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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述 人於萬物得眞源。各具七情與四端。學到顔淵能克復。詩如杜老奈飢寒。山樓軒闊容身易。世路崎嶇立脚難。吾識子陵高尙志。明時不仕釣桐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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次和平會韻二首 和平盛會亂平時。百里停雲隔遠思。以善相觀先擇友。結情同樂更酬詩。四明狂客良憐我。一斗文章獨有誰。只恨末筵參未得。山窓頹臥夢魂遲。不見伊人問幾時。高樓明月遠相思。閒居痛飮三杯酒。危坐長吟一幅詩。賦識凌雲楊意我。琴彈流水子期誰。諸君莫說和平樂。風雨西天霽色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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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두집(小蠹集) 10卷 4冊 小蠹集 小蠹集 고서-집부-별집류 교육/문화-문학/저술-문집 문집 표점영인 小蠹集 序: 庚戌(1910)...奇宇萬 序: 庚戌(1910)...奇宇萬 鄭河源 古活字本(後期木活字) 4 10行21字 한자 內向二葉花紋魚尾 미상 국립중앙도서관 1910년에 간행한 조선 말기의 학자 정하원(鄭夏源, 1827~1902)의 시문집. ?소두집(小蠹集)? 해제 1. 정하원(鄭夏源)의 생애 『소두집(小蠹集)』은 정하원(鄭夏源, 1827~1902)의 시문집이다. 10권 4책 목활자본으로 1910년에 간행되었다. 정하원의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희청(希淸), 호는 소두(小蠹)이다. 진양군(晋陽君) 정황(鄭璜)의 후손이며, 증조는 계당(溪堂) 정회찬(鄭悔燦, 1759∼1831), 조부는 정인규(鄭麟奎)이다. 아버지는 학와(學窩) 정종하(鄭鍾夏)로, 송시열(宋時烈)의 6대손인 조선후기의 주자학자 강재(剛齋) 송치규(宋穉圭, 1759~1838)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스승의 장려와 칭찬이 두터웠다. 어머니는 연안 이씨(延安 李氏) 이광배(李光培)의 딸이다. 생부는 정종은(鄭鍾殷)이며, 생모는 평산 신씨(平山申氏) 신종팔(申宗八)의 딸로, 연안 이씨가 자식이 없어 정하원이 그 후사를 이었다. 정하원은 1827년(순조27) 3월 16일에 태어나 1902년(고종22) 10월 9일 향년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증조인 계당(溪堂) 정회찬(鄭悔燦)에게 가학(家學)을 익혔다. 일찍 학문에 뜻을 두어 그 지인들과 주고받은 글에서 명덕(明德)·이기(理氣)·형상형하(形上形下)의 변론을 발휘하였는데, 기우만, 최익현 등과 시와 서를 통해 교유하며 학문적 기반을 다졌으며,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며 성리학을 닦고 학행이 뛰어났다. 정하원은 어려서부터 타고난 자질이 뛰어나 그 재주가 무리들 중에 출중하였는데, 글자를 배우면서 글을 읽고 문장을 지을 줄 알았고, 의심스러운 뜻에 대해서 질문을 할 경우에는 서당의 훈장이 대답을 못할 정도로 학문을 향한 깊이와 경지가 남달랐다. 7세에 양부(養父)의 상을 당하자 어린 나이에 어버이를 떠나보내는 애상(哀喪)의 예가 극진하여 곡전(哭奠)을 거르지 않으니 곁에 있는 사람이 감동하지 않는 이가 없었으며, 장로(長老)들이 모두 기특하게 여겼다. 자라서는 생가(生家)와 양가(養家)에 전후(前後)로 모두 6차례나 상을 당하였는데, 정의(情誼)와 예의(禮儀)를 다하고 삭망(朔望)마다 애성(哀省)하는 예(禮)를 18년 동안 하루같이 지성(至誠)을 다하였다고 한다. 송사 기우만의 행장에 따르면, 정하원은 17세에 기씨(奇氏) 가문의 사위가 되었는데, 당시 조선 성리학의 6대가(大家) 중의 하나로 꼽힐 정도로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위정척사파(衛正斥邪派)의 정신적 지주였던 노사 기정진을 보고 매우 기뻐하였고, 이후 50여 년을 변함없이 기정진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일심(一心)으로 자제가 부형을 섬기 듯하니, 기정진은 정하원을 향해 이와 같은 인물은 자주 있지 않다며 매번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마다 정하원은 물러나 선생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 두려워하였는데, 간혹 스승이 무언가를 질문하면 스승께서 어리석은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며 기뻐하였고, 칭찬을 들으면 뜻을 더욱 견고하게 세워 나아가는 강인한 모습을 보이고 물러나는 나약함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그는 평소 강개(剛介)한 성품으로 인해 남의 잘못을 보면 면전에서 지적하고 용납하지 않았는데, 온 세상이 모두 자신을 칭찬한다고 하여 일부러 더욱 힘쓰지 않았으며, 온 세상이 모두 비난하더라도 더욱 기(氣)를 꺾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스승의 가르침을 체득하여 잘 따른 것이라고 하였다. 이어서 한 일화를 소개하기를, "어느 날 밤, 호랑이가 스승을 움켜쥐자 함께 있던 무리들은 모두 두려움에 평정심을 잃었으나 정하원 만이 홀로 당당히 스승을 모시고 서서 응대함이 평상시와 같으니 호랑이가 물러갔다. 그러자 곁에 있던 사람들이 어찌 홀로 두려움이 없냐고 묻자 선생님께서 두려움이 없었기 때문에 나도 두려움이 없었다. 게다가 맹수가 사람을 잡으면 끝나는 법이기에 염려가 앞서 스스로의 재앙은 근심할 겨를이 없었다고 하자 모두가 탄복하였다."라고 하였다. 또한 양왜(洋倭)에서 나오는 복식(服食)과 기용(器用) 등은 집에 들이지 않으며 말하기를, "사설(邪說)이 사람의 마음을 홀려 변화시키므로 항상 눈과 귀를 절로 즐겁게 하는 것을 처음부터 삼가지 않을 수 없다."라고 했다. 또한 임오군란을 겪은 뒤에는 나랏일이 날로 그릇되어 가자, "진실로 국가에 이로운 것은 재야의 선비들이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자 또한 일찍이 그러한 것을 말하였습니다. 그 조목은 여섯 가지가 있으니 세도(世道)를 책려(策勵)하여 조정을 바로잡고, 나라의 태공(太公)을 맞이하여 돌아오게 하며, 효사(孝思)에 통달하게 하고, 외병(外兵)을 파하여 궁금(宮禁)을 맑게 하며, 격치(格致)를 궁구하여 시무(時務)를 통달하게 하고, 병기를 닦아 응변(應變)의 상황에 대비하며, 인정(仁政)을 펼쳐서 백성을 편안하게 하소서."라는 등의 상소문을 초안하였는데, 그 말이 매우 절실하고 곧았다고 한다. 1880년(고종17) 문과에 급제한 이후 주로 문한직(文翰職)을 역임하였다. 1881년 홍문관(弘文館)에서 벼슬을 시작하여, 이듬해 11월 동지사(冬至使) 심이택(沈履澤)이 청국에 파견될 때 서장관(書狀官)으로 따라 갔다. 1883년 규장각의 직각(直閣)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에 홍문관 응교가 되었으며 1884년 통리군국사무아문(統理軍國事務衙門)의 참의(參議)에 임명되었다. 이어 1885년 봄 성균관의 대사성과 이조참의, 내무부(內務府) 참의(參議)를 거쳐 세자시강원의 보덕(輔德)을 겸하였다. 같은 해 11월 이조참판이 되었고, 이듬해에 시강원 보덕을, 1887년에는 전년도에 설치된 육영공원(育英公院)에 민종묵(閔鍾默), 민응식(閔應植)과 함께 당상(堂上)에 임명되었다. 다시 1889년에 규장각의 직제학에 임명되고, 형조참판을 역임하였다. 2.『소두집(小蠹集)』의 구성과 내용 『소두집(小蠹集)』은 조선후기부터 대한제국기까지 생존한 학자 정하원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10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10권 4책 목활자본으로 되어 있으며,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문집 권두의 서(序)는 경술년(1910)에 기우만이 썼다. 권1에 21편, 권2에 101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고, 권3에 소(疏) 2편이 수록되어 있다. 권4∼6에는 잡저(雜著) 36편이 수록되어 있고, 권7에 서(序) 22편이 수록되어 있다. 권8에는 기(記) 19편, 권9에는 발(跋) 12편, 행장(行狀) 5편, 묘지명(墓誌銘) 2편, 제문(祭文) 9편, 권10에 일기(日記) 2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어 부록(附錄)으로 행장 등이 수록되어 있으며 발문(跋文)은 없다. 『소두집(小蠹集)』의 서문은 기정진(奇正鎭)의 손자로서 학업을 이어받아 일찍이 문유(文儒)로 추앙받았던 조선 말기의 의병장이요 유학자인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 1846~1916)이 찬하였는데, 그의 서문에 정하원에 대해 기술하기를 "일찍이 학문에 뜻을 두고 기정진의 문하(門下)에서 40여 년의 오랜 세월 동안 가르침을 받으면서 사문(師門)에 숨김이 없었고, 사문도 그대에게 숨김이 없었다."라고 하였다. 또한 어렸을 때 당시에 유행하는 시문(時文)에 종사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으니 그 수양한 바를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권1~2에는 정하원이 증조부인 정회찬을 그리며 지은 계당팔영시(溪堂八詠詩)가 서두에 실려 있고, 이어 스승을 주제로 한 시가 실려 있다. 또한 쓰러져 가는 국운(國運)을 탄식하는 시들이 보이는데, 「석호리(石壕吏)」·「장탄식(長嘆息)」·「감시(感時)」·「탄세(歎世)」 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시에는 대개 그 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병서(幷序)가 붙어 있다. 권3의 소(疏)에는 「임오의소(壬午擬疏)」와 「부임오의책(附壬午擬策)」가 실려 있는데, 모두 임오군란을 겪고 나서 그 소회를 적은 것이다. 「임오의소」에서는 세도(世道)를 책려(策勵)하여 조정을 바로잡고, 나라의 태공(太公)을 맞이하여 돌아오게 하며, 효사(孝思)에 통달하게 하고, 외병(外兵)을 파하여 궁금(宮禁)을 맑게 하며, 격치(格致)를 궁구하여 시무(時務)를 통달하게 하고, 병기를 닦아 응변(應變)의 상황에 대비하며, 인정(仁政)을 펼쳐서 백성을 편안하게 하소서." 라는 여섯 조목의 대책을 매우 절실하게 나열하였고, 이어 대원군을 모셔 올 것, 궁중을 호위한다는 미명 아래 들어와 있는 외국 군대의 철수, 그리고 병기 개발 등을 건의하는 상소문이 수록되어 있다. 「부임오의책」에서는 당시 논밭의 결(結), 군인의 수, 환곡(還穀)의 양 등을 숫자로써 제시하면서 전보다 줄어든 현상에 깊은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권4의 서(書)에는 노사(盧沙) 기정진(奇正鎭) 선생에게 올리는 편지가 9편이 실려 있으며, 그 외 백석(柏石) 기양연(奇陽衍),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 송사 기우만(奇宇萬),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 일신재(日新齋) 정의림(鄭義林) 등 23여명과의 주고받은 편지가 실려 있어 그의 교유 인물들과 명덕(明德), 이기(理氣), 형상형하(形上形下)의 변론을 살펴볼 수 있다. 권5에는 17편, 권6에는 19편의 잡저가 실려 있는데, 그 가운데 「봉질(奉質)」에서는『대학』이 심학(心學)의 근원이라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어 특이하다. 그밖에 유려한 수필식 문장으로 변화해 가는 문물의 변혁을 다룬 「흑죽립설(黑竹笠說)」과 「방산자고별설(方山子告別說)」이 실려 있는데, 「흑죽립설(黑竹笠說)」은 '세갑신칠월지망(歲甲申七月之望)'으로 글이 시작되는 것으로 보아 1884년(고종21)년에 찬한 것으로 보인다. 이어 일상에서 보고 느낀 것을 적은 「청농가(聽農歌)」, 「구상유설(狗相乳說)」, 「초전문답(草田問答)」이 있으며, 사서(史書)의 내용을 논한 「독사(讀史)」, 「의주장각서(擬誅張角書)」, 「서범증논후(書范增論後)」 등 다수의 흥미로운 글들을 전(傳)과 설(說) 형식으로 실려 있다. 특히 「일득우전(一得愚傳)」은 당시 천주교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볼 수 있는 자료적 가치가 있다. 권7에는 「정씨족보서(鄭氏族譜序)」를 비롯해서 「대명통보서(大明通寶序)」,『노사집(蘆沙集)』 서문을 의작(擬作)한 「의작(擬作蘆沙集序)」 등 총 22편의 서문이 수록되어 있다. 권8에는 19편의 기문(記文)이 실려 있는데, 주로 건물에 대한 기문이다. 그 중 저자의 호에 대한 기문이 수록되어 있다. 기문에 따르면, 정하원은 1868년 3개월 넘도록 스승 기정진을 모시고 오산(鰲山)의 관불암(觀佛菴)에서 지냈었는데, 이때 기정진이 자신의 호를 소두(小蠹)라 지었다 하고, 당시의 그의 나이 73세에 옛일을 추억하며 부끄러운 마음으로 적는다고 하였다. 그의 호가 소두가 된 배경은 바로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 1450~1504)의 한시인 「악양(岳陽)」의 3구와 4구를 매우 사모하여 지었다고 한다. 「악양(岳陽)」이 지어진 배경을 살펴보면, 정여창은 1489년(성종20) 4월,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 1464~1498)과 동행하여 15일 동안 지리산을 유람하였는데, 돌아오는 길에 김일손이 큰 산을 둘러보았으니 악양으로 가서 큰 강물을 보고 싶다는 말에 자신의 은거지가 있는 경남 하동군의 악양으로 길을 잡아 함께 유람하였다고 한다. 정여창은 시 짓기를 좋아하지 않아 유일하게 절구 한 수가 전하는데, 이것이 바로 「악양(岳陽)」이며, 『일두집(一蠹集)』 실려 있다. 시는 다음과 같다. 물 위 부들 잎은 바람 따라 흔들리고(風蒲泛泛弄輕柔) 사월 화개 땅엔 보리가 다 익었네(四月花開麥已秋) 두류산 천만 봉을 두루 다 돌아보고(看盡頭流千萬疊) 배는 또 섬진강을 강물 따라 내려가네(孤舟又下大江流) 바람에 나불거리는 부들잎이 가볍게 하늘거리는 4월, 꽃이 만발하고 보리도 익어가는 화창한 봄날에 지리산의 천만 봉우리를 모두 구경하고 나서 외로운 배를 타고 또 다시 강줄기를 따라 섬진강으로 내려간다는 내용이다. 「악양」은 표면적으로는 두류산을 구경하고 하동군의 화개를 거쳐 악양에 이르러 지은 유람시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이면에는 현재의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더 크고 넓은 세계로 향하는 학문적 구도의 세계를 표현하였다고 볼 수 있다. 정하원은 이시의 3구와 4구를 매우 사모하여 자신의 호를 소두라 지었다고 한다. 권9에는 12편의 발문(跋文)이 실려 있고, 소초재(小撨齋)를 비롯한 행장이 5편, 송와공(松窩公)과 수촌공(水村公)의 묘지명(墓誌銘), 그리고 선생에 대한 제문과 기만연(奇晩衍), 박만동(朴萬東) 등 지역 인물들에 대한 제문이 9편 실려 있다. 권10에 수록된 일기 「관불암기의(觀佛庵記意)」는 저자의 나이 42세 때 기정진(奇正鎭)을 관불암에서 3개월 정도 모시며 성명이기(性命理氣)와 고금사변(古今事變)에 대해 논한 것을 기록한 글이다. 이기설은 따로 「태극동정론(太極動靜論)」을 붙여 기정진의 학설을 비교적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또 이 일기에는 옛 선현들의 비화와 지리설(地理說)의 필요성을 강조한 내용도 들어 있다. 마지막으로 기우만이 찬한 행장이 부록으로 실려 있다. 이는 정하원이 세상을 떠난 지 6년이 지나서 그의 아들 휴명(休明)이 기우만을 찾아와 행장을 부탁하여 찬한 것인데, 동문수학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비교적 간략하게 서술하였다. 3. 세부목차 序(奇宇萬) 卷1 詩 : 追次八詠, 南菴招提, 沙上上先生詩, 先生新寓, 沙上題懷, 蘆沙集有感, 蘆沙集有感, 蘆沙集有感, 上先生詩, 呈堂叔, 再呈堂叔, 次家仲韻, 自嘲答家仲, 答家仲, 答家仲江字韻, 詠貧答家仲, 答家季韻, 保家季疏廳韻, 寄家季, 答族弟子仲, 漢城觀先歸路, 宿淸道院店, 沙上答趙直敎, 答放叟, 答小蕉, 答族叔種台, 答免叔種愚, 答族叔種澤, 答閔仲浩, 答李樓山, 次閔南湖, 次族弟龍源, 答鄭晩悔, 答安蓮上, 答柳春莊, 別金敬受, 答李道三, 和打垂吟, 次諸生詠松, 詠樗, 詠初月, 次三芝齋韻, 上甲閤丈, 過皇華亭, 追和松川韻, 挽鄭船隱, 次瀛洲洞閣, 崔昌三睟宴韻, 歎歲, 答溪堂書齋, 秋峯墓祀後, 贈南平宗孫, 水砧, 石壕吏, 漁父, 新月, 雪梅, 聽琴, 流水勉諸生, 謹步石翁韻, 答高竹史, 贈文章華, 答姜秀才, 答幻海, 步海佛菴韻, 聞鵑, 臥松, 葉笛, 鷺問答, 答柳東錫, 題懷, 步高士吟, 小奚, 答溫洞諸友, 過□率贈諸友, 上月明菴, 挽金繼鎭, 挽族從欄, 步答梁益瑞, 長歎息, 贈吳秀才, 感時, 答全性愚, 贈庚秀才, 答李秀才, 答族姪休寬, 答金箕昔, 答陳生烋三, 答洪在新, 答庚聖求, 答金箕聲, 贈別全龜容, 答徐白卿, 送別曺國彬, 看山勉諸生, 外言甚熾, 送成德龍, 答族孫寬燾, 答族叔鍾韻, 贈權錫圭, 答族姪伯賢, 贈魯在煥, 贈安行純, 贈申期淵, 答洪鍾歡, 看感贈諸生, 寓居有感, 贈別族叔鍾韺, 答再從弟潤源 課孫, 贈別李南坡, 歎歲, 答魯生親稧韻 卷2 詩 : 謹次九曲韻, 答沈宜恒, 謹次老石韻, 謹次後松韻, 問紅桃, 紅桃答, 挽沈東峯, □谷集雪字, 姜健秀慈親挽, 夢中作, 答諸君, 次八烈望享韻, 白□, 觀魚, 有感, 答吳起源, 答丁聖擧, 詠天, 答鄭船隱, 送別趙耆示, 答金子元, 過程子川, 過丹巖寺, 謹步金海士韻, 次燕申堂韻, 次寒碧堂韻, 再上海士詩, 答海士韻, 答金浩潭韻, 贈金泰玉, 送任南洲, 回甲韻, 奉答洪侯鍾觀, 奉別洪侯, 步敬堂韻, 步石蘭雲寺韻, 登翠白堂, 上李侯詩, 講筵答李侯, 又呈, 步澄字韻, 宿司馬齋, 次李仁學, 送忘年友, 和申侯慶均詩, 上申侯睟宴, 呈申侯行幰, 答李命求, 答李申兩友, 呈金溝倅, 贈別敬堂韻, 書飢字韻後, 次功字韻, 送別尹侯濟翼, 寄讀書所, 答梁相衡, 謹步陽臺韻, 謹步錦城韻, 謹步四悔亭, 留別吳在洙, 詠蘭勉諸生, 鄕飮酒席, 答呈民聽堂, 謹步南壺詩, 贈別韓參奉, 答西都主人, 答三從弟, 松鶴, 贈川獵韻, 詠楓, 詠竹, 答再從弟, 答族弟孟源, 上申侯佐熙, 贈族弟承源, 贈族弟寧源, 贈族弟達源, 觀碁, 聞鴈 卷3 疏 : 壬午擬疏, 附壬戊擬策 卷4 書 : 上先生書(九), 與奇晩衍(二), 答奇陽衍, 與奇宇萬(四), 上宋山丈, 上任全齋, 與崔勉菴(二), 與宋淵齋(三), 上申相國, 答李膺圭(二), 與朴萬東, 答高時勉, 答申碩均, 答梁暾默, 答梁相衡, 與成大永, 答南廷龍, 答李熹翼, 答李輔翼, 與閔鍾烈, 與閔鍾默, 與鄭義林, 與鄭圭三, 與鄭孔麟, 與奇麒鎭, 錦西護喪所, 蓴村護喪所, 倉村護喪所, 與梁晩默, 上李文龍, 答姜俊永, 答李遇春, 答庚煜求, 答鄭在宣 卷5 雜著 : 述懷賦, 奉質, 沙上漫錄, 漫語, 權氏墓閣文, 治本說答客難, 聽農歌, 天人流通銘, 克己復禮銘, 生聖世頌, 言拒揚墨論, 陰陽消長論, 名分紀綱論, 禹湯水旱論, 一得愚傳, 上招討使, 祭外祖祝文 卷6 雜著 : 沙上奇會說, 獘□子傳, 書范增論後, 方圓說, 客談, 狗相乳說, 喩角鬣說, 上李秉文書, 擬誅張角書, 添瘤說戒, 答詠偸春, 書瑞□頌後, 送別李後歌, 上金繼鎭, 鷄雛說, 讀史, 墨竹笠說, 方山子告別, 草田問答 卷7 序 : 鄭氏族譜序, 大明通寶序, 擬作蘆沙集序, 慰家弟序, 送晉錫序, 送金稚倫序, 疏稧序, 送放浪子序, 送洪秀才序, 再送洪秀才, 送柳士彦序, 講罷送諸生序, 送金浩玄序, 送沈郞序, 送安郞序, 送諸生序, 會輔稧序, 外祖歲祭稧序, 送金秀才序, 風謠錄序, 送金侯藝軒序, 送尹濟翼序 卷8 記 : 夢雲奄記, 壽松堂記, 湖隱堂記, 順寧齋記, 四悔亭記, 餘力齋記, 藥圃堂記, 力養齋記, 守信堂記, 櫟齋記, 翠白堂記, 明倫堂記, 誠齋記, 止愚齋記, 敬悅齋記, 東岡亭記, 小蠹記, 沙南記, 盤亭記 卷9 跋 : 書爰斯柏後, 題氷玉臺後, 跋菊圃記, 書船隱詩集, 書日省錄後, 書忠賢世家, 送趙公序後, 題小札後, 書東海翁說後, 題南征錄後, 學文菴記後, 題興學案後 行狀 : 小撨齋行錄, 臨淵齋行錄, 誠齋公行狀, 平岡公行錄, 慕隱公行錄 墓誌 : 松窩公墓銘, 水村公墓誌 祭文 : 祭先生文, 祭奇晩衍文, 祭朴萬東文, 祭季舅文, 祭家季文, 悲慰章一歌, 弔奇宇蕃文, 哭鄭參判文, 延安李氏哀辭 卷10 日記 : 觀佛菴記意, 附太極動靜問答 附錄 : 小蠹先生鄭公行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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挽鄭船隱寬汝 詩社相逢日。弱冠最少時。我嗔君每笑。氣味許深知。中間多濶別。惜未共追隨。相忘江湖上。終看白髮垂。棲泊里仁近。化翁把弄奇。跟來還跟去。形影手相特。相見每相慰。沉疴果莫醫。爲題船隱錄。純古出天姿。嗚呼君子死。悵望我心悲。悲情無處瀉。病枕强題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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次瀛洲雨日面洞閣韻 長吟袖筆快。沈醉去笻遲。吟醉平生樂。世情不敢移。易易鄕風各大家。會以拔蘭見似花。詩歌畫出昇平樂。平安笻屐醉中斜。衢樽如共醉。如何不平嗚。願雜南薰曲。肯爲北鄙督。承風相樂意。待月各歸情。却顧流連訴。餘懷更在明。赤幟騷壇詩合忙。侈似龍文煥鳳章。雷擊新聲千戶闢。電奔快步一鞭長。講論情話仍成習。紹述遺風不敢忘。分付厨丁催更酌。各歸餘興暢幽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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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權鍚圭義仲 居鄰一肴喜頻尋。愛汝兩兼望汝深。眞工要在皆涵滀。始識世無不好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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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族侄伯賢 讀書聲裡好門庭。七十年來一夢醒。一氣流行終未掩。試看春色入冬靑。荒年一會古山陽。書聲稗說夜同長。菩蕾試看明春意。理在枝頭未盡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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謹題崔昌三晬宴席 回甲老主人。上有九哀親。諸胤奉酒廵。長拜祝千春。乃爺受厥醇。上堂跪敷陳。壽母餘祿純。厚蔭若川臻。稺孫言出眞。更期後壬辰。舘甥觀感新。禮助不厭貧。聳賀樂群賓。風聲動四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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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族孫寬燾 立欲其山淡欲溪。悠然遐躅一笻隽。爲緣實地同心樂。欲向仁天盡日啼。飮小相看楓助醉。詩成迭唱菊爲題。戒行始自門前步。洞開我闥正牗迷。纔經喘暑更呵寒。竟日無言步倚欄。渴者本症呼酒解。少年餘習把書觀。苟能有見貧猶快。終若無聞死亦難。畏盜百年常守月。幽人到此足爲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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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族叔鍾韶 擧目乾坤快一瞻。順從費隱盡洪纎。眞情難掩言謀拙。和氣每生敬禮嚴。竹不榮枯寒暑失。燈因明滅晝宵兼。於斯炯有丁寧戒。寧欲其鈍肯欲光。風聲相應氣相親。聚會群情作一身。滔天勢熖君言富。露地英雄爾本貧。屠市十年磨白刃。海天萬里出紅輸。適來適去無人識。强把塵篇說往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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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庚煜求書 長冬寒突疏食。固學者之本分。而豈有時相忘。雪濘如海。料外人來。手字兼墜。續慰餘帳。憑悉侍讀。有相渾節均安不勝慰。沃書中勿外馳之語眞好。消息郍三字。卽作人根基也。賢乃驟語之朱子不云乎。若知如此爲病。便是不如比是藥。若不實踐而徒發唇吻。先欺欺人。則不亦可懼者乎。老狀迄喀喀度了耳。吳君在此。而更爲重痛。今雖小差。此亦客味也。豈不悶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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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鄭在宣書 今冬之聲聞益近。如坐鄰里。人懷思益深。如渴者夢水得。見手字賢。亦不忘我矣。但書中字糢糊處多。豈賢者文識稍進。我之目力益昏而然耶。心正筆正。卽古人不欺我之言也。不可老於胡草。此言亦不可不知也。卽此此歲亦已夕陽侍中諸節平安尊堂近返駕乎。仰慰仰慰。一者來見。我之示見。雖無可言。豈以無言之故而可來者有不來之義乎。跂佇耳病人。長冬事業喀喀良苦。餘留俟相對。小蠧集卷之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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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之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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雞雛說 江東呼小雞。謂之健。今俗所謂年雞者。果非僆之轉化者歟。朱書亦有切脉視雞之語。而今余之觀。非敢曰。觀理之妙爾。竊有感於且僆之未成者也。去戊子之荒年。實南中初見之無也。人且不能粒。豈有餘力。溉爾之口耶。䧺不能趰晨。雌不能交尾。居然天時啓蟄。春草萠芽。恣意啄啄。眞東坡所謂俯首而未嘗仰者。益驗於此也。於是卵之。或一日而一焉。或二日三日而一焉。夘不滿十而伏遂許之。不覺喟然歎曰。方其飢瘁之日。猶不能保其生。安知有今日之卵翼乎。大化發生之妙。亦可見其一端矣。俄而野麥登場。率雛而下。二閼而七其子矣。累次僑挈之餘。窠具無有任其捿。頓於外厩。措薪之傍矣。一夜雞聲。驚急開戶視之。母爲狸予所掠去也。催火諦視之。則子亦四散矣。厨丁曰。夘合老人饌而大爺平日嚴呵之。今幷與其母。而失之可惜也。雇子從傍。閔然曰。早知如此。可以解蔬園。欲炙之腸而不勝其懊悔也。翌朝呼其子而視之。孑然赤立之群。或憮然若有所思者焉。或惘然若有喪魄者焉或瞿然若有望其返而不及焉。或愠然相視怒目。若有相咎之意焉。或砉然擠博。若有不量其力而輕生敢闘之意者焉。昔晦翁答人禽獸問曰。子安知其不有五常之德云。今亦安知其不有思母之情也。此不過以人之情度物之情者也。嗚呼。人之藐然。一心衆欲攻之見色。非掠去之一狸子乎。見財財非掠去之一狸子乎。大則權奸操美國柄。夷狄侵凌中國。以至於玲瓏穿穴。伺候奔走。看人之臭息。而以爲慘舒。聽人之㶊特。而以爲俯仰者。不爲狸子之所掠去者。盖無幾矣。母在子安。母亡子病。故伊訓曰。子惠困窮。康誥曰。如保赤子。今子之病久矣。安得不憮然惘然瞿然愠然砉然然乎。然則母安子安之道。亦有術乎。曰以乾坤而言。則萬物同一。父母也以一身而言。則一物各一父母也。尊高年恤孤弱之道。至於親親而仁民。仁民而愛物。使鳥獸咸若豚魚及孚。善養稼者。無蠡賊之侵。善養木者。無虫蠧之害者。其要莫善於立志。志苟立百邪退聽矣。嗚呼。惟我雞雛不幸得其主人。不能爲爾嚴其窠牢也。客有不勝呀。然而笑者曰。有是哉主人之迃也。何不曰不能自爲。謀而曰。不能爲爾者。得不爲雞兒所笑乎。更爲之容。遂記其言。竊附郭槖駝傳聞養樹之說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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讀史 余讀史記。至田常世家。有曰。田常選齊中女子。長七尺以上爲後宮。後宮以百數。使賓客舍人出入後宮者。不禁及常卒有七十餘男。其下疏註曰。按春秋。陳恒爲人。雖志太負殺君之名。至於行事。亦修整。故能自保。應不爲禽獸之行。此言非實云。余不覺掩卷而歎曰。所謂春秋書者。名目冗多。今太史公之所按者。果何書乎。聖人明有沐浴請討之訓。則行事修整者。亦有殺君之擧耶。人之大倫。莫大於君親。而負殺君之名者。非禽數之行。而何所謂行事修整。四字於負殺君之名之下。文理接續乎否乎。彼田常之日夜用心行事。即一不棄不厭之欲也。是以其禽獸之心。出於强宗之計。以行禽獸之行。而不顧者也。彼田常亦人耳。豈不知自犯於大逆之律也。旣蒙難洗之累。則期於移人之社稷。盜人之號位。同列于彼晋氏之三家。使天下後世之執淸議者。欲分其罪。以快其意。則顧何所不爲也。賓客舍人出入後宮。得七十餘男。吾以馬未能克田常强宗之欲也。以若所爲求若所欲。雖使陽翟大賈大談獻邯鄲美姫。若有利纂奪之事卽當甘受而不辭矣。事成後次第滅春申君之口。亦豈弑君者之難事乎。所謂此言非實云者。果春秋本文乎。抑太史氏評解乎。九原可作。願以質焉。嗚呼。子有言曰。明則爲禮樂。幽則爲鬼神一理貫通初無間隔。是以祭非其鬼。卽爲滛祀滛祀。無福經有明文。乃其理之自然不可得以易也。盖人之五性。卽天之一理也。此理滅息則乃禽耳獸耳。陳本聖人之裔。而乃轉作田常七十餘男之家。則亦未知其家風。有受於大小斗。收人心之日而末流之弊。至於此極矣。然則彼田常者。果何如人。吾恐陳氏之鬼餒矣。夫滛衆惡之總名也。觀居此世。媚俗酬物。宛轉覆盖。外借修整之名。內懷禽獸之行者。豈徒一田常也而已。嘻噫。使後之觀此文者。亦母曰此言非實云則幸矣。謹俟春秋誅心之筆。特表而出之。以告天下後世之爲人子者云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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慨世吟 奈何世路轉紛綸。晦沒君臣父子倫。禮義曾傳箕聖國。衣冠久作大明人。四街彌滿洋胡物。八域縱橫德美塵。萬東廟前松與柏。交翠無恙爲誰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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逢玉坪任友 故人從玉里。忙步到山園。古俗君須守。時騷我不言。長思頻入夢。相對喜傾樽。拂袖分歸路。遲遲出洞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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