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김자익(金子益)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開國五百五年丙申九月十九日 幼學 忠淸道龍湖 金子益 開國五百五年丙申九月十九日 幼學 金子益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96년 9월 19일에 김자익(金子益)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궁월리(弓月里)에 있는 논들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96년 9월 19일에 김자익(金子益)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고마제(叩馬堤) 아래의 궁월리(弓月里) 동서남평(東西南坪)에 있는 논들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그는 이 논들을 자신이 매득하여 여러 해 동안 세를 받아왔으나, 어쩔 수 없는 형편으로 논을 팔게 되었다고 매매사유를 적고 있다. 매매 대상이 된 논들은 복자답(服字畓) 12두락, 거영(渠永) 1두락, 상답(上畓) 3무(畝) 30부 4속, 복자답 8두락 20부 4속, 내자답(乃字畓) 12두락 35부 5속, 내자답 9두락 궁결(宮結) 29부 2속, 관자답(官字畓) 9두락 24부 6속, 조자답(鳥字畓) 16두락 37복 1속, 관자답 12두락 28부 6속 등 아홉 곳으로 매매가격은 1,400냥이었다. 거래시 구문기 9장과 신문기 1장을 매입자에게 넘겨주었으며, 뒷날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이 때 건네 준 구문기의 하나가 "1890년 최영심(崔永心)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인데, 불과 6년 사이에 논값이 600냥에서 1,400냥으로 2배 이상 올랐음을 확인할 수 있다. 거래 당시 충청도 용호(龍湖)에 살고 있었던 유학 김자익이 문서에 서명하였으며, 유학 김원겸(金元謙)이 증인으로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논이 있는 상동면 궁월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동진면 장등리 일대에 해당하는 곳이며, 고마제는 오늘날의 부안군 동진면 내기리에 있는 대규모 저수지에 해당하는 곳이다. 문서에 매입자는 적혀 있지 않지만, 이 문서의 소장처인 선은동에 살았던 부안의 전주이씨가로 추정된다. 선은동은 오늘날의 부안군 부안읍 선은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현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