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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포가 있어 육언362) 有懷【六言】 맑은 강에 백사장이 십리나 펼쳐져 있는데 淸江十里明沙가랑비 실바람 속에 삿갓 도롱이 차림으로 낚시하누나 細雨絲風笠簑비록 엄릉의 기절363)에는 부끄러워도 縱愧嚴陵氣節어찌 장수의 연파364)를 잊으리오 豈忘張叟煙波서늘한 바람 쐬는 언덕 위엔 버들이 늘어져 있고 納凉岸上垂柳쓰러져 누워 있는 물가에는 푸른 잔디가 가득하네 頹臥磯邊綠莎이 역시 인간세상의 몹시 유쾌한 일이건만 此亦人間快適회포를 풀지 못한 채 많은 세월만 흘렀구나 有懷未遂年多 淸江十里明沙, 細雨絲風笠簑.縱愧嚴陵氣節, 豈忘張叟煙波?納凉岸上垂柳, 頹臥磯邊綠莎.此亦人間快適, 有懷未遂年多. 육언(六言) 구마다 6자로 이루어진 고체시(古體詩)로, 서한(西漢)의 경학자(經學者) 곡영(谷永)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엄릉(嚴陵)의 기절(氣節) 엄릉은 엄자릉(嚴子陵)을 줄여 쓴 말로,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의 은사(隱士)인 엄광(嚴光)을 가리킨다. 엄광은 어렸을 때 광무제와 동문수학했던 인연으로 광무제가 즉위한 후 간의대부(諫議大夫)로 부름을 받았으나, 절개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응하지 않은 채 부춘산(富春山)에 은거하여 낚시질을 하면서 여생을 마쳤다. 《後漢書 卷113 嚴光列傳》 장수(張叟)의 연파(煙波) 장수는 당(唐)나라의 은자(隱者) 장지화(張志和)를 가리킨다. 연파는 안개가 낀 물결이라는 뜻으로, 세상을 피해 은거하는 강호(江湖)를 비유한다. 그는 잠시 벼슬살이를 하다가 물러나와 강호에 노닐며 연파조도(煙波釣徒)라 자호하고는 낚시로 소일을 하였는데, 그의 시 〈어가자(漁歌子)〉에 "푸른 부들 삿갓에 푸른 도롱이 걸쳤으니, 비낀 바람 가랑비에 돌아갈 필요 없네.[靑蒻笠綠蓑衣, 斜風細雨不須歸.]"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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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백 松柏 사방으로 에워싼 푸른 송백이 울창하니 四環松柏碧森森바람 불면 늘 웅장한 용 울음이 들리누나 風至常聞龍壯吟지금 세상도 나갈 만하다고 그 누가 말했던가 誰道今時猶可出이 땅이 더 깊숙한 곳이 아님을 외려 꺼린다오 飜嫌此地不加深삼천 가지의 예법359)은 모두 묵은 자취가 되고 三千禮法皆陳跡예닐곱 명의 관동360)은 예전 흥취가 그대로일세 六七冠童尙舊心산수의 고고한 가락361)이 나에게 있는 듯하니 山水高音如在我거문고를 간직만 하고 타지 않은들 어떠하리 何妨藏置勿彈琴 四環松柏碧森森, 風至常聞龍壯吟.誰道今時猶可出, 飜嫌此地不加深.三千禮法皆陳跡, 六七冠童尙舊心.山水高音如在我, 何妨藏置勿彈琴? 삼천 가지의 예법(禮法) 《중용장구》 제27장에 "예의는 삼백 가지요, 위의는 삼천 가지이다.[禮儀三百, 威儀三千.]"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예의는 경례(經禮) 즉 큰 예법을 말하고, 위의는 곡례(曲禮) 즉 작은 예법을 말한다. 예닐곱 명의 관동(冠童) 공자의 제자 증점(曾點)이 자신의 뜻을 말하기를 "늦은 봄날 봄옷이 이루어지거든 어른 대여섯 사람, 동자 예닐곱 사람과 함께 기수에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시를 읊으면서 돌아오겠다.[莫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先進》 산수(山水)의 고고한 가락 춘추 시대 백아(伯牙)가 타고 그의 벗 종자기(鍾子期)가 들었다는 거문고 곡조인 고산유수곡(高山流水曲)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 곡조를 아양곡(峨洋曲), 산수곡(山水曲)이라고도 한다. 백아가 거문고를 타면서 고산(高山)에 뜻을 두면 종자기는 "높디높기가 마치 태산과 같도다.[峨峨兮若泰山]"라고 하였고, 또 유수(流水)에 뜻을 두면 종자기는 "넓디넓기가 마치 강하와 같도다.[洋洋兮若江河]"라고 한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列子 湯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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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년(1591) 봄날에 우연히 쓰다 辛卯春日偶書 우리 선조 문정공437)께서는 惟我文貞祖육십팔 세에 돌아가셨는데 六旬有八沒평생토록 수립한 바가 平生所樹立탁월하게 출중하셨으니 卓然衆類出문장은 나라를 빛내고 文章華邦國정견은 선불을 배척하였네438) 正見斥禪佛아아 나 불초한 후손은 嗟余不肖孫선조의 수와 나이가 꼭 같은데 祖壽洽相埒수많은 세월을 살아왔음에도 喫得許多年학업은 완전히 지리멸렬하네 學業全蔑裂옛사람의 벗을 조문한 뇌사에 昔人誄友詞안연의 짧은 수명에 광휘가 있다 하였네439) 顔壽有光烈하나의 병이 지금 고황에 들어 一病今膏盲거의 산 넘어가는 해와 같다오 殆同下山日한 번 죽은 것과 마찬가지이니 等是一番死다행히도 금년에 죽을 수 있다면 幸得今年滅이 역시 선조 자취를 계승함이니 是亦繼先跡아마도 들을 만한 이야기 되리라 庶足聽聞說 惟我文貞祖, 六旬有八沒.平生所樹立, 卓然衆類出.文章華邦國, 正見斥禪佛.嗟余不肖孫, 祖壽洽相埒.喫得許多年, 學業全蔑裂.昔人誄友詞, 顔壽有光烈.一病今膏盲, 殆同下山日.等是一番死, 幸得今年滅.是亦繼先跡, 庶足聽聞說. 문정공(文貞公) 후창의 23대조 김구(金坵, 1211~1278)로, 자는 차산(次山), 초명은 백일(百鎰), 호는 지포(止浦), 시호는 문정이다. 고려의 명현으로, 문장과 도덕이 당대에 으뜸이었다. 정견(正見)은 선불(禪佛)을 배척하였네 고려 고종(高宗) 때 권신 최항(崔沆)이 김구(金坵)에게 《원각경(圓覺經)》의 발문(跋文)을 써 달라고 청하자, 김구는 바른 도리를 지켜 굽히지 않고 시(詩)를 지어 최항을 꾸짖으니, 최항이 이에 앙심을 품고 김구를 제주 통판(濟州通判)에 좌천시킨 일이 있었는데, 이 고사를 근거하여 이렇게 말한 것이다. 《正祖實錄 14年 2月 13日》 안연(顔淵)의……하였네 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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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누이442)를 애도하다 悼二姊 두 아우443)가 병술년에 모두 죽으니 二弟俱亡丙戌歲지금도 두 어깨를 벤 것처럼 아픈데 至今痛若割雙肩작년 겨울과 올 봄에 두 누이의 죽음이 昨冬今春二姊逝병술년처럼 몇 달 사이에 잇달아 있었네 連在數月如丙年전후로 만난 것이 모두 이와 같으니 前後所遭皆如此거듭되는 재앙은 내가 하늘에 죄를 지어서라오 荐禍以我獲戾天큰 누이는 일흔세 살 작은 누이는 일흔한 살로 長位七三次七一수명이 길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壽命非不得長延전란을 만나 생사가 갈리는 때인지라 時適兵火死生中허둥지둥 북망산에 갈장444)하고 말았네 草草渴葬北邙阡병중에 전혀 모르다가 뒤늦게 부음을 들으니 病不能知訃追聞나는 또 앓아누워 숨이 끊어질 듯하였네 我又臥病奄奄然상생445) 앞에서 곡하는 걸 무슨 수로 할 수 있으랴 象生一哭那由得태산을 넘고 대천을 건너는 것처럼 어렵도다 艱若泰山與大川이 몸은 본디 여섯 남매 중 장남으로 此身本以六同胞늙도록 모두 살아 있어 드문 인연이었는데 到老俱存亦稀緣그 누가 알았으랴 다섯 해가 바뀌는 동안 誰知五換星霜間봉래 바닷가에 한 아우446)만 남아 있을 줄을 只有一弟蓬海邊애도하는 나머지 외로운 이내 신세 서글퍼하니 悼逝之餘悲身孤베개 위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먼저 떨어지누나 枕上不覺淚自先 二弟俱亡丙戌歲, 至今痛若割雙肩.昨冬今春二姊逝, 連在數月如丙年.前後所遭皆如此, 荐禍以我獲戾天.長位七三次七一, 壽命非不得長延.時適兵火死生中, 草草渴葬北邙阡.病不能知訃追聞, 我又臥病奄奄然.象生一哭那由得? 艱若泰山與大川.此身本以六同胞, 到老俱存亦稀緣.誰知五換星霜間, 只有一弟蓬海邊?悼逝之餘悲身孤, 枕上不覺淚自先. 두 누이 후창에게는 손위 누이 둘이 있었는데, 큰 누이는 광산(光山) 김재봉(金在鳳)에게 출가하였고, 작은 누이는 고흥(高興) 유동기(柳東起)에게 출가하였다. 두 아우 후창은 장남으로 세 아우를 두었는데, 그중에 병술년(1946)에 죽은 첫째 아우 김봉술(金鳳述), 둘째 아우 김만술(金萬述)을 가리킨다. 갈장(渴葬) 장사를 서둘러 급히 치르는 것으로, 사람이 죽어서부터 장사 지내기까지 일정한 기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기간을 당겨 장사 지내는 것을 이른다. 상생(象生) 궤연(几筵)을 이르는 말로, 망자가 살아생전에 사용했던 기물들을 진열하여 살아있을 때를 그대로 본뜬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한 아우 후창의 셋째 아우인 김억술(金億述, 1899~1959)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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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과 이별하다 2수 別正錫【二首】 일 년 내내 한마음으로 서로 믿었으니 一心相信滿朞年평생에 우연한 일이 아니라 여겼다오 庶謂生平不偶緣너의 깊은 정을 사랑하기에 옥 같은 사람을 기대하였고 愛汝深情期玉穀나의 묘한 비결을 구하기에 천인의 이치를 강론하였지 求吾妙訣講人天예로부터 좋은 일에는 방해가 많았나니 從來好事多魔戱그 누가 사문을 회복하고 옛 현인을 배울까 誰復斯文學古賢천만뜻밖의 이별을 어찌 차마 말하리오 夢外別離那忍說일만 가지 시름이 오장육부를 휘감누나 萬端愁緖五臟纏뽕나무 활로 화살 쏘았던371) 해를 회상해보면 回憶桑弧射降年나쁜 인연이 바로 좋은 인연이라 하겠구나 惡因緣是好因緣오랑캐 나라라 해도 행해질 수 있으니372) 어찌 땅을 논하랴 可行蠻貊何論地몸과 마음을 잃지 않으면 또한 천리를 즐거워하는 것일세 不失身心亦樂天지혜는 곤란을 겪는 속에서 나오니 학문을 증진시키고 智出涉難加進學명성은 공업을 세우는 데서 떨쳐지니 현인을 바랄 수 있네 名揚建業庶希賢하나의 경을 가지고 상변을 통달할지니 惟將一敬通常變초탈하여 세상일에 얽매이지 말지어다 超脫無爲世累纏 一心相信滿朞年, 庶謂生平不偶緣.愛汝深情期玉穀, 求吾妙訣講人天.從來好事多魔戱, 誰復斯文學古賢?夢外別離那忍說? 萬端愁緖五臟纏.回憶桑弧5)射降年, 惡因緣是好因緣.可行蠻貊何論地? 不失身心亦樂天.智出涉難加進學, 名揚建業庶希賢.惟將一敬通常變, 超脫無爲世累纏. 뽕나무……쏘았던 원문의 상호(桑弧)는 저본에는 '상고(桑孤)'로 되어 있는데, 문맥을 살펴 고(孤)를 호(弧)로 수정하여 번역하였다. 《예기》 〈사의(射儀)〉에 "남자가 태어나면 뽕나무 활과 쑥대 화살 여섯 개로 천지와 사방을 쏘니, 천지와 사방은 남자가 일할 곳이기 때문이다.[男子生, 桑弧蓬矢六, 以射天地四方, 天地四方者, 男子之所有事也.]"라고 한 데서 온 말로, 남아가 태어나거나 득남한 것을 의미한다. 오랑캐……있으니 《논어》 〈위령공(衛靈公)〉에 "말이 충성스럽고 미더우며 행실이 돈독하고 공경스러우면 비록 오랑캐의 나라라 하더라도 행해질 수 있다.[言忠信, 行篤敬, 雖蠻貊之邦, 行矣.]"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弧:底本에는 "孤".문맥을 살펴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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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년373) 제야에 생각이 일다 己丑除夜有思 옛날 한 관상가가 내 수명은 오십칠 세에 그칠 거라 했는데 昔有觀相人謂余壽止五十七선군께서 이 말을 듣고 몹시 불쾌하게 여기셨네 先君聞之頗不悅또 한 담명가374)가 있어 又有談命人내가 사십칠 세에 죽을 거라고 하였는데 謂之四十七沒아우 억술375)이 돌아와 나에게 이 말을 고해주고 億弟歸告余그 종이를 가져다가 노여워하며 찢어버렸네 仍將其紙怒破裂또다시 한 어른이 있어 更有一長者집상할 때 나를 위해 명을 논하기를 爲我論命執喪日군의 수명은 오십사 세로 君壽五十四이 나이를 넘더라도 육십육 세에 그칠 것이니 過此止于六十六기한을 넘겨 누차 수명이 연장되더라도 過期延長亦累回육십육의 연수가 최대일 것이라 하였네 六六之數最其極올해가 바로 기한인 육십육 세가 되는데 今年正是六六期또 한 해의 제석인 오늘 저녁을 만났다오 又當今夕歲除夕병을 앓아 비록 거의 죽을 지경이지만 疾病雖濱死실낱같은 목숨이 아직 끊어지지 않았네 一縷尙不滅원래 천운은 본디 정해진 바가 있나니 元來天運自有定분분하게 떠드는 술사들을 끊어야 한다오 紛紛術士宜掃絶명의 길고 짧음은 연수에 있지 않음을 더욱 알겠으니 更識脩短不在年전술할 만한 것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펴볼 뿐이로세 只觀有無可傳述있다면 단명하여도 진실로 슬퍼할 것도 없고 有則短固不足悲없다면 장수하여도 또한 말할 것도 없다오 無則脩亦不足說스스로 생각건대 이내 몸에 이미 없으니 自念此身旣無得육십 넘고 칠십 바라보아도 즐거울 게 없네 過六望七非所樂비록 그러하나 상제가 하사한 걸 감히 잊지 못하니 雖然帝賜未敢忘부지런히 힘써 미쳐 연수가 아니라 그 덕으로 장수할 수 있기를 어찌 생각하지 않으랴 盍思孜孜勉而及庶致不以年脩以其德 昔有觀相人謂余壽止五十七, 先君聞之頗不悅.又有談命人, 謂之四十七沒.億弟歸告余, 仍將其紙怒破裂.更有一長者, 爲我論命執喪日.君壽五十四, 過此止于六十六.過期延長亦累回, 六六之數最其極.今年正是六六期, 又當今夕歲除夕.疾病雖濱死, 一縷尙不滅.元來天運自有定, 紛紛術士宜掃絶.更識脩短不在年, 只觀有無可傳述.有則短固不足悲, 無則脩亦不足說.自念此身旣無得, 過六望七非所樂.雖然帝賜未敢忘, 盍思孜孜勉而及庶致不以年脩以其德? 기축년 1949년으로, 후창의 나이가 66세이다. 담명가(談命家) 운명을 점치는 사람이다. 억술(億述) 후창의 셋째 아우인 김억술(金億述, 1899~1959)로, 자는 여안(汝安), 호는 연강(蓮岡) 또는 척재(拓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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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이기호가 적삼과 바지 한 벌을 주기에 시를 지어 주어 학업을 권면하다 李姪奇鎬進以衫袴一襲 贈詩勉其學業 면포는 어찌 그리 선명하며 吉貝一何鮮적삼과 바지는 어찌 그리 잘 맞는가 衫袴一何適알겠어라 너의 어머니께서 認是汝慈堂손수 베 짜고 옷 꿰맨 줄을 手自縫且織어찌 그리 애쓰기를 이처럼 하여 一何勤若是자식 스승의 옷을 지었단 말인가 爲其子師服옛사람은 자신의 옷을 두고 말하기를 古人謂其衣한 올 한 올이 어머니의 덕이라 하였네 絲絲母之德풀의 마음이 봄볕의 은혜를 갚기 어렵나니448) 草心難報春시를 지으면서 여러 차례 탄식하였다오 作詩三歎息더구나 이 옷은 스승에게 이바지한 것이니 矧此供師長자식 위한 정성이 더욱 지극하구나 爲子誠復極너는 장차 무엇으로 보답하려는가 汝將何以報마땅히 준칙이 있어야 할 것이로다 乃爲當凖則나는 남의 모범이 되지 못하니 我非人模範이 옷을 받고 몹시 부끄러웠다오 受之有愧色이문에선 회암이 나왔고 李門晦菴出호정에선 오봉을 얻었으니449) 胡庭五峰得네가 스승을 능가하는 제자가 된다면 汝能靑勝藍나도 똑같이 아름다운 명예를 얻으리라 我同文繡餙어찌 이내 바람에만 부응할 뿐이리오 豈惟副吾望비로소 자식의 직분을 다하는 것일세 方是盡子職 吉貝一何鮮? 衫袴一何適?認是汝慈堂, 手自縫且織.一何勤若是, 爲其子師服?古人謂其衣.絲絲母之德.草心難報春, 作詩三歎息.矧此供師長, 爲子誠復極.汝將何以報? 乃爲當凖則.我非人模範, 受之有愧色.李門晦菴出, 胡庭五峰得.汝能靑勝藍, 我同文繡餙.豈惟副吾望? 方是盡子職. 풀의……어렵나니 당나라 맹교(孟郊)의 〈유자음(遊子吟)〉에 "한 치 되는 풀의 마음을 가지고, 삼춘의 따뜻한 햇볕에 보답하기 어렵구나.[慈母手中線, 遊子身上衣. 難將寸草心, 報得三春暉.]"라고 한 데서 온 말로, 풀의 마음은 자식이 어머니를 사모하는 마음을, 삼춘의 햇볕은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을 비유한다. 이문(李門)에선……얻었으니 회암(晦菴)은 남송(南宋) 주희(朱熹)의 호이고, 이문은 주희의 스승인 연평(延平) 선생 이동(李侗)을 가리킨다. 오봉(五峰)은 북송(北宋)의 학자인 호굉(胡宏)의 호이고, 호정(胡庭)은 그의 아버지이자 스승인 호안국(胡安國)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제자는 스승을 능가하고, 자식은 아버지를 능가하는, 이른바 청출어람(靑出於藍)의 사례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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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한하다 痛恨 나의 아버지는 진실로 효자이고 我父固孝子나의 어머니도 현숙한 부인이니 我母亦賢媛살아서는 비록 보답을 받지 못했어도 生雖不食報죽어서는 하늘의 돌봄을 입어야 하는데 死當獲天眷어찌하여 기나긴 사십 년 세월 동안 胡然四十載길한 묏자리가 오래도록 안 나타나는가 吉阡久不現어찌 하늘이 돕지 않아서일 뿐이랴 豈直天不助불초한 이 몸이 정성이 없어서라오 不肖無誠力묘지가 귀하다고 말하지 말라 莫言佳城貴두 손까지도 모두 빈손이 되었네 幷與兩手赤옛날에 하자평447)이란 사람은 在昔何子平팔년 동안 장례를 치르지 못하였는데 八年葬不得슬피 울부짖으며 통곡하기를 그치지 않아 悲號哭不已언제나 상차 곁에 있는 듯이 하였네 常如在喪側추울 때에도 솜옷을 입지 않았고 寒不衣絮袍굶주려도 소금과 채소도 먹지 않았네 飢不鹽菜食자식이 능히 이처럼 할 수 있다면 有子能如此사람들이 어찌 감복하지 않으리오 人豈不感服이러한 까닭으로 회계 태수가 所以會稽守그를 위해 무덤을 마련해주었네 爲之營塜域사람이 이미 그날처럼 했다면 人旣如此日하늘도 응당 불쌍히 여겼으리라 天應亦矜惻너는 어찌 진즉 이 일을 본받지 않았는가 爾盍早鑑此부질없이 장탄식만 늘어놓고 있구나 徒然長太息지금은 병세가 이미 극심하니 今也病已極후회한들 끝내 무슨 소용 있으랴 噬臍竟何益 我父固孝子, 我母亦賢媛.生雖不食報, 死當獲天眷.胡然四十載, 吉阡久不現?豈直天不助? 不肖無誠力.莫言佳城貴, 幷與兩手赤.在昔何子平, 八年葬不得.悲號哭不已, 常如在喪側.寒不衣絮袍, 飢不鹽菜食.有子能如此, 人豈不感服?所以會稽守, 爲之營塜域.人旣如此日, 天應亦矜惻.爾盍早鑑此? 徒然長太息.今也病已極, 噬臍竟何益? 하자평(何子平) 남조(南朝) 송(宋)나라 사람으로 효성이 뛰어났다. 60세가 다 된 나이에 모친상을 당하여 기근과 전란으로 8년 동안 장례를 치르지 못하였는데, 그 사이에 처음 초상 때처럼 밤낮으로 울부짖으며, 더울 때는 시원한 곳을 피하고 겨울에도 솜옷을 입지 않았으며, 하루에 적은 쌀로 죽을 만들어 먹고 소금이나 채소도 밥상에 올리지 않았다. 당시 회계 태수 채흥종(蔡興宗)이 이 일을 듣고 불쌍히 여겨 하자평을 위해 무덤을 마련해 주었다고 한다. 《小學 善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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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헌 기환 을 애도하다 悼李愼軒【起煥】 부여 북쪽은 선비 많다고 이름났는데 扶北號多士차례로 모두 세상을 떠나고 있다오 次第皆凋零어찌하여 노나라의 영광전392)까지 云胡魯靈光지금 아울러 무너졌단 말인가 今焉幷頹傾절개를 지킴은 맑고도 신중하며 操執淸且愼타고난 자질은 소탈하고 정밀하였네 稟質簡而精서로 종유한 지 오십 년 되었으니 相從五十載참으로 예사로운 정분이 아니로세 不是尋常情중간에 스승을 보위했을 때 中間衛師日한마음으로 변론을 일삼았네 同心事辨明때때로 논의가 다르긴 했지만 有時論雖異혈기로 쟁론한 것은 아니었네 非出血氣爭요컨대 우리 사림들 가운데 要之吾林中우리 공과 같은 분을 어찌 찾기 쉬우리오 吾公豈易能집안에서의 행실은 진실로 독실하며 內行固淳篤효성스러운 마음은 선영에 있었다오 孝思在先塋한 석물도 빠뜨리지 않았으니 無一闕石儀노년에도 설경393)을 하였도다 衰齡爲舌耕아아 영영 떠나가신 날에도 嗟哉永逝日혹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렸네 或爲寒餓嬰부고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니 遺言勿通訃눈물이 절로 흐르게 하는구나 令人淚自橫그런 뒤에 마침내 공을 보니 然後乃見公한평생 옥처럼 깨끗이 사셨도다 玉潔一平生 扶北號多士, 次第皆凋零.云胡魯靈光, 今焉幷頹傾?操執淸且愼, 稟質簡而精.相從五十載, 不是尋常情.中間衛師日, 同心事辨明.有時論雖異, 非出血氣爭.要之吾林中, 吾公豈易能?內行固淳篤, 孝思在先塋.無一闕石儀, 衰齡爲舌耕.嗟哉永逝日, 或爲寒餓嬰.遺言勿通訃, 令人淚自橫.然後乃見公, 玉潔一平生. 영광전(靈光殿) 한(漢)나라 경제(景帝)의 아들 노 공왕(魯恭王)이 세운 궁전으로, 산동(山東) 곡부현(曲阜縣) 동쪽에 있었는데, 한나라 중기에 도적 떼에 의하여 수도 장안(長安)의 미앙궁(未央宮)과 건장궁(建章宮) 등은 다 불탔으나 영광전만은 그대로 보존되었으므로, 전하여 홀로 남은 원로(元老)나 석학(碩學)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여기서는 이기환을 비유하였다. 《文選 卷11 魯靈光殿賦》 설경(舌耕) 혀로 농사를 짓는다는 것으로, 학문을 가르쳐 주고 생활을 영위함을 이른다. 후한(後漢) 가규(賈逵)의 집에는 문도들이 멀리서 배우러 찾아왔는데, 그들에게 경문(經文)을 가르쳐 주자 그들이 바친 곡식이 창고에 그득하였으므로, 세인들이 이를 두고 설경(舌耕)이라 하였다. 《拾遺記 後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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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남파 양호 의 〈초당〉 시에 차운하다 次林南坡【讓鎬】草堂韻 하늘이 이 초당에 명산을 주었으니 天以名山錫此堂그 뒤로 부소산383)을 마주한 봉산384)이 우뚝하구나 背惟蓬岳面蘇岡옛 유적이 아득하니 당나라 먼지385)가 깨끗해지고 蒼茫古蹟唐塵淨신선 인연에 가까우니 한나라 단약386)이 향기롭네 庶幾仙緣漢藥香근역387)이 새로워지니 마침 부락을 이루고 槿域維新適成落파옹이 비록 늙었으나 술 마시며 시 읊조리네 坡翁雖老亦吟觴인간 세상에 부절처럼 똑같은 곳388)을 진정 알겠으니 定知人境同符處서로 전해온 송설을 감히 잊지 못하노라 誦說相傳未敢忘 天以名山錫此堂, 背惟蓬岳面蘇岡.蒼茫古蹟唐塵淨, 庶幾仙緣漢藥香.槿域維新適成落, 坡翁雖老亦吟觴.定知人境同符處, 誦說相傳未敢忘. 부소산(扶蘇山) 백제의 도읍인 충남 부여의 진산이다. 봉산(蓬山)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의 봉래산(蓬萊山)을 가리킨다. 당(唐)나라 먼지 먼지는 전장에서 일어나는 먼지로, 전란을 의미한다. 삼국 시대에 당나라가 신라(新羅)와 연합하여 백제(百濟)를 침략하여 멸망시킨 전란을 가리킨다. 한(漢)나라 단약(丹藥) 신선이 만든다고 하는 장생불사의 약을 이른다. 한나라 때 신선술(神仙術)이 유행하여 이렇게 말한 것이다. 근역(槿域) 무궁화(無窮花)가 많은 땅이라는 뜻으로, 우리나라를 달리 이르는 말이다. 부절처럼 똑같은 곳 남송(南宋) 주희(朱熹)의 〈백록동부(白鹿洞賦)〉에 "산은 푸르게 집을 둘러싸고, 물은 콸콸 섬돌을 따라 흐르네. 옛사람 이를 즐겼음을 믿겠나니, 세대는 다르지만 즐거움은 부절처럼 똑같구나.[山蔥瓏而遶舍, 水汨㶁而循除. 諒昔人之樂此, 羌異世而同符.]"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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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중에 도암450)의 일을 기억하고 스스로 탄식하다 病中記陶菴事自歎 내 듣건대 삼주451)는 세상에 드문 현자로 我聞三洲罕世賢문장과 도학이 모두 탁월하다고 하였네 文章道學幷卓然인물의 성이 같다 하자 낙론이 옳게 되고452) 人物性同洛語是《편람》 453)책이 완성되자 사례가 온전해졌네 便覽書成四禮全질병이 오는 것은 성인도 면치 못하나니 疾病之來聖不免만년에 중풍에 걸려 말하기가 어려웠다오 晩歲嬰風語音艱다행히 문하에 이행상454)이란 자가 있어 幸有門下李行祥뭇사람들은 못 알아들었으나 홀로 잘 알아들었네 衆皆莫辨獨詳聞언론과 문자를 잘 전달할 수 있었으니 言論文字能譯傳크게 고생하지 않고 십년을 보내셨다오 不甚見苦經十年아 나는 비록 선생과 같은 덕은 없지만 嗟我縱無先生德선생과 같은 병은 외려 몸에 얽혀 있네 先生之病却纏身슬하에 이공 같은 사람이 없으니 膝下無如李公者병중의 복은 또한 서로 현격하다오 病中之福亦相懸비교하고 따지는 건 모두 쓸데없는 생각이니 比幷較量皆閒想사생과 고락은 전부 천명을 기다려야 한다네 死生苦樂總俟天 我聞三洲罕世賢, 文章道學幷卓然.人物性同洛語是, 便覽書成四禮全.疾病之來聖不免, 晩歲嬰風語音艱.幸有門下李行祥, 衆皆莫辨獨詳聞.言論文字能譯傳, 不甚見苦經十年.嗟我縱無先生德, 先生之病却纏身.膝下無如李公者, 病中之福亦相懸.比幷較量皆閒想, 死生苦樂總俟天. 도암(陶菴) 이재(李縡, 1680~1746)로, 본관은 우봉(牛峰), 자는 희경(熙卿), 호는 도암 또는 한천(寒泉),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삼주(三洲) 김창협(金昌協, 1651~1708)으로,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중화(仲和), 호는 농암(農巖) 또는 삼주,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여기서는 김창협이 이재의 스승이 되기 때문에 언급한 것이다. 인물(人物)의……되고 이재(李縡)는 호락논쟁(湖洛論爭)에서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을 주장한 낙론(洛論)의 입장에서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을 주장한 호론(湖論)의 영수인 한원진(韓元震)의 심성설(心性說)을 반박함으로써 낙론을 이론을 뒷받침하였는데, 이를 근거하여 이렇게 말한 것이다. 편람(便覽) 이재가 관혼상제(冠婚喪祭) 사례(四禮)에 관하여 편찬한 《사례편람(四禮便覽)》을 가리킨다. 이행상(李行祥) 1725~1800.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공리(公履), 호는 왕림(旺林)이다. 이재(李縡)의 문하에 나아가 수학하였다. 스승을 깊이 흠모하여 유문(遺文)을 정리하여 출간하기도 하였는데, 당시 사람들은 "도암(陶菴)의 문하에 이처사(李處士)를 얻어 사문(師門)이 더욱 높아졌다."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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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 십사일에 감회가 있어 九月十四日有感 구십오 년 전 이 날은 九十五年前此日바로 나의 선비께서 태어나신 때라네506) 是我先妣懸帨辰불초한 육남매를 기르셨는데 育養不肖六子女졸년이 꼭 육순을 채웠다오 卒年恰滿六旬春찬찬히 보건대 환갑이 일 년이 모자랐는데 周甲看看爭一歲지연된 계책이 외려 상생507)의 궤연에 미쳤네 延計猶逮象生筵수박을 심어 크기가 항아리만 했는데 種得西瓜大如甕입동 전에 겉은 푸르고 속은 붉었다오 外碧內丹立冬前쪼개어 올리자 탁자에 향이 가득했으니 剖破獻上香滿卓마치 제철 과일처럼 단맛이 온전하였네 宛若時物甘味全호사가들이 앞다퉈 말하기를 好事之人爭有言이런 때 이런 과일이 어찌 우연이랴 하였네 此時此菓豈偶然이를 듣고 슬프고 부끄러워 자책하였으니 聞之悲愧內自訟나의 효성이 하늘을 감동시켰다고 말한 것만 같았네 若道此漢孝感天생전에 천년도508)를 얻을 수 있다면 生前應得千年桃사후에 어찌 환생초가 없으리오 死後詎無還生草선비가 돌아가신 뒤로 삼십여 년이 지났으니 風樹以來經三紀소자도 이미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었다오 小子皤皤亦已老새삼 절절한 감회가 발하여 시가 되었는데 追切感懷發爲詩병자의 말과 절반 섞여 속마음을 다 토로하였네 半雜病話寫傾倒 九十五年前此日, 是我先妣懸帨辰.育養不肖六子女, 卒年恰滿六旬春.周甲看看爭一歲, 延計猶逮象生筵.種得西瓜大如甕, 外碧內丹立冬前.剖破獻上香滿卓, 宛若時物甘味全.好事之人爭有言, 此時此菓豈偶然?聞之悲愧內自訟, 若道此漢孝感天.生前應得千年桃, 死後詎無還生草?風樹以來經三紀, 小子皤皤亦已老.追切感懷發爲詩, 半雜病話寫傾倒. 구십오……때라네 후창의 선비(先妣)인 전주 최씨(全州崔氏)는 정사년(1857, 철종8) 9월 14일에 태어나 병진년(1916) 3월 16일에 별세하니, 향년 60세였다. 상생(象生) 죽은 사람을 아직까지 살아 있다고 여겨 궤연(几筵)을 설치하고 의복과 기물 및 의식 절차를 살아 있을 때에 준하여 행하는 것을 말한다. 천년도(千年桃) 반도(蟠桃)를 가리킨다. 서왕모(西王母)가 심은 복숭아로, 3000년에 한 번 꽃이 피고 3000년에 한 번 열매를 맺으며 이를 먹으면 불로장생한다고 한다. 《太平廣記 卷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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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병 열 폭의 그림 뒤에 삼가 쓰다 병서 ○신묘년(1951) 敬題祭屛十幅圖畵後【幷序 ○辛卯】 제병 열 폭에 선조(先祖)의 덕행을 열거해 쓰고 아울러 그림을 그려서 추모의 뜻을 부쳤다. '금강산(金剛山)의 충의[金剛忠義]'란 것은 원조(遠祖) 마의태자(麻衣太子)402)의 일이며, '영은사(靈隱寺)에 제영하다[靈隱題詠]'란 것은 24대조 복야공(僕射公)403)의 일이며, '불교를 배척하고 불경을 조소하다[斥佛嘲經]'란 것은 23대조 문정공(文貞公)404)의 일이며, '역적을 토벌하여 나라를 안정시키다[討賊安邦]'란 것은 15대조 첨지공(僉知公)405)의 일이며, '매죽과 짝할 만한 고고한 풍치[梅竹高致]'란 것은 13대조 생원공(生員公)406)의 일이며, '모당(慕堂)과 월사(月沙)와 도의(道義)로 사귀다[慕月道交]'란 것은 11대조 죽계공(竹溪公)407)의 일이며, '용성에서 창의하다[龍城倡義]'란 것은 10대조 참봉공(參奉公)408)의 일이며, '낙요당(樂要堂)409)에서 강학하다[要堂講學]'란 것은 선고(先考) 벽봉공(碧峰公)410)의 일이다. 각각 오언절구(五言絶句)로 그 행실을 대략 기록하였다. 신묘년 맹춘(孟春)에 택술이 삼가 쓰다.금강산이 사해에 이름난 건 金剛名四海참으로 까닭이 있으니 良有厥由而마의태자의 사적이 아니라면 不是麻衣蹟한갓 기이한 수석일 뿐이라네 徒然水石奇-금강산의 충의[金剛忠義]-바위틈 샘물은 밤낮으로 내리는 비요 石泉日夜雨소나무에 걸린 달은 고금의 등불일세 松月古今燈복야공이 영은암에서 시 읊으니 僕射靈菴詠천추의 풍아411)에 등재되었도다 千秋風雅登-영은사(靈隱寺)에 제영하다[靈隱題詠]-《원각경》에서 주장하는 이단의 설을 啾啾圓覺經일필휘지로 남김없이 쓸어버렸다오412) 一筆掃淸之아득히 멀리 창려413)의 뒤를 이으니 邈爾昌黎後사문에 공이 참으로 작지 않도다 斯文功不微-불교를 배척하고 불경을 조소하다[斥佛嘲經]-맑고 깨끗한 연적암414) 아래에 淸絶硯巖下몇 칸의 공자 사당이 있다오 數間夫子祠해동의 아름다운 추로 풍속415)이 海東鄒魯俗이곳을 뿌리 삼아 가지를 뻗었네 根此達其枝-문묘(文廟)를 창건하여 초상을 봉안하다[創廟奉像]416)-신복이 되지 않음은 태사의 절의이니417) 罔僕太師節그 풍모를 들었고 또 공을 보았네 聞風又見公당시에 덕을 함께한 벗으로는 當時同德友정문충공418) 같은 분이 계셨다오 有若鄭文忠-신복(臣僕)이 되지 않고 귀향하다[罔僕歸鄕]419)-북쪽 변방에 전란이 일어나니420) 北塞風塵起조정의 근심이 참으로 깊었네 朝廷憂正深문무의 재주를 모두 완비했으니 全材文武備산해의 요기를 말끔히 제거했다오 山海淨氛祲-역적을 토벌하여 나라를 안정시키다[討賊安邦]-대나무는 깨끗하여 속되지 않고 竹兮淸不俗매화도 정결하여 티끌 한 점 없다오 梅亦潔無塵담박하기 그지없는 선생의 풍취여 淡泊先生趣진실로 매죽과 짝할 만하여라 固亦與作隣-매죽과 짝할 만한 고고한 풍치[梅竹高致]-유문에는 모당옹421)이 있고 儒門慕堂老문원에는 월사옹422)이 있는데 文苑月沙翁같은 소리와 기운은 서로 찾는 법이니423) 聲氣相求處정신으로 교유해 한 몸과 같았다오 神交一體同-모당과 월사와 도의(道義)로 사귀다[慕月道交]-적현424)의 운수가 다하려 할 때 赤縣運將訖청구425)가 먼저 해를 입었다오 靑邱先受傷호남에 뜻있는 선비 많으니 湖南多志士의로운 군대426)가 명성을 길이 떨쳤도다 師直義聲長-용성에서 창의하다[龍城倡義]-초당에서 무슨 일을 하는가 草堂何所事교재427)에 글 읽는 소리 울리누나 橋梓有書聲간옹의 글이 진중하기 그지없으니 珍重艮翁筆낙요명을 대대로 전하리라428) 世傳樂要銘-낙요당(樂要堂)에서 강학하다[要堂講學]- 祭屛十幅, 列書先德, 幷作圖畵, 以寓追慕.其曰'金剛忠義'者, 遠祖麻衣太子事也; 其曰'靈隱題詠'者, 二十四世祖僕射公事也; 其曰'斥佛嘲經'者, 二十三世祖文貞公事也; 其曰'討賊安邦'者, 十五世祖僉知公事也; 其曰'梅竹高致'者, 十三世祖生員公事也; 其曰'慕月道交'者, 十一世祖竹溪公事也; 其曰'龍城倡義'者, 十世祖參奉公事也; 其曰'要堂講學'者, 先考碧峰公事也.各以五言小絶, 略記其實.辛卯孟春, 澤述謹識.金剛名四海, 良有厥由而.不是麻衣蹟, 徒然水石奇.【金剛忠義】石泉日夜雨, 松月古今燈.僕射靈菴詠, 千秋風雅登.【靈隱題詠】啾啾圓覺經, 一筆掃淸之.邈爾昌黎後, 斯文功不微.【斥佛嘲經】淸絶硯巖下, 數間夫子祠.海東鄒魯俗, 根此達其枝.【創廟奉像】罔僕太師節, 聞風又見公.當時同德友, 有若鄭文忠.【罔僕歸鄕】北塞風塵起, 朝廷憂正深.全材文武備, 山海淨氛祲.【討賊安邦】竹兮淸不俗, 梅亦潔無塵.淡泊先生趣, 固亦與作隣.【梅竹高致】儒門慕堂老, 文苑月沙翁.聲氣相求處, 神交一體同.【慕月道交】赤縣運將訖, 靑邱先受傷.湖南多志士, 師直義聲長.【龍城倡義】草堂何所事? 橋梓有書聲.珍重艮翁筆, 世傳樂要銘.【要堂講學】 마의태자(麻衣太子)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敬順王)의 태자인 김일(金鎰)로, 마의(삼베옷)를 입고 한 평생을 살았기 때문에 이렇게 칭한다. 부안 김씨(扶安金氏)의 중시조(中始祖)가 된다. 경순왕이 후백제 견훤(甄萱)과 고려 왕건(王建)의 신흥 세력에 대항할 길이 없어 항복하자, 태자가 이에 반대하여 금강산(金剛山)으로 들어가 마의를 입고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먹으면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복야공(僕射公) 고려 때 우복야(右僕射)를 지낸 김의(金宜)이다. 다른 이름으로 정립(挺立) 또는 정립(鼎立)이 있다. 말년에 변산(邊山)의 영은사(靈隱寺)에 있었는데, 〈영은사〉 시 한 수가 전한다. 문정공(文貞公) 김구(金坵, 1211~1278)로, 자는 차산(次山), 초명은 백일(百鎰), 호는 지포(止浦), 시호는 문정이다. 고려의 명현으로, 문장과 도덕이 당대에 으뜸이었다. 첨지공(僉知公) 세조(世祖) 때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김보칠(金甫漆)이다. 이시애(李施愛)의 난에 공을 세웠다. 지방관으로 16개 고을을 잘 다스렸다. 생원공(生員公) 김종(金宗, 1471~1538)으로, 자는 사앙(士仰), 호는 매죽당(梅竹堂)이다.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였는데, 기묘사화(己卯士禍)로 과업(科業)을 폐하였다. 매죽(梅竹)을 심고 가꾸면서 청고(淸高)함으로 자신을 수양하였다. 죽계공(竹溪公) 김굉(金鋐)으로, 자는 여기(汝器), 호는 죽계이다. 모당(慕堂) 홍이상(洪履祥)과 월사(月沙) 이정귀(李廷龜) 등과 도의(道義)로 사귀었다. 학덕(學德)으로 경기전 참봉(慶基殿參奉) 등에 제수되었다. 참봉공(參奉公) 군자감 참봉(軍資監參奉)을 지낸 김정길(金鼎吉, 1576~1645)로, 자는 응구(應九)이다. 병자호란 때 창의(倡義)하하여 의병을 거느리고 청주(淸州)까지 진격하였다가, 화의(和議)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서 군대를 해산하였다고 하는데, 이 일이 《호남창의록(湖南倡義錄)》 등에 실려 있다. 낙요당(樂要堂) 후창의 부친인 김낙진(金洛進, 1859~1909)이 강학(講學)했던 초당(草堂)이다. 벽봉공(碧峰公) 김낙진으로, 자는 치일(致一), 호는 벽봉이다. 약관에 문장으로 이름이 났다. 간재(艮齋) 전우(田愚), 병암(炳菴) 김준영(金駿榮), 겸와(謙窩) 홍주후(洪疇厚) 등과 도의로 사귀었다. 풍아(風雅) 국풍(國風) 및 대아(大雅)와 소아(小雅)를 뜻하는 것으로, 《시경》을 가리킨다. 원각경에서……쓸어버렸다오 고려 고종(高宗) 때 권신 최항(崔沆)이 김구(金坵)에게 《원각경(圓覺經)》의 발문(跋文)을 써 달라고 청하자, 김구는 바른 도리를 지켜 굽히지 않고 시(詩)를 지어 최항을 꾸짖으니, 최항이 이에 앙심을 품고 김구를 제주 통판(濟州通判)에 좌천시킨 일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이 고사를 근거하여 이렇게 말한 것이다. 《正祖實錄 14年 2月 13日》 창려(昌黎) 당나라의 대문장가인 한유(韓愈)의 호이다. 그는 〈원도(原道)〉, 〈논불골표(論佛骨表)〉 등을 지어서 유학을 옹호하고 불교를 배척하였다. 연적암(硯滴巖) 강릉 향교 옆에 있는 항아리 모양의 바위를 말한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44》 추로(鄒魯) 풍속 추로는 공자(孔子)와 맹자(孟子)가 태어난 고향으로, 학문과 예악이 성대한 풍속을 이른다. 문묘(文廟)를……봉안하다 후창의 22대조 김여우(金汝盂)의 일을 읊은 것이다. 김여우의 다른 이름은 종우(宗盂), 시호는 충선공(忠宣公)이다. 원(元)나라로부터 문묘 제도를 도입하여 강릉(江陵)에 문묘를 처음 세웠다. 이 유문(儒門)의 공로로 부안의 도동서원(道東書院)에 배향되었다. 신복(臣僕)이……절의이니 원문의 망복(罔僕)은 망국(亡國)의 신하로서 의리를 지켜 새 왕조의 신복이 되지 않는 절의를 이른다. 태사(太師)는 은(殷)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왕(紂王)의 숙부로 태사 벼슬을 지낸 기자(箕子)를 이른다. 은나라가 망할 무렵 기자가 "은나라가 망하더라도 나는 주(周)나라의 신복이 되지 않으리라.[商其淪喪, 我罔爲臣僕.]"라고 하였다. 《書經 微子》 정문충공(鄭文忠公) 정몽주(鄭夢周, 1337~1392)로,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포은(圃隱), 시호는 문충이다. 고려조의 충신으로서 훗날 조선의 태조가 된 이성계(李成桂)의 세력이 강해지자 이를 숙청하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선죽교(善竹橋)에서 피살되었다. 신복(臣僕)이……귀향하다 후창의 17대조 김광서(金光敍)의 일을 읊은 것이다. 김광서는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세 형제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와 불사이군(不事二君)의 대의를 지키며 부안읍(扶安邑) 옹정(瓮井)에 살았다. 북쪽……일어나니 1467년(세조13) 함경도의 호족(豪族) 이시애(李施愛)가 북방 지역 사람의 차별 정책에 불만을 품고 일으킨 반란, 이른바 '이시애의 난'을 두고 말한 것이다. 모당옹(慕堂翁) 홍이상(洪履祥, 1549~1615)으로, 본관은 풍산(豊山), 초명은 인상(麟祥), 자는 군서(君瑞), 호는 모당,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서경덕(徐敬德)의 제자인 행촌(杏村) 민순(悶純)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고양의 문봉서원에 배향되었다. 월사옹(月沙翁) 이정귀(李廷龜, 1564~1635)로,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성징(聖徵), 호는 월사,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문장에 뛰어나 신흠(申欽), 장유(張維), 이식(李植)과 함께 조선 중기 한문사대가(漢文四大家)로 꼽힌다. 같은……법이니 《주역》 〈건괘(乾卦) 문언(文言)〉에 "같은 소리끼리 서로 응하고 같은 기운끼리 서로 찾는다.[同聲相應, 同氣相求.]"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의기투합하는 것을 뜻한다. 적현(赤縣) 중국을 가리키는 것으로, 전국 시대 제(齊)나라 추연(鄒衍)이 중원(中原) 지방을 '신주적현(神州赤縣)'이라고 일컬은 데에서 유래하였다. 청구(靑丘) 우리나라의 별칭으로, 우리나라가 중국의 동쪽에 있고 동방은 오행(五行)에 있어 청색이기 때문에 이렇게 칭한 것이다. 의로운 군대 원문의 사직(師直)은 군사의 명분이 바르다는 말로,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선공(宣公) 12년에 "군사의 명분이 바르면 사기가 왕성하고, 명분이 없으면 사기가 쇠한다.[師直爲壯, 曲爲老.]"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교재(橋梓) 교목(橋木)과 재목(梓木)으로, 아버지와 아들, 부도(父道)와 자도(子道)를 의미한다. 주(周)나라 백금(伯禽)이 아버지인 주공(周公)을 찾아갈 때마다 회초리를 맞고 돌아왔으나 그 이유를 알지 못하다가, 현인(賢人)인 상자(商子)의 가르침을 듣고서, 남산의 양지에 의젓하게 있는 교목을 보고서 부도를 깨닫고, 음지에서 겸손하게 고개 숙인 재목을 보고서 자도를 깨달았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說苑 建本》 간옹(艮翁)의……법이니 간옹은 간재(艮齋) 전우(田愚)를 가리킨다. 낙요명(樂要銘)은 간재가 김낙진을 위해 지어준 〈낙요재명(樂要齋銘)〉을 이른다. 《艮齋集 前編續 卷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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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군 원경 갑열 이 방문해주어 시를 주기에 차운하여 보여주다 4수 崔君元敬【甲烈】見訪有贈, 次韻示之【四首】 군과 처음 안 뒤로 이십 년이 흘렀는데 與君始識廿年多지금 새 시를 지어준 마음은 어떠한가 今贈新詩意如何감응하여 서로 통함이 신묘한 이치인데 感應相通神妙理한 마음만 온갖 화기를 헛되이 보내누나 一心虛送萬般和천추 뒤에 동생433) 무리를 다시 보게 되니 千秋復見董生儔주경야독하는 참된 사업을 남기누나 暮讀朝耕實業留바라건대 시종 한결같이 공력을 다 기울여 惟願加功終始一우리 무리에게 수치를 끼치지 않을 수 있기를 免敎吾黨或貽羞현인 되기 바라는 일은 쉽지도 어렵지도 않으니 希賢不易亦無難어렵건 쉽건 간에 어찌 감히 안일하게 지내랴 難易之間豈敢安단지 시비를 헤아리고 취사를 분간하고서 但問是非分取舍모두 바쁜지 한가한지 따지지 말고 즉시 행하라 卽行幷勿較忙閒군의 집안에 본디 의방434)의 규범 있으니 德門自有義方規나 같이 견문 없는 자를 어찌 의뢰하랴 如我無聞何所資학문이 끊어진 지금 거의 황년곡435)과 같으니 絶學殆同荒年穀좋은 종자 이루어 훌륭한 말을 길이 전할지어다 須成嘉種永傳辭 與君始識廿年多, 今贈新詩意如何?感應相通神妙理, 一心虛送萬般和.千秋復見董生儔, 暮讀朝耕實業留.惟願加功終始一, 免敎吾黨或貽羞.希賢不易亦無難.難易之間豈敢安?但問是非分取舍, 卽行幷勿較忙閒.德門自有義方規, 如我無聞何所資?絶學殆同荒年穀, 須成嘉種永傳辭. 동생(董生) 당(唐)나라 덕종(德宗) 때의 은사(隱士)인 동소남(董召南)을 가리킨다. 동소남은 동백산(桐柏山)에 은거하면서 주경야독(晝耕夜讀)하며 의(義)를 행하고 부모는 효로 잘 봉양하고 처자식은 사랑으로 양육하였다. 당대 대문호인 한유(韓愈)가 이렇게 훌륭한 동소남을 세상에서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동생행(董生行)〉을 지어 그를 칭송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동소남이 세상에 크게 알려졌다. 《小學 善行》 의방(義方) 의로운 방도라는 뜻으로, 자식을 가르칠 때 쓰는 방법이다. 《춘추좌씨전》 은공(隱公) 3년 조에, 위(衛)나라 장공(莊公)의 아들 주우(州吁)가 오만방자하게 굴자, 현대부(賢大夫) 석작(石碏)이 장공에게 "자식을 사랑하되 그를 의로운 방도로 가르쳐서 사악한 길로 빠져들지 않게 해야 한다.[愛子, 敎之以義方, 弗納於邪.]"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황년곡(荒年穀) 흉년에 얻기 어려운 곡식이라는 뜻으로, 세상을 구제할 만한 재능을 가진 드문 인재를 비유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상예(賞譽)〉에 "세상에서 유문강을 풍년옥이라고 하고, 치공을 황년곡이라고 한다.[世稱庾文康爲豐年玉, 稚恭爲荒年穀.]"라고 하였다. 문강은 유량(庾亮)의 시호이고, 치공은 유익(庾翼)의 자로, 유량은 재상이 될 큰 기국을 지녔고, 유익은 세상을 구제할 재능을 가졌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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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재의 〈인일〉 시에 차운하다 次止齋人日韻 오늘은 인일519)이라 일컬을 만하니 今日可稱人日也내 옛말을 가지고 반복하여 본다오 我將古語反之看수만 군중이 전란을 만난 걸 어찌하리오 柰如萬衆遭兵火수천 가호가 기한에 시달림을 거듭 탄식하네 重歎千家迫飢寒웅략 있는 주운의 검을 의지한다는 말을 못 들었고520) 雄略未聞朱劍仗빼어난 인재인 공우의 관을 털어낼 희망이 끊어졌다오521) 秀才絶望禹冠彈천시가 예전과 같아 세상이 소란스러우니 天時如舊世擾攘이 좋은 날을 저버리는 게 어렵기만 하구나 負此良辰亦堪難 今日可稱人日也, 我將古語反之看.柰如萬衆遭兵火? 重歎千家迫飢寒.雄略未聞朱劍仗, 秀才絶望禹冠彈.天時如舊世擾攘, 負此良辰亦堪難. 인일(人日) 음력 1월 7일을 말한다. 1일은 닭, 2일은 개, 3일은 양, 4일은 돼지, 5일은 소, 6일은 말, 7일은 사람의 날이라 한다. 점치는 날 기후가 청명하고 온화하면 평안하고 풍년이 들며, 기후가 흐리거나 추우면 질병이 있고 흉년이 든다고 하였다. 《荊楚歲時記》 웅략(雄略)……들었고 주운(朱雲)은 한(漢)나라 성제(成帝) 때의 직신(直臣)이다. 주운이 성제를 만난 자리에서 상방(尙方)의 참마검(斬馬劍)을 빌려주면 성제가 총애하는 간신(奸臣) 장우(張禹)를 베겠다고 간언하였고, 성제가 노하여 끌어내라고 명하였는데도 끝까지 굽히지 않고 간쟁하였다는 고사가 있는데, 이를 원용한 것이다. 《漢書 卷67 朱雲傳》 빼어난……끊어졌다오 한(漢)나라 때 공우(貢禹)와 왕길(王吉)은 서로 아주 친한 친구 사이였던 때문에 왕길이 출사하면 공우 또한 자기도 응당 등용될 것을 믿고 관(冠)의 먼지를 미리 털어내어 출사를 준비했다는 고사가 있는데, 이를 원용한 것이다. 《漢書 卷72 王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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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홍 규상 을 애도하다 哀崔載洪【圭相】 아아 군의 효성은 하늘에 근본하니 嗟君之孝根於天비록 배우지 못했다 해도 나는 배웠다고 하겠네515) 雖曰未學吾謂學십 년 동안 병든 부친의 뜻과 몸을 잘 받들었고 病父十年適志體초상과 제사를 경건히 하여 다시 덕이 후하게 되었네516) 愼終追遠復厚德품삯을 먼저 지급하여 제실을 지었으니 傭金先下作祭室헌청의 창과 벽은 어찌 그리 밝고 깨끗한가 軒廳牕壁何明潔당상의 편모께서 근심이 없으셨으니 堂上偏慈無戚戚털끝만큼도 어기는 경우가 없었다오 一毫無或有違越근본이 서고 나면 도가 절로 생겨나니 本之旣立道自生언행이 대부분 은연중에 시의적절하였네 言動于時多暗合오늘날 세상에는 패악한 자식이 넘쳐나니 滔滔悖子今世界미친 듯이 날뛰어 방자하기 그지없다오 陸梁挑達恣活躍아아 군은 한창 때인데 하늘이 빼앗아 가니 嗟君盛年天奪去어찌 저 무리를 위해 원수를 갚듯이 했는가 胡爲此曹仇報復의심되고 한탄스러워 마음이 진정되지 않으니 且疑且歎意莫定하늘에 묻고 크게 혼을 부르는 걸 내 하고자 하네 天問大招我欲作군의 가정에 준수한 두 아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聞君庭下秀二蘭어질고 효성스러워 훗날 부친의 자취를 이으리라 賢孝他日繼父迹최씨 집안이 대대로 창대할 것을 기약할 수 있으니 崔門世世期昌大이로써 황천에 있는 군의 넋을 위로하노라 以是慰君泉下魄 嗟君之孝根於天, 雖曰未學吾謂學.病父十年適志體, 愼終追遠復厚德.傭金先下作祭室, 軒廳牕壁何明潔?堂上偏慈無戚戚, 一毫無或有違越.本之旣立道自生, 言動于時多暗合.滔滔悖子今世界, 陸梁挑達恣活躍.嗟君盛年天奪去, 胡爲此曹仇報復?且疑且歎意莫定, 天問大招我欲作.聞君庭下秀二蘭, 賢孝他日繼父迹.崔門世世期昌大, 以是慰君泉下魄. 비록……하겠네 《논어》 〈학이(學而)〉에 "어진 이를 존경하되 여색을 좋아하는 마음과 바꿔서 하며, 부모를 섬기되 능히 그 힘을 다하며, 군주를 섬기되 능히 그 몸을 바치며, 붕우와 사귀되 말함에 성실함이 있으면, 비록 배우지 않았다고 말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그를 배웠다고 하겠다.[賢賢易色, 事父母能竭其力, 事君能致其身, 與朋友交, 言而有信, 雖曰未學, 吾必謂之學矣.]"라고 한 것을 원용한 것이다. 초상(初喪)과……되었네 《논어》 〈학이(學而)〉에 "어버이의 초상을 신중하게 치르고 먼 선조의 제사를 정성껏 지내면 백성의 덕이 후함에 돌아갈 것이다.[愼終追遠, 民德歸厚矣.]"라고 한 것을 원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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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 김주백 종락 에 대한 만사 挽金友周伯【宗洛】 어려서부터 사귀어 늙을수록 친해졌는데 小少爲交老益親열흘 동안 달려도 천리마를 따라잡기 어려웠네528) 難將十駕躡行塵두 대양의 격류 속에 우뚝한 지주와 같았고 二洋頹浪亭亭柱스승을 가까이 모시며529) 강직한 인품을 지녔다오 三席春風侃侃人백옥루에 틀림없이 기문이 지어졌겠거니와530) 白玉樓應文有記선비들은 학문하는 이웃이 없음을 어이하리오 靑衿士柰學無隣아아 내 오래 앓고 있지만 저승사자가 더디 오는데 嗟吾積病遲符到그 누가 다시 때때로 이내 몸을 돌아볼까 誰復時時顧此身 小少爲交老益親, 難將十駕躡行塵.二洋頹浪亭亭柱, 三席春風侃侃人.白玉樓應文有記, 靑衿士柰學無隣?嗟吾積病遲符到, 誰復時時顧此身? 열흘……어려웠네 《순자(荀子)》 〈수신(修身)〉에 "무릇 준마는 하루에 천 리를 달리는데, 노둔한 말도 열흘을 달리면 역시 따라잡을 수 있다.[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라고 하였는데, 자신은 노둔한 말에 상대는 천리마에 비유하여 말한 것이다. 스승을 가까이 모시며 원문의 삼석(三席)은 임금이나 신하, 스승과 제자 사이의 매우 가까운 거리를 말한다. 《禮記 文王世子》 춘풍(春風)은 좌상춘풍(座上春風)의 줄임말로, 봄바람처럼 온화한 스승을 의미한다. 《近思錄 卷14》 백옥루(白玉樓)에……지어졌겠거니와 백옥루는 옥황상제가 사는 천상의 누각을 말한다. 당(唐)나라 이상은(李商殷)이 지은 이하(李賀)의 전기(傳記)에, 하루는 이하의 꿈속에 붉은 옷을 입은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옥황상제가 백옥루를 완성하고 당장 그대를 불러 기문(記文)을 짓게 하려 한다.'라고 하였는데, 그 꿈을 꾸고 나서 그가 곧 죽었다."라고 하였는데, 이를 원용한 것이다. 《李賀小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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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꿈에서 조비 및 선고와 선비를 뵙지 못하다 不復夢見祖妣先考先妣 나는 기유년부터 余自屠維歲늘 꿈에서 벽봉옹을 뵈었고531) 每夢碧峰翁거듭 화를 당한 뒤의 꿈에서는 荐禍以後夢조비와 선비까지 함께 뵈었다오532) 祖妣先妣同평소의 그리움이 꿈이 되어 平生思爲夢밤마다 헛된 적이 없었는데 夜夜殆無空중풍의 병에 걸린 뒤로는 自嬰中風疾마음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으니 心官職失供그리움이 지극하지 못한지라 惟其思不至이 때문에 꿈에서 만나지 못한다오 所以夢不逢마치 옛날 공중니께서 有若孔仲尼다시는 꿈에서 주공을 못 보셨던 것과 같다오533) 不復夢周公아아 너 소자는 嗟嗟汝小子나의 말을 귀담아들을지어다 我言留汝聰도를 행하려는 뜻은 늙으면 진실로 쇠하거니와 行道老固衰네가 어버이를 잊는 건 어찌 용납될 수 있으랴 汝親忘豈容너의 불효를 말하지 않고 不言汝不孝옛일을 끌어와 교묘히 둘러대는구나 引古巧彌縫이 말씀을 듣고 아무 대답도 못 드린 채 聞言無以答눈물만 줄줄 흘리며 실의에 빠졌다오 有淚徒龍鍾 余自屠維歲, 每夢碧峰翁.荐禍以後夢, 祖妣先妣同.平生思爲夢, 夜夜殆無空.自嬰中風疾, 心官職失供.惟其思不至, 所以夢不逢.有若孔仲尼, 不復夢周公.嗟嗟汝小子, 我言留汝聰.行道老固衰, 汝親忘豈容?不言汝不孝, 引古巧彌縫.聞言無以答, 有淚徒龍鍾. 나는……뵈었고 기유년(1909)년 1월 21일에 후창의 부친인 벽봉공(碧峰公) 김낙진(金洛進)이 별세하였다. 거듭……뵈었다오 병진년(1916)년 3월 13일에 후창의 조모인 영광 김씨(靈光金氏)가 별세하고, 3일 후인 16일에 모친 전주 최씨(全州崔氏)가 별세하였다. 마치……같다오 중니(仲尼)는 공자(孔子)의 자이다. 공자가 일찍이 말하기를 "심하도다. 나의 쇠함이여. 오래되었도다. 내 다시는 꿈에서 주공을 뵙지 못하였다.[甚矣吾衰也. 久矣吾不復夢見周公.]"라고 하였다. 《論語 述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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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홍【기현】에게 보냄 與鄭致弘【琦鉉】 영랑(令郞)이 복을 마치고 저를 찾아오니 슬프고 위로하는 마음 견디기 어렵습니다. 지난번 상례를 마칠 때 나아가 위로하려던 계획을 이루지 못하였는데 지금 도리어 앉아서 방문을 받았으니 또한 마음이 부끄럽고도 부끄럽습니다. 삼가 묻건대 형께서는 체후가 안정되고 쾌적하며 중씨(仲氏) 또한 평안하신지요, 신이 화평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진실로 이와 같아야 할 것입니다. 삼가 일찍이 재덕(才德)이 뛰어난 형제는 보았지만, 70의 노년을 맞아 긴 베개와 큰 이불로 저녁마다 평화롭고 화락하게 지내는 것은 옛날에 그런 말을 들었고 지금 그런 사람을 보았습니다. 좋은 일입니다. 하물며 아래로 현명한 자제가 가르침을 받들고 잠자리 시중을 들며 시(詩)와 예(禮)를 물으니 만년의 넉넉한 복이 사람을 탄복하고 부러워하게 합니다. 아우는 형제도 없이 혼자라서 의지할 곳 없이 홀로 지내는 처지입니다. 게다가 처지가 기구하여 여러 해에 걸쳐 객지를 떠도느라 가인(家人)들과 조금이라도 단란하게 지냈던 날이 없었습니다. 만약 하루아침에 세상을 떠난다면 역시 제게는 간절한 한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즘의 세상 소식은 갈수록 더욱 좋지 못하니 끝내 어떤 상황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고인(古人)의 만산통곡(萬山痛哭)89)도 오히려 헐후어(歇後語)이니 어쩌면 좋겠습니까. 관산(冠山)의 사우(士友)가 달 전에 정산(定山)으로 갔습니다. 노정(路程)을 계산해보면 며칠 사이에 이곳을 지나게 될 것입니다. 요사이 일어난 소식을 이 사람에게 듣게 될 듯하니 열흘 사이에 한 번 왕림하실 수 있으신지요. 몹시 기원(祈願)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어찌 감히 바라겠습니까. 令郞闋服過我。悲慰之情。有難勝堪。向於終制時。未遂晉慰之計。而今乃坐得其顧。亦不無愧愧之私也。謹問兄體安重。仲氏亦平適。神相愷悌。固應如此。竊嘗見金昆玉季。七耋衰年。長枕大被。日夕湛樂。此是古聞其語。而今見其人矣。好事好事。況下有賢子弟。趍庭侍枕。問詩問禮。晩年餘祿。令人歎羨。弟終鮮窮獨。踽踽無賴。加以身事奇險。多年羈泊。未得與家人輩有多少團聚之日。若一朝溘然亦未爲非區區之恨也。時耗去益不佳。未知終作何狀。古人之萬山痛哭。猶是歇后語。柰何奈何。冠山士友月。前往定山計。其程道則數日間。當過此矣。時耗似於此便聞之。旬間或可一枉否。雖所深願。而安敢望也。 고인(古人)의 만산통곡(萬山痛哭) 김인후(金麟厚)의 ≪하서선생전집부록≫ 권2에 정철(鄭澈)이 하서를 그리며 지은 시에서 인용하였다. "동방에는 출처에 바른 인물 없건만 오직 담재옹이 있다네. 해마다 7월이 되면 일만 산중에서 통곡을 하네.【東方無出處, 獨有湛齋翁. 年年七月日, 痛哭萬山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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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여은【택환】에게 답함 答安汝恩【澤煥】 지난달 그믐날에 보내신 편지를 이번 달 20일 저녁에 받았으니 벗과 편지를 주고받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도 이와 같으니 하물며 먼 곳에 있는 사람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펼쳐 읽어 본 이래 정감(情感)이 배로 더하였습니다. 아우는 사는 곳이 외지고 누추하여 이전에 종유(從遊)하던 이들과 까마득히 서로 소식을 주고받지 못하여 외롭고 쓸쓸한 회포가 매번 마음에 절실합니다. 오직 노형(老兄)만이 저를 비루하게 여기지 않고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매번 간절한 정의(情意)를 담아 권면과 일깨움을 아끼지 않으시니 제게 얼마나 다행이겠습니까. 그러나 달 전에 주고받은 편지에서는 충고와 책임에 관한 말이 이전과 달랐습니다. 보내주신 편지를 읽어보니 곧 감히 억지로 책문하지는 못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노형이 저를 사랑하는 것은 이처럼 지극하건만 말씀은 이처럼 지나치신지요. 우리 두 사람이 적막한 물가77)에서 상종(相從)하면서도 정을 다하지 못한다면 또 어떤 사람이 나의 실수를 책망하고 나의 잘못을 보완하여 새롭게 떨쳐 일어나는 단계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까. 대체로 교제는 얕으면서 말만 심오한 것은 군자에게 부끄러움입니다. 하물며 교제가 깊건만 말이 얄팍한 경우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노형께서 더욱 살펴주시기를 바랍니다. 보내주신 편지에서 "음양(陰陽)의 이치는 또한 사례를 가지고 본다."라고 하셨는데, 이것에 대해서는 말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음양의 동정(動靜)이 비록 체단(體段)과 유행(流行)은 다르더라도 그 이치가 어찌 일찍이 달랐겠습니까. '사(死)' 자를 '독(篤)' 자로 바꾸는 것이 참으로 당연합니다. '독(篤)' 자는 '사(死)' 자에 비해 진심 진력(盡心盡力)하여 죽음에 이르더라도 그만두지 않는다는 의미가 부족합니다. 또 주자(朱子)께서도 일찍이 '사공부(死功夫)' 3자를 가지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만 지난번 편지에서 언급한 착정(着靜)과 주정(主靜)에 관한 주장은 자연히 아주 상세하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주정(主靜)은 체용(體用)의 자연스러운 이치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고 착정(着靜)은 학자가 존심(存心)하는 방도를 가지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알지 못하는 초학자(初學者)가 성급하게 착정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조장하고 공허한 것을 붙잡는 폐단이 있게 됩니다. 그래서 '정(靜)' 자를 가지고 말하는 것보다는 '경(敬)' 자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 정당하여 치우침이 없습니다. 주정(主靜)에 관한 주장은 초학자에게는 주경(主敬)만 못합니다. 이 때문에 주자(朱子)는 "주선생(周先生 주돈이(周敦頤))의 말씀은 물길이 사나워 배를 대기 어려운 것과 같으니 초학자에게는 주경(主敬)을 말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주자(周子 주돈이)는 주정(主靜)이라 했는데, 여기에서 '정(靜)' 자는 동정(動靜)을 다 포괄하여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라고 물으셨습니다.천지의 조화는 지정(至靜)하지 않으면 한곳으로 모일 수 없어 발생(發生)할 수 없고, 인심은 지정(至靜)하지 않으면 부착하는 곳이 없어 응용(應用 반응하여 작용)할 수 없습니다. 무릇 천하의 사물 가운데 어찌 체(體)가 없는 용(用)이 있으며 뿌리가 없는 가지가 있겠습니까. 체(體)가 수립된 다음에야 용(用)이 작용할 수 있으며 뿌리가 단단한 다음에야 가지가 뻗어나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자연스러운 이치입니다. 이 때문에 명도(明道 정호(程顥)), 연평(延平 이동(李侗)) 등 여러 선생께서 사람을 가르칠 때 정좌(靜坐)를 우선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주자도 역시 "모름지기 정좌를 해야 비로소 수렴(收斂)할 수 있다. 또 정(靜)이 주(主)이고 동(動)은 객(客)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염옹(濂翁 주돈이)이 말하는 주정(主靜)도 이런 뜻이건만, 도리어 동(動)과 대비시키셨습니다. '정(靜)'은 동정(動靜)을 포괄하는 정(靜)이 아닙니다. 만약 동정(動靜)을 포괄하는 정(靜)을 말한다면 정이후능정(定而後能靜)78)의 정(靜)과 무욕고정(無欲故靜)79)의 정(靜)이 그것입니다.끝에 덧붙인 종덕(種德)80)에 관한 견해는 매우 훌륭합니다. 농인(農人)은 전지(田地)를 소유한 다음에야 비로소 밭을 갈고 수확하는 공을 이루게 되고 학자는 심지(心地)가 안정된 다음에야 무한한 도리(道理)를 궁구하고 무한한 사업(事業)을 할 수 있습니다. 선유(先儒)가 말씀하신 주정(主靜)과 주경(主敬)의 학설은 사인(斯人)이 먼저 심지를 안정시키는 요체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다만 보내신 편지에서 "백세(百世) 뒤에 반드시 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은 지나친 듯합니다. 실심(實心)으로 실천할 수 있다면 하루가 지나면 저절로 하루의 효과를 볼 수 있고 한 달이 지나면 저절로 한 달의 효과를 볼 수 있으며, 한 해가 지나면 저절로 한 해의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어찌하여 꼭 멀리 백세 이후를 기약하겠습니까. 사람들이 쉬운 것을 하고 어려운 것을 하지 않는 이유가 또한 어찌하여 단지 이 때문이겠습니까. 무릇 사도(斯道)는 평담 순실(平淡純實)하여 사람의 이목을 잘못되게 만드는 성색 취미(聲色臭味)가 없으며 사람의 심술(心術)을 움직이는 성리 위세(聲利勢威)가 없으며 사람의 의지를 미혹시키는 신기 괴려(新奇怪麗)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아버지가 일깨우고 형이 면려하여 입과 귀에 익숙한 것은 단지 문사(文辭)와 공리(功利)에 관한 방도일 뿐입니다. 비록 징험할 수 있는 성현(聖賢)의 말이 있더라도 저들이 평소에 존숭(尊崇)하고 향모(向慕)하던 것을 갑작스럽게 버리고 마음을 고쳐먹어 머리를 숙여 적막하고 먼지 가득한 서책에 마음과 힘을 다하려고 하겠습니까. 재질(才質)이 아름다운 자가 많지 않은 것이 아니건만 평생토록 그럭저럭 한결같이 똑같은 길로 돌아가고 있으니 참으로 통한스럽습니다.보낸 편지에서 말씀하신 "정(靜) 안에도 동(動)의 뜻이 있다."라는 말은 참으로 합당합니다. 드러나는 것으로 말하자면 음양(陰陽)은 자리가 같지 않고 동정(動靜)은 시기가 같지 않습니다. 감추어진 것으로 말하자면 동정과 음양의 이치가 이미 그 안에 두루 갖추어져 있습니다. 미발(未發)했을 때 환하고 어둡지 않아 지각이 모두 갖추어진 것은 음중(陰中)의 양(陽)이고 정중(靜中)의 동(動)이며, 이발(已發)했을 때 등급이 나뉘어 어긋나지 않고 각각 머무는 곳이 있는 것81)은 양중(陽中)의 음(陰)이고 동중(動中)의 정(靜)입니다. 今二十日夕。獲拜前月晦日書。可知朋友往復。亦非容易事。近者如是。況遠者乎。披閱以還。情感倍增。弟所居僻陋。前日從遊之人。寥然不相問聞。孤索之懷。每切于中。惟老兄不以爲鄙。每致慇懃於書墨往復之間。勸勉引讓。無所不至。爲幸顧何如哉。然月前往復。規責之語。異於前日。及讀來示。乃有不敢强責之敎。豈老兄愛我如是其至。而其言如是其過乎。吾兩人相從於寂寞之濱。而猶不盡其情。則更有何人。責吾失補吾過。使之納之於作新之地哉。夫交淺言深。君子恥之。況交深而言淺乎。願老兄加察焉。來喩以爲陰陽之理。亦以例看。此無可言。陰陽動靜。雖有體段流行之殊。其理則何嘗有異。死字改以篤字。固當然。篤字比死字。少盡心盡力抵死不已之意。且朱子嘗以此死功夫三字爲言矣。但前書着靜主靜之說。自有所未能消詳者。主靜以體用自然之理言。着靜以學者存心之方言。然若使初學不知者。遽欲着靜。則必有助長捉空之獘。故說靜字。不如說敬字之爲正當而無偏也。主靜之說。在初學。不如主敬。是以朱子曰。周先生語。急難湊泊。初學不如說主敬。未知如何周子曰主靜。此靜字非兼包動靜而言歟。天地之化。非至靜。則不能翕聚。而發生不得。人之心非至靜。則無所湊泊。而應用不得。凡天下之物。豈有無體之用。無根之枝哉。體立而後。用有以行。根固而後。枝有以達。此自然之理也。是故明道延平諸先生敎人。未嘗不以靜坐爲先。而朱子亦曰。須是靜坐。方能收斂又靜爲主。動爲客。然則濂翁所謂主靜。亦是此意。而乃與動對之。靜非包動靜之靜。若言包動靜之靜。則定而後能靜之靜。及無欲故靜之靜。是也尾附種德之說。甚佳。農人得田地然後。方有耕耘收獲之功。學者定心地然後。窮得無限道理。做得無限事業。先儒所謂主靜主敬之說。莫非爲斯人先定心地之要也。但來喩所謂。百世之下。必期其效。此語似涉過當。若能實心行之。則一日自可見一日之效。一月自可見一月之效。一歲自可見一歲之效。何必遠期百歲之下哉。人之爲其易而不爲其難者。亦豈但此故也。夫斯道也。平淡純實。無聲色臭味之可以誤人耳目。無聲利勢威之可以動人心術。無新奇怪麗之可以惑人志意。則父詔兄勉。熟口慣耳者。只是文辭功利之術也。雖有聖賢言語可以證嚮者。彼肯遽然捨其平生之所尊尙向慕者。而革心屈首。以從事於寥寥塵編之間哉。才良質美非不多矣。而悠悠百年。同歸一轍誠可痛恨。來喩靜中亦有動之意者。固當。自其著者而言。則陰陽不同位。動靜不同時自其微者而言。則動靜陰陽之理。已悉具於其中。方其未發。而瑩然不昧知覺都具者。陰中之陽靜中之動也。方其已發。而品節不差各有攸止者。陽中之陰動中之靜也。 적막한 물가 은자의 거처를 말한다. 한유(韓愈)의 〈답최입지서(答崔立之書)〉에 "만약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넓고 한적한 들판에서 밭을 갈고, 적막한 물가에서 낚시질하면 된다.【若都不可得, 猶將耕於寬閒之野, 釣於寂寞之濱.】"라는 말을 인용한 것이다. 정이후능정(定而後能靜) 《대학장구(大學章句)》 경 1장에 "머물 곳을 안 뒤에야 안정을 취하게 되고, 안정을 취한 뒤에야 마음이 고요해지고, 마음이 고요해진 뒤에야 외물에 동요되지 않을 수 있다."라는 말이 보인다. 무욕고정(無欲故靜) 주렴계(周濂溪)는 그의 《태극도설(太極圖說)》에서 "성인은 중정인의(中正仁義)로써 표준을 정(定)하고 정을 주로 하여 인극을 세운다.【主靜立人極.】"라고 하고, 정(靜) 자 밑에 "욕심이 없으니 정하다.【無欲故靜.】"라고 자주(自註)하였다. 종덕(種德) 사람들에게 널리 은덕을 베푸는 것을 뜻한다. 《서경》 〈대우모(大禹謨)〉에 순(舜) 임금이 우(禹)에게 왕위를 선위하려고 하자, 우가 말하기를 "저의 덕은 임무를 감당하지 못하여 백성들이 귀의하지 않거니와, 고요는 힘써 행하여 덕을 펴서 덕이 마침내 아래로 백성들에게 내려져 백성들이 그리워하니, 황제께서는 생각하소서."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온 말이다. 미발(未發)했을 …… 것 《대학장구》 제1장의 소주에 있는 것으로 "허령하고 어둡지 않은 것은 '명'이고, 뭇 이치를 갖추고 있고 만사에 응하는 것은 '덕'이다. 뭇 이치를 갖추고 있음은 덕의 전체로 발하지 않은 상태이고, 만사에 응함은 덕의 대용으로 이미 발한 상태이니, 만사에 응함은 바로 뭇 이치를 갖추고 있는 것의 작용 행위이다. 발하지 않으면 밝아서 어둡지 않고, 이미 발하였으면 품절하여 어긋나지 않는 것이 이른바 '명덕'이다.【虛靈不昧, 明也; 具衆理應萬事, 德也. 具衆理者, 德之全體未發者也; 應萬事者, 德之大用已發者也. 所以應萬事者, 卽其具衆理者之所爲也. 未發則炯然不昧, 已發則品節不差, 所謂明德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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