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가 겨우 30리 남짓임에도 문하에 나아가 뵙지 못했는데도 지금 존장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못난 저는 어떻게 받았는지도 알지 못하겠으니, 무슨 영문인지 감사함보다는 부끄러움이 앞섭니다. 또한 편지 속에서 필봉이 예리하고 필치가 전아하며 또한 강건한 기운이 느껴지니, 팔순이나 되는 노사(老師)의 정력이 노쇠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일찍부터 능성(綾城)의 많은 석유(碩儒)가 참으로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우러러 공경함은 나의 개인사일 뿐만 아니고 또한 세도를 위한 다행입니다. 시현(施鉉)의 나이에서는 또한 쉽게 얻기가 어려운 수재입니다. 매번 여러 몽매한 사람 가운데서 보면, 흡사 닭 무리 속의 학을 보는 듯하였습니다. 근래에 인재가 묘연하여 훌륭한 일을 하는 자질이 되는 사람을 볼 수 있다면 어찌 애지중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는 그 모습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재주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 재주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고 행동을 가상히 여기는 것입니다. 공손하고 삼감은 가정에서 가르침을 받은 것이 많습니다. 덕문의 남은 복이 끝이 없습니다.저는 본래 용렬하고 지식이 부족하고 지조까지 없어서 세태에 따라 부침할 뿐입니다. 어찌 감히 일깨우는 스승의 책임을 맡겠습니까. 학원에서 기숙하는 것이 어찌 그 본분이 넘치는 것을 피할 수는 있겠습니까. 하지만 거의 남의 자제를 망치게 만드는 것이니, 참으로 두려운 심정을 마지않습니다. 말씀하신 재종숙은 바로 저의 삼종숙모입니다. 일찍이 부덕(婦德)이 있어 향리에서 효녀와 열녀라고 칭찬받았습니다. 효가 되는 까닭과 열이 되는 까닭은 우선 하나하나 열거할 수 없습니다. 세상을 떠난 지 이미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종자를 후사로 삼아 산업도 또한 그런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체후가 때에 따라 평안하여 더욱 늙지 말기를 바랍니다. 삼가 예식을 갖추지 않고 편지를 올립니다.1953년 10월 9일에 생 류종룡(柳鐘龍)이 절하고 답장 올림. 地僅一舍餘 未得進拜 門屛 而今拜尊札 生之無似不知得此 何由愧悚先於感荷 且 書中詞鋒精利 筆致典雅而亦有遒勁之氣 可見八旬老師之精力不衰 早聞綾城多碩儒者信然爾 景仰非獨我私 而亦爲世道欣幸耳 令施鉉年亦難易得之秀才也 每見於叢蒙中 髣髴乎鷄羣之鶴也 近來人才眇然 如得見有爲姿質 安得不愛重 非愛其皃而愛其才之美 非愛其才 而可尙其言動 恭謹之有所受於家庭者多矣 德門餘福未艾也 生本闒茸少知 兼無操守 與世俯仰浮沈而已 安敢當師表提撕之責耶 寄食學園 豈其本分濫觴 猶可逭焉 而幾乎誤人子弟者 固自悚懼不已 下示 尊再從叔氏卽生之三從叔母也 早有婦德 鄕里稱其孝與㤠 其所以孝其所以㤠者姑不須枚陳 其別世已多年 以其從子爲后 産業亦依過耳 餘伏祝道體候循時康旺 益增難老 謹不備上癸巳至月九日 生 柳鐘龍 拜謝上[皮封] (前面) 申生員 栢隐 座下(背面) 宝寓 柳鐘龍謹拜候書謹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