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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무사재유고》 서문 無邪齋遺稿序 군자의 도는 진실로 두 가지로 귀결됨이 없지만, 일에 드러난 것은 각각 다른 점이 있으니, 만약 성공과 실패로 그 자질을 논하고, 출세와 침체로 그 덕을 논한다면 어찌 사람을 아는 것이라 하겠는가.우리 선생의 도덕과 조예는 진실로 후학들이 헤아릴 수 있는 바가 아니지만, 겉으로 드러난 것으로 예를 들면 뜻을 지킴이 확고한 것과 품고 있는 식견이 해박한 것, 행실이 독실한 것들은 근래에 찾아보아도 실로 드물게 보이는 것들이다. 그러나 먼 시골구석에서 나고 자라서 지방 수령이 천거를 할 수 없었고, 재상이 이름을 알 수 없었다. 이것이 선생의 도가 세상에 행해지지 못한 이유이다.여항(閭巷)의 선비들은 선생의 학문을 별개의 일처럼 여긴데다 또 사모할 만한 명성이 없다고 여겼으니, 어느 누가 기꺼이 좋아하는 바를 버리고 이처럼 쓸쓸한 사람을 따르려 했겠는가. 이것이 선생의 도가 사람들에게 전해지지 못한 이유이다.세 아들이 잇따라 세상을 떠나고, 두 손자는 어린 고아로 흩어져서 타향을 떠돌아 다녔기에 계승했다는 말을 들을 수 없었으니, 이것이 선생의 도가 집안에 전해지지 못한 이유이다.도가 세상에 행해지지 못할 경우에는 반드시 사람에게 전해 주고, 사람에게 전해지지 못할 경우에는 반드시 집안에 전해주는데, 이렇게도 저렇게도 하지 못하여 시종 들려오는 말이 없는 사람으로 선생같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변고에 처한 한때의 운수뿐만 아니라, 험난한 일신의 운명도 여지가 없었다. 선생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살아서는 의로운 사람이 되고, 죽어서는 의로운 귀신이 될 뿐이지, 다시 무엇을 근심하겠는가."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성내지도 않고 후회하지도 않으면서 항상 여유가 있었던 이유이다.선생(先生)의 글은 담담하여 화려하지도 않았고, 졸렬하여 꾸밈도 없었다. 평소에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일찍이 남을 위해 붓을 잡지 않았고, 혹시라도 서술할 글이 있으면 곧바로 산묵(散墨 자잘한 시문)을 던져주며 말씀하시기를, "옛사람이 서술한 글에 갖추어져 있으니, 많이 지으면 군더더기가 되고, 잘못 지으면 어질러놓음이 된다."라고 하였으니, 이 때문에 글이 남에게 전해져 암송되는 것이 매우 적었다.선생의 도가 이미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지 못했고, 또 글로 전해진 것도 없으니, 백세 뒤에 어느 누가 백세 전에 선생이 있었다는 것을 알겠는가. 그러나 천하의 만물은 무릇 동류끼리 모두 서로 비슷하니, 무너지지 않는 산악에서 선생의 기상을 볼 수 있고, 마르지 않는 강물과 바다에서 선생의 도량을 볼 수 있으며, 길이 푸른 소나무와 잣나무에서 선생의 지조와 절개를 볼 수 있고, 가없는 바람과 달빛에서 선생의 감회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선생의 도가 비록 한때에 드러나지 않았더라도 천지 사이에 보존되는 것이 어찌 끝이 있겠는가.아, 오늘날 이 책을 편집한 것은 선생의 뜻이 아니고, 또 후세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것도 아니다. 다만 산묵(散墨) 사이에 드문드문 있는 것이 비록 열에 하나도 남아 있지 않더라도 후세 사람으로서 어찌 사라지도록 내버려둘 수 있겠는가.내가 우매하여 참으로 그 사이에서 손을 댈 수 없지만, 문하의 반열에 있기에 그 책임을 사양하지 못했고, 게다가 그럴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문류(門類)를 나누어 정하고, 두 편으로 기록하여 후세에 안목이 있는 자가 더욱더 바르게 해주기를 기다린다. 선생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이 유고에서 구할 필요가 없다. 사람은 옛사람이고, 도는 옛날의 도이지만, 그 기상과 위의(威儀)는 천지 사이에 있는 정기(正氣)가 모두 이것이라 하겠다. 君子之道。固無二致。而其所以見諸事業者。各有不同。若以成敗論其材。升沈論其德。則豈所以知人者哉。我先生道德造詣。固非後學所可擬測。而見於外者。如持守之堅確。抱負之該洽。操履之篤實。求之近古。實所罕見。然生長遐隅。剌史不能薦。宰相不知名。此先生之道。所以不行於世也。閭巷士子。視先生之學如別件事業。而又無聲勢之可以艶慕者。則孰肯捨所好而從此寥寥哉。此先生之道。所以不傳於人也。三郞繼逝。兩孫藐孤。分散流寓。繼述無聞。此先生之道。所以不傳於家也。不行於世者。必有傳於人。不傳於人者。必有傳於家。而彼此不遇。終始無聞者。其孰先生若也。不惟一時氣數之變。而一身命道之險。亦無餘地矣。先生嘗曰。生則爲義人。死則爲義鬼。如斯而已。復何恤焉。此其所以不慍不悔。而常有餘裕者也。先生之文。淡而不華。拙而不巧。平素非不得已。未嘗爲人下筆。或有所述。輒投諸散墨曰。古人之述備矣。多則剩。失則亂。是以其文字之傳誦於人者。絶少焉。先生之道。旣不傳於人。而又不有傳於文字者。則百世之下。誰知有先生於百世之上乎。然天下之物。凡同類者。擧相似。喬嶽不頹。可見先生之氣象。河海不渴。可見先生之宇量。松柏長春。可見先生之志節。風月無邊。可見先生之衿懷。然則先生之道。雖不顯於一時。而其存於天地之間者。豈有窮已哉。嗚呼。今日之編輯是書者。非先生之意。又非所以見知於來後也。特其零星於散墨之間者。雖十不一存。而爲後人者。豈可任其泯滅乎。余以愚昧。誠不足下手於其間。在門下之列。而不辭其責者。又無其人。故謹爲之分定門類。錄爲二篇。以竢後人有眼者。更加正焉。至於欲知先生者。則不必求於此。人則古之人。道則古之道。其氣象威儀。則正氣之在天地之間者。皆是云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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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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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영귀회안》 서문 詠歸會案序 삼대(三代)72) 때 교화를 일으킨 실마리는 반드시 고을에서 시작되었다. 이 때문에 다섯 명씩 백성을 묶고, 아홉 등분씩 정전(井田)을 나누어 화합하고 함께 살면서 떠돌지 않게 하였고, 통속(統屬)하고 유지하여 혼란스럽지 않게 하였다. 집안에는 부형의 가르침이 있었고, 마을에는 삼노(三老)73)의 훈육이 있었으며, 학교에는 스승과 동학(同學)들의 가르침이 있었고, 골목에는 출입하는 벗들이 있었으며, 들에는 지키고 망보는 도움이 있었고, 향촌에는 양노(養老)와 양현(養賢), 삼물(三物)과 팔법(八法)74)이 있었으니, 무릇 출입하고 기거하는 것과 가고 머무는 것, 말하고 침묵하는 것 등이 애초부터 하루도 올바른 길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이 때문에 풍속이 아름답고, 어진 인재가 많았으니, 후세에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었다.아, 시대가 멀어지고 사람이 없어지면서 유풍(遺風)이 땅을 쓴 듯 사라져 고을과 마을 사이에 은덕(恩德)과 정의(情誼)가 서로 이어지지 않고, 권면과 경계가 서로 미치지 못하여 일반 사람들은 자신을 사사롭게 여기고, 선비들은 학문을 사사롭게 여겨 이단(異端)의 말과 행위가 끝없이 멋대로 흘러넘치는 데에 이르렀다. 비록 그렇지만 여남은 집밖에 안 되는 마을에도 반드시 충신이 나오고, 한 고을에도 반드시 착한 선비가 있어 예로부터 지금까지 훌륭한 사람이 없지 않았으니, 진실로 그들의 음성과 기색을 본받아 화합하면서 그들과 지속적으로 함께 할 수 있다면 비록 삼대의 교화가 깨끗하게 사라져 완전히 무료한 시대에 있다 하더라도 나의 부족한 점을 다스리고 나의 훌륭한 점을 권면하는 데에 길이 없을까 근심하지 않을 것이다.정해년(1887) 중추(仲秋 음력 8월)에 내가 고을의 벗들을 따라 육칠 일에 걸쳐 서석산(瑞石山 무등산(無等山))을 유람하며 자못 바람을 쐬고 읊조리는 정취를 마음껏 누렸다. 그런데 이별할 때에 한마디 말로 서로 작별하면서 말하기를, "우리들이 거처하는 곳이 가깝지 않은 것도 아니고, 정이 두텁지 않은 것도 아닌데, 뿔뿔이 흩어져서 한 가지 선도 책망하지 못하고, 한 가지 의리도 강론하지 못한 채 이처럼 하염없이 세월만 보내고 있으니, 평소 서로 알아주는 뜻이 어디에 있는가? 만약 오늘의 모임으로 얼굴을 마주한 자리에서 규약을 정하여 남전(藍田)의 향약(鄕約)75)처럼 덕업을 서로 권면하고, 백록(白鹿)의 학규(學規)76)처럼 서로 강학하여 때에 따라 서로 모여 차례대로 거행하되 헛된 명성으로 귀결되지 않고 하나하나 실효가 있게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니, 모두 찬성하였다. 이에 시골 마을에서 감당할 수 있는 제도와 재력을 따르고, 벗들이 모여 강학하는 방법을 덧붙여 참작하고 증감하여 오래도록 유지될 규례를 정하였다.아, 한편으로는 시골 마을이고, 한편으로는 벗들이지만, 우리들이 만년에 어렵게 이러한 모임을 거행함으로써 삼대의 유의(遺儀)를 그래도 직접 볼 수 있는 날이 있게 되었으니, 어찌 다행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나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운수가 궁박하여 다시는 사방에서 벗을 취할 만한 힘이 없어 궁벽한 집에 틀어박힌 채 그저 쓸쓸히 죽을 날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어찌 이러한 상황에서 시골 마을의 벗들과 더불어 오르내리고 나아가고 물러나면서 절차탁마(切磋琢磨)하는 사이에서 노닐 줄 알았겠는가. 다만 용렬하고 형편없는 사람이 외람되이 한 고을의 훌륭한 선비 사이에 끼게 되었으니, 이것이 두려울 뿐이다.염계 주 선생(濂溪周先生 주돈이(周敦頤))이 말하기를, "지극히 높은 것은 도이고, 지극히 귀한 것은 덕이다."77)라고 하였는데, 벗들로 인해서 존귀하게 되었으니, 그 의리가 또한 소중하지 않겠으며, 그 모임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여러 벗들에게 바라니, 곧음과 신실함으로 서로 가르쳐주고 서로 알려주어서 내가 날로 나아가거든 너는 달로 나아간다면 고을의 풍속이 오직 평원(平原)만 아름답지 않을 것이고, 고을의 어진 인재가 오직 고령(古靈)에만 많지 않을 것이며78), 한 모퉁이에 있는 홍릉(紅綾 능주(綾州))도 또한 군자의 고을이 되지 않겠는가. 이 계(契)는 마침 서석산에서 바람을 쐬고 읊조린 나머지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것을 인하여 영귀(詠歸)라 이름을 지었으니, 이 또한 여러 벗의 뜻이었다. 夫三代興化之端。必自鄕井始。是以五五其民。九九其井。使合同而不離。統維而不亂。家有父兄之詔。里有三老之訓。庠有師友之敎。巷有出入之友。野有守望之助。鄕有養老養賢三物八刑之法。凡出入起居。行住語黙。未始一日而離於正。此所以風俗之美。賢才之多。非後世之能及也。噫。世遠人亡。遺風掃如。鄕井之間。恩誼不相接。勸戒不相及。以至人私其身。士私其學。而異言異行。橫流滔滔。雖然。十室之忠。一鄕之善。亘古亘今。不無其人。苟能聲氣比和。與之源源。則雖在蕩然無聊之日。而所以攻吾闕勉吾善者。不患無其路矣。歲丁亥仲秋。予從鄕友之後。遊瑞石首尾六七日。頗盡風詠之趣。其別也。一辭相別曰。吾輩居非不近。情非不厚。而落落渙散。未有責一善講一義。如是悠悠。烏在其平生相知之意耶。若因今日之會。爲之面定規約。以德業相勸如藍田之約。講學相從如白鹿之規。隨時相聚。次第擧行。不爲虛聲所歸。而俾有一一實效如何。衆皆唯唯。於是因其鄕井之制力可及者。而附以朋友講聚之方。斟酌增減。定爲久規。嗚呼。一則鄕井也。一則朋友也。吾輩晩生。間關擧此。而三代遺儀。庶有親見之日。豈非幸耶。況義林孤露蹇滯。力不復取友四方。而跧蟄窮廬。只有離索待盡而已。豈知到此而與鄕井知舊。遊於升降進退切磋琢磨之間耶。但醜劣無狀。叨忝於一鄕善士之間。是爲可懼也已。濂溪周先生曰。至尊者道。至貴者德。因朋友而得貴且尊。其義不亦重乎。其聚不亦樂乎。願諸友維直維諒。胥訓胥告。我日斯邁。爾月斯征。則鄕俗之美。不獨平原。鄕賢之多。不獨古靈。而一隅紅綾。亦不爲君子之鄕耶。此契也。適成於瑞石風詠之餘。故因以詠歸名之。此亦諸友之意也。 삼대(三代) 중국 고대시대 때 성왕(聖王)으로 일컬어지는 우(禹)ㆍ탕(湯)ㆍ문왕(文王)이 다스렸던 하(夏)ㆍ은(殷)ㆍ주(周)나라 때를 가리킨다. 삼로(三老) 한(漢) 나라 때 교화를 관장하던 관직으로, 향(鄕)마다 한 사람씩 두었다. 《한서(漢書)》에 "백성 중에 50살 이상으로 덕행이 있고 사람들을 이끌어 선(善)을 행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서 삼로를 두었는데 향(鄕)에 한 사람이다. 향삼로(鄕三老) 가운데 한 사람을 가려 현삼로(縣三老)로 삼고서 현령과 승위(丞尉)와 더불어 정사로 가르쳤다."라고 하였다. 《漢書 高帝紀上》 삼물(三物)과 팔법(八法) 《주례(周禮)》 〈지관사도(地官司徒) 대사도(大司徒)〉에 "향학(鄕學)의 삼물로 만민을 교화하고, 인재가 있으면 빈객의 예로 우대하면서 천거하여 국학(國學)에 올려 보낸다.[以鄕三物敎萬民而賓興之.]"라는 말이 나오고, 또 "향학의 팔형(八刑)으로 만민을 바로잡는다.[以鄕八刑糾萬民]"라는 말이 나온다. 삼물은 삼사(三事)와 같은 말로, 육덕(六德)ㆍ육행(六行)ㆍ육예(六藝)를 가리키는데, 육덕은 지(知)ㆍ인(仁)ㆍ성(聖)ㆍ의(義)ㆍ충(忠)ㆍ화(和)를 말하고, 육예는 예(禮)ㆍ악(樂)ㆍ사(射)ㆍ어(御)ㆍ서(書)ㆍ수(數)를 가리킨다. 팔형은 8종의 범죄행위에 대해 가해진 형벌로, 불효지형(不孝之刑)ㆍ불목지형(不睦之刑)ㆍ불인지형(不婣之刑)ㆍ부제지형(不弟之刑)ㆍ불임지형(不任之刑)ㆍ불휼지형(不恤之刑)ㆍ조언지형(造言之刑)ㆍ난민지형(亂民之刑)을 말한다. 남전(藍田)의 향약(鄕約) 남전의 여씨향약(呂氏鄕約)을 가리키는 것으로, 송나라 때 남전에 살던 여대충(呂大忠), 여대방(呂大防), 여대균(呂大鈞), 여대림(呂大臨) 등 형제 네 사람이 그 고을 사람들과 서로 지키기로 약속한 자치 규범을 말한다. "덕업을 서로 권면하고[德業相勸], 허물과 잘못을 서로 경계하며[過失相規], 예의와 바른 풍속으로 서로 사귀고[禮俗相交], 근심스럽고 어려울 때에 서로 구휼한다.[患難相恤]"라는 네 조목이 후세 향약의 기준이 되었다. 《小學 卷6 善行》 백록(白鹿)의 학규(學規)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의 학규를 말한다. 주희가 지남강군(知南康軍)에 부임하였을 때 백록동서원을 중건하고 직접 강학하면서 학규를 제정하였는데, 그 내용은 오교(五敎)의 조목, 학문을 하는 차례, 수신(修身)의 요체, 처사(處事)의 요체, 접물(接物)의 요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晦菴集 卷74 雜著 白鹿洞書院揭示》 지극히……덕이다 《통서(通書)》 〈사우상(師友上)〉에 보인다. 고을의……것이며 고령은 원래 산 이름이었는데, 송(宋)나라 때 문신이자 학자였던 진양(陳襄)이 고령서원(古靈書院)을 세우고 글을 읽었으므로 진양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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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양조씨파보》 서문 豊壤趙氏派譜序 민가에서 보책(譜冊)을 만드는 것도 하나의 역사이니, 세계(世系)를 밝히고 종족(宗族)을 거두어 세상의 교화에 보탬이 되는 것이 어떠했겠는가. 삼가 생각건대 우리 조선이 문무(文武)의 계책과 공열(功烈)로 지켜온 5백 년 동안 사대부 집안에서 보책(譜冊)을 숭상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조상을 높이고 근본을 중히 여기며, 윤리를 바르게 하고 은혜를 돈독하게 하는 것이 성대하게 풍속을 이루었다.풍양 조씨(豊壤趙氏)는 우리나라의 큰 성씨로, 일파가 대대로 강진(康津)에서 살았는데, 조정의 반열에 올라 훌륭한 공적을 이룬 감사공(監司公)과 학문과 행실이 뛰어난 참판공(參判公),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충절을 세운 주부공(主簿公) 같은 분들이 우뚝하게 빛났고, 그 나머지 문관(文官)이나 무관(武官), 음관(蔭官), 문학(文學), 효행(孝行), 열행(烈行) 등으로 향리(鄕里)에서 칭찬을 받은 자들이 다 기록하지 못할 정도였으니, 그 일파의 문벌과 신망, 명성과 업적 등으로 볼 때 또한 남쪽 지방에서 명망이 높은 종족이었다.보계(譜系)는 정종(正宗) 정사년(1797)에 처음으로 수찬(修撰)하였고, 50년이 지나 헌종(憲宗) 병오년(1846)에 다시 수찬하였으며, 병오년부터 지금까지 54년이 흐르면서 생존했던 사람은 죽고 어렸던 사람은 장성하여, 태어나고 죽은 날짜와 함자(銜字), 혼인, 무덤 등에 관한 기록이 잘못되고, 상고할 것이 없어질지 모른다는 염려가 없지 않았다. 이에 문중의 의론이 일제히 일어나고, 충분한 상의 끝에 의론이 하나로 모아져서 경영하고 간행하는 일이 힘들이지 않고 이루어졌다.내가 생각건대 조씨의 보책이 일반 사람의 것과 다른 점이 두 가지 있으니, 족파(族派)가 번다하지 않고, 보책을 만드는 기간이 촉박하지 않다는 것이다. 근세 보가(譜家)의 경우에는 으레 대부분 족파를 넓히는 것에 힘써 원근(遠近)과 친소(親疎)를 따지지 않고 한데 섞어 한 편으로 만드니, 속임과 망령됨이 어느 것인들 극심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지금 조씨는 단지 도강(道康 강진의 옛 이름) 일파만 함께 하였으니, 규모가 협소한 것 같지만 친근한 이를 친근하게 하는 데에서 소원한 이에게까지 미쳐갔으니, 이치가 진실로 이와 같다.근세 보가(譜家)의 경우에는 보책을 만드는 기간이 늦거나 빨라 일정하지 않아서 혹 어제 마쳤는데 오늘 시작하기도 하고, 혹 아침에 간행하였다가 저녁에 폐기시키기도 하여 통문을 보내는 일이 연이어지고, 돈을 분배하여 거두어들이는 일이 빈번하였다. 그런데 지금 조씨가 오십 년에 한 번씩 수찬한 것은 삼십 년의 규례와 비교하면 조금 느슨한 것 같지만 당시의 폐단을 바로잡았으니, 이치가 또한 이와 같다. 이것으로 문중의 풍습이 두텁고, 마음을 쓰는 것이 치밀함을 볼 수 있다. 아, 선공(先公)의 유풍(遺風)과 여운(餘韻)이 사라지지 않았으니, 이대로 나아간다면 조씨의 문중이 어찌 창대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힘써야 할 것이다.창구(昌九)은 참판공 16대손인데, 문중 부형의 명을 받들고 와서 서문을 청하였다. 내가 진실로 받들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알지만, 대대로 맺어온 교분이 무겁기에 감히 고집스럽게 사양하지 못했다. 譜於人家。亦一史也。所以明世系收宗族。而有補於世敎。爲何如哉。恭惟我朝。文謨武烈五百年。士大夫家。莫不崇譜規而尊祖重本。正倫篤恩。蔚然成風。豊壤趙氏東方巨姓也。而有一派世居康津。若監司公之立朝偉蹟。參判公之文學行義。主簿公之殉國立慬。磊落光明。而其餘文武官蔭。文學孝烈。見稱鄕里者。有不殫記。其門望聲猷。亦南州之望族也。譜系在正宗丁巳。始修之。至五十年而憲宗丙午。再修之。今距丙午爲五十四年矣。存者沒。幼者壯。生卒諱銜。昏娶墳墓。將不無失錄無稽之慮。於是門議齊發。爛商歸一。經紀刊釐。不勞而成。余謂趙氏之譜異於人者。有二焉。族派之不煩也。年限之不促也。近世譜家。例多務廣。不計遠近親疎。而混同一編。欺誣幻妄。何所不至。今趙氏只與道康一派共之。規模似若狹小。而親親及疎。理固如此。近世譜家。遲速無常。或昨訖而今始。或朝刊而暮毁。發通絡繹。排斂仍疊。今趙氏五十年而一修。較諸三十年之規。似若少緩。而矯當時之敝。理亦如此。可以見門風之厚而用心之密矣。嗚呼。諸先公之遺風餘韻。爲不食矣。率是以往。趙氏之門。安得不昌大乎。勉旃焉。昌九參判公十六代孫也。奉其門父兄之命。來謁弁卷之文。余固知非可以承當者。而世契之重。有不敢牢讓云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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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건당집》 서문 兩蹇堂集序 삼가 생각건대 우리나라가 개국한 이래로 왜구의 변란으로 인한 재앙이 임진년보다 참혹한 적이 없었고, 충의로운 선비 또한 임진년보다 성대한 적이 없었다. 대체로 하늘이 기수(氣數)에 쫓겨 한 때 어지러운 운수가 없을 수 없지만, 어지러운 때에는 또 반드시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아 다스릴 인재를 배출하여 부지하게 하였다. 예컨대 방책을 정하고 임금을 호종한 백사(白沙) 이문충(李文忠)79)과, 구원병을 요청하고 화급한 일에 부응한 서천(西川) 정충익(鄭忠翼)80), 왜적을 토벌하고 전쟁에서 승리한 덕풍(德豊) 이충무(李忠武)81), 관리로서 지역을 지키다 순절한 천곡(泉谷) 송충렬(宋忠烈)82), 의병을 일으켜 충절을 세운 중봉(重峰) 조문렬(趙文烈)83) 등과 같은 분들이 모두 우뚝하여 좀처럼 세상에 나오지 않을 분들이었다.지위는 낮지만 맡은 일이 많고, 녹봉은 적지만 일이 번다하게 많았던 분들의 경우에도 위아래로 오르내리며 일을 주선하고, 힘이 다하여 쓰러질 때까지 여기저기 출입하다 끝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절개를 다하였다. 양건당(兩蹇堂) 황공(黃公) 역시 그러한 사람이었으니, 어찌 선양(宣揚)되지 않은 명성과 지위나 공에게 걸맞지 않은 추증(追贈)과 포창(褒彰)으로 논할 수 있겠는가.유묵(遺墨)이 흩어지고 없어져서 열에 하나도 남아 있지 않지만, 계사년(1893) 봄에 9세손 간(柬)이 그것을 가지고 천태산(天台山)의 집으로 나를 찾아와 교감의 일을 부탁하였다. 아, 나는 공에게 미생(彌甥 자매나 남매의 손자)이 된다. 이 때문에 어려서부터 선인(先人)을 모시는 곁에서 그분에 대한 실제 이야기를 들은 것이 자못 흥미진진하였는데, 어찌 어버이를 여의고 외로이 지낸 지 50년 만에 비로소 그분의 유고(遺稿)를 볼 수 있게 될 줄 알았겠는가. 또 간은 죽마고우로 총각 때에 헤어졌다가 머리가 하얗게 세서 서로 만나게 되었으니, 그 슬픔과 위로되는 마음이 또 어떠하겠는가?평소 보고 들은 지식이 적어 생각이 좁고, 질병까지 더해져 정신과 근력을 수습해 끌어 올릴 수 없으니, 어찌 한 집안에서 후세에 길이 전할 일의 부탁을 담당할 수 있겠는가. 다만 정감이 지극한 바인지라 차마 고집스럽게 완전히 물리치지 못하였다. 이에 우선 문류(門類)를 나누어 한 책으로 정하여 돌려보내니, 원본과 대조하여 정밀하게 교정하고 극진하게 윤색하는 일은 담당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을 뿐이다. 恭惟我朝開國以來。寇亂之禍。莫慘於壬辰。忠義之士。亦莫盛於壬辰。蓋天迫於氣數。不能無一亂之運。而其亂也。又必生撥亂之材以扶持之也。若白沙李文忠之定策扈聖。西川鄭忠翼之乞師副急。德豊李忠武之討賊制勝。泉谷宋忠烈之守土死節。重峰趙文烈之倡義立慬。皆卓犖不世之出也。至於位卑而任多。祿薄而事煩。上下周章。出入竭蹶。終致殺身殉國之節者。兩蹇堂黃公。亦其人也。烏可以名位之不揚。贈褒之不稱論之哉。遺墨散逸。所存未爲十之一。癸巳春。九世孫柬。持以過余於天台寓舍。屬以校勘之役。嗚呼。余於公爲彌甥也。是以自幼侍先人側。得聞其事實。頗津津焉。豈知風樹孤露五十歲。乃始得見其遺稿耶。且柬是竹馬舊交也。丱角相分。白首相逢。其悲慰之情。又何如哉。素以寡陋。兼滯病痼。精神筋力。收拾不上。安有可以擔當人家不朽之託者哉。但情感攸至。不忍全然牢却。於是姑分門類。定爲一冊而還之。若其讐校精訂。極其潤色。則在乎其人焉爾。 백사(白沙) 이문충(李文忠) 이항복(李恒福, 1556~1618)으로, 백사는 그의 호이고, 문충은 그의 시호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덕형(李德馨)과 함께 명나라에 구원병 요청을 건의하였고, 선조를 수행하여 의주(義州)까지 피난을 다녀와 호성 공신(扈聖功臣) 1등으로 오성부원군(鰲城府院君)에 봉해졌다. 서천(西川) 정충익(鄭忠翼) 서천부원군(西川府院君) 정곤수(鄭崑壽, 1538~1602)로, 충익은 시호이다. 임진왜란 때 우승지에 올라 선조를 의주(義州)에 호종하고 진주사(陳奏使)로 명나라에 가서 구원병을 파견토록 했으며, 명나라 경략(經略) 송응창(宋應昌)이 오자 영위사(迎慰使)로 그를 영접하는 한편, 평양에 머물러 있던 제독(提督) 이여송(李如松)에게 서울의 수복을 재촉하는 등 국가의 최대 수난기에 탁월한 외교 수완을 발휘하여 큰 공을 세웠다. 이항복(李恒福)과 함께 호성 공신(扈聖功臣) 1등에 녹훈되었다. 덕풍(德豊) 이충무(李忠武) 德豐府院君(德豐府院君) 이순신(李舜臣, 1545~1598)으로, 충무는 그의 시호이다. 임진왜란 때 삼도수군통제사로 수군을 이끌고 전투마다 승리를 거둬 왜군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천곡(泉谷) 송충렬(宋忠烈) 송상현(宋象賢, 1551~1592)으로 천곡은 그의 호이고, 충렬(忠烈)은 그의 시호이다. 임진왜란 때 동래 부사(東萊府使)로 왜적에 맞서다 순절하였다. 중봉 조문렬(重峰趙文烈) 조헌(趙憲, 1544~1592)으로, 중봉은 그의 호이고, 문렬은 그의 시호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천(沃川)에서 의병 1700여 명을 모아 영규(靈圭) 등 승병과 합세하여 청주를 탈환했으며, 700명의 의병으로 금산(錦山) 전투에서 분전하다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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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윤【황규】에게 보냄 與鄭周允[冕圭] 봄철 무렵에 계남옹(溪南翁)1)의 아들과 조카가 찾아왔었지만 빨리 떠나는 바람에 문안 편지를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뒤이어 소식을 모르는 채 1년이 지났습니다. 형의 체후는 동정이 어떠신지요? 곤괘(困卦)의 올바름2)과 비괘(否卦)의 형통함3)이 반드시 숨어 있다가 밝게 드러나) 스스로 위안을 얻을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멀리서 우러러 흠모하는 마음 간절하기 그지없습니다. 아우는 쌓인 죄로 재앙이 남아 있어 이러한 불행을 만났으니 비통하고 부끄러워 차라리 죽고 싶은 심정입니다. 다만 아비 없는 어리고 연약한 두 손자가 눈앞에서 뛰놀고 재잘거리는 것으로 그럭저럭 근심을 잊고 있을 뿐입니다. 평소에 뜻했던 학업은 어물어물하다가 성취를 거두지 못하였고 조물주는 너그럽게 대하지 않아 늙을수록 더욱 기구하니 다시 어찌 여력(餘力)을 수습하여 보잘것없는 노년의 공효(功效)마저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동쪽으로 정운(停雲)4)을 바라보면 매번 형에게 달려가 하소연하고 싶지만 그러지를 못합니다. 세상은 상황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으니 끝내 어디에 이르게 될지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모름지기 시의(時義)에 맞는 거취에 대해서 아끼지 말고 제게 대략이나마 알려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春間。溪南翁子若姪之過。綠於速發。未修一字候儀。繼而漠然。寒暑改易。謹請兄體動止何若。困之貞。否之亨。想必有潛昭闇章。而可以自慰者。遠外馳仰。不任憧憧。弟積罪餘殃。遭此禍故悲霣慚作。寧欲溘然。只有藐孤兩孫。趨喏眼前。聊以自遣耳。平生志業。因循未就。而造物不貸。老益崎險。更安能策理餘力。以效葉楡萬一之收耶。東望停雲。每欲趨訴。而不可得也。時象風邑。日甚一日。畢竟稅泊有不可以預算。望須以時義去就。不惜槪及如何。 계남옹(溪南翁) 최숙문(崔琡民, 1837∼1905)의 호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원칙(元則), 치장(稺章)이다. 기정진에게 수학하였고 저서로는 《계남집》이 있다. 곤괘(困卦)의 올바름 《주역(周易)》 곤괘(困卦) 괘사(卦辭)에, "곤괘는 형통하고 바르니 대인이기 때문에 길하고 허물이 없다."라고 하였다. 비괘(否卦)의 형통함 《주역》 비괘(否卦) 육이(六二)의 효사(爻辭)에 "육이는 품고 있는 것이 순히 받드는 것이니, 소인은 길하고 대인은 비색하여야 형통한다."라고 하였다. 정운(停雲) 도연명(陶淵明)이 친우를 생각하며 지은 〈정운(停雲)〉에 "뭉게뭉게 제자리에 서 있는 구름이요, 부슬부슬 제때에 내리는 비라.【靄靄停雲, 濛濛時雨.】"라는 말이 보인다. 《陶淵明集 卷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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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견【장석】에게 보냄 與金伯見【章錫】 헤어지고 한 달이 지났습니다. 부모를 모시는 즐거움은 더욱 복되고 밝은 창가에서 학업에 몰두하는 일과 심성을 수양하며 이치를 익히시는 의취(意趣)가 날로 새로우신지 모르겠습니다. 종족은 효성스럽다 칭찬하고 향당은 공경스럽다 칭찬하며 조행(操行)이 고상하고 우아함에 이르렀으니, 모든 거취가 본분(本分)과 실지(實地)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세간(世間)의 갖가지 병통이 없는 사람으로 백견(伯見) 만한 이가 누구이겠습니까. 그렇지만 아우가 형에게 기대하는 것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형 또한 반드시 이 정도로 자족(自足)하지 않을 것입니다. 의리(義理)는 한계가 없으며 사업(事業)은 끝이 없습니다. 7푼 어치 공부를 하면 7푼짜리 사람이 되고 10푼 어치 공부를 하면 10푼짜리 사람이 됩니다. 자신의 지위가 높고 낮음은 노력을 얼마나 기울이는지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공문(孔門)의 제자를 보자면 자유(子游), 자하(子夏)가 안연(顏淵), 민자건(閔子騫)에 이르지 못한 것이 애석하고 안연, 민자건이 공자(孔子)에 미치지 못한 것이 애석합니다. 천고(千古)의 후세에 살면서 천고의 옛날을 얘기하하는 것도 애석하여 성에 차지 않는 마음이 오히려 이와 같은데 하물며 자기를 위해서 꾀하는 것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나이가 중년을 지났으니 앞으로의 세월은 남은 날이 얼마 되지 않습니다. 전번에 형께서 서숙(書塾)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단정한 자세로 서안(書案)을 마주하여 의난(疑難)과 차기(箚記)가 장황하게 종이를 채운 것을 보고 저의 마음이 기쁘기 그지없었습니다. 대체로 우리 형께서는 평소에 과문(科文)을 익힌 것으로 말미암아 책을 읽을 때 깊은 이해를 추구하지 않으십니다. 이 때문에 소견이 모호하여 명백하고 시원스러운 부분이 없습니다. 만약 한바탕 시원스럽게 이해하여 지난날의 의견을 벗어버리지 않는다면 심한 생경(生硬)함을 어찌하겠습니까. 여러 가지로 염려스러웠는데 지금 곧바로 돌이켜 깊이 반성하는 것이 이와 같음을 보게 되었으니 어찌 축하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대략이나마 마음을 털어놓고 삼가 형을 면려하는 뜻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차기(箚記)에 조목마다 답을 올린 것은 단지 지난번 직접 뵙고 토론했던 말을 다시 읊었을 뿐입니다. 離違月已。未審省歡益福。明窓業几。涵養溫理。意趣日新否。宗族稱孝。鄕黨稱悌。以至操履文雅。凡百去就。不越乎本分實地之中。而無世間種種病痛者。孰有伯見哉。雖然弟之所以希望於兄者。不止於此。兄亦必不以此爲自足也。義理無限。事業無窮。做得七分工夫。則爲七分人。做得十分工夫。則爲十分人。自家地位高低。在其用功多寡之如何耳。今見孔門諸子。惜游夏之未至於顔閔。惜顔閔之未至於孔子。在千古之下。語千古之上。而其慨惜未滿之意。猶尙如此。況自爲謀乎。吾儕年過中身。前頭歲月。所餘無幾。向見兄淨掃書塾。端然對案。疑難箚記。張皇滿紙。不勝區區愛悅之情。大抵吾兄素因功令之習。讀書不求甚解。是以所見含糊無明白爽快處。若不有一場痛理會。脫却舊日意見。則甚生奈何。種種爲慮。今見有亟反而猛省之者如此。豈不爲賀。此所以略攄寸心。謹付相勉之意。以爲如何。箚記逐條奉答。只是再誦向日面討之語而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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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질 형선에게 지어 주다 贈族姪炯善 매죽당552)의 후세가 십삼 대에 이어지니 梅堂後世傳十三뿌리가 북돋워져 지엽이 유약하지 않구나 根培枝葉不弱纖또한 근래 작고한 화암옹이 계시는데 近故亦有華巖老그 기상이 좋이 우뚝 솟은 산과 같았다오 氣象好是山巖巖어질고 효성스런 군이 선조의 자취를 계승하니 之君賢孝繩祖武금세에 태어났지만 금세 사람 같지 않다오 生今之世人非今헌걸차고 빼어난 여덟 용553)이 집안에 가득하니 八龍矯矯盈門戶선을 행하면 복을 내려주는 하늘을 믿을 만하네554) 作善降祥天可諶바라노니 변함없이 한층 힘써서 願言無替加勉旃산남555)처럼 더욱 창대함을 볼 수 있기를 益見昌大同山南 梅堂後世傳十三, 根培枝葉不弱纖.近故亦有華巖老, 氣象好是山巖巖.之君賢孝繩祖武, 生今之世人非今.八龍矯矯盈門戶, 作善降祥天可諶.願言無替加勉旃, 益見昌大同山南. 매죽당(梅竹堂) 김종(金宗, 1471~1538)으로, 자는 사앙(士仰), 호는 매죽당이다. 진사시에 합격하였는데, 기묘사화로 과업(科業)을 폐하였다. 매화와 대나무를 가꾸면서 청고(淸高)함으로 자신을 수양하였다. 여덟 용 후한(後漢) 때 순숙(荀淑)예게 여덟 아들이 있었는데, 모두 뛰어나다고 이름이 나서 당시 사람들이 이들을 '순씨팔룡(荀氏八龍)'이라고 불렀다. 전하여 후세에 자제들이 모두 훌륭함을 칭찬할 때 흔히 이들에게 비기곤 하였다. 《後漢書 卷92 荀淑列傳》 선을……만하네 《서경》 〈이훈(伊訓)〉에 "상제는 일정하지 않으시어 선을 행하면 온갖 상서를 내리고 불선을 행하면 온갖 재앙을 내린다.[惟上帝不常, 作善, 降之百祥; 作不善, 降之百殃.]"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산남(山南) 당(唐)나라 때 산남서도 절도사(山南西道節度使)를 지낸 최관(崔琯)의 가문을 가리킨다. 최관의 증조모 장손 부인(長孫夫人)이 나이가 많아 치아(齒牙)가 없어 밥을 먹지 못하자, 최관의 조모 당 부인(唐夫人)이 수년 동안 시어머니인 장손 부인에게 젖을 먹이는 등 효성이 지극하였다. 장손 부인은 죽을 때 집안 식구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며느리의 은혜를 갚을 수 없으니, 며느리의 자손들이 모두 며느리처럼 효도하고 공경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된다면 최씨의 가문이 어찌 창대(昌大)하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新唐書 卷182 崔琯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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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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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청부561) 기묘년(1939) 獨淸賦【己卯】 옛날 초나라의 말세에 昔夫楚之末劫兮아아 소인들이 국정을 장악하여 嗟小人之秉成분분한 참소가 앞다퉈 일어나니 紛讒佞之競進兮외로운 충신이 멀리 유배가도다 煢忠良之遠屛일찍이 시비를 분별하지 않아 曾是非之無分兮마침내 호오가 공평하지 않으니 乃好惡之不平정치가 날로 그릇되고 혼탁해져서 政日非而汚穢兮사람들이 모두 더러움 속에 빠지고 말았네 衆汶汶而溷坑이런 날의 극한 상황을 당하여 當此日之爻象兮그 누가 초연히 홀로 맑은가 誰超然而獨淸백세가 흘러도 남은 향기가 있으니 曠百世而遺芳兮바로 영균562) 선생이로세 有靈均之先生이미 타고난 자질이 정직하고 旣賦質之正直兮또한 행실이 청렴결백했으며 亦行己之淸白나라를 바로잡을 계책을 품었고 懷匡國之謨猷兮하늘을 꿰뚫을 만한 충심을 지녔도다 抱貫天之忠赤봉황을 무함하여 짐새처럼 보게 하고 誣鸞鳳而鴆視兮천리마를 모략하여 둔마로 배척했는데 昧驥騏而駑斥만약 법도를 바꿔 무턱대고 추종한다면563) 苟改度而詭隨兮어찌 편안해질 것을 몰랐으리오 寧不知其安適당당하게 하늘을 이고 땅을 밟고 있으니 儼頂天而履地兮이런 짓을 하여 스스로를 해치지 못한다오 不能爲此自賊황천이 보우하지 않음을 만나니 値皇天之不弔兮저들의 편벽한 짓을 방관하는구나 –1자 빠짐- 任彼輩之【缺】辟아아 처한 상황을 피해 떠난다 해도 噫且舍夫所遭兮어찌 차마 나라가 망하는 걸 보리오 何忍覩夫亡國부앙하며 묵묵히 의리를 헤아리고는 俯仰黙究義諦兮차라리 문득 죽어 앎을 없게 하리라 하고 寧溘死而無識천 길이나 깊은 상강으로 달려가 빠져 죽어 赴千丈之湘流兮강물 아래 물고기 뱃속에서 장사를 지냈다오564) 葬江魚之腹中그 뜻이 인을 구하는 데 있었으니 意欲在夫求仁兮무슨 원망이 흉중에 남아 있으리오565) 何怨悔之留胸그 지성스런 마음의 간절함을 논한다면 論惻怛之至誠兮거의 은나라의 인자566)에 견줄 수 있다오 庶殷仁之參同〈이소경〉이 찬란하게 빛나서 離騷赫其有經兮하늘에서 해와 빛을 다투는데 光爭日於蒼穹저 〈반이소〉567)를 지은 참적은 彼反騷之讒賊兮애처로워라 왕망의 신하 양웅이로다 哀莽臣之揚雄천년 뒤에 지기를 만나니 遇知己於千載兮바로 송나라의 회옹이로세568) 曰有宋之晦翁만일 경모하는 마음이 깊지 않았다면 如不深於敬慕兮어찌 집주에 공력을 기울였겠는가 豈集註之用功모든 분분한 의론들을 諸紛紛之議論兮일소하여 헛된 설로 만들었다오 可一掃而虛空오호라 나는 지금 세상에서 嗚呼余於今世兮선생이 겪어 지내 온 것과 똑같다오 同先生之經歷진실로 유속은 마땅히 그러하거니와 固流俗之宜然兮어찌 선비가 망극한 짓을 하는가 胡士也之罔極성현을 알면서도 본받지 않으니 認賢聖而勿法兮《춘추》의 의리를 일러 바뀔 수 있다고 하네 謂春秋而可易처음에 본말을 헤아리지 않다가 始不揣其本末兮결국에는 곡직에 환형을 고집한다오 竟幻形於曲直혹 마음속으로569) 스스로 논하는데 或自論於皮裏兮한가히 서 있을 때 간사함을 부리는 데 이르도다 曁售奸於閒立대개 그 정태가 수천 수백 가지인데 蓋千百其情態兮모두 다 의의 없고 더러울 뿐이라네 總無義而汚雜깨끗하고 맑아지고 싶지만 방법이 없으니 欲澄淸而無術兮도리어 재앙과 환난을 당할 따름이네 反禍難之見及그 누가 눈 뜨고 볼 수 있으랴 孰開眼而可視兮문을 나가 갈 만한 곳이 없구나 無出門而可之내 일신이야 근심할 바가 아니지만 非吾身之所恤兮세도의 쇠미함을 어이하면 좋을꼬 柰世道之衰微다른 시대에 감응을 불러일으키니 起相感於異代兮여러 일을 부류로써 함께 미루어 본다오 事以類而同推선생의 홀로 맑은 지조가 아니었다면 微先生之獨淸兮내 누구를 따라 스승으로 추앙하리오 吾誰從而仰師비록 생사의 다름이 있지만 縱死生之有殊兮참으로 고금이 똑같다 하겠네 寔今古之一規 昔夫楚之末劫兮, 嗟小人之秉成.紛讒佞之競進兮, 煢忠良之遠屛.曾是非之無分兮, 乃好惡之不平.政日非而汚穢兮, 衆汶汶而溷坑.當此日之爻象兮, 誰超然而獨淸?曠百世而遺芳兮, 有靈均之先生.旣賦質之正直兮, 亦行己之淸白.懷匡國之謨猷兮, 抱貫天之忠赤.誣鸞鳳而鴆視兮, 昧驥騏而駑斥.苟改度而詭隨兮, 寧不知其安適?儼頂天而履地兮, 不能爲此自賊.値皇天之不弔兮, 任彼輩之【缺】辟.噫且舍夫所遭兮, 何忍覩夫亡國?俯仰黙究義諦兮, 寧溘死而無識.赴千丈之湘流兮, 葬江魚之腹中.意欲在夫求仁兮, 何怨悔之留胸?論惻怛之至誠兮, 庶殷仁之參同.離騷赫其有經兮, 光爭日於蒼穹.彼反騷之讒賊兮, 哀莽臣之揚雄.遇知己於千載兮, 曰有宋之晦翁.如不深於敬慕兮, 豈集註之用功?諸紛紛之議論兮, 可一掃而虛空.嗚呼余於今世兮, 同先生之經歷.固流俗之宜然兮, 胡士也之罔極?認賢聖而勿法兮, 謂春秋而可易.始不揣其本末兮, 竟幻形於曲直.或自論於皮裏兮, 曁售奸於閒立.蓋千百其情態兮, 總無義而汚雜.欲澄淸而無術兮, 反禍難之見及.孰開眼而可視兮? 無出門而可之.非吾身之所恤兮, 柰世道之衰微?起相感於異代兮, 事以類而同推.微先生之獨淸兮, 吾誰從而仰師?縱死生之有殊兮, 寔今古之一規. 독청부(獨淸賦) '독청'은 홀로 맑다는 뜻으로, 전국 시대 초(楚)나라의 충신인 굴원(屈原)이 지은 〈어부사(漁父辭)〉에 "온 세상이 다 혼탁한데 나 홀로 맑고, 모든 사람이 다 취했는데 나 홀로 깨었는지라, 이 때문에 쫓겨났노라.[擧世皆濁, 我獨淸; 衆人皆醉, 我獨醒, 是以見放.]"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굴원은 처음에는 초 회왕(楚懷王)에게 신임을 받았으나 뒤에 소인들의 시기와 참소로 인해 소외되자 〈이소경(離騷經)〉을 지어 임금에게 충간(忠諫)하였으나 용납되지 않으므로 〈어부사〉 등 여러 편의 글을 지어 자신의 뜻을 밝히고 멱라수(汨羅水)에 투신자살했다. 《史記 卷84 屈原列傳》 영균(靈均) 굴원(屈原)의 호이다. 그의 이름은 평(平)이고 자는 원(原)이다. 무턱대로 추종한다면 원문의 궤수(詭隨)는 시시비비(是是非非)를 따지지 않고 무턱대고 남을 추종한다는 뜻으로, 《시경》 〈대아(大雅) 민로(民勞)〉에 "무턱대고 추종하는 짓을 따르지 말아, 불량한 사람을 단속해야 할 것이다.[無縱詭隨, 以謹無良.]"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천……지냈다오 굴원의 〈어부사(漁父辭)〉에 "차라리 상강에 빠져 죽어서 물고기 뱃속에서 장사를 지낼지언정, 어찌 이 깨끗한 몸으로 세속의 더러운 먼지를 뒤집어쓸 수 있겠는가.[寧赴湘流, 葬於江魚之腹中, 安能以皓皓之白, 而蒙世俗之塵埃乎?]"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그……있으리오 공자(孔子)가 일찍이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평가하여 말하기를, "인(仁)을 구하여 인(仁)을 얻었으니, 무엇을 원망하겠는가.[求仁而得仁, 又何怨?]"라고 하였다. 《論語 述而》 은(殷)나라의 인자(仁者) 미자(微子), 기자(箕子), 비간(比干)을 가리킨다. 《논어》 〈미자(微子)〉에 "미자는 떠나가고 기자는 종이 되고 비간은 간하다가 죽었다."라고 한 문장 뒤에 공자가 "은나라에 세 분의 인자가 있었다.[殷有三仁焉.]"라고 하였다. 반이소(反離騷) 전한(前漢)의 양웅(揚雄)이 지은 부(賦)로, 굴원(屈原)이 불우한 처지를 초연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비관하여 〈이소경(離騷經)〉을 짓고 강물에 투신자살한 일을 비판적으로 묘사하였다. 천년……회옹(晦翁)이로세 회옹은 남송(南宋) 주희(朱熹)의 호이다. 주희가 일찍이 《초사집주(楚辭集註)》를 찬술한 일을 두고 이렇게 말한 것이다. 마음속으로 원문의 피리(皮裏)는 피리양추(皮裏陽秋)의 준말로,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시비곡직을 가려 포폄(褒貶)하는 것을 이른다. 《晉書 卷93 褚裒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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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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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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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춘부〉570)에 차운하다 경진년(1940) 次感春賦【庚辰】 천하가 혼탁해짐을 개탄하나니 慨天下之黲瀆兮관디를 갖추고 어디로 가리오 持冠紳而何之궁벽한 산이나 외딴 바다에서 亦窮山與絶海兮끝내 지조 지키며 죽을 것을 기약한다오 竟溝壑以爲期사람들은 즐거워하며 줄지어 오가는데 衆熙來而穰往兮어찌하여 나 혼자만 침체되었는가 獨胡爲乎衰替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천성을 타고 났으니 稟羞惡之天性兮차마 처음의 뜻을 바꾸지 못한다오 未忍變夫初志절서는 되풀이하여 돌고 도는데 天序運而循環兮홀연히 또 이렇게 봄이 찾아왔네 忽焉又此三春시절의 경물이 왕성해짐을 보니 覽時物之舒暢兮곤궁하게 사는 유인을 서글퍼하네 感窮居之幽人혼란이 지극하면 다스려질 것을 생각한다는 亂當極而思治兮옛 철인의 밝은 가르침을 들었는데 聞往哲之明訓어찌 하늘은 양기를 회복하면서 세도는 비색하게 하는가 夫何天返陽而世否兮이내 마음을 길이 시름겹게 하누나 長鬱邑余方寸서주 교외엔 봉황이 날아와 울었고571) 西周郊之鳴鳳兮남훈의 전각에선 거문고를 연주했는데572) 南薰殿之彈琴참으로 아득하기 그지없으니 茫渺渺兮성심은 언제나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려나 何日惠斯民兮聖心돌아와 책상 위에서 책을 뽑아서 歸抽書於案上兮정원 나뭇가지 푸른 잎이란 구절을 펼쳐 보네573) 展讀庭柯之蔥蒨그 누가 멀다고 하였는가 孰謂遠兮옛사람을 여기에서 직접 볼 수 있다오 古人卽於是而親見곤궁할 때엔 진실로 그대로 일생을 마칠 듯이 하였고 窮固若將終身兮현달할 때엔 백성들이 은택을 입을 수 있었다네 達可民之被光금옥 같은 자질을 타고나셨으니 蓋金玉之其相兮어찌 그리 순정하고 보배로운가 何純精與丁璫아침저녁으로 엄히 나를 가르치시니 朝夕嚴其敎余兮은혜가 망극하여 잊기 어렵도다 恩罔極而難忘죽든 살든 상황마다 편안할 뿐이니 遇死生而隨安兮비록 슬프다 해도 상심하지 않으리라 雖悲哉而不傷 慨天下之黲瀆兮, 持冠紳而何之?亦窮山與絶海兮, 竟溝壑以爲期.衆熙來而穰往兮, 獨胡爲乎衰替?稟羞惡之天性兮, 未忍變夫初志.天序運而循環兮, 忽焉又此三春.覽時物之舒暢兮, 感窮居之幽人.亂當極而思治兮, 聞往哲之明訓.夫何天返陽而世否兮? 長鬱邑余方寸.西周郊之鳴鳳兮, 南薰殿之彈琴.茫渺渺兮, 何日惠斯民兮聖心?歸抽書於案上兮, 展讀庭柯之蔥蒨.孰謂遠兮? 古人卽於是而親見.窮固若將終身兮, 達可民之被光.蓋金玉之其相兮, 何純精與丁璫?朝夕嚴其敎余兮, 恩罔極而難忘.遇死生而隨安兮, 雖悲哉而不傷. 감춘부(感春賦) 남송의 주희(朱熹)가 54세 때인 1183년에 지은 것으로 《주자대전(朱子大全)》 권1에 실려 있다. 그 내용은 천하에 도를 펼 만한 경륜을 지니고 있으나 세상이 험난하여 출사하지 못하고 은거하면서 옛 성현의 가르침을 탐구하는데, 꽃다운 봄날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임금은 불러주지 않음을 탄식한 것이다. 서주(西周)……울었고 성군(聖君)인 주(周)나라 문왕(文王) 때 봉황이 기산(岐山) 아래에 날아와 울어서 태평성대의 조짐을 알렸다는 고사를 원용한 것이다. 《國語 周語上》 남훈(南薰)의……연주했는데 남훈의 전각은 순(舜) 임금의 거처를 이른다. 순 임금이 오현금(五絃琴)을 연주하며 〈남풍가(南風歌)〉를 지어 부르면서 "훈훈한 남쪽 바람이여, 우리 백성의 수심을 풀어 주기를. 제때에 부는 남풍이여, 우리 백성의 재산을 늘려 주기를.[南風之薰兮, 可以解吾民之慍兮. 南風之時兮, 可以阜吾民之財兮.]"라고 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禮記集說 樂記》 정원 나뭇가지 푸른 잎 주희의 〈감춘부(感春賦)〉에 "문득 새소리 들리니 기뻐하며, 정원 나뭇가지 푸른 잎을 우러러보네.[忽嚶鳴其悅豫兮, 仰庭柯之蔥蒨.]"라고 한 데서 온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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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 김경일 진회 에 대한 만사 挽金友敬一【鎭晦】 이미 우정을 보내고 또 형을 곡하니 旣送愚貞又哭兄산 매화 세 그루가 모두 영락하였네 山梅三樹幷飄零부음 소식은 무슨 일로 더디 이르렀는가 訃車底事遲來使병석에선 미처 펴지 못한 정을 탄식한다오 病榻堪嗟未敍情겸손함으로 자신을 지키니 용백고의 행실이요549) 持己謙恭伯高行공경함으로 남과 잘 사귀니 안영의 명성이로세550) 交人善敬晏嬰名영상에 도끼 소리 그쳐551) 한스럽기 그지없으니 郢上輟斤無際恨저물녘 천태산에서 눈물이 강물처럼 쏟아지네 台岑薄暮淚河傾 旣送愚貞又哭兄, 山梅三樹幷飄零.訃車底事遲來使, 病榻堪嗟未敍情.持己謙恭伯高行, 交人善敬晏嬰名.郢上輟斤無際恨, 台岑薄暮淚河傾. 겸손함으로……행실이요 용백고(龍伯高)는 후한(後漢) 때의 저명한 선비이다.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이 조카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겸손하고 돈후하며 신중한 용백고(龍伯高)를 본받고, 의기가 높고 호협(豪俠)한 두계량(杜季良)을 본받지 말라고 한 고사가 있다. 《後漢書 卷54 馬援列傳》 공경함으로……명성이로세 안영(晏嬰)은 춘추 시대 제(齊)나라의 명재상으로 자가 평중(平仲)이다. 공자(孔子)가 그를 평하기를 "안평중은 남과 사귀기를 잘하였다. 오래되어도 공경하는구나.[晏平仲善與人交, 久而敬之.]"라고 하였는데, 이를 원용한 것이다. 《論語 公冶長》 영상(郢上)에 도끼 소리 그쳐 벗 김경일의 죽음을 비유한 말이다. 초(楚)나라 영(郢) 땅 사람이 자기 코끝에다 흰 흙을 파리 날개만큼 얇게 발라 놓고, 도끼를 잘 쓰는 것으로 유명한 장석(匠石)을 불러 그 흙을 깎아 내게 했다. 장석은 바람이 휙휙 나도록 도끼를 휘둘러 그 흙을 깎아내면서 코는 조금도 다치지 않게 하였고 영 땅 사람은 표정도 바뀌지 않은 채 태연히 서 있었다. 그러나 영 땅 사람이 죽은 뒤로 장석은 그와 같은 재능을 발휘할 수 없었다고 한다. 《莊子 徐无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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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경의 자에 대한 설 金周卿字說 한 번 마음을 바르게 하면[正心]146) 바르지 않은 일이 없다. 예의(禮儀) 3천은 바르지 않으면 행하지 못하며 괘효(卦爻) 4백은 바르지 않으면 길(吉)하지 못하다. 공자(孔子)의 오도지일(吾道之一)147)과 맹자(孟子)의 박학지약(博學之約)148)이 이것을 이르지 않겠는가. '정(正)'이라는 글자는 널리 응대하면서도 자세한 부분까지 법도에 부합하여 두루 미치니, 마치 충신(忠信)이 두루 미치며 충신하지 못하면 결함이 드러나는 것과 같다. 이 때문에 '정(正)'의 반은 '핍(乏)'이다. 핍(乏)하면 결함이 드러나서 두루 미치지 못하게 된다.김씨(金氏)의 아들 정희(正熙)가 삼가례(三加禮)149)를 마치고 주경(周卿)을 자(字)로 삼았다. 이는 대체로 '바르면 두루 미치지 않음이 없다.[正無不周]'라는 뜻이다. 모쪼록 이름을 돌아보고 뜻을 생각하여 정학(正學)에 힘쓰고 정도(正道)를 숭상하고 정위(正位)에 서서 정로(正路)를 간다면 우뚝한 천하의 정인(正人)이 될 것이다. 一正心而事無不正。禮儀三千。非正不行。卦爻四百。非正不吉。孔子吾道之一。孟子博學之約。非此之謂耶。正之一字。泛應曲當。無不周徧。如忠信之爲周。而不忠信則缺露也。是故正之反爲乏。乏則缺而不周矣。金氏子正熙。三加告畢。表德以周卿。蓋正無不周之意也。須顧名思義。務正學。崇正道。立正位。行正路。偉然爲天下之正人也。 마음을……하면 '마음을 바르게 한다'는 《대학장구(大學章句)》의 팔조목(八條目) 중 하나이다. 경(經) 1장에 "옛날에 자신의 밝은 덕을 천하에 밝혀 보고자 했던 자는 먼저 제 나라를 잘 다스렸고, 제 나라를 잘 다스리고자 했던 자는 먼저 제 집안을 잘 단속하였고, 제 집안을 잘 단속하고자 했던 자는 먼저 제 일신을 닦았고, 제 일신을 닦고자 했던 자는 먼저 제 마음을 바르게 하였고, 제 마음을 바르게 하고자 했던 자는 먼저 제 생각을 진실하게 하였고, 제 생각을 진실하게 하고자 했던 자는 먼저 제 앎을 극대화하였으니, 자신의 앎을 극대화하는 것은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는 데 달려있다."라고 하였다. 오도지일(吾道之一) 《논어》 〈이인(里仁)〉에, 공자(孔子)가 증자(曾子)에게 "삼아, 우리의 도는 한 가지 이치로써 만 가지 일을 꿰뚫고 있다."라는 말이 나온다. 박학지약(博學之約) 맹자가 "널리 배우고 상세히 말함은 장차 이를 돌이켜서 요약되게 말하고자 해서이다."라고 한 말이다. 《孟子 離婁下》 삼가례(三加禮) 일반적으로 관례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며, 관을 세 차례 갈아 씌우는 의식을 말한다. 맨 처음에는 치포관(緇布冠)을 씌우고 다음에는 피변(皮弁)을 씌우고 마지막에는 작변(爵弁)을 씌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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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사문에게 써서 주다 書贈具士文 교유(交遊)가 어수선하면 마음도 어수선하고 견문(見聞)이 혼란스러우면 마음도 혼란스럽다. 이것은 안팎으로 서로에게 의지하며 바뀌지 않는 이치이다. 매번 독서를 한다고 이름 붙여진 자들을 볼 때마다 그들의 평소 모습은 규방(閨房) 안에서 미적거리기도 하고, 여항(閭巷) 사이를 돌아다니며 놀기도 하고, 초목(樵牧)의 무리와 뒤섞여 있기도 하고, 술자리에 빠져 있기도 하여 무익한 사람을 마주하고 무익한 얘기를 하며 무익한 교유를 맺어 오래도록 어지럽게 시일만 보내고 있었다. 이와 같으면서 학문에 진보가 있기를 바란다면 음식을 물리치고 배부르기를 구하며 뒤로 걸으면서 앞으로 나아가기를 구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이것 또한 없는 이치이다. 반드시 먼저 조용한 곳에 방을 마련하여 필묵(筆墨)과 서책(書冊) 등 궤안(几案)에 필요한 모든 물건을 주위에 늘어놓고, 부모를 모시고 집안일을 돌보는 것 외에는 이곳에서 기거(起居)하고 이곳에서 침식(寢息)한다면 이 몸은 안정되는 곳이 있고 견문 또한 어지럽게 되지 않을 것이다. 밝은 창 아래에 놓인 책상에서 조용히 깊은 사색에 잠기고 깨닫는 것이 있으면 적어 놓고 의심스러운 사항이 있으면 적어 놓았다가 때때로 펼쳐 보고 때때로 사색 탐구한다면 저절로 깨달음이 쌓이게 될 것이다.다시 열흘이나 한 달 사이에 선생이나 장자(長者) 및 현능(賢能)한 사우(士友)에게 나아가 시비(是非)를 묻는다면 의심은 쌓이는 것이 없고 지식은 정밀하지 않은 것이 없게 된다. 학문을 하는 방법은 이것을 넘어서지 않는다. 어찌하여 꼭 서숙(書塾 글방)에 나아가 스승이나 장자를 가까이한 이후에야 독서를 한다고 이름을 붙이겠는가. 하물며 동재(洞齋)는 시끌벅적한 것을 가까이하고 산당(山堂)에 머물면 직분(職分)을 저버리게 되니 온당하고 편리함으로 보자면 이보다 좋은 계책이 없다.구생 사문보(具生士文甫)가 지난번에 한마디 말을 청하였다. 이제 그의 근실한 뜻을 저버리지 않고자 가만히 일상생활의 절도를 생각해보니 이보다 우선하는 계책이 없었다. 그래서 삼가 적어 준다. 생(生)은 힘쓰라. 交遊淆雜。心亦淆雜。聞見紛挐。心亦紛挐。此內外相須不易之理也。每見名爲讀書者。其平居。或留連於閨房之內。或巡遊於閭巷之間。或雜錯於樵牧之伍。或沈溺於盃盤之席。對無益之人。打無益之話。作無益之遊。悠悠紛紛。拕過時日。如是而望其所學之有進。何異乎却食而求飽。却步而求前乎。此亦所無之理也。必須先置一區靜室。凡筆墨書冊几案之物。列於左右。事親幹蠱之外。起居於斯。寢息於斯則此身有所安頓。而聞見亦不至撓撓矣。明窓棐几。從容沈索。有得則記之。有疑則亦記之。以時看閱。以時思繹。自當有積累覺悟處矣。更以旬月間。就先生長者及賢士友。以質其是非。則疑無所畜。知無不精。爲學之道。無以過此。何必就書塾親師長。而後名爲讀書哉。況洞齋近熱鬧。山堂曠職分。其穩且便。莫如此計也。具生士文甫。向有一言之請。今欲不孤其勤意。而竊念日用節度。莫有先於此計。故謹書而贈之。惟生勉之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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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4) 書(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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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계원【송규】에게 답함 答文啓元【頌圭】 지난번 전편(轉便 전전(轉轉)하여 가는 인편)으로부터 산방(山房)에서 지낸다고 들었습니다만, 또한 돌아오셨는지는 알지 못하였습니다. 뜻밖에 배장(裴丈)께서 저를 찾아오시고 겸하여 전폭(耑幅 심부름꾼을 시켜 보내는 편지)을 받았습니다. 감격스러움을 어찌 말로 표현하겠습니까. 자세한 편지 내용을 통하여 존심(存心), 양성(養性), 궁리(窮理), 격물(格物)을 통하여 하루하루 새로워지고자 하는 뜻을 알 수 있었습니다. 존경스럽습니다. 지난번 대곡(大谷 김석구(金錫龜)), 월파(月波 정백언(鄭伯彦)) 두 어른에게 답하는 서한에서 입우(笠友)가 전에는 고원한 곳으로 내닫는 병이 없지 않았지만, 이제는 평이하고 실질적인 곳에 나아가 공부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대체로 이처럼 아름다운 자질로 만약 올바른 문을 찾아 들어간다면 앞으로의 진보를 어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다만 그사이에 의심이 없을 수 없으니 만약 이로 인하여 입을 다물고 잠잠히 있다면 아마도 현자(賢者)가 저에게 편지를 보낸 뜻이 아닐 듯하여 감히 다시 말씀드립니다. 무릇 산방(山房)에서 조용히 조섭하는 공부가 겨우 열흘이 지나서 갑자기 총명함이 자연스럽게 열리는 효과를 얻었다면 그동안 미리 기대하고 소득을 계산하는 사사로운 마음이 있지 않았겠습니까. 모름지기 때마다 진작하고 곳곳에서 깨닫는 일이 나날이 거듭되고 다달이 축적되어 중간에 끊이는 일이 없다면 자연스럽게 확고해지고 자연스럽게 숙련이 됩니다. 어찌 급박하게 판별할 수 있기를 모색하겠습니까. 인용하신 "옛날도 없고 지금도 없으며 무엇이 삶이고 무엇이 죽음인가?"라는 불자(佛子)의 말은 이미 텅 비어 조짐이 없을 때 만상이 빽빽이 갖추어져 있다1)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데 현자(賢者)께서는 또 "형(形)과 기(器)를 초월하여 안과 밖, 정(精)과 조(粗)가 없다."라고 설명하여 허물을 더하고 잘못을 꾸미시렵니까? 불자들은 성(性)을 텅 비어 아무것도 없다고 여기기 때문에 말이 이와 같은데 현자의 말씀도 이와 같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또한 성인이 미발한 때의 기상(氣象)을 말씀하지 않은 것은 이런 의미가 아닙니다. 비록 미발한 때의 기상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하여 학자들에게 보여주더라도 진리를 어지럽히는 학자들의 폐단을 조장하는 데 불과합니다. 그래서 곧 근거하여 지킬만한 형적(形迹)을 얘기해주어 학자들이 이를 통하여 자연스럽게 상달(上達)하도록 했을 뿐입니다.서한에서 "근원이 깊으면 물줄기가 길고 뿌리를 두터이 북돋우면 가지와 잎이 무성하다."라는 말씀은 가장 긴요한 요점이니 감히 명심하지 않겠습니까. 의림(義林)이 근래 《절요(節要)》를 보고 부끄러움이 꽤 많았습니다. 이전의 잘못을 돌아보니 뒤미쳐 보완할 계책은 없고 세월은 나를 돌보아(기다려) 주지 않는 것이 매우 많았습니다. 책을 어루만지며 마음 아파하려니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계원(啓元)께서 삼가 경책(警責)해주시기 바랍니다. 向於轉便。聞住山房云。而亦不知返仄與未。謂外裴丈見訪。而兼承耑幅。感感何喩。縷縷足見存養窮格。日新又新之意。可敬可敬。向答大谷月波二丈書。以爲笠友向不無騖遠之病。今却就平實地。做將去云。大抵以若資質之美。苟得其門而入。其進何可量也。但其間不能無疑。若因含黙。恐非賢者勤示之意。敢復仰布。夫山房靜攝工夫。纔踰一旬。遽有聰明自然之效。無乃其間或不無預期計獲之私耶。須時時提撕。處處省覺日累月積。無所間斷。則自然完固。自然純熟。豈以急迫模想所可判耶。所引佛子之言。無古無今。何生何死。已非沖漠無眹萬象已具之意。而賢者又以超於形器之外。無內外精粗之說。增其失而補其過乎。佛子以性爲空無一物。故其言如此。不意賢者之言亦似之也。且聖人不言未發時氣象者。非此意也。雖說出十分氣象示學者。只不過爲學者助長亂眞之敝。故就言形迹可據守處。使之由之。而自然上達耳。所喩發源深者。其流泒長。培根厚者。其枝葉茂。此最切要。敢不銘佩。義林近看節要。頗多感悚。回顧前失。追補無計。而歲月之不恤我與者。已多矣。撫卷悲悵。不知爲喩。惟啓元勤賜警責也。 텅 비어……있다 《이정유서(二程遺書)》 권15에 "텅 비어 조짐이 없을 적에 만상이 삼연히 이미 갖추어져 있으니, 미응이 먼저가 아니고 이응이 뒤가 아니다. 이는 100척의 나무가 근본으로부터 지엽에 이르기까지 모두 일관된 것과 같다.【沖漠無朕, 萬象森然已具, 未應不是先, 已應不是後. 如百尺之木, 自根本至枝葉, 皆是一貫.】"라는 정이(程頤)의 말이 보인다. 미응은 미발(未發) 즉 고요하여 발동하지 않는 때를 말하고, 이응은 이발(已發) 즉 감응하여 마침내 발동하는 때를 말한다. 《근사록(近思錄)》 〈도체(道體)〉에도 소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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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빈에게 보냄 與李光彬 전우(田愚)23)의 심설(心說)을 이렇게 저에게 보여주시니 감사합니다. "이(理)는 기(氣)가 하는 일을 따른다."라고 하고 또 "기는 이에 의해 주재된다."24)라고 하였습니다. 상단으로 보자면 이가 기에게 명을 받으니 이는 기의 하인이고, 하단으로 보자면 기가 이에게 통제를 받으니 이가 기의 주재가 됩니다. 상하가 전도되어 매우 의미가 통하지 않습니다. "체(體)만 있고 용(用)이 없는 쓸데없는 물건,"25) "붙어 있는 가련한 사물"26)이라는 선사(先師)의 말씀이 이것을 이르지 않겠습니까. "도체(道體)의 본연(本然)이다."라고 하고 또 주석(注釋)하기를 "이와 기는 한 데 뒤섞여 간극이 없다."라고 하였는데, 어떻게 한 데 뒤섞여 있는 이와 기를 도체의 본연이라고 하겠습니까. 선사께서 말씀하신 "진흙에 물을 타는 것"27)과 "골동갱(汨董羹)"28)이 이것을 이르지 않겠습니까. 근세의 기를 위주로 하는 논의가 대개 이와 같지만, 노형은 이를 정견(正見)으로 채택하지 않아야 합니다. 다음 문장에서 '심(心)을 이(理)로 인식하는 것은 육씨(陸氏)29)의 정도(正道)에서 벗어난 설이다.'라는 것은 아마도 오늘날 이를 위주로 하는 것을 가리켜 말한듯합니다. 그러나 육씨는 궁리(窮理)에 관한 공부가 부족하여 마음에서 발하는 것을 이(理)라고 하였기 때문에 심(心)을 이(理)라고 인식하는 폐단을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오늘날의 이(理)를 위주로 하는 설은 이(理)와 기(氣), 주(主)와 복(僕), 수(帥)와 역(役)의 분한(分限)을 구별하니 어찌 저것을 끌어다 이것에 뒤섞을 수 있겠습니까.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田愚心說。荷此寄示。感感。旣曰理隨氣之所爲。又曰氣爲理之所宰。以上段則理聽命於氣。而理爲氣之僕役也。以下段則氣受制於理。而理爲氣之主宰也。上下顚倒。無義甚矣。先師所謂無用之長物。所謂寄寓可憐。非謂此耶。旣曰道體之本然。又註而釋之曰。理與氣。渾淪而無間。安以理與氣渾淪者。謂道體之本然耶。先師所謂和泥帶水。所謂汨董羹。非謂此耶。近世主氣之論。大率如此。而宜不見取於老兄之正見也。下文認心爲理。陸氏畔道之說。似指今日主理而發。然陸氏欠却窮理一段功夫。而以發於心謂之理。故不免有認心爲理之敝。若今日之主理。是分別理氣主僕帥役之分。烏可引彼而混此哉。諒之。 전우(田愚) 1841~1922. 초명은 경륜(慶倫)ㆍ경길(慶佶), 자는 자명(子明), 호는 구산(臼山)ㆍ추담(秋潭)ㆍ간재(艮齋)이다. 임헌회의 문인으로, 만년에 전라도 계화도(界火島)에서 후진을 많이 길러 냈다. 저서로 《간재집(艮齋集)》, 《간재사고(艮齋私稿)》, 《추담별집(秋潭別集)》 등이 있다. 이(理)는……주재된다 《간재선생문집전편(艮齋先生文集前編)》 권2 〈여유치정 갑술(與柳穉程甲戌)〉에 보인다. 용(用)이……물건 《노사선생문집(蘆沙先生文集)》 권16 〈납량사의(納凉私議)〉에 보인다. 붙어있는 가련한 《노사집(蘆沙集)》 권4 〈답권신원(答權信元)〉에 보인다. 진흙에……것 《노사집(蘆沙集)》 권4 〈답권신원(答權信元)〉에 보인다. 골동갱(汨董羹) 남쪽 지방 사람들이 물고기와 살코기를 뒤섞어 밥 속에 두는 것으로 어지럽게 뒤섞여 분리되지 않은 일을 말한다. 《性理大全補註》 육씨(陸氏) 육구연(陸九淵, 1139~1192)으로, 호는 상산(象山), 자는 자정(子靜), 시호【는】 문안(文安)이다. 주자가 정이천의 도문학(道問學)을 존중한 데 반하여, 육구연은 정명도의 존덕성(尊德性)을 존중하였기 때문에, 주자는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성즉리설(性卽理說)을 제창하였고, 육구연은 치지(致知)를 주로 한 심즉리설(心卽理說)을 제창하였다. 저서에 《상산선생전집》 36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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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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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계원에게 답함 答文啓元 말씀하신 사람과 사물의 기질에 관한 주장이 대의(大意)는 그런 듯합니다만, 제 생각에는 온당치 못한 점이 있습니다. 무릇 사람의 기(氣)가 곧 천지의 기이고 사물의 기가 곧 천지의 기입니다. 기화(氣化 음기(陰氣)와 양기(陽氣)의 변화)의 초기에는 진실로 사람은 기의 빼어난 것을 얻고 사물은 기의 치우친 것을 얻으며, 형화(形化 형체의 변화)의 과정에서도3) 사람은 형체의 빼어난 것을 얻고 사물은 형체의 치우친 것을 얻습니다. 다만 사람과 사물의 기를 자기와 관계된 것【私己】과 그렇지 않은 사물【物事】로 간주합니다. 따라서 별도로 외면에 있는 일종의 음기와 양기 중에서 사람에게 주어지고 사물에게 주어진 것을 구해서 찾지 못하면 도리어 유기(遊氣 유동하는 기)는 치우침과 빼어남에 관여하는 것이 없다고 하고, 또 치우친 기나 빼어난 기를 얻는 것은 기화의 초기에 이미 이루어진다고 한다면 옳겠습니까. 또 지우(智愚), 미악(美惡), 궁통(窮通), 수단(修短 장수와 요절)은 유기(遊氣)가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이것 또한 말이 되지 않습니다. 무릇 사물이 체단(體段)을 갖추면 곧 자연스럽게 끝없이 서로 다른 부분이 있게 됩니다. 어찌 혈기를 하나의 고깃덩어리로 여기고 유기(遊氣)가 작용한 뒤에야 많은 차이가 있게 되겠습니까? 이러한 생각이 이긴다면 아마도 우리 유학의 본지(本旨)를 잃을 듯합니다. 신중해야 합니다. 유기(遊氣)에 관한 언급은 장자(張子 장재(張載))의 학설과 다릅니다. 그러나 장자(張子)는 천지(天地)를 주(主)로 여겼기 때문에 사람과 사물을 유기로 여겼습니다.4) 여기서는 사람과 사물을 주로 여겼기 때문에 음과 양을 유기로 여겼으니 이것은 무방할 듯합니다. 동정(動靜)으로 말하자면 정(靜)이 체(體)이고 동(動)이 용(用)이며, 태극(太極)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일동(一動), 일정(一靜)이 똑같이 유행합니다. 천지의 동정(動靜) 운운한 것도 역시 온당치 못합니다. 응당 "천(天)은 동(動)으로 정(靜)을 머금지만, 지(地)는 정으로 동을 머금으며, 천(天)은 기(氣)로 형(形)을 포괄하지만 지(地)는 형(形)으로 기를 포괄한다. 만물에 대해서 말하자면 천을 근본으로 삼거나 지를 근본으로 삼는 것이 또한 각각 자신에게 맞는 성향을 따른다."라고 해야 합니다. 所喩人物氣質之說。大意似然。但於鄙意。有未安者。夫人之氣。卽天地之氣也。物之氣。卽天地之氣也。氣化之初。固嘗得其秀得其偏。形化之際。亦無非得其秀得其偏也。只是把來人物之氣。作私已物事看。故別求外面一種陰陽之氣。與人與物者。而不能得。乃謂遊氣無與於偏秀。又謂偏秀之得。已在於氣化之初。可乎。又云智愚美惡。窮通脩短。非遊氣不成。此又不成說。凡物纔有一箇體段。便自然有無限不同處。豈以血氣爲一箇肉塊。而待遊氣然後。乃有許多分數耶。此意若勝。則恐失吾儒本旨。愼之愼之。遊氣之云。與張子之說不同。然張子以天地爲主。故以人物爲游氣。此以人物爲主。故以陰陽爲游氣。此則恐無妨。以動靜而言。則靜爲體。動爲用。自太極而言。則一動一靜。均是流行。天地動靜云云。亦似未安。當曰。天以動含靜地以靜含動。天以氣包形。地以形包氣。至於萬物則本天本地。亦各從其類也。 기화(氣化)……과정에서도 주희에 따르면, 기화는 애초 사람이 아무런 종자 없이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며, 형화는 사람이 있은 뒤에 낳고 낳아 생겨나는 것이다. 주희는 〈태극도설〉의 "만물을 변화시켜 생성한다.【化生萬物】"를 설명하면서 "사람과 사물이 처음에는 기화하여 생겨나며, 기가 모여 형체를 이루면 형체가 교접하고 기가 감응하여 마침내 형화하는데, 사람과 사물이 낳고 낳아 변화가 무궁하다."라고 하였다. 《性理大全 卷1 太極圖》 장자(張子)는……여겼습니다 장재(張載)의 《정몽(正蒙)》 〈태화(太和)〉에 "유동하는 기가 어지러이 뒤섞여 있다가 모여서 형질을 이룬 것이 만 가지로 다른 사람과 사물을 낳는다.【氣紛擾, 合而成質者, 生人物之萬殊】"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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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빈【기백】에게 답함 答李光彬【琪白】 뜻밖에 혜서(惠書)와 별폭(別幅 별지(別紙))을 받아 두 손으로 받들고 엄숙하게 읽었습니다. 저를 향한 정이 돈독할 뿐만 아니라 다시 익히는 공부가 정밀하고도 활달하여 절대로 속되고 평범한 수준에 비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감격스러움을 어떻게 표현하겠습니까. 쓸쓸한 늘그막에 이런 외우(畏友)를 얻었으니 이로 인하여 좋은 영향을 받아 혹시 만년에 조그마한 공이라도 거둘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문〕 삼년상 중에는 조문을 하지 않는데, 지금 세속은 상복을 입은 채 조문하는 사람이 많으니 어찌해야 합니까?〔답〕 공자(孔子)는 "군자는 예(禮)로 정(情)을 꾸민다. 삼년상에 조문하고 곡을 하는 것은 역시 허식이 아니겠는가."5)라고 하였습니다. 이로써 보자면 상(喪)을 당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조문하지 않는 것이 본래 예입니다. 그러나 증자(曾子)는 자장(子張)의 상에 가서 곡을 하였습니다.6) 그렇다면 정의가 두터운 대상에 대해서는 비록 조문하는 예를 행할 수는 없더라도 곡을 하는 것은 무방할 것입니다.〔문〕 《가례(家禮)》 〈대상장(大祥章)〉에 규정된 참포삼((黲布衫)은 지금 세속에서도 행합니까? 이른바 참(黲)이라는 것은 옅은 청흑색인데 길복의 색에 가깝습니까, 흉복의 색에 가깝습니까?〔답〕 참(黲)은 길복에 가까운 색입니다. 따라서 대상제(大祥祭)를 지낼 때는 약간 길한 옷을 입고 제사를 지낸 뒤에는 다시 약간 흉한 옷을 입으며 담제(禫祭)를 지낼 때는 완전히 길한 옷을 입고 제사를 지낸 뒤에는 다시 약간 길한 옷을 입습니다. 길제(吉祭) 때에는 입지 않는 옷이 없으며 허리에 차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문〕 《가례(家禮)》 〈졸곡장(卒哭章)〉에 따르면 졸곡(卒哭)은 반드시 3개월을 기다려야 하는데, 지금 사족(士族)과 서족(庶族)의 집안에서도 반드시 이것을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까? 만약 매장할 때까지 소요되는 개월 수를 기한으로 삼아 이같이 한다면7) 또 사(士)는 달을 넘겨 장례를 치른다고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답〕 《예기》 〈왕제(王制)〉에 "대부(大夫), 사(士), 서인(庶人)은 3일 만에 빈례(殯禮)8)를 행하고 3개월 만에 장례를 치른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구절의 주석에 "대부는 죽은 달을 제외하고 3개월이고 사는 죽은 달을 포함하여 3개월이다. 이것이 한 달을 넘긴다는 것이므로 '달을 넘긴다【踰月】'라고 하였다."9)라고 하였습니다.〔문〕 물들인 종이로 상여를 장식하고 극도로 화려하게 해서 가는 길을 성대하게 하면 효자(孝子 상주(喪主))의 정이 흡족합니까?〔답〕 《예기(禮記)》 〈단궁하(檀弓下)〉에 "사람이 죽으면 혐오감을 갖게 되므로 효(絞 수의를 묶는 베로 만든 끈), 금(衾 염한 시신을 감싸는 이불)을 제정하고 류(蔞)10), 삽(翣)11)을 설치하여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지 않도록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색색의 꽃으로 상여를 장식하는 것도 혐오감이 들지 않도록 하려는 뜻 때문입니다. 料外惠翰及別幅。雙擎莊讀。不惟相向之意。極其綣繾。而溫理功夫。精詳展拓。大非俗下常調之比。感領何謝。晩暮離索。得此畏友。未知因仍濡染。或可以少收桑楡耶。三年之喪不弔。今俗多有喪服而行弔者。如何。孔子曰。君子禮以飾情。三年之喪而弔哭。不亦虛乎。以此觀之。有喪者。不弔人固禮也。然子張之喪。曾子往哭之。然則於其情厚處。雖不可行弔禮。而哭之則無妨耶。大祥章黲布。衫今俗亦行之否。所謂黲者淺靑黑色。近吉乎近凶乎。黲是近吉之服。是以大祥着微吉之服。祭後還着微凶之服。禫祭着純吉之服。祭後還着微吉之服。至於吉祭無所不服無所不佩。卒哭章卒哭必俟三月。今士庶家必以此爲準耶。若以葬之月數爲限而如此。則又不曰士踰月而葬乎。王制大夫士庶人。三日而殯。三月而葬。註大夫除死月爲三月。士數死月爲三月。是踰一月。故言踰月耳.大轝染紙雕畵。極其華麗。以榮道路。孝子之情得之歟。禮曰。人死斯惡之矣。是故制絞衾。設蔞翣。爲使人勿惡也。今之綵花雕轝。亦勿惡之義也。 군자는……아니겠는가 《예기(禮記)》 〈증자문(曾子問)〉에 보인다. 증자는……하였습니다 《예기》 〈단궁하(檀弓下)〉에 "자장이 죽자, 증자가 모친상 중임에도 자최복을 입은 채로 가서 곡을 하였다. 어떤 사람이 '자최복을 입고는 조문하지 않는 법이다'라고 하였다. 증자는 '내가 조문한 것이겠는가.'라고 하였다.【子張死, 曾子有母之喪, 齊衰而往哭之. 或曰: '齊衰不以弔.' 曾子曰: '我弔也與哉?'】"라는 구절이 보인다. 매장할……한다면 《가례(家禮)》 〈치장장(治葬章)〉에 "3개월 만에 장사 지내되, 기일 전에 장사지낼 만한 땅을 고른다.【三月而葬, 前期擇地之可葬者.】"라고 규정하고 있다. 졸곡은 매장을 한 뒤 삼우제(三虞祭)를 지낸 다음날 지내는 제사이므로 3개월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 것이다. 빈례(殯禮) 대렴을 마치고 입관한 뒤에 매장 때까지 관을 빈궁(殯宮)에 임시로 안치하는 것을 말한다. 천자는 7일째, 제후는 5일째, 대부와 사는 3일째에 빈례를 한다. 천자는 용으로 장식한 수레인 순거(輴車)를 빈궁으로 사용하고, 제후는 용의 장식이 없는 순거를 사용하고, 대부는 순거 없이 서쪽 담장에 나무를 쌓아 올린 뒤 흙을 바르며, 사는 땅을 파서 관을 안치한다. 대부는……것이다 《예기정의(禮記正義)》 〈왕제(王制)〉의 해당 구절에 대한 공영달(孔穎達)의 소(疏)의 내용이다. 이에 따르면 '달을 넘긴다'는 말의 의미는 사망한 달과 매장하는 달 사이에 한 달의 기간을 둔다는 의미가 된다. 류(蔞) 관을 가리는 장식물이다. 류(柳)라고도 한다. 상하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윗부분을 류(柳 윗덮개)라 하고 아랫부분을 '장(牆 옆 덮개)이라고 한다. 전현(錢玄) 《삼례사전(三禮辭典)》 삽(翣) 상여와 관을 가리기 위하여 사용하는 나무로 만든 부채 모양의 장식이다. 불삽(黻翣 '己' 자가 등지고 있는 문양을 그려 넣은 나무로 만든 부채 모양의 장식), 운삽(雲翣 구름의 문양을 그려 넣은 나무로 만든 부채 모양의 장식), 보삽(黼翣 도끼 문양을 그려 넣은 나무로 만든 부채 모양의 장식)의 구별이 있다. 《禮記 喪大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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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빈에게 보냄 與李光彬 "성(性)에는 삼품(三品)이 있다."라는 것은 창려(昌黎 한유(韓愈))의 말인데, 근세의 삼층(三層)13)이라는 말이 이것과 비슷하지 않겠습니까. 《중용(中庸)》의 성(性), 도(道), 교(敎)는 체용(體用)과 수양의 순서로 말한 것이지 어찌 일찍이 성(性)에 삼층(三層)이 있다고 여겼겠습니까. 일본만수(一本萬殊)14)는 진실로 경계를 구분하여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수(分殊)로 말한다면 역시 체와 용, 본과 말로 나누어 말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지이(至異)하지만 지동(至同)한 것이 있고 찬연(粲然)히 구별되지만 혼연(渾然)하게 뒤섞인 것이 있으니 어찌 지동(至同)과 지일(至一)의 오묘함이 다시 발붙일 곳이 없다고 이를 수 있겠습니까. 만약 일본(一本)을 분수(分數)가 없다고 이른다면 일본이라는 것은 반드시 공허하고 아득한 지경으로 떨어집니다. 시험 삼아 생각해 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지난번 올린 율시 2수에서 그 뜻을 대략 말하였습니다. 성(性)은 만물의 일원(一原)이고 만물의 이치는 본래 일원 안에 이미 가득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만물이 어디에서 나오겠습니까. 만약 "본연에 갖추어진 것이 아니라 임시로 배정된 것이다."라고 한다면 이것이 무슨 도의(道義)이겠습니까. 근세의 기(氣)를 위주로 하는 설은 곧 여기에서 어긋났기 때문입니다. 性有三品。此是昌黎語。近世三層之語。不其類此乎。中庸之性道敎。此以體用修爲之序言之。何嘗以性爲有三層乎。一本萬殊。固無界分之可言。然若以分殊言之。亦不無體用本末之可言。況至異而有至同者存焉。粲然而有渾然者在焉。則烏可謂至同至一之妙。更着無地耶。若以一本謂無分數。則所謂一本者必墮於空虛冥漠之地矣。試思之如何。向者所呈詩律二首。槪言其義矣。性者萬物之一原。而一原之中。萬物之理固已森然矣。不然。萬物何從而出乎。若曰不具於本然。而爲臨時排定云。則此何道義乎。近世主氣之說。卽於此蹉了故也。 삼층(三層) 한원진(韓元震)이 주장한 학설로, 성삼층설(性三層說)이라고도 하는데, 성을 인간과 사물이 같은 초형기(超形氣)의 성, 인간과 사물이 다른 인기질(因氣質)의 성, 인간과 인간이 서로 다른 잡기질(雜氣質)의 성으로 구분하여 파악한 것이다. 일본만수(一本萬殊) 하나의 근본에서 만 가지 다른 것이 생겨난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하여 《주자어류》에 "만 가지 다른 것이 하나의 근본이 되는 것과 하나의 근본이 만 가지로 다르게 되는 것은, 마치 한 근원의 물이 흘러나가 만 갈래의 지류가 되고 한 뿌리의 나무가 나와 수많은 가지와 잎이 되는 것과 같다.【萬殊之所以一本, 一本之所以萬殊, 如一源之水流出爲萬派, 一根之木生爲許多枝葉.】"라는 내용이 보인다. 《朱子語類 卷27 論語9 里仁篇下 子曰參乎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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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빈에게 답함 答李光彬 보내신 서한에서 심성(心性)에 대해 운운하신 것은 하나하나 타당한 말씀이라서 다시 따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니 한 시대의 뒤얽힌 논의를 타파하기에 충분합니다. 오늘날 사우(士友)들의 논의는 기(氣)를 위주로 하는 경우가 있고 이(理)를 위주로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를 위주로 하는 경우는 진실로 말할 가치가 없고 이를 위주로 하는 경우도 의심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대체로 심(心)은 기(氣)의 정상(精爽)이고 성(性)은 이(理)의 결과(結裹)입니다. 명의(名義)와 경계가 본래 이와 같지만, 옛 성현들이 입언(立言)을 통하여 전한 교훈은 각각 어세(語勢)로 인하여 크게 달랐습니다. 장자(張子 장재(張載))가 말한 "심은 성을 검속할 수 있지만 성은 그 심을 검속할 줄 모른다."15)라는 것과 주자(朱子)가 말한 "성은 태극과 같고 심은 음양과 같다."16)라고 한 것은 구분하여 말한 것입니다. "인은 사람의 마음이다."17)라는 맹자(孟子)의 말, "심은 태극이다."18)라는 소자(邵子 소옹(邵雍))의 말, "오직 마음은 상대할 것이 없다."19)는 주자(朱子)의 말은 심과 성을 합하여 말한 것입니다. 합하여 말하면 성(性)은 본래 심 안에 있으니 대립시켜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한쪽 사람들은 전체를 말하면 심이고 한쪽을 말하면 성이라고 봅니다. 또 이(理)로 이(理)를 갖추고 이(理)로 이(理)를 묘합한다고 여겨 별도로 무위진인(無位眞人)이 명명(冥冥)한 곳에 앉아 있는 듯합니다. 이같이 하면서 어떻게 기를 위주로 하는 논의를 굴복시켜 귀일하게 하겠습니까. 형께서는 "성(性)을 논하는 자는 반드시 본연(本然)을 성으로 여기고 심(心)을 논하는 자는 반드시 본심(本心)을 심으로 여긴다."라고 하시고, 또 "'인(仁)은 인심(人心)이고'20) '심(心)은 생도(生道)이며'21) '복괘(復卦)에서 천지의 마음을 본다'22)라고 할 때의 '심(心)' 자는 기(氣)인가, 이(理)인가?"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매우 좋은 말씀입니다. 기(氣)를 위주로 하는 사람은 나뉘는 것만 볼 뿐이지 합치되는 것을 모르고 이(理)를 위주로 하는 사람은 합치되는 것만 볼뿐이지 나뉘는 것을 모릅니다. 서로 잘못된 곳으로 돌아가지 않겠습니까. 형의 논의는 저쪽에 치우치지도 않고 또 이쪽에 치우치지도 않는다고 이를 수 있습니다. 示喩心性之云。節節亭當。無容更評。足破一時繳繞之論。近日士友之論。有主氣者。有主理者。其主氣者。固不足言。其主理者。亦不無可疑矣。大抵心者氣之精爽也。性者理之結裹也。其名義界至。本自如此。而從古聖賢。立言垂訓。各因語勢而煞有不同。張子所謂心能檢性。性不知檢其心。朱子所謂性猶太極。心猶陰陽。是分而言之者也。孟子所謂仁人心。邵子所謂心太極。朱子所謂惟心無對。是合而言之者也。合而言之。則性固在中而不必對擧說下矣。然以一邊人以爲全言則心。偏言則性又以爲以理具理。以理妙理。似若別有一箇無位眞人。坐任冥冥之中。如此而何以屈主氣之論。而使之歸一哉。兄謂論性者。必以本然爲性。論心者。必以本心爲心。又曰。仁人心。心生道。復見天地之心。此等心字。是氣乎理乎。此說甚善。主氣家但知其分。而不知其合。主理家但知其合。而不知其分。不其歸於胥失乎。兄論可謂不偏於彼。而又不偏於此矣。 마음은…… 모른다 《논어집주》 〈위령공(衛靈公)〉에 "사람이 도(道)를 넓히는 것이요, 도(道)가 사람을 넓히는 것은 아니다.【人能弘道, 非道弘人.】"라고 한 경문에 대한 집주에 장재(張載)가 "마음이 성(性)을 다할 수 있으니, 이것은 사람이 도(道)를 크게 하는 것이요, 성(性)은 마음을 검속할 줄 모르니, 이것은 도(道)가 사람을 크게 함이 아닌 것이다.【心能盡性, 人能弘道也, 性不知檢其心, 非道弘人也.】"라고 한 말이 실려 있다. 성은……같다 《주자어류》에 "성은 태극과 같고, 마음은 음양과 같다. 태극은 단지 음양 속에 있으니, 음양을 떠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태극을 논할 경우에 태극은 자체로 태극이고, 음양은 자체로 음양이다. 오직 성과 마음이 또한 그러하니, 이른바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이다.'라는 것이다.【性猶太極也, 心猶陰陽也. 太極只在陰陽之中, 非能離陰陽也. 然至論太極自是太極, 陰陽自是陰陽. 惟性與心亦然, 所謂一而二, 二而一也.】"라고 하였다. 《朱子語類 卷5 性情心意等名義》 인은……마음이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보인다. 심은 태극이다 소옹(邵雍)의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 〈관물외편 하(觀物外篇下)〉에 "도가 태극이 되고, 심이 태극이 된다.【道爲太極 ,心爲太極.】"라는 말이 보인다. 오직……없다《주자어류(朱子語類)》 권5, 권98에 보인다. 인은……인심이고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보인다. 심(心)은 생도(生道)이며 《이정유서》 권21과 《근사록집해(近思錄集解)》 권1 〈도체(道體)〉 등에 보이는 이천 선생의 말로, "마음은 생도이다. 이 마음이 있어야 이 형체를 갖추어 태어나니, 측은지심은 사람의 생도이다.【心, 生道也. 有是心, 斯具是形以生, 惻隱之心, 人之生道也.】"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주자(朱子)는 "마음이 생도라는 것은 천지가 만물을 낳는 것으로 마음을 삼는데 사람이 이를 얻어서 마음을 삼은 것을 말한다.【心生道也, 謂天地以生物爲心, 而人得之以爲心者.】"라고 하였다. 복괘(復卦)에서……본다 이 말은 《주역》복괘(復卦)의 단사(彖辭)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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