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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산에 올라 김 장군의 옛터를 바라보며 登瑞石山 望金將軍故墟 장군은 서석산의 정기를 모아 태어났는데 將軍鍾出瑞石精장군이 낳고 자랐던 마을 아직도 있구나 將軍生長尙有村장군의 충성과 용기 세상에 대적할 이 없어 將軍忠勇世無敵왜놈들 잡아 한 입에 삼키길 기약했네 期取島奴一口呑큰 공로를 아뢰기도 전에 몸이 먼저 죽으니 大功未奏身先死호서의 역적357) 초사358)를 어찌 차마 말하리 湖西賊招那忍言장성을 파괴했으니 또한 무슨 마음이런가 壞破長城抑何心이 일을 주장한 사람 본래 있다지 主張此事自有人만약 장군이 그 당시에 등용되었더라면 如今將軍當日用굳이 고생하며 화친을 일삼지 않았으리라 必不辛苦事和親하늘 때문인가 사람 때문인가 일이 이 지경에 이르니 天耶人耶事至此천고에 뜻있는 선비들 눈물이 수건을 적시네 千古志士淚沾巾지금 장군이 세상을 떠난 지 삼백 년인데 今去將軍三百載한 치 땅도 다시는 우리나라 소유가 아니네 寸土無復有我韓난리의 형세가 매우 위중하여 쉽지 않더라도 亂極勢重縱未易계책과 용맹이 뛰어나면 어찌 끝내 어려우리 計神勇絶豈終難장군이 구천에서 깨어나길 간절히 염원하니 思切將軍起九原능히 나라를 회복하고 생민을 편안케 하리라 庶能復國奠生民오늘 이 높은 곳에 오른 뜻을 그 누가 알랴마는 誰知今日登高意오로지 장군의 충혼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네 端爲將軍吊忠魂곡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 노랫소리 길어지고 欲哭不可歌聲長해질녘에 끝없이 홀로 마음 아파하노라 落日無限獨傷神 將軍鍾出瑞石精, 將軍生長尙有村.將軍忠勇世無敵, 期取島奴一口呑.大功未奏身先死, 湖西賊招那忍言?壞破長城抑何心? 主張此事自有人.如今將軍當日用, 必不辛苦事和親.天耶人耶? 事至此, 千古志士淚沾巾.今去將軍三百載, 寸土無復有我韓.亂極勢重縱未易, 計神勇絶豈終難?思切將軍起九原, 庶能復國奠生民.誰知今日登高意? 端爲將軍吊忠魂.欲哭不可歌聲長, 落日無限獨傷神. 호서(湖西)의 역적(逆賊) 충청도 홍산(鴻山)의 이몽학(李夢鶴, ?~1596)을 가리킨다. 이몽학은 종실(宗室)의 후예로서 모속관(募粟官) 한현(韓絢) 등과 함께 현재의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鴻山)에서 반란을 일으켜 홍주성으로 진격하였다. 그러나 목사 홍가신(洪可臣) 등에 의해 진압되자, 부하 김경창(金慶昌)에게 살해당했다. 초사(招辭) 공초(供招)의 말이다. 공초는 조선 시대에 죄인이 범죄 사실을 진술하던 일로, 공사(供辭)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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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산351)에 올라 왕양명352)이 용산을 유람한 시에 차운하다 登瑞石山 次王陽明遊龍山韻 서석산의 가장 높은 대에 날 듯이 오르니 飛登瑞石最高臺이날에야 흉금이 비로소 활짝 열렸네 此日胸懷始豁開점점이 이어진 산들을 모두 내려다보니 點點群山皆下視도도히 흐르는 많은 물이 동쪽에서 오네 滔滔萬水自東來금남353)의 웅대한 계략 지금은 어디에 있는가 錦南雄略今安在석저 장군354)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구나 石底將軍不復回한 곡조 호탕한 노래에 기운은 천 길이나 높은데 一曲浩歌千丈氣바람 불고 무지개 떠 강괴355)에 접하네 風騰虹見接罡魁 飛登瑞石最高臺, 此日胸懷始豁開.點點群山皆下視, 滔滔萬水自東來.錦南雄畧今安在, 石底將軍不復回.一曲浩歌千丈氣, 風騰虹見接罡魁. 서석산(瑞石山) 광주(光州) 무등산(無等山)의 별칭이다. 왕양명(王陽明) 양명은 명(明)나라 때의 학자인 왕수인(王守仁, 1472∼1528)의 호이다. 마음을 우주 만물의 근본으로 삼은 송(宋)나라 때 심학가(心學家)인 육구연(陸九淵)의 '심즉리설(心卽理說)'을 계승하여 집대성하였다. 저서에 《전습록(傳習錄)》ㆍ《왕문성전서(王文成全書)》가 있다. 금남(錦南) 정충신(鄭忠信, 1576~1636)의 봉호이다.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가행(可行), 호는 만운(晩雲),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지략과 덕을 갖춘 명장으로 명성이 높았다. 임진왜란 때 어린 나이로 광주 목사(光州牧使) 권율(權慄)의 휘하에서 종군하였으며, 이괄(李适)의 난에 공을 세워 금남군에 봉해졌다. 부원수ㆍ포도대장ㆍ경상도 병마절도사를 역임하였으며, 광주(光州) 경렬사(景烈祠)에 제향되었다. 저서에 《만운집》ㆍ《금남집》ㆍ《백사북천일록(白沙北遷日錄)》 등이 있다. 석저 장군(石底將軍) 김덕령(金德齡)의 별명으로, 출생지가 광주의 석저촌이라서 생긴 것이다.석저는 석저촌(石底村)으로, 광주 충효동의 옛 이름이다. 강괴(罡魁) 천강성(天罡星)과 북두칠성의 제일성인 두괴(斗魁)를 합칭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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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영에게 답함 答洪文寧 왕림해주신 지 오래되지 않아 또 이처럼 편지를 보내주시니 감격스러움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보내오신 글이세 '날마다 하는 공부가 중간에 끊어지고 이어지질 않고 있습니다.【日用工夫, 間斷不接】'라고 한 부분은 참으로 걱정스럽습니다. 그러나 간단(間斷)이라는 두 글자는 좀 생각할 부분이 있는 듯합니다. 어떻게 해야만 끊어지는 것이며, 어떻게 해야만 이어지는 것이겠습니까. 또한 끊어질 때는 우리 마음이 어떠하며 이어질 때는 우리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보는 것이 절실하다면 체득함이 정밀해지고, 체득함이 정밀하다면 지키는 것이 견고하게 되고, 지키는 것이 견고하게 된다면 무슨 걱정할 만한 간단함이 있겠습니까? 또 '구용(九容)과 구사(九思)82)의 공효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고 있습니다.【潛索於九容九思之功】'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모든 일을 절실히 묻고 가까이 생각함【切問而近思】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옛날 요진경(廖晉卿)이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청하자,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공은 마음을 놓은 지가 이미 오래되었으니, 우선 정신을 수렴하여야 합니다. 〈옥조(玉藻)〉에서 말한 구용(九容) 부분을 자세히 체인하여 의사가 있기를 기다린 다음 책을 읽는 것이 좋습니다.【公放心已久, 且合收斂精神, 玉藻言九容處, 子細體認, 待有意思, 却好讀書.】"83)라고 하였는데 일찍이 이러한 말을 본 적이 없는지요? 대저 초학자가 몸과 마음을 수렴하고 근본을 함양하는 방법으로 구용(九容)에서 무엇을 더하겠습니까? 모름지기 착실하게 체득하고 궁구하면 끝내는 원대함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사비(士抷)께서는 《혹문(或問)》을 다 읽었는지요? 새롭게 얻은 1~2 조목을 보내주실 수 있겠는지요? 오랫동안 과정을 세워 읽은 책은 무엇인지요? 순필(舜弼)과 함께 모이는지요? 그리움과 울적함이 나란히 간절하니 조만간 서로 만나서 쌓인 회포를 풀었으면 합니다. 委枉未久。又此垂訊。感不容謝。示中日用工夫。間斷不接。此固可憂。然間斷二字。儘有合商量處。如何是間斷。如何是接續。間斷時此心如何。接續時此心如何。見之切則體之密。體之密則守之固。守之固則有何間斷之可憂哉。又云潛索於九容九思之功。此可見切問而近思。昔廖晉卿請讀何書。朱子曰。公放心已久。且合收斂精神。玉藻言九容處。子細體認。待有意思。却好讀書。未知曾看此語否。大抵初學者收斂身心。涵養本源之方。孰有加於九容哉。須着實體究。卒臻遠大也。士拯讀或問未了耶。何不以新得一二條見寄耶。允深見課何書。舜弼與之相聚否。倂切戀菀。那間相奉攄此宿蘊也。 구용(九容)과 구사(九思) 구용(九容)은 《예기》 〈옥조(玉藻)〉에 나오는 군자가 수행(修行)하고 처신(處身)함에 있어서 지켜야 할 아홉 가지 자세로, '걸음걸이의 모양은 무게가 있어야 하고, 손놀림의 모양은 공손해야 하고, 눈의 모양은 단정해야 하고, 입의 모양은 조용해야 하고, 목소리의 모양은 고요해야 하고, 머리 모양은 곧아야 하고, 기상의 모양은 엄숙해야 하고, 서 있는 모양은 덕스러워야 하고, 얼굴빛은 장엄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사(九思)는 《논어》 〈계씨(季氏)〉에 나오는 군자의 아홉 가지 생각으로, '볼 때는 밝게 보기를 생각하고, 들을 때는 밝게 듣기를 생각하고, 얼굴빛은 온화하기를 생각하고, 용모는 공손하기를 생각하고, 말할 때는 충성되기를 생각하고, 일할 때는 조심하기를 생각하고, 의심날 때는 묻기를 생각하고, 분노할 때는 어려움을 생각하고, 얻을 것을 보고서는 마땅히 가질 것인가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요진경(廖晉卿) …… 말하였습니다 요진경이 "무슨 책을 읽어야 합니까?【廖晉卿請讀何書?】"라고 묻자, 답하기를 "공은 마음을 놓은 지가 이미 오래되었으니, 우선 정신을 수렴하여야 합니다. 〈옥조〉의 구용을 자세히 체인하여 의사가 있기를 기다린 다음 책을 읽는 것이 좋습니다.【公心放已久, 可且收斂精神. 玉藻九容處, 子細體認, 待有意思, 却好讀書.】"라고 하였다. 《심경부주(心經附註)》 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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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일【익호】에게 답함 答文子一【翼浩】 벗의 편지 한 폭이 새 봄과 함께 이르니 저도 모르게 눈이 확 뜨이고 마음이 깨치게 되었습니다. 편지를 통해 어버이를 모시며 지내는 정황이 새해에도 만복함을 알게 되었으니, 더욱 듣고 싶었던 소식이었습니다. 저는 한편으로는 나이를 한 살 더 먹었고 한편으로는 더욱 쇠하게 되었으나 도를 듣지도 못한 채 저녁에 죽게 되었으니85) 이것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칠월장(七月章)에서, '정삭만 고쳤을 뿐 월수는 고치지 않았다.【改正朔不改月數】'86)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고례(古例)입니다. 그에 대한 설이 《서경(書經)》 이훈(伊訓)에 실려 있으니 오직 원사 12월【元祀十有二月】조 아래를 살펴보면 어떠하겠습니까? 공손홍(公孫弘)의 대책(對策)에서 홍수(洪水)의 소치를 말하지 않고 단지 큰 가뭄이 걸(桀) 임금의 잔학한 여세라고 한 것은 선유(先儒)들이 공손홍(公孫弘)의 마음씀이 음사(陰詐)한 곳이라고 여긴 이유입니다. 맹자(孟子)는 '요 임금의 시대에 세상이 아직 평정되지 않았다.【當堯之時, 天下猶未平.】'87)라고 하였는데, 대개 대개 천지가 갈라지기 전의 혼돈의 시대에 물길이 아직 통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공손홍이 이와 같이 애매모호하게 말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음사(陰詐)의 기미가 된 이유입니다.혼(魂)이 함께 배행하는 것은 예에 실로 있습니다. 혼백(魂魄)이 흩어지기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고복(皐復)88)하고 비단을 묶어 혼백(魂帛)을 만들며 영좌(靈座)와 영상(靈床)을 설치하는 것은 모두 혼(魂)을 편안하게 하기 위한 뜻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혼백이 서로 떨어진다는 혐의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보지 않는 바에서도 계신하고, 듣지 않는 바에서도 공구한다.【戒愼不睹 恐懼不聞】'는 것은 아래 문장에서 '희로애락이 아직 발동하지 않은 상태【喜怒哀樂未發】'와 서로 조응(照應)합니다. 운운(云云)계신공구(戒愼恐懼)는 미발(未發)할 때의 공부입니다. 고인(古人)이, '공부하는 곳이 없는 것이 바로 공부이다'라고 한 말이 바로 그 내용입니다. 공부의 요처(要處)는 바로 이 부분에 대해 힘쓰는 것에 있습니다.중용(中庸)에 의한 군자(君子)는 잘하는 것으로 성인에 이르는 자와 현격하게 다른 점이 있습니까.백성에게 입각하여 설명하였기 때문에 잘하는 것【能】이라고 하였고, 성인(聖人)에 입각하여 설명하였기 때문에 의한다【依】라고 하였습니다. 의한다는 것은 어김이 없는 것을 가리킵니다.'사(思)', '려(慮)', '염(念)', '회(懷)', '억(憶)'의 다섯 글자와 '지(志)', '의(意)', '정(情)'의 세 글자는 각각 조리(條理)가 있을 것인데 자세하지 않습니다. 운운(云云)'사(思)'는 생각하는 것이고, '려(慮)'는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것이고, '염(念)'은 좋아하여 그리워하는 것이고, '회(懷)'는 상상하여 느끼는 뜻이고, '억(憶)'은 계속해서 그리워하는 뜻입니다. '지(志)'는 마음이 가는 바이고, '의(意)'는 계교(計較)하고 헤아리는 것이고, '정(情)'은 마음이 갑자기 나아가는【發出】 것입니다. '사(思)'는 넓고 '려(慮)'는 길며, '염(念)'은 가깝고 '회(懷)'는 멀며, '회(懷)'는 부드럽지만 '지(志)'는 강하고, '정(情)'은 빠르지만 '의(意)'는 느립니다. 故人一幅書。與新春俱至。不覺心目開醒。從審侍省餞迓百福。尤庸願聞。義林一番得年。一番添衰。而無聞夕死是爲可恨耳。七月章云云。改正朔不改月數。此是古例也。其說詳具於伊訓惟元祀十有二月條下。考之如何。公孫弘對策不言洪水之所致。而只言大旱之爲桀之餘烈者。先儒以爲此孫弘用心陰詐處。孟子云當堯之時天下猶未平。蓋洪荒未判。水道未通之致。而弘也含糊說如此。此所以有陰詐之譏也。魂與倍行。禮固有之。魂魄離散。故死則皐復束帛。靈座靈床。無非所以安魂之意也。於何而有魂魄相離之嫌乎。戒愼不睹。恐懼不聞。與下文喜怒哀樂未發。相照應云云。戒愼恐懼。是未發時功夫。古人所謂無功夫處。是功夫。是也。功夫要處。正在於此勉之。依乎中庸之君子。與能之之聖者。有懸殊否。就民上說故曰能。就聖人上說故曰依。依是無違之謂。思慮念懷憶五字。志意情三字。各有條理而未詳云云。思是商量底。慮是戒懼底。念是嗜慕底。懷是想感之意。憶是戀注之義。志是心之所之。意是計較揣量處。情是心之猝然發出處。思廣而慮長。念近而懷遠。憶柔而志剛。情速而意緩。 도를……되었으니 《논어》 〈이인(里仁)〉에서,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라는 공자(孔子)의 말에서 나온 것이다. 정삭만 …… 않았다 《서경(書經)》 이훈(伊訓) 첫머리에 나오는 채침(蔡沉)의 주석에 그와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요 임금의 …… 평정되지 않았다 《맹자》 〈등문공 상〉에 나오는 말로, "요 임금의 시대에 세상이 아직 평정되지가 않았는데, 홍수가 무질서하게 흘러 온 세상에 넘쳐 흘렀다. 풀과 나무가 무성하고 짐승들이 번식하였으며 오곡이 자라지 않고 짐승들이 사람들을 핍박하였다. 길짐승 발자국과 새 발자국이 나라 안에 가득하였다.【當堯之時, 天下猶未平, 洪水橫流, 氾濫於天下. 草木暢茂, 禽獸繁殖, 五穀不登, 禽獸偪人. 獸蹄鳥跡之道, 交於中國.】"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세상에 아직 질서가 잡히지 않고 문명이 발달하지 않은 야만적인 상태를 가리킨다. 여기에서는 서양 오랑캐들 때문에 다시 그러한 상태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고복(皐復) 사람이 죽은 뒤 지붕 위에 올라가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부르는 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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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규의 자설 曺元圭字說 원규(元圭)여! 그대는 덕을 옥에 비유함을 아는가? 〈학기(學記)〉에 이르기를, "옥도 다듬지 않으면 그릇을 이루지 못한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비록 아름다운 자질이 있다 하더라도 학문을 하지 않고서는 그 자질을 이룰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위시(衛詩)〉63)에 이르기를, "잘라 놓은 듯하고, 다듬은 듯하며, 쪼아 놓은 듯하고, 간 듯하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학문으로 스스로를 닦고, 이미 정밀해졌거든 더욱더 정밀한 경지를 추구함을 말한 것이다. 〈소아(小雅)〉에 이르기를, "다른 산의 돌로도 옥을 다듬을 수 있다네."라고 하였으니, 이는 마음을 움직여 일으키고 성정을 참아서 의로운 행실을 갈고 닦음을 말한 것이다. 〈대아(大雅)〉에 이르기를, "잘 다듬은 문장이요, 금옥 같은 바탕이네."라고 하였으니, 이는 도덕이 충실하여 빛나게 나타남을 말한 것이다. 《논어》에 이르기를, "팔아야지, 팔아야지. 나는 제값을 기다리고 있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출처와 거취를 반드시 그 도로써 함을 말한 것이다.이 몇 가지 말을 살펴보건대, 옥을 덕에 비유할 뿐만 아니라, 덕에 나아가는 방법도 또한 알 수 있으니, 진실로 여기에 종사하여 보배가 됨을 잃지 않을 수 있다면 머물러 있는 경우에는 산악(山嶽)을 빛나게 할 수 있을 것이고, 나아갈 경우에는 교묘(郊廟)64)에서 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그대가 원규를 표덕으로 삼은 이유가 아니겠는가. 힘쓰고 힘써야 할 것이다. 元圭乎。君知比德於玉乎。學記曰。玉不琢不成器。此言雖有美質。而不學無以成其材。衛詩曰。如切如磋。如琢如磨。此言學問自修。己精而益求其精也。小雅曰。他山之石。可以攻玉。此言動心忍性而砥礪行義也。大雅曰。追琢其章。金玉其相。此言道德充實而光輝宣著也。論語曰。沽之沽之。我則待賈。此言出處去就。必以其道也。觀是數說。不惟比之於德。而造德之方。亦可知矣。苟能從事於此。而無失其爲寶。則止可以輝映山嶽。進可以特達郊廟。此非君表德以元圭者耶。勉之勉之。 위시(衛詩) 위(衛) 나라의 시, 즉 《시경(詩經)》 〈위풍(衛風)〉을 말한다. 교묘(郊廟) 고대 제왕들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장소인 교궁(郊宮)과 선조를 제사 지내는 종묘(宗廟)를 합하여 이르는 말인데, 여기서는 조정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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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사열에게 써서 주다 書贈魏士悅 공자가 말하기를, "자제들은 집에 들어가서는 효도하고 밖에 나와서는 공손하며, 행실을 삼가고 말을 미덥게 하며,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되 어진 이를 가까이 해야 하니, 이것을 행하고 여력이 있으면 글을 배워야 한다."54)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기를, "집안일이 번다하면 학문을 하는데 방해가 되니, 이는 본디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힘써 공부하는 실제의 바탕이 되니, 매사에 도리를 간파하여 쉽게 지나쳐버리지 말고 다시 그 사이에서 평소의 병통을 간파하여 통렬하게 잘라 제거한다면 학문을 하는 방도로 무엇이 이보다 더하겠는가. 만약 벗어나려는 마음이 일어나고, 배척해 버리려는 생각이 생기면 이치와 일이 도리어 둘로 나뉘게 될 것이니, 책을 읽더라도 또한 사용할 곳이 없게 될 것이다."55)라고 하였다.이는 일상생활에서 자제의 직분에 제일가는 말이기에 나는 젊어서부터 이 말을 매우 아끼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또한 하루도 실제로 여기에 힘을 쓴 적이 없어 머리가 희도록 성취함이 없는 데 이르고서야 마침내 인생의 끝없는 회한을 품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 위 사문(魏斯文) 사열(士悅)이 바야흐로 독로(篤老 70세 이상의 노인) 아래에서 집안일을 주관하면서 책을 읽어 어느 한 쪽도 폐할 수 없는 상황에 있다는 말을 듣고 부족하나마 공자와 주자의 두 문단의 말을 외어 알려 준다. 사열은 시험 삼아 이것을 착실하게 체험하고 감당하여 오래오래 쌓아서 하루아침에 성대하게 효과를 보게 된다면 번거롭더라도 보잘것없는 적막한 물가로 소식을 전해주어 평생토록 성취하지 못한 이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주기 바란다. 孔子曰。弟子入則孝。出則弟。謹而信。沈愛衆而親仁。行有餘力則以學文。朱子曰。家務叢委。妨於學問。此固無可奈何。然只此便是用功實地。每事看得道理。不令容易放過。更於其間。看得平日病痛。痛加剪除。爲學之道。何以加此。若起一脫去之心。生一排遣之念。則理事却成兩截。讀書亦無用處矣。此是說爲人子弟日用職分第一語也。余自少也。未嘗不酷愛此語。而亦未有一日實用力於此。以至白首無成。竟抱人生無窮之恨。今聞魏斯文士悅。方在篤老下。而幹蠱讀書。有不可偏廢。聊誦孔朱語二段以告之。願士悅試於此着實體當。久久積累。至於一朝而有沛然見效。則煩爲寄聲於區區寂寞之濱。以慰此平生未就之意也。 자제들은……한다 《논어》 〈학이(學而)〉에 나오는 말이다. 집안일이……것이다 주희(朱熹)가 60세 때 진공석(陳孔碩)에게 답한 편지에 나오는 말이다. 《朱子大全 卷49 答陳膚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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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중【봉환】에게 답함 答文翊中【鳳煥】 편지에서 하신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생각하기에 이 회합(會合)을 마련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강학(講學)을 위한 것이고 한편으로는 예를 익히기 위한 것입니다. 회원(會員)들의 마음이 모두가 성의에서 나올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 뜻이 참으로 선(善)하고 그 거조(擧措)가 참으로 좋습니다. 마음이 정성스럽지 못하면 더욱 정성을 다하도록 권면하고 행동에 실효(實效)가 없으면 더욱 그 효과를 독려하여 바로잡고 경계하며 벗끼리 서로 연마하고 바로잡아 주어 거리낌 없이 멋대로 행동하는 데 이르지 않게 하면 됩니다. 고인(古人)이 이르기를, "명예를 좋아한다는 혐의를 피하면 선을 행할 길이 없다."9)라고 하였습니다. 어찌 명예를 좋아한다는 혐의 때문에 마땅히 해야 할 일까지 아울러 그만두겠습니까. 아우가 생각하기에도 예를 익히는 일은 의절이 매우 광대하여 갖가지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우선은 중지하였습니다. 강규(講規)는 학자들의 일상적인 일이기 때문에 여러 형에게 고하여 수일 동안 강규를 하려고 합니다. 지금 만약 강규에 관한 일까지 아울러 그만둔다면 한바탕 질펀하게 먹고 마시는 회합이 되지 않겠습니까. 만약 형의 말씀대로 10년에 한 번 행하고 5년에 한 번 행한다면 형세상 반드시 날이 갈수록 해이해지고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자취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한서(漢瑞) 등 여러 벗과 충분히 상의하여 좋은 쪽으로 결론을 내기 바랍니다. 중양절(重陽節)을 맞아 술잔에 국화를 띄우는 일은 실로 듣기를 바라던 일입니다. 다만 이 몸이 그때에는 어느 곳에 있는 사람일지를 모를 뿐입니다. 示喩謹悉。以愚思之。此會之設。一則講業也。一則習禮也。會員之心。雖不能皆出於誠。而其意則固善。其擧則固好。心有不誠。則益勉其誠。行無實效。則益責其效。規警切磨。俾不至於漫浪之爲可也。古人曰避好名之嫌。則無爲善之路。夫豈以好名之嫌。而竝廢其所當爲者哉。弟意亦以爲習禮一事。其儀浩大。有難種種。故姑爲停止。至於講規。則此是學者日用平常事。故告于僉兄擬爲數日之計矣。今若竝與講規一事而廢之。則其不爲一場酒食流連之會耶。若依兄敎。十年一行。五年一行。則其勢必日涉頹弛。不過幾年。蕩然無有。願與漢瑞諸友爛商歸好也。重陽泛菊。實所願聞。但未知此身其時作何處人耳。 명예를……없다 송(宋)나라 때 범순인(范純仁)이 한 말이다. 범순인이 일찍이 간신 장돈(章惇)의 비위에 거슬려 영주(永州)로 폄출되었는데, 그 당시 눈병을 앓아 완전히 실명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그는 폄출 명령을 받고 기꺼운 표정으로 길에 올랐는데, 어떤 이가 명성을 가까이하는 짓이라고 하자, 이를 듣고 탄식하며 말하기를 "칠십의 나이에 두 눈이 모두 멀었으니, 만 리 길을 떠나는 것이 어찌 원하는 것이겠는가. 다만 임금을 사랑하는 구구한 나의 마음이 다하지 않아서일 따름이다. 만약 명성을 좋아한다는 혐의를 피하고자 한다면 선을 행할 길이 없을 것이다.【七十之年, 兩目俱喪, 萬里之行, 豈其欲哉? 但區區之愛君, 有懐不盡. 若避好名之嫌, 則無爲善之路矣.】"라고 하였다. 《宋史 卷314 范純仁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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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아에게 부치다 4수 寄復兒【四首】 만물은 오히려 한몸인데 萬物猶同體하물며 친한 이에게 융숭한 사랑을 받음에랴 矧於親愛隆묵자는 머리부터 갈아서 발꿈치에 이르는데293) 墨生磨頂踵이것을 중도에 지나친 것은 아니라 하네 用此非過中친아버지와 숙부는 親父與叔父간발의 차이도 없다네 其間不以髮숙부를 배반함은 아버지를 배반함과 같으니 貳叔猶貳父아버지를 배반한다면 다시 무슨 말을 하랴 貳父更何說불손함은 악덕이니 不遜是惡德절로 사치하고 난폭함이 생기네 乃自奢豪生이를 만약 반우294)할 수 있다면 此若反隅得공경함은 검소함으로 이루어지리 恭敬由儉成너의 나이 불혹295)에 가까우니 爾年近不惑한평생 가운데 절반의 나이이네 中半一平生옛날 버릇을 고치지 않는다면 舊習如不改서글프게 끝내 성취함이 없으리라 可痛竟無成 萬物猶同體, 矧於親愛隆?墨生磨頂踵, 用此非過中.親父與叔父, 其間不以髮.貳叔猶貳父, 貳父更何說?不遜是惡德, 乃自奢豪生.此若反隅得, 恭敬由儉成.爾年近不惑, 中半一平生.舊習如不改, 可痛竟無成. 묵자(墨子)는……이르는데 묵자는 춘추 시대 노(魯)나라 사람인 묵적(墨翟)은 모든 사람을 평등히 사랑해야 한다는 겸애설(兼愛說)을 주장하였다. 그러자 맹자는 이를 극도로 비고아서 "자기의 정수리부터 갈아서 발 끝에 이르더라도 천하를 이롭게 하는 일이라면 한다."하였다. 《孟子 盡心上》 반우(反隅) 한 가지를 일러 주면 그와 유사한 것은 미루어 안다는 뜻으로, 《논어》〈술이(述而)〉에 "한 모퉁이를 들어 일러 주었는데 세 모퉁이를 반증하여 알지 못하면 더 이상 말해 주지 않는다.〔擧一隅, 不以三隅反, 則不復也.〕"라고 하였다. 불혹(不惑) 나이 마흔 살을 말한다. 《논어》 〈위정(爲政)〉의 공자 말씀에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자립하였고, 마흔 살에 사리(事理)에 의혹(疑惑)하지 않았고, 쉰 살에 천명을 알았고, 예순 살에 귀로 들으면 그대로 이해되었고, 일흔 살에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도 법도에 넘지 않았다.[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라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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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안을 그리워하며 懷汝安 네가 집을 떠난 지 반년이나 되니 自汝離家半歲長내 마음은 서글프지 않은 날이 없었네 我心無日不悲傷전주283)에선 궁핍한 생활284)로 몸이 야위고 沛城桂玉身生瘦오산 골짜기에선 무더위로 땀방울이 떨어졌네 鰲峽蒸炎汗滴漿같이 병들어 급한 형편을 풀어주지 못해 同病未能紓方急가난이 싫어 혹 떳떳함을 잃을까 걱정했었네 厭貧恐或失其常어느 때나 휘장 맑게 하여 서실로 돌아갈까 何時淸帳歸書屋《시경》〈소완〉285)을 즐겨 강론하네 好講毛詩小宛章 自汝離家半歲長, 我心無日不悲傷.沛城桂玉身生瘦, 鰲峽蒸炎汗滴漿.同病未能紓方急, 厭貧恐或失其常.何時淸帳歸書屋? 好講《毛詩 小宛》章. 전주(全州) 원문의 '패성(沛城)'은 풍패(豐沛)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전주를 말한다. 풍패는 한(漢)나라 고조(高祖)의 고향인 패(沛) 땅 풍읍(豐邑)을 가리키는 말로, 흔히 제왕의 고향을 말한다. 조선에서는 흔히 함경도 함흥(咸興)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으나, 왕족인 이씨(李氏)의 본향이라 하여 전주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였다. 궁핍한 생활 원문의 '계옥(桂玉)'은 계수나무 땔나무와 옥으로 지은 밥이라는 말로, 물자가 부족하여 생활하기 곤란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전국 시대 소진(蘇秦)이 초(楚)나라 왕에게 "초나라의 밥은 옥보다도 비싸고 땔감은 계수나무보다도 비싸다. 지금 내가 옥으로 지은 밥을 먹고 계수나무로 불을 때고 있으니, 이 또한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楚國之食貴于玉, 薪貴于桂. 今臣食玉炊桂, 不亦難乎?〕"라고 불만을 토로한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戰國策 楚策3》 시경(詩經) 소완(小宛) 《시경》 〈소아(小雅)〉의 편명으로, 세상의 난리를 만난 뒤에 몸가짐을 공손히 하여 날로 덕을 닦으며, 항상 두려워하고 조심하여 화를 면하기를 경계하는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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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안에게 부치다 寄汝安 사람들은 분수에 편안함이 좋다고 하지만 人言安分好일에 임해서는 말과 같지 않다네 臨事不如言낭당286)에 이르게 된 뒤에야 及到郞當後분수가 편안할 수 있음을 깊이 안다네 深知分可安백 번 참으며 가법을 보호해도 百忍保家法옛날에는 미진하다고 여겼네 昔謂未盡焉참는 것을 오히려 지금은 볼 수 없으니 忍猶今未見비로소 옛사람이 어렵게 여김을 알겠네 始識古人難을 집에 바둑 두는 사람은 어두웠으나 乙家當局暗태수가 곁에서 볼 땐 분명했네287) 太守傍觀淸얻기 어렵고 구하기 쉬운 이치는 難得易求理정녕 천명을 따르면 밝아지리라 定從天命明마음 알아주는 천륜의 친속은 知心天屬親예로부터 흔히 볼 수 없었네 從古不多覿쉬운 듯하나 도리어 어려우니 似易還復難궁구해도 얻지 못함을 늘 탄식하네 長嘆莫究得내가 들으니 필부의 뜻은 我聞匹夫志분육288)도 빼앗을 수 없다 하네 賁育莫能奪궁귀289) 때문에 바뀌었다면 如爲窮鬼移그 뜻을 말해 무엇하겠는가 其志安足說옳고 그름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니 無是非非人원래 잠시도 버리는 것이 아니라네 元非暫棄者회우290)가 변고도 많은 날에 晦尤多故日육윤291)을 버렸다는 말 듣지 못했네 陸尹未聞舍큰 죄를 지으면 서로 버릴 수 있으나 大故可相棄놓아준다면 악역292)이라 말하리라 釋之謂惡逆이는 영원히 막아 끊을 일은 아니니 非玆永阻絶너무 각박한 것이 아니겠는가 無乃太爲刻 人言安分好, 臨事不如言.及到郞當後, 深知分可安.百忍保家法, 昔謂未盡焉.忍猶今未見, 始識古人難.乙家當局暗, 太守傍觀淸.難得易求理, 定從天命明.知心天屬親, 從古不多覿.似易還復難, 長嘆莫究得.我聞匹夫志, 賁育莫能奪.如爲窮鬼移, 其志安足說?無是非非人, 元非暫棄者.晦、尤多故日, 陸、尹未聞舍.大故可相棄, 釋之謂惡逆.非玆永阻絶, 無乃太爲刻. 낭당(郞當) 죄인을 묶는 쇠사슬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자기 논리에 갇혀 옴짝달싹 못 한 채 빠져나오지 못하는 자승자박의 상태를 비유하는 말로 쓰였다. '낭당(鋃鐺)'이라고도 한다. 을(乙)……분명했네 옛 속어에, "곁에서 바둑 두는 것을 구경하는 사람은 세심하고, 직접 바둑을 두는 사람은 판단이 헷갈리게 된다.〔傍觀者審, 當局者迷.〕"라는 말이 있다. 분육(賁育) 전국(戰國) 시대 제(齊)나라의 용사인 맹분(孟賁)과 주(周)나라의 역사(力士)인 하육(夏育)의 병칭이다. 맹분은 맨손으로 쇠뿔을 뽑았고, 하육은 천균(千鈞)의 무게를 들어 올렸다고 한다. 한(漢)나라의 충신 급암(汲黯)의 절의(節義)를 칭송하면서 "스스로 분육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라고 하더라도 그의 뜻을 뺏을 수 없을 것이다.[雖自謂賁育, 弗能奪也.]"라고 했던 고사가 전한다. 《漢書 汲黯傳》 궁귀(窮鬼) 사람을 곤궁하게 하는 귀신이라는 뜻이다. 당(唐)나라 한유(韓愈)가 송궁문(送窮文)에서 지궁(智窮)ㆍ학궁(學窮)ㆍ문궁(文窮)ㆍ명궁(命窮)ㆍ교궁(交窮)의 다섯 궁귀(窮鬼)를 내쫓으려다가 포기하고 그들을 상좌(上座)에 앉혔다는 말이 있다. 《古文眞寶 後集 送窮文》 회우(晦尤) 회암(晦菴) 주희(朱熹)와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을 합하여 말한 것이다. 육윤(陸尹) 육상산(陸象山, 1139~1192)과 윤증(尹拯, 1629~1714)을 합하여 말한 것이다. 육상산은 남송의 유학자 육구연(陸九淵)이다. 호는 존재(存齋) 또는 상산이고 시호는 문안(文安)이다. 어려서부터 재능이 뛰어나 관직에 올랐지만 곧 물러나 귀계(貴溪)의 상산에 강당을 짓고 후학 양성에 전념했다. 주자(朱子)와 대립하여 전체를 양분하는 학문적 세력을 형성했지만, 사상적 계보로는 모두 정호(程顥)와 정이(程頤)의 학문을 계승했다. 저서에 어록과 서간, 문집을 수록한 《상산선생전집》이 있다. 윤증은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자인(子仁), 호는 명재(明齋)ㆍ유봉(酉峯),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윤증(尹拯)이 부친 윤선거(尹宣擧)의 묘갈명을 스승 송시열에게 부탁하였는데, 송시열이 윤선거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아 묘갈명을 소홀하게 지은 일로 인하여 스승과의 사이가 벌어져서 종국에는 배사(背師)하였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로 인하여 서인(西人)이 송시열을 두둔하는 노론과 윤증을 두둔하는 소론으로 분열되어 싸우게 되었다. 악역(惡逆) 부모 또는 조부모 등을 구타하거나 죽인 죄로, 《대명률(大明律)》에 정한 열 가지 큰 죄 중 네 번째에 해당하는 죄이다. 열 가지 큰 죄는 모반(謀反)ㆍ모대역(謀大逆)ㆍ모반(謀叛)ㆍ악역(惡逆)ㆍ부도(不道)ㆍ대불경(大不敬)ㆍ불효(不孝)ㆍ불목(不睦)ㆍ불의(不義)ㆍ내란(內亂)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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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실의 자에 대한 설 朴元實字說 정(鼎)이라는 그릇은, 귀[耳]는 양의(兩儀 음양(陰陽))를 본뜨고 발[足]은 삼덕(三德)132)을 본떴으며 몸체는 오행(五行)을 두루 갖추고 담긴 물건은 구주(九州)에 응하고 바탕은 금옥(金玉)의 자질을 갖추었으며 의리는 화덕(火德)과 풍덕(風德)을 나타낸다. 성인(聖人)이 만들고 종자(宗子)가 주관하니, 이것은 그릇 가운데 귀중한 것이다. 그러나 안에 채우고 있는 것이 조강(糟糠 지게미나 쌀겨), 소려(蔬糲 궂은쌀로 지은 밥) 같이 추잡하고 열악한 물건이라면 저구(苴屨 풀로 엮은 신발)에 장보(章甫)를 갖추고 토우(土偶 흙으로 빚은 인형)에 화려한 예복(禮服)을 입히는 것과 같지 않겠는가.모름지기 명자(明粢)와 향기(香萁)133)로 밥을 짓고 양[柔毛]과 돼지[剛鬣]로 음식을 마련하고 다섯 가지 훈채(葷菜)와 여덟 가지의 조리법으로 맛을 조절한 다음에야 《주역(周易)》에 나오는 "정(鼎)에 음식이 담겨있다."134)는 뜻에 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법상(法象)을 갖춘 지극히 귀한 기물(器物)에 이렇게 진귀하고 지극히 아름다운 음식을 담으면 장차 천신 지기(天神地祇)에게 바치고 종묘에 제사를 지내 상제(上帝)와 선왕(先王)을 흠향하며, 흠향하여 드신 뒤의 은택이 천하에 미치기에 충분하다. 이것이 《주역》에서 "정(鼎)에 음식이 담겨있다."라는 말 다음에 "가는 곳을 삼가야 한다."라는 말이 있는 까닭이다.아, 사람의 몸은 정(鼎)이라는 기물이며 도덕과 재업(才業)은 그 내용물이며, 군주의 신임을 얻고 백성들에게 은택을 입히는 것은 가는 곳이다. 박군(朴君)은 그것을 아는가? 박군 정현(朴君鼎鉉)이 원실(元實)을 자(字)로 삼았으니 그 뜻을 대체로 여기에서 취하였지만 나아가는 곳을 삼가는 뜻에 대해서는 미치지 못하였다. 그래서 삼가 이 내용을 적어 보충한다. 힘쓰거라! 鼎之爲器也。耳象兩儀。足象三德。體周五行。物應九州。質具金玉。義著火風。聖人制之。宗子主之。此器之貴重者也。然其實於中者。若有糟糠蔬糲鹿雜劣惡之物。則其不類於章甫之苴屨。華袞之土偶乎。須以明粢香萁。供其炊爨。柔毛剛鬣。具其烹飪。五葷八珍。調其旨否。然後可以副羲經鼎有實之義也。以此法象至貴之器。具此珍重至美之饍。則將以薦之郊社。奠之宗廟。以享上帝先王。而其餕餘之澤。足以及於天下矣。此羲經所以鼎有實之下。有愼所之之語也。嗚呼。人之身。其鼎器也。道德才業。有其實也。得君澤民。其所之也。朴君知之乎。朴君鼎鉉表德以元實。其意蓋取諸此。而於愼所之之義有不及。故謹書此以足之。勉旃勉旃。 삼덕(三德) 정직(正直), 강극(剛克), 유극(柔克)을 이른다. 《서경》 〈홍범(洪範)〉에 "삼덕은 첫 번째는 정직함이요, 두 번째는 강으로 다스림이요, 세 번째는 유로 다스림이다."라고 하였는데, 채침(蔡沈)의 주(註)에 "강극(剛克)과 유극(柔克)은 위엄을 보이고 복을 주며, 주고 빼앗으며, 억제하고 드날리며, 올리고 물리치는 쓰임이다."라고 하였다. 명자(明粢)와 향기(香萁) 명자(明粢)는 종묘(宗廟)의 제사에 바치는 깨끗한 기장이고, 향기(香萁)는 제사에 쓰이는 기장이다. 《禮記 曲禮 下》 《周禮 春官 大祝》 정(鼎)에 음식이 담겨있다 《주역》 정괘(鼎卦) 구이(九二)의 효사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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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경의 자에 대한 설 鄭元卿字說 원(元)은 모든 선(善) 가운데 으뜸이다.124) 하늘에 있어서는 큰 시작의 뜻[義]이고 사람에게 있어서는 마음을 온전히 하는 덕이다. 이것은 모든 변화의 중심이고 만물의 시초이며 무극(無極)의 은미함에 근원을 두고 천지 사이를 가득 채우고 마음의 은밀한 곳에 쌓여서 사물의 밖에 드러난다. 공자(孔子)가 이른 천지의 큰 덕125)이고 맹자(孟子)가 이른 하늘의 높은 작위이며 사람의 편안한 집126)이다. 책을 읽고 경적(經籍)을 연찬(硏鑽)하는 것은 이 이치를 분명히 하기 위함이고, 놓친 마음을 수습하고 마음을 일깨우는 것은 이 마음을 보존하기 위함이다. 이치가 분명하면 취사(取捨)가 어긋나지 않고 마음이 보존되면 운용(運用)이 어지럽지 않다. 오랜 시일에 걸쳐 익숙해지고 중간에 끊이는 일이 없다면 하늘이 부여한 큰 덕과 높은 지위가 나에게 다시 온전할 수 있다.정군 현춘(鄭君鉉春) 원경(元卿)은 애산옹(艾山翁 정재규(鄭載圭))의 맏아들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초례(醮禮)를 치르고 이름을 지을 때 '춘(春)' 자로 이름을 정하고 '원(元)' 자로 자(字)를 지은 것은 커다란 의리(義理)와 커다란 부담을 자신의 임무로 책임 지우고자 함이었다. 무궁한 애정과 면려의 뜻이 참으로 이와 같았다. 내가 비록 불초(不肖)하더라도 또한 그의 아버지와 벗인 사람이다. 연연(戀戀)하는 정이 아들을 보는 것과 같은 입장에서 유독 그 뜻을 밝혀주어 만에 하나라도 도움을 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원경은 밤낮으로 경계(警戒)하여 명명(命名)한 이 뜻을 저버리지 말라. 元者善之長也。在天爲大始之義在人爲全心之德。此是萬化之機軸。品彙之權輿。原乎無極之微。而塞乎天地之間。蘊乎方寸之密。而著乎事物之表。孔子所謂天地之大德。孟子所謂天之尊爵。人之安宅。讀書窮經。所以明此理也。收放喚惺。所以存此心也。理明而取舍不差。心存而運用不亂。久久積習。無容間斷。則天之所以賦畀者。大德尊爵。可以復全於我矣。鄭君鉉春元卿。艾山翁主器也。竊念其設醮而肇錫也。名之以春。字之以元。使大義理大擔負。責之爲己任。其無窮愛勉之意。固應如此。余雖無似。亦其父友之一也。戀戀視猶之地。獨不爲之發明其義以爲萬一之助乎。惟元卿夙夜惕厲。毋負此命名之義焉。 원(元)은……으뜸이다 《주역(周易)》 〈건괘 문언(乾卦文言)〉에 나오는 말이다. 천지의 대덕(大德) 《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천지의 큰 덕을 생이라 하고, 성인의 큰 보배를 지위라 한다."라고 하였다. 하늘의……편안한 집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인은 하늘의 높은 작위이고 사람의 편안한 집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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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암에 있던 날 여중이 찾아와 함께 얘기하다 2수 臺巖日, 汝重來訪共話【二首】 산에 깃든 손님 걸상이 먼지에 묻힌 지 오래인데 棲山客榻久埋塵친한 벗이 멀리서 나루를 건너오니 반가워라 却喜親朋遠涉津온갖 생각이 무엇인들 몸 밖의 물건 아니겠나 萬想孰非身外物백 년 인생에 뜻 맞는 사람을 얻기가 어렵네 百年難得意中人남국에 한 해가 저무니 함께 늙음을 재촉하고 歲闌南國同催老중천386)에서 양기가 움직이면 또 봄을 보리라 陽動重泉又見春무엇보다 서로 진보하는 것이 급한 일이니 最是相長爲急務회포가 있으면 곧장 자주 만나야만 하리라 有懷卽可盍簪頻분분한 세상길은 풍진 속에 어둑하고 紛紛世路暗風塵일렁이는 근심은 언덕 나루에 아득하네 漾漾憂情杳岸津쟁기 들었으나 어찌 밭가는 자와 같으랴 耒耟寧同偶耕者의관 갖춰도 독서인이 되기는 어렵다네 衣冠難作讀書人돈이 없어도 강가의 달을 살 수 있지만 乏錢猶買江頭月달력 없으면 어찌 산골의 봄을 알겠는가 無曆何知峽裏春속마음 얘기 못다 하고 그대가 또 떠나니 未了話心君又去초산 동쪽의 운수387)가 자주 눈에 들어오네 楚東雲樹入眸頻 棲山客榻久埋塵, 却喜親朋遠涉津.萬想孰非身外物? 百年難得意中人.歲闌南國同催老, 陽動重泉又見春.最是相長爲急務, 有懷卽可盍簪頻.紛紛世路暗風塵, 漾漾憂情杳岸津.耒耟寧同偶耕者, 衣冠難作讀書人.乏錢猶買江頭月, 無曆何知峽裏春?未了話心君又去, 楚東雲樹入眸頻. 중천(重泉) 땅 속의 깊은 곳을 이르는 말이다. 운수(雲樹) 벗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뜻한다. 두보(杜甫)의 〈춘일억이백(春日憶李白)〉에 "위수 북쪽엔 봄 하늘의 나무요, 강 동쪽엔 해 저문 구름이로다. 어느 때나 한 동이 술을 두고서 우리 함께 글을 자세히 논해 볼까?〔渭北春天樹, 江東日暮雲. 何時一樽酒, 重與細論文?〕"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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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 그믐날에 유감이 있어 6수 除夜有恨【六首】 젊었을 때 시서를 읽어 뜻을 세움이 높아 少讀詩書立志高힘써 성현을 기약하며 노고를 사양치 않았네 勉期賢聖不辭勞무딘 자질로 쇠 녹이기 어렵다는 걸 누가 알랴 孰知頑質難融鐵작은 사욕을 칼로 끊어내지 못해 더욱 탄식하네 更歎纖私未斷刀슬픈 마음에 평소 허물과 후회만 쌓여가고 心悼平生尤悔積오묘한 도에 미혹 당해도 시종일관 조리있네 見迷妙道始終條올해 또 헛되이 세월이 지나가니 今年又是虛過矣쉰세 살의 나이가 내일 아침이로세 五十三齡在翌朝의로운 가르침으로 당년에 높이 출세했으니 義敎當年出世高두터운 은혜는 구로에 있을 뿐만 아니네 厚恩不但在劬勞지금까지 기대를 짊어져 옥처럼 만들었는데341) 迨玆負望成如玉지난날 부모상에 애통함은 칼로 베는 듯했네 念昔丁憂痛割刀행장은 겨우 이루어졌으나 정본이 더디고 實狀纔成遲定本무덤342)에 안장하니 막막하여 조리가 없었네 佳城永厝漠無條올해도 또 헛되이 세월이 지나가니 今年又是虛過矣밤새도록 잠 못 들어 앉아서 아침을 기다리네 竟夜難眠坐待朝생업을 패망시켰으니 죄가 높다고 말하지만 敗殘産業罪云高부친 조부가 집터 잡은 것도 이미 수고로웠네 父祖基廬亦旣勞모욕 당함은 더러운 오물을 뒤집어쓴 것과 같고 見侮羞如蒙穢物상심하고 애통함은 예리한 칼로 자른 듯했네 傷心痛若刺銛刀새로 도모해 어찌 이전의 기량을 완전케 하겠는가마는 圖新那得完前器뿌리 북돋아주면 끝내 가지가 멀리 뻗음을 보리라 培本終看達遠條세상은 어지럽고 도가 궁해졌을 뿐이니 世亂道窮而已矣거의 깜깜한 밤에 맑은 아침을 기다리는 것과 같네 殆同黑夜望淸朝백년토록 우러러 볼 높은 구산343)이여 百年仰止臼山高모함을 밝게 배척하느라 노고를 꺼리지 않았네 明斥陰誣不憚勞근본을 어지럽혔다고 어찌 서책을 불태우랴 亂本那將書付火손수 쓴 원고를 목판에 새기지 못해 유감이네 手稿恨未梓刋刀일찍이 경서를 해설하니 근본과 말단을 알겠고 曾經說去知源委많은 변론을 편찬하니 줄기와 가지를 보겠네 衆辨編來見幹條또 이렇게 올해도 헛되이 세월을 보냈으나 又是今年虛度矣이런 일이 없었다면 분명 맑은 조정이 되었으리 有無此事了淸朝사람의 집에서 높은 집안의 명성을 얻으려고 人家欲得家聲高자손을 착하게 가르치며344) 사랑으로 위로했네 式穀兒孫用愛勞예교의 남은 풍도는 쓸모없는 것345) 되었고 禮敎遺風歸土苴이익에 끌리는 말속은 사소한 것346)도 다투네 利拏末俗競錐刀만약 초학자가 그 뿌리를 배양하지 않는다면 如無初學培其本어찌 앞으로 그 가지가 뻗어가기를 바라겠는가 那望前頭達厥條이런 일은 지금과 같이 할 따름이니 此事如今而已矣한갓 삼대 성왕의 조정을 그리워할 뿐이네 徒思三代聖王朝큰 내는 어디에 있으며 또 산은 높은가 大川何處又山高중국의 장대한 경관은 노고 잊게 할 만하네 壯觀中州可忘勞신령함이 모인 노추347)는 성현의 집이요 靈萃魯鄒賢聖宅푸른 놀이 낀 연조348)는 협객들의 칼이네 霞靑燕趙俠流刀안목이 넓어지면 글은 기세가 창대해지고 藉寬眼孔文昌氣인정에 두루 통하면 이치에 조리가 있네 傍達人情理有條이제 그만이로다 때가 다르고 길은 험난하니 時異路難今已矣공연히 늘어난 흰 귀밑머리만 내일아침에 보겠네 空添雪鬢見明朝 少讀詩書立志高, 勉期賢聖不辭勞.孰知頑質難融鐵? 更歎纖私未斷刀.心悼平生尤悔積, 見迷妙道始終條.今年又是虛過矣, 五十三齡在翌朝.義敎當年出世高, 厚恩不但在劬勞.迨玆負望成如玉, 念昔丁憂痛割刀.實狀纔成遲定本, 佳城永厝漠無條.今年又是虛過矣, 竟夜難眠坐待朝.敗殘産業罪云高, 父祖基廬亦旣勞.見侮羞如蒙穢物, 傷心痛若刺銛刀.圖新那得完前器? 培本終看達遠條.世亂道窮而已矣, 殆同黑夜望淸朝.百年仰止臼山高, 明斥陰誣不憚勞.亂本那將書付火? 手稿恨未梓刋刀.曾經說去知源委, 衆辨編來見幹條.又是今年虛度矣, 有無此事了淸朝.人家欲得家聲高, 式穀兒孫用愛勞.禮敎遺風歸土苴, 利拏末俗競錐刀.如無初學培其本, 那望前頭達厥條?此事如今而已矣, 徒思三代聖王朝.大川何處又山高? 壯觀中州可忘勞.靈萃魯、鄒賢聖宅, 霞靑燕、趙俠流刀.藉寬眼孔文昌氣, 傍達人情理有條.時異路難今已矣, 空添雪鬢見明朝. 옥(玉)처럼 만들었고 온갖 역경을 겪음으로 인하여 훌륭한 인격을 이루게 됨을 비유하는 말이다.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 "가난하고 천함과 근심 걱정은 너를 옥처럼 갈고 닦아서 훌륭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貧賤憂戚, 庸玉汝於成也.〕"라는 말이 나온다. 무덤 원문의 '가성(佳城)'은 무덤을 뜻한다. 한(漢)나라 등공(滕公)이 말을 타고 가다가 동도문(東都門) 밖에 이르자 말이 울면서 앞으로 나아가지 않은 채 발로 오랫동안 땅을 굴렀다. 사졸(士卒)을 시켜 땅을 파 보니 깊이 석 자쯤 들어간 곳에 석곽(石槨)이 있고, 거기에 "가성(佳城)이 울울(鬱鬱)하니, 삼천 년 만에야 해를 보도다. 아! 등공이여, 이 실(室)에 거처하리라." 하는 글이 새겨져 있었는데, 등공이 죽은 뒤에 이곳에 묻혔다고 한다. 《西京雜記 卷4》 구산(臼山)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별호이다. 착하게 가르치며 원문의 '식곡(式穀)'은 자식을 착한 데로 인도한다는 뜻이다. 《시경》 〈소완(小宛)〉에 "언덕 가운데의 콩을 서민들이 거두어 가는 것처럼, 명령의 새끼를 과라가 업어 데리고 가서 키우니, 그대도 아들을 잘 가르쳐서, 좋은 방향으로 닮도록 하라.[中原有菽, 庶民采之, 螟蛉有子, 蜾蠃負之, 敎誨爾子, 式穀似之.]"라고 하였다. 쓸모없는 것 원문의 '토저(土苴)'는 오물과 풀을 말하는 것으로, 모두 쓸모없는 사물을 비유하는 말이다. 《장자(莊子)》 〈양왕(讓王)〉에 "참된 도로 몸을 다스리고, 그 나머지로 국가를 다스리고, 그 찌꺼기로 천하를 다스린다.[道之眞以治身, 其緒餘以爲國家, 其土苴以治天下.]"라는 말이 나온다. 사소한 것 원문의 '추도(錐刀)'는 작은 칼의 뾰족한 끝으로, 장부(帳簿)를 기재할 때 사용하는 도필(刀筆)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자잘한 이익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노추(魯鄒) 추로(鄒魯)로도 많이 쓰이는데 노(魯)나라는 공자(孔子)의 고국이고, 추읍(鄒邑)은 맹자(孟子)의 고향이므로 대개 공자와 맹자를 뜻한다. 연조(燕趙) 전국 시대의 연(燕)나라와 조(趙)나라로, 예로부터 비분강개하는 호걸들이 많이 나온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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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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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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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필암서원360)에서 청음361)과 석주362)의 시에 차운하다 2수 筆巖書院次淸陰、石洲韻【二首】 정조는 밝은 군주의 큰 선생인데 正廟明君大老師자운과 함께 만났으니 어찌 그리 기이한가 子雲幷遇一何奇선생은 당시에 참으로 의리가 정밀했으니 先生當日眞精義저를 대장부라 말하기 어려우나 도는 알만하네 難語夫夫可道知도가 동방에 온 지 천 년에 선생이 태어나 道東千載降先生더욱 호남의 색채가 선명해졌네 尤是湖南色彩明출처363)는 이미 못 자를듯한 엄정한 의리였고 出處已嚴斬釘義문장은 다시 쇠를 던지는 소리364)가 있었네 文章更有擲金聲우뚝한 필암서원을 높은 산처럼 우러르는데 筆巖院屹高山仰맥동365)의 빈 터도 명승지로 전해졌네 麥洞墟傳勝地名오늘 와서 우러러 공경할 뿐만 아니라 非但今來瞻敬已간절하게 옛사람의 마음을 배우려 하네 區區欲學古人情 正廟明君大老師, 子雲幷遇一何奇?先生當日眞精義, 難語夫夫可道知.道東千載降先生, 尤是湖南色彩明.出處己嚴斬釘義, 文章更有擲金聲.筆巖院屹高山仰, 麥洞墟傳勝地名.非但今來瞻敬已, 區區欲學古人情. 필암서원(筆巖書院) 전라남도 장성군에 있는 서원으로, 1590년(선조23)에 김인후를 기리기 위해 세웠다. 정유재란 때 소실된 것을 1624년에 중건하였으며, 1662(현종3)에 사액을 받았다.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의 호이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숙도(叔度), 다른 호는 석실산인(石室山人)이다. 병자호란 때 끝까지 주전론(主戰論)을 펴다가 인조가 항복하자 안동으로 낙향하였으며, 1640년(인조18) 청나라가 명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요구한 출병에 반대하다가 청나라에 압송되어 6년 만에 풀려났다. 대표적인 척화신(斥和臣)으로, 관직이 좌의정에 이르렀다. 저서에 《청음집(淸陰集)》이 있다. 석주(石洲) 권필(權韠, 1569~1612)의 호이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여장(汝章)이다. 정철의 문인으로, 제술관(製述官) 등을 역임하였다. 임숙영(任叔英)이 책문(策文)에서 유희분(柳希奮) 등을 공격하다가 광해군의 뜻에 거슬려 삭과(削科)된 사실을 듣고, 분을 참지 못하여 〈궁류시(宮柳詩)〉를 지어서 풍자하였다가 광해군의 노여움을 사서 해남(海南)으로 귀양 가다가 죽었다. 저서에 《석주집》과 한문소설 〈주생전(周生傳)〉이 있다. 출처(出處) 행장(行藏)와 같은 말로, 도를 펼 만하면 나아가 벼슬하고 그렇지 않으면 초야에 은둔하는 것이다. 《논어》 〈술이(述而)〉의 "쓰이게 되면 도를 행하고 버려지게 되면 은둔한다.[用之則行, 舍之則藏.]"라는 공자의 말에서 유래하였다. 쇠를 던지는 소리 원문의 '척금성(擲金聲)'은 척지금성(擲地金聲)의 줄인 말로, 매우 뛰어난 문장을 비유하는 말이다. 진(晉)나라의 문장가인 손작(孫綽)이 〈천태산부(天台山賦)〉를 지은 뒤에 친구인 범영기(范榮期)에게 "그대는 시험 삼아 이 부(賦)를 땅에 던져 보게나, 의당 금석 소리가 날 것일세.[卿試擲地, 當作金石聲.]"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晉書 卷56 孫綽列傳》 맥동(麥洞) 전남 장성군(長城郡) 황룡면(黃龍面)에 있는 마을로, 김인후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거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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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형【치운】에게 답함 答鄭士亨【治運】 '큰 허물을 없앨 수 있으련만【無大過】'89)이라는 말과 '허물을 거듭 범하지 않았네【不貳過】'90)라는 말이 있는데 하나는 성인(聖人)이 스스로 겸손하게 여긴 말씀이고, 하나는 안자(顔子)께서 나아간 공이니 어찌 나란히 하여 같게 여길 수 있겠습니까?'밥은 정(精)한 것을 싫어하지 않으셨다【食不厭精】'91)라는 것은 입을 즐겁게 하고 배를 채우려는 욕망을 극도로 추구한 것이 아닙니다. 호학(狐狢)의 갗옷92)은 가볍고 따뜻한 아름다움을 극도로 추구한 것이 아닙니다. 술은 한량하지 않고 마신다【惟酒無量】93)는 것은 술을 탐하도록 좋아하여 매우 심하게 취함을 이르는 것이 아니니 우(禹) 임금이 거친 음식을 먹고, 나쁜 의복과 나쁜 음식을 먹고 입은 것과 같은 종류와 어찌 서로 다르겠습니까?'마을에 인후한 풍속이 있는 것이 아름답다.【里仁爲美】'94)라고 한 것은 군자(君子)가 거처하는 영원한 법칙입니다. '공자께서 구이에 살려고 하셨다.【欲居九夷】'95)는 것은 성인(聖人)이 세상을 근심한 통달한 권도(權道)입니다. 앞의 몇 가지 조목의 설에서 묻기를 좋아하는 뜻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억지로 밀거나 이끌고자 하는 병통이 없습니다. 이것은 간절하게 묻고 가까운 데서 생각한다【切問近思】는 것에 있어서 다소 부족함이 없지는 않을 듯합니다. 대저 성실한 마음으로 학문을 하면 자연스럽게 의문점이 생기게 되니, 굳이 지엽적인 구두(句讀)에 견강부회하여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에 대해 나란히 견주는 일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無大過。不貳過。一則聖人謙己之言。一則顔子所造之功。豈可比而同之耶。食不厭精。非極口腹之欲。狐狢之裘。非極輕煖之美。惟酒無量。非耽嗜沈醉之謂。則與禹菲飮惡衣惡旨之類。有何相違背耶。里仁爲美。君子居身之常法。欲居九夷。聖人憂世之達權。數條說。可見好問之意。然或不無强排牽引之病。此於切問近思。恐不無少遜矣。大抵誠心爲學。則自然有疑。不必傳會於句讀之末。而爲此比竝對較於別無義味之地耳。如何如何。 큰 허물을 없앨 수 있으련만【無大過】 《논어(論語)》 〈술이(述而)〉에 나오는 말로, "하늘이 나에게 몇 년 더 수명을 허락하여 끝내 역을 배울 수 있게만 해 주신다면 큰 허물을 없앨 수 있으련만.【假我數年, 卒以學易, 可以無大過矣.】"라고 하였다. 허물을 거듭 범하지 않았네【不貳過】 《논어(論語)》 〈옹야(雍也)〉에 나오는 말로, "안회라는 제자가 학문을 좋아하여 노여움을 옮기지 않고 허물을 거듭 범하지 않더니, 불행히도 단명하여 죽었습니다. 지금은 없으니 학문을 좋아하는 이가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有顔回者好學, 不遷怒, 不貳過, 不幸短命死矣. 今也則亡, 未聞好學者也.】"라고 하였다. 밥은 정(精)한 것을 싫어하지 않으셨다【食不厭精】 《논어》 〈향당(鄕黨)〉에 나오는 말로, "밥은 정(正)한 것을 싫어하지 않고, 회(膾)는 가늘게 썬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食不厭精, 膾不厭細.】"라고 하였다. 호학(狐狢)의 갗옷 여우와 오소리의 가죽으로 만든 고급 옷을 가리킨다. 술은 한량하지 않고 마신다【惟酒無量】 《논어(論語)》 〈향당(鄕黨)〉에 나오는 말로, "술은 한량하지 않고 마시되, 뜻을 어지럽히는 지경에는 이르지 않게 하였다.【惟酒無量, 不及亂.】"라고 하였다. 마을에 인후한 풍속이 있는 것이 아름답다.【里仁爲美】 《논어》 〈이인(里仁)〉에 나오는 말로, 인후한 풍속을 지닌 마을을 골라 살겠다는 것이다. "마을에 인후한 풍속이 있는 것이 아름다우니, 인후한 마을을 가려 살지 않는다면 어찌 지혜롭다 하리오.【里仁爲美, 擇不處仁, 焉得知.】"라고 하였다. 공자께서 구이에 살려고 하셨다.【欲居九夷】 《논어》 〈자한(子罕)〉에 나오는 말로, "공자께서 구이에 살려고 하시니, 혹자가 말하기를, "그곳은 누추하니, 어떻게 하시렵니까?"하였다. 공자가 대답하기를, "군자가 거처한다면 무슨 누추함이 있겠는가."【子欲居九夷, 或曰, 陋, 如之何? 子曰, 君子居之, 何陋之有.】"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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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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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장【황】에게 답함 答徐聖章【璜】 학문의 도는 아는 것【知】와 행하는 것【行】 두 가지일 뿐입니다. 그러나 알지 못하면 그것을 행할 수 없으므로, 학문은 이치를 깊이 연구하는 것【窮理】을 우선으로 삼습니다. 이치를 깊이 연구하는 방법도 역시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니, 모든 천지의 만물과 고금의 사변 등, 내가 깊이 연구해서 지극하게 해야 할 것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비근한 것을 먼저 깊이 연구한 이후에 원대한 것에 이르고, 쉬운 것을 먼저 깊이 연구한 이후에 어려운 것에 이르는 것이 학문의 절도입니다. 청소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것, 앉고 눕고 가고 걷는 것, 신심(身心)과 성정(性情), 인륜과 일상생활의 사이에서부터 먼저 하나하나 음미하고 찾아내서,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어서 그만둘 수 없는 것과 그렇게 된 이유가 있는 것이어서 바꿀 수 없는 것을 보고, 오늘 한 건을 깊이 연구하고 내일 한 건을 깊이 연구하며 나날이 이같이 해서 혹시라도 멈추지 않는다면, 서로 이어서 유추하게 되고 미묘한 것도 환하지 않음이 없어져 저절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 독서 역시 이치를 깊이 연구하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만약 《대학(大學)》을 읽으면, 먼저 성인이 대학을 지은 뜻이 무엇이고, 또 대인(大人)의 학문이 무엇이며, 명덕(明德)이 무엇이고, 신민(新民)이 무엇인지를 구해야 합니다. 한 글자마다 한 글자의 뜻을 구하고 한 구절마다 한 구절의 뜻을 구해서, 모두 아주 분명하게 해서 털끝만큼이라도 남은 의심이 없기를 구해야 하는데, 이것을 궁리(窮理)라고 합니다. 만약 마음에서 증험하고 몸에서 체득해서, 성현의 마음을 자기의 마음으로 삼고 성현의 행동을 자기의 행동으로 삼는다면, 이것은 앎과 행동이 서로 융합되었을 때 체득하는 것에서 말하였으니, 오로지 궁리(窮理)에만 귀속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경(敬)과 존심(存心)은 두 항목의 일이 아닙니다. 경은 곧 보존하는 것이고 보존하는 것은 곧 이 경을 보존하는 것이니, 지극히 정미한 것에 처해서, 절대 조장(助長)하는 데 마음을 쏟아서 병폐가 생기게 해서는 안 됩니다. 정자(程子)는 "앎을 지극히 하고서도 경(敬)을 보존하지 못하는 경우는 있지 않다.【未有致知而不在敬】"라고 하였으니, 경이 아니면 마음을 보존할 수 없고 마음을 보존하지 않으면 이치를 궁리할 수 없습니다. 마음을 보존하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해야 하는 것이니, 이치를 궁구하는 것【窮理】의 선후로써 논할 수 없습니다. 또 존양(存養)109)을 존심(存心)이라고 하면 괜찮지만, 성찰(省察)을 궁리(窮理)라고 하면 안 됩니다. 성찰(省察)은 방미(防微)110)와 지기(知幾)111)의 측면에서 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에서 '단정하게 앉아 몸가짐을 추스른다.【端坐斂形】'라고 한 것은, 생각하지 않고 말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 것은 좋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마음 씀씀이가 너무 지나쳐, 혹 천태산(天台山)에 은거한 사마승정(司馬承禎)을 좌치(坐馳)112)라고 비난한 일을 겪게 될까 두려울 뿐입니다.113) 따라서 단지 하루 12시간에 항상 상제(上帝)를 마주하고 큰 손님을 만나듯이 해서, 절대로 조금의 게으름도 피우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님을 받들고 다른 사람을 대접하거나 만물의 변화에 순응하고 일을 처리하는 사이에 이르러서는 스스로 기만하거나 스스로 만족스럽게 여기는 일이 없이, 진심을 쌓고 성실함을 길러서 천리(天理)와 분수(分數)로 하여금 날마다 기르고 길러 주(主)가 되게 하고 내재할 수 있게 한 이후에야 여기에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보낸 편지에서, 덕(德)을 이룬 이후의 일로 여긴 것은, 적절한 듯합니다. 그러나 어찌 덕을 이룬 이후의 일이라는 것에 핑계를 대고 자신에게서 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다만 경(敬)은 주일(主一)의 뜻이니, 초학자로서 오래도록 마음대로 한 상태에서 갑자기 주일하기에는 어려울 것입니다. 따라서 먼저 사물의 드러난 자취에서 일정한 규율을 먼저 정해서, 이 일을 마주할 때는 다른 일이 있는 줄 모르고 이 책을 읽을 때에는 다른 책인 있는 줄 모르며 이 이치를 깊이 연구할 때는 다른 이치가 있는 줄 모르게 해서, 오래도록 그치지 않으면 점차로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성인 문하의 가장 중요한 도리이니 힘쓰고 힘쓰기를 바랍니다.보낸 편지에서, 모두 스스로 내면에서 제재할 수 있게 된 이후에 자신의 사욕을 알아서 금지한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앞뒤를 바꿔 말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천하의 일은, 그것이 천리가 되고 그것이 인욕이 되는 줄 안 이후에 극기복례의 일을 착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먼저 제재한 이후에 그것이 사욕인 줄 알겠습니까? 또 수응(酬應)하는 곳에는 매번 후회와 의혹이 많은 것은, 이 일이 오기 전에 생각이 어지러워서 초래한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진실로 옳습니다. 그러나 생각은 억지로 굽히게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지식이 점차로 열리고 실천이 점차 확고해지면 자연히 매우 타당한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함양(涵養)의 묘법은, 굳게 지키고 오랫동안 쌓아서 정신으로 융회하고 마음으로 이해해야하는 것이니, 말로써 지도할만한 것이 아닙니다. 일이 없을 때 생각이 삼대처럼 가득하면 가장 가라앉히기 어려우니, 일상생활에서 일을 하고 손님을 하는 가운데 성실함을 기르고 진심을 쌓아서 차례대로 힘써 나갈 수 있는 것만 못합니다.정심장(正心章)에 대해 말한 것은, 참으로 옳습니다. 그러므로 성인께서 '착한 행동을 하라【遷善】'라는 것을 설명할 때 먼저 '허물을 고쳐라.【改過】'라고 하였고 '성실함을 보존하라【存誠】'라는 것을 설명할 때 먼저 '사악함을 막아라.【閑邪】'라고 하였으며 '예를 회복하라【復禮】'라고 설명할 때 먼저 '자신의 사욕을 이겨라.【克己】'라고 하였습니다.《맹자》 「고자 상」에서 '잡으면 보존된다.【操則存】'라고 말한 것에 대해서, 나는 인심의 변화는 헤아릴 수 없이 오묘하다고 여긴 적이 있으나, 음양의 변화가 어떻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성인(聖人)과 평범한 사람의 마음이 이와 같다고 말한 것입니다. 어찌 단지 성인의 마음만을 가지고 말한 것이겠습니까?이치를 깊이 연구하는 방법【窮理之方】은 진실로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떨 때는 그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따라 깊이 연구하기도 하고, 어떨 때에는 특별한 하나의 일을 일으켜서 깊이 연구하기도 하니, 어찌 거리낄 것이 있겠습니까? 다만 그 선후와 완급의 차례는 없어서는 안 됩니다.정자(程子)가 "그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말한 것이라고 하면 적절하지 않다. 다만 망령되이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면 적절하다."라고 하였으니, 보낸 편지에서 이른바 '다만 사악한 마음을 막아라.【但防邪意】'라고 한 것도 또한 이 뜻일 것입니다.독서할 때 틈틈이 휴양하는 것은, 단지 다른 생각을 그만두게 할 뿐만 아니라 근본을 배양하고 근원을 깨끗하게 하니, 진실로 마땅히 이와같이 해야 합니다. 夫學問之道。是知行二端而已。然不知則無以行之。故學以窮理爲先也。窮理亦非一端。凡天地萬物。古今事變。無非吾窮格處。然先近而及遠。先易而及難。此其節度也。自灑掃應對。坐臥行步。身心性情。人倫日用之間。先須一一玩索。見其所當然而不容已。與其所以然而不可易。今日格一件。明日格一件。日日如此。無客間斷則推類相次。無微不徹。而自當脫然矣。讀書亦窮理之一端。如讀大學。則先求聖人所以作大學之意是如何。且大人之學是如何。明德是如何。新民是如何。一字求一字之義。一句求一句之義。皆要了了分明。無毫髮餘疑。此之謂窮理也。若其驗之於心。體之於身以聖賢之心爲己心。以聖賢之行爲己行。此是知行交際體認上說。非可以專屬於窮理也。敬與存心。非兩項事。敬便存存便存。此處極精微。最不可着意助長以生病敗也。程子曰。未有致知而不在敬者。非敬無以存心。非存心無以窮理。存心是徹頭徹尾底。不可以窮理先後論也。且以存養謂存心則可。以省察謂窮理則不可。省察是防微知幾底說也。端坐斂形不思不語之云。非不好矣而但恐用心太過。或致天台山人坐馳之譏也。但一日十二時。常常如對上帝。如見大賓。母或有一毫怠慢。至於奉親接人。應物處事之間。無有自欺自斂之端。積眞養誠。使天理分數。日以長長。足以爲主爲內而後。可以得力於此矣。來喩以爲成德以後之事者。得矣。然豈可諉諸成德而不之自求乎。但敬是主一之義也。初學其在放心之久。猝難主一。先於事物粗迹上。先定劃一規矩應此事時。不知有他事。讀此書時。不知有他書。窮此理時。不知有他理。久久不已。且將漸次得力矣。此是聖門第一義。勉之勉之。示喩以爲皆得自內制之然後。知其私欲而禁之。此是倒說。夫天下事。知其爲天理。知其爲人欲而後。可下克復之功。豈有先制之而後。知其私欲者哉。又曰酬應處。每多悔惑。是事來前思慮紛紜之致也。此說固然。然思慮强伏不得。惟是知識漸開。踐履漸固。則自然見得妥帖矣。涵養之妙。持守積累。自當神會心得。非言說所可指授。無事時。思慮如麻。最難按伏。不如就日用應接上。養誠積眞。次第得力去。正心章云云。固然。故聖人說遷善。先言改過。說存誠先言閑邪。說復禮。先言克己。操則存云云。愚嘗以爲人心變化不測之妙。未嘗言陰陽變化云云矣。凡言聖人凡人之心如此。豈但指聖人之心而言者耶。窮理之方。固非一端。或隨其思慮之所起而窮之。或別起一事而窮之。何妨也。但其先後緩急之序。則不可無也。程子曰。謂之無思慮則不可。但無妄思可矣。來喩所謂但防邪意者。亦此義耶。讀書時。間間休養。非特爲要息外念。培本淸源。固當如此。大抵激勵奮發。勿使少有怠緩而後可。不然畵脂鏤氷。 존양(存養) 존심양성(存心養性)의 준말로, 본심(本心)을 보존하고 본성(本性)을 기른다는 뜻이다. 《맹자》 「진심 상」에 "본심을 보존하고 본성(本性)을 배양하는 것이, 하늘을 섬기는 것이다.【存其心, 養其性, 所以事天也.】"라고 하였다. 방미(防微) 잘못이나 나쁜 일을 경미할 때 막는 것이다. 지기(知幾) 일의 기미를 알아채는 것이다. 좌치(坐馳)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지만 잡념이 끊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혹 …… 두렵습니다 사마승정(司馬承禎, 643~735)은 당나라 현종ㆍ예종 때의 도사(道士)로서, 자는 자미(紫微)이고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다. 천태산에 은거해, '물아(物我)를 모두 잊어 도와 일체가 된 정신세계를 추구한다는 내용의 《좌망론(坐忘論)》 등을 지었는데, 정자(程子)는 "이것이 바로 좌치(坐馳)이다."라고 비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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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채와유고》65) 서문 咬菜窩遺稿序 내가 젊었을 때에 무사재(無邪齋) 박(朴) 어른66)을 따라 공부를 하면서 교채와(咬菜窩) 선생의 경학(經學)과 행의(行義)가 우뚝하여 남쪽 지방에서 신망을 받은 지 오래되었다는 말을 들었었다. 그런데 나중에 선생이 편찬한 《심경(心經)》67)과 붉은 점으로 선별한 주해(註解)를 얻어 읽고 그 박식함과 정밀함이 사문(斯文)을 도울 수 있었음에 감탄하였다. 그 뒤로 또 중화(中和)와 비은(費隱) 등의 설(說)을 얻어 읽어 보니, 그 변석(辨析)과 발휘(發揮)가 공정하고 합당하여 당시 유가(儒家)의 주기(主氣)에 대한 비난을 배척할 수 있었고, 정자(程子)와 주자(朱子)의 당시 뜻과 진실로 부합하였다.일찍이 근세(近世) 이후로 정자와 주자의 강토(疆土)를 지켜 구물(舊物)을 잃지 않은 사람은 오직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와 벽계(蘗溪 이항로(李恒老)) 두 사람뿐이라고 하였으니, 선생의 언론과 견해가 나와 약속하지도 않았음에도 합치되는 것이 이와 같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아, 선생에 대한 말을 들은 것이 이르지 않다고 이를 수 없고, 선생을 안 것도 늦지 않다고 이를 수 없으니, 산두(山斗)68)를 추억함에 어찌 미칠 수 없는 한탄을 금할 수 있겠는가.선생의 손자 학69)이 머리가 하얗게 세도록 함께 늙어가면서 끊임없이 서로 따르며 친하게 지냈는데, 하루는 유고(遺稿)를 받들고 와서 외람되게도 현안(玄晏)70)을 부탁하였다. 내가 하찮은 식견으로 감히 그 부탁을 받들어 부응하지 못한다는 것을 본디 알고 있었지만, 삼가 전후로 내가 우러러 사모하는 마음이 더욱 지극한 이유를 서술하여 옛사람이 책심(責沈)한 뜻71)에 견주어본다. 余少從無邪齋朴丈遊。聞咬菜窩先生經學行義。偉然爲南服之望者久矣。最後得先生所撰心經及朱選註解。讀之歎其博洽精詳。足以羽翼斯文。最後又得中和費隱等說。讀之其辨析發揮。稱停的當。有以斥時儒主氣之非。而允合乎程朱當日之旨。嘗以爲近世以來。守程朱疆土而不失舊物者。惟蘆沙蘗溪兩先生而已。誰知先生言論見解。不約而合。有如是耶。嗚呼。聞先生不可謂不早。而知先生亦不可謂不晩矣。追想山斗。易勝靡逮之恨。先生孫壆。白首同衰。源源相從。一日奉遺稿。猥有玄晏之託。余以淺末。固知不敢承膺。而謹述前後鄙懷之所以慕仰愈至者。以擬古人責沈之意云爾。 교채와유고(咬菜窩遺稿) 조선 후기의 학자 민백우(閔百우(火+右), 1779∼1851)의 시ㆍ서(書)ㆍ제문ㆍ잡저 등을 수록한 시문집이다. 권두에 정의림(鄭義林)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증손 민영래(閔泳來)의 발문이 있다. 불분권 1책이고, 목활자본이다. 무사재(無邪齋) 박(朴) 어른 박영주(朴永柱, ?~?)로, 무사재는 그의 호이다. 정의림((鄭義林)이 어렸을 때 그에게서 사서를 배웠다고 한다. 심경(心經) 민백우가 《심경》에 대한 제가의 해설을 모은 《심경집해(心經集解)》를 말하는 것으로, 1888년에 민백우의 손자 민영래(閔泳來)에 의해 간행된 주석서이다. 권두에 기정진(奇正鎭)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안수록(安壽祿)ㆍ김문옥(金文鈺)의 발문이 있다. 4권 3책. 목판본이다. 산두(山斗) 태산북두(泰山北斗)의 준말로, 세상 사람들이 흠앙(欽仰)하는 훌륭한 사람을 비유한다. 《신당서(新唐書)》 권176 〈한유열전(韓愈列傳)〉에서 그에 대한 찬(贊)에 "한유가 작고한 뒤 그의 말이 크게 행해져, 학자들이 그를 태산북두처럼 우러러 받들었다.[自愈沒, 其言大行, 學者仰之如泰山北斗云.]"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학 한자 표기는 土+學이다. 현안(玄晏) 진(晉)나라 황보밀(皇甫謐)의 호(號)로, 당시 좌사(左思)가 10년 동안의 구상을 거쳐 〈삼도부(三都賦)〉를 짓고, 황보밀이 서문을 써서 이를 크게 칭찬하자 부자와 귀족들이 서로 다투어 베끼는 바람에 낙양의 종이 값이 일시에 폭등하였다는 고사로 인해 후대에 훌륭한 글의 서문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되었다.《晋書 卷92 文苑列傳 左思》 책심(責沈)한 뜻 당시의 현자(賢者)를 알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여겨 자책하는 것을 뜻한다. 송(宋)나라 때 학자인 진관(陳瓘)이 당시의 명현(名賢)이었던 정호(程顥)를 알아보지 못하고 범조우(范祖禹)에게 물은 것을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고서 춘추 시대 섭공(葉公) 심저량(沈諸梁)이 공자가 어떤 분임을 모르고 자로(子路)에게 묻자 자로가 대꾸하지 않았던 《논어(論語)》 〈술이(述而)〉의 고사에 의거하여 심저량을 책망하는 뜻으로 책심문(責沈文)을 지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書言故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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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남유고》 서문 芝南遺稿序 이 책은 고(故) 처사(處士) 지남공(池南公)의 유고(遺稿)이다.84) 공은 일찍부터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할 뜻을 품었으나 끝내 그럴 기회를 만나지 못하자 머리가 하얗게 세도록 경학을 궁구하여 의로운 행실이 드높았다. 공이 세상을 떠나고 10여 년 뒤에 맏아들 승우(承愚)85)가 유묵(遺墨)을 수습해 적은 분량의 책을 만들고서 아우 승일(承一)을 보내 욕되게도 나에게 현안(玄晏 서문)을 부탁하였다.아, 부모님이 직접 심고 가꾸어 손때가 묻어 있는 뽕나무와 가래나무조차도 감히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부모님이 사용하여 입 기운이 남아있는 그릇과 잔으로는 물도 마시지 않는데, 하물며 이 유고는 부친의 정신과 마음이 담겨있고, 생각과 가르침이 남아있는 것이니, 효성스럽고 자애로운 자손이 진귀한 보물처럼 보호하고 소장하는 마음이 어떠하겠는가. 어버이를 여의고 외롭게 지내면서 음성과 모습이 더욱 멀어진 날에 미칠 수 없는 부모에 대한 끝없는 슬픔을 위로하고, 마치 보이는 듯, 살아계시는 듯 느껴지는 정을 담을 수 있는 것으로 이보다 나은 것이 있지 않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옛사람이 사당에 어버이의 글을 소장하고, 제사에 어버이의 가르침을 진설했던 것이 이런 뜻이 아니었겠는가. 그러나 이 유고는 권질(卷帙)이 간략하여 번다하지 않고, 문체가 질박하여 화려하지 않지만, 그 속에 담겨 있는 말과 뜻은 진실한 마음에서 편편이 나오지 않은 것이 없다. 그래서 단지 한 집안의 자손들만이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는 바탕이 될 뿐만이 아니니, 돌아가서 사우(士友)들과 함께 해야 할 것이다. 此故處士芝南李公遺稿也。公夙抱經濟。終不見遇。而白首窮經。行義偉然。及其歿而後十餘年。胤子承愚。收拾遺墨。爲若干編。伻其弟承一。辱有玄晏之托。嗚呼。桑梓手澤之所經。而不敢慢焉。杯圈口澤之所存。而不能飮焉。況此精神心術之所寓。謨訓之所貽。而孝子慈孫寶護珍藏之心。爲何如耶。在風樹孤露。音容愈遠之日。所以慰靡逮網極之痛。而寓如見如在之情者。不可謂不在於此矣。古人之廟藏其書。祭設其訓。非此意耶。然是稿也。卷帙簡而不繁。文體質而不華。其立言命意。無非自赤際中片片出來。不但爲一家子孫寓慕之資而已。歸而與士友共之也。 이…… 유고(遺稿)이다 처사(處士) 지남공(池南公)은 이지호(李贄鎬, 1836~1892)로, 지남은 그의 호이다. 광주 이씨이고, 자는 동현(東賢)이며, 광산(光山)에서 태어났다. 유고(遺稿)는 《지남집(芝南集)》을 말한다. 서문은 정의림(鄭義林)이 썼고, 발문은 윤자현(尹滋鉉)과 정시림(鄭時林)이 썼다. 아들 승우(承愚)가 1967년에 간행하였다. 11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활자본이다.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 http : //gjsgcc.or.kr 검색일 : 2022. 3. 7.》 승우(承愚) 1855~1919. 화순 출신으로, 일신재(日新齋) 정의림(鄭義林)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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