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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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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94년 고덕인(高德仁) 수표(手標) 고문서-증빙류-수표 경제-회계/금융-수표 甲午二月初一日 高德仁 甲午二月初一日 고덕인 전북 부안군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94년(고종 31) 2월 10일에 유학 고덕인(高德仁)이 작성한 수표(手標) 1894년(고종 31) 2월 10일에 유학 고덕인(高德仁)이 작성한 수표(手標)이다. 고덕인은 다른 곳의 전답을 매입하기 위하여 앞서 같은 날 부안 상동면(上東面) 제내리(堤內里)의 촌전답(村前畓) 9두락을 팔았다. 그런데 이 논의 본문기에 김제(金堤)에 사는 김옥현(金玉玄)의 문서가 다른 논의 문서와 붙어 있어서 출급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중에 만약 말썽이 날 것 같으면 이 수표로 증빙하라고 써준 표이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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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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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연도>光武拾年丙午</연도>十二月卄日 明文右明文事要用所致伏在一道仙谷內坪太種田臨字參斗落所耕七負一束㐣價折錢文參拾兩依數捧上是遣以新舊文二張右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他說則持此文記憑考事田主 幼學 <인명>田京洪</인명>證人 幼學 <인명>任禹範</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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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연도>光緖三年</연도>丁丑四月初四日 前明文右明文事要用所致傳來伏在<지명>扶安一道面仙谷坪</지명>太種田臨字三斗落所耕七負一束㐣價折錢文玖兩依數捧上右人前永永放賣日後如有爻端持此文記憑考事田主 幼學 <인명>田溶鎭</인명>[着名]證人 幼學 <인명>李奎煥</인명>[着名]此亦中 舊文記中古遺失故不得出給(背面)仙谷坪臨字田所耕七負一束三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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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김덕행(金德行)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武四年庚子三月初一日 金德行 光武四年庚子三月初一日 김덕행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0년 3월 1일에 김덕행(金德行)이 부안군 하서면(下西面) 삼현동(三賢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00년 3월 1일에 김덕행(金德行)이 부안군 하서면(下西面) 삼현동(三賢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덕행은 긴급하게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삼현동 전평에 있는 논 6두락지를 24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구문기는 유실되어서 출급하지 못하고 신문기 1장을 매입자에게 건네면서 나중에 만약 말썽이 있으면 이 문서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주인 김덕행과 증인으로 박춘삼(朴春三), 집필로 박경원(朴慶元) 등 3명이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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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연도>光武四年</연도>庚子三月初一日 明文右明文事段急有緊用處伏在<지명>下西三賢洞前坪</지명> 字畓六斗落只所耕十五負㐣価折錢文貳佰肆拾兩依數捧上是遣旧文中間迺失故不得出給而以新文一張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端以此文憑考事畓主 <인명>金德行</인명>[着名]證人 <인명>朴春三</인명>[着名]筆執 <인명>朴慶元</인명>[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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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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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00년 김덕행(金德行)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大韓光武四年庚子三月初一日 金德行 大韓光武四年庚子三月初一日 김덕행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0년 3월 1일에 유학 김덕행(金德行)이 부안군 하서면(下西面) 삼현동(三賢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00년 3월 1일에 유학 김덕행(金德行)이 부안군 하서면(下西面) 삼현동(三賢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덕행은 다른 지역에 있는 논을 매입하기 위하여 삼현동에 있는 논 6두락지를 24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구문기는 다른 문권에 붙어 있어서 신문기 1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었다. 나중에 만약 이 논을 두고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주인 유학 김덕행과 증인으로 유학 장내성(張乃成), 증필로 유학 박화연(朴化連) 등 3명이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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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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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83년 동도선은동(東道仙隱洞) 화민(化民) 이규환(李奎煥)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癸未三月 日 李奎煥 城主 癸未三月 日 李奎煥 전북 부안군 [署押] 1개 7.0*7.0 3개(적색, 정방형)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83년(고종 20) 3월에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선은동(仙隱洞)의 화민(化民) 이규환(李奎煥)이 부안현감(扶安縣監)에게 올린 소지(所志). 1883년(고종 20) 3월에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선은동(仙隱洞)의 화민(化民) 이규환(李奎煥)이 자신의 돈을 빌려간 뒤 갚지 않고 있는 김치서(金致西) 부자(父子)를 처벌해달라면서 부안현감(扶安縣監)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이규환이 김치서 부자와 관련하여 관에 올린 소지가 이 문서 외에 몇 건 더 있는데, 이를 함께 참고하여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지난 계유년, 즉 2년 전인 1873년 12월에 부안현 상동면(上東面) 익상리(翼上里)에 사는 김원숙(金元叔)이라는 자가 여러 차례 이규환을 찾아와서 큰 이익을 보게 해줄 터이니 30냥을 꾸어달라고 하였다.(金元淑으로 나오는 문서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요호(饒戶)로 분류되어 30냥의 세금을 납부해야 했던 이규환은 남에게서 돈을 빌려 수표(手標)를 받고 김원숙에게 30냥을 빌려 주었다. 그러나 김원숙은 시간을 끌면서 돈을 갚지 않았다. 이에 이규환은 관에 소지를 올려 제사(題辭)를 받고 김원숙으로부터 돈을 갚겠다는 수표(手標)를 다시 받았지만, 갚기로 한 기일이 지나도록 돈을 받지 못했다. 그 뒤 김원숙은 서울에 가서 살면서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규환은 김원숙의 동생 김성숙(金成叔)과 부친 김치서(金致瑞)를 여러 차례 집으로 찾아가 수표를 보여주며 돈을 돌려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김치서는 상당한 재력가이면서도 돈을 갚기는커녕, 자식이 누구인지도 모르면 30냥 또한 모르는 돈이라고 우겼다. 이규환은 남에게서 돈을 빌려간 뒤에 이처럼 사람을 기망하고 윤리를 그르치고 의리를 멸시하는 이들을 가리켜 그 아비에 그 아들이라고 하면서 관에 김원숙의 부친과 동생 김성숙 등을 즉시 잡아들이는 한편, 본전과 이자까지 계산하여 관에서 추급(推給)할 수 있도록 보장해달라고 하였다. 이규환은 소지를 올리면서 관련 수표와 이전에 올렸던 소지들을 점련하여 함께 제출했다. 부안현감은 이들을 조사하여 추급할 수 있도록 김원숙의 부친과 동생을 데려오라고 하였다. 본문에는 작성연대가 계미년으로만 되어 있지만, 다행히도 이규환이 전답을 사들이면서 작성한 명문(明文) "1873년 이규환(李奎煥)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 있어서 이를 토대로 계미년을 1883년으로 추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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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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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奴<인명>丁金</인명>處無他宅有緊用處宅<지명>泉洞</지명>言字畓四負㐣果同字畓五負一束㐣果同字畓二負㐣合四斗落乙願買人處捧凖價納宅後成文以給是矣本文記段他畓並付故不得出給成文時以此意措辭宜當事<연도>辛巳</연도>十一月二十五日上典 <인명>李<인명>[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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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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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1875년 동도선은동(東道仙隱洞) 화민(化民) 이규환(李奎煥) 소지(所志) 1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乙亥七月 日 李奎煥 城主 乙亥七月 日 李奎煥 전북 부안군 [署押] 1개 7.0*7.0 4개(적색, 정방형)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5년(고종 12) 7월에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선은동(仙隱洞)의 화민(化民) 이규환(李奎煥)이 부안현감(扶安縣監)에게 올린 소지(所志). 1875년(고종 12) 7월에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선은동(仙隱洞)의 화민(化民) 이규환(李奎煥)이 자신의 돈을 빌려간 뒤 갚지 않고 있는 김치서(金致西) 부자(父子)를 처벌해달라면서 부안현감(扶安縣監)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이규환이 김치서 부자와 관련하여 관에 올린 소지가 이 문서 외에 몇 건 더 있는데, 이를 함께 참고하여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지난 계유년, 즉 2년 전인 1873년 12월에 부안현 상동면(上東面) 익상리(翼上里)에 사는 김원숙(金元淑)이라는 자가 여러 차례 이규환을 찾아와서 큰 이익을 보게 해줄 터이니 30냥을 꾸어달라고 하였다.(金元叔으로 나오는 문서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요호(饒戶)로 분류되어 30냥의 세금을 납부해야 했던 이규환은 남에게서 돈을 빌려 수표(手標)를 받고 김원숙에게 30냥을 빌려 주었다. 그러나 김원숙은 시간을 끌면서 돈을 갚지 않았다. 이에 이규환은 관에 소지를 올려 제사(題辭)를 받고 김원숙으로부터 돈을 갚겠다는 수표(手標)를 다시 받았지만, 갚기로 한 기일이 지나도록 돈을 받지 못했다. 그 뒤 김원숙은 서울에 가서 살면서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규환은 김원숙의 동생 김성숙(金成叔)과 부친 김치서(金致瑞)를 여러 차례 집으로 찾아가 수표를 보여주며 돈을 돌려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김치서는 상당한 재력가이면서도 돈을 갚기는커녕, 자식이 누구인지도 모르면 30냥 또한 모르는 돈이라고 우겼다. 이규환은 남에게서 돈을 빌려간 뒤에 이처럼 사람을 기망하고 윤리를 그르치고 의리를 멸시하는 이들을 가리켜 그 아비에 그 아들이라고 하면서 관에 김치서를 잡아다가 엄히 다스리는 한편 본전 30냥에 이자를 계산하여 돌려받게 해달라고 탄원하였다. 이규환은 소지를 올리면서 관련 수표와 이전에 올렸던 소지들을 점련하여 함께 제출했다. 부안현감은 무엄한 이들을 엄히 다스려 추급(推給)해 주겠다면서 잡아서 대령하라는 제사(題辭)를 내렸다. 본문에는 작성연대가 을해년으로만 되어 있지만, 다행히도 이규환이 전답을 사들이면서 작성한 명문(明文) "1873년 이규환(李奎煥)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 있어서 이를 토대로 을해년을 1875년으로 추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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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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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연도>光緖十六年</연도>庚寅十月二十五日 前明文右明文事切有緊用處自己買得伏在<지명>一道之飛里</지명>前坪樓字畓拾斗落只所耕貳拾參負肆束㐣価折錢文肆拾伍兩依數捧上是遣旧文記三張新文一張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說則以此文記憑考事畓主 <인명>金仁淑</인명>[着名]證人 <인명>鄭化淑</인명>[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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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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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연도>道光二年壬午</연도>十月初五日<인명>崔龍甲</인명> 前明文右明文事段自己買得累年耕食是如可勢不得已生道極難故<지명>弓月里</지명>後坪伏在乃字畓十二斗落只所耕三十五負五束㐣価折錢文八十五兩依數交易捧上爲遣右人前本文記一丈永永放賣爲去乎日後同生子孫族屬等中間異[說]之弊是去等持此文記告 官卞正事自筆 幼學 <인명>韓守光</인명>[着名]證人 <인명>李得良</인명>[着名](背面)<지명>仙洞</지명><인명>李議官</인명>券 二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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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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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1916년 박균석(朴均碩) 계약서(契約書) 고문서-명문문기류-계약서 경제-매매/교역-계약서 大正五年陰二月三日 朴均碩 李承冕 大正五年陰二月三日 朴均碩 전북 부안군 [印] 2개 1.1*1.1 2개(적색, 원형)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16년 음력 2월 3일에 박균석(朴均碩)이 토지 거래와 관련한 보존증명서류를 기한 내에 제출하기로 약속하면서 매입자인 이승면(李承冕)에게 작성해 준 계약서(契約書). 1916년 음력 2월 3일에 박균석(朴均碩)이 토지 거래와 관련한 보존증명서류를 기한 내에 제출하기로 약속하면서 매입자인 이승면(李承冕)에게 작성해 준 계약서(契約書)이다. 박균석은 이 해 2월 13일에 부안군(扶安郡) 산내면(山內面) 연동리(蓮洞里)와 보안면(保安面) 만화동(萬化洞)의 논을 이승면(李承冕)에게 420원을 받고 팔기로 하는 내용의 매도계약서를 체결하였다. 본 문서는 이 토지거래보다 열흘 앞서 작성된 것으로, 관련 보존증명서류의 제출의 늦어지자 금년 음력 3월 15일까지 서류를 매입자에게 제출하겠다는 내용이다. 만일 기한을 어기면 이전증명비를 부담한다고 하였다. 1916년에 박균석이 작성한 영수증과 매도증서도 이 거래와 관련된 것이다. 논이 있었던 연동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진서면 진서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며, 만화동은 부안군 보안군 신복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매입자인 이승면은 이 문서의 소장처인 부안 선은동의 전주이씨가의 일원으로 추정된다. 선은동은 오늘날의 부안군 부안읍 선은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현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916년 박균석(朴均碩) 영수증(領收證) 1 고문서-증빙류-영수증 경제-회계/금융-영수증 大正五年二月十五日 朴均碩 李承冕 大正五年二月十五日 朴均碩 전북 부안군 [印] 1개 1.2*1.2 7개(적색, 원형)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16년 2월 15일에 박균석(朴均碩)이 이승면(李承冕)으로부터 토지거래 대금 200원을 받고 써준 영수증(領收證). 1916년 2월 15일에 박균석(朴均碩)이 이승면(李承冕)으로부터 토지거래 대금 200원을 받고 써준 영수증(領收證)이다. 박균석은 이 해 2월 13일에 부안군(扶安郡) 산내면(山內面) 연동리(蓮洞里)와 보안면(保安面) 만화동(萬化洞)의 논을 이승면(李承冕)에게 420원을 받고 팔기로 하는 내용의 매도계약서를 체결하였다. 아마 200원은 그 중 일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매입자인 이승면은 이 문서의 소장처인 부안 선은동의 전주이씨가의 일원으로 추정된다. 선은동은 오늘날의 부안군 부안읍 선은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논이 있었던 연동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진서면 진서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며, 만화동은 부안군 보안군 신복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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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연도>甲午</연도>二月初十日 手標右手標事移畓次<지명>上東堤內里</지명>村前畓九斗落右人前放賣是矣<지명>金堤</지명><인명>金玉玄</인명>文記幷付他畓文券故不得出給則日後若有爻象之端以此標憑告事標主幼學 <인명>高德仁</인명>[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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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70년 신재영(辛在英)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九年庚午五月十五日 辛在英 同治九年庚午五月十五日 신재영 전북 부안군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0년(고종 7) 5월 15일에 신재영(辛在英)이 부안 상동면(上東面) 제내리(堤內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0년(고종 7) 5월 15일에 신재영(辛在英)이 부안 상동면(上東面) 제내리(堤內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신재영은 다른 곳의 전답을 매입하기 위하여 제내리 마을 앞의 칭자정(稱字丁) 9두락과 쌍고제(雙雇堤) 아래 함자정(醎字丁) 13두락 그리고 사자정(師字丁) 5두락 등 모두 합하여 다섯 곳의 두수 34두락이 되는 규모의 논들을 694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구문서중 네 곳의 문서는 다른 논문서와 붙어 있어서 한 곳의 구문서 2장과 신문서 1장을 건네주면서 이 문서를 증거로 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주인 신재영이 단독으로 거래문기에 서명 처리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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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이석기(李石奇)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武十年丙午三月初一日 李石奇 光武十年丙午三月初一日 이석기 전북 부안군 [印]3개 4.0*4.0 3개(적색, 원형)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6년 3월 1일에 이석기(李石奇)가 부안 묘라리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06년 3월 1일에 이석기(李石奇)가 부안 묘라리(竗羅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이석기는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묘라리 전평(前坪)에 있는 명자답(鳴字畓) 6두락을 32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신구문기 4장을 매입자에게 건네 주면서 나중에 만약 이 논을 두고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주인 이석기와 증필로 임은숙(任殷淑), 증인으로 오양숙(吳良淑) 등 3명이 거래에 참여하여 날인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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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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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최영심(崔永心)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十六年庚寅二月十七日 崔永心 光緖十六年庚寅二月十七日 崔永心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90년 2월 17일에 최영심(崔永心)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궁월리(弓月里)에 있는 논들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90년 2월 17일에 최영심(崔永心)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궁월리(弓月里) 동서남평(東西南坪)에 있는 논들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그는 이 논들을 선대로부터 물려받아 여러 해 동안 경작해 왔으나, 어쩔 수 없는 형편으로 논을 팔게 되었다고 매매사유를 적고 있다. 매매 대상이 된 논들은 고마제(叩馬堤) 아래에 있는 복자답(服字畓) 12두락, 거영(渠永) 1두락, 상답(上畓) 3무(畝) 30부 4속, 복자답 8두락 20부 4속, 내자답(乃字畓) 12두락 35부 5속, 내자답 9두락 궁결(宮結) 29부 2속, 관자답(官字畓) 9두락 24부 6속, 조자답(鳥字畓) 16두락 21복 1속, 관자답 12두락 28부 6속 등 아홉 곳으로 매매가격은 600냥이었다. 거래시 구문기 8장과 신문기를 매입자에게 넘겨주었으며, 뒷날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관에 고하여 증빙하라고 하였다. 최영심이 문서에 서명하였으며, 유학 한응화(韓應化)가 증인으로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논이 있는 상동면 궁월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동진면 장등리 일대에 해당하는 곳이며, 고마제는 오늘날의 부안군 동진면 내기리에 있는 대규모 저수지에 해당하는 곳이다. 최영심이 작성한 이 명문은 "1896년 김자익(金子益)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의 구문기이다. 최영심은 같은 해 11월 초2일에도 상동면(上東面) 궁월리(弓月里) 동평(東坪) 통수동(通水洞)에 있는 의자답(衣字畓) 5두 5승락을 78냥에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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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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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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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연도>光緖十六年庚寅</연도>二月十七日 前明文右明文事傳來畓累年捧稅是多可勢不得已伏在<지명>全羅道扶安上東面弓月里</지명>東西南坪叩馬堤下服字畓十二斗落果渠永一斗落果上畓三畝所耕三十負四束庫果服字八斗落所耕二十負四束庫果乃字十二斗落所耕三十五負五束庫果乃字畓九斗落所耕宮結二十九負二束庫果官字畓九斗落所耕二十四負六束庫果鳥字畓十六斗落所耕二十一卜一束庫果官字畓十二斗落所耕二十八負六束㐣価折錢文陸佰兩依數捧上是遣右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談則以此文告 官卞正事畓主扶安上東 <인명>崔永心</인명>[着名] 此亦中新文記一丈果旧文記八張出給事證人扶安 <인명>韓應化</인명>[着名]證筆扶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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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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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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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96년 김자익(金子益)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開國五百五年丙申九月十九日 幼學 忠淸道龍湖 金子益 開國五百五年丙申九月十九日 幼學 金子益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96년 9월 19일에 김자익(金子益)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궁월리(弓月里)에 있는 논들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96년 9월 19일에 김자익(金子益)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고마제(叩馬堤) 아래의 궁월리(弓月里) 동서남평(東西南坪)에 있는 논들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그는 이 논들을 자신이 매득하여 여러 해 동안 세를 받아왔으나, 어쩔 수 없는 형편으로 논을 팔게 되었다고 매매사유를 적고 있다. 매매 대상이 된 논들은 복자답(服字畓) 12두락, 거영(渠永) 1두락, 상답(上畓) 3무(畝) 30부 4속, 복자답 8두락 20부 4속, 내자답(乃字畓) 12두락 35부 5속, 내자답 9두락 궁결(宮結) 29부 2속, 관자답(官字畓) 9두락 24부 6속, 조자답(鳥字畓) 16두락 37복 1속, 관자답 12두락 28부 6속 등 아홉 곳으로 매매가격은 1,400냥이었다. 거래시 구문기 9장과 신문기 1장을 매입자에게 넘겨주었으며, 뒷날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이 때 건네 준 구문기의 하나가 "1890년 최영심(崔永心)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인데, 불과 6년 사이에 논값이 600냥에서 1,400냥으로 2배 이상 올랐음을 확인할 수 있다. 거래 당시 충청도 용호(龍湖)에 살고 있었던 유학 김자익이 문서에 서명하였으며, 유학 김원겸(金元謙)이 증인으로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논이 있는 상동면 궁월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동진면 장등리 일대에 해당하는 곳이며, 고마제는 오늘날의 부안군 동진면 내기리에 있는 대규모 저수지에 해당하는 곳이다. 문서에 매입자는 적혀 있지 않지만, 이 문서의 소장처인 선은동에 살았던 부안의 전주이씨가로 추정된다. 선은동은 오늘날의 부안군 부안읍 선은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현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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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계약서

土地賣買契約書右契約事ᄂᆞᆫ 當此窮節하야 本郡下西面頓池里坪荒字四七三八畓三斗落價折錢文捌拾兩依數捧上이고旧文一張과以新文一張으로右人前에永永放賣하거온日後若有支節이면以此文記憑考事<연도>大正二年</연도>陰四月二十日<지명>下西面頓池里</지명>三統三戶賣渡人 <인명>李京白</인명>[印]再郡廳連名簿<인명>金成彩</인명>名下로在하니陰四月晦日內異動ᄒᆞ을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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