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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1915년 송주헌(宋柱憲) 망기(望記) 2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사회-조직/운영-망기 乙卯三月日 華陽儒會所 宋柱憲 乙卯三月日 華陽儒會所 宋柱憲 華陽儒會所章 1개(흑색, 정방형) 고흥 학림 여산송씨가 고흥분청문화박물관 1915년에 화양유회소(華陽儒會所)에서 송주헌(宋柱憲)을 만동묘(萬東廟) 장의(掌議)로 추천하는 망기와 피봉 1915년 華陽儒會所에서 宋柱憲을 萬東廟 掌議로 추천하는 망기와 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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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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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1916년 송주헌(宋柱憲) 망기(望記) 2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사회-조직/운영-망기 丙辰十月二十四日 東鶴儒會所 宋柱憲 丙辰十月二十四日 東鶴儒會所 宋柱憲 東鶴儒會之印 1개(적색, 정방형) 고흥 학림 여산송씨가 고흥분청문화박물관 1916년에 동학유회소(東鶴儒會所)에서 송주헌(宋柱憲)을 집의(執禮)로 추천하는 망기와 피봉 1916년 東鶴儒會所에서 宋柱憲을 執禮로 추천하는 망기와 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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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1888년 이섭규(李燮奎) 고신(告身) 5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光緖十四年十一月 日 李燮奎 光緖十四年十一月 日 高宗 李燮奎 서울특별시 종로구 1개(적색, 정방형) 임실 범오 홍주이씨가 전주 덕진 홍주이씨가 전북향토문화연구회편, 『全北地方의 古文書』1․ 2․ 3, 1993․1994․1995.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정구복, 『고문서와 양반사회』, 일조각』, 2002.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http://people.aks.ac.kr/) HIKS_OD_F1020-01-000001 1888년(고종 25) 11월에 고종이 이섭규(李燮奎)를 통훈대부(通訓大夫) 행상서원주부(行尙瑞院主簿)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 1888년(고종 25) 11월에 국왕이 이섭규(李燮奎)를 통훈대부상서원주부(通訓大夫行尙瑞院主簿)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이다. 통훈대부는 정3품 문신 품계이며, 주부는 종6품이어서 '품계가 높은 데 비해 관직이 낮음'을 의미하는 '행(行)'을 붙였다. 상서원은 국왕의 새보(璽寶)·부패(符 牌)·절월(節鉞)을 관장하던 관서로 1894년(고종 31) 갑오경장 때 폐지되었다. 교지는 왕이 신하에게 관직, 관작, 시호, 자격, 토지 및 노비 등을 하사하면서 그 증표로 내려주는 문서이다. 이섭규의 본관은 홍주(洪州)이며 자는 서오(瑞五)이다. 1817년(순조 17)생으로 합격 당시 임실(任實)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의 양부는 이병균(李秉均)이며, 생부는 이진균(李珍均)이다. 이섭규는 1852년(철종 3)에 식년진사시에 합격한 뒤에 음관(蔭官)으로 관직에 들어가 사헌부 감찰, 돈녕부 판관, 공주 진관, 장악원 주부, 상서원 주부 등을 역임했다. 그의 고신 12점이 홍주이씨 가문에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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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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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1945년 송윤칠(宋允七) 등 부의단자(賻儀單子) 고문서-치부기록류-물목 종교/풍속-관혼상제-물목 乙酉七月七日 宋允七 宋相錫 宋生員宅 護喪所 乙酉七月七日 宋允七 宋生員 고흥 학림 여산송씨가 고흥분청문화박물관 1945년에 송윤칠(宋允七), 송상석(宋相錫) 등이 송생원댁(宋生員宅) 호상소(護喪所)로 보낸 부의단자와 피봉. 1945년 宋允七, 宋相錫 등이 宋生員宅 護喪所로 보낸 부의단자와 피봉. *본문: 香燭代金二十七圓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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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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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1660년 한빈(韓賓) 고신(告身) 1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順治十七年正月初六日 兵曹 忠義衛迪順副尉韓賓 順治十七年正月初六日 兵曹 忠義衛迪順副尉韓賓 서울특별시 종로구 參知臣元[着名] 佐郞臣卞[着名] 1개(적색, 정방형) 임실 용정 청주한씨가 전주 덕진 청주한씨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OD_F1021-01-000001 1660년(현종 1년) 1월 6일에 병조(兵曹)에서 왕명을 받들어 충의위(忠義衛)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빈(韓賓)의 품계를 적순부위(迪順副尉)에서 진용교위(進勇校尉)로 올려주면서 발급한 교첩(敎牒). 1660년(현종 1년) 1월 6일에 병조(兵曹)에서 왕명을 받들어 충의위(忠義衛)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빈(韓賓)의 품계를 적순부위(迪順副尉)에서 진용교위(進勇校尉)로 올려주면서 발급한 교첩(敎牒)이다. 적순부위는 정7품이었고, 진용교위는 정6품(正六品) 하계(下階)였다. 따라서 한빈의 품계는 세 단계가 올라간 것이었다. 한편 조선시대의 관직 임명 절차에 관한 규정을 보면 5품 이하의 관직임명장은 왕명(王命)에 따라 해당부서에서 발행하도록 되어 있었다. 4품 이상의 관직임명장은 왕이 직접 내주었던 것과는 차이가 있었던 것인데, 문서 오른 편에 보이는 '봉교(奉敎)'란 바로 '왕의 명령을 받들어'라는 의미이다. 문서의 왼편 부분, 즉 연대가 적힌 곳의 오른쪽을 보면 '병이정십무오별가산초(丙二丁十戊五別加幷超)'라는 표현이 보이고 있는데, 이는 한빈이 '병년이월(丙年二月)', '정년시월(丁年十月)', '무년오월(戊年五月)' 등 세 번에 걸쳐 받았던 별가의 혜택을 이번 인사에서 모두 반영해 주었다는 의미이다. 여기서의 병년은 순치 10년(1656, 효종 7)을, 정년은 순치 11년(1657, 효종 8)을, 무년은 순치 12년(1658, 효종 9)을 각각 가리킨다. (규격 43*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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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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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1945년 송병구(宋秉龜) 부의단자(賻儀單子) 고문서-치부기록류-물목 종교/풍속-관혼상제-물목 乙酉七月六日 宋秉龜 宋生員 護喪所 乙酉七月六日 宋秉龜 宋生員 고흥 학림 여산송씨가 고흥분청문화박물관 1945년에 대서(大西) 화산리(禾山里)의 송병구(宋秉龜)가 동강면(東江面) 마수리(馬輪里)의 송생원댁(宋生員宅) 호상소(護喪所)로 보낸 부의단자와 피봉. 1945년 大西 禾山里의 宋秉龜가 東江面 馬輪里의 宋生員 護喪所로 보낸 부의단자와 피봉. *본문: 金參円也香燭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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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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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1938년 송종섭(宋鍾燮) 등 매도증서(賣渡證書) 고문서-명문문기류-계약서 경제-매매/교역-계약서 昭和拾參年拾月六日 宋錫浩 宋鍾燮, 宋介乭, 宋再燮 昭和拾參年拾月六日 宋錫浩 宋鍾燮 宋介乭 宋再燮 1개(적색, 정방형), 1개(적색, 정방형) 고흥 학림 여산송씨가 고흥분청문화박물관 1938년 10월 6일에 송석호(宋錫浩)가 송종섭(宋鍾燮) 등과 토지를 매매할 때 작성한 매도증서. 1938년 10월 6일에 宋錫浩가 宋鍾燮, 宋介乭, 宋再燮에게 토지를 매매한 내용을 담은 매도증서. *매매 토지: 高興郡 豆原面 鶴谷里 산 198번지 林野 7反 5畝步 *매매대금: 15원 *특징: 1938년에 발급한 토지소유권보존등기신청서와 함께 보관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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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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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90년 안병수(安秉守) 방매(放賣) 가사매매명문(家舍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가사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가사매매명문 光緖十五年庚寅九月十三日 家垈主幼學安秉守 光緖十五年庚寅九月十三日 安秉守 전라북도 임실군 [着名] 2개 임실 관기 순흥안씨가 임실 관기 순흥안씨가 박병호, 『韓國法制史攷 : 近世의 法과 社會』, 법문사, 1974. 최승희,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1989.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1890년(고종 27) 9월에 안병수(安秉守)가 임실군(任實郡) 지사면(只沙面) 관기촌(舘基村)에 있는 가사를 전문 16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가사매매명문. 1890년(고종 27) 9월 13일에 유학 안병수(安秉守)가 작성한 가사매매명문이다. 긴히 돈을 쓸데가 있었던 안병수는 임실군(任實郡) 지사면(只沙面) 관기촌(舘基村)에 있는 3칸짜리 집과 감나무 1주, 뽕나무 3주, 절구돌 1개와 공자원(恭字員) 땅을 16냥에 팔았다. 매입자의 이름은 실려 있지 않다. 원문에는 작성연대를 '光緖十五年庚寅'이라고 하였으나 광서 15년은 기축년이며, 경인년은 그다음 해인 광서 16년이다. 여기에서는 간지의 연대로 작성연대를 정하였다. 관기리는 약 500년 전 합천이씨 비암공(比巖公) 휘 형남(亨南)이 정착한 이래 밀양박씨가 들어와 현재는 밀양박씨가 많이 살고 있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하룻밤을 자고가면서 이런 궁벽한 곳에도 객주집이 있다고 하여 객주집터라 하여 집관(館)자, 터기(基)자를 써서 관기라고 불리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사면의 맨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관곡서원과 안씨계당, 팔초정 등 유서깊은 건물과 장군바위 등의 전설이 전해 내려오기도 한다. 현재는 밀양박씨, 합천이씨, 순흥안씨, 천안전씨, 장수황씨 등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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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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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02년 박홍진(朴洪鎭) 호구단자(戶口單子)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적표 壬寅月日 幼學 朴洪鎭 行郡守 壬寅月日 朴洪鎭 興陽郡守 전라남도 고흥군 興陽郡印(적색, 정방형, 4.5×4.5), 興陽郡守之章(적색, 정방형, 2.5×2.5), 고흥 학림 여산송씨가 고흥분청문화박물관 1902년(광무 6)에 박홍진(朴洪鎭, 53세)이 흥양군(興陽郡)에 제출한 호구단자(戶口單子). 1902년에 朴洪鎭(53세)이 興陽郡에 제출한 戶口單子. *주소: 豆原面 鶴林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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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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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02년 송한호(宋漢浩) 호적표(戶籍表)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적표 光武六年一月日 宋漢浩 郡守 李範喬 光武六年一月日 宋漢浩 興陽郡守 전라남도 고흥군 興陽郡印(적색, 정방형, 4.5×4.5), 興陽郡守之章(적색, 정방형, 2.5×2.5), 고흥 학림 여산송씨가 고흥분청문화박물관 1902년(광무 6)에 송한호(宋漢浩, 41세)이 흥양군(興陽郡)에 제출한 호적표(戶籍表). 1902년에 宋漢浩(41세)이 興陽郡에 제출한 戶口表. *주소: 全羅南道 興陽郡 豆原面 鶴林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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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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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24년 류형업(柳瑩業) 서간(書簡) 3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甲子淸和之二 査生心制人柳瑩業 崔生員 在鮮氏 甲子淸和之二 柳瑩業 崔在鮮 구례 오미 문화류씨 운조루 구례 운조루유물전시관 1924년 4월 2일에 류형업(柳瑩業)이 아들 증교(曾敎)의 장인 최재선(崔在鮮)에게 사돈 집안의 혼사 및 근친 등의 내용을 전한 간찰 1924년 4월 2일에 류형업이 아들 曾敎의 장인 崔在鮮에게 사돈 집안의 혼사 및 근친 등의 내용을 전한 간찰. *상태: 문서 앞뒤의 내용이 다름. 앞면.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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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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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32년 김진옥(金振玉) 등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壬辰六月 日 金振玉 鄭有侃 沈相賢 兼使主 壬辰六月 日 金振玉 全羅觀察使 전라북도 전주시 使[着押] 3개(적색, 정방형) 전주 구석 인동장씨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OD_F1022-01-000005 1832년(순조 32) 6월에 전주부(全州府)의 유생 김진옥(金振玉) 등 57명이 겸사주(兼使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1832년(순조 32) 6월에 전주부(全州府)의 유생 김진옥(金振玉) 등 57명이 겸사주(兼使主)에게 올린 소지이다. 겸사주는 전주부윤(全州府尹)을 겸하고 있었던 전라도관찰사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소두(疏頭)가 적혀 있는 문서의 앞부분이 훼손되어 있다. 전주의 유생들은 이 소지에서 같은 고을에 사는 고(故) 동지(同知) 장문택(張文澤)의 처 구씨(具氏)와 그녀의 며느리 이씨(李氏)의 열행(烈行)을 조정에 알려 정려를 받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소지의 내용에 따르면, 구씨는 불행하게도 금년에 남편이 갑자기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자 애통한 나머지 남편을 따라 순절하고 싶었지만 애써 슬픈 마음을 감추고 하나도 소홀함이 없이 상례를 다 갖추어 남편의 장례를 치렀다. 남편이 죽은 직후부터 이미 하늘의 태양을 가리키며 죽기로 맹서하였다. 처음에는 5월 보름날에 죽기로 작정하였지만 때마침 시숙(媤叔)의 상(喪)을 당하자 장례를 치르고, 다시 6월 7일로 날짜를 잡은 다음에 집안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목욕재계한 뒤에 침방에 들어가 끝내 독약을 마셨다. 구씨는 곧바로 즉사하지 않자 망부(亡夫)를 부르짖으며 저세상으로 함께 돌아가기를 기원하였고, 말이 끝나자마자 이내 죽고 말았다. 흔히 열부(烈婦)가 남편을 따라 죽음을 택하는 것은, 상을 당하여 급박한 때이거나 형편이 어쩔 수 없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구씨의 경우처럼 살아서는 지아비를 섬기는데 정(情)과 예(禮)를 다하고, 죽음에 이르러서는 기한을 정하여 남편을 따라 순사하기로 결심하여 마치 죽음을 남편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여기는 일은 결코 평범한 열행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리고 장문택의 며느리 이씨(李氏) 또한 지난 정해년에 남편을 따라 순절하여 도읍(道邑)에서 장계를 올려 정려를 청한 문서들이 쌓여서 두루마리가 될 정도에 이르렀으나 아직도 정려의 혜택을 받지 못하였다. 따라서 전주의 유생들은 이 두 사람의 열행을 조정에 알려 정려를 받게 해달라고 탄원하였다. 이에 대하여 겸사주는 기왕에 유생들이 올린 소지에 대하여 제사를 내린 것이 있으며, 이번에 다시 이렇게 간절한 소지를 올렸고 여론 또한 그러하지만 포양하는 일은 저절로 그 때가 있는 것이라는 제사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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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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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신사년 전주부(全州府) 남일면(南一面) 사수(社首) 품목(稟目) 고문서-첩관통보류-품목 정치/행정-보고-품목 辛巳三月 南一面 社首 官 辛巳三月 南一面社首 全州府 전라북도 전주시 行官[着押], 鄭[着名] 4개(적색, 정방형) 전주 매교 김해김씨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OD_F1025-01-000006 신사년 3월에 전주부(全州府) 남일면(南一面) 사수(社首)가 전주부윤(全州府尹)에게 올린 품목으로 김백수(金百秀)의 선산에 무단으로 치표하고 송추를 작벌한 김관서(金寬瑞)와 박구례(朴求禮)를 관의 명령대로 조치한 일을 보고한 내용. 신사년 3월에 전주부(全州府) 남일면(南一面) 사수(社首) 정씨(鄭氏)가 전주부윤(全州府尹)에게 올린 품목이다. 품목은 서원이나 향교에서 상관이나 해당 지방관에게 보고하는 문서의 일종이다. 사수 정씨는 북일면(北一面)에 사는 김백수(金百秀)의 선산에 김관서(金寬瑞)·박구례(朴求禮) 등이 치표한 일로 내리신 하체의 내용에 따라 소장자과 함께 치표처로 나아가서 살펴본 즉, 김관서의 아들은 숨어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박구례의 아들 용서(龍瑞)로 하여금 홀로 훼거해 가도록 하고, 치표처를 평평히 한 연후에 표기는 김관서댁에 돌려주게 하였다고 한다. 또 이들이 작벌한 송추 대송 5주, 중송 10주의 값은 박용서에게 추심하여 소장자에게 주게 하고, 다음의 사항을 잘 이행하도록 약속하는 수본을 각인들에게 받았으므로 이 문서들을 점련하여 보고한다고 하였다. 사수의 보고를 받은 전주부사는 표지를 작성하여 내려 보내니 소장자에게 전해줄 것이며, 앞으로 혹여나 이와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질 경우에 별도로 엄히 금단하라고 지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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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9년 김덕호(金德浩) 호구단자(戶口單子)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己卯式 鰥夫通德郞金德浩 己卯式 [1759] 金德浩 전라남도 고흥군 고흥 화장 김해김씨가 고흥분청문화박물관 HIKS_OD_F1009-01-000718 1759년(영조 35)에 김덕호(金德浩, 56세)가 흥양현(興陽縣)에 제출한 호구단자(戶口單子). 1759년(영조35)에 金德浩(56)가 官에 제출하기 위해 작성한 戶口單子. *주소: 吐旨面 第七 九萬里 第一統首 第七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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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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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795년 김지영(金芝榮)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乾隆六十年七月日 行縣監 幼學金芝榮 乾隆六十年七月日 興陽縣監 金芝榮 전라남도 고흥군 行縣監[署押] 興陽縣監之印(7x7, 적색, 정방형) / 周挾字改印(16.2x4.5, 흑색, 장방형) 고흥 화장 김해김씨가 고흥분청문화박물관 HIKS_OD_F1009-01-000718 1795년(정조 19)에 흥양현(興陽縣)에서 김지영(金芝榮, 69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1795년(정조19)에 興陽縣에서 金芝榮(69)에게 발급한 準戶口. *주소: 大西面禾場里 第一統 二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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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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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56년 한양오(韓養吾) 완문(完文) 고문서-증빙류-완문 정치/행정-명령-완문 丙辰十一月日 丙辰十一月日 南原都護府使 전라북도 남원시 7개(적색, 정방형) 임실 용정 청주한씨가 전주 덕진 청주한씨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1856년(철종 7) 11월에 남원도호부사(南原都護府使)가 한양오(韓養吾)의 후손들에게 발급해 준 완문. 1856년(철종 7) 11월에 남원도호부사(南原都護府使)가 한양오(韓養吾)의 후손들에게 발급해 준 완문이다. 완문이란 결정문이라는 뜻으로, 오늘날의 판결문에 해당한다. 이 완문에서 말하는 '한공(韓公)'은, 이미 앞에서 소개했던 1646년(인조 24년) 병술식년시(丙戌式年試) 진사시 합격자였던 한양오(韓養吾)를 가리킨다. 그를 참봉공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가 광릉참봉(光陵參奉)을 지냈기 때문이다. 본 완문에는 누가 발급해 주었는지가 적혀 있지 않지만 남원도호부사(南原都護府使)였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것은 한양오의 후손들이 남원 오수면 용정리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용정리는 조선시대에는 남원에 속했지만 지금은 임실 관내이다. 그리고 작성연대가 병진년으로 되어 있는데, 문서의 상태나 지질(紙質) 등으로 미루어 보아 1856년(철종 7)으로 추정하였다. 완문의 내용은 덕고방(德古坊) 저동(楮洞)에 있는 한양오의 묘를 관리하는 묘지기(墓直)와 묘노(墓奴)들에게 각종 요역(徭役)을 부과하거나 혹은 그들을 군오(軍伍)에 편입시키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남원도호부사가 이러한 조처를 취한 이유는 물론 한양오를 대우해 주기 위해서였다. 한양오와 같이 훌륭한 인물이 잠들어 있는 묘를 소홀히 할 수 없었기에, 그 묘를 관리하고 있는 자들을 관에서 특별히 보호해 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덕고방은 남원 관내에 속한 곳으로 오늘날의 남원시 덕과면과 임실군 오수면의 일부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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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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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1723년 김상휘(金尙輝) 고신(告身)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雍正元年十一月日 兵曹 進勇校尉忠武衛後部將金尙輝 雍正元年十一月日 兵曹 金尙輝 서울특별시 종로구 判書參議臣金[署押]?郞 兵曹之印(8x8, 적색, 정방형) 고흥 화장 김해김씨가 고흥분청문화박물관 HIKS_OD_F1009-01-000741 1723년(경종 3) 11월에 병조에서 왕명을 받들어 김상휘(金尙輝)를 진용부위(進勇校尉) 충무위후부장(忠武衛後部將)으로 임명한 교첩(敎牒). 1723년(경종3) 11월에 兵曹에서 왕명을 받들어 金尙輝를 進勇校尉 忠武衛後部將으로 임명한 敎牒. *방서: 癸八癸十一別加幷超 *상태: 문서 왼쪽 하단 손실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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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1715년 김상휘(金尙輝) 홍패(紅牌) 고문서-교령류-홍패 정치/행정-과거-홍패 康熙五十四年五月十一日 閑良金尙輝 康熙五十四年五月十一日 肅宗 金尙輝 서울특별시 종로구 고흥 화장 김해김씨가 고흥분청문화박물관 HIKS_OD_F1009-01-000741 1715년(숙종 41) 5월 11일에 숙종(肅宗)이 김상휘(金尙輝)에게 발급한 홍패(紅牌). 1715년(숙종41) 5월 11일에 肅宗이 金尙輝에게 발급한 紅牌. * 武科乙科 第五人及第出身 *상태: 문서 위부분 훼손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신사년 김백수(金百秀)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辛巳四月 金百秀 巡相 辛巳四月 金百秀 全羅監司 전라북도 전주시 都巡使[着押] 1개(적색, 정방형) 전주 매교 김해김씨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OD_F1025-01-000006 신사년 4월에 김백수(金百秀) 등이 전라감사(全羅監司)에게 올린 상서로 김관서(金寬瑞)와 다툼이 있었던 치표처에 대한 입지를 내려주기를 청원한 내용. 신사년 4월에 전주 북일면에 사는 김백수(金百秀) 등이 전라감사(全羅監司)에게 올린 상서(上書)이다. 김백수 등은 자신들의 선산이 전주부 남일면 고치(南一面 高峙)에 있어서 수백 년 동안 수호해 왔는데, 동면에 사는 김관서(金寬瑞)가 홍씨·박씨와 작당하여 그들이 밤을 틈타 몰래 매표한 곳을 연산 관동(連山 官洞)에 사는 김진사댁에서 치표처라고 가탁하고, 또 박구례(朴求禮)로 하여금 이 치표처를 굴거하는 조건으로 300백 냥을 요구하며 수차례 위협했다고 한다. 지난번에는 다행히 성주님이 명결을 얻어 김관서는 낙과하여 옥에 갇히고, 치표처는 훼파되었지만 훗날의 폐단이 없을 수 없기에 다시 한번 입지를 성급해 줄 것을 청한 것이다. 이에 전라감사는 앞서 관가에서 입지를 성급해 준 일이 있으므로 이것으로 증빙을 삼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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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20년 류형업(柳瑩業) 서간(書簡) 9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庚申至月二日 弟 柳瑩業 李生員 明國氏 龍方面龍井洞 庚申至月二日 柳瑩業 李明國 구례 오미 문화류씨 운조루 구례 운조루유물전시관 1920년에 류형업(柳瑩業)이 이명국(李明國)에게 안부와 연길에 대한 소식을 전하는 간찰 1920년에 柳瑩業이 李明國에게 안부와 연길에 대한 소식을 전하는 간찰. *원문: 向晤殆今耿悵 謹審冬雨如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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