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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송윤호(宋潤浩) 호적표(戶籍表)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적표 光武六年一月日 宋潤浩 郡守 李範喬 光武六年一月日 宋潤浩 興陽郡守 전라남도 고흥군 興陽郡印(적색, 정방형, 4.5×4.5), 興陽郡守之章(적색, 정방형, 2.5×2.5), 고흥 학림 여산송씨가 고흥분청문화박물관 1902년(광무 6)에 송윤호(宋潤浩, 58세)가 흥양군(興陽郡)에 제출한 호적표(戶籍表). 1902년에 宋潤浩(58세)가 興陽郡에 제출한 戶口表. *주소: 全羅南道 興陽郡 豆原面 鶴林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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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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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874년 기우만(奇宇萬)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甲戌八月二十五日 奇宇萬 管村 甲戌八月二十五日 奇宇萬 管村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 관기 순흥안씨가 임실 관기 순흥안씨가 박병호, 『韓國法制史攷 : 近世의 法과 社會』, 법문사, 1974. 최승희,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1989.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1874년(고종 11) 8월 25일에 사상(沙上)에 사는 기우만(奇宇萬)이 관촌(管村)에 사는 순흥안씨(順興安氏) 모인에게 보낸 서간(書簡). 1874년(고종 11) 8월 25일에 사상(沙上)에서 기우만(奇宇萬)이 관촌(管村)에 사는 순흥안씨(順興安氏) 집안의 누군가에게 보낸 서간(書簡)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상대방의 동생과 아들이 뜻밖에 방문하여 부의(賻儀)를 표해 주어 고맙다. 동생의 숙원(夙願)과 포부는 부러워하던 바였고, 상대방 아들의 청아한 도량은 물어보지 않아도 알만하니 법도 있는 가문의 현명한 자제들이라고 칭찬을 하였다. 그들을 통해 요즘 상대방의 기거에 유감이 없음을 알았으며 편지를 보내주어 감사하다고 하였다. 자신은 조부의 기력이 여름엔 편치 않다가 가을이 되면서 평상시처럼 회복하여 다행이었는데 다시 감기와 가래로 걱정스럽게 되었다고 하였다. 부친의 묵은 병도 나빠져 애태우며 날을 보내고 있는데 다음 달이면 중형(奇宇蕃)의 상기(祥朞)가 다가오니 애통함이 다시 더욱 새로워진다고 하였다. 상대방의 동생과 아들이 가는 길에 급히 편지를 쓴다고 하였다. 사상(沙上)은 기정진이 살던 전라남도 장성군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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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02년 송중호(宋重浩) 호적표(戶籍表)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적표 光武六年一月日 宋重浩 郡守 李範喬 光武六年一月日 宋重浩 興陽郡守 전라남도 고흥군 興陽郡印(적색, 정방형, 4.5×4.5), 興陽郡守之章(적색, 정방형, 2.5×2.5), 고흥 학림 여산송씨가 고흥분청문화박물관 1902년(광무 6)에 송중호(宋重浩, 65세)가 흥양군(興陽郡)에 제출한 호적표(戶籍表). 1902년에 宋重浩(65세)가 興陽郡에 제출한 戶口表. *주소: 全羅南道 興陽郡 豆原面 鶴林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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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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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1877년 황헌주(黃憲周) 홍패(紅牌) 고문서-교령류-홍패 정치/행정-과거-홍패 光緖三年四月 日 勸武軍官黃憲周 光緖三年四月 日 高宗 黃憲周 서울특별시 종로구 강화 대산 창원황씨가 강화역사박물관 전북향토문화연구회편, 『全北地方의 古文書』1․ 2․ 3, 1993․1994․1995.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정구복, 『고문서와 양반사회』, 일조각, 2002.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http://people.aks.ac.kr/) HIKS_OD_F1001-01-000001 1877년(고종 14) 4월에 권무군관 황헌주가 무과(武科) 병과(丙科)에 합격하여 왕으로부터 받은 홍패(紅牌). 1877년(고종 14)4월에 권무군관(勸武軍官) 황헌주(黃憲周)가 무과(武科) 병과(丙科)에 합격하여 왕으로부터 받은 홍패(紅牌)이다. 당시 황헌주는 제 212인으로 급제하였다. 권무군관은 조선후기에 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 등의 세 군영에 두었던 관직으로, 양반자제들을 위한 자리였다. 황헌주는 조선말기의 무관으로 본관은 창원(昌原)이다. 1877년(고종 14)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강화도 출신이지만 1894년 동학 농민의 봉기를 계기로 전라도와 인연을 갖게 된다. 그는 1894년(고종 31) 4월에 강화도 수비를 맡은 총제영의 중군으로 있었다. 동학 농민군 토벌 임무를 띠고 전라도에 파견된 초토사 홍계훈(洪啓薰)의 증원군 파견 요청에 따라, 황헌주는 총제 영병 4초(400명)를 거느리고 4월 19일 기선 현익호(顯益號)로 인천을 출발하여 4월 23일 법성포에 상륙하였다. 그는 4월 21일 장성 황룡촌에서 벌어졌던 경군(京軍)과 동학 농민군의 전투에는 참여하지 못하였으며, 4월 28일 전주에서 홍계훈 군과 합류하였다. 그는 그 뒤 동학 농민군 토벌에 참여하였으며, 그해 9월 동학 농민군이 재기하였다가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대패하여 수세에 몰리자 농민군 토벌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해 겨울에 황헌주는 그의 부하에게 지시를 내려 태인현 종송리(種松里)에 숨어 있는 농민군 지도자 김개남(金開男)을 체포하였다. 황헌주는 그해 12월 임실현감(任實縣監)에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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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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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1883년 황헌주(黃憲周) 고신(告身) 1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光緖九年五月 日 黃憲周 光緖九年五月 日 高宗 黃憲周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1개(적색, 정방형) 강화 대산 창원황씨가 강화역사박물관 전북향토문화연구회편, 『全北地方의 古文書』1․ 2․ 3, 1993․1994․1995.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정구복, 『고문서와 양반사회』, 일조각』, 2002.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http://people.aks.ac.kr/) HIKS_OD_F1001-01-000001 1883년(고종 20) 5월에 국왕이 황헌주(黃憲周)를 선략장군(宣略將軍) 행훈련원주부(行訓練院主簿)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 1883년(고종 20) 5월에 국왕이 황헌주(黃憲周)를 선략장군(宣略將軍) 행훈련원주부(行訓練院主簿)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이다. 선략장군은 종4품 무신의 품계이며, 훈련원주부는 종6품 관직이어서 '품계가 높은 데 비해 관직이 낮음'을 의미하는 '행(行)'을 관직명 앞에 붙였다. 훈련원은 군사(軍士)의 시재, 무예(武藝)의 연습(練習), 병서(兵書)의 강습(講習)을 맡은 관아이며, 주부는 문서와 부적(符籍)을 주관하였다. 교지는 왕이 신하에게 관직, 관작, 시호, 자격, 토지 및 노비 등을 하사하면서 그 증표로 내려주는 문서이다. 황헌주는 조선 말기의 무관으로 본관은 창원(昌原)이다. 1877년(고종 14)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강화도 출신이지만 1894년 동학 농민의 봉기를 계기로 전라도와 인연을 갖게 된다. 그는 1894년(고종 31) 4월 강화도 수비를 맡은 총제영의 중군으로 있었다. 동학 농민군 토벌 임무를 띠고 전라도에 파견된 초토사 홍계훈(洪啓薰)의 증원군 파견 요청에 따라, 황헌주는 총제 영병 4초(400명)를 거느리고 4월 19일 기선 현익호(顯益號)로 인천을 출발하여 4월 23일 법성포에 상륙하였다. 그는 4월 21일 장성 황룡촌에서 벌어졌던 경군(京軍)과 동학 농민군의 전투에는 참여하지 못하였으며, 4월 28일 전주에서 홍계훈 군과 합류하였다. 그는 그 뒤 동학 농민군 토벌에 참여하였으며, 그해 9월 동학 농민군이 재기하였다가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대패하여 수세에 몰리자 농민군 토벌에 적적극으로 나섰다. 이해 겨울에 황헌주는 그의 부하에게 지시를 내려 태인현 종송리(種松里)에 숨어 있는 농민군 지도자 김개남(金開男)을 체포하였다. 황헌주는 그해 12월 임실현감(任實縣監)에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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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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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1902년 황우영(黃祐永) 관고(官誥) 2 고문서-교령류-관고 정치/행정-임면-관고 光武六年十月六日 議政府贊政外部大臣署理外部協辦崔榮夏 慶興監理兼慶興府尹黃祐永 光武六年十月六日 崔榮夏 黃祐永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1개(적색, 정방형) 강화 대산 창원황씨가 강화역사박물관 HIKS_OD_F1001-01-000039 1902년(광무 6)에 의정부찬정 외부대신서리 외부협판 최영하(崔榮夏)가 경흥감리겸경흥부윤(慶興監理兼慶興府尹) 황우영(黃祐永)을 겸관해삼위통상사무(兼管海蔘葳通商事務)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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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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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1902년 황우영(黃祐永) 관고(官誥) 3 고문서-교령류-관고 정치/행정-임면-관고 光武六年六月二十三日 五品通訓大夫領事官黃祐永 光武六年六月二十三日 高宗 黃祐永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1개(적색, 정방형) 강화 대산 창원황씨가 강화역사박물관 HIKS_OD_F1001-01-000039 1902년(광무 6)에 5품 통훈대부(通訓大夫) 영사관(領事官) 황우영(黃祐永)이 의약전권대신종사관(議約全權大臣從事官)으로 임명되면서 발급 받은 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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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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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43년 황남(黃楠)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康熙四十三年四月初十日 見所谷化民黃 楠 城主 康熙四十三年四月初十日 黃楠 南原府使 전라북도 남원시 使[着押] 2개(적색, 정방형) 남원 대곡 장수황씨가 남원 무민공황진기념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전북대학교 한국학자료센터, 『황진 장군 가문의 고문서』, 흐름, 2016. HIKS_OD_F1012-01-000006 1843년(헌종 9) 윤7월에 남원 견소곡방(見所谷坊)에 사는 유생 황남(黃楠)이 남원부사(南原府使)에게 올린 소지. 1843년(헌종 9) 윤7월에 남원 견소곡방(見所谷坊)에 사는 유생 황남(黃楠)이 남원부사(南原府使)에게 올린 소지이다. 지난 경자년(1840) 봄에 매안방(梅岸坊)에 사는 유성태(柳成泰)가 남원 사동방(巳洞坊) 향약동(鄕約洞)에 있는 황남의 조부산에 투장(偸葬)을 하여 지지난 수령 때 도척(圖尺)을 하며 송사를 한 결과, 선산과 투총 사이의 거리가 그리 가깝지 않다는 이유로 투총을 파내지않되, 선산 금양은 황남의 차지라는 처분을 받았으며, 그 제교(題敎)를 유성태와 황민이 한 부씩 나누어 가졌다. 이후 황남은 가세가 빈곤하여 가지고 있는 약간의 선산 직토(直土)로는 산지기의 노고에 보답할 형편이 되지 못하자, 선산의 송지(松枝)를 팔아 직토를 사려고 하였다. 그러자 저 유성태가 자기네 산 근처라고 하면서 훼방을 놓았다. 이에 황남은 남원부사에게 올린 소지에서, 지지난 남원부사가 처결한 제사가 분명히 있고, 지난 3, 4년 동안 산지기가 초목을 벌채하는 일을 한 번도 금하지 않다가 갑자기 이제 와서 유성태가 방해하고 나선 것은 적반하장이자 남의 선산을 가로채려는 끝없는 탐욕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황남은 지지난번에 작성한 도형과 수령이 내려준 제사를 점련하여 함께 올리면서 유성태의 잘못된 행위를 막아달라고 하였다. 이에 남원부사는 유성태가 비록 입장(入葬)을 하기는 했지만 선산의 금양(禁養)에 주인이 있고, 이를 처결한 수령의 제사가 분명히 있으니 송추는 황남이 각별히 처리하라는 처분을 내렸다. 이 문서에는 작성연대가 계묘년으로 되어있는데, 그가 남원(南原)에 거주하던 유학(幼學) 황지수(黃智洙), 황재수(黃再洙) 등과 함께 1825년(순조 25년) 9월에 남원부사(南原府使)에게 올린 상서('1825년 황지수(黃智洙) 등 상서(上書)'를 통하여 계묘년이 1843년임을 추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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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事 世事塵千斛。浮生夢一場。大笑看今古。人人空自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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憂深 一分尙有早年心。兩葉可期到十尋。雖然特節多寒日。苦此風霜夜夜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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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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閑中 山下空堂臥少年。閑來事事自然然。萬壑從容松籟送。一天淡泊月光傳。春深古岸經時雨。夜靜虛洲斂夕煙。箇中未見遊塵起。始信人間亦有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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梧桐園與諸益共吟 我家十載碧梧隣。月夕相携訪故人。契許斷金琴上醉。工成庸玉卷中親。聞道屛巖花未晩。知應錦水柳初新。願與諸君相伴去。滿腔收得一年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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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附】先師所賜記文 西家東。卽東家西。繇是言之。天下終無定東乎。曰否。先立吾身。以吾七尺。嚮明而立。擧其左手曰東。此㝡東之準的也。雖然東亦有不由吾者。吾所居之國。於吾曷嘗爲左手。而見中州人東之。吾亦受以爲東國。士弘所居之塢。於士弘曷嘗爲左手。而見一邑人東之。士弘亦受以爲東塢。噫。立吾身以求東者。千萬人常知有己之義。受人言而爲東者。舍己從人之意。吾知士弘免矣。若其泉石之窈窕。雲林之瀟灑。吾未之目焉。不能懸想。而爲之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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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晩 春雨新晴晝景明。森羅和氣散郊坰。天機不待圖書玩。物像無非卦畫成。山鳥自來還自去。野花時發更時零。爰有幽人物與一。午天隨水坐虛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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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鄭周允 兩年二書。一時俱到。珍玩寶藏。雖得尺蔡拱璧。何以易此。但引喩大節拍話頭加之愚陋。甚矣。兄之不知我也。兄豈不知我。是必意在言表。以致諷切。奈僬僥不能負千斤之重何。生來受氣甚薄。自在厖髮。人已憂其不久於陽界。成童以後。粗有愚妄之志。而全昧向方。蹉過好箇時節。弱冠以後。重爲貧窮所奪。牛行馬走。不擇地而處。頭眩脚濕。是膏肓之症。劇歇則間有。而無日不發。常如觸柱受棒。不自支吾。纔過三十。眼下生花。胸中蔽霧。小間所謂懶惰者。乘時而作。悠泛放倒。各色病痛。益肆平生。不能夬讀一卷書。不能收斂半餉頃。親候長在欠攝中。憂愁焦煎。又已二十年餘。久矣大塊之勞我也。況在今日。山頹樑壞。烏頭力盡。知舊亦漸稀闊。離索寡孤。僅僅成就迂疏乖僻四字而已。精神氣魄。呼喚不起。如此而可以擔重任而說道理哉。甚是愧赧。吾兄年力富强。志氣不苟。吾知其必有所爲。向望豈淺淺也。但恨兩腋無翰。不得朝暮相從也。示意旣勒。難以孤負。請以先賢一轉語仰告。朱子曰。勿謂今日不學而有來日。勿謂今年不學而有來年。日月逝矣。歲不我延。卽於此語。三復諷咏。益復勉旃。是所區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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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權舜卿【雲煥】 前書未復。後書荐至。人之誠力勤慢。何止三十里而已哉。敬審時日栗烈。侍體百福。盛工日新。何等健羨。弟親癠至夏初。粗復和。夏秋來屢經危際。自寒節以後。長在奄奄。今方在危劇中。焦煎悶迫。日甚一日。竊視兩書。可知求道甚篤。古人已遠。後生迷方。兄不須師勉。獨能妙年奮起。可謂不待文王而興者。奇哉奇哉。但示中云云。雖德崇業廣者。猶不敢遽爾承當。況悠泛放倒。懶散自廢如愚陋者耶。騂然汗背。不知所以仰答。龜也稟質孱弱。向在二十三十內外時節。日行四五十里路。困憊數日。或夜至鷄鳴不寐。終日昏倒。且疾病纏繞一身。自晩春至暮秋。不能成聲讀書。年年例症。又無記性。自前不能成誦一卷半卷書。成誦不能。知其意味乎。加以平生無寧靜地界。因緣蹉過。未嘗有一分向裏工夫。蒲柳之質。未老先衰。精神氣魄。渙散損喪。或有所聞。盡歸烏有。甚至童子時艱辛記得若干書字。亦皆失亡。空空如蟬蛻之枯殼。而放倒自廢之外。了無可以仰告者。似此更過幾年。自家姓名三字。亦不記得。若此者亦可以引進後生歟。節節愧歎。然以我爲前車之戒。則未必不爲高明銳進之一助也。頫詢張子人要得剛之訓。張子之意。蓋掃除客慮俗心。守定不回。進道勇敢。惟在於剛。而竊謂若要如此。須是持敬。而敬則自剛。主一工夫。程子嘗曰。整齊嚴肅。則心便一。若要主一。須先用力於此四箇字上方可。盛意旣勤。仰告愚見。未知以爲如何。語不知裁。拖長至此。還爲慊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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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權舜卿 每仍便風。輒垂問存。是固吾兄長處。而亦吾兄過處也。承審是日淸和。侍棣候連得多福。慰賀慰賀。弟心喪人。親痢十餘日後。差得微效。氣息常奄奄。私悶。今月二十二日。朝家遣官弔奠于老先生靈筵。君恩罔極。吾道增光。整齊嚴肅。實踐眞境。只可責志。使弟言之。不過如此。而千萬人中常知有已。亦不過就此得力。願更勉旃。使吾黨有人。是所區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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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 김인석(金潾錫) 고신(告身) 3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光緖十九年十二月日 金潾錫 光緖十九年十二月日 高宗 金潾錫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적색, 정방형) 고흥 두원 경주김씨가 고흥분청문화박물관 HIKS_OD_F1005-01-000647 1893년(고종 30)에 고종(高宗)이 김인석(金潾錫)을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임명한 교지(敎旨). 1893년(고종30) 12월에 高宗이 金潾錫을 通政大夫에 임명한 敎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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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송주헌(宋柱憲) 망기(望記) 1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사회-조직/운영-망기 乙卯三月日 華陽儒會所 乙卯三月日 華陽儒會所 宋柱憲 華陽儒會所章 1개(흑색, 정방형) 고흥 학림 여산송씨가 고흥분청문화박물관 1915년에 화양유회소(華陽儒會所)에서 송주헌(宋柱憲)을 祭官 大祝으로 추천하는 망기와 피봉 1915년 華陽儒會所에서 宋柱憲을 祭官 大祝으로 추천하는 망기와 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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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15년 화양유회소(華陽儒會所)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乙卯三月二日 華陽儒會所 廟司 金永昌 別有司 宋胄憲 乙卯三月二日 金永昌 宋柱憲 華陽儒會所章 1개(흑색, 정방형) 고흥 학림 여산송씨가 고흥분청문화박물관 1915년에 화양유회소(華陽儒會所) 묘사(廟司) 김영창(金永昌) 등이 송주헌(宋柱憲)에게 보낸 통문과 피봉. 1915년 華陽儒會所 廟司 金永昌 등 9명이 忠淸, 慶尙, 全羅의 회원 중 宋柱憲에게 보낸 통문과 피봉, 甲戌年 萬東廟復設 官員 7명 명단, 華陽各蠲役秩. *1915년 3월 3일에 華陽儒會所에서 충청, 경상, 전라의 회원에게 華陽洞書院의 萬東廟 운영을 위하여 힘써서 재물을 거두어주길 청하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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