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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사법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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歲律云暮懸 想殊切卽 惟玆者履事珍勝遠溸溸 第向日宗會 花樹春風 衆議協同 至於無事現定 使幾絶之門運 復續庶望進就之期 幸莫大焉 會議錄玆付送 配定金無違期限 另圖送付于寶城郡文德面龍巖里(舊長洞) 鍾煥宅 千萬至企耳 餘不宣庚辰 陰十二月 念一日 門長 敎先 頓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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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유학 이기두(李箕斗) 준호구(準戶口)(47세) 고문서-증빙류-호적 甲子 李箕斗 甲子 李箕斗 전라남도 보성군 周挾改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909 1864년 문전면 가천촌에 사는 유학 이기두에게 보성군에서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1864년 문전면 가천촌에 사는 유학 이기두에게 보성군에서 발급한 준호구(準戶口)이다. 내용은 호주와 그의 처의 가족구성 그리고 천구질(노비 명단)로 구성되어 있다. 호주와 그의 처의 사조(四祖)는 동거 가족이 아니라, 당시의 호적제도에 따라 기재하도록 되어 있다. 문전면은 보성군에 속한 면이다. 리명과 통호수의 기재는 생략하였다. 호주는 이기두인데, 직역이 유학(幼學)이며, 나이가 47세(무인생)이고 본관이 성주이다. 그의 사조는 부(父)가 유원, 조가 국진, 증조가 규명이며, 직역이 모두 학생이다. 외조는 나상좌인데, 직역이 학생이며 본관이 금성이다. 호주의 처는 이씨인데, 나이가 52세(갑술생)이며 본관이 전의이다. 그의 사조는 부가 광식, 조가 의현, 증조가 지찬이며, 직역이 모두 학생이다. 외조는 윤범은인데, 직역이 학생이며 본관이 함안이다. 호주에게 아들이 하나 있는데, 이름이 진용이다. 직역이 동몽이고 나이가 15세(기유생)이다. 천구질에는 비 2명과 노 1명이 기재되어 있다. 비는 순래(42세)와 둑덕(17세), 노는 수천(49세)이다. 왼쪽 끝에는 보성군수의 서압(署押)이 있으며, 천구질 위에는 비껴서 장방형의 '주협개인(周挾改印)'의 묵인(墨印)을 찍었다. 주협개인은 주협과 개인 사이에 '자(字)' 혹은 무(無)'자를 써넣어 호주가 제출한 단자에 수정이 가해졌는지의 여부를 증명해주어야 하나 이를 생략했다. 우측 하단에는 큰 글씨로 붉은색의 '준(準)'자를 쓰고 그 오른쪽에 관인을 찍었다. 끝의 갑자식(甲子式)은 갑자식년의 호적대장을 가리키며, 이를 근거로 호구단자의 사실 여부를 증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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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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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1871년 수월리(水月里) 장사택일기(葬事擇日記) 고문서-치부기록류-택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71년 10월 14일 수월리(水月里) 산소에 장사를 지내기 위해 지관(地官)이 장례의 제 절차와 좌향, 기휘 등을 점쳐 적은 장사택일기(葬事擇日記) 1871년 10월 14일 수월리(水月里) 산소에 장사를 지내기 위해 지관(地官)이 장례의 제 절차와 좌향, 기휘 등을 점쳐 적은 장사택일기(葬事擇日記)이다. 오른쪽 하단에 '수월리산소(水月里山所)'라 기록되어 있다. 이 문서는 좌향과 용맥, 입수(入手), 분금(分金), 정상(停喪), 취토(取土), 입복(立伏), 호충(呼冲), 납폐, 개금(開金) 등의 길일과 방향, 기휘 등을 자세히 적었다. 또 혈심(穴深)을 기록하고 끝에 안장(安葬)할 길일을 적었다. 개금과 안장 길일에서 그 해가 1871년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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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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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887년 이교문(李敎文)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丁亥 二月 十七日 罪從侄 敎文 拜疏上 南省終叔前 丁亥 二月 十七日 李敎文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358 1887년 2월 17일 이교문(李敎文)이 이종 숙부에게 물품에 대한 목록과 비용 등의 내용을 알리는 간찰(簡札) 1887년 3월 21일 이교문(李敎文)이 남성(南省)에 사는 이종 숙부에게 자신의 안부를 전하고 숙부에게 보내는 물품에 대한 구매와 비용 등의 내용을 전하는 답장 편지이다. 먼저 3대의 은덕으로 교지를 받게 된 일에 감사를 전하였으며, 검서(檢書)는 바빠서 만나지 못했다 하였고 교지 30장을 봉하여 올린다고 하였다. 분황 교지는 다음번에 보내고 봉안(鳳眼)을 하는 비용은 대략 20냥이 될 것이라 하였다. 추신에 사립(絲笠)은 백여 금이 들 것이고 통영에서 온 것이 좋으며 탕건(宕巾)은 검서의 머리 모양을 보지 못해 사 보내지 못한다고 하였다. 하인들의 노자와 식사 비용으로 521냥을 출금했다 하였으며, 도홍대(桃紅帶) 1건은 12냥이고, 금관자(金貫子) 1건은 5냥 5전이고, 은합자(銀合子) 1건은 3냥 2전인데 우선 빚을 내어 쓸 것이라 하였으며, 마포(麻布)는 중품 장척(尺長)으로 구할 것이니 합 20냥 7전과 마포 3필의 값을 보내 달라는 등의 내용 등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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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南省終叔前 上候疏伏聞春寒尙峭從祖父主患候 趁後天和 而曁侍湯餘 體節萬相 仰溸仰溸三世榮浩 有降自天 擎奉敎旨感祝無比 檢書欲爲下去 而緣於倥傯 姑未暇入闉相面 故邑隷一名留置 爲先封上敎旨 合三十壯也 焚黃敎旨 入送久矣 而亦未容易 寶出當次第 封還爲計 此下人 異於京隷 所爲欲下 只給路資而已 故又不言 敎旨之在籠中耳 以此下諒 措處若何 鳳眼改造 下不失二十兩云故 第當得錢然後 改送爲料耳 餘留極忙不備謹候疏丁亥 二月 十七日 罪從侄 敎文 拜疏上絲笠欲買之 則価至百餘金 反思之 則自統營來者 文條奉家一件用之甚好 宕巾以檢書 頭樣見樣 而此從不見 故未得買送耳 下人路資食債 並爲當五二十一兩出給 而下去後相此矣 京■(主)人下去 則下不失一百兩 行下而其家 行廊輩 皆願去勇躍矣 此去邑隷 以葉錢幾兩特爲施惠 如何如何 檢書則必與侄同行耳桃紅帶一件 十二兩金貫子一件 五兩五戔銀合子一件 三兩二戔]此則得債用之也 爲先以麻布中品堅固尺長合二十兩七戔者 三疋從後付送 千萬千萬後便修札於檢書 極爲致謝 而以如干物種 付情未知如何 世上物情非比前日 故如是通奇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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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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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01년 윤기섭(尹琪燮)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辛之九月 八日 査弟 尹琪燮 拜拜 辛之九月 八日 尹璂燮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01년 9월 8일에 윤기섭(尹琪燮)이 사돈에게 가족의 안부와 소식을 전하는 간찰(簡札) 1901년 9월 8일에 윤기섭(尹琪燮)이 성명 미상의 사돈에게 가족의 안부와 소식을 전하는 편지로서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화 피는 계절이 가까워졌는데, 그리움이 깊습니다. 삼가 요즘에 존형의 체후와 가족들의 안부는 좋으신지요? 사위는 부모 모시고 가족들은 모두 편안하시니 우러러 그리운 마음이 한결같습니다. 저는 한 세상을 살면서 그런대로 민망함을 당하지 않았으니 이는 분수에 기쁩니다. 다만 집안에 평소의 괴로움이 가을을 당하여 옛사람의 가을바람에 대한 시구가 다만 나를 속일 뿐입니다. 저의 집안 큰아버지는 오래도록 해소를 앓아서 매우 안타깝습니다. 제 자식은 아직도 젖먹이인데 오늘 행차하는 날에 절로 피곤함이 많을 것이나 불쌍히 보아서 교훈의 책망이 없으니 제가 이미 감사합니다. 부디 용서하시기를 바랍니다. 나머지는 번잡하여 격식을 갖추지 않고 편지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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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이당(李鐺)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庚申九月初四日 再從姪 李鐺 伊彦 叔主/李敎成 庚申九月初四日 李鐺 伊彦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0년 9월 4일에 재종질(再從姪) 이당(李鐺)이 채장(債帳)과 망건(網巾) 가죽고깔[皮弁], 부채 상환 등의 내용으로 숙부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내는 간찰(簡札) 몇 달 이래 서찰을 받고 지금까지 답하지 못해 죄송하고 재종조부 내외 등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어수선하여 풍비박살 나고 도랑 벽이 엎어져 넘어지기를 면하기 어렵다. 인천항의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됨이 저희(沮戱)하지 않아 하늘의 바깥에 속하니 다시 바랄 것이 없다. 채장(債帳)을 어떻게 처리할지와 망건(網巾) 가죽고깔[皮弁]이 헐값이라는 등의 내용이 있고, 순(舜)이 부탁한 값을 숙부에게 추용(推用)한다고 하였다. 신자금(新資金)이 있으면 빚을 갚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나 속수무책이라 하고, 서울에서 내려오면 융통할 돈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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