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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집》을 읽고 讀尤菴集 빼어난 기상이 삼백 년간에 모여들어 英氣鍾三百歲間우뚝 북두성과 높은 산처럼 되었지 巍然北斗又高山퇴계 문하에 단비 내려 청출어람 하셨으나220) 溪門時雨靑藍出귤도에서 바람과 서리로 흰머리 생기셨지221) 橘島風霜白髮斑민낙을 평상시 자나깨나 생각하셨고222) 閩洛平生寤且寐춘추의리 유업으로 기록하고 정리하셨네 春秋遺業筆兼刪어찌하면 구천에서 선생께서 일어나셔서 九原安得先生起음사한 무리 말끔히 씻어내어 양이 회복될까 掃盡陰邪陽復還 英氣鍾三百歲間,巍然北斗又高山.溪門時雨靑藍出,橘島風霜白髮斑.閩洛平生寤且寐,春秋遺業筆兼刪.九原安得先生起,掃盡陰邪陽復還. 퇴계……하셨으나 퇴계의 학문을 이어 더 나아갔음을 칭송한 말이다. 원문 '계문(溪門)'은 퇴계의 문도를 말한다. 귤도에서……생기셨지 원문 '귤도'는 제주도를 말하는데, 우암이 1689년 제주도에 유배되어 갖은 고생을 한 것을 이른다. 민낙을……생각하셨고 성리학에 힘썼음을 의미한다. 원문 '민낙(閩洛)'은 이락관민(伊洛關閩)으로 이수(伊水)와 낙수(洛水), 관중(關中)과 민중(閩中)이다. 이수에는 명도(明道) 정호(程顥), 낙수에는 이천(伊川) 정이(程頤)가 강학하였고 관중에는 횡거(橫渠) 장재(張載), 민중에는 회암(晦庵) 주희(朱熹)가 강학하였다. 여기서는 정주학(程朱學)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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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박진호에게 답함 을해년(1935) 答朴甥珍浩 乙亥 보내온 편지에서 "검과 창을 지닌 자는 호랑이가 오는 것을 근심하지 않고, 총포를 안고 있는 자는 도적이 오는 것을 근심하지 않으며, 금옥(金玉)을 쌓아놓은 자는 흉년을 근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기절(氣節, 기개와 절개)을 지닌 자가 유독 세상의 환란을 근심하겠는가?"라고 했는데, 이는 진실로 정확한 논변입니다. 우리 온재(韞哉)104)의 최근 소견이 이와 같이 매우 고명한데 이르렀음을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무릇 검포금옥(劒砲金玉)은 모름지기 스스로 구하여 모으고 스스로 지니고 쌓아서 타인이 대신 구하고 대신 지닐 이치가 없는 것인데, 기절만 유독 스스로 양성하여 스스로 지니지 않고 타인에게 의지하여 구할 이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늙고 졸렬한 나에게 의지하여 가르침을 베풀어주길 기다리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요? 맹자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논하면서 "의(義)를 모아 생겨나는 것이다."라고 했고, 또 의를 모으는 방도를 논하면서 "반드시 일을 두어 효과를 기대하지 말고 마음에 잊지 말며 조장하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기절(氣節)은 즉 호연지기입니다. 만약 기절을 양성하고자 한다면 맹자의 이 교훈을 버리고 어디에서 구할 것인가요? 이 교훈을 주석한 뜻은 그대도 일찍이 송독하고 완색(玩索)한 것이니 내가 모름지기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최근 연소한 자들의 공통된 병폐를 논하자면 거의 모두 그것을 잊고 일삼음을 두지 않는데 있으니 어찌 성취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대 또한 요즘 연소자들 중 한사람이니 그러한 병폐가 없다고 어떻게 담보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께서는 "인을 행함이 나로 말미암지 남으로 말미암겠는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금일 모름지기 스스로 일을 두어서 스스로 잊지 말며, 스스로 의를 모아서 스스로 기절(氣節)을 양성하기에 이르러야지, 털끝만큼이라도 남에게서 빌려올 수 없는 것입니다. 요컨대 불꽃처럼 범할 수 없는 뜻으로 한줌의 흙을 쌓아 높은 산을 완성하는 공을 이룬 연후에 가히 양성을 말할 수 있으니, 이것이 아니면 결단코 성취할 수 있는 이치가 없습니다. 설사 있다고 하면 그것은 호연한 기절(氣節)이 아니라 곧 자질(資質)의 작용으로 간혹 일시에 습취(襲取)된 것이니, 어찌 오래도록 꺾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는 또 마땅히 구별해야 할 것입니다. 來喩謂持劒戈者, 不患虎至, 抱銃砲者, 不患盜來, 積金玉者, 不患歲凶.然則有氣節者, 獨患世亂乎? 比誠確論.不謂吾韞哉近日所見, 懇至高明有如是矣.夫劒砲金玉, 須自求聚自持積, 無他人替求替持之理? 則氣節獨有不自養成自有之, 而仰求他人之理哉? 而乃依之於老拙, 而冀其有賜者何哉? 孟子論浩然之氣曰, 是集義所生者, 又論集義之方曰: 必有事焉而勿正, 心勿忘, 勿助長.氣節者卽浩氣也.如欲養成氣節, 舍孟子此訓而奚求哉? 此訓之註釋義意, 汝所嘗誦讀而玩索者, 吾不須說.但論近日年少通病, 則擧皆是忘之而至於不有事者, 其何能有成哉? 汝亦近日年少中一人, 安保其無此病也? 孔子曰爲仁由己而由人乎哉? 今須自有事, 自勿忘, 自集義以至於自養成氣節, 雖欲一毫借人分力, 正不可得也.要之以烈火不可犯之志, 下拳土積成高之功, 然後乃可言養成, 非此決無有成之理.藉曰有之, 非浩氣之氣節, 乃資質之作用, 或一時之襲取者, 安得久而不挫乎? 此又所當辨者也. 온재(韞哉) 박진호(朴珍浩) 이름의 '진(珍)'자로 인해 그의 字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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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연 전 병자년(1936) 黃長淵傳【丙子】 벗 오영호(吳永鎬)는 목포(木浦)에 임시로 살고 있는데, 나를 찾아와 말하기를 "거주하는 마을의 황 효자(黃孝子)는 행실이 대단히 뛰어나니, 오랑캐들177)이 뒤섞여 사는 지역에 재물을 어지러이 다투는 속에서 이런 사람이 있는 것이 어찌 어렵지 않겠는가."라 하였다. 내가 듣고서 마음속에 담아 두었는데, 후에 그의 행실을 기록하여 보낸다.효자의 이름은 장연(長淵)으로 그 선조는 장수(長水) 사람 익성공(翼成公) 희(喜)의 후손이다. 대대로 해남군(海南郡) 화산면(花山面) 송산리(松山里)에 거주하였는데, 가난에 내몰려 목포부(木浦府) 연동(蓮洞)으로 옮겨와 살게 되었다. 성품이 본래 지극히 효성스러워 어려서부터 부모를 섬김이 어른 같았다. 집밖에 있을 때 좋은 맛난 음식이나 좋은 과일을 얻으면 먼저 맛보지 않고 품고 돌아와 드렸다. 어릴 때 학교에 가지 못하고 공장에서 고용살이를 하면서 품삯을 받아 부모를 봉양하였다. 부친이 병을 앓아 3년 동안 이부자리에 누워 있었는데, 약과 맛있는 음식을 부친이 원하는 대로 바쳤으며 탕약은 반드시 한밤중 정화수에 담가두었다. 집이 공장과 약간의 거리가 있어서 낮에 틈을 내어 자주 찾아뵈었으며 병이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찢어 피를 입에 흘려 넣었고 넓적다리를 베어 죽을 끓여 드렸는데, 110여 일이 지나서 돌아가셨다. 상례와 장례는 신식을 따르지 않고 고례를 따랐으며, 정도에 지나치도록 슬퍼하여 몸을 상하였다. 새벽마다 비바람과 서리, 눈을 피하지 않고 일어나는 즉시 묘에 문안을 드리고서 공장으로 일하러 갔다. 생선과 고기는 한번도 입에 대지 않았으며 밤에는 사실(私室)에서 자지 않았다. 당시 그는 28세였는데, 그 아우 남연(南淵)도 또한 효성이 깊다고 한다.다음과 같이 논한다. "사람이 비록 타고난 선행이 있으나 학문에 종사하여 도리를 정밀하게 선택하고 견고하게 지키지 않으면 맞닥뜨린 상황에 처한 바와 사는 바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이다. 지금 이 세상은 어떤 세상이며 목포는 어떤 지역이며 그 곤궁함은 또한 어떠한가. 그러나 이 사람은 일찍이 배우지 않았어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부모에 효도하여 살았을 때 섬기거나 죽었을 때 슬퍼함에 시종 더욱 정성을 다하였으니, 천성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그럴 수 있겠는가. 행록에서 말한 '본성이 지극히 효성스럽다.'는 말은 참으로 거짓이 아니다. 공자가 '다만 상지(上智)는 변하지 않는다.'178)라 하였는데, 나 또한 '오직 독실한 효성은 변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손가락을 찢거나 넓적다리를 자른 것은 선배들이 비록 중도를 넘어선 것이라고 하지만 그러나 지성이 아니면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다. 이것은 선비들이 의를 강론하는 날에 특별히 논하는 것이 옳다." 吳友永鎬僑居木浦, 過余言'所僑村黃孝子事行卓異, 顧此卉氈雜居之地, 貨利紛競之中, 乃有此人, 豈不難哉.余聞而心識之, 後又錄送其行曰: "孝子名長淵, 其先長水人翼成公喜后.世居海南郡花山面松山里, 爲貧窮所迫, 轉居木浦府之蓮洞.性本至孝, 自幼事親如成人, 在外得良饌美果, 不先入口, 懷而歸獻.早未就學, 每傭於工場, 受直金以奉兩親.其父得疾, 三年委臥床褥, 藥餌甘旨, 依願無闕, 湯藥必沒夜半井華水.家距工場稍遠, 晝間亦乘隙頻省, 疾革裂指往血, 割股煮粥, 過百十一日而歿.喪葬不遵新式而從古禮, 哀毁過節, 每晨不避風雨霜雪, 卽起省墓, 往傭於工場, 魚肉一不近口, 夜不寢私室.時年二十八, 其弟南淵, 亦有孝行云." 論曰: "人雖有所執之善行, 非從事學問而擇之精守之固者, 不能不隨所値所處所居, 而有所變移, 常情也.今夫此世何世, 木浦何地, 其貧窮又何如, 而斯人也, 未嘗爲學, 而能一意孝親, 生事死哀, 始終益勤, 非出於天性, 其能之乎.行錄所謂'性至孝'者, 信不誣矣.孔子曰: '惟上智不移', 吾亦曰: '惟篤孝不移', 若夫裂指割股, 先輩雖言其過中, 然非至誠, 決不能爲矣.此則別論於士子講義之日, 可也." 오랑캐들 전구(氈裘)는 모전(毛氈)으로 만든 갖옷인데, 북쪽 오랑캐를 가리킨다. 훼복(卉服)은 풀옷으로, 남쪽 오랑캐를 가리킨다. 목포에 여러 서양인들이 모여든 것을 말한다. 오직……않는다 《논어(論語)》 양화(陽貨)에서 공자는 "오직 지극히 지혜로운 자와 지극히 어리석은 자는 변화시킬 수가 없다.〔唯上知與下愚 不移〕"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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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택 전 정축년(1937) 魯鎭澤傳【丁丑】 나는 사람들의 선행을 기록하기 좋아하는데, 시골의 일반 백성들에 대해 천진에 맡겨 꾸미지 않는 것을 귀하에 겨이고 그들의 자취가 사라져 전해지지 않는 것을 애석하게 여겨 더욱 그들에 마음을 쏟는다. 친척 낙춘(洛春)이 나에게 와서 책을 읽으며 자신이 사는 파산리(巴山里)에 노진택(魯鎭澤)이란 사람이 조부를 잘 섬기는 일에 대해 말하기를 "진택이 겨우 10살 무렵에 그 부친을 여의었다. 당시 그 조부의 나이가 일흔이었으며 아우는 젖먹이였는데, 밖으로 가까운 친척이 없었으며 안으로 집안 살림을 꾸려갈 사람이 없었다. 다만 그 모친이 과부로 안방을 지키면서 아이들이 성장하기만을 기다렸다. 세월이 살처럼 흘러 진택이 이윽고 장성하여 아내를 두었는데, 늙은 조부는 아직도 집에 있었다. 진택은 지극한 효성으로 봉양하여 고용살이를 하면서 술과 고기를 이바지 하였으니 이십 년을 하루같이 하였다. 집안의 전곡(錢穀)은 반드시 조부에게 맡겨두었으며 사용할 때 아뢰고 가져갔으니, 늙어서 가사를 맡길 나이181)라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고 작은 출입이나 하찮은 물품이라도 아주 조금도 틀리지 않게 모두 고하였다. 이윽고 조부가 정신이 혼미하여 대소변의 실수를 하여 옷과 자리가 더러워지고 냄새가 났는데, 진택이 일 때문에 밖에 있으면 그 아내와 아우가 앞 다퉈 청소하고 깨끗하게 세탁하였으니, 이는 집안사람들이 모두 진택의 효성에 감화된 것이다."라 하였다.내가 듣고서 감탄하기를 "진택이 가정의 교육과 문자를 배웠다는 것을 듣지 못하였지만 능히 이와 같은데, 이와 같은데도 또 찬양하는 사람이 없으니 내가 말한 '천진에 맡긴 것을 귀하게 여기는데 전함이 없음을 애석하게 여긴다.'는 것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다음과 같이 논한다. "효자가 되기는 참으로 어렵지만 효손이 되기는 더욱 어려운 것은 어째서인가. 친함으로 말하자면 조부는 부친만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부를 잘 섬김은 참으로 효가 되지만 아들을 잃은 조부를 잘 섬기는 것은 더욱 큰 효가 되니, 어째서인가. 죽은 부친의 다하지 못한 효를 대신 다하는 것은 조부에 효도를 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또한 부친에 효도하는 것이다. 내가 그러므로 말하기를 '천하에 조부에 효도하면서 그 부모에 불효한 자는 있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노군이 그 모친을 잘 모시는 것은 지금 비록 말하지 않더라도 미뤄서 알 수 있다. 오호라! 내가 26살에 선친을 여의고 조모를 모신 것이 모두 8년이었는데, 94살의 수를 누리다가 돌아가셨다. 뜻을 받들고 맛난 음식의 봉양을 뒤미처 생각하면 노군에 부끄러움이 많다. 이를 쓰면서 감개에 젖은 탄식을 금할 수가 없다." 余好記人善行, 於村閭匹庶, 貴其任眞不餙, 惜其跡泯無傳, 尤致意焉.宗人洛春來余讀書, 爲說其所居巴山里人魯鎭澤善事祖父事曰: "鎭澤甫十餘, 喪其父.時有祖年七十, 弟在乳, 外無强近之親, 內無幹家之人, 惟其母煢然守帷, 待兒子長成.歲月荏苒, 鎭澤已壯有室, 老祖尙在堂, 鎭澤極其孝養, 以至行傭而供酒肉, 二十年如一日.家中錢穀, 必任置其祖, 用時稟告持去, 不以其老傳而自專, 少出入微細事, 一皆告之, 不差尺寸.旣而其祖神昏, 有失便溺, 衣席臭汙, 鎭澤執役在外, 則其妻與弟掃除澣潔, 爭先爲之, 是則家人皆感化鎭澤之孝也." 余聞之歎曰: "未聞鎭澤有庭訓之襲文字之識, 而能如是, 如是而又無人贊揚之者, 余所謂'貴任眞而惜無傳'者, 此也." 論曰: "孝子固難, 而孝孫尤爲難, 何也.以親言之, 則祖不如父也, 善事祖, 固爲孝, 而善事喪子之祖, 尤爲孝, 何也.代盡亡父未盡之孝者, 非惟孝祖而亦爲孝父也.余故曰: '天下未有能孝其祖而不孝其父母者'也.若魯君之善事其母, 今雖不言, 可以推知矣.嗚呼, 余於弱冠有六, 背先子奉祖母, 凡八年, 壽九十四而卒, 追念志物之養, 有愧魯君多矣.書此而不勝感歎云. 늙어서……나이 '노전(老傳)'은 《예기(禮記)》 〈곡례 상(曲禮上)〉에 "70세를 '노(老)'라고 하며 이때에 가사(家事)를 아들에게 전한다.〔七十曰老而傳〕"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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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선 전 李止善傳 이지선(李止善)은 나와 같은 마을 사람이다. 집안이 대단히 가난하여 살림을 꾸려갈 수 없을 정도였는데, 부모가 늙고 병들어 남의 집에서 품 팔아 하루하루 생계를 꾸려갔다. 맛난 음식을 얻으면 품에 넣어 돌아가 부모에게 올렸으며, 얻은 담배도 또한 가져가 바쳤다. 일한 돈으로 부모의 식량을 마련하였으니, 십 수 년을 이처럼 하였다.30살이 되어도 장가를 들지 못하자 어떤 사람이 권하기를 "천지 만물도 모두 짝이 있는데, 더구나 사람이랴. 아들을 위해 아내를 두는 것은 부모의 마음이다. 그러나 부모가 능력이 없으면 내가 마땅히 스스로 해야 하니, 그대처럼 곤궁한 자는 집을 떠나 세용(歲傭)을 하여 재물을 모아서 아내를 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너는 제대로 생각을 하지 않는구나."라고 하였다. 이에 지선이 "내가 집을 하루 떠나면 부모는 하루를 굶으며 이틀을 떠나면 이틀을 주리게 되니, 오래 되면 부모는 목숨을 보존할 수 없다. 내가 어찌 차마 아내를 두기 위해 부모가 돌아가시는 것을 보랴."라고 하였다. 사람들이 그의 어리석음을 안타깝게 여겨 '그가 비록 집을 떠나더라도 산 사람은 입에 거미줄 칠 이치가 없는데, 저가 고집을 피워 신세를 그르친다.'고 여겼다. 심지어는 기롱하여 업신여기는 자까지 있었는데, 오직 조자정(趙子貞)은 이 사람은 효자라고 하고서 조금 물품을 보내 보살펴 주었다.내가 이에 오랫동안 감탄하면서 "지금 윤리가 무너져서 비록 부유하여 편안하게 지내는 자들도 파도에 휩쓸리듯 그 부모를 잊고서 돌아보지 않는데, 이 사람은 가난 속에서 고생하면서도 다만 부모만 생각하고 자신의 몸을 생각하지 않으며 아울러 아내를 두는 급한 일을 생각하지 않으니, 천성적으로 효성이 없다면 그렇게 할 수 있으랴. 그러나 사람들이 오히려 이것으로 기롱하고 업신여기는 구설로 삼으니, 오호라! 인심의 변함과 천리가 어두워짐에 더욱 상심할 뿐이다."라 하였다.다음과 같이 논한다. "지선의 효는 참으로 숭상할 만하다. 다만 맹자가 말하기를 '불효가 세 가지가 있는데, 후손이 없는 것이 제일가는 불효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순 임금이 부모에게 고하지 않고 아내를 얻었는데,182) 권하거나 기롱하는 자의 견해가 만약 이에서 나왔다면 또한 이치가 있다고 할 것이다. 이에 대해 나는 '아니다. 그렇지 않다. 순 임금이 고하지 않고 아내를 얻은 것은 고하지 않았을 뿐이니 부모에 무슨 해를 끼쳤는가. 만약 지선이 집을 떠났다면 부모는 목숨을 보존하지 못했을 것이니, 어찌 목전의 부모를 지키지 못하면서 훗날의 효자를 후손으로 두려 하겠는가. 만일 목숨을 유지했더라도 그것은 요행에 불과하니 천리의 올바름이 아니며 인심의 편안함이 아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사람에게 일을 처리하는 방법을 가르칠 때 다만 눈앞의 도의를 구하게 하며 훗날의 이익을 계교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라 한다." 李止善, 余同里人.家極貧窮, 無以爲生, 父母老且病, 傭人家日食.有美饌則懷歸獻親, 所得烟草, 亦如之.直金以供親粮, 如是十數年.年三十, 未娶, 人有勸者曰: "天地萬物, 皆有其偶, 况於人乎.爲子有室, 父母之心, 然父母不能, 我當自爲, 盍觀如汝之窮者, 離家作歲傭聚財, 以至有室乎.汝殆未思也." 止善曰: "吾離家一日, 則親有一日之餓, 二日則有二日之餓, 久則親必不保矣, 吾何忍圖有妻子而見親之不保乎." 人多悶其癡呆以爲'渠雖離家, 生人無蛛絲罥口之理, 渠自執迷, 誤却身世', 至有譏侮者, 獨趙子貞謂是孝子, 略有賙護.余爲之感歎者, 久曰: "今倫理壞敗, 雖富厚安平者, 滔滔皆忘其親而不顧, 惟斯人空乏勞苦之中, 但知有親而不知其身, 幷不念室家之急務, 非性於孝者能然乎.然而人猶有以此作譏侮之資者, 嗚呼, 人心之變, 天理之晦, 更可寒心." 論曰: "止善之孝, 固可尙矣.但孟子有言, '不孝有三, 無後爲大.' 故舜不告而娶, 勸譏者之見, 若出乎此, 則不亦有理乎.余曰: '否, 不然, 舜之不告, 則不告而已矣.於親何損.使止善而離家, 則親不可保矣, 焉有不保親於目前, 而求有後於他日之孝子乎.如或得保, 不過爲徼倖, 非天理之正, 人心之安矣.故君子敎人處事之方, 只求當下之道義, 不計後日之功利也.'" 맹자가……얻었는데 《맹자》 〈이루 상(離婁上)〉에 "불효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그중에 후사를 잇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불효이다. 순 임금이 부모에게 아뢰면 장가갈 수 없어서 아뢰지 않고 장가갔으니, 이는 후사를 두지 못할까 염려해서였다. 그래서 군자는 부모에게 아뢴 것과 같다고 여겼다.[不孝有三, 無後爲大. 舜不告而娶, 爲無後也. 君子以爲猶告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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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 김씨 전 경진년(1940) 孺人金氏傳【庚辰】 유인 김씨는 관향이 부령(扶寧)으로 고려 명현 문정공(文貞公) 구(坵)183)의 후손이다. 학생 인성(麟成)의 증손이며 석규(錫圭)의 손녀이며 경순(景淳)의 따님이다. 증조와 부친은 효성으로 조정에 알려져 정려를 받았으며, 조부는 학문과 행실이 뛰어났다. 모친은 영광 김씨(靈光金氏) 통정(通政) 택려(宅麗)의 따님으로, 철종 경술년(1850년) 모월 모일에 태어났다.20살에 의성 김귀재(金貴載)에게 시집갔으니, 정민공(貞敏公) 지수(地粹)의 팔대 손부가 된다. 유인은 18세에 부친을 상을 당하여 몸이 상할 정도로 슬퍼하였으며 모친을 효성스럽게 섬기고 형제자매간에 우애하였다. 시집을 가게 되자 시부모를 존숭하고 남편에게 공경하였으며 동서간에 화목하였다. 30여 세에 남편이 병이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찢어 피를 입에 흘러 넣어주었으나, 끝내 목숨을 구하지는 못하였다. 이에 평생 근심을 머금고 한번도 이를 보이지 않았으며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에 참여하지 않았다. 아울러 남의 집에 오가는 것도 끊었는데, 다만 한 달에 한 번 모친을 찾아뵈었으니 이마저도 노년 이후의 일로 가까운 거리에 살았기 때문이다.아들이 없어 남편의 조카 진렬(鎭冽)을 취하여 후사로 삼았다. 두 딸은 파평 윤상국(尹相國)과 광산 김오수(金鰲洙)에게 시집갔다. 유인은 성품이 염결하여 비록 대단히 가난하여 굶주렸지만 조금도 의리에 맞지 않는 물건은 취하지 않았으며 아들과 며느리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또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으니, 대개 종신토록 가난하며 홀로 지내는 정상을 어찌 말로 다하겠는가.신축년(1901년) 7월 8일 돌아가시니 향년 52세로, 아무 산 아무 좌에 장사지냈다. 이웃에서 혀를 차고 안타까워하면서 "열부가 떠나갔구나."라고 하였으며, 모친은 탄식하면서 "우리 딸의 용모가 비록 아름답지는 않지만 실로 현철한 여인이다. 어찌 다만 효열로써만 논하겠는가."라고 하였으니, 이에서 유인의 사람됨을 알 수 있다. 돌아가신 지 3년 뒤에 사림에서 그 행실을 문서로 천거하여 《삼강록(三綱錄)》에 실렸다.오호라! 유인은 나의 둘째 고모이다. 기억하기로 예전 내가 14살 때 계재(溪齋)에서 시도(詩道)를 익힐 때 우연히 높은 등수에 올랐는데, 여러 사람들이 나를 에워싸고 말에 태워 앞뒤로 빽빽하게 따라오면서 그 시를 크게 외위며 나를 영광스럽게 여겼다. 유인의 문 앞을 지나 나의 집에 이르도록 유인은 나와 보면서 희색을 띄었으며 다음날 심부름꾼을 보내 더욱 힘쓰라고 권면하였으니, 참으로 나를 깊이 사랑하였다. 지금 묘문(墓文)을 지어서 행실과 치적을 자세히 기술하여 훗날 비석을 새기는 데 대비하려 하였으나. 그 후사가 된 아들과 장손이 모두 죽어 더불어 의논할 자가 없다. 그러므로 다만 작은 소전을 지었으나, 당시의 추천한 문서도 또한 볼 수가 없기에 직접 보고 들은 것을 대략 서술하여 이에 그친다.경진년 유인의 기일에 쓰다. 孺人金氏, 籍扶寧, 高麗名賢文貞公坵后.學生麟成曾孫, 錫圭孫, 景淳女, 曾祖及考孝聞表宅, 祖有文行.妣, 靈光金氏通政宅麗女, 以哲廟庚戌某月日生.年二十歸義城金貴載, 爲貞敏公地粹八世孫婦.孺人十八, 喪父致哀毁, 孝事母友弟妹.及適人, 尊舅姑敬夫子和妯娌, 三十餘, 夫病革, 斷指注血, 竟不救, 平生銜恤, 一不啓齒, 不參衆會, 幷絶往還, 惟課月見母夫人, 亦向老後事而居近故也.無男, 取夫之從子鎭冽爲后, 有二女, 適坡平尹相國·光山金鰲洙.孺人性廉潔, 雖極寒餓, 毫不取非義物, 子與婦不適意, 亦無言, 蓋其終身貧窮煢獨之狀, 何可盡言.以辛丑七月八日卒, 壽五十二, 葬于某山某坐.隣里嗟惜曰: "烈婦逝矣." 母夫人歎曰: "吾女貌雖不揚, 實哲媛也, 豈但以孝烈論哉." 斯可以知孺人矣.沒後三年, 士林狀薦其行, 載《三綱錄》.嗚呼, 孺人, 余仲姑也.記昔余年十四, 肄詩道溪齋也, 偶居高等, 衆擁余乘馬, 前後簇行, 歌咏其詩, 以爲榮.過孺人門至余家, 孺人出觀有喜色, 翌日專至而申勉之, 眞愛之深也.今欲爲撰墓文, 細述行治, 以備他日顯刻, 然其所後子及長孫俱沒, 無可與論者.故只得立一小傳, 而當時薦狀, 亦不可得見, 略書親所見聞者, 止此云爾.庚辰歲孺人諱辰書. 김구 1211~1278. 본관은 부령(扶寧), 자는 차산(次山), 호는 지포(止浦),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고려 말기의 학자로 원나라에 다녀온 후 《북정록》을 지었으며, 우간의대부, 정당문학·중서시랑평장사 등을 역임하였다. 통문관의 설치를 건의하였다. 이장용·유경 등과 함께 신종 ·희종 ·강종 3대의 실록을 찬수하고, 《고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문집에 《지포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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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부 김씨 전 병자년(1936) 烈婦金氏傳【丙子】 내가 태인(泰仁) 주산리(舟山里)에 절부(節婦)가 있다고 들은 지가 이미 몇 해가 되었다. 이번 봄에 그 마을을 지났는데, 마을 사람 김순거(金舜巨)는 노성하여 믿을 수 있는 사람인데 나를 위하여 절부의 일을 자세히 말해 주었다. 절부는 강진(康津) 김영환(金水煥)의 아내이며 울산(蔚山) 김태환(金台煥)의 딸이다. 이윽고 시집오니 시부모는 돌아가셨으니, 남편의 숙부 숙모 모시기를 시부모 모시는 것처럼 하여 향촌에 이름이 났다. 남편이 병이 들자 정성을 다하여 간호하였으며 남편이 죽게 되자 예에 맞게 초상을 거행하였다.같은 마을에 최진문(崔進文)이란 자가 익명으로 편지를 던져 절부의 마음을 시험하려고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자 이름을 적어 다시 편지를 보냈는데 편지의 글이 무욕(誣辱)에 가까웠다. 이에 절부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서 칼을 품고 그에게 달려가니, 그는 자신의 죄를 알고 도망가자 칼을 던져도 닿지 않았다. 이에 살림살이를 때려 부수고 돌아왔는데, 불타오르는 마음이 거세어 원통함을 씻을 수가 없었다. 한번 죽어서 자신의 결백을 밝히기로 마음먹고서 한 통의 편지를 써서 음독할 뜻을 보였지만 실패하여 사람들에 의해 목숨을 구했다. 당시는 설날을 맞아 죽도록 힘든 몸을 일으켜서 음식을 장만하여 시부모와 남편의 영전에 올렸다. 다음날 다시 강한 독약을 먹고서 남편의 숙부와 숙모에게 고하기를 "남편이 죽었는데 구차하게 오늘까지 목숨을 유지한 것은 아이가 자라기를 기다린 것입니다. 운명이 기구하여 이렇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당하였으니, 죽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주머니에 화폐 15원과 장자에 비단 약간이 있으니 훗날 아들을 위해 쓰십시오."라고 부탁하고서 세상을 떠났다. 당시 유인의 나이는 28살이며 아이는 7살이었다.내가 듣고서 슬퍼하기를 "죽고 사는 것은 사람에게 매우 큰일이며, 아들을 사랑하는 것은 사람의 지극한 정이다. 지금 왕성한 나이에 어린 아들을 버리고 죽으니 어찌 하고 싶은 바가 살고 싶은 것보다 더한 것이 있고 사랑한 바가 아들보다 심한 것이 있지 않으랴. 절부 같은 이는 다만 천하에 한 개 '의(義)'만 알고 이른바 자신과 아들이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는 알 바가 아니었다. 고금 사대부 가운데 이름난 자를 낱낱이 헤아려보아도 오히려 이것을 하기는 어려운데, 이에 외딴 시골 한 부인이 능히 하였으니, 내가 이에 슬퍼하면서 마지않고 장한 일이라 여기기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이윽고 수환(水煥)의 숙부 아무개가 본군의 사림으로 있으면서 그 일을 천양하고 기록을 보내 나에게 보여주니, 그 글이 순거의 말과 부합한다. 그 글에서 또한 '수환의 모친 의성 김씨 또한 18살에 과부가 되어 절개를 굳게 지키다가 타계하였다.'고 하였으니, 대개 절부의 절개는 참으로 그 자체로 뛰어난데, 한 집안에 시모와 며느리가 함께 절개를 지킨 아름다운 행실이 있으니, 오호라 훌륭하도다.다음과 같이 논한다. "생각건대 절부의 죽음은 대단히 급격한 것으로, 저놈의 무욕(誣辱)을 들어 고을에 드러내고 관가에 알려서 만일 깨끗하게 무욕을 씻었다면 절로 죽을 일이 없었을 것이다. 만일 그렇게 행동하여 무욕을 씻지 못하였다면 그 때 죽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학자들이 이른바 '강구해야 할 중도(中道)'에 해당하니, 그럴 듯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대개 세상이 쇠퇴하고 이치가 막힌 이후로 세력가(勢力家)가 행세한 것이 오래되었다. 지금의 향촌에 어찌 공론이 있으며, 지금의 관가에 어찌 공법(公法)이 있으랴. 세력가가 반드시 시비를 모호하게 하여 옳고 그름이 없어져서 다만 저놈의 무욕을 돕고 유인의 원한만 늘게 하였으니, 어찌 그렇지 않다고 확신하겠는가. 그러므로 나쁜 것을 예방할 때는 지나칠 것인가에 대해서는 근심하지 말며 의리에 맞는 행동을 할 때는 엄격하지 못할 것을 두려워해야 하니, 절부는 일찍 이것에 대해 본 것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 저 진문이란 놈을 보건대 마을에서 으스대면서 살아도 누가 머라 하는 사람이 없으며 절부가 죽은 뒤에도 여전히 그러하니, 더구나 그 당시에랴. 오호라! 절부는 이에서 보면 현철한 여인이로다." 余聞泰仁舟山之里, 有節婦焉者, 已年所矣.今春過其里, 里人金舜巨, 老成信實人, 爲余道節婦事甚詳.節婦, 康津金水煥妻, 蔚山金台煥女.旣歸, 舅姑不在, 事夫之叔父母如舅姑, 譽著鄕井.夫嬰疾, 殫誠救護, 及當晝哭, 執喪如禮.同里有崔進文者, 匿名投書, 欲試節婦心而不得, 則再書書名, 辭涉誣辱, 節婦不勝義憤, 懷刃赴彼, 彼知罪奔躱, 擲刃不及, 乃打破其家産什物而歸, 燬心萬回, 寃不得雪, 決以一死自明, 裁一封書, 示志飮毒不中, 被人急救.時値正朝, 扶死執爨, 薦舅姑奠夫靈, 翌日再服重毒, 告夫之叔父母曰: "夫亡而苟延今日者, 待兒子稍長矣.命道崎嶇, 遭此莫雪之辱, 不若死之爲愈.囊有貨幣十五圓·箱帛若干, 他日用於兒子." 言託而逝, 時年二十八, 兒生七歲矣. 余聞而悲之曰: "死生, 人之大事, 愛子, 人之至情.今以盛年棄幼子而死之, 豈非以所欲, 有甚於生, 所愛, 有甚於子乎.若節婦者, 只知天下有一箇義字, 而不知有所謂身與子者矣.歷數今古士夫之顯名者, 猶難乎此, 乃以窮閭一婦人而能之, 余於是又不悲而壯之不已." 已而水煥之叔父某, 以本郡士林闡揚, 狀來示余, 其文與舜巨言相符, 其文又言'水煥之母, 義城金氏, 亦十八而孀, 苦節而終', 蓋節婦之節, 固自卓異, 而一家二節, 姑婦濟美, 嗚呼盛哉.論曰: "有謂節婦之死太遽, 擧彼誣辱, 暴之于鄕, 訴之于官, 如得雪白, 自無事乎死.如其未然, 死且未晩, 此乃學者所謂'講求中道'者, 似然而實不然.蓋自世衰理遏, 而勢行也久矣, 今之鄕黨, 豈有公論, 今之官司, 豈有公法.勢必糊塗是非, 無皀無白, 適足以助彼之誣, 而增此之寃, 安知其不然乎.故防慮不患其過, 裁義惟恐不嚴, 節婦蓋早見於此矣.今觀彼進文者, 揚揚州里間, 而莫敢誰何, 節婦死而猶然, 而况於當日乎.嗚呼, 節婦於是乎哲媛矣."後滄先生文集卷之二十五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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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26 卷之二十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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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숙명 【최광호를 계칙함. 을축년(1925)】 端肅銘 【戒崔光鎬 乙丑】 너의 몸을 단정히 하고, 端爾躬,너의 얼굴을 엄숙히 하라. 肅爾容.너의 뜻을 평안히 하고, 安爾意,너의 기운을 누르라. 降爾氣.너의 음성을 조용히 하고, 靜爾聲,너의 행동을 서서히 하라. 徐爾行.의관(衣冠)을 깨끗이 하고, 潔衣巾,정신을 맑고 밝게 하라. 爽精神.이것을 해내지 못하면, 玆無得,어디에다 힘을 쓰랴. 惡乎力.너의 멋진 모습을 키우라. 壯爾帥,너의 얽힌 장애를 깨뜨려라. 破爾累.인자와 현능을 가까이 하고, 親仁賢,글 읽고 책 보는데 애쓰라. 劬簡編.처음부터 부지런히 하고, 始勤止,끝까지 그치지 말라. 終無已. 端爾躬, 肅爾容; 安爾意, 降爾氣; 靜爾聲, 徐爾行; 潔衣巾, 爽精神。 玆無得惡乎力, 壯爾帥破爾累, 親仁賢劬簡編, 始勤止終無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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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명 【최재천에게 증정함. 병인년(1926)】 尙志銘 【贈崔在千 丙寅】 어여쁘다 너의 어린 나이, 嘉乃妙齡,열 서너댓 살206) 되었구나. 間乎象勺,안연(顔淵)은 스승을 모셨고, -안연은 14세에 공자 문하에 왔다-淵逮從師,【顔子十四歲從孔門】공자님은 학문에 뜻을 두려하셨다. 尼將志學.먼 옛 사람들 돌아보며, 緬惟古人,향기로운 발자취 따라가지 않을 텐가. 盍追芳躅,다루지 말 것은 자질이고, 不及者質,높이 올릴 것은 의지이다. 可尙者志.지극한 의지로 기(氣)를 움직이고 志至動氣,철인의 가르침을 밝게 보이라. 哲訓昭示,전일한 의지로 정신을 응집하고 志專疑神,현자의 격언을 끝까지 다 이루라. 格言究致,움직인 다음에 고여 응집하고 旣動乃凝,자질이 변하여 조화로워진다 質變純如.저 공자와 안연 또한 維尼若淵,어찌 다를 바가 있었으랴! 豈在他歟?오호라, 의지로다! 於乎志乎,이를 높이 올릴지라. 其尙只且. 嘉乃妙齡, 間乎象勺, 淵逮從師【顔子十四歲從孔門】, 尼將志學。 緬惟古人, 盍追芳躅, 不及者質, 可尙者志, 志至動氣, 哲訓昭示, 志專疑神, 格言究致, 旣動乃凝, 質變純如。 維尼若淵, 豈在他歟? 於乎志乎, 其尙只且。 열 서너댓 살 원문은 '상작(象勺)'인데, 상(象)은 15세, 작(勺)은 13세를 말한다. 《예기》 〈내칙(內則)〉에 "나이 열셋이면 음악을 배우고 시를 외우며 작(勺)의 춤을 춘다. 성동(成童 : 15세)에는 상(象)의 춤을 춘다.[十有三年, 學樂誦詩, 舞勺. 成童舞象。]"이고 하였다. 《시경》의 시는 노래 가사인데, 상(象)은 시 〈유청(維淸)〉의 곡이고, 작(勺)은 〈작(酌)〉의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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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가 상길의 자사 【병인년(1926)】 朴敬可【相吉】字辭 【丙寅】 태만하면 멸망이 의당하고 怠則滅可,공경하면 길상이 의당하니, 敬則吉可,천년 이어온 단서(丹書)291)의 도리 丹書千秋,누가 그것을 의당하다 않으리. 孰不曰可.사람이 살면서 길상 얻으려면 人生獲吉,지극한 서원이 그것을 허가하리 至願攸可,어찌 스스로 공경하지 않아 胡不自敬,구하면서 못 얻을 길을 고집하랴. 求必未可.'공경하라' 이 한 방도 敬之之方,성현 가르침의 지극한 길이니, 聖訓至可,고요함 속에 지니고 길러서 靜而存養,내 안이 곧으면 이미 얻은 것이니,292) 直內旣可.움직임 속에 보고 살펴서 動而省察,지니고 일삼음 역시 얻으리니, 執事亦可,이를 일러 길상을 구함이라 하니 斯謂求吉,경(敬)이 아니면 얻지 못하네. 非敬莫可.길상 구하는 박상길의 자는 朴相吉字,경(敬)으로 얻으니 경가(敬可)가 맞네. 敬可是可,부지런히 애쓸지니 勉哉勉哉,경가(敬可)여 경(敬)하여 얻으라. 敬可敬可. 怠則滅可, 敬則吉可, 丹書千秋, 孰不曰可。 人生獲吉, 至願攸可, 胡不自敬, 求必未可。 敬之之方, 聖訓至可, 靜而存養, 直內旣可。 動而省察, 執事亦可, 斯謂求吉, 非敬莫可。 朴相吉字, 敬可是可, 勉哉勉哉, 敬可敬可。 단서(丹書) 붉은 새[赤雀]가 물고 왔다는 상고(上古)의 도(道)를 적은 글로서, 주(周) 무왕(武王)이 등극한 후 옛 황제(黃帝)•전욱(顓頊)의 도(道)가 남아있는가를 묻자 상보(尙父)가 단서에 적혀 있다고 대답하였다 한다. 공경하라……얻은 것이니 《주역》 〈곤괘(坤卦) 문언(文言)〉에 "공경으로 내면을 곧게 하고, 의로움으로 외면을 방(方)하게 한다.[敬以直內, 義以方外。]"라는 구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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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팔은동 삼형제를 위로하며 갑자년(1924) 慰金聖八殷東三兄弟 ○甲子 예서(禮書) 이외에 다시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산천이 달라지며 삼강이 끊어지고 문란해진 것이 아! 오래 되었습니다. 절개와 행실이 우뚝하고 돈독한 선비와 덕이 훌륭한 이들이 죽어서 이미 다 사라졌으니, 신령한 빛이 드높고 지주(砥柱)처럼 우뚝한 사람으로는 오직 선영감(先令監)이 계실 뿐입니다. 병환이 비록 점점 깊어진다 하더라도 정신은 날마다 또렷하고 얼굴빛은 옥처럼 깨끗하니 생각건대 8,90세까지 수를 누리시리라 생각했습니다. 오늘날 세도(世道)가 의지할 것이 있어 마침내 하늘이 되돌아오는 것을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하루 저녁에 갑자기 돌아가셨으니, 아마 하늘이 끝내 이 세상에 뜻을 두지 않은 듯합니다. 크게 놀라고 대단히 애달프니 천하를 위해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말할 겨를이 없었습니다.삼가 생각할 때, 여러 상주들의 효성스런 마음은 천성으로 타고났으니, 어버이를 잃은 슬픔과 국가를 위한 고통으로 어린 아이처럼 울어 간과 폐가 타들어 가는 상황을 마치 눈으로 목격한듯하여 말하자니 슬프고 슬픕니다. 삼가 듣자니, 몸을 해칠 정도로 슬퍼하는 것을 경계하고 가업을 잘 잇는 것이 효라고 합니다. 여러 상주들은 충의에 힘써 세상을 바로잡거나 학문을 궁구하여 도를 제창함으로써 선영감의 뜻과 사업을 빛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어른과 아이들의 큰일이니 전도가 이미 아득하고 책임이 또한 무겁습니다. 얼굴이 시커멓고 수척하여 뼈만 앙상함으로써 목숨을 먼저 상하게 하여 일생의 큰 성취를 방해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간절한 소망을 이길 길이 없습니다. 禮書之外 夫復何言? 山異河改, 綱絕維紊, 吁亦久矣! 卓節敦履, 搢紳長德, 喪逝已盡, 巋其靈光, 矻其砥柱, 惟先監在爾. 患節雖云侵尋, 神精日朗, 顏彩玉潔, 意其克享耄期. 既今世道之有賴, 終得天返之復覩, 忽焉一夕箕騎遽啟, 豈天終無意乎斯世也耶? 大驚深怛, 實爲天下公私不暇道也. 伏想僉哀執孝思根天, 風樹之悲, 家國之痛, 嬰哭孺泣, 肝乾肺焦, 如在目撃, 言之慽慽. 竊聞毀瘠是戒, 繼述爲孝, 惟僉哀執, 或勵忠義而匡世, 或究學問而倡道, 用光先令監志事. 是大小大事, 而前途既遠, 其任且重. 勿以靣墨骨立, 先傷厥生, 有妨一生大就. 區區不勝懇望之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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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석기 【임신년(1932)】 可石記 【壬申】 가석(可石) 박공(朴公)은 옛 마을에서 석담(石潭)이라 일컬어진 것으로 인하여 꿈에 어떤 대인 선생(大人先生)이 지금의 호를 써서 바꿔 주었다. 그래서 그것을 받아 호로 삼았다. 그러나 대인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또한 내려준 호가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기에 그의 벗인 나 김택술이 그 의미를 풀이하여 말하였다."'석(石)'은 단단하고 굳센 물건이며, '가(可)'는 허여한다는 말이네. 공은 단단하고 굳센 사람이니, '석'이라 허여하는 것은 참으로 마땅하네. 그 마을에서 예전 일컬음도 또한 우연이 아니고, 자나 깨나 예전 시대의 현인을 생각하여 지하에서의 명령이 있게 된 데에 이른 것이네. 이미 그 덕을 헤아려 실제에 맞는 호를 내려 주고, 아울러 혐의를 피하여 현인을 공경하는 예를 온전히 갖추게 한 것도 또한 한결같이 지극한 정성이 신(神)을 감동시킨 결과이니, 대인 선생은 참으로 석담(石潭) 이 선생(李先生 이이(李珥))일 것이네.삼가 생각건대, 그 능력을 허여하되 부족한 것을 권면하는 것은 성현이 사람을 가르치는 뜻이지만, 신이 '가석'이라 고해준 뜻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을 듯하니, 내가 청컨대 그 깊은 뜻을 대신 드러내 보겠네.대저 돌 가운데 지극히 아름다운 것은 옥이지만, 옥도 또한 돌이네. 단단하고 굳센 것만으로도 비록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온화하고 부드러운 기운이 흐르는 양질의 옥이 된 뒤에야 지극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네. 이는 군자가 강직하고 굳세며 견고하고 강인한 의지로 의리를 침범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순수하고 민연(泯然)하여 마음이 인(仁)에 편안한 것만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네.공은 잘하는 것과 부족한 것 사이에서 의당 스스로 힘쓸 바를 알았고, 마침내 신의 은혜를 누렸으니, 꿈이 실제의 일이 아니라고 하여 그 호를 삼은 자도 미혹하고, 그것을 풀이한 자도 미혹하다고 의심을 두는 것은 고루한 일이네. 대저 공자가 꿈에서 주공을 본 것에 대해 실제의 일이 아니라고 의심하는 자가 있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으니, 지금 가석이 현인을 사모하는 정성으로 꿈에 석담을 만난 것을 어찌 믿지 못하겠는가.석담은 우리나라의 성인이니, 바로 돌 가운데 옥이네. 석담을 사모하고 석담을 꿈꾸며 그 가르침을 받들고 그 덕을 스승으로 삼았으니, 어찌 공이 돌에서 옥이 되는 데에 이미 반 이상은 이루어진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인하여 이를 기록하고 그렇게 되기를 기다리네." 可石 朴公, 因舊里稱以石潭, 夢有大人先生, 書今號而改錫, 故受而居之.然不知大人之爲誰, 亦莫知所錫之爲何意也.友人金澤述解之曰: "石者堅剛之物, 可者許與之辭.公堅剛人也, 許之以石, 固其宜也.其里其稱舊, 亦非偶, 而寤寐前哲, 至有冥詔.旣量其德, 而錫以當實之號, 幷使避嫌而備全敬賢之禮, 亦一至諴感神之致也.大人先生, 其眞石潭 李先生乎.竊惟許其能而勉不足, 聖賢敎人意也, 神告可石之意, 恐不止此, 吾請替發其蘊.夫石之至美者爲玉, 玉亦石也.堅剛雖曰美矣, 必爲良玉之溫潤, 然後至焉, 有似乎君子之剛毅堅忍, 不犯乎義, 猶不若粹然泯然, 心安於仁也.公於能與不足之間, 宜知所以自勉, 而卒享神惠也, 有疑以夢者非眞, 居其號者迷也, 解之者亦迷也, 則固矣.夫孔子之夢見周公, 未聞有以非眞疑之者.今以可石慕賢之誠而豈不信夢拜石潭? 石潭東方聖人, 乃石中玉也.慕石夢石, 承其敎師其德, 豈非公自石至玉之思過半者乎? 因記而俟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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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재 소장에게 답함 答悅齋蘇丈 丁丑 정축년(1937)일전에 나아가 찾아뵌 것은 2년의 계획 끝에 나온 것인데, 마침 밖으로 외출을 하셔서 가르침을 받들지 못하였으므로 매우 서운하였습니다. 그래도 아드님을 만났는데, 대접이 정성스럽고 응대가 명쾌하여 사람 마음을 대단히 흔쾌하게 하였으니, 참으로 어른과 닮은 사람을 보았다고 말할 만하여 이로써 위로를 삼았습니다. 이전에 얼핏 아드님께서 변형57)을 면하지 못했다는 소문을 듣고, 가정의 엄격한 교훈으로 이에는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오늘날 젊은 사람 중에는 간혹 그런 경우가 있기 때문에 마음으로는 비록 믿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와전임을 통렬히 변론하지는 못했는데, 오늘 이후에야 전통을 지닌 오래된 집안의 의방(義方)이 자연 다른 바가 있다는 것을 더욱 알았습니다. 약관의 나이에 뜻이 고상한 것도 쉽게 얻을 수 없으니, 더욱 위로가 되었습니다.돌아와서 얼마 안 되어 보내주신 편지를 받고, 만남이 어긋나서 매우 슬프고 한스러워 하셨다는 것을 자세히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간의 자세한 동정을 물으시고 아울러 더욱 편안히 왕래하라는 뜻을 보여주셨으니, 아, 저를 깊이 사랑하는 것이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까지 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젊은 사람이 미처 겨를을 내지 못했는데 높으신 분이 먼저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감격하는 마음은 비록 깊으나 송구한 마음 또한 지극합니다.시생은 몸에는 누더기 옷을 입고 밖으로는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지경58)이니, 이러한 때에 이러한 모습은 족히 받들어 아뢸 것이 없습니다. 오직 이 몸과 네 명의 아들, 세 명의 동생, 한 명의 조카인 아홉 식구가 옛 의관을 현재도 보존하여 바꾸지 않고 있으니, 나라 안을 두루 돌아보더라도 아마 우리와 짝할 사람은 적을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이러한 모양 또한 특이한 일이니, 이것이 영광이 될지 욕이 될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또 논자들이 어떻게 보느냐를 막론하고 다만 앞으로는 잘 끝맺기가 어려운 것을 근심할 뿐입니다.가만히 생각건대, 우리 어른은 올해 나이가 팔순에 다가섰습니다. 사람은 말년에 큰일을 하기 마련이고 또한 세상의 혼란함이 이러할 때에는 젊은이가 죽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시생과 우리 어른은 살아서는 의리를 함께 하고 죽어서는 함께 열전에 오르는 처지59)라고 말할 만한데, 한 번 만나서 문후를 하고는 걸핏하면 몇 년이 지나니, 지난날을 통해서 장래를 추론하건대 앞날을 알 수가 있습니다. 다소의 문자 의리를 모두 강론하여 정하지 못했는데 이에 대해 어찌 영원한 후세에 다소의 유감이 없겠습니까? 삼가 우리 어른께서도 때때로 생각이 이것에 미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날 나아가 은혜를 받은 것도 사실은 이것에 있었는데 이미 이루지 못하였으니, 마땅히 하교(下教)하신 대로 가을 사이에 정산에서 찾아뵈었어야 했으나 이 또한 그러지를 못하였습니다. 이에 어쩔 수 없이 다시 찾아뵐 계획을 도모할 뿐입니다.지난번에 아드님이 근래에 그린 존영(尊影)을 보여 주었는데, 아주 비슷한 것을 보니 단지 칠푼[七分]60)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초상을 정립한 모습으로도 단좌한 모습으로도 그리지 않고, 의자에 걸터앉은 모습으로 그린 것은 아마도 온당치 않은 것 같습니다. 중세에 중국 사람들은 앉을 때 반드시 의자를 사용하였으니, 이미 의자에 앉은 이상 어쩔 수 없이 걸터앉게 됩니다. 그러나 주자가 의자를 사용하는 송나라 때에 살면서도 그 초상은 오히려 의자도 쓰지 않고 걸터앉지도 않았습니다. 하물며 우리나라는 본디 의자를 사용하지 않아서 의자의 사용이 근래의 사람들에게나 있는 데이겠습니까. 의자에 앉는 것은 우리나라 풍속에 없는 것이고, 걸터앉는 것은 또한 유자들이 잠시 동안도 불안해하던 것입니다. 이제 엄정한 유자의 복장으로 의자에 걸터앉은 초상을 후세에 전한다면 어찌 사실과 어긋나서 누를 끼침이 되지 않겠습니까? 또 영정 끝에 그린 사람을 기록한 것이 성명으로 하지 않고 별호로 했으니, 이것이 어찌 젊은 사람이 어른을 공경하는 도리겠습니까? 일찍이 선사의 영정에 채용신(蔡龍臣)이 석지(石芝)라는 호를 사용한 것을 보고 늘 마음에 흔쾌하지 않았는데, 이제 또 이것을 보니, 아마도 또한 한 때 화가의 풍습인가 봅니다. 제 견해로는 마땅히 모두 고쳐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日前造拜, 出於兩年經營, 而適值駕外, 未承誨喩, 殊甚缺然.然得見賢哥, 待遇款洽, 酬酢明爽, 大快人意, 眞可謂見其所似者, 以是爲慰.前此似聞賢哥不免變形, 想以庭訓之嚴, 不至於此.然在今日年少, 亦容有之, 故心雖不信, 亦不能痛辨其訛.今而後益知故家義方, 自有所異.弱冠志尙, 亦不易得, 尤以爲慰.歸後來幾, 獲拜下狀, 審悉具道交違悵恨之極, 問訊此間動靜之詳, 並示駕益往還之安, 噫, 非愛我之深, 烏能致此? 然少者未遑, 尊者先施, 感雖深矣, 悚亦至矣.侍生, 鶉結於身, 虎食於外, 此時此狀, 無足奉稟者.惟是身及四子三弟一姪九箇, 舊冠現保無變, 環顧域中, 想少其儔.此世此樣, 亦是異事, 未知此爲自榮耶自辱耶.且無論論之者如何, 秪以前頭克終之難爲憂耳.竊念吾丈今年迫八旬, 夫人之晩年, 大有事在, 且世亂如許, 少者之死亡, 亦無日矣.侍生之於吾丈, 可謂生同義死同傳之地, 而一番靣候, 動輒數歲, 因往推來, 前頭可知.多少文字義理之未盡講定者, 其何以不有多少遺憾於無竆也乎? 伏想吾丈, 亦時一念, 至於此也.前日之進惠, 實在此, 而旣不得遂, 則當依下敎, 以秋間拜會凈山, 又不能.然則不容不更圖進謁計耳.頃得賢哥出示近寫尊影, 見其酷似, 不但七分而已.但像不以正立, 不以端坐, 以踞坐椅上者, 恐未穩.中古中國人, 坐必用椅, 旣坐椅, 則不得不踞然.朱子當有宋用椅之時, 而其像猶不椅不踞.况於我國之本不用椅, 而椅之用, 乃在近時人乎.蓋坐椅, 國俗之所無, 踞坐, 又儒者之所斯須不安者.今以儼然儒服, 踞坐椅上, 傳之後世, 豈不爲爽實而貽累乎? 且幀末之記寫者, 不以姓名而以別號者, 是豈少者敬長之道乎? 曾於先師影幀, 見蔡龍臣用石芝之號, 尋常不快於心, 今又見此, 豈亦一世畵家之風習歟? 淺見恐當并行改正, 未知如何. 변형(變形) 단발령에 의해서 상투를 잘린 모양을 '변형'이라고 한 듯하다.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지경 원문의 '호식(虎食)'은 《장자(莊子)》 〈달생(達生)〉에 나오는 말로, 노나라의 단표(單豹)라는 사람이 은거하여 깨끗하게 살면서 속세의 이끗을 다투지 않았으나 불행히도 굶주린 호랑이를 만나 잡아먹힌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이는 안으로 정신만 수양하고 밖으로 몸의 단련을 소홀히 한 것을 말한다. 살아서는……처지 송나라 때 명신인 범진(范鎭)은 사마광(司馬光)과 우의가 두터웠는데, 사마광에게 "그대와는 살아서 뜻을 함께하고 죽어서 전을 함께할 것이다.〔與子生同志死同傳〕"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치의집전(緇衣集傳)》 권3 〈일류장(壹類章)〉 중국의 기전체(紀傳體) 역사서에서는 성향이 같은 인물을 한 열전(列傳)에 모아 엮기 때문에 한 말로, 이 말은 뜻을 같이 하였다는 의미이다. 칠푼[七分] 초상으로 그 사람의 모습을 잘 표현하였음을 말한다. 정이(程頤)가 《역전(易傳)》을 짓고서 문인들에게 주며 "단지 7분만 말한 것이니, 배우는 사람들은 반드시 다시 스스로 살피고 궁구해야 한다.〔只說得七分 學者更須自體究〕"라고 하였는데, 문인인 장역(張繹)이 그에 대한 제문을 지으면서 그의 말을 인용하여 "선생의 말씀으로 문자에 드러난 것은 7분의 마음이 있고, 단청으로 그려진 것은 7분의 용모가 있다.〔先生有言見於文字者 有七分之心 繪於丹靑者 有七分之儀〕"라고 하였다. 《二程全書 附錄 祭文》 글이나 그림으로는 그 사람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 7분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족숙(族叔) 가암(可庵) 김낙필(金洛弼) 노인에게 올림 정사년(1917) 上老可庵叔洛 ○丁巳 천시(天時)는 인력으로 머물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예제(禮制)는 선왕이 정한 것입니다. 입었던 삼베옷이 칡베옷으로 바뀌고 깔고 앉았던 거적이 흙으로 바람을 막은 방으로 바뀌니, 가슴을 쓸어내리며 개탄하면서 다만 처음 상을 당했을 때처럼 아픈 마음이 절실할 뿐입니다. 이러한 때에 편지를 받았는데, 지극히 정성스럽게 위문해 주셔서 감격하고 또 눈물을 흘렸으니, 완연히 얼굴을 뵙고 속마음을 호소한 것 같았습니다.화양(華陽)을 왕복하는 천리 길을 아무 탈 없이 편안하셨다 하니, 소식을 듣고 매우 위로가 되고 다행이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니, 두 분 황제의 영령에 술잔을 올리며 쇠망한 나라가 이미 아득해졌음을 통탄하고,61) 대로(大老 송시열)의 묘소에 절을 올리며 통서가 계승되지 않음을 걱정하셨을 것입니다. 두루 주밀하게 주선하는 것을 바라보시던 끝에 감회가 슬프고 생각이 유유하여 응당 동지로 말할 만한 사람이 있으셨을 터인데, 문하에서 듣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뿐입니다.조카의 여묘살이는 선친의 뜻을 잇기 위한 것이라 억지로 힘써 미봉이나 하는 것이 과도하게 칭찬을 입으니 이미 너무도 부끄러워 땀이 흐르는데, 문조(門租 문중 재산)를 내어 여묘살이의 식량을 지급해 주시기까지 하시니 더욱 뜻밖이라서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종족 중에 어려움을 당한 자가 허다한데 유독 조카에게 베풀어 주시는 것은 반드시 예를 집행함에 있어 근사한 명분이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에 있어 염치를 무릅쓰고 받는다면 정당히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닌 것이 부끄럽고, 끝까지 사양한다면 이미 어른의 뜻에서 나와 여러 사람들의 논의로 정해진 것인 만큼 집안 자제의 도리 상 감히 공손치 못한 거절62)을 할 수 없는 점이 있습니다. 이에 거듭 반복해서 생각한 끝에 한 가지 방안을 얻었습니다. 족숙께서 이 일을 주장하신 것은 아마도 조카인 저를 사적으로 사랑해서가 아니라 다만 이것으로 격려할 거리를 삼아서 능하지 못한 것을 더욱 힘써 그 끝을 신중히 마치도록 하려는 것이고, 또한 집안의 후배들이 조금이라도 본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것은 실로 온 집안의 족속들을 가르치는 공적인 일입니다. 제가 비록 못났으나 감히 지극한 뜻을 받들어 부응할 것을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보내주신 식량과 돈을 이미 삼가 절하고 받았습니다. 다만 마땅히 이 몸을 더욱 공경히 하여 혹시라도 어긋남이 없게 함으로써 보답하지 않는 보답63)을 삼겠습니다. 天時, 非人力所留, 禮制, 是先王所定.麻變而爲葛, 苫變而爲垔, 撫膺慨然, 只切如新之痛際, 承下狀, 問訊周摯, 以感以泣, 宛若拜顏訴懷也.華陽之駕往返千里, 無擾利稅, 聞甚慰幸.竊想, 酹二帝之靈, 痛風泉之旣邈, 拜大老之墓, 憂統緒之無繼.觀瞻周旋之餘, 悵然者懷, 悠然者思, 應有可以語同志者, 恨未獲聽於門下也.姪之廬墓, 爲繼先志, 而勉強彌縫者, 過蒙獎贊, 已極報汗, 至於出門租給廬粮, 尤料外, 而不敢當者.凡宗族間遭艱者許多, 而獨施於姪者, 必以其近似乎執禮也.於此而冒受, 則愧非其人, 欲固辭, 則旣已出自尊意, 而定于僉議, 門子弟道, 有不敢爲不恭之卻者.反覆思惟, 乃得一說, 叔主此擧也, 蓋非私愛於姪, 特以此爲獎勵之資, 使益勉未能, 克愼其終, 且令門內後輩, 得以少有效法, 此實敎誨闔族之公也.顧雖無狀, 敢不思所以奉副至意乎? 故下送粮錢, 謹已拜領.第當益衹厥身, 罔或違戾, 以爲不報之報也. 두 분……통탄하고 두 분 황제는, 화양의 만동묘에 명나라 의종과 신종의 시위를 배향했으므로 의종 황제와 신종 황제를 가리킨다. 풍천(風泉)은 《시경(詩經)》의 〈비풍(匪風)〉과 〈하천(下泉)〉을 가리키는데, 모두 제후국의 사람들이 주(周) 나라를 생각하여 지은 시이다. 여기서는 망한 명나라를 가리킨다. 공손치 못한 거절 《맹자(孟子)》 〈만장 하(萬章下)〉에, "존귀한 분이 물건을 줄 경우 '그분이 이 물건을 취한 것이 의일까 불의일까?' 생각하여 의에 맞은 뒤에 받는다면, 이것을 공손치 못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거절하지 않는 것이다.〔尊者賜之 曰其所取之者 義乎不義乎 而後受之 以是爲不恭 故弗卻也〕"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보답하지 않는 보답 원문의 '불보지보(不報爲報)'는 《능엄경(楞嚴經)》의 "이 심신을 가지고 세상의 중생을 받드는 것, 이것을 이름하여 부처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라 한다.〔將此心身 奉塵刹 是則名爲報佛恩〕"라는 구절의 주석에 "성과를 얻고 중생을 제도하는 것은 부처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지만 이것을 보답으로 삼으니, 이것이 보답하지 않는 보답이다.〔得聖果度衆生, 無與於報佛, 而以此爲報, 此不報之報也〕"라고 한 데서 나온 말로, 대개는 벼슬하여 헌신하는 것이 임금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나 비방을 받고 일을 그르쳐 임금에게 심려를 끼치는 것보다는 차라리 벼슬에서 물러나 소란을 야기하지 않는 것이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 된다는 의미로 쓰이는데, 여기서는 직접적인 보답이 아닌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사람이 됨으로써 보답하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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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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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족숙 창암(鬯庵)【낙규(洛奎)】, 함재(涵齋)【낙두(洛斗)】에게 답함 을축년(1925) 答鬯庵【洛奎】涵齋【洛斗】族叔 乙丑 오늘 아침은 해가 새롭고 달이 새롭고 일자가 새로운 때입니다. 천도가 이미 새로우니, 인사가 어찌 유독 그렇지 않겠습니까? 음기가 다해서 이미 물러났으니 일음(一陰)의 무함64)이 장차 사그라짐을 볼 수 있을 것이고, 삼양이 비로소 돌아왔으니65) 육양(六陽)의 덕이 크게 빛남을 흔연히 볼 것입니다. 천도와 인사가 서로 관련된 것이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지만 또한 사람이 마음을 경건히 하고 하늘을 받들며 음기를 억누르고 양기를 부지하며 바름을 지키고 사악함을 물리쳐서 천리를 밝히고 인심을 바르게 하며 세도를 돕고 사람의 떳떳한 본성을 세우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역(周易)》에 "천지의 도를 마름질하여 이룬다." 하였고,66) 전(傳)에 "천지의 화육(化育)을 도울 수 있다." 하였으니,67) 어찌 감히 힘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오호라! 근래에 사문(師門)의 일은 비록 불행이라 하겠지만 또한 다행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밝고 밝은 우리 육양옹(六陽翁 간재 전우)의 더할 수 없는 가을 햇살 같은 밝음이 한 음인(陰人 오진영)의 어둡게 퇴색시키는 것을 심하게 입어서 인가를 지시했다는 무함으로 온 나라에 의심과 비방을 가득 차게 하였으니, 그 어떤 불행이 이보다 심하겠습니까? 이에 우리 함재 족숙이 계셔서 처음에는 편지를 보내 인가받는 것을 배척하고, 마지막에는 의리에 의거하여 무함을 성토하여 글자마다 혈성이 서리고 구절마다 충심이 깃들인 "결단코 나 자신을 욕보이는 것이다."라고 하신 유서68)로 하여금 천하와 후세에 널리 알려지게 하여 선사의 마음을 중천의 해와 달보다 밝아지게 하였으니, 그 다행함은 또한 무엇이 이것보다 크겠습니까? 도적놈을 몰아내다가 도리어 적반하장을 당하는 것은 옛날부터 그러했습니다. 그러므로 저들 무리가 간사한 문서와 감춰둔 적반하장의 무함으로 더럽히고 멸시하다가 할 수 없으면 다시 사문을 핍박한다는 말로 사람들의 이목을 현혹시킴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나 저들의 정상은 몸속의 폐와 간을 보는 듯 훤합니다. 설사 정말로 핍박한 죄가 있었더라도 마땅히 그 당시에 따져 물었어야지 무함을 성토한 뒤에 발설하여 자신의 유감을 풀어서는 옳지 않습니다. 하물며 완전히 날조한 허위로 결론이 났으니 말해 뭐하겠습니까.스승과 제자 사이에는 허물을 대놓고 간함도 없고 은미하게 간함도 없습니다.69) 그러므로 의심나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질문하고 생각이 있으면 반드시 토로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한훤당(寒暄堂 김굉필)이 계집종을 호되게 꾸짖어 말투가 매우 사나웠는데, 정암(靜庵 조광조)이 나아가 말하기를, "군자는 말투를 성찰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하니, 한훤당이 손을 맞잡고 칭찬했습니다.70) 계화도(繼華島)에 있었을 때 창암 족숙의 '말이 공손해야 한다'고 고한 것과 선사의 '참으로 옳다'는 가르침은 한훤당과 정암이 이미 행한 일과 더불어 세대는 다르지만 일이 부절처럼 부합될 만합니다. 그런데 저들이 마침내 이 일로 죄를 삼았으니, 저들이 허물을 샅샅이 찾기에 온 힘을 들였어도 얻은 것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저의 경우에 이르러서는 이쪽 문자가 간혹 저의 졸렬한 솜씨에서 나온 것이 심히 저들의 눈엣가시가 되어서 마침내 거짓으로 스승의 명을 바꾸어 묘표를 고쳤다는 죄목과 거상(居喪)에 예의가 없었다는 죄안을 당했습니다. 옛날 사람들 중에는 스승을 위하여 죽음에 이른 자도 있으니, 오늘날 저들의 독설을 만난 것이 무슨 신경 쓸 것이 있겠습니까마는 다만 오진영이 아무 턱도 없이 없는 사실을 날조하여 모함에 빠뜨리고 이전의 말을 한결같이 뒤집으니, 인성을 갖추지 못한 자인가 의심스럽니다. 제가 만약에 거짓으로 스승의 명을 바꾸어 묘표를 고친 자라면 오진영이 무엇 때문에 전후로 논의를 달리 했던 것을 스스로 송구스러워 하여 돌려 전해준 뒤에 편지를 보내 사과를 했겠으며, 만약에 거상하면서 예의가 없었던 자라면 오진영이 무엇 때문에 고려 말세의 풍속에서 포은(圃隱 정몽주)의 고상한 행실이 다행스럽게도 봉장(奉狀)을 만났던 것으로 여묘(廬墓)하는 날에 칭찬을 했겠습니까? 아주 괴상하기 짝이 없습니다.선사께서는 해처럼 빛나고 옥처럼 깨끗하건만 인가를 받을 뜻이 있으셨다느니 인가를 지시하셨다느니 하는 무함을 입으셨으며, 손수 쓰신 마음이 드러난 유서가 못을 끊고 쇠를 자른 듯 분명하건만 가짜 유서라는 배척을 당했는데, 하물며 우리 같은 사람이겠습니까? 선사에 대해서도 저들이 오히려 꺼리지 않는데, 하물며 나머지 사람들이겠습니까? 선사의 무함을 아직도 확실히 씻어내지 못했으니 자신의 몸을 돌볼 겨를이 있겠습니까? 다만 내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다는 것을 믿고 스스로 나의 의리를 다하기를 구할 뿐이니, 어떻게 여기실지 모르겠습니다.선사께서는 사천년 도학가에 최후의 한사람입니다. 도학가 최후의 한사람으로서 만약에 일제의 인가를 받아 문집을 발간하려는 뜻이 있었다면 이것은 천하의 큰 불의이니, 큰 불의로써 스승을 무함하는 것은 천하의 큰 죄입니다. 지금 오진영이 자칭 수제자라 하면서 사천년 도학가에 최후의 한사람인 선사를 천하의 큰 불의로 무함하니, 그 스스로 빠진 큰 죄는 진실로 용서할 수 없습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그의 수제자라는 호칭 때문에 그 무함을 믿는다면, 이것은 세도의 큰 해악입니다. 오늘날 해야 할 일은 천하의 큰 불의로 만든 무함을 변론하고 천하의 용납하지 못할 큰 죄를 성토하여 이로써 사천년 도학가에 최후의 한 사람인 선사의 심사를 밝히고, 이로써 세도의 큰 해악을 제거하는 것이니, 진실로 천하 만세의 큰일입니다. 오도(吾道)가 보존되느냐 망하느냐와 생민(生民)이 사람이 되느냐 짐승이 되느냐가 모두 이 일에 달려 있으니, 한 집안이나 한 나라의 흥패에 비할 것이 아닙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다른 일은 놓아두고 이 일에 전심하여 천하의 큰 공을 세우십시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今朝, 歲新月新日新也.天道旣新, 人事奚獨不然? 竆陰已退, 一陰誣之將熄, 可見矣.三陽載回, 六陽德之孔昭, 欣覩矣.天道人事之相關, 雖然如此, 亦在人虔心奉天, 抑陰扶陽, 守正斥邪, 以明天理正人心, 補世道立民彝也.故易曰: "裁成天地之道" 傳曰: "可以贊天地之化育" 曷敢不勗哉?鳴呼, 近日師門之事, 雖曰不幸, 亦可云幸矣.皜皜我六陽翁之秋陽不可尙者, 厚被一陰人之䵝昧, 以認誣漲疑, 謗於四海, 其不幸孰甚焉? 乃有吾涵齋族叔, 始投書而斥認, 終據義而討誣, 使字血句忠, 決是自辱之遺書, 揚布於天下後世, 明先師之心於中天日月, 其爲幸也, 又孰大焉? 夫驅逐竊盜, 而反被荷杖, 從古然矣.故彼輩, 乃以作奸文書, 埋伏杖手之誣, 汙衊而不可得, 則有以挨逼師門之說, 眩人耳目到此, 而彼輩之情狀, 如見肺肝.使實有挨逼之罪, 當於當日問之, 不宜發之於討誣之後, 以逞其憾, 而况全歸於構虛哉.蓋師生之間, 無犯無隱.故有疑必質, 有懷必吐.昔寒暄堂盛責婢子, 辭氣頗厲.靜庵進曰: "君子辭氣, 不可不省察也", 寒暄握手稱之.華島日, 鬯庵叔主言遜之告, 先師誠是之敎, 可與寒靜已事, 異世同符, 彼輩乃以此爲罪, 可見其疲於吹覔而無得也.至於澤述, 以此邊文字之或出於拙手, 深爲彼輩之眼釘, 竟遭幻命改表之目, 居喪無禮之案.古之人有爲師而至死者, 今之逢彼毒噬, 何足介意, 但震之白地揑陷, 一反前言, 疑若不具人性者也.我若幻師命改表者, 震也何以以前後貳論自悚, 而致書謝之於還傳之後也? 若居喪而無禮者, 震也何以以麗氏末俗圃老高行之幸覯奉狀, 贊之於廬墓之日也? 絶可怪也.先師之日光玉潔也, 而被認意敎之誣, 手筆心畫之斬釘截鐵, 而遭僞遺書之斥, 况如吾輩者乎.先師乎而彼猶不憚, 况於餘人乎? 先師之誣, 且未昭雪, 遑恤於自身乎? 只信不愧吾心, 只求自盡吾義而已, 未知如何.先師, 四千年道學家最後一人也.以道學家最後一人, 如有戴認刊稿之意, 是天下之大不義也, 誣其師以大不義, 天下之大罪也.今震泳以所稱高足者, 誣四千年最後一人之先師, 以天下之大不義, 彼其自陷大罪, 固在罔赦, 如有人以其高足之稱, 而信其誣, 則是世道之大害也.今日之役, 辨天下大不義之誣, 討天下所不容之大罪, 以明四千年最後一人之心事, 以除世道之大害, 誠天下萬世之大事也.吾道之存亡, 生民之人獸, 皆係於此, 非一家一國興廢之比也.伏願舍置他務, 專心此事, 以立天下之大功, 如何. 일음(一陰)의 무함 일음은 음성의 오진영을 비유한 말로 이 구절은 인사를 말한 것이다. 앞 구절의 '음기가 다해서 물러났다'는 것은 천도를 말한 것으로 순음(純陰)의 달인 10월을 상징하는 곤괘(坤卦)의 내괘 3효가 음효에서 양효로 하나씩 바뀌어 새해 정월에는 모두 양효가 되기 때문에 음기가 물러났다고 말한 것이다. 삼양이 비로소 돌아왔으니 정월을 상징하는 태괘(泰卦)의 내괘 3효가 모두 양효가 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천도를 말한 것이다. 뒤 구절에 나오는 육양은 순양(純陽)의 달인 4월에 6효가 모두 양효가 된 것을 말하는데, 이 구절은 인사를 말한 것으로 육양은 간재 전우를 비유한 것이다. 주역에……하였고 이 말은 《주역(周易)》 〈태괘(泰卦)〉에 나오는 말로, "하늘과 땅의 기운이 서로 통하는 것이 태괘이다. 제왕은 이로써 천지의 도를 지나침 없이 이루고 천지의 마땅함을 모자람 없이 도와서 백성을 보호하고 인도한다.〔天地交泰 后以財成天地之道 輔相天地之宜 以左右民〕" 하였다. 전(傳)에……하였으니 전은 《중용(中庸)》을 가리킨다. 이 말은 《중용장구(中庸章句)》 제22장에 나온다. 결코……유서 이 유서는 간재의 신해년 유서를 말하는데, 이 유서에서 "만약 저 일인(日人)에게 청원하여 문집을 간행하고 배포할 계획을 삼는 자는 결단코 나 자신을 욕보이는 것이다.〔若請願於彼以爲刊布之計者 決是自辱〕"라고 한 것을 말한다. 허물을……없습니다 《소학(小學)》 〈명륜(明倫)〉에 나오는 말로, 스승을 섬길 때 안색을 범하여 직간함도 없고 은미하게 간함도 없으니, 스승과 제자 사이는 의문이 있는 곳이나 논란할 것이 생기면 곧바로 말하여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옛날에……칭찬했습니다 《정암집(整庵集)》 〈연보(年譜)〉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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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부친의 악요당 원시에 차운함 병오년(1955) ○이하 같음 謹次家君樂要堂原韻 【丙午○下同】 악요당이라 명명한 우리 부친의 거처에 命堂樂要我親居부친의 비석이 찬란히 빛나고 있도다 臼老銘章正煥如후손에게 가르침은 효제로써 전하였고 裕後經綸傳孝悌보셨던 책들의 취미는 시종 통하였네 閱篇趣味貫終初비녀와 갓끈은 분수가 아니라 힘쓰지 않으셨고 簪纓未可營非分금과 비단은 굳이 쌓아 남게 하지도 않으셨네 金帛何須積有餘경계한 말21)과 중요한 말씀22) 아울러 소중히 간직하여 懷簡書紳兼至重평생토록 마음에 새겨 힘쓰리라 一生佩服勖存諸 命堂樂要我親居,臼老銘章正煥如.裕後經綸傳孝悌,閱篇趣味貫終初.簪纓未可營非分,金帛何須積有餘?懷簡書紳兼至重,一生佩服勖存諸. 경계한 말 《시경》〈소아(小雅) 출거(出車)〉에, "어찌 돌아가고 싶지 않으리오마는, 이 간서(簡書)가 두려워라.〔豈不懷歸 畏此簡書〕" 하였는데, 비록 돌아가 쉬고 싶어도 임금의 계명(戒命) 간서가 두려워서 열심히 업무에 종사한다는 뜻인데, 여기에서는 선조가 경계한 유지를 잘 받들어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힘쓰겠다는 뜻이다 중요한 말씀 원문 '서신(書紳)'은 중요한 말을 잊지 않도록 허리에 맨 띠에 적어 두는 것으로, 공자가 충신(忠信)과 독경(篤敬)에 관해 말하자 자장(子張)이 이를 띠에 적었던 데서 유래한다. 《論語 衛靈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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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연재 선생49)의 대상에 슬픔에 젖어 宋淵齋先生大祥時感歎 나라와 도를 위해 순의하셨으니 于道于邦殉義幷고금 천년에 선생을 우러러본다네 古今千載見先生팔방의 많은 선비 태산과 북두처럼 바라보니 八方多士瞻山斗수십대에 걸친 유가에 맹주가 되셨다네 十代斯文作主盟붉은 휘장 쳤을 때50) 남쪽으로 가던 날 모신 적 있고 絳帳曾陪南駕日검은 옷 입었을 때51) 북쪽으로 가려는 정성 늘 간절했지 緇衣每切北趨誠지금은 영연 거둬 달려와 곡하는 이 없는데 迨玆靈撤無奔哭어찌 전쟁이 길목마다 가득한가 其柰干戈滿路橫 于道于邦殉義幷,古今千載見先生.八方多士瞻山斗,十代斯文作主盟.絳帳曾陪南駕日,緇衣每切北趨誠.迨玆靈撤無奔哭,其柰干戈滿路橫. 송 연재 선생 송병선(宋秉璿, 1836~1905)을 말한다. 연재는 그의 호이다. 학행(學行)으로 천거받아 좨주(祭酒)에 기용된 뒤 서연관(書筵官)·경연관(經筵官)·대사헌을 지냈다. 붉은……때 스승으로 강의하던 때를 뜻한다. 원문 '강장(絳帳)'은 후한의 마융(馬融)이 생도들을 가르칠 때 항상 고당(高堂)에 앉아 붉은 비단 휘장을 드리웠던 데에서 유래하여, 사문(師門) 강석(講席)의 경칭(敬稱)으로도 쓰인다. 《後漢書 卷60上 馬融列傳》 검은……때 조정의 관리가 되었을 때를 말한다. 원문 '치의(緇衣)'는 원래 《시경(詩經)》 정풍(鄭風)의 편명(篇名)으로, 나라의 관리가 되어서 직책을 잘 수행해 백성들이 그를 사랑했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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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들어갈 때 최경존과 김종현이 부쳐준 시를 얻어 이를 차운하여 다시 올림 入海得崔敬存金鍾賢寄詩次韻却呈 천하에 환란이 생겨 해마저 아득하고 宇內喪亂日蒼茫은자는 걱정 쌓여 미칠 듯하네 幽人積念發癡狂이미 중국 여러 나라 봤으니 후손에게 경계가 되고 旣見諸夏化裔戒다시 사악한 소리 들었으니 우관들 어지러울테지 更聞淫哇亂羽官하나의 작은 배로 나풀나풀 가는 대로 맡기려는데 一棹翩然任所之어찌 감히 망령되이 뗏목에 오를 때인지 의심하리오 何敢妄擬乘桴時먼 동해를 가리키며 서로 따르리라 맹세하였으니 遙指東海誓相從【명나라 유학자 서부원이 그러한 것이다.】 【明儒徐孚遠】외로운 섬 달밤에 쓸모없는 몸100) 눈물 흘리네 孤島月夜淚龍鍾조물주는 난세에도 끝내 태평한 시대 만들 것이니 天造草昧終必平훗날 누가 다시 백성에게 복을 내리오 異日誰復福蒼生우리들은 늙었기에 볼 수 없지만 而我老矣無及見바라건대 여러분들은 노정을 신중하게 하시오 願言諸子愼行程【주자께서 《대학》은 노정에 대한 기록이라 했다.】 【朱子謂大學爲行程曆】 宇內喪亂日蒼茫,幽人積念發癡狂.旣見諸夏化裔戒,更聞淫哇亂羽官.一棹翩然任所之,何敢妄擬乘桴時?遙指東海誓相從,【明儒徐孚遠】孤島月夜淚龍鍾.天造草昧終必平,異日誰復福蒼生.而我老矣無及見,願言諸子愼行程.【朱子謂大學爲行程曆】 쓸모없는 몸 원문 '용종(龍鐘)'은 대나무 이름이라고도 하고, 사람이 늙어서 대나무 가지와 잎이 스스로 주체하지 못하고 흔들리는 것과 같은 모습을 형용한 말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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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재 소장에게 올림 上悅齋蘇丈 삼가 생각건대, 문집은 작자가 직접 교정하고 인쇄하여 발행해야지 자손과 문인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는 진실로 부모와 스승의 문집을 전하는 데에 뜻이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옛날에도 재앙을 두려워하여 부모와 스승의 문장을 고치는 자가 있었는데, 전하지 못하여도 그래도 할 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장을 고쳐서 부모와 스승을 무함한 자는 다시는 할 말이 없습니다. 재앙을 두려워하여 고친 것은 비록 죄 줄만 하나 그 마음은 오히려 측은하지만, 사욕을 채우고 능력을 과시하여 고치기를 오늘날 음성의 오진영이 선사의 문집에 했던 것처럼 한 경우는, 그 죄가 더욱 커서 죽음으로도 용서되지 못할 것입니다.무릇 이런 일들은 비록 경중을 따질 것도 없이 똑같이 믿을 수 없어서 용납할 수 없으니, 스스로 교정하여 간행하지 않는다면 실제로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며, 또한 우리 자손과 문인은 반드시 이와 같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생각이 미쳤던 곳이 생각이 미치지 못한 곳이고 방비가 미쳤던 곳이 방비가 미치지 못한 곳이라는 것이니, 이것이 근래에 제가 터득한 한 가지 견해입니다. 존장의 생각은 어떠하신지 모르겠습니다. 竊念文字, 當作者自校自印而行之, 不可恃子孫門人.世固多無意於傳父師之文者.古亦有畏禍而改父師之文者, 不能傳, 猶可說也.改文而誣父師者, 更不可說也.畏禍而改, 雖可罪, 而情猶戚矣.濟私衒能而改, 如今陰吳之於先師集, 則罪尤大而不容誅矣.凡此雖有輕重甚否, 均之爲不可恃而不容, 不自校印, 則實有如此者, 亦不可謂我之子孫門人, 必不如是也.此所謂思慮到所, 思慮不到處, 防備到所, 防備不到處者, 是爲近日淺見之一得.未知尊意以爲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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