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0년 한빈(韓賓) 고신(告身) 2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順治十七年正月日 兵曹 忠義衛進勇校尉韓賓 順治十七年正月日 兵曹 忠義衛進勇校尉韓賓 서울특별시 종로구 參知臣元[着名] 佐郞臣卞[着名] 1개(적색, 정방형) 임실 용정 청주한씨가 전주 덕진 청주한씨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OD_F1021-01-000001 1660년(현종 1년) 1월 16일에 병조(兵曹)에서 왕명을 받들어 충의위(忠義衛)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빈(韓賓)의 품계를 진용교위(進勇校尉)에서 현신교위(顯信校尉)로 올려주면서 발급한 교첩(敎牒). 1660년(현종 1년) 1월 16일에 병조(兵曹)에서 왕명을 받들어 충의위(忠義衛)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빈(韓賓)의 품계를 진용교위(進勇校尉)에서 현신교위(顯信校尉)로 올려주면서 발급한 교첩(敎牒)이다. 진용교위는 정6품(正六品) 하계(下階)였고, 현신교위는 종5품(從五品) 상계(上階)였다. 따라서 한빈의 품계는 세 단계가 올라간 셈이었다. 한빈은 이 문서를 받기 10여 일 전에 적순부위(迪順副尉)에서 세 단계 위인 진용교위로 승품된 적이 있었다. 따라서 한빈의 품계는 불과 10일 만에 모두 6단계가 상승한 것이었다. 이 문서의 맨 오른편은 훼손되어 있지만, 원래 '병조순치십칠년정월(兵曹十七年正月)'이라고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문서의 왼편 부분 년대가 적힌 곳의 오른쪽을 보면 '무이사오별가산초(戊二巳五庚別加幷超)'라는 표현이 보이고 있는데, 이는 한빈이 '무년이월(戊年二月)', 기년오월(己年五月)', 경년(庚年)' 등 세 번에 걸쳐 받았던 별가의 혜택을 이번 인사에서 모두 반영해 주었다는 의미이다. 여기서의 무년은 순치 15년(1658, 효종 9년)을, 기년은 순치 16년(1659, 효종 10년)을, 경년은 이 문서를 발급해 주었던 순치 17년(1660, 현종 1년)을 말한다. 다만 경년에는 몇 월이라는 글씨가 없는데, 그것은 한빈이 별가를 받은 달과 이번 문서를 내 주는 달이 서로 겹쳤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규격 42*4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