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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이문용(李汶容)의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丙寅 十月 初四日 李汶容 仲季父主前 上白是 初四日 謹封 丙寅 十月 初四日 李汶容 仲季父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66년 10월 4일에 이문용(李汶容)이 중(仲)·계부(季父)에게 자신의 근황과 강화도사건 소식을 전하는 간찰(簡札) 1866년 10월 4일에 이문용(李汶容)이 중(仲)·계부(季父)에게 자신의 근황과 강화도사건 소식을 전하는 간찰이다. 안부를 묻고, 종조카는 이런 어수선한 시절을 당하여 부득이 나가서 양주의 서산공의 묘소 아래에 붙어살다가 떠돌아다니고 있으니, 무엇을 말씀드릴 수 있겠는가? 가장 긴급한 것은 먹을 것이 부족하고 적에게 해를 당할까 하는 것이다. 살아서 내려가고자 해도 노비(路費)가 백여 금을 내려가지 않고 또 빈손으로 진퇴할 수 없다. 근기(近畿)의 골짜기 마을로 깊이 들어가고자 하나 이것도 돈이 있은 후에야 경영할 수 있을 것이다. 서양 배가 강화도에서 성을 쳐부순 후에 적의 소굴이 되어 조금도 동정이 없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병사는 근 만 명이 포구의 가에 진치고 있다고 하는 소식을 전하면서 서양 오랑캐의 소멸과 국가의 안정을 바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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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정유택(鄭逌澤)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庚午 十月 二十七日 鄭逌澤 可川 侍制座 入納 庚午 十月 二十七日 鄭逌澤 可川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30년 10월 27일에 정유택(鄭逌澤)이 제수의 여정을 전하고자 가천리의 아무개에게 보낸 간찰(簡札) 1930년 10월 27일에 정유택(鄭逌澤)이 제수의 여정을 전하고자 보낸 간찰이다. 수신인은 보성 가천리에 사는 아무개이다. 본생이 그대를 찾은 것은 대기(大朞, 大祥)가 가까웠기 때문이고, 궤연(几筵)을 장차 철거할 것인데 애통함이 새로운 듯하다.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있다. 제수(弟嫂)가 돌아가 문안하고자 갈 채비를 차렸는데 차로가 신속하다고 한다. 추운 날씨의 긴 여정에 별탈없이 갔으면 좋겠다. 금번에 아우가 따라 갈 것이지만 출입이 너무 일러 하루를 묵고 도로 보내는 것이 어떠냐고 묻고 있다. 피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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仲季父主前 上白是 初四日 謹封伏未審霜令峭寒氣體候 以時萬安 諸從弟 俱得無頉 伏慕區區 不任下誠之至 從姪當此擾亂之時不得已出寓楊州西山墓下禮 爲之漂泊何可伏達 最所緊急者 乏食賊害 前似難堪 生而擬欲下去 則路費不下百餘金 且赤手不能進退矣 雖欲深入近畿峽村 而此亦有錢後 可以經營爲之奈何且伏切心寒臆塞而已 洋航則自江華破城後 渠自爲賊窟 少無動靜 而我國兵則近萬名 留陳於浦邊耳 伏願明天 消滅洋夷 安靜國家耳 餘萬不備只伏祝氣體候 循序康旺問安上白是丙寅 十月 初四日 侄 汶容 上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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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조정복(趙廷復)의 간찰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甲子 十月 初九日 趙廷復 甲子 十月 初九日 趙廷復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4년 10월 9일에 조정복(趙廷復)이 혼사의 일로 보낸 간찰 1924년 10월 9일에 조정복(趙廷復)이 혼사의 일로 보낸 간찰이다. 혼사에 성첩(星帖)을 이미 받아 두터운 돌보아주심에 더욱 감격했다. 아침에 연길을 보내드리는 것에 애로는 없었는가? 의복에 관해서는 편지로 알려주는 것이 어떠냐 하였다.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_230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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謹拜狀上 謹封書後有日 伏惟際玆尊體動止萬重 仰溯區區 無任之至 第親事星帖已受 尤感不遐之厚眷 轂朝涓呈 或無所礙耶衣制書示如何餘不備 伏惟尊照 謹候上甲子 十月 初九日趙廷復 再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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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고시익(高時翼)의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癸丑 至月 念日 高時翼 癸丑 至月 念日 高時翼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3년 11월 20일에 고시익(高時翼)이 사돈에게 서로의 안부와 며느리의 현숙함을 격려하는 간찰(簡札) 1913년 11월 20일에 고시익(高時翼)이 성명 미상의 사돈에게 서로의 안부와 며느리의 현숙함을 격려하는 편지로서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존장을 바라던 것이 겨우 이루어졌는데 도리어 곧바로 헤어지니 돌아온 뒤의 슬픔을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아이가 돌아와 전해주는 편지를 받고 삼가 부모님 모시는 체후가 연이어 보호되고 좋으심을 알았으니 위안되는 마음이 실로 수고로이 기도하던 마음에 흡족하였습니다. 저는 탈 없이 집에 돌아왔으나 피곤함이 심합니다. 며느리의 현숙함은 눈에 아른하여 잊기 어려우니 비로소 사람의 감정으로 용납할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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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이병응(李秉應)의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乙巳 四月 旬三日 李秉應 朞服人 乙巳 四月 旬三日 李秉應 朞服人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9년 4월 13일에 이병응(李秉應)이 상인(喪人)을 위로하고자 보낸 간찰(簡札) 1929년 4월 13일에 이병응(李秉應)이 상인(喪人)을 위로하고자 보낸 간찰(簡札)이다. 지난겨울에 중제(重制, 대공친의 상복)가 있었음을 알았다고 하면서 애도하고 위로한다고 하였다. 그렇더라도 남화자(南華子, 장자(莊子)의 별호)는 "같을 수 없으니 누가 운명처럼 편안히 여기겠는가?" 하였다. 이 방외인의 달론(達論)을 깊이 생각해보라고 하고서, 뜻밖의 재앙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어서 안부를 묻고, 자신은 쓸모없는 사람으로서 나이만 먹어가고 지기(志氣)도 쇠퇴해 더 이상 진보할 수 없다고 하였다. 자신을 돌아보면서 조상하고 축하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라거나 늙음과 죽음에 대한 소견을 피력하고 있다. 피봉이 있는데, 석어(石魚) 1급을 부친다고 하고 수신인은 가천리에 사는 기복인(朞服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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荊願纔遂 旋卽分?歸後悵款 曷有其極 兒還卽承惠翰 謹審侍棣動止 連護万衛 區區慰仰 實愜勞禱 査弟無撓還齋 而勞攘則甚矣 子婦淑儀 森然難忘 始覺人情之無容也 餘在續候不備 伏惟崇炤 謹謝上癸丑 至月 念日 査弟 高時翼 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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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년 증회용(曾會用)의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嘉慶十三年正月初九日 曾會用 全福進 嘉慶十三年正月初九日 曾會用 全福進 ○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08년 정월 9일에 답주 증회용(曾會用)이 논을 전복진(全福進)에게 매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1808년 11월 20일에 답주 증회용(曾會用) 논을 전복진(全福進)에게 매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이다. 자기가 매득하여 여러 해 동안 갈아먹다가 부득이하게 이매(移買)하고자 문전면 가천촌의 답 1두5승락지와 목자답(睦字畓) 1두5승락지 합 3두락지 부수 13복(卜)을 전문 48냥에 영영 방매한다고 하였다. 답주는 증회용, 증인은 증낙철(曾洛喆), 필집은 증최감(曾崔甘)이다. 이름 아래에 수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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霖雨支離 候信頓阻 悵昻之懷 恒切憧憧 伏惟流火靜棣候 連得珍衛 閤節均安 允郞昆季 亦安侍勤業否 仰溯何等區區 老弟謹保縷命 諸率姑無患故 是幸也秋房已届 孫兒婚處 尙無合意處 悶㭗悶㭗 生凉後 一枉以叙阻懷 切企切企 婿郞亦爲命送如何餘不備 伏惟乙丑 七月 旬七日 査弟 廷復 拜謹候上 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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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미상의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아들의 모임참석 여부를 묻는 간찰(簡札)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아들의 모임참석 여부를 묻는 간찰(簡札)이다.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에 대해 먼저 언급했다. 부모님은 설사인 듯하고 학질 증상은 아니지만 월초부터 조화롭지 못했다. 지금은 자리에 누워만 계셔 초조하고 애가 탄다. 또 집안의 근심거리가 여러 날 생겨 깊이 신음하고 있다. 그러면서 일생을 회고하건대 안자가 좋아하던 부분을 배우지 못하고 주자의 이른바 두문절식(杜門竊食)하여 감히 외간의 일에 참여하여 듣지 못했다는 것에 나도 그러했다. 어찌 호랑이밥이나 그 외의 근심이 없을 수 있겠는가? 아이들과 조카들이 독서에 게으른 것이 천운이 이와 같으니 어찌 도연명의 말씀뿐이겠는가? 부끄럽고 한탄스럽다. 일찍이 듣건대 가을 더위에 세 무정한 모임에 참석하면 서늘함이 멀지 않다고 한다. 아들에게 명하여 배종하게 하는 것이 어떠냐고 묻고 있다. 이하의 글은 탈락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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謹候書靑雲驛前 分手後一向聞問 與西天月爲空濶 鬱鬱可知 而況今夏長潦 近日老炎年來所刱覩也 尤切渴想者乎 卽惟重省餘 棣體候衛重 允郞好在 而勤能篤課 寶覃均休否 區區衷衷 寔切懸仰如來者親節以似泄非痢之症 自月初欠和 今苟委席焦如煎如 而且見室憂之屢日 沈吟 此舞非時 氣失序之所使也 奈奈何何 回顧一生 學不得顔子所好處而朱子所謂 杜門竊食 不敢與聞外間事 吾亦有之矣吾豈能無虎食 其外之憂哉 且兒侄輩 只未免懶讀愛果 所謂天運苟如此 豈獨淵明語乎哉 愧歎交切而已 曾聞秋熱 亦參於三不情 則凉生必不遠矣倘命允郞 使爲陪從 幸賜惠然 如何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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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분배 내역을 적어놓은 분재기(分財記) 고문서-명문문기류-분재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위토의 분포상황을 밝히고, 또 5곳으로 토지분배 내역을 적어놓은 분재기(分財記) 위토를 제위조(祭位條)와 산위조(山位條)로 나누어 토지의 분포상황을 밝히고, 또 5곳으로 토지분배 내역을 적어놓은 분재기(分財記)이다. 제위조는 문중의 조상제사를 위해 마련된 위답이며, 산위조는 조상 산소의 수호와 제사를 위해 조성한 위답이다. 5곳의 토지는 가천 안산평 외자답(外字畓) 등과 가천 용복평 목자답 등, 가천 용복평 목자답(앞과 동일한 곳임) 등, 장동평 화자답 등, 가천촌 앞 부자답 등인데, 각각 끝에는 비(婢)의 이름을 적어놓았으며 네 번째만 이름이 없다. 피봉이 있는데, 증조고(曾祖考) 참판공(參判公) 분재기, 조고(祖考) 동지공(同知公) 분재기라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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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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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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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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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69년 분재기(分財記) 고문서-명문문기류-분재기 己巳八月十八日 己巳八月十八日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69년 8월 18일 날짜로 토지와 우척(牛隻)을 나누어준 분재기(分財記) 1869년 8월 18일 날짜로 토지와 우척(牛隻)을 나누어준 분재기(分財記)이다. 사유와 조상관계, 피상속인, 문서작성 참여자 등과 관련된 어떠한 정보도 없이, 전답과 대지·우척(牛隻)의 규모만을 기록해놓았다. 전답은 가천 수반평(樹盤坪) 부자답(夫字畓) 등 모두 18곳이며, 우척은 4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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