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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1945년 송병섭(宋昞燮) 부의단자(賻儀單子) 고문서-치부기록류-물목 종교/풍속-관혼상제-물목 乙酉七月十日 宋昞燮 乙酉七月十日 宋昞燮 宋生員 고흥 학림 여산송씨가 고흥분청문화박물관 1945년에 침교(沈橋)의 송병섭(宋昞燮)이 마동(馬東)의 송생원댁(宋生員宅)에 보낸 부의단자와 피봉. 1945년 沈橋의 宋昞燮이 馬東의 宋生員宅에 보낸 부의단자와 피봉. *본문: 紙燭代金參圓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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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1683년 한양오(韓養吾) 고신(告身)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康熙二十二年二月十八日 吏曹 進士奉直郎韓養吾 康熙二十二年二月十八日 吏曹 韓養吾 서울특별시 종로구 參判臣 李[着名] 佐郞假郎廳臣裵[着名] 1개(적색, 정방형) 임실 용정 청주한씨가 전주 덕진 청주한씨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OD_F1021-01-000005 1683년(숙종 9년) 2월 18일에 이조(吏曹)에서 왕명을 받들어 한양오(韓養吾)에게 발급한 교첩(敎牒). 1683년(숙종 9년) 2월 18일에 이조(吏曹)에서 왕명을 받들어 한양오(韓養吾)에게 발급한 교첩이다. 한양오의 품계(品階)를 봉직랑(奉直朗)의 통덕랑(通德郞)으로 올려 준다는 내용이다. 봉직랑은 종5품 상계(上階)요, 통덕랑은 정5품 상계였다. 따라서 한양오의 품계는 두 단계 상승한 셈이었다. 호(號)를 반환(盤桓) 자(字)를 호연(浩然)이라고 했던 한양호는 1646년(인조 24년)에 실시한 병술년(丙戌年) 식년시(式年試) 진사시 합격자였다. 그는 진사시에 합격한 후 한 때 성균관에 머물며 문과를 준비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문과에는 성공하지 못한다. 그는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으며, 사후에 남원 고암서원(高巖書院)에 배향될 정도로 많은 선비들로부터 추앙을 받은 인물이다. 훗날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천거(薦擧)를 받아 광릉참봉(光陵參奉)까지 지낸다.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광릉은 세조(世祖)의 능(陵)을 말한다. 한편 교첩의 오른편을 보면 본 문서를 발급해 준 날짜 왼편으로 '충의위시정정정구별가별초(忠義衛時丁正丁九別加幷超)'라는 문구가 보인다. 이는 한양오가 '충의위에 속해 있을 때인 '정년정월(丁年正月)"과 정년구월(丁年九月)에 받았던 별가 혜택을 이번 인사에 모두 반영해 주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정년이란 강희 16년(1677, 숙종 3년)을 말한다. 하지만 한양오가 충의위에 근무한 기간이 정확히 언부터 언제까지였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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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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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28년 송동면(宋東勉) 서간(書簡) 4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戊辰十月二十日 宋東勉 戊辰十月二十日 宋東勉 柳瑩業 구례 오미 문화류씨 운조루 구례 운조루유물전시관 1928년 10월 20일에 송동면(宋東勉)이 딸 사돈 류형업(柳瑩業)에게 안부를 전하면서 사위 류증효(柳曾孝)를 보내 달라고 요청한 내용의 간찰과 피봉. 1928년 10월 20일에 송동면이 딸 사돈 류형업에게 안부를 전하면서 사위 증효를 보내 달라고 요청한 내용의 간찰과 피봉. *추기: 戊辰十月二十日出同二十六日入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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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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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28년 송동면(宋東勉) 서간(書簡) 5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戊辰十二月十五日 宋弟東勉上 戊辰十二月十五日 宋東勉 柳瑩業 구례 오미 문화류씨 운조루 구례 운조루유물전시관 1928년 12월 15일에 송동면(宋東勉)이 딸 사돈 류형업(柳瑩業)에게 입원한 사위의 안부를 걱정하면서 쓴 간찰과 피봉. 1928년 12월 15일에 송동면이 딸 사돈 류형업에게 입원한 사위의 안부를 걱정하면서 쓴 간찰과 피봉. *추기: 戊辰十二月十五日出同十七日入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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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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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83년 류세영(柳世永) 등 등장(等狀)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癸未六月 日 柳世▣(永) 進士 柳相烈 柳翼養 癸未六月 日 柳世▣(永) 全州府尹 전라북도 전주시 官[着押] 3개(적색, 정방형) 전주 인후 전주류씨가 전주 인후 전주류씨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OD_F1026-01-000012 1883년(고종 20) 6월에 전주(全州)에 사는 류세영(柳世永) 등 20여명이 전주부윤(全州府尹)에게 올린 등장. 1883년(고종 20) 6월에 전주(全州)에 사는 류세영(柳世永) 등 20여 명이 전주부윤(全州府尹)에게 올린 등장이다. 연명자의 이름이 적힌 문서의 부분이 훼손되어 연명자의 구체적인 인원은 알 수 없다. 그리고 소두(疏頭)의 이름도 알 수 없기 때문에 그 이름이 확인된 첫 번째 인물을 편의상 소두로 내세워 자료명을 작성하였다. 전주류씨 종중의 이들 유생은, 시조비(始祖妣) 국대부인(國大夫人)의 묘각(墓閣)을 중창하는데 필요한 공사비의 갹출 과정에서 일어난 종중의 분란을 야기한 류행수(柳行守)를 잡아다가 엄히 처벌할 것을 탄원하고 있다. 등장의 내용에 따르면, 지난 을해년에 전주류씨 종중은 묘각을 재건하면서 각도 각읍 각파에 4, 50냥을 분배하여 거두었는데, 40냥을 분배받은 류춘도(柳春道)는 집안이 부유한데도 돈을 내지 않아서 부득이 그의 송아지 한 마리를 36냥에 팔아 사용하였으며, 류춘도도 나중에 종중에 와서 사과하고 다른 말이 없었다. 그런데 재작년에 류춘도의 6촌이 사수(社首)의 일을 맡아 수백 냥을 체납하는 바람에 종중에서 이를 나누어 징수하였다. 이때 류춘도는 일백 냥을 내기로 하였는데, 그의 동생 행수가 형을 사주하여 소값을 핑계로 관에 무고를 하고는 여러 종중에 분배하도록 요구하였다. 종중에서는 이를 수치로 여겨 오히려 66냥을 가징(加徵)하였다. 지난 해 류춘도가 죽자, 행수는 이번에는 결가(結價)를 구실로 자신의 형이 살아 있을 때 거둬간 소값을 또 다시 종중에서 징수한다고 관에 무고를 하여 종중 사람이 셋이나 감옥에 갇혔다. 이에 종중에서는 행수를 잡아다가 엄히 다스려달라고 탄원을 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대하여 전주부윤은, 이 같은 사안을 왜 진작 올리지 않았는가 라고 반문하고, 자세히 조사하여 아뢰라고 아전에게 지시하는 제사를 내렸다. 이 문서에는 작성연대가 계미년으로 기재되어 있는데, 연명자의 한 사람인 류상렬(柳相烈)이 1882년(고종 19)의 식년진사시에 합격하였고, 류기창(柳基昌)은 1880년(고종 17)의 증광생원시에 합격한 점으로 미루어, 계미년을 1883년으로 추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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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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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02년 박봉진(朴鳳鎭) 호적표(戶籍表)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적표 光武六年一月日 朴鳳鎭 郡守 李範喬 光武六年一月日 朴鳳鎭 興陽郡守 전라남도 고흥군 興陽郡印(적색, 정방형, 4.5×4.5), 興陽郡守之章(적색, 정방형, 2.5×2.5), 고흥 학림 여산송씨가 고흥분청문화박물관 1902년(광무 6)에 박봉진(朴鳳鎭, 29세)이 흥양군(興陽郡)에 제출한 호적표(戶籍表). 1902년에 朴鳳鎭(29세)이 興陽郡에 제출한 戶口表. *주소: 全羅南道 興陽郡 豆原面 鶴林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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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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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1972년 송필섭(宋弼燮) 망기(望記)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사회-조직/운영-망기 壬子十月日 礪山宋氏虎峙派門中 宋弼燮 壬子十月日 礪山宋氏虎峙派門中 宋弼燮 礪山宋氏虎峙派門中印 1개(적색, 정방형) 고흥 학림 여산송씨가 고흥분청문화박물관 1972년에 여산송씨 호치파문중(虎峙派門中)에서 송필섭(宋弼燮)을 도유사(都有司)에 추천하는 망기와 피봉 1972년 礪山宋氏 虎峙派門中에서 宋弼燮을 都有司에 추천하는 망기와 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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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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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1916년 송주헌(宋柱憲) 망기(望記) 1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사회-조직/운영-망기 丙辰十月二十四日 東鶴儒會所 宋柱憲 丙辰十月二十四日 東鶴儒會所 宋柱憲 東鶴儒會之印 1개(적색, 정방형) 고흥 학림 여산송씨가 고흥분청문화박물관 1916년에 동학유회소(東鶴儒會所)에서 송주헌(宋柱憲)을 별유사(別有司)에 천거하는 망기와 피봉 1916년 東鶴儒會所에서 宋柱憲을 別有司에 천거하는 망기와 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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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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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02년 송주성(宋柱成) 호적표(戶籍表)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적표 光武六年一月日 宋柱成 郡守 李範喬 光武六年一月日 宋柱成 興陽郡守 전라남도 고흥군 興陽郡印(적색, 정방형, 4.5×4.5), 興陽郡守之章(적색, 정방형, 2.5×2.5), 고흥 학림 여산송씨가 고흥분청문화박물관 1902년(광무 6)에 송주성(宋柱成, 48세)이 흥양군(興陽郡)에 제출한 호적표(戶籍表). 1902년에 宋柱成(48세)이 興陽郡에 제출한 戶口表. *주소: 全羅南道 興陽郡 豆原面 鶴林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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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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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876년 기양연(奇陽衍)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丙菊念六 奇陽衍 丙菊念六 奇陽衍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 관기 순흥안씨가 임실 관기 순흥안씨가 박병호, 『韓國法制史攷 : 近世의 法과 社會』, 법문사, 1974. 최승희,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1989.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1876년(고종 13) 기양연(奇陽衍)이 순흥안씨(順興安氏) 집안의 누군가에게 보낸 서간(書簡). 1876년(고종 13) 9월 26일에 복제(服弟) 기양연(奇陽衍, 1827-1895)이 순흥안씨(順興安氏) 집안의 누군가에게 보낸 서간(書簡)이다. 서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만나지 못한지 오래되어 그리워하였는데 뜻밖에 상대방의 동생이 편지를 가지고 방문하여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문득 깨달아지고 눈이 밝아지는 것 같다. 이즈음 형제분들이 건강하다니 크게 위로된다. 복인(服人)인 자신은 올여름엔 단문(袒免; 9촌의 상)의 친족상을 당하여 쓸쓸함을 견디기 어려워 산 아래로 지는 해처럼 되었다. 산송(山訟)은 사리가 곧은데도 패소를 당해 분하다며 임실 관아에 정소하였는데 사람이 미천하고 말이 가벼워 가망이 없다. 상대방 동생의 일은 지시하신대로 기록하였으니 열어본 뒤에 전하라고 하였다. 기양연은 기정진(奇正鎭)의 재종질이다. 1876년 1월 25일에 기정진의 아들 기만연(奇晩衍)이 사망하였으므로, 이를 근거로 원문의 '丙菊念六'을 병자년(1876) 9월 26일로 추정하였다. 기양연의 자는 자민(子敏), 호는 백석(柏石)이며,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기윤진(奇允鎭)이다. 기정진의 재종질로, 일찍이 종숙부인 기정진에게 수학하였으며, 1867년에 문과(文科)에 급제하였다. 병인양요가 일어나자 척양사론(斥洋邪論)을 지었으며, 문과에 급제한 뒤에 곧바로 사헌부 지평과 장령에 제수되었다. 옥구현감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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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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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김인석(金潾錫)의 처(妻) 고령신씨(高靈申氏) 관고(官誥) 고문서-교령류-관고 정치/행정-임면-관고 光武七年六月日 淑夫人高靈申氏 光武七年六月日 高宗 高靈申氏 서울특별시 종로구 勅命之寶(9x17, 적색, 정방형) 고흥 두원 경주김씨가 고흥분청문화박물관 HIKS_OD_F1005-01-000647 1903년(광무 7)에 고종(高宗)이 고령신씨(高靈申氏)를 정부인(貞夫人)으로 추증한다는 칙명(勅命). 1903년 6월에 高宗이 淑夫人 高靈申氏를 貞夫人으로 추증한 勅命. *방서: 依從夫職 *추기: 金潾錫之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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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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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김인석(金潾錫) 관고(官誥) 3 고문서-교령류-관고 정치/행정-임면-관고 光武五年十二月日 從二品金潾錫 光武五年十二月日 高宗 金潾錫 서울특별시 종로구 勅命之寶(9x18, 적색, 정방형) 고흥 두원 경주김씨가 고흥분청문화박물관 HIKS_OD_F1005-01-000647 1901년(광무 5)에 고종(高宗)이 김인석(金潾錫)을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임명한 칙명(勅命). 1901년 12월에 高宗이 從二品 金潾錫을 嘉善大夫에 임명한 勅命. *추기: 圓丘壇別單差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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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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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안정기(安貞麒)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丁酉三月 日 南原郡山民安貞麒 城主 丁酉三月 日 安貞麒 光陽郡守 전라남도 광양시 光陽官[着押] 3개(적색, 정방형) 임실 관기 순흥안씨가 임실 관기 순흥안씨가 박병호, 『韓國法制史攷 : 近世의 法과 社會』, 법문사, 1974. 최승희,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1989.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HIKS_OD_F1019-01-000001 1897년 3월에 남원(南原)에 사는 안정기(安貞麒)가 광양군(光陽郡) 골약면(骨若面) 용소동(龍沼洞)에 있는 선산을 둘러싸고 정선유(鄭善有)와의 산송이 발생하자 이를 고발한 소지. 1897년 3월에 남원(南原)에 사는 안정기(安貞麒)가 광양군수(光陽郡守)에게 올린 소지이다. 안정기는 지난 기묘년에 광양군(光陽郡) 골약면(骨若面)에 사는 정선유(鄭善有)의 맏형 정석규(鄭錫奎)에게 100냥을 주고 산지를 매입하여 묘를 썼다. 그 뒤 김성룡(金成龍)의 묘가 정석규의 묘 옆에 같이 있어 송사를 일으켰으므로 김가에게 50냥을 주고 산지를 또 매입하였다. 그런데 정석규가 죽은 뒤에 동생 정선유가 형이 팔았던 산지를 읍인(邑人) 우종식(禹鍾植)에게 다시 몰래 팔았기 때문에 안씨측은 5〜6년에 걸쳐 읍과 감영에 정소하여 결국 그 묘를 파내 옮기게 하였다. 민영수(閔泳壽)가 광양군수로 있을 때에는 "방매했다면 김가와 정가의 두 무덤을 먼저 즉각 파내라"는 제사를 내렸으므로, 안정기가 애걸하여 이를 정지시켰다. 그 뒤 신태관(申泰寬)이 군수로 있을 때에는 안정기가 불공한 짓을 저질렀다고 하여 60여 대나 매를 맞고, 한 달 여 동안 옥에 갇혀 거의 죽을 지경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헌직(李憲稙)이 전라감사(全羅監司)로 있을 때에는 우종식을 잡아가두고 독굴하라는 처분을 받아 남원군에서 사람을 파견하여 묘를 파 옮겼다. 그 뒤로도 투총이 있어서 안정기가 6〜7차례나 읍과 감영에 호소하여 묘를 파서 옮기게 하였다. 그런데 그 때는 이곳의 산지를 돌아보지도 않던 정선유가 지금에 와서는 자신의 금양지라고 주장하면서 송추를 베어내니 이것은 법을 멸시하는 짓이므로 통촉해 달라고 탄원하였다. 이에 대하여 >광양군수는 전에 잡아오라는 조처를 내렸는데 왜 제사(題辭)를 따르지 않고 해가 지난 뒤에 와서 뒤늦게 소를 올리느냐면서 이전에 내린 제사대로 데려와 조사 처결하라는 처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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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류형업(柳瑩業) 서간(書簡) 4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甲子四月二日 從姪之制人瑩業 柳主事 喆桓 益山 金馬面 東古都里 甲子四月二日 柳瑩業 柳喆桓 구례 오미 문화류씨 운조루 구례 운조루유물전시관 1924년 4월 2일에 류형업(柳瑩業)이 종숙 류철환(柳喆桓)에게 조부 류제양의 삼년상 이후 사당의 신주 등을 처리하는 문제를 의논하는 내용의 간찰 1924년 4월 2일에 류형업이 종숙 柳喆桓에게 조부 류제양의 삼년상 이후 사당의 신주 등을 처리하는 문제를 의논하는 내용의 간찰. *상태: 문서 앞뒤의 내용이 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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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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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32년 전주유생(全州儒生) 이환정(李煥晶)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壬辰六月 日 幼學李煥晶 柳錫祚 黃纘源 巡相閤下 壬辰六月 日 李煥晶 全羅觀察使 전라북도 전주시 使[着押] 전주 구석 인동장씨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OD_F1022-01-000005 1832년(순조 32) 6월에 전주향교(全州鄕校)의 유생 이환정(李煥晶) 등 38명이 순상(巡相)에게 올린 상서(上書). 1832년(순조 32) 6월에 전주향교(全州鄕校)의 유생 이환정(李煥晶) 등 38명이 순상(巡相), 즉 전라도관찰사에게 올린 상서이다. 작성연대가 임진년으로 적혀 있는데, 관련문서를 통해 이를 1832년으로 추정하였다. 유생들은 이 상서에서 같은 고을에 사는 고(故) 동지(同知) 장문택(張文澤)의 처 구씨(具氏)와 그녀의 며느리 이씨(李氏)의 열행(烈行)을 조정에 알려 정려를 받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상서의 내용에 따르면, 구씨는 한미한 집안 출신이지만 장씨 가문에 시집을 와서 부도(婦道)를 공경히 지키고, 예(禮)로써 제사를 받들고 집안에서는 그 범절이 뛰어났다. 형제와 종족에 대해서도 모두 성신(誠信)으로 응대하여 화목하게 지냈기 때문에 향리에서 늘 칭송을 받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난 정월에 남편이 갑자기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구씨는 애통한 나머지 남편을 따라 순절하고 싶었지만 애써 슬픈 마음을 감추고 하나도 소홀함이 없이 상례를 다 갖추어 남편의 장례를 치렀다. 구씨는 쑥대처럼 된 머리를 빗질조차 하지 않았으며, 새까만 얼굴도 씻지 않고,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잠자리에 누울 때까지 한 순간도 상복을 벗지 않았다. 처음에는 5월 보름날에 죽기로 작정하였지만 때마침 시숙(媤叔)의 상(喪)을 당하자 장례를 치르고, 다시 6월 7일로 날짜를 잡은 다음에 집안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목욕재계한 뒤에 침방에 들어가 끝내 독약을 마셨다. 구씨는 곧바로 즉사하지 않자 망부(亡夫)를 부르짖으며 저세상으로 함께 돌아가기를 기원하였고, 말이 끝나자마자 이내 죽고 말았다. 그리고 장문택의 며느리 이씨(李氏)는 지난 정해년에 도읍(道邑)에서 장계를 올려 정려를 청한 문서들이 쌓여서 두루마리가 될 정도에 이르렀다. 이에 전주의 유생들은 이들 고부(姑婦)의 열행을 조정에 알려 정려를 받게 해달라고 탄원하였다. 순상은 이에 대하여 이전에 올린 소지에 대하여 참으로 가상하다는 제사를 내린 바 있다면서, 지금 다시 이 소지를 보니 모두가 다 한결같은 공의(公議)를 지니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마땅히 포양할 때가 있을 것이라는 제사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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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모년 전주유학(全州幼學) 김근배(金根培) 시권(試券) 1 고문서-증빙류-시권 정치/행정-과거-시권 幼學金根培 金根培 전라북도 전주시 전주 매교 김해김씨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OD_F1025-01-000014 모년에 전주(全州)에 사는 김근배(金根培)가 백일장(白日場)에 참여하여 작성한 시권(試券). 전주(全州)에 거주하는 김근배(金根培)가 작성한 시권(試券)으로, 백일장(白日場)에 참여하여 작성한 시(詩) 답안지로 추정된다. 김근배의 본관은 김해(金海)로, 당시 47세였다. 시권의 오른쪽 하단에는 김근배의 성명과 나이, 본관, 거주지 및 부친의 신분과 성명이 적혀 있다. 부친은 유학(幼學) 김현교(金顯敎)였다. 오치학은 이 시험에서 '三下'의 성적을 얻었다. 김근배의 시권으로는 같은 시기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답안지가 또 하나 전하고 있다. 이때 시의 시제(試題)는 "酒肆傍舍有淡粧素服一美人出來"로, "주막집의 옆집에 옅게 화장을 하고 소복을 입은 미인이 나와서 영접을 한다."는 의미이다. 이 구절은 중국의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수(隋) 나라 사람 조사웅(趙師雄)이 나부산(羅浮山)에 갔는데 해가 저물 무렵에 숲 사이에 있는 어느 집에서 한 미인이 소복담장(素服淡粧)으로 나와 영접을 하였는데 그 향기가 사람의 정신을 황홀케 하였다. 조사웅이 그 미인과 함께 술집에 가서 즐겨 놀았는데 옆에 푸른 옷을 입은 동자(童子)가 노래를 불렀다. 조사웅이 취하여 자다가 새벽에 깨어 보니 매화나무에 푸른 새가 지저귀고 있었다. 미인은 바로 화신(花神)이었다는 설화이다. 7언 절구의 형식으로 작성된 시이다. 이 답안지의 앞부분에는 '十地'라는 글자가 적혀 있는데, 이것은 응시자가 답안지를 작성하여 제출하면서 받은 일종의 접수번호이다. 그 밑에 '謹封'이라는 글자는, 아래의 응시자 이름이 적혀 있는 부분을 돌돌 말아 봉한 다음에 적은 것이다. 채점시의 부정을 막기 위하여 이름을 가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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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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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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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1890년 송주헌(宋柱憲) 망기(望記)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사회-조직/운영-망기 庚寅九月日 校中 幼學 宋柱赫 庚寅九月日 興陽鄕校 宋柱赫 전라남도 고흥군 興陽縣營?? 1개(흑색, 장방형) 고흥 학림 여산송씨가 고흥분청문화박물관 1890년에 흥양향교에서 유학 송주혁(宋柱赫)을 존성계(尊聖契) 도유사(都有司)로 추천하는 망기과 피봉. 1890년 興陽鄕校에서 幼學 宋柱赫을 尊聖契 都有司로 추천하는 망기과 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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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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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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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3년 김상휘(金相輝)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康熙五十二年正月日 行縣監 幼學金尙輝 康熙五十二年正月日 興陽縣監 金尙輝 전라남도 고흥군 行縣監[署押] 興陽縣監之印(7x7, 적색, 정방형) / 周挾字改印(16.2x4.5, 흑색, 장방형) 고흥 화장 김해김씨가 고흥분청문화박물관 HIKS_OD_F1009-01-000718 1713년(숙종 39)에 흥양현(興陽縣)에서 김상휘(金尙輝 31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1713년(숙종39)에 興陽縣에서 金尙輝(31)에게 발급한 準戶口. *주소: 大西面西面住 第六統 第四戶 *기타사항: 준호구 작성 날짜와 호주 김상휘 나이가 맞지 않음.(1711년 김상휘 준호구와 내용이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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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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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1916년 송주헌(宋柱憲) 망기(望記) 3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사회-조직/운영-망기 丙辰八月日 風泉齋儒會所 宋柱憲 丙辰八月日 風泉齋儒會所 宋柱憲 華陽儒會所章 1개(흑색, 정방형) 고흥 학림 여산송씨가 고흥분청문화박물관 1916년에 풍천재유회소(風泉齋儒會所)에서 송주헌(宋柱憲)을 종헌관(終獻官)으로 추천하는 망기와 피봉 1916년 風泉齋儒會所에서 宋柱憲을 祭官 終獻官으로 추천하는 망기와 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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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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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8년 김덕호(金德浩) 호구단자(戶口單子)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戊子式 鰥夫通德郞金德浩 戊子式 [1768] 金德浩 전라남도 고흥군 고흥 화장 김해김씨가 고흥분청문화박물관 HIKS_OD_F1009-01-000718 1768년(영조 43)에 김덕호(金德浩, 65세)가 흥양현(興陽縣)에 제출한 호구단자(戶口單子). 1768년(영조43)에 金德浩(65)가 官에 제출하기 위해 작성한 戶口單子. *주소: 吐旨面 第五 汗水川里 第三統 首 第三統 七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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