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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 황장에게 올림 上小心黃丈 乙丑二月 을축년(1925) 2월매번 우리 어르신께서 정재(靜齋)에게 보낸 편지글을 읽어보면, 늠연하게 선사의 절의가 드러나고 환하게 음인(陰人)13)의 간담을 깨뜨려서 사람으로 하여금 숙연하게 공경심을 일으키게 하니, 직접 존장의 가르침을 받는 것 같았습니다.아, 저들이 스승을 무함하는 일이 날마다 불어나고 달마다 깊어지고 있습니다. "은행나무 아래에서 홀로 명을 받은 것14)은 리(鯉)가 공자(孔子)를 독대하고15)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효종(孝宗)을 독대한 것이다." 하고【김세기】, "증자의 일관(一貫)이다."16) 하고【우형근】, "단전밀부(單傳密付)17)로, 간옹이 귓속말로 전한 것이다." 하며【조충현】, "경신년(1920)의 유서는 인가 받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별도로 가리키는 뜻이 있다." 하며【최원, 정운한, 김세기가 세 차례 어른에게 말한 것임】, "신해년(1911)의 유서는 하늘에서 떨어지고 땅에서 솟아났다." 하고【정운한】, "크게 의심할 만하다." 하고【김세기】, "감히 가리켜 있다고 할 수 없다." 하니【조충현】, 사람들의 기탄없음이 어찌 이런 극심한 지경에 이른단 말입니까? 일이 이에 이르러 내버려두려고 하면 끝내 선사의 무함을 씻을 날이 없고, 내버려두지 않으려고 하면 저쪽은 강하고 우리는 약하여 결말이 날 기약이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호중(湖中)은 선사께서 도를 제창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동문과 노성(老成)한 분들이 많으니, 오늘날의 변란에 큰 발길질로 치우친 말을 막고 지극한 정성으로 은혜에 보답하는 것18)은 또한 마땅히 호중에서 많이 나와야 하는데, 적막하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저쪽을 편들어 비호하는 자가 있음을 면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나라 사람들이, 음성의 오진영을 성토하는 것이 호남의 치우친 논의에서 나왔다고 의심하는 것에 혹 염려가 없지 않으니, 어찌 답답하고 한탄스럽지 않겠습니까? 이에 홀로 우리 어르신께서 사문의 선배요 호중의 두터운 명망으로 우뚝이 의리를 잡아 지키고 의연히 정도를 부지하여 남들이 밝히지 못한 것을 밝히신 스승의 의리를 천명하셨고 폐와 간을 보듯 훤한 저들의 실정을 알아내셔서 확실하게 각인시켜19) 조금도 용서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후에야 사람들이 모두 음성의 오진영이 저지른 죄는 마땅히 성토해야 하고 호남의 의론이 치우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서, 의심하던 자들도 일제히 따라서 안정되었습니다. 어르신 같은 분은 참으로 노성하고 명망이 두터운 실상에 부합하여 사문의 순정한 신하가 되시니, 세도의 다행스러움이 어찌 이보다 더함이 있겠습니까? 저 무리들이 점점 더 무함하여 거리낌이 없으니, 오직 우리 어르신께서는 거울 같은 마음을 더욱 밝히고 부월 같은 필치를 더욱 엄격하게 하여 시종 그들을 물리쳐 멈춤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每得吾丈與靜齋書, 讀之, 凜凜然先師節義著, 灼灼然陰人奸膽破, 令人肅肅然起敬, 宛若親承尊誨也.噫, 彼邊之誣師, 日滋月深.謂杏下獨命, 爲鲤尤獨對【金世基】, 曾子一貫【禹烔根】, 單傳密付, 艮翁耳語【趙忠顯】.謂庚申遺書, 謂非指勿認, 而別有所指【崔愿·鄭雲翰·金世基, 三次惇丈】.謂辛亥遺書, 從天降從地出【鄭雲翰】, 可疑之大者【金世基】, 不敢指以爲有【趙忠顯】, 人之無忌憚, 胡至此極? 事到于此, 欲置之乎, 則終無洗誣之日, 不置之乎, 則彼強我弱, 出場無期, 未知如何則可乎? 竊念湖中, 先師倡道之地.故多同門老成, 今日之變, 大踢距詖, 血誠報佛, 亦宜多出湖中, 不惟寥寥爲未聞, 反不免有護袒者.故國人之疑討陰之出於湖南偏論者, 或不無慮, 寧不悶歎? 乃獨有吾丈, 以師門先進, 湖中重望, 卓然仗義, 毅然持正, 闡師義之發人未發, 得彼情之如見肺肝, 一棒一血, 不少假貸.然後人皆知陰罪之當討, 湖論之非偏, 疑之者, 翕然隨定.若丈者, 誠副老成重望之實, 而爲師門之純臣也, 世道之幸, 豈有加此哉? 彼輩之滋誣無憚, 惟願吾丈之心鏡愈明, 筆斧愈嚴, 始終闢之而無替也. 음인(陰人) 음성(陰城)에서 살고 있던 오진영을 가리킨다. 은행나무……것 원문의 '행하독명(杏下獨命)'은 오진영이 은행나무 아래에서 홀로 간재에게 문집 발간의 명을 받았다는 말이다. 리(鯉)가 공자(孔子)를 독대하고 리는 공자의 아들로, 자는 백어(伯魚)이다. 공자가 뜰에 홀로 서 있을 적에, 백어가 종종걸음으로 그 옆을 지나가자, 공자가 시(詩)와 예(禮)를 배우라고 훈계한 고사를 말한다. 《논어(論語)》 〈계씨(季氏)〉 증자의 일관(一貫)이다 일관은 일이관지(一以貫之)의 준말이다. 공자(孔子)가 제자 증삼(曾參)을 불러서 "나의 도는 하나의 이치로써 모든 일을 꿰뚫고 있다.〔吾道 一以貫之〕"라고 하자, 증삼이 "예, 그렇습니다.〔唯〕" 하여 곧바로 깨닫고는 잘 모르는 다른 문인에게 "부자의 도는 바로 충서이다.〔夫子之道 忠恕而已矣〕"라고 설명해 준 것을 말하는데, 오진영이 문집간행에 대한 간재의 뜻을 홀로 알았음을 비유한 것이다. 《논어(論語)》 〈이인(里仁)〉 단전밀부(單傳密付) 《주자대전(朱子大全)》 권59 〈답왕숙경서(答汪叔耕書)〉에서 "〈태극도(太極圖)〉를 단전밀부(單傳密付)의 삼매(三昧)로 여기는 것은 또한 근세 학자들이 형체를 등지고 그림자를 쫓으며 거짓을 가리켜 진짜라고 하는 폐단입니다."라고 하였다. 단전밀부는 한 사람에게만 은밀하게 전수한다는 의미이고, 삼매는 흐트러짐 없이 한곳에 집중한다는 의미로 모두 불교의 용어이다. 여기서는 전우가 오진영에게 은밀히 남긴 유언이라는 의미이다. 큰 발길질로……보답하는 것 《주자대전(朱子大全)》 권28 〈답진동보서(答陳同夫書)〉에, "공자가 어찌 지극히 공정하고 지극히 성실하지 않았겠으며, 맹자가 어찌 거친 주먹을 휘두르고 큰 발길질을 하지 않았겠는가.〔仲尼豈不是至公血誠 孟子豈不是麤拳大踢〕"라고 한 데서 나온 말로, 여기서는 오진영의 한쪽으로 치우친 주장을 반박하여 물리치고 스승의 은혜를 지성으로 갚는 것을 말한다. 확실하게 각인시켜 원문의 '일봉일혈(一棒一血)'은 《주자어류(朱子語類)》 권34에 "대개 성인이 하시는 일은 예를 들면 방망이로 내려쳐서 한 가닥 혈흔(血痕)이 생기게 하고 손바닥으로 때려서 혈인(血印)이 생기게 하는 바로 그런 것과 같은 것이다.〔大概聖人做事 如所謂一棒一條痕 一摑一掌血 直是恁地〕"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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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 황장에게 올림 上小心黃丈 丙寅七月 병인년(1926) 7월오진영의 일은 죄가 극치에 달하여 이미 할 말이 없고, 용동(龍洞)에서의 발간20)도 스승의 유훈을 저버림을 면치 못하였으니, 사도의 재앙이 한결같이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까? 바야흐로 동지들과 맹세코 유훈을 지킬 것을 종신의 계책으로 세울 뿐이니, 더욱 우리 어르신의 이전 편지에서, "문집 발간을 차라리 아예 먼 후대로 늦추는 것이 낫다." 하신 논의가 질정하여 의심할 것이 없음을 깨닫습니다.진주에서의 발간을 알린 첫 통문에 음성 오진영 무리의 핵심인물들은 쥐가 머리를 감추고 여우가 꼬리를 숨기듯이 자취를 감춰서 이편도 저편도 아닌 중립자들의 이름을 빌리거나 속여서 기록하여【죽은 지 3년 된 이석승의 이름이 그 속에 들어있다.】 마치 공론에서 나온 것처럼 사람들을 현혹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인구가 발간한다는 통문이 갑자기 나오자 그 일이 와해될 것을 두려워하여 머리를 드러내고 꼬리를 흔들어대더니, 권순명, 유영선, 김종희, 최원, 김세기 등 12인의 두 번째 통문이 있어 말하기를, "이 일은 석농 오진영이 실제로 주선했다."라고 하고, 사람들에게 용맹한 장수와 사나운 병사들이 적을 만나면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뜻을 비치며, 그 맡은 일이 반드시 성공해서 호응함이 있기를 기대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간사하며 가소로운 일인데, 스승의 손자를 고소하여 구속시킨 일21)에 있어서는 또한 다른 사람을 핑계대어 말하기를, "오진영이 한 것이 아니다." 하였습니다. 오진영이 이미 인쇄할 곳을 주선하였으니, 스승의 손자를 고소하여 구속시킨 것은 인쇄하는 곳에서의 큰일인데, 어찌 주선한 자가 하지 않을 리가 있겠습니까? 어린 아이도 속일 수 없는 만큼 그들의 간사한 속내가 함께 노출됨을 더욱 잘 볼 수 있습니다. 오진영이 일찍이 말하기를, "강태걸의 고소는 내가 시킨 것이 아니다." 하였으나 이렇게 된 후에도 오히려 감히 입을 열어 스스로 변론할 수 있겠습니까?옛날에 우암 선생이 광남(光南)22)을 구한 일 때문에 당시에 비난을 많이 받자 이내 말하기를, "설사 광남이 정말로 큰 죄가 있고 내가 앞장서 말하여 그를 구제했더라도 무슨 큰 죄가 되겠는가?"23) 하였으니, 우암이 스승의 손자를 중히 여긴 것이 이와 같습니다. 오진영은 매번 우옹으로 자처하며 무함을 변론한 사람을 군주를 비하하고 종통을 둘로 나누었다24)고 주장한 윤휴(尹鑴)로 취급하더니, 지금 전사인에 대해서는 어찌하여 잠시도 먼저 우옹을 어줍잖게라도 흉내 내지 않고, 마치 왕망(王莽)이 유자(孺子)를 끼고서 해치기에 급급했던 것25)처럼 하여 드러내놓고 고소하는 화란을 더하기를 이처럼 급히 한단 말입니까?전사인이 이미 오진영에게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마땅히 미혹당하여 죄를 지었다는 것을 사묘(祠廟)26)에 고하고, 아울러 사우들에게 사과한 다음 유서를 받들고 근거하여 진주에서 간행하는 것을 곧바로 성토했어야 합니다. 이것이 고치고 보충하여 뒷날을 좋게 하는 방도인데, 계책이 여기에서 나오지 않고 급급하게 인가를 받아 간행하기를 힘써서 선사의 가르침을 버린 똑같은 자취로 함께 돌아가니, 얼마나 잘못되었습니까? 혹자는 "인가를 받은 것은 마찬가지인데, 진주를 성토하고 용동을 성토하지 않는 것은 진주를 박대하고 용동을 후대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의심하지만, 이는 생각 없이 하는 말입니다. 인가를 받은 것은 마찬가지이나 용동은 스스로 그 죄를 담당하였고 또 선사께서 손수 편정한 각각의 원고를 썼으니, 스승을 무함하고 원고를 어지럽힌 오진영의 간행과는 같은 죄가 될 수 없습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震泳事, 罪至極頭, 已無可言.至於龍刊, 又不免棄訓, 師道之厄, 一何至此? 方與同志立誓, 抱遺訓, 終身計而已, 益覺吾丈前書, 刊事, 寧可遅緩百年之論, 爲建質無疑也.晉印之初通也, 陰黨骨子, 藏鼠頭, 隱狐尾, 或借或冒中立者名而錄之【沒已三年之李錫升入名其中】, 眩人以若出公議.然及李仁矩刊通忽出, 則恐其事瓦觧, 乃露頭搖尾.有權純命·柳永善·金鐘熙·崔愿·金世基輩十二人之再通, 而曰: "此事, 吳石農實周章之." 示人以猛將悍卒, 遇敵必勝之意, 冀其知事之必成而有應之者.此已極奸好笑, 而至於訴拘師孫之事, 則又諉之他人, 而曰: "非震所爲." 夫震旣周章印所矣.訴拘師孫, 乃印所中大事, 焉有周章者, 不爲之理乎? 尺童之瞞不得, 而益見奸膓之迸露矣.震嘗言: "杰訴, 非吾所使." 此後亦尙敢開口自辨耶.昔尤庵先生, 以救光南之故, 厚受時誚, 而乃曰: "設使光南, 眞有大罪, 而愚倡言救之, 亦何足爲大罪哉?" 蓋尤翁之重師孫也如此, 震每以尤翁自處, 處辨誣人於尹鑴卑主貳統之說, 而今於士仁也, 何不暫先效嚬於尤翁, 若王莽之攝孺子而急於戕害, 顯加訴禍之此急乎?士仁旣悟見欺於震也, 則當告其迷惑獲罪於祠廟, 并以謝之於士友, 奉據遺書, 正討晉印.是爲改補善後之道, 而計不出此, 乃汲汲然認刊之是務, 同歸於棄訓之一轍, 何其誤也? 或疑認則一也, 討晉而不討龍, 無乃薄晉而厚龍, 此不思之言也.認雖一也, 龍則自擔其罪, 而又用手定各稿, 非可與誣師亂稿之震印同科.未知如何. 용동(龍洞)에서의 발간 전우의 손서(孫壻)인 이인구(李仁矩)와 장손인 전일효(田鎰孝)가 1925년 겨울에 논산(論山) 용동(龍洞)의 봉양정사(鳳陽精舍)에 간소(刊所)를 설치하여 문집 간행을 착수한 것을 말한다. 1927년경에 목판으로 간행하였는데, 이것을 용동본(龍洞本)이라고 한다. 스승의……일 스승의 손자는 간재의 장손인 전일효를 말한다. 전일효의 자는 사인(士仁)으로, 오진영에게 문집 원고를 넘겨주었다가 돌려받는 문제로 서로 고소한 일이 있다. 광남(光南) 김장생(金長生)의 손자인 김익훈(金益勳)의 호이다. 설사……되겠는가? 《송자대전(宋子大全)》 권77 〈답류우구(答柳悠久)〉에 보인다. 《송자대전》에는 "설사 광남에게 참으로 큰 죄가 있는데 내가 감히 구출했다 하더라도 내가 어떻게 세상에 용납되지 못하는 데까지야 이르겠는가〔設使光南眞有大罪而愚敢救之, 亦何至難容於世哉〕"라고 되어있다. 군주를……나누었다 기해년(1659, 효종10년)에 예론(禮論)이 발생했을 때, 송시열은 효종이 적장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자의대비의 복상 기간을 기년으로 정했는데, 이에 대해 윤휴가 "임금을 비하(卑下)하고 종통(宗統)을 둘로 하는 것이다."라고 비판한 말을 가리킨다. 《조선왕조실록》 숙종 13년. 왕망이……급급했던 것 평제(平帝)를 독살하고, 광척후(廣戚侯) 유현(劉顕)의 아들 유영(劉嬰)을 황태자로 세워서 스스로는 가황제(假皇帝)ㆍ섭황제(攝皇帝)로서 섭정을 한 것을 말한다. 사묘(祠廟) 선조 혹은 선현의 신주(神主)나 영정(影幀)을 모셔 두고 제사 지내는 건축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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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 황장에게 올림 上小心黃丈 丁卯 정묘년(1927)삼가 생각해보니, 스승께서 돌아가신 후 동문 중에서 식견이 고명하고 의론이 정확한 분은 오직 우리 황소심 선생 한 분이 있을 뿐인데, 책 상자를 짊어지고 도를 묻는 것은 형세상 이미 행할 길이 없고 시절에 문안하는 편지는 번번이 해를 넘기니, 어찌 이리도 현인을 좋아하는 정성이 엷단 말입니까. 자신을 돌아보며 스스로 자책하다보니 싱숭생숭 즐겁지가 않습니다.삼가 생각건대, 겨울 추위에 도를 즐기며 지내시는 기거가 안회(顔回)처럼 한 표주박의 물을 마시고29) 원안(袁安)처럼 눈 덮인 속에 고고히 누워서30) 다른 사람의 좋은 음식과 의복을 원하지 않으시리니, 비록 군자가 본성으로 여기는 것이 이에 있고 저 외물에 있지는 않으나 인자하고 현명한 사람의 곤액이 한결같이 이렇게 한심한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것은 세상의 운수입니다. 시생 같은 자야 어찌 말할 거리가 되겠습니까? 죽어 시신이 골짜기에 나뒹구는 것이 분수이니 지사(志士)인 냥 잊지 않을 필요도 없으나31) 구구한 저의 일념은 그래도 경서를 껴안고 끝까지 선사를 저버리지 않는 것입니다.그렇지만 이 음성의 해괴한 도적이 스승께서 떠나시자 더욱 거리낌 없이 '인가 받으라고 지시했다〔認敎〕'고 스승을 무함하여 스승의 백옥과도 같은 깨끗한 고결함을 더럽히고, 또 멋대로 원고를 고쳐서 금저울〔金秤〕과도 같은 정확한 의리를 어지럽는 것을 어찌한단 말입니까. 하늘까지 넘치는 사나운 물결은 결단코 거룻배 하나로 상대하여 건널 수 없으니, 온종일 근심하고 두려워하지만 계책이 나올 곳이 없습니다.그들이 스승을 무함한 것은, 다만 그가 이른바 "은행나무 밑에서 독대했다." 운운한 말만 보더라도 원래 명백한데, "말에 정확히 구별함이 부족하였다."32)느니 "성토하는 글의 초안을 주관하지 않았다."느니 하는 등의 말로써 백방으로 벗어나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지난겨울에 또한 그가 임술년(1922) 가을에 혼자 이름으로 서근소(徐近小)에게 답한 편지를 얻었는데, 곧장 "사실은 원래 선사의 '말씀하지 않은 지시〔不言之敎〕'를 따른 것이다." 하였으니, 말씀하지 않은 지시라는 것이 인가를 받을 뜻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그가 "사실은"이라고 하고 "원래 따른 것이다."라고 한 것에서 다시금 무함하고 모독한 것이 매우 혹독함을 깨달았습니다. 竊念山頹後, 同門中識見高明, 議論精確, 惟吾黃小心先生一人在, 而負笈問道, 勢已末由, 時節侯書, 動輒經歲, 是何好賢之誠薄? 撫躳自訟, 忽忽靡樂.伏惟冬寒, 起居樂道, 飲顏氏水, 卧袁安雪, 而不願人梁繡也, 雖君子所性在此不在彼, 仁賢之厄, 一至於此寒心者, 世運也.如侍生者, 何足道哉? 溝壑是分, 不待不忘也.然區區一念, 猶欲抱經而終不負先師也.柰此陰怪之賊, 師去益無憚, 旣誣認敎, 汙了白璧之潔, 又擅改稿, 亂了金秤之義? 滔天虐浪, 決非一葦之抗, 夙夜憂惧, 計無所出.蓋其誣師, 但觀渠所謂杏下云云說, 原自明白, 而欲以語欠區別, 舍主討草等說, 百方圖脫, 而不得者也.昨冬又得渠壬戌秋, 單名答徐近小書, 直以為其實原從先師不言之敎, 不言之敎, 非認意而何? 其曰其實, 曰原從者, 更覺誣衊之孔酷也. 안회(顔回)처럼……마시고 안회가 한 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로 누추한 시골에서 지내는 것을 딴 사람들은 그 근심을 견디지 못하지만, 안회만은 그 즐거움을 변치 않았다는 고사이다. 《논어(論語)》 〈옹야(雍也)〉 원안(袁安)처럼……누워서 원안은 후한(後漢)의 현사(賢士)이다. 낙양(洛陽)에 폭설이 내려 다른 사람들은 눈을 치우고 밖으로 나와 먹을 것을 구하였으나 원안은 "큰 눈이 내려 사람들이 모두 굶고 있는 판에,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구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大雪人皆餓 不宜干人〕" 하며 혼자 집에 누워 있었던 고사이다. 《후한서(後漢書)》 권45 〈원안열전(袁安列傳)〉 죽어……없으나 제 경공(齊景公)이 우인(虞人)을 우인에게 쓰는 피관(皮冠)으로 부르지 않고 대부에게 쓰는 정(旌)으로 부르자 우인이 죽음을 무릅쓰고 가지 않았는데, 이를 두고 공자가 "지사는 죽어서 시신이 도랑이나 골짜기에 있을 것을 잊지 않고, 용사는 싸우다 머리를 잃을 것을 잊지 않는다.〔志士不忘在溝壑 勇士不忘喪其元〕"라고 하여 우인의 지조를 칭송한 데서 나온 말이다. 《맹자(孟子)》 〈등문공 하(滕文公下)〉 말에 정확히 구별함이 부족하였다 이 말은 오진영이, 간재가 인가를 지시했다고 한 자신의 말이 공격을 받자 이를 해명하기 위해 한 말로, 〈답김용승서(答金容承書)〉에, "은행나무 아래에서 독대할 때에는 문집 간행의 지속만을 논했고 애초에 인가를 받을지 말지는 언급이 없었는데, 스승과 제자간의 대화를 나중에 기억하다보니 말에 정확히 구별함이 부족하였으니, 이것은 말을 전달함에 소홀했던 나의 과실이다.〔杏下竹床時 單論刊稿遲速 初無認否之及 追記師生酬酌 而語欠區別 此吾命辭疎忽之過也〕"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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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재 소장학규에게 답함 答悅齋蘇丈學奎 ○甲子 갑자년(1924)지난 달 찾아뵌 것은 사실 몇 년간 벼르던 끝에 나온 것인데, 인연이 사람과 어긋나 공교롭게도 출타를 하시어 그리운 마음에 한없이 방황하였습니다. 그래도 오히려 운곡(雲谷)34)의 풍물이 옛날의 경관 그대로이고 명덕정(明德亭)35) 위의 상쾌한 기운이 사람 품을 파고드는 것을 보고 고인의 빼어난 운치를 손을 내밀면 바로 움켜쥘 수 있을 듯하였으니, 이것이 이미 사람의 뜻을 조금은 강하게 해주었습니다. 얼마 후에 아드님 형제의 안내를 받아 서실로 들어갔는데, 첫째 아드님은 정성스러워 사람을 흡족하게 하고 둘째 아드님은 명민하여 기뻐할 만하였으니, 군자의 전형과 고가(故家)36)의 훌륭한 집안 교육이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공경하고 흠모케 하여 마침 높으신 가르침을 입지 못한 것 때문에 크게 탄식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더구나 이렇게 편지와 아름다운 시37)를 당일로 오롯이 보내주셨으니, 정의가 중하고 의리가 바르며 풍격이 아름답고 뜻이 깊어서 깜짝 놀라고 감탄하였습니다. 이에 외람된 생각으로 지난번에 만약 하룻밤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이런 귀중한38) 글을 얻어 영원히 산속의 보물로 만들 수 있었겠습니까? 이어 생각하니, 시생과 우리 어른은 선대에 가까운 친척이었고 선친과는 연세가 같았습니다. 부친을 여읜 뒤로는 친소와 귀천을 구분하지 않고 선친과 연세가 같은 분이 있다는 것을 들으면 번번이 서글퍼지며 부모를 끝까지 봉양하지 못한 슬픔39)이 흘러나왔습니다. 하물며 우리 어른과 같은 위치에 계신 분이겠습니까? 매번 우리 어른께서 술이 반쯤 취해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의리와 이익을 담론하고 고금을 논평하시는 것을 볼 적마다 풍치와 언론의 풍부함이 선친과 거의 엇비슷하다고 가만히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말하기를, "우리 부친이 살아계시면 아직도 이 어른처럼 건강하시고 아직도 이 어른과 함께 선비들 사이에서 주선할 수 있으셨을텐데." 하였으니, 저도 모르게 줄줄 눈물이 흐르려 했습니다. 말이 여기까지 이르고 보니 우리 두 집안의 친분과 정의는 평상시에 실제로 상상하던 것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또 제가 다행히 우리 어른과 함께 구산옹40)의 문하에 출입했고, 또 다행히 시비가 뒤섞인 날을 당하여 잡아 지키는 것이 우리 어른과 같았으니, 마침내 선대의 친밀한 정의가 이에 더욱 친밀해짐을 알았고, 또한 본 바가 서로 부합하는 것이 선대의 우의로 맺어진 두 집안의 행복임을 이로써 알았습니다. 이런 점에 나아가 노소간에 간극이 없는 믿음과 피차 서로 격려하는 도를 구한다면 또한 그것이 실제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연히 《맹자》의 "문왕은 기주에서 태어나 필영에서 죽었으니, 서이 사람이다.〔文王 生於岐周 卒於畢郢 西夷之人也〕"41)라고 한 부분을 읽었는데, 제가 여기에 보충하여 "간옹은 완산에서 태어나 부안에서 죽었으니, 호남사람이다."라고 하겠습니다. 호남은 진실로 간옹의 도학이 처음 시작하여 끝을 맺은 땅입니다. 그러므로 돌아가신 후에 이런 망극한 무함을 당하신 것에 대해 완주에는 우리 어른과 여러 분들이 계시고 부안에는 창암과 함재 및 여러 분들이 계시는 만큼 한 조각 마음을 단단히 먹어 일생토록 부처님 같은 은혜를 갚고 큰 붓으로 훤히 밝혀 백세토록 사설(邪說)을 막아서 간옹의 도로 하여금 언제라도 의지할 것이 있게 해야 하니, 하늘의 뜻이 어찌 우연히 그리되겠습니까. 삼가 강성한 힘을 더욱 떨쳐 백번 부러져도 회피하지 않고 아홉 번 죽어도 후회하지 않아서, 맹세코 호남 한 지역이 영원히 후세에 할 말이 있도록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신다면 못난 시생도 마땅히 하풍(下風)에 달려가 함께하여 영광이 있도록 하겠습니다. 客月拜門, 實出於累年經擬之餘, 而緣與人違, 巧值駕外, 徊徨眷戀.猶見雲谷風物, 不改舊觀, 明德亭上, 爽氣襲人, 高人逸韻, 若可挹取, 此已稍強人意.旣而令似兄弟, 延入書室, 一哥誠欵洽人, 二哥明敏可喜, 君子典型, 故家詩禮, 又令人欽豔, 不須以適違尊誨, 大致於邑.矧茲赫蹏瓊什, 卽日耑賜, 情重而義正, 格佳而意深, 驚喜感幸.私竊以爲向使不失一宵之陪話, 安能獲此百朋之手筆, 永作山中之寶哉? 仍念侍生之於吾丈, 先世切戚也, 先人同庚也.一自失怙以來, 不分親踈貴踐, 聞有與先人同庚者, 輒惕惕動蓼莪悲, 况如吾丈地哉? 每見吾丈酒半酣揮白鬚, 談說義利, 揚扢古今, 暗想風致言論恰恰, 與先人或相上下, 自語於心曰: '吾親而在者, 尙能如此丈之康健, 尙能與此丈周旋於章掖間.' 不覺泫然乎欲淚興.言到此兩家契誼之, 非比平常, 實際可想.且澤述幸而與吾丈同出臼門, 又幸而當此是非混淆之日, 所執與吾丈同, 乃知先戚之誼, 於是乎益密.又以知所見之相符, 兩家先誼之幸福也.卽此而求之, 老少無間之孚, 彼此相勉之道, 又可知其實際也.偶誦孟子之言, 曰: "文王生於岐周, 卒於畢郢, 西夷之人也." 澤述足之, 曰: "艮翁生於完山, 卒於扶風, 湖南之人也." 湖南, 固艮翁道學, 成始成終之地.故旣沒而遭此罔極之誣, 在完而有吾丈諸公, 在扶而有鬯涵諸公, 寸心斷斷, 報佛恩於一生, 大筆晳晳, 距邪說於百世, 俾艮翁之道, 始終之有賴, 天意豈偶然哉? 伏願益奮大壯之力, 百折不回, 九死靡悔, 誓使湖南一區, 永有辭於來許, 則侍生之無似, 亦當奔趍下風, 而與有榮矣. 운곡(雲谷) 열재 소학규가 거주했던 완주군 용진면 상운리 운곡을 가리킨다. 명덕정(明德亭) 위치는 미상이다. '명덕(明德)'은 대학의 "명명덕(明明德)"에서 그 의미를 취한 것이다. 고가(故家) 여러 대에 걸쳐 벼슬하며 살아온 집안을 말한다. 편지와 아름다운 시 원문의 '혁제(赫蹄)'는 옛날에 글씨를 쓰는 데 썼던 폭이 좁은 비단을 뜻하는 말인데 종이의 이칭으로 쓰이기도 하고 여기서는 상대방의 편지를 뜻하며, 경십(瓊什)은 상대방이 지은 시나 문장을 높여서 일컫는 말이다. 귀중한 원문의 '백붕(百朋)'은 많은 재물을 뜻하는 말인데, 여기서는 소학규가 지어서 보낸 시를 칭송하여 말한 것이다. 붕(朋)은 화폐의 단위이다. 《시경(詩經)》 〈청청자아(菁菁者莪)〉에 "이미 군자를 만나 보니, 나에게 백붕을 주신 듯하네.〔旣見君子 錫我百朋〕" 하였다. 부모를……슬픔 원문의 '육아(蓼莪)'는 《시경(詩經)》 소아(小雅) 편명인데,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 살아생전에 효도하지 못한 자식의 슬픈 심경을 읊은 시이다. 구산옹(臼山翁) 구산은 간재 전우의 호 가운데 하나이다. 문왕은……사람이다 《맹자(孟子)》 〈이루하(離婁下)〉에서는 "순임금은 제풍에서 태어나 부하로 옮겼다가 명조에서 죽었으니, 동이의 사람이다. 문왕은 기주에서 태어나서 필영에서 죽으니 서이의 사람이다.〔孟子曰, "舜生於諸馮, 遷於負夏, 卒於鳴條, 東夷之人也. 文王生於岐周, 卒於畢郢, 西夷之人也〕"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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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재 소장에게 올림 上悅齋蘇丈 乙丑十二月 을축년(1925) 12월지난번 보내주신 편지에서, 어른께서는 주된 논의를 담당하시고 시생은 통문 만드는 것을 담당하자고 하셨으니, 마치 '죽어서 함께 열전에 오르자'43)는 뜻을 보이신 듯하였고, 급기야 시생이 10일에 검사국(檢事局)에 답변한 말44)을 들으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마치 내 입에서 나온 것과 같을 뿐만이 아니다." 하셨습니다. 이에 감히 인정해 주시는 끝자리에 외람되이 끼어 있지는 못하나 피차 간직하고 있는 마음은 차이가 없다고 믿었는데, 과연 19일에 어른께서 검사국에 써서 보인 한 편의 시는 어쩌면 그리도 시생이 마음속 깊이 지니고 있는 뜻과 하나하나 부합하는지요? 시에 "무함을 변론하는 것은 일생의 일이고, 유훈을 지키는 것은 만 번 죽어도 하리라.〔辨誣一生事 守訓萬死爲〕"라는 구절을 바로 쓰셨으니, 단지 무함을 변론하고 유훈을 지켜서 죽어 지하에 돌아가 선사를 배알한다는 의미만 있을 뿐입니다. 시가 이 외에 다른 뜻은 없으니, 바로 쓰는 것은 달리 말할 만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 어른께서 이른바 "마치 내 입에서 나온 것 같다." 하신 것이 이것이 아니겠습니까? 듣자하니 검사가 다른 사람에게 시생을 기롱하여 말하기를, "도는 본래 광대한데, 김 아무개는 이와 같이 소견이 좁다." 하였다 합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어른은 노성한 분이신데 또한 시생과 같은 사람이 되었으니, 한층 더 기롱 받음을 면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저 한바탕 웃고 맙니다. 가는 해를 전송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시기가 바로 앞에 닥쳤으니, 새해에 복을 받기를 축복하는 것이 서신을 주고받는 사이의 예인데, 우리들은 바야흐로 호랑이 꼬리를 밟은 듯 근심스럽고 위태로운 상황에 있으니,45) 길상(吉祥)에 대해서는 말할 바가 아니고 오직 '의리를 지키고46) 몸을 깨끗이 한다47)〔守義潔身〕'는 네 글자로 서로 신년에 대한 축원을 다할 수 있을 뿐입니다. 頃承下狀, 以丈之自擔主論, 生之自擔製通, 有若示死同傳之意.及聞生初十日答檢辭, 則又謂不啻若自己口出.顧不敢僭厠於引與之末, 已信彼此所存之無間矣, 果爾十九日, 丈之示檢一詩, 何其與生之衣帶書, 一一相符也? 詩之"辨誣一生事, 守訓萬死爲", 卽書之, 只有辨誣守訓, 歸拜先師於地下也.詩之此外無他意, 卽書之, 他無可言者也.吾丈所謂若自口出者, 非此歟? 聞檢向人譏侍生曰: "道本廣大, 金某若此狹隘." 吾丈之老成, 而亦同於侍生, 則想不免加受一屑譏矣.旋堪一呵, 餞迓在卽, 頌新福, 往復間例也, 而吾儕則方蹈虎尾, 吉祥非所言, 惟可以守義潔身四字, 交致新年之祝. 죽어서 함께 열전에 오르자 송나라 때 명신인 범진(范鎭)은 사마광(司馬光)과 우의가 두터웠는데, 사마광에게 "그대와는 살아서 뜻을 함께하고 죽어서 전을 함께할 것이다.〔與子生同志死同傳〕"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치의집전(緇衣集傳)》 권3 〈일류장(壹類章)〉 중국의 기전체(紀傳體) 역사서에서는 성향이 같은 인물을 한 열전(列傳)에 모아 엮기 때문에 한 말로, 이 말은 뜻을 같이 하자는 의미이다. 시생이……말 오진영의 제자인 강태걸(姜泰杰)이 후창 김택술 및 최병심 측을 업무방해죄와 명예훼손죄로 고소하였는데, 이는 인가 받아 간행한 진주본을 구독하지 못하게 선동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검사국(檢事局)에서 후창을 불러 조사하였는데, 이 조사에 응하여 답한 말이다. 호랑이……있으니 《서경(書經)》 〈군아(君牙)〉에 "내 마음의 근심되고 위태로운 것이 마치 범의 꼬리를 밟은 듯, 봄날의 얼음 위를 걷는 듯하다.〔心之憂危 若蹈虎尾 涉于春氷〕"라는 말이 나온다. 의리를 지키고 《주역》 〈곤괘(坤卦) 문언(文言)〉에, "군자는 경을 주장하여 그 마음을 곧게 하고, 의를 지켜 그 밖을 방정하게 한다.〔君子主敬以直其內 守義以方其外〕"라고 하였다. 몸을 깨끗이 한다 자기 한 몸 깨끗하게 하고자 윤리를 어지럽히는 것을 말한다. 《논어》 〈미자(微子)〉에, "자로가 말하기를, '벼슬하지 않는 것은 의(義)가 없으니, 장유(長幼)의 예절을 폐할 수가 없거늘 군신(君臣)의 의를 어떻게 폐할 수가 있겠는가. 이는 자신의 몸을 깨끗하게 하기 위하여 큰 윤리를 어지럽히는 것〔潔身亂倫〕이다.' 하였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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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재 소장에게 답함 答悦齊蘇丈 癸酉 계유년(1933)추석이 어찌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명절이 아니겠습니까? 이 날 보내주신 편지와 문장이라는 선물을 받았습니다. 이날 밤엔 좋은 달이 바야흐로 둥그니 이른바 일 년 중에 명월은 오늘밤에 가장 밝다는 것48)입니다. 어른의 시는 청절하여 또한 이전에 지은 것보다 뛰어나 날마다 발전하여 더욱더 공교해졌으니, 감히 노련하여 일가를 이루었다고 말하거나 아니면 또한 바쁜 중에도 마음을 고요히 하여 전일하게 하는 남다름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요컨대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 가운데는 적수가 없습니다. 가장 밝은 달을 마주하여 무적의 시를 읊으니, 시와 달이 둘 다 맑아서, 이를 읊조리는 사람까지도 맑아지니 그 즐거움이 또한 어떠하겠습니까? 그 기쁨과 그 즐거움은 진실로 옛날에 친히 창수(唱酬)를 할 때보다 못하지 않고 아름다운 때의 좋은 달은 또한 옛날에는 없었던 것으로 스스로 좋다고 말할 수 있는데 하물며 궁벽한 거처에서 드물게 있음에랴. 다만 생각건대, 시를 짓는 방법은 성정의 바름을 얻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그러므로 공자께서는 "시 삼백 편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무사(思無邪)'라고 말했습니다."49) 시교(詩敎)의 요점은 이를 벗어나지 않거늘, 어찌하여 근세의 학자는 대부분 시를 짓는 것은 유가가 숭상할 바 아니라 여겨서 대단히 경시하는지요. 만약 "오늘의 시가 어찌 옛날의 시와 같은가"라고 말할 뿐이라면, 오늘의 문장이 또한 어찌 《상서》나 〈계사〉와 같겠습니까? 그러나 기어코 문장만을 숭상하고 시를 무시하니, 미혹된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옛날에 바른 시는 대부분 음악으로 연주되었는데 이제 음악은 없어지고 시는 오히려 남았으니 음악의 뜻도 있는 것으로, 《예기》에 말하기를 "예악은 잠시라도 몸에서 떠나게 해서는 안 된다."50)라고 했으니, 음악을 떠나게 해서는 안 됨을 알았다면 또한 마땅히 시를 떠나게 해서는 안 됨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의 시작(詩作)이 비록 옛날에는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만약 우연히 중화(中和)의 소리에서 나와 의리의 바름에 합치한다면, 정아(正雅)한 〈주남(周南)〉·〈소남(召南)〉과 함께 그 귀결이 어찌 다르겠습니까. 도를 걱정하고 세상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곤궁함을 참으며 스스로 수양하는 뜻과 세속을 초월하려는 생각이, 사물을 보고 흥을 일으키고 경치를 대하고 정신을 즐겁게 하는 시작(詩作)이 비록 소종래가 각각 다르다 하더라도 모두 사악하고 더러운 것을 씻어내고 지기를 안정시켜서 화평하고 정직한 데로 돌아가게 합니다. 음악의 남은 뜻을 잃지 않는다면 스스로 그 선함을 느끼고 그 방일함을 징계하여, 성정에 어긋나지 않는 효과가 있으니, 과연 어찌 대뜸 변풍(變風) 변아(變雅)51)만 못하겠습니까? 풍월에 번뇌하고 화조에 근심하여 신심과 관계없는 작품으로 말하자면 어찌 시뿐이겠습니까? 존장께서도 부화(浮華)하고 배우(俳優)한 점이 있으니 이것들은 전부 논할 거리가 못됩니다. 마침 존장께서 자정(子貞)에게 준 편지의 시에 또 존성(存省)으로 한결같이 도우라는 말씀을 한 것을 보았는데, 깊이 제 견해와 부합됩니다. 삼가 여기에서 부연하여 우러러 그 자세한 것을 갖추었는데 당신께서는 다시 어떻게 여길지 모르겠습니다. 嘉俳, 豈非一年中最勝佳節? 以是日, 獲拜寵章瓊什之嘉貺.是夜, 好月正圓, 所謂一年明月今宵多者.尊詩淸絶, 亦越勝前昨, 日進益工, 非敢道於老鍊成家, 抑亦以煩劇靜專之有異歟? 要之所識吾黨中, 無敵手.對最多之月, 誦無敵之詩, 詩與月兩淸, 誦之者亦淸, 其樂又何如哉? 其喜其樂, 固不下曩者親承唱酬, 而佳辰好月, 又曩時所無, 自謂佳, 况竆居罕有.第念, 詩之爲道, 歸於得性情之正.故孔子曰: "詩三百, 一言而蔽之曰'思無邪'", 其爲敎要切, 莫過於此者, 柰之何, 近世學者, 多以爲詩非儒家所尙, 而其輕之也.如曰: "今之詩, 安得如古之詩也"云爾, 則今之文, 又安得如尙書繫辭也耶? 然而必右文而左詩, 多見其惑也.蓋古之正詩, 多被之於樂, 今樂亡而詩猶存, 有樂底意思, 記曰: "禮樂不可斯須去身", 知樂之不可去, 則亦宜知詩之不可去也.今詩之作, 雖不及古, 然如有偶然出於中和之聲, 而合於義理之正, 則與周召正雅, 其歸奚異? 其爲憂道憫世之心, 固竆自修之意, 超麈拔俗之想, 樂群輔仁之思, 與夫覽物起興, 對景怡神之作, 雖所從各殊, 而皆足以蕩滌邪穢, 安定志氣, 要歸於平和正直.不失樂之遺意, 則自感其善, 自懲其逸, 不悖性情之效, 果何遽不若變風變雅哉? 若乃惱風月, 愁花鳥, 無涉身心之作, 豈惟詩已? 丈亦有浮華而俳優者, 此皆在所不論矣.適見尊與子貞書中有詩, 亦爲存省一助語, 深有契於淺見.謹此敷演, 仰備其詳, 未審尊意復以爲如何. 명월은 오늘밤에 가장 밝다는 것 한유(韓愈)가 8월 보름에 대해 지은 시에 나오는 말이다. 《한창려집(韓昌黎集)》 권3 〈팔월십오야증장공조(八月十五夜贈張功曹)〉 시……말했습니다 《논어(論語)》 〈위정(爲政)〉편에 나오는 말이다. 예악은……없다 《예기(禮記)》 〈악기(樂記)〉에 "군자가 이르기를 '예악은 잠시도 몸에서 떠나게 해서는 안 되나니, 음악을 사용하여 마음을 다스리면 평이하고 정직하고 자애롭고 선량한 마음이 뭉클뭉클 생겨난다.'라고 했다.〔君子曰: 禮樂不可斯須去身, 致樂以治心, 則易直子諒之心, 油然生矣〕" 변풍(變風) 변아(變雅) 국풍 가운데 〈주남(周南)〉·〈소남(召南)〉은 주나라 초기의 태평시대에 지어진 노래로 '정풍'이라 한 데 대해 기타의 국풍은 "왕도가 쇠미해지고, 기강이 무너진" 때의 노래라 하여 변풍이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치세의 시가는 정풍으로, 난세의 시가는 변풍으로 본다. 후대에는 역사의 변화와는 무관하게 정교의 득실에 표준을 두고, 정치의 잘못을 풍자하는 작품을 변풍이라 규정했다. 이 때문에 변풍이라는 개념은 시가가 사회 현실을 반영한다는 데 근거를 두고 과거 문인들이 빈번하게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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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재 소장에게 답함 答悅齋蘇丈 癸酉 계유년(1933)보내주신 편지에서 먹물을 들이고 머리를 깎는 변란52)에도 만남을 따라 서로 그리워한다는 뜻을 보냈으니 이러한 마음에 참으로 감격했습니다. 또 편지에서는 연로하였음에도 뜻을 가다듬어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반드시 몸을 보존하여 온전히 돌아가려함이라 말씀하셨는데 이 말 또한 합당한 말입니다. 근래에 제 친족 한 사람이 호서로 길을 나섰다가, 체두관53)을 만나 상투를 잘릴 위험에 처하자 짧은 지팡이로 가위를 들고 있는 손을 때리니 손에 있던 가위가 땅에 떨어져 깨졌습니다. 이에 다시 그를 쳐서 쓰러뜨렸는데 저쪽에 있던 순사에게 맹렬히 쫓기게 되었습니다. 순사와 마주잡고 실랑이를 하다가 크게 소리쳐 말하기를 "요즘 이른바 문화정치라는 것이 이와 같은 것을 강제로 행하는 것인가? 너의 상부한테 가서 따져봐야겠다."라고 하고, 꼭 잡고서 재촉하여 가던 중에 옛날에 알고 있던 사람이 풀어주라 권하여 말하기를 "가서 따져본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피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부추겨서 보내도록 하였습니다. 이에 화를 면하고 돌아왔다 합니다. 이 사람은 나이가 아직 사십이 안 되었는데도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음으로써 머리 깎이는 것을 면했으니, 이를 가지고 살펴볼 때 연로한 사람만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후생에 이르러서도 머리 깎이는 것을 깊이 염려하지 않음이 없다고 하니 진실로 그렇습니다. '역경에 처해도 굽히지 않는 절개54)는 예로부터 드물게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학식과 덕망이 높은 나이 많은 선비도 간혹 말년에 실수를 하기도 하는데 하물며 나이가 젊어서 뜻이 정해지지 않은 자이겠습니까? 근래에 풍기가 한번 변하여 다른 집 소년들이 위협을 기다릴 것도 없이 스스로 기꺼이 머리를 깎으니 기세가 강물이 불어나는 것 같아서 막을 수 없습니다. 근래에는 우리 동문의 모모공들도 자손이 외형을 바꾸는 것을 보았습니다. 평일에 가정의 교훈에 푹 젖은 것이 마땅히 다른 사람과 다름이 있을 터인데도 똑같이 풍조에 내몰리게 된 것은 하늘이 정말로 그렇게 한 것이니 이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윽이 살펴보니 문 씨 어른 두 아들의 거처가 가까운 완산으로 더욱 번화한 땅인데도 모두 옛 제도를 보존하여 지켰으니, 법도 있는 집안의 의방(義方)55)에는 저절로 그 방법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창암(김낙규)과 함재(김낙두) 두 어른의 자손도 그러합니다. 저의 아들과 조카도 이것을 범한 자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믿을 것이 못되니 마땅히 더욱더 내일에 힘써서 이치를 밝혀 깨우치고 정성을 쌓아서 교화시켜 그들로 하여금 오랑캐가 되어서 사는 것은 중화를 지키다 죽는 것만 못하다는 뜻을 알게 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지금 행해야 할 의무입니다. 당신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承喩, 以灑墨勒剃之變, 而致隨遇相戀之意, 此意良感.又喩以年老而勵志, 不畏威者, 必保全歸, 此言亦當.近有鄙族一人, 往湖西路, 逢勒剃者 , 乃以短杖打執剪刀者, 手刀墮地碎.因復打倒其人, 被彼邊巡查所猛敺.與巡查捽持頡頑, 而大言曰: "今世所謂文化政治, 乃行強制若是耶? 往質于汝上府", 堅持促行中, 有舊面者勸鮮, 曰: "往質何益? 不如避之", 扶而送之, 乃得免而歸.此人年未四十, 以不畏威免, 觀之以此, 不獨年老者爲然.至於後生, 不無深慮之云, 誠然誠然.歲寒松柏, 終古罕見, 故老士宿儒, 或失於晩節, 况年少志未定者乎? 近日風氣一變人家少年, 不待勒脅, 而自相樂剃勢, 若河漲, 不可防遏.此近吾同門, 某某諸公, 亦見子孫之變形.以其平日, 擩染庭訓, 宜有異乎他人, 而同爲風潮所驅, 天實爲之爲之何哉? 竊見文丈二子居近完, 益繁華之地, 皆能保守舊制, 可見法家義方, 自有其術.鬯涵兩丈子孫亦然.侍生子姪, 姑無犯此者.然不可以是爲侍, 當益勵來頭, 明理而愈之, 積誠而化之, 使知爲夷而生, 不如守華而死之意.是爲吾人目下義務也.未知尊意, 復以爲如何. 머리를 깎는 변란 1894년 전통적인 의복 제도를 서양식으로 개정한 '변복령'(變服令, 의제개혁)과 1895년(고종 32) 11월, 김홍집(金弘集) 내각이 성년 남자의 상투를 자르도록 내린 명령을 말한다. 체두관(剃頭官) 단발령 시행 후 머리카락을 자르러 다니던 관리이다. 세한송백(歲寒松柏) 《논어(論語)》 〈자한(子罕)〉에서 "추운 겨울철을 지내보아야만 송백이 나중에 시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也.〕"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의방(義方) 정도(正道) 즉 바른 도리를 의미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은공(隱公) 3년 조에 현대부(賢大夫) 석작(石碏)이 "자식을 사랑한다면 바른 도리로 가르쳐서 삿된 길로 빠져들지 않게 해야 한다.〔愛子, 敎之以義方, 弗納于邪〕"라고 위 장공(衛莊公)에게 충간한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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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재 소장에게 올림 上悅齋蘇丈 丙子 병자년(1936)풍조는 날로 나빠지고 앞길은 날로 험악하여 문을 닫고 자취를 감추어 단발의 재앙을 면한 것이 이에 반년이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80세 된 어른께 나가 문후 드리려 한 것이 3년이 되었으나 뵙지 못하고 격조했던 나머지 아직도 이루지 못하고 있으니, 이야말로 난세의 일입니다.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때때로 여중(汝重)이 왕래할 때면 삼가 소식을 들었는데, 환한 얼굴빛은 줄어듦이 없고 정신과 풍채 모두 더욱 왕성하시다 하니, 이것은 평소에 우러러 기도하여 바라던 마음입니다. 식견은 더욱 높아지고 의론은 더욱 정밀해지셨을 것을 다시 생각하니, 아마도 나이가 더욱 높아지는 때에 문을 닫고 저술하신다면 붓 한 자루의 힘이 충분히 풍조를 막고 양이 회복되는 기반을 다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오직 이런 소식이 들리기를 바랍니다.오호라! 세상의 나쁜 풍조는 진실로 한없이 통탄할 바이나, 오늘 우리 문하의 풍조는 이보다 더 심합니다. 지난날 스승의 무함을 변론하는 일에 당당하여 문필로 성토하고 벌을 내리기를 서릿발같이 했던 사람들이 지금은 모두 음성의 오진영 바람에 휩쓸려서 그와 더불어 배읍하고 강론하던 예전의 기쁨을 말하고 끝내는 그를 계화도 제사의 주헌관(主獻官)이 되도록 하고는 도리어 오진영과 통하고 일을 함께하는 자들을 배척하는 한두 사람을 원수처럼 보고 있으니,【소장과 김택술은 처음부터 오진영과 통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편지가 있었기 때문에 더욱 원수처럼 보았다.】고금 천하에 이 무슨 변고란 말입니까? 고요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하면 사람 마음을 두렵게 하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 재앙을 피하는 길은, 비단 문을 닫고 종적을 감춰야 할 뿐만 아니라 사귐을 끊고 종적을 없앤 이후에나 거의 가능할 것 같으니,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비록 그러나 일이 이 지경에 이르러 저 사람의 반복무상한 것도 말할 것이 없고 우리가 원수 취급당하는 것도 근심할 것이 없습니다만, 오직 스승의 무함이 물이 더욱 깊어지는 것처럼 심각해지는 것은 참으로 한심한 일입니다. 이 일을 글로 써서 훗날 논의가 정해지기를 기다리지 않을 수 없으니, 이는 일세의 풍조를 막는 것보다 더욱 절실한 일이 될 것입니다. 삼가 문하에서도 이를 도모해주시기를 바랍니다. 風潮日惡, 道塗日險, 杜門斂跡, 免遭薙禍者, 半歲于茲.是以凖擬進侯於八耋老丈, 於三年阻拜之餘者, 尙未之遂, 此眞亂世事也.夫何言哉? 時於汝重來往, 竊伏聞韶顏無減, 神彩愈朗, 是爲平日仰禱之協.更念見彌高論彌精, 蓋在年彌高之日, 閉戶著書.一筆之力, 有足以捍風潮而基陽復者否? 惟是之願聞.鳴呼, 一世之惡潮, 固所痛恨罔極者, 而今日吾門之風潮, 視此更劇.前日之堂堂於辨師誣之役, 而文討筆誅, 霜雪如也者, 今皆靡然於陰風, 旣與敘拜揖講論之舊歡, 終以致其爲華祀之主獻, 而反讐視一二人之斥通陰同事者【丈與澤述, 自初有不當通陰之書, 故尤爲讐視】, 古今天下, 此何變也? 靜言思之, 使人心悸, 罔知所爲.此禍之避, 非但杜門斂跡, 乃至息交滅迹而後, 庶可爾, 未知如何.雖然事至於此, 人也之反覆無常, 固不足道, 吾身之遭讐視, 亦不足恤, 惟師誣之如水益深, 誠可寒心.此事之不可不著書以俟異日之論定者, 尤爲切近於捍一世之風潮.伏望門下亦惟是之圖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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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일에게 답함 임오년(1942) 答吳允一 壬午 지난번에 외람되이 방문해 주신 것은 오래도록 계획한 끝에 나온 것이니 아, 이것이 어찌 공연히 그러한 것이겠습니까. 《주역》 에 "같은 기운끼리 서로 찾는다."96)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그 찾는 것이 다른 사람이 찾는 것과 다릅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멀리 5백 리 길을 상투에 유복(儒服) 차림으로 험난함을 무릅쓰고 고생하면서 오셨겠습니까. 다만 맞이한 자가 이미 합당한 사람이 아니고 또한 잡다한 일을 만나 차분히 서로 강론하여 도움을 주지도 못한 채 이틀을 묵고 서둘러 헤어졌습니다. 오래도록 계획한 끝에 멀리 찾아온 사람으로 하여금 참된 뜻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도록 했으니, 부끄러움과 슬픔이 아울러 지극하여 무어라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돌아간 이후에 즉시 편지를 보내주셔서 저로 하여금 귀가하는 길이 순조로웠고 양친이 모두 무고함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멀리서 저의 걱정하는 마음을 풀어주었으니 더욱 기쁩니다. 다만 생각건대, 피차간에 모두 순선(純善)의 본성과 본선(本善)의 마음을 갖추고 있으며, 또한 모두 공자, 맹자, 정자, 주자의 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머리를 숙여 성현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고 기욕(氣慾)을 바로잡아 다스려 심성의 본초를 회복한다면, 위의 이른바 우리들의 찾는 것이 바로 이것이니, 어찌 이별과 만남의 길고 짧음을 가지고 기쁘고 서운함을 삼을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존선사(尊先師) 소심(小心 황종복(黃鍾復))선생은 친히 간옹(艮翁)의 통서를 계승하여 이치를 명확히 파악하고 의리를 굳건히 지켜서 진실로 성현의 문도가 되기에 부끄럼이 없으셨으니, 이는 그대가 이미 보고서 알고 있습니다. 들으면 즉시 실천해야 하니97), 어찌 다른 사람의 강론을 기다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시경》 에 "선왕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과인을 격려해 주었네."98)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천리로나 인정으로나 간절하고도 지극한 말입니다. 저 또한 지금 선사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그대를 격려하니, 심정을 이해해 주기 바랍니다. 頃者之枉認, 出積久之營.噫, 此豈徒然哉?《易》曰: "同氣相求." 其求也, 異乎人之求也.不然, 何以能落落半千里, 華髻法服, 觸險冒梗, 辛苦而至哉? 但當之者, 既非其人, 且值紛冗, 未由穩資麗澤, 信宿忽忽而別, 使積營而遠求者, 不免實志來而空手歸, 慙悵幷摯, 無容云喩.歸而即惠德音, 俾審道塗之利稅、唱喏之多福, 解此遠念, 尢以爲喜.第念彼此俱有純善之性、本善之心, 又皆有孔、孟、程、朱之書, 俯首聽命於聖賢之訓, 矯治氣慾, 復心性之初, 則向所謂吾輩之所求者是已, 豈可以離合之久近爲多少哉? 況復尊先師小心先生, 親承艮翁之統緒, 見理之明, 守義之剛, 實無愧爲聖賢之徒, 則高明既見而知之矣.可聞斯行之矣, 豈待別人之講貫哉?《詩》云: "先君之思, 以勖寡人." 此爲天理人情切至語.區區亦將先師之思, 以勖高明, 幸會心而諒情焉. 같은……찾는다 《주역》 건괘(乾卦) 구오효(九五爻)의 〈문언전(文言傳)〉에 보인다. 들으면……하니 옳은 것을 들으면 바로 실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로(子路)와 염유(冉有)의 같은 질문에 대하여 공자는, 자로에게는 "부형이 계시니 어찌 묻지 않고 듣자마자 실행할 수 있겠는가.〔有父兄在, 如之何其聞斯行之?〕" 대답하고, 염유에게는 "듣자마자 바로 실행해야 한다.〔聞斯行之〕" 대답하였다. 《논어(論語)》 〈선진(先進)〉 선군을……주었네 《시경》〈패풍(邶風)․연연(燕燕)〉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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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창에게 보냄 을축년(1925) 與宋基滄 乙丑 옛날 '공자께서 광(匡) 땅에서 마음에 경계를 두셨을 때 안자(顔子)가 뒤에 쫓아갔습니다.' 그리고 말하길 "선생님께서 계신데 제가 어찌 감히 죽겠습니까?"73)라고 했습니다. 호씨(胡氏)가 이를 논하길 "공자께서 불행하게 환난을 만났다면 안자가 반드시 삶을 버리고 쫓아가서 구했을 것이다."라고 했으니, 아! 여기서 옛사람의 스승 공경하는 의리를 가히 알 수 있습니다. 지난날 내가 환난에 처했을 때, 그대가 추후에 그 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먹지도 않고, 유자(儒者)의 옷을 입고 홀로 백리 길을 달려왔던 것은 내가 이미 인간 세상에 있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을 터입니다. 비록 나이가 어리고 힘이 미약하여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을 것이지만, 그 마음만은 안자가 생을 버리고 쫓아가 구하고자 했던 것보다 못하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나는 덕이 박하여 그대의 스승 되기에 부족합니다. 염계(濂溪 주돈이)선생은 "안자를 배울 때에 학문이 그보다 지나치면 성인이 되고, 그에게 미치면 현인이 된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요? 그대가 스승 섬기는 한 대목만큼은 이미 배우지 않고도 안자와 동일하니, 그 나머지 '불천노불이과(不遷怒不貳過)',74) '비례물시청언동(非禮勿視聽言動)',75) '일선복응(一善服膺)'76)하였던 선을 하나하나 배워서 진실로 쌓아가 힘이 오래되면 거의 그에게 이를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성대한 덕과 큰 이름을 장차 만세에 드리우게 될 것이니, 어찌 한때 스승의 환란에 달려갔던 일만 칭송하겠습니까? 원컨대 그대는 면전(勉旃 힘을 쓰다)하여 나도 함께 빛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昔孔子之畏於匡也, 顔子從之而曰, 子在某何敢死.胡氏論之曰: 孔子不幸而遇難, 顔子必捐生而赴救.噫! 古人事師之義, 可知已.向余之有難也, 汝追後聞之, 痛哭不食, 衣闊柚隻行百里而來者, 以余爲不在人世也.雖其年幼力弱, 不能有爲, 其心乃顔子之捐生赴救, 如汝者, 可謂不讓乎古人.而愧余德薄, 不足爲汝師也.濂溪先生不云乎? 學顔淵之所學, 過則聖, 及則賢.汝於事師一節, 旣不學而同乎顔子矣, 其餘若不遷怒貳過, 非禮勿視聽言動, 得一善服膺之類, 一一善學, 眞積力久, 而幾及焉.則盛德大名, 將垂乎萬世矣, 豈但一時赴師難之贊誦而已哉? 願汝之勉旃, 俾余之亦有光焉. 옛날에……죽겠습니까? "공자께서 광 땅에서 어려움에 처했을 때, 안연이 맨 나중에 왔다. 공자께서, '나는 네가 죽은 줄 알았다.'라고 하자 안연이 말하길, '선생님께서 계신데, 제가 어찌 감히 죽겠습니까?'〔子畏於匡顔然後子曰吾以女爲死矣.曰子在回何敢死〕"라고 하였다. 《논어》 〈선진(先進)〉 불천노불이과(不遷怒不貳過) 공자가 안회를 평하면서 "[有顔回者好學不遷怒不貳過, 不幸短命死矣, 今也則亡, 未聞好學者也.]"라고 하였다. 《논어》 〈옹야(雍也)〉 비례물시청언동(非禮勿視聽言動) 비례물시(非禮勿視) 비례물청(非禮勿聽) 비례물언(非禮勿言) 비례물동(非禮勿動)으로, 안연이 공자께 인(仁)을 행하는 조목을 묻자 대답하신 대목이다. 《논어(論語)》 〈안연(顔淵)〉 일선복응(一善服膺) 《중용장구(中庸章句)》 제8장에 "안회(顔回)의 사람됨은 중용의 길을 택해 행하면서 어떤 한 가지 선을 얻으면 가슴에 깊이 새기고 잃어버리는 일이 없었다.[回之爲人也, 擇乎中庸, 得一善, 則拳拳服膺而不失之矣.]"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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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일원홍에게 답함 정축년(1937) 答吳允一 源弘 ○丁丑 병을 다스리는 것과 학문을 하는 것에는 본래 두 가지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대의 병을 들어보니 심동(心動) 증상이 있습니다. 의서(醫書)에 이르기를 "마음이 흔들리면 만병이 모두 생기고, 마음이 고요하면 만병이 모두 사라진다."라고 하였습니다. 《대학》에 이르기를 "마음에 치우친 바가 있으면 바름을 얻을 수 없다."88)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마음이 바른 뒤에 몸이 닦여진다."라고 하였습니다. 비록 흔들림과 치우침에는 기질로 인한 것과 사심으로 인한 것의 차이가 있고, 고요함과 바름에는 생명을 위한 것과 도를 위한 것의 다름이 있지만, 인연에 따라 편안히 대처하고 일을 만났을 때 이치대로 대응하여 마음으로 하여금 깨끗하게 어떤 일도 없게 하는 것에서는 똑같습니다. 지금 우선 먼저 병을 다스리는 관점에서 세간의 일을 살펴보겠습니다. 잘되거나 잘못되거나, 영광되거나 치욕스럽거나 하는 것으로서 내 마음을 흔들 수 있는 모든 경우에 대해 모두 그대로 보아서 내가 거기에 관여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이른바 인연에 따라 편안히 대처한다는 것이니, 이에 마음은 바름을 얻어서 병이 저절로 사라지게 됩니다. 이 방법을 학문하는 데로 옮겨서 눈앞의 화나거나 두렵거나 좋아하거나 근심할 만한 것으로서 내 마음을 치우치게 수 있는 모든 경우에 대해 오직 당연한 법칙을 따르면서 내가 거기에 관여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이른바 일을 만났을 때 이치대로 대응하는 것으로서 이에 마음이 그 바름을 얻게 됩니다. 몸이 수양되고 학문이 이루어지고 도가 높아지는 것은 여기에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병은 학문에 대해 서로 방해가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혹 마음을 다스리는 데에 서로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대의 생각이 그렇게 여기는지 모르겠습니다.존왕고(尊王考)의 성함은 돌아와서 《동문록(同門錄)》에서 찾아봤는데 보이지 않으니, 아마 이런 소식을 들으시면 한스러워하실 겁니다. 비록 그렇지만 공자의 제자 3000명 가운데 70명의 제자를 제외하고는 《논어》와 《공자가어》에 보이지 않고, 맹자를 따르는 사람은 수백 명인데 《맹자》 7편에 기재된 사람은 몇 사람 밖에 없습니다. 그대가 덕을 이루고 이름을 드날려 부친과 조부를 빛낸다면 존왕고께서 간옹(艮翁)의 문인임이 《동문록》에 기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연원과 가정교육을 말하지 않는 자는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스스로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유의하기 바랍니다. 治病與爲學, 元無二法.聞高明之病, 證在心動.醫書云: "心動則萬病俱生, 心靜則萬病俱消."《大學》云: "心有所則不得其正." 又云: "心正而後身修." 雖動與有所有因氣因私之異, 靜與正有爲生爲道之殊, 若其隨緣安處, 當事順理, 使方寸之內瀅然無物, 則一也.今且先從治病起見, 見世間事.若得若失, 若榮若辱, 凡可以動吾心者, 皆作如是觀, 而我無與焉, 則是所謂隨緣安處, 於是乎心得其正, 而病自消失矣.將此法移於爲學, 而見目前可忿可恐, 可好可憂, 凡足以有所於吾心者, 惟當然之則是循, 而我無與焉, 則是所謂當事順理, 而心得其正矣.身修學成道尊, 即此而在耳.然則病之於學, 非惟不足以相妨, 反或可以相資於治心, 未知雅意以爲然否?尊王考姓銜, 歸考《同門錄》無見, 想聞之可恨也.雖然, 孔徒三千, 外七十子而不在二語, 孟子從者數百, 而載七篇書者, 無幾人焉.茍高明成德流芳, 以顯父祖, 則尊王考之爲艮翁門人, 不以不錄不誦其淵源詩禮矣.是可自勉者耳.願以此加意焉. 마음속에……없다 《대학(大學)》 전(傳) 7장에 "이른바 '몸을 닦음이 그 마음을 바룸에 있다.'는 것은 마음에 분치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공구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호요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우환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所謂修身在正其心者, 身(心)有所忿懥, 則不得其正; 有所恐懼, 則不得其正; 有所好樂, 則不得其正; 有所憂患, 則不得其正〕"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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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일에게 답함 임오년(1942) 答吳允一 壬午 말씀하신 이기설(理氣說)은 대략 가까우나 또한 온당하지 못한 점이 있습니다. "리는 사람이 말미암아 생기는 본원이고, 기는 사람이 얻어서 이루는 형질이다.[理者, 人之所由以生之本源; 氣者, 人之所得以成之形質]"라고 하였는데, 이 두 구절을 "리는 사람이 품부 받아 성(性)을 삼는 것이고, 기는 사람이 얻어서 형체를 이루는 것이다.[理者, 人之所稟而爲性; 氣者, 人之所得以成形]"라고 고친다면 맞을 듯합니다. "심성(心性)과 이기(理氣)는 급하게 살필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는데, 스스로 허공을 내달리고 고원한 것을 힘써서 단지 경쟁의 소재로 삼기만 하고 눈앞의 소당연(所當然)92)을 버린다면 단지 도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병폐가 되니 비록 빼버리더라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지행(知行)의 순서와 극치로 말한다면 반드시 그 소이연(所以然)93)을 깊이 알아야만 그 소당연을 돈독히 믿을 수 있으니, 급한 것으로 여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 '이런 문답을 하지 않으면 강론할 만한 것이 없다.'고 한다면, 이것은 질문한 자가 애당초 애타게 알고자 하는 감정에서 물은 것이 아니고, 대답한 자도 또한 되는대로 대충 응답한 것입니다. 이는 단지 한바탕의 심심풀이에 불과할 것이니, 어찌 대단히 가소로운 것이 아니겠습니까."심기(心氣)의 기(氣)는 지통지정(至通至精)하여 이(理)와 틈이 없다."고 하였는데, 말한 것이 너무 높아서 '신(神)' 자의 자리를 침범했으니, 이것은 온당치 않습니다. 다만 '허령하고 어둡지 않다.[虛靈不昧]'고 말할 수 있을 뿐이고 반드시 '지통지정'하다고 말할 필요는 없으며, 다만 '중리를 갖추고 있다.[具衆理]'고 말할 수 있을 뿐이고 반드시 '이와 틈이 없다.'고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94) 원기(元氣)는 유기(游氣)의 근본이고, 유기는 원기의 말단이니, 애당초 두 가지 기가 아닙니다. 천지에 이미 원기와 유기가 있다면 사람만 유독 원기와 유기가 없겠습니까? 그렇다면 심기의 허령한 것은 마땅히 어떤 기에 속해야 한다는 것은 절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숙부와 선생이 같은 자리에 있을 때 절하는 예절의 선후는, 만약 선생이 군부(君父)와 일체가 되는 완전한 스승으로서 마땅히 머리를 숙여 재배해야 할 분이라면 선생에게 먼저 절을 해야 합니다.부친의 대상(大祥)을 지낸 뒤 담제(禫祭)를 행하기 전에는 조부의 길제(吉祭)를 행할 수 없습니다. 그 이후에 부친의 길제를 행하고 조부의 신주를 고쳐 쓰면 조부의 길제는 저절로 그 속에 있게 됩니다.조부 상에 승중(承重)95)한 자가 후상(後喪)에 구애를 받아서 길제인 담제를 행할 수 없다면, 그 제부(諸父 백부와 숙부)가 길제인 담제를 지내는 달에 묘소에서 변제(變除 상복을 바꾸어 입으면서 거상(居喪)을 마침)의 절차를 거행하되, 굳이 허위(虛位)를 설치하여 행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것이 아마도 맞는 것 같습니다.허위(虛位)라는 말은 신주와 지방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의자는 있어야 하고 휘장과 병풍 등도 마땅히 설치해야 합니다.상사(喪事)는 모두 존자(尊者)가 주관합니다. 때문에 부친이 살아 계시고 모친이 돌아가시면 자식이 모친상을 주관하지 못하고 남편이 처의 상을 주관합니다. 모친이 부친보다 비록 하루라도 먼저 돌아가신 경우에 모친을 위하여 기년복을 입는 것은 모친이 돌아가셨을 때 부친은 여전히 살아계셔서 그 처의 상주가 되기 때문입니다. 부친이 돌아가신 뒤에 모친의 상이 하루 뒤에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삼년상을 치르는 것은 모친이 돌아가셨을 때 부친이 살아계시지 않아서 자식이 모친상을 주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所喩理氣說, 大槩近之, 亦有未穩."理者, 人之所由以生之本源; 氣者, 人之所得以成之形質"二句, 若改之曰"理者, 人之所稟而爲性; 氣者, 人之所得以成形", 則似得之耳.至於"心性理氣, 爲不急之察"之云, 自其騁空騖遠, 只資爭競而撇卻目下所當然, 則非惟不及, 反爲弊病, 雖闕之可也.自其知行次第極致而言, 則必深知其所以然, 後能篤信其所當然, 其不可以爲急乎? 若曰舍此等問答, 無可講論而已, 則是問之者初非憤悱之感, 答之者又出汗漫之應, 不過只作一場破寂之需而止, 豈非可笑之甚者耶?"心氣之氣, 是至通至精, 與理無間"之喩, 說得太高, 侵入"神"字部位, 此爲未穩.只可曰"虛靈不昧", 而不必曰"至通至精"; 只可曰"具衆理", 而不必曰"與理無間"也.元氣, 游氣之本; 游氣, 元氣之末, 初非二氣.天地既有元氣游氣, 則人獨無元氣游氣乎? 然則心氣之虛靈者, 當屬何氣, 自可知矣.叔父與先生同坐時, 拜禮先後, 若先生與君父一體之純師, 而當行稽首再拜者, 則當先先生.父祥後禫前, 不可行祖父吉祭.其後行父吉祭, 而改題祖主, 則祖吉祭, 自在其中.祖喪承重者, 拘於後喪, 不得行禫吉, 則其諸父當禫吉之月, 行變除之節於墓所, 不必設虛位行之恐得.虛位云者, 無神主與紙榜之謂也.椅子則有之, 幃屏之屬, 亦當設.凡喪事, 尊者主之, 故父在母沒, 則子不得主母喪, 而夫主妻喪矣, 母先父沒, 雖一日之間, 服母以期者, 母沒時父尚在, 而爲其妻喪主故也.父沒後母喪, 雖一日之閒, 必伸三年者, 母喪時父不在, 而子得以主母喪故也. 소당연(所當然) 소당연은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도리로 충(忠)ㆍ효(孝)나 오륜(五倫) 등의 인륜(人倫)을 말한다. 소이연(所以然) 소이연은 소당연이 나오게 되는 소이(所以)인 원리(原理)로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ㆍ신(信)의 오성(五性)과 태극(太極)ㆍ천도(天道) 등을 이른다. 다만……없습니다 《대학장구》 경 1장의 주에 "명덕은 사람이 하늘에서 얻은 것으로 허령하고 어둡지 않아서 중리를 갖추고 만사에 응하는 것이다.[明德者, 人之所得乎天而虛靈不昧, 以具衆理而應萬事者也]"라고 하였다. 승중(承重) 상제(喪祭)나 종묘의 중요한 책임을 할아버지로부터 손자가 전수받았다는 뜻으로, 할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전중(傳重)이라 하고, 손자의 입장에서는 승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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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부제봉에게 답함 을축년(1925) 答羅性夫濟奉 ○乙丑 지난번에 외람되이 방문해주시고, 이윽고 또 정성스럽게 편지를 보내주셨는데 바빠서 답장을 올릴 겨를이 없었습니다. 바야흐로 저의 허물을 추궁하고 있었는데, 어찌 넓은 도량으로 더욱 정성스럽게 재차 편지를 보내올 줄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이는 이미 남의 허물을 따지지 않는 하나의 일100)로서 안자(顔子)의 경지를 추구하는 것에 절반은 넘었다고 할 것이니, 대단히 흠복하는 바입니다. 그대의 종질 익부(益夫)가 크게 진보한 것은 본래 그의 타고난 자질이 훌륭하고 부지런히 공부했기 때문이니, 졸렬한 제가 무슨 관여할 것이 있겠습니까. 이렇게 뜻밖의 칭찬을 받으니 더욱 부끄러워 땀이 납니다. '더욱 자세히 가르쳐달라.'는 말씀은, 제가 비록 합당한 사람은 아니더라도 어찌 감히 다른 생각을 하겠습니까. 다만 자신에게 덕이 있어 따르는 이웃이 있게 되는 것101)과 서로 상대의 장점을 보면서 선하게 되는 것102)은 강학(講學)하는 사람의 큰 복입니다. 그대와 익부는 친척 중의 금란지교이고 한 집안 내의 정신적 교유 관계입니다. 이웃 중에 누가 이보다 가깝겠으며, 서로 관찰하는데 누가 이보다 친밀하겠습니까. 서로 도움을 주고 서로 권면하여 아름다움이 서로 나란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나씨 집안의 두 현명한 사람을 칭찬하고 부러워하게 하십시오. 이와 같다면 집을 나가지 않더라도 충분한 스승이 있을 것이니, 어찌 굳이 제가 익부를 도와주는 것을 기다리겠습니까? 근래에 들으니, 서패(書旆)를 스스로 부여잡고 노력하여 더욱 착실하게 도움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것은 바로 옛날의 이른바 "널리 배워 일정한 곳이 없다."103)는 것입니다. 대붕(大鵬)의 날개가 바람을 쳐 일으켜 하늘에 이르는 격이니, 어찌 부럽고 축하하는 마음을 이루 다 말하겠습니까. 다만 생각건대, 우리들의 관계가 비록 소원하고 새로 교유했다고 하더라도 진실로 과도하게 높이고 절절하게 사양하여 고인의 덕으로 사랑하는 기풍에 어긋나면 안 되는데, 하물며 저와 그대는 가까운 마을에 살고 있으니 더욱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선대 인척의 정의(情誼)가 간절했으니 한 번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고 겉만 꾸미는 일을 저는 할 수 없습니다. 일찍이 선생 장자(先生長者)에게서 학문의 대강을 들었는데, '자신에게 덕을 축적하고 싶으면 원대한 뜻을 세우고 바르고 정확한 길을 달려서 윤상(倫常)의 도를 강구하여 밝히고 성경(誠敬)의 공효를 체험하여 인의(仁義)의 집에 귀숙해야 한다. 사리(事理)를 발명하고자 한다면 성명(性命)의 근원을 궁구하여 꿰뚫고 경전의 깊은 뜻을 융합하여 이해하고 예절의 상변(常變)을 종합하고 분석하며 지난 역사의 득실을 저울질하여 문장으로 총괄하여 드러내야 한다. 세상일에 응대하고자 한다면 정학(正學)을 숭상하여 사설(邪說)을 물리치며 군자를 나오게 하고 소인을 물러가게 하며 왕도(王道)를 숭상하고 패공(覇功)을 쫓아내며 중화를 높이고 오랑캐를 물리쳐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비록 한심하지만 뜻한 바는 이것뿐이고 힘쓰는 바도 이것뿐인데, 자질이 이미 아름답지 못하고 실천 또한 힘이 없이 어느덧 40세에 이르렀습니다. 가슴속을 들여다보면 텅텅 비어 하나도 얻은 것이 없으니, 어찌 감히 말하고 응대하는 것이 장래에 소문나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자신을 돌아보매 스스로 서글퍼져 한밤중에도 서성이게 됩니다. 그대는 순후하고 훌륭한 자질로 젊은 나이에 시작하여 날마다 소문이 나니, 제가 고한 말들은 틀림없이 이미 보았던 소릉(昭陵)104)일 것입니다. 그대는 하루에 천리를 가는 천리마이니 다시 어찌 많은 말씀을 드리겠습니까. 지극한 도는 깨우치기 어려운데 세월은 쉬이 흘러가 버리니, 이는 옛 사람들이 탄식했던 바입니다. 저의 오늘날 모습은 흡사 퇴락한 곤궁한 집모양이지만 옛날 젊었을 때의 장렬한 뜻을 간직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앞에서 수레를 전복시킨 자가 뒤따르는 수레가 잘 몬다는 이유로 길이 험하고 좁은 상황을 알려주지 않지는 않습니다. 제가 그대에 대해서도 이와 같습니다. 대낮의 등불이라고 치부하여 버리지 않기를 바라니,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런데 또 생각건대, 오늘날 상황은 금수의 발자국105)이 사람을 핍박하고 오랑캐 소리106)가 요란하여, 윤리를 초개처럼 여기고 경전을 독처럼 여기며 예의를 거름처럼 여기니, 공자를 외우며 본받는 자가 구덩이 속의 귀신이 되지 않는 것만도 다행입니다. 그러므로 배포가 연약하고 다리에 힘이 없어 풍조(風潮)에 흔들려 심지어 선비의 의관을 찢어버리고 달려가는 자가 도도히 흘러넘쳐서 서로 빠져들고 있으니, 이것은 무슨 광경입니까. 아, 태산이 그 앞에서 압도하고 맹호가 그 뒤에서 이를 갈며, 큰 칼이 그 머리를 자르고 긴 창이 그 가슴을 후비더라도 그 눈을 부릅뜬 채 꿈쩍하지 않으며, 정신이 흔들리지 않은 채 더욱 굳센 자는 어떠한 기백이며 어떠한 절개입니까. 죽음에 이르러도 변하지 않는 강자(强者)와 위무(威武)에 굴복하지 않는 대장부가 바로 그런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또한 이것을 그대에게 깊이 바라니, 용기야말로 진실로 사학(斯學)을 제대로 이루는 요소이기 때문이고, 더욱 오늘날의 시의(時義)가 이와 같기 때문입니다. 심신을 다 바쳐 장차 끊어지려는 한 가닥 줄을 붙든다면 훗날에 저승에서 우리 공자를 배알할 때 그대가 어찌 다른 사람보다 크게 뒤지겠습니까. 前垂左顧, 既又致書懇摯, 忽卒未暇詳報.方且追咎, 何圖洪量再書愈款? 卽此已是不校之一事, 而其於希顏也, 思過半矣, 欽服滿萬.令從姪益夫長進, 自是渠稟質之美, 工程之勤, 拙者何與焉? 而承此不虞之譽, 尢切郝汗.益加諄誨之喩, 顧雖非人, 豈敢有他? 但德隣之有從, 相觀之有善, 講學家洪福, 而高明之於益夫, 乃花樹中金蘭, 一室內神交, 隣孰近焉? 觀孰親焉? 交修胥勖, 匹美齊休, 使人稱願羅氏之二賢也.即是不出家, 而餘師在矣, 豈必待區區之益益夫也? 近聞書旆自扶而牟, 滋益慥慥, 此正古所謂博學無方者, 大鳥之翼, 其搏風而戾天, 豈勝艷且賀也? 第念吾人相與, 雖疏遠新交, 固不當尚詡詡而遜切切, 有乖古人德愛之風, 而況鄙人於高明鄉井之居邇也? 先姻之誼切也, 不一披陳肝膈, 而邊幅之是修, 吾則不能也.竊嘗聞學問之槩於先生長者.欲其畜德于己也, 則立遠大之志, 趨正的之路, 講明乎倫常之道, 體驗乎誠敬之功, 而歸宿乎仁義之府是已.欲其發明乎理事也, 則究貫性命之源, 融會經傳之奧, 綜櫛禮節之常變, 鑑衡往史之得失, 總著之以文章者是已.欲其酬酢乎世務也, 則崇正學而斥邪說, 進君子而退小人, 尚王道而黜伯功, 尊中華而攘夷狄者是已.顧雖無似, 所志者是已, 所勉者是已, 而質既不美, 行又不力, 居然輥到強年.而回顧胸中, 空空無一得, 安敢望所發所酬之足聞於將來也? 撫躳自悼, 中宵繞壁.高明以淳茂之質, 妙年發軔, 日有所聞, 其於陋拙所告, 應是已見之昭陵, 一日之千里, 更何多囑? 惟是至道難聞, 歲月易失, 古人之所慨歎者也, 而此漢今日之竆廬頹落, 未始非昔日之青春壯志也.夫覆車乎前者, 不以後車之善御而不告以險隘, 鄙於高明亦猶是也.幸勿以晝燈而棄之, 如何? 抑又念今之日, 獸蹄逼鴂舌咻, 土苴倫常, 鴆毒經籍, 糞壤禮義, 誦法孔子者, 其不爲坑中鬼幸矣.故弱腸軟腳, 被風潮所蕩, 至有毀冠裂裳而走之者, 浸浸滔滔, 載胥及溺, 此何景光? 噫, 泰山壓其前, 猛虎齧其後, 大劒長槍截其頭而穴其胷, 瞠其目而不瞬, 神不奪而愈厲者, 何等氣魄? 何等志節? 強者之至死不變, 丈夫之威武不屈, 非其人耶? 吾又以此深望於高明, 蓋以勇固爲斯學之成終, 而尢以目下時義然也.鞠躬盡瘁, 扶將絕之一線, 歸拜吾夫子於他日, 高明豈多讓乎哉? 남의……일 증자(曾子)가 "유능하면서도 무능한 사람에게 물으며, 학식이 많으면서도 적은 사람에게 물으며, 있어도 없는 듯이 하며, 가득차도 빈 듯이 하며, 자신에게 잘못을 범하는 자가 있어도 따지지 않는 것을, 예전에 내 친구[顔回]가 그렇게 했었다.〔以能問於不能, 以多問於寡, 有若無, 實若虛, 犯而不校, 昔者, 吾友嘗從事於斯矣〕" 하였다. 《논어(論語)》 〈태백(泰伯)〉 자신에게……것 《논어》〈이인(里仁)〉에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德不孤 必有隣〕" 하였다 서로……것 《예기》〈학기(學記)〉에 "절차를 뛰어넘지 않고 가르치는 것을 손이라 하고, 학자들끼리 서로 장점을 보고 배워 선해지게 하는 것을 마라 한다.〔不陵節而施之謂孫 相觀而善之謂摩〕" 하였다. 널리……없다 《예기》〈내칙(內則)〉에 "널리 배워 일정한 곳이 없으며, 친구에게 공손히 하되 그의 뜻을 살핀다.〔博學無方, 孫友視志.〕"라고 한 것을 두고 말한다. 이미……소릉(昭陵) 진즉부터 알고 있다는 뜻이다. '소릉'은 당태종의 비 문덕황후(文德皇后)의 능이다. 태종은 황후를 장사 지낸 뒤에 황후가 그리워 후원에다 망루를 세우고 자주 올라가 바라보았다. 한번은 위징(魏徵)과 함께 올라가서 소릉을 가리키며 보라고 하였는데, 위징은 눈이 어두워 보이지 않는다고 시치미를 떼었다. 당 태종이 저기에 있지 않느냐고 말하자, 그제야 위징이 "신은 폐하께서 헌릉(獻陵, 태종 모친의 능)을 말씀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소릉은 신이 진작부터 보고 있었습니다." 하였다. 《구당서(舊唐書)》 권71 〈위징열전(魏徵列傳)〉 금수의 발자국 《맹자(孟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요 임금의 시대에 세상이 아직 평정되지가 않았는데, 홍수가 무질서하게 흘러 온 세상에 넘쳐흘렀다. 풀과 나무가 무성하고 짐승들이 번식하였으며 오곡이 자라지 않고 짐승들이 사람들을 핍박하였다. 길짐승 발자국과 새 발자국이 나라 안에 가득하였다.〔當堯之時 天下猶未平 洪水橫流 氾濫於天下 草木暢茂 禽獸繁殖 五穀不登 禽獸偪人 獸蹄鳥跡之道 交於中國〕"라고 하였다. 오랑캐 소리 《맹자》〈등문공 상(滕文公上)〉에, 맹자(孟子)가 이르기를 "지금 남만의 왜가리 혀를 놀리는 사람이 주장하는 것이 선왕의 도가 아니다.〔今也 南蠻鴃舌之人 非先王之道〕"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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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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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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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부에게 답함 을축년(1925) 答羅性夫 乙丑 답장을 받들어 읽으니 표현이 깔끔하고 논리가 정연하며 글씨체가 반듯하여 이전 편지와 비교해볼 때 마치 한 사람의 손에서 나온 것 같지 않으니, 3일 만에 괄목상대한다는 말이 헛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문필은 비록 군자가 숭상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문장은 마음의 소리에서 나온 것이고 필획은 마음의 결정에서 나온 것이니, 마음씀씀이의 경건함과 방자함, 사악함과 올바름을 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 그대의 존양성찰이 더욱더 진보되었음을 여기에서 그 일단을 볼 수 있습니다. 지난번 권면할 때에 애오라지 팔이 부러진다는 말107)을 진언한 것은 병이 나기 전에 예방하려 했던 것인데, 어찌 병은 큰데 약이 작은 것을 염려하여 강하(江河)나 장맛비와 같은 도움을 찾고 있을 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사람을 부끄럽고 송구스럽게 합니다. 오늘날 천하가 부서지고 쇠퇴한 것을 돌아보건대, 어찌 다만 술잔이 새고 이삭이 말라빠진 상태이겠습니까. 저는 바야흐로 그대가 세도(世道)의 강하와 장맛비가 되기를 기대하니, 원컨대 그 덕을 깊게 하고 넓게 하여 미래에 그 은혜를 널리 베풀고, 한번 쏟아서 잠시 적셔주는 효과를 이루고 멈추고자 하지 마십시오. 부채를 내려주신 은혜는 진심에서 우러난 선물이라는 것을 아니, 문강(文强)108)처럼 부친의 베개를 시원하게 하는 용도로 사용할 뿐입니다. 제갈량처럼 부채로 삼군을 지휘할 능력은 없고, 또 이것은 용렬한 자가 사모할 수 있는 바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애오라지 부채로 먼지를 가려 스스로 깨끗하게 했던 왕도(王導)109)처럼만 하면 될 뿐이니, 어찌 굳이 백원(百原)110)이 부채질 하지 않은 것을 고상하다고 여길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로부터 거의 몸을 더럽히게 되지 않는 것은 당신의 선물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奉讀惠覆, 辭理潔整, 筆法楷正, 視前書若不出一人手者, 信乎三日刮目之非虛語也.文筆雖非君子之所尚, 文, 心聲; 筆, 心畫, 可以觀用心之敬肆邪正.近日高明存省之越進, 即此而見其一斑也.曩者奉勉, 聊進折肱之言, 欲其病前之防, 孰謂其以病大藥小爲慮, 而求江河霖雨之益哉? 令人慙悚.顧今天下之破残蕭索, 豈但漏巵枯苗而已哉? 吾方以高明期世道之江河霖雨, 願深廣其德, 而普厥施乎將來, 愼毋欲一注乍霑之奏效而止也.便面之惠, 認出心貺, 文強之凉枕已矣.無及武侯之指揮三軍, 又非庸碌者之所得慕想, 則聊以遮塵自潔, 若王導可爾, 何必以百原之不扇爲高哉? 從茲而庶不爲汶汶之歸者, 非高明賜耶? 多謝多謝. 팔이 부러진다는 말 《춘추좌전(春秋左傳)》 정공(定公) 13년에, 범씨(范氏)와 중항씨(中行氏)가 군주를 치려 하자, 제(齊)나라의 고강(高彊)이 "세 차례 팔뚝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하고 나서야 좋은 의사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三折肱, 知爲良醫.)〕"라고 했다. 문강(文强) 후한(後漢) 황향(黃香)으로 그의 자는 문강(文強)이고 강하(江夏) 안륙(安陸) 사람이다. 아홉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를 섬기는데 지극히 효성스러워 여름에는 베갯머리에서 부채를 부치고 겨울에는 몸으로써 이불을 따뜻하게 하였다. 《후한서(後漢書)》 권80 〈문원열전(文苑列傳)〉 왕도(王導) 동진(東晉) 때 사람인 유량(庾亮)은 자가 원규(元規)인데, 국구(國舅)의 신분으로 세 조정에서 잇달아 벼슬하여 권세가 막중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대부분 그를 붙좇았다. 그러자 왕도가 이를 불만스럽게 여기고 있던 차에 유량이 있는 서쪽에서 바람이 불어 티끌이 일자, 문득 부채를 들어 서풍을 막으면서 말하기를 "원규의 티끌이 사람을 더럽힌다.〔元規塵汚人〕" 하였다. 《진서(晉書)》 권65 〈왕도열전(王導列傳)〉 백원(百原) 백원산(百原山)인데, 여기서는 소옹(邵雍)을 이른다. 하남성(河南省) 휘현(輝縣) 서북에 있는 산으로, 송(宋)나라 소옹이 젊었을 때 은거하여 성정(性情)을 수양하고 학문을 닦았던 곳이다. 그는 백원산에서 《주역(周易)》을 읽고 정좌(靜坐)을 하곤 했는데 한겨울에도 화롯불을 쪼이지 않고 한여름에도 부채질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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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율부 제윤에게 답함 무진년(1928) 答羅栗夫濟潤 ○戊辰 수백마디의 말을 적어 보내주셔서 사설이 천지에 가득하고 강상이 땅에 떨어진 것을 한탄하고 성리의 설을 밝혀 구하는 것으로 근본적인 급선무라고 했는데, 저는 그렇게는 여기지 않습니다. 오늘날 세도가 무너지고 혼란한 것은 진실로 천수의 변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나 유자의 허물이라 한다면 사실 근자에 제가들이 리기의 명목으로 동이를 다투고 문호를 분별하여 싸움질만 서로 하고, 윤리를 바르게 하고 은의를 돈독히 하며 예교를 숭상하고 염치를 소중히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뜻을 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선비들은 실행능력이 없다라고 말하기에 이르렀으니, 우리 유도는 존중받지 못하고 고을에는 선한 풍속이 없어지고 훌륭한 인재들은 버려졌습니다. 이런 폐단을 구하는데 뜻을 둔 자라면 마땅히 전후를 징계하여 거짓을 버리고 참으로 돌아올 겨를조차 없습니다. 현자들은 의론과 쟁변으로 언덕을 태우는 불을 끄려 하니, 이것이 어찌 솜옷을 묶어 기름을 부어 달려가는 것과 다르겠습니까. 또 인물성동론은 원만하지 않고 인물성이론은 미진하다고 말하니, 이것은 호락의 제현들이 수백 년 동안 미결한 공안인데111) 오늘날 현자들은 쉽게 한마디 말로 양비론을 펴고 있으니, 저는 양가의 제현들이 황천에서 다시 일어나면 항복의 깃발을 세우려 할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대 편지의 논설은 비록 자세하고 인용한 근거가 비록 많을지라도 그 귀착점을 따져보면 인물일원의 성과 부제의 성은 똑같이 품부 받았을 때에는 한 가지라는 의미입니다. 하늘이 만물을 낳았을 때 한 근본으로 되게 한 것이 만약 보내온 편지의 말과 같다면, 이것은 근본을 둘로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품부 받았을 때 개개가 같은 시간이 아니라 하지만 잠시 한순간의 선후도 없습니까? 일원성을 받았을 때 부제의 성은 어떻게 그 사이에 용납되며 부제의 성을 받을 때에는 일원의 성이 어떻게 그 곁에 참여할 수 있습니까? 흡사 위연(魏延)과 양의(楊儀)112)가 똑같이 재상부에 있어서 마침내는 의견이 서로 갈라진 후에 그만두었다는 것과 같습니다. 비록 머리와 발을 나란히 하여 본령을 둘로 만들려고 하더라도 할 수 없는 것이니, 낙론의 학자들이 놀랄 뿐만이 아닙니다. 그러나 막혀서 통하지 않는 것은 또한 호론학자의 분층(分層)113)이 오히려 말이 되는 것만 못합니다. 그대의 견해는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示及累數百言, 歎邪說之懷襄, 網常之掃地, 欲講明性理之說, 而扶救之, 謂是本原之急務, 竊以爲未然也.今日世道之壞亂, 固關於天數之變.然其可咎於儒者者, 則實以近日諸家, 以理氣之名目, 爭同異分門戶, 矢石相尋, 其於正倫理, 篤恩義, 崇禮敎, 重廉恥, 不甚致意.以至士無實行, 吾道不尊, 鄉無善俗, 棄敗良才.有志捄弊者, 正宜懲前毖後, 棄虛反實之不暇也.賢者乃欲以議論爭辨, 救燎原之火, 是何異於束縕灌油而赴之也? 且謂人物性同之論, 是未圓人物性異之說, 亦未盡, 此是湖洛諸賢, 數百年未決公案, 今賢者, 容易以一言而兩非之, 吾未知兩家諸賢, 復起九原, 其肯竪降旛也.蓋來喩論說雖詳, 引據雖多, 要其歸, 則人物一源之性, 不齊之性, 同受於稟賦時, 一義也.天之生物也, 使之一本, 若如來喩, 則是非二本而何? 且稟賦之際, 非單單只一時間, 而更無一瞬息先後者乎? 受一源性之時, 不齊之性, 何得以容其間? 受不齊性之時, 一源之性, 何得以參其傍乎? 恰如魏延楊儀同在相府, 畢竟乖張而後已.雖欲齊頭拜腳而爲二本領, 亦不可得矣, 非惟洛家之所駭.然其窒碍不通, 又不如湖家分層之猶可說去也.未知盛見又以爲如何. 호락(湖洛)……공안인데 낙하(洛下, 한성)와 호중(湖中, 충청도) 사는 학자들이 펼친 인물성동이(人物性同異) 논쟁을 말한다. 이 논쟁은 1678년, 김창협(金昌協, 1651~1708)이 유배지에 있는 송시열(宋時烈, 1607~1689)에게 《중용(中庸)》 수장(首章)의 의문을 제기한 〈상우재중용의의문목(上尤齋中庸疑義問目)〉에서 촉발된 조선후기 최대의 논쟁이다. 대체로 낙하(洛下)에 사는 학자들은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을 지지하였고, 호중(湖中) 학자들은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을 주장하였는데 '호락논쟁(湖洛論爭)'이라고도 부른다. '인물성이론'을 주장한 호학파의 대표인물 한원진(韓元震, 1682~1751)은 '인물성동(人物性同)'을 주장하는 낙학파의 논리에 대해 '인수무분(人獸無分)', '유석무분(儒釋無分)', '화이무분(華夷無分)'의 논리라고 비판하였다. 이에 대응하여 낙학파에서는 '사람과 물의 본성이 다르다는 인물성이(人物性異)의 논리를 인정하게 되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본성도 다르다는 논리가 가능하게 되고, 그렇다면 선인과 악인은 각자의 본성을 따른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으므로 이것이 도덕을 더욱 어지럽히는 주장이다. 성은 같고, 다만 기질의 편전(偏全)이 다를 뿐이다.'라는 요지로 대응하였다. 위연(魏延)과 양의(楊儀) 위연은 촉(蜀)의 장수로 여러 번 군공(軍功)을 세웠지만 정서대장군(征西大將軍)이 되었으나, 제갈량 생전에는 그의 단점을 알아 절대로 독단적인 행동을 못하도록 했다. 양의(楊儀)는 제갈량이 병이 깊어진 뒤 훗날을 부탁한 인물 중의 한 사람으로, 제갈량이 죽은 뒤 위연(魏延)을 공격하여 죽이는 공을 세웠다. 《삼국지(三國志)》 〈촉서(蜀書)·양의전(楊儀傳)〉 호론학자의 분층(分層) '인물성이론'을 주장한 호학파의 대표인물 한원진(韓元震, 1682~1751)은 "리는 본래 하나이지만 형기를 초월하여[超形氣] 말한 것이 있고, 기질에 인하여[因氣質] 이름한 것이 있고, 기질과 섞어서[雜氣質] 말한 것이 있다. 형기를 초월하여 말한다면 태극의 명칭이 바로 그것으로서 만물의 리는 동일하며, 기질에 인하여 이름한다면 건순오상의 이름이 바로 그것으로 인간과 사물의 성이 같지 않으며, 기질과 섞어서 말한다면 선악의 성이 바로 그것으로서 사람마다[人人] 물마다[物物] 다르다. 세 가지 말로 성현들이 성을 논한 설을 미루어 본다면, 다르기도 하고 같기도 하는 천만 가지의 말들이 '일치되었다가 백가지로 다양하고, 길이 달라도 동일한 곳으로 귀결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른바 '기질에 인하여 이름하였다'는 것은 음에서 음되는 리를 가리켜 순(順)이라 이름하였고, 양에서 양되는 리를 가리켜 건(建)이라 이름한 것이다. 그렇지만 또한 혼명청탁한 기를 섞어서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건되고 순되는 것이 비록 다르지만 본래 선한 리는 그대로 있다. 목에서 인을 가리키고, 금에서 의를 가리키는 것도 의미가 모두 이와 같다. 바라건대 여기에 주시하여 비판하는 데에만 힘쓰지 말았으면 한다.〔理本一也, 而有以超形氣而言者, 有以因氣質而名者, 有以雜氣質而言者. 超形氣而言, 則太極之稱是也, 而萬物之理同矣, 因氣質而名, 則健順五常之名是也, 而人物之性不同矣, 雜氣質而言, 則善惡之性是也, 而人人物物又不同矣. 以此三言推之於聖賢論性之說, 則千言萬語, 或異或同者, 庶見其爲一致而百慮, 殊塗而同歸矣, 所謂因氣質而名者, 於陰指其爲陰之理而名之曰順, 於陽指其爲陽之理而名之曰健. 而亦未甞以氣之昏明淸濁者而雜言之, 故其爲健爲順雖不同, 而其爲本善之理則自若矣, 於木指仁, 於金指義, 義皆如此. 幸望於此更加揩眼, 而毋徒以叱斥爲務也〕"라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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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에게 보냄【대신 지음】 與人【代作】 지난번에 옷을 남겨 이별을 하고115) 날마다 '화문'이라고 쓰여 있는 기를 바라보니, 아뢰면 들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근래엔 일을 도모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간혹 외도에 종사한다 하니, 과연 그런 것입니까? 제가 들은 것이 진짜인가 잘못들은 것입니까? 잘못 들은 것이라면 진실로 다행인데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면 우리 현자가 일생의 좋은 몸뚱이를 그르치는 것이니, 어떻게 현친에게 달려가겠습니까? 오직 온 집안의 세의는 모두 골육의 휴척과 일체의 통양과 서로 관련되어 있는데, 마치 무관한 것처럼 보아서 일거리라고 여기지 않는다면 이것은 발이 차가운데 심장이 다친 것을 진휼하지 않고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는 것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저 인자하지 못하고 지혜롭지 못한 것으로 무엇이 이것보다 심하겠습니까? 그러므로 크게 소리치며 자신이 불에 타고 물에 빠진 것처럼 하여 빨리 구할 생각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삼가 깊이 헤아려 들어주기 바랍니다. 도는 하나일 뿐입니다. 하나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인의 도는 이런 것일 뿐입니다. 지극한 효제는 신명에게 통하고 정성과 올바름의 극치에서 천하가 다스려져 화평하며 격물치지를 다하여 만리를 훤히 알게 되고, 인을 행하여 천수를 얻고 천명에 짝하여 복을 가져서 큰 덕을 이루어 하늘이 배양해주는 것을 획득하니, 이것이 이른바 성인의 도입니다. 편안하려고 하는 자는 이 도를 편안히 여길 것이고, 이익을 얻으려는 자는 이익 되게 여길 것이고, 힘쓰려 하는 자는 이것을 힘쓰려 할 것입니다. 이것을 벗어나 도를 하려 한다면 별도의 다른 도를 하는 것이니, 우리가 말하는 도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도는 하나일 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천하가 생겨난 지 오래되어서 도 밖에 도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 도를 배워서 오차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실제는 그르지만 옳은 것 같은 것이 있고, 비록 참됨을 혼란시키더라도 이치에 가까운 듯한 것은 그것이 옳은 것 같고 이치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도를 배우고 싶으나 방향이 헷갈리는 자들이 그것이 참된 것인가 의심하면서도 달려가니, 이것이 진실로 이단이 사람을 미혹시키는 방법입니다. 오늘날 이른바 태을교라는 것이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 중에 정말로 이치에 가까워 옳은 것 같은 것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방법으로 속이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의 문장은 열여섯 자의 주문이고 그들의 방법은 단지 7일간 암송하면 위로는 천문에 통하고 아래로는 지리를 살피며 중간으로는 인사를 다할 수가 있고 동시에 재앙들이 눈 녹듯 사라지고 봉록이 냇물처럼 모인다는 것입니다. 삼재를 관통하여 통달하고 재앙을 제거하여 경사를 맞이하는 것이 어찌 인정의 지극한 바람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이런 이치가 있다면 위로부터 성현이 어찌 고생하며 이처럼 지극히 간단하고 빨라서 쉽게 천하의 소원을 이룰 수 있는 것을 버리고, 반드시 연구하고 찾아서 밝음을 구하고 오래도록 축적하고 덕을 숭상하여 상서로움을 불러오고 경사를 맞이하는 일을 하겠습니까? 이것은 옳은 것과 비슷한 것이 없을 뿐 아니라 정말로 전혀 옳지 않습니다. 또 이치에 가깝지 않을 뿐 아니라 정말로 크게 이치를 망가뜨리는 것입니다. 이단은 그들과 짝할 수도 없으니, 요술 중에서도 가장 잡된 것일 뿐인데, 현자는 진실로 도에 뜻이 없는 자가 아니고, 식견의 밝음이 또 추향에 어두운 자가 아닌데, 어쩌면 그리도 도가 아닌 그물에 걸려 곤액을 당하면서도 깨닫지 못한단 말입니까. 참으로 괴이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크게 음특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 근거도 없이 인형을 만들어 놓고 이를 빙자하여 무리를 불러 재산을 편취하는 자루로 삼고 있는데도 세상의 몽매하고 어리석으며 몰지각한 사람들이 그 그물에 걸려들어 그들의 재물창고가 되고 있습니다. 바로 왕법에서 이른바 좌도를 끼고서 사람을 미혹시키는 자들이니 죽여서 용서하지 못할 자들입니다. 현명한 그대들은 법도가 있는 자제로서 어찌 차마 친히 그 당에 들어가겠습니까? 상제와 선령이 위에서 바라보고 있고 성훈과 왕법이 책에 밝게 펼쳐져 있으니, 우러러 보고 굽어 생각하여 어찌 두려워할 줄을 모릅니까? 《시경》에서 말하기를, "화락한 군자여, 복을 구하는 것이 삿되지지 않구나."116)라고 하였고, 《서경》에서는 "하늘이 내린 재앙은 오히려 피할 수 있어도 스스로 만든 재앙은 피할 수가 없다"117)라고 하였습니다. 옛 현인은 몸을 망치는 술책은 그 실마리가 하나는 아니지만 잡술을 좋아하는 자는 반드시 망한다고 했으니, 화복의 사이에서 취하고 버릴 것은 확연합니다. 무릇 이 변변찮은 말은 모두 폐간에서 나왔으니, 만약에 믿지 않는다면 날마다 달려가고 달마다 뛰어간다 하더라도 마이동풍으로 흘려 들어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며 강호의 고기처럼 서로 잊어버릴 것입니다. 신경을 쓰고 뜻을 세워서 답장의 편지를 보내주길 간절히 바랍니다. 自頃畱衣爲別, 日望華門書旆, 是啓似聞.比者, 不惟不是之圖, 反或從事於外道, 其果然乎? 否乎? 吾之所聞, 果眞耶? 誤耶? 誤也誠幸矣, 如其不誤, 誤吾賢一生好箇身子, 何走於賢親? 惟通家誼均, 骨肉休戚一體痛癢相關, 若秦瘠之視, 而不以爲事, 則是足寒而不恤心傷, 唇亡而不知齒冷.其爲不仁不智, 孰甚於此? 是以不免大聲疾呼, 若焚溺之在己, 而思捄拯之急也.幸深諒而敬聽之.夫道一而已矣.一者何? 聖人之道是已.孝弟之至, 通于神明, 誠正之極, 天下治平, 格致之盡, 萬理洞然, 行仁而得壽, 配命以膺福, 以致大德成, 而獲天栽培, 此所謂聖人之道也.安焉者, 安此者也, 利焉者, 利此者也, 勉焉者, 勉此者也.外此而爲道, 則乃別爲一端之道, 非吾所謂道也, 故曰道一而已.蓋自天下生久, 道外之道, 非曰無之, 皆因學道而差者也, 故雖實非而有似是者, 雖亂眞而有近理者, 以其似是而近理也, 故欲學道而迷方者, 疑其爲眞而趨之, 此固異端之惑人者然也.乃若近日所謂太乙敎者, 果何謂者耶? 其中果有近理而似是者乎? 則無怪其可欺以方, 今也則不然.其文則十六字呪咀, 其功則單七日誦讀, 便可以上通天文, 下察地理, 中盡人事, 幷災疹雪消福祿川臻.夫通貫三才, 除殃延慶, 豈不是人情之至願? 茍有此理, 從上聖賢何苦, 舍此至簡至捷, 易遂天下之願者, 必令研索而求明, 積累而崇德, 俾作降祥餘慶之地耶? 是則非惟無似是者而已, 直是萬不是矣.非惟不近理而已, 直是大悖理矣.異端非其倫, 乃妖術之最雜者耳, 賢固非無志於道者, 識解之明, 又非昧於趨向者何? 其困於非道之罔, 而不悟也, 絕可怪也, 此蓋一種大陰慝無狀人, 白地作俑藉此, 爲嘯黨騙財之柄, 而世間太蒙騃, 沒覺人被其籠罩, 而爲之作財庫爾.正王法所謂挾左道而惑人者, 殺無赦者.賢以法拂子弟, 胡忍親入其黨? 上帝先靈, 臨之在上, 聖訓王法, 昭布方冊, 仰瞻俯思, 寧不知懼?《詩》云: "愷悌君子 求福不回"《書》曰: "天作孽猶可違, 自作孽不可逭." 昔賢有言, 亡身之術, 不一其端, 好雜術者必亡, 禍福之間, 取舍之塗判矣.凡此蕘言, 出自肺肝, 如不見信我, 日斯邁而月斯征, 馬牛之風, 不相及矣, 江湖之魚, 將相忘矣.留神是企, 回音重懇. 옷을 남겨……이별하고 당(唐)나라 한유(韓愈)가 조주 자사(潮州刺史)로 있을 적에 친하게 지냈던 노승 태전(太顚)과 작별하면서 자신의 의복을 남겨 주었다(留衣服爲別)는 이야기가 그의 〈여맹간상서서(與孟簡尙書書)〉에 실려 있다. 화락한……않구나 《시경(詩經)》 〈한록(旱麓)〉에 나온다. 하늘이……없다 《서경(書經)》 〈태갑(太甲)〉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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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에게 답함【간재선생을 대신하여 지음】 경신년(1920) 答人【代艮齋先生作】 ○庚申 보여주신 여러 편을 우러러 읽었습니다. 성인을 존중하는 정성과 역적을 토벌하는 의리가 행간 사이에 늠름하였고, "당우(唐虞)가 되느냐 이적(夷狄)이 되느냐는 사도(師道)의 흥망과 관계된다."는 말씀은 더욱 바꿀 수 없는 명언이니, 어찌 탄복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그 가운데 완전하게 갖출 것을 요구한 것은 혹 말씀한 것이 너무 매섭고 시행하는 것이 너무 가혹하니, 군자가 입언(立言)하는 체모를 잃은 듯합니다. 대저 군자가 입언할 때에는 정밀한 의리를 선택하여 그 중도를 얻어야 합니다. 선을 칭찬할 때는 그 실질에 부합해야 하고, 악을 주벌할 때는 그 실정을 얻어야 합니다. 세상 어느 곳에서도 준칙이 되고 백대에 드리워도 신뢰가 있게 됩니다. 터럭만큼이라도 착오가 있으면 지극한 공평함을 잃어서 천지에 세울 수도 없고 인심을 복종시킬 수도 없습니다. 대저 스승이란 만법의 근원이니 군주와 부모의 윤리가 의뢰하여 확립되는 것입니다. 따져서 말해 보면 공자를 능욕한 죄는 마땅히 군주를 시해한 난신적자보다도 무겁습니다. 그러나 성인은 이미 성인을 비방하고 법도를 무시하는 자에 대해 임금을 무시하고 부모를 무시한 자와 똑같은 죄로 여겼으니, 세 죄를 같은 안건으로 여겼음을 또한 알 수 있습니다. 또 선왕(先王)의 법은, 형은 사형에 그치고 벌은 친속에 미치지 않았습니다. 연해(臠醢), 포락(炮烙), 연좌(連坐), 이족(夷族) 같은 부류는 후세에 폭군들이 남용하여 만든 형벌입니다. 지금 비록 시역(弑逆)한 난적에게 그 형벌을 가중하고 싶더라도 어떻게 오형(五刑)118)의 제도 이상을 시행하며 처자식에게 연좌하지 않는 법을 위배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대의 편지에서 언급한 착전(鑿顚 정수를 뚫어 죽이는 형벌), 추협(抽脅갈빗대를 뽑아 죽이는 형벌) 이하의 모든 악형은 아마 일시의 분노에서 나온 것이고 만세에 통용되는 올바른 법은 아닙니다. 고성선(古成侁)이 사적으로 위고(韋高)를 칼로 죽이려고 했던 것119)은 이미 지극히 합당한 일이 아닌데 그것을 끌어와서 오늘날 사용하는 것은, 비록 군부를 죽인 원수는 하늘을 함께 할 수 없다는 의리에 정확히 맞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그 자의 죄가 죽일만하면 죽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직접 우리 군부를 시해한 것과는 사례가 이미 구별되고 형세도 역시 다르니, 절로 천하의 공론에 붙여 그 죄를 성토하여 죽여야 하고, 한 국가의 신하와 한 집안의 자식이 사적인 원수를 갚는 것처럼 해서는 안 됩니다. 마음을 이치로 인식하는 재앙은, 아직 그렇지는 않은 데에서 그 극단적 폐단을 말하면 진실로 이와 같은 경우가 있겠지만, 오늘날 이미 그러한 변괴를 지적하여 심리가(心理家)에서 나왔다고 한다면 통론(通論)이 아닙니다. 이런 변괴가 있은 이래로 온 나라 선비들이 학파의 다름과 당파의 다름을 막론하고 모두 마음 아파하고 주먹을 불끈 쥐면서 주벌할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마침내 이런 변괴의 출현에 대해 그 죄를 심리가에게 돌린다면 이것은 외부의 적을 미처 토벌하지도 않았는데 또 하나의 내부의 원수가 생겨나는 것이니, 시무를 이해하고 형세에 통달한 의론이 절대 아닙니다. 이 밖에 '지렁이가 크게 번성한다', '길 위의 벌레가 죽어 있다', '자신과 그 부조(父祖)를 스스로 죽인다' 등의 설은 또한 자못 가혹하고 교묘하다는 문제가 있으니, 아마도 도리어 일반 사람들이 싫어하여 각박한 처사라고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俯示諸篇, 仰悉.尊聖之誠, 討賊之義, 廪廪乎行墨間, 而至於"唐虞夷狄, 係乎師道之立潰", 尢爲不易之名言, 豈不欽服? 但就中責其全備, 則或者發之太厲, 施之太酷, 有失君子立言之體乎? 夫君子之立言也, 擇乎精義而得其中道, 褒善而當其實, 誅惡而得其情, 放乎四海而準, 垂之百世而信, 毫釐有差, 則失其至平, 而不足以建天地服人心也.夫師者, 萬法之原, 君父之倫所賴而立者, 究而言之, 則衊辱聖師之罪, 宜其重於弑逆之亂賊.然聖人既以非聖無法, 同科於無上無親者, 則三罪之幷案, 又可知也.且先王之法, 刑止于大辟, 罰不及嗣屬, 而若臠醢·炮烙·連坐·夷族之類, 後世暴君之濫刑也.今雖欲重其刑於弑逆之賊, 安得以加五刑之制而違不孥之法也? 然則盛喩鑿顚抽脅以下諸惡刑之云, 意其出於一時之憤忿, 而有非萬世之法程也.成侁之欲私刃韋高者, 已非至當之事, 而引之以用於今日者, 蓋雖準於君父讎不共天之義, 然彼罪可殺則可殺矣, 而與親害吾君父者, 類例既別, 體勢亦殊, 自當付之天下之公議, 聲其罪而誅之, 不當如一國一家臣子之報私讎已也.認心爲理之禍, 自其未然而語其極弊, 則誠有如此者; 指今日已然之變, 而謂出於心理家, 則非通論也.自有此變以來, 舉國士子, 無論門路之異、色目之殊, 莫不痛心扼腕, 思有以誅之.今乃以此變之出, 歸罪於心理家, 則是外賊未及討, 而又生出一內讎也, 絕非識務達勢之論也.外此蚯蚓大榮、路上僵蟲與自弑其身及父祖等說, 亦頗傷苛巧, 恐反爲常情之所厭, 而有涉失薄之嫌也.未知如何? 오형(五刑) 오형(五刑)은 이마에 먹물을 새겨 넣는 묵형(墨刑), 코를 베는 의형(劓刑), 발꿈치를 베는 월형(刖刑), 생식기를 제거하는 궁형(宮刑), 사형에 처하는 대벽(大辟)을 말한다. 고성선(古成詵)……하는 것은 고성선과 위고는 모두 후진 요흥 때 사람이다. 황문시랑(黃門侍郞) 고성선(古成詵)은 천하의 시비를 자기 책임으로 삼았다. 경조(京兆)의 위고(韋高)가 그 어머니 상중에 있을 때 거문고를 타고 술을 마셨는데, 고성선은 그 소식을 듣자 울면서 '나는 마땅히 내 칼로 그를 베어 풍교(風敎)를 높이리라.'하고, 드디어 칼을 들고 위고를 찾으니, 위고는 도망해 숨고, 종신토록 감히 나타나지 못했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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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제 자유에게 답함 계유년(1933) 答宗第子由 癸酉 그대는 편지에서 "여흥 김씨가 간옹에게 심복하지 않는 것은 성리설(性理說)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첫 번째는 이기(理氣)가 일물(一物)이라는 것이요. 두 번째는 명덕(明德)이 기(氣)라는 것이요. 세 번째는 도심(道心)에 과불급(過不及)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기(理氣)의 원두(原頭)가 이물(二物)이라는 것은 퇴계(退溪) 선생도 동일한 견해입니다. 그러나 명덕(明德)과 도심(道心)을 이와 같이 보는 것은 자고로 선현 중에 그런 분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여흥 김씨가 사우(師友)로 대우하는 것이 어찌 소견이 없어서 그러하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말들은 진실로 김씨가 일찍이 선사에게 망령되게 의심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사우 간으로 대우한다면 그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사생(師生) 간에 의론이 같지 않은 경우는 종고 이래로 한없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모두 이 때문에 칭호를 고쳤다는 말은 듣지 못했으니 마땅치 않는 말입니다. 만약 이 때문에 순수한 스승으로 대우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생전에 이견(異見)이 있던 날부터 그러해야지 어찌 유명(幽明)이 크게 갈린 연후에 비로소 이와 같은 설을 두겠습니까? 대개 김씨는 기절(氣節)로 스스로를 자부한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홀연 음인(陰人 오진영)의 인무(認誣)를 듣고 문인 되기를 부끄러워해서 결연히 배신하고 떠났습니다. 또 스승을 배신했다는 이름도 싫어하여 이처럼 심복하지 않는다는 설을 만들어 애초부터 사우(師友)인 것처럼 하였습니다. 그러나 엄식(掩飾 가리고 꾸밈)하는 정상이 뚜렷이 드러났으니 어느 누가 그것을 믿겠습니까? 일찍이 망령되이 의심한 것에 대해서는 선사께서 평일에 이미 다음과 같이 명백히 설파한 적이 있습니다. "주자는 '도(道)가 기(器)이고, 기(器)가 도(道)이다.'라고 하시고, 또 '도(道)와 기(器)는 하나이다.'라고 하시고, 또 '도(道)와 기(器)는 명칭은 비록 다르지만 그 실질은 하나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자께서 도기(道器)가 일물(一物)이라고 말한 것이 이와 같이 많거늘 이제야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어찌 고찰함이 상세하지 않고 말이 너무 경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주자가 훗날 또 말하길 "이기(理氣)는 결단코 이물(二物)이다."라고 하시고, 또 "음양(陰陽)을 단지 형이상(形而上)자로만 여긴다면 도기(道器)의 분수에 어두운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여러 선생께서 이(理)에 대해 혹은 일물(一物)이다 하시고, 혹은 이물(二物)이라 하시는 것이 모두 가리키는 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뛰어난 자는 모두 이해하지만 어두운 자는 모두 막힙니다. 율곡 이이께서는 "이미 이물(二物)이 아니고 또 일물(一物)도 아니다. 일물(一物)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이면서 둘이고, 이물(二物)이 아니기 때문에 둘이면서 하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이 마땅하고 둘 다 서로 균정하여 우리 학맥의 이기(理氣)의 정안자(正案者)가 되었습니다. 또 이기(理氣)의 원두(原頭)에 대해 논하실 때는 '명덕(明德)은 분명히 지각(知覺)과 정의(情意)가 있다'라고 하시고 또 '심(心 마음)은 기(氣)에 소속된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기(氣)라는 글자는 조잡한 것이 아니라 바로 세상 유자들이 이(理)로 인식한 허령(虛靈)입니다. 그 령(靈)을 이(理)로 인식한다면 《대학》 주에 나오는 '작리(作理)를 구리(具理)'의 뜻으로 보아야 할까요? 《성학집요》 〈수장(首章)〉의 안설(按說)에 "성(性)은 명덕에 갖추어져 있고 도(道)는 명덕이 행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도(道)를 행하고 성(性)을 갖춘 것을 다만 이(理)로 여기면 과연 마음이 편안하겠습니까? 또한 심히 율옹(栗翁 이이)을 존경하는 것이 되겠습니까? 또 명덕(明德)을 기(氣)라고 논할 때에 말씀하시길 "증자(曾子)가 어버이를 섬김에 뜻을 따르는 것은 도심(道心)이다. 그러나 큰 매를 피하지 않는 것은 도심(道心)이 중(中)에 합치되지 않는 것이다. 어버이 상에 극진히 슬퍼하는 것은 도심(道心)이다. 그러나 7일 동안 먹지 않는 것은 도심(道心)이 중(中)에 합치되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또 도심(道心)의 과불급(過不及)에 대해 논한 것도 모두 원고 가운데 보이는데 그 중 이기(理氣)가 하나인가? 둘인가? 논한 것은 저(김씨)에게 답한 편지 내용 가운데에 있습니다. 명덕(明德)과 도심(道心)을 논한 것이 비록 나에게 답한 것은 아니지만 평소 말씀에서 실컷 받들어 들어온 것들입니다. 주자(朱子)와 율옹(栗翁)에 근거하고 사리(事理)를 징험하여 정론(定論)을 세움이 이와 같이 명백함에도 오히려 사납게 불복하면서 "자고로 선현가운데 이와 같이 본 자는 없었다."라고 주장하니 이를 더 이상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그가 문자로 저술하여 훗날에 전해지는 것도 장차 유리병처럼 스스로 깨지기에도 겨를이 없을 것이니 어찌 소중히 여겨지겠습니까? 그대는 이것이 작은 일이 아니라고 근심하여 내가 통렬히 분석해주기를 바라지만, 이는 어찌 이리를 보고 호랑이라고 놀라고, 햇볕 아래 등불을 켜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또 그가 잘못을 고치고 심복하는 일이 거의 여기에 있다고 말하는데, 그대는 어찌 그리 일을 보는 것이 밝지 못한지요? 김씨가 배신하고 떠난 것은 인무(認誣)의 미혹됨에 달린 것이고, 이것은 엄식(掩飾)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것이 그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그러니 비록 세 가지 안건을 분석하여 귀에 우레를 울리고 촛불을 눈에 비추어 미혹된 것을 풀어준다 해도 개복(改服)에 이익 될 것이 없습니다. 또 그는 편견으로 스스로만 옳다고 여기는 한쪽만을 붙잡아 통하지 않으니 친히 손수 쓰신 유서(遺書)를 보고서도 여전히 망령되고 어긋난 견해만을 지킵니다. 그리고 평일의 정론을 익숙히 듣고서도 끝내 복종하지 않을 뜻을 가집니다. 선사의 대절(大節)과 웅변(雄辨)에 대해서도 오히려 그와 같거늘 어찌 나머지 사람들의 말에 깨우쳐 기꺼이 고개를 돌리겠습니까? 그러니 그만 두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所示驪金之謂不心服於艮翁者, 自性理說而始然.其一曰理氣一物.其二曰明德爲氣.其三曰道心有過不及.理氣之原頭二物, 退溪之所同見.明德道心之如此看, 自古先賢無如此者.待以師友間者, 豈無所見而然乎云云, 此固金之所嘗妄疑於先師者, 然以此而待師友間云, 則不成說.師生之間, 議論不同, 從古何限.而皆未聞因此而改其稱號, 則已是無當之言, 且若以此而不欲待以純師, 則當自生前異見日而已然, 何至幽明大判後始有此說乎? 蓋金以氣節自許者.故忽聞陰人之認誣, 恥爲門人, 而決然背去.又惡背師之名, 則爲此不心服之說, 有若從初待以師友者然.而掩飾之情狀顯露, 人誰信諸? 若其所嘗妄疑者, 則先師平日已有明白說破者.其曰朱子曰道則器器則道, 又曰道器一也, 又曰道器之名雖異, 然其實一也.朱子之言道器一物, 如是之多, 而今曰云云, 豈非考之未詳而言之太輕歟? 朱子他日又嘗言, 理氣決是二物, 又言直以陰陽爲形而上者, 則昧於道器之分矣.竊謂諸先生於理, 或曰一物, 或曰二物, 皆有其指.達者皆通, 昧者皆窒.栗翁言旣非二物, 又非一物, 非一物故一而二, 非二物故二而一也.其言平穩, 兩相均停, 可爲吾門理氣之正案者.論理氣原頭也, 其曰明德分明是有知覺情意, 而謂心屬氣.此氣字非粗低, 乃世儒所認爲理之虛靈也.認靈爲理, 則《大學》註作理以具理看也? 輯要首章, 按說性明德之所具, 道明德之所行, 行道具性者, 直以爲理果安於心乎? 抑亦甚尊敬栗翁者歟? 論明德爲氣也, 其曰曾子事親順志, 道心也, 而不避大杖, 道心之未合中也.親喪致哀, 道心也.而七日不食, 道心之未合中也者.論道心過不及也, 俱見於稿中, 而其論理氣一二者? 答渠書也.其論明德道心者, 雖非答渠, 而亦所飫承於雅言者也.據之朱栗, 證之事理, 立爲定論, 若此之明切, 而猶悍然不服曰, 自古先賢無如此看, 則亦復何哉? 其所云著之文字以傳諸後者, 將見琉璃甁子自碎之不暇, 何能爲有? 高明之憂以非細故而欲淺陋之痛加剖析, 豈非見貍而驚虎添燈於日下者耶? 且謂其改服, 庶幾在此者, 何其見事不明? 金之背去, 在惑認誣, 而此不過爲掩飾.是其眞情.則雖使剖析三案, 雷耳燭目, 所釋非所惑, 無所益於改服.又其偏見自是, 執一不通, 親見手筆之遺書, 猶守妄悖之見.熟聞平日之定論, 而終有不服之意.於先師之大節雄辨乎, 尙能如此, 豈肯見悟於餘人之言, 而回其頭也? 不如置之而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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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이협천 재영에게 보냄 기미년(1919) 與李協天 在英 己未 가만히 보건대 협천은 이 일(학문)에 대해서 철석같이 분비(憤悱)하는 마음이 언사와 안색에 드러나고 정성된 뜻은 신명에게 질정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 나는 너의 공든 탑이 무너지지 않아서 농사에 힘써서 수확을 걷는 것처럼 성취가 있을 것임을 안다. 다만 성취를 추구하기를 너무 서둘러서 도리어 진취에 방해가 될까 두렵다. 그리하여 그것을 농사에 비유해보겠다. 대저 쌀독이 비고 솥에 먼지가 낀 집안은 어찌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 밥을 짓게 되기를 바라지 않겠느냐? 그러나 천시(天時)에는 빠르고 늦음이 있고, 인력(人力)에 차등이 있는 것을 어찌하겠는가? 싹이 트고, 이삭이 피고, 열매가 맺혀, 튼실해지는 것은 절로 이르는 날이 있거늘, 만일 어리석은 사내가 있어서 그것을 뽑아서 조장한다면 곧바로 싹이 말라서 종세(終歲)토록 굶주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아! 한 해를 마치도록 굶주리는 것은 오히려 슬퍼할 것이 없으나 학문을 조장하는 것은, 나는 그의 일생을 그르칠까 두렵다. 이것이 무슨 뜻이겠는가? 처음에는 화급하게 공부를 하여 여력을 남기지 않다가 후에 그 공부를 이어가지 않는다면 무너지듯 폐하게 된다. 이미 학문을 폐하게 되면 향하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날마다 낮은 하류로 달려갈 뿐이니 이것이 첫 번째 우려할만한 것이다. 또 속성(速成)을 바라는 자는 대체로 명성을 앞세우고 실질을 뒤로하는 경우가 많다. 명성을 추구하는데 관계하기만 하면 그것은 곧 위선이 된다. 위선이 되면 본성은 사라지게 되니 이것이 두 번째 근심이다. 이미 속성을 바라는 것을 면치 못한다면 때때로 항상 남과 비교하게 된다. 그리하여 자기보다 나은 자가 바야흐로 전진하는 것을 질투하고, 자기보다 못한 자가 밑에 있는 것을 다행스럽게 여긴다. 마음이 그렇게 사특하게 되면 신명의 견책을 피하기 어려우니 이것이 세 번째 근심이다. 이 세 가지 근심을 범하고도 일생을 그르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나는 믿지 못하겠다. 그리하여 성인들은 "어려운 일을 먼저하고 얻을 수 있는 일을 뒤에 하라"라고 하셨고 또 "차분히 사색하고 깊이 체인하여 선후 순서를 두라."고 하셨으며, 또 "나아감이 날카로운 자는 그 물러남도 빠르다."라고 하셨다. 만일 단박에 급히 성취할 이치가 있다면 옛 성인들께서 어찌하여 곧바로 들어 알려주시지 않고 이와 같이 부지런히 힘쓰고 지속하라는 가르침을 두었겠느냐? 그것은 바로 속히 이루기를 바라면 얻지 못하고 해만 뒤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찌하여, "아성인 안자(顔子)도 재주가 고갈한 나머지 한숨짓는 탄식이 있었고, 증자도 오랜 세월을 쌓은 연후에 일이관지(一以貫之)라고 대답했던 사실"을 살피지 않는가? 그런데 (너는) 도리어 한 홉의 재주로 작은 힘을 쓰면서 크나큰 효과를 바라고 있으니, 이것은 저 풍년을 기도하는 자가 제나라 순우곤(淳于髡)의 비웃음을 받은 일에27) 가깝지 않겠느냐? 그렇다면 어찌하면 좋을 것인가? 다만 서서히 하되 속성을 바라지 말고, 급급해 하되 느슨해지지 말 것이다. 염증내지 말고 길을 바꾸지도 말고, 시종 한 가지 뜻으로 한 치를 얻어도 한자를 얻어도 모두 나의 소유가 되도록 할 것이며, 빈 곳을 채운 후에 나아가고 문장을 이룬 후에 도달하는 것뿐이다. 그대가 날카롭게 징창(懲創 징계)하는 뜻이 매우 절실한데 지나치게 급박한 점이 있다. 그리하여 이 말을 알려주노니 그 조급함을 진정시키고, 그 능력을 펼치는데 부디 뜻을 더하기 바란다. 竊觀協天于此事, 心石膓鐵, 憤悱見辭色, 誠意質神明.吾知其功塔不壞, 力農有秋.但恐求成太速而反害進就也.請且農以喩之.夫甕空而釜塵之家.豈不欲朝下種而夕炊飯? 無奈天時有早晩, 人力有此序? 苗秀實堅, 自有月至, 一有癡獃漢者, 揠之而助長, 則立見枯其苗, 而終歲飢.噫! 終歲之飢, 猶爲無傷也, 學之助長, 吾恐其誤了他一生也.曷謂焉? 始也火急去做, 無遺餘力, 後無以繼之, 則頹然而廢.其廢乎此, 則所向者何? 日究乎迂下而已, 此一可憂也.且欲速者類多先名後實.才涉爲名, 是爲僞也.爲僞則本心亡矣, 此二可憂也.旣不免欲速, 則時常以己方人嫉勝己者之方進.幸遜己者之在下.此心此慝, 神譴難逃, 此三可憂也.犯此三憂而曰不誤其生, 吾不信也.故曰先難後獲, 曰優柔厭飫, 有先後次序, 曰其進銳者, 其退速.苟有驀地亟就之理, 往聖何不直擧告之, 爲此勤苦彌留之敎哉? 正以其欲速不得而害己隨之也.盍嘗觀乎喟然之歎, 發顔聖竭才之餘, 一貫之唯, 在曾氏積久之後.顧乃以龠合之才, 用些兒力, 而望多大之效, 不幾乎祈田者之爲齊髡所笑矣乎? 然則如之何而可? 不過曰徐徐毋欲速, 汲汲毋欲緩, 不厭不改, 終始一意, 得寸得尺, 皆爲我有, 盈科而後進, 成章而後達而已矣.君之懲創, 銳意頗切而有傷急迫.故以此說告之, 令鎭其躁而紓其力, 幸或加意否. 저 풍년을……받은 일에 전국 시대 제나라 위왕(威王)이 초나라의 침입을 막기 위해 순우곤(淳于髡)을 조(趙)나라로 보내 구원병을 요청하게 하는데, 조나라에 보내는 예물을 매우 인색하게 준비하였다. 이에 순우곤이 '돼지 족발 하나로 풍년을 기원하는 사람이, 고지대 밭의 수확도 광주리에 가득하고, 저지대 밭의 수확도 수레에 가득 차게 하며, 오곡이 모두 잘 익어 집 안에 가득 차게 해 주십시오.'라고 빌더라는 이야기로 왕을 깨우쳤다. 《史記 卷126 滑稽列傳 淳于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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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이사유에게 답함 임신년(1932) 答李士裕 壬申 받은 서신 중 "금년에도 집에서 먹지 못한다(今年又不可食)"는 여섯 글자는 다소 개탄의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는 꼭 그렇지 않습니다. 옛사람 가운데서도 몸소 농사짓고 품팔이하면서 학업을 이룬 자가 있습니다. 가르치는 일이 비록 힘들다고 하지만 여러 농사짓고 품팔이 하는 일에 비하면 오히려 여력이 있어서 가히 책을 보고 이치를 연마할 수 있습니다. 공문(孔門)의 여러 제자가 대부 집안에 벼슬했음에도 공자에게 배척당하지 않았던 것은 당시의 선비들이 그것을 버리면 먹고 살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그대에게는 속수(束修)의 예14)가 있고 나에게는 식력(食力 스스로의 힘으로 먹을 힘)의 의리가 있으니 삼가(三家)15)에게 벼슬했던 자들과 동일하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의리로 보나 힘으로 보나 모두 우리 학문에 방해될 것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송나라의 황면재(黃勉齋),16) 청의 육삼어(陸三魚)17) 및 근세 병암(炳庵) 김준영(金駿榮)에 이르기까지 모두 객지의 선생노릇을 면치 못했지만, 그들이 수립한 학문의 세계는 자유롭게 전력했던 자들조차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이 때문에 스스로 겸연쩍게 여겨서는 안 될 것이 분명합니다. 來書中, 今年又不家食六字, 似有多少慨歎意.此殊不然.古之人有躬耕行傭而成學業者.敎課雖勤, 比諸耕傭, 猶有餘力可以觀書硏理.孔門諸子, 仕大夫之家而不見斥者, 以當時士子舍此無食道故也.今也則在彼有束修之禮, 在我有食力之義, 不可與仕三家者同日語也.以義以力, 俱不防吾學.是以如宋之黃勉齋淸之陸三魚, 以及近世炳庵金公, 皆不免爲人舘客, 而其所樹立, 非自由專力者之所及.其不可而此而自歉也明矣. 속수의 예 속수는 한 묶음의 말린 고기로 제자가 글을 배우기 위해 스승을 찾아갈 때 간단한 예물을 바치는 예(禮)이다. 공자가 "속수의 예를 행한 자 그 이상에 대해서 내가 일찍이 가르쳐주지 않은 적이 없었다.〔自行束脩以上, 吾未嘗無誨焉.〕"라고 하였다 《論語 述而》 삼가(三家) 춘추 시대 노(魯)나라에서 정권을 잡았던 맹손씨(孟孫氏), 숙손씨(叔孫氏), 계손씨(季孫氏)를 말한다. 《論語 季氏 註》 황면재(黃勉齋) 송나라 황간(黃榦1152-1221)으로 면재는 그의 호이다. 주희에게 수학하였는데 그의 능력을 인정하여 학문을 전수하고 사위로 삼았다. 육삼어(陸三魚) 육농기(陸隴其, 1630~1693)를 말한다. 정주학(程朱學)을 숭배하고 양명학(陽明學)을 극력 반대하였다. 저서로는 《삼어당집(三魚堂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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