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기관별 검색

검색 범위 지정 후 검색어를 넣지 않고 검색버튼을 클릭하면 분류 내 전체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전체 으로 검색된 결과 84193건입니다.

정렬갯수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1892년 이인열(李仁烈) 추증교지(追贈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高宗 李仁烈 施命之寶(10.0×10.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42_001 1892년(고종 29) 10월에 임금의 명에 따라 이인열을 통정대부 병조참의에 추증한 추증교지 1892년(고종 29) 10월에 임금의 명에 따라 이인열(李仁烈)을 통정대부 병조참의(兵曹參議)에 추증(追贈)하면서 발급한 추증교지이다. 병조참의는 정3품 당상관직이다. 발급 연호 위에 어보(御寶)인 '시명지보(施命之寶)'가 찍혀있으나 연호의 좌방(左傍)에 추증의 사유를 방서(傍書)하는 추증식(追贈式)의 형식과 다르게 추증의 사유가 생략되어 있다. 이인열은 이규행(李圭行)의 증조부로, 이규행이 통정대부로 임명됨에 따라 그도 함께 추증된 것으로 보인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1892년 이시준(李時濬) 추증교지(追贈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高宗 李時濬 施命之寶(10.0×10.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42_001 1892년(고종 29) 10월에 임금의 명에 따라 이시준을 통정대부 승정원 좌부승지에 추증한 추증교지 1892년(고종 29) 10월에 임금의 명에 따라 이시준(李時濬)을 통정대부 승정원 좌부승지(承政院左副承旨)에 추증(追贈)하면서 발급한 추증교지이다. 발급 연호 위에 어보(御寶)인 '시명지보(施命之寶)'가 찍혀있으나 연호의 좌방(左傍)에 추증사유를 방서(傍書)하는 추증식(追贈式)의 형식과 달리 추증의 사유가 생략되어 있다. 이시준은 이규행(李圭行)의 할아버지로, 이규행이 통정대부로 임명됨에 따라 그도 함께 추증된 것으로 보인다. 승정원 좌부승지는 정3품 당상관으로 승정원에 두었던 6방 중 병방(兵房)을 맡아 병조(兵曹)에 관한 일을 관장하였으며, 1894년 관제개혁 때 좌부승선(左副承宣)으로 바뀌면서 없어졌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1892년 공명첩(空名帖) 4 고문서-교령류-공명첩 高宗 施命之寶(10.0×10.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42_001 1892년(고종 29) 10월에 임금이 유인 아무개를 정부인으로 추증하는 공명첩 1892년(고종 29) 10월에 임금이 유인(孺人) 아무개를 정부인(貞夫人)으로 추증하는 공명첩(空名帖)이다. 유인은 정·종9품관의 부인에게 내리는 작호(爵號)이다. 발급 연호에 찍혀있는 '시명지보(施命之寶)' 위에 휘지(諱紙)가 부착되어 있으며, 좌방(左傍)에 추증 사유가 기재되어 있어 통정대부 행돈녕부 도정에 임명된 아들로 인하여 법전에 따라 그의 어머니를 추증한 공명첩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규행(李圭行) 어머니의 추증교지인 소장자료 '1892년 서씨(徐氏) 추증교지(追贈敎旨)'와 연관되어 있으며, 추증내용과 발급 연월도 서로 동일하다. 단 서씨의 추증교지에는 '법전에 의해 남편의 직(職)에 따라 봉작한다'는 추증 사유가 방서(傍書)되어 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1892년 이규행(李圭行) 고신(告身) 고문서-교령류-고신 高宗 李圭行 施命之寶(10.0×10.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42_001 1892년(고종 29) 10월에 임금의 명에 따라 이규행을 통정대부 돈녕부 도정에 임명한 고신교지(告身敎旨) 1892년(고종 29) 10월에 임금의 명에 따라 이규행(李圭行)을 통정대부(通政大夫) 돈녕부 도정(敦寧府都正)에 임명한 고신이다. 통정대부의 품계는 정3품 당상관이며, 돈녕부 도정은 정3품 당상관직이다. 발급 연호 위에 어보(御寶)인 '시명지보(施命之寶)'가 찍혀있다. 이 문서는 4품 이상의 문무 관원에게 내리는 고신식(告身式)의 형식과 달리 임명자의 이름이 관직명보다 아래에 적혀 있다. 소장자료 '1925년 이진녕(李震寧) 등 통문(通文)'과 1892년 이보승(李普升) 추증교지(追贈敎旨) 등을 살펴보면 이규행의 본관은 경주로 전라남도 강진군(康津郡)에서 살았으며, 야은(野隱) 이영우(李永祐)의 11대손으로 이인열(李仁㤠)의 증손, 이시준(李時濬)의 손자, 이보승(李普升)의 아들이다. 돈녕부는 정일품아문(正一品衙門)으로 왕의 친족과 외척의 관부이며, 돈녕인(敦寧人, 왕실의 친척으로 宗姓 9촌·異姓 6촌, 왕비의 同姓 8촌·이성 5촌, 세자빈의 동성 6촌·이성 3촌) 사이에 친선을 도모하기 위한 사무를 담당하였다. 1414년(태종 14)에 창설하였는데 1894년(고종 31)에 종정부(宗正府)로 병합되었으며, 궁궐 밖 중부 정선방(貞善坊, 현 종로구 익선동)에 두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1892년 공명첩(空名帖) 3 고문서-교령류-공명첩 高宗 施命之寶(10.0×10.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42_001 1892년(고종 29) 10월에 임금이 아무개를 통정대부 병조참의에 추증하는 공명첩 1892년(고종 29) 10월에 임금이 아무개를 통정대부 병조참의(兵曹參議)에 추증(追贈)하는 공명첩(空名帖)이다. 발급 연호에 찍혀있는 '시명지보(施命之寶)' 위에 휘지(諱紙)가 부착되어 있으며, 좌방(左傍)에 추증 사유가 기재되어 있어 통정대부 행돈녕부 도정에 임명된 증손자로 인하여 그의 증조부를 법전에 따라 추증한 공명첩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규행(李圭行)의 증조부 이인열의 추증교지인 소장자료 '1892년 이인열(李仁烈) 추증교지(追贈敎旨)'와 연관되어 있으며, 추증내용과 발급 연월도 서로 동일하다. 그러나 이인열의 추증교지에는 추증 사유가 방서(傍書)되어 있지 않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03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5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張明化 張明化<着名>, 李益守<着名>, 朴京信<着名>, 任在孝<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3년 장명화(張明化)가 도내(島內) 서면(西面) 신리(新里) 정등평(井墱坪)에 있는 자신의 밭 5두락지를 전문(錢文) 110냥을 받고 누군가에게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 1903년 장명화(張明化)가 자신의 밭을 누군가에게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이다. 이 밭은 선대로부터 상속받아 수년간 경작해오던 것인데 금년 봄에 많은 사채(私債)로 인해 부득이 방매하게 되었다. 토지 소재지는 도내(島內) 서면(西面) 신리(新里) 정등평(井墱坪)에 있으며, 자호(字號)는 상자(相字)이고 면적은 5두락지이다. 매매가는 전문(錢文) 110냥이다. 이 논의 구문기(舊文記)는 따로 양도하지 않았고 신문기(新文記) 1장만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이익수(李益守)와 박경신(朴京信)이 증인으로, 임재효(任在孝)가 필집으로 거래에 참여하여 각각 착명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03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張明化 張明化<着名>, 李導守<着名>, 金聖始<着名>, 朴京信<着名>, 任在孝<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3년 장명화(張明化)가 도내(島內) 서면(西面) 신리(新里) 내정동(內井洞) 가후평(家后坪)에 있는 2두락지의 밭을 전문(錢文) 60냥을 받고 누군가에게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 1903년 장명화(張明化)가 자신의 밭을 누군가에게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이다. 이 밭은 선대로부터 전해온 토지로 수년 동안 경작해 왔는데, 올해 봄에 많은 사채(私債)를 감당하지 못하여 방매하게 되었다. 토지 소재지는 도내(島內) 서면(西面) 신리(新里) 내정동(內井洞) 가후평(家后坪)이고, 자호(字號)는 상자(相字)이며, 면적은 3두락지이다. 거래가는 전문(錢文) 60냥이다. 이 토지의 구문기(舊文記)는 없이 신문기(新文記) 1장 만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이 거래에 이익수(李益守), 김성시(金聖始), 박경신(朴京信)이 증인으로, 임재효(任在孝)가 필집으로 참여하여 각각 착명(着名)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03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張明化 張明化<着名>, 李導守<着名>, 金聖始<着名>, 任在孝<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3년 장명화(張明化)가 신리(新里)의 밭 두 곳을 한꺼번에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 1903년 장명화(張明化)가 선대로부터 수년에 걸쳐 경작해오던 밭인데 금년 봄에 써야할 용처가 생겨 어쩔 도리 없이 방매하게 되었다. 대상 토지는 도내(島內) 서면(西面) 신리(新里) 정등(井墱)의 집 뒤편에 있는 상자(相字) 자호의 밭 3두 5승락지와 같은 곳의 같은 자호에 있는 3두락지의 밭 두 곳이다. 3두 5승락지의 밭은 전문(錢文) 59냥 5전으로, 3두락지의 밭은 60냥으로 값으로 거래하였다. 구문기(舊文記)는 따로 건네주지 않고 신문기(新文記) 한 장 만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매득인의 이름은 쓰여 있지 않아 알 수 없지만 장씨가(張氏家)에 전하니 당시의 장씨 집안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익수(李益守)와 김성시(金聖始)가 증인으로, 임재효(任在孝)가 필집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여 각각 착명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09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秋兄伯 秋兄伯<着名>, 秋成照<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9년 추형백(秋兄伯)이 도내(島內) 서면(西面) 신리(新里) 청송평(靑松坪)에 있는 밭 7두락지를 보리이삭[牟穗]과 함께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 1909년 추형백(秋兄伯)이 누군가에게 자신의 밭을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이다. 이 밭은 자신이 일궈서 수년 동안 경작해온 곳인데 금년 겨울에 부득이한 형편으로 방매하게 되었다고 사유를 적었다. 토지 소재지는 도내(島內) 서면(西面) 신리(新里) 청송평(靑松坪)이며 자호(字號)는 금자(金字)이다. 이 밭 7두락지와 거기에 자라고 있는 보리이삭[牟穗]을 함께 방매하면서 밭은 49냥을 받고 보리이삭은 4냥 9전을 받았다. 문서는 국한문 혼용으로 작성되었고 양식은 전통적인 명문 양식 그대로인데 증서(證書)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07년 매매명문(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玉采 金玉采<着名>, 秋亨照<着名>, 金孟允<着名>, 梁明兼<着名>, 梁善兼<着名>, 任仁馝<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7년 김옥채(金玉采)가 도내(島內) 서면(西面)에 있는 자신의 산지를 누군가에게 전문(錢文) 14냥을 받고 방매하면서 작성한 산지 매매명문 1907년 김옥채(金玉采)가 누군가에게 자신의 산지를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이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산지를 수년 동안 지켜오다가 금년 들어 부득이한 형편으로 도내((島內) 서면(西面)에 있는 산지를 모송(毛松 어린 소나무)과 함께 전문 14냥을 받고 방매하였다. 구문기(舊文記)는 없이 신문기(新文記) 한 장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추형조(秋亨照)를 비롯한 4명의 증인이 참여하여 각각 착명하였고 임인필(任仁馝)이 필집(筆執)으로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03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4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張明化 張明化<着名>, 金聖始<着名>, 任在珍<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3년 장명화(張明化)가 도내(島內) 서면(西面) 신리(新里) 뒤 강변에 있는 6두락지의 논을 누군가에게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 1903년 장명화(張明化)가 자신의 논을 누군가에게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이다. 이 논은 자신이 일궈서 수년간 경작해오던 논으로 금년 봄에 쓸 곳이 생겨 부득이 방매하게 되었다고 매매사유를 적었다. 토지 소재지는 도내(島內) 서면(西面) 신리(新里) 뒤 강변에 있으며, 자호(字號)는 상자(霜字)이고 면적은 6두락지이다. 매매가는 전문(錢文) 180냥이다. 이 논의 구문기(舊文記)는 따로 양도하지 않았고 신문기(新文記) 1장 만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김성시(金聖始)가 증인으로, 임재진(任在珍)이 필집으로 참여하여 각각 착명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03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3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張明化 張明化<着名>, 秋亨烈<着名>, 趙光善<着名>, 金如聖<着名>, 李益守<着名>, 任在孝<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3년 장명화(張明化)가 도내(島內) 서면(西面) 구교평(臼橋坪)에 있는 2두락지의 논과 장등평(長墱坪)에 있는 2두락지의 논을 합하여 전문(錢文) 210냥을 받고 누군가에게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 1903년 장명화(張明化)가 자신의 논을 누군가에게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이다. 이 논들은 자신이 일궈서 수년 동안 경작해오던 논으로 금년 봄에 많은 사채(私債)로 인해 부득이 방매하게 되었다고 매매사유를 적었다. 토지 소재지는 도내(島內) 서면(西面) 구교평(臼橋坪)에 있는 여자(如字) 2두락지와 장등평(長墱坪)에 있는 여자(如字) 2두락지이고, 매매가는 구교평의 논은 140냥, 장등평의 논은 70냥으로 합해서 210냥이다. 이들 논의 구문기(舊文記)는 없이 신문기(新文記) 1장 만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추형열(秋亨烈), 조광선(趙光善), 김여성(金如聖), 이익수(李益守)가 증인으로, 임재효(任在孝)가 필집으로 참여하여 각각 착명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03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張明化 張明化<着名>, 金始星<着名>, 趙元兼<着名>, 禹仁坪<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3년 장명화(張明化)가 답(畓) 1두 4승락지를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 1903년 장명화(張明化)가 자신이 일궈 수년 동안 경작해오던 논을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이다. 방매 사유는 금년 들어서 어쩔 수 없는 형편 때문이라고 적었다. 대상 토지는 도내(島內) 서면(西面) 내정동(內井洞)에 있는 상자(霜字) 답 1두 4승락지이고, 매매가는 전문(錢文) 41냥이다. 이 논의 구문기(舊文記)는 없이 신문기(新文記) 한 장만으로 거래하였다. 김여성(金如星)과 조원겸(趙元兼)이 증인으로, 우인평(禹仁坪)이 필집(筆執)으로 참여하여 각각 착명(着名)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78년 장명화(張明化) 토지상환명문(土地相換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鄭守夫 張明化 鄭守夫<着名>, 金用西<着名>, 金有年<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8년(고종15) 정수부(鄭守夫)가 장명화(張明化)와 밭을 바꾸면서 작성한 상환(相換) 명문 1878년(고종15) 정수부와 장명화가 토지를 바꾸면서 작성한 상환 명문이다. 정수부의 밭은 선대로부터 전래되어 수년간 경작하다가 상환하게 되었다. 대상 토지는 신리(新里) 뒤쪽 강변 몽토동(夢土洞)에 있는 위자(爲字) 밭 7두락지이다. 대체로 상환명문의 경우 서로 교환하는 상대방의 토지가 기재되어 있어야 하는데 이 문서에는 쓰여 있지 않다. 김용서(金用西)는 증인으로, 김유평(金有平)은 필집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여 각각 착명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64년 장한종(張漢宗)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趙允宗 張漢宗 趙允宗<着名>, 黃貴福<着名>, 宋太享<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4년(고종1) 조윤종(趙允宗)과 황귀복(黃貴福)이 장한종(張漢宗)에게 언답(堰畓) 3두락지를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 명문 1864년(고종1) 8월에 조윤종과 한귀복이 장한종에게 자신의 언답을 방매하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명문이다. 이 언답은 본래 선대로부터 전래되어 수년간 경작해오던 논이었다. 그런데 지난 병진년 봄에 수해로 제언이 무너졌다가 지금까지 제언을 다시 쌓지 못하여 논이 황폐하게 된 것이 방매사유라고 밝히고 있다. 방매 대상은 교포리(橋浦里)에 있는 곤자(崑字) 1두락지와 동자(同字) 2두락지를 합한 논이고, 매매가는 전문(錢文) 45냥이다. 이 거래에 송태향(宋太享)이 증인 겸 필집으로 거래에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각각 서명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94년 장채수(張采守)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秋文益 張采守 張采守<着名>, 秋文益<着名>, 金成詹<着名>, 梁義賢<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4년 추문익(秋文益)이 장채수(張采守)에게 자신의 논을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 명문 1894년 추문익(秋文益)이 장채수(張采守)에게 자신의 논을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이다. 이 논은 수년 전부터 자신이 기경(起耕)한 논으로, 금년 봄에 많은 사채(私債)로 인하여 부득이 방매하게 되었다. 논의 소재지는 도내(島內) 서면(西面)의 강변에 있으며, 면적은 5되지기[刀落只]이고 방매가는 전문(錢文) 22냥 5전이다. 이 논에 대한 구문기(舊文記)는 없이 신문기(新文記) 1장 만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김성첨(金成詹)이 증인으로, 양의현(梁義賢)이 필집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여 각각 착명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89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鄭壽富 鄭壽富<着名>, 張仁行<着名>, 李柱錫<着名>, 金應道<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9년(고종26) 정수부(鄭壽富)가 밭 7두락지를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 1889년(고종26) 정수부(鄭壽富)가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간 경작해오던 밭 7두락지를 꼭 써야할 곳이 있었던 까닭에 전문(錢文) 13냥 3전을 받고 방매하였다. 매매 대상인 땅은 도내(島內) 서면(西面) 신리(新里)의 주을로변(注乙路邊)에 있는 금자(金字) 자호의 밭이다. 구문기(舊文記)의 교부는 없이 신문기(新文記) 1장만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장인행(張仁行)과 이주석(李柱錫)이 증인으로, 김응도(金應道)가 필집(筆執)으로 거래에 참여하여 각각 착명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79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義律 李義律<着名>, 宋昌奎<着名>, 趙永逸<着名>, 李仕律<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9년(고종16) 이의율(李義律)이 답(畓) 6두락지를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 1879년(고종16) 11월 27일에 이의율이 자신의 논을 누군가에게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이다. 매매 대상 토지는 이의율이 직접 매득하여 수년 동안 곡식을 거두어 왔던 곳으로, 돈을 써야할 곳이 생겨서 부득이 매매하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토지 소재지는 도내(島內) 서면(西面) 수횡평(水橫坪)에 있는 상자(霜字) 논 3두락지와 상평(上坪) 장등구미(長墱九味)에 있는 2두락지, 그리고 같은 곳에 있는 1두락지를 각각 36냥과 36냥, 10냥으로 쳐서 모두 82냥을 받고 거래되었다. 이들 논의 구문기(舊文記)는 도문서(都文書)에 재록(載錄)되어 있어서 매득인에게 넘겨줄 수 없으므로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거래가 이루어졌음을 밝혔다. 송창규(宋昌奎)와 조영일(趙永逸)이 증인으로, 종제(從弟)인 사율(仕律)이 필집으로 거래에 참여하여 각각 착명하였다. 매득인의 이름은 기재되어 있지 않아 자세하지 않으나 문서 좌측에 추가로 쓰여진 신리(新里) 내정동(內井洞) 장문수(張文洙)일 가능성도 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병오년 박보규(朴甫奎)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甫奎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병오년에 박보규(朴甫奎)가 형에게 보낸 간찰 병오년 8월 11일에 박보규가 형에게 보낸 간찰이다. 형과 만났다가 이별한 뒤로 소식이 막혀 그리운데 부모님 모시는 생활은 어떤지 안부를 물었다. 형이 작년에 부탁한 작은 도끼 한 개를 아직 보내지 못했는데 혹시 사서 쓰고 있는지, 아니면 아직 사지 않았는지를 물었다. 사지 않았으면 신뢰를 잃었다고 하지 말고 우선 왕래하는 인편에 다시 구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시면 자신이 불민하지만 다른 모든 일을 제쳐두고 사서 보내드릴 계획이라고 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정묘년 박원호(朴遠浩)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遠浩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89_001 정묘년에 박원호(朴遠浩)가 옥산(玉山)에 며느리의 상을 당한 것을 위로하고, 금산 행차에 대한 기대를 표하며 김을 보내준 것에 대해 감사 인사를 하는 내용의 간찰 정묘년 12월 25일에 박원호(朴遠浩)가 옥산(玉山)에 보낸 간찰이다. 사는 곳이 멀어 오래도록 소식이 막혀 그리운 마음이 깊었는데 이번에 보내준 서찰을 받고 부랴부랴 펼쳐보니 마치 한 자리에 마주한 것만 같았다고 인사하였다. 서신을 통해 섣달이 얼마 남지 않은 요즘 상대방의 생활이 편안하고 가족 모두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어서 매우 위로가 되었지만, 며느리의 상변(喪變)을 당해서 얼마나 참담하고 어떻게 견디고 계시냐고 위로하였다. 자신은 어머니의 건강이 오늘내일 하는 상황에서 근래 발을 다치는 일이 있어 애타는 심정이라고 하였다. 금산(錦山) 어르신의 상(喪)은 실로 사문(斯文)의 불행인데, 내년 봄에 금산에 행차하신다니 매우 기뻐서 미리부터 기대하고 있다고 하였다. 인편이 바쁘다고 해서 우선 이렇게 답장을 쓴다고 하면서 내년에 많은 복을 받으시길 축원한다고 새해인사를 하였다. 보내준 해의(海衣 김)를 잘 받았다고 인사하고, 답할만한 것이 없어 대추를 조금 보내니 받아달라고 덧붙였다.

상세정보
84193건입니다.
/4210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