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容思帶說 做人樣。不一刻離者。九容九思是已。余始立志。書此於所帶帶。帶之未久弊投。渺不知所在。今偶閱箱簏得見。此所謂起兵時主簿。無乃吾家舊物耶。示兒輩守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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講會筵伏和先生韻【先生詩在第一卷先生永和諸生者】 契事師門卜晬辰。講論義理日尤新。誰誰侍側言其志。盡是河南立雪人。 李整憲年年講會此何辰。占得暮春景物新。吾師晬日知斯日。更作升堂獻壽人。 金容琦擧世讌遊重晬辰。吾師惟有感悲新。强與諸生參講會。暮春風詠想前人。 金箕赫講樹獨靑風雨辰。一根碩果箇邊新。坐泥塑我程夫子。立雪門皆閩建人。 金載轍暮春侍講適生辰。扶抑訓辭隨感新。惟有丹心銷不得。聖門恐負詠歸人。 安基燮函筵修契適生辰。詩禮講明漸覺新。峨峨章甫誰誰會。次第升堂入室人。 金在福蓼莪春色落花辰。師道分明與日新。皐比前席祈星壽。南極迢迢一老人。 金容璿晬辰何日異他辰。孝念居先德愈新。古之鹿洞知安在。講會干秋又有人。 李鍾烈師門契會卜生辰。講討詩書倍日新。更將春酒祈眉壽。南極祥輝降老人。 金相休風浴歸來詠此辰。先生晬日道中新。暮春和氣尼門內。弟子執紐講聖人。 任泰天降賢師最吉辰。復陽一脈日新新。多年坐了春風暮。何似程門受葉人。 金容珪滿觥春酒慰生辰。玉面靑衿秩秩新。盡日從容講吾道。風塵應是不汚人。 牟用基燦然文物晦今辰。惟有吾師德日新。因晬承顔修契席。孝思流淚感門人。 朴寅赫此會年年以此辰。上堂先爲祝岡新。猥忝沂水冠童伴。要作山陰觴詠人。 安鍾炫緇冠濟會黑衣辰。先聖遺風獨此新。小子猶餘觀海眼。安同世界混流人。 安錫龜吾徒禊事適玆辰。萬壽祝杯無恨新。欲守千年賢聖道。所居豈雜異文人。 李樑範雪門團會適何辰。壽畢講終詠又新。新祫舊冠交暎日。盡吾夫子化中人。 盧澈秀皐比座下講明辰。敬奉一危獻壽新。懶習年來無所得。僅賡尊律後于人。 金大杓春服棄凉正此辰。萬方和氣一時新。吾師亦得宣尼志。見到點翁有幾人。 李漢範先生復蓼倍今辰。孝悌之心孰不新。陋巷簞瓢顔氏樂。講筵眷眷戒門人。 朴菶赫函筵列侍際良辰。朝講暮詩相繼新。但願年年長若此。道明德進倣前人。 李㫼範會文又此設弧辰。一體吾生悲感新。拱向東西相和席。鏗然捨瑟復何人。 李世範來自遠方際晬辰。講筵揖讓德惟新。斯門道味誰能識。約禮傳文善誘人。 文源奉洪水滔滔莫此辰。淵源正脈一隅新。旣居膝下多薰德。悟得聖賢不別人。 姜大鴻摳衣趨謁暮春辰。鹿洞古規復此新。所學元來惟孔子。異徒焉敢動吾人。 鄭謹兌丈席兀然春煦辰。一悲一喜聚眉新。誾誾侃侃誰環侍。摠我師門狂簡人。 盧化秀晬在先庚月在辰。悵然籌甲感懷新。千載孔門風詠意。而今余亦侍筵人。 金箕粹聖道千秋耀北辰。吾師溫故又知新。花甲契筵還有事。暮春風浴詠歸人。 宋炳武當年今日卽生辰。德器惟寬氣宇新。明義萬言依法筆。其切不是蹈東人。 金在勖叔世吾生俱不辰。此辰此會倍情新。講餘更訪前川路。細柳輕風是可人。 韓文炫晬日況兼修禊辰。春風席上氣維新。斯門扶得微陽脈。休說當時染俗人。。 金秉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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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헌유집(柏石軒遺集) 2권 1책 柏石軒遺集(全) 柏石軒遺集 고서-집부-별집류 교육/문화-문학/저술-문집 문집 표점영인 柏石軒遺集 一九七八年戊午二月十五日印刷 一九七八年戊午二月十五日印刷 奇陽衍 大東印刷所:全南長城郡長城邑梅花洞 1061 石版本 1 有界 11行24字 한자 內向二葉花紋魚尾 미상 국립중앙도서관 1978년에 간행한 조선말기의 학자 기양연(奇陽衍, 1827~1895)의 시문집. 『柏石軒遺集』 해제 1. 기양연(奇陽衍)의 생애 기양연(奇陽衍: 1827, 순조 27~1895, 고종 32)의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자민(子敏), 호는 백석(柏石)이다. 집 앞에 큰 잣나무[柏]가 있고, 그 아래 돌이 있어서 백석(柏石)이라고 자호하였다. 그의 가문이 호남지방에 정착하게 된 것은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사사(賜死)된 기준(奇遵)의 형 기원(奇遠)이 사화를 피해 이곳으로 내려 온 이후이다. 그의 가문은 장성 일대에서 줄곧 세거하면서 서인(西人)과 노론(老論)으로 자처하였다. 기양연의 6대조 기정익(奇挺翼)은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이다. 고조의 휘는 종상(宗相), 증조의 휘는 태온(泰溫)이다. 호남지역에서 유종(儒宗)으로 추앙받는 기정진이 삼종숙(三從叔)이다. 아버지의 휘는 윤진(允鎭)으로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냈다. 어머니는 반남박씨(潘南朴氏)로 생원 박종한(朴宗漢)의 딸이다. 1827년(순조 27)의 장성 집에서 출생했다. 어려서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67년(고종 4)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전적ㆍ정언ㆍ예조정랑을 지냈다. 이후 1868년 지평, 1869년 장령, 1873년 사복시정(司僕侍正)을 지냈다. 1874년 부친상을 당하여 사직하고 집상하였다. 1878년 다시 장령을 거쳐 부교리ㆍ부수찬을 역임하였다. 1876년 일본에 개항 이후 개화정책에 반대하여 1880년 내수외양책을 건의한 뒤 받아들여지지 않자 장성에 내려와서 농소(膿巢)를 짓고 지방에 은거하였다. 이후로도 여러 차례 조정에서 관직이 내려왔으나 출사하지 않았다. 1894년 동학군을 진압할 때 일본군을 끌어들이는 것을 탄식하였으며, 1895년 봄에 가족들을 거느리고 지리산에 들어갔으나, 얼마 되지 않아 병을 얻어 1895년 5월 20일 69세로 별세하였다. 진사(進士) 고흥유씨(高興柳氏) 동식(東植)의 딸과 결혼하여 아들 우승(宇承), 우춘(宇春)과 양천허씨(陽川許氏) 극(極), 동래정씨(東萊鄭氏) 상현(尙鉉), 전주유씨(全州柳氏) 영구(永龜)에게 시집간 세 딸을 두었다. 사후 80년 뒤인 1975년에 현손인 기준서(奇駿舒) 등이 기양연의 글 가운데에서 약간의 시문과 잡저, 사후 묘도문자 등을 모아 『백석헌유집(柏石軒遺集)』 2권 1책의 석인본을 간행하였다. 2. 『백석헌유집(柏石軒遺集)』 구성과 내용 『백석헌유집(柏石軒遺集)』은 기양연(奇陽衍)의 시문집으로, 1975년 현손(玄孫) 기준서(奇駿舒)에 의해 2권 1책의 석인본으로 간행되었다. 사후 70년 만에 간행되어 중간에 많이 산실된 것으로 보인다. 서문은 권용현(權龍鉉)이 썼다. 권용현은 서문에서 기양연이 기정진의 재종질로 그의 훈도를 받았으며 사환과 학문이 바른 선비라고 칭송하였다. 권말에는 안종선(安鍾宣)의 발문이 있다. 전남대학교 도서관, 전주대학교 도서관, 국회도서관, 장성 변시연(邊時淵) 댁내 등에 소장되어 있다. 권1에는 시(詩) 14수, 서(書) 55통, 잡저(雜著) 6편이 실려 있다. 시는 서울에서 지은 것과 장성 등 지역에서 지은 시로 구분할 수 있다. 서울에서 지은 시는 10여 년 동안의 객지생활을 읊은 것, 동료들과 활동한 낙사(洛社)에서 지은 것이다. 서울에서 과거시험을 준비할 때, "무엇하러 고향을 떠나 이 멀리 오시었소. 덧없는 세상 영예는 일장춘몽 같은 것을, 병이 났던 어젯밤엔 시도 잠시 접었거늘, 구름 없는 오늘밤은 달빛 더욱 휘황하오. 몇 달을 좋은 친구 자꾸자꾸 말하지만, 십 년을 지낸 하숙 살이 몸에 배었다오. 나그네 시름 흔들어 내 마음 옥죄지 마오. 장부의 마음 산해이니 감싸줌이 소중하리[서울 여관에서 만나 나눈 이야기(洛館會話)]"라는 시를 지었는데, 문과에 급제하기 전 서울생활의 고달픔을 느끼게 한다. 지역에서 지은 시는 장성에서 스승 기정진과 동문 민치완(閔致完)의 부친 회갑을 축하하는 것, 자신의 거처인 백석헌과 농소에 관한 것[「농소(農巢)」], 동문들과 교유하며 주고받은 것 등이다. 서는 부친 기윤진과 아들 우승(宇承)ㆍ우춘(宇春), 사위 허극(許極)에게 보낸 편지가 대부분이다. 특히 「상친정(上親庭)」은 1853년 4월 17일부터 1874년까지 부친에게 보낸 편지인데, 그가 서울 생활 중에 보낸 것으로 과거와 관련 일이나 정계의 동향, 이양선의 출몰, 관직생활에 대한 소식으로 이루어졌다. 아들과 사위에게 보낸 편지도 주로 서울에서 보낸 것인데, 안부를 묻거나 과거와 관련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잡저로는 1862년 삼정에 대한 대책을 적은 「삼정책(三政策)」이 중요한데, 그의 경세관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로 중앙과 지방의 기강을 바로잡고 인재를 뽑아서 토지를 균등하게 분배하고 신분에 관계없이 군포를 징수하며, 환곡을 폐지하고 상평창으로 바꾸자는 주장을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 당시 삼정을 바로잡기 위해서 성심을 바르게 하여 다스림의 근본으로 세울 것, 기강을 떨쳐 조정을 숙정할 것, 외관을 뽑을 때 탐욕스러운 장리는 금지시킬 것, 이서들의 녹봉을 제정하여 훔치는 것을 금지시킬 것을 대책으로 내세웠다. 아울러 「효책(孝策)」에서는 각종 효행을 논하며, 학문하는 사람이라면 효도를 한 뒤에야 학문하는 도를 행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융학서언심언성책((庸學序言心言性策)」에서는 주희가 지은 『중용서』와 『대학서』에서 각각 심(心)과 성(性)을 논한 이유에 대해서 적고 있다. 「척양사론(斥洋邪論)」은 서학과 서양문물을 사특한 것으로 규정하며 정학을 높이고 서양문물을 쓰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 글로써, 스승인 기정진의 위정척사사상을 계승하였음을 보여준다. 이외 1855년 여름에 고향인 장성의 청음정에서 휴가 때 독서와 마음공부를 쉬지 말아야 한다는 「휴가시자경문(休暇時自警文)」, 1873년 2월 3일부터 5월 10일까지 시관(試官)과 사복시정(司僕寺正)으로 임명되어 시험관으로 활동한 내용과 마정을 돌본 내용을 기록한 「계유일기(癸酉日記)」 등이 있다. 권2는 서(序) 5편, 기(紀) 3편, 발(跋) 1편, 제문(祭文) 5편, 묘갈명(墓碣銘) 1편, 행장(行狀) 4편과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문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노사선생답문류편서(蘆沙先生答問類編序)」인데 기정진과 문인들 간의 문답 내용을 기정진의 문인들이 수년 간에 걸쳐 성리학, 결서, 예학, 역사 등으로 항목별로 편집한 「답문유편(答問類編)」의 의의와 편집 과정을 설명한 글이다. 「기씨족보서(奇氏族譜序)」는 기정진 문인집단과 장성 행주기씨 집안 내에서의 기양연의 학문적 위상을 드러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기문류에는 임진왜란 당시 열부 기씨, 서울 낙산(落山) 아래에 있는 승방(僧房) 상현암(尙玄菴), 친구 나도규(羅燾圭)가 살았던 덕암(德巖)에 대한 글이 있다. 제문은 스승인 기정진, 서울에서 관직생활을 하면서 교유하였던 홍종서(洪鍾序)와 서승보(徐承輔), 동문 중에 친하게 지냈던 조의곤(曺毅坤)을 위한 글이다. 가장(家狀)은 서울에 관직 생활을 함께 한 종친 기문현(奇文鉉)을 위해 지은 것이다. 부록에는 1868년 정월부터 1880년 7월 24일까지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기사 가운데 기양연 관련 기록을 모은 「승정원일기초록(承政院日記抄錄)」, 기우만(奇宇萬)이 찬한 기양연의 행장, 안규용(安圭容)이 찬한 기양연의 묘갈명(墓碣銘), 박원재(朴元在)가 찬한 묘표(墓表), 기양연의 장례 때 쓰인 만장(輓章)과 제문(祭文), 기양연의 거처에 대해 찬한 나도규의 「백석헌기(柏石軒記)」, 기양연의 농소에 대해 기재(奇宰)가 찬한 「농소기(農巢記)」, 맨 끝에『백석헌유집』을 간행한 경과를 담은 안종선의 발문(跋文) 등이 실려 있다. 『백석헌유집』은 노사 기정진 문하에 있던 관료의 문집이라는 점에 의의가 있으며, 삼정 문란의 시기에 이를 타개하기 위한 대책과 서양문물을 접하고 대응책을 세운 한말 지식인의 경세관과 말년의 향촌생활의 실상을 살피는 데에 도움을 준다. 아울러 조선후기 과거제의 운영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편지글이 있어 주목된다. 또한 기정진과 그 문하생이 갖고 있던 경세관과 척사위정(斥邪衛正)의 시대정신을 이해할 수 있는 의미있는 문집이라 할 수 있다. 「백석헌운(柏石軒韻)」에서, "우리 집 뜰 앞에 동백나무가 있고, 동백나무 아래에는 바위가 있다. 동백나무는 세한의 절개를 지녔고, 바위는 벽처럼 우뚝 선 기상을 지녔으니, 이것을 가지고 사랑채에 편액하여 경계할 것으로 삼는다(吾家庭前有柏, 柏下有石。柏有歲寒之節 石有壁立之像, 取以扁其軒, 以備警策)"라고 노래하였는데, 그의 담대한 기백을 잘 보여준다. 3. 세부목차 卷一 詩 : 謹次蘆沙老先生六十除夕韻(三首), 次梅塢壁上韻, 洛舘會話, 輓安進士(重燮), 洛社偶吟, 次閔都事(致完)大人回甲韻, 洛社會吟(二首), 贈人, 京友晬宴, 栢石軒, 農巢, 巢旣成四從弟弘衍遂以四律賦事相贈仍以其詩爲原韻從以和之, 次東塢亭韻, 別趙月臯(性家○五首), 書 : 上親庭(十七), 答許會源(濬○三), 答李聲震(鍾澤○三), 答禮洞友人(姓名缺○五), 答桂陽友人(姓名缺○二), 與鄭友(名缺), 與友人(姓名缺○六), 與許星甫(極○五), 寄家兒(十), 寄次兒(三), 雜著 : 三政策, 孝策, 庸學序言心言性策, 斥洋邪論, 休暇時自警文, 癸酉日記 栢石軒遺集 卷二 序 : 答問類編序, 朗州崔氏族譜序, 奇氏族譜序, 春坡遺集序, 梁松圃回甲詩軸序, 記 : 烈婦奇氏㫌閭重修記, 尙玄庵記, 德巖記, 栢石軒記, 農巢記 全南長城郡長城邑梅花洞 1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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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海士【聲根】判書邊白農相勳【正言】有詩。仍續和。 靜中觀物卽閒居。雅會從容世莫如。唐律詩中新作又。韓樞密後此遊初。吉祥冀北多騏驥。麤俗江南媿犬驢。恨不摳衣隨麗景。吾生只合置迂疎。小屋江邨久索居。强携冠服坐申如。令名非在修身外。至善皆從稟質初。窄窄窮蹤隨屈蠖。悠悠凡事覓騎驢。賴逢師友垂箴誡。黙計前程可不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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題不遠亭 俯臨綠野理新椽。萬象中間一氣圓。活水平開皆是鏡。衆峯爭出渾如蓮。槐迎敎雨成新市。柳納光風護細烟。近取諸身知不遠。爐薰淸晝坐欣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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寒碧樓次退溪韻 錦屛疊疊巴江遶。巖竇生風水吐煙。未到樓中名已好。廣寒碧落不虛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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棰花綾江二洞 棰水翻花浪。綾江照錦波。賤身何猝侈。隨處錦花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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玉筍峯【丹陽】 仙居多四郡。最擅丹邱中。尙嫌無竹俗。送筍玉叢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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島潭三峯 恐敎塵滿陸。離立碧波中。不轉江流去。六鰲贔屭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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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報【丁未○六月間。大駕不知在何所。】 北報凜難聞。菜雲渺無影。豈期五百來。世遽至斯境。痛哉此何語。天地忍當之。龍光徒掛壁。腔血沸三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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黑氣 黑氣漲天遍夜又。禮邦奈換鬼邦何。何時屬得重黎手。更勿相侵壓衆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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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百結先生確樂語慰家人 衣食至微服晦翁。菜根做百固吾窮。達人胸次元無物。確樂鶉懸樂在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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恨吟 天胡降割割吾東。最恨生丁不幸逢。八路曩時行似驥。六旬近日蟄如龍。眼擡宇宙皆爲淚。語及京華輒塞胸。回倒狂瀾無別策。長吁掩卷對前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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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族姪相休【時相休讀大學千遍】 大學實爲入德初。河西千讀在斯書。願渠效得罔專美。受用終身綽有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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夜坐痛涕 此世那期此界爲。呑聲拭涕也無時。空嫌長夜眠難寄。或放狂歌或發詩。痛哭淵齋殉已先。勉庵消息又茫然。域中無復憑依處。訴或聽耶但有天。【又聞勉庵置對馬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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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遠亭用金海士韻述懷 湖上孤亭廣此居。晩風徙倚坐欣如。分明野色煙消後。秀麗山光雨過初。萬事閒心看浴鷺。一生行跡愧磨驢。個中誰識津津味。無怪時人謂我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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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錫愚而見。以詩寄余。仍和之。【後改而直】 從容志帥指麾旗。喜子新詩動正奇。下學嗟無時習處。中心常有歲寒期。却通高見人當見。須進良知世自知。爲感平生深愛我。願將瓊律作銘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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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南侯【丁丑三月十六日】 向進軒下。痛承鐫誨。慰悅弘多。旋聞有患候慮。不淺不淺。每逢自城來人。輒叩近節備。伏聞政體復常。視篆勝昔。伏用慰賀。竊伏想大無凡節。必多裝懷犯慮。而苟或勞焦過爾。恐損攝養。望加節省以副遠祝。民貧病相尋。無暇收省。每擬進問。而動被甚事撓奪。玆用替伸。伏切悚仄。下諒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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