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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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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관계

1914년 이광현(李光現) 임명장(任命狀) 고문서-첩관통보류-임명장 정치/행정-임면-임명장 大正三年四月壱日 任實郡廳 李光現 大正三年四月壱日 任實郡廳 李光現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 범오 홍주이씨가 전주 덕진 홍주이씨가 전북향토문화연구회편, 『全北地方의 古文書』1․ 2․ 3, 1993․1994․1995.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정구복, 『고문서와 양반사회』, 일조각』, 2002. HIKS_OD_F1020-01-000022 1914년 4월 1일에 임실군청(任實郡廳)에서 이광현(李光現)을 운암면(雲岩面)의 임시서기(臨時書記)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임명장. 1914년 4월 1일에 임실군청(任實郡廳)에서 이광현(李光現)을 운암면(雲岩面)의 임시서기(臨時書記)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임명장이다. 이 임명장에는 그의 일급(日給)이 27전이라고 명기되어 있다. 이광현은 이보다 앞선 1912년 8월에 임실군(任實郡) 하운면(下雲面)의 서기로 임명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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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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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신사년 문장(門長) 김백수(金百秀) 수본(手本) 고문서-증빙류-수표 경제-회계/금융-수표 辛巳三月 金百秀 南一面 社首 辛巳三月 金百秀 南一面 社首 전라북도 전주시 [着名] 1개 1개(적색, 정방형) 전주 매교 김해김씨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OD_F1025-01-000002 신사년 3월 김백수(金百秀)가 남일면(南一面)의 사수(社首)에게 작성해 준 수표로 관청의 명령대로 치표처를 허문 사실을 보고한 내용. 신사년 3월 29일에 문장 김백수(金百秀)가 남일면(南一面)의 사수(社首)에게 작성해준 수본(手本)이다. 얼마 전에 남일면의 사수는 김백수의 선산에 김관서(金寬瑞)·박구례(朴求禮) 등이 몰래 치표한 일로 전주부사(全州府使)로부터 사건의 진상을 확인하여 보고하라는 하체(下帖)를 받았다. 사건 조사 결과 김관서 등의 간상이 드러나 그들이 매묘한 치표처를 허물도록 명하였고, 이에 김백수가 훼파하고서 이 수본을 작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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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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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55년 이수환(李秀煥)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咸豊)五年乙卯二月十八日 田主 李秀煥 金某 ▣▣(咸豊)五年乙卯二月十八日 李秀煥 金某 전라북도 전주시 [着名] 3개, [左掌] 전주 인후 전주류씨가 전주 인후 전주류씨가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정신문화연구원, 1999. 박병호, 『韓國法制史攷 : 近世의 法과 社會』, 법문서, 1974. 이재수, 『조선중기 전답매매연구』, 집문당, 2003. 1855년(철종 6) 2월 13일에 이수환(李秀煥)이 김모(金某)에게 전답을 매매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55년(철종 6) 2월 13일에 답주(畓主) 이수환(李秀煥)이 김모(金某)에게 전답을 매매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매매대상은 양자답(陽字畓) 4두락지와 동자전(同字田) 2두락지 총 6두락지로, 부수(負數)로는 21부(負) 2속(束)인 곳이며, 거래가격은 전문(錢文) 25냥이다. 이 거래는 한명서(韓明叙)가 집필하였고, 권첨지(權僉知)가 증인으로 참여하여 착명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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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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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1888년 도순사(都巡使) 감결(甘結) 2 고문서-첩관통보류-감결 정치/행정-명령-감결 戊子九月十七日 都巡使 戊子九月十七日 全羅監司 興德縣 전라북도 고창군 都巡使[着押] 3개(적색, 정방형) 흥덕 석호 담양국씨가 전북대학교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외 옮김, 『유서필지』,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1888년(고종 25) 9월에 도순사(都巡使)가 흥덕현(興德縣)에 내린 감결로 어세전(漁稅錢)을 다음 달 초10일까지 납부하라는 내용. 1888년(고종 25) 9월 17일에 도순사(都巡使)가 흥덕현(興德縣)에 내린 감결이다. 감결은 상급관청에서 하급관청으로 보내는 명령 또는 지시사항을 담은 문서이다. 도순사는 흥덕현에서 납부하는 어세전(漁稅錢)을 지난 8월 그믐날까지 납부하라는 감결을 내려 보냈으나, 이 기한이 넘었는데 아직까지 납부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이 감결을 보내 다음 달 초 10일까지 납부하도록 명령하고, 만약 기한을 넘길 시에는 해당 아전을 이형(移刑)한다고 하였다. 어세전은 어업을 하는 선박에 메기는 세금으로 균역청에서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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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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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57년 전창조(全昌祚) 보천교(普天敎) 포성장(褒誠狀) 2 고문서-증빙류-상장 사회-조직/운영-상장 布敎四十七年七月十一日 普天敎中央緫正院 全昌祚 布敎四十七年七月十一日 普天敎 全昌祚 전라북도 정읍시 普天敎中央緫正院印(적색, 정방형) 전북대학교박물관_불명처1 전북대학교박물관 보천교 중앙총정원,『보천교연혁사』상·하 속편, 1948·1958. 이정립,『증산교사』,1997 HIKS_OD_F9003-01-000006 1957년 7월에 보천교 중앙 총정원(普天敎 中央 緫正院)에서 전창조(全昌祚)에게 발급한 포성장(褒誠狀)이다. 1957년 7월 11일에 보천교 중앙 총정원(普天敎 中央 緫正院)에서 전창조(全昌祚)에게 발급한 포성장(褒誠狀)이다. 전창조가 지극한 정성으로 교를 받들고 한마음으로 도(道)를 수호하여 아름다움(공적)이 매우 크니 이에 대해 포장한다는 내용이다. 이 포성장은 13676호로 하무(下戊)일에 발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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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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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류

모년 이동호(李東浩) 황극문장(皇極文章) 고문서-시문류-축문 종교/풍속-관혼상제-축문 李東浩 普天敎 李東浩 전라북도 장수군 1개(적색, 원형) 전북대학교박물관_불명처1 전북대학교박물관 보천교 중앙총정원,『보천교연혁사』상·하 속편, 1948·1958. 이정립,『증산교사』,1997 HIKS_OD_F9003-01-000001 모년에 보천교(普天敎)에서 이동호(李東浩)에게 써준 부적(符籍). 누런 비단에 기하학적(幾何學的)인 문양이 현란하게 그려진 이 자료는 증산교에서 발급한 부적(符籍)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이 부적을 받은 사람은, 부적의 하단에 적혀 있는 전북 장수군(長水郡) 반암면(蟠岩面) 대론리(大論里)에 살던 이동호(李東浩)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부적과 함께 발견된 다른 자료('보천교(普天敎) 목단태을진인 신방문(新方文)')로 미루어 보아 당시 이동호가 속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이 부적을 발급하게 된 것으로 보이지만 분명하지는 않다. 한편, 기하학적인 문양 위쪽으로 적혀 있는 황질(黃質)이라는 단어는 '누런 바탕의 비단'이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가운데에 적혀 있는 한자(漢字)들은 황극(皇極), 즉 황제가 나라를 다스릴 때 표준으로 삼는 공평한 법에 관한 내용들이며, 맨 좌측(左側)의 '상원갑육월(上元甲六月)'은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崔濟愚)가 화를 당한 1864년의 6월을 가리킨다. 이 날을 특히 기억하는 이유는 증산교 창시자인 강일순이 1864년에 최제우로부터 천명(天命)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편 증산교에서는 1864년을 상원갑, 1924년을 중원갑(中元甲), 1984년을 하원갑(下元甲)으로 구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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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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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73년 송진택(宋鎭澤) 소지(所志) 1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癸酉十月 日 宋鎭澤 泰仁官 癸酉十月 日 宋鎭澤 泰仁縣監 전라북도 태인군 泰仁官[着押] 3개(적색, 정방형) 전주 송진택가 전주역사박물관 박병호, 『韓國法制史攷 : 近世의 法과 社會』, 법문사, 1974. 최승희,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1989.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HIKS_OD_F4003-01-000022 1873년(고종 10) 10월에 송진택(宋鎭澤)이 태인현감(泰仁縣監)에게 올린 소지(所志). 1873년(고종 10) 10월에 전주에 사는 송진택(宋鎭澤)이 태인현감(泰仁縣監)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송진택의 어머니 산소가 태인현 남면(南面) 반룡촌(盤龍村)에 있는데 중간에도 투장(偸葬)을 당한 일이 있었으나 산송(山訟)을 통해 모두 굴거(掘去)하였다. 그런데 지난해 여름, 남면 하유촌(下鍮村)에 사는 이정수(李正壽)가 송진택의 어머니 산소 바로 가까운 곳에 투장을 하였다. 이곳은 이전에 박평중(朴平仲)의 투총(偸塚)을 파낸 곳이었다. 발견 즉시 송진택은 관에 정소(呈訴)하고 싶었으나 몸이 아파 이제야 정소한다며 이정수를 잡아다 가두고 독굴(督掘)하여 달라고 관에 호소하였다. 이에 태인현감은 조사를 하기 위해 이정수를 잡아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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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27년 전주향교(全州鄕校)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孔夫子誕降二千四百七十八年丁卯六月日 黃義贊 林秉徹 宋昌鉉 大成敎僉座下 孔夫子誕降二千四百七十八年丁卯六月日 黃義贊 各郡校院僉章甫 전라북도 전주시 1개(흑색, 방형), 1개(적색, 정방형) 전주역사박물관_불명처3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OD_F9006-01-000001 1927년에 전주향교(全州鄕校) 유림(儒林) 황의찬(黃義贊) 등 25명이 각 고을의 유림들에게 보낸 통문(通文). 1927년 6월에 전주향교(全州鄕校)의 유림(儒林) 유희열(柳希說) 등 25명이 대성교(大成敎), 즉 각 고을의 모든 유림들에게 보낸 통문(通文)으로, 전주군(全州郡) 출신의 선비 강한철(姜漢澈)의 효행(孝行)을 표창하는데 함께 나서줄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본관이 진주(晉州)로, 봉산군(鳳山君) 강군보(姜君宝)의 후손이자 강춘흠(姜春欽)의 아들인 강한철은 명문가에서 태어나 천성이 온후하고 넉넉하였으며, 좋지 않은 행동이나 말은 가까이 하지 않고 부모를 지극정성으로 공양하였다. 부모상을 당하여서는 호곡하면서 몸을 훼손할만큼 정성을 다하며 부족함이 없이 상례를 치뤘다. 열심히 농사를 짓고 진실한 마음으로 남에게 베풀었기 때문에 원근의 선비들이 그를 모두 칭송하였다. 그의 아들도 아비를 본받아 부모를 극진히 봉양하였다. 이에 전주향교의 유림들이 각 고을 향교의 유생들에게 통문을 보내 부자의 효행을 기려 비각(碑閣)을 세워 후대로 그 아름다운 행실이 오래 전할 수 있도록 모두 한 마음으로 동참하자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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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29년 전주향교(全州鄕校)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孔夫子誕降二千四百八十年己巳四月日 李錫龍 朴榮來 金在洪 등 大成敎僉座下 孔夫子誕降二千四百八十年己巳四月日 李錫龍 全州鄕校 전라북도 전주시 1개(흑색, 방형), 1개(적색, 정방형) 전주역사박물관_불명처3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OD_F9006-01-000001 1929년 전주향교(全州鄕校)의 유림(儒林) 이석룡(李錫龍) 등이 각 고을의 유림들에게 보낸 통문(通文). 1929년 4월에 전주향교(全州鄕校)의 유림(儒林) 이석용(李錫龍) 박숭래(朴崇來) 김재홍(金在洪) 등이 대성교(大成敎), 즉 각 고을의 모든 유림들에게 보낸 통문(通文)으로, 전(前) 참봉(叅奉) 진재홍(陳在洪)의 효행(孝行)을 표창하는데 함께 나설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전주군(全州郡)에 세거하던 양산진씨(梁山陳氏) 진양수(陳陽隨)의 아들인 진재홍은 7, 8세 어린 나이인데도 성품이 정직하고 신중하였으며, 좋지 않은 행동이나 말은 가까이 하지 않고 오직 효우(孝友)에만 힘썼다. 장성하여서는 부모를 공양함에 지극정성이었으며, 돌아가신 후에는 부모가 소지하였던 물건을 버리지 않고 고이 간직하며 또한 부모의 가르침을 잃지 않고 따랐다. 부모의 기일에도 지극 정성을 다하고 자손들을 의롭게 가르치며, 주변에 굶주리는 사람이 있으면 사재를 털어서 기부를 하며 살피니 주변에서 칭송이 자자하였다. 이에 그의 인물 됨됨이를 잘 알고 있는 동리 주민과 유림들은 각 고을의 유림들에게 통문을 올려 그의 효행과 선행을 표창하고 비각(碑閣)을 세워 그의 아름다운 행실이 오래도록 후세에 전할 수 있도록 하는데 동참할 것을 요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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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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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873년 청송심씨보소(靑松沈氏譜所)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癸酉 閏六月日 靑松沈氏譜所 各 地域 靑松沈氏宗中 癸酉 閏六月日 靑松沈氏譜所 各地域 靑松沈氏宗中 전라북도 익산시 靑松沈氏譜所(흑색, 정방형) 함열 남당 청송심씨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1873년(고종 10) 윤6월에 청송심씨보소(靑松沈氏譜所)에서 각 지역 청송심씨 종중(宗中)에 보낸 통문(通文). 1873년(고종 10) 윤6월에 청송심씨(靑松沈氏) 보소(譜所)에서 경향(京鄕) 각 지역에 있는 청송심씨 종중(宗中)에 보낸 통문(通文)이다. 청송심씨 종가는 족보를 편찬한 후 40년이 지나 그 동안 세월이 지난 만큼 자손들의 변화가 많아져 다시 족보를 편찬하게 되었다. 이에 각처에 흩어져 있는 종중에게 통문을 보내 모든 파(派)는 종가의 대표로 유사(有司)를 정하여 그로 하여금 현재 자손들의 상황 즉 사망과 출생 등의 내용을 포함하여 구보(舊譜)와 상이(相異)한 점을 빈틈없이 조사하여 단자(單子)로 보내줄 것을 요청하였다. 또한 족보를 간행할 때 필요한 사항을 일일이 범례(凡例)로 정하여 참고할 수 있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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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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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18년 이광현(李光現) 봉급증서(俸給證書) 2 고문서-증빙류-봉급증서 정치/행정-임면-봉급증서 大正七年六月三十日 任實郡 雲岩面書記李光現 大正七年六月三十日 任實郡 李光現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 범오 홍주이씨가 전주 덕진 홍주이씨가 전북향토문화연구회편, 『全北地方의 古文書』1․ 2․ 3, 1993․1994․1995.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정구복, 『고문서와 양반사회』, 일조각』, 2002. HIKS_OD_F1020-01-000028 1918년 9월에 운암면(雲岩面)의 서기(書記) 이광현(李光現)에게 월급을 9원(圓)으로 인상하면서 발급한 증명서. 1918년 9월 30일에 운암면(雲岩面)의 서기(書記) 이광현(李光現)에게 월급을 9원(圓)으로 인상하면서 발급한 증명서이다. 이광현은 이보다 앞서 같은 2월에는 운암면의 서기로 8원의 월급을 받았으므로, 1원이 인상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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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796년 정대갑(鄭大甲)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嘉)慶元年丙辰十月初八日 畓主 鄭東仁子大甲 金允▣ ▣(嘉)慶元年丙辰十月初八日 鄭大甲 金允▣ 전라북도 전주시 [着名] 4개 전주 인후 전주류씨가 전주 인후 전주류씨가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정신문화연구원, 1999. 박병호, 『韓國法制史攷 : 近世의 法과 社會』, 법문서, 1974. 이재수, 『조선중기 전답매매연구』, 집문당, 2003. 1796년(정조 20) 10월 8일에 정대갑(鄭大甲)이 김윤▣(金允▣)에게 부동면(府東面)에 있는 전답을 매매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796년(정조 20) 10월 8일 정대갑(鄭大甲)이 김윤▣(金允▣)에게 부동면(府東面)에 있는 전답을 매매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매매대상은 양자답(陽字畓) 3두락지와 동자전(同字田) 2두락지 등 총 5두락지로 부수(負數)로는 21복(卜) 2부(負)인 곳이며, 거래가격은 전문(錢文) 20냥으로 추정된다. 이때 정대갑은 신문기와 함께 이 전답의 본문기를 매입자에게 넘겨주었다. 이 거래에는 장유신(張維信)이 증필로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였고, 이경오(李慶㤇)와 유자남(柳子南)이 증인으로 참여하여 착명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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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인사관계

1914년 이광현(李光現) 해임장(解任狀) 고문서-첩관통보류-임명장 정치/행정-임면-임명장 大正三年七月三十一日 任實郡 雲岩面臨時面書記李晃現 大正三年七月三十一日 任實郡 李晃現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 범오 홍주이씨가 전주 덕진 홍주이씨가 전북향토문화연구회편, 『全北地方의 古文書』1․ 2․ 3, 1993․1994․1995.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정구복, 『고문서와 양반사회』, 일조각』, 2002. HIKS_OD_F1020-01-000022 1914년 7월에 임실군청(任實郡廳)에서 이광현(李光現)을 운암면(雲岩面)의 임시면서기에서 해임하면서 발급한 해임장. 1914년 7월 31일에 임실군청(任實郡廳)에서 운암면(雲岩面)의 임시면서기(臨時面書記)였던 이광현(李光現)을 해임하면서 발급한 해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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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1856년 묘직노(墓直奴) 칠금(七今)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丙辰四月 日 墓直奴七今 府官主 丙辰四月 日 墓直奴七今 全州府尹 전라북도 전주시 官[着押] 1개(적색, 정방형) 전주 인후 전주류씨가 전주 인후 전주류씨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OD_F1026-01-000012 1856년(철종 7) 4월에 전주류씨(全州柳氏) 시조비(始祖妣) 삼한국대부인(三韓國大夫人)의 묘지기 노(墓直奴) 칠금(七今)이 전주부윤(全州府尹)에게 올린 소지. 1856년(철종 7) 4월에 전주부 부동면 표석리에 있는 전주류씨(全州柳氏) 시조비(始祖妣) 삼한국대부인(三韓國大夫人)의 묘를 관리하는 묘지기 노(墓直奴) 칠금(七今)이 전주부윤(全州府尹)에게 올린 소지이다. 원래 묘지기 노는 연호(煙戶) 신역(身役)을 면제받도록 되어 있는데, 금년에는 전결(田結)에 따라 환곡을 나누어 주면서 묘답(墓畓)이 전결에 포함되어 환곡의 대상이 되었다고 탄원하면서, 완문을 첩연(帖連)하여 함께 올리니 이를 살펴 면제하여달라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수령은 환곡을 받은 호구에 대하여 완문에 의거하여 탈급(頉給), 즉 면제하라는 제사를 내렸다. 이 문서에는 작성연대를 병진년으로 기재하고 있는데,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관련문서를 토대로 위의 병진년을 1856년으로 추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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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첩관통보류

1889년 도순사(都巡使) 감결(甘結) 고문서-첩관통보류-감결 정치/행정-명령-감결 己丑五月十三日 都巡使 己丑五月十三日 全羅監司 興德縣 전라북도 고창군 都巡使[着押] 3개(적색, 정방형) 흥덕 석호 담양국씨가 전북대학교박물관 1889년(고종 26) 도순사(都巡使)가 흥덕현(興德縣)에 내린 감결로 석호(石湖)의 포주인(浦主人) 국경순(鞠暻珣)을 시켜 선인외상전(船人外上錢) 및 무판세전(貿販稅錢)을 추급(推給)하라는 내용. 1889년(고종 26) 5월 13일에 도순사(都巡使)가 흥덕현(興德縣)에 발급한 감결이다. 도순사는 도순찰사의 별칭으로 왕명으로 지방에 파견되어 군사에 관한 일을 처리하던 임시직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북포에 사는 국만전(鞠萬銓)은 감영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무뢰배들과 한통속이 되어 타도(他道) 선상(船商)들의 외상전(外上錢)에 대해 트집을 잡으며 시간을 끌고, 또 본도(本道) 배들의 무판세전(貿販稅錢) 또한 내지 않아 장차 포구가 닫히게 될 지경이었다. 이에 도순사는 이 국만전을 즉시 잡아서 엄히 조사고, 선상의 외상전과 무판세전을 낱낱이 받아내라고 명령하고, 이를 포주인인 국경순(鞠暻珣)이 거행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언급된 외상전과 무판세전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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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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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57년 박인수(朴仁洙) 수기(手記) 고문서-증빙류-수기 경제-회계/금융-수기 咸豐柒年丁巳五月十八日 朴仁洙 宋鎭澤 咸豐柒年丁巳五月十八日 朴仁洙 宋鎭澤 전라북도 태인군 [着名] 2개 전주 송진택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OD_F4003-01-000001 1857년(철종 8) 5월에 박인수(朴仁洙)가 송진택(宋鎭澤)에게 작성해 준 수기로 반룡촌(盤龍村)에 있는 기간처(起墾處)를 2냥 받고 방매한다는 내용. 1857년(철종 8) 5월 16일에 유학(幼學) 박인수(朴仁洙)가 상인(喪人) 송진택(宋鎭澤)에게 작성해 준 수기이다. 박인수는 반룡촌(盤龍村) 안산(案山) 고당(姑堂) 소갈록(小乫麓) 아래 있는 진폐처를 개간해서 갈아 먹어 왔다가 이곳을 송진택이 산소를 쓰고자 하니, 전문 2냥을 받고 방매하였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증빙하는 문서로서 이 수기를 작성해 주었었고, 증인 겸 문서작성자로 김낙중(金洛中)이 참여하고 착명하였다. 반룡촌은 당시 태인군 감산면 반룡리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해 현재는 정읍시 감곡면 계룡리에 편입되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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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1858년 권기서(權琦瑞)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戊午八月 權琦瑞 官 戊午八月 權琦瑞 泰仁縣監 전라북도 고창군 官[着押] 1개(적색, 정방형) 전주 송진택가 전주역사박물관 박병호, 『韓國法制史攷 : 近世의 法과 社會』, 법문사, 1974. 최승희,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1989.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HIKS_OD_F4003-01-000022 1858년(철종 9) 8월에 권기서(權琦瑞)가 태인현감(泰仁縣監)에게 올린 소지(所志). 1858년(철종 9) 8월에 권기서(權琦瑞)가 태인현감(泰仁縣監)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고부 답내동(古阜畓內面)에 사는 권기서는 세금 납부가 급하여 태인현 남촌 반룡촌 고당산(高堂山)에 있는 산소의 소나무를 뽑아 팔려고 하였는데, 같은 산 윗쪽에 산소를 둔 전주 사는 송반(宋班)이 그냥 놔둘 요량으로 15냥에 사기를 원하였다. 나중에 권기서의 것이라고 할 염려가 있으니 송반에게 방매했다는 사실을 입지(立旨)로 성급해 뒷날 증빙으로 삼게 해달라고 하였다. 태인현감은 공문을 만들어 주라고 지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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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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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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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모년 장영후(張永厚)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畓主張永厚 張永厚 [着名] 전주 송진택가 전주역사박물관 HIKS_OD_F4003-01-000012 모년에 인동장씨 장영후(張永厚)가 논을 팔 때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인동장씨 가문의 張永厚가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문서. 문서가 훼손되어 언제 누구에게 어떤 곳의 논을 팔았는 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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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1873년 송진택(宋鎭澤) 소지(所志) 2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癸酉十二月日 宋鎭澤 泰仁官 癸酉十二月日 宋鎭澤 泰仁縣監 전라북도 태인군 泰仁官[着押] 5개(적색, 정방형) 전주 송진택가 전주역사박물관 박병호, 『韓國法制史攷 : 近世의 法과 社會』, 법문사, 1974. 최승희,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1989.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HIKS_OD_F4003-01-000022 1873년(고종 10) 12월에 송진택(宋鎭澤)이 태인현감(泰仁縣監)에게 올린 소지(所志). 1873년(고종 10) 12월에 전주에 사는 송진택(宋鎭澤)이 태인현감(泰仁縣監)에게 올린 소지이다. 이태한(李太漢) 부자가 관령과 국법을 무시하므로 여러 차례 지엄한 감영의 제음을 받았으며, 10일에는 부자가 스스로 다짐문서(侤音)도 바쳤다. 무덤을 굴이(掘移)하기 위해 차사(差使)를 보냈더니 그 부자와 동생이 모두 도망을 갔다. 그래서 송진택은 빠른 시일 내에 독굴(督掘)해 달라고 재차 관에 정소(呈訴)하였다. 이에 관에서는 이태한의 소행이 비록 매우 통탄스러우나 노비가 대신 파내는 것은 법 밖이라 허가할 수 없으나, 투총(偸塚)의 굴개(掘漑)는 총주(塚主)를 찾는 것이 예사이니 즉시 굴개하라고 하였다. 위에서 차사는 죄인을 잡아 오도록 파견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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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43년 전주향교(全州鄕校)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孔夫子誕降二千四百九十四年癸未三月日 直員 李光烈 齋長 李炳泰 掌議 李子煥 各郡校院 孔夫子誕降二千四百九十四年癸未三月日 李光烈 各郡校院 전라북도 전주시 1개(적색, 정방형) 전주역사박물관_불명처3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OD_F9006-01-000001 1943년 3월에 전주향교(全州鄕校)의 직원(直員) 이광렬(李光烈) 등 24명이 여러 고을의 향교와 서원에 있는 유생들에게 보낸 통문. 1943년 3월에 전주향교(全州鄕校)의 직원(直員) 이광렬(李光烈)과 재장(齋長) 이병태(李炳泰), 장의(掌議) 이자환(李子煥) 등 24명이 여러 고을의 향교와 서원에 있는 유생들에게 보낸 통문이다. 전주에 살았던 백인당(百忍堂) 강신창(姜信昶)의 처 김해김씨(金海金氏)의 효열(孝烈)을 널리 알려 포양(褒揚)을 받을 수 있도록 모두가 노력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씨는 순릉참봉(順陵叅奉)을 지내고 통정대부에 오른 김성태(金性泰)의 여식으로, 열다섯 살에 진주강씨(晉州姜氏) 집안에 시집온 뒤에, 일찍 아들을 낳고 시부모를 정성껏 봉양하였으며, 남편을 예로써 공경하였고, 친척들과는 우애로 대하였으며, 이웃과는 화목하게 지내 모두가 김씨를 칭찬하였다. 남편이 갑자기 병에 걸리자 백방으로 조리하여 다스렸으나 침약(鍼藥)이 효험이 없고, 무의(巫醫)로도 다스리기 어려워 급기야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김씨는 곧바로 자결을 하여 남편을 따라 가고자 하였으나, 돌이켜 곰곰이 생각하니 자신이 죽으면 칠순의 시부모와 어린 자식을 돌볼 사람이 없음을 깨닫고 차라리 살아서 시부모를 봉양하고 자식을 교육하느니만 못하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리하여 지극한 고통을 감내하고 온갖 정성을 다하여 장례를 치렀으며, 물건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며 맹모(孟母)의 가르침을 본받아 어린 자식에게 예절을 먼저 가르친 다음에 글을 배우게 하였다. 다행히도 아이가 총명하여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았으며, 과부의 절개 또한 굳건하여 세상에 찾아보기 힘든 열행을 보였으니 같은 고을에 사는 유생들로 어찌 김씨에게 포양을 받을 수 있도록 천거하지 않을 수 없겠느냐면서 전주향교의 많은 유생들이 한 마음으로 각 고을의 유생들에게 이 일에 동참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효자와 열녀의 효열(孝烈)에 대하여 정려의 특전을 내려달라는 상소와 소지, 그리고 서원과 향교의 유생들이 발문(發文)하여 이에 동참하는 일은 조선 후기에 특히 많이 일어나지만, 일제 강점기에, 그것도 광복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 여전히 서원과 향교의 유생들을 중심으로 되풀이되고 있는 점에서 눈여겨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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