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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이섭규(李燮奎) 고신(告身) 2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同治二年七月 日 李燮奎 同治二年七月 日 哲宗 李燮奎 서울특별시 종로구 1개(적색, 정방형) 임실 범오 홍주이씨가 전주 덕진 홍주이씨가 전북향토문화연구회편, 『全北地方의 古文書』1․ 2․ 3, 1993․1994․1995.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정구복, 『고문서와 양반사회』, 일조각』, 2002.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http://people.aks.ac.kr/) HIKS_Z019_01_A00001_001 1863년(철종 14) 7월에 철종이 이섭규(李燮奎)를 통훈대부(通訓大夫) 행연산현감(行連山縣監)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 1863년(철종 14) 7월에 국왕이 이섭규(李燮奎)를 통훈대부연산현감(通訓大夫行連山縣監)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이다. 통훈대부는 정3품 문신 품계이며, 현감은 종6품 관직이어서 '품계가 높은 데 비해 관직이 낮음'을 의미하는 '행(行)'을 붙였다. 현감은 조선 시대 최하위의 지방 행정구역 단위인 현(縣)의 우두머리로 지방 수령으로서는 가장 낮은 관직이다. 교지는 왕이 신하에게 관직, 관작, 시호, 자격, 토지 및 노비 등을 하사하면서 그 증표로 내려주는 문서이다. 이섭규의 본관은 홍주(洪州)이며 자는 서오(瑞五)이다. 1817년(순조 17)생으로 합격 당시 임실(任實)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의 양부는 이병균(李秉均)이며, 생부는 이진균(李珍均)이다. 이섭규는 1852년(철종 3)에 식년진사시에 합격한 뒤에 음관(蔭官)으로 관직에 들어가 사헌부 감찰, 돈녕부 판관, 공주 진관, 장악원 주부, 상서원 주부 등을 역임했다. 그의 고신 12점이 홍주이씨 가문에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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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6년 한양오(韓養吾) 백패(白牌) 고문서-교령류-백패 정치/행정-과거-백패 順治三年三月初八日 幼學韓養吾 順治三年三月初八日 仁祖 韓養吾 서울특별시 종로구 1개(적색, 정방형) 임실 용정 청주한씨가 전주 덕진 청주한씨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20_01_A00005_001 1646년(인조 24) 3월 8일에 진사시(進士試) 합격자였던 한양오(韓養吾)에게 왕이 내려 준 합격증서. 1646년(인조 24) 3월 8일에 진사시(進士試) 합격자였던 한양오(韓養吾)에게 왕이 내려 준 합격증서이다. 이런 증서를 백패(白牌)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종이의 색이 백색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합격 때 한양오의 성적은 3등 28번째였다. 진사시의 합격 인원은 대개 100명이었고, 그 중 1등이 3명, 2등이 7명이었다. 따라서 한양오는 100명 가운데 38번째 성적으로 이 증서를 받은 것이다. 한양오는 진사시에 합격한 뒤 광릉참봉(光陵參奉)을 지냈다.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의 문인이기도 하였던 그는 매우 뛰어난 학문의 소유자였고 또 인품으로도 이 지역 사림으로부터 항상 존경을 받았다. 그의 위패가 현재 남원 대산면의 고암서원에 배향된 것도 물론 그의 그러한 삶과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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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1년 한빈(韓賓) 고신(告身) 1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順治八年二月日 兵曹 忠義衛韓賓 順治八年二月日 兵曹 忠義衛韓賓 서울특별시 종로구 參議臣安[着名]佐郞臣吳[着名] 1개(적색, 정방형) 임실 용정 청주한씨가 전주 덕진 청주한씨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20_01_A00001_001 1651년(효종 2년) 2월에 병조(兵曹)에서 왕명을 받들어 충의위(忠義衛)에 근무하고 있는 한빈(韓賓)에게 수의부위(修義副尉)의 품계(品階)를 내려주면서 발급한 교첩(敎牒). 1651년(효종 2년) 2월에 병조(兵曹)에서 왕명을 받들어 충의위(忠義衛)에 근무하고 있는 한빈(韓賓)에게 수의부위(修義副尉)의 품계(品階)를 내려주면서 발급한 교첩(敎牒)이다. 수의부위는 종8품이었는데, 한빈이 무과급제자였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교첩을 받을 당시 한빈의 품계가 몇 품이었는지도 알 수가 없다. 문서의 앞부분이 훼손되었지만 발급된 품계로 미루어 이 문서의 발급 기관이 병조(兵曹)임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관직 임명 절차에 관한 규정을 보면, 4품 이상의 임명장은 왕이 직접 내주었지만, 5품 이하는 왕명(王命)에 따라 해당 부서에서 발행하도록 되어 있었다. 문서 오른 편에 보이는 '봉교(奉敎)'란 바로 '왕의 명령을 받들어'라는 의미이다. 한편 문서 왼편,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문서가 발급된 연월일을 적은 곳의 오른편을 '계삼갑이갑사별가병超(癸三甲二甲四別加幷超)'라는 표현이 보이는데, 이는 한빈이 계년(癸年) 3월과 갑년(甲年) 2월 그리고 갑년 4월에 받았던 세 차례의 별가(別加) 혜택을 이번 인사에서 모두 반영하였다는 뜻이다. 별가란 특별히 품계를 올려 주는 것을 말한다. 계년은 숭정 16년(1643, 인조 21)을, 갑년은 순치 원년(1644, 인조 22)을 각각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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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幼學韓養吾進士三等第二十八人入格者順治三年三月初八日[別紙]幼學韓養吾進士三等第二十八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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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六日奉敎忠義衛進勇校尉韓賓爲進顯信校尉者丙二丁十戊五別加幷超戊二巳五庚別加幷超順治十七年正月判書 參判 參議 參知臣元[着名] 正郎 佐郞臣卞[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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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李燮奎爲通訓大夫行造紙署別提者同治二年三月 日[印](背面)吏吏朴華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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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이섭규(李燮奎) 고신(告身) 1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光緖十四年五月 日 李燮奎 光緖十四年五月 日 高宗 李燮奎 서울특별시 종로구 1개(적색, 정방형) 임실 범오 홍주이씨가 전주 덕진 홍주이씨가 전북향토문화연구회편, 『全北地方의 古文書』1․ 2․ 3, 1993․1994․1995.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정구복, 『고문서와 양반사회』, 일조각』, 2002.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http://people.aks.ac.kr/) HIKS_Z019_01_A00001_001 1888년(고종 25) 5월에 국왕이 이섭규(李燮奎)를 통훈대부(通訓大夫) 행기기국위원(行機器局委員)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 1888년(고종 25) 5월에 국왕이 이섭규(李燮奎)를 통훈대부기기국위원(通訓大夫行機器局委員)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이다. 통훈대부는 정3품 문신 품계로 기기국위원의 관직이 그보다 낮았기 때문에 '품계가 높은 데 비해 관직이 낮음'을 의미하는 '행(行)'을 붙였다. 기기국은 조선 후기에 병기를 만들던 관아이며 교지는 왕이 신하에게 관직, 관작, 시호, 자격, 토지 및 노비 등을 하사하면서 그 증표로 내려주는 문서이다. 이섭규의 본관은 홍주(洪州)이며 자는 서오(瑞五)이다. 1817년(순조 17)생으로 합격 당시 임실(任實)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의 양부는 이병균(李秉均)이며, 생부는 이진균(李珍均)이다. 이섭규는 1852년(철종 3)에 식년진사시에 합격한 뒤에 음관(蔭官)으로 관직에 들어가 사헌부 감찰, 돈녕부 판관, 공주 진관, 장악원 주부, 상서원 주부 등을 역임했다. 그의 고신 12점이 홍주이씨 가문에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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勅命韓永柱贈正三品通政大夫行秘書院秘書承者光武七年三月 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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勅命韓寬燮贈正三品通政大夫行秘書院秘書承者光武七年三月 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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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李燮奎爲通訓大夫行連山縣監者同治二年七月 日[印](背面)吏吏朴華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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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이섭규(李燮奎) 고신(告身) 3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同治二年三月 日 李燮奎 同治二年三月 日 哲宗 李燮奎 서울특별시 종로구 1개(적색, 정방형) 임실 범오 홍주이씨가 전주 덕진 홍주이씨가 전북향토문화연구회편, 『全北地方의 古文書』1․ 2․ 3, 1993․1994․1995.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정구복, 『고문서와 양반사회』, 일조각』, 2002.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http://people.aks.ac.kr/) HIKS_Z019_01_A00001_001 1863년(철종 14) 3월에 철종이 이섭규(李燮奎)를 통훈대부(通訓大夫) 행조지서별제(行造紙署別提)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 1863년(철종 14) 3월에 국왕이 이섭규(李燮奎)를 통훈대부조지서별제(通訓大夫行造紙署別提)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이다. 통훈대부는 정3품 문신 품계이며, 별제는 6품의 관직이어서 '품계가 높은 데 비해 관직이 낮음'을 의미하는 '행(行)'을 붙였다. 조지서는 종이 조제를 관리·담당하던 관아로 별제는 이곳의 으뜸 벼슬이다. 교지는 왕이 신하에게 관직, 관작, 시호, 자격, 토지 및 노비 등을 하사하면서 그 증표로 내려주는 문서이다. 이섭규의 본관은 홍주(洪州)이며 자는 서오(瑞五)이다. 1817년(순조 17)생으로 합격 당시 임실(任實)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의 양부는 이병균(李秉均)이며, 생부는 이진균(李珍均)이다. 이섭규는 1852년(철종 3)에 식년진사시에 합격한 뒤에 음관(蔭官)으로 관직에 들어가 사헌부 감찰, 돈녕부 판관, 공주 진관, 장악원 주부, 상서원 주부 등을 역임했다. 그의 고신 12점이 홍주이씨 가문에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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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이섭규(李燮奎) 고신(告身) 2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光緖十四年六月 日 李燮奎 光緖十四年六月 日 高宗 李燮奎 서울특별시 종로구 1개(적색, 정방형) 임실 범오 홍주이씨가 전주 덕진 홍주이씨가 전북향토문화연구회편, 『全北地方의 古文書』1․ 2․ 3, 1993․1994․1995.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정구복, 『고문서와 양반사회』, 일조각』, 2002.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http://people.aks.ac.kr/) HIKS_Z019_01_A00001_001 1888년(고종 25) 6월에 고종이 이섭규(李燮奎)를 통훈대부(通訓大夫) 행사헌부감찰(行司憲府監察)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 1888년(고종 25) 6월에 국왕이 이섭규(李燮奎)를 통훈대부사헌부감찰(通訓大夫行司憲府監察)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이다. 통훈대부는 정3품 문신 품계이며, 감찰은 정6품이어서 '품계가 높은 데 비해 관직이 낮음'을 의미하는 '행(行)'을 붙였다. 사헌부는 감찰 행정을 목적으로 설치된 곳으로 감찰은 관리들의 비위 규찰, 재정 부문의 회계 감사, 의례 행사 때의 의전 감독 등 실무를 담당하였다. 교지는 왕이 신하에게 관직, 관작, 시호, 자격, 토지 및 노비 등을 하사하면서 그 증표로 내려주는 문서이다. 이섭규의 본관은 홍주(洪州)이며 자는 서오(瑞五)이다. 1817년(순조 17)생으로 합격 당시 임실(任實)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의 양부는 이병균(李秉均)이며, 생부는 이진균(李珍均)이다. 이섭규는 1852년(철종 3)에 식년진사시에 합격한 뒤에 음관(蔭官)으로 관직에 들어가 사헌부 감찰, 돈녕부 판관, 공주 진관, 장악원 주부, 상서원 주부 등을 역임했다. 그의 고신 12점이 홍주이씨 가문에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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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李燮奎爲通訓大夫行機器局委貟者光緖十四年五月 日[印](背面)吏吏朴華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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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李燮奎爲通訓大夫行司憲府監察者光緖十四年六月 日[印](背面)吏吏朴華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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吏曺康熙二十二年二月十八日奉敎進士奉直郎韓養吾爲通德郞者康熙二十二年二月 日忠義衛時丁正丁九別加幷超判書 參判臣 李[着名] 參議 正郎 佐郞假郎廳臣裵[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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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7년 한양오(韓養吾) 고신(告身)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康熙二十六年九月二十三日 吏曹 進士通德郞韓養吾 康熙二十六年九月二十三日 吏曹 韓養吾 서울특별시 종로구 參判臣 尹[着名] 1개(적색, 정방형) 임실 용정 청주한씨가 전주 덕진 청주한씨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20_01_A00005_001 1687년(숙종 13) 9월 23일에 이조(吏曹)에서 왕명(王命)을 받들어 한양오(韓養吾)에게 내려 준 교첩(敎牒). 1687년(숙종 13) 9월 23일에 이조(吏曹)에서 왕명(王命)을 받들어 한양오(韓養吾)에게 내려 준 교첩(敎牒)이다. 문서 오른 편에 보이는 '봉교(奉敎)'라는 표현은 '왕명을 받들어서'라는 의미이다. 문서의 내용은 한양오에게 광릉참봉(光陵參奉)을 제수한다는 것이었다. 광릉은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세조(世祖)의 릉(陵)을 말하며, 참봉의 품계는 종9품(從九品)이었다. 이 문서를 받을 당시 한양오가 지니고 있는 품계는 정5품(正九品) 상계(上階)인 통덕랑(通德郞)이었다. 따라서 정5품의 품계를 지니고서 종9품의 직에 제수된 셈이다. 이런 경우를 '품고직비(品高職卑)'라고 하였는데, 이런 식으로 관직을 받으면 관직명 앞에 반드시 '행(行)'이라는 글자를 넣도록 되어 있었다. 그 반대의 경우인 '품비직고(品卑職高)'일 경우에는 관직명 앞에 '수(守)'라는 글자를 적었다. (규격 5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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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3년 한양오(韓養吾) 고신(告身)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康熙二十二年二月十八日 吏曹 進士奉直郎韓養吾 康熙二十二年二月十八日 吏曹 韓養吾 서울특별시 종로구 參判臣 李[着名] 佐郞假郎廳臣裵[着名] 1개(적색, 정방형) 임실 용정 청주한씨가 전주 덕진 청주한씨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20_01_A00005_001 1683년(숙종 9년) 2월 18일에 이조(吏曹)에서 왕명을 받들어 한양오(韓養吾)에게 발급한 교첩(敎牒). 1683년(숙종 9년) 2월 18일에 이조(吏曹)에서 왕명을 받들어 한양오(韓養吾)에게 발급한 교첩이다. 한양오의 품계(品階)를 봉직랑(奉直朗)의 통덕랑(通德郞)으로 올려 준다는 내용이다. 봉직랑은 종5품 상계(上階)요, 통덕랑은 정5품 상계였다. 따라서 한양오의 품계는 두 단계 상승한 셈이었다. 호(號)를 반환(盤桓) 자(字)를 호연(浩然)이라고 했던 한양호는 1646년(인조 24년)에 실시한 병술년(丙戌年) 식년시(式年試) 진사시 합격자였다. 그는 진사시에 합격한 후 한 때 성균관에 머물며 문과를 준비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문과에는 성공하지 못한다. 그는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으며, 사후에 남원 고암서원(高巖書院)에 배향될 정도로 많은 선비들로부터 추앙을 받은 인물이다. 훗날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천거(薦擧)를 받아 광릉참봉(光陵參奉)까지 지낸다.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광릉은 세조(世祖)의 능(陵)을 말한다. 한편 교첩의 오른편을 보면 본 문서를 발급해 준 날짜 왼편으로 '충의위시정정정구별가별초(忠義衛時丁正丁九別加幷超)'라는 문구가 보인다. 이는 한양오가 '충의위에 속해 있을 때인 '정년정월(丁年正月)"과 정년구월(丁年九月)에 받았던 별가 혜택을 이번 인사에 모두 반영해 주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정년이란 강희 16년(1677, 숙종 3년)을 말한다. 하지만 한양오가 충의위에 근무한 기간이 정확히 언부터 언제까지였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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吏曺康熙二十六年九月二十三日奉敎進士通德郞韓養吾爲通德郞行光陵叅奉者康熙二十六年▣…▣日行判書 參判臣 尹[着名] 參議 正郎 佐郞假郎▣(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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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8년 한양오(韓養吾) 고신(告身)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康熙二十七年十二月二十七日 韓養吾 康熙二十七年十二月二十七日 肅宗 韓養吾 서울특별시 종로구 1개(적색, 정방형) 임실 용정 청주한씨가 전주 덕진 청주한씨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20_01_A00005_001 1688년(숙종 14) 12월 27일에 숙종이 한양오(韓養吾)를 조봉대부행광릉참봉(朝奉大夫行光陵參奉)으로 임명하면서 내려 준 교지(敎旨). 1688년(숙종 14) 12월 27일에 임금이 한양오(韓養吾)를 조봉대부행광릉참봉(朝奉大夫行光陵參奉)에 임명하면서 내려 준 교지이다. 조봉대부는 종4품 하계(下階)요, 참봉의 품계는 종9품(從九品)이었다. 따라서 '품고직비(品高職卑)'의 규정에 따라 광릉참봉이라는 직명(職名) 앞에 '행(行)'이라는 단어를 붙인 것이다. 그런데 한양오가 광릉참봉으로 제수된 때는 이 교지를 받기 1년 전인 강희(康熙) 26년(1687년, 숙종 13)이었다. 다만 당시에 한양오가 지닌 품계는 정5품(正九品) 상계(上階)인 통덕랑(通德郞)이었다. 따라서 이번 교지는 한양오의 품계를 올려주기 위해 발급해 준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한편 문서 맨 왼쪽을 보면 '무십이별가(戊十二別加)'라는 문구가 보이는데, 이는 한양오가 무년(戊年) 12월에 받았던 별가(別加)의 혜택을 이번 인사조처에 반영하였다는 의미이다. 무년 12월은, 바로 이 교지가 주어진 때와 동년동월(同年同月)이었다. 따라서 한양오는 별가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교지를 받게 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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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韓養吾爲朝奉大夫行光陵叅奉者康熙二十七年十二月二十七日戊十二別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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