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7년 신철구(申轍求)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丁巳中秋旬七 記末轍求 石洞 安生員宅 丁巳中秋旬七 申轍求 安生員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 관기 순흥안씨가 임실 관기 순흥안씨가 박병호, 『韓國法制史攷 : 近世의 法과 社會』, 법문사, 1974. 최승희,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1989.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1857년(철종 8) 8월 17일에 신철구(申轍求)가 임실 석동(石洞)의 안생원댁(安生員宅)에 보낸 편지. 1857년(철종 8) 8월 17일에 신철구(申轍求, 1804년(순조 4)~미상)가 임실 석동(石洞)의 안생원댁(安生員宅)에 보낸 편지이다. 순원왕후(純元王后)가 승하한 그 달에 뜻하지 않게 상대방으로부터 편지를 받고 보낸 회답이다. 지난 봄에 헤어지고 나서 편지를 받으니 멀리 떨어져 있어도 지척에 사람을 대하는 듯하여 기쁘다고 말하고, 상대방이 건강하고 아들 또한 날로 학업이 발전하고 있어서 매우 기쁘고 그립다고 하였다. 자신은 항상 몸이 좋지 않은데다가 일 때문에 바쁘지만 뼈도 아프고 눈도 좋지 않아서 고생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가을에 열리는 과거가 연기되어 마음이 울적하겠지만 내년 봄에는 연기된 과거가 실시되고 경과(慶科)도 열리니, 열심히 공부하여 때를 기다리면 될 것이라고 과거 공부하는 자식을 둔 상대방을 위로하고 있다. 신철구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자는 진명(軫明)이다.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충청도 청주(淸州) 출신이다. 1837년(헌종 3)에 식년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1850년(철종 1)의 증광문과에 급제하였다. 1861년(철종 12)에 서장관(書狀官)으로 임명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 사간원대사간(司諫院大司諫),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 동부승지(同副承旨),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 호조참의(戶曹參議), 남양부사(南陽府使) 등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