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후재144) 상량문 歸厚齋上樑文 삼가 생각건대옛 무덤 새롭게 단장하니이에 현회에 운수가 있음을 보겠고후손이 지나간 선조의 일 이으니첨모에 방법이 없어서는 불가하네경영하여 기꺼이 집을 지으니영령이 오르내리며 자리에 계시네삼가 생각건대 좌승상 여양공145)은우리나라의 화려한 문벌이요고려조의 이름난 경상이네제치146)를 종으로 삼고 회암147)을 조로 삼으니현저하게 세덕의 아름다움 있고아버지는 청계148) 아들은 문절149)이니족히 계술의 아름다움 우러르겠네인부150)에 거주하였으니명성과 업적이 남쪽 고을에서 으뜸이고신안을 본관으로 하니후손들이 팔도의 산천에 퍼져있네오직 세월이 변천하니황발의 노인들이 서로 전하여 정승의 묘소라고 하고아, 능곡151)이 변하니백양152)의 역사 오래 전해져 초목들이 가리키네다행히 이 한 조각 지석이오백 여년 만에 드러났네수일 전에 두 명의 백옥 동자가거주하는 사람의 꿈에 신령으로 나타나고마침 이 때에 한 가닥 상서로운 기운이여럿이 의논하던 분묘에 잇닿았네확실하고 온전하니절로 신명이 수호한 것이고부합하기를 기다렸으니또한 성효의 감통으로 말미암았네당부153) 같으니묘소의 모양 다시 바꾸고이에 비갈을 세우니묘소의 의물이 비로소 갖추어졌네종족에게 도모하여사시로 제향하는 의식 거행하고관사에게 아뢰니산을 둘러 봉식154)하는 절도를 삼가네이곳은 선조께서 내려주신 땅이니추모하는 마음 어떠하겠으며더구나 의리를 보관하였으니소중함이 각별하네현인이 지나간 곳에오히려 노공의 무주 사당155)이 있는데선조의 유허에어찌 진군의 사정을 짓지 않겠는가몇 개월 사이에도모가 합하고 힘을 같이 하며한 가문의 사람들일을 즐겁게 하고 공에 나아갔네높고 화려하니장노의 미송에 부응하고조금 갖추고 많이 갖춤에위나라 형의 선거와 같네156)부엌과 욕실 대청과 정원은거의 대축157)이 예를 봉행하는 장소가 되겠고기둥과 글방, 당과 무는또한 족히 매년 종족이 모이는 규범을 행하겠네연음하며 낙성하여귀후라는 편액 걸고달려와 마주하니158)여재159)의 의형을 바라보네짧은 노래 지어들보 올리는 것 돕네어영차 들보 동쪽으로 던지니십자천의 흐르는 물 맑기가 허공 같네부상에 머리 돌려봄에 요망한 기운 다 사라지니밝게 걸린 일월이 무궁하게 비추네어영차 들보 남쪽으로 던지니천운산의 산색 쪽빛같이 푸르네위대한 명성 훌륭한 자취 오래도록 흘러 전하니주조160)는 천년토록 창해에 잠겼네어영차 들보 서쪽으로 던지니우뚝한 국사봉에 저물녘 구름 깔렸네상서로운 광채 문명한 운수 끌어당기니저 강루를 봄에 별들이 규성에 모이네161)어영차 들보 북쪽으로 던지니우뚝한 무등산이 한 지역 진압하네강호의 만 리에 토구를 경영하니충신의 연모하는 마음 북극성 향하지 않을 때가 없네어영차 들보 위쪽으로 던지니어진 하늘은 일찍이 사문을 없애지 않았네건건162)하여 쉼 없음이 순환하는 것 같으니군자가 본받아 스스로 힘쓰네어영차 들보 위쪽으로 던지니많은 강물 다투어 동남의 들로 달려가네겸손하면 능히 유익함을 받고 가득차면 손해를 부르니이 이치 분명한데 어찌 가슴에 새기지 않으랴삼가 바라건대 상량한 뒤에자손은 창대하고문학은 번성하며영령은 평안하여옛 터가 진실로 아름다움을 돌아보며형작163)이 향기롭고 깨끗하여해마다 제향함에 떳떳함이 있게 하소서 伏以舊塋就新。聿覩顯晦之有數。來孫繼往。不可瞻慕之無方。經營肯堂。陟降在座。恭惟左承相汝陽公。靑邱華閥。麗朝名卿。宗制置而祖晦庵。著有世德之美。父淸溪而子文節。足仰繼述之休。家佳仁夫。聲猷爲南州冠冕。鄕貫新安。苗裔編八域山川。惟星霜之迭遷。黃髮耆舊。相傳政承墳塋。嗟陵谷之變幻。白楊春秋。久貽樵牧指點。幸此一片誌刻。發於五百餘年。前數日兩箇玉童。現靈於居人之夢。適是時一條瑞氣。橫接於僉議之墳。堅確渾全。自是神明守護。等待符會。亦由誠孝感通。若斧若堂。墳樣改觀。乃碑乃碣墓儀始備。謀于族黨。擧四時奠享之儀。聞于官司。謹環山封植之節。此是貽降之地。追慕何如。矧伊衣履之藏。所重自別。賢人所過。猶有魯公撫州之祠。先祖遺墟。豈無甄君思亭之構。數月之間。合謀同力。一門之內。樂事赴功。輪焉煥焉。膺張老之美頌。少有富有。同衛荊之善居。庖湢廳庭。庶可爲大祝奉禮之所。阿塾堂廡。亦足行每歲合族之規。燕飮落成。揭歸厚之標榜。駿奔對越。瞻如在之儀形。短引以裁。修樑助抛。兒郞偉抛樑東。十字川流淸若空。回首扶桑氛祲盡。昭懸日月照無窮。兒郞偉抛樑南。天雲山色碧如藍。偉音遐躅流傳久。朱鳥千年滄海涵。兒郞偉抛樑西。國師峰屹暮雲低。祥光著換文明運。瞻彼降婁星聚奎。兒郞偉抛樑北。瑞石峰峰鎭一域。江湖萬里營菟裘。忠戀無時不拱極。兒郞偉抛樑上。仁天曾不斯文喪。乾乾無息如循環。君子法之以自强。兒郞偉抛樑下。群流爭赴東南野。謙能受益滿招虧。此理分明盍將把。伏願上樑之後。子孫昌大。文學蔚興。英靈妥安。睠舊土之信美。泂酌芳潔。修歲事之有常。 귀후재(歸厚齋)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장동리에 있는데, 주여경(朱餘慶)을 모시는 재사이다. 여양공(汝陽公) 주여경(朱餘慶)을 말한다. 자는 필유(必有), 호는 여양(汝陽), 시호는 민휴(敏休)이다. 청계공 주잠(朱潛)의 첫째아들로 남송에 있을 당시 이름은 여(余)였으나 고려로 온 이후 여경(餘慶)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고려 고종 조에 은사과(恩賜科)에 올라 좌승상(左丞相)과 추밀원밀직사(樞密院密直司)를 지냈다. 제치(制置) 제치다원(制置茶院)을 지낸 주자의 8대조 주괴(朱瓌)를 말한다. 무원 주씨(婺源朱氏)의 시조로, 일명 고료(古僚)라고도 하며, 자는 순신(舜臣)이다. 당(唐)나라 천우(天祐) 연간 사람으로, 다원부군(茶院府君)이라고도 한다. 회암(晦庵) 주희(朱熹, 1130~1200)의 호이다. 자는 원회(元晦)이다. 청계(淸溪) 주잠(朱潛, 1194∼1260)의 호이다. 고려 후기의 귀화인으로 남송(南宋)의 한림원 태학사(翰林院太學士)이자 신안 주씨(新安朱氏)의 동국시조이다. 자는 경도(景陶), 본관은 송나라 강남동로(江南東路) 휘주부(徽州府) 신안현(新安縣)으로 오늘날의 중국 강서성 무원현이다. 1224년(고려 고종11년) 고려로 망명하였으며, 전라도 금성(錦城 : 지금의 나주(羅州))에 정착하여 신안 주씨의 동국시조가 되었다. 이후 무주(茂朱) 무풍면(茂豊面)을 거쳐 다시 전라북도 진안(鎭安) 주천면(朱川面) 신안촌(新安村)으로 은거하며 서당을 열어 인재를 기르고 학문 연구와 향풍 교화에 진력하였고 능주(綾州)에 돌아와 죽었다.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의 주자묘(朱子廟) 경내의 동원사(東源祠),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의 주천서원(朱川書院)과 청계사(淸溪祠)에 배향되었다. 문절(文節) 주열(朱悅, 1227~1287)의 시호이다. 자는 이화(而和), 호는 죽수(竹樹)이다. 1260년(고려 원종1년)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남원 판관(南原判官), 한림학사, 판도판서, 지도첨의부사(知都僉議府事) 등을 역임하였다. 능성군(綾城君)에 봉해졌다. 인부(仁夫) 전라남도 화순 지역의 옛 지명으로, 이릉부리(爾陵夫里), 죽수부리(竹樹夫里), 연주부리(連珠夫里)라고도 한다. 능곡(陵谷) 상전벽해(桑田碧海)처럼 세상이 엄청나게 변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시경》 〈소아(小雅) 시월지교(十月之交)〉에 "높은 언덕은 골짜기로 뒤바뀌고, 깊은 골짜기는 언덕으로 변했도다.[高岸爲谷, 深谷爲陵.]"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백양(白楊) 무덤을 비유하는 시어(詩語)이다. 〈고시(古詩)〉에 "수레 몰아 동문 위로 올라가서, 북망산 묘지를 멀리 바라보니, 백양나무는 바람 속에 소소히 울어 대고, 넓은 길 양쪽에는 송백이 줄지어 섰네.[驅車上東門, 遙望郭北墓, 白楊何蕭蕭, 松柏夾廣路.]"라고 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 《文選 卷29 古詩十九首》 당부(堂斧) 분묘(墳墓)를 말한다. 봉식(封植) 분묘를 봉축하고 주위에 나무를 심는 것을 말한다. 노공(魯公)의 무주(撫州) 사당 노공은 당나라 안진경(顔眞卿)의 봉호이다. 안녹산의 난리 때 평원 태수(平原太守)로 있으면서 상산 태수(常山太守)인 그의 종형 안고경(顔杲卿)과 함께 성을 굳게 지켜 오직 그 두 곳만 적에게 함락되지 않아 반격의 기반이 되게 하였으며, 뒤에 반란을 일으켜 여주(汝州)를 함락한 이희열(李希烈)을 회유하러 갔다가 그에게 수년 동안 구류되어 협박받던 끝에 굽히지 않고 순절하였다. 그가 죽은 지 272년 뒤인 1056년 송 인종(宋仁宗) 지화(至和) 3년에 지무주(知撫州) 섭모(聶某)와 통판무주(通判撫州) 임모(林某)가 그의 충절을 기린 나머지 안진경이 일찍이 그곳의 자사(刺史)를 지냈다 하여 사당을 세워 향사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증공(曾鞏)의 〈무주 안노공 사당기(撫州顔魯公祠堂記)〉에 보인다. 조금……같네 공자가 위(衛)나라 공자(公子) 형(荊)을 평가하기를 "그는 집에 거처하기를 잘하였다. 처음 소유하게 되자, '그런대로 모여졌다.' 하였고, 조금 더 장만하게 되자, '그런대로 충분히 갖추었다.' 하였고, 부유하게 되자, '그런대로 충분히 아름답다.' 하였다.[善居室, 始有曰, 苟合矣; 少有曰, 苟完矣; 富有曰, 苟美矣.]"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論語 子路》 대축(大祝) '태축'이라고도 하는데, 신에게 제사 지내는 일을 관장하는 벼슬로 은(殷)나라 천관(天官) '육태(六大)' 가운데 하나이다. 달려와 마주하니 《시경》 〈주송(周頌) 청묘(淸廟)〉에 "하늘에 계신 분을 대하고, 사당에 있는 신주를 분주히 받든다.[對越在天, 駿奔走在廟.]"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여재(如在) 《중용장구》 제16장에 "제사를 지낼 때면 귀신이 양양히 그 위에 있는 듯도 하고 좌우에 있는 듯도 하다.[承祭祀, 洋洋乎如在其上, 如在其左右.]"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주조(朱鳥) 주작(朱雀)으로 남쪽을 상징하는 상서로운 새, 혹은 봉황을 가리킨다. 별들이 규성에 모이네 송 태조(宋太祖) 건덕(乾德) 5년에 수(水), 화(火), 금(金), 목(木), 토(土) 다섯 별이 규성의 별자리에 모인[五星聚奎] 일이 있었는데, 당시 복자(卜者)가 이것을 인재가 많이 배출(輩出)될 조짐이라고 하였다. 건건(乾乾) 《주역》 〈건괘(乾卦) 구삼(九三)〉에 "군자는 종일토록 힘쓰고 힘써 저녁까지도 두려워하면 위태로우나 허물이 없으리다.[君子終日乾乾, 夕惕若, 厲, 无咎.]"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형작(泂酌) 소박하지만 정성껏 차린 제수를 뜻한다. 《시경》 〈대아(大雅) 형작(泂酌)〉에 "저 길가에 괸 물을 멀리 떠다가, 저기서 떠내 여기에 붓는 정성만 지극하다면, 제사에 올릴 밥도 만들 수 있으리라.[泂酌彼行潦, 挹彼注玆, 可以饙饎.]"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