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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光緖十四年戊子</연도>二月二日 手標右標事急有緊用處<지명>梅山</지명>前坪黃梁矣畓傍字十二斗落所耕二十卜八束果文卷一張爲人前典當是遣錢文參拾兩以每朔五分例得用而限九月晦內並本利備報之意如是成標爲去乎若過限則永永得捧事標主 <인명>安成集</인명>[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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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同治九年庚午<연도></연도>三月二十日 前明文右明文事段以要用所致自己作畓累年耕食是多可伏在<지명>扶安下西面靑林里</지명>前坪於字畓陸斗落九夜味山稅參負㐣價折錢文㱏佰兩依數捧上是遣以新文一丈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言是去等持此文憑考事畓主 幼學 <인명>金命澈</인명>[着名]證筆 幼學 <인명>曺瓛坤</인명>[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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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년(丙寅年) 김인모(金仁模) 수표(手標) 고문서-증빙류-수표 경제-회계/금융-수표 丙寅十月四日 金仁模 丙寅十月四日 金仁模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병인년(丙寅年) 10월 4일에 김인모(金仁模)가 부안현(扶安縣) 이도면(二道面) 송곶(松串)에 있는 토지를 전당(典當) 잡히면서 작성한 수표(手標). 병인년(丙寅年) 10월 4일에 김인모(金仁模)가 부안현(扶安縣) 이도면(二道面) 송곶(松串)에 있는 토지를 전당(典當) 잡히면서 작성한 수표(手標)이다. 김인모는 긴히 돈을 쓸 곳이 있어서 선대로부터 전하여 내려온 송곶(松串) 앞들 논 16마지기와 5마지기를 구문기와 함께 본전 50냥에 이자 3.5분(分)으로 내기로 하고 전당 잡혔다. 내년 8월까지 본전과 이자를 함께 상환하여야 하며 만약에 기한을 넘기면 그곳에서 나오는 전답과 화곡은 빚준 사람의 차지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문서의 끝에 가친(家親)이 손수 적은 43냥도 병부(並付)한다는 단서가 적혀 있는데, 이것이 가친의 빚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거래 당시 수표주 김인모와 증인(證人) 김대중(/金大中)과 김덕신(金德信) 등 3인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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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同治十一年壬申</연도>九月二十日 明文右明文事急有要用處買得伏在<지명>上東鳳山</지명>前坪 字畓五斗落所耕九卜三束㐣幷禾穀三十斗價折錢文壹百貳拾伍兩依數捧上是遣以舊文記一張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端持此文券憑考事畓主 <인명>申郁</인명> 喪不着證人 <인명>任鎭常</인명>[着名](別紙)淑文處別拾三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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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道光十四年甲午</연도>三月初五日 前明文右明文事段當此歉年至有緊用處<지명>扶北</지명>二作邙字丁十四斗落只三庫並以所耕三十一卜二束㐣価折文一百兩依數捧上爲遣本文記段中間閪失故新文記一丈永永放賣爲去乎日後子孫中若有紛紜之弊則持此文告 官卞正事畓主自筆 <인명>李安遇</인명>[着名]訂保幼學 <인명>金吉</인명>[着名]訂保幼學 <인명>金光玉</인명>[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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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전옥여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大韓光武三年己亥十二月 日 田玉汝 大韓光武三年己亥十二月 日 田玉汝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99년 12월에 전옥여(田玉汝)가 부안군 일도면 봉황리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99년 12월에 전옥여(田玉汝)가 부안군(扶安郡) 일도면(一道面) 봉황리(鳳凰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전옥여는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자신이 매득한 부안군 일도면(一道面) 봉황리(鳳凰里) 앞들에 있는 논 2마지기를 7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신문서 1장을 건네주면서 나중에 다른 말이 있을 때 이 문서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전옥여와 증인 황도경(黃道卿)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문서 끝에 구문기는 잃어버렸기 때문에 출급하지 못했다는 단서가 기록되어 있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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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乾隆五十七年壬子</연도>十二月十五日女婿<인명>李光列</인명>處許給明文右明文事段自己買得累年耕食是如可<지명>材木洞</지명>前坪治字畓三斗落只內壹斗五升落只前已衿給是遣其餘壹斗五升落只以賣買礼価折錢文拾五兩依數捧上爲遣右人處許給永永放賣爲乎矣爲本文記段他他田畓幷付仍乙乎不以出給而合庫三斗落只所耕七負五束庫乙日後同生子孫某人中如有雜談是去等以此文記告 官卞事畓主 <인명>朴永福</인명>[着名]筆執幼學<인명>李完先</인명>[着名]筆幼學<인명>朴宗郁</인명>[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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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乾隆三十六年辛卯</연도>十月十五日<인명>房海得</인명>前 明文右明文事段矣身累月身病呻吟故藥債許多故不得己自己買得東門外<지명>仙隱洞</지명>前坪地字畓三斗落只又田一斗落只所耕十三負㐣價折錢文十兩依數捧是遣右人前本文記一丈永永放賣爲去乎日後子孫卞若有言端持此文記告官卞呈事畓主 <인명>朴尙洙</인명>[着名]證人 <인명>宋順奉</인명>[着名]筆執 <인명>李春遇</인명>[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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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 이병규(李炳圭)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十二年丙戌四月二十七日 李炳圭 光緖十二年丙戌四月二十七日 李炳圭 전북 부안군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86년(고종23) 4월 27일에 이병규(李炳圭)가 부안현(扶安縣) 하서면(下西面) 청림리(靑林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86년(고종23) 4월 27일에 이병규(李炳圭)가 부안현(扶安縣) 하서면(下西面) 청림리(靑林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명문(明文)이란 어떤 권리를 증명해 주는 문서로 파는 사람이 작성하여 사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체로 매매(賣買) 연월일(年月日)과 매수자(買受者), 매도사유(賣渡事由), 매도물(賣渡物)의 소재지, 양안상(量案上)의 자(字), 번(番), 결부속(結負束)과 두락(斗落) 등 매매 대상물의 정보와 가격, 그리고 매도인(賣渡人), 필집(筆執), 증인(證人) 등이 기록된다. 그러나 시대와 작성하는 사람에 따라 이들 가운데 일부가 생략되기도 하였다. 이병규는 자신이 매득하여 여러 해 동안 농사를 지어 먹던 논을 돈이 필요한 곳이 있어서 팔게 되었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부안현 하서면 청림리의 전평(前坪) 어자답(於字畓) 1석(石) 3두락(斗落只)이며 방매(放賣) 가격은 500냥이다. 매도인(賣渡人) 이병규는 구문기(舊文記) 2장(丈)과 신문기(新文記) 1장을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새로 작성한 문서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문서는 답주 유학(幼學) 이병규가 작성하고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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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 오도현(吳道賢)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十五年己丑十一月二十日 吳道賢 光緖十五年己丑十一月二十日 吳道賢 전북 부안군 喪不着 1개,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89년(고종 26) 11월 20일 오도현(吳道賢)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복성리(福星里)에 있는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89년(고종 26) 11월 20일 오도현(吳道賢)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복성리(福星里)에 있는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명문(明文)이란 어떤 권리를 증명해 주는 문서로 파는 사람이 작성하여 사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체로 매매(賣買) 연월일(年月日)과 매수자(買受者), 매도사유(賣渡事由), 매도물(賣渡物)의 소재지, 양안상(量案上)의 자(字), 번(番), 결부속(結負束)과 두락(斗落) 등 매매 대상물의 정보와 가격, 그리고 매도인(賣渡人), 필집(筆執), 증인(證人) 등이 기록된다. 그러나 시대와 작성하는 사람에 따라 이들 가운데 일부가 생략되기도 하였다. 오도현은 흉년이 들어 세금을 낼 방도가 없자 자신이 매득하여 경작해 왔던 밭을 팔게 되었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부안현 상동면 복성리에 있는 잠자(潛字) 태전(太田) 6두락지(斗落只)이며 부수(負數)로는 5부(負) 7속(束)인 곳이며, 방매 가격은 105냥이다. 여기에서 태전은 콩밭을 말한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負,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낙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신문기(新文記)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관(官)에 가져가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문서에는 밭의 주인 유학(幼學) 오도현, 증인(證人) 유학 김원호(金元浩), 집필(執筆) 유학 오석목(吳錫穆)의 이름이 있다. 태전주(太田主) 오도현은 상중(喪中)이어서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지 않았고, 김원호와 오석목은 각각 이름을 쓰고 그 아래에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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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光緖十九年癸巳</연도>六月十三日 明文右明文事段當此窮節生道極艱故伏在<지명>上東面福星里</지명>前麓松田參拾同落價折錢文肆拾參兩依數捧上是遣旧文記中間流失故以新文一張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他端則持此文記告官卞政事松田主 幼學 <인명>金奉瑞</인명>[着名]證人 幼學 <인명>朴成律</인명>[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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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丙寅</연도>十月四日 前手標右標事段切有緊用處傳來<지명>松串</지명>前坪十六斗落又五斗落舊文記二丈並以典當是遣右人前錢伍十兩三分半利備得用是矣限則來年八月晦內並本利備報是矣若過限則右畓禾穀永永執?次知如是成標事此亦中家親手記錢四十三兩並付印手標主 <인명>金仁模</인명>[着名]證人 <인명>金大中</인명>[着名]<인명>金德信</인명>[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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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9년 배성화(裵成化)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九年己丑十月十二 裵成化 道光九年己丑十月十二 裵成化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29년(순조 29) 10월에 유학(幼學) 배성화(裵成化)가 부안현(扶安縣) 이도면(二道面) 송곶(松串)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29년(순조 29) 10월 12일에 유학(幼學) 배성화(裵成化)가 부안현(扶安縣) 이도면(二道面) 송곶(松串)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배성화는 긴히 돈을 쓸 곳이 있어서 자신이 매득한 이도면 송곶(松串) 앞들 금자답(禽字畓) 9마지기와 6마지기를 합하여 110냥에 팔았다. 9마지기는 부수로 24부 7속, 6마지기는 20부 5속이 되는 곳이었다. 매매 당시 구문기는 중간에 잃어버렸기 때문에 출급하지 못하고 신문기 1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었다. 뒤에 만약 이 논을 두고 분란이 일어나면 관에 알려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배성화와 증필(訂筆)로 오선집(吳善集)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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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道光九年己丑</연도>十月十二日 前明文右明文事段以要用所致自己買得<지명>松串</지명>前坪禽字畓九斗落所耕二十四卜七束㐣果又六斗落所耕二十負五束㐣價折錢文㱏百十兩依數捧上是遣舊文記中間閪失故不得出給爲遣新文一丈右人前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紛紜之端是去等以此文記告 官卞正事畓主 幼學 <인명>裵成化</인명>[着名]訂筆 幼學 <인명>吳善集</인명>[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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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3년 배여옥(裵汝玉)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十三年癸巳十一月初三日 裵汝玉 道光十三年癸巳十一月初三日 裵汝玉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33년(순조 33) 11월 초3일에 유학(幼學) 배여옥(裵汝玉)이 부안현 이도면(二道面) 송곶(松串) 앞들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33년(순조 33) 11월 초3일에 유학(幼學) 배여옥(裵汝玉)이 부안현 이도면(二道面) 송곶(松串) 앞들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배여옥은 다른 전답을 매입하기 위하여 금자(禽字) 논 9마지기, 5마지기, 2마지기 그리고 같은 금자(禽字) 밭 4마지기와 시장(柴場) 30동락을 모두 합하여 21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구문기는 중간에 잃어버렸기 때문에 출급하지 못하고 신문기 1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었다. 뒤에 만일 이 논을 두고 말썽이 일어나면 이 문기를 관에 고하여 증빙하라고 하였다. 당시 논 주인 배여옥과 증인으로 유학 김순재(金順載), 증필로 유학 최대석(崔大錫) 등 3인이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문서 뒷면에는 금자 밭 4마지기와 같은 금자 시장 30동락을 함께 배탈(背頉)하였다고 적혀 있다. 이 거래가 이루어진 뒤에 거래 물건 중에서 일부가 매매되었다는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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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大韓光武三年己亥</연도>十二月 日 明文右明文爲後考事切有緊用處故自己買得伏在<지명>一道鳳凰里</지명>前坪 字畓二斗落所耕六負 束庫乙價折錢文拾柒兩依數捧上是遣以新文一張右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論持此文記憑考事畓主 <인명>田玉汝</인명>[着名]證人 <인명>黃道卿</인명>[着名]舊文記中間閪失故不得出給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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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신기남(辛奇男)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十六年庚寅十二月十五日 辛奇男 光緖十六年庚寅十二月十五日 辛奇男 전북 부안군 喪不着 1개,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90년(고종 27) 12월 15일에 신기남(辛奇男)이 부안군(扶安郡) 일도면(一道面) 봉황리(鳳凰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90년(고종 27) 12월 15일에 신기남(辛奇男)이 부안군(扶安郡) 일도면(一道面) 봉황리鳳凰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신기남은 배생전(排泩錢)을 채워서 납부할 길이 없어서 봉황리(鳳凰里) 앞들에 있는 논 9마지기를 262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구문서를 매입자에게 건네주면서 나중에 이 논을 두고 논란이 생기면 이 문서를 관에 알려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신기남은 상(喪)을 당하여 서명하지 못하였고 증필로 신무연(辛武然)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연도>光緖十六年庚寅</연도>十二月十五日右人前明文右明文事排泩錢充納無路伏在<지명>鳳凰里</지명>前坪九斗落所耕十四負㐣價折錢文二佰陸拾貳兩依數捧上是遣右前並舊文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爻象之端以此文記告官卞政事畓主 <인명>辛奇男</인명>[喪不着]證筆 <인명>辛武然</인명>[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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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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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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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75년 신백첨(辛伯詹)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十四年乙亥八月 日 辛伯詹 同治十四年乙亥八月 日 辛伯詹 전북 부안군 喪不着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5년(고종 1) 8월에 신백첨(辛伯詹)이 부안 정지제(定只堤)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5년(고종 1) 8월에 신백첨(辛伯詹)이 부안 정지제(定只堤)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신백첨은 긴히 돈을 쓸 곳이 있어서 농사지어 먹고 살던 정지제(定只堤) 아래에 있는 찬자답(讚字畓) 9마지기를 270냥에 팔았다. 나중에 시끄러운 문제가 생기면 이 문기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당시 구문서는 다른 13마지기 논 문서에 붙어 있어서 출급하지 못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신백첨과 증인(證人) 이한열(李漢烈)이 모두 상(喪)을 당하여 서명하지 못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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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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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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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연도>同治十四年乙亥</연도>八月 日明文右明文段耕食畓讚字丁定只堤下九斗落有要用處折價錢文貳百柒拾兩永爲放賣爲去乎如有爻象以此憑考而舊文記並付他十三斗落畓庫不得出給亦以此憑後爲乎乙事畓主 <인명>辛伯詹</인명>[喪不着]證人 <인명>李漢烈</인명>[喪不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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