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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한영주(韓永柱) 관고(官誥) 고문서-교령류-관고 정치/행정-임면-관고 光武七年三月日 韓永柱 光武七年三月日 高宗 韓永柱 서울특별시 종로구 1개(적색, 정방형) 임실 용정 청주한씨가 전주 덕진 청주한씨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20_01_A00015_001 1903년(광무 7) 3월에 고종이 한영주(韓永柱)에게 정3품 통정대부(通政大夫) 행비서원비서승(行秘書院秘書丞)의 증직(贈職)을 내리면서 발급한 관고(官誥). 1903년(광무 7) 3월에 고종이 한영주(韓永柱)에게 정3품 통정대부(通政大夫) 행비서원비서승(行秘書院秘書丞)의 증직(贈職)을 내리면서 발급한 칙명이다. 비서원은 조선 말기에 시종원(侍從院) 소속의 비서감(秘書監)에서 독립되어 나간 관청으로, 조선시대 왕명의 출납과 기록을 담당하던 승정원(承政院)의 역할을 계승한 것이다. 비서승은 비서원 소속의 관직으로 주임관(奏任官)에 해당하는 관직이었다. 한영주 뿐만 아니라, 한영주의 아들 한관섭(韓寬燮)도 같은 시기에 관으로부터 같은 관직을 받았는데, 문서의 기재형식이나 관인의 형태로 미루어 볼 때 석연치 않은 점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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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이섭규(李燮奎) 고신(告身) 4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光緖十四年九月 日 李燮奎 光緖十四年九月 日 高宗 李燮奎 서울특별시 종로구 1개(적색, 정방형) 임실 범오 홍주이씨가 전주 덕진 홍주이씨가 전북향토문화연구회편, 『全北地方의 古文書』1․ 2․ 3, 1993․1994․1995.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정구복, 『고문서와 양반사회』, 일조각』, 2002.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http://people.aks.ac.kr/) HIKS_Z019_01_A00001_001 1888년(고종 25) 9월에 고종이 이섭규(李燮奎)를 통훈대부(通訓大夫) 행통례원인의(行通禮院引儀)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 1888년(고종 25) 9월에 국왕이 이섭규(李燮奎)를 통훈대부통례원인의(通訓大夫行通禮院引儀)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이다. 통훈대부는 정3품 문신 품계이며, 인의는 종6품이어서 '품계가 높은 데 비해 관직이 낮음'을 의미하는 '행(行)'을 붙였다. 통례원은 국가의 각종 의례를 관장하던 관서이며 교지는 왕이 신하에게 관직, 관작, 시호, 자격, 토지 및 노비 등을 하사하면서 그 증표로 내려주는 문서이다. 이섭규의 본관은 홍주(洪州)이며 자는 서오(瑞五)이다. 1817년(순조 17)생으로 합격 당시 임실(任實)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의 양부는 이병균(李秉均)이며, 생부는 이진균(李珍均)이다. 이섭규는 1852년(철종 3)에 식년진사시에 합격한 뒤에 음관(蔭官)으로 관직에 들어가 사헌부 감찰, 돈녕부 판관, 공주 진관, 장악원 주부, 상서원 주부 등을 역임했다. 그의 고신 12점이 홍주이씨 가문에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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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李燮奎爲通訓大夫行通禮院別儀者光緖十四年九月 日[印](背面)吏吏朴華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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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이섭규(李燮奎) 고신(告身) 3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光緖十四年八月 日 李燮奎 光緖十四年八月 日 高宗 李燮奎 서울특별시 종로구 1개(적색, 정방형) 임실 범오 홍주이씨가 전주 덕진 홍주이씨가 전북향토문화연구회편, 『全北地方의 古文書』1․ 2․ 3, 1993․1994․1995.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정구복, 『고문서와 양반사회』, 일조각』, 2002.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http://people.aks.ac.kr/) HIKS_Z019_01_A00001_001 1888년(고종 25) 8월에 고종이 이섭규(李燮奎)를 통훈대부(通訓大夫) 행장악원주부(行掌樂院主簿)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 1888년(고종 25) 8월에 국왕이 이섭규(李燮奎)를 통훈대부장악원주부(通訓大夫行掌樂院主簿)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이다. 통훈대부는 정3품 문신 품계이며, 주부는 종6품이어서 '품계가 높은 데 비해 관직이 낮음'을 의미하는 '행 (行)'을 붙였다. 장악원은 궁중에서 연주하는 음악과 무용에 관한 일을 담당하던 관청으로 주부는 문서와 부적을 주관하였다. 교지는 왕이 신하에게 관직, 관작, 시호, 자격, 토지 및 노비 등을 하사하면서 그 증표로 내려주는 문서이다. 이섭규의 본관은 홍주(洪州)이며 자는 서오(瑞五)이다. 1817년(순조 17)생으로 합격 당시 임실(任實)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의 양부는 이병균(李秉均)이며, 생부는 이진균(李珍均)이다. 이섭규는 1852년(철종 3)에 식년진사시에 합격한 뒤에 음관(蔭官)으로 관직에 들어가 사헌부 감찰, 돈녕부 판관, 공주 진관, 장악원 주부, 상서원 주부 등을 역임했다. 그의 고신 12점이 홍주이씨 가문에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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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李燮奎爲通訓大夫行掌樂院主簿者光緖十四年八月 日[印](背面)吏吏朴華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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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이섭규(李燮奎) 고신(告身) 5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光緖十四年十一月 日 李燮奎 光緖十四年十一月 日 高宗 李燮奎 서울특별시 종로구 1개(적색, 정방형) 임실 범오 홍주이씨가 전주 덕진 홍주이씨가 전북향토문화연구회편, 『全北地方의 古文書』1․ 2․ 3, 1993․1994․1995.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정구복, 『고문서와 양반사회』, 일조각』, 2002.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http://people.aks.ac.kr/) HIKS_Z019_01_A00001_001 1888년(고종 25) 11월에 고종이 이섭규(李燮奎)를 통훈대부(通訓大夫) 행상서원주부(行尙瑞院主簿)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 1888년(고종 25) 11월에 국왕이 이섭규(李燮奎)를 통훈대부상서원주부(通訓大夫行尙瑞院主簿)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이다. 통훈대부는 정3품 문신 품계이며, 주부는 종6품이어서 '품계가 높은 데 비해 관직이 낮음'을 의미하는 '행(行)'을 붙였다. 상서원은 국왕의 새보(璽寶)·부패(符 牌)·절월(節鉞)을 관장하던 관서로 1894년(고종 31) 갑오경장 때 폐지되었다. 교지는 왕이 신하에게 관직, 관작, 시호, 자격, 토지 및 노비 등을 하사하면서 그 증표로 내려주는 문서이다. 이섭규의 본관은 홍주(洪州)이며 자는 서오(瑞五)이다. 1817년(순조 17)생으로 합격 당시 임실(任實)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의 양부는 이병균(李秉均)이며, 생부는 이진균(李珍均)이다. 이섭규는 1852년(철종 3)에 식년진사시에 합격한 뒤에 음관(蔭官)으로 관직에 들어가 사헌부 감찰, 돈녕부 판관, 공주 진관, 장악원 주부, 상서원 주부 등을 역임했다. 그의 고신 12점이 홍주이씨 가문에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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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李燮奎爲通訓大夫行尙瑞院主簿者光緖十四年十一月 日[印](背面)吏吏朴華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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勅令正三品任中樞院議官叙奏任官六等者光武七年十月二日議政府贊政大臣勳一等金嘉鎭 宣[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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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圭喆任崇仁殿叅奉叙判任官八等者光武四年十一月 日宮內府大臣議政府贊政宮內府臨時署理李乾夏[印][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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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9년 한양오(韓養吾) 고신(告身)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康熙二十八年正月日 韓養吾 康熙二十八年正月日 肅宗 韓養吾 서울특별시 종로구 1개(적색, 정방형) 임실 용정 청주한씨가 전주 덕진 청주한씨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20_01_A00005_001 1689년(숙종 15) 정월 숙종이 한양오(韓養吾)를 조산대부행광릉참봉(朝散大夫行光陵參奉)으로 제수하면서 내려 준 교지. 1689년(숙종 15) 정월 임금이 한양오(韓養吾)를 조산대부행광릉참봉(朝散大夫行光陵參奉)으로 제수하면서 내려 준 교지이다. 조산대부는 종4품 상계(上階)였다. 한양오는 1년 전인 강희(康熙) 27년(1688, 숙종 14) 12월에 종4품 하계(下階)인 조봉대부(朝奉大夫)를 받은 일이 있었다. 그러니까 불과 한 달 만에 품계가 한 단계 상승한 셈이었다. 문서 왼편에 보이는 '기정별가(己正別加)'란 한양오가 기년(己年)에 받은 별가의 혜택을 이번 인사에 반영하였다는 의미이다. 기년은 본 교지가 발급된 강희 28년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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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韓養吾爲朝散大夫行光陵叅奉者康熙二十八年正月 日己正別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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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幼學韓尙箕進士三等第四十一人入格者乾隆十二年二月▣十一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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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한관섭(韓寬燮) 관고(官誥) 고문서-교령류-관고 정치/행정-임면-관고 光武七年三月日 韓寬燮 光武七年三月日 高宗 韓寬燮 서울특별시 종로구 1개(적색, 정방형) 임실 용정 청주한씨가 전주 덕진 청주한씨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20_01_A00015_001 1903년(광무 7) 3월에 고종이 한관섭(韓寬燮)에게 정3품 통정대부(通政大夫) 행비서원비서승(行秘書院秘書丞)의 증직(贈職)을 내리면서 발급한 관고(官誥). 1903년(광무 7) 3월에 고종이 한관섭(韓寬燮)에게 정3품 통정대부(通政大夫) 행비서원비서승(行秘書院秘書丞)의 증직(贈職)을 내리면서 발급한 칙명이다. 비서원은 조선 말기에 시종원(侍從院) 소속의 비서감(秘書監)에서 독립되어 나간 관청으로, 조선시대 왕명의 출납과 기록을 담당하던 승정원(承政院)의 역할을 계승한 것이다. 비서승은 비서원 소속의 관직으로 주임관(奏任官)에 해당하는 관직이었다. 한관섭 뿐만 아니라, 한관섭의 부친 한영주(韓永柱)도 같은 시기에 관으로부터 같은 관직을 받았는데, 문서의 기재형식이나 관인의 형태로 미루어 볼 때 석연치 않은 점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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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홍주이씨가(洪州李氏家) 공명첩(空名帖) 1 고문서-교령류-공명첩 정치/행정-임면-고신 光武七年十月二日 議政府贊政大臣勳一等金嘉鎭 光武七年十月二日 金嘉鎭 서울특별시 종로구 1개(적색, 정방형) 임실 범오 홍주이씨가 전주 덕진 홍주이씨가 전북향토문화연구회편, 『全北地方의 古文書』1․ 2․ 3, 1993․1994․1995.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정구복, 『고문서와 양반사회』, 일조각』, 2002. HIKS_Z019_01_A00017_001 1903년(광무 7) 10월 2일에 김가진(金嘉鎭)이 임실에 사는 홍주이씨가(洪州李氏家)의 누군가를 정3품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 주임관 6등(奏任官六等)으로 서임하면서 발급한 공명첩. 1903년(광무 7) 10월 2일에 의정부찬정대신훈일등(議政府贊政大臣勳一等) 김가진(金嘉鎭)이 임실에 사는 홍주이씨가(洪州李氏家)의 누군가를 정3품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 주임관 6등(奏任官六等)으로 서임하면서 발급한 공명첩이다. 조선 후기에 국가의 재정이 궁핍해지자 정부에서는 백성들로부터 돈이나 쌀 등을 받고서 사령장을 발급하였다. 이 사령장을 납속첩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중에는 첩을 받는 사람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지 않은 채 발급한 사령장이 있는데 이를 공명첩이라고 한다. 공명첩을 받은 경우, 그 첩에 기재된 관직에 실제로 나아가 업무를 수행했던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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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2년 이섭규(李燮奎) 백패(白牌) 고문서-교령류-백패 정치/행정-과거-백패 咸豊二年三月十六日 幼學 李燮奎 咸豊二年三月十六日 哲宗 李燮奎 서울특별시 종로구 1개(적색, 정방형) 임실 범오 홍주이씨가 전주 덕진 홍주이씨가 전북향토문화연구회편, 『全北地方의 古文書』1․ 2․ 3, 1993․1994․1995.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정구복, 『고문서와 양반사회』, 일조각』, 2002.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http://people.aks.ac.kr/) HIKS_Z019_01_A00001_001 1852년(철종 3) 3월 16일에 이섭규(李燮奎)가 식년진사시(式年進士試)에 합격하여 왕으로부터 받은 백패(白牌). 1852년(철종 3) 3월 16일에 이섭규(李燮奎)가 식년진사시(式年進士試)에 합격하여 국왕으로부터 받은 백패(白牌)이다. 당시 이섭규는 2등 제23인의 성적으로 합격하였다. 문과(文科)와 무과(武科)의 급제자에게는 붉은색의 합격증서, 즉 홍패(紅牌)를 주었고, 생원시와 진사시의 합격자에게는 하얀색의 합격증서, 즉 백패를 주었다. 이섭규의 본관은 홍주(洪州)이며 자는 서오(瑞五)이다. 1817년(순조 17)생으로 합격 당시 임실(任實)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의 양부는 이병균(李秉均)이며, 생부는 이진균(李珍均)이다. 이섭규는 문과에 급제하지 않았지만, 음관(蔭官)으로 관직에 들어가 사헌부 감찰, 돈녕부 판관, 공주 진관, 장악원 주부, 상서원 주부 등을 역임했다. 그의 고신 12점이 홍주이씨 가문에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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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홍주이씨가(洪州李氏家) 공명첩(空名帖) 2 고문서-교령류-공명첩 정치/행정-임면-고신 光武七年十月二日 中樞院議長勳一等金嘉鎭 光武七年十月二日 金嘉鎭 서울특별시 종로구 1개(적색, 정방형) 임실 범오 홍주이씨가 전주 덕진 홍주이씨가 전북향토문화연구회편, 『全北地方의 古文書』1․ 2․ 3, 1993․1994․1995.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정구복, 『고문서와 양반사회』, 일조각』, 2002. HIKS_Z019_01_A00017_001 1903년(광무 7) 10월 2일에 김가진(金嘉鎭)이 임실에 사는 홍주이씨가(洪州李氏家)의 누군가의 처를 숙부인(淑夫人)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공명첩. 1903년(광무 7) 10월 2일에 의정부찬정대신훈일등(議政府贊政大臣勳一等) 김가진(金嘉鎭)이 임실에 사는 홍주이씨가(洪州李氏家)의 누군가의 처를 숙부인(淑夫人)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공명첩이다. 숙인(淑人)은 문무관 정3품의 당하관인 통훈대부(通訓大夫)·어모장군(禦侮將軍)과 종3품의 중직대부(中直大夫)·중훈대부(中訓大夫)·건공장군(建功將軍)·보공장군(保功將軍)의 적처에게 내린 작호이다. 명받은 숙부인(淑夫人)은 외명부 정3품으로 문무관 정3품 당상관인 통정대부(通政大夫), 절충장군(折衝將軍)의 적처(嫡妻)에게 내린 작호이다. 조선 후기에 국가의 재정이 궁핍해지자 정부에서는 백성들로부터 돈이나 쌀 등을 받고서 사령장을 발급하였다. 이 사령장을 납속첩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중에는 첩을 받는 사람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지 않은 채 발급한 사령장이 있는데 이를 공명첩이라고 한다. 공명첩을 받은 경우, 그 첩에 기재된 관직에 실제로 나아가 업무를 수행했던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는 남편이 받은 공명첩의 관직에 상응하는 품계를 그 아내에게 발급하는 형식을 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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勅令淑人封淑夫人者光武七年十月二日中樞院議長勳一等金嘉鎭 宣[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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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7년 한상기(韓尙箕) 백패(白牌) 고문서-교령류-백패 정치/행정-과거-백패 乾隆十二年二月▣十一日 幼學韓尙箕 乾隆十二年二月▣十一日 英祖 韓尙箕 서울특별시 종로구 1개(적색, 정방형) 임실 용정 청주한씨가 전주 덕진 청주한씨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20_01_A00010_001 1747년(영조 23) 2월에 왕이 진사시(進士試) 합격한 한상기(韓尙箕)에게 내려 준 합격증서. 1747년(영조 23) 2월에 진사시(進士試) 합격자였던 한상기(韓尙箕)에게 왕이 내려 준 합격증서이다. 한상기는 한양오(韓養吾)의 손자였다. 한상기의 등위는 3등 41번째, 즉 100명 가운데 중간 정도의 석차로 합격의 영예를 누린 것이다. 조선시대 생원이나 진사의 위상은 사실 오늘날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았다. 조선시대 과거제도가 존속한 1393년(태조 2)부터 1894년(고종 31)까지의 502년 동안 배출된 생원과 진사는 모두 46,000명이었다. 1년에 불과 100명이 채 되지 못하였던 셈이다. 그만큼 생원이나 진사의 칭호를 얻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따라서 어느 한 집안에서, 그것도 한양오와 한상기처럼 할아버지와 손자가 같이 진사시에 합격하였다는 점은 정말로 대단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규격 9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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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幼學李燮奎進士二等第二十三人入格者咸豊二年三月十六日[印](別紙)幼學李燮奎進士二等第二十三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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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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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8년 한상기(韓尙箕) 추증교지(追贈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乾隆五十三年六月十五日 進士韓尙箕 乾隆五十三年六月十五日 正祖 韓尙箕 서울특별시 종로구 임실 용정 청주한씨가 전주 덕진 청주한씨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20_01_A00010_001 1788년(정조 12) 6월 15일에 왕이 한상기(韓尙箕)를 조산대부(朝散大夫)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으로 추증(追贈)하면서 내려 준 교지. 1788년(정조 12) 6월 15일에 임금이 한상기(韓尙箕)를 조산대부사헌부지평(朝散大夫司憲府持平)으로 추증(追贈)하면서 내려 준 교지이다. 따라서 한상기는 사후(死後)에 이 직에 제수되었는데, 조산대부는 종4품 상계(上階)요, 사헌부 지평은 정5품이었다. 문서의 왼편을 보면 '효행탁이증직사승전(孝行卓異贈職事承傳)'이라는 표현이 보이는데, 이는 한상기의 효행이 매우 뛰어나 이 교지를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승전(承傳)'에서의 '전'은 '왕명(王命)을 뜻한다. 그래서 글자를 줄도 바꾸어 썼고 또 글자 위치를 높인 것이다. 요컨대 한상기는 왕명에 의해 이 교지를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한상기는 광릉참봉(光陵參奉)을 지낸 진사(進士) 한양오(韓養吾)의 삼남(三男) 한진상(韓震相)의 아들이었다. 자(字)를 상백(尙伯), 호(號)를 만희당(晩喜堂)으로 하였던 한상기는 1687년(숙종 13)에 태어났으며, 1747년(영조 23)의 정묘식년시(丁卯式年試)의 진사시에도 합격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의 위패도 남원 대산면의 고암서원에 배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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