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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咸豐拾壹年辛酉</연도>至月十二日幼學<인명>崔學鳳</인명>前明文右明文事段自己買得累年耕食是多可不得已以伏在<지명>一道面</지명>定只堤下畓伍斗落只所耕拾捌負庫乙價折錢文伍拾兩依數捧上是遣舊文記段他畓處倂付故不得出給之只以新文記一丈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此後若有紛紜之端則持此文記相準事畓主 <인명>田仁掑</인명>[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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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道光十六年丙申</연도>九月十一日喪人<인명>金思濟</인명> 前明文右明文事段要用所致自己買得耕食是如可勢不得已伏在堤內前坪二作称字畓㱏斗落只所耕二負五束㐣價折錢文▣兩五戔準數捧上有遣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本文記遺失故不得出給而新文記一丈成給爲去乎日後如有紛紜之弊是去等以此記告官卞正事畓主 幼學 <인명>尋德元</인명>[着名]證筆 幼學 <인명>河文則</인명>[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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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 염형두(廉衡斗)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咸豐七年丁巳十二月初三日 金喆相 廉衡斗 咸豐七年丁巳十二月初三日 金喆相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57년(철종 8) 12월 초3일에 김철상(金喆相)이 염형두(廉衡斗)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57년(철종 8) 12월 초3일에 김철상(金喆相)이 염형두(廉衡斗)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명문(明文)이란 어떤 권리를 증명해 주는 문서로 파는 사람이 작성하여 사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체로 매매(賣買) 연월일(年月日)과 매수자(買受者), 매도사유(賣渡事由), 매도물(賣渡物)의 소재지, 양안상(量案上)의 자(字), 번(番), 결부속(結負束)과 두락(斗落) 등 매매 대상물의 정보와 가격, 그리고 매도인(賣渡人), 필집(筆執), 증인(證人) 등이 기록된다. 그러나 시대와 작성하는 사람에 따라 이들 가운데 일부가 생략되기도 하였다. 김철상은 돈이 필요한 데가 있어서 자신이 매득하여 경작해 왔던 논을 팔게 되었다. 매매 대상이 된 토지는 두 곳인데, 첫 번째는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심성(深城) 제방 끝쪽에 있는 칭자답(称字畓) 2두락지(斗落只)로 도조(賭租)가 2두락지인 곳이다. 두 번째는 칭자답 1두락지로 부수(負數) 2부(負) 5속(束)인 곳이다. 방매 가격은 모두 24냥이다. 매도인(賣渡人) 김철상은 구문기(舊文記) 2장(丈)과 신문기(新文記) 1장을 매수인(買受人) 염형두에게 넘겨주었다. 새로 작성한 문서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답주(畓主) 유학(幼學) 김철상과 증필(證筆)로는 유학 나운채(羅雲彩)가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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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道光二十年庚子</연도>三月十八日幼學 前明文右明文事段自己買得是多可切有緊用處故勢不得已<지명>右山內面滋味洞</지명>前坪 畓三斗落只所耕九負庫乙価折錢文伍十兩依數捧上爲遣公文本文合二丈幷付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如有紛紜之說以持此文記憑考事畓主幼學<인명>金基夏</인명>[着名]證筆幼學<인명>任希福</인명>[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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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貳十年二月初十日幼學金基夏前明文右明文事當此桑年生活無路而許多除癈與墓陳所耕何以備納乎莫重 王稅死且備納故<지명>右山內子味洞</지명>伏在墓畓三斗落只所耕九卜庫乙価折錢文伍十兩依數捧上而旧文記段入於燒火中故不得出給是遣爲遣並以立旨與新文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某人中紛紜之端是去等持此文告 官卞正事畓主幼學<인명>李遠弼</인명>[着名]證筆幼學<인명>吳敬文</인명>[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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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6년 이생원댁노(李生員宅奴) 장복(長福)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嘉慶元年丙辰十二月初三日 李光列 李生員宅奴長福 嘉慶元年丙辰十二月初三日 李光列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796년(정조 20) 이생원댁노(李生員宅奴) 장복(長福)이 상전을 대신하여 이광열(李光列)에게서 논을 사면서 작성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796년(정조 20) 이생원댁노(李生員宅奴) 장복(長福)이 상전을 대신하여 이광열(李光列)에게서 논을 사면서 작성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이광렬은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재목동(材木洞) 전평(前坪)에 있는 치자답(治字畓) 1두 5승락지와 같은 치자답(治字畓) 1두 5승락지 등 모두 3두락, 부수(負數)로는 7부 5속에 해당하는 곳을 25냥을 받고 장복에게 팔았다. 치자답은 이광열이 처가(妻家)로부터 받은 것이며, 동자답은 자신이 매입한 것이었다. 재목동이 어느 곳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광렬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본문기(本文記) 1장을 매입자에게 넘겨주면서 뒷날 자손 중에 이 논을 가지고 다른 말을 하거든 이 문기를 관에 고하여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증인으로 유학(幼學) 이인배(李寅培)가 필집(筆執)으로 박종욱(朴宗郁)이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논을 매입한 이생원댁은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로 추정된다. 전주이씨 가문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현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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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嘉慶元年丙辰</연도>十二月初三日<인명>李生員</인명>宅奴<인명>長福</인명>前明文右明文事段要用所致<지명>材木洞</지명>前坪妻家衿得是在治字畓一斗五升落果且自買是在同字畓一斗五升落只合三斗落所耕合七負五束庫乙捧價錢貳拾伍兩右人處永永放賣爲旀本文記一張傳給爲去乎日後子孫某人中如有雜談則以此文記告官卞正事畓主 <인명>李光列</인명>[着名]證人幼學<인명>李寅培</인명>[着名]筆幼學<인명>朴宗郁</인명>[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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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한참봉댁노(韓參奉宅奴) 년봉(年奉)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武七年癸卯七月二日 韓參奉宅奴 年奉 光武七年癸卯七月二日 韓參奉宅奴 年奉 전북 부안군 [左寸] 1개 4.5*4.5 3개(적색, 원형)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3년 7월 2일에 한참봉댁노(韓參奉宅奴) 년봉(年奉)이 상전(上典)을 대신하여 부안군(扶安郡) 청호(晴湖)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03년 7월 2일에 한참봉댁노(韓參奉宅奴) 년봉(年奉)이 상전(上典)을 대신하여 부안군(扶安郡) 청호(晴湖)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한참봉댁에서 급하게 돈을 쓸 일이 있어서 청호 계위평(鷄爲坪)에 있는 수세답(收稅畓) 5석(石) 18마지기를 백동(白銅) 화폐로 1만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신·구문기 11장 건네주며 나중에 서로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한참봉댁노 년봉 혼자만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문서의 맨 끝에는 돈을 받은 뒤에 구문기를 출급하겠다고 적혀 있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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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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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道光陸年丙戌</연도>十一月二十九日 前明文右明文事段要用所致自己買得累年耕食是如可伏在<지명>仙隱洞</지명>前坪一作玄字畓四斗落只所耕十卜庫乙錢文四十陸兩右人前依數捧上爲遣本文記段他畓倂以故新文記一章永永放賣爲去乎日後子孫中若有雜談是去等以此新文記告官 卞正事畓主 <인명>徐致錄</인명>[着名]證人 <인명>朴好才</인명>[着名]筆執 <인명>趙宗學</인명>[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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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6년 신노춘이(辛奴春伊)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十六年丙申十二月十六日 李生員宅奴 分同 辛奴 春伊 道光十六年丙申十二月十六日 李生員宅奴 分同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36년(헌종 2) 12월 16일에 이생원댁노(李生員宅奴) 분동(分同)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논을 신씨가(辛氏家)의 노(奴) 춘이(春伊)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36년(헌종 2) 12월 16일에 이생원댁노(李生員宅奴) 분동(分同)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논을 신씨가(辛氏家)의 노(奴)춘이(春伊)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이생원댁노 분동은 상전 이생원으로부터 위임을 받아 대신하여 토지를 매매한 것이다. 이생원은 급하게 돈을 쓸 일이 있어서 자신이 매득한 논인 일도면의 일작(一作) 현자정(玄字丁) 4마지기, 부수(負數)로는 10부가 되는 곳을 신씨가(辛氏家)의 노 춘이에게 35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구문기 1장과 패자(牌子) 1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며 나중에 서로 다른 말이 있으면 이것으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이생원댁노 분동과 증필(證筆)로 조형익(趙亨益)이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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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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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연도>道光十六年丙申</연도>十二月十六日<인명>辛奴春伊</인명>前明文右明文事段矣宅緊有急用處自己買得畓伏在<지명>扶東</지명>一作玄字丁肆斗落只所耕拾負庫乙折價參拾五兩依數捧上爲遣右人前永永放賣爲乎矣旧文記一丈果牌子一丈並爲成文記爲去乎日後如有相左之端持此憑考事畓主 <인명>李生員宅奴分同</인명>[着名]證筆 <인명>趙亨益</인명>[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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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년 신명직(辛命直)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嘉慶拾年乙丑十二月二十三日 金誠鉉 辛命直 嘉慶拾年乙丑十二月二十三日 金誠鉉 전북 부안군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05년(순조 5) 12월 23일에 김성현(金誠鉉)이 부북(扶北)에 있는 논을 신명직(辛命直)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05년(순조 5) 12월 23일에 김성현(金誠鉉)이 부북(扶北)에 있는 논을 신명직(辛命直)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성현은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부북(扶北)에 있는 하자답(荷字畓) 23복 1속과 봉자답(鳳字畓) 9마지기 및 누자답(樓字畓) 11마지기 등을 신명직에게 모두 160냥을 받고 팔았다. 매매 당시 구문기는 다른 논의 문서에 붙어 있어서 매입자에게 건네주지 못했다. 만일 이 논을 두고 나중에 서로 다른 말이 있을 때에는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인 김성현이 직접 문서를 작성하였다. 특기할만한 점은 봉자답(鳳字畓)에 줄을 긋고, '虛錄頉下'로 적혀 있는 점이다. 뒷날 논의 일부인 봉자답만을 매매한 뒤에 기재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어떤 사유로 '虛錄'으로 정해져 면세(免稅)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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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光緖十二年丙戌</연도>四月二十七日 前明文右明文事段自己買得耕食是如可以要用所致伏在<지명>下西靑林</지명>前坪於字畓㱏石參斗落所耕 㐣價折錢文伍百兩依數捧上是遣旧文記二丈新文一丈幷以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說以此憑考事畓主 幼學 自筆 <인명>李炳圭</인명>[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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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 이영규(李榮圭)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十一年乙酉八月二十五日 李榮圭 光緖十一年乙酉八月二十五日 李榮圭 전북 부안군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85년(고종 22) 8월 25일에 이영규(李榮圭)가 부안현(扶安縣) 하서면(下西面) 청림리(靑林里)에 있는 논을 매도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85년(고종 22) 8월 25일에 이영규(李榮圭)가 부안현(扶安縣) 하서면(下西面) 청림리(靑林里)에 있는 논을 매도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명문(明文)이란 어떤 권리를 증명해 주는 문서로 파는 사람이 작성하여 사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체로 매매(賣買) 연월일(年月日)과 매수자(買受者), 매도사유(賣渡事由), 매도물(賣渡物)의 소재지, 양안상(量案上)의 자(字), 번(番), 결부속(結負束)과 두락(斗落) 등 매매 대상물의 정보와 가격, 그리고 매도인(賣渡人), 필집(筆執), 증인(證人) 등이 기록된다. 그러나 시대와 작성하는 사람에 따라 이들 가운데 일부가 생략되기도 하였다. 이영규가 이 논을 팔게 된 이유는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매매 대상 토지는 부안현 하서면 청림리의 전평(前坪) 어자답(於字畓) 1석(石) 3두락(斗落只)이며, 매도 가격은, 산세(山稅)를 포함하여 300냥이다. 이영규는 매매(賣買) 사실을 분명히 하기 위해 본 토지와 관련된 구문기(舊文記) 2장과 신문기(新文記) 1장을 매수인(買受人) 넘겨주었다. 매매 대상에 산세를 포함시킨 것은 어자답이 산지에 있어서 관에 산세를 내야 하는데, 그 부담을 매입자가 지기로 하였다. 그 이자는 매년 황조(黃租) 12석(石)이었다. 이영규는 또 내년까지는 원래의 가격, 즉 3백냥으로 밭을 되사겠다고 하였다. 문서 속에 나오는 '본가환태지의(本價還退之意)'라는 표현은 바로 그러한 의미이다. 그러나 이 기한이 지나면 이 밭은 영구히 상대방(매입자)의 차지가 될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문서에는 답주(畓主) 이영규의 이름과 서명이 있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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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咸豐七年丁巳</연도>十二月初三日幼學廉衡斗前明文右明文事段要用所致自己買得伏在<지명>上東面深城</지명>堤邊称字畓二斗落只冐耕賭租二斗㐣果又称字畓一斗落所耕二負五束㐣倂爲價折錢文二十四兩依數捧上是遣舊文記二丈新文一丈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他端是去等持此文憑考事畓主 幼學 <인명>金喆相</인명>[着名]證筆 幼學 <인명>羅雲彩</인명>[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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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49년 김댁후(金宅垕)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二十九年己酉十一月十七日 金宅垕 道光二十九年己酉十一月十七日 김댁후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49년(헌종 15) 11월 17일에 유학 김댁후(金宅垕)가 부북 정지제(定只堤)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49년(헌종 15) 11월 17일에 유학 김댁후(金宅垕)가 부북 정지제(定只堤)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댁후가 긴요하게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자신이 매득한 부북 정지제(定只堤) 아래에 있는 난자정(蘭字丁) 9두락지를 130냥에 팔았다. 부수(負數)로는 25부 7속이 되는 곳이었다. 매매 당시 구문기 3장을 매수자에게 건네주어 나중에 만약 이 논을 두고 논란이 생기면 이 문서를 관에 고하여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주인 유학 김댁후와 증필로 사형 김재후(金在垕)가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연도>道光二十九年</연도>己酉十一月十七日 前明文右明文事段要用所致自己買得是如伏在<지명>定只堤</지명>下蘭字丁畓九斗落只所耕二十五負七束㐣決價錢文㱏百參拾兩依數捧上爲遣旧文記三丈幷以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紛紜之弊是去等以此文記告 官卞正事畓主 幼學 <인명>金宅垕</인명>[着名]證筆 舍兄 <인명>在垕</인명>[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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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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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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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37년 김댁후(金宅垕)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拾柒年丁酉十二月初七日 金哲伊 金宅垕 道光拾柒年丁酉十二月初七日 김댁후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37년(헌종 3) 12월 7일에 한량 김철이(金哲伊)가 김댁후(金宅垕)에게 부북(扶北) 정지제(定之堤)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37년(헌종 3) 12월 7일에 한량(閑良) 김철이(金哲伊)가 김댁후(金宅垕)에게 부북(扶北) 정지제(定之堤)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철이는 다른 곳에 있는 전답을 사기 위하여 자신이 매득했던 부북 정지제 아래 지비리(之飛里) 전평에 있는 난자정답(蘭字丁畓) 9두락지를 140냥에 김댁후에게 팔았다. 부수(負數)로는 25부 7속이 되는 곳이었다. 매매 당시 구문기 2장을 매수자 즉 김댁후에게 건네주며 나중에 만약 이 논을 두고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로 관에 고하여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주인 한량 김철이와 증필로 유학 김규택(金奎澤)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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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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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연도>光緖十三年丁亥</연도>十一月十六日 前明文右明文事段急有緊用處<지명>一道鳳凰村</지명>後麓松田廣五百步長五百步松枝五十同落柴草二十同落折價錢文八十五兩依數捧上是遣舊文記家垈文卷並付故未得出給以新文一丈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談則以此文記告 官爲乙事松田主自筆 <인명>金裕一</인명>[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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