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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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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1884년 사문계(私門稧) 고문서-치부기록류-계문서 甲申四月 甲申四月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84년 가을에 수확한 곡식을 문중 계원들에게 분배한 계문서 1884년 가을에 수확한 곡식을 문중 계원들에게 분배한 계문서이다. 이때 도조로 받은 곡식이 모두 17석 18두이다. 이를 석당 9냥씩으로 몇 사람에게 분배해 주니 모두 150냥2전이다. 이중 백 냥은 4월 21일에 큰댁으로 올려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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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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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류

기영회운(耆英會韻)이라는 시제의 시문(詩文) 고문서-시문류-시 李冕容 李冕容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기영회운(耆英會韻)이라는 시제의 시문 2수 기영회운(耆英會韻)이라는 시제의 2수이다. 이면용(李冕容)과 양우(梁瑀)가 각각 지은 7언시이다. 각 시는 수정된 부분이 있다. 기영회는 70세 이상 노인이 모인 경로회이다. 문서의 상태가 손상된 부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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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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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류

영보재(永報齋) 관련 시모음 고문서-시문류-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영보재(永報齋) 관련 시모음 영보재(永報齋) 관련 시를 모아놓은 것이다. 회산(晦山), 해사(海史), 초산(楚山), 석오(石梧), 석성(石醒) 등 5명의 시이다. 영보재(永報齋)는 송간(宋侃, 1417~1492) 선생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1800년(정조 24)에 후손들이 건립하였으며, 1920년과 1979년에 중수하였다. 송간은 호가 서재(西齋), 시호가 충강(忠剛), 본관이 여산(礪山)이다. 조선초기의 문신으로 관직이 형조참판(刑曹參判)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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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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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05년 윤재진(尹在晉)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乙榴夏二日 尹在晉 可川伊彦宅 乙榴夏二日 尹在晉 可川伊彦宅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940_001 1905년 5월 2일에 윤재진이 아무개에게 집안의 근심 때문에 직접 만나지 못한다고 하고, 대나무를 보낸다는 추신이 있는 간찰 1905년 5월[榴夏] 2일에 윤재진(尹在晉)이 아무개에게 집안의 근심 때문에 직접 만나지 못한다고 하고, 대나무를 보낸다는 추신이 있는 편지이다. 피봉이 있다. 날마다 집안의 근심이 생기고 사업을 억지로 일으켜보지만 잘 되지 않아 이 때문에 이렇게 편지로 면목(面目)을 대신할 자료로 삼는다. 노인 봉양하는 일은 배나 고민이라고 하였다. 추신이 있는데, 부탁한 크고 작은 대나무를 바꾸어 보내는데 쓰기에 합당한지 모르겠다고 하며 가격은 6냥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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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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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02년 윤기섭(尹璂燮) 간찰(簡札) 3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壬八念五 尹璂燮 東床 壬八念五 尹璂燮 東床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936_001 1902년 8월 25일에 윤기섭이 사위에게 풍두로 고통을 받고 있다고 보낸 간찰 1902년 8월 25일에 윤기섭(尹璂燮)이 사위[東床]에게 풍두(豐頭)로 고통을 받고 있다고 보낸 편지이다. 피봉이 있다. 부모님 모시고 공부하느라 고달프리라 생각하는데, 자신은 머리가 계속 흔들리는 풍두로 괴로움을 당하고 있어 스스로 서글퍼진다고 하며, 가까운 시일에 한 번 돌아봐 주기를 원하는 자신의 바람에 부응해 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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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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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11년 이지용(李志容)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辛亥九月十九日 李志容 可川李 辛亥九月十九日 李志容 可川李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1년 9월 19일에 시하생 이지용이 객사에서 묵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병으로 신음하고 있는 고충을 전한 간찰 1911년 9월 19일에 시하생 이지용(李志容)이 객사에서 묵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병으로 신음하고 있는 고충을 말한 편지이다. 피봉이 있다. 객사(客舍)에서 지낸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병으로 신음하고 있으니 답답하다. 미천한 몸으로 공의 문하에 어울리지 않지만 평소에 정성스럽게 보호해주는 것을 함부로 믿어서 백리도 멀다 하지 않고 왔는데, 진실로 한 푼도 취하지 못하는 일이 있으면 이와 같을 수 없다. 이에 회정(回程)한 후에 어찌 만나서 토론할 때가 없겠느냐는 내용이다. 추기가 있는데 황향(黃香) 13매(枚)를 보낸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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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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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윤기섭(尹璂燮)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重陽前二日 尹璂燮 東床 重陽前二日 1902 尹璂燮 東床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936_001 모년 8월 29일에 윤기섭이 사위에게 안부를 묻고 자신은 신병으로 가을철에 매우 괴롭다고 하며 한 번 돌아보기를 바란다는 간찰 모년 8월 29일에 윤기섭(尹璂燮)이 사위에게 안부를 묻고 자신은 신병(身病)으로 가을에 매우 괴롭다고 하며 한 번 돌아봐주기를 바란다는 편지이다. 부모님 모시는 나머지에 학업을 계속해서 긴절하게 힘쓰고 있는지 물었다. 자신은 신병으로 가을이 되어 매우 괴로웠으나 점점 나아지고 있지만 학업하는 중에 겨를이 있으면 한 번 돌아봐 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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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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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05년 윤기섭(尹璂燮)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乙七月十七日 尹璂燮 乙七月十七日 尹璂燮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935_001 1905년 7월 17일에 사제 윤기섭이 장곡 사돈에게 여름 장마와 자신의 더위로 인한 설사와 며느리의 유종에 대한 걱정을 말한 간찰 1905년 7월 17일에 사제(査弟) 윤기섭(尹璂燮)이 장곡(長谷) 사돈에게 여름 장마와 자신의 더위로 인한 설사와 며느리의 유종(乳腫)에 대한 걱정을 말한 편지이다. 올해 여름 장마는 예년보다 배로 심해 모든 것이 막히고 끊어져서 인사가 많이 원망스러운 가운데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어버이는 큰 탈 없으시고, 자신은 더위로 인한 설사로 건강하지 못하다. 며느리는 유종을 다섯 달이나 앓았으나 아직 완쾌되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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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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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68년 안겸수(安謙洙)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同治七年十月卄九日 安謙洙 同治七年十月卄九日 安謙洙 전라남도 보성군 증인 3인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68년 10월 29일에 안겸수(安謙洙)가 논을 매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1868년 10월 29일에 안겸수(安謙洙)가 논을 매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이다. 자기가 매득하여 여러 해 동안 갈아먹다가 아우의 부채를 갚고자 문전면 덕봉촌 전평 등자(登字) 논 4두락지 부수(負數) 10복(卜)4속(束)을 전문(錢文) 160냥에 영영 방매하면서 발급한 증서이다. 답주와 증필(證筆), 증인이 기재되어 있는데, 답주는 안겸수이며, 증필은 박한표, 증인은 이군서와 김처용이다. 답주 이하 모두의 이름 아래에는 수결이 있는데, 답주는 상중이라 착명하지 않았다. 중간 이하에는 행간에 작은 글씨로 환퇴(還退) 관련 내용을 적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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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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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모년 문전면 소재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전라남도 보성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모년 논을 매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모년 논을 매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이다. 전래해온 논을 여러 해 동안 벼를 받다가 상채(喪債)를 갚을 길이 없어 문전면 덕봉촌 전평 등자(登字) 논 4두락지 부수(負數) 10복(卜)4속(束)을 전문(錢文) 160냥에 영영 방매하면서 발급한 증서이다. 환퇴(還退) 관련 내용이 추기되어 있다. 명문의 기재형식에서 앞의 문서명과 뒤의 답주·증인 등에 대한 기록들이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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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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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77년 박역굴(朴汝ㄱ屈) 등의 임야매매명문(林野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光緖三年二月卄三日 朴{汝/ㄱ}屈 光緖三年二月卄三日 朴{汝/ㄱ}屈 전라남도 보성군 朴{汝/ㄱ}屈 외 3인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77년 2월 23일에 박역굴(朴汝ㄱ屈) 등 4인이 선산을 매매하면서 발급한 임야매매명문(林野買賣明文) 1877년 2월 23일에 박역굴(朴汝ㄱ屈) 등 4인이 선산을 매매하면서 발급한 임야매매명문(林野買賣明文)이다. 변고가 있는 해를 당해 모든 자손이 살아나갈 길이 없어 종회 의논에 의거해 본군 문전면 가천촌 가력동 선산 금양국내(禁養局內)를 전문 11냥에 영영 방매하면서 발급한 증서이다. 산주(山主)의 기록이 있는데, 한량 박역굴과 약수, 득추, 순철 등이다. 이름 아래에 수결이 있다. 매득자의 직역과 성명은 기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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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69년 선영준(宣永準)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同治八年正月十三日 宣永準 同治八年正月十三日 宣永準 전라남도 보성군 宣永準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69년 정월 13일에 선영준(宣永準)이 대송(大松)을 매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1869년 정월 13일에 선영준(宣永準)이 대송(大松)을 매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이다. 유래해 온 대밭을 여러 해 동안 집안에서 이용하다가 이사하게 되어 문전면 가천촌에 있는 논밭의 큰 소나무 1주를 전문 7냥에 영영 방매하면서 발급한 증서이다. 전주는 선영준이며 자필(自筆)하였다. 이름 아래에 수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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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1886년 이기두(李箕斗) 절충장군행용양위부호군(折衝將軍行龍驤衛副護軍) 교지(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光緖十二年 十二月 日 李箕斗 光緖十二年 十二月 日 高宗 李箕斗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914_001 1886년 12월에 이기두를 절충장군행용양위부호군에 임명한다는 일종의 사령장 1886년 12월에 이기두를 절충장군행용양위부호군에 임명한다는 일종의 사령장이다. 이기두는 직역이 유학(幼學)이었다가 이때 아마도 납속(納粟) 등의 방법으로 관직을 취득한 것으로 보인다. 유학은 학교에 적을 둔 양반유생을 가리킨다. 임명된 관직은 절충장군행용양위부호군이다. 절충장군은 정3품 당상관의 무관 품계이다. 행(行)은 행수법(行守法)이라는 인사 규정의 하나로서 관직이 품계보다 낮을 경우 관직 앞에 이 글자를 붙인다. 용양위부호군은 중앙군사조직인 오위(五衛)의 하나인 용양위에 소속된 종4품의 무관직이다. 끝에는 날짜를 기재하였는데, 직인을 찍은 부분을 종이를 붙여 가렸다. 광서는 중국 청나라 광서제의 연호이며, 이는 갑오개혁 이전인 1894년까지 사용되었다. 직인은 연호년 위에다 찍었는데, 흐려서 글자를 식별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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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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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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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1886년 이기두(李箕斗) 통정대부(通政大夫) 교지(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光緖十二年 十二月 日 李箕斗 光緖十二年 十二月 日 高宗 李箕斗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914_001 1886년 12월에 이기두를 통정대부에 임명한다는 일종의 사령장 1886년 12월에 이기두를 통정대부에 임명한다는 일종의 사령장이다. 이기두는 직역이 유학(幼學)이었다가 이때 아마도 납속(納粟) 등의 방법으로 관직을 취득한 것으로 보이는데, 먼저 절충장군행용양위부호군을 취득하였다. 그 직후에 또 임명된 관품이 통정대부이다. 통정대부는 문관의 품계로서 종3품의 상계(上階)이다. 끝에는 날짜를 기재하였는데, 직인을 찍은 부분을 종이를 붙여 가렸다. 광서는 중국 청나라 광서제의 연호이며, 이는 갑오개혁 이전인 1894년까지 사용되었다. 직인은 연호년 위에다 찍었는데, 흐려서 글자를 식별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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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1886년 이기두(李箕斗) 가선대부행용양위호군(嘉善大夫行龍驤衛護軍) 교지(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光緖十二年 十二月 日 李箕斗 光緖十二年 十二月 日 高宗 李箕斗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914_001 1886년 12월에 이기두를 가선대부행용양위호군에 임명한다는 일종의 사령장 1886년 12월에 이기두를 가선대부행용양위호군에 임명한다는 일종의 사령장이다. 이기두는 직역이 유학(幼學)이었다가 이때 아마도 납속(納粟) 등의 방법으로 관직을 취득한 것으로 보이는데, 먼저 절충장군행용양위부호군을 취득하였다. 그 직후에 또 임명된 관직이 통정대부이다. 가선대부는 문관의 품계로서 종2품의 하계(下階)이다. 행(行)은 행수법(行守法)이라는 인사 규정의 하나로서 관직이 품계보다 낮을 경우 관직 앞에 이 글자를 붙인다. 용양위호군은 중앙군사조직인 오위(五衛)의 하나인 용양위에 소속된 정4품의 무관직이다. 끝에는 날짜를 기재하였는데, 직인을 찍은 부분을 종이를 붙여 가렸다. 광서는 중국 청나라 광서제의 연호이며, 이는 갑오개혁 이전인 1894년까지 사용되었다. 직인은 연호년 위에다 찍었는데, 흐려서 글자를 식별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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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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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住所同一證明願變更前住所 富川郡 蘇萊面 茂芝洞 參統九戶變更後住所 富川郡 蘇萊面 茂芝里 貳百七拾參番地右ハ 同一ノ住所ニシテ 茂芝洞ト 茂芝里ト 大正四年四月一日 行政區域實施ノ結果ニ因リ 且參統九戶ト 貳百七拾參番地ト 大正五年 九月 一日 蘇萊面告示第一號ニ 因リ 變更シタル事 御證明相成度候也大正五年 拾貳月 九日 富川郡 蘇萊面 茂芝里 貳百七拾參番地 願人 李宜容 (印)蘇萊面長 殿右相違ナキコトテ證明ス大正五年 拾貳月 九日 富川郡 蘇萊面長 南吉祐 (印)<피봉>宜容住所同一證明 李宜容 殿蘇萊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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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印鑑證明願大正年月 富川郡 蘇萊面 茂芝里 貳七三番地(印)(印) 印鑑 李宜容開國四百八拾貳年 拾貳月 拾貳日生右ハ 拙者使用ノ印鑑ニ相違無之旨 御證明相成度奉願候也大正五年 拾貳月 九日 富川郡 蘇萊面 茂芝里 貳百七拾參番地 右願人 李宜容 (印)蘇萊面長 南吉祐 殿面第貳參參號印鑑臺帳ニ照シ 右印鑑ト 相違ナキコトテ證明ス大正五年 拾貳月 九日 富川郡 蘇萊面長 南吉祐 (印)<피봉>茂芝里 李宜容 處 宜容印鑑證蘇萊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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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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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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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김주백에게 보냄 경인년(1950) 與金周伯 庚寅 형이 권순명을 데리고 나에게 와서 그와 화해시키려는 의도는 좋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제 자신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선사(先師)와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일찍이 권순명에게 "만약에 간옹께서 인가받으라는 뜻을 지니셨다면 어찌 간옹선생이 되셨겠습니까?"라고 하니, 권순명이 내 무릎을 어루만지며 온화하게 말하기를, "이와 같다면 온당치 않습니다. 이제 그만합시다."라고 했습니다. 내가 "우리들이 맹자가 공자를 존중하듯이 간옹을 존중한다면 무슨 온당치 않음이 있겠습니까. 맹자가 '공자가 위나라에서 옹저(癰疽)를 주인 삼았다면48) 어떻게 공자가 될 수 있었겠는가'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하자, 권순명은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후에 다시 편지로 질문했는데도 답장이 없었고, 계속 음성의 오진영을 존경하며 믿었습니다. 근래에 친구 정교원(鄭喬源)이 '은행나무 밑 대나무 평상에서 말한 것이 있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애매하게 대답하지 않고 "이런 말을 하필 나한테 묻습니까?"라고 말하고, 바쁜 일이 있어 가야 한다고 하면서 바로 나가버렸습니다. 그의 뜻을 살펴보건대, 선사께서 인가받으라는 뜻을 지니셨다는 그의 말이 뚜렷하니, 이는 어찌 선사를 무함한 것이 아니겠습니까?내가 저들과 30년 동안 절교하지 않았지만 저절로 절교된 것은 단지 이 하나의 일 때문이고, 저들이 사람을 보내와 화해를 청한 것이 한 번이 아닌데 끝내 응하지 않은 것도 단지 이 하나의 일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70이 되어 죽게 된 때에 갑자기 이 일을 잊고 스승을 무함한 자들과 함께 화해를 한다면 어찌 똑같이 스승을 무함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들이 만약 이전의 견해를 통렬히 고쳐서 반기를 들어 오씨를 성토하고 선사의 묘소에 달려가 고하고서 동문의 여러 사람들에게 돌아가며 사과한다면 내가 장차 가서 만나는 것도 안 될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들이 비록 나를 찾아온다 하더라도 어찌 얻는 것이 있겠습니까?형은 이 일에 대하여 이전에 있었던 양쪽의 시비에 대하여 다소간 말한 것이 있는데, 지금 화해시키려 하는 것은 그들이 잘못을 고쳤는가의 여부를 묻지도 않고 하겠다는 말 아닙니까? 그러나 일처리 하는 의리에 대해서는 그 마음의 변화를 완전히 알기 전에는 절대로 가볍게 허락할 수 있는 이치는 없습니다. 비록 그러할지라도 형은 이미 저 사람과 인친관계를 맺어 친밀함이 더욱 절실하니, 반드시 성심으로 그들을 깨우쳐서 그들로 하여금 선뜻 뉘우치고 깨달아 끝내 사문(師門)의 죄인이 되지 않게 한다면 나도 그들과 화해할 날이 있을 것이니 오직 이것을 바랄 뿐입니다. 兄之欲携權就我, 與之和解者, 意亦善矣. 但此事非關吾身, 關乎先師. 吾嘗語權曰: "若有認意, 何以爲艮翁?" 權按吾膝而溫言曰: "如此則未安, 已之已之." 吾曰: "吾輩之尊艮翁, 若孟子之尊孔子, 有何未安? 孟子豈不曰: '孔子主癰疽, 何以爲孔子乎?'" 權無言. 後又書質, 亦無答, 而一向尊信陰吳. 近於鄭友喬源杏下竹床說有無之問, 模糊不對而曰"如此說, 何必問我?", 方傯忙當去即出. 觀其意, 其謂先師有認意者躍如, 則是豈不爲誣師乎?吾之與彼三十年不絕而自絕者, 只爲此關, 自彼遣人請和者非一, 而終不應者, 只爲此關. 今於七旬將死之日, 忽然打破此關, 與誣師者共和, 則豈不同爲誣師乎? 彼若痛改前見, 反旗討吳, 走告先師之墓, 輪謝同門諸人, 吾將往見, 亦無不可. 不然, 彼雖就我, 安所得乎?兄於此事, 從前之兩邊是非, 有多少云云之說, 今之欲和解者, 亦非謂不問其改革與否而爲之? 然處事之義, 未悉其心面變化之前, 萬無輕許之理矣. 雖然, 兄既與其人通家而親益切, 必將誠心喻之, 使之幡然悔悟, 不終爲師門罪人, 則吾之和解亦有其日, 惟是之望焉爾. 맹자가……삼았다면 《맹자(孟子)》 〈만장 상(萬章上)〉에 다음과 같은 대화가 수록되어 있다. "만장이 물었다. '혹자가 이르기를 공자가 위나라에서는 옹저를 주인으로 섬겼고, 제나라에서는 내시인 척환을 주인으로 섬겼다고 하는데 이런 일이 있었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일을 꾸미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지어낸 말이다〔萬章問曰 : 或謂孔子於衛, 主癰疽, 於齊主侍人瘠環, 有諸乎? 孟子曰 : 否. 不然也. 好事者爲之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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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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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김주백에게 답함 신묘년(1951) 答金周伯 辛卯 어제 편지에서 권씨가 저를 보러온다고 하였다가, 잠시 후에 다시 "호남과 영남의 시비를 따지는 말을 야기한다면 재미가 없을 것이므로 그만둔다"고 말했는데, 그 말이 매우 가소롭습니다. 맹자께서 "시비를 올바르게 가리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49)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주자께서도 "학문을 하는 것은 단지 잘못을 없애고 옳은 것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다."50) 하셨으니, 옳은 것과 잘못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 있더라도 시비를 가릴 수 있는데, 하물며 저에게 있는 경우에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모든 일이 이와 같은데 하물며 부모나 스승과 관계된 일에 있어서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만약 제가 기꺼이 사람답지 않은 사람51)이 되어서 학문을 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만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찌 오진영이 스승을 무함한 죄를 성토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권순명은 30년 동안 오진영을 존경하고 믿으면서 나를 배척하여 "오진영에게 스승을 무함한 죄를 억지로 더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한테 와서 화해를 하자고 하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만약에 종전에 저지른 큰 잘못이 그릇되었음을 깨달았다면 어찌 입을 열어서 목구멍을 보이는 것처럼 분명하게 어제가 그르고 오늘이 맞다고 말하지는 않고, 반대로 시비를 서로 질문함에 밑바탕이 폭로될까 두려워하여 독을 남긴 채 봉투를 봉함하는 것처럼 가리고 막아 원한을 숨기고 타인을 벗하는52) 데에 귀착되는 것을 꺼리지 않습니까? 이것이 어찌 선비의 마음 씀씀이이겠습니까? 공자께서는 "분별하지 않을지언정 분별하면 분명하지 못한 것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는다"53)고 하였습니다. 지금 기왕에 오고자 한 것은 정말 좋은 일이니, 피차간에 할 말을 다하고 논의를 다하여 의리를 끝까지 완벽하게 규명하고서 깨끗한 곳에 몸을 세워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이미 후회하는 마음이 싹튼 기미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니, 다시 어느 때를 기다린단 말입니까? 아! 오늘날 학문을 익히는 것이 참으로 이와 같단 말입니까? 이상할 따름입니다. 어제 만났을 때 자리가 좀 멀었고, 말하기는 병중이라 더욱 어려워 자세하게 전달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에 다시 편지를 보내오니 삼가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昨枉喻以權欲來見我, 而旋復曰"恐其惹出湖嶺是非說, 則沒滋味, 故罷之", 其言極可笑. 孟子不云乎? "無是非之心, 非人也." 朱子不云乎? "爲學只要去非求是." 是與非在人, 猶當是之非之, 况當於我者乎? 凡事猶然, 况事關父師者乎? 使我甘作非人而不欲爲學則已, 不然, 安得不討吳誣師之罪乎? 權則三十年來尊信吳也, 斥我謂"勒加吳以誣師之罪矣." 今欲來我而親和者, 何意? 如云覺其從前鑄錯之非也, 則何不分明說昨非今是, 若開口而見咽, 反慮是非相質, 底蘊畢露, 欲掩覆遮攔, 若留毒而封皮, 不憚爲匿怨友人之歸? 是豈士子之用心乎? 孔子曰: "有不辨, 辨之, 不明不措." 今既欲來則正好, 彼此極言竭論, 以究義理十分到頭, 立身於潔凈之地. 不此之爲, 坐失悔心已萌之機, 更待何時? 鳴呼! 今之講學, 固如是歟? 可異也已. 昨唔時, 坐次稍遠, 語音病中益艱, 未由詳達. 茲復書申, 伏惟諒察. 시비를……아니다 《맹자(孟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측은지심은 인의 단서이고, 수오지심은 의의 단서이고, 사양지심은 예의 단서이고, 시비지심은 지의 단서이다. 사람이 이 사단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체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으니, 이 사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인의를 행할 수 없다고 말하는 자는 자신을 해치는 자이고, 자기 군주가 인의를 행할 수 없다고 말하는 자는 군주를 해치는 자이다.〔惻隱之心 仁之端也 羞惡之心 義之端也 辭讓之心 禮之端也 是非之心 知之端也 人之有是四端也 猶其有四體也 有是四端而自謂不能者 自賊者也 謂其君不能者 賊其君者也〕"라는 말이 나온다. 학문을……것이다 주희는 "학문하는 것은 다만 정성을 다하고 오래도록 견디면 얻지 못함이 없을 것이니, 굳이 딴 생각하여 앞뒤를 잴 필요가 없다〔爲學只要致誠耐久, 無有不得, 不須別生計較, 思前算後也〕"라고 하였다. 《주자대전(朱子大全)》 권60 〈답임숙공(答林叔恭)〉. 사람답지 않은 사람 앞에서 말한 시비를 올바르게 가리는 마음이 없는 사람을 지칭한다. 원망을……벗하는 공자는 "말을 잘하고 낯빛을 좋게 꾸미며 지나치게 공손하게 함은 좌구명이 부끄럽게 여겼는데, 나 또한 부끄럽게 여긴다. 원망을 감추고서 그 사람과 사귀는 것을 좌구명이 부끄럽게 여겼는데, 나 또한 부끄럽게 여긴다.〔子曰, 巧言令色足恭, 左丘明恥之, 丘亦恥之. 匿怨而友其人, 左丘明恥之, 丘亦恥之〕"라 했다.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 분별하지……않는다 《중용장구(中庸章句)》의 제20장 "배우지 않을지언정 배우면 능하지 못하거든 그대로 버려두지 말며, 묻지 않을지언정 물으면 알지 못하거든 그대로 버려두지 말며, 생각하지 않을지언정 생각하면 터득하지 못하거든 그대로 버려두지 말며, 분변하지 않을지언정 분변하면 분명하지 못하거든 그대로 버려두지 말며, 행하지 않을지언정 행하면 독실하지 못하거든 그대로 버려두지 말아서, 남이 한 번에 능하거든 나는 백 번을 하고 남이 열 번에 능하거든 나는 천 번을 하여야 한다. 과연 이 도에 능하면 비록 어리석으나 반드시 밝아지며 비록 유약하나 반드시 강해진다.〔有不學 學之 不能不措也 有不問 問之 不知不措也 有不思 思之 不得不措也 有不辨 辨之 不明不措也 有不行 行之 不篤不措也 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 果能此道矣 雖愚必明 雖柔必剛〕"라고 한 것을 인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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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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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오극경병수에게 답함 정축년(1937) 答吳極卿秉壽 ○丁丑 근래에 나아가 배알했는데, 자취는 우연인 것 같지만 마음속으로 오랫동안 모색한 것입니다. 받들어 대면함에 있어 꾸밈없이 정성껏 맞아 주시고,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말씀을 해주시니 안색은 오랜 친구와 같고 마음은 전일했습니다. 한 마디 말로 일생의 사귐을 정하고 세 잔의 술로 세 희생의 피를 대신하니, 제 소원이 비로소 이루어지고 바람이 성취되었습니다. 마음속으로 궁핍한 인생에서 즐거운 일은 이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말년에 익우(益友)를 얻은 것은 개인적으로 다행이니, 복분(福分)이 적지 않습니다. 돌아와서도 내내 마음이 흡족했는데 우러러 두터이 내려주신 은혜에 감사할 겨를도 없이 먼저 보내주신 편지를 또 받았습니다. 비할 데 없는 한때의 거친 논설을 인자(仁者)가 정중히 말해주는 예로 간주해주시고, 심지어 '하늘이 우리 노형을 사랑하여 다시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는 말씀을 하시니, 베풀어준 것은 없는데 보답만 받는 것 같아 부끄러워 감히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다른 산에 있는 돌이 비록 거칠지라도 옥을 가는 데에는 유용하고54), 초나라 수도 영에서 보낸 편지가 비록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연나라를 다스리는 데에는 도움이 되었으니55), 형 같은 사람은 취하여 미루어나가는 것56)을 잘하여 인을 실천하는데 뛰어나다 할 것입니다. 아! 사람이 서로를 아는 것은 마음이 서로 통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니, 선비의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편지로 교류한다고 명분을 삼고는 더러 자신의 학문을 믿고 잘난 체 하여 정성껏 접대하려 하지 않기도 하고, 더러 단점과 졸렬함을 감춘 채 물어서 배우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죽을 때까지 추종하면서도 끝내 겉으로는 노나라와 위나라처럼 가까이 지내지만 속으로는 연나라와 월나라의 거리만큼 먼 것을 면하지 못하는 자들은 역시 도대체 무슨 마음입니까? 저는 평소에 이런 무리들이 하는 짓을 부끄럽게 여기고 항상 옛사람 대장부의 심사(心事)를 사랑하여 '푸른 하늘에 뜬 밝은 해는 사람마다 볼 수 있다'57)는 말씀과 같은 내용을 삼가 배우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비로소 우리 형을 만나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주자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세상의 만사는 순식간에 변하고 사라지니 모두 마음속에 담아둘 만한 것은 없고, 오직 책을 읽어 이치를 궁구하는 것58)이야말로 구경법(究竟法)59) 이다.'라고 말입니다. 우리들은 모두 늙었고 세상과는 어긋났습니다. 푸른 등불 아래 누런 책을 보면서 옛 철인이 남긴 단서를 찾고, 차가운 물과 가을의 밝은 달에서 이 마음이 철저히 밝은 것을 보아서 이른바 구경법이라는 것을 구하니, 우리 형과 함께 서로 권면하기를 바랍니다. 비록 그러할지라도 책은 다만 읽은 것으로 끝나면 안 되고, 이치는 다만 궁구하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되니, 요컨대 마땅히 스스로 터득한 지취(志趣)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보내준 편지에서 말씀하신, 기쁨을 얻은 것도 많고 의심나는 것도 많다는 것이니, 생각이 이미 절반은 성공한 것입니다. 무릇 기쁨과 의심이 절반인 경우가 자득할 수 있는 방아쇠가 됩니다. 모두 의심만 하고 즐거워할만한 것이 있음을 알지 못한다면 이는 정말로 의심일 뿐입니다. 모두 기쁘기만 하고 의심나는 것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또한 참된 기쁨이 될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의심나는 것을 가지고 기뻐할 수 있는 것에 투영시켜서 통하게 할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참으로 기뻐하면서 자득할 수 있는 경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보내온 편지에서는 어찌 기뻐할 것과 의심나는 것을 한두 가지 언급하여 강론하면서 서로를 성장하게 하는 바탕으로 삼지 않으십니까? 이후에는 다시 이렇게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頃者造拜, 跡若偶緣, 心則積營. 及其承接也, 則削邊之欵, 由中之辭, 面如舊而心惟一, 一言以定一生之交, 三杯以替三物之血, 願始遂而望不負矣. 自以爲竆生快事, 無過於此. 而晚得益友, 私幸, 福分不淺. 歸猶充然, 仰謝厚賜之不暇, 乃承先書. 將一時荒蕪無倫之說, 看作仁者鄭重贈言之例, 至有天惠我老兄, 更起精神之喻, 無施受報, 愧不敢當. 然他山之石雖麁, 而功於攻玉; 郢都之書雖誤, 而資於治燕, 若兄者可謂善取譬而巧爲仁也. 嗟呼! 人之相知, 貴相通心, 士子爲尢甚. 彼名爲文字之交, 而或恃學自高, 不肯欵接, 或護短藏拙, 恥於問學, 終身追逐, 而卒不免靣魯衛而心燕越者, 亦獨何心? 區區平生羞作此輩之為, 常愛古人大丈夫心事, 如青天白日, 人得見之之語, 竊願學之. 而今始遇於吾兄, 何幸何幸? 朱夫子不云乎? '世間萬事, 須叟變滅, 舉無足置胷中, 惟有讀書竆理, 爲究竟法,' 吾儕俱老矣, 且世與違矣. 青燈黃卷, 尋曩哲之遺緒; 寒水秋月, 見此心之照徹, 以求所謂究竟法者, 願與吾兄交勖焉. 雖然, 書不可以徒讀, 理不可以徒竆, 要當有自得之趣. 此則來書所謂得喜處多, 得疑處亦多者, 已思過半矣. 盖喜疑相半, 自得之機關, 皆疑而不知有可喜, 固是疑也. 皆喜而不知有可疑者, 亦未爲真喜. 若能將可疑者反映於可喜者而通之, 則是可謂真喜而爲自得也. 今於來書, 胡不以可喜可疑者一二示及, 而作講明相長之資也? 後勿復然是望. 다른……유용하고 《시경(詩經)》에서는 "학이 구고에서 울거든 소리가 들에 들리니라. 고기가 잠겨 깊은 못 속에 있고 혹은 물가에도 있도다. 즐거운 저 동산에 심어놓은 박달나무여, 그 아래 낙엽이 떨어지는구나. 타산의 돌은 숫돌이 될 수 있느니라.〔鶴鳴于九皐, 聲聞于野. 魚潛在淵, 或在于渚. 樂彼之園, 爰有樹檀, 其下維蘀. 它山之石, 可以爲錯〕"라 했다. 《시경(詩經)》 〈소아·학명(小雅·鶴鳴)〉 초나라……되었으니 원래의 뜻을 잘못 이해하여 와전(訛傳)하는 것을 이른다. 옛날 중국의 영(郢) 지방 사람으로 연(燕)나라 상국(相國)에게 편지를 쓴 자가 있었는데, 등불이 어둡자 옆 사람에게 촛불을 들라고 말하고는 자기도 모르게 편지에 '촛불을 들라'고 썼다. 그런데 연나라 재상이 그 편지를 받아 보고는 기뻐하기를, "촛불을 들라는 것은 현자를 천거하여 쓰라는 말일 것이다." 하고는 곧 임금에게 아뢰어 그대로 실천하니, 연나라가 크게 다스려졌다. 《한비자(韓非子)》 〈외저설(外儲說) 좌상(左上)〉 취하여……것 공자가 "무릇 인자(仁者)는 자기가 서고자 할 때 남을 세우며, 자기가 도달하고자 하면 남을 도달하게 한다. 가까운 자신에게서 취하여 먼 곳의 남에게 미루어 간다면 인을 실천하는 방법이라 말할 수 있다. 〔夫仁者,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能近取譬, 可謂仁之方也已〕" 하였다. 《논어(論語)》 〈옹야(雍也)〉 푸른……있다 숨김없이 솔직히 드러난다는 뜻이다. 안동의 늙은 아전 권후중(權後重)이 상납색(上納色)으로 서울에 올라와 송시열을 만나고는 송시열의 거취(去就)에 대해 말하였다. 그 뒤에도 가끔 왕래하였으므로 송시열이 손수 "청천백일 인득이견지(靑天白日人得而見之)" 여덟 자를 대자(大字)로 써 주었다. 《송자대전수차(宋子大全隨箚)》 권8 책을……것 《주자어류(朱子語類)》 권8에는 '이치를 궁구하고 자신을 수양함〔窮理修身〕'이라고 되어 있다. 구경법(究竟法) 제법실상(諸法實相)을 뜻하는 불가(佛家)의 용어로, 최고 경지의 원리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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