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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진년 김성윤(金聲允)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聲允 査頓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경진년에 김성윤(金聲允)이 사돈댁에 일반적인 안부 인사를 하면서 보낸 간찰 경진년 7월 17일에 김성윤(金聲允)이 사돈댁에 보낸 간찰이다. 지난봄에 가르침을 받고 담론을 나누었던 추억을 상기하며 돌아온 뒤에도 항상 그리웠다고 인사하였다. 지금은 여름이 가고 가을이 시작되는데 상대의 생활은 편안하고 아드님도 편안히 어른 잘 모시며 식구들 모두 다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살아가는 일에 골몰하느라 온갖 생각이 많고 오래 몸이 좋지 않아 걱정이지만 다행히 마을이 모두 편안하다고 하였다. 언제나 뵐 수 있을지 모르지만 평안하기를 축원한다고 하면서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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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장지철(張志喆)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張志喆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신축년 장지철(張志喆)이 같은 문중의 누군가에게 보낸 간찰 신축년 8월에 장지철이 같은 문중의 누군가에게 보낸 간찰이다. 상대방의 얼굴을 뵌 지도 오래되었고 서신으로 연락한지도 오래되었는데 지난번에 보낸 편지는 잘 받아보셨냐고 물었고, 자신은 집에 돌아온 뒤로 우연히 다리에 부종이 생겨 여러 날 앓았고 아직까지 다 낫지 않았다고 소식을 전하였다. 달포 전에 말씀드렸던 족보 책값에 대해 무슨 곡절인지 끝내 답변이 없어 안타깝다고 하면서 종제(從弟)인 장만원(張蔓遠)을 대신 보내니 이 사람의 말대로 하는 것이 사리에 당연하다고 당부하였다. 족보 책값을 수금하는 것에 대해 범상하게 여기지 말고 납부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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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년 민수(玟守)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玟守 張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갑진년 민수(玟守)가 장인어른인 장생원(張生員)에게 보낸 간찰 갑진년 1월 2일에 사위 민수(玟守)가 장인어른 장생원에게 보낸 간찰이다. 장인어른의 새해 안부를 묻고 자신은 어버이의 건강이 여전한 것이 새해 들어 가장 다행스런 일이고 그 외에 달리 전할 만한 소식은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근래 장인어른 집안에 아들을 낳는 경사가 있었다고 들었는데, 이것이야말로 집안에 후손을 남기는 조짐이니 매우 축하를 드린다고 하였다. 이번 달 보름 안에 한번 찾아뵙겠다는 말을 덧붙이며 나무라지 말아달라고 당부하였다. 장인어른인 장생원댁은 신리(新里) 월복동(月復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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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년 김석지(金錫智)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錫智 妹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병신년에 김석지(金錫智)가 옥계(玉溪)의 매형 댁에 안부를 전하고 보내준 물건에 대해 감사 표시를 하는 내용의 간찰 병신년 10월 19일에 김석지(金錫智)가 옥계(玉溪)의 매형 댁에 보낸 간찰이다. 지난 가을에 뵙고 몹시 감사했는데 뜻밖에 보내준 편지를 받게 되니 몹시 위로가 되고 또 죄송하다고 인사하였다. 편지를 통해서 매형이 잘 지내고 계시고 가족들 모두 편안하다고 해서 몹시 위안이 된다고 하였다. 자신은 어머니께서 풍담(風痰)으로 고생하시는데 겨울 추위 때문에 더욱 안 좋아져서 애가 탄다고 하였고, 계씨형(季氏兄)을 못 보다가 만났더니 몹시 기뻤지만 흉년에 많은 식솔로 생계가 어렵다고 해서 차마 들을 수가 없으니 어찌하겠느냐고 한탄하였다. 보내주신 건어(乾魚)는 잘 받았고 초자(椒子)는 감사하지 않은 것은 아닌데 다만 양이 적어서 아쉬웠다며 다음 인편에 혹 더 보내주면 어떻겠느냐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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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오년 김극영(金極永)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極永 李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45_001 경오년 2월 22일에 김극영(金極永)이 이생원(李生員)에게 갑회(甲會) 모임을 다음달 2일로 미뤘으니 그 때 왕림해줄 것을 청하는 내용의 간찰 경오년 2월 22일에 김극영(金極永)이 이생원(李生員)에게 보낸 간찰이다. 꿈에서도 생각날 정도로 그립던 차에 사촌 성호(星皓)가 와서 매우 기뻤고, 그 편에 형님의 서신을 받아 읽고서 형님이 잘 지내고 계시고 식구들 모두 편안하며, 아드님도 어른 모시며 공부 잘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어 위안이 되었다고 하였고, 종질녀도 무탈하며 손자의 천연두는 그간 잘 나았는지 물었다. 자신은 부모님을 모두 잃은 고로여생(孤露餘生)으로서 지금 이런 때를 만나니 수고하셨을 부모님 생각에 더욱 견디기 어렵다고 하였다. 지난번에 형님이 조카들을 데리고 와서 단란하고 즐거운 하루를 만들어주고 손자가 때로 춤추고 노는 모습을 보니 노쇠한 정신이 깨어나는 것 같았다며 감사를 표했다. 갑회(甲會) 모임을 다음달 2일로 날짜를 미뤘으니 그때 여러 사촌들과 함께 왕림해서 회포를 터놓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하였고, 여인(汝仁) 형도 평안한지 모르겠다며 바빠서 따로 서신을 쓰지 못하니 자신의 안타까운 마음을 전해주고, 더불어 갑회 모임에 함께 오실 수 있도록 해달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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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 鄙地方面으로 말하면 全異한 細雨도 업난事實임이다 鄙地의 送人하시와 形便를 보시면 다알의시것심이다 鄙地年▣로 말하면 十分에 九은 災라 할수잇고 一은 豊이라고 할수잇심니다 弟의小作한畓租中에不可三束以上에 넘지못하게 收取하고 그대로 잇심니다 先尺決定은 每年의 定尺하엿시나어너니廢農故로 更히 送人하시라한거심니다 其時에도 不安心를 두시지만은 右記와갓치 年運닌니 十分容恕하시고 送覽하여주시면 以後부터셔난 만닐못먹난形便이잇드라도 更히말슴告白치안커심이다 歸去한 鄙妹의 苦痛한 事情과 遺語로하다하드라도 銘心不忘 先尺一升도 懶惰치안키로함니다 그리알으시고 二十五日內로 送覽하여주시룬 千萬大望하난밤니다 今年갓튼 年勢과 ᄯᅩ잇실가요 十分顧護하시와 今年에 更히 보와주시시오 麥를 갈게되야신니 速速키 送覽하여주시를 切望함이다 餘不備書舊九月二十五日 弟朴判根 上呈他人定尺도 更히보와갓신니곳來臨하시오못오게되면回答하여주시시오【피봉】〈前面〉光州郡本村面日谷里▣▣永氏〈後面〉緘 長城郡森溪面社倉朴判根拜二十五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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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판근(朴判根)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判根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박판근(朴判根)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농사가 흉년이므로 소작료 결정에 앞서 사람을 보내 살펴주기를 당부하는 내용의 간찰 모년 9월 25일에 박판근(朴判根)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우선 올해 농사의 10분의 9가 재해를 입었음을 알렸다. 그리고 자신이 소작한 논의 작료는 3속(束) 이상을 넘지 못하게 수취해 왔고 선척(先尺) 결정은 매년 정했지만, 워낙 농사가 흉작이므로 다시 사람을 보내 살펴주기를 부탁하였다. 그렇게 해준다면 이후부터는 못 먹는 형편이 있더라도 다시 말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자신 누이의 고통스런 사정과 남긴 말을 명심해서 잊지 않고 선척 1승(升)도 게을리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다. 25일 안으로 사람을 보내 살펴주시기를 신신당부하였다. 올해와 같은 농사는 또 없었거니와 보리를 갈게 되었으니 빨리 보내달라고 하면서 못 오게 되면 회답하여 달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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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노재혁(盧在爀) 등 2인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在爀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2년 2월 2일, 노재혁 등 2인이 노진영에게 아버지 상을 위문해 준데 대한 감사를 전한 서간. 1942년 2월 2일, 노재혁(盧在爀) 등 2인이 노진영(盧軫永)에게 아버지 상에 위문해 준데 대한 감사를 전한 서간이다. 자신의 아버지 상이 졸곡(卒哭)을 넘기게 되었는데, 그때 위문해 주신데 대하여 감사를 전한다고 하였다. 연활자 인쇄의 방식으로 서간을 작성했다. 발신자는 노재혁, 노재철(盧在{火+喆})이며, 거주지는 마산부(馬山府) 성호동(城湖洞) 50번지이다.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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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노긍석(盧兢錫) 등 3명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兢錫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2년 4월 20일, 고자 노긍석 등 3인이 노진영에게 아버지 장례에 위문해 준데 대한 감사를 전한 서간. 11942년 4월 20일, 고자(孤子) 노긍석(盧兢錫) 등 3인이 노진영(盧軫永)에게 아버지 장례에 위문해 준데 대하여 감사를 전한 서간이다. 노긍석 등이 이마를 조아리고 두 번 절하고 말씀드린다며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슬픈 상황에 장례를 치르게 되었는데, 자애로운 상대가 위문(慰問)해 주심을 받았다며 감사하다는 내용이다. 발신자는 노긍석(盧兢錫), 노만석(盧晩錫), 노남석(盧南錫) 3인이며 이들의 주소는 경상북도 달성군 지구면(求智面) 대포동(大浦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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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노진영(盧軫永)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1939 盧軫永 安秉鉉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880_001 1939년 5월 15일, 제 노진영이 손자 지섭의 학교 문제로 안병현으로부터 온 편지에 답하여 쓴 편지의 초안. 1939년 5월 15일, 제(弟) 노진영(盧軫永)이 안병현(安秉鉉)에게 손자 노지섭(盧地燮)의 학교 문제로 애쓰고 편지를 준 안병현에게 답하여 쓴 편지의 초안이다. 자질(子姪)이 상대에게 지도를 받고 있는데 한번 인사하지 못했다며 자신의 성의가 부족했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최근 청화한 날씨에 상대가 공무(公務)를 잘 보고 있는지 안부를 묻고 자신은 여전히 지내고 있다고 인사했다. 지난 일주일 전에 다른 곳에 나가서 2틀전 저녁에 광주 봉호(蓬戶)에 돌아왔는데 보내주신 전보가 와 있었다는 것, 다음날 과연 상대의 편지가 하나 도착했다는 것, 편지에서 말씀하신 이미 소비한 3회분은 더 논할 것도 없고, 2회분 또한 활동으로 소비해 놓고 각자 자금을 내어 보냈다니 도리어 미안하다고 했다. 모두 나에게 혐의가 있는 것이지 형을 허물할 것이 없기에 다시 돌려 드리니 잘 받으시라고 했다. 자신이 마땅히 집에 찾아가 감사 인사를 해야 당연한데 아직 그러지 못했다며 3~4개월 간 내로 꼭 찾아뵙고 방도를 도모해 볼 계획이라고 했다. 꼭 책임져 줄 사람이 있다는 말에 매우 기쁘다는 것, 먼저 실패하고 후에 성공하는 것이 맞으니 다시 제 뜻을 수용해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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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노진영(盧軫永)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軫永 李寓老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5년에 노진영이 이우로의 소작 간청에 답변한 내용의 서간. 1935년에 편지를 받자마자 제(弟) 노진영(盧軫永)이 이우로(李寓老)에게 소작문제에 답변한 내용으로 작성한 서간이다. 그리워하던 중에 편지를 받았다며 새해의 좋은 소식이었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상대의 안부를 물은 후 자신의 아버지가 근래 노증(老症)으로 6~7일간 좋지 않았다며 자식 된 도리로 걱정했던 것을 말로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상대가 편지로 한 말이 매우 정성스러워 땀이 났다고 하고 이미 소작인이 정해졌음을 전하며 상대의 뜻에 따라주지 못한 것에 양해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편지는 노진영이 작성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이 편지가 들어있는 봉투는 이우로가 노진영에게 보낸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이우로가 노진영에게 소작을 간청하는 편지가 남아 있으므로 수신인이 이우로 임을 알 수 있다. 형태는 세로 점선이 그어 있는 규격 편지지 2장에 연속하여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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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이우로(李㝢老)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寓老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5년 1월 23일, 이우로가 노진영에게 소작문제로 보낸 서간. 1935년 1월 23일, 제(弟) 이우로(李寓老)가 노진영(盧軫永)에게 소작(小作)을 부탁하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이다. 서로 사는 곳이 한 령(嶺)을 사이에 두고 있고, 해가 또 바뀌게 되었다며 오랫동안 얼굴을 보지 못하여 매우 그립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새해에 어른 모시고, 형님과 가족들 모두 평안한지 묻고, 자신은 이전 모습 그대로 지낸다고 했다. 주요내용은 자신이 풍문으로 소식을 듣자니 담양 수북면(水北面)의 형님 소유 토지가 소작인의 과실 때문에 금년도부터 다른 사람에게 옮긴다고 했다던데 그것이 사실인지 묻고, 자신이 보내는 사람에게 소작을 부쳐 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했다. 이번에 편지 들고 가는 고(高) 군의 아버지와 형은 수북면 개동리(開東里)에 오랫동안 거주하면서 일찍부터 세계가 확실하다며 귀하의 소작지를 절실히 원하고 있었으니 그 형편을 참작하여 소작을 부처 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추기에는 재작년 여름에 자신의 자식으로 인한 부분을 아직 드리지 못해 미안하다며 살펴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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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김희도(金熙道)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熙道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음력 10월 16일, 척제 김희도가 노진영에게 자신의 국외 근황을 전하며 상대에게 일정금액을 보내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 음력 10월 16일, 척제(戚弟) 김희도(金熙道)가 노진영(盧軫永)에게 자신의 국외 근황을 전하며 상대에게 일정금액을 보내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書簡)이다. 국한문혼용으로 규격지 2장에 푸른 잉크의 만년필로 썼다. 내용은 오랫동안 안부를 듣지 못해 그립다는 것, 서늘해진 가을에 상대가 안녕하신지 멀리서 소식이 듣고 싶다는 인사, 척제(戚弟)인 자신은 여정중인 곳에서 별일 없이 지내 다행이라는 것, 자신의 가정 형편이 별로 좋지 않고, 자신도 이곳에 와 있다며 형님의 공을 하나도 갚고 있지 못하고 있다며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그러나 자신은 이곳에서 500원 정도를 모아야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것, 그래야 형님과 의논하여 상업(商業)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이곳도 불경기라서 마음대로 되지 않고 지금은 약 200원 정도 저축하였다는 것, 이것을 가지고 조선(朝鮮)으로 가면 다 허비하고 장래 어찌될 줄 모른다며 지금 귀향할 수 없다는 것, 다만 연말에는 집의 농사 준비를 위해서 1차 환가(還家)를 계획 중이라고 전했다. 그리고 1폭(幅)을 보내오니 변변치 못하지만 받아주시고 받는 대로 답장을 달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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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정순묵(鄭淳默)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鄭淳默 盧鍾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6년 음력 6월 28일에 사생 정순묵이 사돈 노종룡에게 안부를 묻기 위해 보낸 서간. 1916년 음력 6월 28일에 사생(査生) 정순묵(鄭淳默)이 사돈 노종룡(盧鍾龍, 1856~1940)에게 안부를 묻기 위해 보낸 간찰이다. 극남(極南) 지역에 재해가 든 것 중 이번 여름만한 것이 없다며 이러한 때에 배나 더 그립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사돈과 아드님, 당신의 사위되는 형님의 근왕을 묻고 자신은 어르신 곁에서 그럭저럭 보낸다고 했다. 비가 많이 내리는 나머지 병들지 않은 이가 없다며 큰 걱정은 안하지만 고생스럽다고 했다. 선(選) 아이 집도 또한 다른 일 없다는 것, 이달 22일 술시에 며느리가 남자애를 낳았고 순산했고 다른 증세가 없다는 것, 다만 초산이라 젖꼭지가 홍색이 되어 작은 통증이 있다고 했다며 단방처방을 쓰려는데 사돈의 회답이 어떠할지 모르겠다는 것, 집안에서는 7월이 산달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뜻하지 않게 남자애를 낳았다며 작년 9월에 잉태한 모양이라고 했다. 집안에 웃음소리가 들려 다행이라는 것, 큰비 내리는 중이라 두 집 간의 소식이 조용하니 지척 거리가 천리나 다름이 없다고 했다. 마침 우체편이 있어 안부를 묻는다며 인사하고 편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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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朝鮮 全南 光州郡 本村面 日谷里盧軫永 氏殿(피봉_뒷면)大阪市 東成區 大益里町 五0三竹田方金熙道十月十六日(簡紙)久未承安候에 下懷는 無日不憧憧耳. 謹未審秋涼,侍中體度萬安하시오며 諸集이 均平하온지 遠外區區願聞且祝耳. 戚弟는 旅窓眠食이 別無他損하오니以是伏幸也. 外何煩上아 第拱戚弟의 家事形便을 말할것 갓허면 兄任도 아시는 바와 갓치 저좃차 이곳에와서잇고 兄任에개 不足하고 未安한 일이 만헐줄 저도 生覺하옵내다만은 兄任工은 十分에 一分도 갑지못하오니 엇듯타말할수도업나이다. 연이나 저도 이곳서 한五百圓만 되면 還家하아 兄任과 이논하야 商業이라도한면 할나 하엿드니 이곳도不景氣로서 마음되로 되지 안이하고 至今貳百圓가량은저축하야서나 긔것설 가지고 敀鮮을 하야 허비하고 보면 長來가 엇지될 줄 몰나서 자지中이외다만은 歲末에는 집農事준비하기爲하야 一次還家하기를 爲計하노니 萬事를다 容恕하야주시고 令般留移이오ㅡ바 一幅을 付送하오니 번번치 못하오나 推尋하야주심을 千萬伏望耳옵고 推尋后 卽之回示를 伏望耳. 餘不備上書.旧十月十六日, 金熙道 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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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김환상(金煥相)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煥相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2년에 김환상이 노진영에게 안부를 묻고 지난번의 가르침에 감사를 전한 서간. 1912년 3월 28일, 제(弟) 김상환(金煥相)이 노진영(盧軫永)에게 안부를 묻고 지난번의 가르침에 감사를 전한 편지이다. 무성서원(武城書院)에서 지내고 있는 김환상이 오랫동안 친분을 가지고 가르침을 받는 상대에게 이즈음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안부를 전했다. 자신은 별 탈 없이 집에 도착하였고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지난번에 당신이 있는 곳에 갔을 때 두터운 가르침을 받았으며 넉넉히 대접해 주어 감사했다고 인사했다. 안부를 묻기 위해 편지하는 것이라고 언급하고 상대의 종형제가 되는 춘강(春岡) 형은 잘 지내는지 물으며 자신이 안부를 물었음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무성서원은 전라북도 정읍군 칠보면 무성리(武城里)에 있는 사액 서원이다. 노진영은 당시 광주군 지산면 일곡리(日谷里)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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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묘년 김극영(金極永)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極永 李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45_001 계묘년에 김극영(金極永)이 고모부인 이생원(李生員)에게 안부를 전하며 자신 집안에서 당숙모를 열부 정려를 받기 위해 정장을 추진하는 과정이니 명첩을 써서 보내주기를 요청하는 내용의 간찰 계묘년 8월 10일에 김극영(金極永)이 이생원(李生員)에게 보낸 간찰이다. 고모부의 병환 소식을 듣고 염려스러웠는데 그사이 다 나았는지, 집안 식구들은 다들 잘 지내는지에 대해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부모님이 그럭저럭 예전처럼 지내고 있어 다행이지만 작년 연말 전후로 집안의 상변(喪變)을 거듭 당하여 비통한 심정으로 날을 보내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치수(致受) 사촌이 상대방 고을로 갔다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는데 아마도 당신이 있는 곳을 방문할 것 같다고 소식을 전하였고, 보내준 여러 물품들에 대한 감사도 전하였다. 자신 집안에서 당숙모(堂叔母)의 열부(烈婦) 정려(旌閭)를 추진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상대방 고을의 여러 사람들에게도 많은 명첩(名帖)을 받았다고 하면서 고모부도 인편을 통해 써서 보내주기를 청하였다. 고모부의 형님께서 서울 행차에서 돌아오셨는지 묻고 바빠서 따로 서찰을 쓰지 못하니 안부를 전해 달라 부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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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석유(吳錫裕)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吳錫裕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24_001 오석유(吳錫裕)가 노진영(盧軫永)에게 안부를 전하는 내용의 간찰 모년 5월 30일에 오석유(吳錫裕)가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지난번 자신이 없을 때에 찾아주었는데 만나지 못해서 몹시 섭섭했고, 매번 편지를 써서 감사함을 표하고 싶었는데 잡다한 일에 치여 겨를이 없던 차에, 마침 보내준 편지를 받고나니 더욱 부끄럽고 죄송하다고 하였다. 봄과 여름이 교차하는 시절에 전원생활은 어떠신지, 부친께서는 편안하신지 묻고, 아드님이 학업을 잘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축하를 전하였다. 상대방이 사는 곳이 가까운데도 찾아뵙지 못하여 더욱 그립다고 하면서 자주 방문해달라고 당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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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박태경(朴泰慶)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泰慶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2년 음력 1월 17일, 제 박태경이 노진영에게 소작문제로 보낸 서간. 1942년 음력 1월 17일, 제(弟) 박태경(朴泰慶)이 노진영(盧軫永)에게 소작(小作)문제로 보낸 서간이다. 새해를 맞아 상대와 그 가족들의 안부를 묻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주요내용은 전년도에 광주를 떠나 고향으로 이거할 때 자신이 짓던 소작 3두락은 동정 상 계속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며, 이달 임오년을 만나 역시 잊지 않고 있다며 올해도 소작을 전과 똑같이 받을 수 있는지 대답해 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발신자 박태경이 있는 발신지 주소는 진도군 조도면(鳥島面) 창유리(昌柳里)의 정기복(鄭基福)씨 집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兄의팬지를拜讀하고그동안修謝가遲延되여서大端未安함니다弟는其間例의胸膈痛으로連日出入을全廢하엿다가今日에사兄의照會件으로某方面에알아보앗는대그內容이米穀을時方滿洲로輸出시키는것은別利益이無하다함니다近日滿洲政府에서米穀輸入統制必要上政府에서一手買点하기ᄯᅢ문이고米穀을北支로輸出하는대는多大한利益이잇스나左記의條件이俱備한사람의ᄭᅴ輸出을許可하기됨니다一. 天津이나北京等地在駐領事官이証明하여준該當地米穀商으로領事館証明을添付하여朝鮮總督府에提願하는者二. 右의証明이有한米商으로부터幾萬石送付하여달나는注文을得한人士의ᄭᅴ이른한條件下에朝鮮總督府는비로소許可할可能性이有한대그럿다고반다시許可하여주는것도안이라님다目下上海居留民團及漢口居留民團側으로 同証明을添付하여朝鮮總督府에提願한것이數百萬石이나마다不許可되고잇슴니다何故오하면自今으로支那人衆이全部朝鮮米食을所願하는대萬一無制限으로그양放任하면朝鮮米는出回前부터라도支那人의ᄭᅴ全部預賣或은買点되고말것이다그려면內鮮食粮問題가大打擊을바들憂慮가잇다는意味에서農商務省에서는絶對禁輸方針을樹立한것을外務省에서我國在外居留民을엇덧케하는야하는問題에서右와如한最小範圍의條件ᄭᅡ으로兩省間에協定된것인대朝鮮總督府에서는同兩省의根本方針에基하야政務를遂行할ᄲᅮᆫ外라다시朝鮮內實地現況에參照하여多小加減은할수잇지만은大方針의協定的軌道는到底히違越할수업다는것인대時方北支ᄭᅡ지輸送하면每石에四円五十錢假量의純利가잇스나將來난乃至十餘円假量ᄭᅡ지도 純利가잇겟다함니다然則大兄게서萬一生覺이게신다면天津이나北京이나兩處에領事館証明을가진當地商人과連絡하여幾萬石注文이兄의名義로오면本府交涉은弟가하여드리겟슴니다그리아시고工作하여보시오北京으로가시던지或은坐而周旋하던지그것이必要하게되엿슴니다그것이ᄯᅩ한잇다고本府에서何等의考慮도업시얼는하여주는것도안이올시다滿洲輸出은自今作罷하시오이른것은다商工政策上當筋의秘話오니絶對嚴秘하시오萬一그른周旋을할수잇거든곳回示하여주시오餘惟祝侍體大安不備上五月二十四日 弟安秉鉉上盧軫永 仁兄【피봉】〈前面〉全南光州府大正町一一二盧軫永 仁兄〈後面〉京城府內需町七0 七七安秉鉉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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