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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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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通 文右通古事伏惟我蘆沙老先生淵源錄刊事 設役以來 非不欲汲汲圖成 而事體浩大 且緣居有遠近之不齊 難於卒乍衰萃 勢不得不延拖三四載也 今纔竣功 斯文大事 順成於蒼黃 多端之日 實若天有所相 而亦豈非我先生之道 或將重熙於今日耶 慶幸之極 尤切羹墻之忱 以今月二十二日分帙定算 伏惟僉君子 趁期齊枉于光州市臨時刊所 俾無後日葛藤之地 千萬幸甚一 編輯內容 先生年譜 行裝 神道碑銘 墓碣銘 先生門人編順次編于上卷 淵源諸家編于下卷一 先生遺書中 納凉私議 猥筆 三政策 丙寅二疏後人之尤不可不讀者故編于年譜中逐年條下 賜祭文亦編于逐年條下一 冊價 壹帙貳冊【白紙板四千圜 魯紙板二千五百圜】一 分帙場所 光州市鷄林洞一區 東和堂藥房 曺圭復方但二十二日以後來臨于長城郡珍原面珍原里澹對軒庚子正月十四日淵源錄刊所 朴 興 圭 洪 錫 憙呂 昌 鉉 朴 永 鳳奇 老 章 邊 舜 燮 等白列郡 淵源家 僉座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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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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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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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정헌규(鄭憲圭)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鄭憲圭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72년 4월 12일, 정현규가 간행된 선집(先集)의 배포에 관한 내용으로 쓴 서간. 1972년 4월 12일, 정헌규(鄭憲圭)가 최근 간행된 선집(先集)의 배포에 관한 내용으로 쓴 서간이다. 지리했던 봄이 지나고 여름이 왔지만 모두 적막하여 회포를 풀 수 없었던 이때에 뜻밖에 편지를 받았다며 놀랐고 감사했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상대가의 안부가 평안하다는 소식을 들어 기쁘다는 인사, 자신은 모진 목숨을 이어가고 있지만 어머니는 우선 평안하시다고 인사했다. 자신의 선집(先集)을 언급하며 원근 사우(士友)의 도움을 받아 큰 문제없이 잘 이루어져 다행이라고 하였다. 다만 일을 준공한 뒤에 나오는 여러 가지 일은 고금이 같을 것이라고 하며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고 하였다. 용성(龍城)에는 지난달에 이미 사람을 보내어 한 질을 납부했고, 영신(嶺信)에는 좋지 않은 일이 있어 어찌 했다며 분질(分秩)과 책값의 문제 등에 대해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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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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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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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60년 도산서원(道山書院) 중건기성회(重建期成會)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道山書院重建期成會 道山書院重建之印(2.5×2.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60년 4월 6일에 도산서원 중건기성회에서 도산서원 중건을 위한 발기를 위해 4월 6일에 모여 의논할 것이니 모두 모여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으로 유림에게 보낸 통문. 1960년 4월 6일에 도산서원(道山書院) 중건기성회(重建期成會)에서 도산서원 중건을 위한 발기를 위하여 4월 6일에 모여줄 것을 청하는 내용으로 일향(一鄕)과 본손(本孫)의 유림에게 보낸 통문(通文)이다. 문강공(文康公) 우산(牛山) 안방준(安邦俊) 선생의 도산서원(道山書院) 터에 현재 문교부가 자금을 지원해주는 우대 혜택이 있으니 지금이 적기라며 도산서원 중건을 위해 4월 6일에 모일 예정이라고 했다. 이를 고을의 여러 집사와 선생의 본손들에게 읽게 하고 한뜻으로 도모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발신일자와 발신처 이름자 위에는 '도산서원중건지인(道山書院重建之印)'을 1개 찍었다. 발기인의 첫머리에는 양회갑(梁會甲), 민홍기(閔弘基) 등 26인의 이름이 연명되어 있다. 기름먹인 종이에 석판인쇄의 기법으로 발행하였다. 1656년(효종 7) 우산 안방준(1573∼1654)을 추모하기 위하여 도산사(道山祠)를 세우고 난 이후로 서원이 있다하여 서원리(書院里)라 하였다. 도산사는 1865년 훼철되었다. 현재의 행정구역 명은 화순군 한천면 모산2리 도산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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