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伏未審此寒 氣體候一享萬安 大都諸節均迪否 仰溸區區 無任之至 族弟 一依 而勿頃洞山所 亦爲安寧 伏奉萬萬 就伏白山下垈租事件 對ᄒᆞ야 丁巳己未兩年條은 已爲收捧 而殖利이옵고 戊午年條은 墓直李度淳 勿須洞諸宗과 相議ᄒᆞ야 七代祖時祀出費約小홈의 依ᄒᆞ야 諸宗各出幾斗ᄒᆞ고 該賭租一石二斗加入ᄒᆞ야 宗稧設立稱託ᄒᆞ고 不給홈은 已焉諫悉 而去六月分 令尹上來時의도 爛熳相議이온바 今月時祀時 俱本利督促 則各爲子孫은 一般이라ᄒᆞ암고 永永不給 ᄒᆞ온니 事甚憫然 照量ᄒᆞ신後 該事件墓直李度淳의겨 通知ᄒᆞ시와 督促收捧 伏祝伏祝 餘旨不備 上候書庚申 陰十月 十二日 族弟 李福容 上候書누ᄎᆞ 督促? 작년분에 묘즉을 ?여 최치복을 쥴려ᄒᆞ여다 ᄒᆞ고 광언망셜ᄒᆞ온니 니갓치 온통 ᄒᆞ올일은 불가ᄉᆞ문어탄인니로로다<피봉>京畿 富川郡 蘇萊面 茂芝里 李福容 拜上大正九年 陰十一月 十一日 付郵全南 寶城郡 文德面 可川里 李冕容氏 殿 此書札 大至急 故不得已未納付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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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三年 丁丑 正月二十四日 前明文右明文事段 當此變年 生活無路故 不得已 流來畓 伏在本郡文田面校村村前坪隨字畓一斗落只四夜味四負四束庫乙果夕陽洞婦字一斗落只四夜味負數二負庫乙價折錢文肆拾參兩 依數捧上爲遣 右人前 新文一章 永永放賣爲去乎 日後若有相左之端 以此文記告官卞庭事畓主 幼學 宣永模 [着名]證筆 幼學 梁再方 [着名]此亦中 舊文遺失故 不得出給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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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治拾肆年 乙亥 四月四日 前明文右明文事 本村所居金朱迪 軍丁二名拔當是如可 去辛亥年逃走後 渠之所作優字畓一斗落十八夜味負數三負三束庫乙 自洞中如干捧禾是如可 到於今春 官分付據 從面議決價十柒兩放賣 輸納次 以此成文爲乎乙事德峰洞 頭民 黃璟浩 [喪不着]訂 時尊位 鄭源模 [着名]洞任 朴廷秀 [着名]德峰村前 優字一斗落乙亥 四月初四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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手標右標段 以要用所致 自己買得畓 伏在寶城文田面可川村上塔寺洞坪 婦字參斗落只負數什參卜玖束庫乙 價折錢文壹佰貳拾兩 依數奉用是遣舊文記幷以 永永放賣 而新文則以手標成給以爲後日相考事畓主 京居 從 雲侯 [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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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豐十年 庚申 十二月十六日 李生員 前明文右明文段 矣身由來畓 累年耕食是多可 以移買次 伏在寶城文田面校村村前塔洞 婦字畓三夜味負數十三卜九束庫乙 價折錢文一百十兩 依數奉用是遣 舊文幷以 永永放賣爲去乎 日後若有相左之端 則持此文告官卞呈事畓主 閑良 朴長壽 [着名]證人 閑良 宣善龍 [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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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김방식(金邦植)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戊辰元月八日 弟 金邦植 戊辰元月八日 金邦植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8년 1월 8일 김방식(金邦植)이 형께 편지를 드리지 못한 변명을 하고, 형의 춘당의 장수는 덕문이 두텁기 때문이고, 자신은 아버지의 비통 때문에 애가 탄다는 소식을 전하는 간찰(簡札) 사람이 멀리 있다는 탄식이 무시로 나서 매번 편지로 마음을 터놓으려고 하지만 글을 지우고 고친[塗鴉] 뒤에도 이와 같이 한 것이 두세 번이 아니었다. 춘당의 장수는 형제간에 서로 화락하게 지내면서 덕문이 두텁기 때문이고, 자신의 아버지는 작년에 앓던 비통이 빌미가 되어 의술도 듣지 않아 애가 탄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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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윤재혁(尹宰赫)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己巳二月二十九日 尹宰赫 己巳二月二十九日 尹宰赫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9년 2월 29일에 외생 윤재혁(尹宰赫)이 처남이 혼처를 확실하게 정했는지 물어보고, 자신은 어머님의 병환과 지난달 어린아이의 참혹함을 겪은 일을 전하는 간찰(簡札) 사위인 윤재혁이 안부 인사와 전(全)자 들어가는 처남이 혼처를 확실히 정했는가를 물어보았다. 자신은 어머니께서 아프지 않은 날이 없어서 걱정이고, 지난달에 불행히 어린 아이의 참변을 당하여 노친을 모시는 정경(情境)이 실로 위로해 드리기 어려우며, 다음 달 그믐에 찾아뵙겠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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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정순택(鄭諄澤) 부의장(賻儀狀) 고문서-치부기록류-부조기 庚午 八月 十三日 鄭諄澤 李 碩士 座前 庚午 八月 十三日 鄭諄澤 李碩士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30년 8월 13일에 정순택(鄭諄澤)이 이 석사에게 보낸 부의장(賻儀狀) 정순택은 자신의 백모의 부고를 듣고 상주인 이석사에게 보낸 부의장이다. 부의 물품 내역과 간략한 조위(弔慰)의 글이다. 부의 물품은 마포(麻布) 2필, 백지 5속, 문어 1축, 고막(古莫) 2두, 민어(民魚) 1미, 수어(水魚) 5미, 전어(田魚) 20미 등이다. 마포와 백지 외에는 모두 수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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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정순택(鄭諄澤) 부의장(賻儀狀) 고문서-치부기록류-부조기 庚午 八月 十三日 鄭諄澤 李 碩士 座前 庚午 八月 十三日 鄭諄澤 李碩士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30년 8월 13일에 정순택(鄭諄澤)이 이 석사에게 보낸 부의장(賻儀狀) 정순택은 자신의 백모의 부고를 듣고 상주인 이석사에게 보낸 부의장이다. 부의 물품 내역과 간략한 조위(弔慰)의 글이다. 부의 물품은 마포(麻布) 1필, 백지 3속, 문어 1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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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박승규(朴勝奎)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弟 朴勝奎 李敎成 氏 朴勝奎 李敎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35년 11월 11일 박승규(朴勝奎)가 이교성(李敎成)에게 조문에 대해 사례하는 내용의 간찰(簡札) 1935년 11월 11일 박승규(朴勝奎)가 보성군에 사는 이교성(李敎成)에게 봄에 상을 당했을 때 조문온 일에 즉시 사례하지 못한 사유를 밝히고 상대의 안부를 묻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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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정순혁(鄭淳赫)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己卯菊月念四日 弟 鄭淳赫 李敎成 宅 己卯菊月念四日 鄭淳赫 李敎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39년 9월 24일에 정순혁(鄭淳赫)이 이교성(李敎成)에게 상중에 약간의 부의금을 전한다는 내용의 간찰(簡札) 1939년 9월 24일에 정순혁(鄭淳赫)이 이교성(李敎成)에게 상중의 안부를 묻고 흉년의 생활고와 일신의 건강과 사업으로 여가를 내기 어려워 약간의 부의금을 전한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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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정순혁(鄭淳赫)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辛巳七月六日 弟 鄭淳赫 李敎永 宅 辛巳七月六日 鄭淳赫 李敎永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41년 7월 15일에 정순혁(鄭淳赫)이 이교영(李敎永)에게 올해 농사와 집안일, 무쇠솥 물색 등의 내용을 전한 간찰(簡札) 1941년 7월 15일에 정순혁(鄭淳赫)이 정읍에 사는 이교영(李敎永)에게 안부와 올해 농사의 상태를 묻고 자신은 집안일은 자식에게 일임하고 사업은 전문인에게 위임한 일, 부탁을 받은 무쇠솥은 물색해 보겠다는 등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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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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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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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이교성(李敎成)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庚申 五月 六日 子 李敎成 李敎燮 庚申 五月 六日 李敎成 李敎燮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0년 5월 6일에 이교성(李敎成)이 이교섭(李敎燮)에게 보낸 간찰(簡札) 발신자는 아들 이교성이며 수신자는 부친으로, 체신성(遞信省)에서 발행한 규격 편지지를 사용하였고, 국한문을 혼용하였다. 얼마 전에 올린 편지의 내용에 이어서 소식을 전하는 편지이다. 오후에 비석의 각자(刻字)를 다하고 비석회소로 나왔다고 한 까닭에, 가서 보니, 돌이 비록 작으나 제조하기에는 적중하였다. 글자 모양은 뭐라 말씀드릴 수가 없다. 영남의 종중에서는 한 면만 갈아내서 '소생진씨(所生陳氏)'를 고쳐서 새기고, 끄트머리에 새로 쓴 자손을 벗겨내면 약간 깊기는 하지만 정밀하게 갈아내면 크게 거리낄 것은 없으리니 어떻겠느냐고 해서, 다시 돌을 사서 잘 만드는 것이 좋겠다고 대답하였다. 전년에 서울 사는 종중사람이 이 비석을 가지고 협잡한 것은 내놓은 돈을 출금하였으니 다시 못할 것이다. 전라도에서는 이후에 다시 잘 하라고 하였다. 다시 돌을 보고 가격을 물으니 260원이라 하나, 다정하게 말하면 2백 원 남짓 주면 될 것이다. 각자까지 아울러서 4백 원이면 남는 것이 있다. 일을 주관할 사람은 다시 서로 회동하여 좌우간에 빨리 회신해주면 좋겠다. 또 각자에서 자법(字法)에 대해 언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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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김재식(金宰植)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庚午正月卄九日 弟 金宰植 李敎成 庚午正月卄九日 金宰植 李敎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30년 1월 29일에 김재식(金宰植)이 당내의 상을 당한 일과 며느리의 해산, 모란을 옮겨 심는 등의 내용으로 보낸 간찰(簡札) 1930년 1월 29일에 아우 김재식(金宰植)이 당내의 상의 슬픔과 슬하의 참혹한 광경이 닥쳤다니 놀랍고 슬프다는 말도 못하겠고, 다음 달에 며느리의 해산이 있고, 모란을 옮겨 심는 것에 대하여 말한 답장 편지이다. 골고루 안부를 묻고, 당신의 가문에서 당내의 상척(喪戚)과 슬하의 참경(慘境)을 만났다니 놀랍다. 슬프다는 말을 어찌 하겠는가. 아드님이 굳건하지 못하여 걱정이지만 화상은 걱정이 되지 않으나 고질병은 가장 우려되니, 이쪽에 혹 문의(問議)할 곳이 자세치 않고 병의 근원이 어떠한지 몰라서 다음 달 보름께 직접 가서 보고 의논할 계획이다. 자신은 아내가 조금 아프지만 다른 식구들 무탈하여 매우 다행이고, 며느리가 다음 달이 해산할 날이라고 하니 무사히 해산하기를 밤낮으로 바란다. 아버지 된 지 어제 같은데 벌써 할아버지가 된다니 놀랍고, 외조부 닮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모란은 지난봄에 옮겨 심었는데 가물어서 뿌리가 아직 튼튼하게 의탁하지 못하였다. 다시 옮기면 반드시 살기 어려우니 1년을 더 기다려 뿌리가 굳은 뒤에 옮기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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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종손 이종술(李鍾述)의 복정공 묘지보호 증서(證書) 고문서-증빙류-증서 辛酉五月十一日 李種述 李冕容 辛酉五月十一日 李種述 李冕容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1년 5월 11일에 종손 이종술(李鍾述)이 문장(門長) 이면용에게 발급한 복정공 묘지보호에 관한 증서(證書) 1921년 5월 11일에 종손 이종술(李鍾述)이 문장(門長) 이면용에게 발급한 복정공 묘지보호에 관한 증서(證書)이다. 이 증서는 6대조 복정공 묘지보호에 관한 것이다. 산야 소재는 보성군 문덕면 운곡리 9-1번, 112-2번이다. 면적은 280정7무이다. 이것을 본인이 지금 수호하고 있다. 복정공(僕正公) 제사도 체천(遞遷) 시효에도 문장 이면용은 제사 체천을 받아서 제사를 주재(제주)한 지 여러 해이다. 설향(設饗)할 기한이 멀지 않아 결코 이 산야의 수익으로 설향할 계획을 준비하기로 한 즉, 본인은 누세 선조의 열위사업(列位事業)을 단독으로 지배하기에 불가능하였다. 그리하여 문장 이면용의 처분에 따라 복정공 자손 내에서 관리인 5원을 선정하여 이 산야 소유권보존 또는 처분 수익사용 등을 전부 이전한다. 본 관리인은 이 산야에서 매년 수익이 나오는 동시에, 문장과의 협의를 통해 이 설향에 관계된 위토와 묘각(墓閣) 등 제반사업을 차제에 함께 세울 것이며, 다소를 불문하고 이 수익은 사용목적을 변치 아니하기로 한다. 그런데 복정공 자손이 결의한 결과 이 산야 280정7부 내 종손보(宗孫保)로 하여 140정미를 본인에게 증여하였다. 본인은 이번에 이를 증여를 받은 바, 이 묘각을 건축할 시에도 묘각 전부 재목료(材木料, 송목)는 본인이 증여를 받은 부분 내에서 대용하기로 약정하고, 일후에 증명하기로 하여 문장에게 이 증서를 공급한다. 이상이 본 증서의 내용이며, 다음에 산야의 규모를 규정하였다. 곧 복정공 묘지보호의 산야 한계는 방하동(芳荷洞)으로부터 복정공묘소의 오른쪽 고개까지(溫水洞)이다. 그리고 종손 보호산야는 온수동 우편부터 호등(虎嶝)까지이다. 증주(證主)는 종손 이종술(李鍾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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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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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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