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년(某年) 박인필(朴仁弼) 시권(試券) 3 고문서-증빙류-시권 정치/행정-과거-시권 남원 금지 밀양박씨가 남원 금지 밀양박씨가 모년(某年) 박인필(朴仁弼)이 백일장(白日場)에서 작성한 시권(試券) 3 박인필(朴仁弼)이 어느 해 백일장(白日場)에 나아가 작성하여 제출한 시권(試券)이다. 본 박인필 시권이 소과(小科)나 문과(文科)에서 작성된 것이 아니라는 점은 시권의 형태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우선 소과의 시권은, 그것이 생원시 시권이든 진사시 시권이든 세로보다 가로가 긴 형태이고, 오른쪽 상단에 응시자의 본관과 거주지를 비롯하여 사조(四祖), 즉, 부(父), 조부(祖父), 증조(曾祖), 외조(外祖)에 관한 내용을 반드시 적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4조를 적은 부분과 본문이 적힌 시권과의 사이를 칼로 자른 후 따로 따로 보관하였다. 이후 본문이 적힌 부분으로 채점하고 그 이후 그 본문과 원래 연결되어 있던 부분을 다시 연결시키는 방법으로 그 시권의 주인공을 확인하였다. 그런데 본 박인필의 시권은 그렇지 않고 우측 하단에 박인필이라는 이름만 있는 상태이다. 문과의 시권도, 식년시(式年試)와 증광시(增廣試) 그리고 별시(別試)와 같이 응시생이 작성한 시지가 아니라 그 시지를 옮겨 적은 역서지(易書紙)로 채점하는 문과의 시지는 생원시나 진사시처럼 세로보다 가로가 긴 형태요, 사조를 적은 부분도 그 모습이 같았다. 반면 정시와 알성시 문과의 시지는 박인필의 시권처럼 세로가 가로보다 긴 형태이기는 하다. 하지만 우측 하단에 응시자의 나이와 본관 거주지 그리고 아버지의 이름 등을 적도록 되어 있었다. 본 박인필 시권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백일장에서 작성한 것인데, 조선시대에는 고을 수령(守令)이나 혹은 도(道)의 도사(都事)나 감사(監司) 자기 고을 혹은 여러 고을을 다니면서 백일장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이 백일장에서 아주 우수한 성적을 받은 몇 몇 사람에게는 소과(小科), 즉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의 초시(初試)를 면제해 주고, 곧바로 소과의 복시(覆試)에 나아갈 수 있는 혜택을 주었다. 그 다음으로 우수한 성적을 취득한 자에게는 급분(給分), 즉 가산점(可算点)이 주어졌는데, 이 가산점은 소과 초시 때 활용할 수가 있었다. 박인필이 작성한 이 시권은 본문 첫머리의 시제 밑에 "시(詩)"라는 단어가 나오는 있는 점으로 보아, 소과 중에서 진사시 쪽에 해당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생원시는 의(義)를, 진사시 쪽은 시(詩)나 부(賦)를 보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박인필이 응시한 백일장은 진사시를 목표하는 사람들이 참여하였던 것이다. 물론 박인필이 백일장에 한 번만 나간 것은 아닌 듯하다. 여러 차례 참여하였음이 분명한데, 때로는 생원시에서 출제되는 의(義)를 써 서 제출한 적도 있었다. 관련문서 '모년(某年) 박인필(朴仁弼) 시권(試券) 1'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 살펴보는 박인필의 시권에는 7언으로 된 시(詩)가 18구(句) 적혀 있다. 글자 수를 보면 126자가 된다. 시제(詩題)는 "광한궁문자운락귀제예상우의곡(廣寒宮聞紫雲樂歸製霓裳羽衣曲)"이었다. 그리고 이 시제 밑에 있는 "육월(六月)"이라는 표식은 이 박인필의 시권에게 부여한 고유 번호로 보인다. 고유 번호는 제출한 순서대로 정해졌으리라 추측된다. 시제 가운데 광한궁(廣寒宮)의 원래 의미는 달 속에 있다는 궁전, 즉 상상 속의 궁전을 말한다. 그리고 시제의 마지막에 나오는 "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은 중국 당(唐)나라 현종(玄宗)이 월궁전(月宮殿), 즉 달 속에 있는 궁전에서 신선(神仙)들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이를 본떠 만든 곡(曲)을 말한다. 그러니까 위 시제는 "자운궁에서 자운락(紫雲樂)을 듣고 돌아와 예상우의곡을 지었다."는 의미요, 당나라 현종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다만 추측컨대, 본 시권을 지은 박인필이 남원 거주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위 시제는 남원의 유명한 정자인 광한루(廣寒樓)를 염두에 두고 출제된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광한루에 대한 좋은 시를 지어보라는 주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마지막으로 박인필이 이 시권을 제출하여 받은 성적을 보면, 차상(次上)이었다. 백일장에서의 성적은, 각종 과거에서의 성적과 마찬가지로 여러 단계로 매겼는데 좋은 성적으로는 상상(上上), 상중(上中), 상하(上下), 중상(中上), 중중(中中), 중하(中下), 하상(下上), 하중(下中), 하하(下下) 등 9단계가 있었고, 다음으로는 차상(次上), 차중(次中), 차하(次下)가 있었다. 물론 이 축에도 들지 못하는 자들도 있었을 것인데, 적어도 위 12단계에 성적을 받아야만 성적우수자 축에 들어 소과의 초시 면제 자격이나 가산점을 받을 수 있었다. 박인필의 경우는 가산점을 받았으리라 짐작된다. 한편 본 시지의 후면(後面)을 보면 "기지(機池)"라는 글자가 보이는데 이는 물론 본 시권을 작성한 박인필이 기지방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기지라는 표현은 앞 부분 박인필의 이름 밑에도 적혀 있다. 그리고 앞부분의 이름에는 "근봉(謹封)"이라는 글씨가 보이는데, 이는 이름 부분을 돌돌 말아 그 위에 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