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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 눈보라 初冬 風雪 바다 하늘 눈보라가 겨울 들어 심해지니 海天風雪入冬深무슨 일로 처량하게 객의 마음 흔드나 何事悽悽攪客心무너진 몇 집에는 국화꽃이 시들고 摧敗幾家殘菊朶쓸쓸한 일천 산엔 단풍 숲 저무네 飄零千峀晩楓林들집의 가난한 농부는 곡식 수확 바쁘고 忙收野舍貧農稼산촌의 게으른 아낙 다듬이질 재촉하네 催起山村懶婦砧다시 밤이 와서 사람이 오지 않으니 還可夜來人不到형제와 같은 방에서 옛글을 찾네 棣蘭同室古文尋 海天風雪入冬深, 何事悽悽攪客心.摧敗幾家殘菊朶, 飄零千峀晩楓林.忙收野舍貧農稼, 催起山村懶婦砧.還可夜來人不到, 棣蘭同室古文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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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를 설립한 날에 제군과 함께 읊다 設社日 共諸君吟 고색 창연한 벽절산에 古色蒼蒼碧節山선비들이 빽빽이 달빛 아래 돌아오네 林林冠珮月中還초겨울 밤에 갓 씌운 등에 향그런 책상 있고 篝燈芸榻初冬夜백 리 길에 쑥대 신에 버들 지팡이 이어지네 蓬屐筽筇百里間지극히 가까운 이것으로부터 나아갈 수 있으니583) 至近如能從此進한참 높아 끝내 오르기 어렵다 말하지 말라 彌高莫道竟難攀스승과 벗이 서로 필요한 뜻을 알려하면 欲知師友相須意단지 마음에 있지 얼굴584)에 있지 않다네 只在心肝不在顔 古色蒼蒼碧節山, 林林冠珮月中還.篝燈藝榻初冬夜, 蓬屐筽筇百里間.至近如能從此進, 彌高莫道竟難攀.欲知師友相須意, 只在心肝不在顔. 지극히 …… 있으니 지극히 가까운 곳에서부터 학문을 해 나아가라는 뜻이다. 얼굴 얼굴을 대하고 만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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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 십육일 삼가 선사의 〈구일 등고〉 시에 차운하다 기사년. 아래도 같다. 九月旣望 謹次先師九日登高韻【己巳下同】 늦가을 서실엔 티끌도 끊겼는데 晩秋書屋絶纖塵바로 노란 국화와 흰 달 만났네 正値黃花素月辰공자 성인 문하1)의 초학자는 孔聖門墻初學士대한제국 천지의 옛 백성이네 大韓天地舊民人자기 그림자 돌아보며 깊이 회포 논하고 回看自影論深抱이전 공부에 나아가 점차 새로움 깨닫네 却就前工漸覺新경계를 마주해2) 서성이며 잠 못 드는데 對境徜徉還不寐하늘 가득 서리 이슬이 의관을 적시누나 滿天霜露濕衣巾 晩秋書屋絶纖塵, 正値黃花素月辰.孔聖門墻初學士, 大韓天地舊民人.回看自影論深抱, 却就前工漸覺新.對境徜徉還不寐, 滿天霜露濕衣巾. 공자 성인 문하 '공성(孔聖)'은 공자(孔子)를 가리킨다. '문장(門墻)'은 문과 담장이라는 뜻으로, 스승의 문하를 비유한다. 《논어》 〈자장(子張)〉에 "선생님의 담장은 수 장이나 된다. 그러므로 그 문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종묘의 아름다움과 백관의 많음을 볼 수가 없다.[夫子之牆數仞, 不得其門而入, 不見宗廟之美、百官之富.]"라는 내용이 보인다 경계를 마주해 원문의 '대경(對境)'은 불교어로 진경(塵境)을 대하는 것인데, 여기서는 국화나 달 등의 가을의 경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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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중에게 답함 答鄭華中 의림(義林)은 타고난 자품(資稟)이 지극히 어리석은 데다가 어물어물하는 것이 빌미가 되어 젊고 혈기가 왕성한 시절을 헛되이 흘려보냈습니다. 이윽고 만년에 이르러서는 온갖 풍파가 함께 일어나 죽어가는 목숨의 미약한 숨결을 견디지 못하고 기력을 잃은 채 후미지고 궁벽한 시골구석에 숨어 지내고 있습니다. 어찌 존경하는 집사(執事)께서 실정에 맞지 않는 말을 잘못 받아들이시고 현랑(賢郞)을 보내서 이렇게 배우기를 청하도록 하시리라고 생각하였겠습니까. 매우 감사한 일이지만 실제에 맞는 사람이 아니니 어찌하겠습니까. 삼가 보건대 현랑은 온화하고 찬찬하여 포용력이 크고 고상한 성품을 갖추었으니 집안에서 가르침이 훌륭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대로 나아간다면 덕문(德門)에서 큰 결실을 얻는 소식이 이 현랑에게 있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삼가 부러운 마음을 스스로 이기지 못하고 덕문에 축하 인사를 올립니다. 의림(義林)이 연간에 당한 일은 모두 지은 죄에 대한 재앙으로 불러들인 것들이니 비통하고 부끄러워 차라리 죽고 싶습니다. 우리 두 사람이 모두 만년(晩年)의 경계에 있건만, 이웃에 살면서 같은 시대를 살아온 정분을 과연 이 지면(紙面) 하나로 다 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한바탕 시를 짓고 술을 마시며30) 곳간의 양곡을 모두 털어 내는31) 즐거움을 앞으로 펼치게 될까요. 남쪽으로 천관산(天冠山)을 바라보자니 아득한 마음만 절실합니다. 義林素稟至愚。加以因循爲崇。小少强壯。徒爾蹉過。旣而濛汜催景。百劫幷作。㱡㱡餘喘。耐住不得。而頹然蟄藏於僻隅窮蔀之中。豈意尊執事。曲聽過情之言。而命送賢郞。爲此請敎之擧哉。爲感則厚。而其於實非其人何。竊覸賢郞慈祥謹察。所就溫籍。其庭誨之美。可以領略。率是以往。安知德門碩果消息。不在於此耶。竊不自勝其愛艶之私。而奉爲德門賀也。義林年間所遭。莫非罪殃致然。悲霣慙作。寧欲溘然。吾兩人俱在葉楡境中。隣壤竝世之分。果以此一紙面而塞責耶。抑一場文酒。傾困倒廩之樂。行在來頭耶。南望天冠。只切悠悠。 한바탕……마시며 《양서(梁書)》 〈강혁전(江革傳)〉에 "여유롭게 노닐고 한가롭게 지내면서 시 짓고 술 마시는 것으로 스스로 즐거워하였다.【優遊閑放, 以文酒自娛.】"라는 구절이 보인다. 곳간의……내는 원문의 '경균도름(傾囷倒廩)'은 자신의 생각과 식견을 남김없이 드러내어 말해 준다는 뜻이다. 한유(韓愈)의 〈답두수재서(答竇秀才書)〉에 "비록 도를 쌓고 덕을 지니고 있으면서 자신의 재능을 감추어 드러내지 않고 자기 입을 막아 도를 전하지 않는 옛날의 군자라 하더라도 이처럼 간절하게 청하는 족하 같은 사람을 만난다면 자신의 창고에 있는 재화를 다 기울여서 나열하여 바칠 것입니다.【雖使古之君子, 積道藏德, 遁其光而不曜, 膠其口而不傳者, 遇足下之請懇懇, 猶將倒廩傾囷, 羅列而進也.】"라는 구절에서 온 말이다. 《韓昌黎文集 卷15 答竇秀才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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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모 군에게 주다 贈洪君錫模 두 형제396)가 부북397)에서 명성을 독차지하니 二難扶北擅名聲세운 뜻이 양정398)에 있음을 어찌 마다하리오 立志何辭在兩程참 맛은 반드시 맑고 담박한 데에서 얻게 되고 眞味定從淸淡得환란399)은 되레 순탄하고 편안한 데서 생기지 駭機還自坦安生몸을 단속함에는 먼저 마음의 병부터 다스리고 檢身先可治心疚발을 내딛으면 응당 세상의 화평을 이뤄야하리 出脚應將致世平고맙게도 그대가 번거롭게 다시 돌아봐 주니 多謝惟君煩再顧한 편의 시에 백년의 정을 담아 보낸다오 一章詩贐百年情 二難扶北擅名聲, 立志何辭在兩程.眞味定從淸淡得, 駭機還自坦安生.檢身先可治心疚, 出脚應將致世平.多謝惟君煩再顧, 一章詩贐百年情. 두 형제 홍석모(洪錫模)와 석규(錫奎) 형제를 가리킨다. 원문의 '이난(二難)'은 형제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모두 뛰어나다는 뜻이다. 후한(後漢)의 진기(陳紀)와 아우 진심(陳諶)이 훌륭하여 서로 우열을 가릴 수 없던 데서 생겨난 말인 난형난제(難兄難弟)에서 온 말이다. 《世說新語 德行》 부북(扶北) 부안 북쪽을 말한다. 양정(兩程) 송(宋)나라 때 학자 정호(程顥)와 정이(程頤) 형제를 지칭하여 그들의 학문을 비유한 것이다. 환란 원문의 '해기(駭機)'는 갑자기 발사하는 쇠뇌인데, 졸지에 발생하는 환란(患亂)을 비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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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宋承【鎭鳳】 冀缺午分饁。淵明夕荷鋤。君今行古道。況復好看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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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瀛洲李慶運【啓徵用下沙韻】 突兀瀛洲山。心存跡未到。蒼蒼白麓潭。送子若爲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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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헌이 방문해 이별한 후 뒤늦게 짓다 愼軒見訪 別後追題 문 밖에서 늙은 삽살개가 짖어대더니 門外蒼狵報一聲표연히 높은 나막신227) 시내 길로 왔네 飄然高屐躡溪程보기 싫은 누린내 요기228)에 단심이 끓고 厭看腥祲丹心沸해명 힘든 음험한 무고에 백발이 돋네 苦辨陰誣白髮生말세의 풍속에 인욕도 험해지니 어쩌랴 末俗其如人慾險곧은 도만 내 평생 스스로 믿어 왔다오 直道自信我生平백년인생 생사를 함께 전할만하니 百年存沒堪同傳헤어져도229) 애써 아쉬워할 것 없다네 雲樹無勞惜別情 門外蒼尨報一聲, 飄然高屐躡溪程.厭看腥祲丹心沸, 苦辨陰誣白髮生.末俗其如人慾險, 直道自信我生平.百年存沒堪同傳, 雲樹無勞惜別情. 높은 나막신 원문의 '고극(高屐)'은 신헌(愼軒)이 찾아온 것을 비유한 것이다. 진(晉)나라 이래로 사대부들은 나막신을 즐겨 신어서 비가 내리지 않아도 이것을 신었는데, 남조 송(南朝宋)의 사령운(謝靈運)이 명산을 유람할 적에 산을 오를 때에는 나막신[屐]의 앞굽을 떼어 버리고 산을 내려올 때에는 뒷굽을 떼어 걷기에 편리하도록 했다는 고사가 있다. 《宋書 卷67 謝靈運列傳》 누린내 요기 원문의 '성침(腥祲)'은 오랑캐 즉 일본을 비유한 것이다. 헤어져도 원문의 '운수(雲樹)'는 멀리 있는 벗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뜻한다. 두보(杜甫)의 〈춘일억이백(春日憶李白)〉에 "위수 북쪽 봄날의 나무 한 그루, 장강 동쪽 해 질 녘 구름이로다.[渭北春天樹, 江東日暮雲.]"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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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을에 즉흥으로 읊다 早秋 卽事 때는 장차 칠월칠일 서늘한 초가을 時將七七早凉天또 일년에 반년이 조금 넘는구나 又是一年强半年오동잎 시들어 스친 바람에 떨어지고 梧葉微凋風剪下벼꽃은 막 피며 가는 비에 이어지네 稻花初發雨絲連거울 속엔 천 가닥 백발이 선명한데 鏡中的歷千莖雪변새 밖엔 만리에 낀 연기 아득하리 塞外蒼茫萬里烟봉도의 시의 풍격이 물처럼 맑으니 蓬島詩標淸似水근심 씻는데 술동이가 필요 없다네 滌愁無待酒樽邊 時將七七早凉天, 又是一年强半年.梧葉微凋風剪下, 稻花初發雨絲連.鏡中的歷千莖雪, 塞外蒼茫萬里烟.蓬島詩標淸似水, 滌愁無待酒樽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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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여명과 유계뢰, 하로익에게 써서 주다 書贈姜汝明柳季雷河魯益 사군자가 마음을 세우고 몸가짐을 바르게 하는 데에는 본래 그 방도가 있으니, 평탄하거나 험난하다고 해서 나아가거나 물러나지 않고, 영화롭다거나 괴롭다고 해서 나아가거나 등지지 않아서 넘어지고 떠도는 데에 이르게 하는 것이 비록 만 가지로 매우 많다 하더라도 나의 의리를 행하는 것은 본디 그대로이다. 그러나 학문으로 앎을 열고 성경(誠敬)으로 마음을 길러서 지킴을 견고하게 하고 행함을 독실하게 하지 않는다면 뜻이 기운을 통솔하지 못하고 기운이 몸에 충만하지 못하여 평상시 생활하는 사이에 저절로 뜻과 기운이 쇠퇴하고 게을러져서 열에 칠팔은 새어 버리는 폐단이 있게 됨을 면치 못할 것인데, 하물며 창졸간의 위급한 상황에서 어떻게 힘을 내어 우리가 지키던 것을 잃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옛사람이 이른바 옥중에서 《상서(尙書)》를 읽고 배 안에서 《대학》을 읽었다는 것이 오활한 유자(儒者)의 졸렬한 방법인 것 같지만, 진실로 환난에 처해서 환난대로 행하는 제일의 일인 것이다.세 군이 사문(師門) 애산(艾山)22)다. 저서로는 《노백헌집》이 있다.의 명으로 오백 리 길을 산 넘고 물 건너 부춘(富春)의 영귀정(詠歸亭)을 찾아온 것은 대체로 세한(歲寒)의 풍상에 매우 고생하여 영결(永訣)을 알리기 위한 뜻이었다. 떠나려 하면서 한마디 말을 해 줄 것을 청하니, 아, 비록 군들의 말이 아니더라도 구구하게 서로 돈후하게 대하는 뜻이 또 어찌 한량이 있겠는가. 다만 세상의 변고가 이와 같아서 앞으로 만날 일을 알 수 없으니, 우리들이 서로 알려 주고 권면하는 것이 어찌 다른 뜻이 있을 수 있겠는가. 진부하다고 해서 소홀하게 여기지 말아 준다면 다행이겠다. 士君子立心行己。自有其道。不以夷險而前却。不以榮悴而向背。以至顚沛流離。雖極萬端。所以行吾義者。固自如矣。然非有學問而開其知。誠敬而養其心。使守之固而行之篤。則志不率氣。氣不充體。尋常日用。自不免有衰颯偸惰七漏八滲之弊。況於倉卒緩急。何以爲力而不失吾所守哉。古人所謂獄裏尙書。舟中大學。似涉於迃儒拙法。而實是素患行患第一事。三君以其師門艾山之命。跋涉半千里。相訪於富春之咏歸亭。蓋致其歲寒風霜辛勤告訣之意也。臨發。請以一言之贈。嗚呼。雖靡君敎。而區區相厚之意。又豈量哉。但世變如此。前頭遭遇。有不可知。則吾輩所以相告而相勉者。豈容有他般義諦哉。勿以陳腐忽之幸矣。 애산(艾山) 정재규(鄭載圭, 1843~1911)의 호이다. 자는 영오(英五)ㆍ후윤(厚允)이고, 호는 노백헌(老柏軒)ㆍ물계(勿溪)이며,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경상남도 합천군 쌍백면 묵동에서 살았으며, 일신재(日新齋) 정의림(鄭義林)ㆍ대곡(大谷) 김석구(金錫龜)와 더불어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문하의 3대 제자로 불리었다. 저서로 《노백헌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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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수재 재연 에게 주다 贈文秀才【載淵】 효는 인륜 중에 가장 가깝고 쉬워 어린아이도 행할 수 있는 것이고, 우매한 사람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선덕(先德 덕망이 있는 선배)의 말 중에 "몸을 성실하게 하지 못하면 어버이에게 순종하지 못하니, 몸을 성실하게 하는 것이 덕을 이루는 이상의 일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른바 '가깝고 쉽다.'라는 것이 이처럼 높고도 먼 것인가?무릇 효의 뜻은 포함된 바가 매우 넓으니, 말 한마디와 행실 하나라도 진실로 효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지만, 효의 지극한 경지를 말한다면 본성을 다한 성인의 경지가 아니고서는 여기에 해당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순(舜)에게 조심하고 두려워하는 공경과 점점 다스려지게 하는 덕이 없었다면 어찌 그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데에 이를 수 있었겠는가.천하에 옳지 않은 부모는 없으니, 단지 내가 어버이를 사랑하는 것이 순만 못하며, 어버이를 공경하는 것이 순만 못하며, 어버이를 봉양하는 것이 순만 못하며, 덕이 순만 못하며, 지혜가 순만 못할 뿐이로다. 만약 한 터럭만큼이라도 순에게 미치지 못함이 있다면 자식으로서의 직분에 본분을 다하지 못한 점이 있는 것이다.문생(文生) 재연(載淵)이 나를 따라 공부하였는데, 어느 날 어버이를 섬기는 도리에 대해 물었다. 문생은 법도가 있는 집안의 자손이라 가정에서 보고 배우는 바에 반드시 나 말고도 다른 스승이 있을 것이니, 어찌 비루한 나의 말을 기다릴 것이 있겠는가.《주역ㆍ고괘(蠱卦)ㆍ구이(九二)》에 이르기를, "어머니의 일을 주관함이니,  고집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고, 《정전(程傳)》18)에 이르기를, "자식은 어머니에 대해서는 마땅히 유순함과 공손함으로 보좌하고 인도하여 의리에 맞게 해야 하니,  순하지 않아서 패고(敗蠱)를 초래하면 이는 자식의 죄이다."라고 하였다.무릇 은미하게 간하는 일은 있되 위엄을 범하여 간언하는 일은 없어야 하고, 기미를 보아 간하되 은미하게 풍간해야 한다. 이것이 어버이를 섬기는 절도인데, 하물며 어머니와 자식 사이는 오직 순도(順道)로 서로 받들 뿐, 더욱 알직(訐直)19)을 용납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님에랴. 반드시 온화한 기운을 흡족할 만큼 흘러넘치게 하고 정성스러운 뜻을 측은하게 여길 만큼 간절하게 하여 말을 곡진하게 하고 사리를 상세하게 밝힌다면 저절로 어버이의 뜻이 순하게 되어 일을 주관할 수 있을 것이다.대저 학문을 하는 것과 효를 하는 것은 본래 두 가지 일이 아니다. 학문이 한 걸음 진보하고, 효가 한 걸음 진보하여 몸을 성실하게 하는 데에 이른다면 어버이에게 순종함이 지극할 수 있을 것이니, 힘쓰고 힘써야 할 것이다. 문생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집안일을 맡은 적자(嫡子)로서 지금 한창 어머니의 일을 주관하는 자이기 때문에 삼가 〈고괘(蠱卦)〉의 말로 고한다. 孝於人倫。最近且易。孩提之所能行。愚蒙之所能知。然先德之言曰。不誠乎身。不順乎親。誠身是成德以上事也。所謂近且易者。若是其高且遠耶。夫孝之爲義。所包甚廣。一節一行。固不可謂非孝。而語其至。則非聖人盡性。不足以當之。若使舜無夔慄之敬。烝乂之德。何以能底豫其父。天下無不是底父母。但吾所以愛親者。不如舜乎。敬親者。不如舜乎。養親者。不如舜乎。德不如舜乎。智不如舜乎。如有一毫不及舜。便於子職有不盡分處。文生載淵從余遊。一日問事親之道文生法家子孫。其所擩染。必有餘師。而何待於鄙說哉。蠱卦九二曰。幹母之蠱。不可貞。傳曰。子之於母。當以柔順輔導之。使得於義。不順而致敗蠱。則子之罪也。夫有隱無犯。幾諫微諷。此是事親之節。況母子之間。專以順道相承。尤非可容訐直之地。必使和氣浹洽。誠意懇惻。言辭委曲。事理詳明。則自然親意順而幹務得矣。大抵爲學爲孝。本非兩事。學進一分。孝進一分。至於誠身。可以爲順親之至。勉之勉之。文生早孤當室。方是幹母之蠱者。故謹以蠱卦說告之。 정전(程傳) 송(宋)나라 유학자 정이(程頤)가 《주역》을 해설한 것이다. 알직(訐直) 남의 잘못을 들추어내는 것으로 자신의 정직함을 삼는 것을 말한다. 《논어》 〈양화(陽貨)〉에 "불손한 것을 용맹으로 여기는 자를 미워하고, 남의 비밀을 들추어내어 정직하다고 여기는 자를 미워합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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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순에게 써서 주다 書贈金龜淳 회암(晦庵 주희(朱熹)) 선생이 말하기를, "배우는 사람이 부귀와 빈천에 대해 입장이 정해지지 않으면 입문하자마자 곧 어긋나게 된다." 하였다. 무릇 부귀와 빈천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반드시 있게 되는 분수이고, 도덕과 인의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반드시 있게 되는 성품이니, 부귀하다고 해서 풍부해지지 않고, 빈천하다고 해서 인색해지지 않으며, 부귀하다고 해서 행해지지 않고, 빈천하다고 해서 폐기되지 않는다. 진실로 그 만남을 편안하게 여겨 나의 법을 행할 수 있다면 사립문이나 옹기로 만든 창문은 곤궁함이 되지 않을 것이고, 말채찍을 잡거나 문을 지키는 것은 비천함이 되지 않을 것이다.아, 나에게 있는 지극히 존귀한 것을 추구하지 않고 외면을 향해 바삐 내달리면서 의리와 분수를 침범하여 대낮부터 저물녘까지 말단 벼슬을 추구한다면 어찌 심히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는 배우는 사람이 입장을 세우는 초기에 분별하여 취사와 향배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여기에서 어긋나면 큰 근본을 이미 상실한 것이니, 다시 무슨 일을 배우겠는가.맹자가 말하기를, "천하의 넓은 집인 인(仁)에 거처하고, 천하의 바른 자리인 예(禮)에 서며, 천하의 대도인 의(義)를 행하면 부귀가 마음을 방탕하게 하지 못하고, 빈천이 절개를 바뀌게 하지 못하며, 위엄과 무력이 지조를 굽히게 할 수 없으니, 이러한 사람을 대장부라 이른다."21)라고 하였으니, 아름답구나. 이 말이여! 여러 차례 반복해서 읊조리면 사람으로 하여금 끝없이 감개한 마음을 갖게 한다.김생(金生) 귀순(龜淳)이 수개월 동안 나를 따라 공부하였는데, 이별할 때에 남은 회포를 이길 수 없기에 이 글을 써서 줄 것을 청하였다. 晦庵先生曰。學者不於富貴貧賤上。立得定。則是入門便差了。夫富貴貧賤。人生所必有之分。道德仁義。人生所必有之性。不以富貴而豊焉。不以貧賤而嗇焉。不以富貴而行焉。不以貧賤而廢焉。苟能安其遇而行吾法。則蓽門甕牖不爲窮。執鞭抱關不爲賤。嗚呼。不求其至尊至貴之在於我者。而向外奔走。犯義犯分。以求一資半級於黃昏白日之間。豈非不思之甚耶。此學者立脚之初。所當分別劈破而爲取舍向背者也。若於此差却。則大本已失。更學何事。孟子曰。居天下之廣居。立天下之正位。行天下之大道。富貴不能淫。貧賤不能移。威武不能屈。此之謂大丈夫。旨哉言乎。三復諷詠。令人有感慨不盡之意。金生龜淳從余遊數月矣。於其別也。不勝餘懷。請書此以贈。 천하의……이른다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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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과 금강산을 유람하기로 약속하고 約子貞將遊金剛山 금강산 절경은 맑은 유람할 만하니 金剛絶勝可淸遊자자한 명성은 해외로도 흘러갔지 藉藉名聲海外流만 이천 봉은 옥 홀을 뽑아놓은 듯 萬二千峯抽玉笏서 남 북국의 수레와 배가 뒤엉켰네92) 西南北國錯車舟언제나 생각하며 봄꿈에 수고로웠는데 幾時念念勞春夢반평생을 허둥대다 흰머리가 되었다오 半世悤悤到白頭그대에 힘입어 나란히 갈 날을 정하니 賴子聯筇行有日상쾌한 기운이 양미간에 이미 떠올랐네 已看爽氣兩眉浮 金剛絶勝可淸遊, 藉藉名聲海外流.萬二千峯抽玉笏, 西南北國錯車舟.幾時念念勞春夢, 半世悤悤到白頭.賴子聯筇行有日, 已看爽氣兩眉浮. 서……뒤엉켰네 동쪽의 금강산을 관광하기 위해 사방에서 찾아온 많은 수레와 배가 북적이는 모습을 상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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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날에 도암68) 선생의 〈입자〉에 차운하다 立秋日次陶菴先生《立字》韻 위대하다 우리 스승이시여 大哉吾夫子서른 살에 우뚝 자립했는데 三十卓而立나는 쉰 살이 되고서도 而余五十歲뜻이 이미 섰다고 감히 말하랴 敢云志已立기풍을 백세 위에 떨치니 風奮百世上나약한 자도 자립하길 생각하는데 懦者亦思立하물며 이처럼 쇠퇴한 세상에 矧玆頹波日어찌 지주69) 세울 이가 없겠는가 那無砥柱立내 삶도 진정 얼마 남지 않았는데 人生諒無幾오늘 아침이 또 입추로구나 今朝秋又立늙어서도 끝내 알려짐이 없으니 老而終無聞어떻게 천지간에 설 수 있겠는가 何以兩間立도암 선생에게 힘입은 바 많아 陶翁多有賴세 번 감탄하며70) 일어선다네 三歎爲起立 大哉吾夫子! 三十卓而立.而余五十歲, 敢云志己立?風奮百世上, 懦者亦思立.矧玆頹波日, 那無砥柱立?人生諒無幾, 今朝秋又立.老而終無聞, 何以兩間立?陶翁多有賴, 三歎爲起立. 도암(陶菴) 이재(李縡, 1678~1746)의 호이다. 자는 희경(煕卿), 본관은 우봉(牛峰)이다. 벼슬이 대제학을 거쳐 의정부 좌참찬에 이르렀는데, 신임사화(辛壬士禍)에 숙부 이만성(李晩成)이 처형되자, 벼슬을 버리고 설악(雪岳)에 들어가 성리학을 닦는 데 힘썼다. 1725년(영조1) 여러 차례 소명(召命)을 받자 소를 올려 소론(少論) 세력을 몰아낼 것을 청했으나 영조가 받아들이지 않자, 용인(龍仁)으로 퇴거하여 후진들에게 학문을 가르쳤다. 저서에 《도암집》 등이 있다. 지주(砥柱) 보통 한 몸에 중책을 지고서 난국을 수습하는 사람의 비유로 쓰인다. 중국 삼협(三峽)의 지주산(砥柱山)을 말하는데, 이 산이 탁한 황하(黃河)의 급류 속에 우뚝 버티고 서서 거센 물결을 혼자 감당하고 있다는 뜻을 취하였다. 세 번 감탄하며 삼탄(三歎)은 일창삼탄(一倡三歎)의 준말로, 《예기》〈악기(樂記)〉에 "청묘(淸廟)의 슬(瑟)은 붉은 현〔朱絃〕으로 되어 있고 소리가 느릿하여서 한 사람이 선창하면 세 사람이 화답하여 여음(餘音)이 있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일반적으로 상대방의 시문이 뛰어남을 형용할 때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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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아241)를 면려하며 勉觀兒 공부를 함은 높은 산을 쌓는 것과 같으니 做工有若築高山차츰 쌓는데 어찌 잠시 쉴 틈이 있겠느냐 積累寧容息暫間끊어진 사문242)을 잇는 일은 양보 못하니 不讓斯文將繼絶누가 천운이 떠나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나 誰言天運去無還이름과 실질에서는 주객을 먼저 구분하고 名實最可分賓主마음과 입243)에서는 경중을 우선 분별해라 心口先須辨緊閒만약 집안의 명성이 너로 인해 커진다면 若使家聲由汝大훗날 덕분에 선친의 얼굴을 뵐 수 있으리 他時藉手拜先顔 做工有若築高山, 積累寧容息暫間.不讓斯文將繼絶, 誰言天運去無還.名實最可分賓主, 心口先須辨緊閒.若使家聲由汝大, 他時藉手拜先顔. 관아 김택술의 3남인 형관(炯觀)을 말한다. 사문(斯文) 유학을 가리킨다. 《논어》 〈자한(子罕)〉에서 공자가 광(匡) 땅에서 곤궁에 처했을 때, "하늘이 사문을 없애려 하지 않으시는 바에야, 광 땅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하겠는가.[天之未喪斯文也, 匡人其如予何?]"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마음과 입[心口] 마음으로 하는 공부와 입으로만 하는 공부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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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3) 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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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상34)【승정】에게 답함 答李道常【承鼎】 지난달 나아갔을 때 병환이 매우 위중하신 것을 알았지만 일시적이고 갑작스럽게 생긴 병이니 반드시 오래지 않아 일상을 회복할 것이고, 또 덕문(德門)이 여러 대에 쌓은 공덕으로 어찌 신명(神明)의 도움과 보살핌이 없겠는가 생각하였습니다. 염려는 절실했더라도 믿는 구석이 있었으니, 누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오래도록 낫지 않으시리라고 생각하였겠습니까. 이 병의 이 고통은 하루도 견디기 어렵건만 하물며 이렇게 석 달이라는 오랜 시간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놀라 실색(失色)하여 즉시 달려가 문안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였습니다. 보내주신 편지는 참으로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모진 고통으로 수고롭고 괴로운 가운데 어떻게 우생(友生)을 잊지 않고 이처럼 간절하게 마음을 쓰십니까. 편지를 쥐고 반복해서 보려니 감격에 겨운 눈물이 옷깃을 적십니다. 스스로 생각건대 이 천한 목숨은 떠돌아다니며 곤궁함과 외로움을 겪으면서 믿고 의지하는 것은 오직 벗이었습니다. 평생토록 종유한 문견(文見), 순견(舜見 안국정(安國禎)의 자)이 모두 이미 나를 버리고 저세사으로 떠났고 오늘에 이르러서는 형이 또 병에 걸리리라는 것을 어찌 알았겠습니까. 천지를 우러러 탄식하려니 쇠약한 몸의 창자가 끊어질 지경입니다. 그러나 중대한 병증(病證)은 날짜가 반드시 오래가는 법입니다. 아마도 짧은 기간에 효과를 바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모쪼록 마음을 편히 갖고 조리하면서 기다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게다가 영랑(令郞)이 밤낮으로 시중을 들면서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어찌 정성과 효심이 이와 같은데 하늘이 돌보아주지 않는 경우가 있겠습니까.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前月進去時。見愼節雖甚沈重。而意謂一時無妄。必將不久復常。且以德門積累之餘。豈無神明扶佑者乎。爲慮雖切。而所恃者在。誰謂至於今日。而尙爾彌留耶。此病此苦。一日爲難。況此三朔之久耶。驚愕失色。卽欲趨走省之。而不可得也。一書之惠。眞望外也。痛楚勞惱之中。何以不忘一友生。而致意若是懇惻耶。執書反復。感淚沾衿。自惟賤命。流離窮獨。所恃惟友。豈知平生遊從如文見舜見皆。已棄我。而至今日。兄又告病耶。俯仰噓唏衰腸欲斷。然重證大病。爲日必久。恐不可責效於霎刻片隙之間。須安心攝理以待之。如何。況聞令郞晝夜扶持。暫不離側。安有誠孝如此。而天不見佑者乎。區區祈祝。 이도상(李道常) 도상은 이승정(李承鼎, 1856∼1899)의 자이다. 본관은 광주(光州)이고 호는 신암(莘菴)이다. 기우만(奇宇萬)의 《송사집(松沙集)》 권38에 〈신암이군묘갈명(莘菴李君墓碣銘)〉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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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해심39)【회일】에게 보냄 與梁海心【會一】 옛날부터 위태로운 때를 만난 열사(烈士)가 어찌 한량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험난함과 괴로움을 두루 경험하기로야 누가 좌우(左右)와 같겠습니까. 소해문옥(蘇海文獄)도 이와 같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윽고 하늘이 도와서 속박에서 풀려 고향으로 돌아와 문간에 기대어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에 부합하였으니 소식을 듣고 감동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거듭 고초를 겪은 나머지 건강이 크게 손상되지 않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위로되고 그리운 마음이 절절하여 매우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의림(義林)은 몇 년의 세월 사이에 재앙이 거듭 이르고 질병이 끊이지 않아 이에 얽매여 구차하게 지내면서 문밖을 나서지 못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이에 한 번 달려가서 문안을 여쭙는 도리를 갖추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인정과 예법이겠습니까. 부끄럽고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지금은 제집에 몸을 붙이고 있는데 숙질(宿疾)이 아직 물러나지 않아 추위를 무릅쓰고 길을 나서기에는 힘이 미치지 못합니다. 결국 한 통의 서찰로 대신하여 근래의 안부를 여쭙습니다. 바라건대 너그러이 용서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自古烈士遭罹危會者。何限。而其備經險苦。孰有如左右。未知蘇海文獄亦如此否。旣而自天佑之。解桎還鄕以副倚閭無窮之忘。足令聞之者動情。未審積苦之餘體度不至有大損否。切切慰戀。殊不勝堪。義林年歲之間。禍故荐仍。疾病連綿。坐此淟忍。不出戶外久矣。玆未能一者趨走。以有相省之道。此豈情禮耶。愧悚而已。今則寄身窮齋。宿疾尙不退聽。觸寒作行。力所不逮。竟不免替修一書。以問近節。幸可恕諒否。 양해심 해심(海心)은 양회일(梁會一, 1856∼1908)의 자(字)이다. 양회일의 호는 행사(杏史)이며 전라남도 화순 출신이다. 화순 일대에서 의병을 일으키기로 하고 가산뿐만 아니라 친척의 토지까지 팔아 군자금을 조달해서 동지들을 불러 모았다. 그는 양열묵(梁烈默), 임노복 등과 더불어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고심하고 1906년 가을부터 창의를 준비하여 쌍산의소(雙山義所)를 결성해서 1907년 4월 능주(綾州), 화순(和順)을 차례로 공격하여 군아(郡衙)와 주재소(駐在所)를 점령하였다. 여세를 몰아 광주를 공격하려고 의병을 이끌고 행군하다가 판치(板峙, 현 너릿재) 전투에서 동지 5명과 함께 체포되어 지도(智島)에 유배되었고, 1907년 12월 특사로 석방되었다. 1908년에 다시 의거를 모색하다가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장흥경찰서에 구금되어 단식 중에 절명하였다. 1990년에 건국공로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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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의 기일에 홀로 앉아 밤을 세우며 2수 先師諱辰 獨坐達夜 【二首】 빈 당에서 닭 울 때까지 근심스레 앉으니 空堂悄坐達鷄鳴모기 침이 어지러이 찔러대 밤새 놀랐네 亂鑽蚊針終夜驚한가닥 마음의 향을 사르며 공경 다하니 一瓣心香多少敬후산이 옛날 증선생을 위한 것과 같다네499) 後山昔爲曾先生머나먼 북쪽 바라보며 곡배하고 돌아오니 北望迢迢哭拜歸눈물 흔적 이슬에 섞여 홑옷을 적시누나 淚痕和露滴單衣이웃 친구는 오지 않고 학동은 잠자는데 隣朋不到書童宿찌륵찌륵 벌레 소리가 내 슬픔을 돋구네 喞喞蟲聲助我悲 空堂悄坐達鷄鳴, 亂鑽蚊針終夜驚.一瓣心香多少敬, 後山昔爲曾先生.北望迢迢哭拜歸, 淚痕和露滴單衣.隣朋不到書童宿, 喞喞蟲聲助我悲. 한가닥 …… 같다네 '일판향(一瓣香)'은 불교의 선종에서 당(堂)을 열어 불법을 강할 때 한가닥 판향을 공경히 받들어 도법(道法)을 전수한다고 말한 데서 비롯된 말로, 이후에는 다른 사람을 사승하거나 흠앙한다는 뜻으로 주로 쓰인다. 북송(北宋) 진사도(陳師道)의 〈연국 문충공 집에서 육일당의 도서를 보고[觀兗國文忠公家六一堂圖書]〉라는 시에 "지난날 한가닥 판향을 올리었거니, 공경히 증남풍을 위한 것이네.[向來一瓣香, 敬爲曾南豐.]"라는 구절이 보인다. 증남풍은 증공(曾鞏)으로 진사도의 스승이었는데, 그가 별세하였으므로 와서 향을 사른 것이다. '후산(後山)'은 진사도(陳師道)의 호이다. 진사도가 증공을 위해서 그랬듯이 김택술이 자신의 스승인 전우(田愚)를 위해 심향을 사른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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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대500)에서 포은 정 선생의 시에 차운하다 萬景臺 次圃隱鄭先生韻 층대의 바위 길이 중천에 비꼈는데 層臺石逕半天橫바람 타고 한 번 올라 숙원을 풀었네 一上乘風償夙情강상에 몇 곳이나 우리 땅이 남았던고 幾處江上餘我土관문 방어하려 당년에 이 성을 쌓았지 當年關防築玆城남아가 유람을 하니 되레 번뇌 많아져 男兒周覽還多惱세상사 헤아리니 늦게 났음을 느끼네 世事商量感晩生이전과 이후 사람이 서로 볼 수 없으나 前往後來相不見포옹의 높은 운치 누가 이보다 크리오 圃翁高韻孰能京 層臺石逕半天橫, 一上乘風償夙情.幾處江上餘我土, 當年關防築玆城.男兒周覽還多惱, 世事商量感晩生.前往後來相不見, 圃翁高韻孰能京. 만경대 전라북도 전주의 남고산성이 위치한 남고산에는 천경대, 만경대, 억경대 등 세 개의 봉우리가 있다. 이중 만경대 남쪽 바위 벼랑에는 고려말 정몽주가 남긴 우국시를 찾아볼 수 있다. 《전주시청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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