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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황도길(黃道吉)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咸豐十一年辛酉二月二十八日 黃道吉 咸豐十一年辛酉二月二十八日 黃道吉 전북 부안군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61년(철종 12) 2월 28일 황도길(黃道吉)이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선은동(仙隱洞)이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61년(철종 12) 2월 28일 황도길(黃道吉)이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선은동(仙隱洞)이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황도길은 긴히 돈을 쓸데가 있어서 자신이 매득하여 경작해 왔던 논을 매도(賣渡)를 하게 되었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부안현 동도면 선은동이 앞에 있는 천자답(天字畓) 13두락지(斗落只)이며 부수(負數)로는 32부(負)인 곳이다. 방매(放賣) 가격은 100냥이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負,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낙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신문기(新文記)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구문기(舊文記)는 중간에 잃어버려 내어 줄 수 없다고 기록했다. 매도인(賣渡人) 황도길은 새로 작성한 문서 1장(丈)을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차후에 이의를 제기할 경우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문서에는 논의 주인 유학(幼學) 황도길의 이름과 그 아래에는 서명이 되어있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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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丙申</연도>二月二十三日 前明文右明文段以移葬無路故伏<지명>下西井海</지명>前坪 字畓五斗落所耕十 負 卜㐣價折錢文壹佰兩依數捧上是遣舊文並幷付他文故不得出給以新文一張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論則持此文憑考事畓主 幼學 <인명>朴應燁</인명>[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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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 김하상(金夏相)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十一年壬申七月卄六日 金夏相 등 2명 同治十一年壬申七月卄六日 金夏相 등 2명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2년(고종 9) 7월 26일에 유학(幼學) 김하상(金夏相)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에 있는 논과 화곡(禾穀)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2년(고종 9) 7월 26일에 유학(幼學) 김하상(金夏相)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에 있는 논과 화곡(禾穀)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종답주(宗畓主) 김하상은 종중답의 소나무 세를 내기 위하여 부안현 상동면(上東面)에 있는 봉산(鳳山) 앞뜰 칭자(稱字) 논 5마지기와 벼(禾穀) 30말(斗)을 120냥에 팔았다. 나중에 이 논을 두고 만약 다른 말이 있을 때에는 이 문서로 증명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종답주 김하상, 김성제(金聖濟), 김원상(金元相) 등 3인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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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同治十一年壬申</연도>七月卄六日 明文右明文事松價徵納次宗畓<지명>上東</지명><지명>鳳山</지명>前坪稱字五斗落所耕九負一束庫乙倂禾穀三十斗折價㱏佰貳拾兩依數以捧是遣右人處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言持此文記憑考事宗畓主 幼學 <인명>金夏相[</인명>着名]<인명>金聖濟</인명>[着名]<인명>金元相[<인명>/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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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 김명철(金明轍) 방매(放賣) 시장문기(柴場文記)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경제-매매/교역-시장문기 光緖十年乙酉七月十一日 金明轍 光緖十年乙酉七月十一日 金明轍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85년(고종 22) 7월 11일에 동몽(童蒙) 김명철(金明轍)이 저전(苧田)과 시장(柴場)을 팔면서 작성한 시장문기(柴場文記). 1885년(고종 22) 7월 11일에 동몽(童蒙) 김명철(金明轍)이 저전(苧田)과 시장(柴場)을 팔면서 작성한 시장문기(柴場文記)이다. 명문(明文)이란 어떤 권리를 증명해 주는 문서로 파는 사람이 작성하여 사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체로 매매(賣買) 연월일(年月日)과 매수자(買受者), 매도사유(賣渡事由), 매도물(賣渡物)의 소재지, 양안상(量案上)의 자(字), 번(番), 결부속(結負束)과 두락(斗落) 등 매매 대상물의 정보와 가격, 그리고 매도인(賣渡人), 필집(筆執), 증인(證人) 등이 기록된다. 그러나 시대와 작성하는 사람에 따라 이들 가운데 일부가 생략되기도 하였다. 김명철은 긴히 돈을 쓸데가 있어서 물려받은 밭과 시장을 매도하게 되었다. 여기서 동몽(童蒙)은 아직 성년이 되지 않은 어린 남자를 이르는 말이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천자(天字) 저전 2두락지(斗落只)로 부수(負數)로는 2부(負) 6속(束)인 곳이며 방매(放賣) 가격은 16냥이다. 또한 선은동(仙隱洞)에 있는 시장(柴場)은 5동락(同落)으로 매매 가격은 2냥이다. 시장(柴場)이란 땔감 채취를 위하여 지정된 삼림 지역을 말한다. 김명철은 모두 18냥을 받고 모시밭과 시장을 팔았다. 매도인(賣渡人) 김명철은 구문기(舊文記)를 중간에 잃어버려 전당표(田當票) 1장과 새로 작성한 매매문서를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본문에는 ''영영방매(永永放賣)''라 표기하여 아주 팔아버림을 확인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매도인 동몽 김명철과 증필(證筆)은 유학(幼學) 강사성(姜士成), 증인(證人)은 유학 전복여(田福汝)가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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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道光貳拾陸年丙午</연도>十一月十一日黃學仁前明文右明文事段要用所致伏在<지명>仙隱洞</지명>前坪玄字三斗落所耕二卜八束庫果同字畓二斗落同字田一斗落幷所耕六卜三束㐣價折錢文三十兩依數捧上爲遣右人前永永放賣本文記他田畓幷府故未得出給以此新文一丈日後相考事畓主 幼學 <인명>李圭咸</인명>[着名]證筆 幼學 <인명>黃道晃</인명>[着名](背面)乃賢畓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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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甲申</연도>四月初五日 手記右手記事卽有緊用處故天字苧田二斗落右人前典堂是遣以錢文六兩以每市二分例得用而限則四月晦內並本利備報之意如是成標事標主 <인명>金明轍</인명>[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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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光緖三年丙子</연도>正月二十九日 明文右明文事段要用所致自己買得伏在<지명>東道面仙隱洞</지명>前坪玄字四斗落所耕十負庫果同字畓二斗落所耕三負五束㐣價折錢文壹百參拾兩依數捧上是遣永永放賣是矣二斗落舊文記他田畓並付故不得出給是遣只以四斗落舊文記四丈果新文一丈成給爲去乎日後以此憑考事畓主 幼學 <인명>金炳斗</인명>[着名]證人 幼學 <인명>任雲集</인명>[着名]證人 幼學 <인명>田仁鴻</인명>[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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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6년 노(奴) 분동(分同) 패지(牌旨) 고문서-명문문기류-배지 경제-매매/교역-배지 丙申十一月 日 上典 李 奴 分同 丙申十一月 日 1836 上典 李 전북 부안군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36년(헌종 2) 11월에 상전(上典) 이모(李某)가 노(奴) 분동(分同)에게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선은동(仙隱洞)에 있는 토지의 거래를 위임하면서 작성해 준 패지(牌旨). 1836년(헌종 2) 11월에 상전(上典) 이모(李某)가 노(奴) 분동(分同)에게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선은동(仙隱洞)에 있는 토지의 거래를 위임하면서 작성해 준 패지(牌旨)이다. 거래 대상이 된 논은 선은동 전평(前坪)에 있는 일작(一作) 현자답(玄字畓) 4마지기로, 값을 정하여 상전댁에서 받아들인 뒤에 문서를 작성하여 지급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 문서에는 작성연대가 병신년으로만 되어 있으나 분동이 방매자로 거래한 관련문서 "1836년 신노춘이(辛奴春伊)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를 통해서 작성연대를 1836년으로 추정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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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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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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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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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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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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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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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류

1903년 조한국(趙漢國) 호남삼강록(湖南三綱錄) 서(序) 고문서-시문류-서 교육/문화-문학/저술-서 癸卯春 趙漢國 癸卯春 趙漢國 전북 정읍시 정읍 영원 여산송씨가 정읍 영원 여산송씨가 1903년에 조한국(趙漢國)이 작성한 ?호남삼강록(湖南三綱錄)?의 서(序). 1903년에 조한국(趙漢國)이 작성한 ?호남삼강록(湖南三綱錄)?의 서문이다. ?호남삼강록(湖南三綱錄)?은 호남지방의 충절, 충효, 정절에 관한 기록을 모은 책자로, 9권 8책의 석인본이다. 편자는 미상이다. 권1에 충신몽포(忠臣蒙褒), 권2·3에 효자몽포(孝子蒙褒), 권4에 열녀몽포(烈女蒙褒), 권5에 충신건사(忠臣建祠), 권6∼8에 효자미몽, 권9에 열녀미몽 각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조한국은 본관이 임천(林川)으로, 1880년(고종 17) 증광별시문과에 급제하여 관에 들어가, 1895년 충주부관찰사를 거쳐 내무아문협판(內務衙門協辦)을 지내다가 1897년 광주부윤(廣州府尹), 1898년 개성부윤, 경상북도관찰사가 되었다. 1899년 궁내부특진관·궁내부협판을 거쳤다. 1900년 전라북도관찰사, 1904년 충청남도관찰사를 지냈다. 1904년 충청남도관찰사·의정부참찬·궁내부특진관, 1905년 시강원첨사(侍講院詹事)·장례원소경(掌禮院少卿), 1906년 제실회계심사국장(帝室會計審査局長), 1907년 지돈녕사사(知敦寧司事)·궁내부특진관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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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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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98년 전재열(田在悅)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武二年戊戌二月二十日 田在悅 光武二年戊戌二月二十日 田在悅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98년(광무 2) 2월 20일에 전재열(田在悅)이 부안군(扶安郡) 일도면(一道面) 정지제(定只堤) 아래의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98년(광무 2) 2월 20일에 전재열(田在悅)이 부안군(扶安郡) 일도면(一道面) 정지제(定只堤) 아래쪽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전재열은 논을 팔게 된 이유를 돈이 사용할 데가 있어서라고 하였다. 보통 명문(明文)에서는 땅을 파는 이유를 가계가 어렵거나, 장례비용이 없거나, 흉년이 들거나, 다른 땅이나 집을 사려는 등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기재하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대개 요용소치(要用所致)나 절유용처(切有用處) 등으로 간략히 기재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부안현 일도면 정지리의 제방 아래 심자답(深字畓) 11두락지(斗落只)이며 부수(負數)로는 34부(負)인 곳이다. 방매(放賣) 가격은 550냥이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負,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낙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매도인(賣渡人) 전재열은 새로 작성한 문서를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신문기(新文記)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구문기는 다른 논문서와 붙어 있어서 내어 줄 수 없다고 하였다. 만약 차후에 이의를 제기할 경우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논의 주인 유학(幼學) 전재열과 증인(證人)으로는 유학 김치도(金致道)가 참여하여 서명을 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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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88년 윤수오(尹守五)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十四年戊子三月五日 尹守五 光緖十四年戊子三月五日 尹守五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88년(고종 25) 3월 5일에 윤수오(尹守五)가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내기리(內基里)에 있는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88년(고종 25) 3월 5일에 윤수오(尹守五)가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내기리(內基里)에 있는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명문(明文)이란 어떤 권리를 증명해 주는 문서로 파는 사람이 작성하여 사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체로 매매(賣買) 연월일(年月日)과 매수자(買受者), 매도사유(賣渡事由), 매도물(賣渡物)의 소재지, 양안상(量案上)의 자(字), 번(番), 결부속(結負束)과 두락(斗落) 등 매매 대상물의 정보와 가격, 그리고 매도인(賣渡人), 필집(筆執), 증인(證人) 등이 기록된다. 그러나 시대와 작성하는 사람에 따라 이들 가운데 일부가 생략되기도 하였다. 윤수오는 긴히 돈을 쓸데가 있어서 소나무 밭을 매도(賣渡)하게 되었다. 매매 대상이 된 토지는 부안현 동진면 내기리 동쪽 기슭에 있는 소나무 밭 50동락(同落)으로 방매(放賣) 가격은 160냥이다. 매도인(賣渡人) 윤수오는 구문기(舊文記)를 중간에 잃어버려 신문기(新文記) 1장(丈)을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새로 작성한 문서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관(官)에 가져가 증빙하라고 하였다. 명문에서는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소나무 밭 주인 유학(幼學) 윤수오, 증인(證人)은 유학 최성보(崔成甫)가 참여하였다. 그들은 각각 이름을 쓰고 그 아래에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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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72년 신욱(辛郁)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十一年壬申九月二十日 申郁 同治十一年壬申九月二十日 申郁 전북 부안군 喪不着 1개,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2년(고종 9) 9월 20일에 신욱(申郁)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봉산(鳳山)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2년(고종 9) 9월 20일에 신욱(申郁)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봉산(鳳山)에 앞 들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명문(明文)이란 어떤 권리를 증명해 주는 문서로 파는 사람이 작성하여 사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체로 매매(賣買) 연월일(年月日)과 매수자(買受者), 매도사유(賣渡事由), 매도물(賣渡物)의 소재지, 양안상(量案上)의 자(字), 번(番), 결부속(結負束)과 두락(斗落) 등 매매 대상물의 정보와 가격, 그리고 매도인(賣渡人), 필집(筆執), 증인(證人) 등이 기록된다. 그러나 시대와 작성하는 사람에 따라 이들 가운데 일부가 생략되기도 하였다. 신욱은 돈이 급히 필요해서 논을 팔게 되었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부안현 상동면 봉산 앞 들에 있는 논 5두락지(斗落只)로 부수(負數)로는 9부(負) 3속(束)인 곳이며 화곡(禾穀) 30두(斗)도 함께 방매하였다. 매매(放賣) 가격은 125냥이다. 매도인(賣渡人) 신욱은 구문기(舊文記)는 1장(丈)과 새로 작성한 문서를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만약 차후에 이의를 제기할 경우 이 문서를 가지고 사실을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거래 당시 신욱은 상중(喪中)이어서 문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증인(證人)으로는 임진상(任鎭常)이 참여하고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72년 염규석(廉圭錫)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十一年壬申三月二十二日 廉圭錫 同治十一年壬申三月二十二日 廉圭錫 전북 부안군 喪不着 1개,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2년(고종 9) 3월 22일에 염규석(廉圭錫)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심성(深城) 제방 근처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2년(고종 9) 3월 22일에 염규석(廉圭錫)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심성(深城) 제방 근처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명문(明文)이란 어떤 권리를 증명해 주는 문서로 파는 사람이 작성하여 사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체로 매매(賣買) 연월일(年月日)과 매수자(買受者), 매도사유(賣渡事由), 매도물(賣渡物)의 소재지, 양안상(量案上)의 자(字), 번(番), 결부속(結負束)과 두락(斗落) 등 매매 대상물의 정보와 가격, 그리고 매도인(賣渡人), 필집(筆執), 증인(證人) 등이 기록된다. 그러나 시대와 작성하는 사람에 따라 이들 가운데 일부가 생략되기도 하였다. 염규석은 돈이 필요한 데가 있어서 논을 팔게 되었다. 매매 대상이 된 토지는 두 곳이다. 첫 번째 토지는 부안현 상동면 심성 제방 근처에 있는 칭자답(称字畓) 2두락지(斗落只)로 도조(賭租)가 2두락지인 곳이다. 두 번째 토지는 칭자답 1두락지로 부수(負數) 2부(負) 5속(束)인 곳이다. 방매(放賣) 가격은 모두 55냥이다. 매도인(賣渡人) 염규석은 구문기(舊文記) 2장과 새로 작성한 문서 1장을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신문기(新文記)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명문(明文)에서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답주(畓主) 염규석과 증필(證筆)은 유학(幼學) 김병두(金炳斗)의 이름이 있다. 답주(畓主) 염규석는 상중(喪中)이어서 문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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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04년 김원겸(金元謙)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武四年庚子五月二十七日 金元謙 光武四年庚子五月二十七日 金元謙 전북 부안군 喪不着 1개,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4년(광무 8) 5월 27일 김원겸(金元謙)이 부안군(扶安郡) 상동면(上東面) 상리(上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04년(광무 8) 5월 27일 김원겸(金元謙)이 부안군(扶安郡) 상동면(上東面) 상리(上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명문(明文)이란 어떤 권리를 증명해 주는 문서로 파는 사람이 작성하여 사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체로 매매(賣買) 연월일(年月日)과 매수자(買受者), 매도사유(賣渡事由), 매도물(賣渡物)의 소재지, 양안상(量案上)의 자(字), 번(番), 결부속(結負束)과 두락(斗落) 등 매매 대상물의 정보와 가격, 그리고 매도인(賣渡人), 필집(筆執), 증인(證人) 등이 기록된다. 그러나 시대와 작성하는 사람에 따라 이들 가운데 일부가 생략되기도 하였다. 김원겸은 돈이 긴히 필요한 데가 있어서 논을 팔게 되었다. 매매 대상이 된 토지는 세 곳이었다. 첫 번째 토지는 부안현 상동면 상리 후평(後坪) 주자답(珠字畓) 9두락지(斗落只)로 부수(負數)로는 17부(卜) 2속(束)인 곳이다. 두 번째 토지는 같은 마을 주자답 6두락지로 부수로는 9부 2속인 곳이다. 세 번째 토지는 부안현 일도면(一道面) 방동(方洞) 전평(前坪) 지자답(之字畓) 4두락지로 4부 7속인 곳이다. 세 곳을 총면적은 19두락지이고 화곡(禾穀)까지 포함한 방매(放賣) 가격은 950냥이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負,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낙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매도인(賣渡人) 김원겸은 신문기(新文記) 1장(丈)과 구문기(舊文記) 4장을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새로 작성한 문서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답주(畓主) 김원겸은 상중(喪中)이어서 문서에 서명하지 않았으며, 임치수(林致守)가 증인으로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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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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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연도>光武九年乙巳</연도>十一月卄二日 明文右明文事切有緊用處故伏在<지명>上東上里</지명>後坪珠字畓九斗落所耕十七卜六束庫乙價折錢文肆伯兩依數捧上是遣以新旧文二張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言持此文憑考事畓主 <인명>金元謙</인명>[着名]訂人 <인명>金仁淑</인명>[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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