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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황재련(黃再鍊) 등 품목(稟目) 고문서-첩관통보류-품목 정치/행정-보고-품목 壬辰四月 日 見所谷化民 黃再鍊 吳泰烈 李相三 壬辰四月 日 黃再鍊 南原府使 전라북도 남원시 使[着押] 7개(적색, 정방형) 남원 대곡 장수황씨가 남원 무민공황진기념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전북대학교 한국학자료센터, 『황진 장군 가문의 고문서』, 흐름, 2016. 임진년 4월에 남원 견소곡방(見所谷坊)에 사는 유생 황재련(黃再鍊) 등 9명이 남원부사(南原府使)에게 올린 품목(稟目). 임진년 4월에 남원 견소곡방(見所谷坊)에 사는 유생 황재련(黃再鍊) 등 9명이 남원부사(南原府使)에게 올린 품목(稟目)이다. 이들은 이 문서에서 견소곡방에서 맡고 있는 역참(驛站)의 역호(驛戶)를 구례(舊例)에 따라 이웃인 영계방(靈溪坊)과 공평하게 감면해 줄 것을 탄원하고 있다. 원래 역참에서의 영접과 환송에 따른 제반 경비를 견소곡방과 영계방이 똑같이 나누어 분담하고 있었다. 즉 영접 비용은 견소곡방에서, 환송 비용은 영계방에서 각각 분담하였다. 그런데 담당 아전이 이러한 관례를 무시하고 영계방은 역호의 수를 줄여주는 대신에, 견소곡방에 대해서는 줄어든 그 수만큼 합쳐서 부담을 시키자, 그렇지 않아도 남여(藍輿)와 거화(炬火), 치도(治道) 등 각종 공역에 시달리고 있는 견소곡방의 유생들이 이에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어떻게 한 고을 안인데도 차등을 두어 대우할 수 있느냐면서, 만일 공평하게 감면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역참에서의 영접과 환송과 관련해서는 견소곡방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완문(完文)을 작성하여 달라고 탄원하였다. 남원부사는 이에 대하여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미 읍안(邑案)에 제사(題辭)가 나와 있는데도 이처럼 탄원을 올리는 관습이 개탄스럽다는 처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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稟目爲行下事以本坊家座中站接驛戶依舊例蠲減事有所仰禀奉審 題音內考案之敎示白乎所大抵本坊與靈溪坊隣接而無論某等行次入站則自本坊供饋出站則自靈溪供饋故兩坊▣▣▣之公減自丙戌年始▣爲念兩坊之弊源實出一邑之公簿也至於本坊藍輿炬火治道等節重疊有之則本坊之弊非特站接▣夫何今者該色不知出入站兩坊分接之由是喩靈溪則優爲減數本坊則混爲執摠致此紛訢未奉許施之 分付盖各坊站接一幷勿施則雖寃無奈一鄕公減擧皆如例而獨爲見漏此豈非一天之下寒暖各分一境之內休戚有殊者耶伏望 仁明特下一視之澤本坊站接同靈溪坊例如前蠲減是白去乃如或不減則從今以往各行次出入之站接勿責於本坊之意完文成給是白去乃指一 處分驛吏段置移居本坊者已有年數後屬仍居焉故亦有前日已減之規而今若還實則亦當逐名徵布耶恐未知 處分何如敎是乎乙喩俾此殘坊殘民無至呼冤之地謹冒昧以禀壬辰四月 日 見所谷化民 黃再鍊 吳泰烈 李相三 金思倫 李會汶 蘇秉職 李有容 魯河麟 朴東曦 等使[着押][題辭]昨而有來考邑案之題向又此來訴民習可慨向事告李錫仁二十五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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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년 김성후(金聖厚) 배관(背關) 등서(謄書) 고문서-첩관통보류-관 정치/행정-명령-관 戊申十月十九日 金聖厚 戊申十月十九日 金聖厚 남원 둔덕 함양오씨가 전북대학교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무신년에 김성후(金聖厚)가 수영문(水營門)에 올린 관문(關文)을 등서(謄書)한 문서. 무신년에 김성후(金聖厚)가 수영문(水營門)에 올린 관문(關文)을 등서(謄書)한 문서이다. 당시 김성후는 관련 소지(所志)를 배서(背書)하여 함께 올렸다. 배관은 하급 관아에서 보낸 첩보(牒報)의 뒷면에 쓴 관문을 가리킨다. 판하사목(判下事目)에 따르면, 해문(海門) 30리 안에서는 국유이든 개인 소유이든 산에서는 마음대로 소나무를 벨 수가 없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간악한 무리들이 법을 무시하고 소나무를 베었으니 그 정상을 조사하여 죄를 범한 자들을 잡아다가 처벌하는 한편, 베어간 소나무의 수를 하나하나 헤아려서 모두 추징하되, 지체 없이 일을 처리하여달라는 내용이다. 문서의 끝에는 이 관문이 무신년 10월 19일자로 수영문에 도착했다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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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聖厚呈水營門背關謄書水軍節度使爲相考事背書所志是置有亦今此松禁一事判下事目中海門三十里之內毋論公私山有不敢擅斫是去乙奸民輩不畏法禁濫斫生松如是犯藉至有民訴聞極痛惡依法嚴勘在所不已而呈訴兩邑相推不決有何委折是喩如許冒法之類不可都出置之犯斫形止爲先摘奸後所犯諸汗照律勘處次一倂捉囚爲㫆懲後之道不但勘罪而止犯斫松段依狀內株數一一懲推報來爲乎矣期速擧行毋至遲滯之地向事戊申十月十九日 到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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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 전주부판관(全州府判官) 서목(書目) 고문서-첩관통보류-서목 정치/행정-보고-서목 光緖五年二月十二日 行判官 全州府 光緖五年二月十二日 全州府判官 全州府 전라북도 전주시 使[着押] 3개(적색, 정방형) 영광 홍농 전주이씨가 전주역사박물관 HIKS_Z016_01_A00005_001 1879년(고종 16) 2월 12일에 전주부판관(全州府判官) 박모(朴某) 전주부(全州府)에 올린 서목(書目). 1879년 2월에 全州府判官이 全州府에 올린 서목. 李敎儀가 慶基殿 守門將으로 입직하고 있음을 보고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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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8년 황사효(黃事孝) 시장(諡狀) 고문서-첩관통보류-이문 정치/행정-명령-이문 戊寅七月 日 禮曹 奉常寺 戊寅七月 日 禮曹 奉常寺 서울특별시 종로구 堂上[着押],郎廳[着押] 1개(적색, 정방형) 남원 대곡 장수황씨가 남원 무민공황진기념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전북대학교 한국학자료센터, 『황진 장군 가문의 고문서』, 흐름, 2016. 1518년(중종 13) 7월에 통정대부(通政大夫) 행영월도호부사(行寧越大都護府使) 이의철(李宜哲)이 지은 황사효(黃事孝)의 시장(諡狀). 1518년(중종 13) 7월에 통정대부(通政大夫) 행영월도호부사(行寧越大都護府使) 이의철(李宜哲)이 지은 황사효(黃事孝)의 시장(諡狀)이다. 황사효의 자는 백원(百源)이며,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황희(黃喜)의 증손으로, 1477년(성종 8)의 식년문과에 급제한 뒤 사헌부 지평과 장령, 집의 등을 역임하고 1492년 진주목사가 되었다. 이어 의주목사로 전임되었으나 군사(軍事)에 미숙하고 팔순에 가까운 늙은 어머니를 두고 부임하기 어려움을 상소하여 부임하지 않았다. 이듬해 승정원부승지·우부승지·좌부승지를 역임하였다. 1494년 황해도관찰사가 되었는데, 위수병(衛戍兵)의 노고를 덜어줄 것을 상주하였다. 이듬해 동지중추부사에 이어 대사헌이 되었으며, 1495년(연산군 즉위년) 선위사(宣慰使)로 있을 때 황주에서 죽었다. 『은대조례(銀臺條例)』의 예고(禮攷) 조신 시호(朝臣諡號) 항목에 따르면, 시장(諡狀)은 시호를 청할 때에 그가 살아 있을 때의 행적을 적은 글로, 본가(本家)에서 대제학이나 관각 당상 등에게 시장을 지어 달라고 청하였다. 본가에서 시장을 예조에 바치면 예조(禮曹)에서 검토한 뒤에 봉상시(奉常寺)로 보내고, 봉상시에서 검토한 뒤에 홍문관으로 보내면 홍문관에서 3개의 시호 후보를 정한 뒤 하나는 승정원으로 보내 임금의 재가를 받기 위해 들여보내고 또 하나는 봉상시로 보냈다. 위의 황사효의 시장은, 예조에서 봉상시로 보내라고 당상과 낭청이 재가한 문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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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 전주부판관(全州府判官) 서목(書目) 고문서-첩관통보류-서목 정치/행정-보고-서목 光緖六年十一月初一日 行判官 全州府 光緖六年十一月初一日 全州府判官 全州府 전라북도 전주시 使[着押] 1개(적색, 정방형) 영광 홍농 전주이씨가 전주역사박물관 HIKS_Z016_01_A00005_001 1880년(고종 17) 11월에 전주부판관(全州府判官)이 전주부(全州府)에 올린 서목(書目). 1880년 11월에 全州府判官이 全州府에 올린 서목. 慶基殿 守門將의 實任을 보고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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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술년 충렬단유사(忠烈壇有司) 오인영(吳鱗泳) 등 품목(稟目) 고문서-첩관통보류-품목 정치/행정-보고-품목 丙戌十一月 日忠烈壇有司吳鱗泳 金禧佼 禀別般 丙戌十一月 吳鱗泳 南原府使 使[着押] 남원 둔덕 함양오씨가 전북대학교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14_01_A00014_001 병술년 11월에 충렬단(忠烈壇)의 유사(有司) 오인영(吳鱗泳)과 김희교(金禧佼)가 남원부사에게 올린 품목. 병술년 11월에 충렬단(忠烈壇)의 유사(有司) 오인영(吳鱗泳)과 김희교(金禧佼)가 남원부사에게 올린 품목이다. 충렬단의 토세(土稅)를 이달 초 10일까지 징수하겠다고 소작인들에게 통지했지만 지금까지 아무도 납부를 하지 않고 있으니 관에서 특별한 조치를 취해달라는 내용이다. 남원부사는 이에 대하여 관에서 소작인들에게 엄중히 얘기를 할 터이니, 그래도 납부하지 않는 자들은 명단을 고쳐 적어서 다시 아뢰라는 제사(題辭)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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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憲大夫知中樞府事兼 世子右副賓客黃公諡狀公諱事孝字百源南原府長水縣人也始祖諱瓊仕新羅位至侍中後孫有諱公有事高麗明宗官至殿中監李義方柄國稔凶公有挈家移居于南原府今廣寒樓卽其舊基也又六世諱鑒平以節行聞於鄕里號逸齋先生逸齋曾孫諱石富 贈吏曹叅議生諱均庇 贈議政府左叅贊贊生諱君瑞事我太祖位至資憲判江陵府使 贈左議政博雅通敏號爲才臣於公爲曾祖考祖考諱喜相英陵致太平在政府二十四載謹守朝宗成憲不喜紛更處事循理規模遠大論者穪我朝賢相必以公爲首而勳業德量比宋之王文正公韓忠獻公文宗時配享世宗廟庭諡曰翼成考諱致身官至戶曹判書逮事七朝位望隆重生九子公其第六也少登第選拜集賢殿正字遷兵曺正郎移吏曺進集賢殿校理議政府舍人轉直提學擢承政院同副承旨遷成均館大司成集賢殿副提學擢嘉善大夫平安道觀察使明年召還拜司憲府大司憲擢資憲大夫工曺判書以知中樞府事兼世子右賓客卒于京享年五十七葬于交河金蠅里公爲人淸秀好文學當世宗之盛際出入 帷幄協贊治平之業世稱翼成有孫不幸早世位不滿德人皆惜之公娶慶州金氏郡守日知之女生三男三女長曰坦靖 國功臣長山君次曰塏副司直次曰堞司直女長適宋胤班次適康好仁適鄭舟臣謹掇公踐歷大略請諡于有司謹狀通政大夫行寧越都護府使李宜哲譔照訖付奉常寺戊寅七月 日堂上[着押]郎廳[着押][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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禀目爲行下事本壇土稅今月初十日沒捧之意各時作處通奇而其後數次下人送之是胡至于今日一無來納之人如是遲滯則未知何時捧稅故緣由玆敢仰 禀別般處分之地謹冒昧以陳丙戌十一月 日忠烈壇有司吳鱗泳 金禧佼使[着押][題辭]當自官申飭所納時作更爲修禀事卄日告李應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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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술년 충렬단유사(忠烈壇有司) 안모(安某) 등 품목(稟目) 고문서-첩관통보류-품목 정치/행정-보고-품목 丙戌十一月 安 吳 金 丙戌十一月 安某 南原府使 安[着名], 吳[着名] ,金[着名] 1개(흑색, 정방형), 5개(적색, 정방형) 남원 둔덕 함양오씨가 전북대학교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14_01_A00014_001 병술년 11월에 충렬단(忠烈壇)의 유사(有司) 안(安) 아무개와 오(吳) 아무개, 그리고 김(金) 아무개 등 세 사람이 남원부사에게 올린 품목. 병술년 11월에 충렬단(忠烈壇)의 유사(有司) 안(安) 아무개와 오(吳) 아무개, 그리고 김(金) 아무개 등 세 사람이 남원부사에게 올린 품목이다. 유사들은 충렬단에서 금년 가을의 향사(享祀)에 필요한 50냥 2전 9푼과, 대동소(大同所)에 납부할 17냥 5전이 필요하다면서 관에서 특별한 조치를 내려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남원부사는 기왕에도 충렬사(忠烈祠)에서 필요한 경우에는 사징전(査徵錢) 50냥을 준 전례가 있으니 제수비용을 지급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처분을 내렸다. 이어서 문서의 뒷면에 적힌 배제(背題)에서는 충렬사의 도조(賭租)로 충당할 터이니 담당자가 뒤에 처리하고 보고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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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치학(吳致學) 시권(試券) 1 고문서-증빙류-시권 정치/행정-과거-시권 幼學吳致學 吳致學 남원 해주오씨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15_01_A00001_001 남원(南原)에 거주하는 오치학(吳致學)이 진사시(進士試)에 응시하여 작성한 시권(試券). 남원(南原)에 거주하는 오치학(吳致學)이 작성한 시권(試券)으로, 진사시(進士試)의 부(賦) 답안지로 추정된다. 오치학의 본관은 해주(海州)로, 당시 59세였다. 시권의 오른쪽 상단에는 오치학의 성명과 나이, 본관, 거주지 및 4조가 실려 있다. 그의 부친은 오우상(吳佑常), 조부는 오창익(吳昌翊), 증조는 오언기(吳彦基)이며, 외조는 절충장군 행첨지중추부사 겸 오위장(折衝將軍行僉知中樞府事兼五衛將) 윤치영(尹致永)으로 본관은 남원이었다. 오치학은 이 과목에서 '次上'의 성적을 얻었지만, 현존하는 사마시(司馬試) 방목(榜目)에서는 오치학의 성명을 확인할 수 없다. 오치학의 시권은 이보다 2년 뒤인 61세 때 작성한 것이 또 하나 전하고 있다. 이때 부의 시제(試題)는 '不中科故經術益明'으로, 과거에 합격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술(經術)이 더욱 밝아졌다는 의미이다. 6언 절구의 형식으로 작성된 장문의 글이다. 이 답안지의 앞부분에는 '八天'이라는 글자가 상하 세 군데나 적혀 있는데, 이것은 응시자가 시권을 작성하여 제출하면서 받은 일종의 접수번호이다. 이렇게 제출된 시권은 통상 채점시의 부정을 방지하기 위하여 사조(四祖)가 적혀 있는 오른 쪽 부분의 피봉과 글을 쓴 왼쪽 부분을 분할하게 되는데, 이 시권은 그 흔적이 전혀 없다. 또한 '八天'을 쓴 방향도 일반적인 형식과는 조금 다르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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料標忠義房員一名正月下四月下二月下三月下五月下六月下七月下八月下九月下十月下十一月下大米伍斗田米㱏斗戊午正月 趙昌根戶曹[着押][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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幼學吳致學年五十九本海州居南原父學生 佑常祖學生 昌翊曾祖學生 彦基外祖折衝將軍行僉知中樞府事兼五衛將尹致永本南原八天八天 八天不中科故經術益明 賦羲觀光而用賓 豈易言夫書哉周比年而考藝 不亦悅乎學而科中規於用經 旣窮堅而不墜益之時義大矣 所文獻之足徵曰皇朝之中科 掌文學而一藝盖多出於明經 官博士而五更家東海而穿壁 天朝夕其納策人解頤於說詩 夫見屈而歸余名何遅於題鴈 開石渠而貢士業猶疎於述蛾 復何恨乎有司生此國而思皇 蘇刺服而不徒經有術於用科 董下帷而奚啻可匡傅而摭實 儀造秀於司馬經何由而得明 筮榮貴於點龍科之設而有規 文以補焉掌故夫何書之不讀 學而優則審博觀於經而多術 儀衛武之琢玉兪不中而兪篤 艶南容之磨圭經在玆而可徵 賴克生於多士科之故而明之 以使媚于天子魯思泮而薄採 伊豁然而貫通啇宅序而三居 蘊奧旨於瀜會無少大而從于 登澤宮而合藝自東南而來者 追辟雍而應製可靑編而潛思 文亹亹而顯哉仰先哲之玄謨 舜嵬嵬而欽若次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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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 서현선(徐顯善) 수기(手記) 고문서-증빙류-수기 경제-회계/금융-수기 丙戌十月 日 柴場主幼學徐顯善 南原安生員宅 丙戌十月 日 徐顯善 南原安生員宅 전라북도 남원시 [着名] 임실 관기 순흥안씨가 임실 관기 순흥안씨가 박병호, 『韓國法制史攷 : 近世의 法과 社會』, 법문사, 1974. 최승희,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1989.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1886년(고종 3) 10월에 서현선(徐顯善)이 안생원댁(安生員宅)에게 선산의 일부를 전문 3냥을 받고 팔면서 그 증거로 작성해 준 수기. 1886년(고종 3) 10월에 서현선(徐顯善)이 작성한 수기이다. 서현선의 시장(柴場)은 남원 안생원댁의 산소와 맞닿아 있었는데, 안생원이 몇 보의 땅을 누누이 간청하였다. 따라서 서현선은 부득이 너비 5파, 길이 6, 70파를 한정하여 안생원에게 3냥에 팔기로 허락하고, 이후에 문제가 생기면 이 수표를 근거로 하여 검토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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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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手記 丙戌十月 日右手標事段鄙之柴場與南原安生員宅山所聯界而累累懇請數步之地故不得已右柴場廣五把長六七十把爲限以捧價參兩文許賣於右前爲去乎日後若有相佐之端以此標憑考事柴場主幼學徐顯善[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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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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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년 이보응(李輔應) 호구단자(戶口單子)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光緖十三年月日 李輔應 行縣令 光緖十三年月日 李輔應 金溝縣令 전라북도 김제시 行縣令[着押] 금구 도장 전주이씨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문현주, 『조선시대 호구단자의 작성에 관한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석사학위논문, 2008. HIKS_Z011_01_A00001_001 1887년(철종 24)에 통훈대부전행양천현령 겸 남양진관병마절제도위 이보응(李輔應)이 작성하여 전라도(全羅道) 금구현(金溝縣)에 제출한 호구단자(戶口單子). 1887년(철종 24) 10월에 전라도(全羅道) 금구현(金溝縣) 하서면(下西面) 제일도장리(第一都莊里) 제1통 제1호에 사는 당시 51세인 통훈대부전행양천현령 겸 남양진관병마절제도위(通訓大夫前行陽川縣令兼南陽鎭管兵馬節制都尉) 이보응(李輔應)이 작성하여 금구현에 제출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이때 그는 홀아비로 있으면서, 동생 양응(陽應, 41세)과 제수 연안이씨(延安李氏, 36세), 그리고 아들 재인(載仁, 27세), 며느리 의성김씨(義城金氏, 30세) 등과 함께 살고 있었다. 또한 2명의 노비를 데리고 있었다. 호주가 살았던 금구현 하서면 제일도장리는 현재 전라북도 김제시 도장동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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