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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집의 소년을 한탄하며 歎人家少年 소년이 독서를 그치고 스승을 멀리 떠나 少年輟讀遠離師인간세상 거칠고 사나운 아이 되려하네 欲作人間傑驁兒불세출의 공명을 죽백231)에 기약하려고 不世功名期竹帛한 번 사는 목숨을 터럭처럼 여기누나 一生軀命視毫絲만리의 타지방으로 홀연히 달려가더니 忽奔萬里他方地천금의 가업232) 자산을 먼저 망쳤구나 先敗千金祖業資뜻이야 가상타 해도 계모가 졸렬하니 志則雖嘉謀則拙선을 부지런히 행하는 본원을 빠뜨렸네233) 本原闕却善孜孜 少年輟讀遠離師, 欲作人間傑驁兒.不世功名期竹帛, 一生軀命視毫絲.忽奔萬里他方地, 先敗千金祖業資.志則雖嘉謀則拙, 本原闕却善孜孜. 죽백(竹帛) 죽간(竹簡)과 포백(布帛)으로 역사책을 말한다. 가업 '조업(祖業)'은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가업을 말한다. 선을……빠뜨렸네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새벽에 닭이 울자마자 일어나서 부지런히 선행을 힘쓰는 자는 순 임금의 무리요, 새벽에 닭이 울자마자 일어나서 부지런히 이익을 구하는 자는 도척(盜跖)의 무리이다. 순 임금과 도척의 구분을 알고자 한다면, 다름이 아니라 이익을 탐하고 선행을 좋아하는 그 사이에 있을 뿐이다.[雞鳴而起, 孶孶爲善者, 舜之徒也, 雞鳴而起, 孶孶爲利者, 跖之徒也. 欲知舜與跖之分, 無他, 利與善之間也.]"라고 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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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윤의 자설 金德潤字說 김생(金生)이 이별하고 떠나간 지 여러 해가 되었는데, 하루는 관례를 치르고 찾아왔다. 내가 표덕(表德 자(字))을 무엇으로 했는지 묻자, "덕윤(德潤)입니다. 부친께서 명명해 주신 것입니다."라고 하니, 내가 말하였다. "의미가 있구나. 명명함이여. 의로운 방도로 가르쳤다고 이를 만하다.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어 몸이 항상 펴지고 느긋한 것은 덕이 몸을 윤택하게 해서이다. 양기가 만물을 기르듯 성대한 기운이 몸에 가득하고, 산처럼 의연하게 서며, 얼굴이 옥빛처럼 아름답고, 목소리가 종소리처럼 쟁쟁한 것은 덕이 몸을 윤택하게 해서이다. 덕이 맑게 얼굴에 드러나며 등에 가득하여 사체(四體)가 말하지 않아도 깨닫게 되는 것은 덕이 몸을 윤택하게 해서이다. 좌로 준승(準繩)이 되고 우로 규구(規矩)가 되어 거동과 용모가 예에 맞는 것은 덕이 몸을 윤택하게 해서이다. 진실로 존양성찰(存養省察)36)의 공부가 쌓여서 지극히 순수하고 완숙한 경지에 이른 자가 아니라면 어떻게 여기에 미칠 수 있겠는가?공자가 말하기를, '덕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라고 하였는데, 대저 '덕' 한 글자를 어느 누가 모르겠는가마는 드물다고 말한 것은 어째서인가? 여기에 반드시 지극한 뜻이 담겨 있을 것이다. 모르겠네만 덕윤은 그 뜻을 알고 있는가? 부친께서 명명하신 것인데 모른다고 말해서야 되겠는가. 내 자신이 이름으로 삼은 것인데 모른다고 말해서야 되겠는가. 친구들이 부르는 것인데 실상도 없이 응답해서야 되겠는가. 반드시 '덕윤'의 실상이 있는 뒤에야 '덕윤'이라는 이름에 부응하고, 부친께서 명명하신 뜻을 저버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니, 나는 김생을 위해 두렵게 여기네." 金生別去有年。一日突弁而來。余問其表德云何。曰德潤。大人所命。余曰。有意哉命之也。可謂敎之以義方也。心無愧怍。體常敍泰者。德之潤身也。揚休山立。玉色金聲者。德之潤身也。粹面盎背。四體不言而喩者。德之潤身也。左準繩。右規矩。動容中禮者。德之潤身也。苟非存養省察積累純熟之至。何以及此。孔子曰。知德者鮮。夫德之一字。人孰不知而曰鮮何也。此必有至義存焉。未知德潤知之乎。大人所命。其可曰不知乎。吾身所名。其可曰不知乎。朋友所呼。其可曰無實而答之乎。必有德潤之實而後。可副德潤之名。而不負大人丈命之之意也。吾爲生懼焉。 존양성찰(存養省察) '존양'은 마음을 보존하여 성을 기르는 것[存心養性]을 말하며, '성찰'은 자신의 사욕을 살펴 막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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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군 선경에게 주다 贈鄭君善敬 공자가 말하기를, "중도를 행하는 사람을 얻어서 함께할 수 없다면 반드시 광자(狂者)나 견자(狷者)와 함께할 것이다. 광자는 진취적이고, 견자는 하지 않는 바가 있다."라고 하였는데, 맹자가 이 말을 인용하여 칠편(七篇)37)의 끝에서 여러 성인이 도통을 전수한 말 앞에 써 놓았으니, 그 뜻이 심원하다. 성현이 사람을 가르치고자 하는 뜻과 도를 전수하고자 하는 마음이 매우 간절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가르칠 만한 인재가 있지 않다면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정군(鄭君) 선경(善敬)은 자태와 국량이 진실로 일반 사람과 달랐으니, 호탕하고 씩씩하여 어디에 얽매이지 않았고, 불우한 상황에서도 짝할 자가 없을 정도로 빼어났으며, 훤칠하니 수레를 뒤엎는 말과 같은 기상이 있었다. 내가 일찍이 혼잣말로, '이러한 사람은 애초부터 옛적에 일컬었던 광자와 같은 부류의 선비로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귀의할 곳이 없어 홀로 쓸쓸히 유유자적하게 지내는 사람이 아닌 적이 없으니 어찌 함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런데 어느덧 세월이 점점 흘러 풍상(風霜)을 겪고 군의 나이가 이미 40을 넘게 되자 들뜬 생각이 사라지고 진실한 마음이 드러나면서 슬픔과 회한이 더욱 절실해지고, 분발함이 더욱 지극해졌다. 이에 문을 닫아걸고 종적을 감춘 채 《 대학(大學)》 한 책에 침잠하여 곱씹은 지 이미 오래되었다.아, 자애롭고 착하며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격은 좋은 사람이 아닌 적이 없지만 나아가 성취하는 데에 힘이 없으니, 이것이 성인께서 취하지 않고 유독 광자와 견자를 취하신 이유이다. 김군은 이미 마음을 굽히고 머리를 수그리며 여기에 종사하고 있으니, 과감하게 나아가는 힘은 두려움 없이 홀로 설 수 있을 것이며, 강인한 뜻은 만 명의 사내라도 빼앗지 못할 것이다. 옛사람 말에 이르기를, "진정한 대영웅은 전전긍긍(戰戰兢兢)한 가운데에서 나온다."라고 하였으니, 군은 힘쓰게나. 孔子曰。不得中行而與之。必也狂狷乎。狂者進取。狷者有所不爲。孟子引此語。而書之於七篇之終群聖傳統之前者。其旨遠矣哉。聖賢誨人之意。傳道之心。非不切至。而非有可敎之才。則將何以爲之。鄭君善敬姿相器局。固已異於人矣。而豪爽不羈。落拓不群。軒軒然有覂駕之氣。余嘗自語。以爲此未始非古所稱狂士之流亞。而踽踽不遇悠悠不歸者。豈不可借。旣而歲月侵尋。風霜荏苒。而君之年。已四十有餘矣。浮念銷歇。眞心呈露。悲悔轉切。奮發愈至於是社門斂迹。將大學一書。沈潛咀嚼。蓋已久矣。嗚乎。慈善溫柔的。未爲不是好人。而其於進就無力焉。此聖人所不取而獨取狂狷者也。今君旣已屈心低首。從事於斯。則其果敢之力。剛毅之志。必將有獨立不懼。萬夫莫奪者矣。古人語曰。眞正大英雄自戰戰兢兢中出來。君其勉乎哉。 칠편(七篇) 《맹자》의 별칭으로, 본래 〈양혜왕(梁惠王)〉, 〈공손추(公孫丑)〉, 〈등문공(滕文公)〉, 〈이루(離婁)〉, 〈만장(萬章)〉, 〈고자(告子)〉, 〈진심(盡心)〉의 7편으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 후한(後漢)의 학자 조기(趙岐, 108~201)가 환제(桓帝) 때에 처음으로 주석을 내고, 매 편을 각각 상하(上下)로 나누어 총 14편으로 만든 이후로 오늘날 통용되고 있는 《맹자》는 모두 14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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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공암414)을 지나며 過公州孔巖 고청봉 아래의 서고청415)이여 孤靑山下徐孤靑천년토록 누가 다시 선생 같을까 千載誰復如先生만인이 다퉈 말하면 이적을 전하니 萬口爭說傳異蹟인걸에는 원래 땅의 영기가 모였네 人傑元來鍾地靈학문 쌓여 옥을 간듯 공부 정밀했고 學積精工如磨玉의리 엄정해 못을 끊듯 분수 지켰네 義嚴守分若斬釘만일 우뚝하게 수립한 것이 없었다면 苟無樹立卓然者어찌 해와 별처럼 경앙하게 되었겠나 那致敬仰如日星더구나 좁은 나라 상벌416)의 풍조에서였으니 矧在褊邦尙閥風선생이 공정한 평가 받았음을 더욱 믿겠네 益信先生得公評이곳 지나며 풍도 듣고도 흥기하지 않으면 過此如不聞風起인심이 영명하지 못한 것이니 어찌하겠나 其柰人心未靈明 孤靑山下徐孤靑, 千載誰復如先生?萬口爭說傳異蹟, 人傑元來鍾地靈.學積精工如磨玉, 義嚴守分若斬釘.苟無樹立卓然者, 那致敬仰如日星?矧在褊邦尙閥風, 益信先生得公評.過此如不聞風起, 其柰人心未靈明? 공암(孔巖) 공주(公州) 계룡산(鷄龍山) 자락에 있는 지명이다. 서고청(徐孤靑) 고청은 서기(徐起, 1523~1591)의 호로, 계룡산(鷄龍山) 고청봉(孤靑峯) 아래 살았으므로 이렇게 자호(自號)한 것이다. 본관은 이천(利川), 자는 대가(待可), 호는 고청초로(孤靑樵老)ㆍ구당(龜堂)ㆍ이와(頤窩), 시호는 문목(文穆)이다. 서경덕(徐敬德)ㆍ이지함(李之菡) 등에게 사사하였고, 제자백가(諸子百家)와 기술 이론에도 통달하였다. 출신이 미천하였으나 아는 것이 많고 문장에 능하여 배우는 이들이 많이 찾아들었다. 지평(持平)에 추증되고, 공주(公州) 충현사(忠賢祠)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고청유고(孤靑遺稿)》가 있다. 상벌(尙閥) 문벌을 숭상하는 것을 말한다. 《類選 卷3下 人事篇4 治道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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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 십일 계모임 날 밤에 벗들과 남아서 창수하다 2수 九月十日契會夜 留諸益唱酬【二首】 푸른 하늘에는 흰 달이 뜨고 靑天來素月뜨락의 국화 누굴 위해 피었나 庭菊爲誰開난세엔 글로 모이는 일 드문데 亂世稀文會일 년 중에 가장 좋은 때라네 一年最好時오늘 밤 내내 함께 하길 사양치 말게 莫辭永今夕만날 기약은 기필하기 어렵다네 難可必前期돌아가면 교분은 도로 그칠 것이니 歸去交還息문을 나가도 갈 곳이 없으리라 出門靡所之우리들이 모인 곳에 吾人會合處이별 아쉬워 일부러 더디 가네 惜別故遲遲늙고 쇠하여 예전의 모습 아니고 衰暮非前日위태한 시국에 이때를 만났네 危難適此時막다른 길에 완적 같은 이 많은데207) 窮途多阮籍옛 곡조에 누가 종자기208)일까 古調孰鍾期도리어 부럽도다 가을 하늘의 기러기 却羡秋天鴈높이 날아가고 싶은 데로 가나니 高飛任所之 靑天來素月, 庭菊爲誰開?亂世稀文會, 一年最好時.莫辭永今夕, 難可必前期.歸去交還息, 出門靡所之.吾人會合處, 惜別故遲遲.衰暮非前日, 危難適此時.窮途多阮籍, 古調孰鍾期?却羡秋天鴈, 高飛任所之. 막다른……하고 완적(阮籍)은 진(晉)나라 때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이다. 음률에 밝아 비파를 잘 탔고 호방한 기상이 있었으며 노장(老莊)을 추숭하였다. 완적이 혼자서 수레를 타고 마음 내키는 대로 가다가 길이 막혀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에 이르러서는 한바탕 통곡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晉書 卷49 阮籍列傳》 종자기(鍾子期) 춘추 시대 초(楚)나라 사람으로 음률(音律)에 정통했다. 백아(伯牙)가 산수에 뜻을 두고 거문고를 탔는데, 종자기가 알아들었다. 종자기가 죽자 백아가 세상에 소리를 알아듣는 사람이 없다 하여 거문고 줄을 끊어 버리고 종신토록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 《淮南子 修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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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립의 자에 대한 설 朴景立字說 사람이 학문에 종사하는 것은 집을 짓는 일과 서로 비슷하다. 용마루는 태극(太極)에 대비되고 귀퉁이를 마주하고 떠받치는 것은 사덕(四德)86)에 대비되고 서까래와 문설주가 종횡으로 채워져 있는 것은 3천 곡례(曲禮)87)에 대비된다. 먹줄, 수평기, 자는 용모와 행동거지를 점검 단속하는 것이고 벽에 회칠하고 무늬를 넣는 것은 문장(文章)이 드러나는 것이고 당(堂)에 오르고 방에 들어가는 것은 도(道)로 들어가는 단계이다. 여기에서 노래를 부르고 여기에 모이는 것은 거처의 편안함이고, 종묘(宗廟)와 백관(百官)의 아름다움은 자뢰(資賴)함의 깊음이며,88) 천하의 빈한한 선비를 크게 감싸주는 것은 은혜를 널리 베풀어 대중을 구제하는 것89)이다.그러나 먼저 알맞은 터를 제대로 분별할 수 없다면 많은 사물이 모두 똑바로 설 곳이 없게 되니 언제 눈앞에 높이 솟은 이 모습을 보겠는가. 반드시 탁 트이게 하여 막히거나 장애가 되는 우환을 없게 하고 다지고 쌓아서 기울거나 무너질 염려가 없게 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 하늘에서 비를 내리기 전에 계획을 하고 집을 지으며 길옆에 지나면서 전해주는 다른 말을 끊어 버리고 자신의 부친이 이미 다다른 법도를 생각한다면 넓은 집에 머무르고 바른 자리에 서게 되니90) 아득한 팔황(八荒 온세상)이 모두 내 문지방 안에 놓이게 된다.아, 기초가 있어도 서지 못하는 자가 많다. 하물며 기초도 없이 스스로 수립할 수 있겠는가. 학자가 만약 큰 뜻을 확정하여 성신(聖神)91)을 자기의 임무로 삼고 천지를 동체(同體)로 여기지 않는다면 허다한 공부를 장차 어디에서 수립할 수 있겠는가. 요컨대 학문은 반드시 먼저 기초를 갖추어야 하고 기초가 갖추어진 뒤에는 반드시 수립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기초를 갖추고 수립하는 것이 있다면 또한 도에 가깝지 않겠는가.나의 벗 박준기(朴準基)가 자(字)를 경립(景立)이라고 하였으니 취한 뜻이 진실로 여기에 있다. 人之爲學。與建屋子相似。屋脊方太極。對隅支柱方四德。榱櫨居楔縱橫塡補方曲禮三千。繩墨準尺者。容儀之檢束也。塗墍繪畵者。文章之著見也。升堂入室者。入道之等位也。歌於斯聚於斯。居之安也。宗廟百官之美。資之深也。大庇天下寒士。博施濟衆也。然不先有以辨得其基。則許多物事。都無立定處。而何時眼前見此突兀哉。必須展之拓之。使無阻礙之患。杵之築之。使無傾頹之慮。然後迨天未雨。經之營之。絶道傍携貳之言。念闕考已底之法。則居廣居立正位。而茫茫入荒。皆在我闥矣。嗚呼。有基而不能立者多矣。況無基而能自樹立乎。學者苟不確定大志。以聖神爲已任。以天地爲同體。則多少大功夫。將何自而能樹立哉。要爲學必。先有其基。旣有其基。必要有其立。有基有立。其亦庶幾乎。吾友朴準基字以景立。其取義固在此矣。 사덕(四德) 원래는 《주역(周易)》에서 말한 천지자연의 네 가지 덕, 즉 원(元), 형(亨), 이(利), 정(貞)을 이르는데, 주자는 이를 사람 마음에 적용시켜 인(仁), 의(義), 예(禮), 지(智)를 성(性)의 사덕이라 하였다. 《朱子語類 卷6 四端義》 3천 곡례(曲禮) 《예기(禮記)》 〈예기(禮器)〉의 "경례가 3백 가지이고 곡례가 3천 가지인데, 그 정신은 하나이다.[經禮三百, 曲禮三千, 其致一也.]"에서 유래하였다. 자뢰(資賴)함의 깊음이며 맹자가 "군자가 깊이 나아가기를 도로써 함은 자득하고자 해서이니, 자득하면 처하는 것이 편안하고 처하는 것이 편안하면 자뢰(資賴)함이 깊고 자뢰함이 깊으면 좌우에서 취하여 쓰는 데에서 그 근원을 만나게 된다. 그러므로 군자는 자득하고자 하는 것이다."라고 한 말을 인용하였다. 《孟子 離婁下》 은혜를……것 《논어(論語)》 옹야(雍也)에 나오는 내용이다. 넓은……되니 넓은 집은 인(仁)을, 바른 자리는 예(禮)를 비유하는 비유하는 말이다. 맹자는 대장부를 말하면서 "천하의 넓은 집[仁]에 살며 천하의 바른 자리[禮]에 서며 천하의 큰 도[義]를 행하여, 뜻을 얻으면 백성들과 더불어 그 도를 행하며 뜻을 얻지 못하면 홀로 그 도를 행해서, 부귀로도 흔들 수 없으며 빈천해도 바꾸게 하지 못하며 위무로도 굽히게 할 수 없는, 이런 사람을 두고 대장부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孟子 滕文公下》 성신(聖神) 《맹자》 〈진심 하(盡心下)〉에 "크면서도 그 큼을 볼 수 없게 화할 수 있는 사람을 '성인(聖人)'이라 이르고, 지극히 신묘한 그 성스러움을 측량할 수 없는 사람을 '신인(神人)'이라 이른다."라는 내용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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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함92)에게 써 보이다 書示黃景涵 성(性)은 도(道)의 형체(形體)이고 심(心)은 성(性)의 부곽(郛郭 성곽(城郭))이며 신(身)은 심(心)의 구우(區宇 구역(區域))이고 물(物)은 신(身)의 주거(舟車)이다.93) 이것은 형기(形氣)와 신리(神理)를 가지고 정밀함으로부터 조악함으로 나아가 말한 것이며 강절(康節 소옹(邵雍))이 이른 "기(氣)는 신(神)의 집이고 체(體)는 기(氣)의 집이다."94)라는 것이다. 이(理)는 형체가 없지만 성(性)이 감싸고 있으므로 형체(形體)라고 하고, 심(心)은 성(性)을 담고 있으므로 부곽이라고 하고, 신(身)은 심(心)을 담고 있으므로 구우라고 하고, 신(身)은 물(物)을 이용하여 물(物)을 움직일 수 있으므로 주거(舟車)라고 한다.그렇다면 부곽은 기(氣)의 정령(精靈)으로 말하는 것이고 구우는 사람의 육체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니 그 정조(精粗)와 선후(先後)가 뚜렷하지 않겠는가. 주자(朱子)가 언급한 주재(主宰)와 부곽(郛郭)은 각각 별개의 설이니 연관 지어 보아서는 안 된다. 또한 노사 선사(蘆沙先師)의 기질설(氣質說)도 본래 이것 때문에 펼친 것이 아니다. 선사께서는 두 개의 기질이 잘못됨을 변별한 것이지, 어찌 일찍이 기질은 있지만 정령은 없다고 하셨는가. 부곽(郛郭)은 부곽일 뿐이지 어찌 부곽이 주재(主宰)와 묘용(妙用)의 뜻을 지녔겠는가. 부곽을 주재(主宰)로 여긴다면 저 세 번 신칙하고 다섯 번 명령하거나95), 잡았다 풀어주면서 기미에 따라 처리하는 사람은 또 주재자의 주재이겠는가. 만 리나 되는 성도 성이 스스로 굳건하지 못하고 7리짜리 곽(郭 외성(外城))도 곽(郭)이 스스로 지키지 못한다면 주재의 뜻이 어디에 있겠는가. 생각해보라. 끝내 조리가 없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으면 일단 처중(處中)96)과 논의하라. 절충한 논의를 듣고자 한다. 性者道之形體。心者性之郛郭。身者心之區宇。物者身之舟車。此以形氣神理。而由精趨粗說。如康節所謂氣者神之宅。體者氣之宅也。理無形而性爲結窠故曰形體。心具性故曰郛郭。身具心故曰區宇。身藉於物而能運物故曰舟車。然則郛郭以氣之精爽而言。區宇以人之軀殼而言。其精粗先後。不其瞭然乎。朱子主宰及郛郭。各是一說。不可連累看。且蘆沙先師氣質說。本非爲此而發也。先師辨兩箇氣質之非。何嘗言有氣質而無精爽乎。郛郭只是郛郭安有以郛郭而有主宰妙用之義。若以郛郭爲主宰。則彼三申五令操縱合變之人。是又主宰之主宰乎。萬里之城。城不能自固。七里之郭。郭不能自守。則烏在其主宰之義乎。思之思之。終是不倫。未知以爲如何。且與處中講質焉。願聞折中之論。 황경함(黃景涵) 경함은 황철원(黃澈源, 1878∼1932)의 자이다. 호는 중헌(重軒)‧은구재(隱求齋)이다.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기정진(奇正鎭)의 제자인 정의림(鄭義林)과 정재규(鄭載圭)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외필변변(猥筆辨辨)〉‧〈납량사의기의변(納凉私議記疑辨)〉‧〈납량사의기의추록변(納凉私議記疑追錄辨)〉을 지어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성리설(性理說)을 논박하였다. 저서로 《중헌집(重軒集)》이 있다. 성(性)은……수레이다 소옹(邵雍)의 《격양집(擊壤集)》 〈자서(自序)〉에 나오는 말이다. 기(氣)는……집이다 소옹의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에 나오는 말이다. 세 번……명령하거나 손자(孫子)가 오왕(吳王) 합려(闔閭) 앞에서 여자들을 부하로 삼아 시범을 보일 적에 "일단 약속을 정하여 선포한 다음에 부월을 설치해 놓고는 곧바로 세 번 명령하고 다섯 번 신칙하였다.[約束旣布, 乃設鈇鉞, 卽三令五申之.]"라는 말이 《사기(史記)》 권65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에 나온다. 처중(處中) 양회락(梁會洛, 1862∼1935)을 가리키는 듯하다.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처중(處仲), 호는 동계(東溪), 양팽손(梁彭孫)의 후손이다. 일신재(日新齋) 정의림(鄭義林)과 노백헌(老栢軒) 정재규(鄭載圭)의 문하에서 수업하였으며,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납량 사의(納凉私議)》와 《외필(猥筆)》 등을 마음속으로 터득하고, 주리론(主理論)을 발휘하고 천명하여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성사 심제설(性師心弟說)을 통렬히 반박하였다. 문집에 《동계당 유고(東溪堂遺稿)》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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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여주에게 써 주다 書贈吳汝周 주자(朱子)가 이르기를, "사람이 학문을 하는 것은 단지 하려고 하는 것과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의 다툼일 뿐이다."97)라고 하였다. 대체로 기품(氣稟)이 편벽되어 기호(嗜好)가 다르고 견문(見聞)에 얽매어서 추향(趨向)이 일치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평생토록 독서를 해도 읽는 내용이 무슨 일인지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교유(交遊)하는 이들 사이에서 말이 간혹 여기에 이르면 거리낌 없이 난폭하게 굴거나 반드시 멍하니 반성하지 못하여 인가하고 승낙하는 자가 대체로 적었다.병술년(1910, 순종4) 봄, 내가 오봉(五峯)에서 객지 생활을 할 때 오군 여주(吳君汝周)가 날마다 나를 찾아와 함께 어울렸다. 또한 "게으름을 피우다가 학문의 기회를 놓친 지 오래되었습니다. 지금부터는 간절히 이 일에 마음을 두고자 하니 경계가 되는 한 말씀 해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하기에, 나는 "자네가 이미 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으니 어찌 내 말이 필요하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러나 경중(輕重)의 권도(權道)가 내면에 명확하지 않고 취사(取捨)의 분별이 외부에서 결정되지 않으면 길을 나섰다가 전도 착란(轉倒錯亂)되어 제대로 올라가지 못하고 중간에서 떨어지지 않는 자가 없었다. 이것을 여주(汝周)에게 알리지 않을 수 없다.무릇 부귀와 빈천은 사람의 일생에서 미리 정해진 분수이고 도덕과 인의(仁義)는 사람의 마음에 고유(固有)한 성(性)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가벼운가? 무엇이 추구할 수 있고 무엇이 추구할 수 없는가? 무엇을 추구해야 하고 무엇을 추구하지 말아야 하는가? 입각(立脚)98) 초기에 팔자타개처(八字打開處)99)를 헤아려 변별해야 한다. 이 단계를 지나서 나아가면 또 하나의 험난한 관문이 나타나 눈에 힘을 주어야 할 곳이 있으니 위기(爲己)와 위인(爲人)100)이 그것이다.일찍이 생각해보니, 하늘이 명하고 사람이 받은 모든 이치와 모든 법칙은 저절로 해야 하는 일인가, 외부의 사물을 쫓아 자기의 이익을 도모하는 일인가? 일상생활에서 이르는 곳마다 성찰하는 것을 놓치지 않는다면 본령(本領)이 수립된다. 이로 말미암아 정밀하고 투철하며 숙련되고 정통한 단계에 이르는 것은 곧 부지런히 힘쓰는 것에 달려있을 뿐이다. 맹자(孟子)가 "천하의 넓은 집[인(仁)]에 거처하며 천하의 바른 자리[예(禮)]에 서며 천하의 대도(大道)[의(義)]를 행하고 부귀가 마음을 방탕하게 하지 못하며 위무(威武)가 지조를 굽히게 할 수 없으며 빈천(貧賤)이 절개를 옮겨놓지 못한다."101)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것이 비로소 남아 대장부의 일이다. 바라건대 여주(汝周)는 힘쓰거라! 朱子曰。人之爲學。只爭箇肯與不肯。蓋氣稟所偏。嗜好不同。見聞所拘。趨向不一。是以終身讀書。而不知是所讀爲何事者多。交遊之間語或及此。則非悍然不顧。必茫然不省。其印可而肯諾者蓋少矣。丙戌春。余客於五峯吳君汝周。日來相從。且曰。因循失學久矣。自今切欲留心此事。願賜一言警砭也。予曰子旣有肯可之意。何須於我言。然輕重之權。不明於內。取舍之分。不決於外。則未有不臨途顚錯半上落下者。此則不可不爲汝周告之。夫富貴貧賤。人生素定之分也。道德仁義。人心固有之性也。然則何者爲重。何者爲輕。何者可求。何者不可求。何者當求。何者不當求。立脚之初。所當商量辨別八字打開處。過此以往。又有一層重關猛着眼目處。如爲己爲人是也。試思天命人受。萬理萬法。是自然合做底事耶。是徇外自私底物耶。日用之間。隨處省察。不容放過。則本領立矣。由此而至於精透純熟。則在乎勉焉爾。孟子曰。居天下之廣居。立天下之正位。行天下之大道。富貴不能淫威武不能屈。貧賤不能移。如此方是男兒事。願汝周勉之。 사람이……뿐이다 《대학장구(大學章句)》 〈독해학법(讀大學法)〉에 나오는 내용이다. 입각(立脚)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고 몸을 의연히 지키는 것을 말한다. 팔자타개처(八字打開處) 팔자 모양의 형태로 문을 활짝 열어젖혀서 가려져 있던 앞산을 보여 주었다는 뜻으로, 조금도 숨김없이 분명하게 설명해 주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주희의 편지에 "요즈음 《대학》을 보다가 이러한 뜻이 매우 분명하다는 것을 알았다. 성현이 이미 '팔(八)' 자가 벌어지듯 활짝 펼쳐 주었건만 사람들이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서 오히려 밖으로 미친 듯이 치달리고 있다.[近日因看大學, 見得此意甚分明, 聖賢已是八字打開了. 但人自不領會, 却向外狂走耳.]"라고 하였다. 《晦庵集 卷35 與劉子澄》 위기(爲己)와 위인(爲人) 《논어(論語)》 〈헌문(憲問)〉에 "옛날의 학자들은 자신을 위한 학문을 하였는데, 오늘날의 학자들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학문을 한다."라는 공자의 말이 보인다. 천하의……못한다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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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배의 자에 대한 설 吳景拜字說 사문(斯文) 오창호(吳昌鎬)가 관례(冠禮)를 치른 지 이미 오래되었다. 처음에는 자(字)가 여주(汝周)였는데 나중에 송사(松沙) 기장(奇丈)102)께서 경배(景拜)로 고쳤다. 대체로 《서경(書經)》의 "우(禹)가 고요(皐陶)의 좋은 말을 듣고는 절을 하였다."103)에서 뜻을 취한 것이다.시험삼아 한번 다른 사람에게서 이것을 징험해 보니,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들으면 발끈하며 화를 내고 목소리를 높여 잘못되고 그릇된 일을 문식(文飾)한 뒤에야 그치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렇지 않으면 억지로 분을 참으면서 겉으로는 받아들이는 듯하지만 실제로 마음속으로는 용납하지 않다. 이것은 모두가 성실하게 선(善)을 행하려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성실하게 선을 행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미친 사람에게도 가려서 들을 만한 말이 있고 나무꾼에게도 물을 수 있다. 하물며 강직하게 간언(諫言)하고 보필(輔弼)하는 것이 마치 정문(頂門)에 침을 놓고 등에 채찍을 가하는 것과 같음에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사랑이 그치지 않으면 진실로 공경해야 하고 공경스러움이 그치지 않으면 진실로 절을 해야 한다. 겸허한 마음으로 뜻을 낮추고 온 마을에서 하는 말을 아울러 받아들이면 마을 전체의 훌륭한 선비가 되고, 온 나라에서 하는 말을 받아들이면 나라 전체의 훌륭한 선비가 되고, 천하에서 하는 말을 받아들이면 천하의 훌륭한 선비가 된다. 이것이 옛사람들이 백 번 절을 한 다음에 한마디 말을 듣고자 하고 천 리 먼 곳에서 가르침 하나를 구했던 까닭이다.아, 대우(大禹)는 성인이었건만 좋은 말을 들으면 절을 하였다. 하물며 그보다 못한 사람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원하건대 경배는 '좋은 말을 들으면 절을 한다.'라는 부적(符籍)을 학문 세계에 진입하는 나침판으로 삼아 부지런히 노력하고 착실히 법도를 지켜나가 천하의 선(善)이 모이고 빠트림이 없는 경지에 이르기를 바란다. 이것이 어찌 송사 장(松沙丈)께서 진중하게 이름을 정한 뜻이 아니겠는가. 吳斯文昌鎬。冠已久矣。表德初以汝周。後松沙奇丈改以景拜。蓋取書經禹拜昌言之義也。嘗驗之於人。聞有一言逆耳。無不勃然而怒。嘵嘵然。文其過餙其非而後已。不然則强意忍忿。外若容受而內實氷炭矣。此皆無誠實爲善之心故也。如有誠實爲善之心。則狂夫可擇。蒭蕘可詢。況强諫直輔。若針頂鞭肯之爲耶。愛之無已。固當敬之敬之無已。固當拜之。虛心遜志。兼受一鄕之言。則爲一鄕之善士。受一國之言。則爲一國之善士。受天下之言。則爲天下之善士。此古人所以乞一言於百拜之餘。求一敎於千里之遠者也。嗚呼。大禹聖人。猶拜昌言。況其下者乎。願景拜以拜昌言三字符。爲入學指南。勉勉循循。以至於集天下之善而無闕焉。則豈非松沙丈珍重命名之意耶。 송사(松沙) 기장(奇丈) 기우만(奇宇萬, 1846~1916)이다.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회일(會一), 호는 송사(松沙)이다. 참봉을 지내 기 참봉으로 불렸으며, 호남의 거유(巨儒) 기정진(奇正鎭)의 손자로 그 학업을 이어받아 문유(文儒)로 추앙받았다. 우(禹)가……하였다 《서경》 〈고요모(皐陶謨)〉에 "우가 고요의 좋은 말을 듣고는 절하며 옳다고 하였다."라는 말이 나오고,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우는 좋은 말을 들으면 절을 하였다."라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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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탕446)을 준 가석에게 이천의 시를 차운하여 사례하다 謝可石贈大補湯用伊川韻 약을 주어 내 정신을 보양해준 그댈 흠모하며 感君投藥補吾神행여 삼려447)를 세상 처신의 법도로 삼으려 하네 儻擬三閭度世身배불리 먹으면 외려 은거 소원 이루기 어렵나니 飽喫猶難成晦願서산에서 먼저 은나라 백성이 굶주려 죽었다지448) 西山先作餓殷民 感君投藥補吾神, 儻擬三閭度世身.飽喫猶難成晦願, 西山先作餓殷民. 대보탕(大補湯) 마음과 몸의 활동력을 돕는 약을 말하는데, 숙지황(熟地黃)ㆍ백작약(白芍藥)ㆍ천궁(川芎)ㆍ당귀(當歸)ㆍ인삼ㆍ백출(白朮)ㆍ백복령(白茯笭)ㆍ감초ㆍ황기(黃芪)ㆍ육계(肉桂)를 넣어 만든다. 삼려(三閭) 전국 시대 초(楚)나라의 삼려대부(三閭大夫)를 지낸 굴원(屈原)을 말한다. 〈어부사(漁父辭)〉에 "굴원이 이미 쫓겨나 강호에 노닐며 못가에서 시를 읊조리고 다니는데 안색은 초췌하고 모습은 수척해 보였다.[屈原旣放, 遊於江潭, 行吟澤畔, 顔色憔悴, 形容枯槁.]"라고 하였다. 《詳說古文眞寶大全 後集 卷1》 서산(西山)에서……죽었다지 은(殷)나라 말기 고죽군(孤竹君)의 두 아들인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의 고사를 말한다. 주 무왕(周武王)이 은나라를 정벌하자 주나라 곡식을 먹는 것을 수치로 여기고는, 서산(西山) 즉 수양산(首陽山)에 들어가서 채미가(采薇歌)를 부르며 고사리를 캐어 먹다가 굶어 죽은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61 伯夷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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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 이십구일에 暮春小晦 종일토록 거센 바람 불어 너무도 무정한데 狂風盡日太無情남은 꽃마저 떨어져 한바탕 깨끗이 쓸어버렸네 飄落殘花一掃淸수심은 외로이 살게 되면 쉽사리 몰려들고 愁待索居容易集시는 참된 경지를 어기면 억지로 이루기 어렵네 詩違眞境强難成귀밑머리 성성하니 반백의 나이가 되었고 霜鬢星星年半白초당은 적막하고 밤은 깊어 삼경이로세 草堂寂寂夜三更천금도 도리어 좋은 날의 빚 갚기엔 적은데 千金還少良辰債또 돌아가는 봄날이 내일 아침으로 잡혔구나 又是春歸在翌朝 狂風盡日太無情, 飄落殘花一掃淸.愁待索居容易集, 詩違眞境强難成.霜鬢星星年半白, 草堂寂寂夜三更.千金還少良辰債, 又是春歸在翌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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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을 보이다 示志 원래 머리털은 부모가 남겨 준 것이나 元來頭髮是親遺분명히 중국의 제도가 또 여기에 있네 華制分明更在斯천하의 대방296)은 감히 어길 수 없으나 天下大防無敢越정수리의 한 움큼297)이 어찌 미미한 것이랴 頂中一撮豈其微백운고사298)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인가 白雲高士今何處화망건 선생299)은 함께 돌아갈 수 있으리라 畫網300)先生可與歸가을 달이 오랫동안 마음과 함께 비춰주니 秋月長時心共照외로운 넋은 백세토록 슬퍼할 필요 없겠네 孤魂百歲不須悲 元來頭髮是親遺, 華制分明更在斯.天下大防無敢越, 頂中一撮豈其微?白雲高士今何處? 畵綱先生可與歸.秋月長時心共照, 孤魂百歲不須悲. 대방(大防) 흘러넘치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큰 제방(堤防)이라는 뜻으로, 사회를 유지하는 예법(禮法)을 일컫는다. 정수리의 한 움큼 상투를 말한다. 백운고사(白雲高士) 당(唐)나라 때 도사(道士)인 사마승정(司馬承禎)으로, 백운거사는 그의 호이다. 음양술수학에 심취했으며, 연단술을 익혔다. 문장과 글씨에도 뛰어났는데, 특히 전서를 잘 썼다고 한다. 진자앙(陳子昻), 이백(李白), 맹호연(孟浩然) 등과 교유하였다. 〈좌망론(坐忘論)〉 등을 지어 자신의 노장 철학을 피력하였으며, 불교에도 조예가 있어 '도선합일(道禪合一)'의 독특한 주장을 펼치기도 하였다. 《노자도덕경》의 정본을 만들었고, 저술로 《좌망론(坐忘論)》이 있다. 《唐書 卷196 司馬承禎列傳》 화망건 선생(畫網巾先生) 청(淸)나라 때 문학가인 대명세(戴名世)가 지은 《화망건선생전(畫網巾先生傳)》에 의하면 선생의 이름과 작위는 알 수 없으며 민족지사이다. 새로운 영(令)으로 치발(薙髮)하고 의관을 바꾸니, 망건(網巾)이 없어지자 머리에 망건을 그리고서 갓[冠]을 썼기에 사람들이 화망건이라 불렀다고 한다. 網 底本에는 "綱". 필사의 오류로 보아 수정. 아래도 이와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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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사증의 자설 洪士拯字說 옛적에 소환(蘇渙)의 표덕(表德 자(字))을 처음에는 '공군(公群)'으로 했었는데, 그의 동생 소순(蘇洵)이 "흩어지는 때에 무리를 이루는지라 크게 길하다.[渙其群元吉]"41)에서 뜻을 취하는 것이 다만 "바람이 물 위에 불 때 문양을 이룬다.[風水成文]"라는 뜻을 취하는 것만 못하다고 말하고, 인하여 '문보(文甫)'로 바꾸었다.내가 살펴보건대, 바람이 물 위에 부는 때를 만나 구제할 방법을 생각하지 않고 흩어지도록 내버려 둔 채 단지 그 문양만을 취하는 것이 지극히 합당한 일인지 모르겠다. 만물이 흩어져 달라지지만 유행은 합쳐져 같게 되고, 억조창생이 지극히 많지만 정신은 감응하여 모이며, 예의(禮義)가 매우 많지만 모두 상세히 알아 통달하는 것은 또한 흩어지는 때에 무리를 이룬다는 뜻이 아닌 것이 없으니, 어찌 군자가 하루라도 힘쓰지 않는 것이겠는가. 한가로이 있을 때 위태로움을 생각하여 오히려 화방(畫舫)을 명(銘)으로 삼은 사람이 있는데42), 하물며 흩어지는 때를 만나 어려움을 사양한 채 스스로 편안히 지낼 수 있겠는가.지극한 보배가 깊은 곳에 있거든 배를 타는 괴로움을 꺼려하지 않아서 솜으로 물이 새는 것을 대비하고 밧줄로 짐을 고정해 두면 하룻밤 봄물이 불어나는 때에 이르러 힘들게 애쓰지 않아도 몽충(蒙衝) 같은 큰 전함이 하나의 터럭만큼이나 가볍게 떠 갈 것이니, 홍수나 큰 하천을 건너게 하더라도 거침없이 여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흩어지는 것을 구제하는 것이 어느 때라도 불가할 것이 없을 것이다.홍씨(洪氏)의 자손 승환(承渙)은 젊은 나이에 준걸차고 재주가 남달랐는데, 나에게 표덕(表德 자(字))을 묻기에 내가 "흩어짐을 구제함에 무리를 이루는 것이 길하다.[用拯群吉]"라는 뜻을 취하여 '사증(士拯)'이라 명명하였다. 아, 사증이 이름을 돌아보고 뜻을 생각한다면 반드시 선대부(先大夫) 봉남공(鳳南公)이 명명한 뜻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昔蘇渙表德。初以公群。其弟洵以爲取諸渙其群元吉。不如只取風水成文之義。因以文甫易之。以予觀之當風行水上之時。不圖所以拯救之方。而任其渙散。只取其文者。未見其爲至當也。萬物散殊而流行合同。億兆至衆而精神感聚。禮義優優而纖悉會通者。亦莫非渙群之義也。豈君子一日而不勉者乎。人有燕居思危。而猶以畵舫爲銘。況當其渙而辭難自便乎。至寶在深。不憚勤航。袽以備其漏。維以固其載。至於一夜春水。不勞推移之力。而蒙衝巨艦。輕如一毛。則使之涉大浸濟巨川。沛有餘裕矣。然則吾之所以拯渙者。將無時不可矣。洪氏子承渙。妙齡雋異。問表德於予。予取用拯群吉之義。命之曰士拯。嗚呼。士拯顧名思義。必有不負其先大父鳳南公命名之義者矣。 흩어짐에……길하다 《주역》 〈환괘(渙卦) 육사(六四)〉에 나오는 말이다. 한가로이……있는데 송나라 때 구양수(歐陽脩, 1007~1072)가 조칙에 응해 글을 올려 여러 폐단을 진언하였다가 외직으로 좌천되어 활주(滑州)의 수령으로 있을 때 자신의 집무실 곁에 방을 만들고 화방재((畫舫齋)라 명명한 뒤에 〈화방재기(畫舫齋記)〉를 지어 거안사위(居安思危)의 감정을 서술한 일을 말하는 듯하다. 《文忠集 卷39 畫舫齋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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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생 원경의 자설 李生元敬字說 이생(李生) 기일(基一)이 원경(元敬)을 표덕(表德 자(字))으로 삼았으니, 내가 일찍이 명명해 준 것이다. 하루는 그에 대한 설(說)을 지어 줄 것을 청하기에 그가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의지할 곳이 없음에도 오히려 학문에 힘쓰고자 하는 뜻을 잊지 않는 것을 가엾게 여겨 삼가 '일(一)'에 부응하는 말을 들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도록 지어 보낸다.아, '일'의 뜻은 한 가지가 아니다. 순수하여 섞임이 없는 것을 '일'이라고 이르니, 겨우 털끝만큼이라도 사사로움이나 망령됨이 있다면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시종일관 간단(間斷)이 없는 것을 '일'이라고 이르니, 겨우 눈을 한 번 깜박이거나 숨을 한 번 쉬는 짧은 시간이라도 간단함이 있으면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빠뜨린 것 없이 모두 갖추고 있는 것을 '일'이라고 이르니, 만 가지 선 가운데에 한 가지 선이라도 갖추지 않으면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이것은 천지조화의 근원이며, 성신(聖神)이 신묘하게 작용하는 본원이다. 그러나 이것을 이루고 이것을 체득하게 하는 것은 오직 '경(敬)'일 뿐이다. '경'은 '주일(主一)'의 뜻이니, 두 가지 일로 마음을 둘로 나누지 않고, 세 가지 일로 마음을 셋으로 나누지 말아서 오직 마음을 전일하게 하여 만 가지 변화를 살펴보는 것39)을 '경'이라 이른 것이 아니겠는가.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외면을 가지런히 하고 엄숙하게 갖기만 하면 마음이 전일하게 된다."40)라고 하였다. 외면을 가지런히 하고 엄숙하게 하는 것이 학자에게 주일(主一)의 시작이 되니, 여기에 힘써야 할 것이다. 李生基一表德元敬。余嘗所命也。一日請爲其說。哀其早孤靡依。猶不忘勉學之志。謹擧一副語。以效其一分之助。嗚呼。一之義不一。純粹無雜之謂一。以爲纔有纖毫私妄。便不是一也。終始無間之謂一。以爲纔有瞬息間斷。便不是一也。該括無遺之謂一。以爲萬善之中。一善未備。便不是一也。此是天地造化之原。聖神妙用之本。然其所以致此而體此者。其惟敬乎。敬者主一之義也。不二以二。不三以三。惟心惟一。萬變是監。非敬之謂耶。程子曰。纔整齊嚴肅。則心便一。整齊嚴肅。是學者主一之始也。勉之哉。 두……것 주희(朱熹)의 〈경재잠(敬齋箴)〉 제6장에 "두 가지 일로 마음을 둘로 나누지 않고 세 가지 일로 마음을 셋으로 나누지 말아서 오직 마음을 전일하게 하여 만 가지 변화를 살펴보라.[弗貳以二, 弗參以三, 惟心惟一, 萬變是監.]"라는 구절이 보인다. 외면을……된다 정이천(程伊川)이 제시한 수양법으로, 《근사록(近思錄)》 4권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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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현【장현】57)에게 답함 答朴而顯【章鉉】 금옥과 같은 형제들이 편지【雙魚】58)를 동봉(同封)하였고, 편지를 가지고 온 자는 또 그대의 당질이었습니다. 누추한 저희집에 만 갈래의 빛이 드리우기에 충분하였습니다. 다만 당시에 마침 밖에 있어 서로 어긋났기에, 옛날 천 리 밖에서 정신으로 사귀는 것에 부끄러운 점이 많습니다. 편지를 받은 뒤 여러 날이 지났는데 시탕(侍湯)하는 사이에 동정(動靜)과 기거(起居)는 괜찮으신지 모르겠습니다. 먼 곳에서 염려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존종씨(尊從氏)59)가 순절(殉節)하신 거룩한 자취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기에 충분합니다. 우선 본장(本狀)60)에 근거하여 대략 서술하였는데 이는 구구하게 어진 이를 사모하는 정성【緇衣之誠】61)으로 스스로 그만둘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공안(公案)으로 정본(定本)을 만들지 말고 거듭 대방가(大方家)의 큰선비를 구하여 후손에게 찬양하도록 하여 세도(世道)를 위한 계책으로 삼는다면 어떠하겠습니까? 각각의 편지에 답장을 드리는 것이 도리에 합당한 일이지만 이처럼 예(禮)를 생략하였습니다. 공경함이 부족하여 자못 황공합니다. 부디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金昆玉季。雙魚同封。將之者。又其賢堂咸也。足令陋室光紫萬丈。但時適在外。交相差池。其有愧於古之千里神交者。多矣。信後有日。未審侍湯之餘。動靜起居。不至有損。遠外貢慮。不勝耿耿。尊從氏殉節偉蹟足以不朽百世。姑據本狀。而序述梗槪。此是區區緇衣之誠有不能自己也。勿以爲定本公案。更求之大方巨手。以揄揚於來許爲世道計。如何如何。理合各幅。而若是省禮。欠敬殊惶。俯諒如何。 박장현(朴章鉉) 호는 이현(而顯) 자는 정일(正一)이며 본관은 전주이다. 1916년에 출생하였고 고창(高敞)에 거주하였다. 스승으로 기우만(奇宇萬) 등이 있다. 편지【雙魚】 멀리서 보내 온 두 마리의 잉어 뱃속에 편지가 들어 있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로 서신(書信)을 의미한다. 쌍리(雙鯉), 혹은 이소(鯉素)라고도 한다. 존종씨(尊從氏) 상대방의 조카에 대한 존칭이다. 본장(本狀) 편지에서는 박장현(朴章鉉)이 정의림(鄭義林)에게 존종씨(尊從氏)에 대한 글을 요구하였는데, 그 글을 쓰기 위한 근거가 되는 글로 보인다. 아마도 죽은 사람의 행적을 기술한 가장(家狀)의 일종으로 짐작된다. 어진 이를 사모하는 정성【緇衣之誠】 치의(緇衣)는 《시경》의 편명으로 현인(賢人)을 사모하는 뜻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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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경【진호】에게 답함 答金春卿【震浩】 세월은 효자(孝子)를 위해 기다려주지 않아 예복을 길복(吉服)으로 바꾸어 입은 것이 이미 오래되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삼가 생각건대 지극한 마음으로 개확(慨廓)62)하셨으니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친구의 말석에 있는 사람으로서 달려가 조문을 하는 예의를 갖추지도 못하였으니 이 무슨 이치이겠습니까? 실로 매우 부끄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큰 도량으로 살펴주시고, 남들과 같지 않음을 따지지 않고서 욕되게 편지를 보내주시어 아주 정성스러운 뜻을 보여주었습니다. 편지를 받고 감동하고 슬퍼서 어떻게 답장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이어 어버이를 모시고 지내는 절선(節宣)63)이 편안하고 진중해짐을 알게 되었으니, 더욱 듣고 싶은 소식이었습니다. 용렬한 저는 몸이 쇠퇴하여 부탁을 받아들이기에 부족합니다. 삼가 생각건대 예전에 그곳의 사우(士友)들과 고흥(高興)과 낙안(樂安) 사이에서 강론하러 모인 적이 여러 차례였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하염없이 흘러 이미 40여 년이 되었습니다. 함께 따라 노닐던 사람들도 대부분 흩어지고 말았으니, 매번 그때를 떠올리면 매우 마음이 아파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 또 나의 좌우(左右) 같이 어진 그곳의 사우들과 더불어 다시 예전 그날처럼 따라 노니는 즐거움을 도모할 줄을 어찌 알았겠습니까? 더없이 감격스럽습니다. 강회(講會)에 왕림(枉臨)하여주심을 미리 간절히 기뻐하며 기다리겠습니다. 日月不爲孝子留。而巾堂就吉。計已久矣。伏惟至情慨廓。何以堪支。忝在知舊之末。而竟闕匍匐之儀。此何事理。愧負實深。然而盛鑑大度。不較不猶。辱賜惠存。致意繾綣。執書感惻。不知所以爲答。因審侍省節宣安重。尤叶願聞。義林衰頹淟劣。無足奉煩。竊念頃年與貴中士友。講聚於興樂之間者。累矣。而苒苒歲月。已四十餘年矣。所與遊從擧皆零散。每不勝追傷之至ㅡ豈知今日又與貴中士友賢如吾左右。復圖遊從之樂如前日耶。尤用感感。講會枉臨。預切欣企。 개확(慨廓) 소상(小祥)과 대상(大祥)을 지낸 것을 말한다. 상을 당한 처음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을 '충충(充充)'이라 하고, 빈소(殯所)에 봉안한 다음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구구(瞿瞿)'라 하고, 소상 때 세월이 빠른 것을 탄식하는 마음을 '개(慨)'라 하고, 대상 때 정의(情意)가 허전한 것을 '확(廓)'이라고 한다. 《예기(禮記)》 〈단궁 상(檀弓上)〉 절선(節宣) 철에 따라 몸을 조심하는 것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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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간정사427)에서 우암과 수암428) 두 선생의 초상화에 참배하다 南澗精舍, 拜尤遂二先生遺像 회덕 남쪽 개울가에 정사가 있는데 懷南精舍澗之邊대로429)의 초상화가 엄숙히 임했네 大老遺眞臨肅然옥을 쪼듯 당시에 학업 닦은 곳이요 琢玉當年修業地들보 꺾이자 삼년간 상생한 자리네430) 摧樑三載象生筵텅 빈 산의 초목에도 광채가 남아 있고 空山草木留光彩온 나라의 사대부들은 경건함을 다했네 擧國衣冠致敬虔또한 같은 당에 의발431) 전한 제자 있으니 更有同堂衣鉢弟서로 전수한 심법이 일치하여 온전하였네 相傳心法一規全 懷南精舍澗之邊, 大老遺眞臨肅然.琢玉當年修業地, 摧樑三載象生筵.空山草木留光彩, 擧國衣冠致敬虔.更有同堂衣鉢弟, 相傳心法一規全. 남간정사(南澗精舍) 송시열(宋時烈)이 후학을 양성하기 위하여 1683년(숙종9)에 회덕(懷德) 소제동(蘇堤洞)에 세운 강학당이다. 우암(尤庵)과 수암(遂庵) 우암은 송시열의 호이고, 수암은 권상하(權尙夏)의 호이다. 대로(大老) 덕과 명망이 높은, 나라의 큰 어른을 가리킨다. 《맹자》 〈이루 상(離婁上)〉에 "(백이와 태공) 두 노인은 천하의 대로인데 문왕에게 돌아갔으니, 이는 천하의 아버지가 문왕에게 돌아간 것이다. 천하의 아버지가 문왕에게 돌아갔으니, 그 자제들이 어디로 가겠는가.〔二老者, 天下之大老也, 而歸之, 是天下之父歸之也. 天下之父歸之, 其子焉往?〕" 하였다. 들보……자리네 원문의 '최량(摧樑)'은 태산이 무너지고 대들보가 꺾인다는 '산량퇴괴(山梁頹壞)'를 뜻하는 말로, 스승이나 철인(哲人)의 죽음을 의미한다. 《禮記 檀弓上》 '상생(象生)'은 죽은 자를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것으로 여겨 의복과 기물 및 의식 절차를 살아 있는 이에 준하여 행하는 것을 말한다. 의발(衣鉢) 본디 불교(佛敎)에서 스승이 제자에게 전법(傳法)의 표신으로 주는 가사(袈裟)와 발우(鉢盂)를 말한 것으로, 전하여 특히 학문 전수(學問傳授) 등의 경우에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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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짓다 偶題 열 식구가 반경의 밭436)을 경작하니 十口佃治半頃田늙을수록 생계가 더욱 빈약해지네 老來活計轉蕭然미몽을 장주의 나비437)와 동일시 않고 不將迷夢同莊蝶홀로 깊은 원망을 품어 두견에게 묻네 獨有深冤問杜鵑취하고 깬 것은 사후에 논해야 하거늘 醉醒自應論死後달고 쓴 것을 하필이면 생전에 따지랴 苦甘何必較生前날씨가 무더운 걸 염려해서가 아니라 未須爲慮天時熱내 갓끈과 두건 씻으러 돌샘으로 가네438) 濯我纓巾向石泉 十口佃治半頃田, 老來活計轉蕭然.不將迷夢同莊蝶, 獨有深冤問杜鵑.醉醒自應論死後, 苦甘何必較生前?未須爲慮天時熱, 濯我纓巾向石泉. 반경(半頃)의 밭 50묘(畝)로, 면적이 좁은 밭을 표현한 말이다. 100보(步)를 묘(畝)라 하니, 이는 길이가 100보에 너비가 1보이며, 100묘를 부(夫)라 하니 이는 1경(頃)이니 길이와 너비가 100보이며, 3부를 옥(屋)이라 하니 이는 3경이니 너비가 300보에 길이가 100보이며, 3옥을 정(井)이라 하니 900묘이니 길이와 너비가 1리이다.〔步百爲畝, 是長一百步, 闊一步. 畝百爲夫, 是一頃, 長闊一百步. 夫三爲屋, 是三頃, 闊三百步, 長一百步. 屋三爲井, 則九百畝也, 長闊一里.〕 《禮記補註》 장주(莊周)의 나비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다가 깬 뒤에, 장주가 나비로 되었는지 또는 나비가 장주가 되었는지 판단하기에 애썼다는 고사가 있다. 《莊子 齊物論》 내……가네 세속을 벗어나 고상함을 지키려는 의지의 표명으로,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의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淸兮, 可以濯我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我足.〕"라는 말을 전용(轉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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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직의 자에 대한 설 曺仲直字說 《서경(書經)》 〈우서(虞書)〉에 "너의 마음이 머무는 곳을 편안히 하라.", "보필하는 신하는 정직해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정직함[直]은 살아가는 이치이고107) 마음의 덕이며 귀신의 정령(精靈)이다. 만약 경(敬)하여 잘못됨이 없으면 마음에 보존되는 것이 정직하고, 의(義)를 으뜸으로 여긴다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정직하다. 이것으로 사람을 대하면 내가 남을 보필하는 것이 정직하게 되고, 이것으로 벗을 취하면 남이 나를 보필하는 것이 정직하게 된다. 혹시 군주의 신임을 받고 때를 만나서 조정의 반열에 서게 된다면 허물을 다스리고 잘못을 바로잡으며 나라를 다스리는 대도(大道)를 순치(馴致)108)하는 것 또한 어찌 원개(元凱)109) 등 여러 용110)이 모여서 국사(國事)를 논의하던 성대한 모습에 뒤지겠는가?조생 필승(曺生弼承)이 중직(仲直)을 자(字)로 삼았으니, 취한 뜻이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음을 알겠다. 평소에 부지런히 노력한다면 어찌 다함이 있겠는가. 이것을 적어 조생에게 알리고자 한다. 虞書曰。安汝止。其弼直。直。生之理也。心之德也。鬼神之情也。苟能敬而無失。則存乎中者直矣。義以爲上。則形於外者直矣。以之而接人。則吾所以弼人者直矣。以之而取友。則人所以弼我者直矣。其或得君遇時。而立於朝著之間。則所以繩愆糾繆而馴致大猷者。亦何讓於元凱群龍。濟濟都兪之盛也。曺生弼承字以仲直。其取義。知不外此。而尋常顧勉。亦豈有窮己哉。請書此而相諗焉。 정직함[直]은……이치이고 《논어(論語)》 옹야(雍也)에 "사람이 살게 되는 이치는 곧은 데에 있다. 곧지 않은데도 살게 되는 경우는 요행히 면한 것일 따름이다."라는 공자의 말이 있다. 순치(馴致) 점차로 진행하여 극성한 데에 이르게 된다는 말로, 《주역》 〈곤괘(坤卦) 상(象)〉에, "서리를 밟으면 단단한 얼음이 곧 이르게 됨은 음이 비로소 얼기 시작함이니, 그 도를 순조로이 점차로 익히어 가서 단단한 얼음에 이르는 것이다."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원개(元凱) 팔원팔개(八元八凱)의 약칭이다. 중국 전설상의 임금인 고신씨(高辛氏)에게 재능 있는 아들 여덟 명이 있었는데, 이들을 '팔원'이라고 하였고, 고양씨(高陽氏)에게 재능 있는 아들 여덟 명이 있었는데, 이들을 '팔개'라고 하였다. 이들의 후손들이 그 명성을 이어가자, 순 임금이 요 임금에게 이들을 천거하여 등용하였는데, 훌륭한 통치로 이름을 떨쳤다. 여러 용 현신(賢臣)을 비유한다. 《후한서(後漢書)》 권60 〈낭의전(郞顗傳)〉에 "요 임금이 제위에 있자 여러 용들이 쓰였고, 주나라 문왕과 무왕이 덕을 개창함에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이 보필하였다.[唐堯在上, 群龍爲用, 文武創德, 周召作輔.]"라고 보이는데, 이현(李賢)의 주(注)에 "여러 용은 현신을 비유한다.[群龍, 喩賢臣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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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백순의 자에 대한 설 朴伯順字說 내가 일찍이 우인(友人) 박 사문(朴斯文)을 위하여 그의 이름을 효동(孝東)이라 명명하고 자(字)를 백순(伯順)이라고 하였다. 오랜 세월이 지나 사문(斯文)이 나에게 말하기를, "제 이름을 지어 주신 이래로 부형(父兄)이나 사우(師友)들 사이에서 저의 이름을 부르고 저의 자(字)를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 그때마다 항상 척연히 두려워하면서 스스로 반성하는 마음을 갖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좋은 이름이 사람에게 주는 도움은 대야나 물그릇, 지게문이나 창호(窓戶)에 적는 명문(銘文)보다 큽니다. 자(字)를 지어 주고 설명을 하는 것은 옛날부터 있던 일입니다. 어찌 저를 위해 은혜를 베풀지 않으십니까."라고 하였다.그래서 내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천서(天舒)와 천질(天秩)105)은 그 단서가 끝이 없이 많지만, 벼리가 되는 큰 이치는 오직 효(孝)가 그것이다. 효는 천하의 대순(大順)이고 순(順)은 천하의 지당(至當)이다. 이는 천심(天心)과 인리(人理)가 끝없이 생겨나 두루 흘러서 바뀌거나 그치지 않는 곳이다. 그러나 효라고 이르는 것이 어찌 단지 슬하에서 부모의 뜻을 받들거나 힘든 일을 하고 봉양하는 것을 이를 뿐이겠는가. 부모가 나에게 온전한 성명(性命)을 남겨주었으니 내 몸으로 해야 하는 일은 모두 효이다. 모름지기 미루어 넓혀나가 흠결이 되는 것이 없으며 광명정대(光明正大)한 경지에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하여 도덕이 완벽한 군자다운 사람이 된다면 효(孝)를 행하고 순(順)을 행하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효제(孝弟)는 순덕(順德)이다.'106)라고 하였다. 사문(斯文)은 힘쓰라!" 余嘗爲友人朴斯文。命其名曰孝東字伯順。久之。斯文向余道。一自錫嘉。在父兄師友之間。聞其名我字我。輒不無惕然愧懼自反自省之意。嘉名之有助於人。過於盤盂戶牖之有銘遠矣。字之有說古也。盍爲我加惠焉。余曰。天舒天秩。其端無窮。而綱理之大。惟孝是己。孝者天下之大順也。順者天下之至當也。此天心人理。生生周流。不容易不容已處。然所謂孝者。豈但承順膝下服勞致養之謂而已耶。父母以性命之全。遺之於我。我之身所當爲者。皆孝也。須推而擴之。無所虧欠。立其身於光明正大之域。而爲全德君子之人。則其爲孝爲順。顧何如哉。程子曰。孝弟順德也。斯文勉之。 천서(天敍)와 천질(天秩) '천서'는 하늘의 윤서(倫敍)로, 군신(君臣)ㆍ부자(父子)ㆍ형제(兄弟)ㆍ부부(夫婦)ㆍ붕우(朋友)의 윤서를 이르고, '천질'은 하늘의 품질(品秩)로, 존비(尊卑)와 귀천(貴賤)의 높고 낮은 품질을 이른다. 《서경》 〈우서(虞書) 고요모(皐陶謨)〉에 "하늘이 윤서로 법을 두시니 우리 오전을 바로잡아 다섯 가지를 돈후하게 하시며, 하늘이 품질로 예를 두시니 우리 오례로부터 하여 다섯 가지를 떳떳하게 하소서."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효제(孝弟)는 순덕(順德)이다 《논어집주(論語集註)》 〈학이(學而)〉에 보이는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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