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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효자 정려기 金孝子旌閭記 효자는 본관이 김해(金海), 이름은 주석(周奭)이니, 절효 선생(節孝先生) 휘 극일(克一)의 후손이다. 천성이 효성스럽고 우애가 있었는데, 집안이 가난하여 몸소 농사지어 뜻과 물건을 봉양함에 빠뜨린 것이 없었고, 병이 들면 마음으로 근심하고 기운이 저상되었으며 밤에는 허리띠를 풀지 않았다. 그 아내 서씨(徐氏)는 손가락에 피를 내어 입에 넣어 드려 며칠의 수명을 연장시켰다. 상을 당하자 슬픔으로 몸을 훼손함이 너무 심하고 얼굴빛이 검게 변하도록 소식(素食)을 하였으니, 그 상세한 내용은 향도(鄉道)의 천장(薦狀) 및 가전 상언(駕前上言)184)에 갖추어져 있다.오호라! 세도가 떨어지고 풍속이 나빠져 인륜이 밝지 못하니, 자식이 일용의 음식에 있어 부모로 하여금 걱정하게 하고 처자식으로 하여금 원망하게 하는 사람은 실로 족히 말할 것이 없다. 간혹 마음가짐이 근후하여 자호자(自好者)185)라 불려지지만 그 처자식 때문에 뜻이 쇠하게 되지 않는 사람도 또한 몇 명 없다. 지성(至誠)이 간측(懇惻)하여 옆 사람을 감동시키고, 자신은 효자가 되고 처는 효부가 되어 한 집안에서 환하게 아름다움을 짝하는데 이르러서는 지금 세상에 누가 공과 짝할 수 있겠는가. 서씨의 효성과 의리, 자애애와 순종은 실로 천품에서 나온 것이지만 욱솔(勖帥)의 사이186)에서 얻은 것이 또한 어찌 적겠는가. 《시경》 〈대아(大雅) 기취(旣醉)〉에 "효자의 효도 다함이 없다.[孝子不匱]"라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너에게 훌륭한 여사를 줌이로다.[貽爾女士]"187)라고 하였으니, 이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고학(臯鶴)이 하늘에 들리고188) 임금의 포장이 융숭한 것이 마땅하도다.공은 세 명의 아들이 있고 아래로 증손에 이르러서는 그 수가 적지 않은데, 함께 거처하며 같이 밥을 먹으면서 은애(恩愛)가 화목하니, 이것은 그 성효(誠孝)의 감응이 후손에게 넉넉함이 이와 같은지라, 영지(靈芝)와 예천(醴泉)이 어찌 유래한 것이 없겠는가.189) 원컨대 김씨는 더욱 효사(孝思)에 힘써 대대로 실추시키지 말아 조정에서 아름답게 포상한 뜻에 부응해야 할 것이다.증손 재휘(再輝)가 그 장문(狀文)을 안고 벽산(碧山)의 여관으로 나를 방문하여 한 마디 말을 부탁하였다. 나는 부족하고 보잘것없어 실로 마땅히 남의 집안을 천양하는 글에 손을 댈 수 없지만 사양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아 삼가 위와 같이 서술할 뿐이다. 孝子金海人。名周奭。節孝先生諱克一之后也。天性孝友。家貧躬耕。志物無闕。有疾則心憂色沮。夜不解帶。其妻徐氏血指注口。以延數日之命。及遭艱。哀毁過甚。面墨行素。其詳具任鄉道薦狀。及駕前上言。嗚乎。世降俗下。人倫不明。生之滕下日用飮食而使父母戚戚。妻子咨咨者。固不足道。間或持心近厚。號爲自好。而其不爲妻子所衰者。亦無幾人。至於至誠懇惻。感動傍人。己爲孝子。妻爲孝婦。一家之内。炳炳匹休。居今之世。誰與公疇。徐氏孝義慈順。固出於天姿。而其得於勗帥之間者。亦豈少哉。詩曰。孝子不匱。又曰。貽爾女士。其非此謂耶。宜其臯鶴聞天。而天褒隆重也。公有三子。下至曾孫。其麗不尠。同居共爨。恩愛雍睦。此其誠孝之感。裕于後嗣者如此。靈芝醴泉。豈無所自哉。願金氏益勉孝思。世世無墜。以副朝家嘉賞之意也。曾孫再輝。抱其狀文。訪我於碧山旅次。乞一言。予以滅裂無似。固不當下手於人家揄揚之筆。而辭不獲已。謹序次如左云爾。 가전 상언(駕前上言) 백성들이 억울한 일이나 호소할 일이 있을 적에 임금의 가거(駕車) 앞으로 나아가 직소(直訴)하는 것을 말한다. 자호자(自好者) 현명한 덕은 없지만 자신의 몸가짐을 깨끗이 지닐 줄 아는 향리(鄕里)의 사람이다. 《맹자》 〈만장 상(萬章上)〉에 "자신의 지조를 팔아 가며 그 임금을 훌륭하게 성취시키는 짓은 향당(鄕黨)의 자호자도 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욱솔(勖帥)의 사이 남편이 이끌어주는 것을 말한다. 《의례(儀禮)》 〈사혼례(士婚禮)〉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술을 부어주고 명령해 말하기를, '가서 너의 내조자를 맞이하여 우리 종묘의 일을 계승하되 힘써 공경한 마음으로 신부를 거느려서 네 어머니의 뒤를 잇게 할 것이니 너는 언제나 변함없이 하라.'라고 한다.[父醮子, 命之曰:往迎爾相, 承我宗事, 勖帥以敬, 先妣之嗣, 若則有常. ]"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너에게……줌이로다 원문의 '이이여사(貽爾女士)'를 풀이한 말이다. 《시경》 〈대아(大雅) 기취(旣醉)〉의 졸장에는 '이이여사(釐爾女士)'로 되어 있다. 고학(臯鶴)이 하늘에 들리고 은거하는 군자의 덕이 멀리까지 알려지는 것을 비유한다. 《시경》 〈소아(小雅) 학명(鶴鳴)〉에 "학이 구고의 늪에서 우니, 그 소리가 하늘에 들린다.[鶴鳴于九皐, 聲聞于天.]"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영지(靈芝)와……없겠는가 훌륭한 조상이 있어야 훌륭한 자손이 있다는 뜻이다. 옛말에 "신령한 지초(芝草)와 단맛의 샘물은 반드시 뿌리와 근원이 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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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재기 敬齋記 자정자(子程子)가 말하기를 "한(漢)나라 이후로'경(敬)'자의 뜻을 안 사람이 없다."라고 하였으니,190) 대개'경'자의 뜻은 요순[唐虞]에서 비롯하여 수사(洙泗)191)에서 발휘되어 소상할 뿐만이 아니었다. 한당(漢唐)의 수천 년 동안 총명하고 뛰어난 선비가 얼마나 많았는데 이에 여기에 대해 몽매함이 있었는가. 여기서'경'자의 뜻이 크고'경'자의 뜻을 아는 것이 더욱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자와 주자 두 선생에 이르러 이에 비로소 표장(表章)하여 더욱 남은 뜻이 없게 되었다. 그런 뒤에야 세상의 학자들이 단전(單傳)과 요결(要訣)이 여기에 있는 줄을 알아 입을 열어 말을 함에 모든 말들이 이 의체(義諦)192)가 아님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 추향을 알았던 견해는 한당보다 뛰어남이 있는 것 같은데 효험을 본 것을 계산해 보건대 도리어 한당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이것은 능히 깊이 나아가 자득하지 못하고 입으로 말하고 귀로 듣는 사이에만 교묘하여 일찍이 '경'자가 있는 줄도 모르는 사람과 또한 크게 서로 차이나지 않기 때문이다.나는 듣건대, 경재옹(敬齋翁)이 산림에서 사는 70년 동안 발은 산을 나가지 않고 이름은 세상에 드러나지 않으며, 선한 사람이 아니면 사귀지 않고 의로운 물건이 아니면 취하지 않았으며, 문학에 넉넉해도 과거 시험에 나아가지 않았고 경세제민에 뜻을 두었어도 벼슬길에 나아갈 계획을 하지 않고, 오직 성현의 책과 의리의 설로 읊조리고 함양하여 드러내어 자득하고 도도하여 나이가 부족한 줄도 모른다고 하였다. 돌아보건대 그의 평생은 재사의 편액 한 글자로부터 곱씹어 온 것이 아님이 없으니, 이것이'경'자의 뜻을 알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성취한 광결(光潔)이 어찌 이러한 데에 이르렀겠는가.돌아보건대, 산란한 노년인데도 아직'경'자에서 힘을 얻지 못한 지 오래이니, 어찌하면 경재옹의 뒤를 따라 보고 느끼고 부지하여 수립해서 나의 지나간 과거를 만분에 일이라도 수습할 수 있겠는가? 드디어 이것을 적어 고해본다. 子程子曰。自漢以來。無人識敬字。蓋敬字之義。權輿於唐虞。發揮於洙泗。不啻消詳。漢唐數千年間。聰明俊異之士。何限而乃有懵此耶。此可見敬之義爲大。而知敬之義爲尤難也。至程朱兩夫子。乃始表章之。益無餘藴。然後世之爲學者。知單傳要訣。有在於此。而開口吐辭。凡百云云。無非這箇義諦。然則其識趨見解。若有過於漢唐。而算計見效。反有不及焉何哉。此其不能深造自得。而諓諓於口耳四寸之間。與不曾知有敬字者。亦無以大相遠矣。吾聞敬齋翁居林下七十年。足不出山。名不出世。人非善不交。物非義不取。優於文學。而不赴功令之擧。志於經濟。而不作干進之計。惟以聖賢之書。義理之說。諷誦涵暢。于于陶陶。不知年數之不足。顧其平生。無非自齋顔一字符咀嚼來。此可謂知敬者矣。不然。其所就光潔。何至乃爾也。顧憒憒頹齡。尙有不得力於敬久矣。安得從翁之後。觀感扶竪。爲區區過境萬一之收耶。遂書此以諗焉。 자정자(子程子)가……하였으니 《논어》 〈자한((子罕))〉 제29장 주희의 주에 정이(程頤)의 설을 인용하여 "한나라 유자들은 경도를 뒤집어 도에 합치시키는 것을 권도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권변이니 권술이니 하는 말들이 있었으니 이는 모두 잘못이다. 권도는 다만 경도일 뿐이니, 한나라 이후로 권도의 '권' 자의 뜻을 안 사람이 없다.[漢儒以反經合道爲權, 故有權變、權術之論, 皆非也. 權, 只是經也, 自漢以下無人識權字.]"라고 한 것을 인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정자의 '경' 자에 대한 말은 보이지 않는다. 수사(洙泗) 수수(洙水)와 사수(泗水)로, 노(魯)나라에 있었던 두 물의 이름인데, 공자가 이곳에 제자들을 모아 놓고 학문을 강론하였으므로, 곧 공자 및 유학(儒學)을 일컫는다. 《禮記 檀弓上》 의체(義諦) 불교용어로서 진체(眞諦)와 같고, 가장 진실한 도리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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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휘당기 覽輝堂記 재사는 바로 주씨(朱氏)가 묘소를 바라보기 위해 오래전에 지은 것이니, 화순[竹樹] 치소 비봉산(飛鳳山)에 있다. 옛날 조백강(晁伯彊)이 들에 정자를 짓고 다가(多稼)로 이름하고, 송자비(宋子飛)가 산에 당을 짓고 앙지(仰止)로 이름하였는데, 지금 화순의 비봉산에 재사를 짓고 남휘(覽輝)197)로 이름한 것은 또한 그 뜻이 아니겠는가? 봉황의 신령함은 밝고 밝아 시에 읊조리고 책에 드러나 전기(傳記)에 흩어져 나오고 심지어 부녀자나 어린아이들까지도 높이고 기이하게 여겨 일컫지 않음이 없어 입과 귀에 익숙하여 자자할 뿐만이 아니다. 그러나 주공(周公)의 다스림으로도 봉황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함을 두려워하고198) 공자의 성스러움으로도 봉황이 이르지 않음을 탄식하였는데,199) 더구나 열국(列國)이 가시밭이 되고 비바람이 휘몰아치던 수천 년간에 과연 한 사람이라도 봉황이 날개 짓 하고 어울려 우는 소리를 들은 이가 있었던가. 사람들은 반드시 절대로 없다고 하여 그 있음을 믿지 않을 것인데, 어찌하여 아끼고 숭상함이 끝이 없는 것이 이와 같은가?아! 용이 귀하게 되는 것은 잠겨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고, 거북이 신령하게 되는 것은 칩거하여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봉황에게 먹이를 주어 뜰에서 길들일 수 있다면 참새와 무엇이 다르며, 거스르지 않아 새장 속에 키울 수 있다면 닭이나 오리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시끄럽게 울며 함께 무리 짓지 않고 한가롭게 나란히 날지 않고 구포(九苞)200)의 먼 곳에 깊이 감추고 천 길 위에 높이 솟아오르니, 이 때문에 신령한 덕이 기쁘고 화락하며 상서로운 광채가 펼쳐 드러나 천하의 지극히 신령한 동물이 되는 것이다. 무도한 나라에 들어가지 않고 무도한 세상에 나타나지 않아 문채를 품고 광휘를 온축하여 성현과 함께 귀결되니, 봉황이여 어찌 그리 덕이 성대한가! 저 치효(鴟鴞)의 노함과 응준(鷹隼)의 시기는 족히 비교할 것이 못된다.오호라! 세상이 쇠퇴하고 도가 미약하여 멋대로 하는 말과 기이한 의론이 마치 백 명의 입이 다투어 떠들썩한 것과 같으니, 반드시 모름지기 우뚝이 분발하기를 천길 위에서 나는 것 같이한 연후에야 큰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인데, 남휘재(覽輝齋) 주인은 이것을 알 수 있겠는가? 힘쓰고 힘쓴다면 누가 화순의 비봉산은 동방의 군자국201)이 아니라 하겠는가. 齋郎朱氏瞻墓舊構也。在竹樹治飛鳳之山。昔晁伯彊亭於野而名以多稼。宋子飛堂於山而名以仰止。今齋於竹樹之飛鳳。而名以覽輝。亦非其義耶。鳳之爲靈昭昭也。詠於時。著於書。散出於傳記。以至婦女童稚。莫不尊異而稱道之。熟口慣耳。不啻藉藉。然以周公之治而恐其不聞。以孔子之聖而歎其不至。況列國荆榛。風雨漫漫。數千載之間。果有一人得見其翽翽之羽鏘鏘之音者耶。人必謂之絶無。而不信其有矣。何愛尙之無已若是耶。噫。龍之爲貴。以其潛而不見也。龜之爲靈。以其蟄而不露也。苦使鳳率啄而可馴於庭。則與鳥雀何別。勿咈而可畜於籠。則與雞鶩何異。不與啾啾同群。不與提提聯翩。而深藏於九苞之遠。遐擧於千仞之上。是以神德怡融。祥光宣著。而爲天下至靈之物矣。不入於無道之邦。不見於無道之世。含章蘊輝。聖人同歸。鳳兮鳳兮。何德之盛也。彼鴟鴞之嚇。鷹隼之猜。不足爲訐較也。嗚乎。世衰道微。橫言異議。如百舌競噪。必須挺特奮發如翔千仞之上。然後可以有爲。覽輝齋主人。其有以知此乎。勉之勉之。誰謂竹樹飛鳳。非東方君子之國。 남휘(覽輝) 한(漢)나라 가의(賈誼)의 〈조굴원부(弔屈原賦)〉에 "봉황은 천 길 높이 날다가, 성인의 빛나는 덕을 보고 내려간다.[鳳凰翔于千仞兮, 覽德輝而下之.]"라고 한 데서 취한 말이다. 주공(周公)의……두려워하고 《서경》 〈주서(周書) 군석(君奭)〉에 주공이 소공(召公)에게 "그대와 같은 구조의 덕을 하늘이 장차 내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봉황의 소리를 다시 듣지 못할 것이다.[耉造德不降, 我則鳴鳥不聞.]"라고 한 것을 말한다. 공자의……탄식하였는데 《논어》 〈자한(子罕)〉에 공자가 "봉황새가 오지 않고 하도가 나오지 않으니, 나도 이제 그만이구나.[鳳鳥不至, 河不出圖, 吾已矣夫.]" 라고 한 것을 말한다. 구포(九苞) 봉황이 지녔다는 아홉 가지 특징을 말하는데, 구포명(口包命), 심합도(心合度), 이청달(耳聽達), 설굴신(舌詘伸), 채색광(彩色光), 관구주(冠矩州), 거예구(距銳鉤), 음격양(音激揚), 복문호(腹文戶)이다. 《山堂肆考 卷211 羽蟲 鳳》 여기서는 봉황이 사는 곳을 뜻한다. 비봉산은 동방의 군자국 《설문(說文)》에 "봉(鳳)은 신조(神鳥)이다."라고 한 대목에서 천노(天老)가 말하기를 "동방 군자의 나라에서 나와 사해 밖에 날아다닌다.[出東方君子之國, 翱翔四海之外.]"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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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은기 華隱記 나의 벗 양 사문(梁斯文) 순집(順集) 씨가 집안 식구를 데리고 화학산(華鶴山) 가장 깊은 곳에 들어간 지 20여 년이 되었다. 산 밖의 친구들이 모두 화은(華隱)으로 부르자 양 사문이 능히 사양할 수 없어 인하여 그 집에 편액으로 삼고 또 나에게 기문을 청하였다.내가 말하기를, "예리한 보습을 들고 나가 들에서 농사지었던 것은 그런 사람이 반드시 많을 것이고, 길쭉한 낚싯대로 물에서 낚시한 것은 그런 사람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러나 예로부터 지금까지 유독 이윤(伊尹)이 신야(莘野)에서 농사지었던 것과 여망(呂望)이 위수(渭水)에서 낚시했던 것202)만을 일컬으니, 그 까닭은 어째서인가? 겸선(兼善)203)의 자질이 없으면 출사를 말하기에 부족하고, 독선(獨善)의 실제가 없으면 은거를 말하기에 부족하다. 저 농부가 농사짓고 시냇가 늙은이가 낚시하는 것은 직업일 뿐이니, 어찌 족히 기록하겠는가. 화학산은 큰 산이니, 산을 둘러싼 사방 기슭의 백 리 되는 땅에 거주하며 먹고 사는 사람이 양 사문 한 사람만이 아닌데 유독 은(隱)이라 이르는 것은 또한 그 실상을 걸맞게 채울 수 있는 것이 있어서인가? 행할만한 도를 지녔다면 몸은 성시(城市)에 살더라도 은이라 이르지 않은 적이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비록 도원(桃源)에 깊이 숨어 살더라도 은이라 이를 수 없다."라고 하였다.양 사문이 두려워하며 말하기를 "그렇다면 청컨대 이 호를 버리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라고 하기에 내가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양 사문의 겸겸(謙謙)204)한 의를 가진 입장에서는 비록 응당 이와 같이 해야 하겠지만 친구들이 표시하여 일컬은 입장에서는 어찌 그 뜻이 없겠는가. 더구나 자고로 명호(名號)는 모두 고훈 격언(古訓格言)의 말을 사용하여 면려를 기약하는 뜻을 깃들이네. 양 사문이 진실로 능히 이것으로 인하여 성찰하고 두려워하여 혹시라도 실상이 없는 이름에 귀착될까 두려워하여 더욱 그 덕에 힘쓰고 더욱 그 학업을 진보시켜 나아가서는 족히 큰일을 할 수 있고 물러나서는 족히 지키는 것이 있다면 훗날 사관[載筆]이 사책(史策)에 '모 년 간에 모가 화학산 남쪽에 은거하였다.'라고 대서특필하지 않을 줄 어찌 알겠는가. 이것을 힘쓸 만하다."라고 하였다. 余友梁斯文順集甫。挈家入華鶴山中最深處。爲二十有餘年矣。山外知舊。皆以華隱號之。斯文不能辭焉。因題其室。又屬余爲記。余曰。畟畟良耟。以耕于野。其人必多。籊籊竹竿。以釣于水。其人何限。然而自古至今。獨稱伊尹耕于華。呂望釣于渭。其故何哉。無兼善之資。則不足以謂之出。無獨善之實。則不足以謂之處。彼野夫之耕。溪叟之釣。職耳。何足記爲。華鶴大山也。環山四麓數百里之地。居而家食者。非斯文一人。而獨謂之隱。抑亦有可以稱塞其實者耶。有可行之道。身居城市。未嘗非隱。否則雖深居桃源。不可謂隱。斯文瞿然曰。然則請去此號可乎。余曰。不然。在斯文謙謙之義。雖應如此。而在知舊標稱之地。豈無其意。況自古名號。皆用訓格之言。以寓期勉之意。斯文苟能因此思省恐畏。恐其或歸於無實之名。益懋其德。益進其業。進足以有爲。退足以有守。則安知後日之載筆者。不大書特書於策曰。某年間。某隱於華山之陽乎。是可勉也。 이윤(伊尹)이……것 이윤이 신야 즉 유신씨(有莘氏)의 들판에서 농사를 짓다가 탕왕(湯王)의 초빙을 받고 상(商)나라를 도와서 왕업(王業)을 이룩하였고, 여상(呂尙)이 위수(渭水) 물가의 반계에서 낚시질하다가 문왕(文王)에게 발탁되었는데 뒤에 무왕(武王)을 도와서 은(殷)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평정하였던 일을 말한다. 《史記 齊太公世家》 《孟子 萬章上》 겸선(兼善) 온 천하를 아울러 선하게 한다는 뜻이다.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궁하면 그 몸을 홀로 선하게 하고, 영달하면 천하를 아울러 선하게 한다.[窮則獨善其身, 達則兼善天下.]"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겸겸(謙謙) 군자의 지극히 겸손한 모습을 형용하는 말이다. 《주역》 〈겸괘(謙卦) 초육(初六)〉에 "겸손하고 겸손한 군자는 몸을 낮춤으로써 자신을 기른다.[謙謙君子, 卑以自牧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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頃復迨慰 伏惟春殷侍候啓處一直淸裕仰溸無任第遭功制可想忉怛無辭仰慰弟省側依昔而冗憂鱗疊苦悶苦悶子婦見禮卜日仰報三月十八爲最吉卽四月十三亦可用惟在貴中裁量如何卽將無所碍必以最吉之日行禮好矣 慶科不遠以玆吾兄之實才必也勇赴第當我眼于榜上矣家兒今始送候久挽沒緊從速還送如何婦禮日子兩日間決定示復於連山內行下來諒深企耳餘客擾不備式己二旬二弟世涵拜(皮封)場巖侍座執事入納芝家令狀省式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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仰斗之餘連楣之誼惠荷良切伏惟暑夏尊候印一萬重伏溸區區不任勞祝僕前樣姑依是幸耳第親事吉日不遠凡百之拘碍想必兩家一般耳餘萬只冀日良辰吉不宣狀儀丁卯四月初七日崔聖德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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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光武十年丙午二月二十八日明文右明文事段自己買得沓伏在塩所帙異字畓九斗落所耕十七負一束㐣価折錢文玖十兩右人前舊文一張中間遺失故以新文一張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說則以此文記告官卞庭事畓主崔相燁[着名]證筆金瀅述[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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存 問己巳八月 日行縣監李[官印](皮封)單子 一道堂北中里金 碩士炳憲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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旣遂識剖旋結連楣日後灝灝從此可期伏審季秋尊體萬旺伏溸區區之至親事星帖謹殳而涓吉書呈耳不備伏惟尊照上狀丁未九月十八日柳錫龜再拜(皮封)尹生員下執事上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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伏慕之際伏承下書謹伏慰仰爲有日氣體更若何伏慕區區無任之地從侄憂苦近則少減是年之付米事此數若船卜則秋卜始欲停止伏計耳泮村所覓之物一一推送耳科時若逢汝一氏虎鬚一件付託期於買來于商便付送如何擇極好品求之如何以借商之無不得作錢則此將奈何意爲沓沓也眞玄無得置者家用者送上耳餘便忙不備上候書壬寅八月十四日從侄在鎬再拜(皮封)叔父主前上候書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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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정211)을 지나며 過迎狂亭 마음의 병은 광이 되어서이니 心病是爲狂뜻이 큰 것도 광이라고 하네 志大亦云狂세상엔 실로 마음의 광이 많고 世固多心狂뜻의 광이 있는 건 보기 드무네 罕見有志狂또한 마음과 뜻의 광이 아니라 更非心志狂일종은 거짓으로 광이 되었으니 一種佯作狂전에는 기자의 광212)이 있었고 前有箕子狂나중에는 매월당의 광213)이 있었네 後有梅月狂상전벽해에는 풍조가 광이니 桑海風潮狂기자와 매월당의 광을 흠모해야 하리 應慕箕梅狂나 또한 광과 똑같으니 我亦一同狂정자 안의 광에 끼고 싶네 願參亭中狂 心病是爲狂, 志大亦云狂.世固多心狂, 罕見有志狂.更非心志狂, 一種佯作狂.前有箕子狂, 後有梅月狂.桑海風潮狂, 應慕箕梅狂.我亦一同狂, 願參亭中狂. 영광정(迎狂亭) 1910년 국권이 침탈되자 순창지방에 살고 있던 금옹(錦翁) 김원중(金源中)이 뜻을 같이 하는 7명의 동지들과 일제에 빼앗긴 나라를 구하고 일본에 반대하는 사상을 널리 알리기 위해 1921년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 둔전리에 세운 정자이다. 이들 8명은 고의적으로 광인(狂人) 행세를 하면서 은밀하게 항일 투쟁을 하였다. 기자(箕子)의 광(狂) 기자는 은(殷)나라 군주인 문정(文丁)의 아들로 주왕(紂王)의 숙부이다. 주왕의 폭정에 대해 간언을 하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미친 척하여 유폐되었다. 매월당(梅月堂)의 광(狂) 매월당은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의 호이다. 그는 21세 때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소식을 듣고는 보던 책들을 모두 불사른 뒤 스스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어 전국 각지를 유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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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 초하루에 여중이 찾아와 함께 시를 짓다 3수 七月一日汝重來訪共賦【三首】 이른 가을과 함께 객이 산골 집에 이르니 客到山牕伴早秋물이 동으로 흐르듯 지난 자취를 회상해보네 回思陳跡水東流정토사의 샘물과 암석은 항상 얻기 어려웠고 淨菴泉石難恒得소노71)의 두건과 지팡이를 만류하지 못했지 蘇老巾筇未可留학업은 예로부터 중도에 끊어지기 쉬우니 學業從來易間斷손님 접대를 삼가여 한가롭게 놀지 말게나 逢迎愼莫作優遊응당 돌아가 은거하며 하늘과 다투어 서면 直須孤往爭天立하나의 즐거움 끝내 온갖 시름에서 보게 되리 一樂終看在萬憂《춘추》를 읽을 곳마저 없다고 누가 말했는가 誰言無地讀春秋그래도 내 마음을 다잡아 홀로 휩쓸리지 않았네 也把吾心獨不流정련한 금과 같은 의리 머지않아 드러나겠지만 義理金精無日見물처럼 달려가는 세월은 얼마나 남아 있을까 光陰水走幾時留원사는 정녕 술지게미와 쌀겨 먹어도 배불렀고72) 原思定可糟糠飽대순은 오히려 사슴이며 멧돼지와 논 적 있었네73) 大舜猶曾鹿豕遊산 북쪽 바다 동쪽에는 다행히 이웃이 있으니 山北滄東隣有幸서로 헤어져 사느라 오래 걱정 끼쳤다 말게 莫爲離索久貽憂그대와 서로 알고 지낸 지 몇 해이던가 與君相識幾春秋그 자태는 과격하지도 휩쓸리지도 않았지 不激其姿亦不流처신할 땐 법도를 따라 확립하려 하였고 行己欲從規矩立마음 다스릴 땐 사사로움 남을까 걱정했네 治心應恐妄私留만년에 구산74) 문하의 선비가 되어 晩參臼老門中士홀로 오랑캐 세상을 벗어나 노닐었네 獨出蠻夷世外遊바라노니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더 내디뎌75) 更願竿頭加進步우리의 도를 전승시킬 책임을 떠맡게나 身任吾道失傳憂 客到山牕伴早秋, 回思陳跡水東流.淨菴泉石難恒得, 蘇老巾筇未可留.學業從來易間斷, 逢迎愼莫作優遊.直須孤往爭天立, 一樂終看在萬憂.誰言無地讀《春秋》? 也把吾心獨不流.義理金精無日見, 光陰水走幾時留?原思定可糟糠飽, 大舜猶曾鹿氶遊.山北滄東隣有幸, 莫爲離索久貽憂.與君相識幾春秋? 不激其姿亦不流.行己欲從規矩立, 治心應恐妄私留.晩參臼老門中士, 獨出蠻夷世外遊.更願竿頭加進步, 身任吾道失傳憂. 소노(蘇老) 소학규(蘇學奎, 1859~1948)를 가리킨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화지(化知), 호는 열재(說齋)이다.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문인으로 위기지학(爲己之學)에 전념하였다. 원사(原思)는……배불렀고 선비가 가난하게 살았으나 뜻이 굳고 학문을 좋아하여, 청고(淸高)하고 빈한하게 사는 것을 말한다. 원사는 공자(孔子)의 제자인 원헌(原憲)으로, 사(思)는 그의 자이다. 그는 너무 가난하여 토담집에 거적을 치고 깨진 독으로 구멍을 내서 바라지 문으로 삼았는데, 지붕이 새어 축축한 방에서 바르게 앉아 금슬(琴瑟)을 연주하였다고 한다. 《莊子 讓王》 대순(大舜)은……있었네 초야에 묻혀서 지내는 생활을 뜻한다. 대순은 순(舜)임금을 가리키며,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순(舜)이 깊은 산속에 살 적에, 나무와 돌 사이에 거처하면서 사슴이나 멧돼지와 상종하였으니, 깊은 산속의 야인(野人)과 다를 바가 없었다.〔舜之居深山中, 與木石居, 與鹿豕遊, 其所以異於深山之野人者幾希.〕"라는 말이 나온다. 구산(臼山) 원문의 '구로(臼老)'는 구산의 노인이라는 말로, 간재 전우의 별호(別號)이다.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내디뎌 이미 일정한 경지에 올라 있더라도 더 높은 경지를 향해 부단히 노력해야 함을 뜻하는 말이다. 초현대사(招賢大師)의 게송(偈頌)에 "백척이나 되는 장대 끝에서 모름지기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어야 시방세계의 이치가 이 몸에 온전해질 것이라네.〔百尺竿頭須進步, 十方世界是全身.〕"라고 하였다. 《書言故事 釋敎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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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길 窮途 막다른 길에 생계야 견딜 수 있으나 窮途計活也能堪세상맛 달고 씀을 어찌 꼭 묻겠는가 世味何須問苦甘낙토로 돌아가 편히 살기는 어렵지만 難得爰居歸土樂어찌 탐천277) 마셔 급할 갈증 없애리 肯救急渴酌泉貪시운이 고르지 않으니 풍당278)은 늙었고 不齊時運馮唐老산하가 모습 바뀌니 은사279)는 부끄럽네 改色山河殷士慙저물 무렵 동풍이 부는 강가의 집에서 薄暮東風江上屋시름을 씻으려 그저 술잔을 머금는다오 滌愁只有酒杯含 窮途計活也能堪, 世味何須問苦甘.難得爰居歸土樂, 肯救急渴酌泉貪.不齊時運馮唐老, 改色山河殷士慙.薄暮東風江上屋, 滌愁只有酒杯含. 탐천(貪泉) 중국 광주(廣州)의 석문(石門)에 있는 샘물로, 이 물을 마시면 사람은 끊임없는 욕심을 품게 된다고 전한다. 《진서(晉書)》 〈오은지열전(吳隱之列傳)〉에 "지명은 석문인데 탐천이라는 물이 있어 마시는 자는 끊임없는 욕심을 품는다.[地名石門, 有水曰貪泉, 飲者懷無厭之欲.]"라고 하였다. 풍당(馮唐) 한(漢) 나라 때의 명신(名臣)이다. 한 문제(漢文帝) 때 풍당(馮唐)이 늙은 나이로 중낭서장(中郞署長)을 거쳐 겨우 거기도위(車騎都尉)에 이르고 말았다. 무제(武帝) 때에 다시 현량(賢良)으로 천거되었으나, 이미 90여 세나 되어 벼슬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고사가 있다. 《史記 卷102 馮唐列傳》 은사(殷士) 주(周) 나라에 망한 은(殷) 나라의 선비들을 말한다. 《시경》 〈문왕(文王)〉에 "은(殷)나라 선비 중에 아름답고 민첩한 자들이 주나라 서울에서 강신제를 돕는구나.[殷士膚敏, 祼將于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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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년 설날 회포를 쓰다 임신년(1932) 아래도 같다. 壬申元日 書懷【壬申下同】 마흔아홉 번째 설날을 맞았는데 四十九回逢日元거울 속엔 백발 점점 무성하네 鏡中漸覺鬢霜繁뜻이 우활하니 세상 사람의 눈에 버려졌고 志迂已棄時人眼거처는 궁벽지니 처사의 촌에 걸맞네 居僻還稱處士村자기를 성찰할 땐 작은 악도 다 없애는 걸 추구하고 省己要求纖惡盡미묘한 이치 연구는 바로 옛 글을 익히는 데 두어야지 硏微定在故書溫잘못을 알았다면 어찌 꼭 내년을 기다리랴 知非何必須明歲이런 뜻을 전현들에게 논해보려 한다네 欲向前修此意論 四十九回逢日元, 鏡中漸覺鬢霜繁.志迂已棄時人眼, 居僻還稱處士村.省已要求纖惡盡, 硏微定在故書溫.知非何必須明歲, 欲向前修此意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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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이경 【회덕】에게 답함 答梁而敬【會德】 편지를 받고 답장을 못한 지 지금 두 달이나 되었네. 먼 곳에서 떠도느라 막혀서 인편을 찾을 수 없어서 그런 것이니, 다 헤아려 줄 것이라 생각하네. 그대 부친께서 뜻밖에 방문해 주었으니, 지극히 위로 되고 감사한 마음 어떻게 헤아리겠는가? 인하여 그대가 공부하는 것이 근래 《대학》에 있다고 들었는데, 이 책은 학문을 처음 시작하는 입장에서는 매우 옳은 방법을 얻은 것인데, 다만 〈대학독법(大學讀法)〉을 먼저 읽었는지 모르겠네. 모름지기 이 독법을 한결같이 따라서 경문과 장구 및 《혹문(或問)》을 가지고 십 분의 공부를 착수하여 십 분의 도리를 투득(透得)하여 평생의 가계(家計)를 세우면 이로부터 기본이 될 것이네. 독서하면서 의심을 하지 못하는 것 이것을 이경(而敬)이 일찍이 스스로 병통으로 여긴 것인데, 실로 그러하네. 그러나 〈대학독법(大學讀法)〉가운데 이른바 "어떠한 것이 명명덕(明明德)이며, 어떠한 것이 지어지선(止於至善)인가?"라고 한 것 같은 것은 정히 마땅히 의심해야 할 곳이 아니겠는가? 한 곳을 타개하여 마음이 점점 익숙해지면 절로 칼을 대는 대로 잘려 나가는 것91)이 있을 것이네. 고인이 말하기를 "후생의 재주가 남보다 뛰어난 사람은 두려워 할 것이 없고, 오직 글을 읽으며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는 사람은 두려워할 만하다."라고 하였으니,92) 여기에서 대략 볼 수 있네. 의림(義林)은 나이가 들수록 지업은 실추되니, 슬퍼하고 후회한들 무슨 보탬이 있겠는가? 종유하는 입장에 나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은 마땅히 나를 거울삼을 수 있을 것이네. 承書未復。今再閱月矣。旅滯迂遠。覓便不得。想爲之諒悉。春府丈料外枉過。慰感之至。如何可量。因聞盛課近在曾傳。此在發軔之初。甚爲得計。但未知先看讀法否。須一依此法。將正經章句及或問。下得十分功夫。透得十分道理。以立平生家計。自此而爲基本也。讀書而不會致疑。此而敬嘗自以爲病者。固然。然如讀法中所謂如何是明明德。如何是止至善。其非正當會疑處耶。一處透打。心路漸熟。則自有迎刃而解者矣。古人曰。後生才性過人。不足畏。惟讀書深思推究者。爲可畏。此槩可見也。義林年邁業墜。悲悔奚補。在遊從之地而年後於我者。宜可以監戒哉。 칼을……것 《진서(晉書)》 권34 〈두예열전(杜預列傳)〉에 "대나무를 자를 때 몇 개의 마디만 지나가면 모두 칼을 대는 대로 잘려 나간다[破竹, 數節之後, 皆迎刃而解.]"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고인이……하였으니 《소학》권5〈가언(嘉言)〉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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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백에게 답함 答安慶伯 노쇠하고 황폐하여 외롭고 쓸쓸하게 지내고 있는 차에 벗들은 영락하여 흩어져, 온갖 감회가 생겨 고할 말이 없어, 들어와서는 지붕만 쳐다보고 나가서는 하늘만 쳐다보고 있으니, 어찌 우리 경백(慶伯)이 또한 한번 찾아와 이 괴로운 심정을 위로해 주지 않는가? 뜻밖에 편지를 받음에 족히 만나서 얼굴을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으니, 어떤 위로가 이만하겠는가? 인하여 어버이의 체후가 보중한 줄 알았으니, 더욱 마음에 부합하네. 혼례에 축하하지 않는 것77)은 옛날에 그런 말이 있고, 더구나 경백의 오늘 일은 어버이를 생각하는 감회가 생각건대 남들과 다른 점이 있을 것이니, 어떻게 견디며 어떻게 부지하는가? 고맙게 초대해 주니, 비록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나의 마음 어찌 끝이 있겠는가? 다만 근래에 감기 때문에 쓰러져 신음하고 있는지가 오래 되었네. 그 때 괴로움의 가감(加減)을 헤아려 결정할 것이니, 비록 감히 잊지 않겠지만 또한 기필할 수 없네. 사당에 고하는 한 가지는 실로 폐해서는 불가하고 작은집 사당에도 또한 일례로 고해야 하네. 다만 축사는 사앙(士仰)78)이 마땅히 주관하고 속칭(屬稱)은 '사손(祀孫)'이라고 하는 것이 가할 것이니, 어떻게 여기는가? 상세히 헤아리는 것이 가할 것이네.[문] 《근사록》 권1 도체류(道體類)에 "천지 사이에 정정당당하여 위아래로 곧은 바른 이치이니, 벗어나면 옳지 않다."라고 하였는데, '출(出)'은 치우침을 말하는 것입니까?[답] '출'은 실로 치우침으로 말한 것이지만, 분명 이미 발한 뒤의 과불급(過不及)을 겸하여 말한 것이네.[문] 창섭(昌燮)은 '불천노불이과(不遷怒不貳過)'에서 먼저 '천노(遷怒)'를 말한 것은 대개 만약 노여움을 옮기면 이것 또한 허물이기 때문에 뒤에 '이과(貳過)'를 말하여 위로 '천노'를 포함하였다고 생각하는데, 황철원(黃澈源)79)은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이것도 한 가지 설이다. 사람의 정 가운데 발하기는 쉬우나 제어하기 어려운 것은 오직 노여움이 심하기 때문에 먼저 '천노'를 말하였으니, 《대학》정심장(正心章)에서 '분치(忿懥)'를 먼저 말한 것과 같다. 이것 또한 한 가지 설이다.[답] 창섭과 철원의 의론은 모두 의의가 있네. 그러나 또한 하나의 기(氣)가 있으니, '노(怒)' 자는 마음에서 말하였기 때문에 먼저 말한 것이고, '과(過)' 자는 일에서 말하였기 때문에 뒤에 말한 것이네.[문] 창섭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맹자가 "지(知)의 실제는 이 두 가지를 알아서 버리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지' 가운데 원래 양단(兩端)이 합하니 이미 아는 것이 분명하고 또 지키는 것이 견고한데, 《근사록》권1에서 주돈이(周敦頤)는 도리어 "덕(德)은 애(愛)를 인(仁)이라 하고, 의(宜)를 의(義)라 하고, 이(理)를 예(禮)라 하고, 통(通)을 지(知)라 하고, 수(守)를 신(信)이라 한다."라고 하여 '지'에 단지 '통'을 말하고 별도로 '수'를 '신'에 말하여 각각 부합하지 않음이 있으니, 의심스럽다.철원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주돈이는 원두로부터 '성(誠)'을 말하고 '기(幾)'를 말하면서 다섯 가지 덕의 이름을 분별하였으니, 이것은 태극과 음양오행의 순서이고, 맹자는 다만 양심이 발현된 곳을 취하여 그 용공의 절도를 말하였으니, 뜻은 각각 있는 곳이 있고 말 또한 같지 않다. 또 상세히 말하자면, '지'는 이미 알아서 버리지 않기 때문에 능히 통하니, '통' 자 가운데 이미 '불거(不去)'의 뜻을 포함하고 있으며, 수를 신이라 한다고 한 것은 '수' 자는 실제로 있다는 뜻이니, '불거'와는 같지 않고 '수' 자 이면에 사덕(四德)을 포함하고 있다.[답] 본 것이 상세하네.[문] 창섭은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정자(程子)는 "귀신은 조화의 자취이다.[鬼神造化之迹]"라고 하였고, 장재(張載)는 "두 기의 양능이다.[二氣之良能]"라고 하였는데, 정자는 기로 말하였고, 장재는 이로 말하였다.철원은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양능을 곧장 가리켜 이(理)라 하는 것은 불가하니, 대개 양능 상에서 이를 볼 뿐이다. 양능은 이기가 자연히 유행하는 것이라, 안배의 뜻이 있지 않으니, 오로지 이로 보는 것은 불가한데, 더구나 확고하게 기로 간주하는 것이 가하겠는가? 그러나 그 주가 되는 것은 이(理)이고 기(氣)는 이(理) 가운데의 일이니, 오로지 이로 보는 것이 오히려 확고하게 기로 보는 것보다 낫다.[답] 양능은 이(理)이네. 만약 양능을 곧장 가리켜 이라고 하지 못한다면 기가 도리어 주가 되고 이는 사용할 곳이 없을 것이네.[문] 창섭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분치(忿懥)는 의(義)가 발한 것이고, 공구(恐懼)는 예(禮)가 발한 것이고, 호요(好樂)는 인(仁)이 발하는 것인데, 우환(憂患)은 무엇이 발한 것입니까?철원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우(憂)는 마음의 염려이고, 환(患)은 이 염려가 심한 것이니, 우와 환은 바로 지(知) 측면의 일이다.[답] 옳네.[문] 창섭은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근사록》권1에서 "맹자는 그 가운에 나아가 또 호연지기를 발휘해 내었다."고 하니, 흡사 기(氣)가 이(理) 가운데 섞여 있는 듯합니다.철원은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기는 이 가운데의 일이니, 바로 이 이가 유행하고 운용하는 수단이다.[답] 실로 그러하네.[문] 창섭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건도(乾道)는 남자를 이루고 곤도(坤道)는 여자를 이룬다."는 것은 사람과 사물을 겸하여 말한 것입니다. 사람의 남녀는 보기 쉽고 사물의 남녀는 보기 어렵다.철원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무릇 한 사물이 있으면 문득 음양이 있으니, 비록 하나의 작은 먼지라도 등[背]과 상하가 있다. 선유가 이른바 "대나무에 자웅(雌雄)이 있고, 삼에 빈모(牝牡)가 있다."라고 하였으니,80) 또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남여' 두 글자는 본래 사람으로 인한 이름이지만 성인은 다만 사람과 사물을 겸하여 꿰뚫어 혐의로 여기지 않았다.[답] 옳네.[문] 창섭은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사문(師門)의 답훈(答訓)에 "반드시 표리와 정추가 이르지 않음이 없어야 바야흐로 물리(物理)의 극처(極處)가 이르지 않음이 없다.……"라고 하였는데, 사문의 뜻은 대개 반드시 표리와 정추의 사물이 이르지 않음이 없는 뒤에야 바야흐로 이치가 이르지 않음이 없다고 말한 것이라 여기니, '필(必)' 자와 '방시(方是)' 자를 보면 이런 뜻이 있는 듯하다.철원은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사문의 뜻은 그렇지 않다. 표리와 정추는 바로 물리의 극처이니, 《대학》에서 말한 격물(格物)의 물은 모두 물(物)의 이(理)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답] 나의 뜻도 실로 그러하네. 衰索踽涼。知舊零散。百感萬懷。無可吿語。入則仰屋。出則仰蒼。豈以吾慶伯而亦未有一番相顧。以慰此苦苦耶謂外得書。足以替其顔而代其話矣。何慰如之。因審省候衛重。尤副願言。昏禮不賀。古有其語。而況慶伯今日之事。則其思親之感。想有以異於人者。何以堪遣。何以支將。俯招之惠。雖未有示。而吾之心。豈有已哉。但近日來。以感祟委頓。叫苦久矣。其時。量所苦之加減而爲之進退。雖不敢忘。而亦不可必也。告廟一款。固不可廢。而小宅祠堂。亦當一例告之。但祝辭。士仰當主之。而屬稱則云祀孫可矣。如何如何。詳諒之可也。天地之間。亭亭當當直上直下之正理。出則不是云云。出謂偏倚。出固以偏倚言。然的兼已發後過不及言昌燮以爲不遷怒不貳過。先言遷怒者。蓋若遷怒則是亦過也。故後言貳過。而上包遷怒也。黃澈源以爲此是一說。人之情易發而難制者。惟怒爲甚。故先言遷怒。如大學正心章之先忿懥。此亦一說也。昌燮澈源之論。皆有意義。然而亦有一氣。怒字。以心上說。故先言之。過字以事上說。故後言之。昌燮曰。孟子曰知之實。知斯二者。不去云云。知中元合兩端。旣知之明。又守之固。周子却云。德愛曰仁。宜曰義理曰禮。通曰知。守曰信。於知只言通。而別言守於信。各有不孚。可疑。澈源曰。周子是自原頭言誠言幾。而分別五德之名。是太極陰陽五行之序也。孟子特取良心發見處。言其用功節度。則意各有在。言亦不同。且細言之。則知旣知而不去。故能通。通字中。已含不去意。守曰信。守字是實有之意。與不去不同。守字裏面。包含四德。看得詳。昌燮以爲程子曰。鬼神造化之迹。張子曰。二氣之良能。程以氣。張以理。澈源以爲良能不可直指爲理。蓋於良能上見理耳。良能是理氣自然流行。不有安排之意。不可專作理看。況可硬作氣看乎。然其所主則理也。氣是理中事。則專作理省者。猶勝於硬作氣看者耳。良能理也。若以良能而不直指爲理。則氣反爲主。而理無所用矣。昌燮曰。忿懥義之發。恐懼禮之發。好樂仁之發。憂患何發。澈源曰。憂是心之慮。患是慮之甚。則憂患正是知邊事。是。昌燮以爲孟子去其中。又發揮出浩然之氣。恰似氣雜在理中矣。澈源以爲氣是理中事。乃此理流行運用之手脚。固然。昌燮曰乾道成男。坤道成女。兼人物而言之者也。人之男女昜見。而物之男女難看。澈源曰。凡有一物。便有陰有陽。雖以一塵之微。有背而上下。先儒所謂竹有雌雄。麻有牝牡。亦最易見者也。但男女二字。本是因人而名。然聖人直兼人物而貫之。不以爲嫌。是。昌燮以爲師門答訓曰。必表裏精粗。無不到。方是物理之極處。無不到云云。師門之意。蓋謂必表裏精粗之物。無不到而後。方是理無不到之謂耶。看必字方是字。似有此意。澈源以爲師門之意不然也。表裏精粗。卽物理極處。大學言格物之物。皆指物之理而言。鄙意固然。 혼례에……것 《예기》 〈교특생(郊特牲)〉에 나오는 말이다. 사앙(士仰) 안종섭(安宗燮, 1877~?)의 자이다. 본관은 죽산(竹山)이다. 정의림의 문인이다. 황철원(黃澈源) 1878~1932. 자는 경함(景涵), 호는 은구재(隱求齋)·중헌(重軒),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기운동에서 태어났다. 정의림의 문인이다. 저서로는 《중헌집》이 있다. 선유가……하였으니 《주자어류》권74〈역10(易十) 상계 상(上繫上)〉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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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순81) 【재덕】에게 답함 答吳景純【在德】 보지 못한 지 지금 얼마나 되었는가? 한 통 편지를 받은 기쁨이 백붕(百朋)82)에 대적하네. 더구나 앓던 병이 점차 화평해져 음식과 동작이 거의 평상시와 같은 줄 알게 되었으니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이것은 섭양하고 조리함에 방도가 있을 뿐 아니라 화락한 군자를 신명이 도움이 정히 응당 이와 같으니, 매우 위로되는 마음 어찌 끝이 있겠는가? 다시 바라건대 더욱더 자애하여 소소한 남은 증세는 마치 눈이 햇빛을 보고 녹듯이 다 사라질 수 있도록 하시게. 의림(義林)은 이전에 지나가다가 여러 차례 그대 집을 찾아갔으나 서로 어긋나 만나지 못하였네. 그러나 병중의 동정은 매번 인편을 통해 종종 물어서 알고 있었네. 고인은 병중에 이치를 보아 득력(得力)한 것이 많으니, 대개 외물과 접하지 않아 잡념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었네. 그대 또한 응당 알고 있는가?[문] 《중용》은 인물로부터 말하였기 때문에 도(道)가 성(性) 뒤에 있고, 《대전(大傳)》에서는 조화(造化)로부터 말하였기 때문에 도가 성의 앞에 있는 것입니까?[답] 《대전》은《주역》〈계사전(繫辭傳)〉을 가리켜 말하니, 이른바 "일음일양(一陰一陽)……"이라 한 것83)을 말하는 것인가? 계사는 천도(天道)로 말하였고, 《중용》은 인물(人物)의 도(道)로 말하였네.[문] 원두(源頭)로부터 말하면 성(性)은 만물의 한 근원[一原]인데, 사람이 되고 사물이 되는 것은 기품(氣稟)이 달라서 그런 것입니까?[답] 이른바 한 근원이라는 것은 본래 기를 떠나 독립한 곳에 있으니, 단지 기에 나아가 오로지 본래 없는 오묘함[本無之妙]을 가리킨 것이 이것이네. 또한 모름지기 한 근원은 또한 구분이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하네.[문] 재(才)는 의리(義理)에 나아가 말하고 재(材)는 용(用)에 나아가 말한 것입니까?[답] 재(才)는 덕(德)의 용(用)이니 사람의 능력이고, 재(材)는 재료를 말하는 것이네.[문] 정자(程子)가 "둘로 하면 옳지 않다.[二之則不是]……"라고 하였는데, 주자(朱子)가 해석하여 말하기를 " 성(性)만을 논하고 기질을 논하지 않으면 타고난 자질의 다름을 볼 수 없고, 기질만 논하고 성을 논하지 않으면 의리가 같음을 볼 수 없다."라고 하였으니, 접때 애장(艾丈)84)의 말과 서로 어긋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답] 애장의 말 또한 이와 같은데, 무엇으로 서로 어긋난다고 하는 것인가? 다만 주자가 해석한 '불시이지(不是二之)'는 '불시(不是)'의 주석인데, 경순(景純)은 생각건대 잘못 인용한 것 같네.[문] 《맹자》 〈고자 하(告子下)〉순발어견묘장(舜發於畎畝章)에서 "우환에서 살고 안락에서 죽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만약 부귀한 집안에서 생장하여 겪을 우환이 없는 사람은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반드시 안락함이 두려워 할 만함을 염려하고 천명은 일정하지 않음을 생각하여 경계하고 삼가며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여 부귀에 가려지지 않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곤심 횡려(困心橫慮)85)하여 비로소 살 수 있는 방도입니까?[답] 근심이 없었던 사람은 문왕(文王)인데도 "조심하고 공경하였다."라고 하고, "밥 먹을 겨를도 없었다."라고 하지 않았던가?86) 이것은 천고 심법(心法)의 종지(宗旨)이네. 不相見今幾時。一書喜敵百朋也。矧審愼節漸次向和。飮饍興作。幾於視常者乎。此是攝理調養。不惟有方。而神相愷悌。定應如此。慰慰曷已。更願益加自愛。使小小餘證如雪見晛也。義林前此經過。累次扣扁。而交違未面。然其所愼動靜。每因便而種種問知耳。古人於病中看理。多所得力。蓋外物不接。雜慮不作故也。未知吾友亦應諒之耶中庸自人物而言。故道在性後。大傳自造化而言。故道在性先耶。大傳指易繫辭而言。所謂一陰一陽之云耶。繫辭以天道言。中庸以人物之道言。自源頭言。則性者萬物之一原也。而爲人爲物。在於氣稟之不同。所謂一原。本在離氣獨立之地。只是就氣上。專指本無之妙是也。且須知一原。亦非無分之謂。才就義理說。材就用上說耶。才是德之用也。人之能也。材是材料之謂。二之則不是云云。朱子解之曰。論性不偏氣。則無以見生質之異。論氣不論性。則無以見義理之同。與向日艾丈之言。相爲向背者何耶。艾丈之言亦如此。何以謂相背耶。但朱子所解。不是二之則不是底註脚。景純想誤引矣舜發於畎畝章。知生於憂患而死於安樂也。若生長富貴。無憂患可歷者。當如之何。必也念安樂之可畏。思天命之無常。戒謹恐懼。不爲富貴之所蔽者。是乃困心衡慮方生之道也耶。無憂者文王。而其不曰小心翼翼不遑暇食乎。此是千古心法宗旨。 오경순(吳景純) 오재덕(吳在德, 1874~?)을 말한다. 자는 경순, 호는 제월(齊月), 본관은 보성(寶城)이다. 정의림의 문인이다. 백붕(百朋) 많은 재물을 뜻한다. 옛날에는 패각(貝殼)을 화폐로 사용했는데, 5패를 1관(串)이라 하고 2관을 1붕(朋)이라 했다 한다. 《시경》 〈소아(小雅) 청청자아(菁菁者莪)〉에 "이미 군자를 만나고 보니, 나에게 백붕을 준 것 같도다.[旣見君子, 錫我百朋.]"라는 말에서 나온 말이다. 이른바……것 《주역》〈계사 상(繫辭上)〉 제5장에 "일음일양을 도라고 하니, 잇는 것이 선이고, 이룬 것이 성이다.〔一陰一陽之謂道, 繼之者善也, 成之者性也.〕"라고 한 것을 말한다. 애장(艾丈) 정재규(鄭載圭, 1843~1911)를 말한다. 자세한 내용은 앞의 같은 주석 참조. 곤심 횡려(困心橫慮) 노심초사하면서 떨쳐 일어날 계책을 세우라는 말이다. 《맹자(孟子)》 고자 하(告子下)에 "마음에 곤하고, 생각에 걸린 뒤에 분발한다.[困於心 橫於慮而後作]"라고 한 것을 말한다. 근심이……않았던가 《중용》 제18장에 공자가 "근심 없는 자는 오직 문왕이로다! 〔無憂者, 其惟文王乎! 〕"라고 한 것과《시경》 〈대아(大雅) 대명(大明)〉에 "오직 이 문왕만이 조심하고 공경하셨네.[維此文王, 小心翼翼.]" 라고 한 것과《서경》 〈주서(周書) 무일(無逸)〉에 "아침부터 한낮과 저녁이 되도록 밥 먹을 겨를도 없이 만민을 평화롭게 하였다.[自朝至于日中昃, 不遑暇食, 用咸和萬民.]"라고 한 것을 인용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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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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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이경원87) 【기호】에게 답함 答李景元【基皓】 지난 날 찾아 왔을 때 저녁이 되어 문득 떠났으니, 뒤 미쳐 생각함에 서글프고 허전한 마음이 마치 목에 음식물이 걸린 것 같았는데, 뜻밖에 편지를 받아 감사한 마음 참으로 깊었네. 인하여 어버이를 모시는 절도가 줄곧 많은 복을 누리고 있는 줄 알았으니, 위안되는 마음 실로 깊었네. 그대 공부가 지금 《근사록》을 보고 있다고 하니, 매우 좋네. 의리의 정미함은 이 책보다 상세한 것이 없으니, 진실로 능히 익숙히 읽고 정밀히 생각하여 하나하나 체인(體認)한다면 이른바 '비상한 기질'을 반드시 이 책에서 얻을 수 있을 것이네. 편지에서 "춘생지(春生之)……"라고 하였는데, 봄은 봄기운이 생기고 여름엔 봄기운이 자라고 가을엔 봄기운이 성숙하고 겨울엔 봄기운을 간직해 두네. 그러므로 봄이 사시의 처음이 되는 것이 인(仁)이 사덕(四德)의 장(長)이 되는 것과 같네. 또 춘하추동의 이치는 하늘에 있어서는 원형이정이 되고, 사람에게 있어서는 인의예지가 되니, 이 이치를 밝게 터득하면 어찌 극기복례(克己復禮)할 수 있지 않겠는가? 또 체(體)는 체용(體用)의 체가 있고 체단(體段)의 체가 있으니, 대개 귀산(龜山)88)은 만물이 나와 하나가 되는 것을 인(仁)으로 여기니, 호상(湖湘)89)의 학자들이 이것을 인의 체라고 여겼네. 그렇다면 이 '체' 자는 체용과 체단을 겸하여 가리켜 말한 것이네. 모든 사물은 체와 용이 있지 않음이 없으니, 나무의 뿌리는 체이고 그 지엽은 용이며, 물의 근원은 체이고 갈래의 물줄기는 용이네. 인심(人心)에 있어서는, 미발(未發)은 체가 되고 이발(已發)은 용이 되며, 사덕(四德)은 체가 되고 사단(四端)은 용이 되네. 체단의 체 같은 것은 그 당체(當體)의 실두(實頭)를 가리켜 말한 것이니, 말의 맥락이 조금 다르네. 그 아래 문장에서 주가가 말하기를 "이것은 인(仁)의 체가 아니라, 인의 양(量)이다."라고 하였으니,90) 원컨대 경원(景元)은 여기에 더욱더 생각하여 무엇이 인의 체가 되며 무엇이 인의 양이 되는지를 뚜렷하고 분명하게 한다면 유익함이 없지 않을 것이라 생각되네. 向日枉顧。觸暮旋發。追念悵缺。如物在喉。匪意承書。感戢良深。因審侍中節宣。連膺茂祉。慰浣實深。盛課今在近思錄云。甚善甚善。義理精微。莫詳於此書。苟能熟讀精思。一一體認。則所謂甚生氣質。必有以得之於此矣。示中春生之云。夫春者春之生也。夏則春之長也。秋則春之成也。冬則春之藏也。故春爲四時之首。仁爲四德之長者然也。且春夏秋冬之理。在天爲元亨利貞。在人爲仁義禮智。曉得此理。豈不可以克己復禮乎。且體有體用之體。有體段之體。蓋龜山以萬物與我爲一。爲仁。湖湘學者。以此爲仁之體。然則此體字。兼指體用體段而言之也。凡物莫不有體有用。木之根體也。而其枝葉用也。木之源體也。而派流用也。在人心。則未發爲體。已發爲用。四德爲體。四端爲用。若體段之體。指其當體實頭而言。語脈微別矣。其下文朱子曰。此不是仁之體。是仁之量。願景元於此。更加入思。以爲何者是仁之體。何者是仁之量。使之了了分明。想不無益。 이경원(李景元) 이기호(李基皓, 1874~?)를 말한다. 자는 경원, 본관은 공주(公州)이다. 정의림의 문인이다. 귀산(龜山) 송(宋)나라 때 학자 양시(楊時, 1053~1135)의 호이다. 자는 중립(中立)이다. 정호(程顥)ㆍ정이(程頤)의 제자로, 뒤에 도남학(道南學)을 창시하였다. 정호ㆍ정이의 학문은 양시를 거쳐서 나종언(羅從彦)에게 전해지고, 다시 이동(李侗)을 거쳐서 주희(朱熹)에게 전해졌다. 저서로는 《귀산집》이 있다. 호상(湖湘) 호는 동정호(洞庭湖), 상은 상강(湘江)을 말하는데, 호굉(胡宏)이 호상학파(湖湘學派)를 개창하였다. 주가가……하였으니 《주자어류》권6〈성리3(性理三) 인의예지명의(仁義禮智等名義)〉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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