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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최성홍(崔聲洪) 십이대조고조비축문(十二代祖考祖妣祝文) 고문서-시문류-축문 종교/풍속-관혼상제-축문 庚戌九月癸丑朔十五日丁卯 聲洪 庚戌九月癸丑朔十五日丁卯 崔聲洪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경술년에 최성홍이 지은 조고와 조비의 제문 경술년(癸丑年)인 1970년에 최성홍이 지은 본인의 조고(祖考)와 조비(祖妣)의 제문(祭文)이다. 제삿날인 9월 15일에 읽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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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정규삼(鄭奎三) 쌍화정기(雙華亭記) 고문서-시문류-기 교육/문화-문학/저술-기 庚申三月 日 鄭奎三 庚申三月 日 1920 鄭奎三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20년에 정규삼이 작성한 쌍화정의 기문. 1920년에 정규삼(鄭奎三)이 작성한 쌍화정(雙華亭)의 기문(記文)이다. 쌍화정은 일명 상화정(尙華亭)으로보 불리웠던 곳으로, 덕암(德菴) 최병달(崔秉達)이 은거하면서 학문을 연마했던 곳이다. 원문에는 영주산(瀛洲山)에 있다고 하였는데, 영주는 고부(古阜)의 옛 이름이다. 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정읍시 덕천면 우덕리에 해당한다. 물론 이 정자는 현재 남아 있지 않다. 기문의 작성자 정규삼은 1858년생으로, 1888년(고종 25)에 직부전시(直赴殿試)를 통해 정시문과에 급제하였다. 급제 당시의 거주지는 고창(高敞)이었다. 관에 들어가 정언(正言)을 지냈다. 그의 조부 정성일(鄭誠一)도 문과 급제자로, 1816년(순조 16)의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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雙華亭記(一名尙華亭)德菴崔公秉達隱居行義於瀛洲山中爽然有無求於人世之意隱然有貞不絶俗之態華夷之分辨王霸尊黜把作腔肚裹一部春秋皆多之矣晩節捿遑一邱將欲建築之際因其從姪文烈缺輪奇事之備禀遂以之名焉噫東國雖僻在海表衣冠文物禮義風敎模倣三英者多華人稱曰小中華蓋使人如生於偏壤則生此小華見先王盛制流行於華夏者固一大幸也而公之生公之見兩得人人之所難焉亭之錫嘉蓋宜乎顧今伊洛腥羶禮樂籧篨不復目見則存諸心而寄留扁楣亦豈非華國之一邊手也有時乎携鳩筇岸鳥紗登欄憑眺東南群山羅列過墻(缺)楚江一帶平鋪開鏡之面郊林蒼翠巷陌烟樹遠近相望蓬瀛之間形勝在在而於此可讓一頭地也又其家法固多可記者兄弟聯枕之湛樂是雙棣之華胤子趨庭之詩禮亦雙蘭之華方興未艾艶人稱訟皆出於德菴行義之餘力聊以此遍告于登亭諸君子庚申三月 日 正言晋州鄭奎三謹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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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최학선(崔學善) 낙육정기(樂育亭記) 고문서-시문류-기 교육/문화-문학/저술-기 丁巳春三月下澣 崔學善 丁巳春三月下澣 1917 崔學善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17년 3월에 최학선이 작성한 낙육정의 기문. 1917년 3월에 야은(野隱) 최학선(崔學善)이 작성한 낙육정(樂育亭)의 기문(記文)이다. 낙육정은 원문에 완주군 초포면 미산리 172번지에 있다고 적혀 있는데, 이곳은 그동안 행정구역의 변천으로 지금은 전주시 덕진구 송천동 부근에 해당한다. 원문에는 최학선이 정사년 3월에 이 정자를 지었다고 나온다. 그의 생몰년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는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할 수 없다. 다만 그와 관련된 기록으로, ?승정원일기? 고종 5년(1868) 4월 9일(정해)조에 예조(禮曹)에서 임금에게 올린 계문 가운데 유학 최학선(崔學善) 등이 전주(全州)의 고(故) 학생 백상수(白象洙)의 효행에 대하여 정려해 달라고 하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최학선이 기문의 저자와 동일인물이라고 한다면, 위의 정사년은 1857년이나 1917년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최학선의 기문에 뒤이어 기미년 11월에 춘계(春溪) 유상룡(柳相龍)이 작성한 낙육정 서문이 실려 있다. 유상룡은 최학선과 교우하였던 인물인데, 문익환(文翊煥, 1870-1930)의 ?정헌유고(靜軒遺稿)?에 문익환이 보낸 간찰의 수신인으로 나온다. 따라서 기미년은 1919년에 해당하는 것이 틀림없으며, 위의 기문 작성연대인 정사년도 1857년이 아니라 1917년이 맞다. 최학선은 정자의 이름을 낙육(樂育)이라고 지은 이유를 맹자(孟子)가 말한 군자삼락(君子三樂)의 하나에서 찾고 있다. 맹자는 "군자에게 세 가지 즐거움이 있으니, 천하에 왕 노릇하는 것은 여기에 끼지 않는다. 부모가 다 생존하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위로는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아래로는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요,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시키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君子有三樂 而王天下不與存焉 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 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 得天下英才而敎育之 三樂也)"라고 하였다.(?孟子? 盡心上) 요컨대 최학선은 말년에 이곳 완주군 초포면 미산리에 정자를 지어 후진을 가르치면서 여생을 보내고자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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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부사(府便) 최명손(崔命孫) 묘갈명(墓碣銘) 고문서-시문류-묘문 개인-전기-묘문 己丑至月 族後孫崔秉心撰 己丑至月 崔秉心 崔命孫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49년 11월에 최병심이 작성한 부사공 최명손의 묘갈명 병서의 초안 1949년 11월에 후손 최병심(崔秉心)이 부사공 최명손(崔命孫)의 평생 사적(事蹟)을 작성한 묘갈명(墓碣銘) 병서(幷序)의 초안(草案)이다.최명손은 본관이 전주(全州)이며, 집현전 직제학 월당(月塘) 최담(崔霮)의 현손이다. 증조는 한성소윤을 지낸 율헌(栗軒) 최득지(崔得之)이며, 조는 현감 최자목(崔自睦), 부는 증상장군(贈上將軍) 최분(崔汾), 어머니는 숙부인(淑夫人) 창령성씨(昌寜成氏)이다. 공은 선천부사도총관경력(宣川府使都摠管經歷)을 지냈고 부인은 숙부인 연안이씨(延安李氏)이다. 묘는 분토동(粉土洞) 현감공 묘 아래 서쪽을 향하여 쌍분으로 있는데 어언 400여 년이 흘렀다. 가첩(家牒)에 기록되는 것이 이와 같이 적지 않은데도 자, 호, 생졸년, 또한 모두 전해지지 않고 있으며, 가정이나 고을을 다스린 일에 대해서는 전하는 것이 없다. 옛날 공자 때에도 하(夏)나라와 상(商)나라의 예를 기(杞)나라와 송(宋)나라에서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이 선대의 비를 세우는데 어찌 감히 조금이라도 근거 없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공의 둘째 아들 희정의 ?덕촌집(德村集)?을 보면. 공이 추천을 받아 북으로 가면서, 둘째에게 효도로서 그의 장형을 섬길 것을 부탁하였다고 한다. 공이 공적을 세우고 조정에 돌아오자 조정에서 이를 가상히 여겨 관직을 하사하였는데, 공은 신하로서 적을 멸하였을 뿐인데 어찌 감히 상을 받을 수 있냐고 하며 굳게 사양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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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0년 처암(處菴) 최계성(崔繼成) 묘갈명(墓碣銘) 고문서-시문류-묘문 개인-전기-묘문 崇禎紀元后三庚辰 中學敎授南綺老撰 崇禎紀元后三庚辰 南綺老 崔繼成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820년(순조 20)에 남기노가 작성한 처암선생 최계성의 묘갈명 병서의 초안. 1820년(순조 20)에 남기노(南綺老)가 처암(處菴) 최계성(崔繼成)의 평생 사적(事蹟)을 작성한 묘갈명(墓碣銘) 병서(幷序)의 초안(草案)이다. 최계성의 자는 소선(紹先)이며, 처암은 그의 호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고궁당(固窮堂) 최수손(崔秀孫)의 넷째 아들이다. 조는 최생명(崔生明), 증조는 최광지(崔匡之)이며, 고려시중 문성공 최아(崔阿)의 후손이다. 어머니는 최씨(崔氏)로 사정(司正) 최효로(崔孝老)의 딸이다. 처암은 어려서부터 재능이 남보다 제법 뛰어나 고궁당이 일찍이 아이를 안고 정원을 거닐다가 하늘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누가 네 구석에 어떤 기둥을 두었길래 하늘이 이처럼 광활한가. 어린 아들이 대답했다. 하늘이 땅을 덮고 땅이 하늘을 실었으니 그 가운데가 자연히 광활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고궁당은 아들을 기이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는 장성하여 부모에게 지극 정성으로 효도하고 부모의 질병은 하늘이 가져가라고 빌기도 하였다. 상(喪)을 당하자 예를 다하여 치뤘으며, 형과 누이를 어버이 섬기듯 똑같이 섬겼다. 일이 조정에 알려져 명종(明宗) 때 정려(旌閭)를 받았는데 그 사실이 삼강록(三綱錄)에 실려있다. 정묘년에 사마시(司馬試)에 다시 응시하지 않고 부령(扶寧)의 옹정(甕井)에 거처를 마련하여 처암(處菴)이라고 부르며 당대의 유명한 유림들과 교류하며 지냈다. 부인은 김씨(金氏)인데 소생이 없고 후처 최씨(崔氏)에게서 하(河), 온(溫), 활(活), 말(沫) 등 네 명의 아들을 두었다. 이들 중 하와 온은 요절하여 자식이 없다. 활은 부령김씨(扶寧金氏)를 취하여 아들 시립(時立), 산립(山立), 선립(善立) 등 3명을 두었고, 말은 여산송씨(礪山宋氏)를 취하여 딸 1명을 두었다. 공의 묘는 석동(席洞)의 선영 아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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處菴先生諱繼成墓碣銘幷序崔公繼成字紹先全州人固竆堂秀孫第四子也祖諱生明生員殿直曾祖諱匡之集殿提學高麗侍中文成公阿於公爲鼻祖妣宜人崔氏司正孝老女也公幼而秀穎固竆公嘗抱行中庭指天問曰誰柱四隅而如是廣闊曰天覆地地載天中自廣闊固竆公奇之旣長克孝父母疾祈天獲冥隲居喪以禮以所事移兄姊事聞于朝 明廟嘉之旌其閭事在三綱錄中丁卯司馬不復應擧卜居于扶風之甕井號處菴息營屛囂潛心講究所與遊皆一時名儒也配金氏後配崔氏生四男長河次溫次活奉事次沫正郎河溫早殀無子活娶扶寜金氏通政義貞女生三男長時立奉事次山立次善立奉事沫娶礪山宋氏縣監期忠女生一女適判書權悏後孫蘩衍克紹家聲式公種德貽穀之驗也墓左席洞先塋下公七世孫道彬屬余以銘銘曰孝以傳家趾美乃先胡式其閭維黔與連刻文玆石永圖厥傳崇禎紀元后三庚辰通訓大夫弘文館副修撰知制 敎兼經筵檢討官春秋記事官中學敎授南綺老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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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노동(金魯東) 석천(石泉) 최응렬(崔膺烈) 묘갈명(墓碣銘) 고문서-시문류-묘문 개인-전기-묘문 金魯東 金魯東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김노동이 지은 최웅렬의 묘갈명 안동김씨(安東金氏)인 김노동(金魯東)이 지은 최응렬(崔膺烈)의 묘갈명이다. 석천(石泉)은 최응렬의 호이다. 최응렬은 학문이 매우 뛰어났던 분이다. 그의 학문은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으로부터도 인정 받을 정도였다. 본 묘갈명은, 수정 흔정이 있는 것으로 보아 초안(草案)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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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임필희(林苾熙) 이우당기(二友堂記) 고문서-시문류-기 교육/문화-문학/저술-기 己卯蜡月 日 林苾熙 己卯蜡月 日 1939 林苾熙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39년 12월에 임필희가 작성한 이우당의 기문. 1939년 12월에 임필희(林苾熙)가 작성한 이우당(二友堂)의 기문(記文)이다. 전주최씨(全州崔氏) 최득호(崔得昊)와 최득화(崔得華)의 효우(孝友)를 기리기 위하여 후손이 지은 정자에 임필희가 이우당이라는 당호(堂號)를 지어주면서 작성한 기문이다. 최씨 형제는 연촌(烟村)과 암계(巖溪)의 후손으로 강선(降仙)에 터를 잡고 살았으며, 부모에 대한 효성과 형제간의 우애가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강선은 유절재 소장 문서 가운데 하나인 '1954년 권도용(權道溶) 귀후재기(歸厚齋記)'에 따르면, 전주최씨 중에서 두 형제가 천령(天嶺)에서 이곳 강선대(降仙臺) 아래 최씨가의 별장[崔氏莊]이 있는 곳으로 내려와 살면서 향족(鄕族)이 되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강선대의 위치를 말하면서, 덕유산(德裕山)의 남쪽이자 금원산(金猿山)의 북쪽이라고 하였다. 아마도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일대로 추정된다. 이들 최득호 형제의 후손 최광호(崔光顥)가 임필희를 찾아와 새로 지은 정자의 당명을 부탁하자 두 형제의 우애가 돈독하였다는 뜻으로 이같은 당호를 지어준 것이다. 기문의 작성자 임필희는 일제 강점기 거창 출신의 독립운동가로 유명한 임유동(林有棟, 1900~1950)의 부친이다. 임필희는 또 1957년에 경남 함양의 종담서당(鐘潭書堂)에서 석채례(釋菜禮)를 지낼 때 자이당(自怡堂) 유사(有司)의 한 사람으로 그곳에 보낸 제수단자가 전하고 있다. 이것으로 보아 이우당 기문의 작성연대로 기록한 기묘년은 1939년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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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최병수(崔秉銖) 전주최씨종대(全州崔氏宗垈) 중건기(重建記) 고문서-시문류-기 교육/문화-문학/저술-기 己卯四月上澣 秉銖 己卯四月上澣 崔秉銖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39년 최병수가 지은 전주최씨종대 중건기의 전사본 1939년 최병수(崔秉銖)가 지은 전주최씨종대(全州崔氏宗垈) 중건기(重建記)를 누군가 연필로 옮겨 적은 것이다. 끝에 최기홍서(崔基洪書)로 되어 있인데, 그것은 본 기문을 현판에 새길 때의 글씨를 최기홍이 썼다는 의미이다. 본 중건기에는 전주(全州)에 있는 전주최씨 종대의 역사와 중건하게 된 과정 등을 언급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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府使公諱命孫墓碣銘幷序公諱命孫全州■〔人〕高麗門下侍中諡文成阿爲上祖我 朝集賢殿■(直)提學諱霮號月塘之玄孫也曾祖諱得之號栗軒官漢城少尹祖諱自睦官縣監考諱汾 贈上將軍妣淑夫人昌寜成氏公宣川府使都摠經歷配淑夫人延安李氏郡守登全女墓粉土洞縣監公墓下西向雙兆今距公之世已四百有餘年矣家牒所錄不過如此雖字號生卒年亦皆不傳况乎家政郡治之懿乎夫杞宋王之〔者〕之後■〔以〕其文獻不足徵故聖人不言夏商之禮顧此碑役何敢爲一毫無據之言乎但嘗見公之次允希汀德村集有德村被薦入北之日■〔以〕孝養事囑其伯兄進士及功成還朝之日 中廟嘉之歎賞以官公固謝曰滅狄臣職何賞之有且言歸養云云 上特賜東岦山一區今遠孫追先孝以營墓碑此可銘也且公繼祖塘栗之烈垂後德慕順農之裕俱以忠孝師傅著■今古亦可書也男長希潤成均進士次希汀 贈兵曹參判享書山院進士生鎭河工曹參議兵參生鎭洪禦侮副司果鎭河生汝浩參奉主簿司果生英佑司僕寺副正英俊禮賓寺正參奉生安慕■〔菴〕直長與子二順堂壬辰倡義募軍納米享道溪院當〔富〕通德郞寅工曹佐郞容副正生寬■〔僉〕樞寔中樞府事宏主簿寺正生宣奉事密奉事守主簿寧主簿銘曰 上承祖作下啓子述公之無憂周辟彷肆大小事殊隱顯理■〔達〕遠孫追孝盡誠治碣欝欝粉崗五尺有屹配德同原千秋芬苾 己丑至月上澣族後孫■〔崔〕秉心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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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靈山) 최지열(崔智烈) 묘갈명(墓碣銘) 고문서-시문류-묘문 개인-전기-묘문 崔智烈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모년에 양문규가 작성한 영산공 최지열의 묘갈명의 초안○ 내용 모년에 양문규(楊文圭)가 영산공 최지열(崔智烈)의 평생 사적(事蹟)을 작성한 묘갈명(墓碣銘)의 초안(草案)이다. 모년에 영산공 최지열(崔智烈)의 묘비에 사적(事蹟)이나 덕행(德行)을 후세에 알릴 목적으로 작성한 묘갈명(墓碣銘) 초안(草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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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최병학(崔秉學) 십이대조고조비축죽문(十二代祖考祖妣祝文) 고문서-시문류-축문 종교/풍속-관혼상제-축문 庚戌九月癸丑朔十五日丁卯 秉學 庚戌九月癸丑朔十五日丁卯 崔秉學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최병학이 경술년에 지은 조고와 조비의 제문 경술년(庚戌年)인 1970년에 최병영(崔秉永)이 지은 본인의 조고(祖考)와 조비(祖妣) 제문(祭文)이다. 제삿날인 계축년 9월 15일에 본 축문을 읽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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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윤영구(尹寗求) 한벽당기(寒碧堂記) 고문서-시문류-기 교육/문화-문학/저술-기 丁丑三月上澣 尹寗求 丁丑三月上澣 尹寗求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37년 윤영구가 지은 한벽당기의 전사본 1937년 윤영구(尹寗求)가 지은 전주 한벽당기(寒碧堂記)를 연필로 옮겨 적은 것이다. 한벽당의 역사 등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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樂育亭 完州郡草浦面美山里壹七貳番地樂育亭記完山龍興之地也故稱豐沛之邑而山川之壯麗人物之隆盛他州之所莫及矣自古名流輩出英才群聚涵泳於 聖朝鳶魚之化菁莪之育則州內簪纓之家名祖賢儒鍾出於山川淸淑之氣薰陶乎師友淵源之間可知其英才之育得也人品如古地靈不衰則人之英才何必古有而今無耶今或有之而吾未之見耶就見而吾未之知耶知之而吾未得而育之耶乾山一脉西落爲薇山數十里屈曲千百變斷續彩雲宿霞朝捲而夕張奇花瑤草春榮而秋實山斷水出大野間圻卽吾野隱之幽居也一間廢廬足以庇風雨矣採於山美可茹漁於水鮮可食春耕秋穫夏葛冬裘此吾分內之榮而無所形役於外物矣然而有一儲恨于中而晝宵不弛者卽欲一門英才之育得也噫余以圭竇寒門世居玆土僅保箕裘之舊業永存苗裔之滋長源深而支繁者莫非我先世遺蔭種德之積慶也以若不肖慨然有承先裕後之志于玆有年矣越若來丁巳春三起亭于村之南錫名曰樂育盖取諸鄒夫子所謂得天下英才而敎育之三樂者也三樂之中一樂者在天二樂者在我三樂者在人在天在人者吾末如之何已矣在我者吾當自盡而已嗟汝來許若能涵養於學問薰陶其德性心無自欺則浩然無愧可以贊位育之功至大人之域矣苟能盡在我則在人之英才必將聞風而來矣夫子曰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以此言之所謂三樂者雖在乎人而亦在乎我矣從事於斯無所間斷則英才之育豈但止於村秀才鄕學究而已哉其將羽翼斯文扶植世道有補於風化而吾門之幸孰若玆樂育之義乎嗟汝後蒙其顧名而勉乎哉吾以名吾亭焉丁巳春三月下澣 崔學善序夫人生於天地育物之中樂其自然之理則各得其(性)分之固有而樂其志也亦因氣質之所禀而育其材也故木在山而匠氏得以撲斵然後可以就棟樑之材矣珎在璞而玉人取之然後足以成圭瓚之器則人才之成就亦何異於此乎十室之邑必有忠信則何代無賢三代之風漸至渝薄則久矣無敎今玆薇山一脉發源於麒麟之峯而中祖於乾址之山則數十里屈伏千百變恠奇則山盡水會大野廣開隱然有淸淑之氣而豁然具仁智之樂矣斯間豈無賢人之居乎卽吾友野隱翁之幽居也天性好學地步超俗平生之志在於敎養子弟而及乎成就人才則此所謂幼吾幼而及乎人之幼矣搆堂於村之南而廣求一鄕之善士以爲螟誨之所旁招隣里之學徒俾授鳥習之地而名其亭曰樂育則鄒夫子所謂三樂中一樂也樂有萬殊而莫大於得英也育亦萬類而莫顯乎就才則野隱翁之樂其志(志育)才豈不超然遠慮哉余於斯有感而爲之記己未復月上澣全州后人春溪柳相龍謹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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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옹암최선생유허비각(甕菴崔先生遺墟碑閣) 상량문(上樑文) 고문서-시문류-상량문 경제-토목/건축-상량문 檀紀四千三百十三年庚申六月 日 檀紀四千三百十三年庚申六月 日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80년 6월에 지은 옹암최선생 유허비각의 상량문 1980년 6월에 지은 옹암최선생(甕菴崔先生) 유허비각(遺墟碑閣) 상량문(上樑文)이다. 정서본으로 보인다. 옹암은 최생명(崔生明)의 호이다. 그의 유허비각 상량문을 지을 때 본 글을 쓴 것인데, 누가 지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최생명은 부안의 옹정서원(甕井書院)애서 위패를 모시고 있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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