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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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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연도>道光十三年癸巳</연도>十一月十六日<인명>柳三基</인명>前明文右明文事段自己買得畓伏在<지명>安德洞</지명>扶字六斗落只所耕十五卜庫乙累年耕食是以可本五十五價依數捧上本文記一丈幷以出給爲去乎令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爻象之端則持此憑考事畓主自筆 <인명>高時大</인명>[着名]證人 <인명>李良連</인명>[着名]又證人 <인명>柳光玉</인명>[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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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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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1913년 이낙선(李樂善) 토지매매계약서(土地賣買契約書) 1 고문서-명문문기류-계약서 경제-매매/교역-계약서 大正二年三月五日 高濟英 李樂善 大正二年三月五日 高濟英 전북 부안군 [印] 3개 1.2*1.2 1개(적색, 원형), 1.0*0.8 4개(적색, 타원형), 0.7*0.7 1개(적색, 원형)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13년 3월 5일에 고제영(高濟英)과 이낙선(李樂善)이 부안군 하서면 청일리에 있는 논을 거래하면서 함께 작성한 토지매매계약서(土地賣買契約書). 1913년 3월 5일에 고제영(高濟英)과 이낙선(李樂善)이 부안군(扶安郡) 하서면(下西面) 청일리(晴日里)에 있는 논을 거래하면서 함께 작성한 토지매매계약서(土地賣買契約書)이다. 고제영은 거래 당시 부안군(扶安郡) 하서면(下西面) 원중리(元中里)에 살고 있었으며, 이낙선은 부안군(扶安郡) 동도면(東道面) 선은동(仙隱洞)에 살고 있었다. 거래 대상이 된 논은 부안군(扶安郡) 하서면(下西面) 청일리평(晴日里坪)에 있는 휘자(暉字) 785호 논으로 1야미 2두락으로, 부수(負數)로는 5부 2속이었다. 매매가는 30원이었다. 고제영과 이낙선 외에 보증인으로 원중리에 사는 이익삼(李益三)이 거래에 참여하여 함께 날인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현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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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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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연도>光武十一年</연도>丁未六月初八日 前明文右明文事要用所致夫伏在<지명>南一面</지명>大石後□字田四斗落所畊八負庫乙価折錢文㱏佰參拾兩依數捧上是遣舊文記中間閪失以新文記一張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說則持此文記憑考事田主 幼學 <인명>崔仁彦</인명>[着名]證人 幼學 <인명>崔永淑</인명>[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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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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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연도>戊申</연도>三月初十日<인명>任京泰</인명>葉錢壹千肆佰兩捧上印票主<인명>郭</인명>[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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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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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10년 이상구(李相九)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庚戌十一月二十八日 李相九 庚戌十一月二十八日 李相九 전북 부안군 喪不着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10년(융희 4) 11월 28일에 이상구(李相九)가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10년(융희 4) 11월 28일에 이상구(李相九)가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부안군(扶安郡) 입하면(立下面) 우동리(愚東里) 전평(前坪) 사자답(謝字畓) 4두락지(斗落只)와 척자답(慼字畓) 6두락지, 그리고 하자(荷字) 태종전(太種田) 2두(斗) 5승락지(升落只)인 곳들의 문서가 가대문권(家垡文券)과 함께 붙어 있어 내어 줄 수가 없다는 내용이다. 이날 이루어진 거래는 총 4곳의 토지였는데 관련문서 "1910년 이상구(李相九)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를 참고해보면 이 중에서 저전(苧田)을 제외한 나머지 3곳의 문서가 집문서와 함께 묶여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래서 신문기(新文記) 즉, "1910년 이상구(李相九)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문기 앞에 본 문서를 첨부한 것으로 보인다. 거래 당시 이상구는 상중(喪中)이어서 문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이상구의 자(字)는 정수(正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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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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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연도>道光元年辛巳</연도>十二月初二日 前明文右明文事段矣宅有緊用處<지명>宅泉洞</지명>伏在玄字畓四斗落三作所耕合十一負一束㐣以賣納之意成牌出給故右人前捧價錢三十五兩永永放賣爲乎矣本文段他畓幷付故不得出給爲去乎日後如有相左之端則以此記卞正事畓主李生員宅奴 丁金[着名]證筆 <인명>徐有祿</인명>[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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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연도>嘉慶二十四年己卯</연도>十二月初五日 前明文右明文事段以移買次傳來衿得畓<지명>東道擇相洞</지명>前坪伏在玄字四斗落所耕七卜庫乙右人前捧價錢三十五兩永永放賣爲矣本文記段他畓並付故不得出給日後或有相左之端則以此文憑考事畓主 幼學 <인명>李養淳</인명>[着名]證筆 幼學 <인명>田福休</인명>[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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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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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81년 전인후(田仁厚)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七年辛巳十月初九日 幼學田仁厚 光緖七年辛巳十月初九日 幼學 田仁厚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81년(고종 18) 10월 초9일에 전인후(田仁厚)가 저전(苧田)을 팔면서 작성한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81년(고종 18) 10월 초9일에 유학(幼學) 전인후(田仁厚)가 부안현 동도면 선은동 촌중에 있는 저전(苧田)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거래의 대상이 된 밭은 그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모시밭 1두락으로, 부수(負數)로는 8속(束)이 되는 면적이며, 매매가격은 15냥이었다. 그는 구문기 1장을 매입자에게 넘겨 주었다. 유학 전용진(田溶鎭)이 필집(筆執)으로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문서에 매입자는 적혀 있지 않지만, 밭의 소재지이자 이 문서의 소장처인 선은동에 살았던 부안의 전주이씨가로 추정된다. 선은동은 오늘날의 부안군 부안읍 선은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현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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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13년 최경수(崔景壽) 방매(放賣) 가사매매명문(家舍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가사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嘉慶十六年癸酉五月二十日 崔景壽 嘉慶十六年癸酉五月二十日 최경수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1.0*1.0 1개(적색, 원형)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13년(순조 13) 5월 20일에 유학 최경수(崔景壽)가 생질(甥姪)에게 가대(家垈)를 팔면서 작성한 가사매매명문(家舍賣買明文) 1813년(순조 13) 5월 20일에 유학 최경수(崔景壽)가 생질(甥姪)에게 가대(家垈)를 팔면서 작성한 가사매매명문(家舍賣買明文)이다. 최경수는 이사를 하기 위하여 자기가 손수 지은 초가 4칸과 대지 2두락지를 생질(甥姪)에게 40냥을 받고 팔았다. 거래 당시 나중에 만약 문제가 생기면 이 문서를 관에 고하여 증빙하라고 하였다. 당시 가대주 유학 최경수와 증필로 유학 이양하(李養河)가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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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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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연도>嘉慶十六年</연도>癸酉五月二十日 前明文右明文事段以移徙次自己成造草家肆間果垈田貳斗落只所畊伍負㐣価折錢文肆拾兩捧上爲遣甥姪處永永放賣爲去乎日後如有舊閙之端則持此文記告官卞正事家垈主 幼學 <인명>崔景壽</인명>[着名]證筆 幼學 <인명>李養河</인명>[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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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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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90년 김인숙(金仁淑)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十六年庚寅十月二十五日 金仁淑 光緖十六年庚寅十月二十五日 김인숙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90년(고종 27) 10월 25일 김인숙(金仁淑)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 지비리(之飛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90년(고종 27) 10월 25일 김인숙(金仁淑)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 지비리(之飛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논의 주인 김인숙은 긴히 돈을 쓸데가 있어서 자신이 매득하여 경작해 왔던 논을 팔게 되었다. 보통 명문(明文)에서는 땅을 파는 이유를 가계가 어렵거나, 장례비용이 없거나, 흉년이 들거나, 다른 땅이나 집을 사려는 등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기재하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대개 요용소치(要用所致)나 절유용처(切有用處) 등으로 간략히 기재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부안현 일도면 지비리 전평(前坪) 누자답(樓字畓) 10두락지(斗落只)이며 부수(負數)로는 23부(負) 4속(束)인 곳이다. 방매(放賣) 가격은 45냥이다. 지비리는 현재의 부안군 동진면 지비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負,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낙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매도인(賣渡人) 김인숙은 새로 작성한 문서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구문기(舊文記) 3장(丈)을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신문기(新文記)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논의 주인 김인숙과 증인(證人)으로는 정화숙(鄭化淑)이 참여하였다. 그들은 각자의 이름을 쓰고 서명을 하였다. 추가로 본문에 일장(一張)은 일장(一丈)으로 써야 바른 표기이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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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이석기(李石奇) 표(票) 고문서-증빙류-수표 경제-회계/금융-수표 隆熙三年 票主 李碩奇 隆熙三年 李碩奇 전북 부안군 [印]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9년에 이석기(李碩奇)가 작성해 준 약속문서 융희(隆熙) 3년(1909) 윤 2월에 이석기(李碩奇)가 작성한 표이다. 표란 상대방에게 어떤 사안을 약속하면서 작성해 주는 약속문서이다. 그리고 융희는 1907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순수 조선시대의 연호(年號)였다. 조선시대의 최초 연호는 고종이 1897년부터 사용하였던 광무(光武)였는데, 우리가 광무라는 연호를 사용하기 전에는 문서를 작성하면서 중국 측 연호를 사용하였다. 표는 수료라고도 하였는데, 이석기가 본 표를 작성하게 된 이유는 담내제(擔內堤)아래에 있는 명자(鳴字) 답(畓) 5두락을 팔기로 했다는 점을 약속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니까 본 매매 계약서를 작성하기 이전에 본 수표를 써 줌으로써 앞으로의 매매 사실을 분명히 해 주었던 셈인데, 다만 이석기가 누구에게 본 표를 작성해 주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이름이 적혀 있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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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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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67년 정량언(鄭良彦)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陸年丁卯十月三十日 鄭良彦 同治陸年丁卯十月三十日 鄭良彦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喪不着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67년(고종 4) 12월 30일에 정량언(鄭良彦)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궁신리(弓新里) 전평(前坪)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67년(고종 4) 12월 30일에 정량언(鄭良彦)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궁신리(弓新里) 전평(前坪)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그는 이 논을 선대로부터 물려받아 여러 해 동안 경작해 왔으나 부득이한 사정으로 팔게 되었다고 매매사유를 적고 있다. 매매 대상이 된 논들은 복자답(服字畓) 12두락지로, 부수(負數)로는 24부 되는 곳으로, 매매가격은 180냥이었다. 구문기는 다른 전답 문서에 붙어 있어서 주지 못하고 신문기 1장만 매입자에게 건네주었다. 뒷날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관에 고하여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논 주인인 정량언은 상중(喪中)이어서 서명하지 않았다. 한용호(韓用浩)가 증인으로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고, 박내윤(朴乃允)이 필집(筆執)으로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논이 있는 상동면 궁신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동진면 장등리 일대에 해당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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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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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엄주성(嚴柱成) 서간(書簡) 피봉(皮封)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嚴柱成 金昌鶴 嚴柱成 전북 부안군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군(扶安郡) 상동면(上東面) 봉황리(鳳凰里)에 사는 엄주성(嚴柱成)이 같은 면 내기리(內基里)에 사는 김창학(金昌鶴)에 보낸 서간(書簡)의 피봉(皮封). 부안군(扶安郡) 상동면(上東面) 봉황리(鳳凰里)에 사는 엄주성(嚴柱成)이 같은 면 내기리(內基里)에 사는 김창학(金昌鶴)에 보낸 서간(書簡)의 피봉(皮封)이다. 피봉의 이면에 6월 10일이라고 보낸 날자를 적었지만 년도는 알 수 없다. 한편 수신인은 '金技士昌鶴氏'라고 적고 있으며, 접합이매재중(接合二枚在中)이라고 내용물을 표시하였다. 상동면 봉황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동진면 봉황리에 해당하는 곳이며, 내기리는 부안군 동진면 내기리에 해당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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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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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聽 聖上痘慶與朴晩醒【明壽】相賀 海東仙李復王春 痘慶蓋由肅廟仁 八域抃鰲歌老少 九重稱兕賀隣臣 雖堪唐主昭陵感 將筮周邦永命新 幸蒙草野無遺澤 登庸他日啓情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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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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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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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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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崔箕瑞【福奎】 憶曾六十邇來事 驂竹杖鳩一夢場 齒差二三爲友善 居連南北作隣芳 相論無處峨洋曲 共討有傳月露章 俊子賢孫餘慶大 德門安得不云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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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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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金子榮【塘】 交契平生無老少 惟公於我最相親 克勤克儉堅心地 可士可農率性天 傳襲鷄林稱古宅 滋培棠棣復新春 浮生八耋如流水 夐聽薤歌倍傷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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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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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戚兄金夔龍【幼養】 吾嘗歷覽古之人 至行無多備一身 三世孝慈嘆柳郢 二難友愛詠楊津 范公義篤親疎族 馬氏禮勤數會賓 蓮谷斯翁能繼往 知應先哲作芳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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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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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輓靜虛窩上舍族弟【源坤】 靜虛坐了七旬春 宗族咸稱君子人 蓮榜香名終繼孝 箕疇遐壽盖由人 如兄如弟情猶舊 同契同庚誼益新 誰識遺賢斯世老 也應陞召玉京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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