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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군의 말을 듣고 시를 지어 보여 주다 聞羅君有言, 詩以示之 서로 알아줌은 원래 마음 알아줌이 귀하니 相識元來貴識心삼년 동안 가르침에 더욱 정이 깊어지누나 三年敎學更情深형적을 가지고 동이를 구분하지 말고 莫將形迹分同異흉금을 활짝 열고 고금을 통찰해야 한다오 須豁胸襟洞古今서를 힘써서 행할 때엔44) 사람의 허물이 적어지고 强恕行時人寡過사심을 조금이라도 쓰는 곳엔 상제가 밝게 임한다네45) 微私用處帝明臨모두가 우리들이 이치 연구를 게을리함에서 비롯되니 總緣吾輩疏硏理서재 창가에서 촌음을 아껴 학문에 힘쓰시게나 且向書窓惜寸陰 相識元來貴識心, 三年敎學更情深.莫將形迹分同異, 須豁胸襟洞古今.强恕行時人寡過, 微私用處帝明臨.總緣吾輩疏硏理, 且向書窓惜寸陰. 서(恕)를……때엔 서(恕)는 자신의 마음을 가지고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다.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서(恕)를 힘써서 행하면 인(仁)을 구함이 이보다 가까울 수 없다.强恕而行 求仁莫近焉〕"라고 한 것을 원용하였다. 상제(上帝)가 밝게 임한다네 《시경》 〈대아(大雅) 대명편(大明篇)〉에 "상제께서 너에게 임하셨으니, 너의 마음에 의심하지 말라.[上帝臨女, 無貳爾心.]"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여기서는 하늘이 언제 어디서나 네가 하는 것을 모두 잘 안다는 뜻으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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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32년 파평윤씨(坡平尹氏) 대종약소(大宗約所)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始祖降生一千三十二年壬申九月 日 坡平尹氏大宗約所 簽宗氏 始祖降生一千三十二年壬申九月 日 坡平尹氏大宗約所 서울특별시 종로구 3.8*3.8(정방형) 적색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932년 9월에 경성부의 파평윤씨 대종약소에서 선조의 위토와 임야를 공동 등기하는 일과 관련하여 각 문중에 보낸 통문. 1932년 9월에 경성부(京城府) 장사동(長沙洞)에 있는 파평윤씨(坡平尹氏) 대종약소(大宗約所)에서 선조(先祖)의 위토(位土)와 임야(林野)를 공동으로 등기하는 일과 관련하여 각 문중에 보낸 통문이다. 대종약소는 각 문중에서 부담하기로 한 금액을 보내지 않아서 공동 등기 소속에 어려움이 많다고 설명하고, 우선 중시조(中始祖) 태사공(太師公)의 임야 등기만 인쇄하여 보내고, 다른 곳은 점차 송달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그러니 각 문중에서 속히 부담금을 보내어 사업이 완결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파평윤씨 대종약소는 2년 전인 1930년에도 선조의 위토와 임야 가운데 특히 경주(慶州)의 토지를 공동등기하는 일로 각 문중에 통문을 보낸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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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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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56년 이윤범(李允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咸豊六年丙辰五月二十日 金秉權 李允範 咸豊六年丙辰五月二十日 金秉權 李允範 전라북도 부안군 [着名] 3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56년(철종 7)에 김병권이 서도작 중방 서평에 있는 논을 이윤범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56년(철종 7) 5월 20일에 김병권(金秉權)이 서도작(西道作) 중방(中方) 서평(西坪)에 있는 논을 이윤범(李允範)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김병권은 대대로 물려받은 논을 경작해 왔지만 긴히 사용할 일이 생겨서 팔게 되었다고 매매이유를 밝히고 있다. 거래된 토지는 서도작 중방 서평의 황자답(惶字畓) 7두락지이며 거래가격은 145냥이다. 거래 당시 본문기(本文記)를 건네주면서 만약에 말썽이 일어나면 관에 제출하여 증거로 삼으라고 하였다. 서도작 중방이 어느 지역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 동안의 관련 자료에 의하면 부안현에 속한 지역으로 추정된다. 이 거래에는 답주(畓主) 김병권(金秉權)과 증인(證人) 박응원(朴應元), 필(筆) 김채삼(金采三) 등 3인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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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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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우연히 쓰다 偶題 일만 권의 서책이 쌓여 있는 그윽한 방 안에서 萬卷書中一室深홀로 세속 밖에 거하니 또한 이 무슨 마음인고 獨居物外亦何心마른밥과 채소 먹는 건106) 내가 즐길 수 있거니와 飯糇茹草吾能樂풍월을 읊조리는 건 세상이 막을 수 없고말고 弄月吟風世莫禁오늘날 뜻이 같은 벗님을 만나지 못하였으니 此日未逢同志友훗날엔 그 누가 어두운 구천 향해 애통해할까 他年誰慟九泉陰그저 위로 아래로 부끄러움 없기를107) 구할 뿐이니 但求俯仰無慙怍모쪼록 영대108)에 나아가 스스로 헤아려야 하리라 須就靈臺自揣斟 萬卷書中一室深, 獨居物外亦何心?飯糇茹草吾能樂, 弄月吟風世莫禁.此日未逢同志友, 他年誰慟九泉陰?但求俯仰無慙怍, 須就靈臺自揣斟. 마른밥……건 마른밥과 채소는 빈천한 자가 먹는 보잘 것 없는 음식을 비유하는 말로, 《맹자》 〈진심 하(盡心下)〉에 "순 임금이 마른 밥을 먹고 채소를 먹을 때에는 장차 그대로 인생을 마칠 듯하더니, 천자가 되어서는 그림 그린 옷을 입고 거문고를 타며 두 여자가 모시는 것을 본디 가지고 있던 듯했다.[舜之飯糗茹草也, 若將終身焉; 及其爲天子也, 被袗衣鼓琴, 二女果, 若固有之.]"라고 한 데서 보인다. 위로……없기를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위로는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아래로는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다.[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영대(靈臺) 사람의 마음을 비유한 말이다. 《장자(莊子)》 〈경상초(庚桑楚)〉에 "영대를 침입하지 못한다.[不可內於靈臺.]"라고 하였는데, 곽상(郭象)의 주(注)에 "영대는 마음이다.[靈臺者, 心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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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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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선인의 이장380)을 끝내지 못함을 근심하다 憂先葬未完 선인의 이장을 끝내지 못해 꿈에서도 놀라는데 未完先葬夢猶驚하물며 노쇠한 이내 몸이 염라부에 뒤따라감에랴 況追衰頹閻府行비록 안목 밝은 자를 만나기 어렵다고 하지만 縱道難逢明眼目정성을 다하지 못함을 스스로 부끄러워하노라 自慙未須盡誠情다만 체백381)에 아무런 재해도 없으니 但得體魄無災害자손들이 부귀하기를 바랄 수 있겠네 旣望兒孫見富榮지금 깊이 후회하는 것은 무엇인가 深悔如今何所在일찍이 《청오경》382)을 배우지 않은 것일세 曾年不學靑烏經 未完先葬夢猶驚, 況追衰頹閻府行?縱道難逢明眼目, 自慙未須盡誠情.但得體魄無災害, 旣望兒孫見富榮.深悔如今何所在, 曾年不學靑烏經. 선인(先人)의 이장(移葬) 후창은 26세가 되는 1909년에 부친인 김낙진(金洛進)의 상을 당하였는데, 이때에 선인의 이장을 도모했던 것으로 보인다. 체백(體魄) 땅속에 묻은 시신(屍身)을 이른다. 옛날에는 사람이 죽으면 혼(魂)은 위로 올라가고, 백(魄)은 시신에 깃든다고 생각하였으므로, 체백과 영혼(靈魂)을 구별하여 묘소에는 체백이 있고, 궤연(几筵)에는 영혼이 있다고 하였다. 청오경(靑烏經) 진한(秦漢) 시대의 감여가(堪輿家)로 알려진 청오자(靑烏子)라는 인물이 편찬한 풍수지리서이다. 《금낭경(錦囊經)》과 함께 풍수지리에 관한 양대 기서(奇書)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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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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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59년 한성호(韓性浩) 다짐(侤音) 고문서-증빙류-다짐 법제-소송/판결/공증-다짐 己未十月初九日 韓性浩 官 己未十月初九日 韓性浩 泰仁縣 전라북도 태인군 官[着押] 3개(적색, 정방형) 전주 송진택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41_01_A00009_001 1859년 10월에 한성호(韓性浩)가 송진택(宋鎭澤)과의 산송에 낙과한 후에 관에 제출한 다짐(侤音)으로 내년 11달까지 투장한 무덤을 옮기겠다는 내용. 1859년(철종 10) 10월 초9일에 고부에 사는 한성호(韓性浩)가 송진택(宋鎭澤)과의 산송에 낙과한 후에 관에 제출한 다짐(侤音)이다. 당시 50살인 한성호는 전주에 사는 송진택과 소송에 패한 후에 다짐을 제출하였으나, 이장할 날짜를 따져보니 내년 11월이 돼서야 이장할 수 있었다. 결국 이 다짐을 다시 제출하여 내년에 11월까지 옮기겠다고 하였다. 연결문서를 살펴보면, 송진택의 친산은 당시 태인군 감산면 반룡촌에 있었다. 이곳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해 현재는 정읍시 감곡면 계룡리에 속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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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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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869년 안익(安榏)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己巳八月二十二日 安榏 金碩士 己巳八月二十二日 1869 安榏 金碩士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69년 8월 22일에 안익이 김석사에게 보낸 편지. 1869년 8월 22일에 안익(安榏)이 부안(扶安)에 사는 김석사(金碩士)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지의 피봉(皮封)에 '대효애(大孝哀)'라고 적은 것은 당시 김석사가 부친상(父親喪)을 당했기 때문이다. 서울에 살고 있었던 안익은 마땅히 상가로 달려가 문상을 하여야 하지만, 자식 둘을 잃은 처지여서 위로조차 드리지 못해 한스럽다고 하였다. 대신 상주(喪主)께서 어머님을 모시고 평안하시길 빌 따름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아드님에게 따로 보낸 편지에 자세한 내용을 적었다고 하였다. 같은 날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안익이 이달 초에 천연두(天然痘)로 여섯 살 난 딸과 두 살 난 아들을 잃어버렸다고 하였다. 천연두는 홍역(紅疫)과 함께 조선시대에 전국적으로 유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던 대표적인 역병(疫病)이었다. 조선시대에 유아 사망률이 높은 이유의 하나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아뭏든 이로 미루어 보면 안익은 연장자인 김석사의 아들과 깊은 교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 서간에는 작성연대가 기사로만 되어 있지만, 안익이 작성한 다른 편지에 이재원(李載元, 1831-1891) 대감의 동향을 전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1869년으로 추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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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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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1855년 김명하(金命河) 추증교지(追贈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咸豐五年三月 日 哲宗 金命河 咸豐五年三月 日 哲宗 金命河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55년(철종 6)에 왕이 김응상의 아버지 김명하에게 내린 추증교지 1855년(철종 6) 3월, 왕이 김응상(金膺相)의 아버지 김명하(金命河)에게 가선대부(嘉善大夫) 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부총관(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副摠管)의 관직을 내리면서 발급한 추증교지(追贈敎旨)이다. 김응상이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 겸 오위장(同知中樞府事兼五衛將)으로 임명되자 그의 아버지도 증직(贈職)되었다. 즉, 이 문서의 맨 끝에 "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兼五衛將金膺相考 依法典追贈"라고 적혀 있는 기록이 바로 그 사실을 말해주는 내용이다. 조선 시대에는 실직(實職)이 2품 이상인 종친(宗親)과 문무관(文武官)의 경우 그의 부(父), 조(祖), 증조(曾祖)등 3대(代)에 걸쳐 사후(死後) 관직을 주었고 이를 추증(追贈)이라 하였다. 이는 김응상의 아버지 김명하가 증직된 사유이다. 또한 부모(父母)는 실직에 있는 아들과 같은 품계를 내리며 조부모(祖父母), 증조부모(曾祖父母)에게는 그 품계에서 각각 1품씩 강등하여 추증하였다. 이러한 사유로 김응상의 아버지 김명하가 종2품 가선대부로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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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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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828년 조응식(趙膺植)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戊子三月初三日 趙膺植 外翁 戊子三月初三日 趙膺植 外翁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28년(순조 26) 조응식이 보낸 서간 1828년(순조 26) 3월 3일에 조응식(趙膺植)이 외조(外祖)에게 보낸 서간(書簡)이다. 한해 지나도록 소식이 막혀 소식을 알 수 없었다며 늦봄 외조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가문이 불행하여 세전(歲前)에 계부(季父)의 상사(喪事)를 당하여 비통한 심정은 말할 것이 없고, 초월(初月)이 지났으나 묏자리를 정하지 못해 이달 13일에 임시 매장을 결정하였다고 하였다. 어머니의 건강이 좋지 못하여 이 때문에 공부를 포기할 수밖에 없어 안타깝다고 하였다. 또 유아(乳兒)가 요절하였다는 말을 듣고 참혹하였으나 인마(人馬)가 겨를이 없어 얼굴 한번 못 보고 영결하니 아비로써 매우 경악스럽다고 하였다. 정(鄭)아(雅)가 여러 날을 머무른다니 기쁘기 짝이 없으나 몸을 빼내어 만나지 못하니 매우 서운하다고 하였다. 세전(歲前)에 사 둔 목화는 30근(斤)인데 신편(信便)이 없어서 지금에야 비로소 올려 보낸다며, 지금은 전부 매매할 시기가 아니라서 뜻대로 되지 않았으니 가격은 되돌려 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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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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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1832년 김양묵(金養默) 고신(告身) 4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道光十二年七月 日 吏曺 承文院著作金養黙 道光十二年七月 日 純祖 金養默 서울특별시 종로구 8.0*8.0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32년(순조 32)에 이조(吏曺)에서 국왕의 명을 받아 승문원저작(承文院著作) 김양묵(金養默)을 통덕랑(通德郞) 행승문원박사(行承文院博士) 겸(兼) 봉상시직장(奉常寺直長)에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첩 1832년(순조 32) 7월 28일에 이조(吏曺)에서 국왕의 명을 받아 승문원저작(承文院著作) 김양묵(金養默)을 통덕랑(通德郞) 행승문원박사(行承文院博士) 겸(兼) 봉상시직장(奉常寺直長)에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첩이다. 발급 일자 위에 이조(吏曺)의 관인이 답인(踏印)되어 있고, 이조 참의(參議)가 서압(署押)하였다. 통덕랑은 정5품의 문관에게 주던 품계이다. 승문원은 사대교린에 관한 문서를 관장하고 이문(吏文)의 교육을 담당한 관서로 저작은 정8품, 박사는 정7품이다. 박사는 정원 2인으로 90일이 지나면 승륙(陞六)하였다. 수취자의 품계인 통덕랑이 관직인 박사의 품계보다 높았기 때문에 행수법(行守法)에 따라 관직명 앞에 행(行)자를 표기하였다. 봉상시는 고려 때 설치된 태상(太常) 제도를 답습하여 국가의 제사 및 시호를 의론하여 정하는 일을 관장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관서로, 김양묵은 승문원박사로 봉상시 직장을 겸임하였다. 한편, 문서 배면(背面) 좌측 하단에는 '吏吏金貞浩'이라고 적혀있다. 吏吏는 고신을 작성한 이조의 서리이며, 김정호는 서리의 이름이다. 부안 김씨 김양묵 가문이 소장하고 있는 고신의 배면을 보면 김정호뿐만 아니라 김형복, 김정익 등의 김씨 성을 가진 서리의 이름이 연속적으로 등장한다. 이는 이조에 근무하는 서리 가운데 김씨 성이 대를 이러 부안 김씨 가문의 단골 서리 역할을 하였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김양묵은 본관이 부안(扶安)으로, 1829년에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하여 관직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가 받았던 고신(告身)들이 그의 후손 가에 오늘날도 전하고 있다. 특히 그가 문과 응시 당시 작성했던 시권(試券)과 급제하여 받았던 홍패(紅牌)를 비롯하여, 고신 16점, 차첩 2점 등 20점이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아버지 김응상(金膺相)과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증조와 증조할머니, 고조와 고조할머니 등이 받았던 고신 20점이 전하고 있는데 대부분 추증교지(追贈敎旨)이다. 이 추증교지는 김응상이 고신을 받을 때마다 함께 받았던 것들이다. 고신 외에 김응상이 1819년부터 1855년까지 작성했던 호구단자(戶口單子) 7점도 전하고 있어서 그의 가족 상황을 살펴 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김응상은 생전에 부안현 남하면 돈계리에 내내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오는데, 오늘날의 부안군 주산면 돈계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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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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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吏曺道光十二年五月初六日奉敎承文院正字金養黙爲務功郞行承文院著作者道光十二年五月初六日判書[着押] 參判 參議 正郎 佐郞[官印]吏吏金亨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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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만종 군에게 주다 贈劉君萬鍾 부지런히 송독하는 그대를 아끼니 愛君勤誦讀성실과 근면도 짝할 이가 없구나 誠謹亦無匹한결같이 이리하여 변함 없으면 一此無改易학업 달성은 의당 기필할 수 있네 業成宜可必내가 듣건대 충신하지 않으면 我聞不忠信만사에 모두 실속이 없다네 萬事皆無實이를 면하기 원래 쉽지 않으니 免此元未易젊은 날에 더욱 노력해야 하네 加勉及少日옥을 만약 쪼고 갈지 않으면 玉如不琢磨온율함38)을 어찌 드러내리오 何能著溫栗 愛君勤誦讀, 誠謹亦無匹.一此無改易, 業成宜可必.我聞不忠信, 萬事皆無實.免此元未易, 加勉及少日.玉如不琢磨, 何能著溫栗. 온율함 원문의 '온율(溫栗)'은 따듯하면서도 굳센 옥의 성질을 가리킨다. 《예기》 〈빙의(聘義)〉에 "군자의 덕을 옥에 견준다. 온윤하면서 광택이 있음은 인이고, 치밀하면서 굳센 것은 지이다.[君子比德於玉焉, 溫潤而澤, 仁也;縝密而栗, 知也.]"라고 한 데서 인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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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제봉에 올라 우연히 읊다 병인년(1926) 2월 ○아래도 같다. 上望帝峯 偶吟 【丙寅二月○下同】 객과 산이 모두 세상 벗어났으니 客與山俱出世間산은 객 같고 또 객은 산 같구나 山如客又客如山까마득한 세월 부용봉은 푸른데 百千萬劫芙蓉碧마흔셋 나이 귀밑머리 희끗하네 四十三年鬂髮斑궁한 길을 다 거쳐도 끝내 믿을 데 있고 歷盡窮途終有賴폭우에 다 씻긴들 어찌 깎여지랴 洗過暴雨豈能刪종일 서로 보아도 싫지 않으니 相看盡日還無厭귀하고 무거운 우정도 똑같구나 珍重交情也一般 客與山俱出世間, 山如客又客如山.百千萬劫芙蓉碧, 四十三年鬂髮斑.歷盡窮途終有賴, 洗過暴雨豈能刪.相看盡日還無厭, 珍重交情也一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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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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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외종형 김만당428) 어른 희현 이 방문하다 外從兄晩堂金丈【熺鉉】見訪 세밑에 바다에서 산 서재를 찾아오시니 海笻山榻歲闌天눈 내린 달 밤에 정답게 둘이 마주했네 兩對殷勤雪月邊옥동429)의 새로운 취미는 냉담하고 冷淡玉東新趣味두북430)의 옛 임천은 황량하구나 荒凉斗北舊林泉지난 일은 이미 봄밤의 꿈이 되었으나 往塵已屬春宵夢장한 뜻이야 어찌 백발의 나이에 쇠하랴 壯志寧衰白首年다만 자주 만날 날을 길이 가져야 하리니 但得源源長有日그리우면 매화 필 때까지 기다릴 것 없네 相思莫到發梅前 海笻山榻歲闌天, 兩對殷勤雪月邊.冷淡玊東新趣味, 荒凉斗北舊林泉.往塵己屬春宵夢, 壯志寧衰白首年.但得源源長有日, 相思莫到發梅前. 만당(晩堂) '만당(晩棠)'의 잘못인 듯하다. '만당(晩棠)'은 근세 유학자 김희현(金熺鉉, 1872~1951)의 호이다. 자는 정오(定五)이며, 본관은 광산이다. 김택술은 그를 위해 〈만당시고서(晩棠詩稿序)〉를 썼고 주고 받은 시 여러 편이 《후창집(後滄集)》에 실려 있다. 옥동(玉東) 옥산(玉山)의 동쪽을 말하는 듯하다. 두북(斗北) 두승산(斗升山)의 북쪽을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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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수 군에게 주다 贈金君基洙 이 학문은 내면의 성신37)을 중시하니 此學貴中孚비유하면 닭이 품은 알과 같다네 譬如鷄抱卵생기가 계속 이어져야 하는데 生意須接續참 정기가 끊어질까 두렵다네 眞精怕間斷이십여 일이 되기를 기다려야 待到二旬餘짧디짧은 깃텃을 볼 수 있네 羽毛見短短학문은 어떻게 이루는가 學成問何以진실로 나태를 경계하는 데 있네 亶在戒放懶권컨대 그대는 장년에 이르기까지 勸君迨壯年이십 년의 한도는 잡아야 한다네 把作二旬限얻지 못하면 마땅히 그만두지 말고 不得宜不措빠르게 하지 말며 늦게도 하지 말라 無速且無緩기틀을 갖춰야 물리를 깨닫게 되니 成形證物理묘체는 쉽게 헤아릴 수 없는 것이네 妙諦未可算 此學貴中孚, 譬如鷄抱卵.生意須接續, 眞精怕間斷.待到二旬餘, 羽毛見短短.學成問何以, 亶在戒放懶.勸君迨壯年, 把作二旬限.不得宜不措, 無速且無緩.成形證物理, 妙諦未可算. 내면의 성신 원문의 '중부(中孚)'는 《주역》 〈중부괘(中孚卦)〉의 괘사를 인용한 것이다. 그 괘사(卦辭)에 "중부는 돼지와 물고기에 미치면 길하니, 큰 냇물을 건넘이 이롭고 정함이 이롭다.[中孚, 豚魚, 吉, 利涉大川, 利貞.]" 한 데 대하여, 공영달(孔穎達)의 소(疏)에 "믿음이 마음에서 발한 것을 중부라고 한다.[信發於中, 謂之中孚.]라고 하였는데 후에 중부(中孚)는 성신(誠信)을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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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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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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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문인함60) 【재연】에게 보냄 與文仁涵【載淵】 아득히 멀리 떨어져 있어 그리움과 울적함이 날로 쌓이네. 근래 어버이를 모시고 지내는 체후는 만복하며, 공부하는 과정은 독실히 하여 멈추지 않는가? 매번 인함(仁涵)이 일찍 아버지를 잃어 집안을 담당하고 거듭 많은 일을 당한 것을 생각함에 나의 가엽고 절박한 정이 없을 수 없었네. 그러나 영고(榮枯)와 통색(通塞) 이것은 실로 천지 사이에 없을 수 없는 일이니, 마치 한서(寒暑)와 주야(晝夜)가 앞에서 서로 교대하는 것과 같아 옮기거나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네. 다만 마땅히 하늘의 뜻을 들어 순순히 받아들여야 하고, 힘쓸 수 있는 것은 오직 독서와 수신(修身)이니, 나의 성분에 진실로 가지고 있는 한 가지 일이라, 또 곤궁(困窮)과 불울(拂鬱)함이 두려워하고 힘써 옥성(玉成)61)시키는 바탕이 되지 않을 줄 어찌 알겠는가? 나이가 젊고 기운이 강하여 앞길이 만 리 인데, 어찌 갑자기 스스로 상실하여 한편으로 선장(先丈)62)께서 기대하고 바랐던 무거움을 저버리고 한편으로 사우가 부탁한 부지런함을 외면할 수 있겠는가? 평소 집안일을 주관하는 여가에 한 방을 깨끗이 쓸고 《논어》《맹자》 및 《심경》《근사록》등의 글을 가지고 몇 줄을 보고서 의취(義趣)를 궁구하기에 힘써, 마음을 조금이라도 방일하게 하지 않는다면 차츰 쌓은 것이 많아진 뒤에는 절로 마땅히 공효를 보게 될 것이네. 의림(義林)은 비록 지극히 보잘것없지만 선장에게는 일찍이 친구 중의 한 사람이었고, 또 임종 때 슬프고 간절하게 한 부탁을 받은 것이 진중할 뿐만이 아니었네. 오호라! 어느새 여러 해가 흘러 묘목(墓木)이 이미 굵어졌네. 매번 한 생각이 생기면 유명(幽明) 간에 저버림이 무궁할까 두렵고, 만약 하루아침에 덜컥 죽게 되면 또 무슨 말로 저승에서 만나게 될 날에 알리겠는가? 이것이 감히 이렇게 그대에게 경계하는 이유이니, 어떻게 여기는가? 蒼莽涯用。戀菀日積。未詢邇來侍省百福。鉛槧程曆慥慥不住否。每念仁涵早孤當室。荐遭多故。而不能無區區憫迫之情。然榮枯通塞。此固天地間所不無之事。如寒暑晝夜相代乎前。而有不可以移易者也。只當聽天順受。而所可勉者。惟讀書修身。性分固有底一事而已。又安知困窮拂鬱。不爲惕勵玉成之地耶。少年强氣。前程萬里。而豈可遽自隕穫。一以負先丈期望之重。一以孤士友付託之勤乎。平日幹蠱之餘。淨掃一室。將論語孟子及心經近思等文字。看得多少行。務窮義趣。勿令心少有放逸。則積累多後。自當見功矣。義林雖極無狀。而在先丈。未嘗不是知舊之一。且受其臨終悲懇之托。不啻珍重。嗚乎星霜累變。墓木已拱矣。每一念到。恐負幽明無有窮已。而若一朝溘然。則又以何語而報之於泉下相見之日乎。此所以敢爾奉規於吾友者也。如何如何。 문인함(文仁涵) 문재연(文載淵, 1873~?)을 말한다. 자는 인함, 본관은 남평(南平)이다. 정의림의 문인이다. 옥성(玉成) 송(宋)나라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 "그대를 빈궁하게 하고 시름에 잠기게 하는 것은, 장차 그대를 옥으로 만들어 주려 함이다.[貧賤憂戚, 庸玉汝於成也.]"라고 한 데서 온 말로, 학문과 인격이 시련을 통하여 귀한 옥처럼 훌륭하게 성취되는 것을 말한다. 《古文眞寶後集 卷10》 선장(先丈) 문재연의 부친 문봉환(文鳳煥, 1849~1890)을 말한다. 자는 익중(翊中), 호는 오계(梧溪), 본관은 남평(南平)이다. 자세한 행적은 《일신재집》권19〈오계 문공 행장(梧溪文公行狀)〉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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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덕소29)【우용】에게 답함 答淇德韶【祐鏞】 지난번 보내준 편지를 받았으나 미적거리다가 답장을 못했는데, 갑자기 하산(霞山)30)의 강석(講席)에서 만나게 되었네. 그러나 사람들이 많아 요란하여 다정히 대화할 수 없었으니, 뒤미처 생각함에 매우 서글펐네. 그동안 삼가 묻건대 부모님을 곁에서 모시는 생활이 어떠한가? 남는 힘으로 글을 읽어 더욱 조리와 두서가 있어서 한 가문의 여러 선비들이 많이 종유할 것이니, 매번 그리워하는 마음 감당할 수 없네. 질문한 몇 조목에서 터득하지 못하면 그만두지 않는 뜻31)을 족히 볼 수 있었네. 명덕(明德)과 신민(新民)의 말단에 결어(結語)가 같고 다른 것은 혹 문세로 인하거나 혹 말뜻으로 인해서이지만 글자를 놓고 말을 함에 각각 마땅한 바가 있으니, 위아래의 글을 상세히 살펴보면 알 수 있네. 본말장(本末章)에 대해……라 한 것은 '청송(聽訟)' 한 구절로 말하자면, '송사를 없게 한다[使無訟]'는 것은 본(本)이고 '송사를 듣는다[聽訟]'는 것은 말(末)이며, '백성의 마음을 크게 두렵게 한다[大畏民志]'는 것은 본이고 '그 거짓말을 다하지 못하게 한다[不敢盡其辭]'는 것은 말이네. 이것은 명덕과 신민의 본말의 뜻을 해석한 것이 아니겠는가? 오직 바라건대 더욱 마음을 두어 정밀하게 연구하시게. 向承惠幅。因循未復。而遽爾相面於霞山講聚之席。然人海撓撓。未得穩款。追思悵悵。邇來謹問侍旁起居何似。餘力咿晤。益有條緒。一門群彦。濟濟遊從。每不勝依然。俯詢數條足見不得不措之意明德新民末段結語之同異或因文勢。或因辭義。而下字下語。各有攸當詳考上下文可知也。本末章云云。以聽訟一節言之。使無訟。本也。聽訟末也。大畏民志。本也。不敢盡其辭。末也。此非釋明新本末之意者耶。惟加意硏精。 홍덕소(洪德韶) 홍우용(洪祐鏞, 1872~1941)을 말한다. 자는 덕소, 호는 우산(牛山), 본관은 풍산(豊山)이다. 정의림의 문인이다. 저서로는 《우산유고(牛山遺稿)》가 있다. 하산(霞山) 《일신재집》권14〈하산기(霞山記)〉에 내용이 보인다. 터득하지……뜻 《중용장구》 제20장에 "생각하지 않는다면 모르지만 일단 생각할진댄 터득하지 못하면 그만두지 않는다.[有不思, 思之, 不得, 不措也.]"라고 한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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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가을 족숙 낙표 의 별장에 갔다가 벗을 만나다 早秋 到族叔【洛杓】庄上 逢友人 가을 되어 감개가 한층 더 많아지니 秋來感恨一層多장강의 만곡 물결에도 씻기가 어렵네 難洗長江萬斛波당시의 참된 마음은 동해의 곡350)이요 當日眞情東海哭천년의 절창(絶唱)은 서산의 노래351)라 千年絶調西山歌시서가 배에 가득하나 끝내 의지할 수 없으니 詩書滿腹終無賴조수와 한 무리 되면 다시 어찌할까 鳥獸同羣復若何지기는 인간 세상에서 기다릴 것 없나니 知己不須人世上심중에 본래 옛 양아352)가 있다오 心中自有古洋峨《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권29 끝. 秋來感恨一層多, 難洗長江萬斛波.當日眞情東海哭, 千年絶調西山歌.《詩》、《書》滿腹終無賴, 鳥獸同羣復若何?知己不須人世上, 心中自有古洋峨.後滄先生文集卷之二十九 終 동해(東海)의 곡(哭) 전국 시대 제(齊)나라 사람 노중련(魯仲連)이, 진(秦)나라가 조(趙)나라를 포위하고서 천자로 섬기면 포위를 풀어 주겠다고 하자 "진나라가 방자하게 천자를 참칭(僭稱)하면 동해에 빠져 죽겠다."라고 말하며 절의를 지킨 고사를 가리킨다. 《史記 魯仲連列傳》 서산(西山)의 노래 서산은 수양산(首陽山)을 가리킨다.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은(殷)나라 주왕(紂王)을 정벌하는 것을 반대하여 간하다가 듣지 않자 수양산으로 들어가 고사리를 캐 먹으면서 노래하기를 "저 서산에 올라가서 고사리를 캐도다. 포악함으로 포악함을 바꾸면서도 그른 줄을 모르도다.[登彼西山兮, 采其薇兮. 以暴易暴兮, 不知其非兮.]"라고 하였다. 《史記 伯夷列傳》 양아(洋峨) 지기(知己)가 서로 만난 것을 말한다. 거문고의 명인 백아(伯牙)가 고산(高山)에 뜻을 두고 연주하면 그의 지음(知音)인 종자기(鍾子期)가 "좋구나. 아아(峨峨)하여 태산(泰山)과 같도다." 하고, 유수(流水)에 뜻을 두고 연주하면 "좋구나. 양양(洋洋)하여 강하(江河)와 같도다."라고 평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列子 湯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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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또 읊다 是日 又吟 막내가 서쪽에서 산 지 이십 년이라345) 季也西居二十年떨어져 있으니 업보와 남은 인연 어쩔 수 없네 別離無柰業留緣때때로 홀로 《시경》 〈상체(常棣)〉346)를 읊었고 有時獨賦姫公棣어느 날인들 두자미의 운수(雲樹)347)를 보지 않았던가 曷日無看杜子雲아 나는 더욱 노쇠하여 백발만 더해지는데 嗟我益衰添白髮그대가 학문에 소홀하여 가업 잃을까 염려되네 恐君疎學失靑氈어찌하여 끊임없이 와서 보지 않는가 源源胡不來相見서글픈 마음이 오늘 배가 되누나 怊悵之懷倍此辰누이 둘 아우 셋348)은 다 노년인데 姊二弟三老大年여섯 사람 살아있으니 또한 드문 인연이네 六人在世亦稀緣지금은 모두가 집안을 꾸렸고 至今俱是偕家室아울러 후세에 전할 자손이 있다네 傳後幷皆有子孫청빈하니 속백349)이 부족하다 말하지 말라 休道淸貧歉粟帛다행히 질병으로 병석에 누운 일 없다오 幸無疾病委牀氈흩어져 살아 쓸쓸하여 그리운 마음 괴로운데 散居落落相思苦어떻게 단란하게 모여 노년을 즐길거나 團聚安能樂暮辰 季也西居二十年, 別離無柰業留緣.有時獨賦姫公棣, 曷日無看杜子雲?嗟我益衰添白髮, 恐君疎學失靑氈.源源胡不來相見? 怊悵之懷倍此辰.姊二弟三老大年, 六人在世亦稀緣.至今俱是偕家室, 傳後幷皆有子孫.休道淸貧歉粟帛, 幸無疾病委牀氈.散居落落相思苦, 團聚安能樂暮辰? 막내가……년이라 막내는 김택술의 막내아우인 김억술(金億述, 1899~1959)을 가리킨다. 자는 여안(汝安), 호는 척재(拓齋)이다.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제자이다. 김억술은 1924년에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옹중리로 이사하였다. 시경(詩經) 상체(常棣) 《시경》 〈소아(小雅)〉의 편명으로, 형제간의 우애를 표현한 작품이다. 두자미(杜子美)의 운수(雲樹) 두자미는 두보(杜甫)로, 이 시는 원래 벗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표현한 작품인데, 여기에서는 형제를 그리워하는 의미로 쓰였다. 두보의 〈봄날 이백을 그리워하다[春日憶李白]〉에 "위수 북쪽엔 봄 하늘의 나무요, 강 동쪽엔 해 저문 구름이로다.[渭北春天樹, 江東日暮雲.]"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杜少陵詩集 卷1》 누이……셋 김택술의 형제는 4남 2녀인데, 김택술이 장남이고, 차례로 봉술(鳳述), 만술(萬述), 억술(億述)이 있고, 여동생 둘은 김재봉(金在鳳), 유동기(柳東起)에게 시집갔다. 속백(粟帛) 곡물과 포백(布帛)으로, 벼슬하는 동안에 받는 녹봉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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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계기 蘭溪記 난초는 여러 화초에 견주어보면 같은 식물인데 《주역》에 드러나고, 《예기》에 보이며, 《시경》에서 노래하고, 《이소(離騒)》에서 회자되어 그 명칭과 품제(品題)가 여러 꽃들의 위에서 독차지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사람은 덕을 향기로 삼고 꽃은 향기로 덕을 삼으니, 난초가 칭송을 받는 것은 대개 그 덕이 있기 때문이다. 구원(九畹)에 이미 심어130) 그윽한 골짝에 길이 생겨 채집하고 꿰매어 차고, 깔거나 안고서 화려한 집에 바치고 금 쟁반에 드리니, 그 냄새가 정성스러워 호고(胡考)가 평안하고131) 그 향기가 비로소 올라가니 상제가 흠향하네.132)오호라! 쑥을 차는 이133)는 어떤 사람이며, 향주머니에 채운 것134)은 어떤 물건인가? 이상한 냄새 나는 유(蕕)는 함께 거처할 수 없고, 오로지 아첨하는 초(椒)135)는 함께 말할 수 없네. 적막한 곳에 외로운 뿌리 의탁하여 여러 화초와 더불어 짝이 되니, 사람이 있다고 하여 더 영화롭지 않고 사람이 없다하여 향기를 풍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 향기 머금고 뿌리에 감추어 그 덕을 축적하는 것이 마치 생강과 계피는 늙을수록 더욱 매워지는 것136) 같고, 마치 시귀(蓍龜)는 오랠수록 더욱 신령한 것과 같으니, 그 난초는 또한 아름답지 않겠는가. 내 난계자(蘭溪子)를 위하여 〈의란조(猗蘭操)〉137) 한 곡을 노래하니, 원컨대 그대는 주부자(朱夫子)의 난두시(蘭杜詩)138) 한 절구로 이어서 화답하시게. 蘭於衆卉。同植物也。而著於易。見於禮。歌於詩。膾灸於離騒。其名稱品。題擅於衆芳之上者何耶。人以德爲馨香。花以馨香爲德。蘭之見稱。盖以其有德也。九畹旣藝幽。谷成蹊。采之紉之。以藉以包。薦於華屋。進於金盤。其臭亶時而胡考是寧。其香始升而上帝是歆。嗚乎。服艾何人。充幃何物。異臭之蕕。不可與居。專佞之椒。不可與語。托孤根於寂寞。與衆艸而爲伍。不以有人而加榮。不以無人而不芳。含薰晦根。以畜其德。如薑桂之老而愈辣。如蓍龜之久而益神。則其爲蘭也。不亦美矣乎。我爲蘭溪子。歌猗蘭操一闋。願子以朱夫子蘭杜詩一絶。繼以和之也。 구원(九畹)에 이미 심어 굴원(屈原)의 〈이소(離騷)〉에 "내가 구원의 땅에다 이미 난초를 심고, 다시 백묘의 땅에다 혜초를 심었노라.[余旣滋蘭之九畹兮, 又樹蕙之百畝.]"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호고(胡考)가 평안하고 호고는 수고(壽考)와 같은 뜻이다. 《시경》 〈주송(周頌) 재삼(載芟)〉에 "음식이 그 향기로우니 국가의 영광이며, 후추가 향기로우니 호고의 편안함이로다.[有飶其香, 邦家之光. 有椒其馨, 胡考之寧.]"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그 향기가……흠향하네 《시경》 〈대아(大雅) 생민(生民)〉에 "그 향기 비로소 올라가니, 상제가 편안히 흠향하시도다.[其香始升, 上帝居歆.]"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쑥을 차는 이 굴원의 〈이소〉에 "집집마다 쑥을 허리춤에 가득 차고 다니면서 유란(幽蘭)은 찰 것이 못 된다고 한다네.[戶服艾以盈腰兮, 謂幽蘭其不可佩.]"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향주머니에 채운 것 굴원의 〈이소〉에 "거름을 가져다가 향주머니를 채우고, 신초는 향기롭지 않다고 말하네.[蘇糞壤以充幃兮, 謂申椒其不芳.]"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오로지 아첨하는 초(椒) 굴원의 〈이소〉에 "산초는 오로지 아첨하여 거만하네.[椒專侫以慢慆兮]"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생강과……것 《송사(宋史)》 〈안돈복열전(晏敦復列傳)〉에 "나는 끝내 내 한 몸을 위하여 국가를 그르치지 않을 것이고, 더구나 내 생강과 계피 같은 성질은 늙을수록 더 매워짐에랴.[吾終不爲身計誤國家, 況吾薑桂之性, 到老愈辣?]"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의란조(猗蘭操) 공자가 지은 금곡(琴曲)이다. 공자가 위(衛)나라에서 노(魯)나라에 돌아온 뒤에 깊은 골짜기에 핀 향기로운 난초를 보고서 스스로 때를 만나지 못했음을 마음 아프게 여겨 이 노래를 지었다고 한다. 주부자(朱夫子)의 난두시(蘭杜詩) 주자의 시 〈봉동장경부성남십이영(奉同張敬夫城南二十詠)〉에서 여섯 번 째 난간(蘭澗)에 대한 절구에 "광풍이 푸른 시내 위에 떠가니, 난초와 방두는 나날이 성하도다.[光風浮碧澗, 蘭杜日猗猗.]"라고 한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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